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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판]맨이터 1

2017.12.29 조회 1,109 추천 9


 [완전판]맨이터 1권
 목성 제9호 사건
 
 
 1장 앨런 스미시
 
 
 “제기랄, 뭔 비가 이렇게 내린담!”
 앨런 스미시는 회색 밴 안에서 목성 거주구 기상 조절관에게 욕을 퍼부었다. 요 며칠 새 계속 비가 내리는 것이 흡사 장마라도 진 것처럼 영 사람의 기분을 꿀꿀하게 만들었다.
 “하여튼 행성 연방 놈들은 뭐 제대로 하는 일이 하나도 없다니까.”
 “저, 오너. 담배는 좀.”
 “왜, 니가 인간이라도 되냐?”
 차 안에서 담배 연기가 피어오르고 밴 뒤에 여자 로봇들이 인상을 찌푸렸다.
 이 여자 모양의 로봇들은 금방이라도 옷을 벗고 손님을 받을 수 있도록 옷 하나 입지 않고 마치 푸줏간의 고기들처럼 죽 매달려 있었다.
 풍만한 가슴, 작은 가슴, 약간 뚱뚱한 체형, 마른 체형, 글래머, 13세 이하의 소녀. 밴 뒤의 로봇 행어는 거의 온갖 취향의 여자를 다 모아 놓은 듯한 로봇 창녀의 백화점이었다.
 “이봐 앨런, 아무리 그래도 너무하는 거 아니야?”
 “뭐야, 너까지 저것들 편드는 거냐? 하여튼 스미스 너는 쓸데없이 정을 줘서 탈이야. 저것들은 기계라구. 제기랄, 근데 이놈의 전화는 왜 이리 지직거려?”
 그는 로봇 정비사 스미스를 갈구다가 이번엔 전화기를 가지고 불평했다.
 목성의 위성 궤도에 떠 있는 특성상 노이즈가 끊일 날이 없었다. 이곳에선 지구제 최신형의 휴대폰보다 군용 통신기를 개조한 투박한 핸드폰이 더 나았다.
 “그나저나 아니타 요것은 왜 안 나오지?”
 “그러게.”
 “이번 손님은 누구야? 단골이야?”
 “아니. 처음 이용하는 거 같은데.”
 “단골만 주문받으라고 했잖아.”
 “그랬다간 유지 비용도 안 나온다고.”
 “쳇. 스미스 너도 쟤네들 생각해 주는 척하지만 결국 그런 거로구만.”
 “어쩔 수 없지. 장사는 장사니까. 어쨌든 올라가 봐야 하지 않겠어? 이미 숏타임 15분은 지났다고.”
 앨런이 광자 시계를 슥 바라보니 그의 말대로 20여 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스미스, 니가 가. 로봇들을 징하게도 생각하는 너니까.”
 “싫어. 이 몸은 펜보다 무거운 걸 들어 본 적이 없어서 말이야.”
 “또 그 소리다. 전쟁이 무섭긴 무서운 거구만. 너 같은 지구 대학의 인재도 여기서 로봇 메인터넌스나 하고 있다니.”
 “쳇. 시끄러워.”
 “알았다, 알았어. 힘 쓰는 건 이 앨런이 해야지, 후우······.”
 앨런은 한숨을 내쉬면서 품에서 최신식 레이저 커터 자동 권총을 꺼내 살펴봤다. 찰칵하는 소리와 함께 레이저 탄창이 빛나면서 총신으로 레이저 에너지가 흘러들어가고 언제든 레이저 커터를 뿜어낼 준비가 되었다.
 “가능하면 안 쓰면 좋으련만. 저번에도 정당방위라지만 뒷맛이 영 안 좋았잖아.”
 “그러게. 변호사 새끼한테 뿌린 돈만 해도 엄청났는데.”
 그는 얼빠진 변호사를 생각하고 피식 웃었다.
 법정에서 섹스 로봇의 당위성에 대해 설명하면서 로봇 포주를 무슨 독립투사나 되는 것처럼 열변을 토했다. 결국 그 변호사는 화려한 언변으로 손님의 다리를 레이저 커터로 잘라 버린 중상해 사건을 정당방위로 무마해 버렸다.
 “그 변호사 돈값은 했지 뭐야. 그리고 돈이야 내가 버는 건가. 저 뒤의 기계들이 버는 거지, 하하.”
 밴의 문이 쾅 하고 닫히고 앨런의 머리 위로 두두두둑 빗줄기가 정신없이 떨어졌다. 다시 욕지거리를 내뱉고 허름한 아파트로 들어서는 앨런. 아파트의 복도는 스산한 기운이 흘렀다. 페인트가 다 벗겨져서 하얗게 일어나 있고 벽 한편의 우편함에는 전기 요금 체납 고지서 같은 독촉 우편물이 우편함마다 꽃꽂이 꽃처럼 수북하게 꽂혀 있었다.
 “사백이호랬나?”
 3차원 홀로그램으로 뜬 전화기 디스플레이에는 ‘레벤델 아파트 402호. 아니타. 숏타임. 하드 플레이 없음.’라고 적혀 있었다.
 “제기랄, 되는 게 없어.”
 엘리베이터는 고장 나 있었다. 그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4층으로 올라가는 나선 계단으로 터벅터벅 올라갔다. 그리고 계단을 올라가면 갈수록 희미하게 고통에 겨운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앨런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402호 앞에 선 그는 주저 않고 402호의 나무문을 뻑 하고 걷어찼다.
 “으으으! 좋아! 아니타! 좋다구!”
 “제기랄.”
 거실은 온갖 잡동사니로 엉망진창이었고 신음 소리가 들려오는 것은 안쪽의 침실이었다. 그 안쪽의 침대에는 정말이지 살로 뒤덮인 것 같은 뚱뚱한 사내가 아니타의 가냘픈 몸을 깔아뭉개면서 작은 물건을 밀어 넣고 있었다.
 얼마나 뚱뚱했는지 제대로 된 섹스는커녕 제 몸 가누기도 힘들어 보였다. 두툼한 뱃살 때문에 물건을 넣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추하군.”
 앨런은 다시 담배에 불을 붙여 한숨 깊게 들이마신 후 침실 문을 뻑 하고 발로 차서 열어젖혔다.
 “뭐, 뭐야?”
 “이봐, 손님. 시간 끝났어. 추가 요금을 지불할 거 아니면 떨어져. 아니지, 벌써 오 분이나 더 지났네. 추가 요금 더 내.”
 “시, 싫어. 돈을 내가 왜 더 내?”
 “말로 해선 안 될라나?”
 뚱뚱한 사내의 머리끄덩이를 잡고 강제로 침대 밑에 떨어뜨렸다. 침대 밑에 떨어진 사내의 살이 추하게 털렁거렸다.
 “아니타, 옷 입어.”
 덜덜 떨리는 손으로 바바리코트를 받아 든 아니타는 벗어 둔 팬티와 브라를 챙겨 코트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한편 앨런은 침대 옆의 탁자에서 사내의 지갑을 뒤지면서 투덜댔다.
 “쳇. 뭐 이리 돈이 없어. 겨우 십 달러? 아니타 너 선불로 받으라고 했을 텐데.”
 “······.”
 아니타는 윤활액이 가득 묻은 아래쪽을 티슈로 닦다가 고개를 돌려 앨런을 외면했다.
 “이런 시부럴······ 별수 없군. 이걸론 부족해. 이것들도 가져가니까 그렇게 알라구.”
 앨런은 토스터와 꽤 값나가 보이는 퍼스널 콘솔을 왼쪽 옆구리에 끼고 토스터에 끼워져 있던 빵을 으적거렸다. 간신히 침대 틈에서 몸을 돌린 뚱뚱한 사내는 인상을 있는 대로 찌푸리며 침대를 딛고 일어섰다.
 “가, 강도나 다를 바 없잖아. 그리고 그 안에는······ 중요한 게 있다구. 돌려줘!”
 “신고하려면 신고하라구. 어차피 오는 짭새 녀석들 낯짝은 다 알고 있으니까. 그런 것도 없이 포주질을 할 줄 알았어?”
 “이, 이런 개새끼! 돌려줘!”
 “아아, 섣부른 짓 하지 말라고. 누가 먼저 쏘는지 볼까?”
 뚱뚱한 사내는 침대 밑 서랍에서 샷건을 꺼내다 말고 그대로 얼어붙었다. 앨런은 어느새 빵 대신 총을 오른손에 들고 있었다.
 “최신식 레이저 커터 자동 권총이지. 총알보다 빨라. 시험해 볼래?”
 “크으으······ 아, 알았어. 도, 돈을 빌려서 줄 테니 연락처를 줘. 찾으러 갈게.”
 “흥, 그렇게 나오셔야지. 그리고 이 토스터는 맘에 들었어. 가격에서 제해 주지. 여기로 연락해.”
 “제기랄. 그 콘솔 건들지 말라구.”
 아니타가 방을 빠져나가자 앨런 역시 사내에게서 등을 보이지 않고 서서히 물러서다가 문을 쾅 하고 닫아 버렸다.
 “가자, 아니타. 그리고 다음부터는 꼭 선불 아니면 팬티도 벗지 말고 나한테 말해.”
 “예······.”
 검은 머리에 청초해 보이는 동양 미녀 스타일의 아니타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앨런은 그녀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천천히 나선 계단을 내려서 밴에 도착했다. 아파트를 올려다보니 그 뚱뚱한 사내가 샷건을 들고 밴을 노려보고 있었다. 앨런은 쿨하게 가운뎃손가락을 올려 FUCK YOU를 먹여 주고 천천히 차를 돌렸다.
 “하여튼 외우주 개척까지 가는 시대가 돼도 저런 놈들은 없어지지 않는다니까?”
 앨런은 거칠게 운전하면서 방금 전 고객에게 욕을 퍼부었다.
 “풉. 저런 놈들이 없어지면 이 장사도 말짱 끝나는 거 아니야?”
 “흥, 그럴 리가. 나도 로봇은 싫어하지만 이 애들을 보면 꼴릿꼴릿하다구. 게다가 여긴 여자가 없는데 장사 땡 칠 리가 있겠어?”
 “하긴. 목성은 남자가 득시글대긴 하지.”
 목성 궤도 엘리베이터 거주구는 행성 연방의 골칫거리였다. 외우주 개척 회사의 베이스캠프이기도 하고 목성과 주변 위성의 자원을 쓸어 담는 보물 창고이기도 했다. 하지만 남자가 많은 특성상 늘 범죄와 폭력에 찌들어 있는 곳이기도 했다.
 “근데 웬 토스터야?”
 “아, 그놈 방에 있던 건데 쓸 만한 것 같아서 들고 왔지. 야, 내 거 먹지 마.”
 “제법 맛있군. 그건 또 뭐야?”
 “낸들 아나. 담보물로 받아 온 거야.”
 스미스는 콘솔을 켜고 3D 디스플레이로 파일 이곳저곳을 살펴봤다.
 “별거 없는데? 아, 이거 봐봐. 너 찍혔다.”
 “이런, 시부럴. 켜 놓고 도촬하면서 했군. 놈이 요걸 애지중지할 만해. 저건 다른 업체 콜걸인가?”
 스미스가 펼친 다른 파일에는 또다시 흉한 섹스 장면이 재생되었다.
 “스미스, 저 모델은 구형이군. 저 모델은 우리도 있었잖아?”
 “음, 그랬지. 미친 녀석이 망가트려서 스크랩 처리 했지만······ 근데 저 낙인은 핀투 쪽인가? 아니면 제레미?”
 “몰라. 어느 쪽이든 나한테 걸리면 다리를 분질러 놓겠어. 구역 문제는 확실히 해야지.”
 “제레미는 무슨 마피아가 뒤를 봐준다고 하지 않아?”
 “그깟 마피아들 무서웠으면 총질도 안 했지.”
 “자동 소총도 갖고 있다던데 이미 한판 한 거야?”
 “흥, 지구 청색 함대의 기함이 와도 이 앨런 스미시는 못 죽이지.”
 앨런은 장담하며 스미스에게 눈을 찡긋했다.
 “근데 이건 뭐지?”
 “뭔데? 또 그 뚱보 녀석이 똥이라도 싸든?”
 “아니······ 락이 걸려 있어.”
 “그놈 참 희한하기도 하군.”
 회색 밴은 코너를 끼익 돌아서 중국 음식점 쾌찬차 앞에 섰다.
 “난 꿔바로우. 스미스, 넌?”
 “중국 요리 이름은 잘 모르겠어. 대충 시켜.”
 “그럼 기스면 되나? 아, 커이 찌스미엔?”
 “아이야. 메이요 탕수이러. 즈요 미엔더. 츠 차오미엔 더 전머양? 헌하오츠. 쩌거스 워더 추안공더. 요 쯔신.”
 “기스면 없댄다. 볶음면 어떠냐? 이 양반 전공이랜다.”
 “아무거나 줘. 면이면 돼. 그 돼지 녀석 복잡하게도 락을 걸어 놔서 말이지.”
 “뭔데 그래?”
 “무슨 문서 파일 같은데······ 이거 막고 있는 게 인공 지능 논리 코드야. 이것만 풀면 금방 풀릴 거 같은데.”
 앨런은 불현듯 그 돼지 놈이 잡아먹을 듯 노려보던 장면을 떠올렸다.
 “논리 코드가 뭐야?”
 “인공 지능을 응용해서 사람처럼 생각하게 한 후 키워드를 맞히게 하는 거지. 우리 애들 보안 프로그램이랑 비슷해.”
 스미스는 밴의 뒤쪽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인공 지능도 손님에게 맞거나 학대를 당하면 정신 세정이 필요했다. 또 혹시 비싼 로봇 콜걸을 해킹당하거나 하면 곤란한 것이다.
 “쳇, 복잡하군. 그냥 내비 둬. 그 돼지 녀석 콘솔 열어 보지 말라고 날뛰더라.”
 “아, 잠깐 앨런······ 이거 골치 아픈 걸 건드린 거 같은데?”
 “뭐야, 그 코드인가 뭔가를 풀었어?”
