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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의 왕 1권 (1)

2018.01.12 조회 1,590 추천 22


 #프롤로그
 
 
 
 아버지는 천애 고아로 어렸을 적엔 유리걸식을 하며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며 살았다.
 그것은 자유가 없는 노예나 농노보다도 암울한, 미래가 보이지 않는 비참한 삶이었다고 한다.
 그러다 믿기 어려운 일생일대 단 한 번의 기적이 일어나 부자가 될 수 있었다고 하는데, 정확히 어떤 기적인지 자세한 건 나도 잘 모른다.
 부자가 된 후에도 만족하지 않고 몇 번이나 위험한 도박에 가까운 승부에 도전하고 온갖 더러운 일에도 손을 대 지금은 왕국뿐 아니라 중앙 대륙에서도 손에 꼽히는 부자가 되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어마어마한 부자가 된 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금력 이상으로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싶어 했다.
 물론 돈의 힘으로 귀족이 되었다. 소위 말하는 지방 귀족이라 다스리는 영지도 가지고 있었다. 자신의 영지에선 왕처럼, 아니 황제처럼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도 그렇게 살고 있었지만 아버지가 원하는 건 지방이 아닌 중앙 대륙 제일의 제국 중심의 권력.
 그것을 얻기 위해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다시 한 번 위험한 도박에 도전했다.
 뛰어난 능력을 가졌으나 이를 뒷받침해 줄 세력이 없고 지지 기반이 약한 셋째 황자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주며 자신의 딸 중 하나와 약혼시켰다.
 그러나 위험한 도박은 결국 실패로 끝나 버렸다.
 그로 인한 후폭풍은 실로 참혹했다.
 평생 쌓아 왔던 어마어마한 부가 모조리 날아갔고 귀족의 작위는 박탈당했으며 다스리던 영지마저 빼앗겼다.
 또한 오랜 세월 함께했던 아버지의 부하들과 협력자 대부분이 배신하거나 등을 돌렸다.
 그리고 몇 없었지만 마지막까지 의리를 지킨 이들은 모조리 죽음을 맞이했다.
 아버지는 그런 와중에도 포기하기 않고 살아남기 위해 도망치려 했으나 결국 붙잡혔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 * *
 
 복수!
 그런 생각 따위는 전혀 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실패와 그로 인한 죽음은 따지고 보면 자업자득이라 할 수 있었다. 아버지를 배신하거나 등을 돌린 이들도 자신이 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고 설사 이득을 위해서 그랬다고 해도 아버지는 부자가 되기 위해 그보다 더한 짓을 해 왔다.
 또한 나는 아버지에게 사랑이나 정을 느끼지 않았다.
 자식으로서 도리가 남았긴 한데 그러기엔 나는 너무나도 힘없는 인간일 따름이다.
 마법사이긴 했지만 소속된 마탑에서 정식으로 인정해 준 마법사가 아닌, 아직 배워야 할 것이 많은 견습 마법사에 불가했고 의욕도 없었다.
 아버지가 죽었다고 들었을 땐 덤덤했을 뿐이고 오히려 친했던 하인들이 걱정되었다.
 그 외에도 피를 나눈 형제랄까, 어머니가 다른 이복형제들도 많이 있었는데, 그 대부분이 서로를 시기하거나 견제하는 경쟁자이며 엄청나게 괴롭혔던 기억밖에 없기에 걱정하진 않았다.
 그래도 잘 대해 주거나 친하게 지낸 형제들도 몇 있었지만, 지금 내가 남 걱정해 줄 처지는 아니었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나에게도 불똥이 튈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짐을 챙겨 도망칠까 하다가 일이 터진 제국과 멀리 떨어진 왕국이기도 했고 이제 조그만 더 버티면 마탑에서 정식으로 마법사가 될 수 있기에 일단 버텨 보기로 했다.
 내가 세상은 너무 낙관적으로 보았던 것 같다. 죽은 아버지에게 채무 관계가 있는, 소위 빚쟁이가 나를 찾아온 것이다.
 중앙 대륙에서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큰 부자가 무슨 빚이 있냐고 하겠지만, 원래 그 바닥의 채무 관계라는 것이 빚이 없을 수가 없는 것이다.
 설사 빚이 없다고 해도 도박에서 패해 망해 버리면 없던 빚도 생겨난다.
 아버지가 쌓은 어마어마한 부도 그런 식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승리하면 빼앗고 그와 반대로 패배하면 빼앗긴다.
 승부에서 패배한 아버지의 아들인 나는 원치 않게도 빼앗기는 입장이 되었다.
 물론 나는 어떻게든 빼앗기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그 상대가 좋지 않았다. 나를 찾아온 빚쟁이는 뒷골목에서 거들먹거리는 사채업자 따위가 아니었다. 마탑이 있는 왕국과 제국을 포함한 중앙 대륙에서 정식으로 인정받은 전문가인 것이다.
 견습 마법사인 나로서는 감히 대항할 수 없는 강자였다. 설사 정마법사가 되었다고 해도 대항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그들이 내 앞에 나타난 이상 내 등골까지 말끔하게 빨아먹을 것이다.
 “아시다시피 고객님의 부친께서는 저희 아크상회에서 상당한 금액을 빌리셨습니다. 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보도록 하지요.”
 “상속을 포기하겠습니다.”
 “하하하, 재미있는 농담입니다. 그렇게는 안 됩니다.”
 “어째서요?”
 통하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따지듯 물어보았다.
 “법으로 그렇게 정해져 있으니까요.”
 “결국 나에게 아버지의 빚을 받아 내겠다?”
 내 물음에 전문가는 부정하지 않았다.
 “예, 하지만 그리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고객님은 분명히 해내실 수 있을 겁니다. 아직 견습이지만 그래도 마법사이시니까요.”
 그 말에 나는 욕설을 내뱉지 않을 수 없었다.
 “젠장! 그 말은, 즉 나보고 평생 노예처럼 살라는 뜻입니까?”
 마법사는 고급 인력으로 부려 먹기에 따라선 막대한 이득을 얻을 수 있었다. 이건 죽은 아버지도 사용한 수법이라 잘 알고 있다.
 “하하, 진짜 노예가 얼마나 비참한지 아신다면 그런 말은 하지 않을 겁니다. 마법사라 운이 좋다고 생각하시는 것이 좋을 겁니다.”
 그런 건 듣지 않아도 잘 알고 있었지만, 기분 나쁜 건 없어지지 않아 욕설을 내뱉지 않을 수 없었다.
 “빌어먹을!”
 용건을 마친 빚쟁이가 돌아간 후 방법이 없을까 하고 알아보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나를 찾아온 빚쟁이, 아크상회는 죽은 아버지 이상으로 악명이 자자한 악당이었고 그만큼 큰 힘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죽지 않는 이상 아버지의 빚을 갚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을 위해 평생 노예로 부려지게 된 것이다.
 도망치자!
 그런 생각도 잠시 했었지만 그만두었다. 도망치는 게 가능할지 알 수 없을뿐더러 설사 도망치는 게 가능하다고 해도 달리 갈 곳이 없었다.
 아크상회의 눈은 중앙 대륙 어디나 닿지 않는 곳이 없었기에 북부나 동부로 가는 수밖에 없었다.
 북부는 아인종들이 지배하는 세상이라 도저히 인간이 살 만한 곳에 아니었고 동부는 비교적 살 만하긴 하지만 문화가 다르기에 살아가는 게 무척 막막했다.
 덧붙여 남부는 밀림으로 온갖 맹수 및 몬스터 천국이고 서부는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무법 지대였다.
 무엇보다 그동안 배웠던 마법이 아까웠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마탑에서 정식으로 마법사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도저히 포기할 수가 없었다.
 아크상회에선 노예처럼 부려 먹기 위해서라도 내가 마법사가 되는 것을 지원해 줄 것이다.
 감정적인 점을 죽이고 이성적으로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죽은 아버지도 결국은 나를 노예처럼 부려 먹었을 것이 분명했기에 그리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어떤 의미에선 훨씬 나은 생활을 보낼지도 모른다.
 “좋아, 한번 해 보자. 까짓것, 죽기야 하겠어.”
 나는 고민 끝에 결국 아크상회의 노예, 아니 개가 되기로 결정했다.
 
 
 
 #상태 창
 
 
 
 아크상회는 죽은 아버지 이상으로 악명이 자자한 곳이다. 그 이유는 돈을 다루는 금융업과 인간을 상품으로 다루는 노예 매매업을 하기 때문이다.
 금융업은 소위 말하는 고리나 사채 같은 불법이 아닌 제국의 법으로 인정받은 정당한 사업이지만, 만약 빚을 지고도 갚지 못하게 되면 등골까지 빨아먹기로 악명이 높았다.
 인간을 상품으로 다루는 사업은 노예 매매인데 제국을 포함해 중앙 대륙에서 공식적으로는 노예제도가 사라졌지만 음성적으론 당연하게 노예가 거래되고 있었다. 게다가 표면적으로 빚으로 얽매는 것만으로도 얼마든지 합법적으로 노예처럼 부려 먹을 수 있었다.
 나는 이 중 후자에 해당되었다.
 덧붙여 아버지도 아크상회가 했던 것과 똑같은 사업을 해 왔다.
 노예가 된 이들은 광산이나 노잡이와 같은 실로 혹독한 곳으로 가게 되고 운이 좋으면 농노처럼 살아가기도 한다.
 때로는 약육강식의 무법 세계인 서부 대륙으로 팔아넘기기도 했다.
 내가 아크상회의 개로서 처음 한 일은 노예 매매로, 정확하게는 노예 상인들의 호위였다.
 솔직히 마법사라 해도 전투가 아니라 마법의 연구를 중시하는 마학자인 나는 상인들의 호위엔 어울리지 않았다. 아크상회도 이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을 텐데 이런 일을 시키는 것을 보면 뭔가 이유가 있는 것 같았다. 어쩌면 내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확인하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딱히 노예제도나 노예 매매를 좋아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신념을 가지고 반드시 없애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기에 덤덤하게 일을 했다.
 상인들과 함께 목적지까지 왔다 갔다 했을 뿐이니 달리 일을 했다는 느낌은 없었다.
 그 후에도 비슷한 일을 몇 번 하였고 어떤 땐 서부의 노예사냥에 참가한 적도 있었다.
 문명에서 동떨어진 야만 부족이라 해도 분명 죄 없는 사람들을 습격하고 살해하거나 납치하여 노예를 만드는 과정은 말 그대로 끔찍했지만, 눈살을 찌푸렸을 뿐 반대하거나 방해하지 않았다. 오히려 갑작스러운 습격에 저항하려는 이들 중 한 명이 나에게 덤벼 왔기에 나는 깜짝 놀라며 마법을 사용하여 죽이기까지 했다.
 그것은 생애 첫 살인이기도 해서 노예사냥과 더해져 기분이 정말 더럽고 미칠 것 같았지만, 차마 더 이상 못하겠다고 하지는 않았다. 뭔가의 시험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앞으로 보다 나은 삶을 위해서 참기로 했다.
 덕분에 나는 아크상회에서 인정을 받은 것 같았다. 그래 봤자 짖으라면 짖고 물라면 무는 개에 지나지 않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거의 1년 가까이 노예 관련된 일을 하고 인정을 받은 나는 소속된 마탑에서 정식으로 마법사가 될 수 있었다. 시험을 치르지 않았음에도 정마법사가 된 것이다.
 아크상회에서 손을 써 준 모양이다.
 마법사가 될 수 있었지만 생각했던 것과 달리 그리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다. 시험도 치르지 않았는데 마법사가 되니 뭔가 허무하기까지 했다.
 “이런 것이 인생이라는 거겠지.”
 나는 앞으로도 평생을 이런 식으로 살아갈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 * *
 
