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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무색황 1

2017.12.18 조회 726 추천 6


 무무색황 1권
 서장
 
 
 수천 년 간 이어져온 강호(江湖)에는 신화(神話)도 많았고, 전설(傳說)도 많았다.
 또한 수많은 무인(武人)들의 선혈(鮮血)로 점철되어 온 강호에는 난세를 평정한 영웅(英雄)들도 많았고, 그들과 가연(佳緣)을 맺은 절세(絶世) 미인들에 관한 이야기도 많았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은 사내들은 누구나 자신도 한 시대를 풍미하는 영웅이 되기를 원했고, 여인들 역시 그런 영웅들과 맺어져 한평생 행복하게 살기를 꿈꾸었다.
 중원 하늘 아래에는 그런 꿈을 꾸는 자들이 지금도 어디엔 가 있을 것이다. 그들 중 아주 극소수는 실제로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 중 대다수, 아니 거의 전부는 아무 것도 얻지 못한 채 한줌 흙으로 돌아가거나 한 구의 해골이 되어 묵묵히 풍상에 시달려야 할 것이다.
 늘 그 자리에서 묵묵히 중원(中原)을 지켜보는 하늘은 이런 인간들의 염원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심한 구름만 흘려보낼 뿐 수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야말로 무위자연(無爲自然)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과거의 영웅호걸을 이야기하며 자신도 그렇게 되기를 염원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아마 시대가 바뀌고 또 바뀌어도 이러한 바램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수천 년 무림역사 가운데 가장 뛰어난 영웅을 꼽으라면 누구나 주저하지 않고 고금제일인(古今第一人)이라 부르는 무적풍(無敵風) 위세기(魏世基)를 꼽는다.
 그는 일천여 년 전 불어닥쳤던 겁난 속에서 발군의 기량으로 천하제일인의 위(位)에 오른 입지전 적인 인물이었다.
 당시 무적풍은 단신으로 일만오천에 달하는 서장무림(西藏武林) 정예(精銳)들의 목을 허공으로 띄웠다.
 중원을 정복하겠다며 파죽지세(破竹之勢)로 밀고 들어오던 서장무림의 정예들은 단신으로 자신들을 가로막은 그를 일컬어 미친놈이라 하였었다.
 그들의 중원행을 막겠다며 나섰던 중원무림맹의 오만 고수가 제대로 공격도 해보지 못하고 비명 속에 쓰러져 간 것이 그리 오래지 않은 일이니 어쩌면 그들의 말이 옳을 지도 몰랐다.
 하지만 살아서 돌아간 서장무림의 유일한 생존자는 그를 미친놈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서장으로 돌아간 그는 무적풍 위세기를 일컬어 중원무신(中原武神)이라 부르길 주저하지 않았다.
 당시 서장무림을 통솔하던 사풍뇌신(砂風雷神) 달극추(達克鄒)는 요망한 소리를 한다며 그런 그의 목을 치고 분연히 앞장서서 중원으로 향하였다.
 중원엔 무신 따위는 없으며, 자신의 힘이라면 능히 중원정복을 하고도 남는다는 호언장담(豪言壯談)을 남겨 놓고서···
 달극추의 목이 서장으로 돌아간 것은 그가 서장을 떠난 지 불과 사흘만의 일이었다.
 달극추의 목과 함께 그를 수행하던 서장 최정예인 일백 추풍대(追風隊) 전원의 목이 상자에 담겨오자 서장무림은 겁을 집어먹고 모두 지하로 사라졌다.
 그제서야 세상은 무적풍 위세기의 존재를 알아차렸다.
 그때까지 서장무림이나 중원 무림인 중 그 어느 누구도 위세기의 존재를 알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중원으로 돌아온 위세기는 고독한 말년을 보내야만 하였다.
 이 세상 그 어느 누구도 그에게는 감히 대적(大敵)하려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니 대적은커녕 말도 붙이질 못했었다.
 무적풍 위세기의 일언(一言)은 그대로 무림의 법이 되었다.
 누구도 그의 말에 토(討)를 달지 못하였으며, 감히 거스를 생각조차 하지 못하였다. 그렇게 그는 한 시대를 풍미하다 나타날 때처럼 홀연히 사라졌다.
 무적풍이 사라진 뒤 강호인들은 그의 유품(遺品)을 찾으려고 혈안(血眼)이 되었다. 누구든 그의 무학 중 일초반식만 얻어도 천하제일인이 될 것이란 소문이 나돌았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천하는 한바탕 홍역을 앓을 수밖에 없었다.
 모든 무인들은 물론 일반 양민들과 글을 익히는 서생들까지 천하의 곳곳을 뒤졌다. 하지만 일천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누구도 무적풍 위세기의 유학(遺學)을 얻었다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는 그렇게 신비에 쌓인 채 전설처럼 세인들에게 알려져 있었다.
 
 천하인들에게 역사상 가장 무서운 인물이 누구냐고 물으면 누구나 똑같은 대답을 한다.
 
 - 수라혈귀(修羅血鬼) 노기심(盧琦尋)이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이었을 거요.
 
 그는 팔백여 년 전 사람이었다.
 특별한 세력도 없는 그가 생전에 해친 인원만도 십만이 넘었다. 살인을 하는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없었다.
 기분 나쁘면 나쁘다고 살인을 하였고, 좋으면 좋다고 살인을 하였다. 비가 오면 비가 온다고 살인을 저질렀고, 눈이 오면 눈이 온다고, 해가 쨍쨍 빛나면 빛이 싫다며 닥치는 대로 살인을 자행하였다.
 그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죄 없는 사람들이 그의 혈수(血手) 아래 유부(幽府)의 고혼(孤魂)이 되어야만 하였다.
 살인 방법도 가지가지여서 그는 생전에 일만살인법(一萬殺人法)을 저술하였다고 한다. 더도 덜도 않고 어디를 어떻게 하면 즉사(卽死)하나를 연구하였던 것이다.
 노약자고, 여인이고, 그에게는 아무 소용없었다.
 추호의 인정도 없이 만삭(滿朔)에 다다른 여인의 배를 갈랐던 살인귀가 바로 그였다.
 또 그의 특징은 살인 후 죽은 자의 선혈 맛을 본다는 것이다. 늘 선혈(鮮血)로 배를 채웠기에 그는 평생 단 한번도 음식을 먹은 적이 없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지긋지긋한 그가 무림에 공포를 뿌리며 다닌 기간은 무려 칠십 년이나 되었다. 그 동안 천하인들은 한결 같이 혹시 오늘 운 나쁘게 수라혈귀 노기심을 만나는 것은 아닌가하는 불안함에 전전긍긍하여야만 하였다.
 수라혈귀의 만행을 보다 못한 무림인들이 무맹(武盟)을 창설하여 조직적으로 그와 대응하려 하였으나, 무맹창립일에 모여있던 대부분의 고수들이 그의 혈수(血手)에 눈도 못 감은 채 이승을 하직하여야만 하였다.
 당시 희생된 무맹의 고수들 중에는 각 문파(門派)의 장문인(掌門人)들과 장로(長老)는 물론 호법(護法)들이 망라되어 있었기에 중원 무림은 자파무공(自派武功) 대부분이 실전(失傳)되는 비운을 맞았었다.
 결국 중원 무림은 한동안 지독한 쇠퇴기를 맞아야만 하였었다. 하지만 많은 무인들이 새로운 무공을 창안(創案)하려 노력에 노력을 거듭하여 비약적으로 무공이 발전하던 시기이기도 하였다.
 수라혈귀 노기심이 중원을 위하여 세운 공로도 있었다.
 그것은 중원을 정복하겠다며 나섰던 남만(南蠻) 묘족(苗族)들의 침공을 단신으로 막아낸 것이었다.
 삼만이 넘는 묘족들은 독인(毒人)들이었다. 선대로부터 염원인 비옥한 중원을 차지하려 북벌(北伐)을 감행하였던 것이다.
 피독주(避毒珠)를 입에 물고 그는 불과 이 년만에 그 많은 독인들을 모두 잠재웠다. 하지만 사람들은 겁난을 해소시켜준 그를 칭송하기는커녕 악랄한 살인귀라 부르길 주저하지 않았다.
 그가 묘족들을 물리친 것은 자신의 일만살인법을 시험하고자 한 것이라는 후문이 나돌았기 때문이었다.
 수라혈귀는 그렇게 강호를 독보(獨步)하다 홀연히 사라졌다.
 그가 사라진 뒤 중원에는 또 다시 그의 유품(遺品)을 찾으려는 한바탕 난리가 벌어졌으나, 아직 그 어느 누구도 그의 유품을 찾았다는 사람은 없었다.
 만일 누군가 그의 유품을 찾는다면 아마도 천하는 또 한번 지독한 몸살을 앓아야 할 것이기에 세인들은 그의 유품이 영원히 잠들도록 천지신명께 빌고 또 빌었다.
 
 그 누가 중원에서 가장 부자이냐고 물으면 누구나 이구동성으로 바로 금강산(金江山) 황보휘(皇甫輝)라고 대답한다.
 금으로 강을 메우고, 산을 쌓을 정도로 재산을 불린 그와 필적할 만한 갑부는 아마 영원히 없을 것이라 하였다.
 그는 육백여 년 전 중원에 나타나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엄청난 재산을 축적한 거부(巨富)중의 거부였다.
 가히 고금제일거부라 불릴 만 하였다.
 어린 시절 너무도 빈한한 부모 밑에 태어나 가난이란 것이 무엇인지를 절실하게 배운 그는 성장하면서 상로(商路)를 걷게 되었고, 무엇이든 그의 손에 한 번 들어가면 나오는 법이 없었다.
 결국 수많은 경쟁자들을 물리친 그는 중원의 상권을 한 손에 쥐게 되었고, 황제의 명마저 거부할 수 있는 대륙상황(大陸商皇)의 위치에 오르게 되었다.
 당시 그의 휘하에서 상도를 배우던 두 인물은 금적산(金積山) 용문호(龍文昊)와 금반산(金盤算) 초류홍(楚琉弘)이었다.
 용문호는 황보휘의 창고를 담당하는 시동(侍童)이었고, 초류홍은 장부를 담당하던 시동이었다.
 금강산 사후(死後) 둘은 그에게서 배운 상도로 천하 상계를 양분하였다. 현재의 중원 상맥(商脈)은 모두 그들의 후예라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그들의 재산이 금강산에 비하여 백분지 일에도 미치지 못한다며 한탄하였다고 하니 황보휘가 얼마나 부자였는지 짐작할 만 하였다.
 그렇게도 재산을 축적하기만 하던 황보휘는 노후에 엄청난 재물을 산지사방에 쏟아 부었다.
 당시 천하에는 기근과 홍수가 몇 년째 계속되어 새로 태어나는 아이들의 수효보다 굶어 죽는 수효가 무려 열 배에 달하던 참담한 때였다. 먹을 것이 없어 초근목피(草根木皮)를 삶아 먹었고, 그것도 없으면 흙을 먹었다. 굶주림에 지쳐 우는 아이들을 부모가 내다 버리던 그런 참혹한 시절이었다.
 수전노로 유명한 금강산은 억조창생이 굶주림에 시달리는 것을 보고 재물을 아낌없이 풀어 그들을 구휼(救恤)하였다.
 그가 천하인들에게 구휼의 손길을 펼치길 무려 십 년, 드디어 기근과 홍수는 물러갔고 만민들은 모처럼 추수의 기쁨을 나눌 수 있다.
 당시 금강산에게서 받은 은혜를 갚기 위하여 천하인들이 가지고 온 곡식과 보물은 가히 한 마을을 뒤덮고도 남을 정도였다.
 금강산 황보휘가 주인이었던 만금원(萬金院)이 있기에 번화한 시진이었던 협서성(陜西省) 서안(西安)에서는 사라진 금강산을 찾느라 한바탕 난리가 났었다.
 하지만 금강산을 본 사람은 그 이후로 아무도 없었다. 또한 만금원에 있던 그 많던 재물 가운데 남아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거대한 창고에는 수북한 먼지만 남아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금강산이 전 재산을 털어 십 년간이나 천하의 억조창생들을 먹여 살리느라 전 재산을 탕진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금적산 용문호와 금반산 초류홍만은 가지고 있던 재물의 십 분지 일도 채 쓰지 못하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 많던 재물이 어디로 사라졌는지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는 창고를 관리하던 금적산마저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어마어마한 재물로 한 시대를 풍미하던 거부(巨富)는 그렇게 세인들의 관심 속에서 사라졌다.
 
 천하인들에게 지금까지 중원 역사상 가장 황음(荒淫)을 즐겼던 색마(色魔)가 누구냐고 물으면 누구나 같은 대답을 한다.
 
 - 물은 것도 없소이다. 그는 바로 사백여 년 전 천하의 여인들을 울렸던 천면인(千面人) 추자도(秋孜淘)이오!
 
 그는 극상승(極上昇)의 무공을 지닌 역용술(易容術)의 천재로 알려졌다. 또한 복잡다단한 여인들의 심리 파악에 도사중의 도사라고 알려졌다.
 보보(步步)마다 얼굴이 바뀌었기에 누구도 그의 진면목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들이 없었다. 들리는 말로는 그의 부모와 형제조차 그의 진면목을 잊었다고 하였었다.
 그는 절세의 역용술과 세 치 혀로 천하 여인들의 방심(芳心)을 뒤흔들어 스스로 의복을 벗게 만들었다. 여인들은 누구나 절세미남의 유혹을 받고 기꺼이 자신의 청백(淸白:순결)을 바쳤다.
 하지만 그것은 그때뿐!
 일단 여인들의 청백을 접수하면 천면인은 다시는 그녀들과 접촉하지 않았다. 당시 그에 의하여 정조를 잃은 여인들의 수효만도 무려 이만에 가까웠다.
 매일 한 명씩 오십 년이란 장구한 세월동안 그랬던 것이다.
 천면인이 더 이상 무림에 나타나지 않자 천하의 색마들은 그의 유품을 찾기 위하여 강호를 휘젓고 다녔다.
 그들이 찾아 헤맨 것은 그의 역용술(易容術)이나 방중비술(房中秘術)을 기록한 것이 아니었다.
 어떻게 하면 세 치 혀로 순식간에 여인들의 방심을 뒤흔들 수 있는 지가 기록된 비급을 찾으려했던 것이다.
 하지만 천면인 역시 하늘로 솟았는지 땅으로 꺼졌는지 그 어느 누구도 그에 관한 것을 찾을 수 없었다.
 
 천하인들 가운데 아무나 붙잡고 고금제일신의(古今第一神醫)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 고금제일신의요? 예전에 물었다면 아마도 전설상의 신의였던 화타나 편작이라 했겠지만, 지금은 누가 뭐라 해도 생사신의(生死神醫) 곽홍(郭弘)이 고금제일신의임에 틀림없소이다!
 
 그는 불과 이백여 년 전에 나타나 죽은지 사흘만 넘지 않았다면 죽음의 손길에서 구해내었다.
 그의 신묘한 의술이 행해지면 앉은뱅이가 일어서고, 소경이 눈을 뜨며, 심지어는 대풍창(大風瘡:문둥병)에 걸린 환자의 없어져 버린 손가락이 새로 돋아났다.
 물론 이러한 모든 질병들이 말끔히 치유되는 것은 물론이었다.
 그가 있음으로 해서 화타나 편작조차 어쩌지 못하였다는 삼음절맥(三陰絶脈), 오음절맥(五陰絶脈), 칠음절맥(七陰絶脈), 구음절맥(九陰絶脈)은 물론 천음절맥(天陰絶脈)과 태양절맥(太陽絶脈) 등 인세에 드문 각종 절맥의 치유법이 완성되었던 것이다.
 생사신의 곽홍은 유사이래 그 어떤 의원도 생각하지 못하였던 방법으로 환자들을 대하였다. 진맥에 앞서 환자의 생김새와 체형을 살펴 크게 네 가지로 체질을 분류한 것으로 유명하였다.
 그가 처음 강호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이런 그의 습성 때문에 관상을 살피는 역술가로 오인 받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는 인체를 네 가지로 분류하여 태음(太陰), 태양(太陽), 소음(小陰), 소양(小陽)이라 불렀으며 이것을 사상(四象)이라 칭했다.
 그는 이런 사상체질을 바탕으로 같은 질병이라 할지라도 각기 다른 처방을 내려 치료함으로서 천하 의생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었다.
 또한 세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생사신의는 의술뿐만 아니라 독(毒)에도 상당한 조예가 있었다고 하였다.
 한 방울만 있어도 황소 수십 마리를 독살시킬 수 있는 절독(絶毒)으로 환자를 치료하였다 하였다.
 하지만 그가 홀연히 사라지자 억조창생들은 세수를 다 누리고 저승으로 향했을 것이라며 아쉬워하였다.
 그는 늘 자신의 주검을 그 어느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하였기 때문이었다.
 그가 얼마나 세인들의 존망을 한 몸에 받았는지 그의 사후(死後) 천하 각지에서는 무려 일백 일 동안이나 향화(香火)가 그치질 않았다고 하였다.
 생사신의 곽홍이 머물던 거처에는 먼지 한 점 없이 정갈하였으며 그의 유품은 단 한 점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의 곁에서 어깨 너머로 의술을 배우려 몰려들었던 많은 의생들이 주변을 샅샅이 뒤졌지만 아무 것도 없었다.
 
 이렇듯 강호에는 각 방면에서 한 시대를 풍미하던 많은 기인이사(奇人異士)들이 있었다.
 사람들은 누구나 한 시대를 풍미한 이들의 유품을 찾으려 혈안이 되어 산지사방을 쏘다녔지만 아직 그 어느 누구도 유품을 얻었다는 말은 들려 오지 않았다.
 
 
 제1장 도박장에서 시작된 인연
 
 
 드넓은 중원(中原)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촌락 한 옆에는 폭이 대략 십여 장 정도 되는 내가 흐르고 있었다.
 남쪽엔 고산준령(高山峻嶺)이 웅장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고, 동과 서 역시 높은 산악지대로 둘러 싸여 있었다.
 북쪽만은 유일하게 낮은 구릉지대였기에 무성한 숲이 있었지만 다소 시야가 넓은 그런 곳이다.
 내의 깊이는 대략 넉 자 정도 되어 아이들이 놀기에 더 없이 좋은 곳이었다. 내의 이름은 연류하(然流河)였다.
 하류는 깊이가 무려 십여 장에 이른다하나, 이곳은 깊이가 낮은 편이었다. 다른 곳보다 경사가 완만하고 폭이 넓기 때문이다.
 연류하의 양쪽엔 남방에서나 볼 수 있는 무성한 나무들이 바람에 넓은 잎사귀를 흔들고 있었다.
 이곳은 귀주성(貴州省) 안순현(安順縣)에서 남쪽으로 백여 리 정도 떨어졌으며, 운남성(雲南省)의 경계와 맞물려 있는 황과수(黃果樹)라는 촌락이었다.
 이곳은 평화로운 곳이며, 일 년 내내 따뜻한 기후를 유지하고, 황색 과실이 열리는 나무들이 지천으로 깔려 있는 곳이다.
 황색과실은 달콤한 과즙과 향이 아주 좋았다.
 황과(黃果)는 어른이라 할지라도 세 개 이상 먹으면 설사를 하게 되고, 수확한지 한 시진이 넘으면 물러버리기에 이곳이 아니면 도저히 맛보지 못할 그런 진귀한 과실이었다.
 하지만 황과수의 주민들 대부분은 황과를 먹지 않았다.
 제 아무리 맛이 있다하더라도 많이 먹으면 질리기 마련이다. 그래서 정말 양식이 떨어져 허기질 때에만 한두 개로 허기를 달랠 뿐 더 이상은 절대 먹지 않았다.
 
