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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가기버튼 황제의 꿈 : 무역황제 한세웅

황제의 꿈 1화

2018.01.03 조회 3,643 추천 29


 1화
 
 
 
 정상을 위한 도전
 
 
 열려진 문으로 찬바람과 함께 종이조각들이 공장 안으로 휘몰려 들어왔다. 공장 안쪽에서 간간이 미싱 소리가 들려왔으나 작업은 끝이 났고 포장작업만 남은 것이다. 10여 명의 미싱사들이 나란히 놓인 박스에 트레이닝복을 담고 있었다.
 “에이, 씨발! 되게 춥네.”
 문 옆에서 밴딩기로 박스에 테이프를 감던 장발의 청년이 투덜거렸다. 공장장 박씨가 해진 노트를 들고 박스 앞에 서서 얼굴을 찡그렸다. 3일 동안 철야작업을 했으므로 수염이 더부룩했고 눈자위가 붉었다. 저녁을 먹으면서 소주를 마신 탓이다.
 “왜 어소트가 안 맞는 거요!”
 한세웅이 버럭 소리쳐 물었다.
 아가씨들이 일제히 몸을 돌려 한세웅을 바라보았다.
 밴딩기의 철커덕 거리는 소리가 멈췄다. 다시 찬바람이 휘몰려 들어왔고 비닐 포리백 한 장이 한세웅의 얼굴에 떨어졌다.
 땀에 젖은 러닝셔츠에 찬바람이 와 닿자 얼음덩어리처럼 금방 뻣뻣하게 되어서 살갗에 달라붙었다.
 “에이 쌍! 스몰 사이즈가 모자라는디, 야네들이 잘못 집어넣은 것 아녀!”
 공장장의 말에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7, 8명의 아가씨들이 그의 주변에 우두커니 서 있었고, 트레이닝복을 비닐백에 담는 포장대 주위에도 몇 명이 있었으나, 모두들 한세웅과 공장장을 바라본 채 입을 열지 않았다. 한세웅은 벽에 걸린 시계를 보았다. 새벽 두시 사십분이 되어 있었다.
 “어디, 봅시다.”
 한세웅이 다가가 노트를 잡아챘다. 노트에는 일련번호가 가득 적혀 있었고 번호에 빗금을 친 것은 제대로 그 박스 번호에 물품을 담았다는 표시였다. 한 박스에 네 개 사이즈의 트레이닝복이 4, 8, 8, 4의 비율로 24벌이 담겨져 있어야 했다. 다행히 색상이 두 가지밖에 없으므로 블랙과 버건디 색상이 같은 비율로 12벌씩 들어가면 되었다.
 한세웅은 사이즈별로 쌓여져 있는 트레이닝복을 훑어보았다. 스몰 사이즈가 10여 벌밖에 남아 있지 않았는데, 미디움이나 라지는 1백 벌도 넘어 보였다. 밴드까지 쳐서 들고 나간 박스 속에 미디움이나 라지 사이즈 대신 누군가가 스몰을 넣어버린 것이다. 공장장이 한세웅의 눈치를 보다가 마침 박스를 나르려고 들어온 포장반장에게 버럭 고함을 질렀다.
 “야, 이 씨발놈아! 스몰을 어디다 몽땅 처넣은 거여? 스몰이 없잖여!”
 포장반장이 밴드가 쳐진 박스를 들어 올리려다가 쿵 소리를 내며 박스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한세웅의 시선이 문득 김영숙의 얼굴에 머물렀다. 동그스름한 얼굴이 추위에 하얗게 얼어 있었다. 단발머리 위에 수건을 둘러썼으나 머리카락에 솜뭉치 하나가 붙어 있는 것이 보였다. 공장의 문을 열고 사십대의 사내 한 명이 들어섰다.
 “박스 안 나오는 거요? 추워 죽겠는데 빨랑빨랑 합시다!”
 트럭 운전사였다. 초저녁에 공장에다 차를 대었으나 아직까지도 일이 끝나지 않자 화가 나 있었다. 대기료는 받겠지만 아침 아홉시까지 부산의 컨테이너 야드까지 들어가려면 도중에서 쉴 시간도 없는 것이다.
 “박스는 몇 개 나갔어요?”
 공장장에게 묻자 그는 대답 대신 털썩 공장바닥에 주저앉았다. 남아 있는 물량을 보면 어림잡아 2백 박스는 트럭에 실렸을 것이다. 2백 박스를 모두 뜯어서 사이즈별로 제대로 넣었는가를 확인해야 했다. 한세웅은 노트를 공장장에게 던졌다.
 “숫자나 맞춥시다!”
 그의 말이 떨어지자 사람들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밴딩기가 다시 철컥거리고 아가씨들은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박스에 트레이닝복을 담았다.
 포장반장과 남자들은 박스를 어깨에 메고 밖으로 나갔다. 한세웅도 어깨에 박스를 메고 그들을 따라나가자 정 사장이 트럭 옆에서 노트를 들고 서 있었다.
 “가만, 박스 번호가 1백25번이라······.”
 그는 박스의 번호를 찾아 읽고는 노트에 적힌 숫자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1백25나마나 어소트가 엉망이란 말이오! 스몰이 몽땅 들어간 박스가 있다구요!”
 트럭 위에 박스를 올려놓고 한세웅이 이맛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정 사장은 입맛을 다시며 대꾸하지 않았다. 문 앞에 매달린 30촉짜리 전구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 * *
 
