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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가기버튼 사상 최강의 에이스 [E](종료230801)

사상 최강의 에이스 1권 (1)

2018.01.12 조회 13,995 추천 47


 -목차-
 사상 최강의 에이스 1화 - 프롤로그
 사상 최강의 에이스 2화
 사상 최강의 에이스 3화
 사상 최강의 에이스 4화
 사상 최강의 에이스 5화
 사상 최강의 에이스 6화
 사상 최강의 에이스 7화
 사상 최강의 에이스 8화
 사상 최강의 에이스 9화
 사상 최강의 에이스 10화
 사상 최강의 에이스 11화
 사상 최강의 에이스 12화
 사상 최강의 에이스 13화
 사상 최강의 에이스 14화
 사상 최강의 에이스 15화
 사상 최강의 에이스 16화
 사상 최강의 에이스 17화
 사상 최강의 에이스 18화
 사상 최강의 에이스 19화
 사상 최강의 에이스 20화
 사상 최강의 에이스 21화
 사상 최강의 에이스 22화
 사상 최강의 에이스 23화
 사상 최강의 에이스 24화
 사상 최강의 에이스 25화
 사상 최강의 에이스 26화
 사상 최강의 에이스 27화
 사상 최강의 에이스 28화
 사상 최강의 에이스 29화
 사상 최강의 에이스 30화
 
 
 
  사상 최강의 에이스 1화 - 프롤로그
 
 ‘이 중에 제대로 뛸 애들이 얼마나 있을지.’
 
 명단을 살피던 김형민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현재 서림중 야구부를 책임지고 있는 감독. 서림중 야구부는 1960년대에 설립된 전통의 야구 명문 중학교였다.
 하나 지금은 껍질만 남은 상태.
 
 ‘그나마 리틀 경험이 있는 애들이 몇 있으니까 잘 가르쳐 보는 수밖에.’
 
 서림중 야구부는 십년 전부터 우수선수 스카우트를 일체 중단했다. 신임 이사장은 학생 스포츠가 순수하길 바랐다. 타 지역 학생 스카우트 없이 오로지 인근에 사는 학생들로만 팀을 꾸려나가길 주문했다.
 문제는 다른 학교가 그렇지 않았다는 점.
 서림중 야구부는 그 시기를 기점으로 야구 명문에서 일반 학교로, 일반 학교에서 손꼽히는 약체 학교로 전락하기 시작했다.
 현재 감독을 맡고 있는 김형민 역시 1군 무대는 밟아본 적 없는 이름뿐인 프로에 불과했다.
 과거의 명성을 생각하면 모든 게 다 무너져 내린 상태인 것이다.
 “감독님! 신입생들 준비 마쳤습니다.”
 
  * * *
 
 보기만 해도 널찍한 야구부 훈련장.
 다이아몬드 형태의 그라운드를 등지고 더그아웃 앞에 신입생들이 일렬로 서 있다.
 더그아웃 안에서는 선배들이 그들을 관찰하고 있었고.
 그 사이를 김형민 감독과 코치 두 명이 갈랐다.
 “이름이 뭐지?”
 “문철민 입니다.”
 “ ‘마포친구들’에서 뛰었다고?”
 “네! 주로 투수와 외야수를 맡았습니다.”
 “그럼 어깨 하나는 튼튼하겠네.”
 신입생 중 김형민 감독의 눈에 먼저 든 것은 역시 리틀야구 출신 선수들.
 비록 거기서 눈에 띄지 못해 이 자리에 왔겠지만, 아무 경험도 없는 일반 학생보다는 훨씬 실력이 뛰어났다.
 이들 대부분이 서림중 야구부의 주축이 될 가능성이 무척 컸다.
 “우리 팀에 잘 왔어. 끝으로 목표 한 번 들어볼까?”
 “류연진 선수 같은 투수가 되고 싶습니다.”
 “좋아. 열심히 해보자.”
 이후 다른 학생들과의 인터뷰도 비슷했다.
 과거 경험과 미래 목표를 묻는 일반적인 이야기들.
 신입생들의 목표는 다 비슷했다.
 죄다 한국프로야구 레전드 선수나 메이저리그 진출에 성공한 선수의 이름을 대며 그들처럼 되고 싶다고 말했다.
 간혹 메이저리그 유명 선수의 이름을 말하는 신입생도 있었지만, 말하고 나서 스스로 부끄러웠는지 고개를 숙였다.
 김형민 감독은 그들 한 명, 한 명과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올해도 똑같군.’
 
 어차피 이들 중 탈락자는 없다.
 약체 학교로 손꼽히는 서림중에는 지원자가 많지 않았기에 일반 학생들까지 받아야 팀이 유지될 수 있었다.
 따로 신입생을 고를 여유 따위는 남아 있지 않았다.
 이 자리는 그저 선배와 후배의 대면식과 같은 역할을 할 뿐이었다.
 
 김형민 감독은 리틀 출신 선수들과 인터뷰를 마치고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세 명의 일반 학생이 나란히 서 있었다.
 중학교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어디서도 정식 야구를 한 적이 없는 일반 학생들. 명문 야구부라면 이들에게 지원 기회조차 주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서림중 야구부에는 귀한 자원들.
 김형민 감독은 세 명의 학생을 유심히 살폈다.
 
 ‘두 명은 괜찮은데 한 명은 영···’
 
 일단 체구가 너무 작았다. 2, 3학년들은 물론이고 신입생들 사이에서도 가장 작은 체구였다.
 심지어 일반 학생들 사이에서도 작은 편에 속할 게 분명했다.
 그나마 관리를 잘했는지 튼튼해 보이는 게 유일한 장점이라고 할까.
 
 ‘그래도 너무 작은데··· 3년 동안 얼마나 클 수 있을지.’
 
 혹시나 태어날 때부터 작은 유전자를 갖고 나온 것은 아닌지. 그러면 운동선수로 성장하기 너무 힘들었다.
 남들보다 몇 배의 노력을 더 했을 때 겨우 가능성을 볼 수 있는데, 이 학생의 경우는 야구를 시작하는 시기가 너무 늦어 버렸다.
 “이름이 뭐지?”
 “최태경입니다.”
 표정은 좋았다.
 리틀 야구 출신들보다 훨씬 자신감이 보였다. 배포가 남달랐는지 크게 내지른 소리에도 조금의 떨림이 느껴지지 않았다.
 김형민 감독은 처음으로 작은 기대를 품었다.
 “정식 야구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나와 있는데 해본 적은 있나?”
 “독학했습니다. TV랑 책 보고 배웠고, 혼자 뛰었습니다.”
 “다행이네. 초보자보다는 훨씬 나을 테니까. 그럼 혹시 야구부에 들어왔을 때 본인이 뭘 제일 잘할 거라고 생각해 본 것도 있나?”
 “뭐든지요. 어떤 걸 맡기셔도 실망하실 일 없을 겁니다.”
 김형민 감독 뒤편에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모두 최태경의 선배가 될 선수들이다.
 그들은 기대치도 않은 일반 학생이 큰소리를 치니 자신들도 모르게 헛웃음을 내뱉은 것이다. 아마 속으로는 오늘 이 말을 빌미로 마음껏 굴려주겠다는 상상을 하고 있을 수도 있었다.
 
 쓰윽-
 
 코치 한 명이 돌아보는 것으로 금세 조용해진 선수들.
 김형민 감독은 눈앞에 선 자신감 과다 선수를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적어도 덩치는 큰데 벌벌 떠는 옆에 두 선수보다는 이 작은 선수가 잘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형식적으로 물었던 것과 달리 진심으로 호기심을 품고 그의 최종 목표를 물었다.
 “튼튼한 심장만큼은 신입생 중 최고 같은데? 이왕이면 목표도 한 번 들어볼까?”
 주변에 있던 모든 선수의 눈이 최태경의 입으로 모였다.
 안 그런 척해도 다들 궁금한 것이다.
 최태경은 대답 전 씨익 웃기부터 했다.
 “커쇼와 트라웃을 합친 선수가 될 생각입니다.”
 “뭐?”
 “메이저리그 최초로 연봉 5천만 돌파. 12년 정도 장기 계약을 맺어 6억 달러 받을 생각입니다. 아··· 옵션까지 더하면 7억 달러도 가능하겠네요.”
 모두가 입을 벌린 채 정적을 유지하던 순간.
 최태경만이 홀로 웃고 있었다.
 자신만만한.
 
 
  사상 최강의 에이스 2화
 
 대통령기 전국중학야구대회 결승.
 김형민 감독은 뒤지고 있는 경기를 바꿀, 최강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태경아. 이제 너밖에 없다.”
 4회 초까지 마친 경기는 현재 1대 2.
 서림중이 강호 광주신성중을 상대로 이만큼 버틴 것만도 박수를 받기에 충분한 상황이었다.
 물론 만족하지 못한 선수들도 있었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이때만 참고 기다렸으니까요.”
 마운드에 선 최태경은 내야수들을 불러 모았다.
 다들 지친 기색이 역력했지만 최태경의 말을 들으며 눈을 빛냈다.
 
 “다들 고생 많았어. 오늘 수비 좋더라.”
 “전부 태경이 네가 잘 끌어 준 거지. 철민이도 네 리드대로만 던졌으면 2점도 안 줬을걸?”
 1루수 오민재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최태경만이 고개를 저었다.
 “철민이도 충분히 잘 던졌어. 2점이면 훌륭한 거지.”
 “그래. 태경이가 막는 동안 한 점만 내면 되잖아. 우리.”
 “한 점 말고 두 점. 우승해야지.”
 최태경의 말에 모두 빙그레 웃는다.
 하지만 아무도 맞장구를 치진 못했다. 다들 우승이란 말을 실감할 수 없었다.
 다른 곳도 아닌 대통령기 우승은 이 선수들에게 무척 먼 이야기였다.
 서림중 야구부는 리틀야구 때부터 쭉 야구를 해온 선수들도 있었지만 중학교 때 처음 접한 선수들도 있었다. 모두 전국대회와는 거리가 먼 선수들인 것이다.
 오죽했으면 이름만 남은 야구부를 지원했을까.
 이번 대회에서도 상대인 광주신성중의 결승 진출을 예측한 전문가는 많아도 서림중을 지목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태경이가 그걸 다 뒤집어 버렸지.’
 
 서림중학교 투타의 핵심 최태경.
 최태경은 1학년 때부터 비범함을 드러내더니 2학년 때부터는 선수 이상의 역할을 하며 팀 전체 레벨을 끌어올렸다. 한 살 많은 선배들도 모두 그의 말을 믿었다.
 최태경이 3학년이 된 올해.
 그는 서림중 야구부를 20년 만에 대통령기 결승전으로 이끌었다.
 최태경은 웃고만 있는 선수들에게 한 번 더 강조했다.
 “다들 내 말 기억하지?”
 “어!”
 “이 대회를 위해 우리보다 많이 운 팀은 어디에도 없어··· 여기서 지면 그보다 더 울어야 할 거야.”
 이 말을 끝으로 수비수들이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광주신성중 타자는 아까부터 나와 경기 시작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태경은 연습 투구를 마치고 첫 번째로 상대할 타자를 바라보았다.
 
 4번 타자 이태영.
 그는 오늘 경기에서 유일하게 타점을 올린 선수다.
 1회 말부터 2타점 적시타를 때려 분위기를 광주신성중 쪽으로 끌고 간 강타자가 바로 그였다.
 명문고 야구부로 진학할 것이 확실한 선수.
 하지만 중학생은 중학생일 뿐이었다.
 최태경의 눈에는 타자의 빈틈이 그대로 보였다.
 타자와 눈싸움을 끝낸 후 천천히 와인드업을 시작했다.
 오른발을 들고 몸을 꼿꼿이 세우다가 회전과 함께 몸 전체가 앞으로 쏟아져 나왔다. 왼팔은 몸통 뒤에 끝까지 숨어 있다가 최후에 순간에 모습을 드러냈다.
 “볼!”
 힘껏 던졌지만 심판의 판정은 볼이었다.
 하지만 최태경은 미소를 지었다.
 반대로 타석에 서 있던 광주신성중 4번 타자는 몸을 뒤로 뺀 채 얼굴이 시뻘게져 있었다.
 투수를 바라보며 욕설도 내뱉었다.
 “저 새끼가···”
 몸쪽 스트라이크 존에서 공 2개 정도 더 안쪽으로 들어간 공. 타자가 안쪽으로 붙었다면 몸에 맞는 공이 될 확률도 있는 공이었다.
 광주신성중 타자도 그 사실을 알았는지 아까보다 한 발 안쪽으로 들어왔다.
 명백히 기싸움을 거는 모습.
 그럼에도 최태경은 망설이지 않았다.
 
 ‘명문의 4번··· 그 값을 해봐라.’
 
 최태경은 다시 한 번 공을 힘껏 뿌렸다.
 이번에는 아까와 정반대인 바깥쪽을 파고드는 공이었다.
 하지만 타자는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앞발을 안쪽으로 내려놓고 공을 따라 몸을 움직였다. 그리고는 망설임 없이 배트를 휘둘렀다.
 
 탱!
 
 알루미늄 배트가 내는 특유의 소리와 함께 공이 배트에서 튀어나왔다.
 방향은 1루수와 2루수 사이.
 내야를 뚫고 나갈 만큼 공의 속도가 빨랐다.
 타자는 배트를 던지고 1루를 향해 달려갔다.
 “여기!”
 하지만 타자 뜻대로 되지 않았다.
 비어있어야 할 공간에 2루수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가 원래보다 1루 쪽에 치우쳐 있었던 것이다.
 미리 자리를 옮기고 대기한 2루수는 손쉽게 타자의 공을 잡아 1루로 던졌다.
 그걸 본 심판은 오른손을 들고 주먹을 휘둘렀다.
 “아웃!”
 “나이스 수비!”
 “공 쩐다!”
 공 2개만으로 상대 강타자를 돌려세운 최태경.
 그의 활약에 선수들 사이에서 파이팅 소리가 넘쳐났다.
 