 "휴우! 아버님은 또 도박장에 가셨어요?"
 연류하 다리 아래에는 나뭇가지를 꺾어 아무렇게나 기둥을 세우고, 낡은 거적으로 대강 얼기설기 엮어 놓은 움막이 있었다.
 어린 소동의 음성은 바로 움막 안에서 나왔다. 이제 겨우 육 칠세 정도 된 소동은 치기(稚氣)가 완연하였다.
 "호호! 호아 왔니?"
 움막 안에서는 거적을 밀고 들어오는 소동을 맞이하는 자애스러운 여인의 음성이 있었다.
 "어머니! 아버님은 또 도박장에 가셨나요?"
 "그래!···"
 소동의 성명은 남궁호(南宮豪)였다.
 그는 올해 육 세로 남루한 의복을 걸친 평범한 인상을 한 아이였다. 여인은 그의 모친인 진초초(晋草草)였다.
 그녀는 올해 이십육 세가 되었다. 이런 한가로운 촌락에서는 보기 힘든 미색(美色)을 갖추고 있었지만, 가난에 찌들어 그런지 약간은 더 늙어 보여 보였다.
 그녀는 극히 말을 아끼는 사람이었다. 하루에 겨우 한두 마디가 전부였다. 사실 아직 어린 남궁호는 모르고 있었지만 진초초는 말을 잘 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녀가 벙어리인줄 아는 사람들도 많았다.
 소동의 부친은 황과수 제일의 부자였던 남궁욱(南宮郁)이다.
 칠 년 전 그는 도박에 미쳐 물려받은 막대한 가산을 전부 탕진하였다. 이때가 그의 나이 약관(弱冠) 이십이었다.
 모든 것을 잃고 강호를 떠돌던 그가 다시 돌아 온 것은 소동이 태어나기 직전이었다. 떠날 때와는 달리 아름다운 여인 하나를 대동하고 있었다. 그 여인이 바로 진초초이다.
 만삭의 몸을 보고 사람들은 그의 부인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곳에 도착한지 불과 열흘 후 남궁호가 태어났으나, 어느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남궁욱의 아들을 일부러 보러올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그가 황과수 제일의 갑부일 때 인심(人心)을 너무도 철저히 잃었기 때문이다.
 누가 병들어 약살 돈이 없어 찾아가면 문전박대하기 일쑤였고, 그나마 은자를 빌리고 나면 고율(高率)의 이자를 요구하였다.
 그리고 갚기로 한 날 갚지 못하면 정말 인정사정도 없이 담보로 잡았던 전답을 빼앗았다.
 도박으로 전 재산을 탕진한 남궁욱은 마을 사람들의 철저한 무관심과 냉대를 견딜 수 없어 마을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누구하나 굶주린 그에게 따뜻한 손길을 베풀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고, 자존심 때문에 구걸을 하기 싫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이미 질려버린 황과를 매일 먹고살 수는 없다 생각하여 차라리 마을을 떠나 객지로 떠돌아다니는 것이 더 좋겠다고 생각하고 떠났던 것이다.
 오랜 객지 생활 끝에 마을로 되돌아 왔을 때에도 그의 수중에는 단 한푼의 은자도 없었다. 처음엔 아낙인 진초초가 지니고 있던 약간의 재물을 팔아 먹고살았으나 그것도 곧 바닥이 났다.
 떠나기 전과 다름없이 빈털터리인 남궁욱은 할 수없이 남의 집일을 하며 받은 품삯으로 간신히 먹고 살 수 있었다.
 그런 그였지만 도박에 미친 것은 여전하였다.
 시간 날 때마다 마을에 단 하나뿐인 도박장으로 달려가 품삯과 개평으로 얻은 은자로 도박을 하곤 하였다.
 그는 도박장에서 개만도 못한 취급을 받았다. 하지만 한푼이라도 더 얻기 위하여 비굴한 미소를 띄운 채 온갖 치욕스런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가랑이 사이로 기어가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더러운 발바닥을 핥기도 하였고, 심지어는 개똥을 주워먹기까지 하였다.
 그렇게 하여 얻은 은자로 도박을 하였다.
 하지만 결과는 같았다.
 단 한번도 은자를 딴 적이 없는 그는 늘 빈털터리가 되어 움막으로 돌아오곤 하였다. 그를 기다리던 진초초는 군소리 없이 그를 맞았다.
 남궁욱과 진초초는 부부 사이이건만 거의 대화를 하지 않았다.
 아들에 관련된 일이 아니면 하루종일 단 한 마디도 상대에게 말을 건네지 않는 날이 많았다.
 하지만 밤에는 달랐다.
 적어도 남궁호가 보기에는 그랬다.
 언젠가 그가 잠을 자다 오줌이 마려워 눈을 뜬 적이 있었다.
 무심코 눈을 비비고 일어났던 그는 양친(兩親)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숨을 헐떡이며 격렬하게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모친은 마치 어디가 아픈 사람처럼 앓는 소리를 내고 있었고, 부친은 그런 모친의 위에서 더욱 괴롭히려는 듯 거친 숨을 몰아쉬며 격렬하게 움직였다.
 "으앙!··· 나빠! 도대체 왜 엄마를 못살게 구는 거야?"
 양친은 깜짝 놀라 허겁지겁 남루한 의복을 걸쳤고, 부친은 그런 그의 머리를 쥐어박으며 중얼거렸다.
 "이런?··· 싸가지 없는 놈!··· 빨리 자빠져 잠이나 자!···"
 그 후로도 그는 몇 번이나 같은 경험을 하였다. 결국 밤에 자다 눈을 뜨게 되면 가만히 누워 주위를 살피는 버릇이 생겼다.
 움막은 셋이 간신히 누워 잘만한 크기였기에 굳이 귀를 기울일 필요도 없었다. 가만히 있기만 하면 움막 안의 사정을 훤히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곁에서 헐떡이는 소리가 나지 않을 때에는 일어나서 오줌을 누고 와도 아무 상관없었다. 하지만 곁에서 격렬하게 움직이며, 짐승 같이 헐떡이는 소리가 들리면 사정이 달랐다.
 한참 후 긴 한숨을 몰아쉬고 양친이 골아 떨어져 가늘게 코고는 소리가 들릴 때까지 기다려야만 하였다. 만일 그러지 않으면 필경 부친에게 혼날 것이 뻔하였기 때문이었다.
 한 때 밤마다 너무도 긴박(緊迫)한 신음을 내는 모친이 혹시 저러다 죽는 것이 아닌가하는 불안감에 시달리곤 하였다. 하지만 다음날 모친은 오히려 조금 더 생기가 도는 듯하였기에 그리 걱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요즘은 그런 것을 하도 많이 보고, 들어서 거의 만성이 되다시피 하였기에 별로 상관하지 않게 되었다.
 어린 남궁호는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그저 어른들은 밤마다 그래야 하는가보다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부친은 하루의 일과를 마친 후 늘 도박장으로 향하였다.
 그 역시 도박장으로 매일 발걸음을 옮겼다.
 부친과 함께 귀가하지 않으면 저녁을 먹을 수 없기에 늘 그를 찾으러 다녔던 것이다. 사실 황과수에는 도박장이라 봐야 하나밖에 없기에 그를 찾기란 너무도 쉬운 일이었다.
 전에 있던 도박장들은 독심요화(毒心妖花) 마옥령(馬玉鈴)이 신장개업을 하면서 일제히 문을 닫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기에 모두 폐업(閉業)을 한 상태였다.
 어린 남궁호는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하여 부친을 찾아 거의 매일 그곳으로 향하였기에 마을 사람들에게서 그 아비에 그 아들이라는 말을 자주 듣곤 하였다. 그는 부친과 자신이 닮았다는 말인 줄 알고 어른들이 하는 말에 크게 신경 쓰고 있지 않았다.
 부친은 늘 은자가 적었기에 적은 은자로도 가장 오래 버틸 수 있는 마작(麻雀)판에 끼어 있었다.
 간혹 주사위 판에 끼기도 하였는데 그것은 일년에 한두 번 있는 일이었다. 어쩌다 횡재라도 할라치면 그 판에 끼었던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늘 마작판이 그의 주 무대였다.
 늘 빈털터리가 되었지만 부친은 비교적 판돈이 작은판에서 요행히 은자를 따게 되면 좀 더 큰판으로 자리를 옮기곤 하였다.
 어린 남궁호는 마작을 하는 부친의 뒤에 서서 마작패를 손으로 더듬는 부친의 패를 볼 수 있었다.
 핑후니, 당요니 하는 말은 하도 많이 들어 이제 거의 외우다시피 하였고, 어떻게 점수 계산을 하는지도 훤히 알고 있었다.
 언젠가 양지바른 곳에 앉아 이를 잡고 있는 부친에게서 마작의 족보(族譜)를 배운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부친은 어린 그를 앞에 앉혀놓고 땅 바닥에 그림을 그려가며 마치 도신(賭神)이라도 된 양 입에 거품을 물며 가르쳤었다.
 이때 곁을 지나던 마을 어른들은 그런 부자(父子)를 보면 나직이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쯧쯧! 에잉!··· 인간말종(人間末種) 같으니라고··· 아비라는 게 어린것을 앉혀놓고··· 쯧쯧쯧!···"
 하지만 그와 부친은 그런 것에 일절 신경 쓰지 않았다.
 남궁욱은 자신이 도신이 된 기분이 들어 좋았었고, 어린 남궁호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부친이 자신에게 자상하게 무엇인가를 가르치고 있었기에 좋았던 것이다. 결국 그는 적어도 마작에 관한 거의 모든 것들을 부친에게서 배울 수 있었다.
 어린 나이였지만 기억력이 좋아 그 많은 마작 족보(族譜)를 외웠고, 간혹 부친이 이겼을 때 점수 계산을 잘못하면 뒤에서 이를 지적하여 더 많이 딸 수 있도록 도왔다. 그럴 때면 기분 좋아하며 구리돈 한 문(文) 정도를 쥐어주곤 하였다.
 딱히 쓸 곳이 없었기에 그것은 늘 모친에게 맡겨졌다.
 부친이 모든 은자를 잃고도 움막으로 갈 생각을 하지 않을 때면 도박장을 돌아다니며 수많은 종류의 도박들을 보았다.
 그 중 주사위 도박이나, 골패 같은 것이 재미있어 보였다.
 하지만 연환검(連環劍)이니, 장군패(將軍牌)니 하는 골패(骨牌)는 마작에 비하면 너무도 재미없었고, 단순한 도박인 주사위 역시 마찬가지였다. 자연 늘 마작판에서 서성였다.
 패 하나가 들어 올 때마다 자신이 세워야하는 방(房)을 달리할 수 있으며, 남들이 버리는 패 하나에도 상황이 급변하는 것이 재미있었던 것이다.
 마작판 주위를 돌며 사람들이 어떤 때 어떤 패를 취하고, 어떤 때 어떤 패를 버리는지를 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남궁욱은 아들이 도박장에 들어와 돌아다니는 것에 대하여 일언반구(一言半句)도 하지 않았다. 웬일인지 모친 역시 자식이 도박장을 기웃거린다는 것을 알면서도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덕분에 소동은 친구가 없었다.
 늘 어른들만 득실대는 도박장에 있었기에 같은 또래의 아이들과 어울릴 시간이 너무도 적었기 때문이었다.
 이미 육 세가 되었지만 남궁호는 자신의 성명 석 자조차 읽고 쓸 수 없는 완전한 불학무식(不學無識)이었다. 아무도 그에게 글을 가르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마을에서 얻은 허름한 의복을 걸치고 다녔으나 체취(體臭)는 나지 않았다. 매일 연류하에서 수욕을 하였기 때문이었다.
 
 황과수 전체를 다스리는 현령은 나이가 거의 칠십이 다 되었건만 아직도 개기름이 줄줄 흐르는 노인이었다. 워낙 먹성이 좋아서인지 현령은 비대하기 이를 데 없었다.
 비대한 몸이지만 현령은 색(色)을 밝혀 그에게는 무려 일곱 명이나 되는 희첩(嬉妾)들이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가 없을 때면 호색돈(好色豚)이라 불렀다.
 마광주(馬廣柱)라는 성명을 가진 현령에게는 아홉 자식이 있었다. 그들 아홉 중 여덟은 이미 장성하여 일가를 이룬 후 각기 황과수의 상권을 쥐고 있었다.
 포목점, 대장간, 피륙점, 고리대금업(高利貸金業), 양곡점, 주루(酒樓), 객잔(客棧)과 춘심원(春心院)이란 기원(妓園)이 그들이 운영하는 것이었다.
 현령의 자식 중 아홉 번째는 유일하게 여인이었다.
 현령의 유일한 여식인 마옥령(馬玉鈴)은 강호 유람을 나갔다가 아이를 잉태하고 홀로 돌아와 이곳에 도박장을 차렸다.
 결국 황과수의 주요한 상권은 현령의 자식들이 모두 쥐고 있는 셈이었다. 그들에겐 경쟁상대가 전혀 없었기에 날마다 성업을 이루고 있었다.
 현령이 부임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오십여 년 전이었다. 그 후 단 한 번도 바뀐 적이 없었다.
 황과수는 어떻게 보면 교통의 요충지에 있으면서도 규모가 크지 않았기에 중앙에서 보면 아무 것도 아닌 촌락이기 때문이었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상납을 게을리 하지 않은 덕이었다.
 소문에 의하면 현령은 중앙에까지 줄을 대고 있다 하였다.
 마음만 먹으면 더 큰 촌락이나 현(縣)의 수장(首長) 노릇을 할 수도 있지만, 이곳을 떠나지 않는 이유는 이곳이야말로 그에게 있어선 화수분이나 다름없는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주민들의 수효는 불과 이천이 넘지 않았다. 하지만 기원에 있는 기녀들의 수효는 무려 일백오십에 달하고 있었다. 이곳을 중심으로 생활하는 인근 산지의 주민들과 이곳을 지나는 과객(過客)들에 의하여 유지 된다하여도 과언이 아닌 곳이었다.
 장이 설 때면 유동 인구만도 거의 오천에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현령의 자식들은 모두 호의호식하며 살고있었다.
 적어도 황과수에서는 그들을 건드릴 사람은 하나도 없기에 늘 발뻗고 잠을 잤다. 덕분에 사람들은 현령의 자식들이 벌이는 만행을 보고도 눈감아야 하는 일이 많았다.
 그 아비에 그 자식이라는 말이 있듯이 현령의 여덟 아들들은 모두 호색(好色)하여, 두세 명씩의 첩을 거느리고 살고 있었다.
 그것으로도 모자라는지 종종 남의 아내를 겁간(劫姦)하여 시끄러워지곤 하였다. 촌락 주변에 있는 여인들 중 조금이라도 반반하다 싶으면 이미 그들에 의하여 건드려져도 수십 번씩 건드려졌다하여도 과언이 아니었다.
 겁간 당한 여식이나 아내를 둔 아비나 남편들은 분기탱천하여 입에 거품을 물고 달려들곤 하였지만 그것은 언제나 흐지부지하게 마련이었다. 은자 몇 푼에 입을 다물거나, 아예 여식이나 아내를 그들의 첩으로 들여앉히는 대신, 조그만 농토를 얻거나 하는 선으로 끝나곤 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만행을 나서서 저지하려하거나, 욕하는 사람은 그들의 누이동생인 독심요화 마옥령 하나 뿐이었다.
 여식이나 아내를 잃은 많은 사람들이 분을 참지 못하거나, 남들의 손가락질 때문에 촌락을 떠났기에 도박장 영업에 막대한 지장을 받았던 것이다.
 그런 마옥령에게는 쥐면 터질세라, 불면 날아갈세라 애지중지(愛之重之)하는 여식(女息)이 하나 있었다.
 올해 남궁호와 동갑인 진교연(晋嬌燕)이 바로 그 아이였다.
 솜씨 좋은 화공이 천상옥녀(天上玉女)의 어릴 적 모습을 그려 놓은 듯 깜찍하게 생긴 그녀는 현령의 식솔들을 은근히 경원시 하는 마을 사람들 때문에 남궁호와 마찬가지로 친구가 없었다.
 비록 먹고사는 것은 풍족하나 친구가 없는 외로움을 이기기엔 아직 어린 나이였다. 그래서 심심할 때면 도박장에 나와 사람들이 도박하는 모습을 구경을 하곤 하였다.
 그녀가 앉아 구경하는 곳은 도박장 전체가 한 눈에 훤히 보이는 이층 계단참이었다.
 계단에 앙증맞은 두 다리를 걸치고 앉아 흔들면서 나직이 콧노래를 부르던 진교연은 자신과 같은 또래인 남궁호가 거의 매일 도박장에 나와 서성이는 것을 보고 말을 붙여 둘은 친구가 된지 오래였다.
 둘 다 친구라고는 상대 하나밖에 없는 외로운 처지였다.
 진교연은 굶주린 남궁호에게 가끔 맛난 음식을 가져다주었기에 둘은 무척이나 친숙해져 있었다. 오늘도 도박장에 나타난 그를 보자마자 그녀는 계단참에서 쪼르르 내려와 말을 걸었다.
 "얘!··· 너, 왔어?"
 "으응! 그래, 너는 언제 나왔어?"
 진교연과 남궁호는 어른들은 아무도 들어갈 수 없는 계단 밑의 좁은 공간에 앉아 둘만의 대화를 나누었다.
 둘의 대화래 봤자 도박 이야기가 아니면 없었다.
 남궁호는 도박 이외에는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도박장 주인의 여식답게 그녀는 모든 도박에 해박한 지식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그도 마찬가지이던 차라 둘의 도박에 관한 이야기는 끝이 없을 정도였다.
 "얘! 마작판에서 만일 일만(一萬)과 사만(四萬)이 세 개씩이고, 이만(二萬) 하나에 삼만(三萬)과 오만(五萬), 그리고 육만(六萬)이 각기 두 개씩일 때 뭐가 들어와야 되게?"
 "후후! 그걸 문제라고 냈니? 으음! 그러고 보니 그건 조패(調牌)하기에 따라 넉자방이 되는구나! 후후! 그렇다면 이만, 삼만, 오만, 육만 중 아무거나 하나만 들어오면 끝나!"
 남궁호는 길게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너무도 쉽게 대답을 하였다. 그러자 진교연은 자신이 낸 문제를 너무 쉽게 맞추는 것이 약오르는지 다른 문제를 냈다.
 "호호! 맞았어. 그럼 점수 계산 좀 해봐!"
 "후후! 그건 더 쉽지!··· 으응··· 우선 뻥을 안 했으니까 멘젠(面前) 한 판에, 천일색(天一色) 여섯 판, 핑후 한 판하고, 쯔모 한판··· 멘젠쯔모 세 판까지 더한 후 겐빠이를 더하면 되는데··· 이만은 겐빠이가 두 개고, 삼만, 오만, 육만은 겐빠이가 세 개씩이니까 이만일 때는 열네 판, 나머지는 열다섯 판이네! 맞지?"
 역시 남궁호의 거침없는 계산에 진교연은 앙증맞은 불 우물을 오물거리더니 말을 이었다.
 "만일, 쯔모가 아니고 남이 패를 버렸다면?···"
 "후후! 그것도 쉽지. 멘젠 한 판에 천일색 여섯 판, 그리고 핑후 한 판에 겐빠이 숫자를 더하는 거니까 이만일 때는 열 판, 삼만, 오만, 육만일 때는 열한 판이네! 맞지?"
 "호호호! 또 맞았어! 이번엔 네가 문제를 내봐!"
 "······!"
 이제 겨우 육 세 밖에 되지 않은 두 아이에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도박꾼들 중 누구든 두 아이의 말을 들었다면 놀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손에 패를 쥐지도 않은 상태에서 문제를 내고 답을 하기란 결코 수십 년 동안 도박을 해온 그들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때론 이층 계단참에서 대화를 나누며 누가 어떤 표정을 지을 때 패를 바꿔치기하며, 어떤 방법으로 바꿔치기를 하여 남들을 속이는지를 훤히 볼 수 있었다.
 둘은 속고 있는 나머지 사람들을 보고 비웃었다.
 이 세상 누구도 모르고 있었지만 어린 소동과 소녀는 도박장 안의 누구보다도 뛰어난 도박꾼의 자질을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진교연은 남궁호와는 달리 모친이 초빙한 훈장(訓長)의 엄격한 지도 아래 학문을 닦고 있었다.
 아직 어렸지만 그녀는 스승의 가르침을 마치 마른 솜이 물을 빨아들이듯 맹렬하게 습득하는 중이었다.
 또 강건한 신체를 유지하기 위하여 특별히 중원 구파일방(九派一幇) 중 하나인 화산파(華山派)의 속가제자(俗家弟子)를 초빙하여 십사수매화검법(十四數梅花劍法) 등을 익히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었다.
 장차 교양 있는 여인으로서 성장하기 위하여 기원에서 특별히 악기를 잘 다루는 기녀와 기력(棋力)이 센 노인 등을 초빙하여 금기서화(琴棋書畵) 등을 배우고 있었다. 그 외에도 요조숙녀(窈窕淑女)로 성장하기 위하여 필요한 많은 것들을 배우고 있었다.
 진교연이 이렇게 엄한 교육을 받는 것은 모두 모친인 마옥령의 엄명(嚴命) 때문이었다.
 마옥령은 보기보다는 한(恨)이 많은 여인이었다.
 방년(芳年)의 나이에 천하를 유람하고 돌아오겠다고 겁 없이 길을 떠났던 그녀는 강호에서 우연히 유서 깊고 명망 높은 가문 태생의 준수(俊秀)한 서생(書生)을 만났었다.
 한 눈에 반한 그녀는 주저하지 않고 청백(淸白)을 바쳤고, 그 결과 아이까지 잉태하였지만 그녀는 버림을 받았다.
 버림받은 이유는 별것이 아니었다.
 본시 황과수 최고 권력자인 현령의 하나뿐인 여식이었고, 마을 최고의 미인으로서 오만(傲慢)이 극에 달했던 그녀가 익히기 어렵고 진척이 늦은 학문을 제대로 익혔을 리 없었다.
 또한, 금기서화(琴棋書畵)를 제대로 익히거나, 부덕(婦德)을 쌓는 일에 관심이 있었을 리 없었다.
 그저 제 몸치장하는 데만 시간을 허비했을 뿐이었던 것이다.
 결국 미모(美貌)를 앞세워 남자를 유혹하는 데에는 성공하였으나, 날이 갈수록 드러나는 천박(淺薄)하고, 오만(傲慢)한 성품과 무식(無識)이 들통나 버림받았던 것이다.
 마옥령과 통정(通情)을 하였던 서생의 가문은 그런 것들을 엄격히 따졌던 것이다. 아직 그녀가 밝히지 않았기에 진교연의 친부(親父)가 누구인지는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오직 진씨 성을 가졌다는 것만 짐작하게 할뿐이었다.
 아무튼 진교연은 태어나면서부터 마옥령의 강권(强勸)으로 온갖 교육을 다 받아야만 하였다. 자신의 한 맺힌 일생을 하나뿐인 여식이 되밟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성장하면서 일과는 점점 더 촘촘하고 강도 높게 짜여졌다.
 덕분에 거의 하루종일 무엇인가를 배우는데 시간을 할애하여야만 하였다.
 그녀가 도박장에 오는 것은 짬짬이 있는 짧은 휴식시간과 저녁 식사 전 반 시진 가량이었다. 하루 중 그 시간만이 유일한 친구를 만나는 시간이었고, 제일 기다려지는 시간이라 하였다.
 진교연은 어느새 거의 매일 오다시피 하는 남궁호와 정이 들어버렸다. 그래서 그가 오지 않는 날이면 시무룩하게 앉아 있다가 안채로 돌아가곤 하였다.
 도박장의 주인인 마옥령은 남궁호 부자를 혐오하였다.
 그래서 여식이 그와 어울리는 것이 못마땅하였으나, 다른 친구가 없기에 할 수없이 용인하고 있었다. 가진 것도 없고, 배운 것도 없으며, 천박하고, 게다가 인물까지 없는 남궁호는 정말 예쁘게 보아줄 만한 구석이 단 한 군데도 없었던 것이다.
 단 한번도 어른에게서 마작 이외에 무엇인 가를 배운 적이 없는 남궁호는 예의범절까지 엉망이었다.
 사실 배운 적이 없으니 무엇이 옳으며 무엇이 그른지에 대한 판단기준조차 제대로 서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녀가 요조숙녀로 성장하기 위한 교육을 받는 동안 남궁호는 도박장에서 어슬렁거리며 유년시절(幼年時節)을 보내고 있었다.
 
