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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서 온 특종 1-1권

2018.02.09 조회 2,064 추천 18


 # 1. 블로거만도 못한 기자인 건가
 
 “아, 한번 좀 보자니까요. 잠깐 시간 좀 내 주세요. 네?”
 여의도역 사거리. 나는 숱한 인파를 헤치며 휴대전화서 손을 놓지 않았다.
 내가 전화를 걸고 있는 상대는 국내 최대 인터넷 포털 사이트, 메이버의 홍보팀 차장, 김우정.
 내가 수습기자이던 시절부터 줄곧 연락한 사이다.
 그럼에도 단 한 번도 실제로 본 적은 없었다.
 “차장님, 저희 지금까지 한 번도 못 봤잖아요. 작년에 새해 되면 한번 보자고 하시지 않으셨어요? 식사 한번 합시다. 네?”
 내가 생각해도 참 자존심 없는 말이었다.
 선배들로부터 배운 기자 정신은 일단 들이대는 것.
 어차피 난 잃을 게 아무것도 없다.
 ―아이 기자님, 아시잖아요. 저희 분당에 있는 거. 서울 멀어서 못 나가요. 바쁘기도 하구요.
 “그럼 차장님, 제가 분당 가면 한번 봬요. 그건 괜찮죠?”
 ―······일단 지금 확답드릴 수가 없구요. 나중에, 제가 말씀드릴게요.
 “차장니임, 다음 주 화요일 점심 어때요? 그때 제가 찾아뵐게요. 네?”
 ―안 될 것 같아요. 죄송합니다~
 “그럼 수요일은요? 아니면 목요일도 좋아요.”
 ―기자님, 진짜 제가 시간 날 때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지금 제가 좀 바빠서요. 이만 끊을게요.
 “차장님! 차장님?”
 다소 불쾌하게 통화가 끝나 버렸지만, 난 이해했다.
 이게 불평할 수 없는 현실이었으니까.
 상대는 잘나가는 유명 기업의 홍보팀이다.
 듣도 보도 못한 삼류 매체 기자에게 무슨 시간을 내 주겠는가.
 이제 막 수습 딱지를 뗀 나조차도 그런 업계 생리는 이해하고 있다.
 그들이 날 상대해 줄 때는 그저 보도 자료에 관해 물어 올 때뿐.
 “에휴.”
 난 한숨을 내쉬며 그대로 여의도 지하철 역사로 들어갔다.
 일정을 못 잡았다고 해서 주눅 들 시간은 없었다.
 당장 점심 전에 열리는 행사장으로 곧장 이동해야 했기 때문이다.
 내가 기자가 된 지는 이제 7개월.
 이제 일은 어느 정도 몸에 익었지만, 여전히 취재는 난항이었다.
 그래, 지방대 출신인 내가 발을 디딜 수 있었던 매체는 잘 알려지지 않은 작은 IT 전문지.
 수많은 온라인 언론사 중에 한 곳.
 매체의 후광이나 선배들의 도움 등, 내가 그 어떤 조력도 기대할 수 없는 곳이다.
 ‘그래도 기자가 된 게 어디야.’
 막 도착한 전동차에 몸을 실으며 난 생각했다.
 대학 졸업 후 1년.
 아직도 휴대전화 속에선 취직이 안 돼 빌빌대는 대학 동기들의 아우성이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고 딱히 내가 운이 좋았던 건 아니다.
 나도 여러 주요 언론사 고시서 수차례 낙방했었으니까.
 ‘노력하면 분명······ 나도 될 수 있을 거야.’
 내가 꿈꾸는 건, IT업계 최고의 기자.
 글 하나로 기업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고 잘못된 걸 올바르게 바꿀 수 있는 힘.
 그 힘을 가진 기자가 되는 것이다.
 ‘광피리처럼 말이지······.’
 난 동경하는 김광필 기자를 떠올렸다.
 IT업계선 모르는 이가 없는 전설적 기자, 김광필.
 그는 기사와 취재력으로 인정받은 국내 1세대 IT 기자다.
 ‘광피리의 블로그’ 운영을 통해서 또 다른 영향력까지 행사하는 유명인이기도 하다.
 다만 내가 광피리처럼 될 가능성은 아직 절망적일 뿐이다.
 김광필 기자는 시작부터 국내 5대 언론사 출신이었으니까.
 나는 그런 씁쓸함을 떠올리며 어둠만 스쳐 가는 차창 밖을 바라봤다.
 30분 후, 내가 하차한 곳은 2호선 삼성역이었다.
 LC전자의 신형 스마트폰 발표회가 바로 이곳에 위치한 대형 쇼핑몰서 열릴 참이었다.
 “30분 일찍 왔는데, 벌써 이렇게 많아?”
 행사장에 도착한 나는 인파를 보고 고갤 저었다.
 짧은 기자 경력이지만 그간 다녀 본 행사 중 가장 인원이 많아 보였다.
 ‘하긴 국내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대기업이고, 이목 끌기 좋은 스마트폰 출시니까.’
 게다가 기자들만 와 있는 건 아닌 모양이었다.
 LC전자 측 안내석에는 기자 외에 블로거 담당 요원들도 자리하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기자분이시면 명함을 주시겠어요?”
 LC전자 행사 요원 중 한 명이 내게 다가와 인사했다.
 “네, 안녕하세요. 디지털투모로우 주진형 기자입니다.”
 나는 안쪽 주머니에 넣어 뒀던 명함 수첩서 내 명함을 꺼내 내밀었다.
 명함을 받아 든 행사 요원은 자신 앞에 놓인 문서를 훑더니 내게 보도 자료 팸플릿을 건넸다.
 이를 받아 든 난 안내석 탁자 위에 올려져 있는 흰색 종이 가방 쪽으로 눈을 돌렸다.
 “저건 안 주시는 건가요?”
 내 질문에 요원이 당황한 듯 문서를 다시 훑었다.
 보통 이런 행사를 진행할 때 주최 회사 측은 참석자들에게 잘 부탁한다는 의미로 사은품을 주곤 했다.
 보조 배터리, 무선 키보드, 이어폰처럼 그리 비싸진 않아도 나름 쓸모 있는 것들이었다.
 아예 주지 않는 행사라면 상관없겠지만, 난 바로 앞 사람이 저 종이 가방을 받아 가는 걸 이미 목격한 터다.
 “죄송합니다. 저희가 드릴 수량이 다 떨어져서요. 남은 건, 주인분들이 따로 계셔서······.”
 직원은 곤란하다는 표정이었다.
 줄 수 없다는데 달라고 억지를 부리기도 뭐했다.
 아무리 잃을 게 없는 삼류 기자라지만 나도 창피한 건 아는 까닭이다.
 “알겠습니다."
 내가 그렇게 얘기하곤 행사장 안으로 들어가려 할 때,
 “아, 안녕하세요~ 블로거 참치장군인데요.”
 낯익은 목소리가 바로 뒤서 들려왔다.
 “아, 참치장군 님이시군요. 여기 서명 부탁드립니다.”
 난 곧장 고갤 돌려 방금까지 내가 서 있던 자릴 바라봤다.
 “어, 형. 치열이 형.”
 내가 부른 이름에 블로거 참치장군이 반응했다.
 “어! 주진형, 진형이잖아?”
 “형 여기서 다 보네요.”
 “야, 반갑다. 우리 거의 1년만 아니야? 매크로소프트웨어 활동한 뒤로 못 봤잖아.”
 정말 반가운 기색으로 블로거 참치장군, 차치열 형이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도 덥석 그 손을 잡고 흔들었다.
 “형 블로그엔 그래도 계속 댓글 남겼잖아요.”
 “야, 그래도 직접 얼굴 보고 살아야지.”
 우리 둘이 대화하는 모습을 보곤, 안내 직원들이 신기하다는 듯 쳐다봤다.
 “너 기자 됐다고 했지? 그래서 여기 온 거야? 야 좋다.”
 “네. 그래도 좋을 건 없어요. 별로 좋은 데 들어간 것도 아니고.”
 “무슨, 그런 게 중요해? 덕업일치를 했다는 게 중요하지. 안 그래 기덕후?”
 “하하.”
 기덕후란 기기를 좋아하는 오타쿠를 뜻한다.
 치열 형의 말대로 나는 최신 기기를 좋아하는 편이다.
 그건 치열 형도 마찬가지.
 나와 치열 형은 매크로소프트웨어라는 유명 it 기업의 대외 활동을 통해 처음 만났다.
 그 당시에도 치열 형은 IT 쪽의 유명한 파워블로거였다.
 “저 참치장군 님, 이거 받아 가세요.”
 LC전자 측 안내 직원이 흰 종이 봉투를 치열 형에게 내밀었다.
 내가 받지 못했던 그 봉투였다.
 “아, 감사합니다.”
 종이 봉투를 받아 든 치열 형이 비어 있는 내 양손을 내려다봤다.
 “어? 넌 못 받았어?”
 “네. 기자 쪽은 다 떨어진 모양이에요.”
 당연히 사실이 아니었지만 난 대충 둘러댔다.
 “그래? 일단 뭘 준 건지 좀 볼까?”
 치열 형은 가방 안을 뒤적여 잘 포장돼 있는 사은품 하나를 꺼냈다.
 “야, 이거 LC전자 신형 이어폰인 모양인데.”
 “아아, 콰트로비트3요?”
 “어어, 이번 스마트폰 신제품 번들 이어폰으로 들어가는 녀석. 그 음향업체 AKZ와 협업해서 만든 거잖아.”
 ‘아, 갖고 싶네.’
 난 평소에도 이어폰에 관심이 많았기에, 치열 형이 부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 보니 난 취미로 하는 블로거만도 못한 기자인 건가.’
 순간적으로 자존심이 상했지만, 그걸 전부 나타낼 순 없는 노릇이었다.
 우리 둘은 한동안 같이 움직이다가 발표회를 마치고 바로 떨어졌다.
 나는 발표 내용 중 질의응답만 따로 간추려 기사를 작성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럼, 난 전시장 쪽으로 가서 보고 있을게. 나중에 또 보자.”
 “네, 형. 가세요. 다음에 봬요.”
 혼자가 된 나는 발표장에 자리 잡은 타 기자들처럼 기사에 집중했다.
 10여 분 뒤, 온라인 기사 작성기에 기사를 올린 난 노트북 상판을 덮었다.
 “여, 주 후배~”
 “어, 기문 선배. 오셨습니까.”
 가벼운 셔츠 차림에 네모난 백팩을 멘 남자.
 이제 30대 중반의 5년 차 기자, 김기문 선배였다.
 기문 선배가 안경을 고쳐 쓰며 내 노트북을 바라봤다.
 “어, 기사는 다 썼는가?”
 “네. 두 개 올렸습니다.”
 “그래그래, 잘하고 있어. 제품 취재는 아직이지? 같이 가자.”
 “네.”
 난 자릴 정리한 뒤 가방을 챙겨 기문 선배와 함께 전시장으로 이동했다.
 기문 선배는 지금 타 매체 소속이지만,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내 사수였다.
 ‘점프’ 그건 기자가 기존의 매체서 더 좋은 매체로 이직하는 걸 뜻했다.
 기문 선배는 디지털투모로우라는 언론계 피라미드 최하단서 한 계단 올라간 상태다.
 “그래, 팀장은 잘 계시고?”
 “선배 나가고 난 뒤 어깨 결림이 더 심해지셨죠 뭐. 저도 덕분에 모바일 취재까지 하고 있습니다.”
 사실 난 인터넷업체만 담당해 왔었다.
 하지만 기문 선배가 이직한 뒤, 그가 담당하던 모바일 분야까지 내가 맡게 됐다.
 기자가 부족한 소규모 매체의 비애였다.
 “날 원망하는 건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선배는 어떠십니까. 전자뉴스 소속 온라인 매체니까, 대우는 훨씬 좋을 것 같은데.”
 “아아, 취재는 훨씬 편하지. 그리고 편집국도 기사 많이 요구 안 하고. 몸도 마음도 편하다네~ 주 후배도 열심히 해서 이쪽으로 넘어오게나.”
 “하하, 쉽지가 않을 것 같네요.”
 다른 매체로 점프하기 위해선 그만큼 기자로서 두각을 나타내야 한다.
 업계 사람들이 인정할 만큼 좋은 기사를 쓰고, 남들보다 더 많은 정보, 정확한 이야기를 써야 한다.
 그 모든 건 취재에 달려 있다.
 그러니 취재 자체가 어렵다면, 당연히 점프업의 기회도 어렵다.
 기문 선배도 디지털투모로우서 몇 년 동안 고생했었다.
 “오늘 일정 끝나고 술 한잔 콜? 선배가 쏠 테니 부담 갖지 말고.”
 “······좋습니다.”
 사실 퇴근 후엔 다음 날 기사를 미리 준비하는 편이었다.
 하나 오늘은 가슴이 답답해 술이라도 걸쳐야 할 것 같았다.
 퇴근 후 종로의 한 작은 술집.
 나는 기문 선배와 술을 나눠 마시며 행사장서 겪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그러니까, 블로거도 받는 걸 넌 못 받았다는 겐가?”
 “선배도 많이 겪지 않으셨습니까. 디지털투모로우라는 소속 매체 말할 때마다 홍보팀 직원들 눈빛 바뀌는 거. 초대 명단에 없다고 남들 다 받는 사은품 하나 못 받을 때, 어떻게 합니까? 창피한데 어떻게 토로할 수도 없고.”
 “뭐 그렇긴 하지. 그럴수록 이 악물고 취재하는 수밖에 더 있나.”
 “애초에 만나 주질 않는데 어떡합니까. 오전에도 메이버 김우정 차장한테 만나자고 통사정을 했는데 거절하더라구요.”
 “아아, 그 사람. 그렇지 그렇지. 메이버 애들은 우리 같은 기자들은 절대 안 만나 준다구우.”
 파전을 뜯으면서 기문 선배가 대답했다.
 “나도 아는 선배 덕분에 이직할 수 있었던 건데. 그런 점에선 주 후배한테 미안하네. 같이 끌어 주진 못해서.”
 “······말만이라도 감사합니다.”
 나와 문기 선배는 짧은 인연이었음에도 같은 회사의 어려움을 공유하던 사이였다.
 그 덕분인지 다른 선후배 기자 사이와는 다른 유대감이 있었다.
 “자 그럼, 조심히 들어가고 나중에 또 보자고.”
 밖이 어둑해지고서야 우린 술집 밖으로 나왔다.
 기문 선배와 헤어진 난 바로 집에 돌아가지 않았다.
 잔뜩 술기운이 오른 몸을 이끌고, 나는 비틀비틀 정처 없이 어두운 종로 거릴 걸었다.
 “하아. 뭘 어떻게 해야 하냐!”
 술기운을 빌려 난 소리쳤다.
 그때 내게 커다란 호통이 하나 들려왔다.
 “뭘 어떻게 해 이놈아!”
 
