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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마전 1

2018.02.05 조회 289 추천 1


 사형마전 1권
 서장
 
 
 무림천년사(武林千年史).
 언제부터인가?
 하나의 전설(傳說)과 하나의 신비(神秘)가 전해지고 있었다.
 하나의 전설.
 ― 강호삼정(江湖三井)!
 수천 년 무림사(武林史)에 누구도 오를 수 없는 세 곳의 비경(秘經)이 있으니 이를 일컬어 강호삼정(江湖三井)이라 하고, 곧 천상천(天上天), 동중동(洞中洞), 지혈지(地穴地)라 명칭한다.
 그중 천상천에 오르면 정천패왕(正天覇王)이 될 것이요,
 동중동에 달하면 마종지군(魔宗之君)이 될 것이며,
 지혈지에 이르면 사중사마(邪中邪魔)가 될 것이다.
 이는 천상천에 정중정(正中正), 십만정종무학(十萬正宗武學)이 총 집대성되어 있기 때문이요,
 동중동에 십만마종(十萬魔宗)이 집대성되었기 때문이요,
 지혈지에 사중사(邪中邪)의 십만사공(十萬邪功)이 집대성되었기 때문이다.
 이 말.
 끝없이 천하인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한때 강호천지는 온통 뒤집어지다시피 했다.
 “찾아라!”
 하지만 어느 누구도 강호삼정을 찾았다는 사람은 없었다.
 하나의 신비.
 이것은 무림사 천년(千年).
 가장 처절했던 가공할 혈사(血史)에서 비롯되었다.
 하늘의 저주(咀呪)를 안고 지상에 잉태된 공포(恐怖)의 그 이름······.
 ― 혈의역천팔대마신(血衣逆天八大魔神)!
 이것이 혈사의 시작이었다.
 이백 년 전.
 여덟 명의 살인귀(殺人鬼)가 피구름을 안고 중원(中原)에 출현했다.
 혈의역천팔대마신.
 혈풍(血風)!
 그들에 의해 중원은 가장 철저하게 부수어졌다.
 초토화(焦土化), 바로 그것이었다.
 팔 인의 대살귀(大殺鬼)!
 그들의 살겁(殺劫)에는 정(正), 사(邪), 마(魔)······ 가림이 없었다.
 이유도 목적도 없다.
 그저 눈에 띄는 생명체라면 사람과 짐승조차 가리지 않고 죽이고 또 죽였다.
 장장 사년(四年).
 피가 하늘을 뒤덮었다.
 도대체 이들의 정체는 무엇이었던가?
 ― 이젠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
 무림은 벌써 울부짖었다.
 그리고 백중일(百中一)로 일천 명의 천하최강(天下最强) 고수들을 엄선, 팔 인의 살인귀를 상대로 피보라 퍼지는 대혈전(大血戰)을 벌였다.
 고르고 고른 천 명의 고수들.
 하나 단 한 명도 살아 남지 못했다.
 몰살(沒殺).
 이것이 무림 유사 이래 가장 끔찍한 혈사였다.
 반면 혈의역천팔대마신은 단 한곳도 다친 데 없이 유유히 웃으며 십만대산에서 내려왔다.
 ― 사람도 아니다!
 ― 끝장이다! 놈들은······ 악마(惡魔)다, 하늘의 저주를 받은······.
 한데 말이다.
 십만대산의 혈사가 벌어진 지 정확히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정녕 엄청난 괴사(怪事)가 터졌다.
 변시체.
 돌연 팔대마신의 하나가 양자강(陽子江)에서 변시체로 발견된 것이다.
 온몸이 갈가리 찢겨진 채······.
 그리고 그 괴사가 있고 난 보름 뒤.
 이 상상조차 못할 괴사는 계속되었다.
 역시 팔대마신 중 하나가 또다시 뼈와 살이 짓뭉개진 시체로 황산 기슭에서 발견된 것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또 한 구의 시체가 나타난 것은 그로부터 한 달 후였다.
 무림은 발칵 뒤집어졌다.
 ― 누구냐, 저 악마의 무공을 지닌 놈들을 제거한 영웅은!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그날 이후.
 나머지 다섯 명의 역천마신(逆天魔神)들은 강호에서 종적을 감췄다.
 또한 그들을 죽였노라 자처하고 나선 인물도 없었다.
 신비(神秘)!
 누가 혈의역천팔대마신을 죽였는가?
 또한 나머지 오 인(五人)은―!
 
 
 1장 쾌활림(快活林)의 통곡(痛哭)
 
 
 쾌활림(快活林).
 술이 있고 도박(賭博)이 있고, 호궁(胡弓)을 켜며 객(客)을 부르는 계집이 사는 환락의 저잣거리를 말한다.
 이곳 낙양(洛陽)에도 있었다.
 장장 삼십 리에 이어진 방탕의 거리.
 창녀(娼女)와 투도(偸盜)와 건달.
 용과 같은 사람, 뱀과 같은 인물들이 어우러져 헐뜯고 싸우며 살아가는 곳이었다.
 서북풍(西北風).
 휘― 이― 잉!
 살을 찢어발기는 듯한 광풍이 소름 끼치게 몰아치고 있었다.
 주루(酒樓).
 낙양성(洛陽城) 쾌활림의 외곽에 자리잡은 한곳 초라하기 짝이 없는 주루였다.
 진시(辰時) 무렵.
 “왓핫핫핫······!”
 “크하하하하······!”
 실로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었다.
 주객(酒客)들이 약 이십여 명이나 있었을까?
 조소는 그들 중 중앙에 자리잡은 네 명의 금포장한들의 것이었다.
 사악하기 그지없는 생김새들.
 일견(一見)하여 악랄한 심성을 말해 주었다.
 한데 그들의 앞에는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초라한 한 흑의소년이 사지를 부들부들 떨며 서 있었다.
 아니, 차라리 쓰러질 듯 위태롭게 비틀거리고 있다는 편이 더욱 가(可)했다.
 어디서 저렇게 지독한 화상을 입었는가?
 안면이 온통 울퉁불퉁한 살덩이로 일그러져 있었으며, 그나마도 뼈만 남은 듯 앙상한 몰골.
 핏기 한 점 없이 핼쑥한 안색.
 시뻘겋게 충혈된 눈에 전신이 중풍에 걸린 양 벌벌 떨리고 있었다.
 단번에 정상인의 모습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나이는 이제 겨우 십구 세나 되었을까?
 덩그러니 그의 덜덜 떨리는 손에는 지금 한 잔의 술이 초라하게 들려 있었다.
 그 모습이 가소로웠음인가?
 금의장한들은 쉴새없이 조소를 퍼부었다.
 “크핫핫······ 자! 주정뱅이, 그리 부들거리지만 말고 어서 한 잔 처마셔라.”
 일순 금의장한 중 하나가 흑의소년의 안면에 술잔을 확 끼얹었다.
 순간 봉두난발을 적시며 주루룩 흑의소년의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는 술.
 “우핫핫핫핫핫핫······!”
 또다시 주루에는 폭소로 가득 찼다.
 치욕.
 뼛골마저 갈리는 치떨리는 이 수모.
 그러나 흑의소년은 이런 참혹한 멸시를 받으면서도 그들이 건네준 술잔을 던지지 못하고 있었다.
 연신 부들부들 떨리는 손.
 하지만 자세히 보면 알 수 있다.
 그의 초점 잃은 두 눈 가득 비분의 빛이 어리고 있음을.
 이때 술을 끼얹은 금의장한의 입가에 미묘한 웃음이 어렸다.
 또르르, 입꼬리가 말려 올라가는 잔인스런 웃음이.
 그와 동시였다.
 “훗훗······ 퉤!”
 놈이 흑의소년의 안면을 향해 싯누런 가래침을 내뱉지 않는가?
 철썩!
 여지없이 그 더러운 가래침은 흑의소년의 뺨에 달라붙었다.
 흑의소년의 안면 근육이 씰룩, 경련했다.
 동시 두 눈에 한 조각 차디찬 얼음 조각 같은 분노가 떠올랐다.
 그렇다.
 한치의 벌레에도 오 푼의 넋은 있는 법.
 아무리 술에 중독이 되었다 하나 어찌 사람이 이 같은 수모를 담담히 받겠는가?
 “으······!”
 그러나 금의장한은 눈곱만치도 개의치 않고 오히려 재미있다는 듯 대소하지 않는가?
 “핫핫핫핫······ 가소로운 놈! 네놈을 닦아주지.”
 잇따라 그는 우악스럽게 흑의소년의 머리카락을 움켜잡아 홱 제쳤다.
 이어 술병을 들어 그의 얼굴에 콸콸 쏟아 붓기 시작했으니······.
 “푸핫핫핫핫······!”
 “으핫핫핫핫하······!”
 또다시 숨막히는 폭소가 터졌다.
 술이 젖혀진 흑의소년의 얼굴에 쏟아진다.
 정녕 이럴 수가 있는 것인지······?
 순식간에 술병 속 치욕의 액체는 모조리 흑의소년의 얼굴에 쏟아졌다.
 뒤따라 금의장한은 난폭하게 그를 밀어젖혔다.
 우당― 탕―! 꽈당!
 흑의소년은 몸을 가누지 못하고 음식 찌꺼기와 탁자를 안고 쓰러졌다.
 하나 다음 순간 그는 튕기듯이 다시 몸을 일으켰다.
 벌떡!
 두 눈[眼].
 마치 피라도 떨굴 듯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고 분노의 입자들이 열탕처럼 이글거렸다.
 입을 떼었다.
 분노에 찬 음성으로······.
 “이 개만도 못한 놈들······!”
 피식!
 금의장한은 오히려 실소를 자아냈다.
 “헛헛헛······! 여보게들, 여보게들! 이놈에게 그래도 아직 쥐꼬리만한 수치심이 남아 있었던 모양일세.”
 자리에 앉은 일행 중 하나가 가가실소를 터뜨렸다.
 “핫핫핫······ 주제에? 아무튼 술맛 떨어지니 이거나 줘 그만 쫓아버리게.”
 동시 기변(奇變)이 일어났다.
 돌연 탁자에 놓인 술병이 둥실 허공으로 떠오르더니 금의장한에게로 날아가지 않는가?
 능공섭물(凌空攝物).
 이를 보아 그들은 분명 상당한 무공을 지닌 인물들임을 알 수 있었다.
 흑의소년은 어느새 그들에게로 바짝 다가서 떨리는 손으로 금의장한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더러운 놈들! 사과해라!”
 일순 금의장한의 눈에 끔찍스런 살기(殺氣)가 비쳤다.
 섬칫!
 “우훗흐······ 사과? 이 주정뱅이놈이 감히 본 황산사우(黃山四友)에게······ 뒈지고 싶으냐!”
 한데 바로 그 찰나 돌연 흑의소년의 입에서 천둥 같은 굉렬한 호통이 터졌다.
 “이놈들! 죽여 주겠다!”
 잇따라 그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무서운 속도로 번갯불같이 금의장한의 낭심을 내질러 버렸다.
 쾌(快).
 퍽!
 “크― 쿠아악!”
 금의장한은 이 돌발적인 기습에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가랑이 사이를 잡고 쓰러졌다.
 “이놈들, 모조리 죽여 버린다!”
 흑의소년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벼락같이 옆에 있던 의자를 번쩍 쳐들어 비명을 지르는 금의장한의 안면을 내리갈겼다.
 쾅! 와지끈!
 “흐― 흐아아악!”
 연이어 터져 나오는 끔찍 무비한 비명.
 퍽!
 피보라가 산지사방으로 끼얹어졌다.
 가공할 노릇.
 이럴 수도 있는가?
 금의장한의 일행들은 이 너무도 창졸간에 벌어진 사태에 그만 당황했다.
 숨돌릴 틈도 없이 흑의소년이 휘두르는 의자가 일제히 그들의 안면을 박살냈다.
 위― 잉―!
 삐― 익―! 우드득!
 “카아아악!”
 “크아아아악―!”
 설명은 길다.
 하나 실로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참극.
 주루 안은 수라장이 되어 버렸다.
 하나 곧 누구의 입에서 터진 폭갈인지 알 수 없으나 주루 내의 주객들이 일제히 우르르 흑의소년을 에워쌌다.
 “저놈을 죽여라!”
 위― 잉―!
 동시 소름 끼치는 파공음과 함께 하나의 각목이 흑의소년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아아아악!”
 흑의소년은 뒷골이 바스러지는 듯한 고통을 받고 피화살과 함께 나뒹굴었다.
 꽈당!
 “죽여라!”
 “이놈!”
 “와아아아―!”
 잇따라 나뒹구는 흑의소년의 몸 위로 떨어지는 무자비한 폭행.
 “크아아악!”
 피가 튄다.
 시뻘건 피가······.
 “아아아악!”
 비명이 소스라치게 퍼지고, 으스러지기 시작하는 육신······.
 왜! 도대체 왜들 이러는 것인가?
 그가 대관절 무엇을 잘못했는가?
 잘못이 있다면······.
 ― 나는 한 잔의 술을 고통에 못 이겨 구걸했을 뿐이고, 인간으로서 참을 수 없는 치욕을 갚았을 뿐이오······.
 흑의소년의 몸은 순식간에 피투성이로 변하고 살[肉]이 어육처럼 짓뭉개져 가고 있었다.
 “와― 아― 아!”
 “크아아악!”
 그러나 무자비한 발길질은 계속되었다.
 짓밟혔다.
 정녕 눈뜨고 볼 수 없는 광경.
 지옥도(地獄圖)가 이러한가?
 수라도(修羅圖)가 저러한가?
 그리고······ 얼마나 흘렀을까?
 급기야 흑의소년의 비명은 스러지고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축 처져 버렸다.
 그제서야 인간 잔인(人間殘忍)의 발길질은 멈추어졌다.
 점소이가 이를 뿌득뿌득 갈며 유혈(流血)이 낭자한 흑의소년의 혼절한 육신을 개 끌 듯 질질 끌어내어 얼어붙은 땅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잔인한 것들······.
 뒤이어 황산사우의 시신도 그 자리에 버려졌다.
 물론 점소이는 황산사우의 시체를 뒤져 피 묻은 은자를 소중히 꺼내는 것을 잊지 않았다.
 
