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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혈야화 1

2018.02.09 조회 346 추천 0


 전혈야화 1권
 서장
 
 
 삼백 년(三百年) 전(前).
 무림사(武林史) 이래 공전절후(空前絶後)의 절대고수가 있었다.
 그 누가 감히 수천 년 무림사를 통해 공전절후의 천하제일인(天下第一人)을 자처할 수 있단 말인가?
 
 - 영웅탑(英雄塔).
 
 무림인들은 숱한 세월이 지나도록 음침한 푸른 이끼에 가려져 점차 괴괴하게 변해 가는 영웅탑을 잊지 못했다.
 과거에는 성검탑(聖檢塔)이라고도 불렀다.
 하나 언제부터인가 죽음의 영혼(靈魂)이 감돈다 하여 사령탑(死靈塔)이라고도 불렀다.
 
 성검(聖檢) 백리화천(百里化天).
 
 그는 검에 살고 검에 죽은 사람이다.
 평생을 검을 안고 산 그는 중원(中原)뿐만 아니라 멀리 천축(天竺)에까지 발을 뻗어 천하제일고수임을 입증했다.
 중원의 구파일방(九派一幇).
 당시 정파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구파일방을 차례로 방문하여 백리화천은 구파일방의 무공을 무너뜨렸다.
 특히 오대검파(五大劍派)로 알려진 소림의 달마삼검(達魔三劍), 무당의 태극혜검(太極慧劍), 반선검법(般旋劍法), 화산의 난파풍검법(蘭派風劍法).
 또한 성산(聖山)으로 알려진 곤륜대산(崑崙大山)의 운룡대구식(雲龍大九式).
 쾌검괴검식(快劍怪劍式)으로 알려진 해남(海南) 오지산(五指山)의 괴차무흔검법(怪叉無痕劍法).
 이들 검법은 작금(作今)에 이미 실전(失傳)된 오묘 불가사의한 검법의 정화들이었다.
 한데 백리화천은 불과 사십 세에 이르러 오대검파의 검법을 모두 파해하고 그 파해검보(破解劍譜)마저 작성했다.
 그로 인해 그는 전 정사무림(正邪武林)의 표적이 되었다.
 평생 단 한 번도 살인을 한 적이 없어 성검이란 별호를 얻은 그는 파해검보를 작성함으로써 무림의 공적이 되고 만 것이다.
 하나 그는 꿋꿋했다.
 그는 도리어 발길을 멀리 천산(天山) 너머 일만 리(一萬里)의 천축으로 향해 자신의 무공을 입증한 것이었다.
 천축의 용맹한 홍교(紅敎), 천광사(天光寺), 금천불사(金天佛寺), 가비랍궁(伽毗拉宮), 적화전문(赤火殿門)······.
 그는 그들을 방문하여 도전을 청했다.
 또한 놀랍게도 단 십 초 이내의 검법으로 그는 그들을 모두 꺾은 것이었다.
 허나 그후 웬일인지 그는 천축에서 돌아온 직후 일체 무림의 일에 상관하지 않았다.
 그는 오대검파의 파해검보를 노리는 도전자들을 물리치고 스스로 구층의 영웅탑(英雄塔)을 지어 그 꼭대기에 은거했다.
 아홉 개의 층마다 그는 한 명씩의 인물을 선발하여 탑을 지키게 했다.
 그들은 각기 체질에 맞게 단 일초(一招)씩의 검법만을 전수받은 자들이었다.
 하나 놀랍게도 전무림인들이 영웅탑에 도전했으나 구 인(九人)의 호탑인(護塔人)들에게 일초도 받지 못하고 추풍낙엽처럼 거꾸러졌다.
 백년의 유구한 세월 동안 무수한 고수들이 도전했으나 고작해야 육층부에 오른 자가 최고였다.
 성검 백리화천.
 그는 정녕 인간이 아니고 신(神)이란 말인가?
 또한 왜, 무엇 때문에 그는 천하제일검(天下第一劍), 천하제일인이란 명예를 버리고 영웅탑에 은거한 것일까?
 알 수 없는 신비의 수수께끼였다.
 그후 그는 다시 강호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
 
 희대의 절공비급(絶功秘急).
 이는 수천 년 동안 정사(正邪)를 막론하고 그 누구나 무림인이라면 꿈에서라도 갈구하는 것이다.
 
 - 사황진경(邪皇眞經).
 - 파라옥황무결(破羅玉皇武訣).
 
 언제부터인가 이 두 권의 절학비경이 각기 사(邪)와 정(正)의 최고 집대성으로 알려져 왔다.
 사황진경은 천하 사공, 마공의 총집합이었다.
 사황진경을 얻는 자는 무림사 이래 최초로 대사황지존(大邪皇至尊)이 될 수 있었다.
 또한 사황진경 최고의 마공을 익히면 어떤 불공(佛功)이나 도가비공(道家秘功)으로도 깰 수가 없었다.
 단지 파라옥황무결, 바로 그것을 얻어야만이 사황진경을 상대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나 파라옥황무결은 어디에 있는가?
 또 그 누가 만든 것인가?
 아무도 알지 못했다.
 또한 사황진경도 마찬가지였다.
 마도(魔道)의 보전(寶典)으로 알려진 사황진경은 단지 천축에 있다고만 알려졌을 뿐 한 번도 무림에 나타난 적이 없었다.
 정(正)과 사(邪)!
 흑(黑)과 백(白)!
 영원한 숙적인 정사의 혈투(血鬪)는 언제나 그치려는가?
 
 - 사황진경(邪皇眞經)!
 - 파라옥황무결(破羅玉皇武訣)!
 
 또다시 이 극성의 정사비경으로 인해 강호는 엄청난 혈풍(血風)의 회오리가 불려는가?
 휘- 이- 잉-!
 휘- 이- 이- 이- 잉-!
 피[血]의 바람[風]이 분다!
 마(魔)의 바람[風]이 분다!
 사(死)의 바람[風]이 분다!
 
 
 1장 살검(殺劍)
 
 
 우르르릉- 쾅-!
 쏴- 아-!
 천지(天地)는 온통 폭우에 잠겨 있었다.
 쏴- 쏴-!
 세차게 내리는 빗발에 만상(萬傷)은 완전히 종말을 깨닫는 듯했다.
 때는 가을[秋].
 
 - 절대검보(絶代劍堡)!
 
 당금 무림에서 우는 아이의 울음도 그치게 할 수 있으며 남녀노유(男女老幼)를 막론하고 그 누구도 경외심을 금치 못하는 곳.
 
 번- 쩍-!
 우르르르르- 릉! 꽝-!
 뇌성벽력(雷聲霹靂)이 철옹성(鐵翁城)보다 굳건한 절대검보를 때렸다.
 우르르릉- 꽝-!
 천지를 뒤집어엎을 듯 내리퍼붓는 비[雨].
 가을비라기엔 너무도 거센 폭우였다.
 
 절대검주(絶代劍主) 악초령(岳焦零).
 
 하늘 아래 가장 당당한 이름.
 일찍이 약관 이십 세 때 출도(出道)하여 채 오년도 되지 않아 황하남북(黃河南北)의 숱한 흑도(黑道)의 냉혈인들을 살상(殺傷), 사도무림(邪道武林)의 간담을 서늘케 했던 인물.
 흑도에서는 그를 일명 지옥사검(地獄死劍)이라 부른다.
 그는 백년 이래 가장 강하다는 정도 최고고수들의 서열인 무림십정(武林十正)의 일인이었다.
 하나 절대검주는 정도(正道)의 무림인에게도 공포의 존재였다.
 그는 악(惡)을 절대 참고 넘기지 않으며 또한 위선(僞善)을 그 무엇보다도 증오했다.
 그의 절대령(絶代令)이 새겨진 검 아래 고혼이 된 위선의 정파 인물들도 부지기수.
 이후 그의 이름은 흑백양도(黑白兩道)가 다같이 치를 떠는 대명사가 되었다.
 절대검보!
 악초령이 나이 사십 세 때 하남(河南) 흑우산(黑牛山)에 세운 이래 이십 성상(二十星霜).
 강호의 혈풍 속에서도 굳건히 우뚝 버티고 선 절대검보.
 우르르릉- 꽝-!
 엄청난 낙뢰(落雷)였다.
 우지끈- 꽈- 앙!
 벼락에 의해 철옹성보다도 더 단단했던 절대검보의 보문(堡門)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져 나간 것이 아닌가?
 피처럼 붉은 혈오목(血烏木)으로 된 강철같이 단단한 보문이 여지없이 부서져 버린 것이었다.
 하나 보문을 부순 것은 벼락이 아니었다.
 “으아아- 아아-! 크아아아-!”
 한 인영이 미친 듯이 울부짖으며 보문에서 뛰쳐나오고 있었다.
 콰- 꽝- 꽈르르릉-!
 그는 미친 듯 쌍장을 마구 휘두르고 있었다.
 꽝- 우지끈-! 꽈르릉-!
 그의 쌍장이 미치는 곳에는 나무건 바위건 할 것 없이 산산조각이 나고 있었다.
 이것이 무슨 일인가?
 폭우가 쏟아지는 심야에 보문을 부수고 뛰쳐나온 괴인영.
 그는 산발을 한 백의노인이었다.
 우람한 체구에 두 눈은 찢어질 듯 부릅떠져 있었으며 눈꼬리 끝으로는 피가 흘러 나왔다.
 또한 입과 코로도 검은 피가 쉴새없이 흘러 나오고 있었다.
 보아하니 극독에 중독된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얼굴은 온통 푸르스름했으며 사지는 마구 떨리고 있었다.
 하나 백의노인은 여전히 쌍장을 마구 휘둘러 닥치는 대로 눈앞을 가로막는 것들을 산산조각내고 있었다.
 그런데 백의노인의 등뒤에는 무엇인가가 묶여 있었다.
 소년(少年).
 그것은 의식을 잃은 듯 축 늘어져 있는 한 소년이었다.
 소년의 나이는 대략 십삼 세 가량.
 얼굴은 극히 영롱했으며 비록 어린아이일망정 타고난 듯 오만함과 강인한 일면이 풍기고 있었다.
 소년은 송충이 같은 눈썹을 꽉 붙인 채 눈을 감고 있었다.
 이때 백의노인은 우뚝 멈추더니 홱 돌아섰다.
 그의 두 눈에서는 무서운 분광이 줄기줄기 뻗어 나와 폭우 속에 마치 거대한 산(山)인 양 우뚝 버티고 서 있는 절대검보를 노려보았다.
 그의 입술을 뚫고 앙천광소가 터져 나왔다.
 “우하하하하핫······ 절대검보, 절대검보! 나 절대검주가 죽어 가는데도 너만은 끄떡도 없구나!”
 그렇다면 이 백의괴노인이 바로 이곳의 보주인 절대검주 악초령이란 말인가.
 “크하하하핫······ 악초령아, 악초령아! 너는 이제까지 누구를 믿고 살았단 말이냐? 이제······ 이제······ 모든 친우들과 수하들에게 배신당하고······.”
 그렇다.
 그는 지금 절명소공산(絶命銷功散)과 무형화혈분(無形化血紛)에 의해 치명적인 중독이 되어 있었다.
 
 절명소공산!
 이는 천하에서 가장 무서운 독(毒)의 하나로 아무리 절세고인이라도 일단 독을 입으면 전신의 공력이 고갈된 후 사지가 오그라들어 말라죽는 극독이다.
 무형화혈분!
 이는 이대절독(二大絶毒)의 하나였다.
 이 독은 무색(無色), 무미(無味), 무향(無香)의 무형지독으로 그 극랄함은 천지간에 으뜸이다.
 
 일단 무형화혈분에 중독되면 한 시진 이내에 온몸이 피고름으로 화하고 마는 것이었다.
 쏴- 아!
 우르르! 꽈- 앙!
 폭우와 뇌성벽력은 계속해서 흑우산을 집어삼킬 듯 퍼부어졌다.
 “크하하하하······ 두고 보자! 너희들이 노부를······ 이렇게 배반하고도 살 수 있을지······ 크하하······ 오년(五年)······ 아니, 사년(四年)이면 충분하다. 사년 후! 일장의 혈겁이 네놈들을 덮어씌울 것이다! 크흐흐······ 크하하하······!”
 절대검주 악초령은 무시무시한 저주와 폭언(暴言)을 절대검보를 향해 퍼붓고는 비틀거리며 돌아섰다.
 우르르르릉- 꽝-!
 또다시 낙뢰가 검은 하늘을 갈가리 찢어 놓았다.
 쏴- 아-!
 폭우.
 이미 절대검보 앞에서 절대검주인 악초령의 모습은 없었다.
 그는 엄청난 원한과 증오를 품은 채 사라지고 만 것이었다.
 하나 천하에서 가장 무서운 독을 두 가지나 입은 그가 살 수 있을지······.
 또한 그가 저주한 대로 사년 후에는 과연 일장의 혈겁이 배신을 덮어씌울지······.
 그것은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우르르- 콰- 앙!
 벽력이 다시 흑우산을 뒤흔들었다.
 이때 폭우 속에 산보다 더 육중하게 버티고 선 절대검보의 보루(堡樓) 위에서 가라앉은 음성이 흘러 나왔다.
 “안타까운 일이다! 검주(劍主)께서······ 그렇게 변할 줄이야······.”
 그러자 뒤이어 창노한 음성이 들렸다.
 “웬 말이오? 평소 악을 원수같이 미워하던 검주였소. 한데 그토록 악랄한 계획을 갖고 있을 줄이야. 이번에 우리가 검주에게 독(毒)을 쓴 것은 정의를 수호하기 위한 고육지계(苦肉之計)였소······ 어쩔 수 없는 일이오.”
 “하나······ 그 방법은 너무했던 것 같소.”
 그러자 이번에는 칼칼한 노인의 음성이 뒤를 이었다.
 “흥! 그렇다면 무슨 수로 검주의 행동을 막을 수가 있단 말이오? 그의 무공은 천하무적인데······.”
 “그러나······.”
 “그러나고 뭐고 이젠 안심이오. 어찌됐든 강호의 해는 일단 제거했으니······.”
 창노한 음성은 문득 불안한 듯 말했다.
 “설마······ 그 두 가지 독을 입고도 살아나지는 않겠지······?”
 “쓸데없는 소리요! 설사 금강불괴의 몸이라 한들 어찌 독왕(毒王) 만가중(萬加中)의 극독을 견딜 수 있겠소?”
 맨 처음 장탄식을 터뜨렸던 가라앉은 음성이 문득 염려스러운 듯 말했다.
 “한데 소보주(少堡主) 철빙(鐵氷)을 데리고 갔으니 만약 그가 훗날 살성(殺聖)이 된다면······.”
 창노한 음성은 그 말에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철빙은······ 기재(奇才) 중의 기재요. 정말 그가 복수심을 품는다면······ 훗날 상상치도 못할 피보라가 몰아칠 것이오.”
 “단지 그렇게 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오.”
 그러자 칼칼한 음성이 대뜸 추궁했다.
 “그럼 어찌 당신들은 철빙을 놓아주었단 말이오!”
 가라앉은 음성은 떠듬거렸다.
 “그······ 그건 차마······.”
 “만일 훗날 우리들의 목을 요구한다면 어떻게 할 셈이오?”
 이때 창노한 음성이 반박했다.
 “하지만 생각해 보시오. 어쨌든 검주께서는 우리들의 은인인데 어찌 그의 일점혈육을······.”
 그러자 어디선가 음산한 웃음이 들렸다.
 “흐흐흐······ 당신은 이런 말도 모르오? 잡초를 뿌리째 뽑지 않으면 이듬해엔 반드시 다시 싹이 난다는!”
 “그······ 그렇지만······.”
 “흐흐······ 어쨌든 이 일은 큰 화근을 남긴 것이오. 당신들의 실수였소.”
 가라앉은 음성이 탄식했다.
 “모든 것이 하늘의 뜻[天意]이니······.”
 창노한 음성은 한숨을 쉬었다.
 “휴우, 노부도 동감이오. 단지 천운(天運)에 맡길 뿐이오.”
 그러자 칼칼한 음성이 문득 차갑게 말했다.
 “당신들은 너무 그렇게 염려할 것 없소.”
 “······?”
 “노부가 이럴 줄 알고 미리 손을 썼소.”
 “아니, 어떻게?”
 “흐흐······ 노부는 철빙의 천잔(天殘)과 양명(陽明), 두 곳의 혈도를 중수법(重手法)으로 눌렀소.”
 “뭣이?”
 “아니, 당신이 그렇게 악랄한 수법을······!”
 창노한 음성과 가라앉은 음성은 노성을 질렀다.
 하나 칼칼한 음성의 주인이 음랭하게 말했다.
 “흐흐······ 흥분하지 마시오. 당신들은 오히려 내게 감사해야 마땅하오.”
 그러자 음산한 목소리가 즉시 동조했다.
 “그렇소. 구 형(丘兄)의 행동은 잘한 것이오. 구 형은 우리를 위해 스스로 살(殺)을 뒤집어쓴 셈이오.”
 “이럴 수가······.”
 두 노인의 음성은 허망하게 탄식을 발하고 있었다.
 