 “아니, 다른 파일을 풀었는데 이 새끼 짭새네.”
 “뭐?”
 앨런은 꿔바로우의 고기를 으적거리다가 스미스가 보여 주는 화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지구와 화성, 그리고 목성이 삼각형을 이루고 있는 문장.
 “시부럴······ 엿 같은 놈이랑 얽혔네. 바이파이(federal Bureau of InterPlanet Investigation-연방 성간네트워크 수사국)였다니.”
 “서, 성간 짭새를 엿 먹였는데 괜찮을까?”
 “뭘 어쩔 건데? 내가 사람을 잡아먹었냐, 아니면 물건을 훔치기라도 했냐?”
 “이 콘솔 연방 재산이잖아.”
 “시부럴, 꼴리면 잡아가라고 해. 돈도 없이 로봇 콜걸을 부른 새끼가 잘못이지.”
 앨런이 입에 물고 있던 고기 조각이 콘솔에 튀었다.
 “근데 성간 짭새들은 바바리 부대잖아. 이 새끼는 혼자서 뭘 하는 거지?”
 “글쎄? 몸매를 보아하니 필드 에이전트 같지는 않고······.”
 “야, 스미스. 그걸 말이라고 하냐? 그 새끼는 지 몸 가누기도 힘들 것 같드라.”
 아니타가 불안한 눈으로 앨런의 눈치를 살폈다.
 “침대에서 내려오다 굴러 떨어져 한참 고생할 정도니 말 다 했지.”
 “흠, 필드 에이전트도 아니고 그렇게 생겨 처먹었다면······ 혹시 그럼 소문의 기가스인가?”
 기가스라는 말을 듣고 앨런과 볶음면을 건네는 중국 노인이 동시에 웃었다.
 “넌 인마 화성 광산 지역 외계인 출몰 이런 것도 다 믿을 거야? 바이파이의 초능력 부대라니 그런 게 어딨냐?”
 “있을 수도 있다니까. 작년에 화성의 궤도 엘리베이터를 박살 낸 게 초능력자였대.”
 “휴······ 스미스, 그런 개소리는 구 학년에 학교 사물함에 처박아 두고 졸업하는 거야.”
 “아, 진짜라니까.”
 “그럼 화성 전쟁에서 지구군이 왜 개고생을 했냐? 그 기가슨지 뭔지 하는 놈들을 앞에 내세우면 만사 해결인데.”
 “그야······.”
 “거봐, 새꺄. 오컴의 면도날 모르냐? 가장 간단한 답이 진리라고.”
 “쳇. 같잖게 문자 쓰시는군. 알았다, 알았어. 그 볶음면이나 줘라.”
 스미스는 얌전하게 볶음면을 플라스틱 포크로 후루룩 빨아 올려 씹었다.
 “야, 앨런. 근데 이거 짭새 거라면 보안이 너무 허술한데? 바이파이는 삼중 보안을 쓴다더니······ 어? 풀렸다.”
 뾰로롱 하는 소리와 함께 어이없게 스미스의 보안프로그램에 코드가 풀려 버렸다.
 “어? 이거 뭐야.”
 “스미스, 너 또 개소리할 거면······.”
 “이, 이거 봐봐.”
 문서에는 바이파이 국장 에드거 펜버의 이름이 크게 박혀 있었고 첨부된 파일에는 놀랄 만한 동영상과 수많은 사진들이 있었다.
 “마, 마술?”
 “거······ 거봐, 내가 뭐랬어. 초, 초능력자가 있다고 했잖아!”
 “······.”
 앨런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재생되는 동영상을 멍하니 바라봤다.
 해골 가면을 쓴 사람이 손끝을 휘젓자 주변의 모든 기계들이 분해되면서 바이파이 소속의 중장기병이 입고 있는 엑소슈트(Exsosuits)가 해체됐다. 아니, 해체되는 것은 기계류만이 아니었다. 인체 역시 끔찍하게 분해되면서 퍽퍽 피가 튀어 나가고 뼈와 살이 깨끗하게 발라져 바닥에 철퍼덕 뒹굴었다.
 그리고 잠깐 앵글이 흔들거리더니 그 해골 가면은 어느새 한 손에 카메라를 든 채로 다른 손으로 새빨간 심장을 으적으적 씹고 있었다.
 아마도 이 영상은 전뇌에 직접 기록된 목격 영상인 모양이었다. 카메라가 위치한 곳은 아무리 봐도 심장 주인의 ‘눈’이었다.
 “우욱.”
 “시부럴······ 이건 또 뭐야?”
 스미스는 차 밖에다 지금 먹은 걸 그대로 토해 버렸고 중국 노인은 가게 앞에 토했다며 길길이 날뛰며 중국어로 욕을 해 댔다.
 “야, 스미스. 이거 조작되지 않은 거지?”
 “우욱, 모, 몰라. 자, 잠깐.”
 스미스는 콘솔에 몇 가지 필터를 로드해서 끔찍한 화면을 점검했다.
 “으으으. 지, 진짜야. 내가 만든 화질 보정 인공 지능으로도 진짜로 나왔어.”
 두 사람은 가끔 협박이나 장사를 위해 섹스 로봇의 시각으로 녹화를 해 놨다. 그것을 위한 화질 보정 인공 지능이었다. 아무리 봐도 콘솔에 저장된 영상은 진짜였다.
 “그, 그럼 음모론이 아니었단 말이야?”
 “거봐, 내가 뭐랬어. 우욱.”
 “이런 시부럴······ 근데 저게 맞는다고 치든 아니든 우린 지금 성간 짭새의 비밀 파일을 열었다고. 야, 스미스. 이거 풀린 거 그 돼지 짭새가 알 수 있냐?”
 “모, 몰라. 우욱.”
 “아, 제발. 토 좀 그만하고.”
 앨런은 스미스의 뒤통수를 탁 때렸다.
 “해, 해 볼게. 근데 이거 파일명도······ 엿 같네. 맨이터(Man-eater)?”
 “일급 소체(素體). 위험도 최고. 식인을 즐겨하는 사이킥-에스퍼. 검거에 요주의할 것. 이름인지 닉네임은 매······ 맨이터.”
 인간을 먹는 자. 동영상 속의 미친놈에게 잘 들어맞는 이름이었다.
 “그 뚱보 바이파이는 감시조였군.”
 “그게 뭔데?”
 “그런 게 있어. 잠복하면서 저 동영상 속의 녀석을 마크하는 거지.”
 “그, 그럼 저 녀석이 이 목성에 있단 말이야?”
 “그럼 저 뚱보 새끼가 로봇 여자 맛보려고 목성까지 왔겠냐? ······어?”
 앨런이 밴 뒤쪽을 쳐다보자 아니타와 로봇 창녀들이 고개를 이쪽으로 돌리고 그 영상을 보고 있었다. 손님이 때리거나 해킹을 시도하는 것 때문에 로봇 프레임은 구동되어 있는 한 안구 패널에 들어온 영상을 모두 저장하게 되어 있었다.
 “시부럴, 좆 됐다. 쟤네는 영상 삭제해도 복구가 가능하잖아? 스미스, 안 들키려면 저 애들 하드 포맷시켜야겠는데?”
 “야, 안 돼. 고객들 섹스 패턴에 따라 내부의 움직임을 저장시켜 놨는데 지우면 일일이 다시 깔아 줘야 한다고.”
 “그게 문제냐? 존나 개 같은 지뢰를 건드렸다구.”
 “몰라. 그럼 니가 지우든지. 그리고 포맷한다고 해도 이틀은 걸려. 그동안은 장사 공치게?”
 앨런과 스미스는 뒤쪽의 로봇 창녀들을 노려보면서 곰곰이 셈을 맞추고 있었다.
 “그럼 차례로 포맷하는 수밖······.”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앨런의 군용 통신기가 삐리링 울었다. 홀로그램이 밴 안에 좍 펼쳐지면서 번호가 떴다.
 “아까 그 새끼다······.”
 미리 찍어 놓은 뚱보의 사진이 뜨고 텍스트 메시지가 떠올랐다.
 “돈은 가져왔다. 콘솔을 돌려 다오?”
 “자, 잘됐네. 이런 엿 같은 거 얼른 넘겨 버리자고. 그리고 뒤에 애들만 포맷하면 되잖아.”
 “야, 스미스. 이상하지 않아?”
 “뭐가?”
 “이 새끼 성격으론 당장 전화하면서 욕을 퍼부을 거 같던데 웬 텍스트? 그리고 이 새끼 나를 찾아오겠다고 했었어. 내가 찾아가는 게 아니라······.”
 이런 쪽으론 앨런의 촉이 굉장히 좋았다.
 “야, 이거 경찰에 가야 하는 거 아니냐? 낌새가 존나 안 좋다.”
 “미쳤어? 성간 짭새의 비밀 파일을 봤다고 실토하자고? 아마 성간법으로 공무 비밀 침해는 십 년형은 족히 때릴걸?”
 “이 미친 새끼, 그딴 건 왜 열어 가지고.”
 “야, 내가 열고 싶어서 열었냐? 어쩌다 보니 열린 거지.”
 “아오. 아무튼 이제 어떻게 하지?”
 “알만조 패밀리한테 말해 보는 게 낫지 않을까?”
 “이 새끼는 하여튼 대가리가 안 돌아가요. 바이파이라고 바. 이. 파. 이. 알만조 맙 새끼들도 목성 경찰은 밥으로 알지만 바이파이는 이름만 들어도 지리는데.”
 앨런은 담배 한 개비를 물고 후우 하고 연기를 뱉었다.
 “시부럴. 일단 갖고 온 건 나니까, 내가 책임을 진다. 그 쓰레기통으로 가자구······ 촉이 안 좋긴 하지만 콘솔만 고이 돌려주면 별일 없겠지.”
 “괜찮겠어?”
 “내겐 요게 있잖아.”
 앨런은 레이저 커터를 으쓱해 보였다. 그의 사격 솜씨는 알아주는 것이었다.
 “안 되면 튀어서 장사 접고 외우주 탐사대에나 자원하자구.”
 “푸하하, 돌아오지도 못할 대장정에 너랑 같이 가다니, 엿 같네.”
 “엿 같은 건 나도 마찬가지야.”
 꿔바로우 남은 것과 볶음면을 창문 너머 길바닥에 내던지고 밴이 끼이익 급발진했다. 쾌찬차의 중국 노인은 다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중국 욕을 했다.
 “왕빠탄! 타마더!”
 
 ***
 
 아까 올 때랑은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레벤델 아파트는 기분 나쁜 정적에 휩싸여 있었고 앨런이 계단을 탕탕 오르는 소리만이 을씨년스럽게 들렸다. 앨런은 품에서 레이저 커터 자동 권총을 꺼내서 두 손으로 단단히 포개 들었다.
 “촉이 안 좋아. 안 좋다구.”
 복도로 앨런의 발소리가 뚜벅뚜벅 음산하게 울려 퍼지고 바이파이 에이전트가 있던 방문에서 스탠드 불빛이 복도로 새어 나오는 게 보였다.
 “이봐, 뚱보. 그렇게 빨리 줄 거면 기다리게 할 필요도 없었잖······ 뭐야, 이 바바리 부대는?”
 “······.”
 “바바리 처입은 거 보니 시저스팔레스 게이 스트립쇼가 떠오르는군. 근데 미안하지만 난 게이가 아니라서.”
 “그거 재밌군. 농담 솜씨 쓸 만한데?”
 앨런은 방 안의 사람들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바바리코트를 입은 사람이 셋. 그중에 대장 격으로 보이는 사람이 시가 연기를 내뿜으며 동의를 구하듯 주변을 살폈다. 그제야 나머지 두 명도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슬쩍 비웃었다.
 “퍼스널 콘솔은?”
 “여기. 근데 그 뚱보는 어디 간 거야?”
 “아아, 팻조이 말인가? 그 친구 어디 갔지?”
 다시 세 명은 서로를 바라보면서 낄낄댔다. 앨런은 스탠드에 튄 아주 작은 핏방울을 놓치지 않았다. 긴장감이 온몸을 휘감고 뒤로 돌린 권총 방아쇠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뭐, 어쨌든 난 내 돈만 준다면 누구라도 좋지. 나머지는 팻조인지 뚱땡이랑 떡을 치든 뭘 하든 알아서 하라고.”
 “거야 현명한 말씀.”
 시가를 피우던 남자는 턱 끝으로 앨런을 가리켰고 부하 중에 한 명이 성큼성큼 그에게 다가왔다. 그 바바리맨은 다짜고짜 앨런의 옆구리에 있는 콘솔을 뺏어 가려고 했다.
 하지만 앨런은 삐잉 하는 레이저 커터를 겨누고 허세를 부렸다.
 “워워워. 뭐야, 거래 이렇게 하면 안 되지.”
 “뭐가 문제야?”
 “돈을 줘야 할 거 아니야?”
 권총을 쥔 손으로 엄지와 검지를 슬슬 비비면서 돈을 달라는 시늉을 하는 앨런. 앞에 다가온 부하 놈은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었고 시가맨은 고개를 끄덕였다.
 “얼만데?”
 “삼백이십일 달러.”
 “뭐가 그리 비싸? 거의 인간 콜걸하고 똑같잖아?”
 “이봐, 아까운 내 시간을 허비하게 했잖아. 당연히 그동안 추가 요금이 붙는 거지.”
 “하하, 배짱 한번 좋군. 우리가 누군지 아는 거야?”
 “몰라, 시부럴. 하지만 얕잡혀 보여선 이 거리에서 장사 다 해 먹는다구. 왜? 대갈통이 꽉 막혀서 답답하냐? 시원하게 구멍이라도 내 줄까?”
 앨런은 여차하면 자동 권총의 방아쇠를 당길 셈이었다. 적은 꽤 많지만 다년간의 경험으로 어떻게든 될 것이다.
 “됐어, 됐어. 쇳덩이는 치우자고. 원만하게 가자.”
 “하지만 보스, 이 녀석 총을 겨눴는데요.”
 “신경 꺼. 이봐, 로봇 포주. 오백 주지.”