 ***
 
 ― 아아······ 추······ 춥소! 누······ 누구 없소? 나······ 나를······ 좀······ 따스하게 해주시오······.
 ― 이곳은······ 너······ 너무나······ 춥구려! 온기(溫氣)는 어디를 보아도 없소.
 흑의소년.
 죽고 말았는가?
 으스러진 사지를 떨군 채 미동이 없다.
 불행한 인물······.
 그는 누구였던가?
 어째서 십구 세 어린 나이로 술에 중독되어 처참한 치욕 속을 헤매야 했는가?
 또한 주루에서 일순간이나마 보여주었던 그 엄청난 호통.
 그 강렬한 위용은 무엇이었는가?
 반짝, 불꽃처럼 되살아난 그 개세천(蓋世天)의 위모(威模)는.
 황산사우(黃山四友).
 그들은 분명 고수(高手)의 무공을 소유한 무림인들이었다.
 한데 그들이 손 한번 써 보지 못하고 앗! 하는 사이 속수무책으로 당하지 않았던가?
 과연 우연이었을까?
 알 수 없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죽어가고 있다.
 비[雨].
 그것은 때늦은 겨울비였다.
 낙뢰(落雷).
 번― 쩍―! 콰쾅!
 형언할 수 없는 음산한 날씨.
 얼음장같은 차가운 겨울비가 짜증스럽게 삼라만상(森羅萬象)을 후려쳤다.
 “으윽······.”
 흑의소년은 이 혹독한 빗발에 의식을 되찾았다.
 힘없이 짓뭉개진 상체를 일으켰다.
 순간 온 전신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골수를 후벼팠다.
 “아악!”
 지독한 고통.
 흡사 사지가 토막토막 끊어져 나가는 듯하였다.
 하지만 그는 이를 악물며 기필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의 눈에 제일 먼저 비친 것은 피와 뇌수가 뒤엉킨 황산사우의 시체였다.
 씰룩!
 흑의소년의 안면 근육이 뒤틀리며 씁쓸한 빛이 어렸다.
 “어리석은 놈들······ 본시 아이들은······ 개구리를 가지고 장난을 하지. 그러나 놀림받는 개구리의 심정······ 그 누가 알까?”
 이어 힘겹게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용서해라, 도저히 그 이상은 참을 수 없었다.”
 흑의소년은 비틀비틀 위태롭게 걸음을 옮겼다.
 그 지독한 고통을 씹으며.
 낙양의 빛 바랜 뒷골목.
 억지로 몸을 옮기던 소년의 일신이 홀연 돌부리에 걸린 걸까?
 휘청!
 고꾸라질 듯 길 옆 낡고 허물어진 담벽에 몸을 기댔다.
 순간 그의 입에서 죽음보다 더 참혹한 웃음이 흘러 나왔다.
 “??······ ?······ 차라리······ 죽고 말았을 것을······!”
 웃음.
 “???······!”
 그것은 차차 더 짙어져 급기야는 흐느낌보다 더 비통해졌다.
 “쿡쿡쿡······! 내가······ 나 류소룡에게······ 이런 날도 있을 줄이야······.”
 잇따라 흑의소년은 미친 듯한 광소를 터뜨렸다.
 “으핫핫핫핫······!”
 주먹으로 허물어지고 빛 바랜 담장을 마구 후려쳤다.
 “핫핫핫······ 정말······ 정말 기가 막히다! 대(大) 천무제(天武帝)의 기린아(麒麟兒), 나 비붕왕(飛鵬王) 류소룡에게 이런 날이······ 흐하하하핫······!”
 퍽― 퍼억―!
 순식간에 핏방울이 산지사방 흩어지며 그의 두 주먹이 뭉개졌다.
 하나 고통도 느껴지지 않는 듯 완전히 광태였다.
 한데······ 한데 말이다.
 그의 입에서 터져 나온 절규!
 이 무슨 까무러칠 엄청난 인물인가.
 천무제(天武帝).
 천무제라면 바로 당금 무림을 대표하는 고금 미증유(古今未曾有)의 천하제일문(天下第一門).
 바로 무림영웅맹(武林英雄盟)을 가리키는 게 아닌가.
 전(前)에도 없고 후(後)에도 있을 수 없다.
 중원십팔만리장천(中原十八萬里長天)을 통틀어 지상에서 일으켜 세운 가장 위대한 힘.
 그 광대한 규모.
 일궁(一宮), 십천(十天), 이십사만분타(二十四萬分舵)로 나뉘어지며, 십팔만리 중원천하(十八萬里中原天下)를 경이(驚異)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다.
 천무제의 일언(一言).
 곧 천(天)의 명령이었다.
 그 누가 감히 천무제를 거역하는가.
 또한 그렇기에 천하 모든 인물들이 가맹코자 꿈에서도 그리는 단 하나의 열망이었다.
 그리고 고금제일(古今第一)의 기린아(麒麟兒).
 비붕왕(飛鵬王) 류소룡(柳素龍)―!
 당금 무림천하가 낳은 불세출(不世出)의 소년영웅(少年英雄)으로, 모든 신진고수들의 우상(偶像)이 아닌가.
 더구나 무림의 모든 소녀들이 단 한 번만이라도 그 모습을 보고자 갈망하는······.
 무림웅주(武林雄主) 천무제군(天武帝君)의 십대제자(十大弟子) 중 일인(一人).
 석년(夕年), 천하를 피로 물들였던 성숙해(星宿海)의 십이금마(十二金魔)를 단칼에 때려 엎었고, 약관 십육 세에 천무제의 십대천왕(十大天王) 중 하나로 부상한 경천동지의 기린아였다.
 강호의 모든 사인(邪人)들에게 있어서 그는 공포적 존재였다.
 하지만 정도(正道)에 있어서는 다시없는 영웅이었다.
 한데 지금 이 초라한 흑의소년의 입에서 서슴없이 비붕왕의 성명이 흘러 나온 것이다.
 이럴 수가!
 이게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흐핫핫핫핫······ 차라리 죽어버렸으면 얼마나 좋았을 것인가······!”
 흑의소년의 광태도 더욱 거칠어진다.
 한데 바로 그때, 흑의소년의 뒤로부터 비단폭을 찢는 듯한 여인의 외침이 터지는 게 아닌가?
 “그만······ 그만 멈춰요! 이제 제발 그만하시란 말이에요, 오라버니······.”
 불쑥!
 동시 한 쌍의 백옥 같은 섬섬옥수가 흑의소년의 팔목을 움켜잡았다.
 그것은 실로 눈부시게 아름다운 손이었다.
 일순 흑의소년은 급급히 그 손을 뿌리치며 빙글 몸을 돌렸다.
 “누······ 누구냐!”
 순간 그는 심장이 짓구겨지는 충격을 받고 숨막히는 탁음을 토하고 말았다.
 “헉! 너······ 너는!”
 대관절 언제 나타났는가.
 그곳에는 한 명 묘령의 백의소녀(白衣小女)가 눈물을 펑펑 흘리며 서 있지 않은가?
 월궁(月宮)의 항아가 이러한가?
 우물(尤物).
 그 아름다움은 실로 형용할 수조차 없지 않은가?
 약 십육 세나 되었을까?
 백옥(白玉) 같은 살결과 초생달처럼 단아한 눈썹.
 오뚝 솟은 귀여운 콧날과 홍옥으로 아로새긴 듯 앙증스런 앵둣빛 입술.
 그렁한 눈물 그득 고인 추수처럼 커다란 두 눈······.
 비에 젖어 찰싹 달라붙은 의복 위로 아직 앳되나 봉긋 솟은 가슴과 드러난 호선들은 또 어찌 그렇게 예쁜가?
 그것은 차라리 처절한 유혹!
 그리고 그녀의 등뒤에는 한 명의 철탑(鐵塔)을 방불케 하는 구 척 거구의 엄청난 풍도를 가진 청년이 서 있었다.
 숯 덩어리처럼 시커먼 피부와 고슴도치 같은 눈썹에 무시무시한 정광이 쏟아지는 호랑이의 두 눈.
 가공하다.
 일견하여 역발산기개세의 경천동지할 엄청난 힘을 말해 준다.
 그의 두 눈에도 굵은 눈물이 축축이 배어 있었다.
 흑의소년 류소룡.
 그는 날벼락을 맞은 듯한 충격 속에 뻣뻣이 몸이 굳어져 버렸다.
 일순 백의소녀가 그 미려한 모습에 온갖 희비(喜悲)를 담고 떨리는 어조를 내뱉었다.
 “소룡······ 오라버니! 오빠가 틀림없군요. 그렇죠? 소룡 오빠가 틀림없죠!”
 꿈틀.
 순간 류소룡의 안면이 무참하게 일그러졌다.
 그는 급급히 고개를 저으며 주춤주춤 뒷걸음질쳤다.
 “아······ 아니오. 소저는 누구요? 사······ 사람을 잘못 본 것 같소!”
 일순 백의소녀가 오열을 터뜨렸다.
 “으흑흑흑······ 흑······! 거짓말! 소룡 오빠임에 틀림없으셔요. 많이 변하시긴 했어도 한비(韓琵)를 속이실 순 없어요.”
 흐느낌.
 구곡양장(九曲羊腸)이 메워지는가?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흑······ 흑······ 오빠는······ 바보예요. 어째서······ 이젠 한비까지 피하려 하시죠?”
 그녀는 흐느끼며 류소룡에게 다가섰다.
 순간 류소룡은 벼락을 맞은 듯 전신이 와들와들 떨리기 시작했다.
 “머······ 멈추시오!”
 안색은 완전히 백지장이었다.
 “도······ 도대체 낭자는 누군데 본인을 아는 척하는 거요? 나는 소저가 말한 그 류모라는 사람이 아니란 말이외다!”
 호통.
 그러나 백의소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흑흑······ 오빠, 제발 그만해 두세요.”
 찰나지간 류소룡의 두 눈이 찢어질 듯 흡뜨였다.
 “다······ 닥쳐라! 나는 소룡이란 자가 아니다!”
 불끈 피라도 쥐어짜낼 듯 주먹을 움켜쥐었다.
 “물러가라! 아니면!”
 동시 묵묵히 침묵하던 흑면청년이 급히 류소룡을 막아 섰다.
 “사형(師兄)! 소제 철붕(鐵鵬)입니다. 차라리 소제를 치십시오.”
 주먹만한 눈물이 뚝, 뚝 떨어졌다.
 철붕(鐵鵬)!
 이는 또 무슨 가공실색할 이름인가?
 천무제(天武帝)의 서열 제십 위.
 천무제군의 마지막 제자(弟子)이다.
 십대천왕(十大天王) 중 일인(一人).
 그의 가공할 괴력(怪力)은 구주(九洲)를 경악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예가 있다.
 경악할 일.
 그렇다면 흑의소년 류소룡, 그는 정녕 천무제의 기린아 비붕왕이라는 뜻이 아닌가?
 대관절 이게 어찌된 노릇인가.
 이때 어느새 밀착하다시피 다가선 백의소녀가 그의 손을 잡았다.
 “흑흑······ 그래요. 한비를 때려 오빠의 그 쓰라린 상처(傷處)가······ 풀릴 수만 있다면······ 흑흑······ 한비는 죽어도 좋아요. 얼마든지······.”
 순간 류소룡의 입에서 고뇌(苦惱)에 찬 울부짖음이 터져 나왔다.
 “우와아악!”
 잇따라 그는 시뻘건 피화살을 토하며 결국 몸을 허물어뜨리고 혼절하고 말았다.
 쿵―!
 “아악! 오······ 오빠!”
 백의소녀는 까무러칠 듯한 비명을 지르며 그의 처참한 육신을 껴안았다.
 쏴아아!
 겨울비는 착잡하게 계속 내리고 있었다.
 그칠 줄 모르고······.
 