 
  * * *
 
 
 「대통령기 전국중학야구대회」 결승은 케이블 TV를 통해 전파를 타는 중이었다.
 비록 전국 시청률이 1%도 채 되지 못하는 방송이었지만, 현장에 있는 선수들의 열정만큼은 한국시리즈 7차전처럼 뜨거웠다.
 중계를 맡은 캐스터와 해설자 역시 프로야구 중계진 못지않았다.
 “드디어 최태경 선수가 마운드에 올라왔네요.”
 캐스터는 주요 선수가 등장하자마자 해설위원이 설명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었다.
 “해설위원님. 여기까진 경기 전부터 예상할 수 있었던 교체겠죠?”
 “맞습니다. 시청자분들께서도 잘 아시겠지만 규정상 중학교 선수는 한 경기에 4이닝밖에 던지지 못하거든요. 4회부터 나와야만 끝까지 던질 수 있어요.”
 “그러네요.”
 “지금까지 서림중 야구부를 응원하시던 분들은 이 팀이 에이스를 아끼고도 1점밖에 뒤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희망을 품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희망을 말씀하신다면 상대인 광주신성중 역시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캐스터는 해설위원의 설명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조절했다.
 해설위원도 그 마음을 알았는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광주신성중이야 에이스도 남아 있고 대타로 쓸 수 있는 타자도 많고. 선수단 전체를 보면 양 팀은 비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경기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생각되는 건··· 역시 최태경 선수의 힘이겠죠?”
 “서림중이 잘 되는 건 전부 최태경 선수 때문이라고 할 수 있어요. 제가 경기 전에 취재를 좀 해봤는데 선수들이 전부 최태경 선수의 오더를 따르더군요.”
 “정말입니까?”
 해설위원은 자신이 좋아하는 선수가 나오자 힘에 침을 튀겨가며 열을 올렸다.
 “최태경 선수는 주장을 맡으면서 선수단을 통솔할 뿐 아니라 방금처럼 수비 시프트 지시까지 도맡아 하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선수 겸 감독인 거죠. 서림중 김형민 감독도 경기 중에는 최태경 선수에게 다 맡긴다고 하더군요.”
 “놀랍네요. 3학년이라고 해도 최태경 선수는 아직 16살밖에 되지 않은 선수잖습니까?”
 “더 놀라운 건 최태경 선수가 야구를 시작한 지 아직 3년이 안 됐다는 겁니다. 심지어 리틀야구 경험도 없어 야구부에 들어갈 때 일반 학생으로 테스트를 봐 합격했었죠.”
 이 부분에서 캐스터가 이해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정말 그렇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그 시간에 저런···”
 
 
  사상 최강의 에이스 3화
 
 “최태경 선수는 태어날 때부터 크게 아팠다고 합니다. 병원에서만 지내, 초등학교를 검정고시로 졸업해야 할 정도로요. 12살에 퇴원해 야구를 시작했다고 하는데 그걸 보면 아직 잠재력이 다 발휘된 것이 아닐 겁니다.”
 “그렇다면 정말 대단한 선수가 되겠네요. 뭔가 신비로운 느낌이 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캐스터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정말 멋진 선수라고.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혼자 힘으로 그런 업적을 이룬 소년 야구선수라니, 아팠던 선수가 우뚝 선 모습을 보니 자신도 힘이 나는 것 같았다.
 부디 잘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생겨났다.
 “저 선수는 앞으로 더 잘할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당연합니다. 지금 모든 명문 고등학교 감독들이 이 선수를 주목하고 있어요. 성장기라서 몸도 실력도 더 많이 자랄 게 확실하다고 보고요. 게다가···”
 “장점이 더 있습니까?”
 “다른 선수들을 이끄는 통솔력이나 경기를 보는 눈은 이미 고등학생 수준을 넘어섰다는 평가예요. 최태경 선수의 야구지능, 흔히 BQ라고 부르는 이것이 프로 레벨까지 올랐다는 게 전문가들의 이야기입니다.”
 “해설위원님께서 최태경 선수에게 아주 깊이 빠지셨나 봅니다.”
 “그럴 수밖에요. 저도 천생 야구인이니까요.”
 해설위원은 한껏 신이 났다.
 최태경은 그가 진심으로 인정하는 몇 안 되는 선수였기에. 계속해서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 했는데 캐스터가 그의 말을 잘랐다.
 “말씀드리는 도중 광주신성중 5번, 6번 타자가 모두 내야 땅볼로 물러났습니다. 중계는 잠시 후부터 계속되겠습니다.”
 
  * * *
 
 최태경이 등판한 이후.
 경기는 아주 팽팽하게 진행되었다.
 서림중은 더 이상 한 명의 주자도 내보내지 않은 채 광주신성중의 공격을 완벽하게 틀어막았다.
 하지만 수비만 해서 이길 수는 없는 법.
 광주신성중 역시 서림중 공격을 완벽히 틀어막았다.
 서림중이 최태경이라는 에이스에 의존해 상대를 막았다면, 광주신성중은 두꺼운 선수층을 바탕으로 매회 다른 투수를 투입해 힘으로 서림중을 눌러 버렸다.
 이제 서림중의 남은 공격은 단 한 번.
 그들이 7회 초 공격에서 1점 이상을 득점하지 못하면 경기는 광주신성중의 승리로 끝나게 되어 있었다.
 
 서림중 야구부는 마지막 공격에 나서기에 앞서 더그아웃 앞에 둥그렇게 모였다.
 최태경은 김형민 감독을 대신해 선수들을 이끌었다.
 “쟤네 투수 많이 지친 거 보이지?”
 “어.”
 “네!”
 선수들의 얼굴에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명문 광주신성중과 달리 선수층이 얇아 결승전에 오르기까지 주전 대부분이 모든 경기를 마지막까지 뛰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기, 후배 가릴 것 없이 모두 하나 되어 최태경의 말에 집중했다.
 최태경은 선수 한 명, 한 명과 눈을 마주친 후 말했다.
 “상대가 명문이라 더 좋지 않냐?”
 “어?”
 “예전이랑 다르게 기자들 엄청 왔잖아. 우리 경기가 TV에도 나오고 말이야.”
 “······.”
 “오늘 우리가 한 일들은 영원히 역사에 남을 거야. 2017 대통령기 우승팀 서림중학교. 그 역사의 시작은 바로 7회 초 마지막 공격이었다고.”
 “진짜 그렇게 됐으면 소원이 없겠다.”
 다행히 서림중 야구부원들은 모두 웃고 있었다.
 져도 좋았다. 그들이 여기까지 올라 온 것 자체가 기적이었으니까.
 게다가 그들은 이번 공격만큼은 이전의 공격들과 다를 것을 알고 있었다. 7회 초엔 서림중 4번 타자가 타석에 들어설 차례가 되었기에.
 “그러니 다들 응원 열심히 하자.”
 “좋아!”
 선수들이 흩어져 더그아웃으로 들어갔다.
 최태경은 그중 한 명을 불러 세웠다.
 입가에 미소를 띄운 채 그에게 다가갔다.
 “민재야. 잠시만.”
 
  *
 
 마지막 공격의 첫 번째 타자로 타석에 들어선 오민재는 온몸에 힘을 불어넣었다.
 
 ‘맞고서라도 나간다.’
 
 1번 타자인 오민재는 어떻게 해서든 중심 타선에게 기회를 만들어 줘야만 했다.
 하지만 오늘 아직까지 한 번도 출루하지 못했다.
 그 점이 신경 쓰였는지 타석에 서기 전 최태경이 그에게 족집게 지도까지 해주었다.
 오민재는 최태경이 한 말을 떠올리며, 광주신성중의 네 번째 투수 우재우를 노려보았다.
 
 ‘괴물 같은 새끼.’
 
 같은 팀 최태경도 대단했지만 상대 역시도 결코 만만치 않았다.
 구속만 놓고 보면 우재우가 최태경보다 더 빨랐다.
 저런 놈들이 수두룩한 곳이 바로 명문 야구부다.
 
 ‘어차피 다 우리한테 발렸어. 너희라고 다를 것 같아?’
 
 오민재가 준비를 마치자 상대 투수가 첫 공을 던졌다.
 120km 정도 속도의 슬라이더가 스트라이크 존 가장 먼 곳에 꼽혔다.
 공의 변화가 어찌나 날카로웠던지 오민재는 스치지도 않은 몸을 움찔해야만 했다.
 “스트-라이크!”
 아무리 봐도 칠 수 있는 공 같지 않았다.
 하지만 오민재의 투지는 여전했다.
 
 ‘몸 쪽으로 던지라고. 몸 쪽.’
 
 오민재는 나오기 전 최태경이 한 말을 다시 떠올렸다. 그의 말을 실천하기 위해 배터 박스 라인 안쪽으로 붙었다.
 그러자 포수가 웃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어보니 마운드 위 투수 역시도 오민재를 쳐다보고 웃고 있었다.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오민재는 배트는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안쪽 던져 봐. 새끼야···’
 
 오민재는 그것만 노리고 있었다. 그의 스윙으론 우재우의 바깥쪽 힘 있는 공을 노려 칠 수 없었기에.
 몸을 배터 박스 가까이 붙인 것은 상대를 도발하기 위해서다.
 그런 오민재의 염원이 통했는지.
 우재우가 던진 공이 몸 쪽으로 바싹 붙어서 날아왔다.
 슬라이더보다 더 빠른 포심 패스트볼이었다.
 우재우의 포심 패스트볼은 최고 구속이 130km을 넘을 정도로 중학생 중에서도 최상급이었다.
 
 ‘제발···’
 
 오민재는 겁먹지 않고 배트를 휘둘렀다.
 
 깡!
 
 ‘아 씨··· 존나 아파.’
 
 배트를 집어 던지고 1루로 뛰었다.
 마음껏 노리고 휘둘렀지만 상대의 공이 너무 빨랐다.
 배트가 채 돌아 나오기 전에 공이 도착해, 배트 손잡이 부근에 맞고 나갔다.
 그러다 보니 배트 전체가 울린 충격이 오민재의 팔을 고통스럽게 했다.
 하지만 쉬고 있을 틈이 없었다.
 이제는 상대가 실수하기라도 바라면서 죽어라 뛰어야만 했다.
 몸을 움직이던 오민재는 배트에 잘못 맞은 공이 아주 느리게 굴러가는 것을 확인했다.
 1루만 보고 죽어라 달렸다.
 사정거리에 들어왔다고 느끼는 순간이 되자 다리에 힘을 줘 몸을 앞으로 내던졌다.
 그 힘이 너무 강해 1루 베이스를 찍고도 앞으로 쭉 미끄러져 온몸이 흙바닥에 긁혔지만, 그대로 누운 채 심판의 손만 바라봤다.
 잠시 후 심판이 양팔을 크게 벌렸다.
 “세이프!”
 오민재는 크게 소리쳤다.
 “아··· 시바. 됐어! 내가 해냈다고···”
 “야 인마. 욕하지 말고 얼른 일어서. 퇴장 주기 전에.”
 “네에··· 네! 저 바로 일어났습니다. 심판 선생님.”
 오민재는 몸에 묻는 흙도 털기 전 자기 팀을 바라보았다.
 팀의 리더인 최태경이 더그아웃 앞까지 나와 우뚝 서 있었다.
 그는 방금 전 오민재의 플레이를 모두 지켜봤는지 1루를 향해 엄지손가락 치켜세우고 있었다.
 조금 전 바닥에 긁힌 고통이 죄다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오민재는 타석에 들어선 타자를 바라보았다.
 
 ‘재현아··· 너도.’
 
 오민재를 응원한 최태경은.
 다음 타자를 불러서도 뭔가 귓속말을 해주고 있었다.
 
 
  사상 최강의 에이스 4화
 
 “아직 안 끝났다. 긴장하자.”
 7회 초 서림중의 마지막 공격.
 선두타자가 출루에 성공하자 광주신성중의 벤치가 바빠졌다. 광주신성중의 서민수 감독은 직접 마운드를 방문했다.
 “혹시나 상대가 버스터(번트 자세를 취하고 있다가 타격으로 전환하는 전략)로 나올 수도 있어. 신경 써라. 섣불리 앞으로 달려들지 말고.”
 서림중은 지금까지 매 경기 기대 이상의 플레이를 펼쳐 결승 진출에 성공한 팀이다. 그 중심에 ‘최태경’이라는 선수가 있다는 사실을 아마야구 관계자라면 모두 다 잘 알고 있었다.
 조금 전 서림중의 선두 타자 역시도 최태경에게 조언을 받은 후 몸 쪽 공 공략에 성공했다.
 선수들에게 지시를 마친 서민수 감독이 더그아웃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여전히 자기 팀 선수에게 조언하고 있는 상대 팀 주장이 눈에 들어왔다.
 
 ‘웬일로 얌전히 있나 했다.’
 
 서민수 감독 역시 최태경에 대해 알고 있었다.
 실력이 아주 뛰어난 선수고 기회가 된다면 직접 가르쳐 보고 싶단 마음이 생길 정도로 가능성도 훌륭했다.
 하지만 광주신성중의 앞길을 막을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야구는 개인 스포츠가 아닌 단체 스포츠니 말이다.
 
 타석에 들어선 서림중 2번 타자가 번트 자세를 취했다.
 광주신성중 내야수들은 조금 전 감독의 지시에 따라 무작정 전진 수비를 하지 않았다. 앞으로 갈 듯 말 듯 상대를 위협하는 데 집중했다.
 투수는 타자가 버스터를 하기 어려운 코스로 공을 뿌렸다.
 