 아크상회의 개로 살아가게 된 지 어느덧 2년이 되었다.
 요즘 내가 하는 일은 노예 매매나 노예사냥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끔찍한 것이다.
 역사에도 제대로 기록되지 않은 머나먼 고대 마법사의 것으로 추정되는 던전을 조사하는 일이었는데, 워낙 오래된 곳이라 먼저 수백 명이 넘는 노예들을 동원해 입구라 생각되는 곳을 뚫어야만 했다.
 당연히 노예들을 관리하고 감시하는 이들도 필요했는데, 나는 그중 한 명이라 할 수 있었다.
 물론 나는 근래 마법사 중에서는 흔치 않게 고대어를 공부하였기에 유물이 발견되면 그곳을 조사하는 일을 우선시했다.
 그밖에 던전 탐색에 경험이 많은 도굴꾼이자 도적이기도 한 젠더라는 이름의 중년 남자가 있었는데, 나와 비슷하게 아크상회에 큰 빚을 진 사람으로 대화를 나누며 이곳에서 유일하게 친하게 지냈다.
 이곳의 관리자와 감시자 들은 나나 젠더를 무시하며 상대하지 않았고 그와 반대로 이곳에 끌려온 노예들은 나를 두려워하거나 혹은 증오가 담긴 눈으로 노려보았다.
 나는 그런 그들의 기분을 십분 이해하고 있기에 쉽게 친해질 수가 없었다.
 “훗, 친해진다고 해서 좋을 건 없지만······.”
 그때 가죽 갑옷을 중년 남자가 나타났다. 젠더였다.
 “어이! 큰일 났다, 큰일 났어!”
 “무슨 일인데 그렇게 호들갑을 떠시는 겁니까?”
 “입구를 찾아냈어. 이제 곧 안을 탐색하게 될 거야!”
 “그렇군요. 그런데 뭐가 큰일이라는 겁니까?”
 “너 말이야, 의욕이 없는 건 알겠는데 태평한 소리도 그 정도면 병이라고. 전에도 말했지만 고대의 던전을 수색해서 귀한 물건을 찾아내면 비밀을 지키기 위해 더 이상 필요 없는 이들을 제거할 것이 뻔하잖아.”
 “또 그 소리인가요? 그런 건 소설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고요.”
 “너야말로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지 몰라서 그런 소리를 하지. 장담하건대 분명 제거할 거야. 예전에도 지금과 비슷한 일을 겪었다고.”
 “에휴! 세상이 무서운 건 저도 알 만큼 압니다. 귀족이나 나라에서 하는 일이라면 가능하겠지만, 여기 고대 던전을 탐색하는 건 다름 아닌 아크상회입니다. 손익계산에 철저한 그들이 굳이 비밀을 지키기 위해 저를 제거하거나 하는 일은 없다고요.”
 “제거한다니까!”
 “안 해요. 걱정 마세요.”
 나는 괜찮다는 듯 손을 내저으면서 과연 어떨지 생각했다.
 고대 던전에서 찾아낸 유물이 천문학적인 가치를 가진 물건이라면 비밀을 지키기 위한 조치를 취할 것이다.
 젠더의 말처럼 아는 사람을 모조리 제거하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인 건 맞지만, 이득을 중시하는 상인에겐 최선이 아니었다.
 이런 일은 기본적으로 비밀을 아는 사람은 적을수록 좋다. 하지만 굳이 손해를 입을 필요는 없다.
 결론을 내면 적어도 나는 죽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이곳에 끌려온 노예들은 아마도 제거될 거고 도굴꾼이자 도적 출신인 젠더도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나는 고급 인력인 마법사이기에 제거하지 않고 다른 일에 쓰일 것이다.
 물론 이 사실을 굳이 젠더에게 이야기할 생각은 없었다. 이곳에서 친하게 지낸 사이라 무척 미안하긴 하지만 괜히 이야기했다가 젠더가 도망친다며 문제라도 일으키면 그 불똥이 나에게 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나만 아니면 돼. 젠더에겐 미안하지만 그런 게 인생이지.’
 던전의 입구를 찾았기에 이제 그 안으로 들어가 탐색해야 했는데, 마법사인 나도 그중 한 명에 포함되었다.
 던전 안에 있을 함정이나 길 찾기는 젠더와 아크상회에서 보낸 전문가가 하겠지만, 마법적인 것은 내가 해야 하는 것이다. 당연히 나 말고도 아크상회에서 보낸 다른 마법사가 더 있었다.
 던전 안으로 들어서고 한동안은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예상대로 함정이 있긴 했지만 젠더와 다른 전문가가 찾아내어 해체하거나 회피할 수 있었다.
 그런 식으로 계속해서 전진하던 가운데 드디어 마법으로 잠겨 있는 석문을 발견하고 걸음을 멈추었다. 내가 발견한 것이 아니라 아크상회의 마법사가 찾아낸 것이었다.
 이런 일에는 고대어를 공부한 나보다도 경험이 많았기에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마법사는 즉시 해제 작업을 시작했는데, 한참을 끙끙거리면서도 좀처럼 작업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있었다.
 “흠, 무척 어렵군요.”
 아크상회의 마법사는 모두의 눈치를 느꼈는지 땀을 흘리며 변명하듯 중얼거렸다.
 나는 그런 그에게 다가갔다.
 “제가 좀 살펴봐도 될까요?”
 내 말에 아크상회의 마법사는 나를 살짝 노려보다가 곧 작게 한숨을 토해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대로 해 보시죠.”
 “예, 그럼······.”
 살펴보니 확실히 아크상회의 마법사가 마법을 해체하기 어려워 보였다. 고대어로 짜인 술식이기 때문이다.
 전에도 말했지만 나처럼 고대어를 배우고 연구하는 마법사는 얼마 없었다. 왜냐하면 대략 천 년 전 어느 천재 마법사가 당시의 마법을 체계화시켰기 때문이다.
 그게 서클 마법이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 마법의 기본이라 할 수 있다.
 이게 무슨 소리인지 쉽게 설명하자면 이렇다.
 서클 마법은 수학으로 마력량과 그에 따른 계산을 해서 펼치는 마법인데, 마력이 충분하고 수식에 따르면 반드시 마법이 문제없이 발동한다.
 그에 비해 지금은 거의 사장된 고대어 마법은 수학이 아닌 문학에 가까워 그때그때의 감정이나 감각, 분위기 기타 환경에 강한 영향을 받는다. 그 때문에 마법의 발동이 불안정하고 마법의 효과나 위력도 천차만별이라 서클 마법에 비해 효율이 떨어지고 사고도 많았다.
 그런 이유로 대부분의 마법사는 기본이자 대세인 서클 마법을 사용했고 고대어 마법은 학문으로 연구하는 마법사가 아니면 굳이 배우려고 하지 않았다.
 나도 배울 굳이 고대어를 배울 생각이 없었지만 마탑에 들어갔을 때 만난 스승이 세상에 몇 없는 고대어를 연구하는 마학자라서 어쩔 수가 없었다.
 각설하고 서클 마법이 완성된 천 년보다 훨씬 옛날 옛적 고대에 사용한 고대어 마법이니 서클 마법만을 사용하는 아크상회의 마법사가 해체할 수 없는 것이 당연했다.
 견습 마법사나 다름없는 내가 고대 던전을 탐색하는 중대한 일을 맡게 된 이유가 바로 고대어를 배웠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가 쉽게 해체할 수 있느냐 하면은 그건 또 다른 문제였다.
 글을 배웠다고 해서 문학의 이치를 깨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고대어 마법을 사용한 마법사가 어떤 생각과 감정을 느꼈는지 유추해야만 했는데, 그런 게 쉬울 리 없었다.
 그래도 손조차 쓰지 못하는 아크상회의 마법사보단 나을 것이다.
 대충 감으로 때려 맞혀야겠지만 그리 큰 문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믿자.
 
 문 앞에 고난이 시작될 것이니, 꿈이 생길 것이라. 그대 힘의 상승을 축하하리라······.
 
 그 뜻을 알 수 없는 고대어를 해석하고 해제 키를 유추하여 고대어로 읊어 발동시켜 보았다.
 “고난, 희망, 시작, 끝, 꿈, 깨어남, 상승, 하강······.”
 고대어로 몇백의 단어를 내뱉는 가운데 갑자기 진동이 일어나며 석문을 열리기 시작했다.
 “오오! 열렸군!”
 아크상회에서 온 한 명이 감탄하며 소리쳤다.
 나는 땀을 닦아 내며 그들에게 미소를 지어 주었다.
 이거라면 내 재능을 인정해서 젠더의 말처럼 최악의 상황이 일어난다고 해도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 때문에 잠깐 방심했던 걸까, 석문이 열림과 동시에 안으로 들어섰고 그 순간 발밑이 쑥 꺼지며 밑으로 떨어졌다.
 “으아아!”
 나는 본능적인 공포에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비명을 토해 냈다. 그런 나를 구해 준 것은 젠더였다.
 “지금 뭐 하는 거야, 위험하게.”
 젠더가 내가 떨어지는 것과 거의 동시에 손을 내뻗어 내가 입고 있는 로브의 붙잡아 준 것이다. 덕분에 살았다.
 “아! 구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젠더는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내저었다.
 “석문의 마법을 푼 건 잘했는데, 그렇다고 괜히 잘난 척 나서지 말고 조심하라고. 이런 던전에선 한순간의 방심이나 실수로도 죽을 수 있으니까.”
 “예, 명심하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가 떨어질 뻔한 구멍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마법의 빛으로 비추어 보았지만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은 곳이었다. 바닥이 어떤지 모르겠지만 떨어졌다면 반드시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다.
 구멍의 깊이는 둘째 치고 폭은 그리 넓지 않았기에 쉽게 건너갈 수 있었다. 물론 사람의 심리를 이용하여 함정이 이중으로 깔려 있을 수도 있기에 젠더와 다른 전문가가 나서 꼼꼼하게 살펴보았고 함정이 없음을 확인하고서야 지나갈 수 있었다.
 이후에도 몇십 개의 함정이 있어 해체하거나 회피했고 마법이 있으면 내가 나서 해결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다.
 우리는 고대의 던전이니 얼추 몇 달 동안 왔다 갔다 하며 탐색하게 될 거라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반나절도 안 되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도서관이라 생각되는 곳이었다.
 도서관이라 해도 작은 책장에 100권도 안 되는 책들이 놓여 있고 책을 읽을 때 사용했을 탁자와 의자만이 덩그러니 있을 뿐이었다.
 “설마 여기가 끝인가?”
 나는 믿을 수 없는 얼굴로 살펴보았지만 길은 더 이상 없었다.
 젠더와 전문가가 도서관 곳곳을 탐색해 보았지만 달리 숨겨진 길은 찾아내지 못했다.
 “여기가 던전의 마지막이 맞는 것 같다. 노예들까지 동원해 가며 고생했던 가치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젠더도 허무한 듯 말하였지만 그리 나쁜 것 같진 않았다. 왜냐하면 던전에서 발견한 물건이 하찮은 것일수록 아크상회에서 비밀을 지키기 위해 우리를 제거할 위험이 줄어드니까.
 한편 우리들과 함께 들어온 아크상회의 책임자 비르숍은 책장에 있는 책 한 권을 꺼내어 펼쳐 살펴보더니 고개를 내저었다.
 “으음, 고대어군.”
 고대의 던전에 있는 책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고대어라면 제가 읽어 볼까요?”
 나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물어보았다.
 비르숍은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오. 일단 이곳에 있는 책 몇 권을 표본으로 챙기고 밖으로 나가도록 합시다. 물론 본격적인 조사는 계속될 것입니다.”
 “예.”
 비르숍이 샘플로 세 권의 책을 챙긴 후 밖으로 나가게 되었는데, 왔던 길을 돌아가는 것이고 함정을 해체하거나 표시해 놓았기에 한 시간도 안 되어 마법으로 잠긴 석문 앞 구멍이 있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제 10분 정도만 더 걸어가면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잠깐, 죄송합니다만 모두들 잠시만 멈추십시오.”
 비르숍의 말에 나를 포함해 모두 발을 멈추었고 비르숍을 바라보며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카리스 프라이스 씨.”
 비르숍은 나의 이름을 말하며 살며시 미소를 지어 주었는데, 왠지 모르게 기분이 이상했다.
 이건, 뭐지?
 정체 모를 오싹함에 전신이 부르르 떨려 왔다.
 마법사의 육감인가?
 “죄송합니다만 이곳에서 죽어 주셔야겠습니다.”
 “예? 하하, 지금 무슨 농담을······.”
 나는 크게 당황하여 억지로 웃으며 말했지만, 비르숍을 포함해 어느 누구도 반응해 주지 않았다.
 바보가 아닌 이상 지금 어떤 상황이 일어났는지 알아차리지 못할 리 없었다.
 “진심입니까?”
 나의 물음에 비르숍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젠더를 바라보았다.
 ‘이곳에서 유일하게 친했던 그라면 나를 도와주지 않을까?’ 하는 헛된 희망을 품어 보았지만 역시나 소용없었다.
 젠더는 인상을 쓰며 내 눈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미안하다.”
 나는 젠더의 태도에 더 이상 견디지 못한 채 소리쳤다.
 “어째서 저를 죽이려는 겁니까! 그럴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이곳에서 도대체 뭘 발견했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관심 없습니다. 그보다 고대어를 알고 있는 마법사인 저는 무척 쓸모가 있을 겁니다. 아크상회의 이득을 생각하면······.”
 “죄송합니다. 저도 카리스 씨를 제거하는 것이 아크상회에 이득이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고 진심으로 하고 싶지 않지만 위에서 시킨 일입니다. 그러니 얌전히 죽어 주십시오.”
 “좆 까! 그딴 말도 안 되는 개소리에 내가 죽을 것 같아!”
 나는 욕설을 내뱉으며 만에 하나 살아날 가능성을 믿고 마법을 사용하려 했지만, 그보다 빨리 젠더가 달려와 단련된 주먹으로 나의 얼굴과 몸을 후려쳤다.
 “으윽!”
 내가 충격과 고통에 신음을 토해 내며 비틀거리는 가운데 젠더는 그런 나를 구멍 쪽으로 밀어붙였다.
 “이렇게 돼서 정말 미안하다. 그러니까 내가 전부터 뭔가 수상하다며 도망치자고 말했잖아. 결과적으론 이렇게 되었지만, 그래도 위험을 무릅쓰고 도와줄 수는 없어. 나는 지켜야 할 가족이 있다. 나만큼은 반드시 살아남아야 해.”
 “개소······.”
 젠더의 그 말에 나는 욕설을 내뱉으려 했지만 그보다 빨리 젠더의 손에 밀려 바닥이 보이지 않는 구멍 아래로 떨어졌 버렸다.
 “으아아아!”
 밑으로 떨어지는 특유의 감각과 사방팔방이 짙은 어둠으로 감싸이는 것에 공포를 느낀 나는 꼴사납게 괴성을 토해 내며 정신을 잃고 말았다.
 