 ***
 
 산신묘(山神廟).
 낙양의 협산(峽山)에 위치한 낡은 산신묘.
 이미 오래 전에 인간의 버림을 받은 폐찰이었다.
 산신묘 안.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을 사이에 두고 이남일녀(二男一女)가 침묵하고 있었다.
 류소룡과 백의소녀, 그리고 철붕이었다.
 터질 듯한 침묵.
 뼈를 에는 비원(悲怨)이 서리서리 엉켜 가슴을 짓이겼다.
 류소룡.
 그의 안면은 지독한 번고(煩苦)에 시달려 참혹하게 뒤틀려 있었다.
 밖은 밤이었다.
 번― 쩍!
 콰아앙! 우르르르르······!
 삼라만상이 먹물 같은 어둠 속에 파묻히고 뇌성벽력(雷聲霹靂)이 아수라(阿修羅)의 단말마 비명인 양 끔찍스런 귀곡성(鬼哭聲)을 토하는 광란(狂亂)의 밤.
 심장이 뜯어지는 듯한 지독한 번뇌.
 류소룡은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일순 그의 눈에 가공스럽기 그지없는 광기(狂氣)가 어렸다.
 ‘불······!’
 타다 만 운명의 조각인가?
 그의 눈에 일렁거리는 모닥불이 하나의 거대한 그림자를 만들었다.
 그것은 과거(過去)로 변했다.
 류소룡,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다.
 단지 철들 무렵부터 부초(浮草)인 양 떠돌았을 뿐······.
 저녁 노을의 불붙은 듯한 구름[雲]을 좋아했다.
 그래서 이름도 류소룡(柳素龍)이라고 했다.
 스스로가 지었다.
 운명의 그날.
 십이 세 때라고 기억하고 있었다.
 저잣거리.
 두 명의 사나이가 백주(白晝)의 거리에서 한 여인을 유린(蹂躪)하고 있었다.
 ― 사람 살려요!
 여인은 처절하게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두 청년은 악명 높은 인간들.
 어느 누구도 나서지 못했다.
 아니, 구름처럼 몰려든 사람들은 오히려 흥미진진하다는 듯 구경하고 있었다.
 ― 나쁜 자식들······.
 우연히 이 광경을 목격한 류소룡은 분개하여 뛰어들었다.
 청년의 다리를 물고 늘어졌다.
 ― 앗! 쌍놈의 새끼가!
 ― 시팔 새끼! 죽어랏!
 청년들은 대뜸 두 눈에 소름 끼치는 살기(殺氣)를 번들거렸다.
 짓밟았다.
 그러나 십이 세의 소년은 지독한 악종(惡種)이었다.
 머리가 터져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놈들의 허벅지를 물고 놓지 않는 것이다.
 그 통에 유린당하던 여인은 달아날 수 있었다.
 두 청년은 광분(狂奔)했다.
 ― 쌍놈! 죽여 버리겠다.
 엄청난 뭇매.
 류소룡은 초주검의 상태에 이르렀다.
 그때 그를 구해 준 인물이 있었다.
 단칼에 그들의 목을 쳐 날리고 류소룡을 구한 인물이······.
 그가 바로 무림패웅주(武林覇雄主) 천무제군(天武帝君)이었다.
 운명의 첫번째 만남.
 이것이 그 시작이었다.
 십이금마(十二金魔)―!
 성숙해(星宿海)를 거점으로 삼고 천하를 피로 적셨던 흉신(凶神)들.
 그들의 이름은 곧 폭음의 대명사였다.
 살인(殺人)! 방화(防火)! 약탈(掠奪)!
 피, 피, 피.
 피가 강이 되어 흘렀다.
 놈들은 스스로의 야욕을 채우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하나 무림은 침묵했다.
 그들의 힘!
 악마들의 저주를 받고 나타났는가?
 가히 하늘이라도 깔아뭉갤 듯 가공한 것이었다.
 이때 아무도 건드릴 수 없었던 이 흉신(凶神)들의 앞에 약관 십육 세의 소년이 나타났다.
 류소룡!
 천무제군의 제자가 된 지 사년(四年)이 흐른 류소룡이었다.
 그는 천고(千古)의 신병(神兵) 천왕검(天王劍)을 날려 십이금마의 목을 쳤고 단숨에 성숙해를 뒤엎었다.
 그 가공할 신위(神威).
 경악!
 무림천하는 발칵 뒤집어졌다.
 이어 무림은 곧 비붕왕의 탄생을 알게 되었다.
 이 무렵 류소룡은 한 명의 선녀같이 아름답고 고귀한 한 소녀를 사랑하게 되었다.
 서문천희(西門天嬉)라고 했다.
 너무도 아름다워 눈이 멀 정도의 소녀.
 그녀 역시 류소룡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 엄청난 위명(威名)!
 그 뛰어난 용모!
 마다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사춘기에 접어든 류소룡의 사랑, 그것은 실로 열렬한 것이었다.
 목숨보다 더 그녀를 사랑했다.
 그녀를 얻었기에 온 세상이 모두 제 것인 듯했었다.
 하나 또 하나의 운명이 닥쳐왔다.
 불행(不幸).
 지옥(地獄) 십만 장(十萬丈) 밑에서 신음하던 악귀(惡鬼)가 그의 행복들을 시기해 질투의 눈을 까뒤집었는가.
 불행의 신이 미쳐 광란하며 그를 찾아온 것이다.
 불[火].
 그것은 실로 엄청난 불이었다.
 불기둥이 천만 장(千萬丈) 하늘을 찌르며 솟구쳤다.
 류소룡의 목숨보다 더 소중한 사랑 서문천희.
 바로 그녀의 처소에서였다.
 그녀는 불속에 파묻혀 빠져 나오지 못했고, 사람들은 발을 동동 굴렀을 뿐 그녀를 구출해 내지 못했다.
 그때 류소룡은 과감히 뛰어들었다.
 서문천희를 곱게곱게 구출해 냈다.
 하나 그 대가는 엄청난 것이었다.
 비붕왕의 그 수려했던 모습은 끔찍한 화상을 입어 귀신도 놀라 자빠질 만치 무서운 형상이 되어 버렸다.
 마치 괴물을 보는 듯한 주위의 눈총들.
 하지만 류소룡은 견딜 수 있었다.
 하나 정작 그를 미치게 한 것이 있었다.
 서문천희!
 생사마저 도외시하고 사랑했던 그녀.
 그녀가 이날 이후로 류소룡을 피하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이······ 이럴 수가!”
 류소룡은 그때부터 술을 입에 대기 시작했다.
 고통(苦痛).
 그것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우우······! 믿을 수 없다! 천희가 나를 피하다니······!”
 죽고 싶은 심정뿐······.
 당시 그의 나이 십육 세.
 사랑의 진통을 이기기에는 너무 어렸다.
 그러던 어느 날 류소룡은 술에 만취해 서문천희를 찾았다.
 그리고 호소하듯 부르짖었다.
 “천희! 나는 너를 죽도록 사랑한다! 한데 왜 나를 피하느냐? 믿어다오! 나는 너를 위해서라면 죽어도 좋다! 제발······ 제발······ 그러지 말아다오.”
 화상을 입어 흉측한 두 뺨 위에 눈물이 번들거렸다.
 하지만 서문천희, 그녀의 반응은 냉담했다.
 “그만둬요! 누가 당신의 천희란 말인가요? 그 모습을 거울에 비춰 보고 말하세요.”
 실로 엄청난 충격이었다.
 “무······ 무엇이라고······? 천희······ 왜······ 왜······? 누구 때문에 내 모습이 이렇게 되었느냐? 바로 너를 위해서가 아니었더냐?”
 하지만 서문천희의 냉담함은 밑도끝도없었다.
 “나를 빙자할 필요 없어. 그것은 모두 네가 미련했기 때문이야!”
 이럴 수가!
 순간 류소룡은 그만 피화살을 토해내고 말았다.
 “크아악!”
 그렇다.
 그녀의 사랑은 진정한 것이 아니었다.
 류소룡의 준수한 껍질만을 흠모한 사랑, 못된 불장난이었던 것이다.
 류소룡은 미치고 말았다.
 “으하하하하······ 그래! 내가 미련했다! 내가 어리석었어! 세상은 나를 끝내 이토록 비참하게 만들고 마는가!”
 그날로 울부짖으며 천무제를 떠났다.
 그리고 삼년(三年)······.
 “술! 술을 다오! 술 말이다, 술!”
 미친 듯 폭주했다.
 서문천희를 잊기 위해서······.
 하나 사랑이란 마물(魔物)은 실로 무서운 것이었다.
 잊으려 할수록 더욱 그를 미치게 했다.
 타락(墮落).
 헤어날 수 없는 지옥의 구렁텅이가 거기 있었다.
 무서운 구렁텅이가······!
 비[雨].
 쏴아아······!
 계속 내리고 있다.
 이 무슨 잔인한 과거인가.
 “크흐흑!”
 류소룡은 참혹한 신음을 터뜨리며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차마 말할 수 없는 엄청난 고통이 폐부를 짓이기고 있는 것이다.
 이윽고 눈물 고인 눈으로 류소룡을 응시하던 백의소녀가 목멘 어조로 입을 떼었다.
 “오빠······!”
 일순 류소룡은 전류(電流)에 감전된 듯 부르르 몸서리쳤다.
 서서히 고개를 들어 백의소녀를 바라보았다.
 눈[眼]에는 미칠 듯한 번뇌가 있었다.
 “한비(韓琵)!”
 참혹하게 입술을 달싹거렸다.
 “도대체 네가······ 어쩐 일이냐? 내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
 그는 비로소 자신을 인정했는가?
 백의소녀의 눈에 미미한 희열의 빛이 어린다.
 또르륵!
 그것은 또다시 눈물이 되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흑흑······ 한비는······ 철붕 오빠와 함께 오빠를 찾아 벌써 삼년 동안 강호를 헤맸어요. 그러다 이곳 쾌활림에 비슷한 사람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일순 류소룡의 안면이 다시 한 번 무참하게 뒤틀렸다.
 씰룩!
 “쿡쿡······!”
 웃음인가?
 차라리 우느니보다 못했다.
 “쿡쿡쿡······ 벌써······ 삼년이 됐는가? 하지만 한비······ 부질없는 짓을 했다. 도대체 나 같은 폐인을 찾아 무엇을 하려고······ 큭큭큭······.”
 불빛이 일렁인다.
 “한비······ 잘 들어라. 네가 찾는 류소룡은 삼년 전······ 그 끔찍한 불기둥 속에서 이미 죽었다. ??······ 지금 네 앞에 있는 나는 죽지 못해 살아 있는 빈 껍데기일 뿐이다.”
 그때 철붕이 격앙된 어조로 입을 떼었다.
 “사형(師兄)! 돌아가셔야 합니다!”
 이글이글!
 두 눈에 불덩이 같은 무서운 신광이 뚝뚝 떨어졌다.
 “반드시······ 재기하셔야 합니다! 그래서 서문천희, 그녀에게 진정한 영웅의 모습이 무엇인지를 똑똑히 보여주셔야 합니다!”
 순간 울컥, 류소룡은 벼락을 맞은 듯한 충격을 받고 검붉은 핏덩이를 토해냈다.
 “큭! 우우욱······!”
 서문천희.
 이 무슨 끔찍한 충격인가?
 류소룡의 낯빛은 그 이름을 듣는 순간 이미 산 사람의 그것이 아니었다.
 웃는다, 처절하게······.
 “핫핫핫! 천희······ 아주 사랑스런 소녀지. 비붕왕이 난생처음 사랑했고, 또 가장 철저하게 버림당한 소녀. 핫핫······ 그래, 그 냉담한 계집 앞에 보란 듯이 다시 재기하고도 싶다.”
 반짝, 두 눈에 진한 눈물이 맺혔다.
 “그러나 틀렸어! 철붕, 봐라. 이 손에 다시 검을 잡을 수 있겠는가를.”
 말과 함께 불쑥, 광적으로 손을 내밀었다.
 그 손.
 피투성이가 되고 술에 중독되어 연신 부들부들 떨리는 그 손······!
 “핫핫······ 틀렸다. 나는 그동안 그 계집을 잊으려고 술로 삼년의 세월을 보냈다. 그리고 잊을 수 있었지. 하나······ 이것이 그 결과다!”
 차라리 울부짖음이었다.
 ‘사형······!’
 철붕의 두 눈에 다시금 촉촉한 이슬이 맺혔다.
 ‘하지만 거짓말이오······ 그 격동······ 사형은 아직도 그녀를 잊지 못했소······!’
 류소룡은 계속 말했다.
 “흣흣······ 철붕, 돌아가거라. 나는 이미 아무런 쓸모도 없는 몸이다. 모든 게······ 끝장났다.”
 백의소녀가 몸부림치듯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오라버니는 아직도 충분히 재기할 수 있어요······ 흑흑······ 오빠가 누군가요? 천무제의 소년영웅······ 천하 모든 소녀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시는 비붕왕이 아닌가요? 돌아가셔요. 아버님께서 애타게 기다리고 계세요. 제발······!”
 그녀는 애원하고 있다.
 “오빠······!”
 수정 같은 눈물이 양볼을 적시고 흘러내렸다.
 “그렇습니다, 사형! 사부님께서 애타게 기다리고 계십니다!”
 철붕이 간곡히 다시 입을 떼었다.
 “더구나······ 지금 무림천지에는 전례 없던 통천가공(通天可恐)할 힘을 지닌 혈사(血史)가 싹터 끔찍스런 피바람이 일각, 일각 몰려오고 있습니다.”
 혈사.
 “소위 마고천장지세(魔高千丈之勢)! 사부님께서는 이에 무림 정도의 멸망(滅亡)까지 예견하셨고······ 혈겁(血劫)을 막을 자는 오직 사형밖에 없다시며 한탄의 나날을 보내고 계십니다.”
 마고천장지세!
 무림정도멸망(武林正道滅亡)!
 도대체 이 무슨 치떨리는 소리인가?
 대관절 천하무림에 그 얼마나 엄청난 사건이 발생했기에 천무제군의 입에서 이 같은 말이 나왔는가?
 지상최강(地上最强)의 웅주(雄主)의 입에서······!
 순간 류소룡은 저도 모르게 흠칫 몸서리쳤다.
 하나 그것도 잠시, 괴로운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허허······ 부질없는 말······ 그까짓 게 나 같은 폐인에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러나 철붕의 태도는 집요했다.
 “사형은 충분히 다시 일어서실 수 있습니다!”
 순간 류소룡은 미친 듯한 폭갈을 터뜨렸다.
 “닥쳐라! 이놈! 너는 도대체 나를 얼마나 더 괴롭히려 하는 것이냐!”
 주루룩!
 눈에서 또다시 피눈물이 배어 나왔다.
 “우우······ 철붕······ 제발 가거라. 그래······ 생각해 보겠다. 시간이 필요하다. 너희가 있으면······ 나만 더 괴로울 뿐······ 내일 아침에 다시 오너라.”
 미칠 듯한 음성이었다.
 아니, 차라리 미치고 싶었다.
 철붕의 눈자위가 빨갛게 달아올랐다.
 ‘사형······!’
 그는 류소룡의 심적 고통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으로서는 더 이상 어쩔 수가 없음도 알았다.
 “가겠습니다.”
 그는 주먹으로 눈물을 씻으며 이윽고 말했다.
 “그러나······ 내일 날이 밝는 즉시 다시 오겠습니다. 사형······ 소제는 사형을 내 자신보다 존경하고 있소.”
 철붕은 등에 둘러메고 왔던 하나의 길쭉한 보퉁이를 풀어 류소룡에게 쥐어 줬다.
 류소룡은 보퉁이를 받았다.
 “이것은······?”
 철붕은 억지웃음을 지었다.
 “사형의 물건입니다. 풀어보십시오.”
 이어 백의소녀를 부축해 힘없이 걸음을 옮겨 산신묘 밖으로 사라졌다.
 류소룡은 떨리는 손으로 그 즉시 보퉁이를 풀어헤쳤다.
 순간 안색이 하얗게 굳어졌다.
 “허억! 이······ 이것은······!”
 뒤따라 참았던 눈물이 마침내 터져 나오기 시작한 것인가?
 “으윽······ 흑······ 흑······!”
 그는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처절하게 오열하기 시작했다.
 애간장을 도려내듯······.
 검(劍).
 보퉁이에서 나온 것은 한 자루 묵광(墨光)이 번쩍이는 고색 창연한 장검이었다.
 예사의 것이 아닌 듯 손잡이에 천왕(天王)이라는 두 글자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그렇다면?
 천왕검(天王劍).
 비붕왕의 천왕검······!
 석년(夕年), 천하를 피로 적셨던 십이금마(十二金魔)의 목을 일거에 쳐 날린 비붕왕 천고(千古)의 신병(神兵).
 이것을 모르는 자 천하에 누가 있는가?
 그렇다.
 철붕이 그의 떨리는 손에 쥐어 준 보퉁이.
 그것은 바로 천왕검이었던 것이다.
 “흑흑흑흑흑······!”
 류소룡의 처절한 오열과 몸부림은 갈수록 도를 더해 갔다.
 