 태앵-
 
 “1루!”
 타자는 버스터가 아닌 번트를 택했다.
 무게 중심이 뒤에 있던 3루수가 황급히 앞으로 달려 나와야만 했다. 맨손으로 공을 붙잡고 급하게 1루로 던졌다.
 아주 간발의 차로 공이 한 발 더 빨랐다.
 “아웃!”
 하지만 서림중 타자는 크게 실망하지 않았다. 자신의 할 일을 다 했다는 듯 뿌듯한 표정으로 그라운드에서 돌아섰다.
 그런 자신의 팀원을,
 주장 최태경은 더그아웃 앞까지 나와 박수로 맞아 주었다.
 “번트 진짜 예술이더라.”
 “전부 선배님이 가르쳐 주신대로입니다.”
 “하하. 그런가?”
 지고 있지만 밝은 서림중 선수들.
 그들을 바라보는 광주신성중 선수들의 불안감은 더욱 커져만 갔다.
 
 
  * *
 
 
 ‘민재도 재현이도··· 모두 제 역할을 다 했어.’
 
 타석에 선 3번 타자 조석환의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평소 자신보다 실력이 부족한 동료들이 모두 제 몫을 해내는 걸 지켜봐서 더욱 그랬다.
 리틀 야구에서도 제법 이름을 날린 자신과 달리 둘은 그저 그런 선수에 불과했는데.
 그들이 강해진 것은 모두 최태경 덕분이었다.
 
 야구에 미친놈.
 
 ‘내가 못 치면 분명 태경이를 거를 거야.’
 
 경력은 자신보다 부족하지만 실력만큼은 정반대인 4번 타자.
 오늘 서림중학교가 득점을 올리지 못한 것은 상대가 최태경을 제대로 상대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원인은 조석환 자신에게 있었다.
 
 ‘날 잡고 태경이를 거르는 게 너희 베스트겠지?’
 
 조석환은 배트를 꽉 쥐었다.
 상대 투수가 첫 번째 공을 던졌다.
 빠른 포심 패스트볼이 바깥쪽 스트라이크 존에 걸쳐 들어 왔다.
 “스트-라이크!”
 두 번째 공 역시 마찬가지였다.
 조금 전에 몸 쪽을 던져 빗맞은 공이 나온 게 원통했는지 광주신성중 배터리는 다시 한 번 바깥쪽 스트라이크 존을 노렸다.
 이번에는 조석환도 참지 않고 배트를 휘둘렀다.
 
 깡!
 
 “파울!”
 볼카운트 투 스트라이크 노 볼.
 위기에 몰린 조석환은 타석에서 물러나 배팅 장갑을 풀었다 다시 매었다.
 
 ‘안 되면 건드리기라도 해야 돼.’
 
 2루에 있는 오민재가 3루에 가 있는 편이 그나마 좀 더 나았다. 그것만큼은 해내야 팀원들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었다.
 조석환은 벼랑 끝에 선 심정으로 타석에 들어섰다.
 바깥쪽 공을 치기 위해 안으로 바싹 붙었다.
 
 ‘흡!’
 
 광주신성중 투수가 던진 세 번째 공.
 예상과 달리 바깥쪽이 아니었다.
 라인에 딱 붙은 조석환이 보기 싫었는지 뒤로 물러나라고 몸쪽 깊숙이 공을 던졌다.
 투수의 손을 떠난 공이 똑바로 자신에게 날아왔기에, 조석환은 그걸 피하는 게 어렵지 않았다.
 근데 피하지 않았다.
 
 퍼억-
 
 급히 몸을 틀어 허벅지 뒤편에 맞았다.
 아프지 않은 것은 절대 아니었다. 보나 마나 피멍이 들 것이 확실했다.
 “아싸!”
 이 순간 조석환은 더욱 영리해졌다.
 크게 기뻐하며 1루를 향해 뛰어갔다. 투수 들으라고 환호성을 크게 내질렀다. 1루에서 도착해선 투수를 바라봤다.
 작전이 통했는지, 공에 맞은 건 자신인데 투수의 표정이 엉망이 되어 있었다.
 
 ‘그래. 이거면 됐어.’
 
 조석환은 타석에 들어설 준비를 하는 최태경을 바라보았다.
 
 ‘태경아. 죽여 버려.’
 ‘그래. 뒤는 내게 맡겨.’
 
 동료의 뜻이 전해졌는지 최태경 역시 조석환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 * *
 
 “운이 따르는데?”
 “석환아- 잘 맞았다!”
 몸에 맞는 공이 나오자 서림중 더그아웃은 난리가 났다.
 1학년부터 3학년까지.
 타석을 준비하는 사람들 말고는 모두 다 앞으로 나와 서 있었다.
 “저거 존나 아프겠지?”
 “당연하지. 재우 저 새끼 130은 던질 텐데.”
 “근데 석환이 놈 안 피하더라.”
 “그래야지. 나라면 대가리라도 갖다 댔을 거야.”
 “미친놈. 오바 좀 하지 마.”
 조석환이 1루에 도착하자 선수들의 관심은 온통 최태경에게 쏠렸다.
 “드디어 태경이 한 번 치겠네. 설마 이번에도 거르진 않겠지?”
 “시바. 그러면 진짜 저놈 SNS 내가 조져 논다. 비겁자 새끼라고.”
 “같이 하자. 전략이고 뭐고 도망자는 까줘야 제 맛이지.”
 그래도 선수들 마음 한편이 불안한 건 어쩔 수 없었다.
 결승전에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팀이 최태경과의 승부를 피해왔는가.
 서림중이 최태경을 중심으로 흘러가는 것은 웬만한 팀은 다 알고 있었다. 최태경은 2학년 때인 작년부터 팀을 이끌었으니 말이다.
 그때 다시 한 번 경기에 변화가 찾아왔다.
 “오, 투수 교체?”
 “남희준이다. 남희준. 저놈 공 진짜 빠른데···”
 “아- 씨··· 마지막에 왜 에이스야?”
 몇몇 선수들은 불만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핵심을 꿰뚫어 보는 선수들도 있었다.
 “오히려 우리한테 좋은 거지.”
 “맞아. 아껴둔 에이스까지 꺼내는 거면 진짜 태경이랑 붙어 보겠다는 거잖아.”
 서림중 더그아웃 반대편.
 광주신성중 부동의 에이스 남희준이 마운드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최태경은 그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다.
 서림중 에이스 최태경과 광주신성중 에이스 남희준.
 두 선수 사이에는 이미 쌓인 일이 많았다.
 이제 그 쌓인 걸 풀 때다.
 
 
  사상 최강의 에이스 5화
 
 “감독님. 최태경 타석에서 한 번만 던지게 해주십시오.”
 
 남희준은 경기 전날부터 서민수 감독을 찾아가 사정했다.
 감독 역시 왜 이런지 알기 때문에 쉽사리 거절하기 어려웠다.
 남희준이 중학야구 에이스로 이름을 새기던 2학년 시절.
 광주신성중과 서림중은 토너먼트 경기 초반 만난 적이 있었다.
 당시 서림중은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되는 약체였기에, 서민수 감독은 2학년이던 남희준을 선발 투수로 결정했다.
 결과는 대성공.
 남희준은 2학년임에도 불구하고 서림중 타자들을 완벽히 농락했다. 4이닝 동안 한 점도 주지 않고 완벽히 틀어막았다.
 옥에 티라면 상대편 2학년에게 맞은 안타 2개.
 2루타와 3루타였으니 실력에서 밀렸다고밖에 볼 수 없었다.
 남희준은 다시 한 번 사정했다.
 “이번이 아니면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래도 안 돼. 너 이번 대회에서 너무 많이 던졌어.”
 “규정대로라면 출전할 수 있지 않습니까? 저희 아버지께서도 제가 최태경을 이기고 가길 바라실 겁니다.”
 “너, 이 자식이···”
 남희준의 아버지는 광주신성중 야구부의 동문회장이었다.
 감독과 코치 선임에까지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실력자. 심지어 OB 출신이라 서민수 감독의 선배이기도 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감독님. 잘못되면 전부 제가 우겼다고 하시면 됩니다.”
 “··· 경기 내용 보고 결정하겠다. 오늘은 이만 돌아가.”
 사실 서민수 감독은 남희준의 청을 들어주지 않으려 했다.
 자기 아버지까지 들먹였지만, 경기 상황이 나오지 않으면 굳이 억지 대결을 만들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그런 상황에서 던지는 것은 남희준에게도 손해였으니까 말이다.
 
 ‘근데 일이 이렇게 되다니···’
 
 7회 초 상대 마지막 공격에 최태경의 타석이 들어있자, 남희준은 알아서 몸을 풀었다. 점수 차가 컸다면 말리기라도 했을 텐데 팽팽한 긴장감 때문에 혹시나 하고 그대로 두었다.
 지금 남희준의 힘이라면 상대를 그냥 눌러버릴 수 있을 거라 확신했기에.
 2학년 때 남희준과 에이스가 된 지금은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컸다.
 경기는 염려했던 대로 어렵게 흘러갔으니.
 결국 위기에 몰린 광주신성중은 남희준 카드를 쓸 수밖에 없었다.
 서민수 감독은 사태를 여기까지 만든 상대 팀 선수를 노려보았다.
 
 ‘괴물 같은 놈.’
 
 남희준의 연습 투구가 끝나자 최태경이 타석에 들어섰다.
 서민수 감독은 타자의 빈틈 하나라도 찾기 위해 타격 자세를 노려보았다.
 긴장한 마음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팔짱 낀 상태로 둔 양팔은 풀지도 못한 채.
 
  * * *
 
 “남희준은 도망 안 가겠지?”
 “신경 꺼. 언제는 누가 도망갔냐?”
 “네 양심이 정말 그렇게 답하라고 하던?”
 최태경이 광주신성중 포수에게 말을 걸었다.
 반대로 포수는 최태경과의 대화를 피했다.
 보통은 타자의 집중력을 흔들기 위해 포수가 타자에게 말을 거는 경우가 많았는데, 오롯이 반대 장면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최태경은 포수가 흔들리면 투수도 같이 흔들린다고 믿었다.
 “대답 못 하는 거 보면 양심은 살아 있네.”
 “입 닥쳐라. 희준이 공보면 질질 쌀 놈이.”
 “진짜 그럴 거 같아? 네 뇌가 정말 그렇게 예상하던?”
 이번에도 포수는 말이 없었다.
 더 이상 최태경과 대화를 하지 않으려는지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심판도 빨리하자고 재촉해 더는 대화를 이어갈 수 없었다.
 고개를 돌린 최태경은 마운드에 선 남희준을 바라봤다.
 상대는 최고 구속 137km에 커브까지 기가 막히게 던지는 진짜 에이스급 투수였다.
 어떤 공이 날아오던 쉽사리 공략하기 어려웠다.
 물론 기가 죽을 생각은 전혀 없었다.
 투수가 고개를 돌릴 때까지 눈싸움을 피하지 않았다.
 배트를 가볍게 흔들면서 집중력을 극한으로 끌어 올렸다.
 상대가 투구를 시작했다.
 “볼!”
 남희준은 몸이 덜 풀렸는지 첫 공으로 바깥쪽 크게 벗어나는 포심 패스트볼을 던졌다.
 “볼!”
 이번에도 역시 벗어나는 공.
 일그러진 표정을 보아하니 포심 패스트볼이 제대로 컨트롤 되지 않는 것 같았다.
 남희준은 포수와 한참을 실랑이하다 세 번째 투구를 시작했다.
 투 볼 노 스트라이크.
 볼카운트가 배팅 찬스였던 만큼 최태경의 배트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흡!’
 
 예상했던 모습 그대로 날아오는 커브 볼.
 공의 이동 경로를 이미 영상으로 수없이 돌려 봤더니 눈을 감고도 보일 것 같았다.
 최태경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배트를 크게 휘둘렀다.
 
 카앙-
 
 순식간에 서림중 더그아웃 안에 있던 선수들이 밖으로 뛰쳐나왔다.
 “오오오오오!”
 “간다. 간다. 간다아아아!”
 2루에 있던 오민재와 1루에 있던 조석환은 달리던 속도도 늦추고 양팔을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
 1루에 서 있던 심판은 최태경이 친 공을 바라보다 한 손을 머리 위로 들고 빙빙 돌렸다.
 홈런이라는 사인.
 최태경은 배트를 집어 던졌다. 배트는 소용돌이마냥 팽팽 돌며 바닥에 떨어졌다.
 서림중 더그아웃을 보면서 불끈 쥔 주먹을 하늘 위로 쳐올렸다. 주먹을 편 손바닥으로 왼쪽 심장을 두드렸다.
 최태경이 걸어가는 한걸음 한걸음에 따라 서림중 더그아웃에서 그의 이름이 울려 퍼졌다.
 
 「광주신성중 2-4 서림중」
 
 두 시간 가까이 끌려가던 경기가 단숨에 뒤집어졌다.
 
  *
 
 상대 투수 남희준은 그대로 마운드에서 내려갔다.
 넋이 나갔는지 도저히 던질 수 있는 상태로 보이지 않았다.
 뒤이어 올라온 광주신성중 투수는 아주아주 힘겹게 실점 없이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이제 광주신성중에게 남은 것은 7회 말 마지막 공격뿐.
 하지만 그게 큰 희망이 되어주진 못했다.
 “나이스 피처!”
 여전히 서림중 마운드는 최태경이 지키고 있었다.
 그는 상대에게 이렇다 할 기회를 내주지 않았다.
 이른바 퍼펙트 피칭.
 다시 만난 4번 타자는 똑같은 수비 시프트에 당했다.
 역시 두 번째인 5번 타자는 시프트를 걱정하다 삼진 아웃을 당하고 말았다.
 6번 타자에게도 기대하기 힘든 상황.
 결국 광주신성중은 투아웃 주자 없는 상황에서 대타를 투입했다. 큰 걸 노리는 타자인지 새로 나온 선수는 보통 선수들보다 머리 하나 만큼 큰 체구를 가지고 있었다.
 최태경은 바뀐 타자의 눈부터 똑바로 바라봤다.
 
 ‘그렇게 떨려?’
 
 왜 안 그렇겠는가.
 팀의 마지막 타자가 될 수 있는 상황인 것을.
 반대로 아까 최태경처럼 홈런을 치면 단숨에 영웅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대타로 나선 선수는 체구에 비해 기운이 약했다.
 키가 180cm가 넘어 보였는데 태경에겐 무척 작게 느껴질 정도였다.
 