 “헹, 필요 없어. 삼백이십일. 아, 또 요금 올랐다. 삼백이십이 달러. 그거면 돼. 난 불로소득은 별로 안 좋아하거든.”
 그 말에 보스라는 시가맨이 껄껄 웃었다.
 앨런은 말 한마디 한마디를 주의하면서 날카롭게 주변을 살폈다. 이미 나머지 바바리맨들은 코트 안에서 권총이나 무기를 겨누고 있을 것이다. 그는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다. 한마디라도 잘못한다면 여기서 죽을지도 몰랐다.
 “신용 카드 되나?”
 “이봐, 장난하는 거야? 당연히 현금이지. 장사 하루 이틀 하나. 난 말이야, ‘바이파이’보다도 연방 국세청 놈들이 더 무서운 사람이라고. 그 새끼들은 내 똥구녁에 쑤셔 박은 달러까지 찾아갈 놈들이거든.”
 앨런은 일부러 바이파이라는 단어를 던졌지만 별 반응은 없었다. 오히려 시가맨은 껄껄 웃으면서 배를 부여잡았다.
 “하긴 지구 부자들도 국세청 놈들이 오면 지린다더군. 하하, 재밌는 친구야. 어이, 저 친구 명함 한 장 받아 봐. 나중에 한번 이용해 주라고.”
 “그거 고맙군. 서비스 잘해 주지.”
 앨런은 권총을 권총집에 되돌리고 소맷부리에서 마술 기법으로 핑 하고 명함을 꺼내 던졌다. 명함을 받은 부하가 322달러를 줬고 앨런은 군용 통신기를 꺼내서 결제 완료라고 체크했다.
 “호오, 꽤 구형 모델이군. 군용 TA-삼삼일인가? 그거 명품이지.”
 “올디스 벗 구디스(Oldies but goodies)지.”
 “군인 출신인가?”
 “흥. 지금은 로봇 포주나 하는 신세야. 지구 강하엽병이여, 영원하라.”
 “하하, 어쩐지 유쾌하더라. 이거이거 전우를 몰라봤군. 샘퍼 파이(Samper Fi)!”
 “후라(Hurrah).”
 시가맨은 시가를 끄고 다시 새로운 시가를 꺼내 들어 커터로 찰칵 잘라서 불을 붙였다. 콘솔을 받아 든 부하는 이상이 없는지 그 자리에서 전원을 올리고 서핑 안경을 꼈다.
 “그럼 난 가 보겠어. 다음에 또 보지. 쌔끈한 애들로 보내 줄게.”
 “아, 잠깐. 한 가지만 더 질문하지.”
 “왜 이래? 나 이래 봬도 바쁜 사람이야.”
 “건드리지는 않았겠지?”
 가장 중요한 대목이었다. 앨런은 문손잡이를 오른손으로 쥐고 뒤를 흘끗 돌아봤다.
 “아아, 그거? 봤는데.”
 “뭐라고? 보스!”
 기잉 하는 소리와 함께 부하들 중 한 명의 손이 철커덕하더니 반으로 쪼개지면서 팔뚝에 숨겨져 있는 레일 건이 드러났다. 레일 건이라면 벽 뒤로 숨어도 소용없었다. 부하는 변형된 자기 검지를 꺾으며 레일 건을 장전시켰다. 푸른 전도체의 불빛이 파득거리고 앨런은 슬쩍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전장에서 레일 건에 강화복이 퓽 하고 뚫어져 쓰러진 시체를 수도 없이 봐 왔다.
 “그 팻조인지 뭔지 내 대신 아구창을 날려 버리라고. 그 새끼 완전 변태야. 로봇하고 섹스한 걸 다 기록해 놨어, 시부럴.”
 “그 외엔?”
 “또 뭐가 있는데?”
 “9호 파일.”
 “9호 파일? 뭔 개소리야? 설마 화대 주기 싫어서 뻗대는 거야? 미안하지만 그건 팻조이랑 알아서 하라고. 거, 삼백이십이 달러 가지고 야박하게 구네.”
 시가맨은 앨런을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피식 웃었다.
 “어차피 목성 거주구 바닥 좁디좁아. 뭔 일 있으면 또 보게 될 거야.”
 “흥. 쓸데없는 걸로 부르진 말고. 콜 놓치면 하루 손해가 막심하다고.”
 “레일 건 앞에서도 배짱 한번 끝내주는구만. 맘에 들어, 맘에 들어. 그럼 잘 가라고, 앨런 스미시.”
 “흥. 그럼 수고들 하쇼.”
 앨런은 그제야 등 뒤로 손을 들어 보이고 천천히 복도로 내려왔다. 등 뒤로 철커덩하는 소리가 들리고 뭔가 두런두런 이야기가 들려왔지만 앨런은 별 신경 쓰지 않았다.
 “후우, 귀찮은 물건은 잘 넘겼군.”
 
 “내일 데리러 와. 또 혼자 갔다가 딴 놈한테 엿 먹지 말고.”
 “알았어. 근데 아니타는 왜 데려가는 거야?”
 “새꺄, 그런 것까지 일일이 말해 줘야겠냐?”
 스미스는 밴 안에서 혀를 빼물고 앨런에게 야유를 보냈고 앨런은 쿵 하고 밴 옆구리를 발로 걷어찼다. 아니타와 앨런은 내린 밴은 번화가 쪽으로 끼익하고 사라졌다.
 “아니타, 잠시 편의점에 들를 테니까 따라와.”
 앨런은 자신의 코트를 벗어서 아니타의 야시시한 몸을 가렸다. 그녀는 아까 팻조이의 아파트에서 나온 그 차림이었다.
 “착각하지 마. 저번처럼 너한테 엉기는 부랑자 새끼들과 싸우는 건 질색이니까.”
 “예, 주인님.”
 아니타는 자연스럽게 앨런의 팔짱을 꼈다. 비는 아직도 우중충하게 쏟아져 내리고 둘은 익숙하다는 듯 근처 편의점으로 걸었다.
 동양적인 매력이 섞인 아니타는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조형의 모델이 된 여자가 누군지는 잘 모르지만 그녀를 한 번 보면 결코 잊을 수 없을 정도로 예뻤다. 두 눈은 로봇 특유의 맑고 투명한 양자회로가 보이고 뽀송뽀송한 피부도 인간과 다를 바 없었다.
 “오오, 앨런 씨, 오늘도 그 로봇이랑 함께야?”
 “흥. 참견 말라구.”
 “왜? 진짜 여자가 그립지 않아? 앨런 당신이라면 얼마든지 해 줄 수 있는데.”
 “닥쳐, 시부럴. 이 아줌마가 어디서 엉겨?”
 편의점의 주인은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올리면서 침을 뱉었다. 그녀는 목성에서 드물디드문 진짜 여자 중에 하나였지만 늘 씹는담배에 이빨이 누렇게 되어 있고 불결한 냄새가 풍겼다. 편의점 주인 여자가 노려보자 아니타는 앨런의 품에 움츠러들었고 앨런은 자연스럽게 그녀를 품었다.
 “흐응. 대~단한 연인 나셨구만.”
 “남의 일에 신경 쓰지 말고 계산이나 해 줘.”
 합성 우유 몇 병과 시리얼, 그리고 냉동 우주 식품 몇 개를 카운터에 올려놓고 아까 받은 322달러를 주머니에서 꺼냈다. 10달러 정도 돈을 건네다 편의점 주인과 손이 맞닿자 그녀는 탐욕스럽게 입술을 혀로 핥았다. 앨런은 마치 괴물에라도 닿은 것처럼 잽싸게 손을 뒤로 뺐다.
 “이봐, 점장. 뭐 좀 구할려고 하는데 구해 줄 수 있겠어?”
 “흥, 뭔데?”
 “H&K M171용 고속 스마트 자동 소총탄.”
 편의점 주인은 킬킬 웃으면서 음흉하게 웃었다.
 “그딴 건 뭐에 쓰게?”
 “유비무환이지. 뭔가 촉이 안 좋거든. 그럼 미리 준비하는 게 좋지.”
 “그거 참 잘나셨구만. 소총탄은 구하기 힘들어. 웃돈을 더 주셔야겠는데?”
 “발당 십 달러면 되겠어?”
 “얼마나 필요한데?”
 “삼십 발들이 탄창으로 한 다섯 개쯤?”
 “휘유. 어디랑 전쟁이라도 하는 거야? 땅땅땅땅?”
 “이 짓도 못해 처먹겠어서 은행을 털라고 그런다.”
 점장은 뭐가 그렇게 웃긴지 배를 부여잡고 킬킬 웃었다.
 “내일까지 돼?”
 “내일까지라면 급행료가 붙지. 목성군(軍)에서 빼돌려야 하는 거라 기름칠이 필요하거든.”
 “계약금이다.”
 점장은 앨런이 휙 던지는 나머지 322달러를 받아서 세다가 멈칫했다. 아까 받을 때는 몰랐지만 돈에는 핏방울이 점점이 묻어 있었다. 점장은 다시 손으로 핏방울을 찍어 손으로 짝짝 점도를 확인했다. 목성에서 피가 묻은 돈은 일상다반사였다. 당장 옆 골목에서 강도질해서 얻은 돈으로 여기서 마약을 사도 점장은 오케이였다.
 “이런 돈이 더 맛나단 말이지. 블러디 머니······.”
 “잔금도 현금으로 계산하지.”
 “그거야 당연한 거 아닌가?”
 “천육백이지?”
 “천칠백. 내 수수료까지.”
 앨런은 고개를 끄덕이고 플라스틱 봉지에 담긴 식료품을 받아 들었다.
 “아, 잠깐. 그거 계산도 해야지.”
 “시부럴, 쫌 서비스해 줘라. 천칠백이나 매상을 올려 줬는데.”
 “키키키키키. 앨런 너는 그래서 재밌단 말이야. 알았어, 가져가. 대신 나중에 한 방 시원하게 섹스하는 거야?”
 앨런은 등 뒤로 FUCK YOU를 먹이고 아니타와 함께 편의점 문을 나섰다. 군대에 있을 때부터 소총탄만 넉넉하게 있으면 마음이 든든했다. 앨런은 콧노래를 부르면서 아니타와 길을 걸었다.
 
 “샤워해, 아니타.”
 “예, 주인님.”
 아니타는 쭈뼛쭈뼛하면서 옷을 벗었다. 아까 그 뚱뚱한 바이파이 요원의 아파트에서 나온 그대로라 아직도 도톰한 아래쪽에는 윤활액이 맺혀 있었다. 앨런은 그녀의 야들야들한 몸매를 감상하다가 담배에 불을 붙이고 물기가 묻은 셔츠와 바지를 소파에 아무렇게나 집어던졌다. 탄탄한 근육 여기저기에 전쟁의 상흔이 남아 있는 그는 팬티 하나만 입은 채로 레이저 커터를 침대 옆 탁자에 놓았다.
 “어디 한번······.”
 앨런은 침대 아래로 몸을 눕혀 스프링 사이에 끼워져 있는 얇은 상자를 꺼내 들었다. 군대에서 불명예 제대할 때 빼돌린 H&K 군용 자동 소총이었다. 이 소총은 목성에 올 때도 세관 놈들에게 몇백이나 찔러 주고 가져온 든든한 앨런의 전우였다.
 조준간을 열자 삐잉 하고 소총의 화기 관제 장치가 부팅하고 조준간에 있는 홀로그램 콘솔에 생체 정보와 여러 가지 전투 정보가 휙 하고 떠올랐다. 앨런은 샤워를 하고 있는 아니타에게 조준을 맞추고 방아쇠를 눌렀다.
 틱 하는 무미건조한 소리가 들리고 레일 추진식 소총은 여분의 전류를 파득하고 퍼렇게 밖으로 뿜어냈다. 삥삥 재장전을 하라는 알람이 뜨고 소총의 허드(Head-up display)에는 샤워를 하는 아니타의 모습이 그대로 비쳤다. 인공 지능의 형식 번호와 구동 프레임이 뜨고 그녀 안 프레임이 그대로 보였다. 어딘지 흥미가 떨어진 앨런은 총을 얇은 상자에 되돌려 놓고 담배를 마저 맛있게 피웠다. 푸른 담배 연기가 좁지만 깔끔한 방 위로 몽환적으로 흩어지고 담배를 다 피울 때쯤 샤워를 마친 아니타가 몸을 배스 타월로 가리고 탁탁 걸어 나왔다.
 “아니타, 이리로 와.”
 아니타는 투명한 눈동자를 또록또록 굴리면서 쭈뼛쭈뼛 앨런에게 다가왔다. 앨런은 그녀를 콱 끌어안고 강렬하게 키스했다. 아니타의 가냘픈 몸이 침대 위에 축 늘어지고 앨런의 거친 입술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아니타의 혀 역시 인간과 다를 바 없었다. 배터리로 달궈진 인조 살덩이라는 기분은 없고 입안에서 뿜어지는 묘한 향 때문에 앨런은 정신이 몽롱해지는 기분이었다. 아니타는 성에 눈뜬 숫처녀처럼 서툰 몸짓으로 앨런의 목과 귀를 빨았다. 살짝살짝 깨무는 움직임이 몸살 나게 좋았고 앨런은 기분 좋게 그녀의 덜덜 떨리는 몸을 꽉 끌어안았다.
 “주, 주인님. 이, 이러면 제가 움직일 수가.”
 아니타는 사랑에 빠진 소녀처럼 앨런에게 폭 안겨 있었다. 양자 엔진에서 데운 그녀의 살 느낌이 진짜 여자처럼 따뜻했고 앨런은 아니타를 옆으로 안은 채로 소로록 잠에 빠져 들었다.
 
 “망할! 화성의 중장기병이다! 우리 측 인형기(人形機)는 어디 있는 거야!”
 기이잉 하는 소리와 함께 레일 건이 드드드드 사람의 몸을 피 떡으로 만들어 놓았다. 강화복이나 우주복 따위로는 인형기에 탑재된 고출력의 레일 건은 이기지 못했다. 그들의 방패가 되어야 할 탱크나 휴머노이드는 강하하다 미사일에 격파당한 모양이었다.
