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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란총서 1

2018.02.01 조회 339 추천 1


 광란총서 1권
 1장 차가운 피를 가진 남자의 전설과 신화의 서(序).
 
 
 그대 차가운 피를 가진 남자의 전설을 아는가?
 가장 강한 사내가 내뿜는 향기를 맡은 적 있는가?
 크고 아름다운 북극성의 이름이란 뜻의 위진후(偉辰珝)란 사내에 대해 들어본 적 있는가?
 그대··· 이제 들어 보아라.
 중국(中國) 명(明)나라 영락제(永樂帝)때의 일이다.
 세인(世人)들은 알지 못하는 무림의 전설(傳說)이 있었다.
 차가운 피를 가진 냉혈객(冷血客)의 신화(神話)가······.
 
 ***
 
 자금성(紫禁城).
 영락제의 거처인 태화전(太和殿).
 구주(九州) 십팔만리를 지배하는 자.
 삼천만명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명나라의 황제 영락제.
 그가 의자에 기댄채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고 있다.
 넓은 대전 안에는 오직 촛불만이 일렁이고 있을 뿐 고요하다. 깊은 적막이 흐르고 있었다.
 “음······.”
 누가 절대권좌의 영락제를 괴롭게 만든단 말인가? 그의 목소리에는 괴로움과 망설임이 묻어 있었다.
 영락제가 고통스럽게 내뱉았다.
 “과연 가능할까?”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그의 목소리에 허공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간교한 목소리였다.
 “준비는 끝났습니다. 이미 십만금군(十萬禁軍)과 일만동창의 고수들이 명령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또한 무림인들의 포섭도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어둠 속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그러나 영락제는 무언가 두려운 것만 같았다.
 “하지만 만약······.”
 다시 자신감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절대 실패하지 않습니다. 이미 저희 첩자가 안에서 손을 쓰고 있을 것입니다.”
 천하를 움켜쥐고 있는 황제가 두려워하는 자는 누군란 말인가? 또한 십만의 군사를 동원해야만 하는 세력은 어디란 말인가?
 다시 얼마간의 정적이 흘렀다.
 영락제는 신음하듯이 고통스럽게 내뱉았다.
 “좋아! 시작하게.”
 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어둠 속에서 힘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존명!”
 넓은 태화전에는 촛불만이 일렁이고 있다.
 영락제가 다시 중얼거렸다.
 “만일 일이 실패한다면 동창을 비롯, 이 일에 관계된 자 수십만명 모두를 죽여도 위씨가문(偉氏家門)의 분노를 풀지 못할텐데······.”
 그는 극심한 공포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
 
 황제의 밀명을 받은 동창의 무리들이 움직인지 두 시진 후, 북경성 남쪽에 자리잡은 위씨가문 강북천도맹이 불타고 있다.
 화르르르······.
 사방에서 불길이 치솟아오르고 하늘 높이 우뚝 솟은 고루거각들은 곳곳에서 불탄 채 쓰러지고 있다. 사방에서 밤하늘을 밝히면서 화포(火抛)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으아악!”
 “아악!”
 처절한 비명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곳곳이 피가 튀는 살육의 현장이다. 아비귀한의 지옥도가 바로 이곳이다.
 수천명의 무사들이 곳곳에서 귀신처럼 나타난 무사들과 검을 휘두르면서 닥치는 대로 싸우고 있었다.
 “아버님을··· 내가 비록 죽더라도 아버님을······.”
 한 청년이 검을 들고 소리치고 있었다. 그는 검을 휘두르면서 불길이 치솟는 건물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 곳에서는 열명의 고수들이 어지러이 싸우고 있었다.
 “숙부님들이 아버님을 배신하다니······.”
 그곳에는 아홉명의 흑의인들이 한 사람을 공격하고 있었다.
 지금 싸우고 있는 열명은 바로 무림십대고수(武林十代高手)다. 정도무림의 기둥인 구대문파의 장문인들과 무림을 통일한 공전절후의 검객이 바로 그들 열명이다.
 아홉명을 상대로 싸우는 자는 한자루 검을 들고 하늘이 놀랄만한 무공으로 그들과 겨루고 있다.
 타오르는 불길 속으로 청년이 뛰어들었다.
 “안됩니다. 도련님!”
 날카로운 외침과 함께 청년 주위를 네명의 중년여인들이 막아섰다. 청년은 그녀들을 둘러보며 소리쳤다.
 “유모! 나를 막지 마시오. 내가 비록 죽을지라도······.”
 청년의 눈에는 불타는 건물 안에서 싸우는 십인의 모습이 다시 들어왔다.
 그들의 싸움은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았다. 그들은 하늘 아래에서 가장 강한 열명이다. 그들이 바로 무림십대고수다.
 청년이 거칠게 중년 여인들을 밀치며 앞으로 걸어나갔다.
 “나를 막는다면 이 자리에서 죽고 말겠소.”
 그의 두 눈에서는 굳은 결의가 흐르고 있었다. 유모들은 감히 그를 막을 수 없었다.
 그는 한번 한다면 하는 사람이다. 한번 한다면 반드시 하고야마는 사람이다.
 이때, 영원히 계속될 것 같던 십인의 싸움은 끝나가고 있었다. 협공당하는 한 사람의 검에 구인의 고수들은 연달아 쓰러졌다. 그들은 구대문파의 장문들이다.
 그러나 검을 들어 장문인들을 상대하는 청년의 아버지의 몸에도 곳곳에서 붉은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제 세 사람만이 남아 겨루고 있었다.
 “소림의 대지대사가? 무당의 태극도장은 아버님의 죽마고우요 생사지교가 아닌가? 그들이 왜?”
 약관의 나이의 청년이 미친 듯이 소리쳤다. 그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친혈육보다 더 믿었던 그들이 왜 아버님을 배신한단 말인가?
 이제 청년의 아버지는 두 사람만을 상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몸은 더욱 위태로웠다. 이미 그의 진기는 거의 소진되고 있었다.
 “태극기공(太極氣功)!”
 무당의 태극도장이 짧게 소리쳤다. 청년의 아버지는 소림의 대지대사를 상대하느라 그의 공격을 피하지 못했다.
 청년은 그 곳으로 달려가지 못했다.
 그때 누군가 청년의 혈도를 집었기 때문이다. 청년은 고개를 돌려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소리쳤다.
 “비연! 서문비연! 네가 왜?”
 청년은 조용히 쓰러졌다.
 서문비연은 나직이 중얼거렸다.
 “어리석은 짓 할 생각 말아요. 살아있어야 복수라도 할 것 아니에요?”
 서문비연은 청년과 오늘 결혼식을 올린 신부이다. 오늘이 바로 청년의 신혼 첫날밤이다.
 “낙성십이검법(落星十二劍法)!”
 무당 태극도장의 일격을 맞은 청년의 아버지가 자신의 절기인 낙성십이검법을 휘둘렀다. 그는 이 낙성검법으로 중원무림을 수십년간 지배했고 무림을 통일했다.
 그의 검이 매섭게 휘둘러지자 태극도장과 소림 대지대사는 그 검기를 감당하지 못하고 뒤로 물러섰다.
 쓰러져 있던 칠인(七人)의 장문인 중 누군가 소리쳤다.
 “과연 신주제일검(神州第一劍)! 무림왕으로 이름 높은 송나라 소봉(少峯)이 당신만 할까?”
 신주제일검은 두 손을 맞잡아 답례를 했다. 곧 죽음이 닥쳐오고 있었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예의를 잊지 않았다.
 “개방 장문의 말씀은 과분한 말씀이오. 내가 어찌 동서고금 공전절후한 무림왕과 비견될 수 있겠소? 다만 부끄러울 뿐이오.”
 그는 개방장문에게 고개를 숙이며 절을 했다.
 신주제일검의 뒤에는 무당의 태극도장이 우울한 얼굴로 서 있었다. 그의 눈에는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는 이미 자신의 태극기공이 신주제일검을 가격한 이상, 신주제일검에게는 오직 죽음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태극도장이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당신이 너무나 강하기 때문이오! 위천강(偉天强)! 당신이 너무나 강해서 하늘이 두려워하기 때문이오!”
 신주제일검(神州第一劍) 위천강(偉天强).
 그는 무림을 지배하는 강북천도맹의 맹주다. 그러나 지금 천도맹은 불타고 그는 죽음의 문턱을 밟고 있다. 그는 현재까지 중원무림 최강자다. 아직까지는······.
 휙!
 말을 마친 태극도장은 그대로 뒤돌아섰다. 그는 자신의 절친한 친구인 위천강의 죽음을 보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태극기공이 적중한 이상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다. 설혹 신(神)이라 할지라도······.
 위천강은 조용히 하늘을 우러러 나직이 중얼거렸다.
 “내가 죽는 것은 두렵지 않으나 나이 어린 진후(辰珝)가······. 진후! 진후!”
 생사를 초월한 무림의 일인자인 그도 아들을 향한 부정(父情)만은 어쩌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는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태극도장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쓸쓸히 걸어가는 무당 태극도장이 있었다.
 “왜 오늘이오? 오늘은 진후의 결혼식이지 않소?”
 오늘은 바로 위천강의 아들 위진후(偉辰珝)의 결혼식이 열린 날이다. 그의 신부는 강남무림맹의 서문비연이다.
 태극도장은 말없이 그대로 걸어갔다. 그 곳에는 붉은 화염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태극도장은 타오르는 불길을 조금도 신경쓰지 않았다. 거친 불길이 그의 몸을 감쌌다. 그의 어깨는 조금씩 들썩이고 있었다. 그도 우는 것이다.
 태극도장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마지막까지 당신을 이기지 못하는구려. 누가 당신이 양보했다고 감히 생각이나 하겠소.’
 그가 중얼거리며 화염 속으로 들어가자 대지대사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의 얼굴도 매우 어두웠다.
 “아미타불! 아미타불! 위진후는 황실의 핏줄을 타고났으니 아마도 죽이지는 않을 것입니다.”
 인중지룡이라 불리는 강북천도맹의 소주 위진후의 어머니는 황실의 부용공주다. 위천강의 부인이 바로 부용공주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녀는 삼년전에 죽고 말았다.
 대지대사의 말에 위천강은 하늘을 우러러 크게 웃었다.
 “하하하하! 대지대사, 당신으로 변장한 탈불라마는 정말 우스웠소. 정말이오. 하하하······.”
 위천강의 웃음소리는 점점 잦아들었다. 그의 눈에서는 알 수 없는 분노의 기운이 흘러나왔다.
 방금 전까지 무림을 지배했던 자신과 강북천도맹이 이렇게 쉽게 무너질 줄은 몰랐다. 혈련마교, 흑도의 구장검괴, 강호의 패권을 노리는 숱한 자들과 수백번 싸워 정도무림을 지킨 자신이 절친한 친구들에게 배반당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의 얼굴에는 배반의 한이 흐르고 있었다.
 위천강의 웃음은 잦아들었다. 그는 나직한 목소리로 속삭이듯이 말했다.
 “과연 무당의 무공은 무섭구려······.”
 위천강은 조용히 말을 멈추었다. 원통하고 억울한지 두 눈도 감지 못하고 그 자리에 선 채 절명한 것이다.
 세인들은 감히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그가 한 마지막 말이 자신의 친구에게 남긴 마지막 선물이라고는······.
 대지대사는 위천강의 눈을 조용히 감겨주며 말했다.
 “아미타불! 아미타불! 천년을 사는 거북도 영겁의 시간에서 바라보면 찰나에 지나지 않는 것! 죽음을 두려워 마시오. 위맹주. 황제를 두렵게 하고는 누구도 감히······. 다만 미안할 따름이오. 아미타불! 아미타불!”
 그의 얼굴에도 슬픈 빛이 어리었다.
 강북천도맹(江北天道盟)을 만들어 중원무림을 지배한 자가 죽은 것이다. 그를 죽인 자는 구대문파의 장문인들이다.
 강북천도맹에서 살아남은 자는 오직 한명이다.
 그는 바로 ‘아름다운 북극성’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위진후(偉辰珝)이다. 그가 살아남은 것이다.
 신주제일검 위천강의 아들 위진후(偉辰珝)가 살아남은 것이다. 위진후의 가문을 멸문시킨 자는 황제의 명을 받은 구대문파의 장문인들이다. 그들은 강호에서 가장 강한 아홉명이다.
 
 ***
 
 북경. 대승상부.
 대명제국의 일인지하 만인지상인 대승상 위익천의 거처.
 대승상의 위세는 가히 하늘을 꿰뚫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이곳에서는 정체불명의 무사들이 대승상부를 에워싸고 있다.
 전신을 흑의로 뒤덮은 무사들 등 뒤에는 ‘동(東)’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이들이 바로 동창의 무사들이다. 황제 직속 비밀첩보조직인 것이다. 그들이 대승상부를 이중삼중으로 에워싸고 있었다.
 그 순간 단발마의 비명이 제독부를 진동시켰다.
 “아아악!”
 처절한 비명이 들리는 현장에는 수십명이 결박당한 채 잔인한 고문을 당하고 있었다. 팔십 노인에서 열한살 소녀까지 수십명이 잔인하게 고문당하고 있었다.
 그 주위에는 역시 동창의 고수들 수백명이 그들을 감시하고 잔인한 고문을 행하고 있다.
 “으아아! 차라리 죽여라. 이놈들아!”
 처절한 비명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그 고문의 현장 정면에는 태사의에 앉은 한 사람이 차를 마시고 있었다. 간교한 얼굴을 가진 태감이다. 그는 비명을 즐기는 것 같았다.
 고문을 당하고 있던 한 인물이 소리쳤다.
 “태공공! 이 천하의 간신! 네 뜻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다.”
 소리친 사람은 대승상 위익천이다. 검은 수염이 허리까지 드리어진 전형적인 무장이다. 그가 바로 주원장을 도와 명을 세운 일등공신 충정공(忠正公)이다.
 그러나 그의 몸 곳곳에는 이미 고문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뼈가 보일 듯이 베인 살에서는 붉은 피가 계속 흘러나오고 있었다.
 태공공은 차를 마시면서 말했다. 그의 표정은 매우 즐거운 듯 했다.
 “후후, 너의 아들 위천강은 이미 구대문파의 배반으로 무당장문에 공격당해 죽었다. 후, 그가 죽을 때 중얼거린 말로 인해 무당장문이 무림최강자가 되었다는군. 과연 대단한 아들을 두었다. 말 한마디로 후계자를 세우다니. 후후.”
 신주제일검이 죽은 뒤 중원무림은 무당의 태극도장이 영도하는 것 같았다.
 태공공이 다시 말했다.
 “위익천 당신이 비록 개국공신이라 하나 황제를 두렵게 한다면 절대 무사할 수 없다.”
 주원장을 도와 명을 세운 개국일등공신 충정공, 그리고 강북 천도맹을 세워 무림을 지배했던 신주제일검 위천강. 그 위씨가문(偉氏家門)은 너무나 강했기에 그 강함을 두려워한 황제에 의해 멸망당하는 것이다.
 태공공은 다시 부관에게 손짓을 했다.
 부관 세영은 고개를 끄떡였다. 그는 태공공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그건 바로 붉은 피와 비명소리다. 그는 단하로 내려갔다. 그 곳에는 이글거리는 화톳불 위에 붉게 달구어진 쇠꼬챙이가 있었다.
 세영은 잔인하게 웃더니 입을 열었다.
 “대승상, 이미 당신들의 음모는 들통났으니 참가한 자들을 모두 말하시오.”
 대승상은 갑자기 세영을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그에게 침을 내뱉았다.
 “ㅌ! 이 간신놈들아, 너희들이 성상의 총명을 흐려 나를 모함에 빠트리다니! 내 아들이 강북천도맹을 만든 것은 반란을 꾀하기 위함이 아니다. 너희들은 언젠가 천벌을 받을 것이다.”
 세영은 대승상이 순순히 자백하지 않자 달구어진 쇠꼬챙이를 집어들었다. 그리고는 그것을 그대로 대승상에게 내질렀다. 순식간에 살타는 냄새가 진동했다.
 지지지직!
 달구어진 쇠꼬챙이는 대승상의 옷을 뚫고서 그의 허벅지를 지졌다. 대승상은 이를 악물면서 고통을 참았다. 그의 몸은 덜덜 떨리었다.
 “으윽, 정말··· 악랄한 놈들······.”
 세영은 고통을 참는 대승상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비웃듯이 말했다.
 “당신은 참을 수 있을지라도······.”
 대승상 뒤에 결박된 채 앉아있는 위씨가문(偉氏家門)의 가족들이 세영의 눈에 들어왔다. 그들도 이미 갖가지 형벌을 받고 있었다. 그 참혹한 광경은 일일이 글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세영의 모습을 보던 대승상의 수염이 부르르 떨렸다. 자신의 고통은 참을 수 있더라도 자신의 가족들의 고통은 참을 수 없었다.
 세영이 다시 말했다. 그의 얼굴에는 잔인함과 표독함이 흐르고 있었다.
 “흐흐, 당신 집안 남자들은 모두 죽이고 여자들은 모두······.”
 세영이라는 놈은 말을 하다 말고 갑자기 침을 꿀떡 삼켰다. 목이 매우 마른 모양이다.
 “흐, 역적의 계집들이 무엇을 하는지는 대승상이······. 자! 말하시오. 역모를 꾀했다고!”
 “이, 이놈들!”
 대승상은 더 이상 자신이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자신의 부인과 딸들이 능욕당하는 장면을 어떻게 지켜볼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고 없는 죄를 말할 수도 없다. 역모죄는 말해도 죽을 뿐이다. 어차피 죽는 목숨이다.
 대승상은 마음을 굳혔다. 그가 마지막 힘을 모아 소리쳤다.
 “태공공! 이 간신놈! 하늘의 법망이 허술하더라도 악인이 도망칠 곳은 없다. 죽어서 너를 기다리겠다.”
 말을 마친 대승상은 그대로 땅바닥에 머리를 부딪혔다.
 퍽!
 순식간에 허연 뇌수가 대리석 바닥에 흩어졌다.
 대명제국을 호위하는 삼인의 대장군 중 한명으로 추앙받던 일등공신 충정공은 그렇게 죽고 말았다.
 “충정공은 위진후의 할아버지이다.”
 그러자 대승상 뒤에서 고문당하던 그의 아들이 소리쳤다. 그는 신주제일검 위천강의 형이다.
 “아버님! 큰뜻을 펼치지 못하고 이렇게······.”
 이어서 또다시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퍽!
 아들 역시 자결하고 만 것이다. 도저히 살아날 가망이 없으니 치욕을 당하기 전에 자결한 것이다.
 그러자 가족들은 연달아서 자결을 시도했다. 혀를 깨물거나 바닥에 머리를 부딪혔다.
 아무도 그들을 말리지 않았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태공공은 여전히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는 차례로 자결하는 위씨가문을 보면서 차갑게 말했다.
 “흥, 너희들이 반역을 꾀하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 누구도 황제의 권력을 위협한다면 살아남지 못하리라.”
 태공공은 곳곳에서 자결하는 위씨가문의 가족들을 바라보고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조금의 당혹감이나 놀람도 없었다.
 “죽여도 죽여도 끝이 없구나. 도대체 위씨가문의 추종자들이 얼마나 된다는 말이냐?”
 태공공은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누구도 들을 수 없게 나직이 말했다.
 ‘후, 충정공! 너만 죽는다면 권력은 나의 손에 들어온다. 네놈이 번번히 방해하는 바람에 그동안 내가 얼마나 손해를 보았는지 아느냐? 제기랄, 떡을 만지면 떡고물을 먹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 이것이 바로 만고불변의 진리다.’
 