 
 2장 설야(雪夜), 그리고 어떤 운명(運命)
 
 
 일출.
 휘― 이― 잉!
 철붕, 그는 류소룡과의 약속을 충실히 이행했다.
 백의소녀와 함께 날이 밝기 무섭게 다시 산신묘로 찾아온 것이다.
 얼마나 고심(苦心)을 했던 것인가?
 하나같이 지난밤에 비하여 몰라볼 정도로 초췌한 모습이다.
 그들은 초조한 심정으로 산신묘 문 앞으로 다가섰다.
 “사형, 기침하셨습니까? 소제 철붕입니다.”
 ‘응······?’
 철붕의 안색이 급속도로 긴장되었다.
 “사형!”
 쿵!
 그는 급급히 산신묘의 문을 열어제쳤다.
 “아······ 아니!”
 순간 철붕은 벼락을 맞은 듯 경악성을 지르며 부르르 몸이 굳어지고 있었다.
 안색이 백납같이 창백하게 질려 갔고, 두 눈엔 경악과 절망의 빛이 어렸다.
 없다.
 산신묘 안.
 타다 남은 모닥불의 잔재만이 쓸쓸히 흩어져 있을 뿐, 류소룡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일순 놀라서 굳어져 있던 백의소녀의 입에서 날카로운 부르짖음이 토해져 나왔다.
 “오······ 오라버니!”
 동시 그들의 당황으로 가득 찬 눈에 투영되는 게 있었다.
 허물어질 듯한 벽면에 모닥불의 숯으로 쓰여진 두 글자.
 
 <재견(再見)>
 
 “아악―!”
 순간 백의소녀는 처절한 부르짖음과 함께 산신묘 밖으로 뛰어나갔다.
 “오라버니! 오라버니!”
 안타까운 부르짖음이 있었다.
 외침은 차가운 아침 공기를 가르며 멀리멀리 퍼져 나갔다.
 하나 류소룡의 대답은 어디에도 들려오지 않았다.
 “크흑흑······ 사형······!”
 “흑흑흑흑······!”
 그들은 마침내 복받쳐 오르는 오열을 참지 못하고 터뜨렸다.
 눈물, 그것은 뜨거운 연민(憐憫)의 정인가?
 휘― 이― 잉!
 서북풍(西北風).
 냉혹한 한풍은 연신 대지를 매섭게 깎아내고 있었다.
 “흑흑흑······ 소룡 오빠!”
 철붕과 한비.
 그들의 애절한 울부짖음은 아침의 정적을 찢으며 처절하게 울려 퍼졌다.
 자꾸만······.
 
 ***
 
 기련산(起蓮山) 접천애(接天崖).
 칠흑 같은 밤.
 터벅······ 터벅······.
 류소룡은 걷고 있었다.
 벌써 몇 날 며칠을 걸었던가?
 온몸이 지독한 동상에 걸려 퍼렇게 부어 있었고 얼어터진 발가락에서 선지피가 떨어져 긴 혈선을 그렸다.
 처참한 형상······.
 하나 지금의 그로서는 고통조차 느끼지 않았다.
 넋을 잃고 그저 무의식중에 얼어붙은 땅을 밟으며 가시덤불을 헤치고 본능적으로 걸음을 옮길 따름이었다.
 일념(一念).
 ‘멀어져야 한다. 이 모습으로 어떻게 사부님을 다시 뵐 수 있단 말인가······?’
 지금 그의 잠재의식 속에는 오직 이 일념만이 살아 숨쉬고 있었다.
 어디로 가는 것인가?
 등에는 천왕검이 걸려 있었다.
 헌데 문득 칠흑 같은 어둠 속에 파묻힌 수림 속에서 미세한 소음이 일지 않는가?
 스스슥······!
 바삭······ 바삭······!
 동시 무엇인지 모를 역겨운 노린내가 류소룡의 후각을 자극했다.
 일순 류소룡은 비로소 의식을 되찾았다.
 흠칫!
 부지불식간에 느껴지는, 피부가 쩍쩍! 갈라져 나가는 듯한 살기(殺氣).
 직감적으로 무엇인가 자신의 주위로 몰려들고 있음을 느꼈다.
 순간 그는 머리털이 쭈뼛 곤두섰다.
 “헉―!”
 대관절 언제 그렇게 몰려왔는가?
 주위에는 수천 쌍에 가까운 새파란 인광이 번들거리는 눈동자들이 자신을 노리고 있지 않은가?
 동시 분명히 들었다.
 크르르릉······!
 우―!
 울부짖음.
 “구······ 굶주린 이리 떼!”
 찰나 류소룡은 안색이 퍼렇게 질렸다.
 그의 몸에서 풍기는 피 냄새를 맡은 이리 떼가 몰렸던 것이다.
 류소룡은 정신이 아득해졌다.
 ‘끄······ 끝장이다! 설마 이리의 밥이 될 줄이야!’
 잇따라 소름 끼치는 괴성.
 크르르르······!
 우우우―!
 이리 떼들은 눈알에 살벌한 독기를 뿜으며 한발, 한발 그의 곁으로 닥쳐들었다.
 일단 굶주리면 설사 대호(大虎)라도 뜯어먹고 마는 빙산(氷山)의 괴수들.
 류소룡은 부르르 몸서리쳤다.
 “안 된다! 지금에 와서 한갓 이리의 밥이 될 수는 없다! 그것은 철붕과 한비의 기대를 저버리는 꼴밖에 안 된다!”
 빠드득!
 이를 갈았다.
 “절대로 죽을 수 없다!”
 급박한 심정으로 천왕검을 뽑아 들었다.
 순간 날카로운 금속성이 퍼지며 실로 상상할 수 없는 광경이 벌어졌다.
 차― 앙―!
 천왕검!
 세상에 이토록 무서운 칼이 있는가?
 금시라도 목을 저미고 들어올 듯한 새파란 한광(寒光).
 매미 날개처럼 얇은 검신에 피를 부르는 요기(妖氣)와 마기(魔氣)마저 서려 있다.
 그 엄청난 기세(氣勢).
 깨깽!
 으으으으······!
 피에 굶주린 이리들조차 갈기를 곤두세우며 주춤거렸다.
 하나 그것도 잠시뿐······.
 크와아아악―!
 워― 우우우―!
 모골이 송연한 괴성이 터지고 마침내 이리 떼들이 덮쳐들기 시작했다.
 “으헉!”
 류소룡은 당황했다.
 하나 곧 산천초목이 뒤흔들리는 폭갈을 터뜨리며 천왕검을 휘둘러 발검을 개시했다.
 “이놈들!”
 위― 이― 잉―!
 팡― 촤악―!
 끼야악!
 캐― 애액―!
 즉시 시뻘건 선지피가 억수같이 튀어 오르며 이리의 울부짖음이 산천초목을 흔들었다.
 크― 우― 우― 우우―!
 오― 오오오오―!
 하나 순간 류소룡은 완전히 절망해 버렸다.
 “크윽······ 트······ 틀렸다. 손, 손이 말을 듣지 않는다!”
 검을 놓고 술로 보낸 삼년의 세월.
 몸이 말을 듣지 않는 것이다.
 절대절명(絶代絶命)······!
 하늘이 그를 버림인가.
 크아아아악―!
 이리 떼들은 쉴새없이 미친 듯 덮쳐들었다.
 “야아아― 아악!”
 류소룡은 처절하게 울부짖으며 광란적으로 천왕검을 휘둘렀다.
 캐앵! 카아악······!
 핏방울이 산지사방 난비하고 부르짖음이 산을 울렸다.
 죽이고 또 죽였다.
 워― 어어― 어어―!
 그러나 이리 떼는 갈수록 늘어만 갈 뿐 줄어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일순간 류소룡은 숨막히는 비명을 토했다.
 “아아악!”
 심장이 짓구겨지는 듯한 통증······.
 우······!
 급기야 이리 한 마리가 그의 어깻죽지를 물고 늘어진 것이다.
 이 흉악한 괴수는 어깨를 물고 늘어져 미친 듯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아아악!”
 끔찍한 고통······.
 피가 튀고 류소룡은 혼절할 것 같았다.
 바로 그 주춤한 사이.
 콰웅―! 크― 우우우!
 이리 떼들은 천지가 허물어지는 울부짖음을 토하며 일제히 류소룡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아아악! 이······ 이 저주받을 짐승들······.”
 류소룡은 처절무비한 절규를 터뜨렸다.
 우드득! 찌― 익―!
 소름 끼치는 음향이 울리고 선혈이 폭우처럼 쏟아졌다.
 “흐으윽······.”
 류소룡의 눈에는 핏발이 어리고 모발이 올올이 곤두섰다.
 전신을 물고 늘어진 십여 마리의 이리 떼.
 이미 저항할 힘도 잃었다.
 덥석!
 또 한 마리의 이리가 그의 허벅지를 물어뜯었다.
 “흐윽!”
 그의 온 전신은 걸레쪽처럼 찢겨져 나가 시뻘건 피범벅이 되었고, 어느새 팔다리 부분에는 희끗희끗 소름 끼치게 뼈가 드러나고 있었다.
 “아아! 이 저주받을 것들······.”
 챙그랑!
 천왕검이 떨어졌다.
 동시 그는 급기야 의식을 잃고 얼어붙은 땅에 쓰러지고 말았다.
 쿵!
 이리 떼들은 그를 산산조각으로 찢어내고 있었다.
 워― 우― 우!
 우둑! 우두둑!
 찌익! 찌익······.
 악마의 소리.
 하늘에는 십오야 만월(滿月)이 둥실 떠 있다.
 그 속으로 피가 튀어 오른다.
 지옥도(地獄圖).
 푸르스름한 월광(月光) 아래, 수백 마리의 이리가 인간을 물어뜯는······.
 헌데 이때였다.
 돌연 그야말로 숨이 딱 멎을 만한 음산한 방울 소리가 접천애의 어둠을 가르며 울려 퍼졌다.
 딸랑······ 딸랑······.
 이어 지옥의 외침인가?
 “하늘의 저주를 받고······ 땅의 피를 마시며······ 유계(幽界)를 떠도는 망혼(亡魂)들이여! 네 쉴 곳 어디더냐!”
 온몸의 솜털이 일시에 곤두설 만한 섬뜩한 목쉰 외침이 퍼지는 게 아닌가?
 일순 경악실색할 일이 벌어졌다.
 크르릉! 크― 악!
 미친 듯 류소룡의 몸을 물어뜯던 이리 떼들이 무엇엔가 크게 놀란 듯 몸을 떨며 꼬리를 내리고 마는 것이 아닌가?
 우우우!
 잇따라 이 저주받을 괴수들은 눈에 공포의 빛을 띠고 쫓기듯 흩어지기 시작했다.
 도대체 무엇인가?
 무엇이 이 대호마저 겁내지 않는 괴수들을 두렵게 하고 있단 말인가?
 “우우······ 사라져라······ 사라져라! 한(恨)일랑 품지 말고······ 구천(九泉)으로 사라져라. 우우······!”
 딸랑······ 딸랑······.
 섬칫한 부르짖음은 점점 가까이 들려왔다.
 그리고 급기야 외침의 주인은 접천애에 모습을 드러냈다.
 헌데 이게 무엇인가?
 산 사람은 하나도 없다.
 온통 시체······.
 그것도 수백 구에 달하는 썩은 부시(腐屍)들이 흐느적거리며 걸어오지 않는가?
 피처럼 시뻘건 안개[霧]에 뒤덮여.
 정녕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녹는다.
 피같이 붉은 혈무(血霧)에 닿는 것은 무엇이건 모조리 녹아 내리고 있다.
 진정 십만 장 지옥(十萬丈地獄)에서 악귀가 출현한 것인가?
 딸랑······ 딸랑······.
 소름 끼치는 방울 소리는 계속해서 폐부를 쥐어뜯었다.
 그러나 어느 일순간 그쳤다.
 뚝!
 동시 악마의 소리인가?
 “크흐흐흐······ 저기에도 무덤을 찾지 못한 중생이 하나 있군.”
 모발이 쭈뼛 곤두설 만큼 음산한 쉰 음성이 시체들 사이에서 울렸다.
 “크흐흐······ 많을수록 좋겠지.”
 딸랑······ 딸랑······.
 뒤이어 또다시 방울 소리가 울리며 썩은 수백 구 시체들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방향은 걸레처럼 찢겨진 류소룡의 처참한 몸이 쓰러져 있는 곳이었다.
 잠시 후 부시들은 이윽고 류소룡의 주위에 몰려들었다.
 “크흐흐······ 처참하군.”
 소름 끼치는 음성은 계속 들려왔다.
 헌데 순간 대경실색의 외침이 터졌다.
 “아앗!”
 동시 시체들마저 혼비백산할 노릇이 벌어졌다.
 “이······ 이것은!”
 돌연 부시들을 에워쌌던 핏빛 안개가 한곳으로 몰리더니 사람의 형체를 이루는 게 아닌가?
 아니, 사람이 되었다.
 오 척 단구(短軀)의 노인.
 헌데 세상에 이토록 끔찍한 형상을 한 사람도 있는가?
 귀물(鬼物).
 추물(醜物).
 그 어떤 표현도 이 노인의 형용을 말할 수 없다.
 얼굴은 시체처럼 썩어 문드러져 피고름이 흐르고 머리카락이 듬성듬성 뽑혀져 날린다.
 게다가 눈알이 없는 듯 뻥 뚫려진 채 지옥의 마귀보다 더 음침 사악한 시퍼런 불덩이가 이글이글 쏟아져 나왔다.
 이럴 수가!
 노인은 한동안 똑바로 류소룡의 피에 젖은 몸을 뚫을 듯 노려봤다.
 무엇에 놀란 것일까?
 와들······ 와들······.
 사지가 걷잡을 수 없이 떨렸다.
 “으······ 트······ 틀림없다! 삼양신맥(三陽神脈)!”
 잇따라 그는 미친 듯 괴성을 지르며 류소룡의 몸을 이리저리 뒤척였다.
 “주······ 죽었나? 아······ 안 된다! 백년······ 백······ 백년을 찾아 헤맸다. 으······ 사······ 살려야 해!”
 광태(狂態)였다.
 “안 돼! 네놈은······ 절대로 죽어서는 안 돼! 살아서······ 형제들을 죽이고······ 인륜(人倫)을 저버리고······ 나의 모습마저 이 꼴로 만들어 평생을 이 무서운 죽음의 세계 속에 웅크리게 만든 놈······ 그놈을 죽여야 해!”
 뚝!
 노인의 뻥 뚫린 눈에서 한 방울 피고름이 섞인 눈물이 떨어졌다.
 통한(痛恨)과 저주(咀呪)!
 무서운 격동이었다.
 잇따라 그는 급급히 류소룡의 몸을 들쳐 안았다.
 이때 실로 무서운 일이 벌어졌다.
 “끄― 아― 아― 아―!”
 돌연 귀면노인이 이끌고 왔던 썩은 시체들이 소름 끼치는 귀성을 토하더니 하나하나 시뻘건 핏물이 되어 녹아 내리지 않는가.
 순간 노인의 추면(醜面)이 홱 일그러졌다.
 “크크크······ 오오······ 이놈!”
 두 눈에서 엄청난 원독(怨毒)의 살광(殺光)이 촤르르 쏟아졌다.
 “마침내 네놈이 모습을 드러내는구나. 끝내 마교(魔敎)의 부시천살제어공(腐屍天殺制御功)까지 익혔어!”
 뒤따라 소름 끼치는 통한의 부르짖음을 토하며 신형을 날렸다.
 “크아아아!”
 유성(流星).
 그의 움직임은 사람의 그것이 아니었다.
 퍽!
 마치 연기가 사라지듯 어둠 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가공할 노릇······.
 대관절 이 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
 
 절강(浙江)의 선하령(仙霞嶺).
 빛 한 점 없는 깜깜절벽의 암흑 속에 휩싸여 있었다.
 그 속에 족히 수십만 명은 일시에 수용하고도 남을 만큼 엄청난 규모의 거성(巨城)이 웅크리고 있다.
 번― 쩍!
 돌연 한 줄기 섬전(閃電)이 암흑천지를 수만 갈래로 쪼개 놓았다.
 우르르르릉! 콰― 앙!
 동시에 성의 현판이 낙뢰(落雷) 속에 금빛 광채를 뿌린다.
 