 
 # 2. 정말로 기회가 주어진다면
 
 취기가 확 가실 정도로 벼락같은 일갈이었다.
 “허우대 멀쩡한 놈이 어디 어르신 앞에서 술주정 부리고 한숨을 쉬어!”
 나는 눈을 크게 두 번 깜빡인 뒤, 소리의 진원지를 찾아 주변을 둘러봤다.
 “여기야 이놈아! 젊은 놈이 벌써부터 밤눈이 나빠 가지곤 쯧쯔.”
 어둑하고 인적이 드문 종로의 밤거리.
 가로등 불빛 하나 닿지 않는 오랜 건물 앞에 벙거지 모자를 쓴 한 사내가 앉아 있었다.
 “누, 누구세요?”
 당황한 내가 더듬으며 그에게 말을 건넸다.
 “내가 누군 건 알아서 뭐 하게! 재수 없게 한숨 쉬지 말고 돈 있으면 내놓고 꺼져!”
 사내는 모자를 벗어 들고는 내게 내밀었다.
 모자 안쪽에 돈을 넣으라는 모양새였다.
 난 어이가 없어서 사내를 자세히 들여다봤다.
 어둠에 익숙해진 동공이 사내의 얼굴을 점차 확실하게 드러냈다.
 ‘노숙자네.’
 쉰 살은 돼 보이는 주름진 얼굴.
 덥수룩하게 자란 수염과, 제멋대로 뻗쳐 있는 머리칼.
 그의 다리 주변에 놓인 막걸리 병들. 사내의 정체를 증명하는 여러 증거가 속속 보였다.
 “아······ 네······.“
 난 잠시 고민하다가 바지 주머니서 지갑을 꺼냈다.
 어쩐지 많은 걸 포기한 채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을 그냥 지나칠 순 없었다.
 힘든 삶이란 걸, 나 또한 공감하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지갑을 열자 어째 만 원짜리 지폐만 한 장, 달랑 들어 있었다.
 ‘에라, 좋은 일 하는 셈 치자.’
 내가 모자 안에 만 원을 넣자, 사내가 모자를 휙 잡아당겼다.
 “······흥, 그래도 양심은 있구만. 좋아. 돈을 받았으니 얘길 좀 들어 주지. 여기 앉아 봐.”
 “예?”
 황당하다는 듯이 내가 반문했다.
 사내는 말없이 내 팔을 끌어당겨 바닥에 앉혔다.
 “뭐가 그렇게 힘들길래 세상 꺼져라 한숨을 쉬고 있어?”
 “아······ 그냥 일이 잘 안 풀려서요.”
 얼떨결에 사내 옆에 앉은 나는 입을 열었다.
 “무슨 일 하는데 안 풀려?”
 ‘뭐 어때, 다시 볼 만한 사이도 아니고.’
 그렇게 생각하니 의외로 시원하게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저, 기자거든요. 제 꿈이었어요, IT 기자. 멋있잖아요. IT 분야 취재하는 것도, 기자라는 것도. 그런데 지방대 스펙으로 삼류 언론사에 취직했더니 기자다운 일을 할 수가 없더라구요. 취재를 하려 하면 무시당하기 일쑤고, 홍보팀 놈들은 제 전화를 피하고. 그렇다고 저한테 누가 기사 제보라도 하나요. 결국 사무실에 앉아서 남의 기사나 베껴 쓰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누구한테 하소연을 할 수가 없네요. 삼류 매체에 취직한 저 스스로를 자책하는 거 말고는요.”
 내 자조적인 말에, 냉소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흐응, 결국 네 잘못이란 걸, 아는 거 아냐?”
 “뭐 그렇죠. 그렇지만 말이에요. 적어도 기회는 있었으면 좋겠어요. 열심히 뛰고 싶은데, 아예 뛸 수가 없으니까요.”
 “뛸 수 있는 기회라······.“
 사내가 내 말을 되뇌었다.
 “저도 다른 매체 선배 기자한테 잘 보여서 이직하는 게 제일 좋겠죠. ······하하. 뭐 이렇게 얘기라도 하니 갑갑했던 게 좀 풀리기라도 하네요.”
 난 자리서 일어났다.
 내가 바지 엉덩이에 묻은 먼지를 털어 낼 때, 사내의 목소리가 내 뒤를 때렸다.
 “뛰고 싶다 이거지?”
 “네?”
 뒤돌아서 사내를 봤다.
 처음 봤을 때완 달리 온순한 표정으로 날 보고 있는 그가 있었다.
 “정말로 기회가 주어진다면, 잡아 낼 자신은 있는 거야?”
 “······잡아 내야죠. 죽을힘을 다해서.”
 “좋아, 그 자세.”
 ‘웃기는 사람이네. 놀리는 것도 아니고.’
 나는 잠시 고갤 갸웃거리며 사내를 응시했다.
 딱히 나를 조롱하는 태도도, 진정으로 응원하는 모습도 아니었다.
 대화가 그렇게 끊긴 뒤, 난 자릴 벗어났다.
 지하철 역사를 향해 걸어가던 난 사내에 대해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술 냄새가 안 났어.’
 사내의 입에선 술 냄새도 단내도 나지 않았다.
 무취.
 그게 무척 이상했다.
 내가 천천히 고갤 돌려 떠나온 자릴 보자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벌써 다른 곳으로 간 걸까.’
 난 묘한 기분을 느끼며 종로5가역으로 몸을 옮겼다.
 다음 날 아침. 여의도에 위치한 회사 사무실.
 난 여느 때처럼 가장 먼저 출근했다.
 출근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노트북을 켜고 이메일을 확인하는 것.
 대부분의 보도 자료가 아침 일찍 기자의 이메일로 전달되기 때문이었다.
 보도 자료는 기업들이 기자에게 전달하는 일종의 홍보 자료다.
 기업의 대소사, 신제품, 서비스 출시나 사건 사고에 대한 해명이나 반박까지.
 기업 홍보 마케팅에 도움 되는 내용을 기자에게 기사 형태로 정리해 전달하는 것이다.
 출입 기자들은 이 자료를 받아 팩트 체크 후 탈고를 거쳐 기사로 출고한다.
 즉, 보도 자료를 미리 확인해 두면 그날의 기사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
 “······자 그럼 어디 한번 볼까.”
 나는 탁주의 숙취 때문에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꾹꾹 눌러 가며 모니터를 응시했다.
 이메일 사이트에 접속해 로그인하자 익숙한 이메일 목록이 내 눈에 들어왔다.
 ‘별로 중요한 건 없는 것 같네.’
 난 새로 도착한 이메일 제목들을 하나, 하나 확인하며 생각했다.
 보도 자료도 그 발신 주체와 내용에 따라 경중이 다르다.
 큰 기업일수록, 기업의 경영과 관련된 일일수록 더 중요해진다.
 내가 목록 첫 면을 보고 넘기려는 순간.
 웹 페이지 로딩이 완료되며 기이한 알림 창이 화면에 떠올랐다.
 [일주일 후 발송될 이메일 미리 수신에 동의하시겠습니까?]
 [예 / 아니요]
 “뭐, 뭐지 이건?”
 뜬금없는 알림 창의 등장에 당황한 나는 문구를 다시 한번 읽었다.
 ‘일주일 후 발송될 이메일 미리 수신?’
 단번에 의미를 파악할 수 없었다.
 ‘일주일 후에 발송될 이메일을, 미리 받는다는 얘기야?’
 한 번 더 생각해 보고 나니 의미는 잡혔는데, 이젠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어떻게 일주일 후에 보내질 이메일을 미리 받을 수 있단 말인가?
 ‘뭐야, 피싱 수법인가.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가능할 리가 있나.’
 나는 신경질적으로 마우스를 움직여 [아니요]를 누르려다가 멈췄다.
 ‘설마 신종 크립토락커!?’
 난 재빨리 노트북 키보드를 눌러 스크린샷을 찍었다.
 이와 같은 소재는 잘하면 기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크립토락커는 랜섬웨어라 불리는 악성코드의 일종이다.
 이는 사용자의 PC를 감염시킨 뒤, 주요 파일들을 모두 암호화한다.
 PC 내 사진이나 문서 파일, 음악 등 모두 사용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암호화는 크립토락커를 뿌린 제작자의 요구를 들어줘야만 풀 수 있었다.
 그러나 난 업무용 노트북에 중요한 파일은 보관하지 않고 있었다.
 크립토락커에 걸려도 탈이 없다는 뜻.
 ‘혹시나 내가 새로운 크립토락커를 발견한 거라면?’
 흐흐. 난 기쁨의 미소를 지었다.
 주목을 받든 아니든, 단독 기사는 언제나 환영이니까.
 난 스크린샷 파일을 클라우드 저장소에 백업해 둔 뒤, 다시 알림 창이 떠 있는 이메일 화면으로 돌아왔다.
 그러곤 당당히 알림 창의 [예]를 눌렀다.
 “······응?”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모니터 화면은 그대로였고, 악성코드에 걸렸다는 백신 안내문이나 크립토락커 경고문조차 뜨지 않았다.
 난 혹시나 싶어서 이전 취재 사진이 들어 있는 사진 폴더를 열어 봤다.
 사진 파일들은 모두 정상적인 확장명을 유지하고 있었다.
 “어― 크립토락커가 아닌가? ······ 라니, 그럼 뭐였다는 거야?”
 어떤 이상도 발견하지 못한 난, 다시 이메일 목록으로 화면을 전환했다.
 그러자 거기엔, 내가 읽지 않은 새 메일들이 속속 쏟아지고 있었다.
 ‘아니, 잠깐만. 이거 날짜가 왜 이래?’
 메일 제목들을 읽어 나가던 난 이상한 점을 발견하곤 눈을 깜빡였다.
 보통 당일 발송된 메일은 발신 시각에 24시간만 표시된다.
 한데 새로 도착한 이메일들은 모두 날짜까지 적혀 있었다.
 그것도 일주일 뒤의 날짜가.
 ‘오늘이 12일인데······ 19일 메일이라고?’
 서버 오류인가 싶어 이전 메일 목록을 훑었다.
 하지만 내가 일전에 읽었던 메일들은 모두 시간이 정확하게 표시돼 있었다.
 ‘확인해 보자.’
 [강현주 ― 페이스홈 뉴스피드 표시 방식 변경]
 난 새로 도착한 이메일 중, 페이스홈의 보도 자료를 클릭했다.
 곧 메일 내용이 화면에 뿌려졌다.
 보도 자료의 형태는 대부분 비슷하다. 제목, 소제목, 전문, 사진, 홍보 담당자 연락처 순.
 난 빠르게 첫 문장, 즉. ‘야마’를 찾아 읽어 나갔다.
 야마는 기사의 전체 내용을 관통하는 핵심 문장.
 이 야마만 봐도 기사 전체를 본 것이나 다름없다.
 [페이스홈(대표 맥크 쥬시버거)은 페이스홈의 뉴스피드 표시 방식을 사용자 선호도에 따른 순서로 나타내도록 변경했다고 19일 밝혔다.]
 최근 대세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인 페이스홈의 뉴스피드, 즉 개인 사용자의 첫 화면이 달라진다는 자료였다.
 중요한 건 발표 날짜. 틀림없는 19일이었다.
 명백하게 일주일 후의 날짜.
 “이게 뭐지 도대체.”
 어안이 벙벙한 난 자리서 일어났다.
 내려다보는 노트북 화면의 문자들이 묘하게 다가왔다.
 “뭐 일단, 전화로 확인해 볼까.”
 평소도 자료가 애매하거나 이상할 경우 기업에 직접 연락해 확인해야 한다.
 난 보도 자료 아래에 기입돼 있는 강현주 과장의 연락처를 찾아 전활 걸었다.
 강현주 과장은 홍보 대행사 웨이브의 직원이다.
 ―네, 강현주입니다.
 “과장님, 안녕하세요. 디지털투모로우 주진형 기자입니다.”
 ―아! 기자님. 안녕하세요.
 강 과장은 밝은 목소리로 인사했다.
 주위가 시끄럽고 경적 소리가 들리는 걸로 봐선, 출근 시간이라 지하철을 타려는 듯했다.
 “아, 아직 출근 전이시죠? 혹시 통화 가능하세요?”
 ―네, 괜찮습니다. 무슨 일이세요?
 “음, 그게 말이죠. 혹시 페이스홈 뉴스피드 표시 방식 바뀌는 건가요?”
 ―어, 어머? 어떻게 아셨어요? 아직 저희 쪽 뉴스룸에도 안 나왔을 텐데. 외신 중에 내용 뜬 곳이 있나요?
 “······.”
 맞았다.
 난 보도 자료가 사실이란 걸 안 순간 머리를 망치로 맞은 것처럼 멍해졌다.
 ―기자님?
 “아아, 네 과장님. 아닙니다. 제가 어디서 주워들은 내용인데, 맞나 보네요.”
 나는 강 과장에게 대충 둘러댔다.
 아직 확실하지 않은 얘기였고, 설령 확실해진다 해도 밝힐 수 없는 일이었다.
 ―혹시 기사 쓰실 건가요?
 “쓴다면 도와주실 건가요?”
 ―음, 그게 저도 페이스홈 쪽에 확인을 해 봐야 해서 지금 답변드릴 수가 없네요. 제가 한번 알아보고 다시 연락드려도 될까요?
 “네, 그럼 그래 주세요.”
 통화는 거기서 끝났다.
 난 강 과장의 답변을 기다리지 않았다.
 페이스홈이 젊은 층에게 인기 있는 SNS인 것은 맞으나, 뉴스피드 변경 소식은 독자들에게 그리 파급력 있는 내용이 아니다.
 즉, 행여 강현주 과장이 ‘조력은 힘들 것 같다’라고 답하더라도, 그다지 아쉬울 건 없다.
 지금 내게 중요한 건, 다른 이메일들, 보도 자료의 진실 여부였다.
 난 곧장 다른 보도 자료 메일을 열람했다.
 ―어, 맞아요. 저희 사이트 허브 개편 들어갑니다. 누구한테 들으셨어요?
 웨스트소프트 김신욱 홍보팀장이 놀라워하며 반문했다.
 내가 그에게 먼저 물은 건 웨스트소프트서 운영하는 포털 사이트 ‘훔’에 대한 자료였다.
 나는 차례차례 자료들 대부분의 진위 여부를 가려 나갔다.
 그리고 20분도 채 지나지 않아 하나의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도착해 있는 보도 자료는 진짜 미래에서 온 거다.’
 전활 받지 않아 확인하지 못한 KGT를 제외하곤 모두 긍정의 대답이었다.
 그러니까 메일 목록서 나타난 알림 창, [일주일 후 이메일]은 누군가의 장난질이 아니었던 거다.
 말도 안 되는 현실에 헛웃음이 났다.
 왜, 어째서 이런 일이 내게 벌어진 건지 알 수 없었다.
 확실한 건 내게 엄청난 특혜가 주어졌다는 거다.
 일주일 후의 보도 자료를 미리 아는 기자.
 그건 매일매일 단독 특종을 낼 능력을 가졌단 소리다.
 ―정말로 기회가 주어진다면, 잡아 낼 자신은 있는 거야?
 순간적으로 한 장면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 노숙자의 얼굴이었다.
 ‘설마······?’
 정말 그랬다. 난 최고의 기회를 부여받은 것이다.
 