 한세웅이 회사에 들어섰을 때에는 여덟시 십분 전이 되어 있었다. 일찍 출근한 직원들이 넓은 사무실의 이곳저곳에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책상에 앉아 자판기에서 뽑아온 커피를 마셨다. 뜨거운 커피가 아직도 잠이 덜 깬 머리를 맑게 해주는 것 같았다.
 한세웅의 시선이 문득 책상 위의 메모철에 머물렀다. 1월 25일의 책상용 일력 위에 갈겨쓴 그의 글씨가 보였다.
 
 [김정구, 1월 28일, 7시, 조선호텔.]
 
 벽에 걸린 달력을 보았다. 오늘이 1월 28일이었다.
 “일찍 나왔군, 한 대리.”
 민달호 차장의 떠들썩한 말소리가 옆쪽에서 들렸다.
 “차장님, 오늘 새벽 세시 반에 정호섬유에서 제품 출하했습니다.”
 한세웅이 일어서서 말했다.
 “그래? 그럼 네고는 오늘 할 수 있겠구만?”
 “선하증권을 받아야 하니까 내일까지는 할 수 있겠지요.”
 민달호가 머리를 끄덕이며 자리에 앉았다.
 “그렇다면 한 대리 팀은 목표달성을 한 셈인가?”
 “겨우 1백 퍼센트 했습니다.”
 “겨우?”
 민달호가 혈색이 좋은 얼굴로 씨익 웃었다. 살찐 몸에 머리가 벗겨지기 시작해서 이마가 넓게 보였다. 그는 서른여덟 살로 사장의 친척이다. 내년에 부장진급이 될 것으로 자타가 공인하고 있었다.
 “간신히 했다는 얘깁니다.”
 한세웅이 따라 웃으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한세웅과 같은 팀인 조정혜가 다가와 민 차장과 그를 향해 머리를 가볍게 숙였다.
 사무실은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2백 평이 넘는 5층의 섬유본부에는 1백여 명의 직원들이 책상을 마주하고 근무하고 있었다. 섬유1부에서 3부까지 모두들 부별로 또는 팀별로 아침 회의를 해야 했으므로 양쪽에 있는 상담실과 회의실로 바쁘게 들어서는 통에 어수선해졌다.
 “이봐 한 대리, 부탁이 있어.”
 강치용 대리가 다가오더니 의자를 끌어당겨 옆에 앉았다. 이맛살을 찌푸린 얼굴이 피곤해 보였다. 한세웅은 책상 위의 서류를 밀치고 몸을 돌렸다. 그는 서른두 살로 한세웅보다 입사 2년 선배가 된다. 그리고 6월에 과장으로 진급될 서열이었다.
 “자네 티시 원단 5백 킬로만 빌려줘. 내가 체크해 보니까 흰색 원단이 자네 오더로 들어가는 것이 있더구만. 우리 원단은 오염이 심해서 못 쓰겠어. 이봐, 급해서 그래. 열흘 후에는 꼭 원단 입고시켜줄게. 지금 편직하고 있거든.”
 “그건 곤란한데요.”
 한세웅이 머리를 저었다.
 “우리도 흰색이 들어가지 않으면 완성이 안 됩니다. 공장이 놀게 돼요.”
 “그럴 리가 있나? 자네 흰색 티시 원단은 1천 킬로나 염색공장에 쌓여 있더구만 그래?”
 강치용의 얼굴이 굳어졌다.
 “하루에 공장에서 2백 킬로씩 소진합니다. 닷새면 끝나요. 우리도 부족해요.”
 “이봐, 우리 공장은 원단이 없어서 놀고 있어. 사정 좀 봐줘.”
 조정혜가 다가와 종이컵에 담긴 커피를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그러면 우리 공장도 놀게 됩니다.”
 “생산량을 조금만 줄이고 빼낼 수도 있지 않아?”
 강치용이 그를 노려보았다. 창백한 얼굴이 굳어져 있었다.
 “에이 참, 그게 어렵다는 걸 잘 아시면서 그래요? 공장이 생산량 줄이려고 합니까? 원단이 뻔히 있는 줄 아는데 말입니다. 길길이 뛸 겁니다.”
 “그래서, 안 되겠다는 거야?”
 “봐주십시오. 다른 건 얼마든지······.”
 “내가 자네한테 다른 걸 뭘 부탁하겠어!”
 강치용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앞자리에 앉아 있는 조정혜의 몸이 굳어진 듯 보였고 두어 명의 직원들이 이쪽을 바라보았다.
 “더럽군, 더러워!”
 씹어뱉듯 말하면서 강치용이 자리를 떠났다.
 “병신.”
 한세웅이 나직하게 말했다. 팀별로도 경쟁을 하고 있는 마당에 자신의 실적에 차질을 주면서까지 다른 팀을 도와줄 병신은 없다. 그것을 모르는지 그런 부탁을 하는 강치용은 병신임에 틀림없었다.
 