 
 제2장 무공?··· 그게 뭔데요?
 
 
 조카인 건문제(建文帝)를 치고 보위(寶位)에 오른 영락제(永樂帝)는 선정(善政)을 베풂으로서 억조창생으로 하여금 자신의 보위찬탈(寶位簒奪)을 잊게 하려 애쓰고 있었다.
 무너져 내린 장성(長城)의 보수 공사와 아울러 은근 슬쩍 중원으로 진입하여 살던 이민족들을 국경 밖으로 몰아 내었다.
 그 결과 변방 부근에 살던 많은 양민들은 엄청난 넓이의 농토가 거저 생기는 횡재를 하였다.
 게다가 몇 년간 풍년이 계속되자 이 모든 것은 성군(聖君)을 맞은 한족의 복이라 기뻐하며 태평성대(太平聖代)를 노래하였다.
 대부분의 양민들은 배불리 먹고 따뜻한 잠자리에서 잠을 잘 수 있었다. 실로 몇 년만에 느끼는 안락함인지 모르는 양민들은 이 모든 것이 새로운 황제의 등극으로 인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황제는 새로운 제도를 반포하여 세금을 감면하여 주었고, 군역(軍役)과 징집(徵集)을 최대한 억제하여 중원은 요순(堯舜)임금 이후 최대의 번영을 구가(謳歌)하고 있었다.
 그 무렵 강호 역시 대명제국(大明帝國)을 건국하면서 몽고족을 변방 북쪽으로 몰아내느라 많은 무인들이 목숨을 잃었으나 나름대로 새로운 세대를 맞아 팽창일로(膨脹一路)에 있었다.
 정파무림은 소림사(少林寺)와 무당파(武當派)라는 태산북두(泰山北斗)를 필두(匹頭)로 칠파일방이 널리 제자를 구하였다.
 구파일방의 팽창에 자극 받은 마도(魔道) 역시 은밀히 세를 규합하고 있었다. 정고일척(正高一尺) 마고일장(魔高一丈)이라는 말이 있듯 마도는 욱일승천(旭日昇天)의 기세로 커져가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무림에는 크고 작은 방파들이 하루에만도 서너 개씩 생겨나며 가히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 이후 최대의 번영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은 이들 무림인들이 세력을 키우기 급급하여 서로 충돌하는 일이 극히 드물었다는 것이다.
 무림은 나름대로의 평화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선견지명이 있는 사람들은 미구(未久)에 들이닥칠 겁난(劫亂)을 예감하고 깊은 산중으로 은거하는 시기이기도 하였다.
 지금은 세력을 키우기 급급하지만 일단 세력 확장이 완성되면 더 이상 팽창할 수 없기에 평화는 깨어지고 겁난이 발생된다는 것을 지난 역사를 통하여 충분히 배울 수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강호는 겉으로는 아무런 문제없이 평화를 노래하고 있었고, 황실 역시 천하인들의 지지를 받아 대명제국은 견고한 반석 위에 오르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
 
 세월은 유수(流水)처럼 흘렀다. 남궁호는 십이 세 소년으로 성장하면서 극심한 변화를 겪었다.
 이 년 전 부친인 남궁욱은 용꿈을 꾸었다면 만전장(萬錢莊)에 가서 은자 오십 냥을 빌렸었다.
 처음엔 도박판의 모든 은자를 휩쓰는가 싶더니 천수불패(千手不敗) 위지근(魏祗菫)이라는 자와 주사위 도박을 하다 몽땅 털렸다. 그 충격으로 남궁욱은 스스로 목을 매었고 모친은 현령의 아들이 디민 차용증 때문에 끌려갔다.
 마춘구는 남궁욱에게 은자를 빌려주면서 진초초를 담보로 하게 하였던 것이다. 만전장에서 진초초가 현령의 넷째 아들에게 겁탈 당할 무렵 남궁욱은 자신의 목을 매달았다.
 진초초가 막 자신의 의지와는 달리 달아오르는 몸을 주체 못하여 교성과 함께 몸부림치기 시작할 때 남궁욱의 혼은 이승을 떠나 저승으로 향하였다.
 아무 것도 모르고 있던 남궁호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부친을 찾으러 도박장에 들렀다가 그곳에 부친이 없자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터덜터덜 움막으로 돌아갔다. 그곳 이외에는 갈 곳이 없기에 혹시 움막으로 향하였나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움막에 돌아와서는 늘 자신을 반겨주던 모친이 없음을 알고 이곳저곳을 찾아 헤맸다.
 "응? 대체 어딜 가신거지? 이런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아무리 돌아다녀도 모친은 물론 부친의 모습을 볼 수 없던 남궁호는 주린 배를 움켜쥔 채 밤을 지샐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 그는 마을 사람들이 움막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밖으로 나가보니 이미 죽어버린 부친의 시신이 허름한 거적떼기에 덮여 있었다.
 멍한 시선으로 부친의 시신을 바라보고 있을 때 마을 어른들이 혀를 차며 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쯧쯧! 어린것이 참으로 안되었네 그려··· 어미는 만전장으로 끌려가 마춘구의 노리개가 되었고, 애비는 이렇게 죽었으니··· 쯧쯧! 저 어린 것 혼자 어떻게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라고···"
 남궁호는 모친이 만전장으로 끌려간 이유를 몰랐다.
 "아저씨! 왜 어머니가 그곳에 끌려가셨죠?"
 어른들의 말을 들고서 부친이 왜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며, 모친이 왜 만전장에 끌려갔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 후 모친은 단 한번도 그곳에서 밖으로 나올 수 없었다.
 현령의 여덟 아들들에게 차례로 능욕 당하며 모진 목숨을 이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마춘구가 하도 진초초의 미모를 떠벌렸기에 나머지 형제들이 궁금하여 들렀다가 그녀의 미모에 반해 차례로 겁탈하였던 것이다.
 진초초는 세칭 명기(名器)의 소유자였다. 누구든 그녀와 음양교합을 한번이라도 하면 다른 여인들과 교합할 때와는 달리 엄청난 쾌감을 느낄 수 있는 그런 명기의 소유자였던 것이다.
 그 동안 남궁호는 모친이 어떤 굴욕 속에서 살아가는지 전혀 짐작도 못하고 있었다. 아직 남녀간의 방사(房事)나 음양교합(陰陽交合)이 무엇인지를 모를 때이기 때문이었다.
 
 이 년이 지난 지금도 남궁호는 마치 습관처럼 매일 도박장을 기웃거렸다. 하지만 부친이 그랬던 것처럼 푼돈을 얻어 도박을 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남들이 하는 도박을 구경하려는 것이었다. 왠지 도박장의 열기가 싫지 않았던 것이다.
 단 하나뿐인 친구 진교연은 남궁욱이 목매달아 죽은지 삼 일 만에 화산파(華山派)로 향하였다. 정식으로 입문하여 본격적으로 무공을 익히겠다고 떠났던 것이다.
 그녀가 없는 도박장은 남궁호에게 무척이나 쓸쓸한 곳이었다.
 하지만 그런 것을 애써 잊으려 아침나절이면 이곳저곳을 쏘다니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달콤하기는 하지만 황과는 이미 질린 터이라 먹을 것을 알아서 찾아야만 하였기 때문이었다.
 황과수 외곽에 있는 폭포는 높이가 무려 이십오 장 정도 되고, 폭이 삼십 장에 가까운 거대한 폭포였다.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떨어지는 폭포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가슴까지 시원해지게 하였다. 폭포소리는 마을 어디에서든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웅장하였다.
 폭포 중간에는 수렴동(水簾洞)이라 이름 붙은 동혈이 있는데 그곳은 서유기(西遊記)에 나오는 손오공(孫悟空)이 원숭이들의 대장 노릇을 할 때 머물던 곳이라는 전설이 서린 곳이었다.
 동혈은 너무도 거센 폭포수 때문에 들어갈 수 없는 곳으로 알려져 있었다. 수렴동은 폭포의 정 중앙에 위치하였고, 주변이 온통 미끈거리기에 마을 사람들 중 그 어느 누구도 그곳에 들려하는 사람이 없는 곳이었다.
 만일 무리하여 수렴동에 들려다 실족이라도 할라치면 폭포수로 인하여 만들어진 깊디깊은 호로병처럼 생긴 물 속에 갇혀 시신조차 건져낼 수 없다고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늘 뿌연 운무(雲霧)같은 물보라를 피워 올리기에 폭포 주변에 일각(一刻)이라도 머물면 의복이 온통 젖게 되어 이곳엔 사람들이 가까이 오지 않는 곳이었다. 하지만 폭포수로 인하여 그곳은 뭔지 신비한 기운이 서려 있는 그런 곳이었다.
 먹을 것을 찾아 헤매던 남궁호는 인적이 드문 이곳 폭포 주변에서 먹을 것을 찾을 수 있기에 자주 오는 편이었다.
 이곳저곳에 널려 있는 황색 버섯(菌)들이 그것이었다. 둥그런 지붕 밑에 기둥이 달린 듯한 모습을 한 버섯은 다소 씁쓸하기는 하였지만 한끼의 식사로는 충분하였다.
 그가 버섯들 사이사이에 있는 적색이나 청색 같은 밝은 빛을 발하는 버섯은 먹으면 안 되는 독버섯이라는 것을 알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상하게도 그것들을 먹으면 배탈과 고열이 발생되곤 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모르고 있었으나 만일 적색이나 청색 버섯을 먼저 먹었다면 즉시 오장육부가 문드러져 죽었을 것이다.
 한곳에 무리 지어 자생하는 세 색상의 버섯 중 황색만이 유일하게 먹을 수 있는 버섯이었으며, 해독작용까지 하기에 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뿐 아니었다.
 폭포수 주변엔 독물(毒物)들이 제법 많았다.
 희한하게도 사막(沙漠)에서나 볼 수 있는 전갈들이 있었고, 독와(毒蝸)와 독지주(毒蜘蛛)들도 제법 많이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곳 가까이 가려하지 않는 것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남궁호는 거의 매일 이곳에 들렸다.
 먹어야 살기 때문이었다.
 먹을 것이 해결되면 어슬렁거리며 폭포수 주변을 둘러보았다.
 무엇보다도 수렴동이 간직한 신비가 무엇인지 궁금한 그는 어떻게 하든 그곳에 올라 가보려 하였다.
 그렇게 한지 반년만에 드디어 이끼가 잔뜩 끼어 있는 바위 틈에서 수렴동에 드는 길을 발견할 수 있었다.
 수렴동의 입구는 어른 셋이 동시에 들 수 있을 정도로 컸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점점 넓어졌고, 그 길이만도 거의 십여 리에 가까울 정도로 길었으며, 수억 년 동안 만들어진 기기묘묘한 종유석(鐘乳石)들로 인하여 여러 갈래로 갈라져 있었다.
 그는 수렴동 곳곳을 돌아다니며 탐험하는 재미에 푹 빠져 있었다. 동혈 안은 어두웠으나 준비한 횃불은 그런 어둠을 말끔히 쓸어버렸다. 지난 세월동안 단 한번도 인적이 닿지 않았던 곳이라 모든 것이 자연 그대로였다.
 동혈 바닥에서 졸졸 흐르는 물은 맑고 시원하여 갈증해소에는 그만이었다. 또 여기저기 자생하는 이끼들은 비상시에는 충분한 식량이 될 것이었다. 반년간이나 돌아 다녔지만 아직 전체의 십 분지 일도 채 돌아보지 않은 상태였다.
 그는 아예 이곳 수렴동으로 거처를 옮겼고, 모든 것은 만족스러웠다. 구불구불한 동혈이 거대한 폭포수 소리를 삼키는지 안은 조용하였던 것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간단히 세안을 한 후 버섯으로 요기를 하고는 닥치는 대로 쏘다니며 여기저기를 살폈다. 이상하게도 그가 지나갈라치면 독물들이 스르르 비켜서곤 하였다.
 그는 모르고 있었지만 황색버섯은 의생들이라면 누구나 불을 켜고 찾는 천고의 영물(靈物)인 축년영지(畜年靈芝)였다.
 축년영지는 독물들이 서식하는 곳에만 서식하는 버섯으로 독물들의 배설물에서 자양분을 흡수하여 성장하는 버섯이었다.
 이것은 어떠한 절독이던 해독하는 진귀한 약재였다. 특이한 점은 늘 수분을 흡수하여야 하기에 물가에만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물가에는 독물들이 서식하기를 꺼려하기에 축년영지를 구하는 것은 하늘에서 별을 따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런 축년영지가 무진장 널려 있었고, 그것을 주식 삼아 먹은 남궁호의 체내에는 내독성이 생겨났던 것이다. 결국 자신도 모르는 사이 만독불침(萬毒不侵)이 되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한 낮이 되면 늘어지게 낮잠을 잔 후 어슬렁거리며 도박장으로 향하곤 하였다. 이것이 그의 일과였다.
 계절의 변화가 없는 이곳 황과수에서의 생활은 그를 다소 게으르게 만들고 있었다.
 
 세월이 다시 흘러 남궁호가 십사 세가 되었다.
 그는 만전장에 갇힌 채 현령의 여덟 자식에 의하여 수시로 노리개 역할을 하는 모친을 보고 싶어 미칠 지경이 되었다. 진초초는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친인(親人)이 아니던가!
 하지만 단 한 번도 모친을 만날 수 없었다.
 만전장의 담벼락은 그가 넘기엔 너무도 높았고, 정문을 지키는 수문위사들은 너무도 사나웠기 때문이었다.
 만전장을 드나드는 사람들의 입을 통해 알려진 진초초의 생활은 한마디로 지옥이었다.
 먹고 입는 것은 그런 대로 아쉽지 않게 공급받고 있으나 현령의 여덟 아들들이 그녀의 미색을 탐하여 거의 매일 드나들기에 그들의 공동 정액받이가 되다시피 하였다는 것이다.
 어떤 날은 하루에 열 번이나 수욕(水浴)을 하여야 한다하니 어떤 지경인지 가히 짐작할 만 하였다.
 진초초는 전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성숙하며 요염하게 변해 현령의 아들들이 자신의 처첩을 제치고 그녀만을 탐한다는 말을 들은 남궁호는 지긋이 이를 악물었다.
 아직 음양교합을 할 수 있는 나이는 아니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를 이제는 대충 짐작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던 것이다.
 모친이 짐승보다도 못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자신은 그녀를 구할 방도가 전혀 없기에 괴로워하였다.
 그러던 남궁호의 눈이 반짝하고 빛난 것은 만전장 총관이 어느 날 주루에서 술을 마시면서 한 말을 듣고서였다.
 "진초초는 겨우 은자 오십 냥에 팔려온 것이나 다름없어. 장주를 비롯한 형제들은 겨우 오십 냥으로 벌써 사 년째 갖은 재미를 다 보고 있는 셈이지··· 헌데 요즘 들어 시름시름 앓고 있는 것으로 보아 언젠가는 버림받을게 틀림없어."
 진초초는 만전장주를 비롯한 형제들의 끊임없는 탐함으로 이미 기력이 쇠잔할 대로 쇠잔해졌다는 말이었다.
 남궁호는 모친이 언젠가는 만날 수 있을 것이란 실낱같은 기대를 품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지난 사 년간 매일 도박장을 드나들었기에 이제 그의 도박에 대한 지식은 그 어느 누구보다도 해박한 경지에 올라 있었다.
 도박장은 그에게 있어 서당이나 마찬가지였다.
 남궁호는 그곳에서 무릇 도박은 기세의 싸움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 기세를 어떻게 잘 조절하느냐가 모든 것을 판가름한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또한 무릇 도박이란 도박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냉정함을 잃지 않는냐가 중요하다는 것도 배웠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 생각되었기에 단 한번도 도박에 직접 끼어 든 적이 없었다.
 그는 마작패들을 쌓으면서 적어도 반 이상의 순서를 외울 때까지는 끼어 들지 않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다.
 마작은 모두 넷이서 하는 노름이며 패를 섞을 때에는 넷이서 자신의 앞에 이층으로 각기 열세 줄을 쌓는다.
 적어도 자신이 쌓는 이십육 개의 패와 상대가 쌓는 패들 중 반 이상의 순서를 완전히 알 수 있다면 절대로 질 수 없는 도박이 된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러는 한편 세상살이에 대하여 철저히 배우고 있었다.
 적어도 도박장에서는 모든 것은 은자로 결정되었다.
 배운 것이 아무 것도 없고, 생긴 것이 제 아무리 흉측하게 생겼으며, 키 작은 난쟁이라 할지라도 지닌 재물이 많다면 그는 황제 대접을 받았다.
 하지만 제 아무리 높은 인품과 학식을 지니고, 전설의 미남자인 반안이나 송옥을 능가할 정도로 준수하다할지라도 주머니에 은자가 없으면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였다.
 사실 따지고 보면 부친인 남궁욱이 스스로 자진(自盡)을 하고, 모친인 진초초가 현령의 아들들에게 매일 같이 능욕 당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모두 은자가 없었기에 일어난 일이었다.
 어릴 때에는 미처 모르고 있던 이러한 사실에 접하면서 은자를 모아야 한다는 일념에 불타게 되었다.
 남궁호에게는 은자가 대략 열 냥 정도가 있었다.
 그것은 부친이 기분 좋을 때 준 은자로 진초초가 보관하여 두었던 것이다. 아직까지 한 푼도 쓰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밑천이라고는 그것뿐이기에 정말 도박에 자신이 있을 때에 그것을 사용하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그는 도박장에서 가장 마작을 잘하는 사람의 뒤에 서서 조패(調牌)하는 것을 눈여겨보았다. 아직 어리기에 누구도 그가 서 있는 것에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떤 방법으로 조패하는 지도 살폈다. 그들은 미래에 상대하여야할 적이었기 때문이었다.
 거의 이 년이란 장구한 시간 동안 살핀 끝에 그들의 성향을 완전히 파악할 수 있었다. 언제든 그들과 마작을 한다면 적어도 승률은 팔 할 이상이 된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제 결전의 날만 잡으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서두르지 않았다.
 그들의 조패 성향을 완전히 파악하였다 하더라도 큰판에서라면 단 판에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부친인 남궁욱이 떴던 구련보등(九連寶燈)이 대표적인 예였다.
 일평생에 단 한 번도 뜨기 힘들다는 구련보등이 누군가의 패에서 뜬다면 수억 냥을 따고 있었다 하더라도 주머니의 모든 은자를 털어 주어야 하여야 하는 것이 도박장의 불문율이었다.
 