 <천무제(天武帝)>
 
 이 성이 바로 천하정도무림(天下正道武林)의 최대 성역 천무제였던가?
 당금 천하를 한 손에 휘어잡은 절대웅주(絶代雄主) 천무제군이 있는 곳······.
 군림전(君臨殿).
 그렇다.
 여기가 바로 천무제군 서문독운(西門獨雲)의 거처였다.
 번― 쩍! 꽈꽈꽈꽈꽝!
 눈[雪]이 오려는가?
 하늘은 연신 천지대종말(天地大終末)을 고(告)할 듯 몸부림치고 있다.
 실내.
 숨막힐 듯한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한 명의 금빛 곤룡포를 걸친 노인이 뒷짐을 지고 우뚝 서 있다.
 강퍅한 인상.
 한 쌍의 형형한 독수리눈과, 백설같이 새하얀 머리결, 백미(白眉).
 그리고 가슴까지 늘어진 서릿발 같은 수염이 그 신위(神威)를 더해 준다.
 나이는 칠순 정도.
 그의 등뒤에는 여덟 명의 남녀가 오체투지, 머리를 조아린 채 엎드려 있었다.
 백발노인의 서릿발 같은 신광이 뿜어지는 두 눈은 줄곧 뇌성벽력이 천지를 가르는 하늘에 고정되어 있다.
 이윽고 그의 강퍅한 입술이 달싹였다.
 “철붕, 어떻게 되었느냐!”
 동시 오체투지하고 꿇어 있던 팔 인(八人) 중 구 척 거구의 청년이 고개를 들었다.
 바로 철붕이었다.
 “사부님의 명을 받들어 구 사형(九師兄)을 찾을 수는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노인이 바로 천무제군이라는 말이 아닌가?
 당금 천하를 한 손에 휘어잡은 대웅주(大雄主).
 “하나······ 사형은 이미 폐인이 된 몸이었고······ 결국······ 제자를 피해 어디론가 다시 떠나셨습니다······.”
 바람도 없는데 천무제군의 허연 눈썹이 푸르르 경련을 일으켰다.
 “으음······ 결국······ 나를 떠났단 말인가?”
 강퍅한 입꼬리가 이지러지며 무서운 긴장감이 감도는 침음을 발했다.
 “못난 놈······ 그만큼 방황했으면 되었을 테지······.”
 꽈악, 피라도 쥐어짜낼 듯 뒷짐 진 주먹을 움켜잡았다.
 “이는 하늘이 나 독운(獨雲)을 버리심인가! 무림 정도를 버리심인가. 천하에는 무림 정도 멸망이 일각, 일각 숨가쁘게 다가오고 있거늘······ 정작 그것을 막을 수 있는 단 하나의 인간이 폐인이 되어 버리다니······.”
 노안(老眼)에 처절하리만치 무서운 분노가 뿌려졌다.
 철붕을 위시한 팔 인(八人).
 그들은 통곡을 터뜨릴 듯한 심정이 되었다.
 그리고 또 침묵······.
 숨가쁜 침묵이 계속되었다.
 이윽고 천무제군은 천천히 등을 돌렸다.
 두 눈에서 서릿발 같은 정광이 폭사했다.
 “아무튼 이제는 더 이상 어쩔 수 없다! 이 모두가 나 독운이 못난 탓······ 죽음으로 무림 운명을 옥쇄(玉碎)하는 수밖에······.”
 옥쇄!
 “혈붕!”
 팔 인 중 좌측 호상(虎相)의 위맹한 청년이 황급히 일어섰다.
 “사부! 하명하십시오.”
 “일러준 대로 대막(大漠) 광풍사(狂風寺)로 가라!”
 “명을 받자옵니다!”
 호상의 청년은 황급히 실내에서 사라졌다.
 천무제군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독붕(毒鵬)!”
 두 번째 유사(儒士) 차림의 수려한 청년이 일어섰다.
 “명을 받자옵니다.”
 “신강(新疆) 천도문(天刀門)으로 가라!”
 그 역시 급급히 사라졌다.
 천무제군은 빠르게 호명하기 시작했다.
 “천붕(天鵬)! 서장(西藏) 포달랍궁(包達拉宮)으로 가라.”
 “금붕(金鵬)! 천축(天竺) 홍황이교(紅荒異敎)를 찾아라.”
 “화붕(火鵬)! 너는 곤륜(崑崙)으로 가라!”
 “뇌붕(雷鵬)! 무당(武當)으로 가라!”
 도대체 천하에 무슨 일이 일어나려고 이러는 건가?
 지금껏 천무제군이 호칭한 육 인(六人).
 그들은 분명 천무제군의 제자들이자 하나같이 천무제의 초절정고수들로서 천하에 그 무서운 용명을 떨치는 십대천왕들이 아닌가?
 십대천왕!
 헌데 그들이 천무제를 떠났다.
 그것도 새외와 중원을 전부 통틀어 당금 천하최강의 방파들로 지칭되는 곳으로.
 신강 천도문!
 천축 홍황이교!
 서장 포달랍궁!
 대막 광풍사!
 무당!
 곤륜······.
 도대체 왜인가?
 분명 무슨 일인가 일어나려 하고 있다.
 천무제군은 여전히 서릿발 같은 기염이 토해지는 눈으로 그들을 응시하며 입을 떼었다.
 “철붕!”
 일순 철붕은 가볍게 몸을 떨며 일어섰다.
 “너는 룡아(龍兒)와 함께 십대천왕 중 가장 인후한 성품을 지니고 있다. 소림으로 가라! 기한은 육 개월······ 너의 책임이 가장 무거움을 알아야 한다.”
 기한(期限).
 그 육 개월은 무엇을 뜻함인가?
 철붕은 긴장된 표정으로 급급히 부복대례를 취했다.
 “결코 사부님을 실망케 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떠났다.
 끝으로 천무제군은 백의궁장여인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의 눈에 가공할 분노가 떠올랐다.
 “못된 년······!”
 이게 대체 웬일인가?
 무림의 대웅주인 그의 입에서 욕설이 다 튀어나옴은······.
 뿌드득!
 이를 갈았다.
 “너로 인해서······ 장차 무림 정도가 멸망(滅亡)에 처할 지상최대(地上最大)의 위기를 맞았음을 아느냐!”
 호통!
 벼락을 맞은 듯 군림전 전체가 와르르 뒤흔들렸다.
 천무제군은 눈이 벌겋게 충혈되고 백미(白眉)가 빳빳이 곤두섰다.
 살인적인 분노가 들끓고 있는 것이다.
 “들어라, 천희! 나는 네가 결코 내 딸이라 해서 살려둔 게 아니다.”
 딸!
 “너로 인해서 룡아(龍兒)는 폐인이 되었다. 너를 지금껏 살려둔 것은 룡아가 그렇게 된 지금 백분의 일이라도 그를 따를 수 있는 재질을 지닌 게 너뿐이기 때문이었다.”
 실로 엄청난 말이었다.
 그렇다면 서문천희가 그녀였단 말인가?
 천무제군은 시퍼런 비수 같은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보며 뻣뻣이 안면을 굳혔다.
 “책임을 지도록 해라! 당장 연공실로 내려가 본 문의 모든 무공을 극한(極限)까지 익히도록!”
 천천히 등을 돌렸다.
 “가거라! 만약 육 개월······ 그동안 모든 것을 익히지 못한다면 그때는 이 아비의 손에 죽을 것이다!”
 무서운 말[言].
 ― 아비의 손에 죽을 것이다.
 이 무슨 끔찍한 뜻이란 말인가?
 세상에 이런 엄청난 사단(事端)이 벌어지다니······.
 그것도 천하정도무림의 최대 성역 천무제에서······.
 백의궁장여인 서문천희.
 그녀는 비로소 고개를 들었다.
 순간 세상의 모든 것이 빛을 잃었다.
 이럴 수가······!
 천하에 이렇게 절미절륜(絶美絶倫)한 여인이 존재하다니······.
 십전십미(十全十美).
 아름답다.
 더 이상 어느 말도 소용이 없었다.
 그 눈······ 그 코······ 그 입······ 그 모습······.
 도저히 표현조차 할 수 없었다.
 두 눈에는 축축이 이슬이 고여 있었다.
 “아버님······!”
 그녀는 애간장이 저미는 이 한마디를 간신히 남겼다.
 그리고 실내에서 사라졌다.
 순간 털썩, 천무제군은 허물어지듯 태사의에 몸을 허물어뜨렸다.
 이 순간 그의 모습은 십년이나 더 늙어 보였다.
 “룡아······!”
 땅이 꺼질 듯한 개탄을 흘렸다.
 천하웅주 천무제군······!
 대관절 무엇이 그를 이토록 권태롭게 만든단 말인가?
 헌데 이때 문이 열리며 또 다른 한 명의 백의소녀가 들어왔다.
 사르르······.
 눈부시게 아름다운 미모.
 그녀는 바로 철붕과 함께 류소룡을 찾아왔던 백의소녀가 아닌가?
 한비라고 불린······.
 그런 그녀의 눈에는 한가득 비애가 맺혀 있었다.
 “아빠.”
 대뜸 그녀는 천무제군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이 또한 상상치도 못한 일······.
 그녀는 지금 천무제군을 무엇이라 불렀는가?
 소녀는 섧디섧게 흐느꼈다.
 “흑흑······ 오빠가······ 떠났어요······!”
 그녀의 이름은 바로 서문한비(西門韓琵)였다.
 천무제군의 딸이며, 서문천희와는 자매이고 또한 십대천왕의 한 명인 것이다.
 천무제군은 지친 몸으로 그녀를 다독거렸다.
 “비아(琵兒) 녀석, 무엇 때문에 우느냐? 룡아는 또다시 돌아올 터인데.”
 단 하나의 염원이었기에 말했을까?
 서문한비는 더욱 섧게 울었다.
 “흑흑흑······ 소녀도 그렇게 믿어요. 오빠는 돌아오실 것이라고······ 그리고 또다시 옛날처럼 한비를 귀여워해 주실 것이라고요······ 엉엉······!”
 천무제군은 지그시 눈을 감으며 탄식을 토했다.
 ‘비아······ 너도냐······? 너도 어느새······ 사랑의 아픔을 배웠느냐······!’
 미칠 것만 같은 심정, 그것이 바로 천무제군의 심정이었다.
 사락······ 사락······.
 눈[雪].
 창 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다.
 