 * * *
 
 정신을 잃고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정신을 차려 눈을 떠 보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짙은 어둠 속에 있었다.
 “으으, 뭐지? 설마 이곳이 저세상이란 말인가?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둡다니. 젠장, 지옥에 떨어진 건 아니겠지?”
 나는 스스로를 지옥에 떨어질 정도의 악인이라 생각하지 않았지만, 살아오면서 온갖 악행이나 불합리한 일을 못 본 척 눈을 돌려 왔고 그를 통해 이득을 취한 것은 사실이다. 그런 것도 죄라면 지옥에 떨어졌을지도 모른다.
 “으으, 정말 지옥인가?”
 지옥에 떨어졌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신음을 토해 내며 전신을 떨었지만 곧 이성을 되찾았다. 이래 봬도 마법을 수련한 몸이다. 마법사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냉정한 판단을 내려야 하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 나는 근본적으로 학자라서 그런 능력까지는 필요 없었지만, 아크상회의 개가 된 후로 만약을 위해 준비해 왔었다.
 “정신 차리자. 여기가 지옥일 리가 없어. 저세상도 분명 아니야.”
 이성을 되찾고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판단해 보았다.
 그래, 맞아. 나는 아크상회의 명령에 따라 고대 던전에 들어왔다가 이유도 모른 채 아크상회에 의해 고대 던전 안에 있던 깊이를 알 수 없는 구멍에 떨어졌다. 이곳에 와서 친하게 지냈던 도굴꾼이자 도적 출신인 젠더가 직접 나를 밀어 넣었다.
 “제기랄, 개자식!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네가 직접 나를 배신해!”
 믿었던 친구에게 배신당했다는 분노에 소리쳤고 다시 냉정을 되찾았다. 만약 입장이 바뀌어 같은 일이 일어났다면 나도 젠더를 배신했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내 손으로 직접 구멍에 밀어 넣지는 않을 거라고!”
 그 생각에 다시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어떻게든 가라앉히며 어둠을 몰아내기 위해 마법을 발동했다.
 “라이트!”
 1서클 마법.
 마법사 중에서도 몇 없는 고대어를 배운 나였지만 서클 마법을 배우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지닌 마력이 충분하고 수식만 정확하면 반드시 발동하는 마법이기에 무척 편리하기 때문이다.
 덧붙여 내 서클 마법의 경지는 1서클 마스터.
 마스터라 해도 1서클의 모든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지닌 마력량이 이론적으로 1서클의 마법을 무난하게 사용할 수 있을 정도면 1서클 마스터라 불리게 된다.
 알고 있겠지만 서클 마법은 1서클에서 9서클까지이며 현시대의 인간 마법사의 경지는 8서클 마스터가 한계다.
 8서클 마스터만 되어도 모든 마법사의 정점인 대마법사로 불리는데, 인간 중에선 오직 세 명밖에 없었다.
 마법이 발동함과 동시에 손톱 크기만 한 빛이 반짝이며 온 사방을 감싸고 있던 어둠이 사라졌다.
 나는 사방이 석벽으로 만들어진 장소의 허공에 떠 있었다. 아니, 매달려 있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자세하게 살펴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가느다란 줄이 로브 안쪽 바지를 조이는 벨트와 연결되어 바닥에 떨어져 죽지 않을 수 있었다.
 “이게 뭐지?”
 내 기억에는 존재하지 않는 물건으로 그야말로 생명 줄이라 할 수 있었다.
 “아! 젠더가 도와준 건가?”
 젠더는 안 되는 걸 알면서도 저항하려는 나를 제압하여 흠씬 두들겨 팬 후 구멍 아래로 던져 넣었다. 나는 배신감에 크게 분노하였는데, 알고 보니 젠더는 나를 살려 주기 위해서 그랬던 것이다.
 보이지 않는 가느다란 줄을 벨트와 연결한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어떻게 허공에 매달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죽지 않고 이렇게 살아 있기에 감사를 표했다.
 “아무것고 모르고 화를 낸 거 죄송합니다. 다음에 다시 만나면 생명을 구해 준 은혜를 갚도록 하지요.”
 상황 파악이 대충 끝났으니 앞으로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결정해야 했다.
 “위에는 아크상회의 하수인들이 있으니 올라갈 수는 없겠지? 밑으로 내려가자.”
 지금으로선 살길은 그것뿐이라는 생각에 밑으로 내려가기로 결정하고 그에 필요한 마법을 떠올려 보았다.
 하늘을 나는 마법인 ‘플라이’는 아직 1서클인 나는 사용할 수 없었다. 그 대신 벽에 붙어 암벽등반을 하듯이 조심해서 내려가야 했다.
 비록 암벽등반의 전문가는 아니었지만 마찰력을 없애 미끄러지는 ‘그리스’와 반대되는 접착의 마법을 사용하면 되기에 어렵지는 않았다.
 내 벨트와 연결된 가느다란 줄은 뭐로 만들어졌는지 모르겠지만 무척 질기고 단단하여 칼을 사용해도 끊어지지 않았기에 어쩔 수 없이 벨트를 벗어야 했다.
 벨트를 벗어 자칫 바지가 벗겨질까 불안했지만 생각해 보니 설사 벗겨진다고 해도 이곳에 보는 사람도 없으니 별로 상관없었다. 그래서 아예 바지를 벗어 허리에 묶었다.
 우여곡절 끝에 어떻게든 벽에 붙어 밑으로 내려가기 시작했고 얼마나 깊은지 한참을 내려간 끝에 바닥에 도착할 수 있었다.
 “휴우, 드디어 바닥에 도착했다. 무슨 함정이 이렇게나 깊은 거지?”
 새삼 생각해 보니 함정이 아닐 가능성이 있었다. 효과에 비해 들어간 노력이 너무 지나친 것이다.
 “으음, 고대 던전의 비밀 통로일 가능성도 있겠군.”
 실제 마법의 빛을 통해 드러나는 저편에 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아크상회도 바보는 아니니 결국 조사하여 이곳에 도착할 것이다.
 “빨리 이곳을 빠져나가야겠다.”
 다만 함정이 있지 않을까 하고 걱정했지만 다행히 위와 달리 함정이 나타나지는 않았다.
 한참을 걸어간 끝에 더 이상 길이 이어지지 않는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나는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생각에 지친 다리를 멈추어 선 채 그대로 주저앉았다.
 “젠장, 힘들어! 젠더에게 맞은 곳도 아프고 다리도 아프고 배도 고프고 목도 마르고. 자칫 잘못하다간 탈수로 죽겠군.”
 힘든 나머지 이대로 잠들고 싶었지만 죽고 싶지 않으면 이런 곳에서 오랜 시간 멈춰 설 수는 없었다.
 “움직이자. 반드시 살아남자.”
 나는 그렇게 주변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전신에 힘이 없어 마법의 빛도 점차 약해져 갔지만 정신력으로 몇 시간은 더 버틸 수 있을 것이다.
 마법의 빛으로 이곳저곳을 살펴보니 작은 성 하나를 세울 정도의 제법 큰 동공이었는데, 그 규모에 비해 존재하는 것은 얼마 없었다. 아니, 전혀 없다고 할 수 있었다.
 “어이가 없군. 그나마 있는 건 저거뿐인가?”
 입구의 반대편에 바위를 깎아 만든 제단 같은 게 있었는데, 그 위엔 얄팍한 책 한 권이 덩그러니 올려져 있었다.
 “이곳에 있는 이 유일한 책이 엄청난 보물이면 좋겠는데. 예를 들어 고대의 대마법이 쓰여 있는 마도서라든가.”
 힘들고 배고프고 목이 마른 지금 당장은 그리 도움은 되지 않겠지만 마법사이기에 나름 기대를 가지고 제단 위에 있는 책에 손을 가져갔다.
 그 순간!
 책을 통해 눈부신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책은 그대로 빛의 가루가 된 채 사방으로 흩어졌다.
 “뭐지!”
 갑작스러운 상황에 깜짝 놀라 소리치는 가운데 책이 산산이 부서지며 만들어진 빛의 가루가 나를 향해 날아왔다.
 “으아악!”
 비명을 지르며 본능적으로 도망치려 했지만 그보다 빨리 빛의 가루는 내 눈 속으로 파고들었다.
 마치 불에 잘 달군 뜨거운 송곳을 단숨에 쑤셔 넣는 고통과 충격이었다. 그리고 눈만이 아니라 입과 코, 귀를 통해서도 그 가루가 쏟아져 들어오는 것을 고통으로써 느낄 수가 있었다.
 덕분에 비명조차 제대로 지르지 못한 채 생각했다.
 젠더의 도움으로 간신히 죽었다 살아났는데, 고대 던전에 방치된 정체를 알 수 없는 저주의 책 때문에 이렇게 죽는 것인가?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될 정도로 끔찍한 고통은 조금도 사라질 낌새를 보이지 않는 가운데, 알 수 없는 음성이 머릿속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rpdlatmxkxm······.
 
 아마도 고대어인 것 같은데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고대어를 배우긴 했지만 문자를 해석하는 것과 음성을 해석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인 것이다.
 문자를 해석하는 것조차 그리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다. 고대어를 연구하는 것에 있어서 영원한 숙제라 할 수 있었다.
 아니, 지금은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너무 고통스럽기에 고대어로 뭐라 지껄이든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다.
 고대어의 음성이 계속되는 가운데 문자가 나타났다.
 눈이 보이지 않음에도 어째서인지 그 문자만은 또렷하게 보였다.
 
 축하······. 시작······. 힘······.
 
 음성과 달리 문자는 해석할 수 있었지만 몇 개 되지 않았다. 알고 있던 것과 모양이 미묘하게 달랐고 문법도 정확하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 고대어를 해석하기 위해서는 몇 단계를 거쳐 고쳐 쓰고 재배열하고 지금의 문법으로 고쳐야 하는데, 이 또한 정확하다고 할 수 없었다. 고대어를 연구하는 학자마다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나로 모아 통합하면 그나마 편해질 텐데 학자의 고집이라는 것이 있어 만났다 하면 자신의 것이야말로 맞는 것이라 주장하기 일쑤였다. 물론 그게 맞을 리가 없었다.
 덕분에 이 모양인데 거듭 말하지만 그딴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빌어먹을 고통이 빨리 사라졌으면 좋겠다. 그 결과 죽는다 해도 말이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고통이 돌연 예고도 없이 사라졌다.
 여운이 조금 남아 있긴 했지만 그래도 그 끔찍한 고통이 사라진 것만 해도 어디인가. 눈물이 나올 정도로 무척이나 기쁘기 그지없었다.
 “으흑! 드디어 끝났다, 끝났구나.”
 어린애처럼 우는 것도 잠시 정체를 알 수 없는 저주의 책 때문에 생긴 끔찍한 고통은 사라졌지만 그렇다고 다른 문제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재단 위에 있던 책을 만지자 일어난 괴현상은 대체 뭐고 어째서 일어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은 일단 나중에 정리하도록 하자.
 그 후로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지만 빨리 도망치지 않으면 아크상회의 손에 죽을지 모른다.
 “끔찍한 고통은 사라졌지만 배고픔과 목마름이 사라진 것도 아니고 미치겠군.”
 무엇보다 문제는 더 이상 나아갈 길이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되돌아가는 수밖에 없다는 말인데, 지금과 같은 몸 상태로 위로 올라가는 게 쉬운 일도 아니고 설사 올라갔다고 해도 아크상회가 있을 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빠져나갈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젠장, 이번에도 천운에 맞기고 젠더의 도움을 받는 수밖에 없겠군.”
 조금이라도 힘이 있을 때 움직이려는데, 아찔한 현기증이 일어나 걸음을 멈추었다.
 “으으, 뭐지? 아직 끝난 게 아닌 건가?”
 끝났을 거라 생각했던 고통이 다시 시작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식은땀을 흘렸는데, 다행히 고통은 생기지 않았다.
 대신 내 앞쪽으로 정체를 알 수 없는 문자가 나타나 신호를 보내는 듯 반짝거리고 있었다.
 “뭐냐? 눈에 이상이 생긴 건가?”
 정체를 알 수 없는 현상의 이어짐에 두려움을 느끼는 가운데 마법사로서 호기심도 같이 생겨났다. 다름 아닌 고대어이기 때문이다.
 “고대어를 너무 연구해서 헛것이라도 보는 건가?”
 의문을 표하며 앞에 나타난 문자가 무슨 뜻인지 해석해 보았다.
 
  상태······.
 
 “상태······. 창?”
 뜻을 알 수 없는 이상한 말이었다.
 상태라는 것은 사물의 모양이나 형편을 말하는 것인데, 문제는 ‘창’이라는 단어였다.
 ‘창’의 뜻은 창문을 말하는 것으로 앞에 ‘상태’와 합쳐서는 문법적으로 말이 되지 않았다.
 “이상해진 것은 눈이 아니라 머리인 건가?”
 재단 위에 있던 책 때문에 생긴 끔찍한 고통은 사라졌지만 저주는 아직 남아 있을 가능성도 있었다.
 “젠장, 대체 뭐지?”
 욕설을 내뱉으며 지금은 그냥 무시하기로 했지만 계속해서 반짝거리기에 도저히 신경이 쓰여 걸음을 옮길 수가 없었다.
 “미치겠네. 아니, 이미 미쳐 버린 것인지도 모르겠군. 내 눈앞에서 그만 사라져!”
 화가 난 목소리로 소리치며 ‘상태 창’이라는 문자를 손으로 힘껏 후려쳤다.
 그러자 상태 창이 사라지며 그것을 대신하듯 더욱 크고 많은 수의 문자들이 나타났다.
 “이건 또 뭐냐?”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고대어를 연구하는 마법사이자 학자로서 본능적으로 해석해 보았다.
 
 직업 : 마법사
 레벨 : 7
 HP : 25/70
 MP : 83/120
 상태 : 굶주림, 피곤······.
 스킬 : 매직 미사일······.
 
 “이건 나잖아!”
 나는 고대어를 해석하는 것과 동시에 그렇게 소리치고 말았다.
 ‘마법사’가 나왔을 때부터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다.
 ‘레벨’, ‘HP’나 ‘MP’는 그게 대체 어떤 뜻인지 해석이 불가능했지만 다시 나온 ‘상태’에서 굶주림과 피곤이 나오고 기술을 뜻하는 ‘스킬’에서는 내가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이 나오자 나를 뜻하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내 앞에 나타난 ‘상태 창’은 나에 대한 것이었다.
 “이건 역시 저주인가? 고대에서 전해 내려온 저주받은 마도서였던 건가?”
 고대의 저주받은 마도서로 인해 저주받았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혼란이 더욱 깊어지는 가운데 역시 해석이 불가능한 고대어 음성과 함께 또 다른 문자가 떠올렸다.
 