 남궁호는 여전히 외톨이였다.
 이제 황과수에서 그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지만 누구도 말을 걸거나, 따뜻하게 대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그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그가 도박실력을 키우면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린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남궁호는 세밀히 계획을 수립하였다. 먼저 작은판에서 시작하여 은자를 점점 불린 다음 큰판으로 끼어 들 작정이었다.
 요즘은 그 어느 때보다도 도박장에 붙어 있는 시간이 길어져 있었다. 다름 아닌 한 무리의 무림인들이 황과수를 지나다 도박장에 들러 연일 은자를 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도박장에서 잔뼈가 굵은 남궁호는 승률이 유난히 높은 것이 이상하다 생각하여 그들이 조패하는 것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인상이 험상궂은 그들은 모두 다섯이었는데 대형이라는 자가 늘 마작판에 앉아 있었다. 나머지는 뒤에서 구경만 하였다.
 처음엔 그저 운이 좋아 그러려니 하였는데 이상하게도 다섯이 늘 한자리에 있는 것이 이상하게 생각되었다.
 그래서 어떻게 조패하는 지를 살펴보려고 대형이라는 자의 뒤에 서려하였더니 한사코 몸으로 밀어내거나 험상궂은 표정을 지으며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 종내 의심스러웠다.
 호기심이 생겨 다소 멀지만 이층 계단참에 앉아서야 대형이라는 자가 어떻게 조패하는 지를 유심히 살필 수 있었다.
 처음엔 대형이라는 자의 조패 솜씨가 별로 뛰어나지 않다는 것을 알고 다소 의아해 하였다.
 그는 패를 종류별로 집어넣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조패 방식은 이제 막 마작을 배운 초보자들이나 하는 방법이었다.
 그렇게 순서대로 패를 끼워놓고 있다가 자기 순서가 되어 패를 뽑아 버리게 되면 상대들이 대강 어떤 패로 조패하고 있는지를 훤히 알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대형이라는 자의 승률이 높았다. 그가 새로 가져오는 패는 꼭 필요한 패일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며칠 동안 살펴보던 남궁호는 단순히 운이 좋아 그런 줄 알고 자리에서 일어서려다 이상한 것을 보았다.
 대형이라는 자는 늘 소매가 넓은 장포를 걸치고 있었기에 패를 가져오기 위하여 손을 뻗으면 소매 자락이 쌓아 놓은 패를 덮었는데 이때 패들이 저절로 자리바꿈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고 난 뒤 얼마 되지 않아 자신에게 꼭 필요한 패를 가져와 쯔모로 판을 끝내곤 하였다.
 몇 날 며칠을 살펴보아도 늘 같았다. 상대하는 자들은 실력이 뛰어난 자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연전연패를 당하고만 있었다.
 결국 남궁호는 대형이라는 자가 패를 쌓으면서 수작을 부린다는 것을 알아낼 수 있었다. 외우기 쉬운 패들만 골라 쌓은 뒤 자신의 순서에 원하는 패가 오지 않으면 신기한 사술(邪術)을 부려 패를 바꾸는 것이었던 것이다.
 그들이 일만 냥에 가까운 거금을 따고 떠나려 행장을 꾸릴 때 용기를 내어 대형이라는 자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주민들 대부분은 무공이라는 것을 모르기에 무림인이라면 괜히 경원시하는 경향이 있어 그 동안 그들에게 용기있게 말을 걸었던 사람은 별로 없었다.
 "저··· 아저씨! 물어볼 말이 있어요."
 바쁜 손길로 행장을 꾸리던 장한은 자신에게 말을 걸어온 사람이 이제 겨우 십사오세 정도 된 소년이라는 것을 알고는 흉측한 얼굴에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반문하였다.
 "뭐? 내게 물어볼 말이 있다고?··· 좋아! 한번 말해봐라!"
 "아저씨! 어떻게 하면 패가 저절로 바뀌게 할 수 있는 거죠?"
 남궁호의 물음에 화들짝 놀란 표정의 장한은 주위를 예리한 눈초리로 돌아봄과 동시에 멱살을 잡고 입을 막았다.
 "뭐라고? 다시 말해 보아라!"
 남궁호는 겁이 났으나 궁금한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어, 어떻게 하면 패가 저절로 바뀌게 할 수 있냐구요?"
 장한은 주변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고 나서야 쥐었던 멱살을 풀어주며 입을 열었다.
 "지금 한 말, 누구에게 한 적이 있느냐?"
 "아뇨!"
 장한은 이곳이 객지이고, 도박장에 있던 대부분의 인물들은 주먹께나 쓴다는 한량들인 것을 알고 있었다.
 만일 자신이 속임수로 은자를 땄다는 것을 알면 떼거지로 몰려들 것은 뻔한 일이고, 어쩌면 관병들까지 나설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렇게 되면 골치 아픈 상황이 벌어질 것이 뻔하였다. 다행히 남궁호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고 하자 재차 물었다.
 "정말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겠지? 만일 그랬는데도 아니라고 거짓말을 하였다면··· 크크크! 알지?···"
 "예에?··· 예,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어요."
 "크크크··· 좋아! 그런데 그걸 어떻게 알았느냐?"
 남궁호는 겁이 났지만 침착을 되찾고 있었다.
 "며칠 동안 아저씨가 마작하는 걸 봤어요. 어떻게 매일 그 많은 은자를 딸 수 있는지 궁금했거든요?"
 "크크크! 그래? 어린놈이 눈도 밝구나··· 좋아! 이제 우린 이곳을 떠나니 네놈에게만 알려주지."
 신기한 사술을 부리는 방법을 가르쳐 주려는 줄 안 남궁호의 눈은 반짝이며 빛나고 있었다.
 "크크크! 그건 사술이 아니고 무공이라는 것이다. 크크크··· 이 다음에 그걸 익히게 되면 무언지 알게 될 것이다. 알겠느냐?"
 "예에? 무공?··· 그게 뭔데요?"
 "크크크! 차차 알게 될 것이다. 이 좁아터진 곳에만 머무는 한 네놈은 절대 무공을 배우지 못할 것이다. 중원은 넓다!··· 많은 기인이사들이 있지··· 크크크! 네놈이 중원으로 간다면 어쩌면 기연을 만나 그런 것들을 가르쳐 줄 사부를 만날 수도 있겠지···"
 장한은 덥수룩한 수염을 쓰다듬으며 장황하게 말을 하였다.
 "아저씨! 그럼 중원이라는 데를 말해주세요."
 "크크크! 중원?··· 그건 하루 이틀에 말할 수 있는 곳이 아니지··· 너는 그저 엄청나게 넓은 곳이라고만 알면 된다."
 장한은 뇌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는지 다시 입을 열었다.
 "크크··· 중원에는 무림이라는 곳이 있다. 정, 중원이라는 곳을 알고 싶거든 언제고 호북성(湖北省) 무한(武漢)에 있는 철기보(鐵騎堡)로 와서 흑검수라(黑劍修羅) 장호삼(張昊三)을 찾아라."
 "호북성 무한이요? 여기서 얼마나 떨어진 곳인데요?"
 "크크크! 무척 멀지··· 우린 바빠서 이만 떠나야 하니 어른들한테 물어보도록 하여라!"
 "예에? 예··· 알았어요."
 남궁호는 장한이 행낭을 들고 일어서자 더 이상 말해주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뒤로 물러섰다. 다섯 장한들이 모두 마상(馬上)에 오르자 남궁호는 미련 없이 등을 돌렸다.
 결국 용기를 내어 흑검수라 장호삼이라는 무림인을 찾았지만 신묘한 사술을 배울 수 없고 대신 이상한 말만 들었던 것이다.
 몇 발짝쯤 떼었을 때 남궁호는 자신의 발치에 무언가가 떨어지는 묵직한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퍼억-!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려보니 흑검수라가 웃고 있었다.
 "크크크! 그건 우리가 이곳을 완전히 벗어날 때까지 네 입을 막는 대가다. 알겠지?"
 남궁호는 흑검수라가 적지 않은 은자를 주었음을 직감하고 만면에 미소를 띄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와! 좋아! 이제 승부를 건다. 이제 이걸로 여길 휩쓴 다음 어머니를 모시고 무림이라는 곳으로 갈 테다. 무공이란 걸 꼭 배우고야 말겠어!'
 흑검수라 일행이 사라지고 난 뒤 난화가 그려진 피낭(被囊) 속에 든 은자가 거금 일백 냥이라는 것을 알고 흐뭇해하였다.
 이제 모친인 진초초를 찾아 올 수 있는 은자가 마련되고도 오십 냥이나 남았던 것이다. 그 길로 만전장으로 향하였고, 은자 구십 냥을 들여 모친을 풀려나게 할 수 있었다.
 애초에 부친이 빌렸던 은자는 오십 냥인데 지난 사 년 사이에 막대한 이자가 붙어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애걸복걸하여 간신히 깎은 금액이었다. 처음에 만전장주는 이자로 무려 은자 칠백이십 냥을 요구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 진초초가 병들어 쓸모가 없었고, 어쩌면 죽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은자 구십 냥에 데리고 갈 수 있도록 허락하였던 것이다.
 모친을 예전의 움막으로 모셨고, 너무도 깊은 병에 들어 운신조차 못하는 모친을 위하여 나머지 열 냥 모두를 써야만 하였다.
 남궁호는 약포에 들러 모친을 위한 약을 지어 먹였으나 별 다른 차도가 없었다. 진초초는 매일매일 조금씩 더 병세가 악화되어 가고만 있었던 것이다.
 한 마디 말도 하지 않는 진초초는 어린 남궁호가 자신을 위하여 불철주야 애쓰고 있다는 것을 알기라도 하는지 혼수상태에 있으면서도 가끔 입가에 미소를 짓곤 하였다.
 사실 진초초가 만전장에 머문 지난 사 년간은 그녀에게 있어 지옥같은 생활의 연속이었다.
 현령의 여덟 아들들이 시도 때도 없이 그녀를 능욕하러 방문하였으며, 그들이 욕심을 채우고 가면 심지어는 만전장의 거의 모든 하인들까지 그녀의 배 위에 올랐던 것이다.
 홍루(紅樓)에서 몸을 파는 기녀들도 하루에 진초초같이 많은 남자들을 상대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진초초가 이렇게 혼수상태에 이르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었다.
 어느 날 진초초는 깊은 잠을 자고 있었다. 그날따라 현령의 여덟 아들들 모두를 상대하느라 피곤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누군가가 진초초의 규방으로 침입하여 곤히 잠든 그녀의 의복을 벗긴 후 급작스럽게 진입을 시도하였다.
 그는 만전장 하인 중 하나로 마장(馬場)을 관리하는 조칠(趙七)이란 자였다. 조칠은 사내들 가운데서도 유난히 하물이 컸으며 변태성향이 있어 늘 그녀를 괴롭히던 자였다.
 그런 그가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그녀에게 무리한 진입을 시도하였으니 당연히 고통스러워 눈을 뜰 수밖에 없었다.
 "아아악!··· 누, 누구?···"
 너무도 고통스러웠기에 비명과 함께 몸을 일으키려는 진초초를 조칠은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거칠게 밀어 버렸다.
 그 바람에 진초초의 뒤통수에 있는 뇌호혈(腦戶穴) 부위가 바닥에 세차게 부딪쳤다.
 퍼억-!
 "끄으응!···"
 진초초는 약한 신음과 함께 혼절해 버리고 말았다. 그 사이 조칠은 그 동안 하고싶었던 모든 짓을 마친 후 유유히 사라졌다.
 그녀가 정신을 차린 것은 약 반 시진 정도가 지난 뒤였다.
 "어맛!··· 여, 여긴 어디지?··· 내, 내가 왜 여기에?···"
 정신을 차린 진초초는 그녀답지 않게 말이 많았다.
 한 동안 어리둥절하던 그녀는 자신이 눈에 익지 않은 이상한 곳에 와 있으며 하복부가 유난히 뻐근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한 참의 시간이 흐른 후 진초초는 규방 한 구석에 있는 동경(銅鏡)을 들고 자신의 모습을 살폈다. 동경 안에는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얼굴이 아닌 이상하게도 늙은 여인이 있었다.
 진초초는 자신의 기억을 더듬었다.
 그날 밤을 새워 기억을 더듬은 그녀는 핼쓱한 얼굴이 되어 있었다. 다음날 날이 밝자마자 현령의 아들들이 다시 그녀를 방문하였고 그날따라 진초초는 반항이 극심하였다.
 결국 현령의 아들들은 그런 그녀를 흠씬하게 두들겨 팬 후 욕심을 채우고 유유히 사라졌다.
 
 원래 진초초는 중원 무림의 재녀(才女)였다.
 무림 정파 가운데 하나인 곤륜파의 제자로 후기지수들 가운데 하나였다. 그녀는 사문의 명으로 견문을 넓히기 위하여 사형들과 함께 협행(俠行)을 하며 중원을 떠돌고 있었다.
 그때 우연히 조우한 귀마방(鬼魔幇) 호법인 옥면호리(玉面狐狸) 추인귀(秋寅晷)와 낭산(狼山)에서 혈전을 벌이던 중 장력에 격중 되어 중상을 입은 채 계곡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진초초는 이름난 색마(色魔)인 그를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며 덤벼들었다가 오히려 당했던 것이다.
 그 와중에 사형들 역시 옥면호리의 잔인한 손속에 저승의 고혼이 되었기에 누구도 그녀를 구하러 협곡 아래로 내려올 사람이 없었다.
 옥면호리는 계곡의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입맛을 다셨다.
 "에잉!··· 오늘 모처럼 괜찮은 물건이 하나 걸렸는데 저걸 구하러 내려가? 말어?··· 에이 귀찮다! 저런 물건은 널렸는데 뭘···"
 옥면호리는 죽기살기로 야차처럼 덤벼들던 진초초의 모습을 생각해 내곤 먼지를 털고 이내 사라져 버렸다.
 추인귀는 진초초가 자신을 죽이기 위하여 갖은 인상을 다 쓰며 덤볐기에 그녀에게 월궁항아(月宮姮娥)와 같은 미모가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였던 것이다.
 만일 그것을 알았다면 이처럼 그냥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제3장 도신(賭神) 탄생
 
 
 협곡의 아래에는 마침 황과수를 떠나 중원으로 향하였던 남궁욱이 머무는 임시 움막이 지어져 있었다.
 남궁욱은 중원으로 왔지만 수중에 은자가 없기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자포자기한 상태에서 이곳에 임시로 움막을 짓고 겨울을 나려 준비하고 있었다.
 양식을 구하러 나온 그는 비탈을 따라 굴러 떨어지는 진초초를 발견하곤 그녀를 구하기 위하여 다가갔다.
 심한 중상을 입은 사람이 여인임을 안 남궁욱은 지체없이 움막으로 옮겼다. 그녀는 열흘간이나 혼수상태로 누워만 있었다.
 의술에 대하여 전혀 모르는 남궁욱이 한 일이라곤 때때로 그녀의 입으로 물을 흘려 넣어주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진초초는 옥면호리의 일 장에 깊은 내상을 입은 상태에서 협곡 아래로 굴러 떨어지며 뇌호혈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
 그래서 지니고 있던 모든 내공은 물론 기억마저도 잃었다.
 열흘만에 기적처럼 진초초가 깨어나자 남궁욱은 환호성을 질렀다. 처음으로 좋은 일을 한 자신이 대견스러워서였다.
 깨어난 그녀에게 이것저것을 물어 보았으나 아무 것도 기억하는 것이 없었다. 혹시 바보가 아닌가 생각하였지만 머리 뒤에 있는 커다란 상처를 보고 모든 기억을 잃었음을 짐작하였다.
 결국 둘은 그곳에서 부부의 연을 맺었고, 유난히 추운 중원의 겨울을 겪은 남궁욱은 진저리를 치며 황과수로 돌아왔던 것이다.
 
 진초초는 자신의 기억을 더듬어 이름 없던 협곡 위에서의 혈투와 남궁욱과의 연분, 그리고 남궁호를 기억해 냈다. 거기다 만전장에서의 기억을 떠올리고는 절망하였다.
 꿈 많던 재녀는 어디로 가고 나이 들고 추레하며,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육체만 남았다고 생각한 그녀는 모든 의욕을 잃었다.
 삶에 대한 애착을 잃은 진초초는 모든 식사를 거절하였고 결국 혼수상태에 이르게 되었던 것이다.
 
 "흐흐흑··· 어머니! 제발 정신 좀 차리세요."
 남궁호는 모든 탕약을 전부 먹였음에도 불구하고 모친의 의식불명 상태가 호전되지 않자 그녀를 흔들며 오열하였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다.
 병세가 조금도 호전되지 않는 가운데 지리한 시간이 흐르자 남궁호도 이젠 지쳐버렸다.
 결국 남궁호는 모친이 모아 준 은자 열 냥을 가지고 도박장으로 향하였다. 그렇게 하여 모친을 위한 약재를 사기 위함이었다.
 남궁호는 발군의 기량으로 제법 은자를 딸 수 있었다.
 드디어 마작판에 끼인 것이었다.
 처음엔 어린 남궁호가 마작을 하겠다고 앉자 어른들이 점잖게 말리는 시늉을 하였다. 하지만 그가 열 냥의 은자를 가지고 있다 하자 누구도 그에게 판에 끼지 말라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들은 이제 겨우 십사 세 정도 밖에 되지 않은 아이의 은자를 탐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기대는 산산이 깨어졌다.
 그날 남궁호는 내리 아홉 판을 쯔모로 방을 세워 어른들의 주머니가 텅 비게 만들었던 것이다.
 누구도 속임수를 쓴다고 의심조차 하지 않았기에 단순히 운이 좋아 그런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내리 따기만 할뿐 잃지를 않자 남궁호에게 지독히도 운이 좋은 놈이라며 운구기일(運九技一)이라는 외호를 붙여줬다.
 사람들은 그가 마작판에 앉기만 하면 혹시 속임수를 쓰는 것은 아닌가하는 의심의 눈초리로 면밀히 주시하였다.
 하지만 결과는 늘 마찬가지였다. 언제나 남궁호가 판을 쓸었던 것이다. 덕분에 판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어린 남궁호에게 매일 잃기만 하자 어른들에게 호승심과 더불어 오기가 생겼다. 결국 한 달 정도가 지나자 처음 지니고 있던 은자 열 냥이 천 냥 가까이로 불어났다.
 마작 솜씨가 신기에 가까울 정도라는 소문이 나자 황과수 전체에서는 연일 전날 있었던 남궁호의 조패를 입에 올리며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 지에 대하여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였다.
 남궁호는 마치 쌓여져 있는 거의 모든 마작패를 알기라도 하는지 정말로 유효적절하게 조패를 하여 승리에 승리를 거듭하였기 때문이었다.
 