 
 # 3. 시간 되시면 식사 한번 하시죠
 
 “후우―”
 난 숨을 길게 내쉬었다.
 흥분한 심장을 차분하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어떻게 된 건진 중요하지 않아. 이건 신이 주신 기회다. 무조건 살려야 해.’
 난 노트북 모니터에 적혀 있는 일주일 후의 메일들을 다시 천천히 살폈다.
 아쉽지만 파급력 있는 자료는 하나뿐.
 물론 그것만으로도 감지덕지다.
 또 양질의 기사가 안 되도 물량 공세를 펼치면 된다.
 본래라면 별 가치 없는 보도 자료라도 나 혼자만 써낸다면, 독점적 가치를 가질 테니까.
 지금 내 입장으론 어떤 기사든 작성할 기회가 주어진다는 게 중요했다.
 ‘사실 확인만 제대로 하고 바로 기사를 쓰자.’
 아무리 자료를 갖고 있다 하더라도, 해당 업체 쪽에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증명받아야 뒤탈이 없다.
 난 오후에 보도 자료의 주인공인 통신사 KGT에 가기로 결정했다.
 다시 자리에 앉은 나는 노트북을 잡았다.
 일주일 후의 보도 자료 목록을 훑고, 어느 정도 쓸 만한 것들을 갈무리했다.
 ‘이제 원래 할 일부터 시작할까.’
 준비를 마친 난 본래 내가 해야 할 일들을 시작하기로 했다.
 갑자기 맞닥뜨린 상황 때문에 경황없이 시간을 보냈으나, 오전 업무는 미룰 수 없다.
 난 외신 사이트에 접속해 담당 중인 IT 관련 기사를 살피고 몇 개를 번역하기 시작했다.
 “어, 진형. 일찍 왔네.”
 시간이 흐르면서 다른 기자들과 김정효 팀장까지 사무실에 출근했다. 난 김 팀장의 인사에 답했다.
 “팀장, 오셨습니까.”
 보통 기자 사회에선 직급에 님 자를 붙이지 않는다.
 선배, 팀장, 차장, 부장.
 심지어 편집국의 우두머리인 편집국장까지도 그냥 국장이라 호칭한다.
 나 또한 선배들에게 한두 번 혼난 후에야 이런 호칭 문화를 익히게 됐다.
 “어어, 그래. 외신 쓰고 있었어?”
 “네. 다 썼습니다.”
 나는 마지막으로 번역한 외신기사를 온라인 기사 입력기에 등록했다.
 이를 김정효 팀장이 검수 후 출고할 터였다.
 난 곁눈질로 김 팀장을 바라봤다.
 그는 자신의 자리에 앉아 가방서 노트북을 꺼내고 있었다.
 ‘말하지 않는 게 좋겠지. 아니, 들키지 않아야 돼.’
 난 ‘미래에서 온 이메일’을 생각하며 다짐했다.
 한때 김정효 팀장은 잘나가던 타 매체의 팀장이었다.
 그만큼 기자로서 뛰어난 사람이고 난 팀장을 존경한다.
 하지만 인간적으로는 전부 믿고 있지는 않다.
 그러니 위험하게 이메일 건을 고백할 순 없다.
 ‘이쪽 업계엔 선배와 후배는 있어도 동지는 없으니까.’
 같은 매체 소속 기자라 할지라도 다 경쟁자다.
 김정효 팀장이 욕심 없는 사람이라면 괜찮을 테지만 그렇지 않다.
 만약 내가 솔직하게 이야기한다면, 김팀장은 이 기회를 날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 이용할 가능성이 컸다.
 ‘난 최고의 IT 기자가 될 거야. 그러니까 이 기회는 누구에게도 양보해선 안 돼.’
 난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얼굴로 기사를 쓰고 보도 자료를 처리했다.
 “그럼 취재 나가겠습니다.”
 발제 기사를 마감한 후 나는 사무실을 나섰다.
 본래 기자들의 출근은 각자 맡은 담당 기업들의 기자실로 한다.
 반면 우린 효율을 이유로 오전엔 사무실서 업무를 해야만 했다.
 ‘효율은 얼어 죽을, 그냥 없는 인원 빡세게 우라까이시키려는 거지.’
 남의 기사를 베껴 쓰는 속칭 ‘우라까이’.
 디지털투모로우 이윤철 대표가 아무렇지 않게 시키는 일 중 하나였다.
 사실 이는 잘못되면 기자 생명에 큰 타격을 받는 행위다.
 난 이 대표의 악랄함을 떠올리며 움직였다.
 목적지는 광화문. 일단 KGT 기자실로 들어갈 생각이었다.
 지하철로 광화문역에 도착한 난 곧장 통신사 KGT의 건물로 들어섰다.
 “어떻게 오셨어요?”
 안내 직원이 내게 말을 건네 왔다.
 “기잡니다. 여기 명함, 신분증이요.”
 KGT 기자실은 등록제다.
 등록한 기자들에게 출입증을 나눠 주는데, 나처럼 영세한 매체 소속 기자에겐 연이 없는 이야기다.
 그러니 방문 시 명함과 신분증을 건네 기자라는 걸 확인받아야 했다.
 “죄송합니다. 지금 기자실 자리가 꽉 차서요.”
 “아, 그래요? 이런.”
 KGT 기자실은 이 근방서 가장 넓었다.
 그럼에도 가득 찼다니. 나는 허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난 이곳엔 단순히 기자실을 이용하기 위해서만 온 것이 아니다.
 홍보실 직원들은 간간이 기자실로 내려와 기자들에게 인사를 하곤 한다.
 나 또한 평소 만나 주지 않는 그들에게 그때마다 접근할 수 있었다.
 ‘어쩔 수 없네.’
 나는 휴대전화를 꺼내 KGT서 정책 관련 홍보를 맡고 있는 강동우 차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르. 뚜르르르.
 하지만 역시나. 신호음만 가고 강 차장은 전활 받지 않았다.
 한두 번 겪는 일이 아니다.
 난 강 차장에게 사진을 첨부해 메시지를 보낸 뒤, KGT 건물을 나왔다.
 가까운 을지로 쪽에 기자실이 하나 더 있었지만, 거기까지 갈 생각은 없었다.
 ‘최대한 빨리 털어 보자.’
 근처 카페에 자릴 잡은 내가 생각했다.
 일주일 후의 보도 자료, 이는 일주일 후엔 그 기사 가치가 없어진다는 의미다.
 그러니까 한 시간이라도 빨리 기사화를 하는 게 이득이다.
 난 갈무리해 놓은 자료를 기반으로 대충 기사를 작성했다.
 기사의 뼈대가 되는 보도 자료가 내 손에 있으니 기사 작성은 식은 죽 먹기였다.
 ‘이제 낚이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네.’
 이미 팩트 체크가 끝난 기사들까지 작성해 나가며 난 연락을 기다렸다.
 강동우 차장. 그의 전화가 꼭 필요했다.
 “!”
 이윽고, 한 시간이 채 지나기 전에 휴대전화 벨소리가 울렸다.
 발신자명엔 역시나 ‘KGT 강동우 차장’이 적혀 있었다.
 “네, 차장님.”
 ―아이고 주 기자님, 연락 주셨더라구요!
 강 차장은 평소 내 전화를 받았을 때완 전혀 다른 톤으로 말하고 있었다.
 “연락은 아침부터 드렸었죠. 보내 드린 문자는 보셨죠? 유관 부서 확인되신 건가요?”
 그동안 강 차장에게 설움받았던 생각 탓인지 말이 곱게 나가질 않았다.
 하지만 재밌게도 까칠한 내 말투에도 강 차장은 전혀 불쾌해하지 않았다.
 ―아아, 예예. 그게 누구한테 들으신 건진 모르겠지만 저희 쪽은 확인이 안 되는데요······.
 ‘거짓말이다.’
 길게 말을 이어 나가는 모양새가 연기하고 있는 티가 났다.
 그리고 더 명확한 근거가, 바로 내 손에 쥐어져 있었다.
 “제대로 말씀드리지만, 전 지금 확실한 자료 가지고 있구요. 단순 검증 차원으로 부탁드린 겁니다. 확인이 안 된다고 하지 마시고 제 자료에 틀린 점이 있는지 답을 주세요. 아셨죠?”
 ―······.
 허세 섞인 내 말을 듣고 강 차장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말씀드릴게요. 보내 주신 내용으로 진행 중인 건 맞구요. 그렇지만 정확한 건 발표 전날이나 돼야 저도 알 수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답변 감사합니다.”
 ―아, 저, 잠시만요. 기자님.
 답변을 들은 내가 전화를 끊으려 하자 강 차장이 급히 붙잡았다.
 ―어디서 들으신 건지 좀 여쭤봐도 될까요?
 유출될 리가 없는 정보가 내 손에 있으니 당황할 수밖에 없겠지.
 그러나 난 알려 줄 맘이 없었다.
 “아시잖아요. 정보원 보호해야 하는 거. 그럼 끊습니다.”
 전화를 뚝, 끊고 나서 난 숨죽여 웃었다.
 처음 만났던 때, 디지털투모로우라는 이름을 듣고 인상을 찌푸리던 강동우 차장.
 그가 내게 이렇게 쩔쩔매는 순간이 올 줄이야.
 게다가 ‘정보원 보호’라는 이야길 내 입으로 내뱉은 것도 신기했다.
 그동안은 지켜 줄 정보원이 전혀 없었으니, 직접 말해 볼 일이 전무했었다.
 ‘검증은 끝났다. 러시만 남았어.’
 난 KGT 기사에 강동우 차장의 멘트를 덧붙여 삽시간에 퇴고를 마쳤다.
 그리고 온라인 기사 작성기에 기사를 등록했다.
 [KGT, 요금제 개편······ 통신 요금 오른다 ―주진형 기자]
 국내 3대 통신사 중 한 곳인 KGT.
 모바일/통신 분야를 담당하는 기자에게 이 기사는 큰 가치가 있었다.
 요금제는 통신사 수익의 가장 큰 축이며, 이에 대한 변동은 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는 부분이다.
 그런데 이를 먼저 알고 단독으로 보도한다?
 내 존재가 눈에 띌 수밖에 없다.
 [팀장, 기사 올렸습니다.]
 난 휴대전화로 김정효 팀장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곧 팀장으로부터 답장이 왔다.
 [알았어. 확인하고 출고할게.]
 내가 김정효 팀장의 답문을 읽은 지 5분이 채 지나기도 전.
 그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진형아, 이 기사 뭐냐?
 “KGT 쪽에 사실관계 확인 다 끝난 기삽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이거 어떻게 알아낸 거야? 보니까 보도 자료도 아니던데?
 ‘아니, 사실 보도 자룐데.’
 솔직하게 이야기할 순 없었기에 난 최대한 둘러대기로 했다.
 “KGT 건물 오가다가 옥상서 직원들 얘기 듣고 바로 확인했습니다. 운이 좋았습니다.”
 현실적으론 불가능에 가까운 이야기다.
 ―정말이냐? 허. 어쨌든 대박 기사 건졌구나. 축하한다. 진형아.
 하지만 김 팀장은 믿어 줬다.
 정말 그런 천운이 있지 않고서는 내게 가능한 일이 아니었으니까.
 “감사합니다!”
 기사는 김 팀장과의 전화가 끝나고 10분 뒤 출고됐다.
 출고된 기사는 우리 사이트뿐 아니라, 메이버, 내일, 고글, 게이트, 훔과 같은 포털 사이트의 검색에도 노출된다.
 이를 보는 건 일반 독자들뿐만 아니라, 업계 종사자들까지 포함된다.
 난 뿌듯한 마음으로 공개된 기사를 다시 살펴봤다.
 끝 문단을 다 읽어 나갈 때쯤 휴대전화가 울렸다.
 발신자는 방금 전 통화했던 KGT 강동우 차장이었다.
 “네, 차장님. 어쩐 일이세요.”
 ―아, 기자님! 기사 잘 봤습니다. 근데 기자님, 저희도 미치겠습니다. 기사 제목이 너무 자극적이라고 위에서 난리예요.
 ‘자극적은 얼어 죽을.’
 기사에 대한 하소연을 위한 전화다.
 선배들에게 이야길 들은 적은 있지만 나로선 처음 받아 보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강 차장의 속내는 훤히 들여다보였다.
 직역하자면 ‘제목이 마음에 안 드는데 고쳐라’다.
 ‘하긴 요금제가 오른다고 써 놨으니. 이미지 타격이 있겠지.’
 통신사들의 요금제 개편 자료는 겉으론 무척 중립적인 자료로 보인다.
 하지만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숨겨져 있는 의도를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요금 상승’.
 통신사는 ARPU, 즉 가입자당 평균 통신비가 기업 평판에 큰 영향을 끼친다.
 ARPU가 높을수록 그 통신사 고객들은 대체로 비싼 요금제를 쓴단 의미.
 즉, 통신사가 버는 월 고정 수익도 높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요금제 개편은 ARPU를 높이려는 수작일 수밖에 없지.’
 기존의 저렴했던 요금제가 통폐합됨으로, 소비자 혜택은 축소되고 가격이 오른다.
 난 그걸 간파해 기사를 썼다.
 단순히 보도 자료를 그대로 옮겨 썼다면 이 전화는 오지 않았을 것이다.
 돈을 더 낸단 소리는 그만큼 소비자들에게 여파가 크니까.
 그러나 난 기사를 고쳐 줄 생각이 없다.
 “차장님. 제가 기사에 자료를 다 첨부하진 않았지만, 갖고 있거든요. 기존 요금제랑 비교해 본 겁니다.”
 ―아······ 저 그게 제목만 좀 어떻게 안 될까요? 요금제 오른다 뭉뚱그려 말하기엔 통화나 데이터 제공량도 많이 달라지는데요.
 ‘아, 그 눈속임 말이지.’
 데이터 시대로 바뀌고 난 뒤 통화나 문자 기본 제공량은 사실상 큰 의미를 둘 수 없었다.
 그런데도 통신사들은 여전히 저 두 서비스를 이용해 요금제에 장난질을 치곤 했다.
 그런 걸 일일이 설명하며 논쟁할 필욘 없었다.
 난 단호하게 대답했다.
 “안 될 것 같구요. 그리고 한 번 출고된 기사는 저한테 수정 권한 없어요. 아시잖아요? 저희 팀장께 문의하시는 게 나을 겁니다.”
 이 말을 내뱉으며 난 웃음이 새어 나왔다.
 ‘팀장에게 문의하라.’ 업계서 김 팀장의 체면을 세워 주는 최고의 대사였다.
 ―아, 디지털투모로우 팀장님이요? 죄송한데 연락처를 좀 알 수 있을까요?
 “문자로 보내 드릴게요.”
 ―아, 감사합니다. 그리고 기자님······ 시간 되시면 식사 한번 하시죠. 다음 주 어떠세요?
 난 내 귀를 의심했다.
 그동안 먼저 인사를 해도 받는 둥 마는 둥, 고개만 까닥이고 말도 없던 강동우 차장이었다.
 내가 접근하면 벌레 씹은 표정을 짓던 그가, 내게 먼저 일정을 잡자며 권유하고 있었다.
 
