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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천검제 1화

2018.01.30 조회 2,596 추천 15


 역천검제 1
 서장
 
 
 콰광!
 “크억!”
 굉음과 함께 유현자의 몸이 뒤로 튕겨 나왔다.
 정확히 열 합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유현자가 누구던가? 화산파의 십대고수 중 한 명이 아니던가?
 그런 유현자가 열 합 만에 피떡이 되어 흙바닥에 누워있는 것이다.
 그 광경을 본 무림맹 무인들의 표정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이 중에서 가장 뛰어난 고수가 나갔다.
 그런데 결과는 참담하기 그지없다.
 상대는 상처 하나 나지 않은 채 비웃음을 머금고 서있었다.
 이대로라면 분타가 잿더미가 되는 것은 둘째 치고 저 마두의 손에 모두가 죽임을 당할 것이 분명했다.
 “크하하핫! 정말 나약해 빠진 놈들밖에 없군. 정말로 이게 끝이냐?”
 대소를 터트리며 묻는 마두의 말에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그 순간 자신의 목이 달아날 것 같다는 공포심 때문이었다.
 그때, 무인들의 뒤쪽에서 능글맞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교의 전대 초고수 치고는 영 볼품없어 보이는데?”
 그 목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쏠렸다.
 준수한 인상의 청년.
 청년의 얼굴을 확인한 무림맹 무인들 중 몇 명이 흠칫 놀랐다.
 “아, 아니! 감옥에 갇혀 있어야 할 녀석이!”
 분명 분타의 지하 감옥에 두꺼운 쇠사슬로 포박을 해놨었는데, 어떻게 빠져나왔단 말인가?
 그 시선에 청년이 씩 웃으며 왼손을 들어보였다.
 “아! 급히 나오느라.”
 왼손엔 끊어진 쇠사슬이 대롱거리고 있었다.
 열쇠로 연 게 아니라, 힘으로 끊어 내고 감옥을 걸어 나왔다는 말이다.
 그때, 분노에 찬 노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감히! 나를 앞에 두고 겁을 상실했구나? 이 몸의 행사를 방해한 네놈은 사지를 잘라 죽여주마.”
 노괴는 청년을 가리키며 말하자, 청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하지만 이내 청년의 얼굴엔 다시 웃음이 번졌다.
 “혹시 내가 멍청하게 생겼소?”
 노괴를 향해 묻는 청년의 말에, 노괴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콧방귀를 치며 말했다.
 “흥,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게냐? 네놈의 얼굴이 잘 생겼다는 걸 자랑이라도 하려는 것이냐?”
 “자, 그럼 잘 생각해 봅시다. 누가 봐도 난 여기를 그냥 빠져나갈 수 있는 상황이었지. 그런데 빠져나가지 않았소. 이렇게 위험한 상황에서 말이오. 그럼 이게 무슨 뜻이겠소?”
 청년의 말에 노괴는 물론이고 무림맹의 무인들마저 서로의 얼굴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노괴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말투로 물었다.
 “이 위험한 상황을 언제든지 도망칠만한 능력이 있다고 말하려는 것이냐? 이 몸을 피해서?”
 노괴의 말에 청년이 고개를 끄덕이며 무릎을 쳤다.
 “그렇지! 바로 그것이오!”
 “웃기지도 않는 소리를······.”
 청년의 말에 노괴가 얼굴을 구기며 소리치는데, 청년이 씩 웃으며 입을 열었다.
 “자, 그렇다면 다른 관점으로 생각해 봅시다.”
 말을 마치기 무섭게 청년의 몸에서 기운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오른손에는 은은한 서광(瑞光)이 일렁이고, 왼손에는 검정색 마기(魔氣)가 솟구쳤다.
 쾅!
 청년이 내공을 끌어올리며 진각을 구르자 가까이 있던 무림맹 무인들이 몸을 휘청거렸다.
 이미 노괴의 표정은 넋이 나간 표정이 된지 오래였다.
 청년은 웃음기를 머금으며 노괴를 향해 물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 누가 도망쳐야 되겠소?”
 