 ***
 
 영락제가 초조하게 앉아 있었다.
 그의 앞에는 동창의 수령인 태감 태공공이 시립해 있었다.
 태공공이 말했다.
 “폐하, 이제 끝났습니다. 충정공은 자결했고 반란수괴 위천강은 죽었다고 합니다.”
 영락제는 급히 말했다.
 “강북천도맹은?”
 태공공은 다시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저희 동창 일만고수들과 십만금군의 공격으로 전멸하였습니다. 누구도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천하제일무공을 자랑하던 위천강도 끝내는 구대문파의 협공에 죽고 말았습니다.”
 영락제는 단호히 소리쳤다.
 “단 한명도 살아남는 자가 있다면!”
 태공공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폐하, 걱정하지 마십시오. 대승상 충정공, 신주제일검 위천강 그들 부자(父子)와 관계된 자는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모두 구족(九族)을 멸(滅)했습니다. 다만······.”
 “다만?”
 태공공은 다시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부용공주의 자제인 위진후만은 살려두었습니다.”
 위진후는 황실의 피를 이어받은 자다. 범인(凡人)이 함부로 죽일 수는 없다. 그것은 태공공도 잘 알고 있다. 황제가 죽이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으나 자신이 죽인다면 큰 문제가 된다.
 신주제일검 위천강의 아들, 위진후의 어머니는 황실의 부용공주다. 영락제의 친동생인 그녀는 이미 삼년전에 죽고 말았다. 그녀가 살아있었다면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영락제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의 눈에는 약간의 갈등이 스쳐 지나갔다. 그것은 건문제(建文帝)를 죽이고 황권을 빼앗을 때의 갈등보다도 심했다.
 조카를 죽이고 제위를 빼앗을 때에는 큰 갈등을 갖지 않았다. 왜냐하면 아버지인 주원장을 도와 명을 세운 공은 자신에게 있었다.
 그래서 그는 주저하지 않고 건문제를 죽이고 황제의 자리를 차지했다.
 그러나 위진후는 자신이 황제의 자리를 차지하도록 도움을 준 위익천의 손자다. 더구나 자신의 친누나인 부용공주의 하나 뿐인 아들인 것이다.
 더구나 강북천도맹을 비롯 위씨가문를 모두 멸문(滅門)한 지금 굳이 위진후까지 죽일 필요가 있을까? 그러나 그를 살려 둔다면······.
 영락제는 신음하듯이 내뱉었다.
 “죽여라. 그를 죽여라. 죽여 버려! 죽여 버리라구!”
 “네, 폐하, 현명하신 판단입니다.”
 태공공이 물러가려고 할 때 태화전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 화가 난 듯 소리치고 있었다.
 영락제가 얼굴을 찌푸리자 태공공이 급히 말했다.
 “폐하, 아무것도 아닐 것입니다. 심려하지 마소서.”
 태공공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태화전으로 들어서는 사람이 있었다.
 일흔살은 됨직한 노부인(老婦人)이었다. 화려한 궁중예복(宮中禮服)을 입고 머리에는 봉황잠(鳳凰簪)을 꽂고 신발은 태사혜(太史鞋)를 신고 있었다.
 바로 영락제의 어머니인 정경황후였다.
 영락제는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어쩐 일로?”
 정경황후는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폐하께서 이번에 아주 큰일을 하셨다 하더이다.”
 영락제는 ‘무슨 소리냐’는 듯이 되물었다.
 “도대체 무슨 말씀이신지? 나라는 편안하고 만백성이 격양가를 부르고 있는 반고 이래 최고의 태평성세입니다.”
 정경황후는 가볍게 기침을 하며 말했다.
 “에취! 내가 나이를 먹어 살 날은 얼마남지 않았지만 귀는 아직도 성해서 들을 것은 다 듣고 있소이다. 성상.”
 그녀가 이곳에 온 것은 황실사호위가 위진후를 살리기 위해 정경황후를 움직인 것이다.
 위진후의 유모인 그녀들은 정경황후의 호위였다. 그들은 시집간 부용공주를 호위했다. 삼년전 부용공주가 죽은 뒤 그들은 위진후를 보호했다.
 ‘어머님이!’
 천하를 움켜쥐고 있는 영락제였지만, 어머니 앞에서는 아들에 불과할 뿐이다.
 정경황후는 다시 입을 열었다.
 “폐하께서는 황위에 오르신 이래로 계속해서 형제들을 도륙(屠戮)하더니 이제는 내 사위까지 아주 죽이셨더군요.”
 영락제는 입을 다물었다.
 그녀가 말하고 있는 내용은 모두 사실이다. 그의 권좌를 위협할 만한 의붓형제들은 모두 죽임을 당했다.
 황후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제는 내 뱃속에서 나온, 세상에서 한명 밖에 없는 누나도 죽이십니까?”
 영락제가 급히 말했다.
 “어머님, 누님이 세상을 뜬지 이미 삼년이 넘었습니다.”
 부용공주는 이미 죽었다. 그녀가 살아있을 동안은 영락제도 차마 위천강을 제거할 수 없었다. 하늘 아래에서 정경황후의 몸에서 나온 사람은 자신과 부용공주 뿐이다.
 정경황후는 두 눈의 안광(眼光)을 번뜩이며 말했다.
 “내 딸은 죽었지만 그녀의 뱃속에서 나온 아들은 살아있습니다. 바로 나의 외손자요 폐하의 조카입니다.”
 영락제를 바라보는 황후의 눈빛은 너무나 강렬했다.
 ‘누이가 살아있다면 내가 이토록 불안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누이가 죽은 지금 위씨가문의 위세는 나를 두렵게 만들었다. 어쩔 수 없다. 천하는 나의 것이 아닌가?’
 그는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자신의 외조카인 위진후를 살려둘 수는 없었다.
 영락제의 마음을 눈치챈 황후는 고개를 돌려 태공공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랫도리도 없는 환관 주제에 잘도 내 사위를 죽였겠다? 네놈의 꾀임만 없었던들 내 사위는 죽지 않았을 것이다!”
 태공공은 몸을 부르르 떨며 말했다.
 “황후폐하, 소신은 다만······.”
 정경황후는 품에서 작은 은장도를 끄집어냈다.
 그리고는 노기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이놈! 이리 오너라. 네놈의 심장을 내가 찔러 주겠다.”
 그러면서 천천히 그를 향해 걸어가는 것이 아닌가?
 태공공은 강호의 만명의 고수들이 덤빈다고 해도 조금도 걱정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 휘하에는 구름 같은 고수들이 있고 자신의 무공 또한 무림고수보다 약하지 않다.
 그러나 한명의 노인에 불과한 정경황후의 발걸음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의 눈에서는 공포와 두려움이 흐르고 있었다.
 그는 뒷걸음질치며 영락제를 바라보았다.
 영락제는 무언가 생각하는 것만 같았다.
 “이놈, 한걸음만 더 도망간다면 내가 이곳에서 자결하겠다.”
 태공공은 정경황후의 협박에 더 이상 물러서지 못하고 영락제만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불 같은 성격으로 미루어 보아 자결한다면 틀림없이 자결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아무리 황제의 총애를 받는 자신의 목숨도 사라진다. 황후를 죽였다는 이유로 죽는 것이다.
 비틀거리며 한걸음도 제대로 걷지 못하는 정경황후의 은장도가 태공공의 가슴에 이르렀다.
 “폐하!”
 태공공이 다급하게 외쳤다.
 영락제는 태공공의 가슴에 은장도를 찌르는 황후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머니, 위진후를 죽이지 않겠습니다.”
 정경황후는 그 말을 듣지 못한 듯 태공공의 가슴을 단도로 찔렀다. 그러면서 말했다.
 “이놈이, 이놈의 몸은 강철로 되어 있나? 단도가 들어가질 않네? 네놈이 바로 철면피(鐵面皮)냐?”
 그녀는 태공공의 가슴에 은장도를 계속 내질렀다.
 영락제는 자신을 바라보며 도움을 갈구하는 태공공의 눈빛을 보며 다시 소리쳤다.
 “어머니, 어머니의 외손자인 위진후를 죽이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그제서야 정경황후는 태공공의 가슴을 찔렀던 은장도를 바닥에 버렸다. 그녀는 매우 기쁜 듯이 말했다.
 “정말이오?”
 태공공의 옷은 찢겨져 나갔으나 그의 가슴에는 작은 혈흔만이 남았을 뿐이다. 그는 황실의 무공을 익힌 영락제 최후의 근위병이다.
 영락제는 차분히 말했다.
 “그렇습니다. 위진후를, 어머니의 외손자를 살려두겠단 말입니다.”
 정경황후가 물러가자 영락제는 다시 의자에 주저앉았다. 그의 얼굴에는 고뇌가 어리어 있었다.
 태공공이 그의 곁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폐하, 위씨가를 추종하는 무림인들은 매우 많습니다. 위진후를 살려둔다면 훗날 반드시 화근이 될 것입니다.”
 영락제는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그것을 내가 모른단 말이냐? 내가 몰라서 그를 살려둔다는 말이냐? 지금 위진후를 죽인다면 어머님이 자결할지도 모를 일이다. 만약 어머님이 자결한다면 세인(世人)들이 나를 뭐라고 하겠느냐?”
 영락제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며 몇걸음 걸었다. 그리고 단호히 소리쳤다.
 “권좌를 위해서 형제와 조카를 죽였다는 욕은 받을 수 있으나 어머니마저 해쳤다는 소리는 듣고 싶지 않다!”
 태공공은 고개를 숙여 한참을 생각한 후에 다시 말했다.
 “폐하, 그렇다면 위진후를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영락제는 이미 생각해 놓은 것이 있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뇌옥에 가두어 둔 채 기다렸다가 어머님이 살아계실 동안에는 죽이지 않고, 하지만 어머님이 승하하시면······.”
 그가 음흉한 눈빛을 띠자 태공공이 다시 말했다.
 “뇌옥은 위험합니다. 조정에는 아직도 충정공을 따르는 무리가 많고 강호에는 위천강을 따르는 자들이 많습니다.”
 영락제는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다면 어쩔 생각이냐? 설마 그를 풀어주자는 소리냐?”
 태공공이 조용히 대답했다.
 “위진후를 죽이지는 않지만 죽일 수 있는 방법이 있사옵니다. 절대 살아나지 못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영락제는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이 말했다.
 “무슨 소리냐?”
 태공공은 두 눈에 간악한 기운을 흘리며 음흉하게 말했다.
 “폐하, 위진후를 죽이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지요. 그러나 그가 자결하는 것이나 타인이 그를 죽이는 것은 관계가 없지 않습니까?”
 영락제는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다.
 “음, 그런 방법이 있었군.”
 다시 태공공이 무어라고 말하려 할 때, 영락제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말했다.
 “하지만, 위진후가 자결을 할까? 더구나 그 녀석의 무예도 보통이 아니라고 하던데? 또 혹이라도 어머님이 아시면······.”
 태공공은 더욱 간교하게 말했다.
 “폐하, 이 세상에 지옥이라고 불리는 곳이 있습니다. 그 곳에는 아무리 무공이 고강한 자도 살아오지 못하옵니다. 오직 붉은 피와 죽음만이 존재하는 곳이 있습니다.”
 영락제는 태공공의 말에 흥미를 느끼며 의자에 다시 앉았다. 그는 약간 호기심에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어디냐? 그런 지옥이 어디란 말이냐?”
 태공공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네, 폐하 태조이신 홍무제(주원장)께서 사막을 지키기 위해서 만든 부대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이미 잊혀진 부대지요. 허나 아직도 살인범이나 종신범, 혹은 높은 급료를 탐내서 그 곳으로 가는 사람들이 있지요. 허나 단 한명도 살아서 돌아오지 못한 부대가 있습니다.”
 영락제는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내가 모르는 부대도 있었던가?”
 태공공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젠장, 황제라고 온 세상일을 모두 안단 말이오?’
 그러나 겉으로는 그런 기색을 조금도 드러내지 않았다.
 태공공은 나직이, 그러나 단호히 말했다.
 “절대 살아서 돌아올 수 없습니다. 그 곳에는 오직 죽음만이 기다릴 뿐입니다. 그 부대는 잊혀진 부대이지요. 아마 영원히 전설로 남을 것입니다.”
 영락제는 그의 확신에 찬 목소리를 들으며 고개를 끄떡였다. 그가 소리쳤다.
 “그렇다면 보내라. 그를 지옥으로! 다시는 중원으로 돌아오지 못하게!”
 칠주야를 걸어도 보이는 것이라고는 오직 붉은 모래 뿐, 한번 지나가면 산도 사라지고 계곡도 평지가 되는 모래 폭풍이 부는 곳.
 날아가는 독수리조차 잘못 발디디면 절대 빠져나올 수 없다는 유사(流沙)가 흐르는 곳.
 그 곳에 천하의 악당들을 모아 만든 지상 최강의 부대가 있다는 소리를 들은 적 있소?
 한번 입대하면 백골이 되기 전에는 절대 살아올 수 없다는 사혈대(沙血隊)를 아시오?
 수많은 무림고수들이 탈출을 시도했지만 단 한명도 성공하지 못한 곳.
 그대 낭만을 ㅉ아 사막의 사혈대에 들어가지 마시오.
 그 곳에는 오직 지옥의 야차같은 살수들만이 광기어린 눈으로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오.
 그대 삶이 짜증나거나 부담스러울 때 한번씩 생각하시오.
 사막의 사혈대를, 그리고 사막의 백골을······.
 
