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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2018.02.09 조회 1,824 추천 19


 Chapter 1 쥐구멍에도‘언젠가’볕 든다
 
 
 
 
 
 매연에 찌든 서울의 밤하늘엔 별빛 한 점 보기 힘들다. 그나마 비라도 와 주면 잠시 잠깐 반짝이는 별들을 찾아볼 수 있겠지만 비가 잘 오지 않는 가을엔 그마저도 요원하다.
 
 빵, 빵!
 
 지나가는 자동차가 앞다투어 서로 가겠다고 경적을 울려 댄다. 경쟁이 치열한 현대 사회······ 이제는 이런 서울도 지겹다.
 
 “후우······.”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인도를 걸어가는 민준의 지쳐 버린 발걸음은 무겁기 그지없다.
 
 부리부리한 눈이며, 송충이같이 까만 눈썹. 다부진 체격과 함께 남자답게 잘생긴 얼굴이지만 남자도 관리가 필수인 현대에 허름해 보이는 옷은 그의 외모를 가리는 데 일조했다.
 
 눈을 현혹시키며 손님들을 유혹하는 네온사인들은 자신과 상관없었고, 마치 이 거대한 도시에 홀로 떨어진 기분이 갑작스레 들었다.
 
 발걸음을 옮겨 가던 민준은 주머니에 들어 있는 만 원짜리 한 장을 만지작거리며 고민에 빠졌다.
 
 ‘오늘은 뭘 먹지?’
 
 저번 주에 사 뒀던 찬거리가 모조리 떨어진 것을 아침에 확인했었다. 최대한 돈을 쪼개 시장도 봐야 한다.
 
 새벽부터 민준이 하는 일은 기사 식당의 설거지.
 
 이곳에서 처음 3개월은 죽을 정도로 힘들었다. 이제는 어느 정도 요령이 생겨 수월해졌지만 그래도 기사 식당의 새벽은 미칠 듯이 바쁘다. 대신 몸은 고되지만 수입은 제법 괜찮다.
 
 그렇게 폭풍 같은 새벽과 점심까지 기사 식당에서 보내고 나면 한숨 돌릴 새도 없이 패스트푸드점으로 향한다.
 
 패스트푸드점의 일마저 끝나면 어느새 밤이 되고, 힘 빠진 발걸음을 옥탑방으로 옮겨 가는 것이다.
 
 두 군데서 받는 월급은 이백이 넘는데 대부분이 노모의 병원비로 들어갔다. 그리고 각종 세금들을 처리하면 수중에 남는 돈은 약 50만원.
 
 대학 졸업 하고 2년 동안 모은 통장 잔고 500만원이 전 재산이었다.
 
 아, 하나 더 있다. 현재 살고 있는 옥탑방의 보증금 300만원.
 
 아르바이트하며 돈을 모으기란 정말 힘들다. 거기다 물가가 높은 서울에선 더더욱.
 
 실업률이 높아져 일자리 구하긴 어려운 데다가 회사도 학연과 지연, 혈연 따위를 따지는지라 유명 대학을 나오지 않은 이상 취업하기란 하늘에 별 따기다.
 
 그렇다고 산 입에 거미줄 칠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대학 졸업 한 뒤로도 계속해 온 것이 아르바이트다.
 
 대학 때도 월급을 쪼개 가며 생활비와 학비로 썼었다. 그때야 대학만 졸업하면 뭐든 될 것 같았지만 졸업한 후의 현실은 시궁창일 뿐이었다.
 
 해 뜨기 전에 일어나 해 질 때까지 일해도 돈은 모이지 않았다. 혼자 산다면 그나마 조금 더 모았겠지만 혼자 된 몸으로 자신을 이때까지 키워 준 병든 노모까지 모시는 터라 통장이 마이너스가 안 되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삐리리릭-
 
 호주머니에 넣어 둔 핸드폰이 울렸다.
 
 요즘 최신 유행곡이라도 울려야 정상이겠지만 민준의 핸드폰은 기본적으로 제공되는 기계음이다. 요즘 노래를 언제 들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최신 유행곡이 뭔지 알아야 핸드폰에 저장이라도 하지. 뭐, 가장 큰 이유는 핸드폰에 넣는 벨소리마저 사치라 느꼈기 때문이겠지만.
 
 거기다 발신자 표시도 없다.
 
 “여보세요?”
 
 “민준이냐!”
 
 목소리로 보아 자신의 절친한 친구이자 대학 동창생인 현철이다.
 