 
 1장 낭중지추
 
 
 1
 
 
 째쟁.
 “꺄악!”
 그릇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여자의 비명이 울렸다.
 “빌어먹을! 더 이상은 참을 수 없겠구나!”
 성화각(珹花閣)의 총관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외상이 벌써 은자 열 냥이나 쌓였다.
 제아무리 천씨세가의 둘째 아들이라고 하지만 봐 주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총관이 종을 신경질적으로 흔들자, 지하에서 헐레벌떡 뛰어나온 거한들이 손에 마작패를 쥔 채로 물었다.
 “뭔 일입니까!”
 “더는 저 새끼를 봐줄 수가 없다. 우리가 땅을 파서 장사하는 것도 아니고! 심하게 하진 말고 적당히 해서 보내라. 쯧!”
 분통이 터지는 듯 명령을 내리자, 거한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선두에 선 거한은 방금 전까지 마작을 하다가 중간에 그만두고 올라왔음에도 불구하고 웃으며 마작패를 탁자 위로 던졌다.
 ‘지면 이십 문이나 잃을 뻔했는데, 될 놈은 된다니까.’
 “가자.”
 총관이 턱짓을 하며 계단을 오르자 나머지 거한들이 그 뒤를 따랐다.
 드르륵.
 방의 나무문을 힘차게 열고 들어간 거한이 눈을 부라렸다.
 그의 시선이 먼저 구석에 틀어박힌 기녀에게로 향했다.
 앞섶이 풀어진 기녀는 양손으로 가슴을 감싸 안은 채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술만 따르는 기녀에게 손을 댔으니 기녀가 놀라 소리를 지르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총관의 눈이 또르르 굴러 방 안에 앉아 있는 청년에게로 향했다.
 청년은 술병을 쥔 손을 연신 잔 위에서 흔들고 있었다.
 하지만 빈 술병에서 술이 나올 리는 만무한 일.
 총관은 인상을 쓰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무식한 놈. 오늘도 만취했구나!’
 하지만 상대는 천씨세가의 둘째 공자.
 제아무리 숙주의 망나니로 악명이 자자하다지만 일개 주루의 총관이 함부로 말할 수 없는 자였다.
 애써 미소를 지은 총관이 입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공자. 이 성화각의 총관입니다.”
 그 말에 청년이 손을 휘휘 저으며 잔뜩 꼬부라진 혀로 말했다.
 “술은 가져왔냐?”
 그 말에 총관의 표정이 일변했다.
 “미안하지만 공자께는 술을 더 내어 드릴 수 없습니다. 벌써 외상이 은자 열 냥이 쌓였는데······.”
 단호한 표정으로 말을 하는 총관의 말을 듣던 청년은 검미를 찌푸리더니 이내 팔을 휘둘렀다.
 째쟁!
 총관은 급히 고개를 숙였다.
 청년의 손에서 날아간 술병이 총관의 이마를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가며 깨졌다.
 “아, 미안. 내가 지금 손이 좀 미끄러워서.”
 청년은 자신은 전혀 모르는 일이라는 듯 총관을 바라보며 히죽 웃었다.
 총관은 부들부들 떨리는 얼굴로 천준서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죄송하지만 앞으로는 돈을 갚지 않는다면 더 이상 우리 성화각에서 술을 마실 수 없습니다. 아니, 달포 내로 외상을 갚지 못하면 직접 천씨세가로 가서 돈을 받아낼 겁니다.”
 “돈? 지금 나를 무시하는 거냐? 내가 그까짓 돈 몇 푼 없을 줄 알고?”
 “제가 어찌 공자님을 무시하겠습니까? 많이 취하신 것 같은데 밖까지 모셔다 드리지요.”
 그렇게 말한 총관이 뒤에 서 있는 거한들을 향해 턱짓을 하곤 재빨리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거한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번에 총관의 말뜻을 알아들었다. 얼른 저 망나니를 밖으로 끌고 나가라는 뜻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거한들이 건들거리며 방 안으로 들어갔다.
 ‘이 새끼가 그 망나니구나!’
 숙주 현의 유명인사가 아닌가!
 소문으론 귀가 닳도록 들었지만, 실제로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어이, 이봐!”
 거한은 망나니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다.
 술기운에 취해 눈이 풀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준수하기 그지없는 얼굴이 아닌가!
 거한은 망나니의 얼굴을 보다가 구석에 처박혀서 겁을 집어먹은 기녀를 보곤 인상을 찌푸렸다.
 도대체 왜 들어왔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기녀의 미색이 비록 뛰어난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못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망나니의 얼굴을 보니 절로 그런 생각이 든 것이다.
 거한이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돌렸다.
 사실 주먹을 한두 번 휘두르려 했으나 망나니의 얼굴을 보니 그럴 생각이 싹 사라졌다.
 아무리 천씨세가에서도 내버린 자식이라고 하지만 얼굴에 상처가 나면 뭔 짓을 당할지 모르니······.
 거한이 뒤의 주먹패들을 향해 말했다.