 ‘마지막 한 명.’
 
 타자를 살핀 최태경은 이제 같은 팀 내야수들과 한 명, 한 명 눈을 마주쳤다.
 중요한 순간마다 팀원들의 긴장을 풀어주는 최태경의 습관이었다.
 필요성은 확실해 보였다.
 우승에 대한 열망이 컸는지 서림중 내야수들은 타석에 선 타자만큼이나 긴장한 티를 내고 있었다.
 최태경은 그들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웃어주었다.
 그렇게 모든 준비를 마치고 투구 자세에 들어갔다.
 “스트-라이크!”
 노 볼 원 스트라이크.
 타자는 첫 번째 공을 멀뚱히 쳐다만 보고 있었다.
 그리곤 방금 놓친 공이 후회스러웠는지 몸을 작게 조이고 배트를 휘두르겠다는 태세를 보였다.
 이번에도 최태경은 칠 테면 쳐보란 듯 같은 코스로 공을 뿌렸다.
 그러자 타자의 배트가 바람을 갈랐다.
 아주 세차게.
 
 
  사상 최강의 에이스 6화
 
 광주신성중 타자는 최태경이 던진 공을 배트에 맞히는 데 성공했다.
 
 팅!
 
 ‘체··· 체인지업이었어?’
 
 배트 끝에 겨우 걸친 공이 투수 정면으로 굴러갔다.
 그걸 쥔 최태경은 1루수 오민재를 바라보았다.
 오민재는 아주 쉬운 처리만 남았는데도 얼굴이 바짝 굳어 있었다.
 그는 최태경이 공을 던져주자 글러브를 있는 대로 다 벌리고 받아냈다. 공이 글러브에 도착한 순간 다른 손으로 빠지지 못하게 막았다. 분명 공을 잡은 게 손에 느껴질 것인데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오민재는 심판이 외치는 “아웃!” 콜을 듣자마자 얼굴에 있는 모든 구멍을 팽창시켰다.
 그 상태로 마운드를 향해 뛰어왔다.
 “태경아-.”
 오민재는 시작에 불과했다.
 포수, 2루수, 3루수, 유격수뿐 아니라 저 멀리 외야에서도 서림중 팀원들이 마운드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더그아웃에 있던 선수들 역시 마찬가지.
 대통령기 결승전이 벌어진 마운드 주변은 순식간에 서림중 선수들의 축제 현장이 되어버렸다.
 “태경아. 쓰읍. 고생했다···.”
 “진짜 잘했어. 니가 최고다. 시바. 니가 짱이야. 진짜···.”
 우는 녀석들이 있었고.
 “니들 마지막에 태경이가 타자 쳐다보며 웃는 거 봤냐? 나 소름 돋아 삽질할 뻔 했다니까. 진짜 나한테 공 왔으면 실책할 각이었어.”
 “미친놈. 그랬으면 넌 내 손에 죽었다.”
 너스레를 떠는 녀석들도 있었다.
 하나 확실한 것은 모두의 눈에 성취감이 가득했다는 것이다.
 최태경이 7회 시작 전 언급한, 역사를 자신들의 손으로 써낸 기쁨이 절로 뿜어져 나왔다.
 
 2017 대통령기 전국중학야구 우승
 서림중학교
 
 잠시 후.
 서림중과 광주신성중은 인사를 마치고 헤어졌다.
 최태경을 필두로 한 서림중 야구부는 자기 팀 더그아웃 뒤로 늘어앉은 응원단 앞에 정렬했다.
 가족들과 친구들 앞에서 교가를 제창했고 단체로 큰절을 하기도 했다.
 
 이어진 행사는 인터뷰.
 오늘 중계를 맡았던 방송국에서 그라운드로 아나운서를 내려보냈다.
 서림중 주장인 최태경이 마이크를 받자 선수들과 응원단 사이에서 다시 한 번 함성이 쏟아져 나왔다.
 “안녕하세요. 최태경 선수. 오늘 승리 축하드려요.”
 인터뷰 분위기는 어렵지 않았다. 아나운서는 교본에 적혀 있을 것 같은 질문만 던졌다.
 그러다 슬쩍 최태경의 눈치를 살폈다.
 질문의 내용이 바뀌었다.
 “사실 많은 전문가가 승자로 광주신성중을 예상했었습니다. 비단 오늘 경기뿐 아니라 준결승, 8강 경기에서도 서림중은 언제나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팀의 주장으로서 이 점이 섭섭하지 않으셨습니까?”
 최태경은 아나운서와 눈부터 맞춰보았다. 눈빛에 장난기가 어려 있는 것을 확인했다.
 하지만 당황하진 않았다.
 “아나운서님께서도 그렇게 생각하셨나요?”
 “저요? 저는 아직 야구를 배우는 처지라서··· 그래도 서림중을 응원했습니다.”
 “왜요?”
 최태경이 손에 쥔 마이크로 아나운서 쪽을 가리켰다.
 졸지에 처지가 바뀐 것이다.
 이 정도면 방송사고라고 볼 수도 있었지만, 한쪽 귀에 달린 이어폰에는 계속하라는 PD 말이 속사포처럼 전해지고 있었다.
 아나운서는 정신을 바짝 차리려고 애썼다.
 “다들 광주신성중이 이길 거라고 하시니까 마음이 변했어요. 그래서 저라도 서림중을···”
 “약팀을 응원하는 게 묘한 기쁨이 있죠?”
 “네··· 네? 아··· 서림중이 약팀이라는 소리가 아니라.”
 “괜찮아요. 제가 누구보다 우리 팀 사정 잘 알고 있거든요.”
 당황한 아나운서를 보고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리곤 고개를 돌려 정면을 바라보았다.
 카메라에 깃든 빨간 불빛이 오롯이 최태경을 향하고 있었다.
 “약팀이라 하셔도 전혀 섭섭하지 않습니다. 원래 뜰에서 키운 꽃의 화려함에 취하면, 들에 핀 풀잎의 강인함을 보지 못하니까요.”
 “네?”
 “오히려··· 즐거웠습니다. 스포츠의 재미는 역시 업셋(upset:약팀이 강팀을 이기는 것)이니까요. 야구팬분들께서도 좋아하셨을 거라 믿습니다.”
 최태경의 인터뷰는 이것으로 끝이 났다.
 PD와 아나운서 모두 만족한 것은 당연지사.
 이 장면은 당일 프로야구 리뷰 방송 ‘오늘의 뉴스타’ 코너에서 프로선수를 대신하여 방송되었다.
 
  * * *
 
 ‘중학교 야구는 이걸로 끝.’
 
 최태경이 모든 행사를 끝마치고 운동장에서 벗어났다.
 이미 많은 사람이 운동장을 떠났는지 앞서가는 팀원들을 제외하고는 눈에 보이는 사람이 없었다.
 이제 선수단 버스에 타서 학교로 돌아가면 되는 건데.
 “최태경 선수!”
 또 한 명의 남자가 태경을 붙들었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조금 전까지 어울리던 기자들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정장을 차려입은 모습이 야구인으로 보이지도 않았다.
 40대 초반 혹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이 남자는 야구대회 현장과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는 태경이 한 번도 마주친 적 없는 사람이다.
 “서림중학교 최태경 선수 맞죠? 오늘 경기 잘 봤습니다.”
 “아, 네. 감사합니다.”
 최태경은 남자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자신을 붙잡은 목적이 뭔지를 빨리 털어놓으라는 무언의 압박을 쏘아 보냈다.
 하지만 이 남자는 여유를 부리며 뜬금없는 이야기부터 꺼냈다.
 “최태경 선수. 지금이 7월인 거 아시죠?”
 “······ 무슨 소립니까?”
 “매년 7월은 교육청에 체육특기자 배정을 요청하는 시기입니다. 물론 저희 학교도 요청을 해둔 상태고요.”
 퉁명스러운 태도에도 중년 남자는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그는 최태경의 반응과 관계없이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했다.
 “아마도 8월부터는 지원 신청서를 받을 수 있겠네요. 부디 좋은 선수들이 많이 찾아와야 할 텐데.”
 “······.”
 “아 참. 제가 일하는 학교는 광주신성고입니다. 광주신성고는 잘 아시죠?”
 “모를 수 없죠.”
 광주신성고는 오늘 태경이 맞붙은 결승 상대와 같은 재단인 고등학교다. 역시나 오랜 야구 명문. 해마다 토너먼트 대회 최정상을 노리는 고등학교다.
 야구를 하는 중학생이라면 모를 수 없었다.
 “올해도 좋은 학생이 많이 들어왔으면 좋겠네요. 그럼 학교에서 지원도 빵빵하게 해 줄 텐데. 그렇게 되면 참 좋겠죠? 최태경 선수.”
 입으로 말을 하며 눈으로는 다른 뜻을 전하는 중년 사내.
 그는 최태경의 눈을 똑바로 보고 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최태경이 거기에 담긴 뜻을 알아챘다.
 
 ‘사전 스카우트··· 이거 불법인데.’
 
 듣기만 했지 아직 경험은 해보지 못한 그것.
 최태경의 짐작은 정확했다.
 광주신성고에서 나왔다는 이 남자는 정식기간도 아닌 지금 스카우트 제의를 하러 온 것이다.
 
  *
 
 최태경은 생각해 보겠다는 말로 중년 남자를 돌려보냈다.
 하지만 광주신성고는 시작일 뿐이었다.
 본격적인 스카우트 시즌이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최태경에게 오는 연락이 엄청나게 늘어났다.
 아직 정식 오퍼를 넣을 수 없는 시기라 직접적으로 조건을 제시하지는 못했지만, 서림중 관계자를 통해 들려오는 이야기들이 엄청나게 많았다.
 다들 어찌나 아는 사람이 많았는지.
 고등학교 학비 면제는 기본이고 기숙사비 면제에 장학금까지 주겠다는 학교들이 적지 않았다.
 이런 제의를 하는 학교들은 전부 대한민국에서 최고로 꼽히는 야구 명문고들이었다.
 
 ‘이러니 계속 잘할 수밖에.’
 
 스카우트 전쟁이 더욱 치열해진 때는 정식으로 체육특기자 모집을 시작한 이후였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덕소고 야구부장입니다.”
 “저희 마산용신고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LA다저스에 뛰고 있는 유연진 투수 아시죠? 유연진 투수가 바로 저희 인천 동설고 출신으로···”
 하루가 멀다 하고 서림중학교로 고등학교 야구 관계자들이 방문했다.
 서림중에는 최태경 이외에도 야구로 진학을 원하는 선수들이 여럿 있었지만, 관계자들의 관심은 오로지 최태경에게만 몰렸다.
 그들 중 일부는 집으로 찾아오기까지 했다.
 
 어느 토요일 오후.
 볼일을 보고 돌아온 최태경은 현관에서 평소에 보지 못한 신발 여럿을 보게 되었다.
 문 여는 소리를 들었는지 어머니가 마중 나왔다.
 “태경아. 이제 왔어? 너 보러 손님 오셨어.”
 “제 손님이요? 그럼 연락하시지 그러셨어요.”
 복도 벽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거실.
 그곳에서 여러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웬일인지 마중 나온 어머니의 표정이 상기되어 있었다.
 “왜 그러세요? 누가 오셨는데요?”
 “전혀 생각지도 못한 분이 찾아와서··· 근데 너도 아는 사람이야.”
 “저도요?”
 최태경이 아무리 궁금해 해도 어머니는 대답을 해주지 않으셨다.
 결국 궁금한 마음에 신발을 벗고 직접 안으로 들어갔다.
 거실 복도를 지나 베란다 앞 거실에 도착하자 아버지가 손님 둘을 상대하는 게 보였다. 아버지는 최태경이 들어오는 걸 보지 못하셨는지 여전히 손님에게만 집중하고 계셨다.
 근데 그 표정이 무척 밝으셨다.
 오히려 손님들이 먼저 최태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버지 또래 혹은 그 위로 보이는 남자들이었는데, 그중 한 명이 아주 익숙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최태경 선수? 어서 와요.”
 그 남자는 최태경을 보고 아주 밝게 웃었다.
 하지만 최태경은 전혀 그럴 수 없었다.
 
 
  사상 최강의 에이스 7화
 
 ‘뉴젠 구단주가 여길 왜?’
 
 한국프로야구의 막내 구단 뉴젠 레오파드.
 그곳을 구단주이자 IT 사업가인 김택수가 최태경의 아버지 바로 앞에 앉아 있었다.
 그는 최태경을 바라보며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표정을 보아하니 나를 아는 거 같은데···. 맞나?”
 “네.”
 “알고 보니 최태경 선수 아버님이랑도 내가 인연이 있더라고. 그래서 말을 놨는데···. 괜찮겠지?”
 “네. 괜찮습니다.”
 “태경아. 김 대표님이 아빠 대학교 선배님이셔.”
 “대표님은 무슨···. 그냥 선배라고 부르게.”
 김택수 대표는 시종일관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이곳이 최태경의 집 안방이었지만 전혀 어색함이 없었다.
 최태경의 아버지보다 선배라고 하니 분명 나이도 많을 텐데, 눈빛에 담겨 있는 장난기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멀뚱히 서서 인사를 마친 최태경은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자리에 앉았다.
 졸지에 태경네 가족 세 명과 김택수 대표, 그리고 또 한 명의 사내가 거실을 꽉 채웠다.
 “여긴 우리 뉴젠 레오파드의 운영팀장님.”
 “안녕하세요.”
 김택수 대표가 같이 온 사내를 소개해줬다.
 운영팀장이라고 밝힌 그 남자는 별다른 말없이 입가에 미소만 띠고 있었다.
 그는 그저 최태경의 여기저기를 유심히 살폈다. 눈이 가늘어졌다 커졌다 하고 가끔씩 고개도 끄덕이는 것이 혼자만의 생각에 빠진 것 같았다.
 