  가방
 
 “설마 가방이 나오는 건 아니겠지?”
 이왕 저주받은 몸 ‘상태 창’ 때와 마찬가지로 ‘가방’에 손을 가져가니 가방이 아닌 사각형의 커다란 공간이 나타났다.
 마법사인 나로서도 정체가 파악되지 않는 현상으로 사각의 공간 한구석에 피처럼 붉은 액체가 담겨 있는 시약병이 떠 있었다.
 “하아, 이젠 나도 모르겠다. 내가 저주를 받아 미쳐 버린 건지. 아니면 고대의 마법일지도······.”
 문자와 마찬가지로 눈에 보일 뿐 만질 수 없는 환상이겠지만 혹시나 싶어 붉은 액체가 담긴 시약병에 손을 가져갔다. 그런데 시약병에서 유리 특유의 매끄러운 촉감이 느껴지는 것이 아닌가?
 “어? 진짜인가?”
 나는 믿을 수 없는 얼굴로 손에 잡히는 시약병을 사각의 공간 안에서 밖으로 꺼내고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아, 이럴 때가 아니지! 정신 차리자. 환각이 더욱 심해진 것일지도.”
 사각형의 공간에 꺼낸 시약병을 살펴보았다.
 시약병의 입구는 밖으로 나온 것과 동시에 개방되어 향기를 느낄 수 있었다.
 피처럼 붉은색이었기에 피비린내가 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피비린내가 아닌 허브의 싸한 향을 느낄 수 있었다.
 “약인가? 아니, 독일지 모르겠군.”
 어떤지 확인해 보고 싶었지만 위험을 무릅쓸 생각은 없었기에 다시 원래 있던 장소로 돌려놓았다.
 “갈증을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바보도 아니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물건에 목숨을 걸 수는 없겠지.”
 시약병을 돌려놓고 잠시 시간이 지나자 사각의 공간은 사라졌다.
 사라지지 않은 채 앞에 계속 남아 있으면 어떻게 할까 걱정이 되었는데 안심이었다.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나중에 고민하기로 하고 아크상회 놈들이 오기 전에 움직이도록 하자.”
 머릿속에서 고대어 음성이 뭐라 말하였지만 문자라면 모를까 알아듣지도 못하기에 무시하고 돌아왔던 길로 걸음을 옮기려는데, 저주의 책이 있었던 제단 앞에 방금 전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길이 나타났다.
 마치 그곳으로 가라는 듯이······.
 “누굴 바보로 아나?”
 무시하려고 했지만 구멍 위로 올라가야 한다는 것과 아크상회가 있다는 것을 생각하니 고민되지 않을 수 없었다.
 “으으, 모르겠다. 내가 아버지는 아니지만 한번 도박을 해 보자!”
 나는 몸을 돌려 재단 앞에 나타난 길을 향해 나아갔다.
 
 
 
 #언데드를 물리치다
 
 
 
 괜히 여기로 왔다!
 안으로 들어서 걸음을 옮긴 지 얼마 안 지나 쩔그럭거리는 기분 나쁜 소리와 함께 언데드인 스켈레톤이 나타난 것이다.
 “젠장! 어째서 언데드가 나타난 거냐고!”
 고작 한 마리뿐이었지만 그대로 등을 돌린 채 도망쳤는데, 어째서인지 입구는 사라지고 없었다.
 이렇게 된 거 어쩔 수 없이 싸우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마법사이이지만 기본적으로 학자인데 말이지.”
 물론 노예 상인을 따라다녔을 때 사람을 죽인 경험이 있지만, 그땐 내가 죽지 않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그랬던 것이었고 싸움을 좋아하지는 않았다.
 “젠장, 언데드인데 통하려나?”
 사용할 마법은 매직 미사일.
 1서클 공격 마법으로 그 위력은 성인 남자가 돌을 힘껏 던지는 것과 같았다.
 서클이 높아질수록 위력은 점점 늘어나겠지만, 1서클이니 그 이상의 위력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가능하다면 파이어 볼을 사용하고 싶지만······.”
 파이어 볼은 2서클 마법.
 사용할 수 있긴 하지만 지금 몸 상태로는 마력이 전부 소진되고 만다. 그렇게 마력을 전부 소모하면 정신을 잃을 것이다.
 지팡이가 없기에 손을 들어 수인을 맺고 다가오는 스켈레톤을 겨누며 발동했다.
 “매직 미사일!”
 순간 수인을 맺은 손을 통해 마력의 덩어리가 빠른 속도로 날아가 스켈레톤의 머리를 강타했다.
 퍼억!
 둔탁한 소리와 함께 매직 미사일에 강타당한 스켈레톤의 머리가 금이 가며 부서졌다.
 “좋았어!”
 기뻐하는 것도 잠시 스켈레톤은 머리가 조금 부서진 것만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계속해서 걸어오기 시작했다.
 “제기랄! 매직 미사일!”
 퍼억!
 다시 한 번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졌지만, 스켈레톤은 머리가 조금 부서지고 파편을 조금 날렸을 뿐 걸음을 멈추지는 않았다.
 이제 나와 스켈레톤과의 거리는 얼마 남지 않았다. 손으로 만질 정도는 아니지만 무기를 사용하면 위험할 정도였다.
 스켈레톤은 손에 쥔 녹슨 검을 들어 나를 향해 휘두르려 했다.
 “으아아아!”
 나는 이대로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에 괴성을 내지르며 머리로 생각한 것이 아닌 거의 본능에 맡겨 마법을 발동했다.
 “매직 미사일!”
 조준이 잘못되었지만 오히려 그것이 운으로 작용하여 머리가 아닌 목을 강타했다.
 생각해 보면 처음부터 단단한 두개골이 아니라 목을 노렸어야 했다.
 퍼억!
 둔탁한 소리와 함께 스켈레톤의 머리가 몸에서 떨어졌고 머리를 잃은 몸뚱이는 방향을 잡지 못한 채 허우적거리기 시작했다.
 몸에서 떨어진 머리는 그대로 내 발 앞까지 굴러 왔는데, 나는 기겁을 하며 발로 차 날려 버렸다.
 스켈레톤의 머리는 벽에 부딪쳤고 이미 두 번이나 매직 미사일에 강타당한 충격 때문인지 그대로 부서져 조각이 되어 버렸다. 그러자 머리를 잃은 스켈레톤의 몸도 힘을 잃고 주저앉았다.
 “살았다······.”
 나 역시 주저앉는 가운데 알아듣지 못할 고대어 음성과 함께 ‘상태 창’이 나타나 신호를 보내듯 번쩍거리기 시작했다.
 “뭔지 모르겠지만 손을 쓸 힘도 없다. 알아서 나타나라.”
 그러자 마치 내 말에 따르는 듯 예의 고대어 문자들이 나타났다.
 
 직업 : 마법사
 레벨 : 7
 HP : 9/70
 MP : 20/120
 상태 : 굶주림, 피곤, 신경쇠약······.
 스킬 : 매직 미사일······.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뭔가 숫자가 줄어든 것 같았다.
 아마도 몸 상태가 나빠지면 숫자가 낮아지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다만 유일하게 숫자가 줄지 않고 늘어난 것이 있었다.
 맨 아래쪽에 위치한 것인데, 고대어로 해석하면 ‘경험치’라 쓰여 있었다.
 경험이란 무언가를 하거나 겪음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으로 배움으로 얻을 수 있는 지식 또한 그에 해당된다.
 아무래도 스켈레톤을 싸워 쓰러트린 것이 경험이 되어 경험치라는 것이 상승한 것 같았다.
 “내 앞에 나타난 문자와 숫자가 무엇을 뜻하는 건지 점점 알 것 같군. 하지만 그래서 뭐 어쨌다는 거지?”
 굳이 눈앞에서 숫자가 줄어드는 것을 보여 주지 않아도 체력과 마력이 떨어지는 것은 알고 있다.
 경험치가 높아지는 것 역시 무슨 도움이 된단 말인가?
 내 몸 상태를 수치로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건 나쁘지 않았지만 지금 당장은 그리 도움이 되지 않았다.
 “고작 스켈레톤 한 마리와 싸운 것만으로도 만신창이가 되어 버렸는데 또다시 한 마리가 더 나타나기라도 한다면 죽음을 피할 수 없겠군.”
 되돌아갈 길은 사라졌고 절망만이 있을 뿐이었다.
 “하하, 비참하군. 내 인생도 이걸로 끝인가?”
 이렇게 끝나 버린다고 생각하니 죽기 전에 확인해 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 ‘가방’이라는 사각 공간에 있는 시약병의 담긴 붉은 액체가 독인지 약인지 궁금했다.
 “어차피 죽을 것 독인지 약인지 직접 확인해 보자.”
 설사 독이라서 죽게 된다고 해도 목이 타들어 갈 것 같은 갈증은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나와라.”
 나의 명령에 고대어로 ‘가방’이라는 사각의 공간이 나타났다.
 그 안에서 구석에 보관되듯 떠 있는 시약병을 꺼내었다.
 밖으로 나오자 시약병의 입구를 통해 허브의 향기가 퍼져 나가 후각을 자극했다.
 배가 고프고 목이 말라서 그런지 내 입안에선 절로 군침이 감돌았다.
 “좋아. 먹어 보자.”
 다시 한 번 각오를 다지고 시약병을 입으로 가져갔다.
 시약병의 붉은 액체는 단숨에 입안으로 흘러 들어가 목 안쪽으로 넘어갔다.
 얼굴 전체로 허브의 향기가 가득 차는 느낌에 전율하는 가운데 나를 괴롭혀 왔던 갈증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배고픔도 왠지 사라진 것 같았다.
 “아니, 느낌만이 아니라 정말 사라졌는데?”
 배고픔에 이어 젠더에게 두들겨 맞고 생긴 타박상의 통증도 사라졌다. 그것을 대신해 마사지를 받은 것 같은 시원함이 감돌고 있었다.
 상태 창의 숫자도 전보다 상승해 있었다.
 
 HP : 70/70
 MP : 32/120
 이건 고대어로도 해석이 안 되어 정확하게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 몸이 좋아진 것만은 확실했다.
 HP는 가득 찬 것 같고 MP는 절반에 미치지 않았지만 몸 상태가 좋아져서인지 시간이 흐르자 천천히 상승하고 있었다.
 “하하하, 독이 아니었구나! 알고 보니 포션이었어!”
 그것도 보통 포션이 아니었다. 시중에서 이 정도로 뛰어난 효과를 가진 포션은 쉽게 구할 수 없다.
 돈을 주고 산다고 하면 은화도 아니고 무려 금화를 열 개를 주어야 할 것이다.
 “포션이 있던 ‘가방’은 다름 아닌 아공간인가?”
 즉, 아티팩트였다.
 많은 양의 물건을 보관할 수 있고 무게도 많이 늘어나지 않는 마법 배낭이나 무한의 주머니가 아공간의 능력을 가진 아티팩트라 할 수 있다.
 ‘가방’은 기존의 마법 배낭이나 무한의 주머니와 비교하면 크게 뛰어나거나 하진 않은 것 같지만, 사각의 공간이 나타나 직접 물건을 확인할 수 있는 점을 보면 전혀 다른 형태의 아티팩트라 할 수 있었다.
 이런 걸 수집하는 고위 마법사에게 팔 수만 있다면 거금을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명확한 형태가 없이 그냥 앞에 나타난 것뿐이라 달리 팔아 버릴 방법은 없었다.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지금은 내가 그냥 사용하자.”
 ‘가방’을 사용한다고 했지만 지금 당장 집어넣은 건 없었다. 그때 마침 스켈레톤이 사용했던 녹슨 검이 눈에 들어왔다.
 “아! 저걸 넣어 볼까?”
 녹슨 검을 집으려고 하는데 녹슨 검 아래쪽으로 예의 고대어가 나타났다.
 “저놈의 고대어는 아무 때나 막 나타나는구나.”
 나는 조금 어이없어하며 어떤 뜻인지 해석해 보았다.
 
 녹슨 검
 녹이 슨 검으로 스켈레톤이 사용했다. 베는 맛이 나쁘다. 무기로서 최하이나 없는 것보단 낫다.
 