 “밖까지 모셔다 드려라.”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방 안으로 거한들이 뛰어들었다.
 “어쭈? 겉보기엔 힘 좀 쓰게 생겼다만······.”
 천준서는 히죽히죽 웃으며 술상을 집어 들었다.
 “자, 가져가라!”
 천준서는 술상을 그대로 달려드는 거한들에게로 집어던졌다.
 술상이 바로 옆의 벽을 맞추며 사방으로 파편이 튀자 거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망나니 중에서도 개망나니라더니!’
 거한이 고개를 돌려 주먹패 한 명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곤 말했다.
 “가급적 얼굴은 피해라.”
 “예, 형님!”
 거한이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것을 본 사내가 천준서의 팔을 잡아끌었다.
 “가자!”
 “얼레?”
 술기운에 비틀거리면서도 계속 저항하는 천준서를 본 사내가 코웃음을 치다가 갑자기 주먹을 휘둘렀다.
 대충 하려했는데, 자신도 모르게 화가 치밀어 오른 것이다.
 주먹이 궤적을 그리며 천준서의 복부를 향해 날아들었다.
 퍽!
 둔탁한 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
 사내의 어린아이 머리만 한 주먹이 천준서의 복부를 그대로 강타했다.
 ‘이런!’
 사내는 순간 실수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야리야리한 공자님이 자신의 주먹을 견딜 수 있을 리 없다는 걸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아.”
 하지만 들려온 것은 천준서의 심드렁한 목소리뿐이었다.
 “엇?”
 사내는 고개를 들어 천준서를 올려다보았다.
 눈이 반쯤 풀린 천준서가 사내를 보며 히죽히죽 웃고 있었다.
 “쳤냐?”
 사내는 대답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했다.
 “주먹이란 건 말이다.”
 천준서가 주먹을 슬쩍 들어 올려 사내의 코앞에서 이리저리 흔들었다.
 “이렇게 쓰는 거다!”
 쾅!
 천준서의 주먹이 사내의 복부를 파고들었다.
 “꺼어억.”
 천준서의 주먹에 가격당한 사내는 숨넘어가는 신음성을 흘리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천준서는 휘청거리며 몸을 돌리더니 총관을 향해 소리쳤다.
 “술 안 내와?”
 총관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한꺼번에 쳐라!”
 총관의 말이 끝나자마자 거한들이 천준서에게로 달려들었다. 하지만 달려드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튕겨져 나왔다.
 “아악!”
 “켁!”
 거한들을 모두 날려버린 천준서는 휘청이며 소매로 입을 훔쳤다.
 그리고는 총관에게로 다가갔다.
 “그래도 내가 나름 천씨세가의 둘째 공자님인데, 어디서 하루살이 같은 것들을 데려다가······ 어?”
 천준서의 걸음이 멈춰졌다.
 “그런데······.”
 그리고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왜 이렇게 취하냐······?”
 총관은 대자로 바닥에 눕더니 그대로 곯아떨어지는 천준서를 황당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거한 중 하나가 배를 움켜잡고 다가왔다.
 “어떻게 할깝쇼?”
 총관은 인상을 확 찡그리며 소리쳤다.
 “몰라서 묻냐? 내다 버려!”
 거한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천준서를 업어 들고 밖으로 나갔다.
 총관은 난장판이 된 방 안을 한참 바라보다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천씨세가에 어쩌다가 저런 망나니가! 지 형의 반만 닮았어도! 쯧쯧쯧.”
 ***
 슬슬 어두워질 무렵 대로를 울리는 목소리에 행인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이내 성화각의 대문이 벌컥 열리더니, 세 명의 장한이 나와 청년 한 명을 길바닥에 내던졌다.
 얼마나 세게 내던졌던지, 흙바닥에 두 바퀴를 구른 후에야 멈췄다.
 “으음······.”
 땅에 얼굴을 박고 신음을 내뱉던 천준서가 살짝 고개를 들며 눈을 떴다. 하지만 천준서의 눈은 술에 취한 사람이라기엔 너무나도 맑았다.
 주변을 잠시 살피던 천준서는 다시 천천히 땅에 얼굴을 처박았다.
 잠이 든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술에 만취한 천준서가 흙바닥에서 잠을 자는데도 불구하고 그러려니 하며 지나갔다.
 몇 년 동안 심심찮게 보던 장면이니, 딱히 감흥이랄 게 없었기 때문이다.
 한 시진이 지나고, 쥐죽은 듯 자고 있던 천준서가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암, 그래도 잠은 집에 가서 자야지.”
 ***
 끼이익.
 천준서가 집으로 다가가 거대한 정문을 열려다가 벌컥 열리는 문 덕분에 앞으로 나뒹굴었다.
 “아?”
 천준서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고개를 들고 이리저리 살피다가 자신을 내려다보는 세 명의 사람을 발견하곤 씩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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