 ***
 
 기련산(起蓮山).
 밤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었다.
 한데 문득 한 줄기 핏빛 섬광이 유성(流星)처럼 허공을 가르지 않는가?
 파― 우― 웅!
 쏴아아아!
 창궁(蒼穹) 삼백 장 상공에 까마득히 번갯불같이 날아가는 핏빛 섬광.
 그것은 믿을 수 없게도 사람이었다.
 환영분광(幻影分光)······.
 무공의 극한(極限).
 신의 경지에 이르러야 비로소 가능하다는 전설 속의 경공술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경악!
 도저히 믿을 수조차 없었다.
 당금 천하에 이같이 무서운 고수가 존재하다니······!
 그의 무공은 실로 무림웅주 천무제군조차 따르지 못하리라!
 신모곡(神母谷).
 높이 일만 장을 자랑하는 기련산맥 중에서도 가장 높고 험악하여 비천(飛天)하는 독수리조차 오르지 못한다는 천고(千古)의 절지(絶地)······.
 이 가공할 불가사의의 비경(秘境)조차 인영은 거침없이 통과하고 있었다.
 가공가경(可恐可境).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일순 인영은 별안간 수백 장 허공에서 벼락같이 신모곡의 절지로 급강하했다.
 휘이이잉······!
 마치 섬전(閃電)이 번쩍 내리꽂히는 것 같았다.
 한데 이것은 또 무슨 가공할 사단(事端)인가?
 노인(老人).
 그는 바로 접천애에서 시체를 부리던 그 귀면추악(鬼面醜惡)한 괴노인이 아닌가?
 품에는 여전히 류소룡의 피투성이 몸이 안겨져 있었다.
 도대체 그렇다면 이 괴노인의 정체와 무공 정도는······?
 이젠 사람이라고 믿을 수조차 없다.
 하나 그의 표정은 여전히 쫓기듯 어떤 절박감으로 가득 찼다.
 “크흐흐흐······ 놈! 마침내 놈이 나타났다.”
 잇따라 그는 쾌속무비하게 기암괴석(奇巖怪石)으로 뒤덮인 신모곡의 묘지로 들어갔다.
 “급하다!”
 초옥(草屋).
 빙설절지(氷雪絶地) 눈 덮인 신모곡의 한켠에 은밀스럽게 숨겨진 초옥이었다.
 불조차 켜지지 않은 어둠침침한 실내에 세 명의 노인이 마주앉았다.
 헌데 사이(邪異)하다.
 세 노인.
 그들의 일신에는 하나같이 피를 말리는 가공할 살기가 뭉클뭉클 피어오르지 않는가?
 그 속에 심장이 짓구겨지는 공포가 머물렀다.
 일순 세 노인 중 하나가 숨막히는 탁음을 발하며 탁자 모서리를 꽉 움켜쥐었다.
 “크으으······!”
 푸스스······!
 탁자는 단숨에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천독(天毒), 그 말이 사실이냐? 정녕 그놈이 움직이기 시작했더냐?”
 천독이라 불린 노인.
 바로 류소룡을 안아 온 추악한 괴노인이었다.
 화― 악!
 두 눈에서 불덩어리 같은 시퍼런 섬광이 길길이 폭사해 나왔다.
 “크흐흐흐흐······ 틀림없소, 대사형(大師兄)······! 내가 부리던 강시(彊屍)들이 일순간에 핏물이 되어 녹아 버렸소. 이게 무엇을 뜻하오?”
 부르르!
 순간 대사형이라 불린 노인의 몸이 처절한 경련을 일으켰다.
 “흐흐흐······ 부시천살제어공(腐屍天殺制御功)! 틀림없군. 크흐흐······ 마침내 최후의 일전(一戰)이 도래했는가?”
 뿌드득!
 살벌하게 이를 갈았다.
 “으······! 천기(天氣)! 그 더러운 놈을······!”
 두 눈에 끔찍스러우리만치 무서운 분노가 어렸다.
 “좋다! 급기야 올 것이 온 셈······ 헌데 안고 온 애송이는 뭐냐?”
 오싹 소름 끼치는 무서운 녹광(綠光)이 추면노인의 눈에서 길길이 쏟아졌다.
 “훗훗훗훗······! 그것만은 기뻐해야 할 거요. 천하에서 천기를 죽일 수 있는 유일한 인간······ 크훗훗······ 우리가 백년을 찾아 헤맨 단 하나의 절대기재요.”
 홱―!
 순간 두 노인의 안색이 크게 대변했다.
 “삼양신맥(三陽神脈)! 천독, 그게 사실이냐?”
 “크핫핫······! 그렇소. 끝내 찾아내고야 말았소!”
 콰르릉! 콰······ 릉!
 초옥이 한순간 허물어질 듯 뒤흔들렸다.
 “그럴 수가······!”
 대사형이라 불린 노인의 두 눈에 미칠 듯한 희열의 빛이 떠올랐다.
 하나 그것도 잠시, 지금껏 묵묵히 침묵을 지키던 세 번째 괴노가 피식 실소를 터뜨렸다.
 “훗훗훗······ 삼양신맥······! 천지간(天地間) 만물(萬物)의 가장 열양(熱陽)한 정기(精氣)를 받고 태어난 천강지체(天剛之體)······! 하지만 틀렸어.”
 무섭도록 냉혹한 표정.
 손가락으로 한 자루 녹슨 철검(鐵劍)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일순 흠칫 두 노인의 표정에 놀라움의 빛이 떠올랐다.
 “천검! 무슨 뜻이냐?”
 “훗훗훗······ 너무 늦었단 말이오. 천기······ 놈이 부시천살제어공까지 익혔다면 늦어도 내일 아침이면 행동을 개시할 것······, 천마추종술(天魔追從術)······ 크훗훗······ 곧 우리를 찾을 것이오. 그 기한은 고작 석 달, 훗훗훗······ 헌데 그 짧은 기한으로 무엇을 어쩌겠다는 말이오?”
 이 말이 쐐기가 되어 버렸는가?
 “으음!”
 두 노인의 안면은 절망으로 굳어져 갔다.
 하나 곧 추면노인이 섬칫하게 이를 갈았다.
 “그러나 포기할 수는 더욱 없다. 어차피 놈이 나타나면 모든 게 끝장날 것! 그럴 바에 소제는 천마기환술(天魔奇換術)에 모든 것을 걸겠소!”
 순간 두 노인은 낯빛이 허옇게 변했다.
 “무······ 무엇이!”
 “기환술(奇換術)!”
 천마기환술―!
 그들은 이 수법의 무서움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마교(魔敎)의 비전(秘傳)으로써 스스로의 내력(內力), 즉 단(丹)을 모조리 타인에게 쏟아 붓는 끔찍한 수법이었다.
 기환술을 시전한 인물은 피와 내력이 모조리 고갈되어 미라처럼 말라죽고 만다.
 “천독! 미쳤느냐!”
 두 노인은 이구동성으로 부르짖음을 터뜨렸다.
 하나 추면노인의 표정은 조금도 흔들림이 없다.
 “크흐흐흐흣······ 정상이오. 오히려 너무 정상이라 걱정이오. 사형을 생각해 보시오. 우리가 지금 힘을 합쳐서 그를 어쩔 수 있다고 생각하오?”
 샐룩.
 두 노인의 안면 근육이 무참하게 일그러졌다.
 “그러나······ 기환술을 시전해도 마찬가지다. 놈은 우리의 말라죽은 시체를 보고 즉시 어떤 일이 발생했는지 알고 만다.”
 “으핫핫핫······!”
 추면노인이 미친 듯한 득의의 웃음을 터뜨렸다.
 “부질없는 걱정······ 사형, 소제는 지금 말라죽을 정도로 그 수법을 전개하자는 뜻이 아니오!”
 “······?”
 “핫핫······ 우리의 내력 중 각자 삼분지일만 쓰는 것이오. 그리고 놈을 맞아 사력(死力)을 다해 싸우다 죽어 주기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셈. 놈은 그동안 우리의 공력(功力)이 얼마나 증강되었는지 모르니 틀림없이 넘어갈 거요!”
 일순 두 노인의 눈빛이 미묘하게 돌변했다.
 “죽어······ 주기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풋······!”
 “크하하하하하핫······!”
 그들은 배를 움켜잡고 폭소를 터뜨렸다.
 “죽어 주기만 하면 된다? 우하핫······ 크하하하하하핫······!”
 “하하하하핫······ 좋다. 매우 좋다······ 하하하하핫······!”
 미칠 듯한 희비(喜悲)가 엇갈린 웃음이었다.
 하나 이게 진정 사람의 웃음인가?
 콰르르르······ 릉······!
 그것만으로 신모곡의 천지(天地)가 벼락을 맞은 듯 뒤흔들리고 있으니······.
 어떤 운명······.
 이것이 그 시작이었다.
 
 
 3장 혈의역천팔대마신(血衣逆天八大魔信)
 