 결국 지구군의 강하엽병들은 화성의 궤도 엘리베이터 하부에서 차례차례 학살당하고 있었다. 목표는 궤도 엘리의 제어실이었지만 그곳엔 적측의 인형기가 좍 깔려 있었다. 위쪽의 강하 함대에 지원을 요청해도 화성의 지긋지긋한 붉은 대기가 전자 폭풍을 일으켜 애써 구축한 통신망이 엉망이 되어 있었다.
 “이봐, 무슨 팀이냐!”
 “감마팀! 중화기대!”
 “좋아! 나는 제일 근위기병 중위다!”
 앨런은 우주복에 마킹되어 있는 중위 계급을 보여 주었다. 앨런은 공황 상태에 빠진 병사들의 헬멧을 후려치고 전진하는 인형기를 가리켰다. 적이 타고 있는 장갑복의 레일 건에서 연신 파드득거리는 전기 불꽃이 치솟고 그때마다 궤도 엘리베이터 시설에 숨어 있던 강하엽병들이 퍽퍽 터져 나갔다.
 “빌어먹을, 유도 방해 자장이 깔려 있다. 수동으로 쏜다. 거리 백이십육! 복창해라, 중화기대!”
 “예, 옛! 백이십육!”
 “장전 발사!”
 “발사!”
 레일 추진식 수류탄이 슈욱 하면서 소리 없이 날아갔다. 앨런의 헬멧에 뚜뚜뚜 수류탄의 궤도가 보이고 수류탄은 보기 좋게 엑소슈트의 갑옷 틈새를 꿰뚫었다.
 “좋아! 거리 육십구!”
 복창은 필요 없었다. 표적을 포착한 사수는 그대로 발사해 버렸다. 구웅 하고 뒤로 장갑판이 튀어 날아가고 오렌지색의 폭발 화염이 치솟으면서 인형기는 뒤로 벌렁 쓰러졌다. 앨런은 헬멧에 코드를 연결해서 소총으로 인형기의 탐지 센서를 저격했다. 탄알 하나하나에 인공 지능이 이식된 스마트 탄은 90도 각도로 선회해서 인형기의 센서들을 퍽퍽 날렸다. 총에 탑재된 인공 지능의 도움을 받기는 했지만 굉장한 사격 솜씨였다.
 “중위님! 탄약이!”
 “자, 이걸 쏴라!”
 신형 레일 추진기에는 이론상 거의 모든 탄도체를 날릴 수 있었다. 앨런은 허리춤에 있던 총유탄(Rifle grenade)을 던졌고 중화기병은 앨런의 총유탄을 받아 발사체에 결합했다. 파드득 빛나는 추진기에 유선형의 총유탄이 떠오르고······ 하지만 중장기병은 이미 강하엽병들을 압도하고 있었다.
 드드드득 무시무시한 파공음이 들리면서 주변의 모든 것이 부서져 내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레일 건에 학살당하기 전에 쏜 RPG가 적의 탄도체에 박살이 나고 추진기를 쥐고 있던 중화기 팀이 그대로 피 떡이 되어 나자빠졌다. 앨런 역시 옆에서 터지는 작열탄에 상처를 입고 널브러졌다. 감압복에서는 슈우우 하면서 공기가 빠져나가는 소리가 들리고 그의 소총은 저쪽에 떨어져 있다. 이윽고 인형기의 칼날 같은 발이 소총을 부드득 박살 내고 파드득거리는 대형 레일 건의 포구가 앨런의 이마를 조준했다. 누군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지만 잘 들리지 않는다.
 “중위님!”
 “중위님!”
 “앨런!”
 “앨러언!”
 강하엽병의 애타는 목소리는 어느새 째지는 듯한 여자의 목소리로 변해 허공에서 흩뿌려지고 앨런은 의식을 잃었다.
 “앨런!”
 벌떡 일어나 보니 아니타는 슬립 모드로 그의 옆에서 미동도 안 하고 누워 있었고 앨런은 땀이 범벅이 된 채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앨런! 큰일이라고! 일어나!”
 “스, 스미스?”
 앨런은 침대 옆에 있는 군용 통신기를 낚아채듯 들어 올렸다. 홀로그램에서는 스미스가 애타게 앨런은 불러 대고 있었다.
 “어, 무슨 일이야? 스미스, 또 혼자 장사 나갔다가 엿 처먹은 거냐? 어디냐? 알만조 패거리야?”
 “아니! 씨발 진짜 큰일 났다고!”
 “하여튼 시부럴, 너는 호들갑 좀 떨지 마. 차근차근 설명해 봐.”
 스미스는 뭔가를 말하려다 대뜸 통신기의 화면을 불타고 있는 밴으로 돌렸다. 앨런의 재산 로봇 프레임이 죄 불이 붙어서 타닥타닥 타오르고 있었다. 인조 피부가 강렬한 불길에 녹아내리고 안쪽의 프레임이 끼득끼득 움직이는 게 눈에 들어왔다.
 “어떤 시부럴 새키들이 우리 장사 밑천을!”
 “몰라! 나도 폭발 소리를 듣고 일어났는데 이 지경이라고!”
 “알았어. 내가 차 몰고 갈 테니까 기다려. 아니, 스미스 너네 집 근처에 경찰서 있지?”
 “으, 응, 있지. 근데 왜?”
 “아무래도 아까 좆같은 돈을 먹었다 탈이 난 모양이다. 스미스 뛰어. 살고 싶으면 경찰서로 달리라고. 지금 오는 경찰 새끼들 믿지 말고!”
 스미스는 멍한 눈으로 앨런을 쳐다봤고 앨런은 다시 욕을 한바탕 먹였다. 이윽고 스미스는 다시 정신을 차린 듯 핸드폰을 켠 채로 경찰서로 달리기 시작했고 앨런은 벗어 놓은 옷을 그대로 주섬주섬 입었다.
 “엿 같군. 하필이면 소총탄도 없는데······.”
 그는 옷을 입다 말고 레이저 커터의 슬라이드를 당겼다. 아직 에너지는 짱짱했고 예비 탄창도 두어 개 더 있었다.
 “아니타, 기동.”
 “예, 주인님.”
 “대체 이게 뭔 개난리야.”
 아니타는 익숙하다는 듯 앨런의 옷을 입히고 있었다. 투명하고 푸른 양자 동공. 앨런은 그녀의 눈동자를 봤다. 누군가는 스미스가 아니라 밴을 터트렸고 그 이야기는 아까 연 9호 파일인지 뭐시깽인지가 탈이 난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한 앨런은 아니타의 목 뒤에 있는 확장 포트를 열었다.
 “아니타, 네 데이터를 전부 다운받는 데 몇 분 걸리지?”
 “밴의 콘솔로는 십 분. 제 인공 지능으로는 약 오십여 분입니다.”
 “오십분······ 개 같군. 넌 분명 백업 모드에서는 기동 못 하지?”
 “예.”
 “지금으로선 할 수 없군. 일단 차에 타라. 열쇠는 여기.”
 “예, 주인님.”
 아니타는 착착 옷을 입고 열쇠를 받아 들었다. 앨런은 다시 몸을 숙여 침대 밑에서 레일 건을 꺼내서 어깨에 멨다. 접혀 있는 레일 건이 들어 있는 케이스는 바이올린 케이스였고 앨런은 마치 싸구려 바이올리니스트 같은 모습이었다.
 “가자, 아니타.”
 아니타는 벗은 몸으로 코트를 맵시 있게 입고 앨런의 뒤를 따랐다.
 그의 촉을 읽는 감각은 거의 동물적이었다. 그는 계단을 내려가다 말고 수상한 밴이 골목에 서 있는 걸 발견하고 혀를 끌끌 찼다. 검은색의 쌔끈한 신형 밴은 이 아파트나 주변 주민의 차는 아니었다.
 “손 한번 빠른 놈들이군. 어이, 아니타. 네 탐지 센서는 군용이지?”
 “예, 주인님.”
 “저 밑을 스캔해 봐.”
 “총을 들고 있습니다.”
 “그건 당연한 거지. 숫자와 총의 종류를 말하라고.”
 “일곱 명이고 셋은 기관단총, 나머지 넷은 화약식 권총을 들고 있습니다.”
 “젠장, 하필이면 기관단총이야. 아니타, 일단 제이포(Jupiter Police-목성 경찰)에 신고해. 내 돈 받아처먹은 새끼들 덕 좀 보자고.”
 “주인님, 불통입니다만······.”
 “젠장, 젠장! 개자식들, 재머 관련 장비까지 가지고 있는 모양이군.”
 앨런은 아니타의 손을 확 잡아끌어서 쓰레기 투척구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기관단총까지 동원할 놈들이라면 저격으로 베란다 쪽의 비상구나 뒷문 쪽도 마크하고 있을 것이다.
 “주, 주인님.”
 “왜!”
 “그, 그쪽에는 인형기가!”
 “그런 건 좀 빨랑 말해라!”
 드드드드득 아파트의 낡은 외장재를 싸그리 날려 버리면서 레일 건이 벽을 뚫었다. 앨런은 아니타를 감싸면서 권총 슬라이드를 당겼다. 쓰레기 투척구를 기어 올라온 인형기는 스캔을 계속하면서 목표물을 포착하고 있었다. 상대가 휴머노이드 로봇인 이상 연막탄이나 차폐물을 이용한 트릭은 어림도 없었다. 초탄은 목표물을 영점 스캔하느라 빗나가는 거고 두 번째는 어림없었다.
 “다웃파이어 부인, 시부럴 알아서 잘 피하기를!”
 앨런은 주저 않고 레이저 커터의 방아쇠를 당겼다. 자동 권총의 슬라이드가 칵 젖혀지면서 방열판에서 치익 하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샛노란 레이저가 벽을 스팟 하고 긁어 버렸다. 다웃파이어 부인의 집을 반 쪼개 놓은 레이저는 인형기의 손 부분을 보기 좋게 잘라 버렸다.
 “맞았어?”
 “예, 주인님! 적 인형기 레일 건 소실!”
 “좋았어! 부인은?”
 “소파 밑에 생존해 있습니다.”
 “다행이군. 나 그 양반 치즈 케익 무지 좋아했다고.”
 인명 살상을 하는 로봇은 로봇 3원칙 때문에 반드시 인간이 조종하게 되어 있었는데 아무래도 저 인형기를 조종하는 녀석은 초짜 같았다. 베테랑 인형기 조종사라면 벌서 앨런과 아니타를 제압하고도 남았을 테지만 저 얼간이는 애꿎은 벽만 부수고 천지 사방에 먼지만 휘날리게 했다.
 이윽고 세탁실과 쓰레기 처리실을 겸한 다용도실의 벽을 깨부수면서 기잉거리는 인형기의 거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인형기는 팔을 크게 뒤로 휘저어 굴착용으로 쓰이는 파일 벙커(채굴용 말뚝 드릴)를 앨런에게 꽂아 넣으려고 했다.
 “파일 벙커? 병신 같은 새끼, 그딴 걸 맞아 줄까 보냐?”
 앨런은 투덜투덜하면서 레이저 커터의 방아쇠를 당겼다. 샛노란 레이저가 인형기의 장갑판을 다시 치익 동강 내고 로봇의 중추부를 절단해 버렸다. 레이저 왜곡 무장은 달려 있지 않았고 허무하게도 인형기의 목과 척수가 앗 하는 순간에 레이저로 절단되어 빨갛게 달아올랐다.
 떨어진 인형기의 모가지를 발로 걷어차고 앨런은 아니타의 손을 잡아끌었다. 로봇을 간단하게 쓰러트렸어도 아직 위기는 끝나지 않았다. 굳이 아니타의 탐지를 이용할 필요도 없이 다다다 달려오는 구둣발 소리가 복도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적은 다수. 게다가 기관단총이라면 이 좁은 복도에서 피할 틈도 없이 걸레짝이 된다.
 “제기랄, 바이파이인가? 아니지, 그놈들은 블랙 스와트를 보냈겠지. 이 새끼들은 대체 뭐야?”
 “주인님, 저 인형기의 프레임은 민간용입니다.”
 “알아. 딱 봐도 채굴용을 개조한 거잖아.”
 이상한 습격자들이었다. 성간 경찰, 즉 바이파이라면 블랙 스와트가 들이닥쳤어야 했고 그들 스타일은 이랬다. 문간까지 몰래 접근해서 문을 따기 전에 연방법이 어쩌고저쩌고 블라블라 피의자의 권리를 대충 읊어 주고 사정없이 문 안으로 자동 소총을 난사하는 거였다. 아무리 봐도 이 초짜들은 블랙 스와트라기엔 너무 허술했다.
 앨런은 계속 습격자들의 정체를 의심하면서 레이저 커터의 탄창을 바꿨다. 총구에선 아직도 치이이익 연기가 피어오르고 그는 슬라이드 뒤편의 온도계를 보고 겨드랑이의 권총집에 넣었다.
 “화약 딱총까지 써야 한다니······ 근데 시부럴 경찰 새끼들은 언제 오는 거야? 이 짭새 새끼들은 맨날 도넛이나 처먹고 귓구멍이 죄 막혔나? 이 정도 소란이 일어났으면 목성 총독 관저가 있는 다우니 거리에까지 들리겠다, 시부럴 놈들.”
 앨런이 계단참으로 돌아가는 복도 끝에서 기대고 있노라니 맞은편 집의 문이 열리고 욕설이 한바탕 쏟아졌다.
 “씨발. 어이, 포주. 왜 이렇게 시끄러워? 뭔 죄 처지었으면 반항하지 말고 짭새한테 잡혀가라고?”
 “닥쳐, 새꺄. 죽고 싶지 않으면 욕조 속에 처들어가. 그리고 이 새끼들 경찰 아니야. 난 말이야, 법을 준수하는 모범 시민이라고, 모범 시민.”
 “모범 시민 후장 따먹는 소리하고 있네. 옜다, 선물이다. 살아서 보자고. 대신 나중에 십 분 서비스해 주는 거다?”
