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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갈 1화

2018.01.29 조회 716 추천 1


 공갈
 이원호
 
 1장 야망의 사나이
 
 
 오전 9시 10분,
 
 공갈은 강차만 대리의 책상 앞에 섰다.
 
 “강 대리님, 부르셨습니까?”
 
 강차만은 서류에 시선을 준채로 머리만 끄덕였다. 그는 공갈의 직속상관으로 대리 3년차인 영업 3과의 A팀장이다. 영업 3과는 2개의 팀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팀별 경쟁이 치열했다. 실적이 떨어질 경우, 강차만은 대리 2년차 B팀장 유성만에게 과장 진급에서 밀릴 수도 있는 것이다.
 300평이 넘는 영업부 사무실은 활기에 차 있었다. 벨소리와 부르는 소리 그리고 영어와 일어로 통화하는 소리도 들렸다. 이윽고 강차만이 머리를 들었다.
 
 “공갈씨, B팀에서 어제 한 건 올렸어.”
 
 힐끗 옆쪽을 바라본 그가 목소리를 낮췄다.
 
 “그것도 50만 불이나. 놈들은 올해 계획보다 20% 초과 달성할 작정이야.”
 
 강차만의 옆쪽에 놓인 B팀장 유성만의 자리는 비어 있었다. 그가 말을 이었다.
 
 “분발하라구, 공갈 씨. 밥값을 하란 말이야.”
 
 “알겠습니다.”
 
 자리에 돌아와 앉은 공갈은 소리죽여 숨을 뱉았다. 한국무역은 종합 무역 상사로 작년 매출액은 4억 불이 조금 넘었지만 올해의 목표는 6억 불이다. 작년에 실적을 달성하지 못한 1개부와 3개 과, 12개 팀이 해체되어 100명 가까운 영업부 직원이 대기 발령을 받거나 전직 또는 해직을 당했는데, 반대로 두 계단을 뛰어 승진한 사람도 있다.
 경영진은 영업부의 5개 부, 15 개 과, 30개 팀을 철저하게 실적 위주로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30개 팀은 제각기 치열한 경쟁 관계에 있었고, 간부들은 오히려 그것을 조장(助長)했다.
 또한 가장 최소 단위 그룹인 팀 내에서도 경쟁이 있었는데, 실적이 미달되면 잘 나가는 팀 안에서도 도태가 된다. 공갈은 컴퓨터 전원을 켰다. 이곳도 또한 전쟁터인 것이다.
 
 *        *        *
 
 
 
 10시 20분,
 
 비서실에 앉아 있던 박민혜는 전화벨이 울리자 전화기를 들었다.
 
 “네, 비서실입니다.”
 
 “난데.”
 
 김만채 부장의 목소리였으므로 박민혜는 힐끗 옆쪽에 앉은 김 대리를 보았다.
 
 “네. 말씀하세요.”
 
 “오늘 저녁 8시에 라파즈에서.”
 
 “네, 알았습니다.”
 
 전화기를 내려놓자 김 대리가 머리를 돌려 그녀를 보았다.
 
 “누구야?”
 
 “홍보실에서 자료 나왔다구요.”
 
 김대리가 흥미 없다는 듯 다시 서류를 펼쳤으므로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커피 한잔 마시고 올게요.”
 
 사장은 외인 출입을 금지시킨 채 전무와 회의중이었다. 비서실을 나온 박민혜가 아래층의 계단을 내려와 마악 자판기 앞에 다가섰을 때였다. 뒤쪽에서 빠르게 다가온 사내와 어깨를 부딪친 그녀는 휘청거리다가 들고 있던 파일을 떨어뜨렸다.
 
 “아, 미안합니다.”
 
 당황한 사내가 허리를 굽히더니 파일을 집어 들었다.
 
 “내가 한눈을 팔고 왔습니다. 놀라게 해서 정말 미안합니다.”
 