 - 이보게 어제 그 녀석이 조패 하는걸 보았나?
 - 아! 이 사람아, 그걸 못 본 사람이 황과수에 누가 있어?
 - 맞아! 어떻게 그렇게 귀신 같이 조패를 하지? 마치 다음패가 뭔지 훤히 알고 있는 것처럼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조패 하는데 정말 미쳐 버리겠다니까?
 - 그 녀석은 다음패가 뭔지 정말 아는 지도 몰라··· 혹시 패가 전부 보이거나 거기에 표시를 해둔 건 아닐까?
 - 그건 아냐! 패를 여러 번 바꿔서 했잖아.
 - 글쎄, 그건 그런데··· 하여튼 괴상한 놈이야··· 애비가 도박 때문에 자결하더니 그 귀신이 붙었나?
 - 흐흐! 혹시 그럴 지도 모르지··· 그놈 애비가 도박 빚 때문에 죽고 에미도 마가네로 끌려가···
 - 이보게 그런 소리 말게! 우리도 언제 그렇게 될지 모르는 일 아닌가? 그 녀석이 따간 은자만 해도 벌써 오천 냥이 넘네. 이제 조금만 있으면 마을 사람이 모두 빚쟁이가 될 판이란 말일세.
 - 자네도 빌렸나?
 - 그래! 벌써 삼백 냥이나 빌렸는데··· 휴우!··· 이번 보름까지 못 갚으면 딸년을 내 놓으라고 하더군···
 - 나쁜 놈들!··· 귀신은 무얼 하는지 몰라? 어휴!··· 마가네 식구들이 황과수 여자들을 몽땅 차지하려고 하나?
 - 휴우!··· 우리끼리 이런 이야기해서 뭘 하나? 어서 가보세. 그 녀석도 사람인데 오늘은 설마 잃겠지?
 - 글쎄 말일세. 하여튼 가 보세나··· 오늘은 나도 좀 따야 빌린 돈 이자라도 낼 수 있을 텐데···
 
 주민들 대부분이 남궁호에게 은자를 잃자 마침내 현령의 자식들이 마작판에 얼굴을 비치기 시작하였다.
 남궁호는 바로 이것을 노렸던 것이다.
 사람들의 주머니를 몽땅 비우면 모든 상행위는 중지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필경 현령의 자식들이 자신이 가진 은자를 노리고 마작판에 끼일 수밖에 없다 판단하여 최근 며칠동안 무섭도록 지독하게 은자들을 긁어모았던 것이다.
 남궁호가 딴 은자는 모두 삼만오천 냥이었다. 덕분에 최근엔 마을에서 은자 한 냥을 구경하는 것도 힘들어져 있었다.
 남궁호는 열흘만에 현령의 일곱째 아들이 하는 춘심원이란 기원의 소유권을 넘겨받았다. 이 소식을 들은 현령의 아들들이 분개하며 너도나도 남궁호와 마작판을 벌였다.
 결국 한 달만에 남궁호는 황과수 유일의 황과객잔과 포목점, 대장간, 피륙점, 양곡상과 주루를 자신의 소유로 만들었다.
 이제 남은 것은 가장 은자가 많은 만전장과 도박장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뿐 아니었다.
 그들과 마작을 하는 동안 겁도 없이 덤벼들었던 사람들의 모든 농토를 자신의 소유로 바꾸었다. 이제 남궁호는 어린 나이에 황과수 전체의 구할 이상을 소유한 거부가 되었던 것이다.
 현령의 아들 중 가장 악랄한 성품을 지닌 넷째 아들 마춘구는 형제들이 모두 알거지가 되자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섰다. 뿐만 아니라 마옥령 역시 남궁호가 앉아 있는 마작판에 자리를 잡았다.
 혹시 있을 지도 모르는 속임수를 대비한다며 현령이 관졸들을 보내 몸수색을 철저히 하였다.
 남궁호는 이런 그들이 우스웠다.
 '후후! 아무리 그래봐야 소용없지··· 이곳에선 아무도 내 마작 솜씨를 따라올 사람이 없음을 알기에 시작한 것이야··· 후후! 드디어 오늘이 마지막이군! 반드시 마가를 알거지로 만들겠어.'
 짐짓 태연한 척 하였지만 가슴속에서는 천불이 나고 있었다.
 모친을 강제로 끌고 가 갖은 능욕을 다하였던 마씨 일족을 쫓아내겠다고 결심한 지 오래였기 때문이었다.
 모친을 간병하면서 남궁호는 어른들이 혀를 차는 소리와 함께 나직이 소곤거리는 소리를 들어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명확히 알게 된 순간 굳은 결심을 하였던 것이다.
 
 "이제 만금장과 도박장은 본인의 소유가 되었소이다. 맞소?"
 "으으으··· 맞다! 이제 만금전과 이 도박장은 네놈 소유다."
 남궁호는 이틀만에 기어코 도박장과 만전장을 따냈던 것이다.
 "좋소! 이제부터 이 도박장은 문을 닫겠소이다. 아울러 지금까지 만전장의 빚은 이 순간부터 모두 탕감하겠소."
 "와와와와와! 운구기일 만세! 운구기일 만세!······"
 중인들은 남궁호의 말에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하지만!···"
 썩은 똥을 씹은 얼굴로 있던 마춘구는 남궁호가 말을 잠시 멈추자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무엇이냐?··· 황과수 상권 전체를 쥐었다고 생각하겠지만 조금이라도 탈법을 하는 날이면 즉시 관아로 끌려갈 것이다."
 마춘구는 독이 잔뜩 오른 표정이었다.
 "후후! 물론이오. 도박장은 폐쇄할 것이니 문제 될 것이 없고, 양곡상과 피륙점, 대장간, 포목점은 단 한치도 속이지 않을 것이오. 그리고 기원과 객잔 역시 도박장과 마찬가지로 문을 닫을 것을 신중히 검토 중이오. 그리고 만전장은 은자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은자를 빌려줄 것이나 지금처럼 월 삼 할의 이자가 아니라 월 일 푼만 받을 것이니 문제될 것이 없소이다.
 "으으!··· 마음대로 해 보거라."
 마춘구는 이를 갈았지만 방법이 없었다. 남궁호가 말한 대로 한다면 꼬투리를 잡을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었다.
 중인들은 이제 완전히 남궁호의 편으로 돌아서고 있었다.
 그 동안 마가 형제들은 포목을 팔며 자를 속이고, 양곡을 팔며 됫박을 속였으며, 피륙을 팔며 근을 속여왔었다. 게다가 만전장에서는 월 삼 할이라는 고리로 은자를 빌려주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정상적으로 하고 이자를 대폭 줄인다하자 남궁호의 편이 안 될 수 없었던 것이다.
 "후후! 마지막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오."
 "뭐라고? 누굴 놀리는 게냐?"
 돌아서던 마춘구가 거칠게 대꾸하였다.
 "후후!··· 현령 직을 거시오."
 "뭐라고?··· 아버님의 현령 직을 걸라고?"
 마춘구는 의아스럽다는 눈초리로 남궁호를 바라보았다.
 "후후! 그렇소이다. 현령직을 물러나겠다는 공문을 가지고 오시오. 은자 십만 냥을 쳐주겠소이다."
 남궁호의 말에 마춘구는 지긋이 입술을 깨물더니 입을 열었다.
 "크크크!··· 좋다. 나중에 딴 소리 하지 말거라."
 "여러분!··· 외람 된 말씀이지만 현령의 공문을 가지고 오면 그곳에 여러분들께서 증인이라는 수결을 적어 주셨으면 합니다. 그 분들께는 그 동안 땄던 모든 전답과 은자를 돌려 드리겠소이다."
 "와와와! 만세 운구기일 만세! 남궁호 만세!"
 이제 대세는 판가름 난 것이다.
 공문을 작성하여 가지고 오면 그곳에 황과수 주민 전체가 수결을 하여 중앙으로 보낼 것이다. 그렇게 되면 설령 먼저간 공문이 잘못 된 것이라고 아무리 우겨도 소용이 없는 것이다.
 한참이 지난 후 마춘구는 형제들과 함께 현령의 수결이 들어있는 공문을 가지고 왔다.
 "자! 이제 되었느냐?"
 마춘구는 공문을 거칠게 내려놓았다.
 "후후! 누가 대신 무엇이라 적었는지 읽어 주시겠소?"
 그러자 곁에 있던 인물 중 하나가 공문을 읽기 시작하였다.
 "본인은 노령과 더불어 일신상의 사유로 현령 직을 더 이상 수행할 수 없기에 사임서를 제출하나이다. 부디 본인이 처지를 헤아려 본 사임서를 재가하여 주시고, 하루 속히 후임자를 임명하여 주시기를 간곡히 간청하나이다. 황과수 현령 마광주 배상."
 공문은 여러 사람의 손을 돌면서 확인되었다. 황과수 현령직을 내놓겠다는 명백한 공문이었다.
 "후후! 좋소이다. 이걸 은자 십만 냥을 쳐 드리죠."
 "크크크!··· 좋아. 그럼 패를 섞어라."
 마춘구와 마옥령은 마작판에 앉아 패를 섞었다. 이제 황과수의 운명이 결정되는 마지막 마작판이 시작하려는 것이기에 그 어느 누구도 숨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긴장에 긴장을 거듭하고 있었다.
 조용한 가운데 마작판은 돌아가기 시작하였다.
 결과는 운구기일 남궁호의 완승!
 마씨 일가는 황과수에서 전 재산을 잃은 것이다.
 사람들은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구름처럼 모여 있었다. 그 동안 마씨 일가에게 갖은 수모를 다 당하였기에 마씨의 몰락을 보려 도박꾼들은 물론 아낙네들과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까지 모두 도박장으로 몰려와 숨소리를 죽이며 결과를 기다렸던 것이다.
 "와와와와와와! 운구기일 남궁호 만세! 만세! 만세!······"
 도박장 안에서 터져 나오는 함성 소리에 밖에서 초조히 결과를 기다리던 사람들의 만면엔 기쁨의 미소가 번지더니 이내 함성의 도가니가 되었다. 아마도 황과수라는 촌락이 생긴 이후 이토록 큰 함성이 터져 나오기는 처음이었을 것이다.
 "와와와와와! 남궁호 만세! 남궁호 만세!······"
 마씨 형제들은 고개를 숙인 채 밖으로 향하였다. 아마 누구도 마씨 일족에게는 물 한 모금도 주지 않을 것이기에 과거 남궁욱이 그랬던 것처럼 빈손으로 떠나는 일만 남아 있었던 것이다.
 모두가 밖으로 향하려 할 때 남궁호가 불러 세웠다.
 "아주머니!"
 나직한 부름에 밖으로 향하려던 마옥령이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눈에는 지금까지 보이던 오만한 빛이 모두 사라지고 세상의 모든 풍파를 겪은 여인만이 보이는 처연함이 감돌고 있었다.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녀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그 자리에 멈췄다.
 "왜! 할 말이 있느냐?···"
 이틀이 지난 후 마씨 형제와 현령은 빈손으로 떠났다.
 남궁호는 은자 이십만 냥이란 거금을 지닌 부자가 되어 있었다. 촌락 사람들에게서 땄던 모든 은자를 돌려주었으니 순수하게 마씨 일족에게서 딴 것만 남은 것이 그 정도였다.
 마씨 일족에게서 딴 포목점 등은 사심(私心)이 없다 생각하던 사람들에게 경영하도록 맡겼다.
 현령이 공석이 된 이상 기원과 객잔, 그리고 주루와 도박장도 문을 닫을 필요가 없었다. 모두 적절한 사람들이 대신 경영을 하였는데, 도박장만은 마옥령에게 다시 맡겼다.
 유일한 친구의 모친이란 것도 작용하였지만 그녀가 도박장을 운영하면서 비교적 공정하게 도박장을 운영하였기 때문이었다.
 처음엔 황과수를 떠나겠다며 완강히 거절하던 그녀가 남궁호의 한 마디에 눌러 앉았던 것이다.
 "이곳을 떠나신다면 무엇으로 교연이 요조숙녀로 성장하도록 뒷받침을 하실 겁니까? 그러니 전처럼 도박장을 맡아 주십시오."
 "······!"
 세속에 밝은 마옥령은 남궁호의 말이 옳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수중에 재물이 없으면 사랑하는 진교연을 요조숙녀로 성장시킬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마옥령은 도박장을 위탁 운영하면서 수익금의 절반을 가지기로 하였다. 나머지도 마찬가지였다.
 한 동안 시끌벅적하고 잔치 분위기였던 황과수가 조용해진 것은 마씨 일족이 떠나고 열흘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그 사이 많은 변화가 있었다.
 우선 모친을 움막에서 황과수에서 제일 좋은 장원인 만전장으로 옮겼다. 그리고 매일 의원들이 병세를 살피고 약재를 달였다.
 빚이 없어진 사람들의 몸놀림은 전보다 훨씬 활기찼고, 얼굴엔 미소가 끊이지 않았다. 마씨 일족의 수탈이 사라지자 황과수는 이제 살기 좋은 촌락이 된 것이기 때문이었다.
 잠시 들떠 있던 분위기가 가라앉자 만전장은 그야말로 무덤처럼 고요한 곳이 되어 버렸다. 들리는 소리라고는 의원들이 움직이는 소리와 화로에서 탕재를 달이는 소리뿐이었다.
 황과수의 모든 것을 차지한 후론 단 한번도 마작을 할 수 없었다. 누구도 그와 마작을 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최근 들어 남궁호는 촌락에서 아이들에게 학문을 가르치던 훈장에게서 학문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적어도 글을 모르는 문맹에서는 벗어나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남궁호는 문일지십(聞一知十)의 천재적인 두뇌는 가지지 못하였지만 그런 대로 총명하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는 되었기에 그의 학문은 빠르게 늘고 있었다.
 나름대로 복수를 했다는 생각에 가슴 뿌듯하던 시기가 지나자 전처럼 심심해졌다. 그래서 수렴동에 들러 동굴 안을 쏘다니거나 하면서 하루하루를 소일하고 있었다.
 그것도 한때였다. 몇 날 며칠이 흐르자 모든 것이 시들해졌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지내던 어느 날 남궁호는 문득 전에 보았던 흑검수라가 한 말이 생각났다.
 '호북성 무한, 철기보··· 흑검수라 장호삼··· 무공이라고?'
 생각이 떠오르자 하루속히 황과수를 떠나 지평선이 보이지 않는다는 중원으로 가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졌다.
 하지만 모친이 아직도 혼수상태로 있기에 쉽사리 마을을 떠날 수는 없었다. 언제 운명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궁호는 자신의 서실에 앉아 글을 읽다가 황급한 발자국 소리를 들었다.
 "공자님! 빨리 와 보세요. 모친께서 의식이 돌아오셨어요···"
 "뭐? 뭐라고? 의식이 돌아 오셨다고?"
 모친의 간병을 위해 붙여 주었던 시비의 말에 남궁호는 자리를 박차고 한달음에 모친이 있는 정실로 달려갔다.
 "으으으!··· 호아야! 으으으!···"
 진초초는 미약한 신음과 더불어 남궁호를 부르고 있었다.
 "어, 어머니! 소자 호아이옵니다. 정, 정신이 드세요?"
 남궁호는 바짝 붙어 앉아 모친의 입에 귀를 기울였다.
 "으으··· 호, 호야냐? 어, 어미를 좀··· 일으켜다오···"
 "예, 어머니!"
 지난 수개월 동안 병석에만 누워 있었기에 모친은 몹시 핼쓱하였으며, 창백하였다. 그런 모습이 안쓰러운 남궁호는 눈가에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모친이 하려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진초초는 힘겹게 눈을 뜬 후 진물이 흐르는 눈으로 남궁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으으으··· 호, 호아야!···"
 잠시 가쁜 숨을 몰아쉬며 괴로워하던 진초초가 어느 순간 갑자기 힘이 나는지 입을 열었다.
 진초초는 회광반조(回光返照) 현상을 보이고 있었다. 어느새 소식을 들었는지 마옥령이 달려와 남궁호의 곁에 앉았다.
 "호아야! 이 어미를 용서해라! 어미는 네 아비의 곁으로 가야할 시간이 되었구나···"
 "어머니! 아니 되옵니다. 제발 기운을 차리세요. 이제 우리는 아무 걱정하지 않고 살아도 되요."
 진초초는 말없이 고개를 돌려 자신과 비슷한 연배인 마옥령에게 시선을 돌렸다.
 "부디 오라비들이 한 짓을 용서하세요. 흐흐흑······"
 마옥령은 진심으로 오라비들이 한 짓에 대한 용서를 구하였다. 진초초는 힘없는 가운데서도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호, 호아야!··· 이, 이리 가까이···"
 "예, 어머니!"
 남궁호는 얼른 모친의 곁으로 가까이 다가가 귀를 기울였다.
 "휴우! 아직 어린 너를 두고 가려니··· 마음이 놓이지 않는구나. 이곳을 떠나게 되면 곤륜파로 가서··· 창궁일학(蒼穹一鶴) 사부님을 찾아가거라. 에미의 이름은 설부용(雪芙蓉)이다. 부디 착하게 바르게 살도록 하여라."
 "설, 설부용이요?"
 남궁호는 처음 듣는 모친의 성명 석자가 다소 낯설었다.
 "그래! 에미는 본래 무림인이었다. 그러다가 옥면호리와······"
 설부용은 지나온 과거를 낱낱이 이야기했다.
 곁에서 듣고 있던 마옥령은 설부용이 과거 무림에서 곤륜일미(崑崙一美)로 불리던 무림인이었다는 사실에 화들짝 놀랐다.
 만일 곤륜파에서 그녀가 마씨 일족에게 능욕을 당했다는 것을 알았다면 아마도 마씨 일족은 씨가 말랐을 것이다.
 소위 명문정파라 불리는 구파일방은 자파의 명예가 실추되거나, 제자들이 목숨을 잃거나, 큰 부상을 당하기라도 한다면 그것을 만회하기 위하여 못할 짓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설부용의 이야기는 반 각 정도 더 이어지다가 그쳤다. 더 이상 말할 기력조차 없어 하고싶은 말도 다 하지 못한 채 한 많은 이승을 떠나 황천으로 향한 것이었다.
 "어, 어머니! 흐흐흑!··· 소자 혼자 어찌 살라고··· 어어어엉!···"
 남궁호는 오열하며 모친의 시신을 부여안았다.
 그로부터 사흘 후 황과수에는 새로운 무덤이 생겼다. 이제 그를 황과수에 묶어 두었던 마지막 끈이 끊어진 것이다.
 남궁호는 슬픔에 잠겨 나날을 보내다가 중원으로 향하겠다고 마음을 먹게 되었다.
 황과수에 있는 재산은 모두 마옥령이 대신 맡아 운영하기로 하였다. 그녀는 죽은 설부용이 곤륜파의 제자였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는지 그를 대하는 자세가 틀려졌다.
 마치 상전을 모시는 듯한 깍듯한 태도로 바뀌었던 것이다. 과거 남궁호가 도박장을 드나들 때에는 마치 벌레 보는 듯한 시선이었는데 그것이 천지차이로 바뀌었다. 유달리 신분에 대한 피해의식에 젖어 있던 그녀였기에 그 정도가 더욱 심하였다.
 그렇게 남궁호는 황과수를 떠났다.
 