 레게 머리를 하고 있는 흑인은 복도로 연막탄 두 개를 또르르 굴리고 잽싸게 방탄문을 걸어 잠갔다. 앨런은 피식 웃으면서 뜻밖의 도움을 받아들였다.
 “어이, 개새끼들아, 뭘 노리는 거냐?”
 대답 대신 날아온 건 기관단총의 탄알이었다. 드드드드득 하고 볼 베어링이 앨런이 고개를 내민 복도 벽을 긁어 놓았고 권총만 한 공기 압축식 기관단총을 든 녀석들이 계단참에 모습을 드러냈다.
 앨런은 깨진 거울로 놈들의 모습을 확인하면서 휘파람을 불었다. 아니타의 말대로 기관단총을 든 놈이 세 놈. 넷은 화약식 권총을 가지고 있었다. 쪽수도 그렇고 먼저 발포한 것도 그렇고 이쯤 되면 몇 놈 죽어 나가도 아니타가 기록하고 있는 영상으로도 충분히 정당방위는 받아 낼 기세였다. 앨런은 검은 고글을 쓰고 품 안에서 작은 펜 같은 물건을 끄집어냈다.
 “픽시도 참 오랜만에 쓰는구만. 아니타, 픽시를 네 기록에 무선으로 연결한다.”
 “예, 주인님.”
 앨런은 펜 같은 물건을 반으로 쪼개고 희미하게 떠오른 물체를 복도 쪽으로 후 하고 불어서 날렸다. 대인용 정보 위성 픽시는 화약 병기와 궁합이 아주 좋았다. 앨런이 가지고 있는 화약총의 사거리와 유효 발포 각도를 계산해서 앨런의 스코프로 전송했다. 앨런의 눈에 픽시에서 보내오는 권총의 사선이 그대로 보였다. 빨간색으로 유효 사선이 뜨자 그는 권총의 총구를 계단 쪽으로 살짝 빼고 주저앉아 방아쇠를 당겼다.
 탕탕!
 유효 사선에 걸려 있던 놈들 둘의 대가리가 퍽퍽 깨지면서 뒤로 나자빠지고 계단을 올라오던 놈들은 허겁지겁 밑으로 내려갔다. 빨간 선으로 표시되는 유효 사선이 사라지면서 띵띵 하는 소음이 픽시로부터 전송되었다.
 “야 이 새끼들아! 뭘 바라는 거냐!”
 “······.”
 앨런의 실력을 확인한 녀석들은 권총의 사선을 피해서 다시 기관단총을 드르르르륵 긁었다. 퍽퍽퍽, 복도의 외장재가 다 깎여 날아가면서 앨런은 입속으로 들어간 먼지를 퉤퉤 하고 뱉어 냈다.
 “말로 하자고! 피차간에 피를 볼 이유는 없잖아? 니놈들 경찰도 아닌데 어쩔라고?”
 “존나 입만 산 새끼네. 그래, 시발. 말로 하자. 로봇을 넘겨라.”
 역시나 앨런의 예상대로였다. 놈들은 아니타를 노리고 습격한 것이었다. 앨런은 픽시를 조정해서 그를 습격한 면상들을 찰칵찰칵 찍었다. 찍은 영상은 그대로 아니타의 양자 두뇌에 기록되고 그녀는 앨런에게 상황을 설명해 줬다. 놈들은 옛 화성군의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다행히도 강화복은 아니었다. 아마 간단한 상황이라 생각하고 강화복은 챙겨 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앨런은 안도의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스미스의 호들갑 떠는 전화가 아니었다면 앨런은 자기 침대에 피바다가 되어 누워 있고 아니타는 탈취당했을 것이다.
 “좋아, 로봇을 넘기지.”
 “좋아, 잘 생각했다. 목숨은 보장하마.”
 ‘목숨은 보장하긴, 시부럴. 다짜고짜 내 머리통을 노렸으면서?’
 앨런은 속으로 투덜대면서 시간을 끌었다. 방해 전파를 쏘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 정도 난리 굿판이 벌어졌다면 제이포 뚱땡이들도 슬슬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아무리 도넛 킬러들이라도 관할 구역에서 이만한 소동이 벌어지면 충분히 직무 유기로 모가지감이었다.
 “로봇을 내려보내!”
 “맨입으로?”
 “뭐?”
 “이 새끼들아, 남의 소중한 자산을 맨입으로 처먹으려고 했냐? 이 새끼들 기본이 안 된 놈들이네? 네놈들이 때려 부순 몫까지 전부 다 배상해라.”
 “무슨 소리야? 때려 부수다니?”
 ‘제기랄, 뭐 이리 복잡해? 한 군데가 아니라는 거군.’
 앨런은 또 잔머리를 살살 굴렸다. 의문의 습격자들은 자기편이 둘이나 처죽는 지경까지 와서 그에게 거짓말할 이유가 없었다. 즉, 스미스를 습격한 쪽과 자신을 습격한 쪽은 전혀 다른 세력이라는 결론이었다.
 아마도 그 소동의 발단은······ 바이파이, 9호 파일, 맨이터.
 앨런은 본능적으로 일이 잘못 되었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로봇들을 손님한테 보내서 몇 달러씩 번 걸로 중국 음식이나 처먹는 일상과는 전혀 다른 일들이 속속 펼쳐지는 것이다. 앨런은 마치 처음 강하엽병으로 출전했을 때를 떠올리면서 두근거리고 있었다. 마치 활력이 되살아나는 느낌이랄까. 아드레날린이 온몸을 휘감았다.
 앨런은 느긋하게 간이 방독면을 코에 끼웠다. 아파트의 지린내가 화악 하고 맑은 공기로 바뀌어서 폐 안으로 들어왔다. 고글은 이미 살에 밀착되어서 연기가 들어오지 못할 테고, 별도의 감지 인공 지능을 준비하지 못했다면 앨런에게 굉장히 유리했다.
 “어쨌든 얼마면 되겠냐?”
 “글쎄? 내가 투자한 게 최소 삼십만은 된다고. 아직 그거 반도 못 벌었어.”
 “이런 미친 새끼. 그딴 돈이 어딨어?”
 “없으면 관두든가.”
 “이 새끼가 장난하나! 밀어붙여!”
 “아아, 굳이 올라올 필욘 없어. 이거나 처먹으라고.”
 앨런은 아까 레게 머리 흑인이 던져 준 가스 연막탄 두 알을 밑으로 까 넣었다.
 “가스다!”
 “그럼 가스지 네놈 암내겠냐?”
 삥삥 하는 소리와 함께 앨런의 고글에 픽시의 유효 사선이 좌라락 떴다. 앨런은 연기로 가득찬 복도로 다다다 내려가면서 쌍권총으로 탕탕 적들을 순식간에 처리했다. 픽시는 정확히 적의 위치를 겨냥하고 있었고 적들은 미처 총을 들기도 전에 앨런이 쏜 총알에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다섯 명이라는 숫자로도 낭패를 본 것이다.
 앨런은 잽싸게 일부러 살려 둔 한 놈의 멱살을 틀어쥐고 권총을 머리에 겨눴다. 따끈따끈한 권총 총구가 닿자 놈은 화들짝 놀라면서 거칠게 신음했다.
 “뭐냐, 니네들?”
 “크으으윽. 마······ 말할 수 없다······.”
 “화성 보안 회사······ PMC(Private Military Company-민간 군사업체)였군.”
 앨런은 놈의 품에서 지갑을 꺼내서 PMC 마크가 새겨진 명함들을 좌라락 흩뿌렸다. 말이 민간 군사업체지, 마피아랑 그다지 다를 바 없었다. 단지 ‘합법적’으로 행성 연방에 등록하고 경호 따위의 일을 맡는 것뿐이었다. 이들은 앨런과 비슷한 신세로서 화성 지구 간 전쟁의 퇴역병들이 많았다.
 앨런은 팀장으로 보이는 시체에서 얻은 개인 콘솔을 뒤적거렸지만 거기도 별 소득은 없었다. 시체들을 다 뒤져 봐도 얻은 건 앨런의 주소가 써진 의뢰 용지에 의뢰인 ‘K’라는 것밖엔 없었다.
 “케이? 이봐, 케이가 누구지? 야, 안 돼. 이런 시부럴, 죽지 말라고 일부러 어깨를 쐈는데 죽으면 어떡하냐? 아오, 시발. 아니타, 이리 와서 지혈 좀 해. 구급 프로토콜은 탑재되어 있지?”
 아니타가 도도도 달려와서 지혈해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재수 없게도 어깨의 동맥이 뚫린 녀석은 꺼억 숨을 들이키더니 그대로 죽어 버렸다. 앨런은 피 묻은 손을 아파트 벽에 대충 죽죽 닦고 아니타를 일으켜 세웠다.
 “하여튼 도넛 뚱땡이 새끼들 빨리도 온다.”
 앨런은 품에서 다 찌그러진 담뱃갑을 꺼내 불을 붙였고 자신을 스캔하는 제이포의 수직 이착륙기를 보면서 인상을 썼다.
 “무기 버려!”
 “알았어, 알았어. 짭새 나리들.”
 “엎드려! 로봇의 구동을 해제해!”
 “예예, 알아 모십지요. 아니타, ‘동영상’을 다운로드 모드. 구동 해제.”
 “무기 천천히 내려놔! 빨리!”
 “천천히 하라는 거, 빨리 하라는 거. 너 초짜냐? 안 쏘니까 겁내지 말렴? 내가 이래 봬도 모범 시민이라고, 모범 시민.”
 “이, 이이! 공무 집행 방해 추가하는 수가 있다!”
 “후우, 잘못하면 방아쇠 당겨 버리겠네. 하필 병아리 짭새라니······.”
 앨런은 손에 든 쌍권총을 내려놓고 겨드랑이의 레이저 커터도 살살 내던지고 바이올린 케이스도 활짝 열어서 바닥에 놓은 후 그 자리에 엎드렸다.
 “아, 시부럴. 근데 피바다라서 그런데 저기 엎드리면 안 될까?”
 앨런은 경관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엎드린 채로 슬금슬금 기어서 피가 닿지 않는 곳에서 흥얼흥얼 노래를 불렀다.
 
 
 2장 컨트랙트 스위퍼
 
 
 “앨런, 또 너냐?”
 “하하. 반장님, 또 얼굴을 뵙게 되는구만요. 아아, 인상 쓰지 마세요. 매달 상납할 때는 방긋방긋 웃으시더니 그때처럼 좀 웃으시죠?”
 반장은 불쾌하다는 표정으로 도넛을 커피에 찍어서 삼켰다. 반장은 아니타에서 추출한 전투 동영상을 보고 아까 그 초짜 경관에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뒤로 묶인 앨런의 전자 수갑이 풀리고 그는 혀를 끌끌 차면서 손목을 매만졌다.
 반장은 말없이 책상 서랍을 열었다. 앨런은 지갑에서 묵직한 돈 뭉치를 꺼내서 턱 하고 책상 서랍에 넣었다. 일종의 특별 세금(?)인 셈이었다. 아무리 정당방위가 동영상으로 증명되었다지만 지방 검사 사무실까지 들락날락거리고 변호사를 오라 가라 해야 할 수고가 돈 몇백으로 간단하게 일처리가 끝났다.
 “앨런, 휴······ 자꾸 이러면 나도 힘들다구.”
 “세상이 저를 가만 내버려 둬야지요. PMC가 개조 로봇을 이용해서 습격했다고요. 전들 어쩌겠습니까? 이 모범 시민의 고충도 좀 알아주시죠.”
 “시발, 모범 시민 다 얼어 뒈졌다. 아무튼 검사가 나중에 나오라고 할 거야. 그때 한 번만 나가면 돼.”
 “예이, 감사합니다요. 근데 화성 보안 회사는 뭐라고 합디까?”
 “뻔하지. 퇴사한 사원들이 멋대로 난리친 거래. 채굴 로봇도 형식 코드 찍어 보니 도난당한 거고······ 잘도 그런 위기에서 살아 돌아왔군.”
 “악운하고는 끝내주는 인연이 있어서요. 그리고 제 밴을 습격한 놈들은······.”
 “몰라. 감시 카메라까지 죄 박살 내고 털었어. 아무래도 RPG 같은 건 아니야. 정밀 폭약 같았어. 그렇게 큰 폭발인데도 주변의 사람 하나 안 죽었다더군. 프로의 솜씨야.”
 “음, 다른 놈들이라······.”
 “뭐? 너 뭐 아는 거 있어?”
 “전혀요. 알게 되면 반장님께 바로 알려 드리죠.”
 “아무튼······ 앨런.”
 반장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앨런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너 씨발 바이파이랑 얽혔냐?”
 앨런은 일부러 호들갑을 떨었다.
 “바이파이는 무슨? 제이포라도 뜨면 질질 싸는 주제인데요?”
 “뻥치시긴. 아무튼 저거 봐봐.”
 반장은 눈짓으로 코트를 좍 빼입은 멋쟁이들을 가리켰다.
 “본사 사람들이야. 우리도 죽겠다고. 아예 구축함을 끌고 와선 수사본부 차리고 우리 구역부터 요절내고 있다구. 혹시 너 새끼가 관련된 거면 후장에 도나쓰를 박아 줄줄 알아. 왠지 내 촉이 너랑 관련 있다고 말하고 있어.”
 “아이고, 반장님의 촉도 다 되었구만요. 전 모르는 일입니다. 아무튼 제 사유물 가지고 가도 되죠? 하나 남았지만 입에 풀칠이라도 할라면 콜을 돌려야 하거든요. 어라아? 이것 봐요, 수십 콜이 와 있네?”
 “흥, 알았어. 가 봐. 로봇은 로봇 행어에 있을 거야.”
 “하하, 언제나 감사.”
 멋진 코트를 입은 사람들은 앨런과 스쳐 지나가면서 그를 노려봤다. 앨런은 날카롭게 그들의 콘솔에 떠 있는 단어 하나를 확인할 수 있었다.
 ‘탈주.’