 천잔혈(天殘穴)과 양명경(陽明經)!
 이 혈도는 무엇인가?
 그야말로 두 곳의 혈도는 무공을 익히는 사람에게는 가장 치명적인 곳으로 오히려 사혈(死穴)보다도 더 무서운 곳이었다.
 천잔혈을 찔리면 수족(手足)의 혈맥이 굳어 평생 무공을 익힐 수가 없게 된다.
 무공을 익힌 사람은 즉시 무공을 상실하게 되고, 설사 무공을 익히지 않은 사람도 일단 찔리게 되면 다시는 무공을 익힐 생각을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무인(武人)에게는 가장 두려운 혈도라 아니할 수 없었다.
 양명경은 진기(眞氣)의 생성을 좌우하는 내가(內家)의 가장 중요한 경맥이다.
 만일 이곳을 찍히면 내공을 모을 수가 없고 얼굴은 누렇게 병색이 돌며 전신의 피가 싸늘하게 식는다.
 특히 양(陽)의 기운이 감소되어 남자인 경우 평생 허약하고 뼈가 없는 듯 전신이 노골노골해진다.
 그러므로 이십 세 이상을 살지 못하고 죽을 수밖에 없는 극히 무서운 경혈이었다.
 
 칼칼한 음성의 주인, 즉 구(丘)라고 불린 자의 행동은 치를 떨 정도로 악랄한 것이었다.
 “어······ 어찌 그토록 악랄한 짓을······?”
 창노한 음성이 분노에 떨며 추궁했다.
 하나 구가는 차게 웃었다.
 “흐흐흐······ 모든 일은 완벽해야 하는 법이오. 기왕 우리들이 검주의 음모를 알고 악을 제거하기 위해 눈물을 머금고 그를 해쳤다면 더 이상의 후환을 남겨선 안 되지 않소?”
 “옳은 말이오.”
 음산한 목소리가 찬동을 표했다.
 “그······ 그러나······.”
 “어찌 그럴 수가······.”
 “으흐흐······ 모든 것은 끝났소!”
 “깨끗이! 그리고 시원하게 끝났소.”
 하나 창노한 음성은 무엇인가 극히 불안한 듯 더듬거렸다.
 “그······ 그러나······ 검주가 마지막 남긴 저주(詛呪)······ 사년 후······ 사년 후라는 말이 왠지······.”
 그러자 칼칼한 음성이 문득 광소를 터뜨렸다.
 “크하하하······ 사년이 아니라 사십 년이 흘러도 절대검주는 다시 나타나지 않을 것이오.”
 “음······!”
 “으음······.”
 보루 위에서 무거운 신음이 터졌다.
 콰르릉- 꽝-!
 벽력이 먼 산의 후미진 곳에 떨어졌다.
 쏴- 아-!
 폭우는 여전히 조금도 그칠 줄 모르고 천지를 뒤덮으려는 듯 쏟아져 내렸다.
 어느덧 절대검보도 폭우에 묻히듯 점차 컴컴하게 시야에서 가려져 갔다.
 동시에 보루 위에서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들려 오지 않았다.
 우르르- 꽝-!
 쏴아아- 아-!
 엄청난 폭우였다.
 그리고 음모와 혈원(血怨)의 밤이었다.
 
 ***
 
 휘- 이- 잉-!
 바람이 불고 있었다.
 산서(山西)의 한 관도.
 어쩐지 습기를 품은 바람이었다.
 아니나다를까.
 후두둑! 후둑······!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바람에 실려 비가 관도 위를 조금씩 적셔 갔다.
 왠지 을씨년스런 느낌을 주는 날씨였다.
 때는 저녁 무렵.
 비가 흩뿌리는 가운데 바람이 불고 관도상에는 인적을 찾을 길이 없었다.
 관도 양옆은 그대로 허허벌판으로 황량한 느낌을 주었다.
 계절은 여름으로 접어들고 있었으나 벌판은 조금도 그런 분위기를 풍기지 않았다.
 한데 아까부터 관도 한쪽 옆의 바위 위에 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머리에는 죽립을 쓴 채······.
 그는 안색이 매우 창백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하나 두 눈만은 지극히 오만하고 집념이 가득 차 보였다.
 우뚝한 콧날, 한일자로 다문 입술과 송충이 같은 눈썹.
 체격은 다소 수척해 보였다.
 또한 안색에는 병색(病色)이 돌아 어찌 보면 큰 병을 앓고 있는 사람 같았다.
 나이는 대략 십칠 세로 보였다.
 그러고 보면 소년인 셈이었다.
 그러나 결코 그에게서는 미숙한 느낌을 받을 수가 없었다.
 오히려 극히 차고 냉혈한 강호의 낭인(浪人) 같은 인상을 풍기고 있었다.
 청의(靑衣)를 입은 채 소년은 바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그는 팔짱을 낀 손 사이로 삐죽이 한 자루의 흑검(黑劍)을 품고 있었다.
 소년은 점차 빗방울이 굵어지는 것도 느끼지 못하는지 가부좌를 한 채 관도의 끝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때 말발굽 소리가 들리며 두 필의 말이 관도 끝으로부터 달려왔다.
 따가닥! 따가닥······!
 그 순간 청의소년의 차고 오만한 눈에서 일순 섬광이 일어났다.
 따다닥!
 그는 자세를 조금도 흐트러뜨리지 않은 채 그대로 있었다.
 두 필의 말은 빗속을 뚫고 질풍처럼 다가왔다.
 모두 황마(黃馬)로써 마상 위에는 두 명의 중년인이 타고 있었다.
 한 명은 뚱뚱하고 한 명은 홀쭉했다.
 그들은 등에 자기 판관필을 꽂고 있었으며 양쪽 태양혈(太陽穴)이 불끈 치솟아 있었다.
 이들은 앞만 보며 무언가 바쁜 일이 있는 듯 급히 말을 몰았다.
 이때였다.
 번- 쩍-!
 히히히힝-! 히히힝-!
 그들의 눈앞에 은광(銀光)이 섬전처럼 일어났다 싶은 순간 말이 고꾸라져 그대로 허공에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앗······!”
 “억!”
 두 중년인은 경악성을 지르며 급히 빙글 신형을 돌려 땅에 내려섰다.
 두 필의 말은 이미 피바다 속에 죽어 넘어져 있었다.
 모두 복부근이 크게 베어져 있었다.
 “누······ 누구냐?”
 “후후후후······!”
 냉오한 웃음소리가 한쪽에서 들려 왔다.
 그쪽을 본 순간 두 중년인은 얼빠진 듯 멍청해졌다.
 “엇······!”
 “너는······?”
 바로 바위 위에 청의소년이 가부좌를 튼 채 앉아 있는 것이 보였던 것이다.
 그 순간 청의소년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이어 그는 당황하여 서 있는 두 중년인을 향해 불쑥 말했다.
 “내놓으시지.”
 “무······ 무얼 말이냐?”
 뚱보가 어리둥절하여 물었다.
 “목!”
 짤막한 소리가 터진 순간 두 중년인은 대경하며 일제히 판관필을 뽑아 들었다.
 쨍! 쨍!
 그러나 청의소년은 조금도 안색을 바꾸지 않고 그들 앞으로 걸어갔다.
 “나는 당신들의 목이 필요하오.”
 이번에는 홀쭉이가 더듬거리며 물었다.
 “왜······? 무엇 때문에······?”
 “그것은 내게 물을 필요가 없소. 지옥에나 가서 알아보시오.”
 “뭐······ 뭣이?”
 “이 건방진 놈!”
 두 중년인은 번개같이 좌악 옆으로 갈라서더니 그 길로 좌우에서 질풍처럼 공격했다.
 쉬익-!
 슈- 웅-!
 그들은 상대가 비록 누구인지는 몰랐지만 결코 범상한 인물이 아님을 알았기 때문에 일격에 전력을 다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가장 최고절기인 경혼천공(驚魂穿空)의 살초를 전개했다.
 하나 그 순간 그들의 눈앞에서 청의소년의 모습은 안개처럼 사라져 버렸다.
 스스스······.
 다음 순간 그들은 각기 등뒤로 한풍이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흑······!”
 “엇······!”
 한 줄기 검광이 은사(銀紗)처럼 그들을 휘감고 있었다.
 “으악!”
 “크- 악!”
 단 두 마디의 비명.
 그것으로 끝이었다.
 빗속으로 두 줄기 피의 선(線)이 그려지고 곧 무엇인가 둔탁한 물건이 바닥에 떨어졌다.
 툭! 퍽······!
 그것은 뚱보와 홀쭉이의 목이었다.
 청의소년은 검을 비스듬히 땅으로 기울이고 있었다.
 검은 손잡이가 검은색이었으며 검신은 목이 좁고 새하얀 은백색이었다.
 한데 은백의 검날을 타고 핏방울이 굴러 떨어져 내렸다.
 주르르······ 툭······!
 청의소년은 무심한 눈으로 그것을 내려다보고는 손을 움직였다.
 착!
 가벼운 음향과 함께 검은 검집으로 들어갔다.
 청의소년은 빗물이 고인 관도에 무참히 나뒹구는 두 구의 목이 잘려진 시체를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너희들이 애초에 절대검보의 위세를 입고 다니지 않았다면 이런 꼴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 철빙(鐵氷)은 앞으로도 절대검보의 인물이라면 결코 살려 두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무슨 말인가?
 그가 바로 수년 전 절대검보를 빠져 나온 소보주 악철빙이란 말인가?
 
 악철빙(岳鐵氷)!
 
 그는 원래 절대검주 악초령이 늦게 얻은 아들이었다.
 하나 사년 전 폭우가 쏟아지던 날, 그는 혼절한 채 극독을 입은 절대검주의 등에 업혀 어딘가로 사라졌다.
 절대검주는 천하에서 가장 무서운 두 가지 극독에 당했으므로 살 가망이 없었다.
 더구나 철빙조차도 절대검보의 인물에 의해 무인에게는 극히 치명적인 천잔혈과 양명경, 두 곳의 경혈을 중수법으로 당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그는 이미 폐인이 되어 있어야 했다.
 한데 어찌 이토록 무서운 검법을 사용하는 살수(殺手)가 되어 강호에 다시 나타날 수가 있단 말인가?
 청의소년, 즉 악철빙은 두 구의 처참한 시신을 뒤로하고 돌아섰다.
 그는 북상(北上)하고 있었다.
 그동안 그는 절대검보에 대해 많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사년 전.
 절대검보의 보주인 절대검주 악초령이 수하들에게 배반당해 검보를 떠난 사건은 강호상에 전혀 알려져 있지 않았다.
 단지 절대검주 악초령은 절대무비의 새로운 무공을 깨우치기 위해 폐관(閉關)했다고 알려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절대검보의 모든 공무는 절대검보의 가장 막강한 실력자들이라고 할 수 있는 절대사노(絶代四老)에 의해 관장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절대사노(絶代四老).
 
 이들은 가히 개세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었다.
 그들 일개의 무공만 해도 악초령을 제외하고는 거의 종횡천하할 정도로 막강한 고수들이었다.
 
 무형신검(無形神劍) 관여평(關如平).
 건곤파황수(乾坤破荒手) 백원강(白元剛).
 천남마군(天南魔君) 구우령(丘羽令).
 독심옹(毒心翁) 상공중(常公中).
 
 이들은 일문(一門)의 종사(宗師)를 능가하는 무공을 가지고 있었으며 각기 패자(覇者)로 자처하던 절정고인들이었다.
 무형신검 관여평은 원래 무당의 속가제자였으나, 훗날 우연히 무형검보(無形劍譜)를 얻은 후 검법의 고인(高人)으로 명성을 떨치게 된 인물이었다.
 그는 당금의 무당 장문인의 사숙뻘로 배분이 높아 정파의 커다란 존경을 받는 인물이었다.
 건곤파황수 백원강은 한 쌍의 자모건곤권(子母乾坤圈)으로 사해팔황을 독행(獨行)하면서 엄청난 명성을 얻었다.
 하나 그는 성질이 급하고 열화와 같아 많은 인물들에게 원한을 남겼다.
 그리하여 그의 나이 근 칠순에 이르도록 그는 가정은 물론 친구 하나 없었다.
 천남마군 구우령은 일대(一代)의 마왕(魔王)이었다.
 그의 양손은 항상 피가 마를 날이 없었으며 가는 곳마다 온갖 살생과 약탈을 저질렀다.
 한때 그는 상강지방에 천남문(天南門)이라는 사문(邪門)을 개파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훗날 악초령에게 굴복한 이후로는 모든 수하들과 함께 절대검보에 투신했다.
 마지막으로 독심옹 상공중의 독계(毒計)는 천하에서 으뜸이었다.
 그는 평생 어느 누구에게도 절대로 마음을 준 적이 없었으며, 항시 가슴속에 음모의 칼을 품고 있었다.
 한때 그는 정파무림의 공분을 사 구양산(九陽山)에서 포위공격을 받아 죽을 뻔한 적이 있었다.
 하나 그때 악초령이 나타나 그를 구원함으로써 그는 절대검보에 투신했다.
 