 ***
 
 삼 년의 세월이 흐른 뒤 강호의 도박계에는 새로운 도신(賭神)이 탄생하였다는 소문이 무성하였다.
 이제 겨우 십칠팔 세 정도 되는 그 인물은 늘 폐포파립(弊袍破笠)에 낡은 죽장(竹杖)을 들고 다니는데, 그의 품안에는 만해전장(萬海錢莊)에서 발행한 은표(銀標)가 수두룩하다 하였다.
 만해전장은 중원에서도 가장 신용도가 높은 전장이기에 만해전장이 발행한 은표는 현금이나 마찬가지였다.
 운구기일(運九技一)이라 불러달라는 그는 중원의 도박장을 휩쓸며 모든 마작판을 독식하고 있었다.
 그가 지나는 곳의 도박장은 문을 닫기 일쑤였다. 아예 도박장 자체가 그의 소유로 넘어가기도 하였다.
 그를 이기기만 하면 천하제일 도박꾼이라는 영예를 얻는다고 소문났기에 많은 도박꾼들이 도전하였으나 그들은 모두 그에게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아직도 내노라하는 많은 도박꾼들은 언제고 운구기일이 자신이 있는 도박장에 들러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래서 운 좋게 그를 꺾게 되면 능히 천하제일 도박꾼이란 영예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와 동시에 그가 지니고 있다는 엄청난 은표를 손에 쥘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운구기일이 가지고 있는 은표의 액수는 적어도 천만 냥은 족히 될 것이란 소문이 공공연하게 나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단시일 사이에 운구기일이 이토록 유명해 진 것은 어디에서건 상상을 초월하는 도박을 벌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반드시 마작판에만 앉으며, 보통 한 판에 은자 한 냥 하는 판을 은자 천 냥 정도로 판을 키웠다.
 지금까지 그와 마주앉아 마작을 한 내노라하던 많은 도박꾼들이 거렁뱅이가 되어 쓸쓸히 돌아섰기에 유명해진 것이었다.
 밑천이 없으면 제아무리 신묘한 솜씨를 지닌 도박꾼이라 할지라도 도박을 할 수 없게 된다.
 어떻게 보면 운구기일은 많은 도박꾼들이 더 이상 도박을 하지 않도록 만드는데 기여를 했다 하여도 과언이 아니었다.
 천하의 모든 도박꾼들이 운구기일을 기다리고 있건만 그는 마치 운무에 가려진 신룡(神龍)마냥 모든 것이 비밀에 붙여진 채 그렇게 천하를 유랑하고 있었다.
 
 ***
 
 "아미타불! 큰일이로고··· 어허, 이를 어쩐다?··· 어찌 내 대에 이런 변고가 일어나는고··· 아미타불! 석가세존이시여 억조창생을 굽어보시어 이 땅에 혈난(血亂)이 일어나지 않도록 살피소서······"
 무림의 태산북두인 소림사가 자리 잡고 있는 숭산(嵩山) 소실봉 정상에 선 노승이 암천(暗天)을 바라보며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나직이 불호를 외우고 있었다.
 보기에도 선명한 계인(戒印) 주위로 자글자글한 주름이 잡혀있고 바싹 말라 한 줌 미풍에도 날아갈 듯한 노승은 연신 불호를 외우며 염주를 돌리며 시선을 천중(天中)에 두고 있었다.
 낡디 낡은 가사를 걸치고 있는 백염(白髥) 백미(白眉)의 노승은 바로 무림에 생불로 알려져 있는 소림사 전대 장문인인 승광대선사(承光大禪師)였다.
 삭망(朔望)이었기에 어두운 월광(月光)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도 별빛이 반짝이는 그런 쾌청한 밤이었다.
 천중(天中)에는 붉게 물든 두 개의 혈성(血星)이 나머지 별빛을 제압하기라도 하려는지 휘황하게 빛나고 있었다.
 "아미타불! 유사이래 단 한번 움직였던 귀암마성(鬼暗魔星)과 혈요마성(血妖魔星)이 저리도 붉게 물드는 것으로 보아 조만간 천하에 엄청난 혈겁이 닥칠 조짐이건만 안타깝게도 소림의 힘만으론 어렵겠구나···"
 귀암마성이나 혈요마성이란 말은 중원의 그 어떤 서책에도 기록된 바가 없는 명칭이건만 노승은 나직이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렇다!
 귀암마성이나 혈광마성이란 문구는 중원의 그 어느 서책에도 기록된 바가 없는 명칭이었다.
 하지만 단 한 군데, 대대로 소림 장문인에게만 은밀히 전해지는 서책이 있었으니 겁혈마전(劫血魔傳)이 바로 그 서책이었다.
 그것은 어찌나 오래 되었는지 이제는 사용치 않는 죽간(竹簡)으로 이루어진 서책이었다.
 서책에 기록된 문자는 이제는 사문(死文)이 되어 버린 쐐기 모양의 설형문자(楔形文字)였다. 이로 보아 대략 지금으로부터 대략 이천 년은 족히 지난 서책일 것이다.
 대체 누가 언제 작성하였는지 알 수 없는 겁혈마전이 어떻게 소림으로 흘러들었으며, 왜 대대로 장문인에게만 전해지는 지는 현세에 와서는 그 어느 누구도 모르는 일이었다.
 
 이 겁혈마전에는 춘추전국 시대보다 훨씬 이전인 주(周)나라 때 있었던 혈겁이 기록되어 있었다.
 오랜 옛날 이제 막 무공이라는 것이 생겨날 무렵 천하에는 피의 겁난이 불어닥쳤었다.
 당시에는 나라라는 개념이 처음 생겨 씨족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살다 막 한군데로 모여 농경을 하던 그런 시절이었다.
 그저 짐승들을 사냥하거나, 농사를 짓던 그들 앞에 보기에도 끔찍한 쌍두사비(雙頭四臂)의 모습을 한 악마들이 나타났었다.
 그들은 닥치는 대로 살인을 저질렀으며, 방화는 물론 겁탈을 일삼았었다. 이에 놀란 사람들이 흩어져 깊은 산중으로 스며들 무렵 천하는 이미 시산혈하(屍山血河)를 이루고 있었다.
 그 어떤 사람도, 그 어떤 세력도 감히 이들에겐 대항할 수 없었다. 수천에 달하는 악마 중 단 하나의 힘만으로도 능히 일만에 달하는 사람들을 산채로 찢어 죽일 정도의 힘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의 피부는 어찌나 단단한지 화살도 박히지 않았고 도끼도 소용없었다.
 그저 팔을 단 한번 휘두름으로 쏟아지는 폭포를 양단하고, 눈길 한번으로도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쓰러져 갔다.
 그 당시 밤하늘에는 시뻘건 빛을 발하는 두 개의 별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귀암마성과 혈요마성이었다.
 두 개의 성광(星光)이 어찌나 밝은지 월광마저 그 빛을 잃을 정도였다고 겁혈마전에는 기록되어 있었다.
 수천에 달하는 악마들은 마치 제 세상을 만난 듯 천하를 유린하며 다녔는데, 그들을 이끄는 두 우두머리는 바로 혈황마군(血皇魔君)과 사갈요희(蛇蝎妖姬)였다.
 그들은 천하를 무려 백 년 간이나 유린하다 사라졌다.
 우연히 이들이 사라지며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은 사람이 말하기를 둘은 이렇게 중얼거렸다고 하였다.
 "아직 우리의 상대가 될만한 것이 이 세상에는 없구나. 지금으로부터 이천 년쯤 지나면 우리의 상대가 나타날지··· 아아! 상대가 없는 고독함을 그 누가 알아주리?···"
 혈황마군과 사갈요희가 이끄는 무리들이 썰물처럼 사라지자 천하는 평온을 되찾았고 지금까지 세월이 흘러왔던 것이다.
 겁혈마전에 기록된 이 내용을 읽어보면 누군가 이야기를 지어내기 좋아하는 사람이 심심풀이로 지어낸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허황된 내용이 많았다.
 왜냐하면 작금에 이르러 엄청나게 발전된 무공으로도 상상키 어려운 내용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혈황마군과 사갈요희는 각기 흑백의 날개를 달고 있었으며, 이 날개가 펼쳐지면 거의 이장에 달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또한 그들은 구름을 타고 다녔으며, 그들의 입에서는 지옥의 불길과도 같은 화염이 쏟아져 나와 반항하는 모든 것들을 태웠다고 적혀 있었다. 그 화염은 어찌나 뜨거운지 바위조차 녹아 내렸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그리고 혈황마군은 머리가 두 개였으며 팔은 네 개였으며, 사갈요희는 혀의 길이가 무려 일 장에 달하였다고 적혀 있었다.
 그녀의 혀에 닿는 사람들은 모두 목내이(木乃伊:미이라)처럼 비쩍 말라죽었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내용들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허황된 것들이 기록되어 있는 겁혈마전이 소림사에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단 하나의 이유는 바로 달마선사(達磨禪師)의 유시 때문이었다.
 달마선사가 신발 한 짝만 남기고 홀연히 사라졌을 때, 그 신발 속에는 장경각(藏經閣) 들보 위에 올려놓은 겁혈마전의 내용은 사실이니 대대로 이를 대비해 적혀 있었던 것이다. 확인해 본 결과 장경각의 들보에 홈 속에 겁혈마전이 있었다.
 겁혈마전의 문자는 결코 먹을 갈아서 쓴 글씨가 아니었다. 거기에 적힌 글자들은 모두 인간의 선혈로 기록된 것이었다.
 누군가 이 내용을 믿지 않을 것을 우려하여 선혈을 찍어 만든 그런 죽간이었던 것이다.
 거기엔 귀암마성과 혈요마성의 위치가 정확히 기록되어 있어 대대로 소림의 전대 장문인들은 이를 살피는 것이 의무였다.
 만일 이를 살피다 이상을 발견하게 되면 즉시 현 장문인에게 이를 알리고 다가올 겁난을 대비하여야하는 것이 전임 장문인으로서의 마지막 임무이기도 하였다.
 "아아! 이제 혈겁은 피할 수 없는 것인가? 인세가 겪어보지 못한 엄청난 혈겁을!··· 아미타불! 어서 영공(靈空)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겠구나···"
 한 동안 천중을 노려보며 한숨을 내 쉬던 승광대선사의 신형이 어느 순간 마치 꺼지기라도 하듯 사라졌다.
 소림사 전대 장문인답게 실로 대단한 신법(身法)이었다.
 전설의 경신술(輕身術)인 축지성촌(縮地成寸)이나 육지비행(陸地飛行)에 버금갈 그런 경신술이었던 것이다.
 소실봉 정상의 하늘에는 여전히 붉게 물든 두 개의 별이 요요로운 빛을 뿌리며 월광을 잠식해 가고 있었다.
 
 "아미타불! 장문인은 주무시는가?"
 소림의 중지인 방장실 안에 연기처럼 스며든 노승이 나직이 중얼거리자 깊은 참선에 잠겨 있던 노승의 눈이 번쩍 뜨였다.
 마치 번개불 같은 형형한 안광이 빛나는가 싶더니 곧 고요한 호수처럼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눈빛으로 변했다.
 "아미타불! 이 깊은 밤에 누구시오?"
 자신의 처소로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이 난입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소림 장문인인 영공선사의 음성은 침착하기만 하였다.
 "아미타불! 노납 승광이네."
 "엇? 사, 사부님!"
 소림 방장인 영공선사는 화들짝 자리에서 일어나 사부를 맞는 예를 행하며 입을 열었다.
 "사부님! 어찌 이 늦은 밤에··· 그 동안 별래무양 하셨는지요?"
 "허허허! 그 동안 잘 지내셨는가?"
 창노한 음성을 들은 영공선사는 오랜만에 듣는 사부의 음성에서 아직은 정정함을 확인하였는지 안도하는 모습이었다.
 "사부님의 가르치심 덕분에 잘 지냈습니다. 그런데 사부님! 어인 일로 이 늦은 밤에 제자의 처소를 찾으셨는지요?"
 "허허허! 우선 자리에 앉으세···"
 "예!"
 이미 노화순청(爐火純靑)의 화후에 오른 두 노승에게는 황촉불을 밝히는 일 따위는 필요 없었다. 어두운 실내였지만 보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볼 수 있는 그런 경지에 도달해 있었던 것이다.
 "이보게! 장문인."
 "예, 사부님! 말씀만 하십시오. 사부님의 고언(高言)을 제자는 세이경청(洗耳敬聽)하겠습니다."
 승광대선사는 제자의 모습을 슬며시 살핀 후 지극히 만족스럽다는 듯한 미소를 띄웠다.
 "장문인! 오늘 노납은 귀암마성과 혈요마성을 보았네."
 "예에?··· 바, 방금 뭐, 뭐라고 말씀 하셨습니까?"
 승광대선사는 혹여 누가 듣기라고 하는지 주위를 세밀히 살핀 후 다시 입술을 달싹였다. 하지만 그의 음성은 어느 곳에서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러나 영공선사의 안색이 돌변하는 것으로 보아 무언가 중대한 대화를 나누고 있음이 분명하였다.
 전음밀입법(傳音密入法)으로 의사를 전달하고 있었던 것이다.
 밤사이 소림사 장문방장의 침소는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어두운 적막 속에 묻혀 있었다.
 째짹! 째째짹!······
 동창이 훤히 밝아오자 요란한 산새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밤사이 잠들어 있던 소림사 여기저기서 인기척이 나더니 곧 활기찬 새 아침을 맞이하려는 듯 경내를 쓰는 사미승들의 모습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하였다.
 "장문인! 장문인!"
 아침 소제를 할 목제 대야를 든 사미승이 공손히 장문방장인 영공선사를 불렀다.
 "으흠! 아미타불! 알았느니라."
 방장실의 문이 벌컥 열리더니 영공선사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밤새 안녕하셨는지요?"
 "아미타불! 허허! 그래 사미도 잘 주무셨는가?"
 영공선사는 부드럽게 사미승과 대화를 한 후 서둘러 세안을 마치고 다시 방장실로 들어가며 입을 열었다.
 "사미는 가서 아침 예불이 끝나는 대로 계율원주(戒律院主)와 장경각주(藏經閣主) 그리고 계지원주(戒智院主)와 장생전주(長生殿主), 흐음! 그리고 나한전주(羅漢殿主)와 지객원주(持客院主)를 방장실로 들라 이르라!"
 "예에!"
 사미승은 겨우 칠팔 세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으나 매우 영특해 보였다. 아직 정식으로 계율과 법명을 받지 못하였기에 이마에 계인은 없었다.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빛내던 사미는 중얼거리며 서둘러 밖으로 향하였다.
 "계율원주님하고, 장경각주님. 그리고 계지원주님과 장생전주님. 그리고 또 나한전주님하고 지객원주님··· 아이고! 전부 다 전하려면··· 바쁘다 바뻐!"
 타당, 쿠당당탕!
 사미는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사람들에게 소식을 전하려니 머리가 복잡해졌는지 세수 대야를 내동댕이치고 달려갔다.
 소림사의 전대장문인인 승광대선사 사형제에게는 모두 일곱 제자가 있었다. 영공선사가 수제자이고, 계율원주는 둘째인 영료선사(靈了禪師)가, 나한전은 셋째인 영덕선사(靈德禪師), 계지원은 네째인 영오선사(靈悟禪師)가, 장생전은 다섯째인 영범선사(靈梵禪師)가 맡고 있으며, 지객원은 여섯째인 영운선사(靈雲禪師)맡고 있었다.
 제자들 가운데 가장 불심이 깊고, 가장 명석한 두뇌를 가진 일곱째 제자인 영담선사(靈曇禪師)는 사형들을 제치고 가장 중요하다면 중요한 소림사의 장경각을 책임지고 있었다.
 이들 칠 사형제(師兄弟)를 두고 세간에서는 소림칠룡(少林七龍)이라 불렀다.
 이들은 모두 가공할 정도로 깊은 내공의 화후를 지니고 있는데, 이는 칠 사형제가 동문수학할 때 우연히 숭산 깊은 곳에서 얻은 삼지구엽초(三枝九葉草) 때문이었다.
 적어도 오천 년 이상 묵은 것으로 보이는 삼지구엽초 한 뿌리를 사이 좋게 나누어 복용한 사형제들은 영약의 엄청난 효용으로 내공의 급진전을 보았었다.
 게다가 이들은 젊었을 때 탁발과 수행을 하며 강호를 유람한 적이 있는데, 사(邪)나 마(魔)를 보기를 사갈처럼 보아 이들을 응징하는 가운데 저절로 실전무학이 몸에 배었음은 물론 강호의 대소사에 형통하였다.
 하지만 이들이 강호유랑을 하는 동안 단 하나의 생명도 죽지 않아 속세에서는 무림칠생불(武林七生佛)이라고도 불렀다.
 소림칠룡은 간혹 한 자리에 모여 정담을 주고받으며 서로간의 끈끈한 형제애를 확인하곤 하였기에 세상에서 가장 사이가 좋은 사형제 가운데 하나라 하여도 과언이 아니었다.
 
 
 제4장 너! 간세지?
 