 
 2장 냉혈객이라 불러 다오.
 
 
 무림을 지배하던 강북천도맹이 멸망한지 삼년후(三年後).
 강북천도맹 멸망 이후 무림은 강남무림맹(江南武林盟)과 강북의 구대문파(九大門派) 그리고 마교인 혈련마교(血聯魔敎)가 천하를 다투고 있다.
 천도맹의 전설과 신화도 이제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갔다. 신주제일검 위천강의 이름도, 인중지룡(人中之龍)이라 불린 그의 아들 위진후(偉辰珝)의 이름도······.
 
 ***
 
 감숙성(甘肅省) 돈황(敦煌).
 사주(沙州)라고도 불리는 곳으로 한무제 이래로 중국 서방의 입구인 도시이다. 또한 교통의 요지로 여러 부족이 살고 있는 곳이다.
 이 도시에서 서쪽으로 삼십리 가량을 가면 중원의 끝인 옥문관(玉門關)이 나타난다.
 옥문관을 넘어서면 나타나는 것은 끝없는 모래사막이다.
 바로 타클라마칸 사막인 것이다.
 타글라마칸이란 원주민 말로는 ‘들어가면 절대로 나올 수 없다’는 뜻이다.
 이곳이 바로 죽음의 붉은 모래 사막이다.
 이 사막에는 오래 전부터 상인들에게 전해지는 한가지 불문율이 있었다.
 ― 사막에서 그들을 만나지 마라. 만약 세명의 귀신을 만난다면 누구도 살아남지 못하리라.
 사막을 여행하는 대상들 사이에 전해지는 무시무시한 소문이다. 그들은 바로 손속이 잔인하고 살인을 밥 먹듯이 하는 사막의 비적들, 대막삼귀(大漠三鬼)를 가르키는 말이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오직 붉은 모래 뿐이다.
 도저히 살아 움직이는 물체라고는 보이지 않은 대막(大漠).
 천지사방이 온통 붉은 모래 뿐이다.
 휘이이잉······.
 한줄기 바람이 스쳐 지나갔다.
 갑자기 까마귀 울음소리가 적막을 깨트렸다.
 까아아악!
 피냄새를 맡은 듯 까마귀 몇마리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끝없이 펼쳐진 모래 사막.
 까마귀들이 모여드는 언덕 아래에는 목불인견(目不忍見), 차마 눈 뜨고는 볼 수 없는 처참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다.
 “크흐흐흐! 귀여운 것 어딜 도망가려느냐?”
 “카!카!카! 형님 오늘은 아주 운이 좋습니다. 재물에다가 여자까지······.”
 “형님들 정말 운이 좋군요. 이런 황량한 사막에 여자를 데려오는 미친 녀석들이 있다니······.”
 처음 말한 우두머리 일귀(一鬼)는 다시 나직이 말했다.
 “우리들의 손에 걸리면 설사 무림파천황이라 할지라도 사막에서는 살아날 수 없다.”
 그 곳에는 정말로 두 눈 뜨고 볼 수 없는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배가 갈린 채 곳곳에서 붉은 피를 흘리면서 죽어 있는 시체들과 그 시체들 사이에서 추잡한 짓을 하고 있는 세 마귀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이 바로 사막의 살인귀들인 대막삼귀(大漠三鬼)였다. 서쪽으로 기운 사막의 태양은 그들을 무심하게 비추고 있다.
 “헉! 헉!”
 대막삼귀는 울부짖는 여인들을 허리에 깔고서 추잡한 짓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들 주위에는 죽은 시체가 널려 있었다.
 바로 사막을 여행하던 대상(隊商)들이다.
 모두 이십여명. 그들은 한사람도 남기지 않고 몰살당한 것이다. 모두 피를 흘리는 시체들이 되고 말았다.
 살아남은 자는 세 귀신의 정욕을 풀기 위해서 남겨진 가련한 여인 넷 뿐이다. 그 네명 외는 모두 죽은 것이다.
 대막일귀가 허리춤을 추스리면서 일어섰다.
 “크크크, 정말 끝내주는 계집이군, 죽이기 아까울 정도야. 좋아서 엉덩이 흔드는 것 하며······. 후후.”
 말을 마친 대막일귀(大漠一鬼)는 방금 자신의 정욕을 푼 여인을 칼로 베어 버렸다.
 “아악!”
 여인은 일귀가 휘두른 단칼에 비명을 지르면서 죽고 말았다. 그러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던 다른 여인이 소리쳤다.
 “이럴 수가! 더러운 놈들, 시키는 대로 모두 했는데··· 너희는 인간이 아니다.”
 대막일귀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시끄럽다. 사막에서의 법은 바로 우리 대막삼귀다.”
 말을 마친 일귀는 다시 한번 칼을 번뜩였다.
 “아아악!”
 그녀의 비명과 함께 까마귀 한마리가 놀라서 날아올랐다.
 까악! 까악!
 피냄새를 맡고 모여든 사막의 까마귀들이 시체 주위를 돌고 있었다. 그런 까마귀들에게 화답이라도 하는 듯 이귀, 삼귀 역시 주저없이 손을 번뜩였다. 두 사람도 자신의 욕정을 푼 여인을 가차없이 죽이고 만 것이다.
 “으아악!”
 “아아악!”
 단발마의 비명에 아랑곳하지 않고 이귀가 말했다.
 “카카카. 형님. 오늘처럼 재수있는 날은 처음이오. 정말로 사막에 여자를 데려오는 멍청이가 있었다니.”
 삼귀 역시 혹시라도 살아있을지 몰라 죽어 나자빠진 시체를 발로 툭툭 건드리면서 말했다.
 “그래요. 형님들, 여자가 없었다면 목숨만은 살려주었을텐데. 멍청한 것들!”
 삼귀의 말에 일귀는 미소를 지었다.
 “상관없다. 죽은 놈이 실력이 부족한 것이지. 흐흐, 정말로 오늘은 재수가 좋구나, 좋아!”
 그 날은 그들이 가장 재수 좋은 날이다.
 사막을 가로질러 두 사람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누구지?”
 일귀는 자신들을 향해서 오는 두 사람을 보고서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이런 외진 곳에 나타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경계심을 가져야만 한다. 하지만 일귀는 자신의 무술을 믿었기에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사막을 가로질러 온 두 사람은 이십대 초반의 청년과 사십대 중반의 염소 수염의 남자였다.
 두 사람이 쓰러진 시체들을 보고 있었다.
 이십대 초반의 젊은이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처참하군.”
 염소 수염의 중년인이 말했다.
 “모두 죽었군. 우리가 한발 늦었어.”
 그들의 모습을 보던 대막일귀는 허리에서 술을 집어내어 한모금 마셨다. 그러자 이귀, 삼귀는 병장기를 들고서 일귀 옆으로 다가왔다.
 갑자기 나타난 두 사람을 보면서 일귀가 말했다.
 “네놈들은 누구냐? 죽고 싶으면 모래 바닥에 대가리를 처박고 죽을 일이지. 이곳까지 와서 어르신의 손을 번거롭게 하느냐?”
 일귀는 자신있게 말했다. 그는 두 사람이 안중에도 없었다. 그 동안 그는 사막에서 단 한번도 패배하지 않았다. 물론 상인들과의 싸움에서였다.
 염소 수염이 이십대 청년을 보면서 말했다.
 “조장, 어떻게 할까?”
 염소 수염의 말에 청년은 한마디했다.
 “죽여!”
 사막의 율법은 피는 피로 갚는 법이다.
 염소수염은 고개를 끄떡였다. 염소수염의 중년인은 청년보다 스무살 정도 많아 보였다. 그렇지만 청년을 대하는 태도는 상당히 공손했다.
 이십대 청년은 짙은 눈썹에 넓은 이마, 그리고 검은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아름다운 얼굴이다.
 단지 한가지 흠이라면 오른쪽 눈썹에 상처가 나 있었다.
 청년이 낮게 다시 말했다.
 “놈들을 죽이라고!”
 염소 수염은 청년의 말에 고개를 끄떡이었다.
 “알겠어. 냉(冷) 조장.”
 염소 수염의 중년인은 고개를 돌려서 대막삼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죽어서 염라전에 가거든 염라수(炎羅手) 조인웅(趙仁雄)이 보내서 왔다고 전하여라.”
 조인웅의 말에 대막삼귀는 신음을 토하듯 소리쳤다.
 “염라수 조인웅?”
 “하북의 천태산을 근거지로 반란을 일으켰던 조인웅?”
 대막삼귀는 서로를 쳐다보면서 약간 놀란듯 했다.
 일귀가 냉랭하게 말했다.
 “흥! 거짓말! 믿을 수 없다!”
 다음 순간 일귀의 머리에는 한 단어가 떠올랐다.
 ― 사혈대(沙血隊)
 언제부터인지는 알 수 없다.
 사막에서 갑자기 나타나 닥치는 대로 비적들과 강도들을 죽이는 집단.
 그들은 모두 강호의 악당들로 구성되어 있다.
 일귀가 손을 흔들면서 말했다.
 “무기를 들어라”
 일귀가 손짓하자 이귀, 삼귀는 각기 자신들의 병기를 다잡았다. 그들은 서서히 조인웅을 포위하기 시작했다.
 일귀가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다시 말했다.
 “조인웅! 너도 사혈대에 들어갔느냐?”
 조인웅은 일귀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지 못한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사혈대?’
 그러나 다음 순간 그는 자신이 소속되어 있는 부대 이름이 사혈대라는 것을 깨달았다. 조인웅은 사막에 온 지 며칠 되지 않았다.
 사막을 지키기 위해서 파견된 사혈대(沙血隊).
 공식적인 문서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부대이다. 서역과의 안전한 교역로를 유지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용병인 것이다.
 그들은 거친 유목민과 사나운 비적들을 물리치고 서방과의 안전한 교역로를 지키기 위해서 만들어진 부대이다.
 사혈대의 구성원들은 모두 사형수들이나 강호의 악당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곳의 살수들은 백골(白骨)이 되기 전에는 사막을 빠져 나갈 수 없다. 절대로 죽기 전에는 사막을 벗어 날 수 없다.
 대막일귀가 다시 물었다.
 “조인웅 네가 왜 군문(軍門)에 들어갔느냐?”
 조인웅이 ‘흥’ 하고는 말했다.
 “곧 죽을 놈들이 알아서 뭐 해?”
 조인웅은 자신의 두 팔을 한번 흔들었다. 그러자 그의 두 손은 붉게 물들었다. 염라수 조인웅의 독문무공 지옥염라였다.
 일귀는 자신들을 무시하는 듯한 조인웅의 태도에 자신도 모르게 욕설을 퍼부었다.
 “빌어먹을 자식, 네놈이 아무리 지옥염라라 한들······.”
 세 귀신들은 냉(冷)이라 불리는 청년과 조인웅을 앞에 두고 병장기를 꼬나들고 있었다.
 석양의 태양빛을 받아 번쩍이는 무기는 반달 모양으로 구부러진 칼 한자루, 그리고 날카롭고 끝이 세 갈래로 갈라진 삼지창과 쇠사슬로 연결된 잘 갈린 도끼 두개였다.
 자신들의 무기를 다잡은 그들은 자신감에 차 있었다.
 대막일귀는 자신의 반월도를 휘두르면서 말했다.
 “크크크, 나의 반월도가 피를 부르는구나.”
 “이 삼지창으로 네놈의 목을 꾀어 주마.”
 “나의 쌍부(雙釜)는 무적이다.”
 그들은 모두 자신감에 차서 큰소리를 쳤다.
 그러나 그들의 가슴은 떨리고 있었다. 그들 앞에 서 있는 자는 사혈대 소속이다.
 사막의 통상을 지키기 위해서 파견된 용병들인 사혈대.
 그들의 악명은 사막의 바람을 타고 세상에 알려졌다.
 그 결과 각지에서 용맹하고 악랄한 무리들이 몰려들었다. 소문을 듣고서 강(强)함을 숭배해서, 또는 극한의 경지, 최악의 상황 속에서 자신을 시험하고 싶은 자들이 모여든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는 부대를 존속시키기 위해서 각처의 사형수들이나 도망자들을 과거를 불문하고 불러들이게 되었다.
 피와 살육을 즐기는 자들이 모여서 만든 사상 최강의 부대, 사혈대가 탄생한 것이다.
 대막삼귀는 사막을 십년 동안 누빈 비적들이다. 그들은 살인 강간, 강도를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행했다.
 하지만 자신들보다 강한 자들을 만나자 겁을 집어먹은 것이다. 그들 앞에는 사혈대의 살수(殺手)들이 서 있었다.
 일귀는 겁 주듯이 말했다.
 “우리들 뒤에는 광풍단이 있다.”
 사혈대의 토벌에서 살아남기 위해 조직된 비적들의 연합이 바로 광풍단이다. 이들은 잔인함과 악날함은 사혈대에 못지 않다. 이 말을 들은 조장이라 불린 청년이 낮게 말했다.
 “한 놈은 죽이지 마라.”
 조인웅은 냉(冷)의 말에 고개를 끄떡였다.
 “알았어, 조장. 놈들을 통해서 알아낼 것이 있다는 말이군.”
 광풍단은 사막의 비적들이 백골의 위협에 대응해서 연합한 조직이다. 그들을 모두 죽이는 것도 사혈대의 일이다.
 조인웅은 대막삼귀를 비웃으며 다시 말했다.
 “자! 헛소리 집어치우고 검을 뽑았으면 냉큼 덤벼라.”
 그는 비적들을 조금도 마음에 두지 않는 듯이 방자하게 말했다.
 삼귀는 일귀만큼 인내심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더 이상 조인웅의 도발을 참지 못했다.
 그가 소리쳤다.
 “죽어라.”
 삼귀가 소리치면서 수중의 도끼를 집어던졌다. 그러자 동시에 나머지 두 사람도 반월검과 삼지창을 휘둘렀다.
 “네놈이 아무리 강호를 휘저었다고 하나 사막에서는 우리가 더 강하다.”
 “사막은 우리들의 땅! 누구에게도 줄 수 없다.”
 그들 셋은 너무나 오랫동안 함께 적들과 싸워왔다. 그렇기 때문에 일귀의 공격에 이귀, 삼귀도 자동적으로 공격하게 된다.
 염라수 조인웅은 그들의 공격이 자신을 향해 올 때 크게 소리쳤다.
 “지옥염라(地獄閻羅) 혈풍귀수(血風鬼手)!”
 순간 조인웅의 두 손에서 붉게 물든 장력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의 독문무공인 지옥염라였다.
 대막삼귀의 움직임에도 일정한 호흡과 법식이 있었다. 하지만 조인웅의 두 손은 더욱 재빠르고 날카로웠다. 그들도 자신들의 목숨이 걸려 있었기 때문에 악착같이 무기를 휘둘렀다.
 조인웅의 붉게 물든 두 손은 그들의 무기 속에서 춤 추듯이 움직였다. 그의 몸은 마치 불타는 듯 했다.
 대막일귀는 똑똑히 볼 수가 있었다.
 조인웅의 눈동자가 갑자기 수축되면서 그의 양손이 번뜩이는 것을······.
 조인웅의 쌍수(雙手)가 번개처럼 움직였다.
 파파파팟.
 염라수 조인웅의 두 손이 대막삼귀의 가슴을 훑고 지나간 것은 순식간이다.
 “으아악!”
 “아악!”
 “허억! 강하다. 터무니없이!”
 그의 손이 스치는 곳에서는 살이 찢어지고 붉은 피가 좔좔 흘러내렸다. 대막이귀와 삼귀의 가슴에서는 내장들이 온통 쏟아져 내렸다.
 그들은 제자리에서 비틀거리면서 쓰러졌다. 쓰러지는 그들 위로 한마리의 까마귀가 날아올랐다.
 까악······.
 사막의 까마귀가 피냄새를 맡고 날아오를 때 상황은 끝나 있었다. 대막삼귀는 철저히 패배한 것이다.
 대막삼귀 중 두 사람은 이미 사막의 붉은 모래 위에 쓰러진 채 끊임없이 붉은 피를 흘리면서 죽었다.
 그들의 피로 인해 사막은 더욱 붉어지리라.
 다만 일귀만이 자신의 구부러진 검에 의지한 채 서 있었다.
 “헉헉, 이놈 내 형제들을 죽이······”
 일귀는 가슴에서 피를 흘리면서 조인웅을 노려보았다.
 “이대로 끝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우리 뒤에는 사막의 미친 바람. 광풍단(狂風團)이··· 헉, 사막의 강자가······”
 조인웅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마치 자신의 기술이 아주 휼륭하다는 듯한 표정이다.
 “네놈들이 사막의 지배자라고? 믿어지지 않는군!”
 염라수 조인웅은 천천히 걸어가며 다시 말했다. 그의 얼굴에는 잔인한 미소가 흘렀다.
 “한가지 묻자.”