 
 # 4. 공조 한번 하시겠습니까
 
 ‘언제는 식사하자니까 비웃고 갔으면서.’
 그동안 내가 당했던 설움들, 모진 경험들이 떠올랐다.
 난 바로 강 차장의 태도 변화를 비꼬려다가 멈칫했다.
 ‘자존심 생각할 때가 아니지.’
 마음 같아선 멋지게 거절하고 싶었다.
 하나 기자로서 내 자존심보다 중요한 건 취재원을 확보하는 것.
 난 강동우 차장의 제안에 순순히 응하기로 마음을 바꿨다.
 그게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천운으로 기회를 잡긴 했으나 난 여전히 한 명의 취재원이라도 절실한 형편이었으니까.
 “그러죠. 그럼 다음 주에 한번 봬요. 월요일 어때요?”
 나는 최대한 감정 없이 대답했다.
 괜히 기쁜 내색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아아, 좋죠! 알겠습니다. 그럼 월요일 점심 전에 제가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그러세요.”
 통화를 끝낸 뒤, 난 문자메시지로 김정효 팀장의 번호를 강 차장에게 전달했다.
 강 차장의 행태를 보아 분명 김 팀장에게 전화를 걸을 터.
 그러나 내 기사의 제목이나 내용이 수정되는 일은 없었다.
 “오오, 주 기자!”
 다음 날 이른 아침의 사무실.
 출근하던 디지털투모로우 이윤철 대표가 감격에 찬 목소리로 날 불렀다.
 늘 짜증 난 말투로 업무 지적만 하던 이 대표다.
 그가 이렇게 신이 난 원인은 나도 잘 알고 있었다.
 “어제 기사 아주 좋았어. 어? 대단해.”
 개인적으로 이 대표를 좋아하지 않지만, 칭찬은 어쨌든 기분이 좋았다.
 난 이 대표에게 감사 인사를 한 뒤 노트북으로 기사 작성기에 접속했다.
 [KGT, 요금제 개편······ 통신 요금 오른다 ―주진형 기자]
 [조회 수 42,644]
 놀라운 숫자가 적혀 있었다.
 ‘말도 안 돼. 조회 수 4만이라니······ 요 근래 우리 전체 페이지뷰의 두 배잖아.’
 이게 바로 이 대표 감격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4만이란 숫자는 국내 5천만 국민 수를 생각하면 그리 크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IT업계 기사라는 점, 우리 매체의 평균 기사 조회 수를 고려한다면 어마어마한 수였다.
 디지털투모로우는 번번이 대형 포털 사이트의 뉴스 콘텐츠 제휴서 탈락한 언론사다.
 독자들이 포털 사이트 메인에 게시되는 뉴스를 접할 때, 우리 매체의 기사는 볼 수 없다는 의미다.
 그런 상황서 우리 매체의 단일 기사 조회 수는 만 단위를 넘기 힘들었다.
 순전히 검색으로만 독자 유입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이게 단독 보도의 힘······ 인가.’
 난 바로 메이버 사이트에 접속해 ‘KGT 요금제’를 검색창에 입력했다.
 검색 결과 뉴스란 가장 위에 나타나 있는 게 바로 내 기사였다.
 그 밑으로 다른 매체의 우라까이 기사들이 속속 매달려 있었다.
 나는 5대 언론사 중 한 곳인 ‘전자뉴스’의 기사를 클릭했다.
 곧 전자뉴스의 사이트가 뜨며, 기사 내용이 내 눈에 들어왔다.
 [12일 디지털투모로우는 KGT가 무선통신 요금제 개편을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
 우라까이를 할 때, 양심 있는 곳과 양심 없는 곳의 차이는 극명하다.
 원 기사를 보도한 매체를 언급하느냐, 안 하느냐.
 그런 의미서 전자세계는 양심이 있는 곳이었다.
 ‘그러니까 내 기사를 보고 베꼈다고?’
 웃음이 터졌다.
 난 늘 남의 기사를 베끼기만 했지, 내 기사를 타 기자들이 베끼리라곤 상상한 적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잘나가는 녀석들이 내 글을 우라까이했다니.
 믿어지지 않을 만큼 신기했다.
 ‘이런 기분이구나.’
 뿌듯함과 자랑스러움.
 여태껏 기자 생활을 하며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들이 가슴에 가득했다.
 이제야 다른 기자들이 느끼던 성취감을 알게 된 거다.
 “참, 진형아. 안 그래도 어제 KGT 강동우 차장한테 전화 왔었다.”
 노트북 모니터를 보고 있던 내게 김정효 팀장이 가벼운 어조로 말했다.
 “아, 네. 기사 제목 바꿔 달라고 해서 거절했더니, 팀장께 전화한 모양입니다.”
 “응. 그 부분은 안 된다고 했고. 너랑 같이 밥이나 먹자 해서 알았다고 했다.”
 “다음 주 월요일 점심에 일정 잡았는데, 그때 같이 가실까요?”
 내가 물어보자 김 팀장은 고갤 저었다.
 “아니다. 그건 너 혼자 만나고. 나랑은 나중에 저녁에 보자고 하자.”
 “알겠습니다.”
 김정효 팀장이 내 어깨를 다독이듯 두드렸다.
 난 그 행위의 속뜻을 잘 알고 있다.
 KGT 기사를 통해 난 매체의 이름을 알렸을 뿐만 아니라, 팀장의 체면까지 세워 준 것이다.
 팀장―부장―국장급 위치의 기자들은 직속 평기자들의 역량 발휘에 따라 업계 평가가 갈린다.
 김 팀장 또한 전혀 일면식이 없던 KGT 강동우 차장과 전화 통화 이후 식사 약속까지 잡게 된 건 모두 내 기사 덕분이었다.
 “진형아. 근데 이거 후속 하나 써 줘도 좋을 것 같은데?”
 김정효 팀장이 말하는 후속이란, 후속 기사.
 즉 KGT 요금제와 관련해 추가 취재 기사를 써 보란 뜻이다.
 물론 이미 기사가 나간 KGT를 노리는 게 아니다.
 국내 통신사는 모두 3곳. KGT 외에 기업들을 대상으로 비슷한 요금제 개편이 있는지 확인하란 거다.
 “아― 그렇네요. SBT나 O플러스 쪽도 개편하는지 알아보겠습니다.”
 난 문제없다는 식으로 대답했다.
 사실 저 두 통신사의 홍보팀은 햇병아리 기자인 날 거의 무시하는 곳이다.
 만나자는 이야길 꺼내면 약속이 있다거나 바쁘다며 거절하는 게 일반적.
 전화를 걸어 자료를 요청해도 귀찮다는 듯이 며칠 뒤에 전해 주곤 했다.
 그럼에도 당당하게 후속 취재를 하겠다 말한 건,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미 오늘 아침에 다 봤지.’
 출근길 지하철 안.
 숱한 직장인들 사이서 구겨 탑승한 난 손에 휴대전화를 붙잡고 이메일부터 확인했었다.
 어떤 보도 자료가 미리 와 있는지, 또 미래의 보도 자료가 수신됐을지.
 그렇게 이메일 목록을 열람한 후, 난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SBT와 O플러스도 요금제 개편을 한다.’
 SBT와 O플러스 측도 일주일 후, 요금제 개편 보도 자료를 기자들에게 배포한다.
 마치 3사가 담합이라도 한 것처럼, 하루 정도 간격을 두고 모두 요금 제도를 바꾸는 것이다.
 전동차 안이라 자세한 자료 파악을 하진 못했으나, 난 이미 향후 기사 작성 방향을 머릿속으로 그려 놓은 상태다.
 ‘문제는 자료 출처를 어떻게 만들어 내느냐 인데······.’
 난 이미 모든 자료를 손에 쥐고 있지만, 이를 그대로 노출시킨다는 건 위험도가 너무 컸다.
 출처(소스)를 명백히 밝힐 수 없는 자료만 가지고 기사를 쓴다는 건, 그만큼 많은 의심을 살 수 밖에 없다.
 그 의심은 최고의 기자가 꿈인 내 발목을 잡을 거다.
 KGT 때처럼 옥상에서 들었다는 황당한 소린 다시 하기 힘들다.
 김정효 팀장도 두 번은 믿어 주지 않을 일이었다.
 의심받지 않고 기사를 내기 위해선 정말 확실한 ‘취재 흔적’이 있어야 했다.
 ‘당연히 그쪽에선 알려 주려고 하지 않겠지.’
 내가 전활 걸자 예상대로 SBT와 O플러스 쪽은 ‘아직 확정된 게 없다’며 대답을 피했다.
 이 말인 즉 요금제 개편을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으니 섣부른 기사를 내지 말란 거다.
 이미 다른 기자들도 이런 식으로 수차례 확인했을 터.
 동일한 방법으론 승산이 없었다.
 ‘이미 자료를 다 갖고 있음에도 바로 기사를 낼 수가 없네. 뭐,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만 있을 순 없지. 죽어라 뛰기로 했으니까.’
 난 을지로에 위치한 SBT타워로 이동했다.
 SBT타워 내 기자실로 들어서는 순간, 안쪽에서 큰 목소리가 들렸다.
 “옷, 이게 누구신가. 단독 보도로 KGT를 발칵 뒤집은 주진형 기자가 아닌가!”
 기자실에 먼저 와 있던 기문 선배였다.
 기문 선배의 호들갑에 기자실에 자리하고 있던 다른 기자들이 모두 나를 쳐다봤다.
 창피하기 이를 데 없는 순간이었다.
 “아, 선배. 왜 그러십니까. 창피하게.”
 “뭐가 창피한가. 자랑스러운 후배의 영광을 드높이는 일이네만.”
 “이, 일단 나가서 얘기하시죠.”
 난 빈 좌석에 가방을 내려놓고 기문 선배를 끌고 기자실 밖으로 나왔다.
 기자실엔 ‘정숙’이라거나 ‘조용’이라는 안내 문구는 없다.
 그러나 괜히 짬밥도 되지 않는 기자가 까불고 다녀 봐야 좋은 소문이 날 리 없다.
 “이야~ 디지털투모로우서 그런 기사가 나올 줄이야. 성훈 선배나 주연이도 모두 우리 주 후배 칭찬을 했다네.”
 SBT타워 지하 1층에 위치한 카페.
 나와 기문 선배는 커피 잔을 하나씩 들고 이야길 나눴다.
 기문 선배가 말한 성훈 선배나 주연 선배는 모두 디지털투모로우에 있던 기자들이다.
 “운이 좋았습니다. 진짜 저도 깜짝 놀랐다구요.”
 뭐 그 기사 때문에 놀란 건 아니었지만.
 “도대체 소스는 어딘가? 응? 어디서 그런 대어를 낚은 게야.”
 궁금함이 가득한 표정으로 기문 선배가 내게 물었다.
 본래 기자들끼리 정보 소스를 공유하는 일은 거의 없다.
 아무리 친한 사일지라도 업계에 있는 한은 서로가 라이벌이니.
 이를 앎에도 기문 선배가 묻는 이유는 정말 순수한 의문 때문일 것이다.
 난 본래 정보력이 좋았던 기자도 아니고, 인맥도 없다.
 요새 아무리 인터넷이 발달하고 여러 커뮤니티가 활성화됐다지만, 통신사의 요금제 개편안 정보까지 미리 알 수는 없는 거다.
 “정말 운이 좋았던 겁니다. KGT 옥상서 있다가 들었어요.”
 난 김정효 팀장에게 했던 거짓말을 그대로 기문 선배에게 전했다.
 당연히 기문 선배는 믿는 눈치가 아니다.
 “그게 말이 되는가? 그쪽 직원들이 바보도 아니고.”
 당연 그렇다.
 절대 다른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공간서 그런 대외비 자료를 떠벌릴 KGT 직원들이 아니다.
 “뭐, 천운이죠. 아무튼, 선배도 SBT 쪽 요금제 개편 물어보려고 온 겁니까?”
 난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
 내가 말하길 꺼려하자, 기문 선배도 깊게 캐물을 생각은 접은 듯했다.
 “아아. 그렇네. 근데 SBT나 O플러스나 요금제 개편에 관해 입을 전혀 안 여는구만.”
 “제 생각엔 얘네들도 개편을 분명 할 거란 말이죠.”
 “근거가 뭔가?”
 “흠······ 뭐 대부분의 통신, 모바일 취재 기자들이 알다시피, 통신3사가 요금제나 단말기 가격을 늘 비슷하게 내놓잖습니까. 분명 양 사가 KGT의 움직임을 몰랐을 리 없어요. 상대 사 소식에 제일 귀 기울이고 있는 게 이 녀석들이니까요. 게다가 SBT는 시장점유율이 50%되는 1위 통신사지만, ARPU는 2위인 KGT보다 낮죠. 실상 주주들한테 가장 먹히는 건 점유율보다는 ARPU니, SBT도 KGT의 정책을 좇을 겁니다. 3위인 O플러스 측도 이미 고착화된 시장 점유율을 끌어올리기보다는 최대한 효율적으로 수익을 올리려고 할 거고. KGT가 선빵을 쳤으니 그걸 비슷하게 내놔서 소비자 반감은 줄이고 수익은 올릴 기회가 주어진 거나 다름없습니다.”
 내가 한 추측은 이미 답을 알고 있는 상태서 내린 것이다.
 난 내게 날아온 다음 주 보도 자료를 이미 읽었으니까.
 “그렇다면 혹시 담합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지 않은가?”
 기문 선배가 눈을 빛내며 반문했다.
 “담합 가능성이라······.”
 확실히 SBT와 O플러스의 요금제 개편안은 KGT와 흡사했다.
 담합일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으나 단정적인 물증을 잡지 못한다면 적발하기 어렵다.
 ‘이전에 시민 단체도 통신3사가 담합했다며 공정거래위원회에 고발한 적이 있지.’
 하지만 시민 단체는 물증을 잡지 못했고, 통신사는 담합이 아니란 판결을 받았다.
 내가 그대로 기문 선배에게 답변하려던 순간.
 번쩍, 머리를 망치로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새로운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아!”
 난 식어 버린 커피를 단숨에 들이키고는 자리서 일어났다.
 “왜? 왜 그러는 겐가?”
 “SBT 요금제 개편을 확인할 방법이 떠올랐습니다.”
 “뭔가! 내게도 얘기를 해 주지 않겠나? 주 후배!”
 기문 선배도 커피 잔을 들고 일어섰다.
 난 잠시 생각하다가 기문 선배에게 입을 열었다.
 “선배, 예전에 제가 2진으로 통신 돌 때 선배가 한 말이 있지 않습니까. 위가 안 되면 아래를 털고, 위아래가 안 되면?”
 “옆을 털어라!”
 기문 선배가 신나서 외쳤다.
 “SBT랑 O플러스 홍보실은 막혔고, 그렇다고 그 윗선엔 연이 전혀 없으니 답은?”
 “아래? 옆?”
 난 기문 선배의 눈을 똑바로 보면 말했다.
 “둘 다요. 선배, 저랑 공조 한번 하시겠습니까?”
 