 
 호북성(湖北省) 무한(武漢) 시진 한 복판에 당당히 자리잡고 있는 철기보(鐵騎堡)에 손님이 찾아 들었다.
 무림사보(武林四堡) 가운데 하나인 철기보는 욱일승천의 기세로 성장하는 후발문파로 그야말로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며 성세를 키워가는 곳이다.
 보주는 철사자(鐵獅子) 북리승혁(北里承爀)으로 개파대전을 연지 불과 이십 년 밖에 되지 않은 문파가 이토록 성장한 것은 무림역사상 드문 일이었다.
 철기보의 수하들은 어디엔가 감춰진 철광(鐵鑛)에서 얻어지는 빈철(斌鐵)로 중무장하고, 말까지 호갑(護鉀)으로 감쌌기에 무적철기병(無敵鐵騎兵)이란 칭호로 불린다.
 이들의 장창은 길이가 일 장에 달하며, 단단하기로 이름나 웬만한 병장기는 부딪치는 순간 산산이 부서지기 마련이다.
 따라서 접근전이 아니면 이들에게 추호의 손상도 입힐 수 없다. 그래도 그들을 해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안장에는 장검과 단검이 항상 준비되어 있기에 접근해 오는 적들을 격살하기에 충분하다. 만일 이를 모르고 무작정 접근전을 펼친다면 백전백패 당하기 십상이다.
 철사자 북리승혁은 강호의 명문세가인 북리가(北里家)의 후손으로 약관이 조금 넘은 나이에 철기보를 세웠다.
 그는 올해 사십오 세로 약관에 독문병기인 파천검(破天劍)을 들고 무림에 출도하여 도산검림 속에서 수많은 혈전 끝에 우뚝 선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그의 외호에서 알 수 있듯이 철사자는 한 자루 검으로 세상만물을 단 일 검에 부셔버릴 수 있는 극강을 숭상하는 인물이었다.
 독문무공인 파천검법(破天劍法)은 상대한 모든 무인들의 병장기를 산산이 부셔버렸기에 무림일절로 소문난 지 이미 오래였다.
 그 중에는 중병인 부(斧)나 유성추(遊星鎚)도 포함되어 있으니 얼마나 그의 검세가 무겁고 극강한지 가히 짐작할 만 하였다.
 하늘을 찢어발길 듯 가공한 검세 앞에 남아 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와 상대한 무인들은 시신조차 온전히 남기지 못하는 참변을 겪어야만 하였다.
 그의 검법이 이처럼 비약적인 발전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오래 전 은거한 검신검귀(劍神劍鬼) 피후치(皮候治) 덕이었다.
 검신검귀는 천하의 모든 검법을 섭렵한 검의 신(神)이었다. 그는 어떤 검법이든 일견(一見)만 하여도 똑같이 시전할 수 있으며, 대응하는 파훼식까지 찾아내는 능력을 지녔다.
 그는 일평생 파훼식이 없는 검법을 연구하였다. 하지만 그는 선천적으로 내공을 익힐 수 없는 신체였기에 일평생 타인과 손속을 나눈 적은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무인이라기보다는 농사꾼에 가까웠다.
 머무는 곳 그 어디에서든 땅을 일궈 곡식의 씨를 뿌렸다. 묵묵히 땅을 일굴 때에도 그는 뇌리 속에는 무결점의 검법을 연구하고 있었다.
 그런 그가 세수 일백십이에 최초로 인정한 사람이 바로 철사자 북리승혁이었다. 그렇다고 그가 그의 제자가 된 것은 아니었다. 오직 철사자의 끊임없는 구도 정신에 감복하여 한 수 가르쳐 주었을 뿐이다.
 그가 검신검귀의 문하에 있던 기간은 불과 이년 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 동안 검리(劍理)에 대하여 배운바가 많았다.
 대저 검법이란 경중과 완급이 매우 중요한 법이다.
 너무 가벼우면 상대의 병장기에 밀리고, 너무 무거우면 한번 시전한 검세(劍勢)를 되돌리기가 어려우며, 너무 느리면 상대의 병장기가 먼저 내 목숨을 거둘 것이고, 너무 빠르면 검세에 오묘한 변화를 주기가 힘든 법이다.
 검신검귀는 이승을 떠나면서 자신이 일평생 검법을 연구하며 얻은 심득을 단 한 글자로 남겼다.
 중(中)!
 그 한자가 철사자 북리승혁의 검학을 완성시켰던 것이다. 하지만 그가 선택한 것은 무거울 중이었다.
 파천검법 덕분에 철사자는 무림에 출도한 이후 줄곧 욱일승천의 기세로 성장한 결과 철기보라는 문파를 가지게 된 것이었다.
 그에게는 삼남일녀가 있는데 그들 모두 용맹하기가 부친 못지 않다고 한다.
 첫째는 올해 이십삼 세인 무정검(無情劍) 북리대손(北里岱巽)이다. 그는 검을 즐겨 사용하며 그의 검법은 북리가의 가전무공인 파천검법(破天劍法)이다. 그것은 무림일절로 알려진 사일검법(斜日劍法)과 대적할만한 유일한 검법이었다.
 유난히 호승심이 강한 북리대손은 언제고 사일검사(斜日劍士)와 비무하였을 때 승리를 쟁취하기 위하여 불철주야 검학 수련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한다.
 그의 성품은 비교적 냉담하며 그는 입버릇처럼 검에는 인정이 없다하기에 무정검이란 칭호로 불린다.
 실제로 그와 비무를 하였던 많은 무인들이 그의 검 아래 고혼이 되거나 불구가 되는 불행을 겪었다.
 둘째인 유성활도(流星活刀) 북리운비(北里雲飛)는 도법에 일가견을 지닌 인물이다. 불과 약관의 나이에 무학에 천재적인 자질을 보여 유성도법(流星刀法)을 창안하였다고 한다.
 무학을 연성하던 도중 하늘에서 쏟아지는 유성을 보며 착안하여 만든 도법이 바로 유성도법이었다.
 현란한 변식을 지닌 유성도법은 분명 한 자루 도이건만 마치 열 자루, 스무 자루의 도가 한꺼번에 들이닥치는 듯함을 맛보게 하는 가공할 도법이었다.
 그가 특별히 주문하여 제작한 유성도(流星刀)는 보통의 도에 비하여 도신(刀身)이 두툼하되, 날은 서 있지 않다 한다.
 도법에 기쾌함과 기세만 있다면 세상에 베지 못할 것이 없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기에 날이 없는 것이다. 실제로 그가 도법을 시전하면 허공을 베는 날카로운 파공음이 도를 도갑에 넣은 뒤에야 들린다고 한다.
 발도(拔刀)와 회도(回刀)가 순식간에 이루어지기 때문이었다. 그야말로 도법 가운데 가장 빠른 쾌도식(快刀式)이라는 평이다.
 북리운비는 형과는 달리 인후한 성품을 지녀 아직까지 단 한번도 살인을 한 적이 없다.
 제 아무리 극악무도한 악마라 할지라도 한번은 개과천선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기 때문에 그의 외호에 활도(活刀)라는 자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셋째는 북리승혁의 자식들 가운데 유일한 여인인 도화요정(桃花妖精) 북리운혜(北里蕓慧)이다.
 올해 방년 십팔 세인 그녀는 무예보다는 문에 관심이 많다고 한다. 그렇다고 그녀의 무공이 형편없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녀의 학식이 삼교구류(三敎九流)를 넘어 제자백가에 정통하고, 하도낙서, 천문지리를 짐작하며, 특히 이미 사문이 되어버린 고대문자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지니고 있어 결코 얕지 않은 무공이 빛을 내지 못할 뿐이라 한다.
 하지만 강호의 그 어느 누구도 그녀의 무공이 실제로 얼마나 되는지를 아는 사람들은 없다. 남들이 보는 앞에서 무공을 시전한 일이 단 한번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따로 호북제일미(湖北第一美)로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미모를 지닌 북리운혜는 마음씨마저 따듯하여 철기보 내의 모든 수하들은 그녀가 무엇을 주문하던 얼굴한번 찡그리지 않고 기꺼이 그 일을 처리한다 한다.
 일찍이 부인을 병마로 잃은 철사자 북리승혁은 그런 그녀를 끔찍이도 아낀다 소문나 있었다.
 마지막 넷째는 십오 세 소년인 북리성린(北里星麟)이다. 아직 어리기에 따로 외호는 없다. 하지만 그는 적어도 북리가에서 불리는 호칭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개망나니이다.
 불과 십삼 세의 나이로 기방 출입을 시작한 그는 십사 세에 이미 동정을 잃었으며 늘 술에 쩔어 살고 있었다.
 부친과 형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으면서도 늘 그들의 뜻에 부응하지 못하고 반대로만 살았다. 하지 말라는 짓만 했고, 하라는 것은 철저히 하지 않았다. 그의 의복은 남루하기 이를 데 없으며 머리는 늘 봉두난발이었다.
 아침에 이미 술에 취해 있으며 저녁 무렵이면 인사불성이 되어 돌아오곤 하였다. 그가 이렇게 반항을 하는 것은 그의 나이 십삼 세 때 출생의 비밀을 알고 나서부터였다.
 일찍 상처(喪妻)한 철사자가 우연히 들렀던 기루에서 만난 애화(艾花)라는 기녀 사이에서 태어난 것이 바로 그였다.
 그때까지 친형이요 친누이로 알았던 사람들이 이복형제이며, 친모인 애화는 북리가의 장로들이 인정할 수 없다하여 비탄에 잠긴 나날을 보내다 스스로 목을 매 자진하였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개망나니가 되었다.
 무엇이든 은자가 될만한 물건들을 들고 나가 헐값에 처분한 뒤 기방 출입을 하고, 청루(靑樓)와 홍루(紅樓) 드나들기를 제집 안방 드나들 듯 하였다.
 많은 기루와 홍루, 청루에서는 철기보의 철부지인 북리성린을 봉으로 생각하였다. 언제든 허용되었고,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그가 저지른 최악의 사건은 북리대손이 익히던 파천검보(破天劍譜)를 은자 이만 냥에 팔아 넘긴 후 그것으로 무한에서 가장 큰 기원인 애향원(愛香院)에서 무려 열두 명이나 되는 기녀를 끌어안고 며칠 동안이나 밤새 지랄발광을 한 것이었다.
 당시 북리대손은 검리를 깨닫기 위하여 연공관에 들어 참오 하던 때라 검보가 사라진 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며칠 후 그가 나왔을 때 비로소 검보가 사라진 것을 알고 철기보는 완전히 뒤집어 졌었다. 결국 검보와 함께 북리성린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고 무한을 이 잡듯 뒤졌다.
 검보는 고리대금업을 하는 전장에서 발견되었다. 그 전장에서는 자신들을 찾아올 줄 알고 미리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만일 한번이라도 검보를 펼쳐보았다면 그들은 결코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무공에 관심이 없는 고리대금업자인지라 그들은 어떻게 하면 그것을 비싼 값에 다시 철기보에 넘길 것인 가만 고심하였는지라 검보의 진정한 가치를 모르고 있었다.
 그들은 검보를 삼만 냥에 넘기고 잔치를 벌였다. 하지만 그것의 진정한 가치를 안 그들은 땅을 치고 후회하였다고 한다.
 만일 그들이 황금 십만 냥을 불렀다고 하더라도 아마 철기보에서는 그 값을 치렀을 것이다. 그 검보는 바로 북리가의 가전무공이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북리성린은 수하들의 손에 이끌려 애향원에서 철기보로 압송되었다. 하지만 술에 쩔어 인사불성이 된 그를 바라보는 철사자의 안색에는 노기가 전혀 없었다.
 오히려 그의 안면에는 측은지심이 가득하였던 것이다.
 북리대손도 마찬가지였다. 무정검이라 불릴 정도로 냉정한 그였지만 그 역시 불쌍하다는 빛이 완연하였던 것이다.
 단 한 명, 북리성린이 술에서 깨어 난 후 종아리를 매섭게 내려친 사람은 바로 마음이 비단결 같기로 소문난 북리운혜였다.
 북리운혜의 매서운 매질에도 불구하고 그는 단 한마디의 신음도 내지 않고, 반항도 하지 않으며 묵묵히 견뎌냈다.
 비로소 모든 매질을 마친 북리운혜는 흐느끼며 자신의 처소로 돌아갔고, 생전 처음 누이로부터 모진 매질을 당한 북리성린은 무려 칠 일간이나 자신의 처소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칠 일이 지난 후 북리성린은 또 다시 전과 같은 개망나니가 되었지만 북리운혜는 다시는 매를 들지 않았다. 그 후 철기보에서는 북리성린이 무슨 짓을 저지르건 모든 것이 용서되었다.
 철기보는 정사마(正邪魔) 그 어느 곳에도 치우치지 않고 패(覇)를 숭상하는 곳이기에 평소 손님이 잘 오지 않는 그런 곳이었다.
 
 오늘 철기보를 찾은 손님은 낡은 폐포파립으로 전신을 감싸 남자인지 여자인지 조차 구분이 되지 않으며, 헝클어진 머리카락으로 용모조차 구분되지 않는 그런 괴이한 차림의 손님이었다.
 차림으로 보아 개방의 제자인가 싶었으나 그것도 아니었다.
 그에게는 신분 표식인 매듭이 보이지 않았고, 구걸하기 위한 포대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도저히 신분이며 나이를 추측할 수 없는 폐포파립인은 말없이 고개를 들어 헝클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철기보를 바라보았다.
 마치 수억 년 동안을 침잠한 듯한 호수의 수면과 같은 고요한 시선은 철기보의 전경을 담고 있었다.
 사방에 견고한 석축을 쌓고 그 주위에 깊은 해자(垓字)를 판 후 물을 채워 놓은 철기보(鐵騎堡)의 모습은 보기만 해도 위풍당당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이곳은 해자 위로 걸쳐진 운교(雲橋) 위로만 진입할 수 있기에 비록 번화한 시진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지만 철옹성(鐵甕城)이나 마찬가지였다.
 누구든 이곳으로 진입하려면 너비가 무려 오 장에 달하는 넓은 해자 위로 날아간 뒤, 다시 높이가 거의 십 장에 달하는 높디높은 석축(石築)으로 날아올라야만 하였다.
 해자의 깊이는 이 장쯤 되며, 채워진 물은 함부로 난입하는 것을 막기 위한 절독이 풀어져 있다. 따라서 절정의 무림인이라 할지라도 함부로 난입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였다.
 현재 철기보의 부교(浮橋)는 해자 위로 내려와 누구든 통행이 가능하게 되어 있었다. 이런 경우는 정문에 위풍당당한 수문위사가 있을 때뿐이었다.
 운교 위를 천천히 건넌 폐포파립인은 수문위사에게 다가섰다.
 "누구냣? 이곳은 철기보이다. 용무가 없으면 물러서라!"
 수문위사는 번쩍이는 장창을 꼬나들고 예리한 시선으로 폐포파립인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며 수하를 하였다.
 "······!"
 "누구냐고 물었다. 만일 정체를 밝히지 않으면···"
 "흑검수라 장호삼을 만나러 왔소."
 열리지 않을 것 같던 폐포파립인이 입을 열었다. 그의 음성은 그다지 나이 들어 보이지 않는 음성이었지만 아무런 감정도 섞여 있지 않는 음성이었다.
 이런 음성을 내는 사람은 대개 고도의 수련을 겪은 초절정의 고수이거나 자신의 오욕칠정(五慾七情)을 숨길 수 있는 극고의 냉정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기 마련이었다.
 "흑검수라 대주(隊主)를?··· 누군지 정체를 밝히시오."
 수문위사는 흑검수라를 만나러 왔다하자 즉시 말하는 태도를 바꿨다. 그는 수문위사 보다는 상관이었던 것이다.
 "후후! 이걸 보여주면 될 것이오."
 폐포파립인은 품에서 피낭(皮囊)을 꺼내 건넸다.
 경계의 눈초리로 살피던 수문위사는 그가 은자가 가득 든 듯한 피낭을 꺼내자 경계를 풀며 그것을 받아 들었다.
 피낭의 겉면에는 누군가 지독히도 없는 솜씨로 그려 놓은 난화(蘭花) 한 송이가 있을 뿐이었다.
 "이, 이게 무엇이오?"
 수문위사는 너무도 무심한 폐포파립인에게 결코 적의가 없다 판단하고 다소 말을 부드럽게 하였다.
 "후후! 흑검수라에게 가져다주면 알 것이오."
 "좋소! 잠시 기다리시오."
 수문위사는 육중한 문 뒤로 사라졌다 잠시 후에 나타났다.
 "들어오시오."
 폐포파립인은 말없이 정문 안쪽으로 사라졌다.
 철기보 내부는 층층이 돌을 깎아 쌓은 기단 위에 전각들이 세워져 있었다. 누구의 솜씨인지는 몰라도 절묘한 솜씨였다.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던 폐포파립인은 안에서 대기하고 있던 또 다른 무사의 안내로 철기보 외단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밖에서 볼 때는 다소 살풍경 하였지만 안은 그런 대로 아늑한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여기저기 수목들이 심겨져 있었고, 맑은 물로 가득 찬 연못도 곳곳에 눈에 뜨였다. 한껏 운치를 살린 운교가 걸려 있는 연못에는 잎사귀가 넓은 남방 연화가 은은한 향기를 풍기고 있었다.
 안쪽에 제법 높게 세워진 석벽은 온갖 치장을 하여 쌓아 놓았기에 이것이 단순히 공간을 구분하기 위하여 만들어 놓은 것인지 아니면 다른 목적이 있는지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철기보는 내단과 외단으로 분리되어 있으며 외단은 비교적 신분이 낮은 하위 무사들이 기거를 하고 안에는 수뇌부들이 있는 모양이었다. 폐포파립인이 찾는 흑검수라 장호삼이라는 인물은 아마도 외단 소속인 모양이었다.
 구불구불 한참을 안내하던 무사는 폐포파립인에게 거대한 전각 한쪽에 있는 작은 정실 앞에 선 뒤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 일각 정도의 시간 동안 안내하면서도 단 한마디도 입을 열지 않던 그의 음성은 다소 냉랭하였다.
 "흑검수라는 이 안에 있소이다. 그럼···"
 말을 마친 장한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홀로 남은 폐포파립인은 망설이다가 정실의 문을 열었다.
 "계십니까?"
 그러자 안에서는 즉각적인 반응이 왔다.
 "누구냐? 안으로 들라···"
 삐이꺽-!
 마찰음과 함께 정실의 문이 열리자 안에는 네 명이 둘러앉아 마작을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네 명의 장한들은 일제히 고개를 돌려 폐포파립인을 의아하다는 눈초리로 쳐다보고 있었다.
 "누구시오? 무슨 용무로 이곳을 찾았소?"
 "하하! 흑검수라 아저씨, 저를 잊으셨습니까?"
 "누구?···"
 구렛나루에 시커먼 수염이 잔뜩 솟아 마치 춘추전국시대 때 용맹함을 자랑하던 장비와 같은 형색을 한 장한이 입을 열었다.
 "하하! 황과수에서 만났던 남궁홉니다."
 폐포파립인은 다름 아닌 남궁호였던 것이다.
 "본인이 장호삼이오만··· 황과수? 남궁호?···"
 장호삼이라는 사람은 남궁호의 말에 의아한 듯한 표정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 조금 전 그는 수하가 다가와 은자가 든 피낭을 건네주며 누군가 자신을 찾았다는 말을 들었다.
 재수가 없는지 계속 잃기만 하고 있던 터인데 은자가 든 피낭을 누군가 주었다 하여 안으로 안내하라 하였던 것이었다.
 "그새 잊으셨습니까? 몇 년 전 황과수에서 은자 백 냥이 든 피낭을 건네주셨는데··· 덕분에 어머니를 구할 수 있었습니다."
 "후후! 피낭?··· 백 냥?···"
 "하하! 그럼 피낭이 아저씨의 것이 아니란 말씀이십니까?"
 남궁호는 자신이 기억하는 장호삼의 용모파기가 완벽하게 일치하자 자신 있게 말하고 있었다.
 "이건 내 것이 맞긴 맞는데···"
 피낭을 흔드는 그의 표정이 어딘지 모르게 약간 괴이하게 변해 있었지만 남궁호는 눈치채지 못하였다.
 "하하! 거 보세요. 아저씨를 찾아 이곳까지 왔습니다."
 갑자기 흑검수라는 남궁호의 팔을 잡아끌고 밖으로 향하였다.
 "하하! 어서 오게. 그때 그 소년이었구만··· 이렇게 장성하였으니 몰라볼 수밖에···"
 흑검수라는 마치 오랜만에 어린 조카가 찾아 온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안쪽에 있는 자신의 처소로 향하였다. 전각 뒤쪽에는 하위무사들이 기거하는 정실들이 즐비하였다.
 이상하게도 주위를 살피며 불안해하던 그는 자신의 처소에 들어서자마자 남궁호의 마혈(麻穴)을 짚으며 입을 열었다.
 남궁호는 갑자기 전신이 마비된 듯 꼼짝도 할 수 없게되자 경악성을 토하였다.
 "아앗! 아저씨 대체 왜?···"
 하지만 말을 길게 이을 수 없었다.
 마혈에 이어 아혈(啞穴)까지 점혈 되었기 때문이었다.
 "후후! 조용히 하고 있어라. 너는 지금 마혈과 아혈이 제압되어 몸을 움직일 수도 말을 할 수도 없다. 지금부터 내가 묻는 말에 추호의 거짓도 없어야 한다. 만일 조금이라도 거짓말을 한다면 즉시 한줌 혈수로 녹아들 것이다."
 흑검수라가 말을 하면서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탁자 위에 흘리자 탁자는 진초록 연기와 함께 녹아들고 있었다.
 아마도 지독한 절독인 모양이었다.
 남궁호는 생전처음 혈도를 제압당하고 너무도 악독한 독을 보자 놀라 눈이 둥그래져 있었다.
 자신이 철기보를 찾은 것은 전에 자신에게 주었던 은자 덕분에 모친을 구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한 보은으로 생각하고 일부러 이곳까지 왔던 것이다. 또 무공이란 것을 배우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믿었던 흑검수라가 갑자기 너무도 악독한 표정을 짓자 놀라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부터 본인이 묻는 말에 눈으로 대답하거라. 예면 좌측 눈을, 아니오면 우측 눈을 깜박이도록 하라! 알겠느냐?"
 남궁호는 지체없이 좌측 눈을 깜박였다.
 그 동안 어렴풋이 무림이라는 곳에 대하여 들었기에 만일 잘못 대답하면 한줌 혈수로 녹아든다는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네놈은 어디 소속이냐?"
 '이게 무슨 소리야? 어디 소속이냐니?···'
 남궁호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네나, 아니오라고 대답할 성질의 질문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흑검수라도 자신의 실책을 깨달았는지 다시 입을 열었다.
 "호련백마장(護聯百魔莊)소속이냐?"
 남궁호는 얼른 우측 눈을 깜박였다.
 "좋아! 그럼 마마혈보(魔魔血堡)소속이냐?"
 역시 좌측 눈을 깜박였다.
 흑검수라는 계속하며 무림 문파들의 이름을 대며 물었고 남궁호는 계속하여 우측 눈을 깜박이고만 있었다.
 
 ***
 
 현재 무림에는 구파일방 이외에 일 궁(宮), 이 단(團), 삼 장(莊), 사 보(堡)가 있었다.
 