 앨런은 자연스럽게 아니타가 있는 행어로 발걸음을 옮겼고 바이파이 중 몇 놈이 그의 뒤를 밟으려는 듯 조심스럽게 그를 따라왔다.
 “허가받은 건 음, 화약식 권총 두 정에 레이저 커터 자동 권총. 그리고 꾸리꾸리한 바이올린 하나. 이 바이올린은 값 좀 제법 나가겠어. 어디랑 전쟁이라도 한 거야, 앨런?”
 “몰라, 시부럴. 암튼 내놔.”
 “아, 아, 그러면 안 되지. 궤도 거주구에는 스마트 자동 소총 같은 중화기는 코드 쓰리 이상의 허가가 있어야 되는 거 몰라? 이 바이올린은 내가 연주하도록 하지.”
 “바이올리인? 시부럴, 지랄 싸고 앉아 있네. 차라리 니 후장에 피리나 꽂고 삘리삘리 거리지그래?”
 걸쭉한 욕설에 철망 뒤에 있던 경찰은 껄껄껄 웃었다. 이윽고 앨런이 백 달러짜리 지폐 몇 장을 슬쩍 건네고 경찰은 바이올린 케이스를 포함한 권총들을 앨런에게 건네줬다.
 “매번 이용해 주셔서 감사.”
 “좆 까. 니들 내가 니네한테 처바른 돈만 해도 지구에 집 한 채는 샀겠다. 내사과에 확 찌를까 보다.”
 “야 앨런, 내가 잡혀가면 니는 무사할 줄 아냐? 전직 경찰 둘이 다 사이좋게 감옥에서 후장 확장 공사 하는 거지.”
 앨런은 피식 웃다가 침을 칵 뱉었다.
 “야 시발, 침을 뱉으면 어떻게 해?”
 “경범죄로 잡아가시든가.”
 “하여튼 저 새끼는 한 끗을 안 져요, 한 끗을.”
 총기 출납 계원은 앨런에게 욕을 진탕 퍼부으면서 대걸레로 침을 닦았다. 앨런은 몸 여기저기에 무기들을 집어넣고 바이올린 케이스를 어깨에 걸쳐 멨다.
 “그럼 간다.”
 “아, 앨런. 이거 깜빡했다.”
 “뭐야, 구형 통신기? 웬 거래, 이거?”
 “나도 몰라. 니 소지품 목록에 같이 들어 있던데? 니 거 아니냐?”
 “모르는데?”
 앨런은 작은 구형 통신기를 받아 들면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튼 다 줬지? 그럼 꺼져. 야구 볼 시간이거든? 월드 시리즈 칠차전이라구!”
 “거 새끼 소식은 존나게도 느려요. 그깟 야구 어차피 지구에선 다 끝난 거 아니야.”
 “이놈은 스포츠라는 걸 몰라요. 원래 딱 풀타임으로 봐야 하는 거라구.”
 “그래 봐야 지구에서 단파로 느리게 날아오는 실황 중계 따위 보고 싶냐? 그리고 그거 양키즈가 삼 대 일로 이긴다.”
 “아오, 시발 새끼.”
 뚱뚱한 경찰은 욕을 하면서 앨런을 내보냈고 앨런은 혀를 빼물고 그를 놀렸다. 복도로 나온 앨런은 자기 뒤에 붙은 바이파이를 흘끗 보고 로봇 행어가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어이, 앨런. 또 잡혀 왔냐?”
 “시부럴. 하여튼 도넛 킬러 새끼들은 소문은 빨라요.”
 “하하하. 왜, 먹고 싶어? 도넛 하나 주랴?”
 “싫어. 짭새가 주는 건 안 먹어. 나한테 줄 거 있으면 내 꼬랑지 잡고 있는 놈들에게나 먹여 주지?”
 “아하, 본사 새끼들?”
 무장 경관은 도넛을 베어 물면서 앨런의 어깨를 두드리고 지나갔다. 그 무장 경관은 뒤쫒아 오던 바이파이 에이전트의 코트에 뜨거운 커피를 그대로 쏟아부어 버렸다. 그리고 설탕이 가득 묻은 도넛까지 일부러 쏟아 버리고 닦아 준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앨런은 그사이 잽싸게 복도를 돌아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아니타 기동. 반장하고 얘기는 되어 있을 테니까 정문으로 걸어와라.”
 ‘예, 주인님.’
 예의 구형 통신기에 아니타가 보고 있는 화면이 펼쳐지면서 로봇 행어의 주임과 뭐라뭐라 이야기를 나누는 게 보였다. 반장이 기름칠을 쳐 놨는지 아니타는 별 제재를 받지 않고 정문으로 오는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어이, 앨런. 벌써 가는 거야? 이번엔 일찍 가네? 섭섭하다구.”
 “난 별로 안 섭섭한데?”
 “아무튼 이리로.”
 흑인 경찰은 슬쩍 경찰들이 드나드는 문을 열어 줬고 앨런은 꼬장꼬장한 무기 스캔 없이 문 밖으로 잽싸게 나왔다. 아니타 역시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서 척척 로봇 출입구로 들어와 스캔 한 방 받고 밖으로 나왔다.
 “주인님.”
 “시간 없다, 아니타. 네 백업을 준비해야겠어. 내 손 꼭 잡아.”
 둘은 도피하는 연인처럼 손을 꼭 붙잡고 빙글빙글 도는 회전문을 나가려 하고 있었다.
 “앨런 스미시이이이! 기다려!”
 “아아아. 무기 스캔 좀 하겠습니다.”
 “뭐라고? 이봐, 나는 바이파이라고!”
 “예에에에? 바이파이라고요? 그럼 신분증 좀 보여 주시죠?”
 앨런을 한 방에 통과시켜 준 흑인은 뻔히 보이는 연기를 하면서 휴대용 스캐너를 꺼냈다. 바이파이의 에이전트는 커피와 도넛 설탕으로 범벅이 된 코트를 뒤져 봤지만 신분증을 찾을 수 없었다.
 “아, 아까 그 무장 경관!”
 앨런은 당황한 바이파이 에이전트에게 거수 경례 비슷한 걸 날리고 천천히 문 밖으로 나왔다. 아직도 유리문 안쪽에서는 바이파이와 흑인 경관이 실랑이를 하고 있었다.
 “아니타, 스미스에게 전화 좀 걸어 봐. 이 새끼 경찰서로 도망치라고 했는데 형사들이 그 새끼 말을 안 해 줬어.”
 “예, 주인님. 스미스. 공공삼-오륙사삼······.”
 아니타는 군용 통신기를 돌려서 스미스에게 전화를 걸고 앨런은 택시를 잡으려 했다. 제이포 건물 앞에는 수많은 택시들이 각종 경범죄로 잡혀 오는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앨런이 손을 몇 번 흔들기도 전에 택시가 한 대 앨런과 아니타가 서 있는 쪽으로 달려왔다. 그런데 그 택시가 도착하기도 전에 웬 리무진이 떡하니 새치기하면서 문을 달칵 여는 게 아닌가?
 “어이, 스미시 선생. 얼른 타시지.”
 “뭐?”
 “쫓기고 있지 않나? 일단 타 보고 말씀을 나눌까?”
 “헤에. 근데 엄마가 어릴 때부터 아이스크림은 하루에 한 개뿐이고, 절대 낯선 사람 차 타지 말라 가르쳐 주셨거든?”
 “하하, 그거 훌륭한 어머님이시구만. 근데 말이야, 때론 융통성을 발휘하는 것도 좋다고 말씀 안 하시던가?”
 리무진 안의 노인은 회전문을 열고 달려 나오는 바이파이를 가리켰다. 앨런은 두말하지 않고 아니타의 손을 잡아서 리무진에 쑤셔 넣고 리무진에 탔다. 최고급 리무진은 액셀러레이터를 밟자마자 미끄러지듯 앞으로 전진했고 앨런을 놓친 바이파이들은 서로 싸워 댔다.
 “······.”
 노인은 치파오를 입은 야시시한 여자 둘에게 애무당하고 있었다. 와이셔츠 틈으로 여자의 작은 손이 왔다 갔다 하고 허벅지를 꽉꽉 주무르고 있었다. 그동안 앨런은 담배 한 개비를 다 태우고 후 하고 연기를 내뱉었다.
 “저, 노인네. 용건부터 말해 보실까?”
 “허, 거 버릇없는 청년이로구만.”
 “아, 노인 공경 따위의 미덕은 저 화성의 붉은 모래에 다 처박고 왔거든. 피차 시간 낭비할 필요는 없겠지. 이 몸은 시간이 금 같은 사람이라서 말이야.”
 “어차피 밑천도 다 날아갔잖나? 시간은 쨍쨍하게 남은 거 아닌가?”
 앨런은 대뜸 노인의 멱살을 잡았다. 어느 틈에 양옆의 차이나 드레스들은 권총을 꺼내서 앨런의 이마에 겨누고 있었다. 별수 없이 노인의 멱살을 풀고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타 스 헌 예만너~ 아이야 타 포후이러 워먼 라오꽁더 천이러.”
 “아이야. 쪄 천이 스부스 헌 꾸이더. 뚜어사오치엔너?”
 “따까이 쓰바이 뚜어러?”
 “쩐 따오메이아. 타메이요 넝리 뻬이챵 쓰바이뚜어러. 쥬런더 니엔토우 워 뿌넝 리지에러. 쩌 치까이 췌스 뿌넝 칸땅 쥬런 더 티안.”
 중국 소녀들은 쫑알쫑알 중국어로 이야기하면서 앨런의 신경을 긁어 놓았다.
 “뭘 시부럴 중국어로 씨부렁대. 자, 와이셔츠 값 사백 달러다. 나보고 거지라고? 거지가 이런 돈 뭉치 들고 다니는 거 봤냐? 쌍년들.”
 “호오, 중국어를 할 줄 아나?”
 “군대 동기가 중국인이었거든. 말은 내 발음이 구려서 잘 못하지만 알아듣기는 다 알아들어. 아무튼 당신이 제안하고 싶은 게 뭐여.”
 노인은 선글라스를 벗고 앨런을 노려봤다.
 “저 로봇을 내게 넘기지.”
 “하아? 좆 까시고.”
 “허허. 말이 거칠구만.”
 “거칠게 살아왔거든. 세상은 날 존나 부드럽게 살게 안 내버려 둬.”
 “후후, 마음에 드는군.”
 “미안하지만 난 로봇 포주지 내 궁댕이를 파는 남창은 아니거든? 그딴 건 딴 데 가서 알아봐.”
 앨런은 노인과 대화하면서 한 끗도 밀리지 않았다. 여전히 중국인 소녀들은 총을 겨누고 있는데도 앨런은 느긋하게 앉아 있을 뿐이다.
 “자네 9호 파일에 대해 뭐 아는 게 있나?”
 “전혀. 오히려 내가 묻고 싶을 정도야. 하룻밤 사이 전 재산은 무슨 스마트 폭탄인지에 날아갔지, 동업자는 행방불명이지, 아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
 노인은 다시 선글라스를 끼고 앨런을 아래위로 훑었다.
 “자네가 9호 파일을 봤다는 건 알고 있다네. 아니, 목성의 주요 세력들이 모두 알고 있지.”
 “그래서?”
 “뜬구름 잡지 않고 바로 직언으로 말하지. 웬만한 세력들은 맨이터를 자기편으로 만들거나 그의 능력을 소유하려 하고 있어.”
 앨런은 눈을 가늘게 뜨고 노인을 노려봤다.
 “능력? 그건 또 뭔 개소리야?”
 “초능력.”
 “이봐, 노인네. 아예 동화책이나 보는 게 어때? 마법사가 나와서 거지 소녀를 뿅 하고 부잣집 딸내미로 바꿔 주는 스토리가 있더만.”
 “자네 참 재미있군. 하지만 초능력은 실존하네.”
 “옛날 인간들은 달 뒷면에 외계인 기지가 실존한다고 지랄을 떨었지. 음모론 개소리를 할 거면 차 세워.”
 “음모론이 아니야.”
 노인은 사진 몇 장을 앨런에게 보여 줬다. 사진에는 앨런이 본 동영상과 비슷한 장면이 펼쳐져 있었다. 외눈박이 가면을 쓴 사내가 주변의 모든 것을 분해해 버리는 무시무시한 사진에다 안경을 쓴 여자애가 빙긋 웃는 사진이었다.
 “마인드 시커에 사이코키네시스? 글자만 써서 처붙이면 단가. 그리고 이딴 합성은 이십 세기에도 가능했어.”
 “믿고 안 믿는 건 자유지만 행성 연방은 분명 초능력자들을 관리하고 있다.”
 앨런은 사진을 보다가 귀를 후비면서 창밖을 쳐다봤다. 차는 어느새 관공서 거리를 지나 번화가로 향하는 긴 다리를 건너가고 있었다.
 “좋아, 초능력이 있다고 치자. 그럼 왜 다들 날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데?”
 “맨이터.”
 “그러니까 그 맨이터가 뭘 어쨌냐고.”
 “맨이터는 목성을, 아니, 행성 연방 전체를 뒤엎을 만한 굉장한 초능력을 갖고 있지.”
 앨런은 그 맨이터가 사람을 분해하는 장면을 떠올리면서 침을 꿀꺽 삼켰다. 노인은 앨런은 흘끗 보고 실실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후후. 아무튼 팻조이는 유능한 바이파이 짭새였고 오랫동안 찌질한 뚱보 연기를 하면서 비밀리에 정보를 수집해 왔어. 그러다 마침내 중요한 단서를 입수했지.”
 앨런은 아니타와 섹스를 하던 팻조이를 떠올렸다. 그 뚱뚱한 모습은 유능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그 모습이 위장한 거였다면 팻조이는 정말 대단한 짭새였다.
 “하지만 팻조이의 퍼스널 콘솔은 깡통이었던 모양이야. 콘솔이 바이파이의 손에 들어가는 데까진 성공했지만 단서는 없었고, 팻조이도 사라졌지.”
 “그래서?”
 “후후. 쾌찬차의 노인네가 말하더군. 자네들이 그 콘솔을 갖고 있다가 뭔가를 열었고 로봇 창녀들이 그 모든 걸 보고 있었다고.”