 
 # 5. 자, 어떻게 요리할까요
 
 김기문 선배.
 한때 같은 매체에 소속된 내 사수였지만, 지금은 엄연히 타 매체 선배일 뿐이다.
 즉, 내 취재에 관해 완전한 공유를 할 이유도, 필요도 없었다.
 우린 그저 경쟁자니까.
 그럼에도 내가 공동 취재를 제안한 건 충분히 내게 이득이 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기문 선배가 아닌 척하면서도 관심을 보였다.
 “선배가 아래를 털고, 제가 옆을 터는 겁니다. SBT와 O플러스가 요금제 개편을 한다면, 분명 대리점 쪽에도 요금제 관련 공지가 내려올 겁니다. 선배는 대리점 쪽 돌면서 이 내용을 알아내시면 됩니다.”
 통신사 본사서 결정된 사항은 전산을 통해 대리점/판매점 등의 유통 매장으로 전달된다.
 즉, 유통 점주와 친분만 있다면, 이런 공지, 공문을 알아내는 것쯤은 큰 문제가 안 될 터.
 게다가 난 취재 과정의 족적도 확실히 남길 수도 있게 된다.
 지금 가진 자료는 누군가 출처에 의문을 제기하면 확실한 해명을 할 수 없으니까.
 “오호. 그러니까 아래는 대리점인거군.”
 기문 선배가 고갤 끄덕였다.
 “네. 그리고 전 지금 과천청사로 갈 겁니다.”
 정부과천청사.
 세종시로 정부 부처가 이관됐지만, 여전히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곳.
 통신 기자들이 주시해야 할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와 미래창조과학부(미래부)가 남아 있다.
 “갑자기 청사는 왜?”
 아직 감을 못 잡은 기문 선배가 내게 물었다.
 내가 갑자기 청사를 가겠다고 한 이유, 그건 미래부 때문이다.
 미래부 통신정책국은 통신사의 정책, 경쟁, 시장 유통 등을 조사하고 감시한다.
 방통위의 역할과 겹치는 구석이 있어서 문제가 생기면 서로 책임을 떠넘기기도 하지만, 명백하게 별도로 담당하는 일이 있다.
 바로 요금인가제.
 “SBT는, 새로 요금제를 내놓을 때 정부에 신고해야 되지 않습니까.”
 “앗, 그렇지! 요금인가제가 폐지 안 됐으니.”
 기문 선배가 손뼉을 탁, 쳤다.
 KGT나 O플러스는 요금제를 새로 내놓거나 폐지할 때 정부의 허락이 필요치 않다.
 하나 SBT는 다르다.
 시장 지배 사업자라는 명목으로 정부의 인가가 떨어져야만 요금제를 개편할 수 있다.
 “가서 그걸 털어 볼 겁니다.”
 “흠. 확실히. SBT 쪽을 직접 털 수 없으니 옆으로 돌아 털겠다는 얘기구만. 좋은 생각이긴 한데, SBT를 직접 터는 것보다 미래부 터는 게 더 힘들지 않겠나?”
 틀린 말은 아니다.
 별도의 홍보 부서를 놓고 언론 대응을 하는 기업들과 달리 정부 부처는 실무진들과 대화를 시도해야 한다.
 이 실무진들이 굳이 기자들을 상대해 이득을 얻을 점은 없다.
 자신에게 주어진 업무를 처리하기도 바쁘니 최대한 기자들을 상대하려 하지 않았다.
 나 같은 무명 매체 소속 기자는 더더욱.
 그러나 난 자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지, 이미 실제 자료를 손에 쥐고 있었으니까.
 SBT와 KGT, O플러스 모두 동일한 요금제 개편을 할 예정.
 이는 ‘담합’처럼 비춰진다.
 이를 잘 이용하면 미래부를 협상 테이블에 충분히 앉힐 수 있을 듯했다.
 “되든 안 되든 해 봐야죠. KGT 건도 터트렸으니 이걸 무기로 도전해 볼까 합니다.”
 기문 선배가 끄덕였다.
 “좋은 기자의 자세로군. 맞네.”
 난 다시 진지한 얼굴로 가장 중요한 이야길 더했다.
 “그래서 결과가 나오면 자료 공유해서 우리 둘만 기사를 쓰는 겁니다. 하지만 만약 선배가 먼저 두 업체의 개편안을 알아내신다면 혼자 기사 내셔도 됩니다. 아무래도 선배가 더 발품 파는 쪽이니까요.”
 내가 이렇게 단호하게 얘기할 수 있는 이유는 단순하다.
 선배는 절대 나보다 먼저 자료를 구할 수 없다.
 두 통신사의 요금제 개편안 발표는 앞으로 일주일 후.
 그 말은 SBT의 인가가 적어도 사나흘 이상 걸린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벌써 대리점에 공지가 떴을 리 없다.
 ‘아마 O플러스도 마찬가지일 거야. 벌써 공문이 내려왔을 리 없어.’
 하지만 기문 선배는 혼자 기사 쓸 마음은 없는 듯했다.
 “뭐? 아니야, 아니야. 주 후배한테 얘기 다 들어 놓고 나 혼자 쓸 수야 없지.”
 “음······ 물론 선배가 절 버리시지 않으시면 좋지만요.”
 “오우. 당연하지. 난 주 후배랑 같이 해 보겠네. 이거 공동 취재는 디지털투모로우 있을 때 이후로 오랜만이네.”
 “후후. 그러네요.”
 그렇게 훈훈하게 협의를 본 우린 다시 기자실로 올라갔다.
 난 내려놨던 짐을 챙겨 과천으로 향했다.
 기문 선배는 통신사 유통 판매/대리점들이 모여 있는 전자상가로 떠났다.
 4호선 지하철, 시끄러운 전동차 안에서 난 미래부에 전활 걸었다.
 신호음이 6번 가까이 울릴 때쯤에 상대가 수화길 들었다.
 ―네, 미래창조과학부 통신이용제도과입니다.
 “예, 정영수 과장님이시죠.”
 ―네, 뭘 도와드릴까요.
 “안녕하세요. 디지털투모로우 주진형 기자라고 합니다.”
 ―······디지털······어디시라구요?
 생소한 매체 이름이 귀에 익지 않은지 정 과장이 물었다.
 처음 겪는 일도 아니기에 불쾌할 일 없이 난 또박또박 대화를 이어 나갔다.
 “디지털투모로우 주진형 기자입니다.”
 ―아, 안녕하십니까, 기자님.
 이름을 알아들은 정 과장은 일단 친절하게 응대했다.
 “네, 다름이 아니라 SBT 요금제 인가 때문에 연락드렸는데요.”
 ―요금제 인가요? 그걸 왜 저희에게······.
 “SBT가 요금제 개편한다고 인가 신청 올린 걸로 아는데요.”
 난 정말 눈 하나 깜빡이지 않은 채 거짓말을 내뱉었다.
 ―아, 그 부분은 제가 파악하고 있지 않구요. 업무 관계상 자세한 답변을 드릴 순 없을 것 같습니다. 저 그럼······.
 더 길게 통화할 생각이 없다는 듯, 정영수 과장은 명백히 통화를 끊고 싶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괜한 일거릴 만들고 싶지 않단 생각일 테니까.
 나 또한 쉽게 답변을 들을 수 있을 거라 보지 않았다.
 “아뇨. SBT는 미래부에 요금제 신고를 했습니다. 저 어제 KGT 요금제 개편 기사 내놓은 디지털투모로우 주진형 기자입니다. SBT 쪽 자료도 갖고 있습니다.”
 ―······.
 내가 내놓은 가짜 패에 상대가 침묵했다.
 하지만 아직 전화는 끊기지 않았다.
 난 조금 더 깊숙이 접근해 보기로 했다.
 “과장님도 요금제 개편 자료 보셨을 것 같은데. 어제 보도한 KGT 측 개편안이랑 똑같더군요. 통신사 간 담합의 가능성도 있는데, 미래부 쪽에선 어떻게 판단하고 있는지 좀 여쭤보려구요.”
 그러니까 도저히 대답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런 미끼를 던져야 한다.
 “오늘이나 내일, 기사 내보낼 겁니다. 담합 관련으로.”
 눈치 빠른 사람이라면 대충 이해할 이야기였다.
 만일 여기서 침묵을 유지한다면 기사 속 미래부 멘트는 다음과 같이 첨부되겠지.
 ‘요금인가를 맡고 있는 미래창조과학부 측은 통신3사의 담합 의혹에 대해 침묵했다.’
 즉, 무언의 긍정이란 시선이다.
 안 그래도 통신사와 정부 부처가 결탁했다는 국민들의 시선이 짙은 판국이다.
 이런 멘트를 그대로 내보내고 싶진 않을 터.
 ―기자님, 죄송한데 성함과 소속을 다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드디어 정영수 과장이 입을 열었다.
 벌써 네 번째 언급이지만, 난 침착하게 대답했다.
 “디지털투모로우, 주진형입니다.”
 ―······네, 주 기자님. 혹시 지금 어디 계신가요?
 “과천 가는 중입니다. 약 40분 후에 청사 도착할 것 같군요.”
 과천은 분명 서울과 가깝긴 하지만, 기자들이 쉽게 오갈 수 있는 거리는 아니다.
 이 때문에 통신 담당 기자들도 특별한 일 없인 청사에 오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도착하시면 연락 주십시오. 제가 내려가겠습니다.
 ‘도박, 성공했다.’
 난 차창 밖을 보며 왼쪽 입꼬릴 올렸다.
 50분 뒤, 난 과천정부청사에 도착했다.
 지하철역서 청사까지 걸어가느라 시간이 더 지체된 것이다.
 청사 안, 미래부 건물로 들어간 난 바로 정영수 과장에게 전활 걸었다.
 잠시 뒤, 그가 내 앞에 나타났다.
 “아, 기자님. 반갑습니다. 정영수 과장입니다.”
 “네, 디지털투모로우 주진형 기자입니다.”
 우린 악수를 나눈 뒤, 서로의 명함을 교환했다.
 일반적으로 전화까진 가능해도 직접 만나기는 어려운 게 이 공무원들이다.
 특히나 실무진들.
 난 처음으로 얻어 낸 미래부 실무진 명함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일단 저쪽으로 가시죠.”
 난 정 과장의 안내에 따라 작은 회의실로 몸을 옮겼다.
 정 과장은 준비해 온 자료를 원탁에 내려놓고 자리에 앉았다.
 나도 그의 맞은편에 착석했다.
 “우선 이 이야기부터 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희 미래부는 요금인가를 맡고 있지만, 담합과 관련한 부분은 공정거래위 쪽으로 확인하셔야 할 겁니다.”
 정영수 과장은 불리한 기사를 차단하기 위한 말부터 꺼냈다.
 “네,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프더레코드로 덧붙이자면 말이죠. 요금인가제 때문에 SBT도 비슷하게 요금제를 내놓을 수밖에 없는 겁니다. 기자님도 그 점은 아시지 않습니까?”
 내가 왜 이 소릴 SBT 홍보팀이 아닌 미래부 직원에게 듣고 있는 걸까.
 너무 당연한 변명이다.
 요금인가제는 시장 지배적 사업자인 SBT를 규제하기 위해 존재한다.
 2등, 3등 업체보다 저렴한 요금제를 내놓을 경우, 50% 점유율이 60%, 70%까지 올라가 시장구조가 파괴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니 SBT는 요금인가를 받기 위해 타사와 동일한 수준으로 요금제를 내놓을 수밖에 없다.
 하나 문제는 시기다.
 KGT 측이 요금제 개편을 발표하기도 전부터 SBT는 움직이고 있었다.
 자료 공유를 하지 않고선 가능할 리 없다.
 아니면 중간에 ‘프락치’가 있다든가.
 난 정영수 과장을 차갑게 바라봤다.
 “KGT 요금제 개편안은 아직 공식적으로 발표된 게 아니죠. 그런데 SBT가 동일한 요금제로 인가를 신청한다? 과장님. 이게 어떻게 말이 됩니까?”
 “어······ 그, 글쎄요.”
 난 정 과장이 SBT의 요금인가 신청 사실을 부정하지 않았다는 것에 미소 지었다.
 “둘 중 하나가 아닐까요. 첫째, 두 통신사 요금기획팀 인력들이 힘껏 머릴 굴려 나온 결과가 동일했다. 둘째, 두 통신사 간 자료가 오갔다. 혹시 미래부가 둘 사이 오작교 놔 주신 건 아니겠죠?”
 후후, 난 살짝 장난스런 어투로 말을 마무리했다.
 하지만 허황된 이야길 한 건 아니다.
 SBT는 인가제지만, KGT와 O플러스는 신고제다.
 이는 요금제를 변경하겠다 통보해야 한다.
 미래부도 KGT의 요금제 개편안을 알고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큰일 납니다. 저희가 안 그래도 그런 쪽으로 이미지가 나쁜데 괜한 오해를 살 일 할 리가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미래부 쪽에선 KGT와 SBT의 요금제 개편안이 동일하단 건 알지만, 이에 대해 개입한 건 없다. 그런 거죠?”
 내가 기사에 넣을 멘트를 정리하려는 것처럼 정 과장을 떠봤다.
 그가 급히 반응했다.
 “아아. 개입 절대 아니구요. 그리고 KGT와 SBT 요금제는 약간 다릅니다. 기자님 정확히 자료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데이터 제공량과 망외통화 제공량 모두 SBT 쪽이 더 적습니다. 그건 동일한 게 아니지요.”
 ‘오케이.’
 기사에 쓸 수 있는 멘트 확보를 마친 내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알겠습니다. 제가 다시 한번 확인하고 기사 쓰겠습니다.”
 난 짐을 챙겨 자리서 일어났다.
 “어? 가, 가시려구요?”
 너무 빠르게 취재가 끝나자, 오히려 정영수 과장이 당황한 듯했다.
 그럴 만하다.
 그의 예상과 달리 내 질문이 짧았을 테니까.
 난 내가 가진 자료를 증명하는 대사만 필요했을 뿐.
 더 상세한 수치를 얻을 생각도, 괜한 트집으로 기사를 쓸 욕심도 없었다.
 이 정도만으로도 큰 성과였다.
 “네. 시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의아함에 머릴 굴리고 있을 정 과장을 놔두고, 난 미래부 건물을 빠져나왔다. 그러곤 곧장 기문 선배에게 연락했다.
 “선배! 멘트 나왔습니다. SBT, 요금제 개편안 내놓는 거 맞습니다. 자, 어떻게 요리할까요?”
 