 최태경은 거기에 연연하지 않고 다시 김택수 대표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저희 아버지를 만나러 오셨나요?”
 “아니. 너희 아버지랑 내가 대학 선후배 사이라는 건 여기 와서 안 사실이거든.”
 김택수 대표가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최태경은 거침없이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그럼 목적이 저인 거네요? 흠···”
 프로야구 구단의 구단주가 중학생 선수를 찾아올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아무리 고민해 봐도 쉽게 답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최태경은 김택수 대표의 목적을 짐작해 보려 애썼다.
 그냥 모른다고 물러서는 것은 싫었다.
 “제가 아직 레오파드에서 뛰기엔 좀 이른 것 같은데요. 적응 기간을 주시면 모르겠지만.”
 “뭐? 하하··· 엄청난 자신감이네.”
 “그래도 오만하다고 하진 않으시네요. 감사합니다. 제 입장에선 냉정한 현실 판단이었지만요.”
 “이거 듣던 거 이상이야. 정말 대단해.”
 김택수 대표는 진심으로 웃었다.
 이게 고작 16살 먹은 아이가 보여줄 수 있는 모습인 것인지.
 어린 날 자신은 어땠는지 기억을 되짚어 보았다.
 
 ‘어쩌긴 뭘 어쨌어. 당시에는 공부만 하는데도 시간에 쫓겨 살았는데.’
 
 자신뿐 아니라 주위에 누굴 떠올려 봐도 최태경과 같은 모습을 보여준 사람은 생각나지 않았다.
 
 김택수 대표는 지금 눈앞에 있는 어린 상대가 기대했던 것보다 몇 배 더 가치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로 했다.
 다시 대화를 이어갔다.
 “무척 아쉽겠지만 널 지금 레오파드로 데려갈 생각은 아니야. 나도 꽤 현실 판단을 냉정하게 하는 편이거든.”
 “그럼 절 왜 찾아오셨어요?”
 김택수 대표의 웃는 눈이 옆에 앉은 운영팀장에게로 향했다.
 그러고 나서 최태경을 돌아본다.
 “우리 운영팀장님께서 주로 맡으시는 업무가 분명 레오파드 구단의 운영인데 말이야···”
 “근데요?”
 “내년부터는 고등학교 야구부 운영도 총괄하실 거거든. 요 옆에 세운고 알지? 거기가 내년부터 뉴젠 고등학교로 이름이 바뀔 거야.”
 “뉴젠고요? 혹시···”
 김택수 대표가 가볍게 손뼉을 쳤다.
 얼굴에는 장난스러운 미소가 가득했다.
 “역시··· 단번에 알아듣는구나. 네가 생각한 대로 내가 이번에 세운 재단을 인수하게 됐어. 학교 이름 변경건도 이미 통과시켜 놨고.”
 “아···.”
 여기까지 설명을 들은 최태경은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두 사람이 왜 자신을 찾아 왔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서둘지 않았다.
 중요한 순간일수록 패를 늦게 보여주는 게 유리했다.
 “축하드려요. 프로야구 구단 구단주가 되는 게 어린 시절 꿈이었다고 하시던데··· 고등학교 이사장도 그러셨나 보네요.”
 “아니. 고등학교는 빨리 떠나고 싶은 마음뿐이었어.”
 “그럼 왜 재단을 인수하셨어요?”
 최태경은 백 프로 속내를 감추었다.
 어느새 나이와 어울리는 중학생 모습으로 돌아가 어른에게 질문하는 학생이 되어 있었다.
 김택수 대표는 그 모습에 빠져 선생님처럼 하나하나 설명을 해주었다.
 “어린 시절 내 꿈은 그냥 구단주가 아니라 훌륭한 구단주가 되는 거였거든. 팀이 계속해서 승리할 수 있는 기틀까지 잘 마련해 놓는 구단주.”
 “지금 뉴젠 잘하고 있잖아요.”
 “아직 부족하지. 이거론 안 돼.”
 “앞으로 더 열심히 하면··· 다른 방법이 있나요?”
 어디 가서 갑자기 선수를 사올 수도 없는 노릇이고.
 FA(자유계약선수) 제도를 통해 나오는 선수들은 그 숫자가 적고 팀에 꼭 필요한 자원이 풀린다는 보장도 없었다.
 “태경이 너라면 현재 우리나라 고교 드래프트 제도에 대해선 알고 있겠지?”
 “네.”
 “난 그 때문에 고등학교 이사장이 되기로 했어. 이젠 내 뜻을 알겠니?”
 “어느 정도는요. 근데 직접 설명해 주시는 편이 오해 없는 대화에 도움이 되겠네요.”
 김택수 대표의 눈에 놀라움이 스쳐 갔다.
 “경기를 보는 눈이 보통 중학생하고는 차원이 다르더니 실제 성격도 그런가 보네.”
 그는 다시 한 번 차근차근 설명을 이어갔다.
 현재 한국프로야구 구단들은 자신들의 연고지에서 다른 구단과 관계없이 1명을 먼저 뽑을 수 있는데, 현재 뉴젠 레오파드 연고지에서 나오는 자원은 항상 아쉬웠다.
 그래서 아예 연고지 내에 최강의 야구부를 직접 만들어서 매년 가장 우수한 고등학교 선수를 만들어 내는 쪽으로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그걸 위해 뉴젠 고등학교에는 내년부터 야구부가 생길 예정이었다.
 “근래 들어 협회 차원에서도 고등학교 야구부 창단을 반기는 입장이라 준비는 다 끝났어. 딱 하나만 빼고 말이야.”
 “그게 뭐죠?”
 “강한 야구부를 만들려면 좋은 선수를 모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그동안의 좋은 성적이 밑바탕이 되어야 하잖아? 근데 신생 야구부는 그게 없어.”
 “그렇죠. 그래서 보통 몇 년은 기틀을 쌓는 데 집중하잖아요.”
 “우리도 원래는 그러려고 했는데 치트키로 쓸 선수가 보이더라고. 그것도 때마침 중학교를 졸업하는 선수가.”
 김택수 대표가 최태경의 눈을 똑바로 봤다. 그의 두 눈에는 조금 전까지 비추던 장난기가 사라져 있었다.
 
 김택수 대표는 그 자세 그대로 한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하지만 최태경은 이미 많은 말을 들은 느낌을 받았다.
 “솔직히 서림중 경기를 보고 반했다. 바로 너한테 말이야. 그러니 네가 뉴젠고로 와서 여기도 그렇게 만들어 봐라. 필요한 지원은 뭐든지 다 해주마.”
 김택수 대표가 운영팀장을 바라보자 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신생고라고 꼭 몇 년 헤맬 이유 없다는 게 내 판단이다. 너만 있다면 말이야. 딱 3년··· 3년 후 네가 고등학교 3학년이 됐었을 때, 서림중처럼 뉴젠고를 전국 최강이 되게 만들 생각이다.”
 이 말까지 마치고 나서야 김택수 대표의 눈빛에 장난기가 돌아왔다.
 그는 얼굴에 웃음을 가득 머금고도 진담 같은 농담으로 최태경의 마음을 흔들려 애썼다.
 “우리 계획대로 되면 뉴젠고 야구부가 배출한 첫 1차 지명자는 네가 될 것 같은데··· 계약금은 얼마나 줄까? 지금까지 신인 계약 최고 기록이 10억이었던가.”
 “크게 내키는 이야기는 아니네요.”
 선수 스카우트는 사업처럼 되지 않았다.
 최태경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흔들었다.
 “전부 제 힘으로 얻을 수 있는 것들로 보여서.”
 “뭐?”
 “스카우트에 성공하시려면 상대가 원하는 조건을 알고 거기에 맞춰주셔야죠.”
 순식간에 김택수 대표와 운영팀장의 얼굴이 변했다.
 이 제안이 거절당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이 자리에 왔다. 비교할 대상이 없을 만큼 좋은 조건이었기에.
 한편으로는 최태경이 어떤 조건을 말할지 기대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최태경의 부모들조차도 이런 전개에 대해서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었기에, 거실에 둘러앉은 어른 넷이 모두 최태경의 입만 바라보게 되었다.
 
 그는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까지 뜸을 들이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 조건은요···”
 
 
  사상 최강의 에이스 8화
 
 “김택수 이사장님.”
 “이사장님?”
 “네. 지금은 뉴젠 고등학교를 대표해서 오신 거니까요.”
 김택수 대표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것도 좋네. 틀린 말도 아니고. 그럼 이 자린 뉴젠고 대표와 특급 신입생 사이의 협상인 건가? 조건이 뭔지 얼른 말해 봐. 무척 궁금하니까 말이야.”
 “조건을 말씀드리기 전에 먼저 약속받고 싶은 게 있어요.”
 최태경이 뱉는 말 한 마디 한 마디에는 묵직한 힘이 실려 있었다. 마치 이걸 들어주지 않으면 협상은 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김택수 대표도 그 뜻을 알아차렸는지 태도가 한층 더 진지해졌다.
 “그 ‘약속’이라고 하는 건 바로 들어볼 수 있는 거지? 이러다간 내 애간장이 남아나질 않을 거 같으니까.”
 “아주 간단해요. ‘조건을 무조건 들어주겠다. 불가능한 부분도 있겠지만 최선을 다해 성사시키겠다.’ 이렇게 약속해주셨으면 해요.”
 “뭐? ······. 무슨 그런 조건이 다 있어?”
 “대신 저도 약속 하나 드릴게요.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저도 반드시 뉴젠고에 입학하겠다고요.”
 “반드시?”
 “네. 반드시요.”
 최태경과 김택수 대표의 눈이 마주쳤다.
 16살 소년과 48살 대표가 눈빛 교환을 통해 서로의 생각을 읽고 있었다.
 어느 한 사람도 먼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둘 중 먼저 여유를 내비친 사람은 김택수 대표였다.
 “그건 이쪽에 너무 손해인 것 같은데? 조건을 들어주면 입학한다. 이건 약속이 없어도 성립해야 하는 명제니까.”
 “아, 한 가지 이야기를 더 보탤게요.”
 “이번엔 또 뭐?”
 최태경은 김택수 대표와 운영팀장, 두 사람을 돌아보며 말했다.
 “제가 제시한 조건이 뉴젠고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다고 생각하시면 전혀 들어주지 않으셔도 돼요.”
 “뭐?”
 “아무리 약속을 하셨더라도 제가 제시한 조건이 뉴젠고 이익에 반하는 이야기라면 전혀 지키지 않으셔도 된다고요. 제 이야기만 쏙 듣고 ‘이러이러해서 별로다.’ 라고만 설명하실 수 있으면 언제든지 약속을 깨셔도 좋아요.”
 “호···. 자신 있나 본데?”
 “네. 약속을 받아주시면 저도 반드시 뉴젠고로 가겠다고 말씀드렸잖아요. 그만큼 뉴젠고에 도움이 되는 조건이니까요.”
 할 말을 마친 최태경은 입을 꾹 다물었다.
 이제 모든 결정은 김택수 대표에게로 넘어갔다는 표정이다. 그러면서도 전혀 초조해 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 시선에 담긴 뜻을 읽은 김택수 대표는 결정을 미루기 힘들었다.
 
 ‘조건이 뭐든···. 이 선수가 내 팀이라면 아주 즐거워지겠어.’
 
 그는 이 ‘촉’이라는 걸 믿어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
 “말해 봐. 네가 숨기고 있는 조건들. 약속은 받아들일 테니까.”
 최태경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크게 동요하는 기색 없이 곧장 입을 열었다.
 “문철민, 조석환, 오민재. 이 세 사람을 뉴젠고에서 스카우트해주세요.”
 “팀장님. 아시는 선수들인가요?”
 “네. 서림중 3학년들로 팀 전력의 가장 핵심을 담당하는 선수들입니다.”
 스카우트를 담당하는 운영팀장이 대답했다.
 김택수 대표가 야구부 창단에 관심이 많지만 모든 선수를 알고 있을 수는 없었다. 최태경과 같이 초특급 선수는 달랐지만 그 외 선수들은 모두 운영팀장과 그 밑에 스카우트 팀에서 접촉하고 있었다.
 “저희 스카우트 팀 명단에도 올라 있습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없겠네요···. 근데 태경아.”
 “네.”
 “이게 전부인 건 아니지? 친구들과 계속 함께 할 수 있게 해달라는 거. 멋진 조건이긴 하지만 거창하게 약속까지 해야 할 만큼 대단한 조건은 아닌 거 같아서. 뉴젠고 전력에도 큰 영향을 미칠 거 같지 않고.”
 “두 번째 조건도 있어요.”
 김택수 대표의 뚱한 반응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히든카드를 감춘 포커 고수처럼 태연했다.
 최태경은 분위기가 정돈된 후에 남은 카드를 뒤집었다.
 “광주신성고 2학년 김용구, 마산용신고 2학년 박성우, 덕소고 2학년 손영일, 동설고 1학년 태종식···.”
 “어?”
 김택수 대표의 여유가 깨졌다.
 “천안남일고, 휘성고, 배영고···.”
 바로 옆에 앉은 운영팀장의 경우는 조금 달랐지만, 그 역시 최태경의 말을 완전히 따라오는 표정은 아니었다.
 결국 최태경은 종이를 가져와 나열했던 이름들을 다시 적었다.
 “이 선수들 중 열 명 이상을 스카우트해주세요.”
 이 말을 끝으로.
 김택수 대표와 운영팀장, 이들 앞에 종이 한 장에 놓였다.
 두 사람은 거기에 적힌 이름들을 파악하느라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김택수 대표는 운영팀장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이게 전국에 숨은 인재들이라는 거지? 명문고에서 후보로 뛰고 있는.”
 “네. 어차피 신생고는 전학생을 받아도 되니까요. 그게 빠르게 자리 잡는 길이고요. 아마 이미 준비하고 계셨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긴 하지. 한데 우리 팀장님께서도 모르는 이름이 꽤 있다고 하셔서.”
 김택수 대표는 그 이름들에 대한 설명을 요구했다.
 하지만 최태경은 그럴 마음이 없어 보였다. 직접 조사해 봐야만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결국 다음 질문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딱 집어 열 명이라고 정한 이유는?”
 최태경도 이 질문만큼은 속내를 감추지 않고 답했다.
 “굳이 제가 3학년 될 때까지 기다릴 이유가 있을까요? 가능한 한 빨리 달려야죠. 거기 적힌 선수 중 열 명 이상만 모아주시면 내년에 바로 왕좌의 게임을 즐기실 수 있게 해드릴게요.”
 대통령기 결승전 마지막 타자를 바라보던 그때 그 표정.
 지금 최태경의 표정은 그때처럼 자신만만했다.
 