 이들로 이루어진 절대사노는 사실상 절대검주를 제외하고는 검보의 영수급 인물들이었다.
 이들은 하나같이 무림의 최절정고수였기 때문에 절대검보의 명성과 위세는 날이 갈수록 높아졌다.
 그러므로 악초령이 폐관한 이후 단지 이들의 힘만으로도 절대검보의 위세는 강호 군림을 할 수 있었다.
 아니, 오히려 이들은 차츰 절대검보의 세력을 전중원에 확산시키고 있었다.
 이미 구파일방은 절대검보에 크게 양보하고 있었다.
 또한 정사의 절세고수로 이루어진 절대사노가 이끄는 절대검보는 벌써 은연중 강호의 패주(覇主)를 자처하고 있었다.
 무림인들은 절대검보의 팽창에 대해 보이지 않는 위협을 느꼈으나 감히 그 사실을 거론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만큼 절대검보는 무서운 집단이 된 것이었다.
 
 휘이- 잉!
 후두둑! 후둑!
 스산한 바람과 가랑비는 계속되었다.
 악철빙은 죽립을 눌러쓴 채 걷고 있었다.
 관도는 끝에서 끝까지 전혀 인적을 찾을 길이 없었다.
 “음······ 정녕 산서의 길은 황량하기만 하구나.”
 악철빙은 자신도 모르게 이렇게 중얼거렸다.
 아닌게아니라 산서지방은 대체로 땅이 거칠고 황량한 편이었다.
 그래서 관도 주변은 숲도 별로 볼 수가 없어 더욱 나그네의 마음을 스산하게 했다.
 이때였다.
 차츰 어둠이 지평선 끝을 물들이는 시각에 전면으로부터 요란한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 왔다.
 쨍! 쨍그랑!
 창! 차차창!
 “음!”
 악철빙의 송충이 같은 눈썹이 위로 치켜 올라갔다.
 다음 순간 그의 몸은 가랑비 속을 날아갔다.
 나무들이 듬성듬성 서 있는 곳이었다.
 한데 그곳에는 한창 피비린내 나는 살육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가운데에는 표국의 깃발이 꽂혀 있는 세 대의 마차(馬車)가 세워져 있었고, 한창 표사들이 피투성이가 된 채 마차를 호위하며 악전(惡戰)을 벌이고 있었다.
 바닥에는 이미 십여 명의 표사들이 죽어 있었고 남은 표사는 단 네 명뿐이었다.
 공격하는 자들은 모두 흑의를 입은 자들로 여덟 명이었다.
 한데 그들은 한 명도 죽거나 상처를 입은 자들이 없었다.
 그로 미루어 그들의 무공은 표사들보다 월등히 뛰어난 것 같았다.
 네 명이 공격하고 남은 네 흑의인들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구경하고 있었다.
 차창-!
 “으- 악!”
 요란한 금속성과 함께 한 명의 마차를 지키던 표사가 피를 뿌리며 나가떨어졌다.
 그의 가슴에는 판관필이 푹 꽂혀 있었는데 그것은 자신의 무기였다.
 결국 그는 한 흑의인과의 격돌에서 진력이 약해 오히려 퉁겨나 자신의 가슴을 찌른 것이었다.
 “앗! 삼제(三弟)!”
 비통한 외침과 함께 한 명의 표사가 비틀거렸다.
 그는 딴 곳에 신경을 쓰는 바람에 그만 불행을 초래하고 말았다.
 “흐흐······ 네 아우를 따라가거라!”
 음침한 소리와 함께 피가 튀었다.
 “으······ 악!”
 그 표사는 가슴을 움켜쥐었다.
 흑의인이 낭아도(浪兒刀)를 심장에 푹 꽂아 버린 것이다.
 “으······ 윽!”
 표사는 두 눈이 툭 튀어나온 채 원한 어린 분광을 쏘았다.
 “네······ 네놈들 산서팔악(山西八惡)들이 이토록······ 비겁할 줄은······ 사전에 미리······ 양해를 구했는데도······ 표물을 강탈하다니······.”
 흑의인은 징그러운 미소를 띠며 음침하게 말했다.
 “흐흐······ 너희들 진원표국은 물론 우리 형제에게 선물을 주며 통과를 허락받았지. 그러나 흐흐흐······ 이런 표물은 너무 큰 것이란 말이다.”
 다음 순간 표사는 처절무비한 비명을 지르며 허공을 붕 떠올랐다.
 “으- 악!”
 퍽!
 그는 삼 장이나 날아가 땅바닥에 떨어져 쭉 뻗어 버렸다.
 그의 가슴은 완전히 낭아도에 베어져 간과 허파가 튀어나와 있었다.
 실로 끔찍한 살인수법이었다.
 이때 남은 표국의 인물들은 분노하고 있었다.
 오순 가량의 금의를 입은 노인이 노성을 질렀다.
 “이······ 이 찢어 죽일 놈들······! 그토록 악랄한 살수를 쓰다니, 노부는 이제 더 이상 참지 못하겠다!”
 그러자 그와 상대하고 있던 흑의인이 냉소를 치며 말했다.
 “흐흐······ 철(鐵) 늙은이! 참지 못하면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냐? 네놈에게 무슨 뾰족한 수라도 있단 말이냐?”
 그는 얼굴에 칼자국이 있는 흑의인이었다.
 철이라 불린 금의노인은 만면에 원한을 뿜으며 품속에서 하나의 둥그런 구슬을 꺼냈다.
 그것은 칠흑같이 검고 용안(龍眼)만했다.
 “네놈은 이것이 무엇인지 아느냐?”
 순간 칼자국이 있는 흑의인을 비롯한 모두는 대경실색하여 부르짖었다.
 “벼······ 벽력뇌화주(霹靂雷火珠)!”
 
 벽력뇌화주!
 그것은 삼백 년 전 화성(火聖) 뇌천악(雷天嶽)이 만든 무림의 삼대화기(三代火器)의 하나였다.
 벽력뇌화주 한 개면 방원 오십 장은 완전히 가루가 되고 만다.
 더구나 벽력뇌화주는 장력으로 치기만 해도 폭발하기 때문에 일단 던져졌다 하면 모든 것은 그것으로 끝나 버린다.
 이러한 삼백여 년 동안 무림에 나타나지도 않았던 것이 금의노인의 품에서 나왔으니 정녕 기이한 일이었다.
 