 조인웅은 일귀의 오른손을 잡았다.
 “광풍단의 근거지는 어디냐?”
 일귀는 이미 가슴에 중상을 입고서 피를 계속 흘리고 있었다. 그는 반항하지 못했다.
 일귀는 부끄러움과 공포가 범벅이 된 채 말했다.
 “말할 것 같으냐? 관부(官部)의 하수인들에게··· 으악!”
 뿌드득!
 조인웅은 잔인하게 일귀의 오른팔을 부러트렸다. 그는 음흉하게 웃으며 다시 물었다.
 “나에게 걸린 것을 다행으로 여겨라. 사혈대에 아주 더러운 놈이 한놈 있는데 그놈에게 걸리면 뼈도 못 추린다. 나는 아직 초보자다.”
 다시 조인웅이 일귀의 왼팔을 잡았다. 그리고는 씩 웃더니 그대로 분질렀다.
 후두둑!
 “아아악!”
 뼈 부러지는 기분 나쁜 소리와 일귀의 비명이 황혼의 사막에 울려 퍼졌다.
 조인웅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그는 어떤 희열을 느끼는 것 같았다.
 “나는 이곳에 오기 전부터 이미 인간의 비명소리에 익숙해져 있다. 네가 얼마나 버티는지 보자.”
 염라수 조인웅의 손은 다시 일귀의 눈으로 향했다.
 조인웅은 절망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곱게 죽여 준다면 말하겠다.”
 조인웅은 그의 말에 상관하지 않고 그대로 찔렀다.
 그에게 자백이란 의미가 없었다. 그가 원하는 것은 바로 고통과 절망에 찬 비명이었다. 이곳 사혈대가 그를 그렇게 만든것이다.
 그때였다.
 무심하게 지켜보던 냉(冷)이 소리쳤다.
 “그만!”
 염라수 조인웅은 움찔 손을 멈추더니 냉을 바라보았다. 그는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이 말했다.
 “조장, 지금 뭐라고 했소?”
 그는 자신의 즐거움을 방해하는 냉을 못마땅하다는 듯이 노려보았다.
 그가 이곳 사혈대에서 만난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반응이 냉혈객의 입에서 나왔다.
 냉은 무심(無心)한 눈으로 한마디했다.
 “백골에서는 강한 자가 법이다. 나의 말을 듣지 못했나?”
 사혈대의 살수들은 자신들을 스스로 백골(白骨)이라 불렀다. 백골이 될 때까지 이곳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염라수 조인웅은 냉을 쳐다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수긍한다는 기색이 흘렀다.
 그의 말은 사실이다. 사혈대에서는 오직 강한 자가 법이다.
 조인웅은 고개를 돌리면서 말했다.
 “제길, 당신이 삼년간이나 이곳에서 살아남았으니 자연 나보다 강하겠지요.”
 사혈대에서는 하루에도 수십명이 죽어나간다. 적들과의 싸움, 사막의 유사와 모래 폭풍에의 희생, 그리고 동료들 간의 다툼, 이런 갖가지 악조건을 견디고 살아남는 자는 드물다.
 조인웅은 일귀를 버렸다. 그리고 뒤로 물러섰다.
 알귀의 눈에는 기이한 빛이 흘렀다.
 ‘저 놈은 다르다. 다른 살수들과는··· 이곳 놈들과는 다른 무엇이 있다. 저 자라면 나를 도와줄지도 모른다.’
 냉(冷)은 두 팔이 부러진 채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는 일귀를 쳐다보았다.
 일귀는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말했다.
 “우리들··· 헉 광풍단은 근거지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오. 사막을 떠돌면서 당신들을 노리고 있소.”
 냉(冷)이 실망한 듯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조인웅이 다시 잔인한 미소를 띄면서 조인웅에게 접근했다.
 그러자 일귀가 다시 급하게 말했다.
 “정말이오. 제발 나를 살려··· 한가지 알려 주겠소. 우리 광풍단이 중원무림에서 가장 강하다는 살인귀를 한명 사들였소. 그는 무적이오. 그의 이름은 무영검(無影劍)······.”
 대막일귀는 더 이상 말할 수 없었다. 조인웅의 오른손이 그의 심장을 찔렀기 때문이다. 더 이상 그에게 들을 것은 없다.
 일귀는 숨을 모아 겨우 한마디 남겼을 뿐이다.
 “사막(沙漠)을 당신들이 가질 수는 없어. 절대로, 절대로······.”
 냉이라 불리는 젊은이는 조인웅 뒤에서 무심하게 일귀의 죽음을 바라보고 있었다.
 냉(冷)은 그 말을 듣고 중얼거렸다.
 “사막은 당신들의 것도 아니지.”
 한줄기 바람이 두 사람을 스치고 지나갔다. 주변에는 붉은 모래가 피를 머금은 채 흩날리고 있었다. 바람은 이미 차가워져 있었다.
 대막삼귀의 시체를 바라보는 냉의 얼굴에는 알 수 없는 기운이 흐르고 있다. 그의 눈이 떨리고 있는 것이다.
 그는 무슨 주문을 외는 듯이 중얼거렸다.
 ‘냉혈객(冷血客)! 정신차려라. 이 따위 마음으로 무슨 복수를 한단 말인가?’
 그는 바람부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냉혈객은 피냄새를 맡고 싶지 않았다. 항상 보아오던 죽음이지만 마음이 아픈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냉혈객은 조용히 발길을 돌렸다. 이미 사막의 태양은 서쪽으로 기울고 차가운 바람만이 불어오고 있었다.
 조인웅은 사방에 흩어진 재물들을 아쉬운 듯이 한번 둘러보았다. 그 곳에는 대상들이 가지고 가던 갖가지 물건들이 널려있었다.
 사람 하나 정도 들어갈 정도의 상자도 있었다.
 조인웅이 중얼거렸다.
 ‘아깝긴 하지만 내가 찾고 있는 곳에는 이보다 만배의 재물이······.’
 그는 조용히 걷고 있는 냉혈객을 뒤따라 걸어갔다.
 조인웅이 냉혈객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봐, 조장! 당신은 언제 어떻게 이곳에 왔지? 조장도 나처럼 관부에 잡히어 사형이 집행되기 전에 이곳을 선택했나?”
 사혈대는 그렇게 이어오고 있었다.
 서역과의 교통의 요지로서 한번 교역에 만금을 얻을 수 있는 곳 사막.
 하지만 맨정신을 가진 자라면 누구라도 이곳에서 군생활을 하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온다고 하더라도 평범한 사람들은 하루도 버티지 못하고 탈출하거나 자살하고 말 것이다.
 냉혈객은 감정없이 내뱉었다.
 “이곳에서는 과거를 절대 묻지 않아! 그것이 사혈대(沙血隊)의 정신이자 백골(白骨)의 혼(魂)이다.”
 사막을 지키는 최강의 용병부대.
 사혈대에서 과거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가 비록 황제 본인이라 할지라도 이곳에 들어온 이상 그는 일개 살수일 뿐이다. 살아서는 사막을 벗어나지 못하는 백골(白骨)이다.
 냉혈객이라 불리는 사내는 이십대 초반의 나이에 매우 준수한 용모를 가진 사내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의 오른쪽 눈썹에는 검상(劍傷)이 나 있었다. 그리고 그의 등에는 거대한 도(刀)가 실려 있었다.
 조인웅은 냉혈객의 말을 듣고 중얼거렸다.
 “과거를 묻지 않는다?”
 염라수 조인웅이 다시 말했다. 그의 얼굴은 무언가 생각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조장, 당신은 누군가와 상당히 닮았어. 혹시 당신 무림을 지배했던 강북천도맹(江北天道盟) 출신이 아닌가?”
 냉혈객의 얼굴은 기이하게 일그러졌다. 그는 조인웅의 말이 무척 고통스러운 듯 했다.
 조인웅은 그의 그런 표정을 보고 확신하듯이 외쳤다.
 “당신은 신주제일검 아들 위진후(偉辰珝)가 틀림없지?”
 냉혈객은 걸음을 멈추었다.
 그는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말했다. 그의 음성은 메말라 있었다.
 “조인웅, 한가지 알려주지. 이곳에서 과거를 묻는다면 너는 절대로 살아남지 못해.”
 조인웅은 확신한다는 듯이 다시 말했다.
 “맞아. 난 천도맹주 위천강을 본 적이 있어. 당신······.”
 염라수 조인웅은 말을 멈추었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그의 눈앞에는 냉혈객의 도(刀)가 멈추어 있었다.
 엄청난 쾌도였다. 조인웅은 그의 손이 움직이는 것도 보지 못했다. 섬전쾌도(閃電快刀)다.
 조인웅의 얼굴은 흑색으로 변했다.
 냉혈객은 거칠게 내뱉었다.
 “경고는 한번 뿐이다!”
 코앞에 칼이 흔들거리니 담이 큰 조인웅도 움찔했다. 그는 자신의 눈앞의 칼을 보면서 약간 긴장한 듯이 말했다.
 “알았어. 이 칼이나 좀 치우라고.”
 냉혈객은 조용히 칼을 거두었다.
 아무도 그를 강북천도맹(江北天道盟)의 소주(小主)인, 위씨세가(偉氏世家)의 인중지룡(人中之龍) 위진후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죽기 직전에 외할머니인 정경황후의 결사적인 비호로 그는 살아남았다. 그리고 그는 두번 다시 중원으로 돌아오지 못하도록 이곳 지옥으로 보내진 것이다.
 위진후는 차갑게 말했다.
 “나를 부를 때는 반드시 냉혈객이라 불러주게.”
 낸혈객의 말에 조인웅은 고개를 끄떡였다.
 “알았소.”
 그가 다시 말했다.
 “조장 잠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조장도 흥미를 느낄거야.”
 조인웅은 나이도 많고 강호 경험도 풍부해서 냉혈객에게 공손하기는 했지만 은연중에 무시하는 기운도 있었다.
 냉혈객(冷血客)은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바람 부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피냄새를 맞고 싶지 않아서다.
 사막의 바람이 그의 얼굴을 스쳤다.
 그가 조인웅을 바라보며 말했다.
 “흥미없어, 그리고 빨리 돌아가지 않으면 귀찮은 놈들을 만나게 된다.”
 그는 조인웅의 말투에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이곳에서는 말투는 별 상관이 없었다.
 조인웅은 냉혈객이 멈추어 서자 자신도 멈추어 선 채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무슨 큰 비밀이라도 된다는 듯한 투로 입을 열었다. 이제는 아예 반말투였다.
 “이봐, 조장. 당신 천하를 살 만한 황금을 갖고 싶지 않나?”
 냉혈객은 그를 한심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아무말 없이 다시 걸었다.
 조인웅은 다시 급하게 냉혈객을 따라가면서 말했다.
 “난 당신이 마음에 들어. 우리 함께 일해 보지 않겠나?”
 냉혈객은 건조하게 말했다.
 “자네가 한달 동안만이라도 살아남는다면 생각해 보지.”
 그의 말에 조인웅의 얼굴에 약간의 두려움이 스쳐 흘렀다. 자신은 이곳에 온 지 사흘 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과 함께 온 자들은 이미 절반이 죽고 없었다.
 조인웅은 내뱉듯이 말했다. 약간 거칠었다.
 “제기랄, 그럼 조장은 정말로 여기에서 평생 백골이 될 때까지 살건가? 이곳이 그렇게 좋나?”
 냉혈객이 쓸쓸하게 말했다.
 “언젠가는 돌아가겠지.”
 그의 말에는 강한 의지가 들어 있었다.
 조인웅도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다.
 “당연하지. 반드시 돌아가야지.”
 그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번에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면서 다시 말했다.
 “이곳에 있는 자는 누구나 사막을 벗어나고 싶어하겠지.”
 조인웅의 말에 냉혈객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 진정으로 이곳에 있고 싶어서 있는 자도 있어. 피와 살육을 즐기고 싶어서······. 난 그런 자를 한명 알고 있지.”
 조인웅이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말했다.
 “누구인가? 이 황량한 변방의 사막에, 피와 살육만이 난무하는 이곳에 자원해서 있는 자가? 믿을 수 없어.”
 냉혈객은 대답하지 않고 걸어갔다. 그의 얼굴은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이미 해는 지고 칠흑 같은 어둠이 몰려들고 있었다.
 냉혈객이 낮게 중얼거렸다. 조인웅이 신경을 쓰지 않았다면 듣지 못할 정도의 목소리였다.
 “돌아가자. 상인들을 죽인 자를 모두 죽였으니 우리들은 다시 지옥으로 돌아가야지.”
 조인웅이 걸어가고 있는 냉혈객을 향해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말투는 마치 자신에게 말하는 투다.
 “당신처럼 강한 자가 왜 이곳에? 탈출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을텐데?”
 냉혈객이 대답하기 전에 어둠 속에서 희미한 웃음소리가 들려 왔다.
 곧이어 듣기 거북한 목소리가 들려 왔다.
 “크크크, 그 녀석이 아무리 강하다고 할지라도 우리에게 비하면 어린애 수준이지.”
 희미한 달빛을 받으면서 어둠 속에서 두 노인이 나타났다.
 아주 깡마른 두 노인이었다.
 한명은 대머리였고 다른 한명은 백발의 노인이다.
 두 노인의 눈빛은 밤 하늘의 별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마치 어둠 속에서 빛나는 야수의 눈빛 같았다.
 대머리 노인이 괴소를 띄우면서 말했다.
 “크크크, 너희 사혈대 놈들은 야밤에 돌아다닐 수가 없다는 것을 모르느냐?”
 조인웅은 불현듯 이곳에서 들은 한마디 말이 생각났다.
 “사귀대(沙鬼隊)!”
 조인웅이 소속해 있는 부대는 사혈대(沙血隊)다. 주로 강호의 흉악범이나 지원병을 위주로 편성된 최악의 부대다. 자연히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통제할 수 없다.
 그래서 그들의 탈출을 감시하기 위한 부대가 만들어졌다.
 그들이 바로 지옥의 도살자라 불리는 사귀대다. 이들의 목적은 오직 하나 사혈대를 감시하는 일이다.
 사귀대(沙鬼隊)가 바로 이들이다. 조인웅은 이곳에 온 지 얼마되지 않았지만 그들의 악명은 이미 들었다.
 조인웅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사귀대!”
 그의 외침에는 공포가 묻어 있었다. 그들이 얼마나 잔인한지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냉혈객이 무심하게 말했다.
 “조인웅, 돌아가자.”
 그는 별로 긴장하는 것 같지 않았다.
 그가 걸어가려고 하자 백발노인이 귀신처럼 움직여 냉혈객의 앞을 막으며 말했다.
 “안되지, 안돼. 오랜만의 즐거움인데······. 흐흐흐.”
 백발노인은 팔을 뻗어 손가락을 흔들면서 냉혈객의 앞에서 음흉한 웃음을 띠었다.
 그의 눈빛은 마치 쥐새끼를 가지고 노는 고양이의 눈빛이다.
 냉혈객은 자신의 앞을 막는 노인을 보며 거칠게 내뱉었다.
 “비켜!”
 노인은 웃었다. 아주 가소롭다는 표정이다.
 “켈켈켈! 웃기는군.”
 그러나 그것이 노인의 마지막 웃음이다.
 샤삭!
 냉혈객의 손이 움직이는 듯 했다. 그의 섬전쾌도가 작열한 것이다. 그대로 노인의 목을 베어버린 것이다.
 동시에 백발노인의 얼굴 표정이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 어렸다. 그 순간이다.