 “예상대로 녹슨 검에 대한 설명이로군. 아! 녹슨 검만이 아니라 다른 물건에도 이런 고대어가 나타난다면 물건을 감정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잖아!”
 예를 들어 시골 골동품 가게 한구석에 방치된 값비싼 예술품이라든가, 혹은 진품과 가짜를 구분하는 것에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잘만 사용하면 큰 돈벌이기 될 것 같았다.
 “그런 일을 하려면 아크상회가 무척 걸리긴 하겠지만 나중에 생각해 보도록 하자.”
 어쨌든 고대어의 설명대로 없는 것보단 낫기에 무기로 사용하기로 했다.
 녹슨 검을 손에 들고 상태 창을 거둔 후 앞으로 나아갔다.
 얼마 안 지나 쩔그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스켈레톤이 나타났다.
 “빌어먹을! 또 나타났구나!”
 나는 이미 한번 싸워 봤고 포션을 먹어 힘이 넘쳐흘렀기에 침착한 태도를 유지하며 마법을 발동했다.
 이번엔 수인으로 펼치지 않고 녹슨 검을 지팡이 삼아 단단한 두개골이 있는 머리가 아닌 목을 정확하게 노렸다.
 “매직 미사일!”
 마력의 탄환이 빠르게 날아가 스켈레톤의 목을 강타했다.
 퍼억!
 둔탁한 소리와 함께 스켈레톤의 머리가 몸에서 떨어져 바닥에 떨어졌다. 그러나 스켈레톤은 아직 완전히 쓰러진 것이 아니었다.
 “젠장! 이번엔 발 앞까지 굴러 오지 않는군.”
 매직 미사일을 날리려다가 마력이 아깝기에 그만두고 머리가 있는 곳으로 직접 가기로 했다.
 머리를 잃은 스켈레톤은 손에 든 검을 마구잡이로 휘둘렀는데 너무 가까이 가지 않으면 베일 일은 없었다.
 나는 무사히 스켈레톤의 머리가 떨어진 곳에 도착해 검을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잘 가라!”
 퍼억!
 둔탁한 소리와 함께 스켈레톤의 머리는 부서졌다. 동시에 녹슨 검이 내구성이 다했는지 부러져 버렸다.
 “이런!”
 나는 당황했지만 다행히 이번에 쓰러트린 스켈레톤에게도 검이 있었다. 베는 맛이 나쁜 녹슨 검이었다.
 “아, 실수했다. HP와 MP가 뭔지 확인할 기회였는데······.”
 뒤늦게 확인해 보았다. 경험치가 늘어나고 HP가 그대로인 것 같지만, MP는 천천히 상승하고 있었기에 정확하게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MP가 마법을 사용한 것과 관련이 있는 것 같은데 다음엔 상태 창을 열어 놓고 숫자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확인해 보자.”
 다행인지 불행인지 스켈레톤이 다시 나타났다.
 “매직 미사일!”
 마력의 탄환은 스켈레톤의 목을 강타했고 머리가 몸에서 떨어져 바닥에 떨어졌다.
 상태 창을 확인해 보니 MP의 숫자가 조금 내려갔다.
 “역시 MP는 마법과 상관있었군. 아마도 마력량이겠지.”
 궁금증은 해결되었기에 상태 창을 거두고 스켈레톤의 머리가 있는 곳으로 걸어가 녹슨 검으로 힘껏 내리쳤다.
 퍼억!
 스켈레톤의 두개골이 부서졌고 머리를 잃은 몸통은 움직임을 멈춘 채 쓰러진 가운데 새로운 고대어가 떠올랐다.
 
 레벨 업!
 
 “뭐지!”
 상태 창을 열어 무엇이 변화했는지 확인해 보았다.
 
 직업 : 마법사
 레벨 : 8
 HP : 80/80
 MP : 150/150
 
 레벨이라는 것이 7에서 8로 하나 상승했고 HP와 마력량이 생각되는 MP의 총량이 오른 것은 물론 가득 차 있었다.
 그 때문인지 포션을 먹었을 때처럼 전신에 힘이 늘어난 것 같았다.
 “헉!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레벨이라는 것이 오르니 능력이 상승되고 전신에 힘이 넘쳐흐르다니.
 마력도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서클은 여전히 1서클이었다.
 “내가 가진 상식이나 지식으로는 능력이 높아지고 최고의 상태가 된 것을 빼면 뭐가 어떻게 된 일인지 판단을 내릴 수 없네.”
 수련을 하지 않았음에도 높아졌으니 좋아해야 하나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명확하게 파악할 수 없는 것이 걱정이었다.
 “아아, 골치가 아파 오네. 지금은 이곳을 빠져나가는 것만을 생각하도록 하자.”
 결정을 내리고 길을 따라 나아가는데, 이번에도 어김없이 스켈레톤이 나타났다. 문제는 한 마리가 아닌 두 마리라는 점이었다.
 “괜찮아, 침착하게 마법을 사용하면······.”
 매직 미사일을 발동하려고 하는데, 스켈레톤이 한 마리가 더 나타나나면서 도합 세 마리가 되었다.
 “젠장! 이건 위험한데······.”
 스켈레톤 하나는 실수만 하지 않으면 매직 미사일로 충분히 쓰러트릴 수 있지만, 두 마리까진 어떻게든 될 것 같지만, 세 마리는 조금 위험했다.
 스켈레톤을 완전히 제압하기 위해서는 일단 머리를 몸에서 떨어트린 다음 녹슨 검으로 머리를 박살 내야 하기 때문이다.
 “매직 미사일보다 위력이 강한 마법이 필요해.”
 1서클 마스터에 지나지 않는 내가 사용 가능한 공격 마법은 매직 미사일 말고 한 가지밖에 없었다.
 “사대 원소의 하나인 붉은 화염이여······.”
 매직 미사일과 달리 제법 긴 주문과 함께 시동어를 내뱉었다.
 “파이어 볼!”
 화르르! 꽈꽝!
 파이어 볼에 의해 폭발과 함께 화려한 불꽃이 일어나며 스켈레톤 하나가 그 자리에서 쓰러트렸고 다른 두 마리도 충격을 받고는 뒤로 밀려났다.
 마력이 단숨에 소모돼서 그런지 현기증이 일어났지만 어떻게든 견뎌 내면서 남은 두 마리를 향해 마법을 사용했다.
 “매직 미사일!”
 마력의 탄환이 빠르게 날아가 목을 강타했다.
 “마지막 한 마리!”
 다시 한 번 매직 미사일을 사용해 남은 한 마리의 스켈레톤의 머리를 몸에서 떨어트렸다.
 “후우, 힘들어······.”
 연속으로 마법을 사용한 건 처음이라 힘이 들고 긴장감에 식은땀도 흘러나왔지만, 어떻게든 견뎌 내며 녹슨 검으로 스켈레톤의 머리를 내리쳐 박살 냈다.
 “그래도 어떻게든 쓰러트렸군.”
 그렇게 안심하는 것도 잠깐이었다.
 스켈레톤 특유의 쩔그덕거리는 소리와 함께 스켈레톤이 나타났다.
 스켈레톤 세 마리와 동시에 싸워 조금 지친 상태라 위험하긴 했지만 다행히 한 마리였다.
 “좋아, 덤벼라!”
 그것을 시작으로 계속해서 나타나는 스켈레톤을 다섯 마리 정도 쓰러트리자 예의 고대어로 ‘레벨 업!’이 떠오르며 능력치가 상승하고 한계에 이르렀던 체력과 마력이 가득해졌다.
 상태 창을 확인하니 이러했다.
 
 레벨 : 9
 HP : 90/90
 MP : 190/190
 
 “한때는 너무 절망적인 상황이라 내심 죽음을 각오했었는데 말이지······.”
 스켈레톤들과 싸우다 보면 레벨이 높아지고 내 능력들도 덩달아 높아지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현상이 일어나는 지금이라면 어떻게든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후에도 앞으로 나아가면서 스켈레톤들과 싸웠고 다시 한 번 ‘레벨 업!’이 떠올라 레벨 10이 되었다.
 다만 이번엔 능력이 상승한 것뿐만이 아니라 마법사의 상식으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변화가 생겼다. 몸 중앙에 존재하는 마력의 저장고라 할 수 있는 서클이 하나 늘어나 2서클 마법사가 되었다.
 “이건 말도 안 돼!”
 저주의 책을 만지고 난 후 발생한 여러 알 수 없는 현상에 대해선 일단 이곳에서 무사히 빠져나간 다음 충분히 여유가 생기면 생각하기로 했었지만, 서클이 하나 늘어나 2서클이 된 일은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이건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일이야. 서클이 하나 상승했다고 해서 기뻐할 수가 없어.”
 천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서클 마법의 근간을 뒤흔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혼란에 빠진 채 언제까지고 이미 일어난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마법사로서 그리고 학자로서 이 현상의 비밀을 탐구하여 반드시 밝혀내야만 한다.
 “지금 그럴 때가 아니잖아! 일단 밖으로 나간 다음에 생각하도록 하자.”
 신경이 쓰여 고통스럽지만 상황을 생각하면 어쩔 수가 없었다.
 다시 앞으로 나아갔는데 무려 다섯 마리나 되는 스켈레톤 무리가 나타났다.
 “또 스켈레톤이냐. 저놈들과 계속 싸우려니까 지겹네. 다음엔 좀비 같은 다른 언데드가 나오면 좋겠는데······.”
 처음 만났더라면 절망했겠지만 레벨이 오르면서 능력이 상승하고 2서클이 된 지금은 여유가 넘쳐흘렀다.
 녹슨 검을 지팡이로 삼아 마법을 발동했다.
 “파이어 볼!”
 시동어와 함께 녹슨 검 끝을 통해 화염의 구체가 날아가 스켈레톤 무리의 중심에 떨어졌다.
 꽈꽝!
 폭발과 함께 중심에 있던 스켈레톤 하나가 완전히 박살 났고 다른 네 마리도 폭발의 충격에 바닥에 쓰러졌다. 2서클이 되면서 위력이 상승한 것이다.
 나는 여유를 가지고 다시 마법을 준비해 발동했다.
 “파이어 볼!”
 꽈꽝!
 연이은 폭발과 함께 바닥에 쓰러져 있던 네 마리도 반파되어 사방으로 흩어졌다.
 “한 번 더 파이어 볼을 날리고 싶지만 마력을 아껴야 하니 검으로 마무리를 짓자.”
 두 번의 파이어 볼에 산산조각 난 채 사방으로 흩어진 스켈레톤의 잔해 중 머리를 찾아 녹슨 검으로 박살 낸 후 도대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그러자 스켈레톤에게서 뿌연 영기 같은 것이 나와 나의 몸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럴 수가! 이건 에너지 드레인! 레벨이 오르자 내 능력이 상승하고 이 서클이 된 비밀은 다름 아닌 흑마법이었단 말인가?”
 살해한 상대로부터 힘을 흡수한다. 그로 인해 내 능력이 상승하고 서클이 하나 늘어나 2서클이 되었을 것이다.
 다만 내가 알고 있는 흑마법의 에너지 드레인보다 효율이 높았지만 아마도 고대의 흑마법이라 그랬을 것으로 판단되었다.
 이것으로 모든 비밀은 밝혀졌다.
 “고대의 흑마법이라. 역시 저주의 마도서였나?”
 비밀은 밝혀냈지만 내 몸에 고대의 흑마법이 깃들었다는 생각에 알 수 없는 불안감이 감돌았다. 어떤 부작용이 일어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최악의 경우 악마에게 영혼을 빼앗길 수도 있었다.
 “으으, 비밀을 밝혀냈다고 생각했지만 고민이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늘어나고 말았어.”
 그렇다고 이곳에서 멈춰 설 수는 없었기에 앞을 향해 부지런히 발을 뻗었다.
 잠시 후 새로운 장애물이 나타났다.
 스켈레톤은 아니었고 그렇다고 좀비도 아닌 두 갈래 길이었다.
 “이런! 이런 건 그다지 자신 없는데······.”
 던전 탐험 경험이 많은 젠더라면 어떻게 했을까?
 예전 책에서 읽은 바로는 왼손이나 오른손 둘 중 하나를 벽에 댄 채 계속 나아가면 언젠가는 밖으로 나갈 수 있다고 했는데, 젠더에 말에 따르면 그런 지식을 역이용해 함정을 파 놓는다고 한다.
 “실수하면 X 된다고 했지.”
 괜히 들었다고 생각하며 어디를 먼저 들어갈지 혹시 뭔가 표시가 있나 살펴보려고 하는데, 예의 알아듣지 못할 고대어와 함께 ‘T’라는 문자가 나타나 반짝거렸다.
 “또 해석할 수 없는 문자가 나타났군. 확인해 보면 뭔지 알 수 있겠지.”
 ‘상태 창’이나 ‘가방’ 때와 마찬가지로 ‘T’를 열어 무엇인지 확인해 보았다.
 그러자 지도 같은 것이 나타났다. 아무리 봐도 지도가 맞는 것 같았다.
 “이거 설마 던전의 지도인가? 그리고 이건 나인 것 같은데.”
 지도의 한가운데엔 푸른색의 화살표가 있었는데 본능적으로 나를 표시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도도 나타났겠다. 이걸 보고 밖으로 나가면 좋겠지만 또 다른 문제가 있었으니, 이 지도는 내가 지금까지 지나왔던 부분까지만 있을 뿐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지도를 움직여 꼼꼼하게 살펴본 결과 확실했다.
 “젠장! 이럴 거면 뭐하려고 나타난 거지? 두 갈래 길을 선택하는 것에 있어서 전혀 도움이 안 되잖아!”
 나는 연신 투덜거리며 두 갈래 길 중 오른쪽을 선택해 안으로 들어갔고 최악의 상황과 마주치고 말았다.
 “젠장! 스켈레톤이 지겹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었는데······.”
 스켈레톤 따위하곤 차원이 다른 언데드가 등장한 것이다.
 크어어어!
 나를 향해 괴성을 지르는 그것은 근본은 스켈레톤과 그리 다르지 않았지만 본래 인간이 아니었다. 크기로 볼 때 아마도 오우거라 생각되는데, 다행히 오우거의 강인한 근육은 전혀 없는 뼈다귀이기에 괴력은 발휘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되었다.
 그래도 그 크기가 무려 4미터나 되기에 보는 것만으로도 실로 위압적이었다.
 “선수 필승이다!”
 떨려 오는 몸을 진정시키고는 오우거를 향해 마법을 발동했다.
 “파이어 볼!”
 꽈앙!
 폭발과 함께 오우거는 충격을 받은 듯 주춤거렸지만 스켈레톤과 달리 부서지진 않았다.
 “빌어먹을! 같은 뼈다귀라도 인간하곤 강도가 다르구나!”
 쿠오오오오!
 오우거는 괴성을 내지르며 손에 들고 있던 커다란 뼈다귀를 나를 향해 힘껏 내리쳤다.
 몸을 쓰는 건 잘하지 못하지만 가만히 있다가 죽을 수는 없었기에 몸을 날려 머리 위로 떨어지는 커다란 뼈다귀를 피했다.
 꽈꽝!
 굉음과 함께 방금 전까지 내가 서 있던 바닥이 움푹 들어갔다. 기분 탓인지 내 파이어 볼보다 훨씬 위력이 높은 것 같았다.
 “으으, 한 방이라도 맞으면, 아니 스치기만 해도 죽겠구나.”
 식은땀이 연신 흘러나오는 가운데 오우거는 바닥에 내리 친 뼈다귀를 들어 올리고는 나를 향해 크게 휘둘렀다.
 부웅!
 “으으으······.”
 신음을 토해 내며 뒷걸음질 치듯 뒤로 물러났고 오우거가 휘두른 커다란 뼈다귀가 지나가면서 만들어 낸 바람의 촉감을 확인했다.
 만약 조금만 더 가까웠더라면 내 머리는 잘 익은 수박을 몽둥이로 힘껏 후려친 것처럼 박살이 났을 것이다.
 “으으으······. 빨리! 파이어 볼!”
 어떻게 발동했는지도 기억이 안 날 정도로 반사적으로 마법을 발동하여 재차 공격을 가하려는 오우거를 향해 날렸다.
 우오오오!
 오우거가 커다란 뼈다귀를 휘두른 것도 동시였다.
 꽈꽝!
 ‘파이어 볼’과 커다란 뼈다귀가 충돌했고 뼛조각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무기를 날려 버리는 것에 성공했다. 하지만 오우거는 건재했기에 긴장을 풀기에는 일렀다.
 “오오오! 나는 죽지 않아! 나는 죽지 않아! 반드시! 반드시! 살아남는다!”
 나는 자신에게 세뇌를 걸 듯 마구 소리치면서 오우거가 공격을 하기 전에 재빨리 마법을 발동했다.
 “파이어 볼!”
 이번엔 몸통이 아닌 오른 발목을 노려 날렸다. 스켈레톤들과 싸울 때를 기억한 것이다.
 다만 오우거의 목은 높은 곳에 있어서 정확하게 맞히기 어려웠기에 상대적으로 노리기 쉬운 오른 발목을 노렸다.
 꽈꽝!
 폭발과 함께 오른 발목에 충격을 받은 오우거는 균형을 잃고 크게 비틀거리더니 뒤로 넘어져 버렸다.
 부서졌을까?
 “젠장! 젠장!”
 오우거는 파이어 볼에 맞고 넘어지긴 했지만 발목은 건재했다.
 금이 조금 가긴 했지만 그 정도면 충분히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번 더!”
 마법을 사용하려 했지만 목숨이 걸린 일이라 너무 긴장해서인지 수식을 실패하고 말았다.
 서클 마법은 지닌 마력이 충분하고 수식만 정확하면 반드시 발동하지만 그 말은 즉 수식이 조금이라도 틀리면 발동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오우우우우!
 오우거는 화가 났다는 듯 더욱 크게 괴성을 내지르며 몸을 일으키더니 지금까지는 장난이었다는 듯 빠른 속도로 달려들며 자신의 주먹을 힘껏 휘둘렀다.
 커다란 뼈다귀가 아닌 맨주먹이었지만 솔직히 그게 그거였다.
 “으아아아!”
 나는 오우거처럼 괴성을 내지르며 머리로는 이미 늦었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파이어 볼을 사용하려 했는데, 너무 늦어 버렸다.
 꽈아앙!
 얼굴에 살아오면서 처음 느껴 보는 강렬한 충격이 가해짐과 동시에 나의 몸은 공중에 붕 떠오른 채 날아가 벽에 충돌했다.
 “크헉!”
 나는 충격과 격통에 신음과 함께 피를 토해 내었고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온통 붉은색인 것을 확인하며 의문을 표했다.
 어째서 안 죽은 거지?
 