 금의노인은 벽력뇌화주를 들고 싸늘하게 말했다.
 “그렇다! 이것은 벽력뇌화주다. 노부는 오늘 같이 죽는 한이 있어도 반드시 이것으로 네놈들을 없애 본 표국의 표사들의 넋을 위로해 주겠다.”
 “미······ 미쳤느냐? 그것이 터지면······.”
 흑의인은 안색이 창백하게 질려 뒤로 비칠비칠 물러났다.
 나머지 흑의인들도 마찬가지로 식은땀을 흘리며 주춤주춤 물러났다.
 “멈춰라! 만약 한 발자국이라도 더 움직인다면 노부는 당장 이것을 터뜨리고 말겠다.”
 금의노인의 일갈에 흑의인들, 즉 산서팔악은 모두 얼어붙은 듯 그 자리에 서 버렸다.
 이때 오른쪽 어깨에 심한 상처를 입은 중년인이 금의인에게 비틀거리며 다가왔다.
 “아······ 아버님······ 이제 모든 것이 틀렸습니다. 진원표국도 오늘로서 문을 닫아야겠습니다.”
 금의노인의 노안에서 눈물이 주루룩 흘렀다.
 “그······ 그렇다. 우리 부자(父子)가 피땀 흘려 이룩한 기업이건만······ 이젠 틀렸다.”
 금의노인은 문득 두 눈에 무서운 분노를 발하며 산서팔악을 노려보았다.
 그의 눈은 찢어질 듯 부릅떠져 있었다.
 “산서팔악! 네놈들은 오늘 우리 부자와 함께 지옥으로 함께 가야 한다.”
 산서팔악은 그만 사색이 되고 말았다.
 그들 중 첫째인 대악(大惡)이 재빨리 만면에 비굴한 웃음을 띠며 말했다.
 “처······ 철 영웅! 잠깐만 더 생각해 보지 않겠소? 우······ 우리가 이대로 물러갈 테니······.”
 그러나 금의노인은 대로하고 있었다.
 “무엇이라고? 이 많은 노부의 표사들을 죽여 놓고 그대로 물러가겠다고? 네놈들은 목숨의 빚은 목숨으로만 갚아야 된다는 철칙을 모른단 말이냐!”
 그는 이미 이성을 잃은 듯 팔을 번쩍 치켜 들었다.
 산서팔악은 그만 안색이 백지장같이 하얗게 되어 버렸다.
 “노부는 이제 살아도 더 이상 희망이 없다. 네놈들과 같이 영원히 지옥으로 가겠다. 자, 받아라!”
 휙!
 벽력뇌화주가 허공을 나는 소리가 들렸다.
 그야말로 이제는 방원 오십 장이 완전히 초토화되는 일만이 남아 있었다.
 하나 이때였다.
 한 줄기 청의인영이 장내로 빛살같이 날아들었다.
 그 순간 그 인영은 허공에서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지는 벽력뇌화주를 향해 손을 뻗었다.
 “앗! 위험하다!”
 누군가 질겁을 하며 외쳤다.
 만일 장풍을 쓴다면 벽력뇌화주는 그대로 허공에서 폭발해 버리기 때문이었다.
 하나 이때 괴이한 현상이 벌어졌다.
 벽력뇌화주가 돌연 허공에서 멈칫하더니 딱 멈춘 것이었다.
 이어 천천히 무엇에 이끌리기라도 하듯 내려왔다.
 벽력뇌화주는 완만하게 청의인영에게로 끌려가더니 곧 그자의 소매 속으로 안전하게 들어갔다.
 “휴······.”
 여기저기서 안도의 한숨이 들렸다.
 구사일생(九死一生)!
 그야말로 죽음 직전에서 목숨을 건진 기분이었다.
 청의인영은 바로 악철빙이었다.
 그는 격공섭물(隔空攝物)의 절정 내가기공으로 벽력뇌화주를 회수한 것이었다.
 금의노인과 중년인은 이 돌연한 사태에 멍해지고 산서팔악의 얼굴엔 희색이 만면했다.
 하나 한 줄기 냉랭한 음성이 그들에게 찬물을 끼얹었다.
 “산서팔악, 좋아할 것 없다. 너희들이 죽는다는 사실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바로 악철빙의 입에서 나온 소리였다.
 “뭣이? 이······ 건방진 애송이놈이······.”
 팔악 중 한 명이 거칠게 욕을 하며 튀어나왔다.
 하나 그 순간 그자는 눈앞에 검광이 번쩍했음을 느꼈을 뿐인데도 쓰러졌다.
 “크- 악!”
 그는 이미 가슴이 갈라져 땅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앗······.”
 “저······ 저럴 수가······.”
 중인들은 일제히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들도 모두 똑똑히 보고 있었지만 아무도 청의소년이 어떻게 검을 전개했는지 보지 못했던 것이다.
 어느새 악철빙은 검을 품고 땅으로 늘어뜨리고 있었다.
 검끝으로 핏방울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실로 믿을 수 없는 살검(殺劍)이었다.
 하나 일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악철빙의 검끝이 번개같이 일어나더니 한꺼번에 세 명의 산서팔악을 노렸다.
 “삼룡혈추(三龍血墜)!”
 그의 입에서 떨어진 냉갈.
 그것은 세 마리의 용이 피를 뿌리며 추락한다는 무서운 검법의 초식 이름이었다.
 파파팟-!
 세 송이의 검꽃이 유성처럼 내뻗었다.
 세 흑의인은 질겁하여 급히 신형을 뒤로 날렸다.
 그러나 허사였다.
 “으- 악!”
 “윽-!”
 “캑-!”
 세 마디 참담한 비명과 함께 그들은 목에 동전만한 구멍이 뻥 뚫려 일 장 가량이나 날아가 떨어졌다.
 수- 악-!
 핏줄기가 허공에서 비와 함께 떨어졌다.
 실로 믿을 수 없을 만큼 기괴무비한 검법이었다.
 “으······ 이······ 이럴 수가······!”
 “거······ 검귀(劍鬼)닷!”
 남아 있는 산서팔악은 공포에 질려 외쳤다.
 “검귀?”
 악철빙은 냉랭하게 반문했다.
 이어 그는 입가에 묘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렇다, 어쩌면 나는 검귀인지도 모른다. 그것도 한(恨)이 맺힌 검의 귀령(鬼靈) 말이다.”
 말을 마친 순간 그는 벌써 앞으로 유령같이 미끄러지며 다시 검을 뻗었다.
 츠르르르르······!
 이것이 끝이었다.
 섬뜩한 괴음향과 함께 몇 줄기의 검광이 대기를 가르더니 곧 혈우(血雨)가 쏟아졌다.
 “크- 아- 악-!”
 “컥!”
 “크- 윽!”
 “으윽-!”
 네 마디의 비명은 선후(先後)가 없었다.
 완전히 동시에 일어난 것이었다.
 쿵! 털썩! 쿵! 쿵!
 그들은 그러나 차례로 쓰러졌다.
 이미 목과 몸뚱이가 양단된 시체가 되어서······.
 실로 이 같은 필살(必殺)의 검법은 무림사상 보지도 듣지도 못하던 것이었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산서지방에서 악명을 떨치던 녹림(錄林)의 도적 산서팔악은 황천으로 가버리고 만 것이었다.
 “아아······!”
 “우······!”
 장내에 남아 있는 생존자인 금의노인과 중년인은 마치 혼이 빠진 듯 입을 딱 벌린 채 멍청히 굳어 버렸다.
 그들의 눈에는 도저히 눈앞의 청의소년이 사람 같아 보이지가 않았다.
 이때 악철빙은 어느새 검을 회수하고는 그들 앞으로 조용히 걸어갔다.
 그의 얼굴은 극히 영준했지만 여전히 창백하여 병색이 감돌고 있었다.
 그러나 두 눈빛은 냉정하기만 했다.
 금의노인과 중년인은 뒤로 주춤 물러났다.
 악철빙은 소매 속에서 벽력뇌화주를 꺼냈다.
 “이것은 당신의 물건이니 회수하시오.”
 “그······ 그것!”
 금의노인은 말을 더듬었다.
 그러나 그는 정신을 차리고는 급히 포권했다.
 “노부는 진원표국의 보잘것없는 국주인 금사신권(金獅神券) 철비웅(鐵飛熊)이라 하오. 그리고 이 아이는······.”
 그러자 중년인이 급히 응했다.
 “불초는 개산권(開山拳) 철산웅(鐵山雄)이오. 이번에 아버님과 표물을 호송하던 중······.”
 그러나 그가 채 말을 맺기 전 악철빙은 억양 없이 말했다.
 “알겠소이다. 두 분은 표물을 호송하다 난을 만난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제 난은 없어졌으니 이 벽력뇌화주를 회수하시오.”
 그는 수중의 벽력뇌화주를 내밀었다.
 그러나 금사신권 철비웅은 황급히 말했다.
 “소협! 소협께서는 우리 부자의 생명의 은인이자 표국 형제들의 복수를 해준 은인으로 죽어서도 결코 잊지 못할 것이오. 그것은······ 비록 소협의 개세적인 무공으로는 별 쓸모가 없겠지만 성의로 알고 받아주시기 바라오.”
 악철빙은 그 말에 아무 말 없이 벽력뇌화주를 소매 속에 집어넣었다.
 이어 그는 돌아섰다.
 “그럼 두 분은 계속 표행하시기 바랍니다.”
 철비웅은 급히 외쳤다.
 “잠깐만, 소협!”
 “무슨 일이오? 철 노영웅.”
 “소협의 명호는 어찌되시는지······?”
 악철빙은 그 말에 피식 웃었다.
 “소생은 아직 이렇다할 명호가 없소이다.”
 “그럼 존명(尊命)은······?”
 “철빙, 철빙이라고 합니다.”
 “철······ 빙······!”
 철비웅은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로서는 처음 듣는 이름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소생은 이만 가겠소이다.”
 “자······ 잠깐만, 소협!”
 악철빙은 돌아섰다.
 그러자 철비웅은 아들인 철산웅에게 말했다.
 “웅아! 어서 표물을 호송하자. 나머지는 버리고 소협께 말을 한 필 내드려라.”
 “예!”
 철산웅은 급히 마차로 갔다.
 악철빙은 내심 의아했으나 아무 말 없이 그들이 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철산웅은 중간에 있는 마차만을 남기고 나머지 두 대의 마차는 그 자리에서 말고삐를 풀어냈다.
 “이럇! 너희들은 이제 가고 싶은 대로 가거라.”
 철산웅이 이렇게 외치며 채찍을 휘두르자 고삐가 풀린 말들은 힘찬 울음소리를 남기고 사방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따가닥! 따가닥······!
 그러나 철산웅은 단지 한 필의 말은 놓아주지 않았다.
 “소협, 이 말은 소협께서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그 말에 악철빙은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이고 고삐를 넘겨받았다.
 “고맙소이다. 그럼 잠시 말을 빌리겠습니다.”
 그러자 철비웅은 한 대 남은 마차 위로 올랐다.
 철산웅도 뒤따라 올랐다.
 악철빙도 망설이지 않고 말 위에 올랐다.
 두두두두두······!
 한 대의 마차와 말은 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가랑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고 이십여 구 시체가 뒹구는 참경은 점차 멀어져 갔다.
 한편 악철빙은 마차와 나란히 달리며 생각에 잠겼다.
 ‘이들은 내게 무엇인가 할말이 있는 것 같은데 왜 말하지 않고 그냥 달리기만 하는 것일까?’
 이때였다.
 (소협······!)
 바로 철비웅이 마차의 마부석 위에서 그에게 전음으로 말했다.
 악철빙도 전음으로 응답했다.
 (철 노영웅, 말씀하십시오. 무슨 말인지······.)
 그러자 철비웅은 탄식했다.
 (아······ 이런 표물은 역시 받지 않는 것인데 결국 화를 초래하고 말았소이다.)
 악철빙은 왠지 모르게 호기심이 당기고 있었다.
 그리하여 급히 물었다.
 (철 노영웅, 대체 무슨 표물이기에······?)
 (이번 표물은 하나의 관(棺)이오.)
 (아니······ 관······ 이라니?)
 (그렇소. 한 구의 시체가 든 관이오.)
 (세상에 그런 표물도 있단 말입니까?)
 달리는 마차와 말 위에서 두 사람은 계속 전음으로 대화를 주고받았다.
 (처음 이 관을 청탁받았을 때 놀라지 않을 수 없었소. 왜냐하면 호송비로 자그마치 황금 십만 냥을 냈기 때문이오.)
 (······!)
 (그런 액수는 진원표국이 이십 년 동안 받은 표물 호송비 전액보다도 최소한 십 배나 더 많은 것이오. 그래서······ 노부는 이 일에는 반드시 흑막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거절했었소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물주(物主)가 더욱 큰 대가를 제공했소이다. 그것은 바로······ 한 뿌리의 천년홍연근(千年紅蓮根)이었소이다.)
 ‘천년홍연근······!’
 악철빙은 내심 놀람을 금치 못했다.
 천년홍연근은 기사회생뿐만 아니라 공력의 증진에도 뛰어난 영효가 있는 영약이었기 때문이었다.
 실로 한 뿌리 천년홍연근의 가치는 어쩌면 일개 성보다 더 값진 것일 수도 있었다.
 이때 철비웅의 전음이 다시 들려 왔다.
 (아······! 원래 우리 진원표국은 산서에 있는 열두 개 표국 중에서도 그다지 큰 표국이라고는 할 수 없는 입장이었소. 한데 본 표국으로 표물이 들어온 것은 다른 모든 표국들이 호송을 기피했기 때문이었소이다.)
 악철빙은 이 일에는 무엇인가 심상치 않은 내막이 숨겨져 있음을 직감적으로 알 수가 있었다.
 그는 비록 강호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총명하고 냉정한 판단으로 벌써 표물이 한 구의 관(棺)이라는 데 대해서 의심이 든 것이었다.
 (천년홍연근은 노부에게는 매우 필요한 것이었소이다. 왜냐하면 노부의 손녀가 중병을 앓고 있기 때문에······.)
 (음······!)
 악철빙은 비로소 그가 왜 이런 불길한 표물을 받았는지 이해할 수가 있었다.
 (그리하여 결국 표행을 하게 되었소이다. 가는 곳마다 미리 받은 황금을 모두 뿌리다시피 하면서 녹림도에게 통과를 사전에 허락받았소. 한데······ 여기서 산서팔악이 황금을 받고도 배신할 줄은······.)
 철비웅은 여기까지 말하고는 치를 떨었다.
 생각할수록 수하 표사들을 잃은 사실이 너무도 비통했던 것이었다.
 이때 악철빙은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산서팔악이 어쩌면 첫 방해자로, 더욱 무서운 자들이 표물을 노리러 올지도 모르겠구나.’
 (철 노영웅, 표물은 어느 곳까지 호송하기로 하였습니까?)
 (산서와 하북성(河北省)의 경계인 낭자관(娘子關)까지요.)
 (낭자관······ 그럼 아직도 삼 일은 더 가야만 당도하겠군.)
 (그렇소이다, 소협. 그래서······ 노부는 염치없으나 소협께 한 가지 부탁을 드리려고 하오.)
 악철빙은 벌써 그 말에 모든 것을 알아차렸다.
 (소생더러 낭자관까지 호송해 달라는 것입니까?)
 (그······ 그렇소이다.)
 (좋습니다.)
 악철빙은 시원스럽게 대답했다.
 하나 철비웅은 믿을 수 없다는 듯 급히 반문했다.
 “저······ 정말이오? 소협?”
 악철빙은 빙그레 웃었다.
 “소생은 한 번도 헛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고······ 고맙소이다, 소협. 이 은혜는······.”
 “하하······ 자, 날이 어두워졌습니다. 빨리 갑시다.”
 악철빙은 말의 복부를 힘껏 걷어찼다.
 히히히히힝-!
 그 순간 말은 마차를 휙 지나더니 벌써 멀리 달려갔다.
 이미 사위는 캄캄했고 가랑비는 어느덧 그쳐 있었다.
 “웅아! 우리도 빨리 가자!”
 “네, 아버님!”
 덜컹! 두두두······.
 마차도 속력을 내어 달려갔다.
 하나 먼저 앞으로 달려간 악철빙은 좀체로 그들 부자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나 이때였다.
 “으- 아- 악!”
 “크- 악!
 실로 소름이 끼치는 무시무시한 단말마의 비명이 저만큼 앞쪽 한 마장쯤에서 연달아 두 번 들렸다.
 “앗······!”
 “아니······!”
 마차를 몰던 철비웅과 철산웅은 대경했다.
 하나 그들은 마차를 그대로 달리게 했다.
 이토록 칠흑 같은 밤에 마차를 멈춘다는 것은 오히려 더욱 위험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앞에 분명 극히 흉험한 일이 도사리고 있음이 틀림없다.
 그들은 가슴이 바짝바짝 타들어가면서도 빨리 사실을 확인하고 싶었다.
 또한 앞서 말을 몰아간 악철빙은 어찌되었는지······?
 이내 도착한 곳에는 악철빙이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검을 검집에 넣고 있었다.
 그의 발 아래에는 두 구의 시체가 똑같이 심장이 갈라진 채 죽어 있었다.
 하나 악철빙은 표정 하나 변치 않고 다시 말 위에 올랐다.
 “끼럇······!”
 따가닥! 따가닥······.
 말은 다시 달렸다.
 악철빙, 그는 냉혈한인가?
 아니면 살인마(殺人魔)인가?
 원래 그는 일단 표물을 호송해 주기로 약속한 뒤 직감적으로 마차가 가는 앞에 매복자가 있음을 알아챘다.
 그리하여 먼저 말을 몰고 달려나왔는데 과연 관도 한복판에서 각기 철산도(鐵山刀)를 들고 길을 막은 두 명의 괴인이 있어 해치워 버린 것이었다.
 따가닥! 따가닥······.
 악철빙은 말을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속도로 몰았다.
 어느덧 길 양옆은 수림으로 우거져 있었다.
 그곳에는 아무리 많은 매복자들이 숨어 있다고 해도 절대 발견할 수가 없을 것이다.
 악철빙은 이 사실을 알았다.
 하나 그는 결코 보통 사람과는 틀렸다.
 그는 숲으로 들어선 순간 청각을 최대한으로 기울였다.
 그러자 우측의 한 커다란 나무 위에 두 명이 숨어 있는 기척을 알아낼 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짐짓 아무것도 모르는 듯 말을 몰아 그 나무 밑을 지나갔다.
 바로 이때 호통 소리가 들렸다.
 “죽어랏-!”
 “차- 앗!”
 쉭! 쉬쉭-!
 몇 가지 암기가 빛살처럼 악철빙의 몸을 벌집으로 만들 듯이 날아왔다.
 그 순간 악철빙은 당황하지 않고 마상 위에 앉은 채로 몸을 바짝 엎드렸다.
 대부분의 암기는 그의 등을 간발의 차로 스치고 지나갔다.
 하나 그래도 십여 개의 암기가 날카롭게 날아들었다.
 그 순간 어느새 검이 반원의 검광을 뿌리고 있었다.
 쨍! 쨍! 쨍······!
 그러자 십여 개의 암기는 어지럽게 퉁겨 나갔다.
 그뿐만이 아니라 교묘한 힘의 안배로 인해 도로 날아왔던 방향으로 쏘아가는 것이 아닌가?
 “윽!”
 “아- 악!”
 창졸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쿵! 쿵······!
 나무 위에서 두 인영이 떨어졌다.
 그들은 볼썽사납게도 자신들이 발출한 암기에 맞아 죽은 것이었다.
 그들은 삼십 가량의 청의를 입은 대한들이었다.
 “쯧쯧······! 암기를 가지고 놀려면 제대로 놀 것이지······.”
 악철빙은 혀를 끌끌 차며 다시 한 손으로 말잔등을 가볍게 때렸다.
 말은 앞으로 나갔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리지 않고 천천히 나갔다.
 얼마쯤 갔을까?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갑자기 소름 끼치는 괴소가 들려 왔다.
 “크흐흐흐흐······!”
 “훗훗훗······.”
 악철빙은 움찔했으나 곧 태연히 말을 몰았다.
 그러자 어디선가 음산 괴이한 음성이 들렸다.
 “크흐흐······ 애송이놈이 간덩이가 부었군. 제 발로 죽음의 길로 들어오다니.”
 “훗훗훗······ 아무렴. 이놈은 얼굴이 반반해 계집깨나 홀리겠는걸? 하지만 우리들에게 걸렸으니 불행히도 그런 일은 없을 거야.”
 주고받는 소리와 함께 어둠 속에서 번쩍 두 인영이 날아들었다.
 그들은 악철빙의 앞을 가로막고는 형형한 눈길로 노려보았다.
 ‘으······ 윽!’
 악철빙은 그들을 본 순간 내심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발했다.
 그것은 나타난 두 괴인의 얼굴이 너무도 추악하게 생겼기 때문이었다.
 오른쪽 괴인은 애꾸눈에다 코는 짓뭉개져 두 개의 구멍만 보였으며 얼굴 피부는 마구 얽어 있었다.
 왼쪽 괴인은 퉁방울눈에다 들창코, 입술은 까발린 듯 훌렁 뒤집어져 있었으며 얼굴은 마구 난도질당한 듯 상처투성이였다.
 실로 이들 두 괴인의 얼굴은 꿈에 볼까 두려울 정도로 추악했다.
 “당······ 신들은 누구요?”
 악철빙은 자신도 모르게 약간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그러자 두 추괴는 서로 얼굴을 마주보더니 괴상한 음성으로 말했다.
 “크흐흐······ 이 꼬마놈이 겁을 먹은 모양인데?”
 “훗훗······ 아마 우리 얼굴을 보고 간장이 싸늘했나 보군.”
 두 추괴는 눈앞의 악철빙을 무시하듯 자신들끼리 마음대로 지껄여댔다.
 ‘음······! 이 두 추물들은 정말 안하무인(眼下無人)이군······ 어디 그럼······.’
 악철빙은 이렇게 내심 중얼거리고는 빈정거리듯 말했다.
 “두 분은 어찌 그렇게도 못생겼소? 실로 그 얼굴을 보면 작년에 먹은 제사 음식이 올라올 것 같소.”
 “뭣이?”
 “뭐······ 뭐라고?”
 두 추물은 대로하여 각기 눈을 부릅떴다.
 이들은 누구인가?
 
 중주쌍추(中州雙醜)!
 