 “아니, 괜찮아요”
 
 박민혜는 파일을 받으면서 흘낏 본 사내의 인상에 호감이 갔다. 180센티미터가 훨씬 넘어보이는 키에 눈썹이 짙었고 다부진 인상이었다. 사내가 박민혜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난 영업 3부 3과의 공갈이라고 합니다. 6층에서 내려오신 걸 보니 홍보실에 계신가요?
 
 “아뇨.”
 
 주위에는 마침 다른 직원이 없었기도 했지만 박민혜는 수작을 부리는 이 사내가 재미있다고 느껴졌다. 사장 비서라는 것을 알면 이 신입 사원은 대경실색할 것이다.
 
 사내가 머리를 끄덕이더니, 얼굴에 웃음을 띠었다. 그의 눈빛에는 아쉬운 표정이 담겨져 있었으나 곧 몸을 돌렸고 박민혜도 생각이 난듯 동전을 자판기에 넣었다. 사내들의 그런 시선에는 익숙해진 박민혜인 것이다.
 
 *        *        *
 
 
 
 퇴근 시간이 가까워진 무렵에 공갈의 책상으로 이선경이 다가와 섰다.
 
 “저녁에 시간 있어?”
 
 이선경이 낮게 묻자 공갈은 머리를 끄덕였다.
 
 “좋아, 여덟 시에 케이프에서······”
 
 허리를 편 이선경이 시치미를 뗀 얼굴로 돌아갔다. 그녀는 공갈과 같은 팀원으로 입사 동기였다.
 
 그날 저녁 여덟 시에 공갈은 이선경과 케이프에서 마주앉아 있었다.
 
 “강 대리가 아주 필사적이야, 오늘도 김 부장하고 점심을 같이 하던데.”
 
 맥주잔을 든 이선경이 말을 이었다.
 
 “김 부장한테는 점수를 따 놓았어.”
 
 “실적이 B팀보다 떨어지면 인사 위원회가 진급 대상에서 누락시킬 걸?”
 
 “하지만 김 부장은 사장 아들이야, 인사 위원회도 김 부장의 부탁을 거부하지 못해.”
 
 영업 3부장 김만채는 사장의 아들인 것이다. 쓴 웃음을 지은 공갈이 땅콩을 입에 넣었다.
 
 “글쎄, 어디 두고 보자. 어떤 결과가 올 지는 아무도 장담하지 못해.”
 
 입사 1년도 되지않은 그들이었지만, 이제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다는 정도는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정당한 경쟁을 구호로 내걸고는 있으나 학연과 지연, 혈연으로 맺어진 파벌이 회사 내에서도 득세했고, 대부분의 직원들 역시 어느 정도 물정에 눈을 뜨고 나면 곧 그 연줄을 잡으려고 혈안이 되었던 것이다.
 맥주잔을 내려놓은 이선경이 공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눈가에 붉은 기운이 덮여진데다 젖은 입술이 번들거렸다.
 
 “나, 오늘 공장일 때문에 집에 가지 못한다고 했어.”
 
 “집에서는 열심히 일하는 줄 알겠구나.”
 
 공갈이 웃음띤 얼굴로 이선경을 보았다. 그들은 한 달에 두어 번은 관계를 맺는 사이가 되어 있었는데 이선경이 더 적극적이었다. 물론 공갈이 분위기를 조성한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첫 관계를 맺을 적에도 이선경이 먼저 여관으로 끌었다.
 
 “자, 오늘 밤을 위하여 건배.”
 
 이선경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 따라 술잔을 들었던 공갈은 문득 그녀의 얼굴에 배인 그늘을 보았다. 그녀의 올해 목표는 5백만 불이었으나, 상반기가 지나도록 목표의 3분지 1도 채우지 못했다.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스트레스를 잔뜩 받고 있을 터였다.
 
 *        *        *
 
 
 
 이선경은 처음 공갈과 관계를 가졌을 때에도 전혀 수줍은 기색을 보이지 않았고 어색해 하지도 않았다. 샤워를 마친 그녀가 머리를 풀어 흐트리며 알몸으로 다가오자 공갈이 얼굴에 웃음을 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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