  HP : 1/100
 
 생명력 1퍼센트로 생존!
 마나 회복이 500퍼센트 상승합니다.
 
 기분 탓인가?
 어째 고대어를 읽는 것이 점점 쉬워지는 것 같았다.
 아니, 지금은 그런 걸 생각할 때가 아니다.
 쿠오오오오!
 오우거가 화가 난 듯 괴성을 내지르며 내가 있는 곳을 향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방금 전엔 어떻게 죽지 않았는지 모르겠지만 한 번만 더 공격받는다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으으으······.”
 나는 전신에 감도는 격통과 죽음의 공포로 인해 신음을 토해 내면서도 어떻게든 마법을 발동하려고 했다.
 “매직 미사일!”
 파이어 볼에 비해 위력이 떨어지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 실패하지 않는 마법으로, 부족한 위력을 보충하기 위해 모든 마력을 쏟아부어 숫자를 늘렸다.
 수십 개가 넘는 마력의 탄환이 코앞까지 다가와 주먹을 후려치려는 오우거의 전신을 매섭게 두들겼다.
 골밀도가 높아 강철 이상으로 단단한 오우거의 뼈를 부숴 버리진 못했지만 뒤로 물러나게 만들 수는 있었다. 나는 그 틈을 이용해 발을 움직여 오우거와의 거리를 벌리면서 다음 대책을 강구했다.
 대책을 강구한다고 했지만 그리 대단한 건 아니다.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마법을 사용할 뿐.
 “파이어 볼!”
 꽈꽝!
 폭발과 함께 오우거의 전신은 화염에 휩싸였지만, 이번에도 치명타엔 이르진 못했다.
 “으으으, 젠장! 제발 좀 죽어라!”
 오우거를 쓰러트리긴 위해선 좀 더 강한 마법이 필요했다.
 
  스킬 창
 
 “뭐지?”
 일단 열어 확인했다.
 수많은 마법이 차례대로 나열되었는데, 그중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라이트닝 : 번개를 날린다
 
 내가 배우지 않았던 공격 마법이었다.
 어째서 배우지도 않은 마법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발동이 가능하다면 오우거를 상대로 사용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크오오오오!
 거의 동시에 오우거가 달려들며 주먹을 들어 올렸다. 나를 후려치려는 것이 분명했다.
 나는 이미 놓쳐 버린 녹슨 검 대신에 양손을 들어 수인을 맺고는 ‘스킬 창’에서 발견한 ‘라이트닝’을 발동했다.
 순간 배우지도 않았던 마법식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라이트닝!”
 파지지직!
 수인을 맺은 양손을 통해 한 줄기의 뇌격이 쏟아지며 오우거의 머리를 강타했다.
 꽈꽈꽝!
 파이어 볼보다 훨씬 크고 요란한 폭발과 함께 오우거의 두개골이 산산조각 부서지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이어서 머리를 잃은 몸체가 힘을 잃고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
 나는 잠시 멍하니 서 있는 가운데 머리를 잃은 오우거의 몸체에서 영기가 나와 나의 몸에 흡수되었다.
 
 레벨 업!
 레벨 11
 
 레벨이 오르자 죽을 것같이 아팠던 상처가 전부 사라지고 전신에 힘이 넘쳐흐르기 시작했다. 상태 창을 확인해 볼 것도 없이 나의 능력은 조금 상승했을 것이다.
 나는 그제야 정신이 돌아오며 입을 열었다.
 “끝난 건가? 그런데 이건 뭐지?”
 영기를 전부 쏟아 낸 오우거는 그대로 가루가 되어 사라졌고 기다란 뼛조각을 하나 남겼다. 스켈레톤 때에는 없었던 형상이었다.
 호기심에 뼛조각을 들어 살펴보니 녹슨 검 때처럼 설명이 나타났다.
 
 오우거 스틱
 오우거의 뼈로 만든 막대기. 강철보다 단단하니 몽둥이로 사용하면 좋을 듯. 사용하면 힘이 조금 강해진다. 오우거와 적대 관계가 된다. 마법사에겐 그다지 도움이 안 될지도······.
 
 ······.
 설명에 의하면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지만 녹슨 검보단 나을 것이기에 그냥 사용하기로 했다.
 “가 볼까.”
 오우거 스틱을 손에 든 채 앞으로 나아갔다.
 다행히 오우거가 마지막인 듯 더 이상의 몬스터는 나타나지 않은 채 막다른 길에 도착했다.
 “비밀 통로가 있는 건가?”
 혹시나 해서 살펴보았지만 그런 건 보이지 않았다. 지도를 펼쳐 보아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젠장! 역시 길을 잘못 든 거였나?”
 결국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두 갈래 길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 왼쪽 길로 들어갔다.
 오른쪽에서 오우거가 나타났으니 이번에도 몬스터가 나타날지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예상은 어째서인지 맞았다.
 우우어어!
 수십 마리가 넘는 좀비 무리였다. 드디어 뼈만 있는 녀석이 아닌 새로운 몬스터였다.
 스켈레톤보다도 움직임은 느렸지만 살점이 남아 있어서 그런지 징그러웠고 냄새도 지독했다.
 “으으! 제발 가까이 오지 마라!”
 나는 질색을 하면서 마법을 발동했다.
 “파이어 볼!”
 꽈꽝!
 폭발과 함께 다섯 마리의 좀비가 화염에 휩싸인 채 날아갔다.
 썩은 살점이 타들어 가는 고약한 냄새가 퍼져 나갔기에 구역질이 났지만 어떻게든 견뎌 내고는 다시 한 번 파이어 볼을 사용해 좀비들을 날려 버렸다.
 수십 마리가 넘는 좀비들을 전부 전멸시키자 레벨이 하나 올랐고 마법을 연발하느라 거의 바닥났던 마력이 다시 가득 차올랐다.
 “이제 여길 어떻게 지나가느냐가 문제인데······.”
 바닥은 좀비들의 잔해가 가득해 그걸 발로 밟고 지나가기가 꺼려졌는데, 오우거 때와 마찬가지로 가루가 되어 사라졌고 그걸 대신하듯 단검 하나가 나타났다.
 
 좀비의 단검
 좀비가 사용한 검이다. 이 검에 찔려 죽으면 좀비로 되살아나는 일은 없다. 좀비와 적대 관계가 되어 최우선순위로 습격받게 된다.
 
 “이거 완전 쓰레기잖아!”
 오우거 스틱과는 달리 그냥 버리려다가 이내 나중에 쓸모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방’에 넣어 보관했다.
 다행히 이번에는 막다른 길이 아니었고 밖으로 나가는 입구가 있어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한밤중인 듯 달과 별빛을 제외하면 무척 어두웠지만 그래도 바깥 공기를 마실 수 있는 것만으로 하늘을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었다.
 “드디어 밖으로 나왔다!”
 나는 크게 기뻐하며 소리쳤다가 재빨리 입을 닫았다. 아크상회 녀석이 근처에 있으면 위험하기 때문이다.
 나는 사방을 조심스럽게 살펴보며 이곳에 어디인지 확인했는데, 처음 들어갔던 곳하곤 전혀 다른 곳이라는 것을 제외하면 어디인지 알 수가 없었다.
 “으음, 일단 던전 밖으로 나온 건 좋은데 길을 모르는 것은 문제로군.”
 고대 던전이 있는 이곳은 아마도 남부 대륙의 밀림 깊숙한 곳이라 생각되는데, 이곳에 올 때 눈을 가린 채 전이 마법진을 통해 왔기에 지리를 파악할 수가 없었다.
 전이 마법진을 사용할 수 없으니 결국 발로 걸어서 중앙 대륙으로 가야 한다는 말인데, 죽음을 재촉하는 일이라 할 수 있었다.
 중앙 대륙과 동부 대륙을 제외한 다른 대륙들은 사람이 살 만한 곳이 아니었다.
 그나마 살 만한 곳은 약육강식의 무법 지대이며 아크상회에서 노예를 공급하는 곳인 서부 대륙.
 그다음이 인간이 아닌 아인종이 지배하는 북부.
 마지막이 고대 던전이 있는 남부다.
 밀림인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몬스터의 천국인 점이 컸다.
 먼 과거 중앙 대륙을 통일한 것은 물론 북쪽과 동서의 대륙까지 침략하여 지배한 위대한 황제가 하나 있었는데, 마지막으로 남쪽 대륙을 지배하려고 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강대한 군사력으로 남방의 모든 몬스터들을 몰살시키고 나무는 모조리 벌목하여 밀이나 보리와 같은 식량을 재배하도록 개간하려 했지만, 몬스터를 아무리 죽여도 어디선가 끝도 없이 쏟아져 나왔다.
 결국 군사력만 소모하는 결과만을 얻었을 뿐이었다.
 그때에 비교해 마법이나 군사력이 엄청나게 발전한 지금도 남부를 제압하려는 일은 시도하지 않았다. 그만큼 위험한 지역이 여기 남부였다.
 “아무래도 중앙 대륙으로 가기 위해서는 젠더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겠는데······.”
 혹시 보이지 않을까 ‘지도’를 펼쳐보았지만 젠더가 어디에 있는지는 확인할 수가 없었다.
 “후우, 쉽지 않겠군. 지금은 입구 안쪽에 자리를 잡고 휴식을 취한 다음, 날이 밝으면 움직이도록 하자.”
 꼬르륵!
 밖으로 나와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배가 몹시 고파 왔다.
 “그러고 보니 던전에 들어온 후 먹은 건 포션뿐이군. 레벨이 상승하면서 힘이 넘쳐흐르는 건 좋은데, 배가 고픈 건 어째 해결되지 않네.”
 풀뿌리라도 먹어야 할까?
 유감스럽게도 약초에 대해선 하나도 알지 못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고대어가 아니라 약초학을 배울 걸 그랬나? 아니, 그랬으면 나는 지금쯤 살아 있지 못했겠지. 아니지, 고대어를 몰랐다면 이런 빌어먹을 곳에 오지도 않았을 텐데. 아, 그렇지! 지금이라면 먹을 수 있는지 없는지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근처의 풀을 찾아 확인해 보았다.
 
 이름 모를 잡초
 먹어도 죽진 않으나 무척 쓰고 설사를 한다.
 
 “좋았어! 이거라면 먹을 걸 찾을 수 있겠어.”
 
 
 
 #시종
 
 
 
 ‘지도’가 있다고 해도 너무 멀리 가면 위험하기에 던전 입구에서 비교적 멀리 떨어지지 않는 주변을 돌아다녀 보았지만, 제대로 된 먹을거리는 그다지 찾지 못했다.
 먹어도 문제가 없는 잡초와 운 좋게 발견해 매직 미사일로 때려잡은 도마뱀이 전부였는데, 도마뱀도 만약을 위해 독이 있는지 확인해 보았다.
 