 
 # 6. 원하는 건 홈런. 큰 한 방
 
 ―뭣? 벌써 말인가 주 후배!?
 휴대전화 수화기 너머로, 놀란 기문 선배의 커다란 목소리가 크게 울렸다.
 난 잠시 휴대전화를 귀에서 뗐다가 다시 붙였다.
 “네, 멘트 제대로 땄구요. SBT는 일단 확실합니다. 선배 쪽은 어떠십니까?”
 ―아, 미안 주 후배. 난 아직이야. 신도림 몇 군데 돌아봤는데 아직 요금제 공지는 안 내려온 모양이네.
 ‘당연히 그렇겠지.’
 기문 선배는 휴대전화 매장이 몰려 있는 신도림 집단상가 쪽을 돌아본 모양이었다.
 일은 내 생각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난 과천청사를 나서며 입꼬릴 올렸다.
 ―어떻게, 주 후배 그냥 먼저 기사 쓰는 것도 나쁘지 않다네. SBT 쪽만 터트려도 대박 아닌가!
 선배의 말대로다.
 KGT에 이어 SBT까지.
 요금제 개편 기사를 터트리면 분명 이루타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눈에 띌 것이다.
 하지만 난 그걸로 만족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내가 원하는 건 홈런. 큰 한 방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일단 지금은 뜸을 들이고 자료를 모으는 게 맞다.
 다른 기자들이 쫓아오지 못할 간격을 갖추기 위해서.
 “아뇨. 일단 킵해 두려고 합니다. 선배, 내일도 대리점 쪽 계속 확인해 주실 수 있으세요?”
 ―음······ 뭐, 오래 걸리는 일은 아니니까 가능하네.
 “저도 내일부터는 같이 돌겠습니다. O플러스까지 확실해지면, 그때 기사를 같이 쓰는 걸로 해요.”
 ―그래 주겠나? 고맙네.
 기문 선배가 고마워할 이유는 없다.
 난 날 위해서 움직이고 있었을 뿐이니까.
 내가 대리점을 같이 돌겠다고 한 말은 거짓말이다.
 굳이 나까지 대리점을 돌 필욘 없다.
 난 따로 확인하고픈 부분이 있었고, 그러려면 다른 사람을 만나야 했다.
 [KGT 홍보 2실 강동우 차장]
 강동우 차장과 약속했던 월요일 점심.
 본래 KGT 보도 자료가 배포되기 바로 이틀 전날.
 그리고 SBT, O플러스 보도 자료 배포 사흘 전.
 나는 광화문 근처 양식 레스토랑서 강 차장과 만났다.
 강 차장은 내게 인사와 함께 준비해 온 명함을 줬다.
 “저희 일전에 명함 교환했는데요.”
 내가 웃으며 강 차장에게 말했다.
 이 말에 그가 당황한 듯 허허 웃었다.
 “아, 그런가요? 제가 기억이 잘 안 나서.”
 그렇겠지.
 강 차장이 내 명함을 버리지 않고 어딘가 처박아라도 뒀으면 다행일 터다.
 “아, 오늘 월요일이라 좀 바빴네요. 늦어서 죄송합니다. 많이 기다리셨죠.”
 강동우 차장이 사람 좋은 얼굴로 내게 사과했다.
 그는 사실 약속했던 12시 정각에서 10분가량 늦은 후 내 앞에 나타났다.
 저 사과는 이에 대한 변명처럼 보이지만, 난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해합니다. 월요일이 가장 바쁠 때죠.”
 한 주의 시작인 월요일은, 홍보팀이 가장 바쁠 때다.
 주말에 나온 기사나 사건들을 처리하고, 한 주 언론 대응에 대한 회의까지 해야 한다.
 그런 바쁜 시간대엔 보통 일정을 잡지 않는다.
 특히 KGT 같은 대기업 소속 홍보팀은.
 그러니까 강 차장은 그만큼 날 신경 써 줬다는 생색을 돌려 말한 것이다.
 ‘뭐, 지금 내가 신경 쓸 필욘 없지.’
 본래라면 정말 황송하다는 얼굴로 머릴 숙였을지도 모른다.
 날 만나 줄 리 없는 사람이었으니까.
 “아 참. 저희 팀장께서는 따로 저녁때에 보자고 하시는데, 어떠세요?”
 난 씩, 웃으면서 강 차장에게 물었다.
 그에겐 그다지 좋은 권유일 리가 없다.
 다른 매체 기자들을 관리하기도 바쁠 터인데, 디지털투모로우에 두 번이나 시간을 뺏기게 되는 거니까.
 “아······ 그러시군요. 알겠습니다. 나중에 또 자리를 잡도록 하죠.”
 떨떠름한 표정을 애써 숨기며 강 차장이 대답했다.
 이후 우린 음식을 주문했고,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요즘 날씨부터 개인적인 일까지.
 “지난주에 제가 결혼 10주년이었는데 야근하는 바람에 와이프가 삐쳤었거든요. 그거 풀어 주느라 진땀 뺐습니다.”
 “아이고. 아내분이 많이 실망하셨겠네요.”
 강 차장의 부부 생활엔 1도 관심이 없었지만, 난 잠자코 호응했다.
 인간관계를 차근차근 쌓아 놔야만 이후 취재가 훨씬 간결해지기 때문이다.
 나 또한 강 차장에게 개인사를 드러내야 서로 간 친밀감과 신뢰감도 쌓일 터였다.
 “그러고 보니 주 기자님, 내일모레쯤에 아마 요금제 개편 자료 정식으로 나갈 것 같습니다.”
 한창 쓸데없는 대화만 주고받다가, 드디어 강 차장이 업무 소식을 털어놨다.
 그때 바지 주머니에 넣어 놓은 휴대전화가 진동했다.
 난 무시한 채 강 차장의 말을 이어 받았다.
 “아, 그래요?”
 “네. 기자님한테 제일 먼저 알려 드리는 겁니다. 뭐, 기자님은 이미 다 아시는 내용이긴 합니다만. 하하.”
 난 눈을 활짝 뜨고 강동우 차장을 바라봤다.
 “그렇군요. 그럼 그다음날쯤에 SBT도 요금제 개편 내보내는 건가요?”
 “네?”
 기습 공격. 강 차장의 휘둥그레진 눈과 내 눈이 맞닿았다.
 “그게 무슨······?”
 “SBT도 요금제 개편, 하잖아요. 알고 계실 텐데.”
 내 말을 듣고 강 차장이 급히 손사래를 쳤다.
 “아뇨, 아뇨. 그럴 리가요. 처음 듣는 얘깁니다. 아, SBT 쪽도 요금제 개편합니까?”
 연기일까, 아니면 진심일까.
 강 차장은 정말 솔깃한 정보라는 듯이 내게 반문해 왔다.
 뭐가 됐든 사실을 알아내는 건 이제부터다.
 “네. SBT도 요금제 개편을 하더군요. 신기하게도 말이죠, KGT가 내놓은 개편안과 흡사해요.”
 “그런가요?”
 “네. 기본 제공량만 약간 다를 뿐, 요금 단계 체계나 요금 가격 모두 같아요. 요금제 이름도 흡사하고. 그래서 미래부 쪽에 물어보니까, 웬걸. KGT 공식 발표도 전에 이미 인가 신청을 했더라구요?”
 강동우 차장의 눈이 좌우로 흔들렸다.
 ‘정말 알고 있던 건 아닌가 보네.’
 난 강 차장의 반응을 보고 판단했다.
 하지만 그가 몰랐다고 해서 KGT가 담합행위를 하지 않았단 근거는 되지 않는다.
 “제가 요즘 저희 업무로도 벅차서, 타사 신경을 못 썼는데. 그랬군요. SBT 쪽도 개편하는군요.”
 “이상하지 않나요? KGT가 SBT와 요금제 개편 정보를 공유할 리도 없는데. 거의 같은 시기에 개편안을 내놓는 게.”
 내 말에 강 차장은 고갤 끄덕였다.
 “그러네요. 제가 알기론 4년 전 시민 단체서 공정위에 고발한 후로 각 사 간의 정보 공유는 일절 없어졌습니다.”
 그때 공정위의 판결은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그럼에도 통신사들은 서로 몸을 사리게 됐단 얘기다.
 “만약, KGT, SBT, O플러스까지. 모두 동일한 요금 개편안을 내놓는다면······ 내부에 유출자가 있다고 봐야겠죠?”
 난 던진 낚싯대의 끝을 바라봤다.
 물 것인가, 아니면 뻔히 보이는 바늘에 코웃음 치며 지나갈 것인가.
 언론 홍보라는 일은 글을 쓰는 일보다도 능구렁이 같은 면모가 더 필요한 직종이다.
 알면서 모르는 척, 모르면서 아는 척.
 척척박사 짓을 잘해야 살아남고 성공할 수 있다.
 KGT 홍보실 차장급 인사라면, 내가 만만하게 볼 상대가 아니었다.
 “글쎄요. 저희도 일단은 미래부 쪽에 안은 제출하니까요. 이유를 특정할 순 없지요.”
 그렇게 돌렸나. 난 곧장 반박했다.
 “미래부는 그런 일을 할 이유가 없다던데요.”
 “실무진들이야 그럴 리가 없죠. 저희끼리만 하는 얘기지만, 윗분들끼리의 커넥션이란 게 있지 않겠습니까. 뭐 저희 같은 아래쪽에선 모를 일이죠. 하하. 이건 순전히 제 상상이라 기사로 쓰심 안 됩니다.”
 결국 ‘모른다’였다.
 그러면서도 질문의 본질은 쏙 대답하지 않는 강 차장의 능수능란함에 난 감탄했다.
 미래부 쪽으로 시선을 돌리게 한 다음, 유출자에 대한 답변은 자연스레 피한다.
 게다가 자신의 상상이라고 설명하며 논란이 될 커넥션 언급까지 방어해 낸다.
 “그럼 유출 쪽은······ 생각할 수 없다는 거군요.”
 나 또한 포기할 수 없어 한 번 더 물고 늘어졌다.
 강동우 차장은 여유롭고 완고하게 대답했다.
 “세상일에 절대란 건 없으니까요. 일단 알아보겠습니다만, 확인이 될지는 저도 잘 모르겠네요.”
 KGT 쪽에서 정말 조사할지도 의문이지만, 한다 해도 진실이 내 손에 떨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요리조리 피해 나가는 강 차장의 언변에, 난 더 캐묻는 걸 포기했다.
 만일 내가 경력이 오랜 기자라면, 강 차장에게 친근한 척 굴며 대놓고 기 싸움을 펼쳤을지 모른다.
 아쉽게도 지금의 난 그러기엔 경력도 나이도 적었다.
 하나 내겐, 그 두 가지와 상관없는 패기가 있었다.
 “어쨌든 강 차장님. 전 이거 기사로 낼 생각입니다.”
 “어떤 거요? ······ 음, SBT 요금제 개편요?”
 “다 묶어서요. KGT, SBT, O플러스 요금제 담합 의혹. 기본 구상은 이렇습니다.”
 당연히 강 차장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이야기다.
 아니, 선전포고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좋은 분위기를 형성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서, ‘까는 기사’를 쓰겠다고 당당하게 얘기한 거니까.
 “음, 주 기자님. 제가 뭐라 말하긴 그렇지만. 이 건은 좀 확실한 물증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지금까지 말씀하신 것만 들어 보면 명확한 부분은 없는 것 같구요. 일단 제가 요금 기획 쪽에 확인해 보겠습니다. 그 이후에 기사를 쓰시는 게 나을 것 같은데요.”
 강 차장의 어조는 굉장히 부드러웠지만, 그 말 속의 뼈는 날카로웠다.
 기사의 출고를 최대한 연기시키거나, 아예 막아 보겠다는 그 의도가 느껴졌다.
 ‘그러니까, 알아보고서 그런 일 없다는 답만 줄 거잖아.’
 난 최대한 자연스럽게 웃으며 물을 마셨다.
 “이 기사, 사실 다른 선배 기자하고 같이 준비 중이라서요. 그 선배가 오늘 내로 확증 잡아 오신다 했으니 믿어 봐야죠. 일단 말씀 감사합니다.”
 물론 거짓말이다.
 기문 선배는 이런 얘길 한 적이 없다.
 난 그저 강동우 차장의 가짜 호의를 불쾌하지 않게 거절하고 싶었을 뿐이다.
 이후 말수가 줄어든 강 차장을 상대로, 한동안 난 실없는 농담 따 먹길 했다.
 우리는 오후 1시가 되자마자 자리를 파했다.
 “주 기자님, 아무튼 오늘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모쪼록 저희 KGT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식당 문을 나선 후, 도로변에 선 강 차장은 갑자기 내 손을 붙잡았다.
 헤어지기 전에 하는 인사치레라고 하기엔, 적잖이 부담스런 태도였다.
 “아휴, 별말씀을요. 저야말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좋은 소식 있으면 연락 주시구요.”
 내가 화답하자 강 차장은 허리를 꾸벅 숙여 인사했다.
 이후 그는 KGT 쪽으로 몸을 돌려 걷기 시작했다.
 ‘급했나 보네.’
 난 강 차장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그동안 여러 홍보팀과 만나 봤지만, 이렇게 빨리 끝난 미팅은 없었다.
 대화가 더 이어지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일정을 끝냈기 때문이다.
 ‘아마도 대응책을 준비하러 가겠지.’
 대놓고 기사를 쓰겠다고 선언했으니, 저쪽도 손 놓고 앉아 있을 린 없다.
 그렇지만 어쩐지 그 대응이, 진실에 다가가는 데 도움이 되리란 생각이 들었다.
 “참, 휴대전화!”
 난 바지 주머니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강동우 차장과 이야기 중에 연락 왔던 게 기억난 것이다.
 [부재중 통화 ―김기문 선배]
 화면을 확인한 난, 곧 바로 기문 선배에게 전활 걸었다.
 몇 번의 착신음이 반복된 후에, 기문 선배가 전활 받았다.
 “아, 선배. 미팅 중이었습니다. 무슨 일이에요?”
 난 기문 선배에게 사과하며 차분히 물었다.
 그러자 흥분한 선배의 외침이 쏟아졌다.
 ―오! 주 후배! 잡았다네, 잡았다네!
 “네?”
 ―SBT랑 O플러스, 요금제 개편안 공지 잡았다네!
 “앗! 정말입니까? 잘하셨습니다. 선배!”
 소식을 들은 난 주먹을 쥐고 소리 없이 환호했다.
 ―그럼 곧장 기사 쓰겠는가? 주 후배! 지금 어딘가?
 “저 지금 광화문입니다. 채널K 본사 쪽이요.”
 ―아아, 거긴가. 그럼 KGT로 오게.
 “네, 알겠습니다. 바로 홈런 치러 가시죠!”
 