 이들의 이름은 무림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이들은 이미 사십 년 전의 인물들이었으며 그 추악한 용모와 괴행(怪行)으로 천하에 알려져 있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추악한 용모 때문에 세상을 저주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누가 자신들을 추하다 비웃으면 기필코 그자를 죽이고야 만다.
 뿐만 아니라 특히 잘생긴 미남을 만나면 그들은 분풀이라도 하듯 덤벼들어 기어코 그자의 얼굴을 망가뜨려 추악하게 만든다.
 그리하여 무림의 용모가 준수한 젊은이들은 이들 중주쌍추를 보면 혼비백산하여 아예 멀찌감치 달아나 버리는 것이었다.
 첫째가 독안추괴(毒眼醜怪), 둘째가 도상추괴(刀傷醜怪)였다.
 이들은 이름이 없었으며 형제인지 아닌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
 이때 악철빙의 말은 이들 중주쌍추의 약점을 정통으로 찌른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 이······ 찢어 죽일 놈이······!”
 둘째인 도상추괴가 참지 못하고 손바닥을 활짝 펴더니 그대로 악철빙의 허리를 움켜쥐어 왔다.
 쏴- 아!
 그의 손바닥에서는 마치 바닷물이 밀리는 것 같은 경풍이 쏟아져 나왔다.
 “흥!”
 악철빙은 그대로 말에 탄 채 슬쩍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그의 오른손이 마치 독수리가 병아리를 채듯 도상추괴의 맥문을 잡아갔다.
 “엇! 이놈이······.”
 도상추괴는 약간 놀라며 급히 손바닥을 뒤집었다.
 그러자 오히려 악철빙의 팔꿈치 곡지혈(曲池穴)이 그의 갈고리 같은 손가락에 잡히려 했다.
 ‘음! 날카로운 공격이구나!’
 악철빙은 긴장하며 재빨리 오른손을 어지럽게 뿌렸다.
 그 순간 폭음과 함께 두 경기가 부딪쳤다.
 펑······!
 악철빙은 팔 전체가 찌르르함을 느끼고 놀람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것은 도상추괴였다.
 그는 충격에 밀려 뒤로 두 걸음이나 비틀거리며 물러난 것이었다.
 중주쌍추는 그만 일제히 안색이 변하고 말았다.
 “네놈은 제법······ 수를 가지고 있구나!”
 첫째인 독안추괴가 컬컬한 음성으로 말하며 선뜻 앞으로 나섰다.
 “내려와라, 꼬마야! 끝까지 말을 타고 싸울 셈이냐!”
 그 말에 악철빙은 냉랭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 전에 당신들에게 물어 볼 것이 있소.”
 “뭐냐?”
 “당신들이 나를 막은 것은 표물을 탈취하기 위해서요?”
 독안추괴는 외눈을 흉맹하게 번뜩이며 웃었다.
 “크흐흐······ 물론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무엇 때문에 이 야밤에 이 황량한 곳에 나왔겠느냐?”
 “그럼 당신들은 표물이 무엇인지 알고 있소?”
 독안추괴는 괴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흐흐······ 물론이다. 그것은 한 구의 관이다.”
 악철빙은 내심 심한 의혹을 금치 못했다.
 ‘대체 어찌된 일인가? 표물이 관이라는 것도 괴이한 일이지만 또 그 관을 노리는 무리들이 이렇게 많다니, 그들은 관을 어디다 쓰겠다는 것이란 말인가?’
 악철빙은 다시 물었다.
 “좋소, 이제 한 가지만 더 묻겠소. 그럼 그 관 속에 든 것이 뭐요?”
 “그······ 그건······ 말해 줄 수 없다.”
 “왜?”
 “크흐흐······ 꼬마야, 궁금하면 네가 관을 열어 보면 될 것이 아니냐? 표물을 호송해 주기로 철가와 약속해 놓고 이제껏 그것도 모른단 말이냐?”
 “음······!”
 악철빙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휙-!
 그는 말에서 뛰어내린 다음 중주쌍추의 앞 팔 척쯤의 거리에 우뚝 섰다.
 “자, 이제 손을 쓰시오. 나는 표물을 탈취하려는 무리들은 누구든 용서할 수 없소.”
 그의 태도와 말에선 싸늘함과 오만함, 그리고 위엄마저 흘렀다.
 ‘으······ 음······! 비록 어린놈이지만······ 대단한 위세다.’
 ‘대체 이놈은 누구이길래 아직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을까?’
 중주쌍추는 각기 이런 생각을 하며 감히 악철빙을 얕보지 못했다.
 
 
 2장 의혹(疑惑)
 
 
 “크흐흐······ 노부의 일장(一掌)을 받아라!”
 위- 잉-!
 한 줄기 거대무비한 경력이 악철빙의 몸으로 짓쳐 왔다.
 “흥!”
 악철빙은 냉랭하게 코웃음치고는 가볍게 오른손으로 가슴 앞에 원을 그리더니 내뻗었다.
 우르르······ 꽝!
 순간 뇌음(雷音)과 함께 뒤이어 엄청난 폭음이 울렸다.
 “억······!”
 독안추괴는 다급한 비명을 지르며 뒤로 두 걸음 물러났다.
 돌먼지와 광풍이 회오리치는 가운데 그의 외눈은 경악을 가득 담고는 태연히 제자리에 서 있는 악철빙을 보고 있었다.
 “네······ 네놈이 방금 펼친 장력은 호······ 혹시······ 절대천뢰장(絶代天雷掌)이 아니냐!”
 독안추괴의 얼굴은 완전히 핼쑥하게 변해 있었다.
 절대천뢰장!
 그것은 지난날 절대검주 악초령의 검장이절(劍掌二絶)의 절기 중의 하나가 아닌가?
 악초령은 이 절대천뢰장으로 천하를 휩쓸었으므로 무림에서는 이 장법을 모르는 자가 없었다.
 악철빙의 얼굴이 기이하게 굳어졌다.
 그는 아무런 응답도 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쌍장을 나누어서 번개처럼 중주쌍추를 동시에 공격했다.
 우르릉-! 쾅-!
 퍼- 펑-!
 “윽!”
 “어억!”
 중주쌍추는 급급히 쌍장을 맞받았으나 가슴의 기혈이 거꾸로 치솟아 오르는 것을 느끼며 비칠비칠 물러났다.
 그들은 엄청난 장력에 이미 내상을 입고 있었다.
 그들의 만면에는 공포심이 역력히 나타나 있었다.
 만일 눈앞의 청의소년이 절대검주의 전인(傳人)이라면······?
 하나 중주쌍추는 절대 그러한 경우를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럴 리가 없다, 그럴 리가······!’
 그렇다.
 그들은 이미 절대검보의 비밀 지시를 받아 표물을 탈취하려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어찌 절대검주의 전인이 나타나 그들을 저지할 수 있단 말인가?
 “차- 앗!”
 “받아라, 꼬마야!”
 그들은 동시에 폭갈을 터뜨리며 덤벼들었다.
 마치 자신들의 생각을 지워 버리려는 듯이.
 하나 악철빙은 싸늘하게 웃었다.
 “흐흐······ 어려움을 알고도 물러나지 않다니, 나를 더 이상 원망 마시오.”
 다음 순간 그는 발로 중궁(中宮)과 칠성(七星)의 두 방위를 비스듬히 잡더니 쌍장을 괴상한 동작으로 연속 사 장(四掌)을 뻗었다.
 우르르릉- 콰- 쾅-!
 펑! 퍼- 펑!
 “으- 악!”
 “크- 윽!”
 실로 엄청난 뇌성벽력 같은 장력이었다.
 중주쌍추는 그대로 가슴이 터지는 고통을 느끼며 실이 끊어진 연처럼 뒤로 날아갔다.
 그들의 비명은 칠흑의 숲 속에서 섬뜩하게 울렸다.
 쿵! 퍽-!
 중주쌍추는 숲 속에 처박혀 그대로 세상을 하직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눈을 감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은 자신들이 절대천뢰장에 당했다는 사실을 영원히 잊을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하나 어찌 알았으랴.
 그들이 생각하는 절대검보는 이미 과거의 절대검보가 아님을······!
 
 ***
 
 한편 철비웅과 철산웅 부자는 표차를 전력으로 달리다 관도에 참혹하게 죽어 있는 두 구의 시체를 보았다.
 “앗! 이들은······ 노산쌍흉(怒山雙兇)이 아니냐!”
 “네! 그렇습니다, 아버님.”
 “아······ 이들이 이곳에 죽어 있다니······ 그럼 바로 철빙이란 그 소협이······.”
 “그렇습니다. 죽은 모양을 보니 검에 깨끗이 죽었습니다. 틀림없는 그분 소협의 솜씨입니다.”
 철비웅이 침중하게 말했다.
 “음! 앞에는 더욱 흉험한 일이 도사리고 있을 것이다. 그분 소협이 길을 트는 모양이니 우리도 어서 따라가자.”
 철산웅은 다시 채찍을 휘둘렀다.
 찰싹!
 히히히힝-!
 두두두두······.
 표차는 어둠의 관도를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이때 철산웅이 불안한 듯 물었다.
 “아버님, 그런데 관 속에는 정말 사람의 시체(屍體)가 들어 있을까요?”
 “음, 글쎄······.”
 “그런데 표물을 맡긴 주인은 누구입니까?”
 “그건 아비도 모른다. 당시 물건을 가져온 사람은 복면을 하고 있었다.”
 “······.”
 “하나 분명한 것은 이 표물은 무척 중요한 것임이 틀림없다. 이렇게 많은 무림인들이 노리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그 말에 철산웅은 더욱 불안한 듯 물었다.
 “한데······ 우리가 이 표물을 무사히 운반할 수 있을까요?”
 철비웅은 침중히 말했다.
 “그래······ 그분 소협이 도와 준다면······.”
 “그분은 대체 어떤 사람일까요?”
 “모른다. 그러나 확실한 점은 그가 좋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아비는 나이를 먹으면서 사람을 보는 눈만은 정확하다고 믿는다.”
 이때였다.
 “앗······ 여기 또······ 시체가······!”
 철산웅의 경악성이었다.
 이미 마차는 숲 속으로 들어와 있었다.
 철비웅은 두 구의 삼십대 시체를 힐끗 보았다.
 잠시 후 그들은 마차를 앞으로 달리면서 더욱 대경실색한 광경을 목도했다.
 수십여 구의 시체들이 즐비하게 널려 있었던 것이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사지가 절단되거나 복부, 가슴 등이 엄청난 장력에 파열되어 있었다.
 “이······ 이럴 수가 있나! 이들이 모두 표물을 노리던 인물들이란 말인가.”
 “아······ 아버님······! 하나 그 소협이 이 많은 자들을 해치웠다니······ 믿어지지 않을 뿐입니다.”
 “어쨌든 어서 가 보자.”
 “네!”
 히히히히힝-!
 두두두두······.
 