 도마뱀
 정식 명칭 남부 큰도마뱀. 독은 없으나 이빨에 잡균이 있어 물리면 위험하다. 양질의 단백질을 얻을 수 있다. 기생충이 있을 수 있으니 잘 익혀 먹는 것이 좋다.
 
 솔직히 뱀이나 도마뱀을 먹는 건 비위가 상하는 일이었지만, 죽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던전 입구로 돌아가 마법을 사용해 불을 피운 후 아무래도 먹기 어려운 도마뱀의 머리를 자르고 배를 갈라 내장을 빼낸 다음 나무에 통째로 끼워 굽기 시작했다.
 도마뱀이 구워지는 것을 지켜보면서 지금까지 있었던 일에 대해 생각했다.
 “아크상회에서 나를 죽이려 했단 말이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스스로 이런 말하기 좀 그렇지만 나 따위를 죽여 봤자 아크상회에 조금도 이득이 안 되기 때문이다.
 아직 빚을 전부 갚지 못한 만큼 오히려 손해다.
 아크상회와는 상관없이 비르숍의 개인적인 증오나 원한 같은 이유로 나를 죽일 수도 있지만, 그런 것 같진 않았다.
 젠더의 말처럼 고대 던전의 비밀을 지키기 위한 것도 아니었다. 그런 일이라면 나보다 도굴꾼이자 도적이라 아무래도 위험 분자인 젠더를 먼저 죽였을 것이다.
 “아무래도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는 것 같은데, 그건 중앙 대륙으로 돌아가서 알아보는 수밖에 없겠군.”
 다음 문제는 고대어로 ‘상태 창’이나 ‘가방’, ‘스킬 창’, ‘지도’가 내 눈앞에 나타나는 특수한 현상이었다.
 글자가 아니라서 제대로 알아들을 수가 없었지만 고대어라 생각되는 음성도 들렸다.
 고대 던전을 빠져나가려다가 우연히 발견한 재단 위에 있던 저주의 책을 만진 뒤 지옥과도 같은 끔찍한 고통을 겪은 후에 생겨난 능력 혹은 아티팩트였다.
 처음엔 이러한 현상 혹은 능력이 생긴 것이 무척 놀랍고 당혹스러웠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무척이나 편리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진정으로 대단하면서도 무서운 것은 경험치가 오르고 ‘레벨 업’을 하면 능력이 상승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스켈레톤을 싸워 쓰러트리면 영기나 에너지 같은 걸 흡수하면서 경험치가 쌓이고 일정 수치에 이르면 ‘레벨 업’을 한다.
 ‘레벨 업’을 하면 전보다 능력이 높아지게 되는 것은 물론 싸우면서 소모한 체력과 마력도 최상의 상태로 가득 차게 된다.
 내가 가진 재능으론 최소 3년 정도 마법을 공부하고 수련해야 도달할 수 있는 2서클을 스켈레톤과 몇 번 싸운 것만으로 도달했다.
 그야말로 상식을 초월한 엄청난 일이었다.
 “나도 모르던 숨겨진 재능이 갑자기 개화해서 깨달음을 얻었던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럴 리는 없겠지, 후후.”
 이 문제 역시 지금으로선 아무리 고민해도 명확한 답을 얻을 수는 없었다.
 “스승님을 찾아가서 물어볼까? 아니, 소용없으려나?”
 고대어를 가르쳐 줬다고 하지만 그래 봤자 변두리의 작은 마탑에 소속된 그저 그런 마법사에 불과하니 제대로 된 답을 주진 못할 것이다. 좀 더 큰 마탑이나 대마법사를 찾아가야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아아, 모르겠다. 지금은 어떻게든 살아남아 중앙 대륙으로 돌아가는 것만을 생각하도록 하자.”
 잡초를 양념 삼아 살짝 탄 도마뱀으로 배를 채운 후 잠시 눈을 붙였다. 자는 건 위험하지만 그렇다고 잠을 안 잘 수는 없는 것이다.
 만약을 위해 알람 마법을 설치해 두었다. 정작 아크상회나 몬스터가 나타나면 그다지 도움은 안 되겠지만, 마음의 위안 정도는 될 것이다.
 몇 시간 후, 새벽이 되어 날이 밝아졌다.
 “아함! 맨바닥에서 자니 온몸이 쑤시네. 이대로 계속 쉬고 싶지만 살려면 움직여야겠지.”
 몸을 일으킨 나는 내가 있었던 흔적을 지우고 생리적인 볼일을 해결한 다음 ‘지도’를 펼친 채 중앙 대륙이 있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지도’에는 나침반의 기능도 있었다.
 전날엔 길 안내를 해 달라고 부탁할 겸 젠더를 찾아갈까 했지만, 최악의 경우를 생각해 그만두었다.
 “몬스터를 만날 걸 대비해서 마법도 확인해 두는 것이 좋겠지.”
 ‘스킬 창’을 열어 어떤 마법이 있는지 확인했다.
 대부분이 ‘매직 미사일’이나 ‘파이어 볼’과 같은 공격 마법으로 내가 배운 것은 물론 배우지 않은 마법도 몇 개 있었다.
 배우지 않은 것 중 대표적인 것이 오우거와 싸울 때 사용했던 ‘라이트닝’이었다.
 처음에 사용할 때 갑자기 머릿속에서 수식이 떠올라 사용할 수 있었는데, 하룻밤이 지난 지금은 어렴풋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내 머릿속에 주입했다는 말이로군. 아마도 지금 사용하면 다시 머릿속에 주입되겠지.”
 ‘라이트닝’을 사용할 때마다 주입되면 결국 ‘라이트닝’을 습득하게 될 것이다.
 “주입식이라. 으음, 그건 좀 무섭네.”
 ‘스킬 창’을 좀 더 상세하게 살펴보니 ‘라이트닝’이 ‘스킬 단축키’ 3번에 장착되어 있었다.
 ‘스킬 단축키’는 도합 네 개로 1번엔 ‘매직 미사일’, 2번엔 ‘파이어 볼’, 4번만 빈 공간이었다.
 “이거 설마, 각인과 같은 기능인가?”
 마법사는 1서클의 기본적인 마법은 웬만해선 실패하지 않지만 상위의 마법이 되면 수식이 복잡해서 예기치 않는 일로 당황하거나 하면 실패하는 일도 종종 생기곤 한다. 그걸 대비하기 위해서 만든 것이 각인이었다.
 자신이 사용하는 지팡이 혹은 마법기에 필요한 마법의 수식을 각인하면 마력을 주입하는 것만으로 마법을 실패 없이 발동할 수 있었다.
 또한 수식을 계산하는 시간이 단축되기에, 거의 실패하지 않는 뛰어난 마법사라도 거금을 드려 자신의 지팡이에 마법을 각인시켰다.
 ‘스킬 단축키’는 지팡이의 각인을 대신한 것 같았는데, 무려 네 개나 되었다.
 각인은 그 숫자가 늘어날수록 돈과 노력이 더 많이 들어가는데, 대부분이 하나 혹은 두 개 정도이며 아티팩트 급이 되어야 세 개 네 개의 마법을 각인할 수 있었다.
 전설의 무구인 ‘마신의 오른손’은 무려 열 개가 넘는 마법이 각인되어 있다고 한다. 마력의 충전 기능이 있어서 만약 마력이 풀로 충전되었다면 마법사가 아니라 해도 각인된 열 개의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그야말로 전설 급이라 불릴 엄청난 보물이었다.
 ‘마신의 오른손’에 비하면 ‘스킬 단축키’의 마법 네 개의 장착은 비교적 무난하다고 할 수 있지만, 일반적인 각인과 비교하면 엄청나다고 할 수 있다.
 “어디까지나 내 생각일 뿐 실제로는 각인과 같은 건지 알 수 없군. 직접 시험해 볼까?”
 마력의 낭비를 막기 위해서 ‘스킬 단축키’를 사용해 ‘매직 미사일’을 발동해 보았다.
 “매직 미사일!”
 평소보다 빠르게 마력이 응축된 탄환이 만들어지며 허공을 목표로 발사되었다.
 “허! 정말 되잖아!”
 ‘매직 미사일’에 이어 ‘파이어 볼’을 시험해 보았지만 직접 할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빠르게 화염의 구체가 만들어졌다.
 “레벨 업에 비하면 별거 아니지만, 그래도 엄청난 능력이다.”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정체를 할 수 없는 힘에 지금에서야 전신이 덜덜 떨려 오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그다지 현실감이 없어서 무시할 수 있었지만 각인과 비슷한 ‘스킬 단축키’를 확인하니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으으으······. 설마 마법의 교체도 가능한 건가?”
 나는 한겨울에 알몸이 된 듯 몸 전체를 덜덜 떨면서 마법이 교체되는지 시험해 보았는데, 당연하다는 듯 무난하게 교체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것은 ‘마신의 오른손’에도 존재하지 않는 기능이었다.
 지팡이나 마법기에 한번 마법을 각인하면 절대 바꿀 수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아무리 간단한 마법이라도 바꾸려면 최소 하루의 시간이 필요했다. ‘스킬 단축키’만큼 빠른 시간 안에 바꾸지는 못했다.
 이건 사용하기에 따라선 전설 급 무구인 ‘마신의 오른손’보다도 무서운 무기가 될 것이다.
 이대로 계속 고민해 봤자 현실적으로 아무런 도움이 안 되기에 처음에 생각했던 대로 중앙 대륙을 목표로 발을 움직이려고 하는데······.
 “크아아악!”
 제법 먼 곳에서 사람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응?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사람의 비명이니 무작정 무시할 수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비명이 들려오는 곳으로 가는 것도 꺼려졌다. 십 중 십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 것이 뻔했다.
 “혹시 모르니 몸을 숨겨 볼까?”
 가까운 나무 뒤에 몸을 숨긴 채 시간이 무사히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만약 이곳으로 추적의 전문가라도 오면 단번에 들키겠지만 그렇다고 숨지 않을 수는 없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뭔가 지면이 쿵쿵거리는 소리가 가까워져 조심스럽게 머리를 내밀어 확인해 보니 내가 숨어 있는 나무를 향해 일직선으로, 그야말로 필사적으로 뛰어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얼굴은 모르겠지만 행색을 보건대 이곳으로 끌려온 노예가 분명했다.
 도망친 건가?
 “그보다 저놈은 어째서 내가 있는 곳으로 오는 거냐!”
 한편 노예를 쫓는 이들이 있었는데, 아크상회의 사람들이었다.
 달려오는 방향을 바꿀 기미는 보이지 않았기에 이대로 있다간 결국 들키게 될 것이 분명했다.
 “쳇, 어쩔 수 없군.”
 좀 더 제대로 된 대응을 위해서 모습을 드러내기로 결정했다.
 내가 나무 뒤에서 나오자 이쪽으로 달려오던 노예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걸음을 멈추었다.
 “허억······! 허억······! 허억······!”
 숨을 헐떡거리며 죽일 듯 나를 노려는 것도 잠깐,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달려가기 시작했다.
 ······.
 내가 아무 말 없이 도망치는 노예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는 가운데 뒤쫓던 추적자 중 한 명이 손에 든 장궁을 사용해 화살을 날렸다. 날아간 화살은 노예의 허벅지 뒤쪽에 적중했다.
 “으윽!”
 화살에 맞은 노예는 신음을 토해 내며 바닥에 넘어지듯 굴렀는데, 일어나지 못하는 것 같았다.
 “크하하하! 결국 이 몸의 손에 붙잡혔구나! 하등하고 더러운 노예 놈아!”
 추적자 중 한 명이 즐거운 듯 웃음을 터트리며 화살에 맞아 넘어진 노예의 등을 마구 짓밟았다.
 “저놈은 분명······.”
 나의 중얼거림과 동시에 녀석의 머리 위로 이름이 떠올랐다.
 