 한참 답답해 하고 있었기 때문인지 자신도 모르게 말투에 가시가 돋쳤다.
 
 “누구한테 걸었기에 확인하는데?”
 
 “뭐냐? 무슨 일 있어?”
 
 괜히 친구에게 짜증 부렸나 싶어 민준의 목소리가 조금은 수그러들었다.
 
 “아냐. 그냥 좀 답답해서 그래.”
 
 “그래? 그럼 다행이고. 그나저나 너 부업해 볼 생각 없냐?”
 
 부업이라는 말에 민준의 귀가 쫑긋했다.
 
 “당연히 돈 되는 일이라면 마다하지 않지!”
 
 “크크, 그럴 줄 알았다. 딴 건 아니고 아레나 월드라고 아냐?”
 
 “아레나 월드?”
 
 민준의 되물음에 현철은 그럼 그렇지 하는 말투로 이야기를 이어 갔다.
 
 “가상 현실 게임 있잖냐. 그거 회사에서 게임 머니를 현금으로 환전해 준단다. 일 골드에 천 원이라던가? 무튼 담주에 오픈인데 요즘 괜찮은 부업으로 한창 뜨고 있거든.”
 
 “게임으로 돈을 벌어? 아니, 그거야 옛날부터 그랬으니 그렇다 치자. 그럼 게임 머니를 되사면 게임 회사는 뭐 먹고사는데?”
 
 솔직히 궁금했다. 유저끼리 현금 거래는 이해가 가지만 자신들이 만든 게임 머니를 도로 산다니?
 
 현철은 민준의 놀란 물음에 낄낄거리며 웃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어. 근데 지들도 생각이 있으니 그렇게 하는 거겠지. 다만 월 사용료가 좀 비싸더라.”
 
 “얼만데?”
 
 “삼십 만원.”
 
 민준은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월 30만원이라면 유저 1만 명만 이용한다 해도 30억이다. 단순한 산수 계산이겠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아니, 솔직히 게임 머니를 현금으로 환산해 준다면 1만 명은 우습게 넘으리라.
 
 “혹시 낚시 아냐? 그렇게 유저를 낚고 서버 닫는다거나 그러는 거 아니냐고.”
 
 “글쎄다. S사에서 후원하는 거니까 믿을 만하겠지?”
 
 외국에서 더 유명한 탄탄한 S사가 후원한단다. 그 말에 민준은 일말의 의심도 거두게 됐다.
 
 보도블록을 터덜터덜 걸어가던 발걸음도 어느새 멈추고 현철과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럼 삼십 만원만 있음 되는 거야?”
 
 “그럴 리가 있냐? 일단 게임기도 있어야지. 그런데 이것 가격도 좀 비싸다 야.”
 
 비싸다는 말에 민준은 게임기가 비싸면 얼마나 하랴 싶어 현철에게 물었다.
 
 “제까짓 게임기의 대여료가 비싸 봐야 얼마나 하겠어? 얼만데?”
 
 “백.”
 
 “······설마 뒤에 ‘원’만 붙는 건 아니지? 그치? 뒤에 붙는 게 ‘만원’이라는 소리지?”
 
 “응.”
 
 “게임기 가격이 백만 원이라고?!”
 
 게임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솔깃했던 민준은 이젠 놀라는 일도 지쳐 버렸다.
 
 잠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돈부터 헤아려 보았다.
 
 당장 내일 월세도 내야 하고 각종 공과금들도 내야 한다. 월급은 보름 뒤였기에 기기값 100만 원이라면 당장 은행에서 인출해야 될 판이다.
 
 민준은 자신만의 생활 철칙이 있었다.
 
 ‘적어도 내 손에 들어온 돈은 나가지 말자.’가 그것이다. 그런 철칙이 있었기에 한 달에 1, 20만 원씩이나마 저금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철칙을 가지고 있기에 당연히 혹했던 마음이 싹 달아나 버렸다.
 
 “나 안 해. 너 혼자 해라.”
 
 “자식 단호하게 안 한다 그러네? 좀 생각하는 척이라도 하지. 너도 사정이 있으니,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뭐. 나중에라도 생각 바뀌면 연락해라. 아무래도 혼자보다 여럿이 함께 하는 게 레벨 업이나 돈을 모으는 게 빠를 것 같아서 그런 거니까.”
 
 현철의 목소리에는 정말 아깝다는 아쉬움이 흠뻑 묻어 있었다.
 
 괜스레 미안해진 민준은 현철에게 툭 쏘아붙였다.
 