 “쾌찬차······ 중국인 네트워크? 당신 차이나 마피아였군.”
 “크하하하. 참 빨리도 알아채는구만. 보통 이 소녀들만 보면 알아채는 거 아닌가?”
 “난 또 새로 나온 중국형 섹스봇인 줄 알았지.”
 소녀 중 하나가 총을 허벅지에 있는 홀스터에 넣고 엘런 쪽으로 다가왔다. 소녀의 뜨끈뜨끈한 혀가 앨런의 뺨을 훑고 부드러운 하체가 앨런의 허벅지에 슬그머니 올라탔다.
 “진짜 여자라네. 로봇을 넘기면 둘 다 보내서 거하게 하룻밤을 보내게 해 주지. 물론 돈도 따로 크게 챙겨 주고. 이 아이들은 방중술을 배웠어. 화끈한 밤을 보낼 수 있을걸?”
 “거참 매력적인 조건이군.”
 앨런은 아니타를 쳐다보면서 중국인 소녀와 입술을 맞췄다. 작은 혀가 앨런의 혀를 휘젓고 앨런의 와이셔츠 속으로 들어와 그의 젖꼭지를 살짝 비틀었다. 아니타는 대기 모드로 푸른 눈동자를 아래로 내리깔고 앨런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거절하지.”
 “뭐?”
 번개 같은 속도로 앨런이 레이저 커터 자동 권총을 뽑아 들었다. 슬라이드가 뒤로 젖혀지면서 언제든 샛노란 레이저가 발사될 준비가 되었다.
 “엄마가 또 가르쳐 준 게 있거든. 초콜릿 케익 먹고 살 안 찌는 걸 바라는 건 개소리고, 초면에 너무 먹음직스러운 조건을 내걸면 그건 백빵 사기라고.”
 “허허, 그거참 훌륭한 어머니시로군.”
 “아무튼 고마웠어. 차 세우라고 말해. 아, 아아. 짱깨 소녀들, 니네들이 방아쇠를 당기기도 전에 저 양반 두 동강 난다. 워워워, 조심조심. 이 몸은 빡치면 바로 방아쇠를 당기는 성격이라서 말이야.”
 리무진은 고급 식당들이 늘어서 있는 도심 한복판에서 천천히 세워졌다.
 “아니타, 먼저 내려. 아, 아, 아, 중국 쿵훈지 나발인지 소용없어. 내가 내릴 때까지 얌전하게 있으라고. 꾸냥먼 아이야 쩐 커씨러?”
 앨런은 서툰 발음으로 중국어로 이죽거리면서 한쪽 손으로 눈을 잡아당겨 동양인을 비하하는 표정을 만들었다. 그러곤 총이 보이지 않게 조심스레 일어서면서 리무진 밖으로 나와 문을 쾅 하고 닫았다. 중국인 소녀들은 창밖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고 메롱했고 앨런은 FUCK YOU를 먹이고 뒤돌아섰다.
 죽일 마음이 있었다면 아까 총구를 들이댔을 때 죽였을 것이다. 하지만 앨런이 손가락만 까딱하면 아니타의 양자 두뇌가 타 버려서 맨이터가 담겨 있는 9호 파일도 사라진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지는지 혼란스럽지만 로봇 콜걸 아니타가 앨런의 명줄을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바이파이가 아니타를 내버려 둔 이유도, 흑사회가 자신을 살려 준 이유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영상을 기록한 로봇 콜걸들이 전부 파괴되었다면 맨이터로 가는 마지막 열쇠는 아니타가 쥐고 있었다.
 “아니타, 따라와.”
 “예, 주인님.”
 
 번화가의 남자들은 아니타를 보자마자 휘파람을 불고 난리였다. 그녀의 희고 긴 다리가 그대로 드러나 있고 위쪽은 풍성한 앨런의 점퍼를 입은 섹시한 모습이었다. 워낙에 조형이 잘된 모델인 데다가 아니타의 인공 지능 자체가 남자들의 보호 본능을 일으키는 구석이 있었다.
 남자들이 슬슬 앨런과 아니타가 있는 곳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멜빵바지를 입은 광부, 양복을 입은 관료, 사무원 할 것 없이 꿀 향기에 끌리는 벌 떼처럼 멍하니 아니타에게 다가왔다. 그중 한 놈이 아니타의 뽀송뽀송한 허벅지를 만졌고 아니타는 진짜 여자처럼 앨런의 품에 폭 안겨서 덜덜 떨었다.
 “헤에. 거 쌔끈한데?”
 앨런은 인상을 있는 대로 쓰면서 총을 꺼내 들었다.
 “시부럴, 손님들 존나게도 많구만. 진작 이딴 데서 호객 행위를 하는 건데 말이야. 이봐들. 이거 내 로봇이야. 또 손대는 새끼는 머리에 바람구멍을 뚫어 주겠어.”
 앨런은 삐잉 하는 레이저 주입음을 들려줬고 슬슬 몰려들던 남자들은 군침을 삼키면서 등을 돌렸다. 로봇이건 진짜 여자건 번화가 뒷골목으로 끌고 가서 강간하면 그만이었다. 목성 거주구는 어딘지 남자들만 득시글대는 감옥과 비슷했다.
 “젠장, 이게 로봇이냐? 상전이지. 코트는 어떻게 한 거야, 아니타?”
 “아파트에······.”
 “시부럴. 경찰 놈들이 죄 쓸어 갔겠군. 아무튼 모텔로 가려고 했는데 안 되겠다. 이 지경이면 또 총격전을 벌여야 할 기세야.”
 앨런은 아니타를 품에 꼭 끌어안고 월도프 주피터 호텔 쪽으로 걸어갔다. 이 호텔은 목성에서 딱 하나뿐인 5성 호텔이었는데 손님한테 콜걸을 배달할 때나 들어가 봤던 곳이었다.
 최고급 샹들리에가 달려 있고 지구제 물건들로 가득 찬 로비를 뚜벅뚜벅 걸어갔다. 호텔 로비 카운터에 있는 여자는 아니타의 양자 동공과 앨런의 모습을 보고 피식 웃다가 거만한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풋. 손님. 손님께선 몇 블럭 뒤에 있는 모텔이 어울리실 듯합니다만.”
 “시부럴, 옷 보고 차별하냐? 자주 왔었잖아?”
 “그건 배달 서비스고 투숙객으론, 손님, 푸웁, 그런 추레한 옷차림으론······.”
 앨런은 주머니를 뒤적거리다가 일부러 총을 카운터에 올려놓았다. 그러고는 또 일부러 아멕스 플래티넘 카드를 던지고 벨보이 벨을 찌링찌링 눌렀다.
 “프, 플래티넘······ 저, 손님, 며칠이나······.”
 “삼백오호 하룻밤. 청소고 뭐고 필요 없으니 아무도 방해하지 마. 그리고 무장 경호 서비스 되지?”
 “예.”
 “문간에 가드 좀 붙여 줘. 나 찾는 빌어먹을 새끼들이 존나게도 많아서 말이야. 거기에 거리의 남자 새끼들도 얘를 눈독들이고 있거든.”
 “예, 알겠습니다, 손님.”
 앨런이 이 호텔이 들어온 이유는 이거였다. 딱 50분, 아니타의 양자 두뇌에서 관련 파일을 안전하게 다운로드할 시간이 필요했다. 아멕스 플래티넘 카드의 위세에 눌린 호텔리어는 황송하게 카드를 앨런에게 돌려줬다. 얼마간 기다리자 이윽고 벨보이와 함께 가드맨 둘이 뚜벅뚜벅 앨런 쪽으로 걸어왔다.
 “뭔 가드가 이래 비리비리해? 너 군인 출신이냐?”
 “예, 손님.”
 “어디 출신인데?”
 “지구 함대 레인저 세븐.”
 “레인저 세븐이면 쓸 만하군. 이건 팁이고 누구도 통과시키지 마.”
 앨런은 가드의 포켓에 백 달러짜리 몇 장을 찔러 주고 뺨을 톡톡 두들겼다. 그야말로 한 덩치 하는 가드는 피식 웃으면서 앨런의 뒤를 따랐다.
 “벌써 육천 정도 날렸군, 시부럴······.”
 로봇 콜걸들은 밴째 날아가고 앨런이 몇 달 동안 악착같이 번 돈을 경찰이나 호텔비로 펑펑 날리고 있었다. 하지만 일발역전, 아니타의 양자 두뇌에 들어 있는 파일들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지금까지 본 손해를 만회하고 한몫을 잡을 수도 있었다.
 “바이파이······ 차이나 마피아. 다음엔 또 뭐가 처나올까.”
 문득 떠오르는 건 고급 시가를 피워 대는 시가맨이었다. 차이나 마피아 노인 얘기론 바이파이가 팻조이의 콘솔을 손에 넣었다고 했었다. 그 얘기는 시가맨은 바이파이라는 얘기다. 확실히 그놈 부하의 손에 내장된 레일 건은 예사 무기가 아니었다.
 ‘수수께끼 하나는 풀렸고······ 아니지, 아니야. 앞뒤를 맞춰 보면 팻조이는 그놈들이 죽였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바이파이가 같은 바이파이를 죽인다? 어딘지 모순이었다. 뭔가 풀리려던 수수께끼는 그 대목에서 다시 꼬여 버렸다. 초조하게 손톱을 깨무는 앨런을 아니타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지켜보고 있었다.
 딩동 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는 3층에 도착했고 가드들이 먼저 나가서 안전을 확보했다. 앨런은 가드들의 움직임을 보면서 휘파람을 불었다.
 그때 주머니에 넣어 놓은 통신기가 삐리리 울렸다. 군용 TA-331은 아니타에게 건넸으니 울리는 건 분명 아까 총기 보관소에서 받아 온 구형 통신기일 것이다.
 “뭔진 모르지만 로봇은 안 팔아.”
 “하하하. 이야기 한번 빨라서 좋구만.”
 “좆 까. 재수 없게 웃지 마.”
 “까칠하시구만? 잔뜩 독이 올랐어.”
 “너 같으면 전 재산이 다 박살 나고 별 시부럴 놈들한테 쫒기고 있는데 허허허 웃고 다니겠냐?”
 수화기 저쪽의 인물은 뭐가 그렇게 신이 났는지 다시 껄껄껄 웃었다. 앨런은 305호의 방문을 열고 창문을 확인하고 있었다. 305호의 창문은 딱 하나, 그나마도 궤도 엘리베이터 고속도로에 가려져 있는 답답한 방이었다. 대신 그만큼 저격은 안전했다.
 “삼백오호라. 방 선정이 기막히군.”
 “새꺄, 변죽만 울리지 말고 본론을 말하라고. 어제 오늘 만담 잔치 하느라 이 몸은 목이 쉴 지경이거든?”
 안쪽을 확인한 가드들이 문밖으로 나가고 앨런은 아니타를 침대에 앉게 했다. 이 웃기는 녀석의 전화를 그냥 끊어 버릴까 생각했지만 앨런은 정보가 너무 부족했다.
 “아무튼 소개가 늦었군. 난 바이파이 에이전트야.”
 “바이파이이이? 아, 미안, 코트 입은 멍충이들을 따돌렸거든. 근데 또 바이파이?”
 “멍충이라. 그건 동감이군. 그 바바리 입은 스트립 댄서 새끼들은 제대로 일하는 게 없거든.”
 “푸하하하, 넌 다르다는 거야?”
 “그럼, 좀 다르지. 아주 많이. 난 외눈박이라고 해.”
 문득 앨런은 방금 전 어디서 ‘외눈박이’를 봤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너무 긴장하고 있어서 그런지 어디서 봤는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외눈박이? 공공칠 제임스 본드 그런 거냐? 새끼들 유치하긴.”
 “하하. 나도 그 유치한 별명은 좀 유감이네. 아무튼 난 자네 편이야. 자네를 구할 유일한 아군이지.”
 “지랄 마셔. 내 아군은 화성에서 몰살당했어. 그리고 용건부터 말하랬지? 또 만담 한마당이구만. 용건 없으면 끊는다?”
 아니타는 목 뒤의 확장 포트를 열고 파일 다운로드를 준비했다.
 “뭐, 용건이야 간단하지. 맨이터. 자네는 너무 개 같은 걸 건드렸어.”
 “그건 절실히 느끼고 있지.”
 “그럼 됐어. 그럼 본론을 말하지. 월도프 주피터 호텔도 위험해. 아마 놈들은 최고의 자객을 보낼 거야.”
 “놈들? 대체 내 후장을 노리고 있는 놈들이 대체 몇 놈이야? 그리고 이 시부럴 지랄은 다 뭐고?”
 “하하. 앨런 당신이 이해해 줘. 지금은 모든 걸 다 말할 수는 없거든.”
 “영화 보면 맨날 그런 소리더라. 그딴 거 처만든 영화감독의 아가리에다 시나리오 뭉치를 처박아 주고 싶었어.”
 앨런은 아니타의 확장 포트에 선을 꽂아 넣고 손목시계 모양의 개인 콘솔에 연결했다.
 “뭐, 그럼 간단하게만 말해 주지. 행성 연방은 초능력자를 관리하고 있었어. 근데 모종의 사건으로 초능력자들이 풀려난 거야. 골 때리는 일이지.”
 “아주 동화 속에 들어온 기분이군. 난 초능력이라곤 숟가락 구부리는 사기밖에 모르거든? 너도 숟가락 구부리고 뭐 그러는 사기꾼이냐?”
 “오, 그건 내 전공이지. 어쨌든 당신 심정은 이해해. 나도 처음엔 그랬으니까. 그런데 동물원에서 맹수들이 풀려났으니 우리 회사도 어쩔 수가 없어. 잡아들여야지.”
 “나는 그 사냥에 재수 없게 휘말려 든 거고?”
 “그래. 거기까지 들었다면 이야기는 다 끝난 셈이야. 로봇을 넘기고 우리 측의 보호를 받지그래?”