  아르코크 : 노예 관리장
 
 원래 뛰어난 노예 사냥꾼이었는데, 성격이 정말 미친개 같아서 아크상회의 소중한 상품이라 할 수 있는 노예를 강간하거나 혹은 재미로 고문하는 등 너무 거칠게 다루어 죽여 버리는 일이 자주 발생했다.
 결국 노예의 관리자로 강등당해 남부의 고대 던전에서 노예를 관리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잘못을 범하고 강등당했으면 정신을 차리고 얌전히 있으면 좋으련만, 개 버릇 남 못 준다고 했던가?
 강등당해 남부로 오게 된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그리고 재미를 위해 가끔씩 자신의 마음에 안 드는 노예를 골라 자유를 주겠다며 풀어 주고는 그 뒤를 쫓아 사냥한다고 했다.
 나는 아무래도 아르코크의 쓰레기 같은 유희 현장을 목격하고 만 것 같다.
 “젠장! 이곳에서 가장 재수 없는 녀석과 마주치게 되다니······.”
 내가 상대에게 들리지 않도록 작게 중얼거리는 가운데, 아르코크가 그런 나를 확인하고 히죽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이, 네 녀석, 마법사인 카씨스였나? 네놈 덕분에 내 놀이가 시시해졌다고.”
 아르코크의 그 말에 나는 기분 나쁘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내 이름은 카리스다, 카리스 프라이스. 남의 이름을 마음대로 고치지 마라, 알코코.”
 내 말에 아르코크는 불같이 화를 내며 소리쳤다.
 “네놈, 지금 뭐라고 한 거냐? 감히 이 몸의 이름을 가지고 장난친 거냐? 앙!”
 아르코크는 노예를 포함해 자신보다 신분이 낮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늘 하듯이 눈을 무섭게 부라리며 위협을 했다.
 솔직히 아르코크의 위협에서 인간으로서 가진 추악한 악의와 광기가 강하게 느껴지는 것이 좀 무섭긴 했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허세를 부리며 코웃음 쳐 주었다.
 “흥! 나는 너처럼 사람의 이름을 가지고 장난 따위 치지 않는다, 알까코.”
 내 반격의 말에 아르코크의 얼굴에 감돌던 비열한 미소가 사라졌다.
 “이 개자식! 감히 이 몸을 너 따위 하급 마법사가 무시하려는 거냐? 지금 이 자리에서 죽고 잡냐!”
 아르코크는 자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내 태도가 마음이 들지 않은 듯 노예들을 두들겨 팰 때 자주 사용하는 강철 징이 박힌 몽둥이를 들어 올렸다.
 내가 그런 아르코크의 움직임에 ‘스킬 단축키’를 사용해 마법을 발동하려고 하는데, 아르코크는 갑자기 뭔가를 깨달은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아! 그러고 보니 네 녀석 던전의 함정에 걸려 죽었다고 들었는데?”
 아무래도 나에 대해선 위의 명령으로 제거한 것이 아니라 함정에 죽은 것으로 한 것 같았다. 노예를 관리하는 아르코크에게 굳이 던전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 주지 않은 것이다.
 나는 아르코크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깨닫고는 어깨를 가볍게 으쓱여 보였다.
 “뭐 함정에 걸리긴 했지만 운 좋게도 죽지 않고 살아 밖으로 나왔다.”
 내 대답에 아르코크는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얼마나 멍청하면 던전의 함정 따위에 걸리는 거냐? 마법사라면서 엄청 잘난 척하더니 알고 보니 엄청난 머저리구나, 하하하하!”
 “더 이상은 못 참겠다.”
 나는 감정을 억누르는 것을 그만두고 아르코크를 향해 마법을 사용했다.
 “라이트닝!”
 뼈만 남은 언데드이긴 하지만 오우거를 일격에 날려 버린 파괴적인 공격 마법이 아크코크의 몸을 직격하는 것이 아니라 다리 사이에 있는 남자에게 무척 중요한 부분을 스치듯 지나갔다.
 파지직!
 스치면서 발생한 잔여 전류가 남자의 그곳을 통해 몸 전체로 퍼져 나갔다.
 “크아아악!”
 아르코크는 마치 지옥이라도 떨어진 것 같은 비명을 터트리며 다리 사이를 붙잡은 채 주저앉았고 온몸을 벌벌 떨기 시작했다.
 “앗! 이게 무슨!”
 아르코크의 부하 둘은 갑자기 벌어진 상황에 깜짝 놀라며 무기를 뽑아 들려고 했는데, 나의 마법이 그보다 빨랐다.
 “매직 미사일!”
 퍼퍽!
 “컥!”
 아르코크의 부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신음을 토해 내며 바닥에 쓰러졌다.
 나는 그야말로 순식간에 제압해 버린 아르코크와 부하 둘을 내려다보며 어떻게 할지 고민했지만, 결국 답은 하나밖에 없었다.
 “죽이는 수밖에 없겠군.”
 죽이지 않으면 나에게 대해 불 것이고 어차피 아르코크나 부하들은 죽어 마땅한 짓을 많이 저질렀다.
 아크상회의 개가 되어 이런 녀석들과 함께 일한 적이 있던 나도 별로 다르지 않겠지만, 그런 건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빨리 죽이기로 했다.
 나는 아르코크에게 다가갔다.
 아르코크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나에게서 살기를 느낀 듯 신음을 토해 내며 애원하기 시작했다.
 “으으······. 살려 주세요······. 제발 죽이지는······.”
 “차라니 내 손에 죽는 게 좋을 거다. 스쳤다고 하지만 강력한 마법이니 분명 고자가 되었을 거다.”
 “으으······! 그럴 리가! 내가 고자라니!”
 믿을 수 없다는 듯 소리치는 가운데 노예가 화살에 맞은 다리 때문에 쩔뚝거리며 몸을 일으키더니, 바닥에 있던 제법 큰 돌을 손에 쥔 채 이쪽을 뚫어지듯 노려보았다.
 지금의 나와는 전혀 비교할 수도 없는 활활 타오를 것 같은 증오와 원망이 담긴 살기를 느낄 수 있었다.
 “과연. 내가 굳이 죽일 필요는 없겠군.”
 나는 넘기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뒤로 물러났다.
 노예는 그런 나를 경계하면서도 쩔뚝거리는 걸음으로 아르코크에게 다가갔다.
 아르코크는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는 전보다 더욱 필사적인 목소리로 소리쳤다.
 “잠깐! 살려 줘! 나는 고자가 아니야!”
 노예는 그런 아르코크의 머리를 돌로 힘껏 내려쳤다.
 그 이상은 너무 끔찍해서 설명하지 않겠다.
 노예는 손에 든 돌로 아르코크를 잔인하고 살해한 다음 부하 둘도 돌로 내려찍어 죽였는데, 어느샌가 아르코크의 몽둥이를 손에 든 채 나를 노려보았다.
 “잠깐, 기다려! 나는 너와 싸울 생각이 없다.”
 나의 말에도 노예는 무섭게 노려본 채 몽둥이를 거둘 생각을 보이지 않았다.
 “이봐, 경솔한 짓은 하지 말라고. 나랑 싸워 봤자 너에게 좋은 건 하나도 없다. 오히려 죽음을 앞당기게 될 거야. 그리고 나도 아크상회에게 쫓기는 몸이다. 내가 마법을 사용해서 저놈을 고자로 만든 것이 증거다.”
 내 말에 노예는 이를 악물고 고개를 저었다.
 “못 믿겠다. 전부 똑같은 놈들이다.”
 증오가 섞인 그리고 강한 두려움이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저 녀석은 아마도 노예사냥으로 잡혀 왔을 것이다.
 전에 한번 따라가 봐서 아는데, 인간으로선 좀 그랬다. 사냥당하는 입장에선 정말 끔찍한 경험일 것이다.
 저 녀석도 노예사냥으로 인해 가족이 죽거나 죽지 않더라도 뿔뿔이 흩어지는 것을 경험했을 것이다.
 “좋아, 나를 못 믿는다고 치자. 하지만 싸우지는 말자고. 나는 이대로 얌전히 물러날 테니까, 너는 너대로 갈 길을 찾아가라.”
 ······.
 “좋아, 그럼 나 먼저 간다.”
 나는 그렇게 말하며 천천히 뒷걸음질로 녀석과의 거리를 벌리기 시작했다.
 녀석도 나와 싸울 생각은 없는 듯 움직이지 않은 채 이쪽을 노려보고만 있었다.
 잠깐만, 저놈을 저대로 내버려 둬도 괜찮은 건가?
 다리의 상처로 볼 때 분명히 붙잡힐 테고 나에 대해 말할 것이 분명했다.
 솔직히 저놈도 제압해서 죽인 다음에 아르코크와 그 부하들의 시체까지 모조리 깔끔하게 정리하는 것이 좋았다.
 한순간 내 머릿속에서 무서운 생각이 감돌았지만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나는 더욱 큰 부자가 되기 위해서 귀족이 되기 위해서 그리고 더욱 큰 권력을 얻기 위해서 수많은 악행을 자행해 온 망할 아버지와는 다르다.
 “죽이지 않아. 하지만 이대로 내버려 두는 것도 결국 죽이는 것이나 다름없겠지.”
 나는 뒷걸음질 치는 것을 멈추었다.
 녀석은 그런 나의 행동에 몽둥이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나는 그런 녀석을 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그냥 갈 수가 없겠다. 나와 너의 안전을 위해서니까, 지금은 자라.”
 스킬 단축키 4번에 장착시킨 마법.
 “슬립 클라우드!”
 마법의 발동과 함께 회색의 구름이 생성되어 녀석을 향해 천천히 날아갔다.
 “이익!”
 녀석은 이를 악물며 자신에게 날아오는 구름을 몽둥이를 후려쳤지만 그걸로 형체가 없는 구름이 부서질 리 없었다.
 “으으······. 안 돼······.”
 녀석은 어떻게든 잠들지 않으려고 했지만 결국 견뎌 내지 못한 채 깊은 잠에 빠져들고 말았다.
 
 * * *
 
 아르코크와 그 부하의 시체는 근처 풀숲에 숨겨 두었다.
 처음엔 땅에 파묻거나 불로 태울까 했지만, 그래 봤자 전문가의 눈은 결코 속일 수 없는 흔적이 남기 때문에 괜한 고생은 하지 않기로 했다.
 나머지는 운에 맡긴다. 뭐 결국 들킬 것이다.
 “남은 문제는 이 녀석인데······.”
 
  바우시카 : 서부 대륙 출신의 노예
 
 잠든 사이에 다리의 상처는 마법사로서 최소한의 응급처리를 해 놓았는데, 이 상태에서 다시 깨우면 나를 공격하려 할지 몰랐다.
 둘의 안전을 생각해서 나와 함께 남부 대륙을 빠져나가면 좋겠지만, 말로 알아듣게 설득할 자신이 없었다.
 “으음, 어떻게 하면 좋을까?”
 마법으로 정신을 제압할까?
 아니, 그건 어려울 것이다. 내 마법 실력은 지금 2서클, 원래 1서클이라서 정신을 지배하는 일은 어렵다.
 혹시 싶어 ‘스킬 창’을 확인해 보았지만, ‘슬립 클라우드’처럼 강제로 잠들게 하거나 혹은 몸이 움직이지 못하게 마비시키거나 공포를 주어 큰 혼란에 빠지게 하는 등의 공격 마법밖에 없었다.
 “이대로 시간을 낭비할 수도 없고 어떻게 하면 좋을까?”
 좋은 방법은 떠오르지 않아 골치가 아파 오는데 그런 내 눈앞에 예의 고대어 음성과 함께 문자가 나타났다.
 
 바우시카를 시종으로 고용하겠습니까?
 
 “응? 이건 뭐지?”
 무슨 뜻인지 확인해 보니 그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시종’이란 특정 인물을 자신의 부하로 삼는 것으로 마법사에게 있어서 패밀리어나 소환수와 같은 개념이었다.
 패밀리어와 다른 점은 ‘시종’이 전투로 다친다고 해도 주인에게 가해지는 타격은 전혀 없다는 점이다.
 “사람을 강제로 지배한다니, 고대의 흑마법이 맞구나.”
 특정 인물을 자신의 시종을 삼기 위해서는 몇 개의 조건이 필요한데, 바우시카의 경우 모든 조건을 만족시켜 나의 ‘시종’으로 삼을 수 있는 것 같았다.
 다만 동의 없이 강제로 ‘시종’으로 삼을 경우 ‘시종’일 때는 문제없지만 ‘시종’을 바꾸거나 해제할 경우 적대 관계가 된다고 했다.
 “뭐 평생 데리고 다닐 것도 아니니 상관없겠지.”
 바우시카를 ‘시종’으로 삼기로 결정했다.
 바우시카를 ‘시종’으로 만들자 바우시카의 상태 창이 떠올랐다.
 “어라? 시종의 것도 확인할 수 있는 건가?”
 바우시카의 상태 창을 열어 확인해 보았는데 나의 것과는 달리 그리 상세하지 않았다.
 
 직업 : 전사
 레벨 : 9
 HP : 50/150
 스킬 : 후려치기
 
 “으음, 생각 외로 레벨이 높네.”
 고대의 흑마법이라 생각되는 능력을 얻기 전의 나보다 레벨이 높고 강한 것 같았다. 물론 지금은 내 쪽이 훨씬 레벨이 높고 강할 것이다.
 “마법사라 해도 근본은 학자라서 전투를 전문으로 하지 않으니, 누가 더 강한 것 따위는 상관없지만······.”
 어쨌든 바우시카를 시종으로 삼았으니 그만 잠에서 깨어나게 했다.
 만약을 위해 마법을 발동할 준비를 하고 바우시카가 눈을 뜨는 것을 확인했다.
 “으으, 여긴?”
 바우시카는 상반신을 일으킨 후 어리둥절한 얼굴로 주변을 살펴보다가 나를 발견하고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런 바우시카에게 말을 걸었다.
 “바우시카, 내가 누군지 아느냐?”
 내 물음에 바우시카는 눈을 깜빡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저의 주인님이십니다.”
 바우시카의 대답에 나는 안심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는 너의 주인이다. 하지만 좀 그렇구나. 그냥 카리스란 이름으로 불러라.”
 “예, 카리스 님.”
 “일어나 걸을 수 있겠느냐?”
 “예, 걸을 수 있습니다.”
 조금 아픈 듯 보였지만 걷는 것엔 지장이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제대로 치료하지 않으면 상처에 염증이 생겨 위험할 것이다.
 ‘가방’에 있던 포션이 하나 더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좋아, 그럼 이곳을 떠나도록 하자.”
 “예, 카리스 님.”
 “아! 너에게 이걸 주마.”
 나는 손에 들고 있던 오우거 스틱을 주었다.
 마법을 빠르게 사용하기 위해선 지팡이가 있는 편이 좋지만, ‘스킬 단축키’가 있기에 문제없었고 오우거 스틱은 힘이 조금 강해지는 무기라서 그다지 필요가 없었다.
 “무척 훌륭한 물건이군요. 소중하게 사용하겠습니다.”
 “그래, 소중하게 잘 사용해라.”
 그것으로 모든 준비는 마쳤기에 바우시카와 함께 ‘지도’를 보고 앞으로 나아갔다.
 중앙 대륙이 있는 북쪽으로 방향을 잡고 아르코크 들의 시체가 있는 곳에서 가능한 멀리 움직였다.

댓글(2)

소설가인생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고대어를 완벽하게 해석할수 없다는 주인공 저렇게 완벽하게해석을 갑자기 해버리네 게임능력 얻어서 고대어 마스터한건가 ㅋ
2018.02.12 15:47
바질리스크    
혼잣말 겁나 하네요 몰입이 잘..
2018.02.23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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