 
 # 7. 취재하지 않는 기자는 기자가 아니다
 
 대답 직후 난 바로 KGT 사옥으로 이동했다.
 걸어서 5분 정도의 거리였기에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1층 로비에 들어서자 날 기다리던 기문선배가 반겼다.
 우린 함께 기자실로 들어가 기사 작성을 시작했다.
 [통신3사, 동시에 요금제 바꾼다······ 요금↑ ―김기문 기자]
 [잇따른 요금제 개편······ “통신사 담합 의혹” ―주진형 기자]
 40분 뒤, 기문 선배와 내 기사는 포털 사이트에 전송됐다.
 기문 선배가 요금제를 중심으로 수치 자료를 비교한 기사라면, 난 담합에 초점을 맞추고 업계 관계자들이 총출동한 멘트 중심 기사를 썼다.
 특히 난 각 사 홍보 담당자들뿐만 아니라 시민 단체인 ‘참여연합’의 멘트를 추가했다.
 참여연합은 통신사들을 두 번 공정위에 제소한 단체다.
 [참여연합 고민영 국장은 “통신사들의 이 요금제 개편은 각 사 간의 동일한 부분이 많고, 시기가 지나치게 빨리 겹치는 만큼 담합 의혹이 크다”며 “자료 확인 후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는 기문 선배가 자료를 구하기 전, 내가 미리 따 놓은 멘트였다.
 미리 가지고 있던 통신사들의 보도 자료를 이용해서 말이다.
 내가 자리에 앉아 흐뭇한 얼굴로 노트북 모니터를 보고 있자, 기문 선배가 다가왔다.
 “여, 주 후배. 나가서 잠시 쉬지 않겠나?”
 기문 선배가 휴식을 권유한 이유를 난 잘 알고 있었다.
 메이버에 뜬 자신들의 기사. 보고 있으려니 가만히 앉아 있기엔 너무 뿌듯한 거다.
 어디 나가서 춤이라도 추고 싶은 거겠지.
 나도 기쁨을 한껏 음미하고 싶은 마음은 같았다.
 “어, 그러시죠.”
 난 기자실에 짐을 남겨 둔 채 기문 선배를 따라나섰다.
 승강기를 타고 1층으로 내려온 우린, 북적이는 로비를 지나 KGT 사내 카페로 들어갔다.
 “주 후배, 뭐 마시고 싶은가? 선배가 사 주겠네.”
 “그럼 사양 않고. 전 홍차로 하겠습니다.”
 “알았네.”
 기문 선배가 세상 밝은 얼굴로 주문하는 동안, 난 휴대전화로 기사의 조회 수를 확인했다.
 [잇따른 요금제 개편······ “통신사 담합 의혹” ―주진형 기자]
 [조회 수 6,477]
 기사가 출고된 지 이제 10여 분.
 그런데도 조회 수의 상승 속도가 심상치 않았다.
 “어떤가, 기사 상황은.”
 “아, 감사합니다.”
 어느새 주문한 음료 두 잔을 들고 온 기문 선배가 자리에 앉았다.
 난 재빨리 선배가 건네는 음료 잔을 받아들었다.
 “솔직히 엄청 좋습니다. 이 시간대에 벌써 6,000을 넘겼어요.”
 기사가 가장 많이 읽히는 시간대는 오전 출근/오후 퇴근 시간대다.
 그나마 독자들의 여유가 있었을 점심시간도 지난 지금.
 내 예상보다 더 빠르게 조회 수가 올라 있었다.
 “확실히 빠른 속도구만. 내 기사도 마찬가지네 주 후배. 아까 마지막으로 봤을 때만 해도 5,500대였다네.”
 기문 선배의 기사도 나 못지않게 빠른 속도로 조회 수가 오르는 모양이었다.
 “잘됐네요. 후후. 선배도 저도 거한 신고식 치룬 거 아닙니까.”
 “다 주 후배 덕분이지! 정말 고맙네!”
 “헤헤, 뭘요.”
 낯간지러운 기문 선배의 말에 난 부끄러웠다.
 명확히 따지자면 신입 시절 선배가 날 도와준 일들이 더 많았고, 그건 내 마음의 큰 빚이었다.
 “이직하고 나서, 처음으로 부장한테 엄청 칭찬받고 있다네! 이제 한시름 놓이는구만.”
 기문 선배가 이직한 곳은 전자뉴스 소속 온라인 매체인 ‘이뉴스’.
 실제론 별도의 팀이지만, 전자뉴스라는 간판을 지고 있는 곳이다.
 기문 선배는 현 이뉴스 편집국 차장을 맡고 있는 한 선배 기자의 도움으로 입사했다.
 아무래도 그 차장에 대해 그동안 면이 서지 않았던 모양이다.
 “진짜 축하드립니다. 선배. 앞으로도 종종 이렇게 공동 취재 했으면 좋겠네요.”
 축하하는 마음은 진심이지만, 공동 취재는 그냥 덧붙인 빈말이었다.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일뿐더러, 난 앞으로 다른 이와 특종을 나눠 내고 싶지 않았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주 후배. 이뉴스로 들어올 생각 없는가? 원한다면 내가 말 잘해 보겠네!”
 “넷? 흡.”
 갑작스런 제안에 놀란 나는 마시던 홍차를 셔츠에 흘렸다.
 내가 급히 남아 있는 물기를 털어 내고 기문 선배를 다시 바라봤다.
 “진심이네. 디지털투모로우처럼 미래 없는 곳보다야 징검다리로 이뉴스 정도면 괜찮지 않겠는가.”
 당연한 말씀이다.
 디지털투모로우라는 매체는 역시나 최하위 언론.
 업계 대우뿐만 아니라 연봉 대비 업무량도 살인적이다.
 반면 이뉴스로 이직한다면 난 우라까이 같은 쪽팔리는 짓이나 자잘한 기사 처리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될 터다.
 ‘좋긴 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난 기자질을 시작한 지 1년도 되지 않은 신입이다.
 내 기자로서의 실력이나 자질을 차치해 두고서라도, ‘점프업’을 할 만한 상황이 아니란 거다.
 1년도 채우지 않고 다른 매체로의 이직?
 다른 매체 기자들, 특히나 팀의 부장급들이 고운 시선을 보낼 리 만무하다.
 게다가 디지털투모로우 이윤철 대표.
 그가 날 별 탈 없이 보내 줄 것 같지도 않았다.
 “선배. 정말, 정말, 정말 고마운 말씀입니다······ 만. 아시잖습니까. 저 이제 7개월 된 기자란 거. 어디 이직할 만한 수준은 아직 아닙니다. 김정효 팀장께도 죄송스럽고요.”
 “흠흠. 그런가. 역시, 내 생각이 빨랐던 걸지도 모르지.”
 “그리고, 건방진 말일지도 모르지만, 전 제 힘만으로 점프업해 보고 싶습니다. 한번 제 손으로 올라가 보겠습니다.”
 그게 내 진심이었다.
 지금의 나는 얼마 전까지의 ‘디지털투모로우 주진형 기자’완 다르다.
 다른 기자들에겐 없는 특별한 기회가 매일매일 쏟아지고 있다.
 그 기회를 붙잡기 위해 지금처럼 뛰기만 해도 독보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
 “그래그래. 좋은 자세네 주 후배. 뭐 그래도 주 후배가 다시 내 직속 후배가 된다면 분명 좋을 것 같네. 나중에라도 생각 있으면 말하게! 물론 내가 이뉴스에 언제까지고 있을 것 같진 않지만 말이네 핫핫.”
 “하하. 그렇죠. 선배도 더 좋은 데로 가실 겁니다.”
 우린 그렇게 훈훈한 덕담을 나누며 차를 마셨다.
 요 근래 가장 여유로운 시간이었다.
 그렇게 통신사 요금제 기사를 낸 후 며칠간.
 내 이메일 목록엔 눈이 확 떠질 만한 자료가 들어오질 않았다.
 그다지 이상한 일은 아니다.
 이렇게 무난한 자료들만 쌓이는 게 일반적인 일상이었으니까.
 대형 보도 자료가 연달아 터지는 건 드문 일이다.
 “자, 자. 기자분들, 이거 마시면서 해.”
 오전, 디지털투모로우 사무실.
 이윤철 대표는 존대와 반말이 뒤섞인 특유의 말투로 기자들에게 비타민 음료를 나눠 줬다.
 평소 자기 골프 치러 갈 회사 돈은 있어도, 직원들 먹일 돈은 없다던 이 대표다.
 그랬던 그가 이러는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어제 KGT 광고를 따 왔기 때문이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내가 따 온 건 아니지.
 KGT 쪽에서 내게 전활 걸어 ‘광고를 넣고 싶다’고 했던 거니까.
 본래 광고와 같은 영업 얘기는 팀장급 이상에게 연락을 취했어야 한다.
 KGT가 나 같은 평기자에게 직접 광고 이야기를 꺼낸 건, 일종의 생색내기라 볼 수 있다.
 ‘우리가 너 때문에 광고를 넣는 거니까, 앞으로 잘 부탁한다.’
 그게 KGT 측의 속내다.
 어쨌든 광고 수주가 잘 성사됐는지, 대표의 기분이 요 근래 가장 좋아 보였다.
 “감사합니다.”
 난 감정 없이 대답하며 대표가 건넨 음료 병을 받았다.
 “우리 주진형 기자. 내가 진짜 믿고 있는 거 알지? 앞으로도 지금처럼만 해~”
 “아― 예.”
 무미건조하게 맞받아친 다음, 난 바로 모니터에 집중했다.
 이 대표의 저런 부담스런 행동들은 큰 감정 없이 무시해야 한다.
 저 사람의 마수에 허덕이다 도망친 기자가 내가 본 것만 세 명이다.
 괜히 좋은 감정을 품었다가, 노예가 되는 수가 있다.
 착실히 경력을 쌓기 전까진 정신을 단단히 잡고 가야 한다.
 “진형아. 잠깐 괜찮을까?”
 김정효 팀장이 날 불렀다.
 외신을 입력한 뒤 발제 기사를 쓰는 시간대라 다들 정신없는 와중이었다.
 “네, 팀장.”
 “할 말 있는데 잠깐, 밖으로.”
 ‘무슨 일이지?’
 난 사무실을 나가는 팀장의 뒷모습을 보며 빠르게 머릴 굴렸다.
 이렇게 바쁜 와중에 굳이 날 따로 불러 할 얘기란 게 있나.
 ‘내가 뭘 잘못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KGT 요금제 단독 보도, SBT―O 플러스 요금제 담합 의혹 기사까지.
 업계를 들썩이게 한 대형 사건을 터트렸고, 자잘하지만 단독 기사들도 몇 개씩 내놓았다.
 지금껏 혼날 만한 일보단 칭찬받을 일을 더 많이 한 게 사실이다.
 이 대표조차 반농담 식으로 나를 ‘디지털투모로우의 태양’이라 칭할 정도였으니까.
 ‘일단 가 보자.’
 생각해 봐야 알 도리가 없었다.
 난 빠르게 자리서 일어나 김 팀장의 뒤를 쫓았다.
 사무실 건물 뒤편에 있는 벤치. 팀장은 거기에 앉아 날 기다리고 있었다.
 “요즘 고생이 많다. 진형아.”
 김 팀장이 내게 캔 커피를 건네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닙니다.”
 “너 오고 나서 기자들도 많이 나가고 혼자 하느라 힘들었을 텐데, 잘해 주고 있어서 고맙다.”
 “예.”
 어쩐지 핵심은 뒤에 있을 것 같았다.
 “자, 이거.”
 김정효 팀장이 가슴팍에서 꺼낸 것은 흰 봉투였다.
 “······이건?”
 얼떨결에 받아 들긴 했지만, 이 봉투가 뭔지 알 수 없었다.
 난 김 팀장의 설명을 기다리며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이거, 네 인센티브다.”
 “인센티브, 입니까?”
 인센티브. 일종의 성과급이다.
 그 뜻은 알고 있지만, 이를 받는 이유는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기자들이 인센티브를 받을 때는 두 가지 정도다.
 하나, 직접 영업을 뛰어 광고나 콘퍼런스 참여를 받아 냈을 때.
 둘, 연말에 회사 방침에 따른 활동 성과급.
 한데 지금은 그 둘 다 아니었다.
 아직 1년도 안 된 내가 영업을 뛸 리도 없었거니와, 아직 연초다.
 활동 성과급도 말이 안 됐다.
 “네 기사 때문에 KGT 쪽에서 광고 넣었잖냐. 그쪽에서 콕 집어서 네 이름까지 얘기하더라. 내가 이 대표하고 얘기해서 네 인센티브로 20% 떼 왔다.”
 “팀장······.”
 “이번 광고는 네가 노력해서 따낸 거나 다름없어. 얼마 안 되니까 부담 가질 필요도 없고. 잘 받아서 쓰고 싶은 데 써라. 다만 다 보는 데서 주긴 뭐 해서 그냥 불러낸 거야.”
 “감사합니다.”
 “그래. 나중에 시간 되면 술이나 한잔 사고. 하하.”
 농담 섞인 김정효 팀장의 말에 내가 알았다며 진심으로 고갤 끄덕였다.
 자린고비 이윤철 대표와 싸워서 내 몫을 챙겨 준 사람이다.
 언제든 가능할 때에 보답하는 게 맞다.
 “그나저나, 우리 매체 사이트에 KGT 같은 대기업광고가 뜨는 건 처음이겠네.”
 김 팀장이 감회가 새롭다는 듯 중얼거렸다.
 “다른 애들도 너만큼만 하면 정말 소원이 없겠는데 말이야.”
 “뭐, 누가 문제 있습니까?”
 내친김에 김 팀장의 하소연이나 들어 줄 생각으로 내가 물었다.
 “너도 알다시피, 지금 우리 매체가 엉망이잖냐. 회사가 크려면 기자 양성을 해야 되는데, 들어오는 족족 얼마 못 버티고 나가니. 게다가 네 후임으로 인터넷에 영기를 넣으려고 했는데, 얘가 기사는 어느 정도 쓰는데 자꾸 사람을 못 만나겠다고 해.”
 박영기.
 디지털투모로우에 이제 들어온 지 한 달 된 신입 기자.
 기문 선배가 회사를 나간 뒤, 급히 뽑은 인재 중 한 명이다.
 본래 기문 선배 담당이었던 통신/모바일을 내가 물려받으면서, 공석이 된 인터넷 분야를 그에게 맡길 계획이었다.
 그런데 박영기 씨는 대인기피 증세를 호소하며 취재에 거부반응을 보여 왔다.
 “이 대표는 얘가 취재를 못 하니까 그냥 5개월 뒤 내보내라 하는데, 지금 우리 상황이 그러기 어려우니 문제지.”
 이 대표의 말은 박영기 씨가 수습을 떼고 정직원 계약을 맺는 5개월 뒤, 계약하지 않겠단 의미다.
 ‘취재하지 않는 기자는 기자가 아니다.’
 이는 김정효 팀장의 평소 말버릇이다.
 김 팀장 또한 박영기 씨가 맘에 들 리 만무하다.
 그럼에도 쉽게 내칠 생각을 못 하는 건, 현 디지털투모로우 편집국의 형편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디지털투모로우 편집국 소속 기자는 총 6명뿐이다.
 그중 평기자는 5명.
 취재 분야를 간신히 5개로 나눠 분담하고 있는데, 한 사람이라도 빠진다?
 ‘누군가의 업무가 가중될 건 뻔한 이치지. ······어?’
 내 눈이 커졌다. 이건 악재가 아니라 호재였다.
 “저한테 방법이 있습니다.”
 