 일궁이란 태극은하궁(太極銀河宮)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태극은하궁은 요령성(遼寧省) 북쪽에 광활하게 펼쳐져 있는 대흥안령산맥(大興安嶺山脈) 안 어딘가에 있다고 하였다.
 대흥안령산맥은 좌우로는 무려 오백 리에 걸쳐져 있으며, 남북으로는 무려 삼천리에 걸쳐 있기에 아마도 천하에서 가장 광활한 산맥일 것이다. 이곳은 대부분이 광활한 초지(草地)로 이루어져 있지만 곳곳은 기암절벽과 전인미답(前人未踏)의 절지(絶地)들이 많이 있는 곳이었다.
 가장 높은 곳이라 봐야 칠백 장 정도 되니 중원 대륙에 산재한 다른 산들과 비교해 보면 그리 높은 곳은 아니었다. 하지만 대흥안령산맥의 무서움은 다른 곳에 있었다.
 광활한 구릉지대에 드넓은 초지의 연속이기에 식수를 구할 수 없어 비가 오지 않는다면 갈증으로 인한 엄청난 고통에 시달리다 목숨을 잃고야 마는 곳이 바로 이곳인 것이다.
 이곳의 무서움은 또 다른 것에 있기도 하였다.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장백산(長白山) 백호 일천여 마리가 이곳으로 이동하여 무리 지어 서식하고 있다.
 용맹스러운 호랑이 말고도 흉폭한 혈랑(血狼)들도 있었다.
 대흥안령산맥에서 멀리 떨어진 동토(凍土)에서 먹이를 찾아 이동한 듯한 혈랑들은 그 수효가 거의 삼천에 달한다.
 혈랑은 몸집에서도 차이가 나듯 일대일로는 도저히 백호들을 당해낼 수 없다. 하지만 삼대 일이라면 백호들도 혈랑들을 이겨낼 수 없을 지경으로 흉폭하였다. 이들은 서식지가 양분되어 균형을 이룬 채 지내고 있었다.
 태극은하궁은 무려 삼백여 년이란 장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거대문파였다. 중원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에 무림의 일에 거의 관여를 하지 않지만 그들이 강호의 한 문파임은 분명하였다.
 강호에 겁난이 닥칠 때마다 태극은하궁은 궁도들을 파견하여 일조를 하여왔기 때문이었다.
 지금으로부터 삼백여 년 전 강호에는 거대한 겁난의 수레바퀴가 지난 적이 있었다.
 바로 회회백련교(恢恢百聯敎)의 중원 침공이 바로 그것이었다.
 서장무림의 일백개 문파가 연합하여 만든 회회백련교는 마치 홍수가 제방을 무너뜨리듯 강호를 짓밟았다.
 그들의 기세는 파죽지세(破竹之勢)였다. 그들 앞에 놓인 어떠한 중원 문파들도 그들과 하루 이상을 대적할 수 없었다.
 중원 무림의 태산북두인 소림사(少林寺)와 무당파(武當派)도 그들의 앞길을 겨우 하루 막았을 뿐이었다.
 황궁의 무장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엄청난 수효를 믿고 그들을 막아보려 하였으나 역부족이었다.
 중원을 침공한 회회백련교 역시 대군(大軍)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수효가 무려 삼십만!
 중원의 황군은 무너져 천하를 시산혈해(屍山血海)로 만들었다.
 광활한 대륙은 선혈로 얼룩지고, 강은 시뻘건 혈수로 변해버린 지 오래되어 이제 한족의 멸망은 시간문제로 보였다.
 구파일방이 모여 호천무맹(護天武盟)을 결성하였으나 허사였고, 백만마도가 결집한 만마파회련(萬魔破恢聯) 역시 무너졌다.
 중원의 여인들은 변방 오랑캐인 회회교도들에게 수 없이 능욕 당하면서도 눈물을 흘리는 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중원이 굴욕적인 서장(西藏)의 지배를 받고야 말 것이란 생각이 팽배할 즈음 중원 무림에는 희소식이 전해져 왔다.
 멀리 떨어진 곳에 있던 태극은하궁이 서장무림 정벌을 기치로 출동하였다는 소식이었다. 그들은 불과 오 만으로 기고만장하던 회회백련교 삼십만을 서장의 오지로 쫓아버리는데 성공하였다.
 계략의 승리였고 무공의 승리였다.
 당시 사용된 계략은 조호이산(調虎離山), 승간격하(乘間擊瑕), 이이유적(利而誘敵), 관문착적(關門捉敵), 금선탈각(金蟬脫殼) 등 무려 십여 종이 넘었다.
 또 중원과는 차원이 다른 호쾌한 무공은 지금까지 무적이던 회회백련교도들을 공포로 떨게 하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다.
 시신조차 제대로 남기지 못하고 죽은 동료들의 시신을 보며 회회백련교도들은 공포 속에서 패퇴를 거듭할 수밖에 없었다. 태극은하궁의 가공할 무공을 막을 만한 무공이 없었던 것이다.
 결국 회회백련교는 불과 반년만에 중원에서 완전히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올 때는 삼십만이 왔으나 갈 때는 불과 일 만이 갔을 뿐이었다.
 그들이 물러간 이후 강호는 만신창이가 된 모습이었다.
 널린 게 과부고 고아들이었다. 또한 회회교도들에 의하여 만신창이가 된 육신을 저주하면서 자진한 여인들의 시신이 널렸다.
 하지만 중원은 재건을 위한 몸부림쳤다.
 고맙게도 태극은하궁은 이러한 재건을 돕기 위하여 막대한 금은보화를 풀었다. 마치 전에 고금제일거부인 금강산 황보휘가 그랬던 것처럼. 태극은하궁의 도움으로 중원은 불과 삼 년 만에 완전히 예전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었다.
 태극은하궁의 무공 연원은 무려 삼천 년이 넘는다고 하였다.
 초대궁주인 무신(武神) 을지황(乙支黃)이 대대로 단맥(單脈)으로만 이어지던 가전무학을 발전시켜 개파한 문파가 바로 태극은하궁이었다.
 개파대전 때 무신 을지황은 무림동도들에게 자신들의 조상은 한족이 아닌 한족(韓族)이며, 무공 연원은 한족의 조상인 단군왕검(檀君王儉)이 남긴 삼일신고와 참전계경(參佺戒經), 그리고 천부경(天符經)에서 착안한 것이라 하였다.
 이 말에 한때 중원인들은 반도로 들어가 이것들을 구하려는 열풍에 휩싸인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어느 누구도 해독할 수 없었다. 그들의 두뇌로 해독하기엔 너무도 난해하였던 것이다.
 무신 을지황의 무공은 중원의 무공과 차원이 달라도 한참 달랐다. 그래서 그의 가공할 무공을 흠모하던 중원의 내노라하던 많은 고수들이 무릎을 꿇고 그의 수하로 들어갔다.
 무신이 중원 무림에서 활동한 기간은 불과 십 년 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 기간 동안 그가 치른 격전은 무려 일만 회!
 일만 번의 격전 속에서 무신은 상대를 철저하게 패배시켰다. 무공은 물론 마음까지 굴복시켰기에 패자들이 기꺼이 그의 휘하로 들었던 것이다.
 무신이란 외호는 태극은하궁의 개파대전 때 중원 무림인들이 지어준 외호였다. 중원 무림에 누가 있어 이족(異族)에게 무신이라는 칭호를 붙여주고 싶었겠느냐마는 을지황만은 당당히 그 예외를 인정받았다.
 그때 그의 나이 불과 삼십오 세!
 장년의 나이에 중원 무림에 우뚝 등극하였던 것이다.
 그 후 태극은하궁은 마치 은둔이라도 하듯 중원 무림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대흥안령산맥 속 어딘 가에서 한 차원 더 높은 무공을 만들어내기 위하여 정진하고 있을 것이란 추측만이 나돌 뿐이었다.
 제 십이대 궁주는 올해 사십이 세인 천령군(天靈君) 을지후(乙支珝)이다. 그의 외호에 군(君)이 붙은 것은 황실에서 내린 봉작(封爵) 때문이었다.
 그의 부친이자 십일대 궁주인 을지한담(乙支寒潭)은 황실로부터 무림왕(武林王)에 봉작 되었다. 오십여 년전 중원을 침공하였던 남만(南蠻) 독인(毒人) 십만을 물리친 공로로 인한 것이었다.
 아직 무림왕이 생존해 있기에 그가 군(君)으로 불리는 것이다.
 무림에 알려지기로 천령군에게는 이남일녀가 있으며, 그들의 무공은 부친에 비하여 결코 뒤지지 않는다고 하였다.
 장자는 이십이 세인 옥기린(玉麒麟) 을지인(乙支寅)이고, 차남은 약관인 새반안(塞潘安) 을지형(乙支亨)이다.
 옥기린과 새반안은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의 준수한 미안을 가지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는데, 둘 중 차남인 을지형은 전설의 미남자인 반안에 필적할만한 준수한 용모를 지녔기에 그의 외호가 변방의 반안이라는 뜻의 새반안이 된 것이다.
 옥기린은 준수한 외모뿐만 아니라, 호쾌한 성격과 부친 못지 않은 무공을 지니고 있어 촉망받는 인재였다.
 이에 반하여 새반안은 선천적으로 병약한 신체로 태어나 무공은 비교적 약하나, 문일지백(聞一知百)의 두뇌로 세상의 모든 학문을 섭렵하고 있다 알려져 있었다.
 을지후의 유일한 여식이며 장중주인 을지예린(乙支睿吝)은 변방 최고의 미인으로, 역사상 미인으로 알려진 서시(西施)나 달기(達己), 양귀비(楊貴妃) 보다도 훨씬 아름답다고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태극은하궁 총단의 수뇌부 외에는 그 어느 누구도 그녀의 진면목을 직접 보았다는 사람은 없었다.
 그녀의 외호는 그녀의 아름다움을 칭송이라도 하려는 듯 세외천미(世外天美)였다. 본디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고 월궁(月宮)의 항아(姮娥)나, 천상(天上)의 옥녀(玉女)로 태어났어야 옳을 정도의 미모를 갖추고 있다는 뜻이었다.
 게다가 역천내미지상(逆天內美之像)까지 타고나 누구든 그녀의 옥용을 한번이라도 보게되면 즉시 욕화(慾火)가 끓어오르기에 오 세를 넘기면서부터 두툼한 면사를 드리우고 있다 하였다.
 천하제일이라 칭해도 손색이 없을 미모에다 하늘 마저 거스를 내미지상(內美之像)을 타고 태어난 그녀이기에 누구도 그녀의 면전에 서길 두려워하였다.
 심지어는 비교적 수양 깊은 그녀의 두 오라비인 옥기린과 새반안 마저 그녀와 마주치는 것을 두려워할 정도라 하였다.
 어쩌다 한번 눈빛이라도 마주칠라치면, 마치 흑요석(黑曜石)과 같이 빛나는 그녀의 안광에 정신이 아찔해지는 것을 느껴야 할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그런 날이면 하루 종일 무엇을 하고 지냈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라 하였기에 그녀는 태극은하궁 총단 깊숙한 곳에 금역(禁域)으로 지정된 무릉소축(武陵小築)에만 머무른다 하였다.
 무릉소축은 혹여 세상 밖으로 세외천미 을지예린이 나갈 경우 예상되는 혼란발생을 우려하여 심혈을 기울여 축조한 작은 무릉도원이나 마찬가지인 곳이었다.
 무릉소축은 세외선경(世外仙境)과 같은 아름답고 절묘하게 축조되어, 설사 혼자 있다하더라도 고독감이나 자괴감 등을 느낄지 못할 정도로 아름답게 축조된 하나의 기관이었다.
 폭포나 연못, 작은 시내와 산까지도 이 안에 다 있었다. 게다가 작은 동물들도 서식하고 있어 심심하지 않은 그런 곳이었다.
 이 무릉소축은 매일 조금씩 변한다.
 절묘하게 제작된 기관으로 인하여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조금씩 형상이 변하게 제작한 것이다.
 산의 모양과 시내의 흐름이 조금씩 바뀌며, 심지어는 나무들의 위치가 조금씩 바뀌었다. 하여 일 년 정도가 지나면 무릉소축은 일 년 전과 비교하여 완전히 모양이 바뀌곤 하였다.
 아울러 끔찍이도 그녀를 사랑하는 을지후는 아무도 모르게 무릉소축에 가공할 기관을 설치하여 보보마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천혜의 절지로 변하게 만들어 놓았다.
 을지예린은 오 세에 들어가 지금까지 십이 년 동안이나 그 안에서 홀로 생활하고 있었다. 이곳에 들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궁주와 그녀의 두 오라비 그리고 그녀의 시비들뿐이었다.
 따라서 그녀가 세상 밖으로 알려지기는 힘든 일인데 알려진 것은 모친의 기일(忌日) 때에는 제사를 바치러 밖으로 나가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모친은 그녀를 낳으면서 산고를 이기지 못하여 출산과 동시에 저승으로 갔던 것이다.
 이 무릉소축의 삼면은 높이가 무려 오백 장에 달하며 발 디딜 틈조차 없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기에 들고 나는 것은 오로지 한 곳밖에 없다.
 그곳마저 이십여 장에 달하는 석벽이 세워져 있는데 이름하여 별세천벽(別世天壁)이라는 석벽 위에는 밟기만 해도 기관이 작동되는 감응장치가 설치되어 누구도 난입할 수 없게 되어 있었다.
 따라서 안전하게 들어가려면 오로지 무릉문(武陵門)을 통과하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무릉문은 전대 장로들이 이인일조로 지키고 있기에 웬만한 무공을 지닌 자들을 감히 난입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태극은하궁은 궁주 일가 외에 원로원과 집현전(集賢殿)이 있으며, 그 아래로 삼단(團), 육대(隊), 구숙(宿), 십팔당(堂)으로 이루어진 문파이다.
 원로원은 궁도들 가운데 비교적 나이가 많고 무공이 높은 십팔 명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들은 태극은하궁의 대사에 관여하여 의견을 조율하는 곳이었다.
 집현전은 글자 그대로 두뇌가 뛰어난 자들의 집단이었다.
 이들은 서장이나 남만, 왜 등의 주변국가들의 동태 파악은 물론 세세한 정보를 바탕으로 강호의 상태를 점검하였다.
 또 이들은 천부경과 삼일신고, 참전계경 안에서 오묘한 무리(武理)를 찾아 무공으로 발전시키는 일도 담당하고 있었다.
 삼일신고와 참전계경에서는 어느 정도 찾아내었지만, 천부경에서는 아직 찾아 내지 못하였다고 하였다. 그것은 웬만한 학식으로는 읽지도 못할 녹도문(鹿圖文)으로 쓰여 있기 때문이었다.
 녹도문은 갑골문(甲骨文)이나 과두문 이전에 쓰이던 문자이라 해독이 어려운 것이다. 게다가 태극은하궁의 선대들은 주해를 모두 전비문(篆碑文)으로 기록해 두었다. 이것 역시 사문(死文)이기에 웬만한 학식으로는 읽기조차 어려운 것이다.
 읽기도 어려운 것을 읽는 것은 물론 담겨진 무리를 찾으려는 집현전의 노력은 참으로 눈물겨운 것이었다.
 이들은 한숨을 푹푹 내쉬면서 난해한 녹도문과 전비문을 해독하려 머리를 쥐어뜯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태극은하궁 선대 집현전 인물들은 이것이 외부로 유출될 것을 우려하여 일부러 어려운 문자로 해독서를 만들었던 것이다.
 머리를 쥐어뜯으며 자신의 두뇌를 한탄하는 이들 중 누구라도 중원으로 향한다면 당당히 천하제일학사란 소리를 들을 정도의 인물이고 보니 태극은하궁의 저력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과거 회회백련교를 괴멸시킬 때 태극은하궁에서 삼단, 육대, 구숙, 십팔당 중 구숙과 십팔당만 내보냈다는 사실을 세인들은 까마득하게 모르고 있었다. 소위 수뇌부라 할 수 있는 삼단과 육대는 출동할 필요조차 없었던 것이다.
 오십 년 전 십만에 달하는 남만 묘족들을 물리칠 때에는 십팔당만 출동하였다고 하니 그들의 성세를 짐작할 만 하였다.
 
 
 제5장 난 무공을 모르오!
 
 
 흑검수라는 무려 반 시진 가까이 머릿속에 있는 모든 대소방파 이름을 대었음에도 불구하고 남궁호가 좌측 눈은 한번도 깜박이지 않자 은근히 부아가 치밀었다.
 "좋다!··· 혈도를 풀어줄 터이니 솔직히 대답하여야 할 것이다. 만일 거짓을 고하거나, 소리를 지른다면 목숨이 그 즉시 없어질 줄 알아라! 알겠느냐?"
 흑검수라의 말에 남궁호의 좌측 눈이 처음으로 깜박였다. 그 역시 말을 하고 싶어 미칠 지경인데 아혈이 점혈되어 한 마디 말도 하지 못해 답답하였던 것이다.
 "좋아! 다시 한번 말하지만 만일 허튼 짓을 하면···"
 "휴우!··· 알았어요. 아저씨···"
 남궁호는 이제 흑검수라가 결코 자신이 찾은 흑검수라가 아님을 짐작하였기에 될 수 있으면 비위를 거스르지 않으려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흑검수라는 그제서야 안심한 듯 그의 앞에 앉았다.
 "네놈의 정체는?···"
 "휴우! 아까 말씀 드렸잖아요. 저는 아저씨를 만나려 황과수에서 온 남궁호예요."
 "황과수? 날 찾아 왔다고?··· 왜?"
 남궁호는 자신이 왜 흑검수라를 찾아 이곳까지 왔는지를 비교적 소상히 설명하였다. 말을 하는 동안 그의 손은 슬며시 남궁호의 완맥(緩脈)을 잡고 있었다.
 "아아아악!··· 아, 아파요!···"
 말을 거의 마칠 무렵 남궁호는 손목을 통하여 통증이 전해지자 비명을 질렀다. 내공을 지니고 있는지 시험하였던 것이다.
 "흐음! 정말이군······"
 반응을 살핀 흑검수라는 그가 한 말이 전부 사실임을 인정하였다. 사실 흑검수라는 진짜가 아니었다. 진짜는 이미 오래 전에 저승의 고혼이 된지 오래였다.
 그의 못된 버릇인 속임수 도박을 하다 들켜 도박장에서 비명횡사하였던 것이다. 재수 없게도 그는 자신보다 훨씬 고수와 도박을 하면서 잔재주를 부리다 들켰던 것이다.
 지금 철기보에 있는 흑검수라는 모종의 임무를 띠고 어딘가에서 파견한 간세였던 것이다.
 "흐음! 이일을 어찌한다?······"
 흑검수라는 현재 자신의 신분이 드러나면 안 되는 상황이기에 남궁호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고심하였다.
 남궁호는 그 동안 눈치코치가 절정고수의 수준에 달해 있었기에 금방 그의 심중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감지할 수 있었다.
 "아, 아저씨!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을게요. 정말 천지신명에게 맹세해요. 그러니 제, 제발···"
 인상이 점점 굳어 가는 흑검수라를 바라보던 남궁호는 이대로 있다가는 꼼짝없이 부시독에 녹아 한 줌 혈수로 변하고 만다는 것을 직감하고 뭔가 대책을 세워야한다 생각하였다.
 재빨리 사방을 살렸으나 이곳에는 도망갈 길이 전혀 없었다. 단 하나 들어오는 문만이 밖으로 향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인데 흑검수라가 그곳을 등지고 앉아 있었다. 게다가 마혈이 짚어져 움직일 수조차 없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해 있었다.
 고개를 든 흑검수라는 품에서 화골산이 든 병을 꺼내, 뚜껑을 열고 다가서며 입을 열었다.
 "미안하다. 꼬마야! 하지만 어쩔 수 없구나!···"
 "아앗! 아, 아저씨 제, 제발 살려 주세요!"
 몸은 전혀 움직일 수 없기에 소리만 질렀다. 하지만 그 소리는 흑검수라에게는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가 다가와 천천히 머리 위로 부시독이 든 병을 치켜들자 남궁호는 이대로 세상을 하직해야하는구나 하는 생각에 지난 세월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치고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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