 앨런이 의문의 사내와 대화를 하면서 스위치를 넣자 아니타의 몸은 축 늘어져 침대에 누워 버렸다.
 “로봇은 안 팔아.”
 “허어. 왜 그리 고집을 부리는 거지? 그딴 짐 얼른 내려놓는 게 낫잖아?”
 “아니타는 지금 내 전 재산이라고.”
 “비즈니스 이야기로군. 좋아. 그 스트립 댄서 새끼들과 달리 우리 파트는 자금이 넘쳐나. 당신 재산은 그대로 화성 은행 계좌에 넣어 줄게.”
 “겨우 내 원래 재산? 백만 달러 아니면 엿이나 처먹고 꺼져. 내가 몇 번이나 죽을 뻔한 줄 알아?”
 “오, 제법 흥정을 할 줄 아는구만. 알았어. 아무튼 난 아직 목성에 도착하지 않았다고. 도착하면 흥정을 하도록 하지.”
 “그건 어제 오늘 들은 말 중에 제일 마음에 드는 말이군.”
 “내가 도착하기 전까지 살아나 있으라고. 그놈들은 크로커다일 던디랑 허니비를 보낸 모양이니까. 아, 그 미친 머신건 전도사 새끼들도 당신을 노리고 있어. 내가 보낸 가드가 제시간에 도착하면 좋으련만······.”
 “그건 또 뭔 소리야?”
 “만나면 알게 될 거야. 아무튼 앨런 당신이 무사하길 기도하지.”
 그사이에도 앨런의 손목시계 콘솔로 아니타의 기억 파일이 다운로드되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도 정보도 너무 부족했다.
 “아, 잠깐, 잠깐. 혹시 화성 쪽 PMC 업체에 의뢰한 게 너냐?”
 “PMC라고? 아니, 그건 모르겠는데. 차페이, 화성 쪽 PMC 업체를 검색해 봐라.”
 사내는 통신을 하면서 누군가에게 뭘 지시하고 있었다.
 “이봐, 그쪽 회사는 제이포랑 정보 공유도 안 하는 거냐? 업무 연계가 뭐 그따위야?”
 “하하. 제이포 뚱땡이들은 우리를 좆나게도 싫어하거든. 뻑하면 우리 후장에 당근을 처박으려 하고 있지.”
 앨런은 킥 하고 웃었다. 어제 오늘 만난 수많은 사람들 중에 이 괴상한 녀석만큼은 어딘지 신뢰감이 갔다.
 “아무튼 미스터 앨런 스미시, 잘 싸워 보라고.”
 “같잖은 걱정 고맙구만.”
 치직 하고 통신이 끊어지고 앨런이 마지막으로 들은 소리는 화성-목성 간 정기 로켓 여객선이 목성 우주 공항으로 빠져나오는 특유의 알림음이었다. 앨런은 아니타의 상태를 살폈다. 푸른 양자 동공에는 숫자가 또르르 떠올라서 아니타의 상태를 보여 주고 있었다. 앨런은 문득 생각이 났는지 그녀의 다리를 좍 벌렸다.
 “에너지가 바닥이군. 휴, 큰일 날 뻔했어.”
 코트 안에 있는 예비 배터리를 그녀의 치부 안에 조심조심 삽입했다. 모델에 따라선 에너지 주입구가 입이나 가슴에 있기도 했지만 손님들이 인간 같지 않다고 해서 지금은 거의 모든 모델이 안쪽 깊은 곳에 에너지 삽입구가 있었다.
 기잉 하고 에너지를 받아들이는 아니타. 앨런은 그제야 휴우 하고 다 찌그러진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푸른 담배 연기가 하늘로 퍼져 가고 이게 대체 무슨 난린가 하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삐리리링. 군용 통신기가 적막을 깨듯 미친 듯이 울어 젖혔다.
 “앨런! 앨런!”
 아니타가 들고 있던 군용 통신기에서 스미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앨런은 잽싸게 통신기를 잡아 들고 고함을 질렀다.
 “스미스! 너 어디냐!”
 “크으윽. 앨러언! 앨런!”
 “아오, 시발롬아! 질질 짜지 말고! 어? 너 얼굴이 왜 그래?”
 “앨러어언. 으어어어엉.”
 스미스는 통신기에 대고 펑펑 울고만 있을 뿐이다. 얼굴에는 피딱지가 앉아 있고 푸른 멍으로 눈탱이가 밤탱이가 되어 있었다.
 “이런 시부럴, 어떤 새끼들이야?”
 “하하. 앨런······ 스미시 형제?”
 “넌 뭐냐, 개새꺄.”
 이윽고 화상 채널의 한 귀퉁이에 낯선 얼굴이 등장했다. 개기름이 좔좔 흐르고 머리를 올백으로 뒤로 넘긴 모습이 멀쩡한 놈은 아니었다.
 “뭐냐니까, 시벌럼아.”
 “호오. 형제는 참 야만스런 인물이구만. 문장에 욕을 안 넣고 말하면 의사소통이 안 되나? 오, 주여. 더러운 저자의 입을 용서하소서.”
 “좆 까고 있네, 호로 새끼가. 넌 뭐냐고 물었잖아, 개새꺄.”
 “아아, 앨런 형제는 참으로 천박한 인물이구만······.”
 올백의 사내는 주저앉고 스미스의 머리통을 각목으로 후려 깠다.
 “형제여. 이제 상황이 뭔지 알겠나? 이제 정답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지?”
 “시부럴 새꺄. 스미스는 지구 대학을 졸업한 인재란 말이다. 네깟 새끼의 대갈통보다 몇백 배는 소중하다고.”
 “그래 봤자 섹스 로봇 정비사지. 안 그래, 형제? 오오. 이 땅이 소돔과 고모라처럼 타락하였나이다. 주여. 이자들의 음란함을 용서하소서.”
 사내의 뒤로 흐흐흐 하는 음산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최소한 쪽수는 10명 이상.
 “앨런 당신 영악하기로 소문이 났다던데 내가 뭔 말을 할지는 잘 알겠지?”
 “스미스와 로봇을 바꾸자 그거겠지.”
 “대답은?”
 “좆 까, 시부럴.”
 다시 스미스의 머리를 각목으로 호되게 후려쳤다.
 “아아아. 이거이거 학습 능력이 없는 원숭인가 봐. 실망이야. 쟁쟁한 마피아들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면서 사업을 잘한다고 소문난 앨런 씨가 이따위라니······.”
 “니들 마피아냐?”
 “아니. 이래 봬도 종교인이야.”
 “종교인 다 얼어 죽었군.”
 “오오. 주여. 주께 대적하는 저자를 어찌 하리이까?”
 아무래도 농담으로 ‘주여.’ 어쩌고 저러는 것 같지는 않았다. 앨런은 방금 그 괴상한 바이파이 에이전트와 나누던 대화 중에 들은 머신건 전도사라는 이름이 퍼뜩 떠올랐다.
 “너희들 머신건 전도사들이냐?”
 “오. 주여. 저 참람함을 보소서. 후후. 그건 저 썩어 빠진 세상 사람들이 붙인 별명이고 우리 단체의 이름은 베데스다 무장 예수 전도단이다.”
 앨런은 뜻밖의 이름에 배를 부여잡고 깔깔 웃었다.
 “뭐, 뭐라고? 크하하하하, 무장 예수 전도? 저승에 가 있는 예수가 다 웃을 이름이군. 웃겼다. 점수 삼십 점 주겠어, 푸하하하하하!”
 “이봐! 주님의 이름을 어찌 모욕하는 거냐?”
 “왜 성질 내냐? 예수가 니네 무기라도 대 주는 거냐? 그런 거라면 나도 예수를 믿어 보지.”
 앨런의 말에 올백 머리의 남자는 정말로 화가 난 것 같았다. 당장이라도 콘솔을 부술 기세로 날뛰다가 주변의 근육질 사내들에게 진정되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앨런은 상대방 열 받게 하는 데는 선수 중에 선수였다.
 “아무튼 형제여. 로봇을 우리에게 넘기시지?”
 “내 대답을 듣고 싶냐?”
 “물론이지, 형제여. 언제든 주 예수의 품은 열려 있다오. 허허허허.”
 “좆 까고 로봇은 못 줘. 아, 그리고 기도할 일 있으면 너네 예수더러 목성까지 출장 와서 내 총이나 손질해 달라고 전해 줘. 니들 정식 기독교도 아니면서 예수 이름 팔아 대는 사이비 새끼들이지? 그 착하디착한 예수님이 니 따위 새끼들에게 이름을 빌려 줬을 리가 없잖아?”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사이비 종교라는 정곡을 찔린 올백 머리는 애써 넘긴 머리를 헝클어뜨리면서 통신기를 땅에 패대기쳤다. 그 순간 앨런은 날카로운 눈으로 상대방의 쪽수를 세었다.
 ‘시부럴, 뭐 이리 많아? 일고여덟, 아홉······.’
 한 20여 명 정도의 다리 숫자를 세었을 때쯤 통신기가 다시 원래의 각도로 돌아왔다.
 “후우. 주께서 주는 시험을 이겨 냈어. 앨런 형제. 아무튼 우리는 형제가 소유하고 있는 로봇을 원해.”
 “미안. 그거 제이포 청사의 로봇 행어에 있거든. 증거물로 성간 짭새 새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 아예 구축함까지 한 대 끌고 와서 수사본부 차렸던데? 딴 걸론 안 될까?”
 “주여. 어찌하여 저희를 시험하시나이까?”
 “시험이고 뭐고 짭새가 붙어 있는데 난들 어쩌라고?”
 “그럼 이렇게 하지. 형제가 제이포 청사에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로봇을 빼오는 거야.”
 올백 머리는 뾰족한 송곳니를 드러내면서 히죽 웃었다. 앨런은 별 표정 변화 없이 속으로 흥 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시간은?”
 “오늘 저녁 아홉 시까지야. 아홉 시까지 로봇을 우리에게 넘기지 않으면 스미스 형제가 불지옥으로 떨어질 거야.”
 “좆 까. 내 미리 경고하지. 스미스한테 다시 한 번 손을 댔단 봐라. 네놈 후장에 그 각목을 쑤셔 박아 버리겠어.”
 “하하, 재밌군. 주여. 정말 음습할 정도로 재밌사옵니닷!”
 “야 이 개새꺄!”
 닷에서 각목이 부러지면서 스미스는 피를 꼴꼴 흘렸다.
 “오. 주여. 이 스미스 형제가 길가에 쓰러져 돕는 이가 아무도 없는데 이 선한 사마리아인이 돕습니다. 이 스미스 형제의 진정한 이웃이 누구입니까? 저 아니옵니까?”
 “야 이 개새꺄!”
 앨런은 통신기를 잡고 욕을 버럭버럭 먹였고 화상 저편에서는 웬 의사가 스미스의 상처를 바로 치료하고 있었다. 의료용 나노머신이 주입되고 스미스의 상처가 아물었다. 비싼 나노머신까지 고문 용도로 사용하는 걸 보니 아무래도 이 머신건 전도사 놈들은 제대로 미친 놈들이었다.
 “형제여. 아홉 시야, 아홉 시.”
 틱 하고 통신이 끊어지고 앨런은 애꿎은 호텔 꽃병을 손으로 부숴 버렸다.
 “스미스 시발 새끼! 내가 그래서 경찰서로 뛰라고 했잖아! 아니지, 시발! 그딴 파일은 왜 열어 가지고 이 난리야!”
 가뜩이나 알아먹기 복잡한 구도에 사이비 광신도 집단까지 숟가락을 올려놓았다. 머리는 점점 복잡해지고 자연스레 손이 가는 건 담배였다.
 “후우우우. 어디 보자. 맨이턴가 하는 9호 파일의 키 코드가 아니타의 머릿속에 있고······ 그 맨이터는 행성 연방에게 쫓기는 초능력자고······ 뭐 이따위야? 시부럴. 싸구려 시나리오 같구만.”
 카펫에 담뱃재가 제멋대로 떨어지고 앨런은 다시 담배에 불을 붙였다. 일단 제일 이해가 안 가는 건 ‘초능력’이었다.
 초능력.
 아무리 생각해도 영화나 만화 속에서 나오는 초능력들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하늘을 날거나 불을 뿜거나 괴력을 발휘하거나.
 하지만 9호 파일 안에 있던 능력은 좀 성격이 달랐다. 인체가 짜부라지면서 근육이 파열되고 내장이 튀어나오고, 마지막으로 잘린 육편들을 질겅질겅 씹어 먹는 맨이터를 떠올리니 속이 또 울렁거리는 기분이었다. 대체 그 무시무시한 능력은 뭐라 부르면 좋단 말인가? 앨런은 지금까지 알고 있던 세계가 오히려 더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확실한 건 내가 안 가면 스미스는 그 미친 사이비 새끼들한테 죽는다는 거랑 아니타의 기록이 돈이 된다는 것뿐이군······.”
 앨런이 다시 담배 한 개비에 불을 붙이려고 했을 때 똑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아, 멍청한 가드 놈들아! 오십 분 동안은 누구도 안에 들여보내지 말라고 했잖아!”
 “······.”
 밖의 대답은 없었다. 다시 똑똑똑 음산하게 노크 소리만 들렸다. 앨런이 처음 든 생각은 아멕스 플래티넘 카드가 탈이 났다는 생각이었다. 그 카드는 곡절이 많은 카드였다.
 “젠장, 아까 계좌 체크는 별 문제 없었는데······ 설마 아니겠지. 몇 년 동안 잘만 썼는데.”
 그 카드는 스미스가 허세용으로 만들어 준 가짜 카드였다. 겉 딱지도 분명 플래티넘이고 체크 머신 등에서는 등급이 플래티넘으로 뜨지만 실제 한도는 몇만 달러고 계좌는 깡통 계좌나 다를 바 없는 둘의 공동 사업 통장에서 돈이 빠져나간다. 이쪽 일을 하다 보면 때론 이런 깡통 카드 따위로 허세를 부리는 게 필요했다. 물론 본격적으로 카드 사기를 하거나 하진 않았지만 연방법으론 이 역시 훌륭한 범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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