 쿵!
 그대로 그의 목이 모래 바닥에 떨어졌다. 그의 목에서는 붉은 피가 콸콸 흘러내려 모래 속으로 흘러들어갔다.
 그 피를 받아 사막의 모래는 더욱 붉어지리라.
 그 광경을 보고 있던 대머리 노인이 급히 쌍장을 후려쳤다.
 “이놈! 방심을 틈타서 공격하다니.”
 그 노인의 음랭한 쌍장이 냉혈객을 덮쳐왔다.
 냉혈객이 다시 몸을 비틀면서 소리쳤다.
 “비키라는 말이 안 들리나?”
 다시 그의 거대한 도는 허공을 갈랐다.
 냉혈객의 도풍(刀風)과 노인의 장풍(掌風)이 부딪혔다.
 펑!
 대머리 노인은 도풍을 이기지 못하고 뒤로 서너 걸음 물러섰다. 그는 입에서는 붉은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는 무언가 알아차렸다는 기색이다.
 대머리 노인이 소리쳤다.
 “네놈은 사혈대의 이인자 냉혈객!”
 그는 소리치면서 뒤로 주춤주춤 물러섰다. 대머리 노인은 어둠 속으로 한 발자국씩 멀어지면서 다시 말했다.
 그의 몸은 점점 어둠 속에 묻혀 보이지 않게 되었다.
 “아홉번씩이나 도망쳤던 냉혈객······.”
 그 목소리가 끝났을 때에는 대머리 노인은 어둠 속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그러나 냉혈객은 여전히 자신의 도를 그대로 잡고 있었다.
 조인웅 역시 어둠 속에서 스물스물 기어들어오는 존재를 느끼고 있었다.
 냉혈객이 나직이 말했다.
 “사귀대 놈들은 열명이 한 조(組)야. 아직 여덟 놈이 남아 있어.”
 조인웅은 전신에서 땀이 흘러내렸다. 강호에서 무서울 것 없었던 지옥염라가 공포를 느낀 것이다. 그는 자신과 냉혈객을 향해서 닥쳐오는 기분 나쁜 존재를 느끼면서 두 손 가득 지옥염라를 일으켰다. 그러자 그의 두 손이 불꽃에 휩싸였다.
 조인웅이 물었다.
 “놈들은 우리를 죽일 생각인가?”
 냉혈객은 어둠을 노려 보면서 말했다.
 “놈들에게 있어 우리 사혈대는 여흥의 존재일 뿐이다. 놈들은 우리를 죽일 구실만 찾고 있어.”
 조인웅은 양손 가득히 지옥염라를 일으키며 신음하듯이 말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말투다.
 “빌어먹을! 지옥 밑에 지옥이라더니······.”
 스스스슷.
 두 사람을 중심으로 검은 그림자들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림자 중 한명이 소리쳤다.
 “많이 늘었군, 냉혈객. 이년 사이에······”
 냉혈객이 사혈대에서 마지막으로 탈출한 것은 이년전이다.
 그는 전신의 내공을 끌어올리면서 차갑게 말했다.
 “이년 만이군.”
 그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떨림이 있었다.
 그것은 희열이다. 즐거움의 감정이 묻어나오고 있다.
 스스스슷.
 기분나쁜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아마도 모래에 스치는 옷자락 소리인 듯 했다.
 다시 어둠 속에서 음침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는 왼쪽 눈에 상처가 나고 싶나?”
 그 말을 듣는 순간 냉혈객의 오른쪽 눈썹의 상처가 꿈틀했다.
 과거의 원한이 그의 뇌리를 스쳤다. 그는 참지 못하고 자신의 도를 휘둘렀다.
 그의 도가 모래 바닥을 내리쳤다.
 퍽!
 동시에 냉혈객의 우렁찬 함성이 들려왔다.
 “유성천지양단(流星天地兩斷)!”
 그의 몸이 흐르는 별(流星)처럼 움직여 적을 공격했다.
 어둠 속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조심해라. 놈의 도법은 무섭다!”
 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누군가의 비명이 들려왔다.
 “으악!”
 동시에 어둠 속에서 그림자들이 냉혈객과 조인웅을 덮쳐왔다. 그들은 일제히 소리치면서 장풍을 휘둘렀다.
 “아홉째가 당했다. 놈들을 죽여라.”
 “냉혈객은 강하다. 조심해라.”
 그들이 내쏘는 음랭한 장풍이 추운 사막을 더욱 차갑게 만들었다. 사방에서 사귀대의 도살자들이 거칠게 공격해 왔다.
 동시에 조인웅은 쌍장을 후려치고 냉혈객 역시 도를 휘둘렀다. 두 사람이 소리쳤다.
 “화염귀수(火焰鬼手)! 그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다.”
 “혜성대해봉천(慧星大海鳳天)!”
 그들의 외침에는 아득한 심연에 남아있는 두려움을 떨치려는 의도가 숨어 있었다.
 누구라도 목숨을 걸고 싸울 때는 두려움을 느낄 것이다.
 도살자들의 음랭한 장풍과 냉혈객의 도풍이 부딪히자 어마어마한 굉음이 사막의 밤을 흔들었다.
 콰콰쾅!
 냉혈객과 조인웅 주위에는 사막의 붉은 모래들이 소용돌이치면서 휘날려 올라갔다.
 휘이이잉!
 한줄기 밤바람이 사막을 스치고 지나가자 별빛 속에 두 사람의 모습이 들어왔다.
 조인웅은 중상을 입은 듯 연신 입에서 붉은 피를 쏟아내고 있었다. 냉혈객도 상의가 거의 갈가리 찢기어 나갔다.
 그의 상체는 흉터로 인해서 보기 민망할 정도였다.
 어둠 속에서 음침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냉혈객! 출신을 속이기 위해서 도(刀)를 사용해 검법(劍法)을 펼치는 것은 여전하군.”
 더 이상 말이 들려오지 않았다.
 조인웅과 냉혈객은 등을 기댄 채 정신을 집중했다.
 스스스슷.
 그들 귀에는 다시 사막의 모래를 스치는 발자국 소리가 들려 왔다.
 정말 기분 나쁜 소리였다. 더구나 사귀대의 도살자들의 모습은 볼 수가 없었다.
 두 사람만 적들에게 노출된 것이다.
 어둠 속에서의 싸움에 익숙하지 않은 듯 조인웅이 자신의 손에서 불꽃을 일으켰다.
 그가 소리쳤다.
 “화염귀수(火焰鬼手). 지옥의 불꽃이다.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다.”
 조인웅의 양손에서 뿜어지는 화염이 그대로 어둠 속으로 쏘아졌다.
 그러자 어둠 속에서 냉혈객과 조인웅을 노리는 칠인(七人)의 도살자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들의 모습을 본 냉혈객은 자신의 도를 휘두르면서 칠인을 향해서 소리쳤다.
 “용성거룡운해(勇星巨龍雲海)!”
 냉혈객의 몸은 마치 거대한 룡이 구름을 헤집듯이 날아올랐다. 그는 허공에서 자신의 도를 휘둘렀다.
 파파팟.
 연속해서 펼쳐지는 냉혈객의 도풍은 칠인을 향해서 쏘아졌다.
 그 도풍에 놀란 칠인은 제각기 소리치면서 뛰어 올랐다.
 “냉혈객은 이년전의 냉혈객이 아니다. 피해라!”
 “이 두놈은 강하다! 조심해라!”
 냉혈객은 계속해서 도살자들을 향해서 달려가면서 소리쳤다. 그의 거대한 도가 허공을 갈랐다.
 “낙성건곤일척(落星乾坤一尺)!”
 도살자중 한명이 냉혈객의 도풍을 감당하지 못하고 허공으로 날아 올랐다.
 “협공하라! 냉혈객을 협공해!”
 도살자들의 급박한 음성 속에 냉혈객의 도는 다시 번뜩였다. 그의 도는 마치 검처럼 재빠르게 움직였다.
 꽈과광!
 엄청난 굉음과 함께 다시 사막은 어둠 속에 잠겼다.
 조인웅의 손에서 지옥염라의 불꽃이 사라졌다. 조인웅은 자신의 손에서 피어난 불꽃이 적에게 자신들의 위치를 노출시킨다는 것을 깨달았다.
 조인웅이 약간 힘이 들어간 목소리로 말했다.
 “이놈들아, 이래뵈도 강호에서 적수가 없었던 나다. 녹림제왕이라 불리던 조인웅이 바로 나다. 이놈들아!”
 그는 약간의 자신감을 가진 듯 했다. 소문보다는 사귀대의 도살자들이 약했다.
 아니, 냉혈객과 조인웅이 강했는지도 모른다.
 다시 죽음 같은 정적이 흘렀다. 사방이 조용했다.
 사귀대의 도살자들은 아무런 말이 없다.
 냉혈객이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아! 아직도 부족하다. 아버님은 낙성검법으로 무림을 수십 년간 지배했는데··· 부끄럽구나. 검법의 진의를 깨우치지 못해 나는 한갓 흉내를 낼 뿐이구나.”
 그가 한(恨)스럽게 중얼거렸다.
 다시 두 사람은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이제 더 이상 그들의 신경을 자극하던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이때 멀리서 희미하게 도살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과연 사혈대의 이인자답군.”
 어둠 속에서 들리는 목소리인지라 그들이 얼마나 중상을 입었는지 또한 얼마나 죽었는지 알 수 없었다.
 정말 기분 나쁜 목소리다. 발가벗은 자신을 엿보이는 듯한 기분이다.
 다시 그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는 조금더 먼 거리였다. 그들은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냉혈객! 다음에 만나면 너는 절대 살아남지 못한다. 그리고 너희들은 절대로 사막을 떠나지 못해.”
 조인웅은 사귀대의 도살자들이 물러간 것 같자 냉혈객을 바라보았다. 그의 뇌리에는 의문이 떠올랐다.
 ‘사귀대보다 냉혈객이 더 강할지도··· 그런데 왜?’
 다시 조인웅은 냉혈객의 상체(上體)를 바라보았다. 갈가리 찢어진 옷 사이로 어마어마한 흉터들이 보였다.
 이때 어둠 저 멀리에서 다시 음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희들은 절대로 사막을 떠나지······.”
 마치 저주에 찬 유령의 목소리 같았다.
 조인웅은 사귀대의 도살자들이 도망친 것을 깨달았다. 그는 냉혈객을 바라보며 말했다.
 “굉장한 상처들이군.”
 그는 씁쓸하게 말했다.
 “놈들에게 당한 고문의 흉터야.”
 그의 눈에는 원한에 찬 분노의 기운이 흘러 넘쳤다. 냉혈객의 눈은 불타오르고 있었다.
 조인웅이 의아해서 다시 말했다.
 “당신처럼 강한 자가 저들에게 사로잡혔다고? 저들도 강하지만 당신의 실력이라면 충분히······”
 냉혈객은 고통스럽게 내뱉았다.
 “이년전에는 저들을 상대할 실력이 되지 못했지.”
 조인웅은 그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이곳에서는 무공도 가르쳐 준단 말이야?”
 냉혈객은 그의 말에 어이없다는 표정이다. 그는 조소 섞인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니, 이곳에서는 자신만이 자신을 돌볼 수 있지.”
 그의 목소리에는 고독(孤獨)이 스며 있었다.
 조인웅이 다시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떻게 이곳에서 그런 무공을 익혔단 말인가? 설마 당신이······.”
 조인웅은 순간적으로 실수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냉혈객 위진후는 신주제일검 위천강의 자식이다. 당연히 낙성십이검법을 사용할 줄 알 것이다. 하지만 어린 그가 그 검법의 진의는 깨우치지 못했을 것이다.
 냉혈객은 조용히 대답했다.
 그런데 그 목소리에는 귀기가 서려 있어 듣는 사람이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극한에 몰려 본 사람만이 진정한 자신의 능력을 알 수 있지. 이년 간 나의 실력은 나 자신도 놀랄 정도로 늘었지.”
 조인웅은 고개를 끄떡였다.
 위진후가 실전을 통해 낙성검법을 더욱 발전시킨 것이다. 아무리 고강한 무공도 배운지 얼마되지 않는다면 하찮은 무공을 능숙히 수련한 것보다 못하다.
 조인웅은 다시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정도의 실력이 붙은 지금 왜 도망치지 않는단 말인가? 왜 자신에게 고문을 가한 놈들에게 복수하지 않는단 말인가?
 그는 다시 물을 수 밖에 없었다.
 “왜, 당신은 도망치지 않소?”
 냉혈객은 고통스럽게 내뱉었다.
 “나의 몸에는······.”
 그의 눈에는 어떤 한(限)이 서려 있는 것만 같았다.
 그가 신음하듯이 내뱉었다.
 “고독(蠱毒)!”
 고독은 운남성에서 나는 만고의 극독물이다.
 고독은 동물의 뇌 속에서 서식하는 뇌충(腦蟲)으로 암수 한쌍이 있는데 각기 뇌 속에서 생활한다. 두 마리는 삼백리 이상 떨어지면 즉시 발작을 해서 뇌수를 파먹는다.
 고독은 원래에 운남의 묘족(苗族)의 연인들이 결혼을 할 때 생사(生死)를 같이 하려고 주입하던 것이다. 만일 두 사람 중 한명이 죽으면 나머지도 자연 죽는 것이다. 자연 두 사람은 평생 동안 같이 살 수 밖에 없다. 묘족이 중원과 달리 일부일처제인 것도 이 풍습 때문이다.
 조인웅은 신음을 내뱉었다.
 “음, 그랬군. 당신이 그토록 실력을 키우고도 탈출하지 못하는 이유가······.”
 그는 냉혈객을 따라 걸으며 다시 말했다. 마치 냉혈객을 위로하는 듯한 말투였다.
 “걱정하지 마시오. 기회란 항상 있는 법이니까.”
 냉혈객이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돌려서 사막을 걸어갔다.
 그렇지만 마음 속으로 한(恨)스럽게 중얼거렸다.
 ‘항상 있는 것이 기회지만 기다리면 끝내 오지 않는 것도 그 기회라는 것이네.’
 밤바람은 더욱 차가웠다.
 조인웅과 함께 걸어가는 냉혈객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내가 고독에서 풀려난다면 죽일 놈이 한놈 있지. 또 이 사막을 벗어난다면 나를 이곳에 보낸 놈들을 한놈도 남김없이 죽일 것이다.”
 말하는 그의 눈에는 무섭도록 흉흉한 살기가 뻗어 나왔다. 밤 중에 산 중턱에서 빛나는 맹호의 눈빛이다. 인광(燐光)이다. 주인없는 무덤가에서 빛나는 푸른 불빛이다.
 그의 눈에서 뿜어지는 살기(殺氣)를 보며 조인웅이 생각했다.
 ‘헉! 저자의 무공은 무림십대고수(武林十大高手)와 맞먹는다. 그가 고독에서 해독되고 그가 중원으로 돌아가는 날 중원무림은 피로 잠길 것이다. 그때가 되면 오히려 이 사막이 안전할 것이다.’
 수십년 간 사파의 고수로 무림을 휘어잡은 조인웅은 냉혈객의 무공이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무림십대고수란 구대문파의 장문인과 강남무림맹의 맹주 강남대협 서문형욱을 일컫는 말이다.
 서문형욱은 강남무림맹을 이끌고 위천강의 천하통일에 수 십년 항쟁한 강남의 큰별이다. 하지만 끝내는 굴복하고 자신의 딸 서문비연을 위천강의 아들 위진후와 결혼시켰다.
 조인웅이 중얼거렸다.
 ‘위진후, 저자는 결혼식 날 가문이 멸망했다. 무림을 다스리던 강북천도맹은 물론이고 조부인 대승상 충정공과 위씨가문의 구족이 멸했다. 그의 원한은 하늘보다 높고 땅보다 깊을 것이다.’
 강호십대고수는 신주제일검 위천강이 죽은 뒤에 서문형욱이 십대고수의 반열에 올랐다. 그들 열명이 강호에서 가장 강한 열명이다. 많은 정파와 사파의 고수와 거마가 있었지만 그들 열명의 고수를 당하지는 못한다.
 냉혈객의 적(敵)은 무림에서 가장 강한 열명의 고수이다.
 조인웅은 결코 상상하지 못했다.
 냉혈객의 거친 살심(殺心)이 그들 무림십대고수를 향하고 있다는 것을······.
 끝내는 그들 모두를 패배시키고 최강자를 죽여 버린다는 사실을······.
 조인웅은 보고 있었다.
 중원무림을 피로 잠기게 하고 끝내는 명정권마저 뒤집어엎어 버릴 강한 남자의 전설과 신화를, 차가운 피를 가진 고독한 남자가 걸어갈 길을, 그리고 그와 겨루게 될 수많은 강자(强者)들을······.
 사랑, 우정, 명예··· 모든 것을 버리고 복수를 위해 달려가는 거친 사내의 모습을······.
 