 
 얼마나 흘렀을까?
 류소룡은 짙은 약 내음을 맡으며 마침내 의식을 되찾았다.
 그의 눈에 가장 먼저 비친 광경은 굵직한 통나무로 얼기설기 엮어진 어느 실내의 천장이었다.
 ‘여기가······ 어딘가?’
 통 아무런 기억도 나지 않았다.
 온몸이 손가락 하나 움직일 기운도 없는 듯 나른했다.
 ‘그렇지······! 철붕, 그가 찾아왔었어. 하나 이런 폐인이 된 꼴로······ 사부님을 다시 뵐 면목이 없었다. 산신묘에서 나와 며칠인가······ 무작정 걸었지······.’
 류소룡은 악몽 같았던 기억을 되새기려고 애썼다.
 ‘그러다가 이리 떼를 만나······ 헉!’
 순간 류소룡은 머리에 찬물을 확 끼얹은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후다닥, 몸을 일으켰다.
 “아아악―!”
 하지만 찰나 그는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털썩 쓰러지고 말았다.
 고통!
 도저히 상상치도 못할 아픔이 뼛골까지 쑤시고 들어왔던 것이다.
 그 가공스런 아픔.
 눈이 찢어질 듯 휩뜨이고 온 전신이 솜털까지 푸들푸들 떨렸다.
 쾅―!
 헌데 이때 문이 거칠게 열리며 세 명의 괴노인이 불쑥 들이닥치는 게 아닌가?
 대뜸 고막을 찌르는 괴성이 터졌다.
 “크훗훗······ 꼬마, 의식을 되찾았는가!”
 순간 류소룡은 자신도 모르게 외마디 비명을 내질렀다.
 “으― 헉!”
 그 끔찍하던 고통마저 잊어버렸다.
 세 노인.
 세상에 이토록 무서운 모습이 있는가?
 한 명은 오 척 단구에 온 전신이 썩어 문드러져 피고름이 뚝뚝 떨어지고 있다.
 다른 한 명은 섬칫할 정도로 냉혹한 안면에 열십자 형상의 긴 칼자국이 부욱 그어져 울룩불룩 솟은 흉터가 시뻘건 지렁이처럼 꿈틀거리고 있다.
 또 한 명.
 그는 그래도 조금 나은 편이었다.
 하나 숫제 미라라 할 만큼 무섭도록 마른 얼굴에 퀭하니 패여 들어간 눈.
 살벌할 정도로 돌출된 광대뼈 밑에 시퍼런 서슬이 감도는 입술을 가졌다.
 도대체 사람의 모습이라 할 수 없었다.
 ‘으······!’
 류소룡은 온몸에 우둘투둘 소름이 돋았다.
 그러나 곧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세 노인의 눈빛에 전혀 적의가 없음을 안 것이다.
 문득 피고름이 줄줄 흐르는 괴노가 허연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흐흐흐흐······ 애송이놈! 우리들의 모습을 보고 놀랐느냐?”
 “큭큭큭······ 하나 네놈도 별로 나은 꼴은 아닌데 뭘 그래?”
 순간 류소룡은 그만 실소를 터뜨렸다.
 “풋······!”
 그렇다.
 지금 자신의 모습 또한 결코 그들에 비해 나은 꼴이 아니었다.
 “크핫핫핫핫핫하······!”
 잇따라 네 사람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일제히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동병상련(同病相憐)이었을까?
 류소룡은 그 폭소 속에 자신의 모든 것을 파묻을 수 있었다.
 왠지 이 귀신도 놀라 달아날 만한 괴노들에게 더할 수 없는 친근감을 느낀 것이다.
 잠시 후 류소룡은 평정을 찾고 정중히 입을 떼었다.
 “소생을······ 구하신 게 세 분 노선배님들이셨습니까?”
 칼자국이 그물처럼 얽힌 노인이 섬칫하게 웃었다.
 “우훗훗······! 아니면, 또 누가 있느냐?”
 류소룡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를 악물고 상체를 일으켰다.
 ‘우······!’
 다시 뼈가 찢어지는 듯한 무서운 고통이 골수(骨髓)를 후벼팠다.
 하나 티끌만치도 겉으로 내색하지 않고 세 노인을 향해 포권대례를 취했다.
 “미거한 후배 류소룡······ 기지사경(幾至死境)에서 구해 주신 세 분 노선배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런 그의 얼굴에는 구슬 같은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일순 세 노인의 안면에 흠칫 경악의 기색이 떠올랐다.
 ‘지독한 놈이로군. 저런 몸으로······!’
 안면이 썩어 문드러진 괴노가 짐짓 정색을 하며 입을 떼었다.
 “훗훗훗······ 류소룡! 매우 좋은 이름이다. 헌데 너는 감사하다는 그 한마디로 모든 것을 때우려는 속셈이냐?”
 류소룡은 내심 움찔했다.
 “무슨······ 뜻입니까?”
 “핫핫핫······! 녀석, 몰라서 묻는 것이냐? 노부는 이리 떼에게 뜯겨 죽음 직전까지 간 네 녀석을 천신만고(千辛萬苦) 끝에 회생(回生)시켰다.”
 “······!”
 “훗훗훗······ 그러니 그 은혜를 갚아야 할 것 아니냐?”
 류소룡은 순간 너무나도 아연하여 입을 쩍 벌리고 말았다.
 너무도 노골적인 것이다.
 아니, 이것은 차라리 보답을 받기 위해서 자신을 구했다는 말과 같지 않은가?
 ‘도대체 이 노인들은······?’
 그러나 왠지 역겨운 느낌이 들지 않았다.
 류소룡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 은혜······ 기필코 결초보은(結草報恩)하겠습니다. 하나 어떻게 대은을 다 갚아야 할지 모르겠군요.”
 순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일까?
 세 노인의 눈에 번쩍 불똥이 튀었다.
 십자 흉터의 노인이 입가에 무시무시한 웃음을 띠었다.
 “훗훗훗! 아이야, 그게 진심이라면 오직 한 길이 있긴 하다.”
 류소룡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불안한 예감이 엄습했다.
 “말씀하십시오.”
 “훗훗훗······ 무척 어려운 일이지. 어쩌면 네가 이리 떼에게 물려 죽을 뻔한 것보다 더 처참한 지경에 놓일지도 모르는······.”
 씰룩, 그의 십자 검상이 소름 끼치게 꿈틀거렸다.
 안면에 허옇게 살기가 부서졌다.
 “따라서 어쩌면 노부들의 부탁일 수도 있다. 너는 우리를 대신해서 한 사람을 죽여라!”
 순간 류소룡은 덜컥 심장이 멎는 듯했다.
 “사람을······!”
 묵묵히 침묵하던 미라처럼 살벌한 노인이 대뜸 말을 받았다.
 “그렇다. 사람이지! 하나 이 일의 결정은 네가 한다. 결코······ 강요하진 않겠다.”
 류소룡은 안면이 싸늘하게 굳어졌다.
 “으음······, 하면 그는 누구며 어떤 인물입니까?”
 뿌드득!
 세 노인의 이빨이 일시에 갈렸다.
 “훗훗훗······ 그놈은 짐승만도 못한 놈이다! 별호는 천기신(天氣神)!”
 찰나지간 류소룡은 자신도 모르게 처절무비한 외마디 부르짖음을 토했다.
 “아앗!”
 머리가 빠개질 듯한 충격.
 순간 칼날 같은 엄청난 공포가 목을 파고 틀어박혔다.
 천기신(天氣神)!
 이 무슨 까무러칠 악마의 성명인가?
 이백 년 전.
 무림천지를 완전히 피로 씻고 전설 속에 사라졌던 혈의역천팔대마신(血衣逆天八大魔神) 중의 하나.
 공포! 경악!
 세상천지가 한순간 몸서리쳤다.
 혈의역천팔대마신!
 피의 그 이름······ 지옥의 저주를 받은 악마······!
 류소룡은 그대로 심장이 짓이겨지는 듯한 충격을 받고 외침을 터뜨렸다.
 “천······ 천기신! 설마······ 설마······ 노선배님들께서는 저 혈의역천팔대마신 중 천기신을 말씀하시는······?”
 “틀림없다! 놈은 틀림없는 혈의역천팔대마신 중 하나이다!”
 찰나 류소룡은 낯빛이 하얗게 죽어 버렸다.
 이 무슨 엄청난 일인가?
 무림의 가장 진저리쳐지는 혈사의 무서운 전설.
 그 피의 전설이 살아 있다.
 이백 년 동안 핏발 곤두선 혈안(血眼)을 부릅뜨고 지옥 속에서 신음해 왔는가?
 류소룡은 한순간 온 전신이 쭉쭉 찢어져 나가는 듯한 끔찍한 충격을 받았다.
 세 노인.
 류소룡은 비로소 그들의 의복이 낡고 바래기는 했지만 핏빛 선연한 적의(赤衣)임을 알아본 것이다.
 모발이 곤두섰다.
 “그······ 그렇다면······ 세 분 노선배님께서는······?”
 미라처럼 강퍅한 괴노인의 입술에 섬칫한 웃음이 일었다.
 “훗훗훗······ 그렇다. 노부는 천공신(天恐神)이라 불린다.”
 십자 검상의 괴노.
 “흐흐흐······ 노부는 천검신(天劍神)이지!”
 피고름이 뚝, 뚝, 흐르는 괴노······.
 “천독신(天毒神)이다!”
 이 무슨 악마의 장난인가?
 하늘의 저주를 받아 마땅한 살인귀, 혈의역천팔대마신······.
 이들이 아직 살아 있다.
 그들로부터 구원받아 또다시 사람의 목숨을 흥정하고 있다.
 류소룡은 순간 숨이 멎을 것 같았다.
 마침내 신비에 휩싸여 있던 세 괴노인의 정체가 밝혀진 것이다.
 그 엄청난······.
 “크크······ 크······ 왜? 아이야, 두려우냐?”
 천검신이었다.
 뚝!
 류소룡은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그렇습니다. 두렵습니다, 숨이 막힐 만큼······!”
 “훗훗훗······ 솔직해서 좋군. 그러나 안심해도 좋다. 너를 해칠 마음은 추호도 없다.”
 류소룡은 부르르 몸서리쳤다.
 ‘내 자신의 죽음······ 그것은······ 조금도 두렵지······ 않소. 하나······ 당신들이 저지른 이백 년 전의······ 혈사······ 소름이 끼치오······.’
 내심 소리쳤다.
 천공신이 입을 열었다.
 “어찌할 테냐? 우리들의 부탁을······ 들어줄 테냐?”
 류소룡은 다시금 몸을 떨었다.
 “천기신을······, 알 수 없군요. 그렇다면······ 그는 노선배님들의······ 동료가 아닙니까? 헌데 어째서 그를······!”
 화르르······.
 천독신의 눈에서 엄청난 살광(殺光)이 뿜어져 나왔다.
 “으훗훗······ 그렇다. 천기······ 놈은 한때 노부들의 사제(師弟)였다. 하나 지금은 아니다. 형제들을 죽이고 우리를 이 꼴로 만든 놈!”
 빠드득!
 천공신이 이를 갈았다.
 찰나 류소룡은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사······ 사제! 그렇다면 노선배님들 여덟 분은······ 모두 사형제지간(師兄第之間)이셨단 말씀입니까?”
 엄청난 경악이 전신을 휘감았다.
 “크흐흐흐······ 틀림없다. 우리는 모두 동문 사형제들이었지. 세칭(世稱), 동중동(洞中洞)의 출신이다.”
 순간 류소룡은 다시금 기절할 듯 놀라 외마디 부르짖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도······ 동중동!”
 혈의역천팔대마신과 동중동.
 계속되는 충격.
 실로 이 무슨 끔찍스런 노릇이란 말인가.
 ― 강호삼정(江湖三井)!
 수천 년 무림사에 누구도 오를 수 없는 세 곳의 비경이 있으니 이를 일컬어 강호삼정이라 하고, 곧 천상천(天上天), 동중동(洞中洞), 지혈지(地穴地)라 명칭한다.
 그중 천상천에 오르면 정천패왕(正天覇王)이 될 것이요,
 동중동에 달(達)하면 마종지군(魔宗之君)이 될 것이며,
 지혈지에 이르면 사중사마(邪中邪魔)가 될 것이다.
 이는 천상천에 정중정의 십만정종비학(十萬正宗秘學)이 총 집대성되어 있기 때문이요,
 동중동에 십만마종이 집대성되었기 때문이요,
 지혈지에 사중사의 십만사공이 집대성되었기 때문이다.
 하나 뉘 있어 두 곳 비경(秘景)에 이르면 곧 무림 절대무이(絶代無二)의 신이 되리라.
 하나의 전설!
 하나의 공포!
 하나의 신비!
 모조리 파헤쳐지고 있다.
 류소룡은 혼백(魂魄)이 깨지는 듯했다.
 “믿을 수······ 없다! 강호삼정······ 그것이 사실이었다니······.”
 머리가 빠개지는 듯 아파 왔다.
 천공신이 섬칫하게 웃었다.
 “훗훗훗······ 믿어라. 강호삼정은 틀림없이 있다!”
 ‘그래······ 그랬었구나. 마중마(魔中魔)의 후예(後裔)들······ 그래서 이들의 무공이 그토록 무서운 것이었구나.’
 이렇게 귀결지어졌다.
 ― 이백 년 무림 최악의 가증할 혈사(血史)는 동중동에서 빚어졌다.
 ‘그럴 수가······.’
 류소룡은 눈앞이 깜깜해졌다.
 입술을 깨물며 질문하였다.
 “그렇다면 나머지 천상천과 지혈지는······?”
 “훗훗훗······ 물론 있다. 그곳이 어딘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치가 떨렸다.
 ‘무서운 일······ 그렇다면 강호삼정은 모조리 언제 터질지 모르는 무림 최대의 화약고······.’
 뒤따라 삭막한 침묵이 실내에 맴돌았다.
 이윽고 천독신이 다시 입을 열었다.
 “훗훗······ 아이야, 노부들은 지금 네 심중에 많은 의문이 있음을 알고 있다. 그럼 우선 노부들이 천기를 죽여 달라는 이유부터 말하마.”
 천공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본시······ 우리 동중동은 단맥(單脈)으로 이어져 왔다. 하나 노부들의 대(代)에 이르러 처음으로 여덟 명이 되었지.”
 “······.”
 “이유는 노부들의 사존(師尊)께서 십만마종의 총 집대성인 천마팔공(天魔八功)을 한 몸에 이어받을 만한 천하기재(天下奇才)를 찾지 못한 데에서 비롯되었다.”
 류소룡은 몸서리쳐지는 공포 속에서도 불쑥 의문이 솟았다.
 “천마팔공이란 무엇을 뜻하는 것입니까?”
 “훗훗훗······ 각각 륜(輪), 검(劍), 장(掌), 지(指), 독(毒), 조(爪), 색(色), 환(幻)으로 나뉘어진다. 해서 사존께서는 어쩔 수 없이 그중에서도 자질이 좋다 싶은 일곱 명의 제자를 차례로 받아들이셨다. 그리고 그들에게 각각 한 가지의 절기를 가르치셨지.”
 “으음······.”
 “훗훗······ 하나······ 사존께서는 그 직후 곧 일생일대의 실수를 하셨음을 한탄하시게 되었다. 이유는 뒤늦게서야 천마팔공을 모조리 이어받을 만한 기재를 찾아내신 것이다. 그놈의 이름이 바로 천기(天氣)!”
 말하는 천독신의 안면에 무서운 격동이 어렸다.
 “훗훗훗······ 하지만 엎질러진 물! 사존께서는 한탄하셨으나 어쩔 수 없이 그를 여덟 번째 제자로 맞아들이고······ 천마팔공 최대의 절기(絶技), 천마환(天魔幻)의 수법만을 전수할 수밖에 없었다.”
 “천마환······.”
 “훗훗훗······ 그렇다. 세상에서 무엇이든 부수어 버릴 수 있고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잔인(殘忍)의 칼[刀]······ 흐흐······ 헌데 그놈이 흑심(黑心)을 품을 줄이야······.”
 세상에서 무엇이든 부수어 버릴 수 있고,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다.
 천마환!
 잔인의 칼!
 실로 가공한 말이었다.
 “훗훗훗······ 아무튼 그 이후, 사존께서는 우리 여덟 사형제에게 서로 피를 흘리지 않기를 간곡히 당부하시고 우화등선(羽化登仙)하셨다.”
 문득 천독신의 안면에 착잡한 빛이 어렸다.
 “그 직후 우리 사형제들은 중원으로 뛰어나왔다. 흐으······ 그때부터······ 실로 인간이라 할 수조차 없을 만치 무자비한 혈겁(血劫)을 자행했었다.”
 한탄.
 이는 무엇을 뜻하는가?
 천독신은 설레설레 침통하게 고개를 저었다.
 “이유도 있을 수 없고······ 목적도 있을 수 없었다. 그저······ 미친놈들처럼 눈에 보이는 것을 죽이고 또 죽였을 뿐······.”
 오싹!
 류소룡은 소름이 끼쳤다.
 그렇다.
 이것은 혈의역천팔대마신에 얽힌 신비 중의 하나가 아닌가?
 석년(夕年).
 그들은 차마 인간으로서 자행할 수 없는 혈사(血史)를 천하에 뿌려 놓았다.
 팔 인의 살인귀들은 무조건 눈에 보이는 사람을 격살했다.
 이유도 없다.
 무조건적인 살해, 그뿐이었다.
 왜였던가?
 천검신이 부르르 몸을 떨며 침통하게 입을 떼었다.
 “아이야······ 그것만은 우리도 지금 뼈저리게 후회하고 있다. 핑계라고 생각하고 들어라······ 당시 우리는 천마팔공을 완전히 소화시키지 못한 상태였다. 때문에······ 십만마종(十萬魔宗)의 가공할 마성(魔性)에 빠져······ 본의 아니게 그 엄청난 악행(惡行)을 저지르고 말았던······ 것이다.”
 하나의 의문이 풀어졌다.
 그랬던가?
 그래서 이들은 그토록 가공할 저주를 천하에 남겼던가?
 하지만 이 말은 류소룡에게 또다시 하나의 공포가 되었다.
 전율(戰慄)스런······.
 ‘믿을 수 없다······ 십만마종······! 도대체 그 마공의 위력이 어느 정도이기에 사람의 심성(心性)까지 뒤바꾼단 말인가······!’
 허나 믿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만큼 그들의 혈사는 인간의 상리를 벗어난 터무니없는 것이었기 때문에.
 천독신은 계속 말을 이었다.
 죽음보다 진한 고뇌(苦惱)와 죄책감이 거기에 있었다.
 “휴우, 아무튼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 이후 우리는 천마팔공의 마성에 젖어 계속 저주받을 살겁을 일으켰다. 그런데 십만대산의 혈사(血史)가 있은 지 한 달 후, 실로 상상치도 못했던 사건이 터졌다.”
 “······!”
 “허허허······ 경악스럽게도 형제들 중 천지가 의문의 죽임을 당한 것이었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는 죽음······ 허허허, 처음에는 천상천(天上天)이나 지혈지(地穴地)의 출현인 줄로만 알았다.”
 너털웃음······.
 무한한 비애(悲哀)가 서리서리 얽혀 있었다.
 순간 류소룡은 바짝 긴장되었다.
 이백 년 무림혈사에 누구도 밝힐 수 없었던 팔대마신의 죽음과 실종이 마침내 밝혀지려는 순간이었다.
 우드득!
 천공신이 으스러지게 이를 갈았다.
 “훗훗훗······ 그것이 실책이었다. 이후에도 천장(天掌)이 또다시 의문의 죽임을 당했다, 아주 참혹하게······ 그리고······ 크흐흐······ 마지막으로 천조(天爪)가 당했을 때······ 그때서야 비로소 알았다. 세상에 다시없는 인면수심의 인간이 있음을······.”
 눈[眼].
 저주(咀呪), 통한(痛恨), 미칠 듯한 분노가 천공의 벼락인 듯 뿜어졌다.
 와들와들!
 모발이 모조리 거꾸로 곤두서고 전신이 사시나무처럼 흔들렸다.
 천공은 차라리 절규(絶叫)라 할 만치 처절하게 소리쳤다.
 “우우······ 그놈! 저주받을 짐승! 그 더러운 놈은 바로 천기였던 것이다.”
 마침내 밝혀졌다.
 하나의 신비!
 순간 류소룡은 마치 벼락을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그럴 수가······! 그렇다면 혈의역천팔대마신은······ 스스로 자멸(自滅)의 길을······! 천하에 이런 일이······ 그 누구도 추측할 수 없었던 일이······!’
 정녕 상상치도 못할 비사(秘事)······.
 혈의역천팔대마신은 자멸했다.
 하늘의 뜻이었던가?
 너무나도 악독했던 그들이었기에······.
 이렇게 억겁(億劫)의 분노를 안은 채 영원히 지상(地上)에서 사라졌어야 했던 것일까?
 류소룡은 걷잡을 수 없이 몸을 떨었다.
 “그······ 그렇다면······ 당시 어째서 노선배님들은 힘을 합하여 그를 제거하지 않으셨습니까?”
 천독신이 입술을 악물었다.
 “크흐흐······ 때가 너무 늦었었어. 그것을 알았을 때는 놈이 이미 죽은 형제들의 비급을 탈취해······ 벌써 어느 정도 소화시키고 있었어. 불과······ 석 달의 사이······ 우리는 그놈의 적수가 될 수 없었다.”
 기이한 말이 아닌가?
 “그럴 수가······ 아무리 그렇다 해도 그는 혼자이고 남은 팔대마신은 네 분이 아니셨습니까?”
 천검신이 처절한 웃음을 지었다.
 “으훗흐······ 아이야! 그것은 네가 아직 본 동(洞)의 무공, 그 무서움을 몰라서 하는 소리다. 본시 본 동의 팔대마종(八大魔宗)은 한 사람이 두 종류 이상을 익힐수록 그 위력이 배가(倍加)된다. 따라서 그는 혼자였으나······ 이미 우리가 힘을 합친 것보다 더욱 가공한 수위에 있었어.”
 “훗훗······ 물론 우리들이 그대로 꽁무니를 뺀 것은 아니었다. 천산(天山) 운중곡(雲中谷)에서 피비린내 나는 혈전(血戰)을 치렀다. 허나······ 그놈의 잔인(殘忍)의 칼, 천마환(天魔幻)······ 결과는 참패였다. 지금 노부들의 이 괴물 같은 모습도······ 그 패배의 대가였어······.”
 세상에서 무엇이든 부수어 버릴 수 있고,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다.
 천마환, 잔인의 칼······!
 류소룡은 간담이 서늘하게 식어 갔다.
 “하······ 하면 당시 천기신(天氣神)의 그 같은 저의는 무엇이었습니까?”
 천공신이 울음보다 더 참혹한 웃음을 지었다.
 “허허허······ 그 금수만도 못한 놈은······ 애초부터 우리 모두를 죽이고 천마팔공을 집약······ 마침내는 천상천, 지혈지까지 괴멸시킨 후 무림(武林)의 신(神)이 되고자 했었다.”
 “헛헛······ 헛! 그렇다. 또한 노부들이 아는 바로는······ 놈은 마침내 형제들을 죽이고 탈취해 낸 비공(秘功)을 완전히 연성했다. 앞으로 늦어야 일년······! 무림은 공전절후(空前絶後)한 혈겁에 뒤덮일 것이다. 천기······ 그놈에 의해······!”
 실로 엄청난 말이었다.
 ‘혈의역천팔대마신의 죽음과 실종 뒤에는 더욱 무서운 혈사의 장(章)이 숨겨져 있었다! 헌데 나머지 한 명의 팔대마신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것 또한 의문이었다.
 세 명의 마신들은 처참한 죽임을 당했고, 지금 그의 앞에는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입은 세 노인이 있다.
 남은 두 명 중 하나가 천기신이라면 또 다른 한 명은 과연 누구란 말인가?
 류소룡은 묻고 싶었지만 혹시라도 이들의 상처를 다시 건드리는 우를 범할까 봐 그만두기로 했다.
 언젠가는 알게 되리라는 확신 탓이기도 했다.
 세 노인도 입을 다물었고 실내에는 숨막히는 침통만이 가득 찼다.
 얼마나 지났을까?
 이윽고 류소룡은 다시 바짝바짝 타들어가는 입술을 열었다.
 “그 혈겁······ 막을 방도는 없습니까?”
 번― 쩍―!
 천공신이 번갯불같이 눈을 빛냈다.
 “없다! 하지만······ 수습할 방법은 한 가지 있지.”
 한 가닥 신광이 비친 셈인가?
 류소룡은 내심 가벼운 흥분을 느끼며 급급히 질문했다.
 “무엇입니까?”
 “훗훗훗······ 바로 네가 노부들의 무공을 이어받아 천기(天氣)를 죽이는 길뿐이다!”
 쿵―!
 폭탄 선언.
 정녕 상상치도 못한 발언이 아닌가?
 “십만마교(十萬魔敎)의 무공을······!”
 순간 류소룡은 아연실색해 버렸다.
 “훗훗훗······ 그렇다, 오직 그 길밖에 없다. 물론 천상천과 지혈지도 있지. 하지만······ 노부들은 결코 그들의 무공이 본 동의 천마팔공에 비해 높지 않다고 자부한다.”
 “······!”
 “천기, 그놈도 이 점을 알았기에 무림패왕(武林覇王)에 도전한 것이다.”
 “아이야! 우리의 제의를 들어라. 이것은 비단 노부들의 복수만을 생각해서가 아니다. 너를 천기의 숙적(宿敵)으로 키워······ 지난날 그 저주스럽던 혈사를 뿌렸던 무림에 조금이라도 속죄하고 싶은 것이다.”
 천독신이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류소룡은 확연히 느꼈다.
 ‘이들······ 비록 한때 마성에 젖어 인간 이하의 살인귀로 화했었지만······ 결코 악인(惡人)은 아니다······!’
 하나 그는 묵묵히 개탄했다.
 “허나······ 후배에게는 능력이 없습니다. 후배 같은 필부가······ 어찌 노선배님들도 마성(魔性)에서 헤어나지 못한 천마팔공을······ 더구나 이렇게 늦게 시작하여 어찌 천기신, 그자를 막을 수 있겠습니까?”
 일순 세 노인은 일제히 가가대소를 터뜨렸다.
 “으핫핫핫핫핫핫······ 아이야, 그것은 결코 우려할 요소가 아니다. 너는 절대 마성에 젖지 않는다.”
 류소룡은 흠칫 놀랐다.
 “무슨 뜻입니까?”
 천독신이 득의의 대소를 지었다.
 “핫핫핫핫······ 아직 모르고 있군. 본시 세상에는 인간의 정리(正理)를 벗어난 두 종류의 사람이 일세기(一世紀)에 한 명씩 태어난다.”
 “······.”
 “그중 하나는 천살지체(天殺之體)라 부르며 천지만물(天地萬物)의 가장 음한(陰寒)한 기운을 받고 태어난 구음절맥(九陰絶脈)을 이루지.”
 “······.”
 “훗훗훗······ 그리고 또 한 명은 우주만상(宇宙萬象)의 가장 뜨거운 정기(精氣)를 타고 태어나 삼양신맥(三陽神脈)을 지닌다. 이를 두고 선인(仙人)들은 흔히 천강지체(天剛之體)라 한다.”
 천살지체!
 천강지체!
 실로 신비스럽기 그지없는 말이었다.
 “훗훗훗······ 따라서 이 두 기재(奇才)의 힘은 무한(無限)하고 일단 그 신맥(神脈)이 뚫어지기만 하면 즉시 인중지왕(人中之王)이 될 수 있다.”
 인중지왕!
 엄청난 말이 아닌가?
 류소룡은 얼떨떨함을 금치 못했다.
 “그렇다면······?”
 “훗훗훗훗······ 아이야, 본시 천기 그놈이 천살지체를 타고난 인간이었다. 그리고······!”
 천독신은 희열에 찬 눈으로 똑바로 류소룡을 직시했다.
 “네가 바로 천강지체(天剛之體)다.”
 “그······ 그럴 수가······!”
 류소룡은 찰나 대경실색했다.
 “훗훗훗······ 틀림없다. 따라서 천기의 적수가 될 수 있는 인물도 천하에 오직 너뿐······ 훗훗······ 노부들은 벌써 백년 동안을 찾아 헤맸다.”
 실로 어마어마한 세월이 아닌가?
 “또한······ 모든 안배도 끝났다. 이제 남은 것은 오직 너의 결심뿐······.”
 이제 남은 것은 류소룡의 결심뿐이었다.
 ‘내가 과연 무림의 운명을 짊어질 그릇이 되는가? 한갓 사랑에 좌초(坐礁)되어 폐인이 되다시피 한 내가······.’
 휘휘류― 휘류류류류―!
 푸드드드드득······.
 창 밖에서 상쾌한 휘파람새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류소룡은 무거운 심정으로 시선을 돌렸다.
 ‘자신이 없다······.’
 시리듯 차갑고 맑은 겨울 하늘이 거기 있었다.
 울컥, 왠지 모를 슬픔이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지금 내가 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오직 응낙하는 길밖에 없다. 그래······ 천기······ 싸우다 죽겠다. 어차피 이리의 밥이 되었어야 했을 내가 아닌가?’
 결심했다.
 “후배······ 기꺼이 동중동의 전인이 되겠습니다.”
 순간 초조하게 류소룡을 지켜보던 세 노인의 만면에 미칠 듯한 희열이 뒤덮였다.
 동시 류소룡은 그 무서운 고통을 또다시 감수하며 입술을 깨물고 일어섰다.
 오체투지.
 급기야 사제(師弟)의 도리를 갖추는가?
 운명(運命).
 “말학(末學) 소룡이 세 분 사부님을 뵙습니다!”
 찰나 세 노인의 눈에서 앙천대소와 함께 억수 같은 눈물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으핫핫핫핫핫하······.”
 “장하다! 룡아, 십만마교(十萬魔敎)의 후예(後裔)여······ 핫핫핫핫핫핫······!”
 그 속에 이들은 백년(百年)의 한(恨)을 묻었다.
 “너를······ 너를······ 사부들은 중원 십팔만리 최강의 사나이로 만들리라!”
 눈물, 그것은 통한의 세월이었다.
 