  *
 
 “정말 대단한 녀석이지 않습니까?”
 “확실히 다르긴 하더군요. 중학생 선수가 그런 모습을 보일 줄은.”
 김택수 대표와 운영팀장.
 최태경의 집을 방문하고 나온 두 사람이 돌아가는 길에 떠올릴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다시 생각해 보면 저희가 방문할 걸 몰랐을 겁니다. 그런데 제시한 조건은 미리 준비해 둔 것 같았으니···. 목표에 대한 욕심이 정말 대단한 선수네요.”
 “그러니까 야구 시작한 지 3년 만에 전국에 이름을 알렸겠죠. 전국 모든 명문 고등학교가 욕심내고 싶게 할 정도로.”
 “대표님. 그럼 최태경 선수의 조건을 들어주실 겁니까?”
 “약속했으니까요.”
 김택수 대표는 최태경을 만나기 전보다 훨씬 더 그에게 빠져있었다.
 “팀장님이 보시기에는 얼마나 가능할 것 같습니까?”
 “최태경 선수가 말한 이름 중 대부분은 저희도 파악하고 있던 선수들입니다. 그렇지 않은 선수도 일부 있긴 하지만, 돌아가는 대로 스카우트 팀 소집해서 알아내겠습니다.”
 김택수 대표는 다시 한 번 최태경을 떠올리며 감탄했다.
 전문 스카우트 팀 못지않은 정보력이라니.
 구하려면 구할 수도 있겠지만 중학생 선수 중 그런 걸 구하려고 노력하는 선수가 있다는 게 정말 신기했다.
 
 ‘애초에 큰 꿈을 꿔온 거겠지. 내가 말하기 전부터.’
 
 그래야만 지금 상황이 이해될 수 있었다.
 최태경은 보통의 중학생들과는 전혀 다른 시야로 자신이 입학할 학교를 고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 시점에서 김택수 대표는 마음을 확고히 했다.
 
 “팀장님. 스카우트 팀 회의 때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명단에 있는 이름들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해 주세요. 필요하다면 스카우트 팀 인원을 보강해서라도 말입니다. 그에 따른 지원은 제 이름으로 약속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대표님.”
 “들어주겠다고 약속한 만큼 화끈하게 들어줘야겠죠.”
 그는 오늘 자신도 놀랄 만큼 심장이 뛴 순간을 떠올렸다.
 “10명 이상만 모아오면 바로 왕좌의 게임에 낄 수 있게 해준다고 했으니 무조건 모아야죠. 못 끼면 엉덩이를 때려주고요.”
 최태경이 말한 왕좌의 게임.
 한국 고교야구 판도를 말하는 것이다.
 매년 몇 개의 전국토너먼트 대회들이 열리지만 항상 우승하는 팀만 우승하는 것이 한국 고교야구의 현실이었다.
 투구수 제한 같은 선수 보호 조항이 늘어난 이후로는 더 했다.
 선수층이 얇으면 절대 계속해서 승리할 수 없는 토너먼트 대회.
 이변은 있어도 우승은 언제나 왕좌라 불리는 명문 고등학교들만 할 수 있었다.
 
 ‘뉴젠이 그 판을 깨버린다면 진짜 짜릿하겠지. 기업의 역동적인 이미지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고.’
 
 뉴젠. 뉴 제너레이션의 줄임말.
 21세기 시작과 동시에 창업한 뉴젠이 어느새 거대 재벌만 가질 수 있다는 프로야구 구단을 소유했다.
 거기에서 얻은 효과는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훌륭했다.
 만약 고교 야구에서 한 번 더 열풍을 이끌어 낸다면, 기업의 긍정적인 이미지는 아주 오래도록 유지될 수 있을 것이다.
 
 ‘벌써 멋진 그림이 그려진 것 같군.’
 
 김택수 대표는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한편으로는 최태경의 정체에 대해 강한 궁금증을 느꼈다.
 
 ‘근데 어떻게 중학생이 이럴 수 있는 거지? 태어나 줄곧 병원에서만 살다, 겨우 몇 년 전에 퇴원한 것으로 들었는데···.’
 
  * * *
 
 손님이 돌아가고도 최태경의 가족 세 사람은 거실에 남았다.
 “원래도 그랬지만 태경이 네 뜻대로 해라. 나하고 김 대표님하고의 관계는 신경 쓰지 말고.”
 어린 시절 불치병을 앓던 아들이 병원에서 퇴원한 이후 그 부모는 언제나 아들 편을 들었다. 야구를 하고 싶다고 하면 야구를 하게 했고, 훈련에 필요하다고 하면 뭐든 다 사주었다.
 이들 부부는 아들이 한 번 더 살게 된 것만으로도 너무도 행복해했다.
 
 최태경 역시 그런 부모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항상 감사하게 어겼다.
 단지 야구에 모든 시간을 쏟느라 대화할 시간이 부족했을 뿐이었다.
 최태경은 모처럼 아버지와 진지한 대화를 나누기로 마음먹었다.
 “아버지. 김택수 대표님은 믿을 만한 분이에요?”
 “워낙 유명한 분이라서···. 너도 알고 있잖니? 오늘 직접 만나보기도 했고.”
 “그것보다 아버지의 판단을 배우고 싶어서요.”
 아버지는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아들을 보고 미소 지었다.
 경기에 나갈 때마다 이미 중학생을 초월한 시야를 가졌다고 칭찬받는 아들인데, 어느새 아버지를 배려할 줄 아는 모습까지 갖추었다.
 정말이지 가슴이 뿌듯했다.
 “내가 뭘 알겠냐만은···.”
 아버지는 아들의 장래를 생각하며 최대한 신중하게 한 마디, 한 마디를 내뱉었다.
 “자신이 한 말은 지킬 줄 아는 사람으로 보였다. 욕심을 낼지언정 그걸 얻기 위해 남에게 해코지는 하지 않을 사람. 적어도 같은 편이 됐을 때 해가 될 사람은 아닌 것 같더라.”
 “흐음···.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래도 김 대표님이 말씀하신 조건들 때문에 장래를 결정하진 마라. 이 아빠도 얼마든지 네 뒷바라지를 해줄 수 있으니 말이다.”
 신중하게 생각하는 아들의 모습.
 부자간의 정겨운 대화에 어머니는 기분이 좋아졌다.
 이 얼마나 화목한 가정인가.
 최태경이 병에 걸렸을 때는 이런 광경을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엄마는 뭐든 상관없어. 태경이 네가 원하는 대로 해. 네가 다시 살게 된 그때부터 엄만 온 세상이 다 감사한 일밖에 없으니까.”
 “또 그때 생각하세요?”
 “그럼. 평생 생각해야지. 죽어가던 네가 아무 이유도 없이 갑자기 살아났는데···. 의사 선생님 말씀대로 그때부터 넌 세상을 놀라게 한 기적의 주인공이 된 거잖아.”
 태어날 때부터 원인모를 불치병에 걸렸던 최태경이 어느 날부터 갑자기 몸 상태가 좋아졌다. 현대 의학에서는 도저히 증명할 수 없는 회복 속도를 보이며.
 원인을 찾던 담당 의사는 끝끝내 회복 이유를 알아내지 못하고 모든 것을 기적이라고 말했었다.
 어머니 역시 그때 일을 기적으로만 믿고 있었고.
 
 하지만 최태경의 생각은 달랐다.
 
 
  사상 최강의 에이스 9화
 
 최태경은 부모님과 대화를 마치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누가 봐도 야구 선수가 쓸 것 같이 꾸며진 방.
 책상과 침대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이 야구와 관련된 물품뿐이었다. 그동안 써왔던 배트와 글러브, 야구공들.
 책장 위에는 각종 대회에서 받은 상패들이 늘어서 있었다.
 
 최태경은 그중 아주 오래돼 보이는 야구공 하나를 쥐었다.
 그건 도저히 본래의 기능을 할 수 없을 것 같은 낡은 공이었지만, 그에게는 이 방에 있는 어떤 물건보다도 소중한 보물이었다.
 
 ‘내 야구를 시작하게 해준···’
 
 어머니나 의사가 말했던 것처럼.
 최태경에게 기적이 찾아온 것은 맞았다.
 태어날 때부터 불치병에 걸려 열 살이 넘도록 병원을 벗어난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하루 24시간 중 깨어있을 수 있었던 시간은 고작 6시간 남짓.
 최태경은 그때조차도 자유롭게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삶에 대한 기대도 미련도 가질 수 없었던 나날들.
 그 상황을 벗어날 수 있게 된 것은 분명 기적이었다.
 
 그저 다르게 생각하는 것은.
 그들과 달리 최태경이 기적의 이유를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 * *
 
 병원에 입원해 있던 과거 어느 날.
 나이는 고작 열 살.
 최태경은 병실 침상에 걸터앉아 진 씨 성을 가진 할아버지와 함께 야구 경기를 시청하고 있었다.
 “할아버지. 이번에는 버스터를 할 것 같아요.”
 “그리 봤더냐? 생각한 이유는 무엇이고?”
 “감독 성향이요. 주진환 감독님은 후배 감독을 상대할 때마다 기습 작전 쓰기를 좋아하시더라고요.”
 “오호라··· 그것까지 염두에 두었더냐?”
 진 노인은 최태경과 이야기를 나눌수록 즐거워했다.
 이 병원에서 유일하게 자신과 야구에 대해 토론할 수 있는 아이.
 이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무수히 많은 공부를 시켜주었지만 실제로 이리되니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어르신. 지금 태경이 하는 말이 맞는 건가요?”
 최태경의 어머니가 두 사람 앞에 과일 접시를 내려놓았다. 그녀는 아들 얼굴을 바라보며 미소 짓고 있었다.
 진 노인 역시 미소 짓기는 마찬가지였다.
 “결과야 지켜봐야 알 수 있겠지. 근데 태경이 판단이 내 생각과 같네.”
 “매일 어르신 곁에서 야구에 묻혀 살더니 정말 많이 배웠나 보네요. 한글도 야구 때문에 깨우치더니··· 정말 감사합니다. 어르신.”
 “내가 뭐 한 게 있나? 태경이 이것이 지 재주껏 익힌 것이지.”
 “할아버지! 제 말이 맞죠?”
 경기만 지켜보던 최태경이 기뻐 소리쳤다.
 그가 예상했던 것처럼 공격 쪽에서 버스터를 시도했다.
 결과는 대성공.
 TV 중계 카메라는 기뻐하는 공격팀 감독과 당황한 수비팀 감독을 번갈아 보여주었다.
 “할아버지. 주진환 감독님 표정 좀 보세요. 딱딱한 얼굴에 미소가 생겨났어요.”
 “저놈, 저놈··· 후배 골려 먹고 좋아하는 모습이라니.”
 “저 감독님이 할아버지 후배라고 하셨죠?”
 “그래. 옛날에 내 밑에서 물통 좀 열심히 날랐었지.”
 “참 아까워요. 할아버지께서도 아프지만 않으셨으면··· 흡!”
 최태경이 서둘러 말을 멈췄다. 두 손을 입으로 가져가 가리고는 천천히 진 노인을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둘 사이에 아픈 이야기는 해서 좋을 게 없었기에.
 최태경은 원인도 알 수 없는 불치병 환자였고, 진 노인은 다신 회복할 수 없다는 판정을 받고 죽을 날만 기다리는 환자였다.
 
 최태경의 어머니 역시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오로지 진 노인만이 태연했다.
 “태경아.”
 “네··· 할아버지.”
 “너라면 이제 어쩌겠느냐?”
 “뭐, 뭘요?”
 진 노인은 손을 들어 TV를 가리켰다.
 여전히 야구 경기는 진행 중.
 무사 1루에서 버스터 작전을 성공시킨 공격 쪽은 무사 1, 3루라는 좋은 찬스를 맞이하고 있었다.
 “야구요?”
 TV로 시선을 돌린 최태경은 금세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곤 다시 진지해졌다.
 “이제는 타자에게 맡기지 않을까요? 딱히 쓸 수 있는 작전도 없고. 3루 주자를 함부로 움직이면 위험하잖아요.”
 “이 장면만 놓고 보면 확실히 그렇지.”
 진 노인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말이다. 태경아.”
 “네. 할아버지.”
 “작전을 쓸 땐 장면만 볼 게 아니라 경기 전체를 봐야 할 때도 있단다. 조금 전 주진환 감독이 작전을 건 이유가 뭐였지?”
 “상대팀 감독을 흔들려고요···”
 최태경은 대답을 하다말고 말꼬리를 흐렸다.
 그리곤 두 눈을 크게 뜨고 진 노인을 돌아봤다.
 “이번에도 주진환 감독님이 상대팀 감독을 노릴 거라는 말씀이시죠?”
 “바로 그거다. 상대 감독을 마음껏 흔들 수만 있다면 경기 전체를 바꿀 수 있으니 말이다.”
 이렇게 두 사람은 매일같이 야구와 함께 살았다.
 오랜 시간을 야구에 미쳐 살아온 진 노인은 최태경이 사물을 분간할 수 있을 때부터 곁에 있었다. 그는 어린아이에게 직접 야구 보는 법을 가르치며 매일같이 붙어 다녔다.
 야구는 나이 차이와 관계없이 두 사람 사이에 훌륭한 소통 수단이 되어 주었다.
 