 ***
 
 악철빙은 피가 뚝뚝 흐르는 검을 쥔 채 앞을 노려보고 있었다.
 바닥에는 이미 십여 구의 시체가 쓰러져 있고 앞에는 아직도 이십여 명의 고수들이 그를 가로막고 있었다.
 그는 이미 혈신(血神)인 양 온몸에 피를 뒤집어쓰고 있었으나 여전히 표정은 창백하고 냉막하기만 했다.
 이때 호통과 함께 다섯 명의 흑의인이 한꺼번에 무기를 휘두르며 그를 덮쳤다.
 “차- 앗!”
 “죽어라-!”
 그러나 악철빙은 입에서 싸늘한 호통을 터뜨림과 동시에 그의 수중의 검이 피무지개를 그렸다.
 “일낙혈해광천(日落血海狂天)!”
 차창! 차창! 쨍그랑-!
 “으- 악!”
 “크- 헉!”
 비명 소리가 허파를 찢을 듯이 꼬리를 물었다.
 악철빙의 검은 어느 방향에서, 어느 곳으로 뻗는지 전혀 추측이 불가능했다.
 동(東)을 가르는가 싶으면 정작 검광은 다른 방향으로 뻗었다.
 그의 검법은 무림에서는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엄청난 살수쾌검(殺手快劍)이었다.
 쿵! 쿵! 털썩······.
 썩은 나무토막처럼 다섯 구의 시체가 쓰러졌다.
 “우······! 이럴 수가······!”
 “귀······ 귀신이닷······.”
 살아 남은 상대자들은 공포에 질려 뒤로 비틀비틀 물러났다.
 하나 악철빙은 그들을 그대로 두지 않았다.
 “멈춰라! 어디로 달아나려 하느냐!”
 어둠 속에서 흑의를 입은 무리들은 얼어붙어 버렸다.
 하나 이때 음침한 괴소와 함께 한 명의 흑의인이 나섰다.
 “흐흐······ 귀하, 너무 잔인한 수법이오.”
 그는 매부리코에 오순쯤 되는 자로 오른손에는 길이가 두 자쯤 되는 쇠갈고리를 들고 있었다.
 “너는 누구냐?”
 악철빙의 말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흐흐······ 노부는 흑의방(黑衣幇)의 외당(外堂) 당주인 철수구(鐵手鉤) 호비(胡非)라 하오.”
 “흑의방······!”
 악철빙도 들은 적이 있었다.
 흑의방은 산서 일대의 사도방파로써, 이들은 모두 흑의를 입고 행동하는 것이 특색이었다.
 그들은 비록 당금의 구파일방만큼 세력이 크지는 않았지만 십여 년 만에 산서 일대를 장악한 집단이었다.
 악철빙은 냉랭하게 말했다.
 “당신도 표물을 노리고 있소?”
 호비는 대답했다.
 “그렇소, 귀하.”
 “누구의 명령이오?”
 “그건 본 방 방주께서 내린 명령이오.”
 악철빙은 냉소치며 말했다.
 “칠살신군(七殺神君) 말인가?”
 “말조심해라! 방주의 명호를 함부로 입에 올리다니!”
 호비는 살기를 띠며 외쳤다.
 그러나 악철빙은 수중의 피가 흐르는 검을 치켜 들었다.
 “이 검을 이길 수 있다면 나는 당신의 방주에게 표물을 두말없이 바치겠소. 그러나 그렇지 못하다면 빨리 물러가는 것이 신상에 이로울 것이오.”
 “무엇이?”
 호비는 대뜸 화가 치밀어 수중의 철수구를 치켜 들었다.
 그의 쇠갈고리 끝에는 독이 묻은 듯 납빛이 돌고 있었다.
 “후후······ 호비, 어서 공격해라. 기회는 한 번뿐이니까.”
 “건방진 놈!”
 쉬- 익!
 그는 번개같이 철수구를 휘둘렀다.
 그의 공격은 악철빙의 치명적인 세 군데 사혈을 동시에 찍었다.
 그러나 악철빙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는 철수구 끝이 거의 한치 정도로 가슴에 닥쳐왔을 때 비로소 슬쩍 숨을 들이쉬었다.
 그 순간 철수구는 옷자락을 스치고 빗나가 버렸다.
 “엇······!”
 호비가 놀라는 순간 그는 눈앞에서 검광이 번쩍하는 것을 느꼈다.
 “으- 악!”
 그는 비명을 질렀다.
 목줄기가 화끈했던 것이다.
 “으······! 으으으······!”
 그는 공포에 질려 신음을 발했다.
 목이 크게 베어진 듯 뜨거운 피가 가슴속으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호비는 절망하여 서서히 쓰러졌다.
 하나 이때 악철빙의 냉랭한 음성이 그의 정신을 일깨웠다.
 “호비, 넌 아직 죽지 않았다. 정신을 차려라.”
 퍼뜩 정신을 차려보니 과연 그는 죽지 않았다.
 단지 목 부근에 싸늘한 검이 대어져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상대방이 약간만 힘을 가해도 그의 목은 댕강 잘릴 판국이었다.
 “으으······ 이······ 검을 치우시······ 오!”
 호비는 진땀을 흘리며 애원했다.
 “흥! 움직이지 말고 내가 묻는 말에 대답하면 물론 너를 더 이상 어떻게 하지는 않겠다.”
 악철빙의 차디찬 말이었다.
 호비는 그만 체념한 듯 두 팔을 축 늘어뜨렸다.
 쨍그랑-!
 그의 손에서 철수구가 떨어져 바닥에 뒹굴었다.
 “휴······ 물어 보시오, 무엇이든지······.”
 악철빙은 간단히 물었다.
 “정말 표물을 강탈하라는 명령을 칠살신군이 내렸나?”
 “그······ 그렇소. 정말이오······.”
 “좋다! 그럼 그는 어디 있느냐?”
 호비는 진땀을 흘리며 대답했다.
 “바······ 방주는 지금······ 지금······.”
 “어디에 있느냐?”
 바로 이때였다.
 “나는 바로 이곳에 와 있다.”
 음산한 음성이 들리는 순간 어둠 속에서 흑의인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방주님······!”
 악철빙은 묵묵히 기다렸다.
 그러자 캄캄한 숲으로부터 네 명의 인물이 걸어나왔다.
 그들은 모두 흑의를 입고 있었다.
 맨 앞장에 선 자는 키가 칠 척이나 되고 얼굴은 말랐으며 독사눈에 푸른 안광이 번뜩였다.
 그는 오른손에 하나의 검은 괴장을 들고 있었으며 왼손에는 음양선(陰陽扇)이 들려 있었다.
 그의 좌우로는 이십대의 제법 영준한 청년들이 호위하듯 서 있었는데 그들은 쌍둥이처럼 똑같았다.
 그들은 각기 등에 일양도(日陽刀)와 반월도(半月刀)를 메고 있었다.
 그 뒤로는 뚱뚱한 노인이 따랐다.
 키는 오척단구.
 그러나 넓은 얼굴에서 쉴새없이 무서운 살광(殺光)을 뿌리는 작은 눈이 섬뜩한 느낌을 주었다.
 그는 외문병기(外門兵器)인 선인장(仙人掌)을 메고 있었다.
 이들이 나타나자 흑의인들은 모두 숙연한 안색을 지었다.
 “일어나라!”
 칠살신군의 입에서 명령이 떨어지자 십오륙 명의 흑의인들은 일제히 일어섰다.
 칠살신군은 바닥에 죽어 있는 시체와 호비가 잡혀 있는 것을 보고 푸른 눈을 번뜩이며 악철빙을 향해 음산하게 입을 열었다.
 “이것이 모두 네놈의 작품이냐?”
 악철빙은 냉랭하게 대답했다.
 “그렇소.”
 “흐흐······ 네놈은 이런 결과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느냐?”
 “결과? 후후······ 인간이란 언제나 눈앞의 일에만 바쁜 것이오.”
 “그래? 그렇다면 노부가 가르쳐 주지. 너는 목숨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악철빙은 입가에 괴이한 미소를 지으며 수중의 검을 약간 비틀었다.
 “으- 악!”
 호비가 비명을 질렀다.
 검이 그의 목 피부를 한치 가량 베어 버린 것이었다.
 “으으······ 제발······ 제발······.”
 호비는 공포에 질려 온몸에 진땀을 흘리며 후들후들 떨었다.
 피가 줄줄이 흘러 그의 상반신 옷을 적시고 있었다.
 “호비! 너는 살고 싶으냐?”
 “무······ 물론······ 살고······ 싶소······!”
 “그렇다면 내가 시키는 대로 하겠느냐?”
 “무······ 무엇을······?”
 호비는 공포에 질린 눈으로 슬쩍 칠살신군을 바라본 뒤 물었다.
 악철빙은 차갑게 말했다.
 “이 자리에서 너의 방주에게 말해라. 나로 하여금 너의 목숨을 살려 달라고 부탁하도록 말이다.”
 호비는 그 말에 안색이 하얗게 되고 말았다.
 그는 알고 있었다.
 칠살신군은 절대로 수하를 살리기 위해 남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는 것을······.
 “그······ 그것은······.”
 “흐흐······ 살고 싶지 않은가 보군. 그렇다면······.”
 악철빙은 손에 조금 더 힘을 주었다.
 “악!”
 호비는 기절할 듯 비명을 질렀다.
 “하······ 하겠소! 잠깐만······.”
 악철빙은 힘을 뺐다.
 호비는 상갓집 개처럼 축 늘어져 애원하듯 칠살신군을 바라보았다.
 “바······ 방주······ 소······ 속하의 목숨을······.”
 그러나 칠살신군은 독광을 번뜩이며 음침하게 말했다.
 “호비, 본 방주에게 고개를 숙이라는 말이냐?”
 “하······ 한마디만 해주십시오. 속하의 목숨은 오로지 방주의 말 한마디에 달려 있습니다.”
 칠살신군의 만면에는 무서운 살기가 피어올랐다.
 “흐흐······ 호 당주, 그대는 본 방을 위해 그동안 많은 애를 썼소. 그러므로 본 방주는 당신에게 보답을 하겠소.”
 “바······ 방주······!”
 호비의 안색은 죽은 사람이 되어 버렸다.
 칠살신군은 얼음장같이 싸늘하게 말했다.
 “호 당주에게 영광스럽게 자살할 기회를 주겠소.”
 호비는 절망의 탄식을 발했다.
 “아······!”
 하나 이미 그의 얼굴에는 무서운 증오가 떠올랐다.
 “칠······ 칠살신군! 겨우······ 겨우······ 나 호비에게 베푸는 것이 이것이란 말이냐? 나 호비의 그동안 충성은 모두 헛된 것이란 말이냐?”
 그는 발악을 하고 있었다.
 순간 칠살신군의 눈에서 살광이 쏟아졌다.
 “미친놈!”
 호비는 악철빙에게 부르짖었다.
 “귀하! 나의 목을 치시오. 나는 차라리 귀하에게 죽겠소.”
 순간 악철빙이 검을 휘두르자 검광이 호비의 몸을 휘감았다.
 번- 쩍!
 호비는 순간 지옥으로 떨어지는 듯싶었다.
 그러나 악철빙의 경쾌한 음성이 그의 정신을 일깨웠다.
 “하하핫······ 호비! 당신은 이제 자유(自由)요.”
 순간 호비는 눈을 번쩍 떴다.
 그는 탄성을 발했다.
 “아-!”
 자신은 멀쩡했던 것이다.
 단지 가슴이 시원해서 내려보니 앞가슴 옷자락이 십자(十字)로 베어져 있을 뿐이었다.
 호비는 그 순간 모든 것을 알았다.
 “귀······ 귀하······!”
 그는 감격에 겨워 악철빙을 바라보았다.
 악철빙은 담담하게 말했다.
 “호비, 당신은 이제 칠살신군과 모든 의(義)가 끊어졌소. 어서 마음대로 가고 싶은 곳으로 가시오.”
 그 말에 호비는 고개를 홱 돌려 칠살신군을 노려보았다.
 그의 눈에는 증오와 경멸이 담겨 있었다.
 칠살신군은 안색을 일그러뜨릴 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흐흐······ 방주, 당신이 내게 베푼 인정은 결코 잊지 않겠소.”
 호비는 이렇게 말하고는 악철빙에게 포권했다.
 “귀하, 당신이 노부에게 재생의 길을 열어 준 것에 대해 깊이 감사하오. 훗날 기회가 온다면 반드시 은혜를 갚겠소.”
 호비는 이 말을 남기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칠살신군은 뭐라 말을 하려 했으나 멈칫했다.
 그의 앞으로 악철빙이 걸어왔기 때문이었다.
 악철빙은 경멸하듯 말했다.
 “칠살신군, 이것이 그대들 방파의 의리인가?”
 “으······ 이놈이······!”
 칠살신군의 얼굴에 무서운 분노의 살기가 치밀어 올랐다.
 그 순간 휙, 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뒤에 있던 뚱보노인이 튀어나와 악철빙을 가로막았다.
 “이놈! 너 같은 놈은 본 당주가 처리하겠다.”
 뚱보는 등뒤에서 선인장을 꺼내 들었다.
 “호, 당신은 또 무슨 당주요?”
 악철빙은 빈정거리듯 물었다.
 “형당(刑堂) 당주 인도성(人屠星) 추요(秋曜)다!”
 “흠, 알고 보니 사람 잡는 돼지였군.”
 “뭐······ 뭣이······ 이 찢어 죽일 놈이!”
 인도성 추요는 비대한 몸을 어울리지 않게 날리며 선인장을 내려쳤다.
 육중한 선인장이 태산같은 위세로 악철빙의 머리를 박살낼 듯 날아왔다.
 악철빙은 그를 보고 가볍게 발을 움직였다.
 순간 그의 몸은 이미 선인장을 피한 다음 추요의 뒤통수를 가격했다.
 콱!
 그의 수도(手刀)는 정확히 목덜미에 떨어졌다.
 “쿡!”
 추요는 돼지 멱따는 비명을 지르며 비틀거렸다.
 그러나 그는 쓰러지지 않고 재차 선인장을 휘둘렀다.
 슈- 웅- 윙-!
 선인장에서 방출되는 경기는 정녕 엄청났다.
 최소한 수천 근의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악철빙은 표표히 옷자락을 날리며 공격권에서 몸을 피했다.
 그의 보법(步法)은 마치 물이 흐르듯 유연했으며 신속하고 기묘했다.
 그러므로 추요의 공격은 번번이 허탕을 치며 진력만 소비할 뿐이었다.
 그는 벌써 비대한 얼굴에 땀을 흘렸다.
 “하하하······ 이따위 둔한 재주로 나와 겨루려 하다니.”
 순간 딱! 소리와 함께 선인장이 무엇에 부딪힌 듯 멈추었다.
 악철빙이 한 손으로 선인장 끝을 잡은 것이었다.
 그러자 추요는 오히려 얼굴에 희색을 띠었다.
 “흐흐······ 겁 없이 잡다니, 뜨거운 맛을 보여 주마.”
 이렇게 외치며 그는 내공을 돋구었다.
 “아얍!”
 한 소리 기합과 함께 진력은 선인장을 통해 뻗어 나갔다.
 “후후······.”
 그러나 기묘한 웃음소리가 들린 순간 추요는 대경실색하고 말았다.
 선인장이 시뻘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한 것이었다.
 악철빙이 체내의 양화진력(陽火眞力)으로 선인장을 뜨겁게 달군 것이었다.
 “으윽······!”
 추요는 비명을 질렀다.
 그의 손바닥은 이미 검게 타고 있었다.
 푸지직! 뿌직······!
 매캐한 역한 냄새가 진동하며 연기가 피어올랐다.
 이때 관전하던 칠살신군은 경악성을 내질렀다.
 “앗! 건천열화신강!”
 “으- 악!”
 그 순간 처참한 비명과 함께 추요는 뒤로 날아갔다.
 이미 그의 양손은 시커멓게 타 있었고 가슴은 검게 그을려 있었다.
 쿵!
 추요는 삼 장 가량이나 날아가 한 그루 거목에 부딪혀 떨어졌다.
 그는 힘없이 고개를 꺾고 있었다.
 칠살신군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건천열화신강! 네놈이 그 무공을 어떻게······!”
 악철빙은 수중의 선인장을 쳐들었다.
 이미 강철로 된 선인장은 녹아 휘어져 있었다.
 실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무서운 위력이었다.
 “후후······ 칠살신군, 그대는 내게 물을 자격이 없다.”
 “뭣이?”
 칠살신군의 만면에는 무서운 살기가 치솟았다.
 바야흐로 두 사람 사이에는 팽팽한 공기가 형성되었다.
 이때였다.
 칠살신군의 양옆에 서 있던 쌍둥이 흑의인들이 똑같은 목소리로 동시에 말했다.
 “방주님, 이놈은 우리 형제들에게 맡겨 주십시오.”
 그러자 칠살신군의 눈이 한차례 기괴하게 번뜩였다.
 이들 쌍둥이는 누구인가?
 
 일월쌍살(日月雙煞)!
 
 이 이름은 산서 일대를 진동한 지 오래였다.
 그들은 칠살신군 주극파(朱極巴)의 직전제자였다.
 하나 이들의 묵악철빙은 또 동해쌍노(東海雙老)의 진전도 함께 받았기 때문에 추측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았다.
 특히 이들은 한날 한시에 태어난 쌍둥이였기 때문에 서로의 영성이 교류하므로 합공에 능했다.
 실제 개인의 무공은 일류고수에 지나지 않지만 이들이 함께 펼치는 일월음양공(日月陰陽功)의 위력은 가히 절세적이었다.
 이들의 일월음양의 공격 배합은 능히 개세고수를 감당할 수가 있어 그들 개인 공격의 십 배 위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강호상에서는 이들 형제를 보면 반드시 한 수를 양보하는 터였다.
 막륭(幕隆), 막패(幕貝)가 이들의 이름이었으나 그들은 누가 형(兄)인지 스스로도 몰랐다.
 