 “조정혜 씨.”
 조정혜가 몸을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팀에서 선적 관계와 서류업무를 주관하는 입사 2년째인 그녀는 차분하고 꼼꼼해서 업무에 실수가 없었다.
 “어제 정호섬유에서 출하시킨 물량은 오늘 중으로 B/L받아야 내일 네고 할 수 있을 거야, 잘 챙겨줘.”
 조정혜가 머리를 끄덕였다. 짧게 자른 머리 밑으로 긴 목이 드러나 보였다. 눈을 깜박이며 그를 바라보던 조정혜는 다시 몸을 돌렸다.
 
 * * *
 
 “차장님, 식사하러 가십시다.”
 한세웅은 민달호가 수화기를 내려놓자 다가갔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래?”
 민달호는 사무실을 둘러보았다. 점심시간이 되었으므로 사무실은 텅 비어 있었다.
 “내가 전화를 너무 오래했던 모양이군 그래. 이거 미안한데······.”
 그는 옷걸이에서 코트를 집어 들었다.
 
 일식집의 방에 마주앉자 민달호는 수건으로 손을 닦으며 한세웅을 바라보았다.
 “지금도 자취하고 있나?”
 “아니, 밥은 사 먹습니다. 집에선 잠만 자구요.”
 “혼자?”
 “그럼 혼자니까 밥을 사먹지요.”
 한세웅이 피식 웃으며 말하자,
 “그거 편하고 좋겠군.”
 민달호가 입맛을 다셨다.
 “아직 편한 건지 불편한 건지 모르겠습니다. 제대로 겪어보지 않아서요. 그런데 제1팀은 이번 달에 실적 미달입니까?”
 민달호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수건을 구겨 구석에 던졌다.
 “아침에 강 대리가 저더러 원단을 빌려달라구 해서요.”
 “······.”
 “티시 백색 원단인데 우리가 하루 2백 킬로 정도씩 쓰고 있습니다. 5일분 1천 킬로 정도가 공장에 있어요. 강 대리 팀에서 원단사고가 있었던 모양이에요. 그래서 열흘 후에 원단 재편성하면 주겠다고 하는 걸 제가······.”
 “가만, 원단 사고? 난 못 들었는데?”
 민달호가 눈을 깜박이며 한세웅을 바라보았다.
 “원단이 오염되었다는군요. 그래서 어떡합니까? 저더러 빌려 달라고 하는 걸······.”
 “그래서, 빌려줬나?”
 “저야 그렇게 해주려고 공장에다 연락했더니 난리가 났지 뭡니까. 저희 공장도 닷새분밖에 공급이 안 돼 있거든요. 우릴 죽일거냐고 길길이 뛰길래 난처했습니다.”
 “빌려주지 마. 한쪽만 차질내면 됐지, 자네 팀까지 끌어들일 순 없어. 도대체······.”
 민달호는 시선을 돌렸다.
 “강 대리야 성실한 사람인데 밑의 직원들이 제대로 따라주지 않는 것 같아요.”
 “······.”
 “공장들한테서도 인기가 좋은 것 같던데 이번 원단 차질로 고민하는 것 같았습니다.”
 “공장에 인기 좋으면 뭐해? 공장한테서 욕 얻어먹더라도 실적 채우고 이익 많이 올려야 월급 값을 하지.”
 한세웅이 웃음을 띠었다.
 “공장하고 불편해지면 죽도 밥도 안 되는 걸 알고 계시잖습니까? 그리고······.”
 한세웅은 주위를 둘러본 후, 주머니에서 흰색 봉투를 꺼내 민달호 앞에 올려놓았다.
 “어젯밤 철야하고 나오니까 정호섬유 정 사장이 저한테 봉투를 주더군요. 그래서 그냥 받아왔습니다.”
 “이건 뭐야?”
 민달호가 나직이 물었다.
 “2백만 원 들어 있더군요.”
 “이걸 다 내놓으면 어떡해?”
 “제 스타일 아시잖습니까?”
 “이봐, 반으로 나눠. 그리고 일일이 그런 보고 안 해도 돼, 알았지?”
 “그러겠습니다.”

댓글(3)

코뮤니스트    
괜찬은 소설이죠 저는 소설책으로 읽엇는데 문피아에도 올라오네요 이원호님 신작이 다른곳에 올라가는거 갔은데 이원호님 신작문피아에는 않올리나요?
2018.01.07 22:43
하행성    
이거 정말 옛날 소설인데..이런 걸 올리나요? 이건 너무한데.. 최근 작품이면 몰라도 구석기 시대 원시인들 읽던 글을 ? 무료로 계속 풀건가요? 전집 1, 2, 3부 다 소장하고 있는데..ㅋㅋ
2018.01.12 13:48
로드아톰    
8-90년대 한국 무역 전성기를 그린 30년된 소설이죠. 밤의 대통령 황금의 땅 등 이원호 전설의 시작이었죠.
2020.03.05 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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