 
 # 8. 오늘부터 나랑 다닐 겁니다
 
 내 말에 김정효 팀장이 궁금한 표정을 지었다.
 “방법이 있다고?”
 “네. 박영기 씨를 제 2진으로 넣는 겁니다.”
 한 취재 분야에 1진, 2진으로 담당자를 두 명 두는 것.
 사실 우리같이 작은 매체선 비효율적인 분류다.
 사람 수가 적기 때문에 각자 큼직한 일을 나눠 맡아야 했기 때문이다.
 “2진으로 넣은 다음 제 보도 자료 처리나 우라까이는 전담시키고, 대신 제가 인터넷까지 담당하겠습니다.”
 “뭐? 뭐 하러? 네 일만 늘어날 텐데. 통신 쪽도 이제 들어간 지 얼마 안 됐고.”
 “통신 쪽은 어느 정도 적응했습니다. 신고식 치른 덕분에 예전보다 대우도 좋구요. 인터넷 분야는 어차피 제가 해 왔던 거니까 딱히 부담스러운 것도 아닙니다.”
 “어, 그래도······.”
 김정효 팀장이 고민하듯 말끝을 흐렸다.
 분명 나를 걱정하는 모양새를 보여 주고 싶은 거겠지.
 이대로 내가 말한 대로 진행될 경우, 내 취재 분야가 두 배로 늘어난다.
 특히 IT업계서 가장 중요도가 높은 통신 분야와, 인터넷 분야다.
 본래라면 그걸 혼자서 처리할 수 있을 리 없다.
 하지만 지금의 나라면 가능하다.
 일주일 뒤에 발송되는 이메일을 볼 수 있으니까.
 ‘악재처럼 보이지만, 엄청난 호재다. 그만큼 두각을 나타낼 기횐 더 많아질 테니까.’
 IT업계의 심장과 얼굴, 그 두 분야를 모두 내가 맡는 다는 것.
 내가 쓸 수 있는 특종의 범위도 두 배가 된다는 의미다.
 게다가 보도 자료나 우라까이 작성 같은 귀찮은 일들, 모두 박영기 씨에게 떠넘길 수 있다.
 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다.
 “흐음, 진형아. 정말 괜찮겠어?”
 김 팀장이 확인하려는 듯이 한 번 더 내게 물었다.
 난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네. 괜찮습니다. 그리고 팀장. 가능하면 제가 한동안 박영기 씨 데리고 다녀 보겠습니다.”
 “어?”
 김 팀장이 안경을 고쳐 쓰며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괜히 짐만 되지 않겠어?”
 “음, 아뇨. 이것저것 일도 시키고, 업무 지시도 바로 하려면 데리고 다니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사실은 옆에 두고 철저하게 부려 먹을 생각이다.
 “그래, 알았다. 그건 내가 올라가서 이 대표한테 얘기해 볼게.”
 “감사합니다.”
 “감사하기는, 내가 고맙지. 네가 고생한 건, 나중에 내가 어떻게든 보답하마.”
 김정효 팀장의 보답한단 소린 빈말이 아닐 터.
 난 감사의 의미로 웃으며 고갤 끄덕였다.
 김 팀장이 먼저 사무실로 올라가고 난 뒤, 난 조심히 돈 봉투를 열었다.
 거기엔 5만 원권 지폐가 꽤 많이 담겨 있었다.
 ‘광고비의 20%라고 했지.’
 차분히 한 장씩 세어 보자, 총 20장이었다.
 100만 원.
 입이 자동적으로 벌어졌다.
 생각지도 못한 큰돈이었다.
 KGT선 500만 원짜리 광고를 신청한 모양이었다.
 “와······ 장난 아닌데.”
 기쁨에 웃음이 새어 나왔다.
 돈을 목적으로 하는 일은 아니었지만, 일한 대가가 주어진다는 건 기쁜 일이다.
 당장 돈이 필요한 일은 없었기에, 난 근처 은행 ATM에 들려 돈을 입금한 뒤 사무실로 올라갔다.
 뭐가 됐든 아직 할 일이 많았다.
 난 사무실 자리에 앉아 다시 기사 작성에 매진했다.
 “박영기 씨. 오늘부터 주진형 기자 따라다니면서 배우도록 해.”
 잠시 후 내가 발제 기사를 기사 작성기에 송고하자, 김정효 팀장이 발언했다.
 이 대표와는 이미 협의를 끝낸 모양이었다.
 박영기 씨는 의외라는 얼굴이었지만, 천천히 고갤 끄덕였다.
 [주진형 : 박영기 씨. 오늘부터 나랑 같이 다닐 겁니다. 조금 있다 나갈 거니까, 필요한 짐 챙기세요.]
 나는 곧장 사내 메신저 프로그램으로 영기 씨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박영기 : 네 알겠습니다.]
 답장은 바로 돌아왔다.
 난 영기 씨가 어느 정도 짐을 정리했을 때, 자리서 일어나 팀장에게 갔다.
 “팀장, 그럼 저랑 영기 씨는 일정 나가 보겠습니다.”
 “어어. 그래. 오늘 점심은 누구지?”
 김정효 팀장이 물어보는 건, 만날 대상이다.
 “네, 웨스트소프트 김신욱 팀장입니다.”
 본래 김신욱 팀장 단둘이 잡은 일정이었다.
 난 김 팀장에게 후배를 데려가겠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내 놓았다.
 “알았어. 잘 다녀와.”
 “네. 가자 영기 씨.”
 “넵.”
 난 뒤따라오는 박영기 씨와 함께 사무실로 나왔다.
 웨스트소프트의 김신욱 팀장과 만나기로 한 장소는 사무실이 위치한 여의도.
 약속 시간 또한 여유가 있었지만 일찍 나온 이유가 따로 있었다.
 나는 영기 씨를 사무실서 조금 떨어진 도로변으로 데려왔다.
 “영기 씨, 영기 씨 나이가 스물아홉이죠?”
 “네.”
 “알고 계실지 모르겠지만 전 스물일곱입니다. 영기 씨보다 나이가 어려요. 그래도 미안한데 앞으로 선배 노릇 해야 하니 말 놔도 될까요?”
 대부분의 회사들이 그러하듯, 기자업계도 군대와 비슷하다.
 나이가 아니라 입사 순으로 위아래가 정해지고 매체가 다르더라도 모두 선배, 후배다.
 물론 본인 입장에선 충분히 불쾌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 때문에 나도 먼저 양해를 구해 놓을 생각이었다.
 “네. 괜찮습니다. 말 편하게 해 주세요. 그냥 영기라고 부르셔도 됩니다. 헤헤.”
 “그럼 그렇게 할게.”
 속마음이야 어떻든 내뱉은 말을 책임져야 하는 건 본인이다.
 난 부담 없이 영기의 대답을 받아들였다.
 영기는 정말 괜찮은 건지, 실없이 웃음을 짓고 있었다.
 “팀장께 얘기 들었을지 모르겠지만, 영기 씬 앞으로 내 2진을 맡게 될 거야. 내가 통신/모바일, 인터넷/유통 담당이고. 왜 이렇게 됐는지 이유는 알지?”
 “네?”
 영기가 당황한 듯 반문했다.
 “영기 씨가 취재를 못 하고 있잖아. 대인기피증 있다며?”
 “아― 네. 맞아요.”
 나한텐 아무렇지 않게 말을 건네고 있는 이 사람이, 대인기피증이라니.
 사실 잘 믿겨지진 않았다.
 난 말을 이어 나갔다.
 “아무튼, 개인 사정이 뭐가 됐든 기자는 사람을 만나는 직업이야. 전화? 인터넷? 아무리 정보통신 기술이 발달하더라도 기자는 발로 뛰어야 돼.”
 유선으로는 얻을 수 없는 수많은 정보, 기업인들과의 친분 쌓기나 행사 참여.
 면대면으로 얼굴을 맞대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취재를 못 한다니 어쩔 수 없어. 저기 영기 씨, 기자 계속할 마음은 있는 거지?”
 “엣, 네, 네. 계속하고 싶습니다.”
 ‘왜인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기자를 하고 싶다 이거지.’
 나 또한, 광피리 같은 기자가 되고 싶단 목표가 있다.
 영기도 모종의 이유가 있는 거겠지. 굳이 캐묻진 않기로 했다.
 “그렇다면 일단은 날 잘 따라다니면서, 내가 시키는 일에 집중해 줘. 취재하는 부분에 대해선 강요하지 않을 테니까.”
 “네, 넵.”
 대인기피는 마음의 병이다.
 증상이 심하다면 나로선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
 하지만 영기는 적어도 생활이 불가할 정도의 기피 증세를 보이진 않았다.
 그렇다면 극복할 수 있다. 사람이 두렵다고 피하면 피할수록 증세만 심해질 뿐.
 “우선 지금 만날 사람은 웨스트소프트 김신욱 홍보팀장이야. 영기 씬 나와 김 팀장 대화를 잘 듣고 정보 보고 형태로 정리해 줘. 따로 녹음을 해도 좋아.”
 정보 보고는 기자들이 상사에게 취득한 정보를 제출하는 양식이다.
 “네, 알겠습니다.”
 난 영기에게 몇 가지 기본 사항을 숙지시킨 뒤, 약속 장소로 이동했다.
 여의도 국제금융로 식당가.
 난 김신욱 팀장이 미리 알려 준 두부 전문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두 분이신가요?”
 식당 카운터를 지나자 직원이 나를 맞았다.
 “아뇨. 세 명입니다. 김신욱으로 예약했을 겁니다.”
 직원이 예약 장부를 넘겨 보더니 이내 미소를 지었다.
 “아, 네. 예약자분 먼저 와서 기다리고 계세요. 안쪽으로 들어가시죠.”
 나와 영기는 직원의 안내에 따라 가게 안쪽의 방으로 향했다.
 미닫이문을 열자, 자리에 앉아 있던 김신욱 팀장이 일어서며 인사했다.
 “어, 주 기자님. 어서 오세요.”
 “아이고, 오랜만입니다~ 팀장님. 이쪽은 인터넷 2진 맡게 된 박영기 기자입니다.”
 내가 소개하자 영기가 쭈뼛거리며 앞으로 나섰다.
 “아, 안녕하세요. 디지털투모로우 박영기 기자입니다.”
 “오오, 그렇군요. 박 기자님 만나서 반갑습니다. 웨스트소프트 김신욱입니다.”
 김 팀장은 재빨리 명함을 영기에게 건넸다.
 이를 본 영기도 허둥지둥 명함을 꺼냈다.
 여유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영기에게선, 신입의 태가 줄줄 새어 나오고 있었다.
 “박 기자님은 새로 들어오신 건가요?”
 김신욱 팀장도 모르는 척할 수 없었는지 자연스럽게 질문했다.
 “네, 이제 한 달 정도 됐습니다.”
 아이고 저런. 내가 마음속으로 이마를 짚었다.
 기자는 너무 솔직할 필요가 없다.
 솔직하다고 칭찬받지도 못하고, 오히려 업무에 지장이 생길 때가 많으니까.
 “일단 자리에 앉으시죠. 식사는 제가 두부 정식으로 3인분 시켰는데 괜찮으신가요?”
 “저야 뭐든 좋죠. 하하.”
 “참, 주 기자님. 지난번에 기사 내 주셨던 거, 감사합니다.”
 김신욱 팀장이 이야기하는 건, ‘훔 인터넷 허브 개편’에 대한 기사였다.
 내가 일주일 뒤의 보도 자료를 처음 받기 시작한 날.
 그때 받았던 보도 자료이기도 하다.
 “뭘요. 그게 제 일인데요.”
 “아니 그런데 개편은 정말 어떻게 아신 겁니까? 훔 쪽에 아는 분이라도 계세요?”
 김신욱 팀장이 신기하다는 듯 물었다.
 그럴 만하다.
 훔 인터넷은 메이버, 내일, 게이트와 같은 포털 사이트.
 하지만 이용자 점유율은 정말 미비한 상태.
 1위인 메이버와 비교하자면 수십 배의 점유율 차이가 났다.
 그만큼 대중의 관심은 소원하다는 거다.
 이런 상황에 내가 보도 자료 보다 빠르게 기사를 써냈으니, 김 팀장으로선 묘할 터.
 내가 훔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거나 관계자를 알지 않고선 불가능하니까.
 “하하. 어쩌다가 알게 된 겁니다. 말씀하신 분도 주변에 기자가 있을 거라곤 생각 안 했을 거예요.”
 나는 마치 누군가로부터 엿들은 것처럼 김신욱 팀장에게 설명했다.
 대충 알겠다는 듯이 김 팀장이 연신 고갤 끄덕였다.
 “그렇군요. 아무튼 훔에 관심 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웨스트소프트는 밥집이라는 압축 해제 프로그램으로 유명한 업체였고, 나름 중견기업이다.
 하지만 포털 쪽은 역사가 짧은 신생이었고, 성과를 못 내고 있었다.
 홍보팀장으로서도 기자 한 명 한 명이 소중하겠지.
 그 덕에 소속 매체가 별로인 내게도 잘해 주는 거고.
 곧이어 식사가 나왔다.
 우린 밥을 먹으면서 계속 이야길 나눴다.
 늘 그렇듯이 김신욱 팀장의 개인사와 업무 내용이 뒤섞인 대화였다.
 그동안 영기는 조용히 식사만 할 뿐이었다.
 “으음. 그러고 보니 기자님. 요새 ‘내일’ 쪽이 많이 부산스럽더라구요.”
 ‘내일’은 국내 점유율 2위인 포털 사이트다.
 내일커뮤니케이션이 운영 중이다.
 “내일 쪽이요?”
 “네. 제 친구가 내일에 있는데, 뭔 일인지는 모르겠고 어쨌든 크게 개편하려는 거 같기도 하구요.”
 “그런가요? 한번 알아봐야겠네요.”
 꽤 유용한 정보였다.
 다음 취재할 거리를 얻게 된 거니까.
 김신욱 팀장 또한, 이렇게 떡밥을 던져서 내게 경쟁사의 상황을 확인하려는 심산일 터지.
 우린 20분가량 더 이야기한 뒤, 자리를 파했다.
 “그럼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기자님. 저희 훔 인터넷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아유,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식사를 마친 뒤, 식당 앞에서 우린 인사를 나눴다.
 김 팀장이 떠나고 난 뒤, 난 영기에게 입을 열었다.
 “영기 씨, 정보 보고 잘 쓸 수 있겠지?”
 “넷, 녹음해 놨어요.”
 영기가 휴대전화길 들어 보이며 말했다.
 “그래, 특히 ‘내일’이 부산스럽다는 부분, 빠트리지 말고 정리해.”
 “네넷, 알겠습니다.”
 “그리고, 영기 씨, 앞으론 6개월 지나 수습 뗐다고 거짓말해도 좋아. 어차피 경력 없다고 얘기해 봐야 무시당하는 것도 사실이고. 스스로 면도 안 설 테니까.”
 “아, 넵!”
 이건 나도 겪었던 문제다.
 당시 날 담당했던 기문 선배도 내게 같은 말을 해 줬었다.
 내가 영기를 데리고 이동하려는 그때, 휴대전화가 울렸다.
 “잠깐만, 영기 씨.”
 멈춰 선 난 바지 주머니서 휴대전활 꺼냈다.
 화면을 확인해 보니 전화가 아니라 이메일 수신 알림이었다.
 ‘이 시간에 새 메일인가? 뭐지?’
 휴대전화를 조작해 이메일 앱을 켜자, 눈이 휘둥그레질 제목이 표시됐다.
 [내일과 코코아의 합병식 초청장을 보내 드립니다 ―코코아]
 바로 다음 주에서 날아온 이메일이었다.
 
 <『미래에서 온 특종』 1-2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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