 또한 야구는 최태경의 꿈이 됐다.
 언젠간 아픈 몸을 치료하고 마음껏 야구를 하겠다고. 진 노인을 스승 삼아 평생 야구를 하는 것이 최태경이 그리는 행복한 미래였다.
 
  * * *
 
 방에 들어온 최태경은 침대에 누워서도 여전히 야구공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그는 이 야구공을 만질 때마다 진 노인을 떠올렸다.
 
 죽을 날을 기다리던 진 노인은 예정된 그것을 피하지 못했다. 그는 최태경에게 자신이 가장 아끼던 야구공을 선물로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병원에 있는 많은 사람은 그의 죽음을 애도하면서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최태경만큼은 달랐다.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날 찾아오신 게 분명했어.’
 
 진 노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어떤 장면이 떠올랐다.
 잠든 자신의 손을 잡아주던 진 노인의 모습이 어렴풋이 기억에 남아 있었다.
 자신을 바라보며 말한 무언가는 기억나지 않았지만 그 음성이 따뜻했다는 느낌까지 되살아났다.
 
 ‘분명 하늘에 계신 할아버지께서 날 지켜주시는 걸 거야. 그래야 모든 게 말이 되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분명했다.
 진 노인이 세상을 떠난 후 최태경의 몸이 거짓말처럼 정상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모든 신경 세포들이 이전과는 전혀 다른 속도로 반응했다.
 당시 병원에 있던 모든 의사가 달려들어도 기적이라는 말로밖에 설명하지 못했다.
 그러고 일 년 후.
 최태경은 열두 살의 나이로 병원에서 나올 수 있게 됐다.
 퇴원 후 최태경은 야구에 미쳐 살았다.
 
 ‘내가 그 은혜에 보답할 수 유일한 길은 할아버지 가르침을 넘어 최고의 선수가 되는 것뿐이야.’
 
 이 다짐이 오늘날 태경을 있게 만들어 주었다.
 “할아버지. 나 더 열심히 해야 할 것 같아요. 그러니 약속했던 힘 좀 주세요.”
 진 노인이 야구공과 함께 남긴 편지에 쓰여 있었다.
 이 공은 엄청 특별한 공이라고.
 자신의 야구 인생에 엄청난 힘을 준 공인 만큼 새 주인에게도 반드시 도움이 될 것이라고.
 그 말을 잊고 살았던 최태경은 오늘 문득 그 기억이 되살아났다.
 
 최태경은 책상 정리를 마친 후 잘 준비를 했다.
 오늘은 야구공도 함께하고 싶어 따로 치워두지 않았다. 쥐고 있는 내내 느낌이 좋았다.
 “기분 탓인가? 공이 따뜻한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더 떨어지기가 싫었다.
 최태경은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워서도 각오를 다졌다.
 부모님도 놀랄 만한 사람에게 큰소리를 친 이상 더는 어제와 같이 보낼 수 없었다. 그 사람이 생각하는 것 이상의 결과를 내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지금보다 더 큰 힘이 필요했다.
 최태경은 그걸 위해서라면 어떠한 힘든 훈련도 이겨낼 자신이 있었다.
 
 그렇게 잠드는 그 순간까지도 힘을 키울 방법에 대해 고민했다. 점차 더 강해지고 있었지만 원하는 곳에 닿기에는 아직도 부족했으니 말이다.
 아마 오늘 밤은 꿈속에서도 운동장을 달리게 될 것이다.
 언제나 죽을힘을 다해 노력했던 것처럼 말이다.
 
 하나 최태경이 눈치채지 못한 것이 있었다.
 
 진 노인이 남긴 야구공이 보통 공과 전혀 다르다는 사실. 그 공에서 전해진 기운이 그냥 평범한 온기가 아니라는 사실. 지금 이 순간 꿈속에서 얻는 그 힘이 절대 환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최태경은 아직까지 눈치채지 못했다.
 
 만약 그 힘이 세계 야구 역사를 어떻게 바꿀지 알았다면, 결코 이대로 편히 잠들 수 없었을 것이다.
 
 
  사상 최강의 에이스 10화
 
 “별 신기한 꿈도 다 있네.”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깨어난 최태경은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조금 전까지 봤던 광경이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장면이 생생했고 감촉도 사실적이었다.
 최태경이 정신을 차린 때는 오민재에게 전화가 온 이후였다.
 
 = 나오라고. 애들 다 모이기로 했으니까.
 “애들? 야구부?”
 = 어. 야구 계속하는 애들뿐 아니라 그만두는 애들까지···. 헤어지기 전에 송별회라도 한 번 해야지.
 “송별회는 무슨. 졸업식 날도 있는데.”
 = 잔말 말고 나와. 이따 2시까지 학교 운동장에서 만나기로 했어.
 
 그날 오후.
 최태경은 다른 3학년들과 함께 스탠드에 앉아 운동장을 지켜보게 되었다.
 “왜 하필 장소를 여기로 골랐어? 3년간 지겹게 보던 곳인데.”
 “여기 아니면 어딜 갈 건데? 갈 만한 곳이라도 있냐? 야구 말고는 제대로 하는 것도 없는 놈들이.”
 “거 참 시끄럽네.”
 “1, 2학년들 연습 경기 가서 그런지 운동장이 텅 비었네.”
 서림중 운동장에 사람이 한 명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야구부 전용으로 사용하는 구역만큼은 굴러다니는 공 하나 보이지 않을 만큼 깨끗했다.
 펜스에 붙어 있는 플랜카드들만 요란할 뿐.
 모두의 시선이 절로 그쪽으로 몰렸다.
 
 「경축! 2017 대통령기 전국야구대회 우승! 서림중학교!」
 「서림의 주장, 전국구 스타 되다! 대통령기 최우수선수 3학년 최태경」
 「서림중학교 동문회는 야구부 활동을 전적으로 지원합니다!」
 
 보고 있자면 잊고 있었던 감흥이 다시 살아났다.
 “우리가 진짜 우승하긴 했다···.”
 “그러니까. 첨에 태경이가 우승이란 말 꺼냈을 때 다들 미친 소리라고 지랄했었는데.”
 “지랄만 했냐? 아예 개무시했지.”
 이들은 모두 이곳에서 매일같이 땀을 흘린 동료들이다. 그것도 무려 3년이나. 그 기간만큼은 가족들보다 더 오랜 시간을 얼굴을 맞대고 보냈다.
 그러다 보니 쌓인 추억이 다 끄집어낼 수 없을 만큼 많았다.
 “별일 다 있었지.”
 리틀야구 출신들과 일반 학생 최태경과의 대립. 아무것도 몰라 훈련을 마치고 따로 최태경에게 야구를 배워야 했던 초보자들. 피곤에 입술이 터져가며 공을 받아내던 순간들. 한 게임, 한 게임 이겨가며 키워왔던 자신감.
 그 시간에 대한 자부심.
 
 물론 그런 것들을 입 밖으로 꺼내 추억하기에는 중학교 3학년 남학생 감성이 허락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이야기가 이들을 더 들뜨게 만들었다.
 “태경이 너 대회 끝나고 선물 좀 받았지?”
 “선물만 받았겠냐? 우리 학교 여자애 중 저놈 안 좋아하는 애가 없는데.”
 “부러운 새끼···.”
 다들 여자 이야기가 나오자 표정이 바뀌었다.
 우승하던 순간을 떠올리던 아련한 눈빛은 어느새 날카로운 불꽃을 쏟아냈다.
 하지만 최태경은 자신에게 오는 불꽃을 피하지 않았다.
 
 “고백만 한 열 번 정도 받았나? 아니, 넘으려나?”
 “미친···. 아직도 너한테 고백하는 여자애가 있어? 소문도 못 들었대?”
 “이번에는 다들 1학년들이더라고.”
 서림중 야구부의 ‘리더’ 최태경.
 그에게는 다른 호칭이 하나 더 붙어 있었다.
 서림중 최고의 ‘철벽남’이라고.
 
 학교 유일의 운동부를 이끌다 보니 자연히 학생들의 관심을 받게 된다.
 체격도 건장하니 늠름하다.
 야구계 관계자들은 최태경이 더 크길 바라고 있었지만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는 지금도 아주 훌륭했다.
 
 원체 야구 실력이 좋다 보니 2학년 때부터 유명했다. 포털 사이트에 이름을 치면 관련 기사가 뜨는 존재가 돼버렸다.
 야구부가 없는 인근 지역 학교들도 ‘최태경’이라는 이름 정도는 알고 있을 정도가 됐으니.
 솔직히 인기가 없는 게 이상했다.
 “그럼 그렇지. 지금 2, 3학년 여자애 중 자신 있는 애들 전부 태경이한테 고백했다 까였는데 누가 또 덤비려고.”
 그때 3학년 중 한 명이 최태경에게 넌지시 물었다.
 “근데 태경이 넌 왜 여자 안 사귀냐?”
 “나?”
 “여기 있는 우리도 다들 한 번 이상씩은 연애했었잖아. 너만 빼고.”
 “설마 야구랑 연애 중이다. 뭐 이딴 소리 할 건 아니지? 그럼 죽는다···.”
 야구부 3학년들은 모두 주변 여자애들에게 최태경을 소개해 달라는 청탁을 받곤 했다.
 하지만 최태경은 언제나 거절했다.
 “나도 나만의 철학이 있거든. 그 분야에서 내 롤모델은 데릭 지터야.”
 “헐···. 이 미친놈이.”
 뉴욕 양키스의 전설적인 유격수 데릭 지터.
 현역 시절 뛰어난 성적을 낸 그는 은퇴 후 쓰던 등 번호가 영구 결번으로 지정될 정도로 팀과 팬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근데 현역 시절 지터는 야구 실력만큼이나 수많은 염문설로 주목을 받았다. 어떤 이들은 지터의 연애 대상들만 따로 정리해 기사를 낼 정도로.
 지터는 단순히 연애를 많이 한 것이 아니라 그 상대가 항상 당대 최고 스타였던 것이 큰 부러움을 샀다.
 대표적인 인물만 해도 제시카 알바와 스칼렛 요한슨이 있었으니···.
 “지터 옹 같이 되려면 오히려 더 만나봐야 하는 거 아냐?”
 “ ‘최고가 아니면 만나지 않는다.’ 그게 지터 옹 스타일이지. 물론 나도 그럴 거고.”
 “그냥 눈이 존나 높다는 소리네···.”
 다들 한 마음이 되어 최태경을 비웃었다.
 그러면서도 왠지 현실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같이했다.
 적어도 지금까지 최태경이 말한 목표 중에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없었으니까 말이다.
 “하여간 태경이 저 자식은···. 여기 있으니까 그때 생각나네. 태경이 저놈이 나 존나 때렸을 때.”
 최태경에게 처음 야구를 배웠던 탁민우가 폭탄 발언을 했다.
 하지만 최태경은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당당하게 나갔다.
 “그래서 싫었다는 거야? 많이 맞아서 억울했어?”
 “누가 싫었다고 했냐···. 나만 너무 맞아서 좀 억울하긴 했어도.”
 발언을 꺼낸 탁민우의 표정도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눈은 웃고 있었다.
 당시 상황을 아는 오민재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거 너 집 나간다고 깝쳤을 때 말하는 거지? 가출하겠다고 짐 싸고 나온 날.”
 “가출 아니라니까. 잠깐 머리 좀 식히고 오려고 했던 거뿐이야.”
 “가출할 거라고 훈련도 빠지려고 하다가 태경이한테 붙잡힌 거잖아. 같이 집으로 돌아가자는 소리에 니가 먼저 선빵 날렸고.”
 “아···. 이 새끼 기억력 한번 플래티넘이네.”
 3학년 모두가 빵 터졌다.
 “나도 그때 일 고백 하나 할까?”
 “어? 뭔데? 설마 내가 모르는 게 있었어?”
 최태경이 말을 꺼내자 탁민우가 놀라는 모습을 보였다.
 시종일관 여유로웠던 최태경과 반대다.
 “그때 나만 때린 게 아니라 너도 때렸었잖아.”
 “그래 봤자 몇 대 못 쳤는데 뭐.”
 “그거 내가 일부러 맞아준 거다?”
 “뭐?”
 “그렇게 해야 폭행이 아니라 싸움이 되지. 친구끼리 일방적인 폭행은 이상하잖아.”
 탁민우는 눈을 감고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비록 싸움에 지긴 했었지만 분명 자신도 몇 대 날렸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래서 져도 덜 억울했다.
 분명 다음 날 최태경의 얼굴도 부어있었다.
 “미친···. 생각해보니 눈 감고 때린 럭키 펀치 몇 대만 통한 거였네.”
 “그거 믿고 눈 뜨면 내가 다시 감게 해줬지.”
 “시바···. 제대로 설계 당했네. 그걸 이제야 알게 되다니. 내가 대단한 병신이었네. 진짜.”
 탁민우의 과장된 행동에 3학년 전체가 크게 웃었다.
 
 이후에도 이런 폭로들은 계속됐다.
 오늘 모인 여덟 명의 선수들은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모든 이야기를 죄다 꺼냈다. 언제 다시 이런 기회가 올지 몰랐기에.
 항상 붙어 있었지만 훈련에 바빠서 하지 못한 이야기가 참 많았다.
 “사내놈들이 왜 이렇게 수다스러운 건지.”
 어느새 해가 지며 헤어질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갑자기 운동장 스탠드에 앉아 있던 탁민우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는 최태경의 바로 앞에 가서 섰다.
 