 칠살신군 주극파는 흉광을 번득이며 잠시 생각하다가는 음산하게 말했다.
 “좋다, 저놈을 너희들에게 맡기겠다. 될 수 있으면 빨리 처치해라.”
 “넷!”
 일월쌍살은 동시에 대답했다.
 다음 순간 그들은 다시 해[日]와 달[月]처럼 분리되었다.
 스스스······.
 막륭은 악철빙의 앞에 서고 막패는 뒤에 섰다.
 그러므로 악철빙은 단지 막륭만을 볼 수가 있었다.
 “차- 앗! 일(日)!”
 막륭이 등에서 일양도를 뽑는 동시 날카롭게 외치며 덮쳐들었다.
 “월(月)!”
 막패의 기합도 동시에 등뒤에서 들려 왔다.
 순간 악철빙은 눈앞이 어지러워지며 일양도의 눈부신 도광(刀光)이 햇살처럼 쏟아지는 것을 느꼈다.
 파파팟-!
 그 순간 악철빙도 검을 뽑았다.
 츠츠츠츠······!
 괴음향과 함께 그의 검이 물을 가르듯 찔러 갔다.
 하나 바로 이때였다.
 쉬- 익!
 살벌한 음향과 함께 섬칫한 도기(刀氣)가 그의 등 명문혈(命門血)을 압박했다.
 또한 동시에 막륭의 신형은 오른쪽으로 미끄러지고 재차 팔로비류도식(八路飛流刀式)으로 그의 상반신을 공격했다.
 차차창-!
 검과 도가 마주치고 불꽃이 우박처럼 떨어져 내렸다.
 ‘웃······! 이럴 수가······!’
 악철빙은 내심 경악을 금치 못했다.
 막륭과 교합(交合)한 오른손이 떨어져 나갈 듯 시큰거렸던 것이었다.
 ‘나의 내공은 근······ 백년에 달한다. 한데 이자도 대등하다니······.’
 악철빙은 간담이 서늘해지는 것을 금치 못했다.
 하나 그가 모르고 있는 것이 있었다.
 원래 일월쌍살은 개인의 무공은 일류 정도였지만 합공을 할 시에는 수배나 위력이 있는 것이었다.
 스- 윽!
 찍-!
 “헛······!”
 악철빙은 다급한 헛바람을 마셨다.
 어느새 보이지 않는 상대인 막패의 반월도에 의해 왼쪽 어깨 옷자락이 찢겨져 나간 것이었다.
 어깻죽지가 화끈함과 함께 피가 번져 나왔다.
 그 순간 다시 막륭이 일양도를 휘둘러 그의 복부를 난자해 들어왔다.
 쉬이이익-!
 ‘위험하다!’
 내심 이렇게 외친 악철빙은 급히 숨을 들이마셔 복부를 움츠렸다.
 그러자 간발의 차이로 일양도가 빗나갔다.
 하나 다시 등뒤에서 한풍이 몰아치며 그는 허리 어림이 싸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완전히 기선을 빼앗긴 것이었다.
 일월쌍살의 공격은 호흡이 완전히 일치되어 바늘구멍만한 빈틈도 없을뿐더러 신속하기가 질풍노도 같았다.
 휘휙-!
 악철빙은 삽시간에 이십여 초가 지나갔음을 느꼈다.
 그동안 그는 단 한 번도 반격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가 계속 경황없이 몰리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허점을 찾은 것이었다.
 “하하하······ 정말 멋진 합격술이다.”
 악철빙은 느닷없이 호탕하게 웃으며 신형을 허공으로 뽑아 올렸다.
 휘- 익!
 그는 근 사오 장 가량 솟아올랐다.
 그러자 이제껏 줄곧 등뒤에 붙어 보이지 않던 막패의 모습이 드러났다.
 이것이 일월음양공의 약점이었다.
 상대방이 지상에 있을 때만 월(月)과 음(陰)에 해당하는 막패는 항상 그림자처럼 숨어 공격할 수가 있는 것이었다.
 만약 상대가 허공으로 솟구치면 막패의 신형은 노출되고 그렇게 되면 자연히 합공의 위력도 감소하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나의 공격을 받아 봐라.”
 허공에서 이렇게 외친 악철빙은 머리를 아래로 하여 독수리처럼 떨어지며 검을 날렸다.
 “낙일홍(落日紅)!”
 순간 마치 피비가 쏟아지듯 셀 수 없는 검광이 우박처럼 떨어졌다.
 촤라라라라락-!
 차차차차창-!
 “윽!”
 “억!”
 일월쌍살은 어지럽게 도를 휘둘러 간신히 공격을 막은 후 뒤로 연달아 사오 걸음씩 물러났다.
 그들은 모두 거센 내력에 상처를 입은 듯 안색이 창백해져 있었다.
 하나 악철빙은 그들에게 숨쉴 틈을 주지 않았다.
 그는 기괴한 보법으로 그들 사이를 뚫고 들어가는가 싶자 신형을 빙글 팽이처럼 돌렸다.
 다음 순간 섬광이 일고 비명이 터졌다.
 번- 쩍! 번- 쩍!
 “으- 악!”
 “으- 아- 악!”
 일월쌍살은 뒤로 퉁겨져 날아갔다.
 그들은 각기 왼팔이 어깻죽지서부터 싹둑 잘라져 분수 같은 피를 쏟고 있었다.
 쿵, 털썩······!
 그들은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땅에 떨어진 즉시 혼절을 하고 말았다.
 “저······ 저럴 수가······!”
 칠살신군 주극파의 경악성이 울렸다.
 악철빙은 그를 향해 돌아섰다.
 그의 왼쪽 어깨는 피로 물들어 있었으나 그의 안색은 여전히 무서울 정도로 냉담하기만 했다.
 악철빙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검을 검집에 꽂으며 입을 열었다.
 “칠살신군, 어떻소? 당신의 재간은 쓸 만한 것이오?”
 “으······ 네······ 네놈이······!”
 칠살신군 주극파는 일시에 입이 떨어지지 않는 듯 더듬거렸다.
 그러나 그의 안색에는 이미 두려움이 솟아나 있었다.
 악철빙은 그를 한동안 쏘아보다가 물었다.
 “칠살신군, 아직도 표물을 강탈할 마음이 있소?”
 칠살신군은 안색을 일그러뜨렸다.
 “후후······ 내 당신에게 한 가지만 묻겠소.”
 “당신은 표물이 한 구의 관이라는 것을 알고 있소?”
 칠살신군은 냉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알고 있다.”
 “그럼 그 속에 든 것은?”
 “그······ 그건 모른다.”
 순간 악철빙은 내심 중얼거렸다.
 ‘음······! 역시 이자도 표물의 진실한 내막은 모르는구나. 그렇다면 필시 누군가에게서······.’
 악철빙은 문득 표정을 바꾸며 말했다.
 “칠살신군, 내 당신과 한 가지 내기를 하고 싶소.”
 “내기······?”
 칠살신군의 얼굴에 의혹이 떠올랐다.
 “그렇소. 만약 내가 지면 표물을 말없이 내놓겠소. 하나 당신이 지면 내가 묻는 말에 대답을 해줘야 하오.”
 칠살신군은 그 말에 동요의 빛을 띠었다.
 악철빙은 이어 말했다.
 “내기의 방법은 아주 간단하오. 단 삼 초(三招) 동안에 나는 당신의 옷자락을 찢어내겠소. 못하면 내가 지는 것이오.”
 그 말이 끝나자마자 칠살신군의 얼굴에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이······ 미친놈! 감히······!”
 “하하······ 자신이 있으면 시험해 보면 될 것이 아니오.”
 “으······ 좋다, 건방진 놈!”
 칠살신군은 마침내 격분하고 말았다.
 순간 칠살신군은 악철빙이 자세를 잡기도 전에 수중의 검은 괴장으로 무섭게 악철빙을 휩쓸었다.
 쉬- 익!
 과연 흑도의 마군답게 예고도 없이 선수를 쓰는 것이었다.
 괴장은 흑오철(黑烏鐵)로 만든 것으로 길이는 두 자, 두께는 어린애 손목 굵기였다.
 우- 웅-!
 위맹한 음향이 일며 괴장은 졸지에 한 개에서 두 개로, 다시 네 개에서 여덟 개의 환영(幻影)으로 불어났다.
 그것은 바로 칠살신군의 독문절기인 환영칠살괴장(幻影七殺槐杖)의 가장 무서운 절초로 천극압살(天極壓殺)의 초식이었다.
 악철빙은 호흡이 가빠지고 전신 혈맥이 터져 나갈 듯한 압력을 느꼈다.
 일만 근 이상의 압력이 머리를 짓누르고 있어 도저히 보법을 옮겨 피할 수가 없었다.
 그의 발은 이미 반자 가량이나 땅속으로 빠져들어가 있었다.
 “흐흐······ 아주 피떡을 만들어 주마!”
 칠살신군의 살기 띤 음성과 함께 괴장은 그대로 떨어졌다.
 절체절명의 순간 칠살신군은 김빠진 소리를 냈다.
 “엇······!”
 괴이하게도 괴장 아래 떡이 될 순간 악철빙의 신형이 사라져 버렸던 것이었다.
 “하하하······ 일 초(一招)가 지났소.”
 그의 낭랑한 음성이 발 밑에서 들려 왔다.
 악철빙은 철판교(鐵板橋)의 절묘한 신법으로 몸을 바닥에 뒤로 찰싹 쓰러뜨린 것이었다.
 동시에 괴장이 땅을 치려는 순간 해연약파(海淵掠波)의 신법으로 뒤로 쏘아간 것이었다.
 쾅-!
 괴장은 하릴없이 땅바닥을 치며 흙덩이를 사방으로 날렸다.
 “이럴 수가······!”
 칠살신군은 경악했다.
 하나 그는 과연 절세고수답게 즉시 다음 공격을 했다.
 그는 그림자같이 누운 채 뒤로 날아가는 악철빙을 따라 몸을 날렸다.
 그는 마치 대붕처럼 두 팔을 활짝 벌린 채 악철빙의 몸을 덮쳐 눌렀다.
 마치 독수리가 닭을 덮치는 것과 같았다.
 그 순간 그의 왼손에 들려 있던 음양선(陰陽扇)이 활짝 펼쳐지며 날카로운 경기를 아래로 쏘아냈다.
 파파파팟-!
 슥-!
 악철빙의 가슴 앞 현기혈이 부채 공격에 그대로 노출되었다.
 그 공격은 설사 날개 달린 새라 할지라도 피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반면 옆으로 빠지면 칠살신군의 좌우 중 어느 한 공격은 필히 받아야 했다.
 그렇게 되면 약속된 삼 초가 지나가는 것이었다.
 콱!
 “억!”
 짜- 악!
 이윽고 두 사람은 떨어졌다.
 칠살신군은 만면에 믿을 수 없다는 듯 경악의 표정을 띤 채 수중의 음양선을 내려보고 있었다.
 음양선은 끝이 부서져 있었다.
 반면 악철빙은 그의 앞 지척 거리에 우뚝 선 채 방긋 웃고 있었다.
 그의 오른손에는 흑의 옷자락이 쥐어져 있었다.
 바로 칠살신군의 오른쪽 어깨 옷자락을 찢어낸 것이었다.
 “이······ 이럴 수가! 네······ 네놈이 금강불괴의 몸이란 말이냐? 어찌 음양선에 맞고도 살아날 수가······?”
 칠살신군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악철빙은 담담하게 말했다.
 “그건 당신이 알 필요 없는 일이오. 아무튼 약속대로 내가 이겼으니 묻는 말에 대답하시오.”
 “조······ 좋다.”
 칠살신군은 이윽고 체념한 듯 내뱉었다.
 악철빙은 안광을 기이하게 번뜩이며 말했다.
 “표물이 한 구의 관이라는 사실만을 안 채 많은 고수들이 표물을 강탈하려 했소. 이것에는 필시 모종의 음모가 있음이 틀림없다고 생각하오.”
 칠살신군의 표정이 약간 변했다.
 “그러므로 나는 반드시 이 사건의 배후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오. 필시 당신들은 누군가의 지시를 받고 표물을 강탈하려 했을 것이오.”
 칠살신군 주극파는 그 말에 안색이 창백해졌다.
 악철빙은 내심 자신의 생각이 맞았음에 회심의 미소를 짓고는 이윽고 물었다.
 “표물을 강탈하도록 명령한 자는 누구요?”
 “그······ 그것은······.”
 칠살신군은 당황하며 더듬거렸다.
 “당신은 강호에서 신의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는 않았겠지. 누구요, 배후 인물은?”
 칠살신군의 얼굴에 진땀이 흘렀다.
 “그······ 그것은······ 그것은······!”
 이 순간 악철빙은 흠칫했다.
 귓속으로 칠살신군의 전음술이 들려 왔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절대검보의 명령이다.)
 ‘뭐······ 뭣이······?’
 허나 그는 재빨리 안색을 회복했다.
 이때 칠살신군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것은······ 그것은······ 말······ 할 수 없다!”
 악철빙은 내심 실소했다.
 ‘과연 음흉한 마두답구나. 외부에 새어 나갈까 봐 이런 수를 쓰다니······.’
 허나 그는 손을 흔들었다.
 “좋소, 당신이 끝까지 입을 열지 않겠다면 내게도 달리 방법이 있으니까. 당신은 아직도 표물을 강탈하겠소? 아니면 이만 물러가겠소?”
 그러자 칠살신군은 황급히 몸을 날리며 외쳤다.
 “때를 아는 것이 현자(賢者)의 도리다! 가자-!”
 그 순간 나머지 흑의인들은 재빨리 일월쌍살을 부축하더니 속속 퇴각해 버렸다.
 잠시 후 어둠의 숲 속에는 시체들이 비참하게 뒹굴 뿐, 아무도 남지 않게 되었다.
 악철빙은 그 속에 우뚝 선 채 염두를 굴리고 있었다.
 ‘절대검보······ 절대검보가 표물을 강탈하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대체 그 관 속에 무엇이 들었길래······?’
 이 순간 악철빙은 자신이 표차와 너무 오랫동안 떨어져 있었음을 느끼고 마음이 약간 급해졌다.
 ‘빨리 돌아가야겠구나!’
 내심 이렇게 부르짖은 그는 급히 몸을 날렸다.
 휙!
 그는 어둠을 헤치며 오던 길로 빛살처럼 쏘아갔다.
 
 ***
 
 한편 표차를 몰던 철산웅 부자는 이미 풍전등화의 위기에 몰려 있었다.
 표차는 말이 죽은 채 옆으로 쓰러져 있었고, 철비웅과 철산웅은 피투성이가 된 채 십이 명의 괴한들에게 둘러싸여 허덕이고 있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는 나란히 선 흑의인과 백의인이 사태를 살기 띤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한데 흑의인은 기괴하게도 얼굴조차도 완전히 검었다.
 반면에 백의인은 종잇장같이 창백하여 마치 금방 무덤에서 나온 인물 같았다.
 이들은 누구인가?
 흑백상문객(黑白喪門客).
 이들의 공포스런 이름은 강호에서는 울던 아이도 울음을 그치게 할 정도로 퍼져 있었다.
 
 흑무상(黑無商) 조충(曹蟲).
 백무상(白無商) 조강(曹?).
 