 
 3장 사막의 용문객잔.
 
 
 사막의 밤바람은 매서웠다.
 태양이 떠 있을 때에는 뜨거운 열기에 사람이 견딜 수 없을 정도다. 그렇지만 해가 지면 살을 에는 듯한 추위가 닥쳐온다. 이곳은 바로 타클라마칸 사막이다.
 냉혈객과 조인웅은 발걸음을 재촉했다.
 두 사람의 눈에는 멀리 희미한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곳은 바로 사혈대의 근거지다.
 모래 언덕 위에 지어진 낡은 목조 건물이다. 지하 일층, 지상 이층 건물이다. 이미 삼십년은 더 된 낡은 건물이다. 곳곳에 보수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이곳의 살수들은 이 건물을 가리켜 용문객잔이라 부른다. 이 건물은 도저히 객잔이라고 부를 수 없었다. 하지만 이곳 살수들은 북경제일루라 불리는 용문루(龍門樓)를 본떠 이곳을 용문객잔이라 부른다.
 냉혈객은 용문객잔의 불빛을 보면서 걸음을 재촉했다.
 쾅!
 그가 거칠게 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러자 누군가 소리쳤다.
 “빌어먹을 자식, 빨리 문 닫지 못해? 모래가 들어온단 말이야! 죽고 싶으냐?”
 소리친 사내는 문을 걷어찬 자가 냉혈객이라는 것을 알고는 급히 말했다. 약간 미안하다는 말투다.
 “어? 냉혈객이군. 미안해.”
 짙은 눈썹과 얼굴 곳곳에 수염이 가득한 삼십대 중반의 건장한 사내였다. 그는 광혈마도(狂血魔刀)였다.
 물론 본명(本名)이 아니었다.
 산발한 머리, 퀭한 눈, 도저히 정상인이라고 볼 수 없는 형상이다. 아무도 그가 이곳 사혈대의 일인자(一人者)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광혈마도가 고개를 돌리고 다시 자기 탁자에 앉아 있는 수하에게 말했다.
 “자, 하던 이야기나 하자구.”
 냉혈객은 다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의 눈에는 매서운 사막의 모래 바람을 헤치고 살아남은 살수(殺手)들이 보였다.
 가장 먼저 냉혈객의 눈에는 환영(幻影) 임택(林澤)이 들어왔다.
 그는 항상 자신의 장검을 품에서 놓지 않았다. 그가 눈 한번 깜짝일 때마다 수백 가지 술수를 생각한다고 한다.
 임택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서 말했다.
 “아이고, 이조(二組)의 냉조장님 오셨습니까?”
 냉혈객은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그는 다른 살수들을 한번 훑어보았다.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사막에서 살아가는 살수들이 곳곳에 흩어진 채 오늘도 살아남은 것을 자축하고 있었다.
 그들을 바라보며 냉혈객이 중얼거렸다.
 ‘오늘도 여전히 몇놈은 보이지 안는군.’
 그의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은 죽어 백골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사막의 바람이 모래를 흩날릴 때 그들의 백골이 태양빛을 받아 울부짖을 것이다.
 이때였다.
 환영(幻影) 임택이 특유의 간사스러운 웃음을 띄우며 냉혈객에게 다가왔다.
 “헤헤, 조장님 이쪽으로 오십시오. 저쪽이 아닙니다. 우리 사혈대에 좋은 점이 하나 있다면 술을 마음껏 마시는 것 아니겠습니까? 요쪽에 앉으십시요.”
 그가 헤죽거리자 냉혈객은 얼굴을 찌푸렸다.
 그는 왠지 임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무슨 일이든지 계산하는 성격이 싫었다. 임택의 머리는 잠시도 쉬지 않고 움직였다.
 냉혈객은 아무 말 없이 이층으로 향했다.
 임택이 말했다.
 “조장님, 어디 가십니까? 그 쪽이 아닙니다.”
 그는 굽실거리며 냉혈객 곁으로 다가왔다.
 냉혈객 옆에는 조인웅이 서 있었다. 그는 임택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얼굴 가득히 비웃음을 띠었다.
 ‘병신 같은 놈이군.’
 그의 생각을 알지 못하는 임택은 냉혈객을 쫓아가며 말했다.
 “헤헤, 조장이 왜 보고를 합니까?”
 임택은 다시 조인웅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쪽, 멍청한 놈에게 시키고 술이나 한잔 드십시오.”
 염라수 조인웅은 임택의 말에 화가 치솟았다.
 ‘빌어먹을! 저 따위 간신배같은 녀석까지 나를 무시하는구나. 나도 한때는 수만의 부하를 거느렸는데······.’
 하지만 자신은 아직 이곳에 온 지 얼마 안된 초보자였다. 그렇기에 성질을 죽일 수 밖에 없었다. 또한 놀라운 무공을 지닌 냉혈객이 옆에 있었기에 화를 터트리지 않았다.
 그러한 사정을 모르는 임택은 다시 냉혈객에게 말했다.
 “헤헤, 조장님이 들어오니 우리 이조(二組)도 이젠 일조(一組)의 눈치를 보지 않습니다 그려, 헤헤.”
 사혈대(沙血隊)는 일조와 이조로 나뉘어 있다.
 일조(一組)의 조장은 광혈마도이고 이조(二組)의 조장은 냉혈객이다. 두 조의 인원수는 각기 삼십명이 정원이다. 그러나 하루에도 몇명씩 죽어 나갔기 때문에 인원수는 수시로 변했다.
 냉혈객은 임택에게 말했다.
 “광견(狂犬)에게 할말이 있다.”
 광견 그의 본명은 정욱(鄭旭)이다. 그리고 그는 이곳의 책임자였다.
 하지만 사혈대의 살수들은 이곳의 책임자 정욱을 광견이라 불렀다. 그가 임무를 부여할 때마다 미친개처럼 입에서 게거품을 물었기 때문이다.
 임택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말했다.
 “광견을 만나러? 술과 음식이라면 저희가 가져오겠습니다.”
 광견(狂犬) 정욱은 무림인이 아니었다.
 하지만 명목상으로는 그가 이곳 사혈대의 책임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곳에 지원되는 음식과 음료 등은 모두 그의 결제를 받아야 사용할 수 있다. 더구나 그가 없으면 이곳에는 더 이상 보급품이 들어오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모두들 그를 무시하지 못했다.
 냉혈객이 임택을 무시하고 이층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임택은 다급하게 냉혈객을 불렀다.
 “조장! 조장!”
 냉혈객은 임택의 말을 못 들은 듯 그대로 계단을 올라갔다.
 그때였다.
 임택의 어깨를 잡는 손이 있었다.
 “이봐, 조금 전에 나를 ‘멍청한 놈’이라고 했나? 나랑 ‘저쪽’에 가서 이야기 좀 할까?”
 임택의 어깨를 잡은 자는 염라수 조인웅이다. 그는 얼굴에 험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에게 어깨를 잡힌 임택은 고개를 돌렸다. 그의 얼굴에는 황당하다는 눈빛이 흘렀다.
 환영(幻影) 임택이 말했다.
 “뭐야?”
 조인웅은 자기를 무시하는 임택에게 매운맛을 보여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놈이? 너, 내가 누군지 알고 있느냐?”
 임택 역시 기가 꺾이지 않기 위해서 고개를 뻣뻣이 든 채 말했다.
 “야? 늙은이, 죽고 싶나?”
 이제까지 냉혈객에게 말하던 비굴한 모습이 아니다. 임택은 강한 자에게는 약하고 약한 자에게는 아주 강한 사람이다.
 조인웅이 그의 의외의 말에 움찔하면서 말했다.
 “허허, 이놈이 정말로 나를 무시하네.”
 조인웅은 말하면서 천천히 임택을 살펴 보았다.
 그는 서른 다섯 정도의 나이였다. 그리고 얼굴에는 검은 점이 있었다. 특이한 것은 이마의 검은 점에는 털이 세 개 나 있었다.
 임택은 조인웅의 손을 뿌리치면서 말했다.
 “너도 죽고 싶으냐? 네놈과 함께 들어온 놈들 가운데 이미 절반이 죽었어.”
 조인웅이 이곳 사혈대에 처음 들어올 때 그와 함께 온 동기는 모두 열명이다. 그들 모두 사형수였다. 그리고 모두 흑도무림의 고수였다. 하지만 그 중 절반은 이미 사막의 백골이 되어 버렸다.
 조인웅은 싸늘하게 임택을 바라보며 말했다.
 “흥, 나는 그 따위 약한 놈들과는 달라.”
 조인웅의 말에 임택은 허세를 부리면서 이죽거렸다.
 “요번에 들어온 놈들은 모두 버릇이 없군.”
 이 말을 들은 조인웅은 두 손을 등 뒤로 가져갔다. 자신의 지옥염라를 임택이 알아보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조인웅이 입을 열었다.
 “그래? 너는 얼마나 버릇이 있는지 보고 싶군.”
 임택은 조인웅의 말에 여전히 기세좋게 말했다.
 “흥, 네놈도 죽고 싶은가 보지?”
 이미 등 뒤로 감추어진 조인웅의 두 손은 붉게 변해 있었다. 그는 독문무공인 지옥염라를 사용하려는 것이다.
 조인웅이 낮게 말했다.
 “이곳에서는 강한 자가 법이라면서?”
 이 말에 임택이 움찔했다. 그것은 사혈대의 무언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오직 강한 자가 법이다.
 염라수 조인웅이 나직이 말했다.
 “나가자. 한번 겨루어 보자.”
 임택은 눈을 한번 움찔했다. 그의 머리는 재빠르게 돌고 있었다. 그는 재빨리 생각했다.
 ‘이놈은 만만치 않은 놈이다. 다른 놈들과는 달라. 혹이라도 내가 지게 된다면 무슨 개망신이냐? 음, 이놈을 상대하기엔 아무래도 내가 불리해.’
 임택의 머리는 재빠르게 회전했다.
 그리고는 큰소리로 소리쳤다.
 “야? 이놈 봐라! 겁대가리 없는 놈일세!”
 그의 목소리는 매우 컸다. 고의로 다른 사람에게 알리려고 소리치는 것이다.
 그러자 주위에서 술을 마시던 살수들이 모두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임택은 살수들이 자신을 주시하자 더욱 의기양양해서 소리쳤다.
 “야! 이 썩을 놈아, 네가 감히 나에게 덤벼? 이놈아! 똥파리도 서열이 있어. 이 자식아!”
 조인웅은 기가 찼다.
 자신의 성질 같아서는 한주먹으로 임택을 때려죽이고 싶었다.
 하지만 주위의 살수들이 모두 자신을 바라보자 조인웅은 움찔할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은 이곳에 온 지 얼마되지 않았다. 그들이 임택을 편들 것임은 틀림없다.
 이미 몇몇 살수들이 소리치고 있었다.
 “이번에 온 놈들은 모두 죽고 싶어 환장한 놈들 뿐이군.”
 “저런 놈은 혼쭐을 내야 해.”
 “건방진 놈,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건방지게··· 똥물도 파도가 있는 법이거늘!”
 무식한 살수들답게 말이 험했다. 여러 살수들이 일제히 곳곳에서 일어선 채 소리쳤다.
 그들이 하는 말에 임택은 더욱 기가 살아서 말했다.
 “야! 조인웅! 어디 덤벼 봐? 응? 쳐 보라고! 이 자식아.”
 염라수 조인웅은 울화가 치밀었다. 그의 손은 부르르 떨렸다.
 하지만 주위의 눈 때문에 임택을 때리지는 못하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우, 정말 열 받는군. 중원에 있을 때 나의 졸개보다도 못한 녀석에게 이런 조롱을 받다니······. 하지만 이놈을 한대 때렸다간 몰매 맞기 십상이지.’
 조인웅이 아무 말도 못하자 임택은 더욱 기세좋게 소리쳤다. 그는 아예 배를 내밀면서 조인웅에게 소리쳤다.
 “이 자식이 갑자기 꿀을 쳐먹었나? 아니면 병신육갑을 떠나? 쳐 보라니까! 응?”
 임택은 조인웅이 자신을 건드리지 못하자 더욱 기세등등하게 그를 밀어부쳤다. 한마디로 깐죽거렸다.
 이때였다.
 누군가 소리쳤다.
 “좋아!”
 조인웅과 임택이 순간적으로 소리나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는 일조(一組) 조장인 광혈마도였다.
 “그래, 재미있겠는데··· 어디 한번 싸워 봐라. 백골은 강한 자가 법이니까.”
 광혈마도는 탁자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는 그곳에 걸터앉으면서 다시 말했다.
 “야, 비켜서! 애들 싸울 자리 만들어 줘. 그리고!”
 광혈마도는 말을 마치고 술병을 탁자 위에 내리쳤다.
 “쿵!”
 그러자 놀랍게도 술병이 나무 탁자 위에 그대로 박혔다. 술병은 조금도 부서지지 않았다. 그대로 탁자 위에 절반 정도 박힌 것이다.
 광혈마도가 단호하게 다시 말했다.
 “누구든지 이 싸움에 간섭하면······.”
 광혈마도의 손이 자신의 목을 지나갔다.
 그 모습을 보고는 그곳에 있는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모두들 광혈마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입을 다물었다.
 순식간에 떠들썩했던 일층이 적막에 휩싸였다. 그들 중 누군가 중얼거렸다.
 “광혈마도는 이곳에서 가장 강하다. 그의 말은 곧 이곳의 법이다.”
 염라수 조인웅은 광혈마도를 흘깃 바라보았다.
 ‘저자가 이곳의 우두머리구나. 좋아, 이렇게 된 이상 저놈 임택을 꺾어서 나의 무공을 보여 주자. 그래야만 이곳에서 편하게 생활할 수 있다.’
 염라수 조인웅은 더 이상 두 손을 숨기지 않고 앞으로 드러냈다. 그의 손은 이미 붉게 물들어 있었다. 지옥염라였다.
 조인웅이 자신있게 말했다.
 “자. 임택! 무기를 들어라.”
 임택이 다급하게 말했다.
 “자, 잠깐!”
 그의 머리는 급하게 돌기 시작했다.
 ‘우, 광혈마도가 말한 이상 이놈과 싸워야 한다. 냉혈객이라도 있다면 몰라도 광혈마도를 상대할 자는 이곳에 없다. 그렇다면? 일단 시간을 벌자.’
 임택은 뒤로 재빠르게 물러나면서 소리쳤다.
 “좋다! 이놈, 감히 지옥혈마왕(地獄血魔王)이라 불리는 나에게 덤비다니. 겁이 없군! 마교(魔敎)의 비전절기인 마황아수라혈공(魔皇阿修羅血功)을 보여 주겠다.”
 조인웅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지옥혈마왕? 마황 뭐라고? 야, 이놈아, 지나가던 똥개가 웃겠다. 니놈 하는 꼴을 보니 칼잡을 줄도 모르는 것 같다.”
 임택의 머리는 재빠르게 구르기 시작했다.
 아마 이처럼 짧은 순간에 이렇게 많이 생각하는 사람은 임택 뿐일것이다.
 ‘우, 저놈의 불그죽죽한 손을 보니 싸울 맛이 뚝 떨어지는구나. 정면 승부는 도저히 안된다. 기습을 해야 한다.’
 임택을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하면서 겉으로는 더욱 위세당당하게 소리쳤다.
 “이놈아! 내가 한때는 무림천하를 지배하던 사람이다. 용이 개천에 떨어지면 미꾸라지가 덤빈다더니, 이걸 두고 하는 말이구나.”
 조인웅은 쉴새없이 주절거리는 임택을 보면서 어이가 없었다.
 그는 임택이 가소로웠지만 일단 그를 손봐주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에 그에게 접근했다.
 그의 손은 더욱 붉어졌다.
 조인웅에게 몰리어 거의 벽으로 접근한 임택이 갑자기 멈추어 섰다.
 그리고는 이층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 냉혈객 조장, 언제 내려왔어?”
 조인웅은 순간적으로 움찔해서 이층을 바라보았다.
 그때였다.
 임택은 항상 품에 품고 있는 장검을 번개처럼 뽑았다. 그리고는 소리쳤다.
 “죽어라!”
 염라수 조인웅은 강호 경험이 풍부했기 때문에 임택에게 속지 않았다. 이런 속임수는 강호에서 아주 흔한 수법이다.
 조인웅은 주저하지 않고 두 손을 휘둘렀다.
 그의 손에서 불꽃이 피어 올랐다.
 “혈풍귀수(血風鬼手)! 누구라도 피할 수 없다!”
 조인웅의 양 손바닥에서는 혈풍이 휘몰아치면서 임택에게 그대로 쏘아졌다.
 임택의 장검도 빨랐지만 조인웅의 두 손은 더욱 재빨랐다.
 조인웅의 두 손은 순식간에 임택의 손을 붙잡았다.
 찌찌직!
 “으윽!”
 순식간에 살 타는 냄새가 진동했다. 조인웅의 양손에 잡힌 임택의 팔목이 타들어가는 것이다.
 염라수 조인웅은 당당하게 말했다.
 “이놈, 내가 지금은 비록 이곳에 있지만 한때는 천하를 다투던 사람이다.”
 임택은 양 팔목이 타들어가면서도 머리를 재빨리 굴렸다.
 ‘우, 이놈의 무공이 보통이 아니다. 이대로는 당하고 만다.’
 임택은 위기의 순간에도 머리는 회전했다.
 그가 소리쳤다.
 “졌다! 이놈아! 그만 손을 놓아라.”
 조인웅은 임택을 죽일 마음은 없었다. 하지만 그의 말투가 아직 고분고분하지 않았기에 손에 다시 힘을 주었다.
 “아흑!”
 임택은 비명을 지르면서도 머리는 재빠르게 굴렸다.
 ‘빌어먹을 녀석, 두고 보자! 이 녀석과 광혈마도와 싸움을 시켜야겠다. 으윽··· 광혈마도에게 대항했다가 살아난 놈은 냉혈객 뿐이다. 광혈마도는 이놈의 무공에 호기심을 느낄 것이다. 으······.’
 팔목이 타들어가는 고통 속에서도 재빨리 머리를 굴린 임택은 급히 말했다.
 “졌소! 당신의 무공은 최고요. 제일이란 말이오.”
 이 말에 조인웅은 의기양양해서 말했다.
 “이놈, 그것을 이제야 알았느냐? 이제부터는 나를 알아 모셔라.”
 염라수 조인웅은 임택을 밀어 던졌다.
 죽일 수도 있었지만 이제부터 이곳에서 생활해야 하기 때문에 목숨만은 살려둔 것이다. 조직생활에서는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
 임택은 밀려나면서 다시 말했다.
 “당신은 최고요. 이곳의 일인자요.”
 조인웅은 더욱 의기양양해서 말했다.
 “하하하, 그것을 알고 있다니 너도······”
 슈웅!
 순간적으로 조인웅의 눈앞에 무언가 날아갔다. 조인웅은 깜짝 놀라 날아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광혈마도가 코를 후비고 있었다.
 ‘코딱지? 이럴수가!’
 조인웅은 깜짝 놀랐다. 그는 광혈마도의 무공 수준을 짐작하기 어려웠다.
 적엽비상(나뭇잎을 날려 상처를 입히다.)은 들어봤어도 ‘코딱지비상’은 생전 처음이다.
 광혈마도가 하품을 하면서 말했다.
 “내가 귀가 먹었나? 이봐, 너 방금 최고라고 했냐?”
 조인웅은 자신에게 코딱지를 던진 자가 광혈마도라는 것을 깨달았다.
 일조(一組)의 조장이자 이곳의 일인자 광혈마도(狂血魔刀).
 냉혈객이 가지고 다니는 거대한 패도는 광혈마도의 것이다. 그가 냉혈객과 겨루어 보고는 냉혈객의 검법에 탐복해서 준 것이다.
 염라수 조인웅은 약간 긴장했다.
 ‘제기랄, 냉혈객의 무공도 놀라울 지경인데··· 이 녀석은 더 강하겠지. 아직은 나의 모든 실력을 보여줄 때가 아니다.’
 조인웅은 약간 기가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에게 한 말이 아니오.”
 광혈마도는 어이없다는 듯이 크게 말했다.
 “당신? 허, 내참, 미치겠네.”
 그가 어이없어 하자 이 광경을 지켜보던 사혈대(沙血隊)의 살수(殺手)들이 웅성거렸다.
 “우, 또 한놈 죽는구나.”
 “감히 이곳에서 광혈마도의 비위를 건드리다니······.”
 그들의 웅성거리는 소리에 광혈마도는 벌떡 일어나서 주위를 둘러 보았다.
 그러자 다시 모두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다시 광혈마도는 등 뒤로 오른손을 뻗어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리고 누군지 확인도 하지 않고 말했다.
 “야, 너! 내가 누구지?”
 등 뒤에는 매섭게 생긴 삼십대 중반의 살수 한명이 있었다. 그렇지만 그는 광혈마도의 손이 자신을 가리키자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위대하고 위대하신 우리 백골들의 신이시며, 영웅 중의 영웅이시고 천하 제일 미남이신, 사혈대의 정신적 실질적 지도자이십니다.”
 광혈마도는 이 말을 듣고서 고개를 끄떡였다. 매우 즐거운 듯 했다.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좋아, 좋아. 야, 너!”
 그는 손가락으로 조인웅을 가리켰다. 그리고 다시 말했다.
 “너, 다시 한번 내가 누군지 말해 봐.”
 조인웅의 얼굴은 시뻘개졌다.
 광혈마도를 칭송하는 말이 역겨웠다. 더구나 그는 자기에게 그 말을 하라고 시키는 것이 아닌가?
 순간적으로 조인웅은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서 조용히 있었다.
 그러자 넘어졌던 임택이 일어나며 한마디했다.
 “헤헤, 조나리, 당신 무공도 만만치 않던데 한번 싸워 보지 그래? 혹시 알아? 당신이 이겨서 이곳의 일인자가 될지.”
 그의 말에 광혈마도가 즉시 그를 쳐다보았다. 눈빛이 매서웠다.
 그러자 임택은 넙죽 엎드리면서 소리쳤다.
 “아이고, 지존이시여! 저는 다만 이 버릇없는 놈이 제정신을 차리라는 뜻으로 한 말입니다.”
 광혈마도는 그가 머리를 조아리자 고개를 끄떡였다. 그러더니 다시 코를 후비면서 말했다.