 “뭐하냐?”
 “뭐긴. 악수나 한 번 하자는 거지.”
 그는 스탠드에 앉아 있던 최태경의 얼굴 바로 앞으로 손을 내밀었다.
 아까와 달리 얼굴에 장난기가 보이지 않았다.
 진지한 그 모습에 최태경 역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곤 탁민우의 손을 맞잡았다.
 “쑥스럽게 뭐하자는 건지···.”
 “고등학교 가서 꼭 잘해라.”
 “뭐?”
 “이왕이면 한국 최고 아니 세계 최고 선수가 되라. 알겠냐?”
 탁민우는 최태경이 그렇게 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꼭 그렇게 되길 바랐다.
 “네가 우리 가르친다고 쓴 시간 전부 네 훈련에 쏟았다면 지금보다 훨씬 나아졌을 거라는 거···. 우리 다 안다. 그러니까 앞으로 더 잘하라고.”
 “그 시간이 얼마나 됐다고 이 난리야?”
 “쑥스러워하지 마. 이 자식아. 그냥 좀 인정하고. 넌 우리 중의 최고 아니 내가 본 어떤 선수보다도 최고니까.”
 그때 뒤에서 다른 친구가 가방에서 글러브를 꺼냈다.
 보아하니 한 번도 사용한 적 없는 새 글러브다.
 “이건 앞으로 너랑 같이 야구 못하는 우리들이 미안해서 산 선물이다. 우리 보고 배신했다고 욕하지 말라고.”
 “그래. 힘들어서 도망가는 비겁자라 욕하지도 마라.”
 “새끼야. 우리도 연애 좀 하고 살자.”
 “오버워치도 좀 해보고. 아이디도 하나 없는 건 너무 하잖냐.”
 탁민우의 뒤에 있던, 야구를 그만두는 친구들이 돌아가며 한 마디씩 보탰다.
 그러자 남은 학생들의 표정이 바뀌었다.
 그들은 이들이 정말 싫어서 야구를 그만두는 게 아님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계속해서 야구를 하는 친구들 모두 멍한 얼굴이 돼버렸다.
 “니들 언제 이런걸···.”
 “너희 셋은 무조건 태경이랑 같은 학교 가라. 그래서 잘 보필해라. 태경이가 고교야구 못 씹어 먹으면 전부 니들 때문이라고 생각할 테니까 정신 바싹 차려.”
 “아니 그것보다···.”
 “3년은 죽었다고 생각해라. 연애는 꿈도 꾸지 말고. 뭐하면 휴지 값 좀 보태줄까?”
 “뭐래. 이 미친놈이.”
 탁민우의 입담에 분위기가 정돈됐다.
 자칫 신파로 흐를 수 있었던 것이 청소년 시트콤으로 방향을 트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걸 다시 트는 이도 존재했다.
 “그래. 이걸로 내가 황금사자기 우승한다. 결승전 마운드까지 데리고 갈 테니 기대해라.”
 “그거야 당연하고.”
 “글러브 볼 때마다 니들 마음 잊지 않으마. 고맙다. 진심으로.”
 “당연히 그래야지.”
 “전체 1순위로 프로 지명을 받을 때. 리그 신인상과 MVP 동시 수상 할 때. 월드시리즈 우승할 때도 니들 이름 말할 거다. 너희 네 명 말이야.”
 “어?”
 “평생 최태경의 은인 소리 들으며 살게 해줄게. 앞으로 사람들이 나에 대해 많이 물을 테니, 대답 준비 잘해라. 괜히 욕먹지 말고.”
 친구들의 표정이 모두 괴이하게 변했지만 최태경은 결코 신경 쓰지 않았다.
 새로 얻게 된 글러브를 손에 끼고 주먹으로 팍팍 칠뿐이었다.
 
  *
 
 친구들이 모두 돌아가고 나서.
 최태경은 홀로 실내연습장을 찾았다.
 아무도 없이 텅 빈 실내연습장은 음산한 기운으로 사람을 떨게 만들었지만,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보다 더욱 마음을 쓰게 한 것은.
 
 ‘내가 한 말은 반드시 지킨다.’
 
 친구들이 이런 마음을 갖고 있었는지 몰랐다.
 팀을 적극적으로 이끌고 야구도 가르쳐 주었지만 모두 경기에 승리하기 위해서였다.
 한데 이런 믿음이라니.
 최태경은 받은 믿음을 배 이상 돌려주어야지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다.
 
 최태경이 어깨를 풀고 불펜에 들어섰다.
 과녁이 설치되어 있어 포수가 없어도 연습에 문제없었다.
 포심 패스트볼, 체인지업, 커브.
 평소 자신하는 구종들을 하나씩 점검했다.
 
 ‘잠깐···.’
 
 불현듯 전날 밤 꿈이 떠올랐다.
 최태경은 꿈속에서도 마운드 위에 올라 멋지게 공을 뿌렸었다.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하지만 깊게 생각해 보면 분명한 차이를 보였었다.
 
 ‘이렇게 잡았었나?’
 
 최태경이 그립(공을 쥐는 모양)을 바꾸었다.
 그리곤 꿈속에서 던졌던 것처럼 평소와 전혀 다른 팔 스윙으로 공을 던졌다.
 
 그러자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백네트를 향해 날아가던 공이 상상도 한 적 없는 형태로 움직였다.
 하지만 그걸 감상할 틈이 없었다.
 믿기 힘든 일이 또 생겼다.
 
 [트레모trĕmo 볼이 활성화되었습니다.]
 
 ‘뭐?’
 
 [트레모볼(F급)]
 [다음 단계까지 필요한 경험치 0/100]
 
 허공에 나타난 환상 같은 글자들이 최태경의 눈을 어지럽혔다.
 
 
  사상 최강의 에이스 11화
 
 “이게 다 뭐야?”
 트레모볼?
 최태경은 고개를 세차게 흔들어 봤다.
 하지만 허공에 보이는 글자들은 그대로였다. 보려고 마음먹으면 나타나고 그러지 않으면 사라지는 글자들.
 무슨 현상인지 알고 싶어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문제는 그뿐이 아니었다.
 “공이 가다가 흔들리다니.”
 조금 전에 던진 공의 움직임이 너무 이상했다. 도저히 최태경의 상식에선 이해할 수 없는 궤도를 보였다.
 아래로 떨어지는 공이 좌우로 방향을 여러 번 바꾸었다.
 한 번이 아닌 여러 번.
 도저히 믿기 힘든 움직이었지만 기억이 너무 선명했다.
 
 최태경은 얼른 야구공을 쥐었다.
 그리곤 조금 전과 똑같은 손 모양을 만들고 이를 유심히 관찰했다.
 
 ‘이러면 포심도 아니고 투심도 아닌 건데.’
 
 직구(直球). 똑바로 가는 공.
 좀 더 세분화한 후 이름을 정확히 부르면 ‘포심 패스트볼’이라는 구종이 있다.
 투수가 야구공에 있는 실밥 라인(봉합선)을 검지와 중지에 각각 두 줄씩 걸치고 던지는 공이다. 한 손가락에 두 줄씩 총 네 줄을 이용하는 구종이라 포심 패스트볼이라고 부른다.
 이와 비슷하지만 다른 구질로 투심 패스트볼이라 부르는 구질도 있는데, 이는 검지와 중지에 각각 한 줄씩만 걸치고 던지는 공이다.
 이렇게 던진 투심 패스트볼은 포심 패스트볼과는 달리 날아가는 도중 공이 움직이는 방향이 변한다.
 
 그런데 최태경이 지금 공을 쥔 손 모양은 둘 모두와 차이가 확실했다.
 최태경은 두 손가락을 벌려 중지에는 두 줄의 실밥을 걸고 검지에는 전혀 실밥을 걸지 않고 있었다.
 
 ‘두 줄을 잡았으니 이것도 투심이라고 불러야 하나? 공의 움직임은 전혀 달랐지만.’
 
 조금 전 던진 공은 똑바로 날아가다 백네트 바로 앞에서 똑 떨어지며 좌우로 움직였다.
 ‘흔들리는 공’이라고 불러야 할 정도로.
 최태경은 이런 움직임이 야구 역사에 한 번도 등장한 적 없다는 걸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그걸 가능케 한 것은 전혀 불가능할 것 같은 손목의 움직임 같았다.
 
 최태경은 자신의 왼팔을 들었다.
 그리곤 조금 전과 같이 손목을 움직였다.
 흔들리는 공은 생소한 그립과 함께 정상과 전혀 다른 손목 움직임을 통해 만들어졌다. 팔을 앞으로 내던지면서 공을 놓는 순간 손목을 반대로 비튼 것이다.
 그걸 해내기 위해선 상상도 못 할 힘과 유연성이 필수였다.
 근데 불과 하룻밤 사이에 그게 가능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설마 이것도 꿈은 아니겠지?”
 
  *
 
 다음 날.
 최태경은 다시 실내연습장을 찾았다. 그리곤 또다시 새로운 구종을 던져보았다.
 놀랍게도 어제 그 모습 그대로 공이 움직였다.
 최태경의 손을 떠난 공은 백네트를 향해 날아갔고 타석 바로 앞에서 떨어졌다. 좌우로 심하게 흔들리면서 말이다.
 이제는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진짜 환상적이군. 공의 움직임도 그걸 내가 던졌다는 사실도.”
 공이 날아가는 속도는 최태경의 평소 패스트볼 구속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근데 공의 움직임이 기존의 공들과는 너무 달랐다.
 처음 이 공을 접한 타자가 변화에 적응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웠다. 스스로 타석에 있다고 가정해 보니 도저히 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최태경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이 정도면 진짜 마구 아냐?’
 
 마구(魔球).
 상대를 현혹하는 공.
 
 현대 야구에도 이른바 3대 마구라는 것이 존재하긴 했다.
 너클볼, 스크류볼, 자이로볼.
 이중 너클볼이 가장 일반화되어 던질 수 있는 투수들이 종종 등장했고, 스크류볼은 비슷한 움직임을 보이는 구종들이 많아 항상 맞는지 아닌지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자이로볼은 일본의 마스자카 다이스케가 던진다고 알려졌으나 실제로는 아니라는 주장이 많았다.
 왜냐하면 자이로볼을 던질 때 쓰는 팔과 손목의 움직임이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실제로는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많았기 때문이다.
 
 ‘근데 솔직히 이게 더 대단하잖아.’
 
 일단 공이 꺾이는 움직임이 여러 번이라는 게 엄청 놀라운 일이었다. 보통의 변화구라는 것이 구종에 따라 꺾이는 지점이나 방향이 다르다 해도 변화는 결국 한 번뿐이었다.
 근데 최태경이 던진 트레모볼은 아래로 떨어지며 좌우로 흔들렸다.
 바닥에 닿을 때까지 2번, 3번 방향을 바꿨다.
 타자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배트 중심에 맞추는 것이 보통 힘든 게 아니었다.
 
 ‘그것도 구종을 알고 있을 때나 가능한 거고.’
 
 다른 구종까지 섞어 던지는 순간 타자가 풀어야 할 문제의 난이도는 수십 배 상승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대단한 공을 지금 던진 것이다.
 
 최태경은 자신에게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는 걸 깨달았다.
 모르긴 몰라도 지금 던진 공이 그의 야구 인생을 백팔십도 바꿀 수 있는 무기란 건 확실했다.
 야구에 대한 목표 지점을 다시 한 번 바꿔줄 수 있을 것이다.
 
 ‘얼른 이 공의 위력을 봤으면 좋겠다.’
 
 최태경은 대통령기가 끝나고 은퇴했던 서림중 야구부 훈련에 다시 참가해야 되나 고민했다.
 그 순간 머릿속에 기막힌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 뭐야? 태경이 너 학교 있을 시간 아냐?
 “맞아요. 재민이 형. 근데 그것보다 이번 주 토요일 훈련에 저 나가도 되죠?
 = 야구부 훈련은? 아···. 너 3학년이라 끝났나?
 “네. 몸이 근질근질해서 한 경기 던졌으면 해서요.”
 
 전화를 건 상대는 사회인야구 1부 리그 팀 ‘레드 드래곤’의 포수 이재민이었다.
 최태경은 병원에 있을 때부터 이재민을 소개받았고, 퇴원 후에는 종종 그와 함께 훈련을 했었다.
 
 = 우리야 좋지. 어차피 연습인데. 그날 연습게임도 있어.
 “그럼 더 좋네요. 근데 형. 토요일에 30분만 더 일찍 나오실 수 있죠?”
 = 왜? 무슨 일 있어? 토요일에는 아침 10시까지 나가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닌데.
 “제가 새로운 구종을 연마했거든요. 연습게임 전에 형이 먼저 잡아 봐야 할 것 같아서요.”
 = 새 구종? 뭔데? 나 웬만한 건 연습 없이 다 잡아.
 
 이재민의 자신감은 헛된 게 아니었다.
 그는 고등학생 때까지 야구 선수를 하던 이로 현재도 레드 드래곤의 주전 포수였다.
 
 “이건 쉽지 않으실 걸요? 제가 장담할게요.”
 = 자신감 쩌는데? 우리 내기할까?
 “치킨 한 마리.”
 = 한 마리가 뭐냐? 기본 일인 이닭인데···. 두 마리 콜?
 “콜!”
 = 근데 구종이 뭐냐?
 “와서 보세요. 백 프로 놀라실 거예요.”
 
 전화를 끊을 때까지.
 이재민이 계속해서 물어보았지만 대답해 주지 않았다. 어차피 전화로 설명해도 믿지 않을 게 확실했다.
 최태경은 내일 자신이 던진 공을 본 이재민의 반응이 어떨지 궁금했다.
 
 ‘거참···. 내 손목이 이렇게 쉽게 비틀어지다니.’
 
 손목을 흔들어 보았다.
 어제까지와 달리 굉장히 빠른 속도로 손목이 꺾이는 것이 눈에 훤히 보였다. 유연성마저도 몰라보게 달라져 중지가 손목 뒤편까지 젖혀져 팔에 닿았다.
 그런데도 멀쩡했다.
 “나, 기인 열전에 나가도 되겠다.”
 
  * * *

댓글(4)

g548    
중학생이 벌써부터 머리나 굴릴생각이나하고 너도 정치질하면 딱이겠다
2019.11.25 13:15
태극산수    
읽어보려구요
2021.05.19 08:35
광개토태제    
감독의 역할이 제일 절대적이지 않는 운동이 야구인데…..
2021.11.01 22:08
fo*****    
마지막 트레모볼?에서 하차합니다.
2021.11.02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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