 이들은 항시 죽음을 몰고 다닌다.
 그리하여 상문객(喪門客)이라는 별호가 붙은 것이었다.
 이들은 형제로서 각기 독특한 무공을 지니고 있었고, 전혀 희로애락의 변화가 없는 냉랭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은 이십 년 전 황산파(皇山派)의 삼백여 고수들을 하룻밤에 참살한 엄청난 사건을 저지른 적이 있었다.
 그후 이들은 무림의 공적이 되어 쫓기다가 변방으로 사라졌었다.
 한데 이곳에 다시 나타났으니 이것은 실로 경천동지할 일이었다.
 “으- 악!”
 처참한 비명과 함께 철산웅이 가슴을 움켜쥐며 나가떨어졌다.
 그의 가슴에는 한 자루의 귀두도(鬼頭刀)가 깊숙이 꽂혀 부르르 떨고 있었다.
 “앗! 웅아-!”
 철비웅은 아들의 죽음에 비통한 외침을 발했다.
 하나 하늘은 그마저도 허락하지 않았다.
 “흐흐······ 늙은이! 네 목숨이나 돌봐라!”
 음침한 소리와 함께 어둠 속에서 칼빛이 번쩍였다.
 그 순간 철비웅은 왼쪽 허리가 화끈함을 느끼고 비명을 질렀다.
 “윽!”
 피가 콸콸 쏟아지고 있었다.
 십여 명의 괴한들 중 한 명이 비틀거리는 그에게 다시 대감도를 휘둘렀다.
 윙-!
 대감도는 정확히 철비웅의 몸으로 떨어졌다.
 바로 이때였다.
 슉! 슉! 슉슉슉-!
 날카로운 파공성이 연달아 울려 왔다.
 “윽!”
 “악!”
 “큭-!”
 십여 명의 괴한들은 모두 짧은 비명을 지르며 썩은 나무토막처럼 쓰러졌다.
 순식간에 급변한 장내의 상황이었다.
 그들의 앞 눈썹 사이 미심혈(眉心穴)에는 한결같이 솔잎이 깊숙이 꽂혀 있었다.
 “투골송침(透骨松針)!”
 흑백상문객이 동시에 부르짖었다.
 
 투골송침!
 이것은 솔잎으로 사람을 상하게 하는 절정의 내가암기수법(內家暗器手法)이었다.
 이 수법을 전개하려면 적어도 일 갑자(一甲子) 이상의 공력이 있어야 했다.
 하나 이렇게 십여 명을, 그것도 단숨에 정확히 미심혈을 꿰뚫어 죽여 버린다는 것은 출신입화(出神入化)의 경지에 든 무공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때 장내에 한 줄기 청영이 소리 없이 날아들었다.
 그는 영준한 청의소년이었다.
 바로 악철빙이었던 것이다.
 “소······ 소협······!”
 그가 나타나자 피투성이가 되어 비틀거리던 철비웅이 반가움에 소리쳤다.
 악철빙은 그를 바라보며 가라앉은 음성으로 말했다.
 “철 노영웅, 소생이 늦어 화를 당하게 되어 정말 송구스럽습니다.”
 “아······! 소협, 어쩔 수 없는 일이었소. 오늘 밤의 흉험(兇險)은 정말 소름이 끼칠 일이오.”
 철비웅은 진저리를 쳤다.
 하나 그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이고 있었다.
 그는 표국의 가업을 모두 잃었을 뿐만 아니라 아들조차도 잃어버렸던 것이었다.
 악철빙은 나직이 탄식하고는 돌아섰다.
 그 순간 그의 두 눈은 무서운 살광(殺光)으로 번뜩이고 있었다.
 
 
 3장 관(棺) 속의 미녀
 
 
 “귀하! 당신들도 표물을 노리고 왔소?”
 악철빙의 싸늘한 음성이 떨어졌다.
 그 말에 흑무상 조충은 음산하게 내뱉었다.
 “그렇다, 꼬마야.”
 악철빙은 바닥에 죽어 있는 괴한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자들은 당신들의 수하요?”
 그러자 백무상 조강이 얼음같이 찬 음성으로 말했다.
 “흐흐······ 우리 흑백상문객은 언제나 단둘이만 다닌다.”
 악철빙은 흠칫했다.
 “그렇다면 이자들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단 말이오?”
 “그렇다!”
 악철빙은 잠시 침음하다가 다시 물었다.
 “당신들도 절대검보의 명령을 받고 왔소?”
 그 말에 흑백상문객의 눈빛이 동시에 흔들렸다.
 흑무상이 괴상하게 말했다.
 “이놈! 우리 형제에게 명령을 내릴 사람은 천하에 아무도 없다. 우리는 단지 부탁을 받았을 뿐이다.”
 “부탁?”
 악철빙은 느닷없이 대소를 터뜨렸다.
 “핫핫핫······ 그래도 당신들에겐 쥐꼬리만한 자존심은 살아 있구려.”
 “건방진 애송이놈······!”
 돌연 백무상이 빳빳한 자세로 껑충 나서며 얼음같이 흰 손을 쭉 뻗었다.
 휴르릉-!
 괴이한 파공음과 함께 보이지 않는 기류가 찬 한기를 대동하고 뻗어 나왔다.
 “백골음풍장(白骨陰風掌)!”
 뒤에 서 있던 철비웅이 놀라 외쳤다.
 그 순간 악철빙도 좌장을 뿌렸다.
 콰르릉- 쾅-!
 엄청난 굉음과 함께 흙먼지가 회오리쳤다.
 백무상은 뒤로 두 걸음 물러났고, 악철빙은 한걸음 물러났다.
 그러나 두 사람의 얼굴에는 똑같이 놀라움이 나타났다.
 “흐흐······ 애송이놈! 제법 수를 가지고 있구나!”
 백무상 조강이 음산하게 말하며 유령처럼 다가왔다.
 휙! 휙!
 그는 백포장삼이 어지럽게 휘날리는 가운데 눈 깜짝할 사이에 연속 칠팔 장을 쳤다.
 악철빙은 순간적으로 얼음구덩이에 빠진 듯 온몸이 싸늘히 얼어붙는 것을 느꼈다.
 뿐만 아니라 뼈마디에 싸늘한 음기(陰氣)가 침투하는 것을 느끼고 대경했다.
 ‘무······ 서운 장법이구나!’
 내심 이렇게 부르짖은 그는 공력을 끌어올려 가슴 앞에 모은 손바닥을 원을 그리듯 사방으로 뻗어냈다.
 콰르릉- 콰- 앙!
 우레 소리와 함께 연달아 폭음이 울렸다.
 땅거죽이 장력의 여세에 터져 허공 사오 장 높이로 치솟았다.
 실로 무시무시한 격돌이었다.
 “헉! 헉! 헉······!”
 백무상은 뒤로 일곱 걸음이나 물러섰다.
 악철빙은 다섯 걸음을 후퇴했다.
 이때 흑무상 조충의 대경성이 울렸다.
 “절대천뢰장! 이럴 수가······!”
 그 순간 흑영이 번뜩이더니 흑무상이 악철빙의 앞을 가로막았다.
 “너는······ 절대검주와 어떤 사이냐?”
 그의 물음에는 짙은 의혹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악철빙은 차갑게 말했다.
 “귀하는 그것을 알 자격이 없소!”
 “뭣이?”
 흑무상의 얼굴에는 분노가 피어올랐다.
 그 순간 벌써 그의 쌍장은 짙은 흑기(黑氣)를 뿜어냈다.
 츠츠츠츠······.
 그것은 그가 자랑하는 사공(邪功)인 흑살마라장(黑殺魔羅掌)이었다.
 흑살마라장은 사문(邪門)의 극악한 마공으로써 백골음풍장과 함께 무림에서는 마장(魔掌)으로 알려져 있었다.
 흑살마라장의 흑색기류에 잠깐 스치기만 해도 전신 혈맥이 수축돼 시커멓게 타 죽게 된다.
 악철빙도 이 마장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는 감히 태만치 못하고 공력을 끌어올려 절대천뢰장의 제이식(第二式)인 천염폭(天焰爆)을 전개했다.
 순간 시뻘건 화광(火光)이 이는 듯하더니 흑색기류와 부딪치는 순간 엄청난 폭발음이 울렸다.
 화르르르릉-!
 콰- 쾅-!
 “윽!”
 “음······!”
 두 마디 신음이 울리고 두 사람은 퉁겨나듯 갈라섰다.
 악철빙의 얼굴은 다소 침중해져 있었다.
 반면 흑무상의 얼굴은 완전히 흑빛이 되어 있었다.
 가뜩이나 검은 얼굴이 더욱 검게 된 것이었다.
 그의 얼굴에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경악의 빛이 가득 떠올라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내상을 입은 듯 입술꼬리에 피가 흐르고 있었다.
 “부······ 분명······ 이 장법은 절대천뢰장이다! 도······ 도대체······.”
 악철빙은 그의 말을 중간에서 잘랐다.
 “그렇소, 귀하. 그러나 여기에는 많은 사정이 있소. 일시지간에 밝힐 수 없는······.”
 “그게 무엇이냐?”
 “후후······ 그건 시간이 흐르면 자연 밝혀질 것이오. 흑과 백은 분명 백일하(白日下)에 드러날 것이오.”
 악철빙의 음성에는 강한 결의 같은 것이 숨어 있었다.
 흑무상의 검은 얼굴이 씰룩였다.
 그는 잠시 안색이 일그러지더니 백무상을 힐끗 돌아보고는 말했다.
 “아우, 이만 가자!”
 휙-!
 그는 더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몸을 날려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백무상도 지체없이 그의 뒤를 따라 사라졌다.
 악철빙은 입가에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정말 저자들의 무공은 상상 밖이구나. 하마터면 당할 뻔했다.”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돌아섰다.
 하나 그 순간 그의 입술이 크게 벌어졌다.
 “엇! 아니······?”
 표차는 부서지고 그 속에 들었던 시뻘건 관이 바닥에 뒹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또한 철비웅은 한쪽에 쓰러져 있었다.
 휙-!
 악철빙은 번개같이 철비웅에게 날아갔다.
 “철 노영웅! 철 노영웅······.”
 “컥!”
 한 덩이 응혈을 토해낸 후 철비웅은 깨어났다.
 “철 노영웅! 대체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그러자 철비웅은 더듬더듬 말했다.
 “표······ 표물을 잃었소······!”
 “아니! 어찌하여······?”
 악철빙은 급히 입을 다물고 다시 물었다.
 “그럼 그 관 속에서 무엇이 들어 있었습니까?”
 “소······ 소협······ 그······ 관(棺) 속에는······ 미······ 미녀(美女)가 들어 있었소······.”
 “뭣이······! 그게 정말입니까?”
 “저······ 정말이오. 처······ 천하에서 제일가는 미녀였······ 소······ 정말 미녀였소······.”
 철비웅은 사경(死境)에 놓여 있으면서도 자신이 얼마 전 보았던 미녀에 대해 생각하는 듯 꿈꾸는 표정을 지었다.
 “그······ 그녀는······ 십······ 칠팔 세쯤 되······ 었소. 한데 세상에 그런 미녀는······ 노부 평생 처음이었소.”
 악철빙은 괴이함을 금치 못하며 재차 물었다.
 “그런데 그녀는 어디로 갔습니까?”
 “그······ 그녀는······ 마적음(魔笛音)과 함께······ 나타난······ 하······ 한······ 노파(老婆)가 데리고······ 갔소.”
 “노파라니······?”
 “원래 그 미녀는······ 관 속에서······ 죽은 듯 누워······ 있었는데······ 숨은 끊어지지 않았소. 한데 전신에 칠흑 같은 흑의를 입은 노파가······ 관을 부수고······ 데려갔소.”
 철비웅의 얼굴에는 점점 사색(死色)이 깃들였다.
 “노······ 노파는······ 주름살투성이에······ 손에······ 검은 철적(鐵笛)을 들고······ 눈빛도 붉은색이······ 돌았소.”
 철비웅은 다시 숨가쁘게 말했다.
 “그······ 노파는······ 이······ 이런 말을 남기고······ 갔소.”
 여기서부터는 그의 음성은 알아듣기가 극히 힘들었다.
 악철빙이 귀를 바짝 그의 입에 갖다 대서야 간신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이······ 이후······ 무림······ 에서······ 사······ 살수(殺手)로 인한······ 거······ 겁난(劫難)이······ 무서운······ 혈······ 혈풍을 몰고 올 것······ 이다, 크······ 윽!”
 마침내 철비웅은 여기까지 말하고는 고개를 꺾고 말았다.
 그는 영원히 세상을 하직하고 만 것이었다.
 “철 노영웅!”
 악철빙의 허망한 음성이 점차 밝아오는 새벽 하늘을 울렸다.
 악철빙은 가슴에 허전한 느낌이 밀려오는 것을 느끼며 길게 탄식했다.
 이어 그는 철비웅과 철산웅 부자의 시체를 거두어 구덩이를 판 다음 간단히 묻었다.
 그의 가슴에는 묘한 허탈감이 밀려들고 있었다.
 “칼을 통해 사는 무림인은 칼 아래 죽는구나.”
 악철빙은 이렇게 중얼거린 후 몸을 돌렸다.
 바로 이때 그는 무엇을 발견한 듯 눈이 반짝 빛났다.
 마침 부서진 붉은 관에 시선이 간 그는 관 바닥에 무엇인가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었다.
 그것은 하나의 옥패(玉牌)였다.
 한데 옥패의 전면에는 선명한 빛깔의 태극도(太極圖)가 새겨져 있는 것이 아닌가.
 옥패는 손바닥 안에 들어올 만큼 작았는데 극히 정교했다.
 또한 둥그런 옥패의 아래에는 수실이 달려 마치 여인의 노리개 같기도 했다.
 태극도는 홍청(紅靑)의 무늬가 너무도 선명하여 금세라도 살아서 움직일 것 같았다.
 한데 다음 순간 악철빙은 무엇을 생각했는지 안색이 크게 변했다.
 ‘호······ 혹시······?’
 악철빙은 옥패를 자신도 모르게 꽉 움켜쥐었다.
 그 순간 그의 머리 속에 한 아름다운 소녀의 얼굴이 떠올랐다.
 ‘관옥경(關玉璟)······!’
 관옥경, 그녀는 누구인가?
 악철빙은 눈을 스르르 감으며 과거의 추억으로 돌아갔다.
 
 절대검보에서 철없이 뛰놀던 어린 시절.
 그는 어릴 적에 어머니를 일찍 잃었었다.
 그런 그의 유일한 낙(樂)은 바로 보내(堡內)의 같은 또래의 한 미소녀와 노는 일이었다.
 
 관옥경!
 
 그녀는 바로 절대사노 중 무형신검 관여평의 손녀였다.
 악철빙은 그녀와 마치 친오누이처럼 외로움을 달래며 지냈었다.
 그를 무척 따르던 관옥경.
 그녀의 긴 흑발과 흑진주 같은 눈동자를 악철빙은 그동안 한시도 잊은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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