 “야, 너! 조가! 내 말이 안 들려? 네 입으로 내가 누군지 말하라고! 글자 하나도 틀리지 말고. 뭔말인지 알겠지?”
 조인웅은 더 이상 광혈마도와의 싸움을 피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그의 두 손은 붉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의 독문 무공인 지옥염라였다.
 “나는 죽으면 죽었지, 그 따위 소리는 못하겠소.”
 광혈마도가 입을 딱 벌리면서 말했다.
 “허허, 영웅났군, 영웅났어.”
 그리고는 코를 후비던 손가락을 꺼내어 한번 퉁겼다.
 슈우우웅!
 염라수 조인웅은 자신을 향해서 무서운 속도로 날아오는 코딱지를 보았다.
 피하기는 너무 늦었다. 그는 두 손을 겹쳐서 막았다.
 “더러운··· 으악!”
 광혈마도의 코딱지는 그대로 염라수 조인웅의 두 손을 꿰뚫었다.
 조인웅이 놀라서 소리쳤다. 그의 말에는 공포가 흘렀다.
 “이럴수가? 나의 손은 도검불침(刀劍不侵)인데!”
 그의 양손은 지옥염라를 익혔기 때문에 강철보다도 더 단단했다. 그런 손이 코딱지를 맞고 구멍이 난 것이다.
 그의 손에서는 피가 흘러 내렸다.
 광혈마도는 담담하게 말했다.
 “제법하는군, 손만 뚫고 몸통은 뚫지 않았으니. 허나 그것은 맛보기다.”
 그는 이번에는 탁자에 놓인 땅콩을 연달아서 던졌다. 아니 손가락으로 퉁겼다.
 휘익!
 조인웅은 자신을 향해서 날아오는 땅콩을 피하기 위해서 몸을 움직였다.
 광혈마도가 던진 땅콩이 바닥에 떨어지자 굉음이 들려왔다.
 펑! 펑! 펑!
 굉음과 함께 나무 바닥이 폭발하면서 부서졌다.
 조인웅은 경악하며 더욱 몸을 날렸다. 그는 마치 춤추는 듯 했다.
 그 모습을 본 광혈마도가 웃으면서 말했다.
 “껄껄! 죽이는 것보다 춤추는 것 보는 게 더 재미있군.”
 광혈마도는 죽일 생각은 하지 않고 연달아 땅콩을 날려 조인웅을 이리저리 피하도록 만들었다.
 몇번을 그렇게 땅콩을 던진 광혈마도는 더 이상 던질 땅콩이 떨어지자 말했다.
 “이런 제기랄, 다시 코딱지를 사용해야 하잖아.”
 그는 손가락을 콧구멍에 넣은 채 말했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조인웅이 급히 말했다.
 “잠깐, 그만하시오.”
 염라수 조인웅이 생각했다.
 ‘저 놈의 무공은 정체불명의 괴공이다. 지금은 일단 싸우지 않는 것이 상책일 것 같다. 순간의 치욕을 참지 못한다면 어찌 장부라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조인웅이 급하게 소리쳤다.
 “항복이오. 당신이 시키는 대로 할테니 그만두시오.”
 이층.
 사혈대(沙血隊)의 책임자 정욱의 방.
 정욱(鄭旭). 사막을 지키는 사혈대를 책임지는 관부의 사람이다. 그의 정식 관명은 사수교위(沙守驕衛)다.
 그러나 이곳 사혈대의 살수들은 모두 그를 광견이라 부르고 있다.
 그는 중년의 나이에 날카로운 눈매를 가지고 있었다.
 “제기랄, 스무살에 장군을 시켜준다고 해서 앞뒤 살펴 보지도 않고 이곳으로 왔는데··· 이십년간이나······.”
 정욱은 욕설을 내뱉었다.
 그는 원래 구문 제독 휘하의 일개 사병이었다. 그는 당시 군량미를 지키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도박을 좋아하는 그는 군량미를 빼돌려서 사복을 채웠다. 그러던 중 그것이 발각되어 처형당할 처지가 된 것이다.
 정욱은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빌어먹을! 그때 차라리 죽는건데. 이 생지옥에 오게 될 줄은······. 여기 있는 놈들은 병사도 아냐. 나를 알기를 개밥의 도토리처럼 여긴다고.”
 정욱은 탁자 위의 술병을 들고서 한모금 마셨다. 얼굴에는 서서히 미소가 흘렀다.
 “흐흐, 하지만 이제 이 지옥은 안녕이다. 세달만 지나면 나는 사막을 떠난다 이 말씀이야. 이제는 전역이란 말이다.”
 정욱은 기분 좋은 상상을 했다. 자신이 이 메마른 사막을 떠나 중원의 푸른 산하를 지나는 모습이다.
 끼이익!
 이때 정욱의 침실 후문을 열면서 누군가 들어왔다.
 그리고 아름다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교위님, 오늘도 사람이 많이 죽은 것 같던데요?”
 정욱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감숙성주의 애첩이었다가 간통 현장이 발각되어 이곳에 위안부로 보내진 여인 소랑(蘇娘)이 서 있었다.
 정욱은 그녀의 미끈한 다리를 보면서 말했다.
 “알게 뭐냐? 그까짓 놈들 죽든 말든 내가 상관할 일이 아니다. 내 한몸만 살면 된다.”
 소랑의 미소에는 사람의 마음을 끄는 요염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녀는 웃으면서 말했다.
 “호호, 그래도 당신은 이곳 사혈대의 대장이잖아요.”
 정욱은 다시 한잔 독한 죽엽청을 들이켰다. 그리고 소랑을 바라보며 말했다.
 “대장? 나를 그렇게 생각하는 놈들은 한놈도 없다고. 그놈들에게는 조장인 광혈마도나 냉혈객이 대장이라고. 더구나 그 녀석들은 어차피 이곳에서 죽을 목숨들이야. 고생없이 일찍 죽는 것도 복이지.”
 정욱은 소랑의 미끈한 다리를 보고는 색욕이 동하는 것을 느꼈다. 그의 침이 꿀떡꿀떡 넘어갔다. 잘 넘어간다.
 정욱은 의자에서 일어서면서 말했다.
 “흐흐, 놈들이 죽든 말든 내 알 바 아니지. 나는 이제 세달만 지나면 임기(任期)를 마치고 중원으로 돌아간다고. 놈들처럼 평생을 여기에서 보내는 놈들과는 다르지.”
 소랑은 정욱이 자기에게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애교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오호호, 이십년간이나 사막에 계셨으니 정말 고생하셨어요. 나라를 지키는 분들은 바로 나리 같은 분들이지요.”
 정욱은 다가가서 소랑의 둔부에 오른손을 척 걸쳤다. 그리고 쓱 밀어올려 풍만한 둔부를 만지면서 말했다.
 “고생?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 그래도 옛날이 좋았다. 요즘 놈들은 싸가지가 없어서 안돼. 특히 그 미친놈들 대장 광혈마도, 그리고 삼년전에 온 냉혈객, 그 두놈 때문에 피가 마른다. 피가 말라.”
 소랑은 허리를 움직였다. 그녀의 허리는 흔들거리면서 정욱의 남성을 자극하고 있었다.
 그녀는 두 손으로 정욱을 껴안으면서 말했다.
 “어머, 두 사람이 그렇게 골치 아프나요?”
 정욱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생각하기도 싫은 듯했다. 입에서 욕설이 절로 튀어 나왔다.
 “말 마라. 두 놈 때문에 내가 제명에 못 죽는다. 광혈마도라는 골통은 이미 육년전에 기간이 다 차서 이곳을 떠나기로 되어 있었다. 사혈대에서 유일하게 임기를 마친 놈이지. 그런데 그놈이 못 간다는 거야. 이곳이 자기 맘에 든다는 거야.”
 소랑도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녀는 이곳을 떠나도 되는데 그러지 않는 광혈마도가 이해되지 않았다.
 “뭐라고요? 이런 생지옥이 좋다고요?”
 정욱은 소랑의 옷을 벗기면서 말했다.
 “그놈들 이야기는 그만 하자. 밥맛 떨어진다. 특히 냉혈객이라는 놈은 이곳에 오자마자 탈출을 시도해서 일년 사이에 아홉번이나 탈출했던 놈이다. 그 뒤로는 고독(蠱毒) 때문에 탈출하지 못하지만.”
 소랑은 중얼거렸다.
 “아홉번씩이나? 고독?”
 정욱은 소랑의 옷을 벗긴 뒤 그녀를 침대에 눕히면서 다시 말했다.
 “그놈들 이야기는 집어치우라니까. 이몸은 이제 석달 후면 이곳을 떠난다. 중원으로 돌아간단 말이다.”
 정욱이 탐스러운 소랑의 유방을 움켜잡으면서 말했다.
 그러자 소랑이 코맹맹이 소리로 말했다.
 “아이, 조금 살살해 주세요.”
 정욱은 소랑의 다리를 쩍 벌리면서 다시 말했다.
 “흐흐, 시끄럽다. 밑에 있는 지옥의 살수들에게 가게 된 것을 내가 구해 줬는데······. 흐흐.”
 소랑은 정욱의 말에 섬뜩했다.
 밑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 악마 같은 자들에게 몸을 맡긴다면······. 생각만으로도 소름이 끼쳐 왔다.
 소랑은 자기의 처지를 알고는 몸을 부드럽게 꼬았다.
 그러면서 말했다. 그녀의 손은 어느새 정욱의 남성을 쥐고 있었다.
 “아이, 나으리도··· 그렇게 급하면 재미가 없잖아요.”
 소랑의 몸은 마치 뱀처럼 미끄러지면서 정욱의 아래로 내려갔다. 그녀의 입술은 정욱의 가슴 부근에서 서서히 배꼽 아래로 내려갔다.
 정욱은 기분이 점점 좋아지는 것을 느꼈다. 그의 기분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흐흐, 좋아! 네가 그렇게까지 나의 비위를 맞춘다면 내가 이곳을 떠날 때 너를 데려가 주마.”
 소랑은 정욱의 말에 소랑은 힘차게 놀리던 혀를 잠시 멈추고 말했다. 누가 볼까 두려운 음탕한 행동이다.
 “오호호, 석달 후 이곳을 떠날 때에는 나를 데려가 주는 것을 잊으면 안돼요.”
 정욱은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당연하지!”
 정욱이 다시 뭔가를 바라는 눈빛을 보내자 소랑은 빙긋 웃으면서 다시 혀를 놀렸다.
 기분이 좋아진 정욱은 이곳이 지옥의 사막인지 천국의 낙원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우! 정말 너의 혓바닥은 죽이는··· 우, 살살 다루어라. 이제 곧 중원의 미녀를 만날 물건이다. 으허······.”
 정욱의 기분이 절정에 이르렀다.
 그때였다.
 쾅!
 거칠게 문이 열리고 냉혈객이 방안으로 들어왔다.
 정욱은 깜짝 놀라서 말했다.
 “무슨 짓이야? 억! 빌어먹을 년, 깨물면······.”
 냉혈객은 그들의 음란한 행동에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거침없이 걸어와서 의자에 걸터앉았다.
 “빨리 입에서 빼라! 이년아.”
 정욱이 급하게 소리치고 소랑은 입에서 피를 흘리면서 일어섰다. 그 피는 그녀의 피가 아니다.
 정욱은 아픔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
 “빌어먹을 년, 데리고 가기는커녕 놈들에게 넘기고 가겠다!”
 정욱은 다시 의자에 앉은 냉혈객을 바라보았다.
 정욱은 들어온 자가 냉혈객이라는 것을 알고는 차갑게 말했다.
 “이조(二組) 조장이 웬일이지?”
 냉혈객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는 탁자 위의 술을 한잔 들이켰다. 그는 정욱이 안중에도 없는 것 같았다.
 정욱은 그가 무슨 할말이 있는 것 같아 보이자 소랑을 바라보았다.
 그는 거칠게 소리쳤다.
 “소랑! 잠깐 나가 있거라.”
 소랑은 연신 헛구역질을 하면서 말했다. 그녀의 입에서는 피와 함께 누런 고름도 흘러나왔다.
 “나으리, 이것은 저의 잘못이 아니라······.”
 정욱은 옷을 걸쳐 입으면서 급히 말했다.
 “나가라고, 이년아!”
 소랑은 더 이상 변명하지 못하고 문을 닫고 나갔다.
 탁.
 소랑이 뒷문으로 나가자 그 동안 거만하게 서 있던 정욱이 갑자기 울상을 지었다.
 그는 냉혈객이 왜 자기를 찾아왔는지 짐작이 갔다.
 처음 이곳에 온 이후 일년간 아홉번이나 도망쳤던 냉혈객이 이년간 탈출을 시도하지 않는 것은 몸에 고독이 심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년간 탈출을 시도하지 않는다면 고독을 해제해 주기로 약속한 것이다.
 정욱이 사정하듯이 말했다.
 “이봐 냉혈객. 자네가 이년간 조용히 있으면 고독(蠱毒)을 해독해 준다고 내가 했는가? 난 말한 적 없다고.”
 냉혈객은 아무 말 없이 다시 한모금 술을 마셨다. 그의 눈동자는 서서히 불타기 시작했다.
 정욱은 안달이 났다. 그는 냉혈객의 무공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고 있었다.
 그가 다시 다급하게 말했다.
 “고독을 해제하는 것은 총책임자만이 할 수 있어. 그가 아무런 말이 없는데 내게 이런다고 해결이 되나? 난 죄 없다고.”
 정욱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냉혈객은 술병을 집어던졌다.
 그 술병은 정욱의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퍽!
 그가 던진 술병은 벽에 부딪혀 산산조각났다. 냉혈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눈동자에는 살기가 서려 있었다.
 정욱은 사색이 되어 말했다.
 “잠깐, 나를 죽이면 독을 당장 발작시킬 것이다. 설마 죽고 싶지는 않겠지? 그리고 이곳의 식량과 물의 보급이 중지된다. 설마 모르고 있지는······.”
 정욱에게 다가가려던 냉혈객은 그 말을 듣고서 멈추었다.
 잠시 동안 냉혈객은 말이 없었다.
 조금 시간이 흐른 뒤 냉혈객이 말했다.
 “평생 고독(蠱毒)에 중독되어 살기보다는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
 냉혈객은 부들부들 떠는 정욱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는 문 쪽을 향해 걸어갔다.
 그가 나직이 한마디했다.
 “한달, 기다려 주겠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냉혈객은 거대한 도(刀)를 갑자기 휘둘렀다. 엄청난 쾌도였다.
 샤샤삭.
 “헉!”
 정욱은 놀라서 비명을 내질렀다.
 냉혈객의 도는 그의 옷을 갈가리 찢어 놓았다.
 방안에는 옷자락이 눈 내리듯이 휘날리고 있었다.
 쾅!
 냉혈객이 다시 거칠게 문을 닫고 나가자 정욱은 주저앉으면서 말했다.
 “빌어먹을, 석달만 있으면 나가는데······.”
 냉혈객은 거칠게 문을 열고 나갔다.
 그는 처음부터 거친 사내는 아니었다. 그러나 냉혈객은 이곳 사막에서 중요한 것을 깨달았다.
 ‘강해야 살아남는다. 강하지 않으면 강한 척이라도 해야 한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다. 인간의 본성은 더러워서 강한 자에게는 약하기 마련이다.’
 냉혈객이 이곳에서 느낀 점이다. 무식하고 거친 사내를 다루는 데에는 말이 필요없다. 한마디로 주먹이 법이다.
 ‘광혈마도!’
 냉혈객은 계단을 내려가면서 광혈마도가 생각났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그는 광혈마도에게 반감을 가졌다.
 하지만 냉혈객은 곧 깨달았다. 광혈마도처럼 무식하게 사람을 죽이고 패야만 이곳 놈들은 두려워하고 따르는 것이다.
 ‘그래, 어쩌면 그의 생각이 옳을지도 모른다. 특히 이곳의 거친 놈들은 말이 통하지 않는 놈들이다.’
 그는 고개를 끄떡였다.
 광혈마도의 무식한 행동이 더 이상의 불필요한 살인을 막는 길이다. 이곳에 독재자가 없다면 더욱 많은 싸움이 일어나고 더 많은 사람이 죽을 것이다.
 냉혈객이 이층에서 내려오자 그의 눈에는 광혈마도와 조인웅이 들어왔다. 그는 그 모습을 보고서 냉소를 띄웠다.
 그를 바라본 임택이 잽싸게 다가오며 말했다.
 “조장님.”
 그의 목소리에는 간절함이 깃들어 있었다. 그를 보호해 줄 사람은 냉혈객 뿐인 듯 했다.
 임택은 냉혈객 등 뒤로 다가서며 말했다.
 “헤헤, 조장님. 저기 염라수란 놈이 겁없이 광혈마도에게 도전했습니다 그려.”
 냉혈객이 나타나자 일층의 살수들과 광혈마도가 그를 쳐다보았다.
 광혈마도는 냉혈객이 자신을 쳐다보자 약간 쑥스러운 듯이 두 손을 들고 말했다.
 “후후, 내가 체면없이 저 따위 놈과 싸웠군. 이봐, 냉혈객! 저 놈이 당신 부하지?”
 조인웅의 눈에는 희망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다음 순간 냉랭한 냉혈객의 말이 들려왔다.
 “광형, 죽이고 싶으면 죽이시오. 이곳에서 당신을 거역할 자가 누가 있단 말이오.”
 이 말에 광혈마도는 피식 웃었다.
 만약 다른 사람이 그 말을 했다면 그는 당연히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 말을 한 사람은 냉혈객이다. 유일하게 그와 겨루고도 살아난 사람은 냉혈객 뿐이다.
 광혈마도는 웃었다.
 “푸하하하! 냉조장이 제대로 아는군.”
 그는 웃으면서 얼버무리려고 했다.
 그렇지만 이곳의 모든 사람들은 그가 냉혈객을 껄끄러워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을 모르는 자는 멍청이다.
 광혈마도는 크게 웃고서 다시 말했다.
 “좋아, 좋아! 오늘은 여기까지다. 자, 다시 술 마시고 떠들어라.”
 그가 크게 소리쳤다. 그러나 아무도 떠들지도 술을 마시지도 않았다.
 어색한 침묵이 계속되었다.
 그러자 광혈마도가 허허 웃으면서 말했다.
 “미치겠군. 지금 반항하는 거냐?”
 그러자 눈치빠른 임택이 크게 소리쳤다.
 “야, 술 마시고 떠들란 소리가 안 들리나? 하하, 자, 마시자.”
 그러자 그제야 살수들이 일제히 소리치면서 술을 마셨다.
 “좋아, 오늘도 살아남았군. 멋진 밤이다.”
 “그래,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자. 오늘 생각할 일은 내일로 미루고 내일 생각할 일은 영원히 잊어 버리자.”
 “푸하하하! 그래, 마시자. 마시고 조금이라도 지옥을 잊어버리자. 단순하게 생각하고 살아가자.”
 그 순간 사혈대의 살수들을 쳐다보던 염라수 조인웅의 미간이 가볍게 찌푸려졌다.
 ‘정말 이해할 수 없구나.’
 생각할수록 황당한 일이다.
 아무리 광혈마도의 무공이 강하다고 한들 그의 말 한마디에 모두 미친놈들처럼 행동하고 있지 않는가? 이들에게 있어 수치심은 없는 것이란 말인가?
 그는 다시 광혈마도의 무공을 생각했다.
 ‘광혈마도가 사용한 수법이 말로만 듣던 소림사의 적엽비상과 비슷하구나. 하지만 왠지 다르다.’
 그는 무림에서 삼십년 가까이 활동했고 한때는 녹림맹의 두목이었기에 견문도 넓었다.
 이때 냉혈객이 조인웅의 옆을 지나갔다. 그의 뒤에는 임택이 뒤따르고 있었다.
 조인웅이 냉혈객을 바라봤다. 어찌됐든 그가 자신의 구해 준 셈이다. 그가 한마디했다.
 “고맙소, 조장.”
 냉혈객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의 말을 들은 것 같지도 않았다.
 다만 그를 뒤따르던 임택이 조용히 한마디했다.
 “조인웅, 내가 진심으로 한마디 충고하지. 이곳에서 살아 남고 싶으면 자존심을 버려라.”
 조인웅은 그런 임택을 바라보았다. 저토록 비굴하게 살아 남고 싶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는 고개를 끄떡였다.
 ‘하지만 맞는 말이기도 하다. 이곳은 내가 활동하던 천태산이 아니다. 내가 알고 있던 세계와는 전혀 다른 세계··· 나는 반드시 살아남아야 한다.’
 냉혈객은 자신의 숙소로 향했다. 그의 뒤에는 환영(幻影) 임택이 따라가고 있었다.
 뒤따르던 임택이 말했다.
 “헤헤··· 조장, 지금 지하실에 재미난 일이 있는데 한번 가 보시겠습니까?”
 냉혈객은 말이 없다. 그는 임택의 존재를 생각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임택이 다시 말했다.
 “헤헤, 조장, 오래간만에 재미 좀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소마왕이 유목민 계집 몇명을 잡아왔습니다.”
 그의 말에 냉혈객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계속 걸었다.
 그는 아무 말이 없었다.
 냉혈객은 임택이 싫었다. 이리저리 눈치만 보고 아부를 떠는 성격이 싫었다. 그렇지만 자신에게 잘 보이려고 아부를 떠는 자를 매몰차게 야단칠 수도 없었다.
 그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상관하고 싶지 않다. 피곤하다.”
 그러나 임택은 집요했다. 그는 필사적으로 냉혈객을 따라 가면서 말했다.
 그는 다시 냉혈객의 관심을 유발하려는 듯한 말을 했다.
 “잡아온 계집 중에 의술(醫術)이 뛰어난 계집도 있다고 합니다. 조장, 계집들이 독을 치료할 줄 안답니다.”
 우뚝!
 냉혈객은 그 말에 걸음을 멈추었다.
 임택은 냉혈객이 괸심을 보이는 듯 하자 계속 말했다.
 “잡혀 온 계집 중 하나는 회족의 무녀(巫女)인데 의술이 아주 뛰어나다고 합니다. 마법(魔法)을 사용한다고 합디다. 혹 조장의 독(毒)을 치료할지 모릅니다.”
 냉혈객은 발을 멈추었다. 흥미를 느꼈기 때문이다.
 그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회족의 무녀라······.”
 