 ***
 
 한 달.
 무섭게 빠른 것이 세월이었다.
 세 노인.
 그들은 한 달 만에 다시 머리를 맞댔다.
 한결같이 초조한 기색들.
 천독신이 무거운 표정으로 침음을 발했다.
 “으음······! 마침내 일을 결행할 때가 된 것 같소.”
 흠칫!
 일순 천공신과 천검신은 몸을 떨었다.
 “이렇게 빨리······!”
 천독신은 암울하게 고개를 저었다.
 “결코······ 빠르지 않습니다. 소제는······ 오히려 늦었다고 생각하오.”
 음성 속에 진한 서글픔이 배어 있었다.
 “룡아와 생활한 지 어느덧 한 달! 소제는······ 그전에 죽음이 무언지 몰랐소. 아니, 백여 년을 이 어둠 속에 파묻혀 몸부림치며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었소. 허나······ 이젠 점점······ 죽음이 두려워지고 있는 거요.”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살고 싶소. 살아서······ 녀석과 함께 정(情)을 나누며······ 오래오래 같이 있고 싶은 것이오.”
 이어 그는 고개를 꺾었다.
 반짝!
 순간 착각이었을까?
 이 가공할 혈의역천팔대마신의 눈자위에 한 방울 짙은 눈물이 고임은······?
 웃었다.
 “크흐흐······ 빌어먹을 운명! 죽고 싶을 때는 죽지 못하고······ 살고 싶어질 때 죽어야 하니······!”
 기구한 일······.
 천공신의 어깨가 가늘게 떨렸다.
 그 역시 허탈하게 웃었다.
 “헛헛······ 헛······! 하늘을 원망할 수밖에 없는가. 실은 우형 역시 이젠 살고 싶어졌다.”
 허연 백발이 올올이 곤두섰다.
 “허허······ 정녕 죽어야 하는가?”
 그들의 가슴속은 찢어지는 듯한 애환으로 메워졌다.
 기가 막힐 일이다.
 도대체 누가 그들을 희대의 살인마왕(殺人魔王) 혈의역천팔대마신으로 보겠는가?
 정(情)이란 이다지도 무서운 것이었을까?
 이윽고 천독신은 이를 악물며 정색했다.
 “사형들! 어차피 죽을 목숨, 더 이상 정이 들기 전에 결행합시다. 소제는 두렵소.”
 눈자위가 벌겋게 상기되었다.
 “단, 애초의 계획에서 한 가지 변경해야 할 것이 있소.”
 천검신이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무엇이냐?”
 “녀석이 화상(火傷)을 입은 용모 때문에 과거 상당한 마음의 상처를 입은 것 같소. 물론 내색하지는 않고 있지만 말이오.”
 “음······.”
 “그래서 소제의 생각으로는 애초 삼분의 일 내력을 건네주려던 계획을 변경, 다시 일(一)을 보태 탈태환골(脫胎換骨)시켜 주는 것이 좋을 것 같소.”
 탈태환골!
 “우리가 녀석에게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은 그뿐이고, 또 적어도 우리의 사랑스런 제자가 남의 웃음거리가 되어서는 안 될 것 아니겠소!”
 천공신의 침울하던 안면이 환하게 펴졌다.
 “훌륭한 생각! 그것이 좋다!”
 “허나 천기······ 그 저주받을 놈이 우리들의 공력이 감퇴되었음을 보고 의심하지 않을까?”
 천독신은 미미한 웃음을 지었다.
 “훗훗훗······ 어차피 승부는 십 초(十招)를 넘기지 못할 것, 놈이 의심할 기회조차 주지 말고 휘몰아치면 될 것도 같소.”
 순간 천공, 천검 두 노인의 눈에 득의의 광망이 어렸다.
 “아주 좋다! 모험이긴 하지만 한번 시도해 보자. 훗훗훗······ 만약 놈의 눈을 피할 수만 있다면······ 훗훗, 육 갑자(六甲子)의 공력! 룡아는 이 중원 십팔만리를 통틀어 가장 강한 힘을 가지게 된다.”
 희열에 찬 음성.
 “그럼 더 늦기 전에 결행하도록 합시다!”
 세 노인은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입술을 깨물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허나 누구도 선뜻 쉽게 걸음을 떼어놓지 못하고 있었다.
 
 
 4장 천강지체(天剛之滯)
 
 
 실내.
 류소룡은 내심 경악스럽기 그지없는 심정으로 팔다리를 놀리고 있었다.
 뚜두둑! 뚜둑!
 경쾌한 뼈마디 소리와 함께 몸은 의사대로 조금도 부자유스럽지 않게 움직여졌다.
 ‘으음······! 정말 믿을 수 없다. 불과 한 달 전까지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거늘······ 사지백해(四肢百骸)에 알 수 없는 잠력이 뻗치고······ 술에 중독된 현상까지 사라졌다. 천하에 정녕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그렇다.
 그것은 실로 불가해(不可解)한 노릇이었다.
 불과 일 개월.
 그 전까지만 해도 몸을 일으키기에 혼신의 고통을 감수했던 그가 아닌가?
 헌데 지금은 어떤가?
 ‘경악할 노릇······! 오히려 몸을 다치기 전보다 백 배는 더 좋아진 것 같다. 어디 한번 시험해 보자.’
 그는 실내의 한쪽 벽에 단정하게 걸린 천왕검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눈[雪].
 밖은 설국(雪國)이었다.
 장엄하리만큼 어마어마한 신모곡의 기경(奇景)······.
 사방으로 눈 덮인 천암만학(千岩萬壑) 기암괴석(奇岩怪石)이 조물주의 걸작인 양 펼쳐져 있었다.
 “후우······.”
 일순 섬칫한 금속성과 함께 새파란 천왕검의 광망이 으스스하게 사위로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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