 ***
 
 용문객잔 지하실.
 어두운 지하실에 관솔이 타오르고 있었다.
 그 불빛 아래 두 여인이 나무 기둥에 매달려 있다.
 그녀들의 옷은 이미 갈가리 찢어져 있다. 곳곳이 찢어진 옷 사이로 그녀들의 백옥 같은 피부가 드러나 있었다. 또한 그 옷자락 사이로 그녀들의 유방과 치부까지 보일듯 말듯 했다.
 그 광경을 보는 자는 절로 성욕(性慾)을 느낄만 했다.
 한 여인은 나무 기둥 저편에 묶인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여인은 관솔이 타오르는 정면에 묶이어 있었다. 그녀의 몸매는 성숙했다. 하지만 얼굴은 아직 어린 티가 가시지 않은 소녀였다.
 갑자기 괴소가 들려왔다.
 “흐흐, 아무리 입을 열고 싶지 않아도 소용없다. 더 이상 치욕을 당하기 전에 빨리 너희 부족의 근거지를 밝혀라.”
 그녀들 앞에서 이십대 후반의 한 젊은이가 채찍을 든 채 말하고 있었다.
 그가 바로 살인을 밥먹는 것보다 좋아하고 사람의 생피를 즐겨 마시는 사내, 소마왕(小魔王)이라는 자다.
 기둥에 묶인 소녀가 소리쳤다.
 “너희 한인(漢人)들이 아무리 우리 회족 부족을 쫓아내려고 해도 우리는 이곳을 떠나지 않는다. 이곳은 우리들이 수천년간이나 살아온 땅이다.”
 중원인들은 중화사상에 젖어 이들 유목민들을 인간취급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있어서 유목민들은 가축보다도 못한 존재였다.
 사혈대는 서방과의 교역로를 위협하는 유목민들을 토벌하는 것과 대상들을 공격하는 비적들을 죽이는 것이 목적이다.
 소마왕은 괴소를 터트렸다.
 “쿠쿠, 좋아, 좋아. 나도 고분고분한 계집은 흥미가 없다.”
 말을 마친 소마왕(小魔王)은 왼손을 뻗어 눈앞의 소녀의 가슴을 와락 움켜쥐었다.
 소녀는 소마왕의 손이 가슴에 닫자 몸을 부르르 떨었다.
 “더러운 놈!”
 그 소녀는 침을 뱉었다.
 “퉤!”
 소녀의 침은 그대로 소마왕의 얼굴에 묻혔다. 소마왕은 피할 수도 있었는데 피하지 않았다.
 쓰윽!
 그는 오른손으로 침을 닦으면서 말했다.
 “히, 이제부터 네년들은 천국과 지옥을 왕복하게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이 어르신이 좋아서 절로 엉덩이를 흔들게 될 것이다. 흐흐흐.”
 소마왕이 잔인하고 음탕한 웃음을 지었다.
 그때였다.
 쾅!
 지하실 문이 거칠게 열리고 누군가 들어왔다. 소마왕은 깜짝 놀랐다.
 그는 문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누구냐? 감히 어르신의 즐거움을 방해하는 자가?”
 문을 거칠게 열고 들어온 자는 아무말 없이 계단을 내려왔다. 그는 매우 조용했다.
 “이, 이놈이?”
 소마왕은 분노로 몸을 떨면서 내려서는 자를 자세히 살펴 보았다.
 바로 냉혈객이다.
 그는 어깨 위에 거대한 도를 걸치고 있었다. 냉혈객은 천천히 걸어왔다. 마치 지하실에 아무도 없는 듯한 행동이다.
 냉혈객은 아무 말 없이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소마왕은 내려온 자가 이조(二組)조장이자 사혈대의 이인자인 것을 알았다. 그의 목소리는 약간 부드러웠다.
 “아! 냉조장이었군. 좋아, 계집이 둘이니 하나 빌려주지. 오래간만에 때나 벗기라고. 흐흐, 나야 뭐 재미보다는 피를 보는 것을 좋아하니까.”
 말을 마친 그는 다시 흐흐거리고 웃었다.
 소마왕도 이곳에서 무시 못할 고수였다.
 하지만 그는 냉혈객과는 겨루고 싶지 않았다. 그의 놀라운 무공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냉혈객은 아무 말도 없었다. 그는 조용히 나무 기둥에 묶인 여인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쌍갈래로 땋은 머리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아름다운 얼굴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의 푸른 눈동자는 사람의 마음을 끄는 매력이 있었다.
 그녀 또한 냉혈객을 바라보았다.
 소마왕은 냉혈객이 아무런 말을 하지 않자 다시 말했다.
 “좋아, 조장이니까 두명 모두 주지. 하지만 재미 본 뒤에는 나에게 넘겨. 내가 고문을 즐겨야 하니까. 난 비명소리가 어떠한 음악보다도 좋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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