 “너나 열심히 해 인마.”
 
 “그려, 담에 술이나 한잔 하자.”
 
 “오냐.”
 
 힘없이 전화를 끊은 민준은 하늘을 쳐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세상은 돈 없고, 빽 없는 자의 편은 절대 아니었기에 새삼스레 혼자라 느껴졌다.
 
 자신의 보금자리인 옥탑방으로 향하는 민준의 축 처진 어깨 위로 현란한 네온사인의 빛이 아프게 내려앉았다.
 
 
 
 * * *
 
 
 
 삐삐삑- 삐삐삑-
 
 세상에서 가장 듣기 싫은 소리를 말해 보라면 누구나 할 것 없이 첫손에 꼽는 것이 바로 알람 소리일 것이다.
 
 아무리 부지런한 민준이라도 다를 바 없다.
 
 책상에 엎드려 잠이 들었던 민준은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더듬어 빽빽거리는 시계를 껐다.
 
 올라가지 않는 눈꺼풀을 가까스로 들어 올린 다음 시간을 확인했다.
 
 아직 별도 달도 사라지지 않은 새벽 4시.
 
 시간을 확인한 민준은 우두둑 소리를 내는 허리를 펴고 의자에서 엉덩이를 뗐다.
 
 “후, 오늘도 힘내 볼까?”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자 아직도 해는 떠오르지 않았고 간밤 불야성을 이루던 거대한 도시도 일부를 제외하고는 잠들어 있었다.
 
 여름이 물러간 가을이라 날씨는 쌀쌀했다.
 
 씻기 위해 수돗가로 걸어가 수도꼭지를 열자 얼음장 같은 차가운 물이 쏟아졌다.
 
 차가운 물 때문에 깨질 것 같은 머리와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지는 손. ‘으흐흐’ 하는 소리가 자신도 모르게 입 밖으로 튀어 나왔다.
 
 머리를 감고 세수, 면도까지 마쳤지만 아직도 사위는 어두컴컴했다.
 
 기사 식당이 집과 멀지 않은 곳에 위치했기에 걸어가도 그만이었다.
 
 아직 해도 뜨지 않았는데 책가방을 메고 축 처진 걸음으로 걸어가는 아이들을 보자 자신도 모르게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얼은 손을 호호 불어 가며 자신이 일하는 가게로 뛰어가던 민준에게 누군가가 따라붙었다.
 
 같이 일하는 동생 강욱이다.
 
 “형!”
 
 “어? 강욱이냐? 춥다, 얼른 들어가자.”
 
 반갑게 인사하는 강욱의 어깨에 자신의 팔을 걸친 민준은 날씨가 추웠기에 성큼성큼 뛰듯이 가게로 들어섰다.
 
 와글와글.
 
 문을 열자 후끈한 열기와 함께 요란한 소음이 확 터져 나왔다.
 
 오늘도 가게는 만원이다.
 
 “휘유, 오늘도 피똥 싸겠네요?”
 
 활기찬 강욱이 가게를 둘러보며 휘파람을 불었다.
 
 강욱은 민준과는 다르게 제법 귀공자풍의 얼굴이다.
 
 거기다 귀걸이와 목걸이, 시계는 꽤 비싸 보였다.
 
 그렇다고 민준이 빈티난다는 말은 또 아니지만 그만큼 강욱이 꾸미고 다닌다는 소리다.
 
 동그스름하게 살이 오른 강욱의 볼은 고생하지 않고 컸음 직했는데 의외로 이런 힘든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런다고 편해지냐? 얼른 들어가자!”
 
 강욱의 엄살에 민준은 그의 등을 소리 나게 한 대 때리고는 한창 바쁜 주방으로 들어섰다.
 
 가게가 초만원인데 주방은 오죽하랴? 주방은 그야말로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민준과 강욱을 발견한 아주머니가 반색하며 그들을 잡아끌었다.
 
 “민준이구나! 어유, 강욱이도 잘 왔다. 얼른 옷부터 갈아입어라.”
 
 그렇게 민준은 고된 새벽을 시작했다.
 
 지글지글, 달그락달그락.
 
 “이모! 제육덮밥 둘요!”
 
 “이모! 만두국 셋!”
 
 주방은 설거지 하는 소리와 주문하는 소리. 거기다 손님들의 시끌벅적한 잡담 소리가 묘하게 하모니를 이루었다.
 
 그 와중에 설거지를 하던 강욱이 민준에게 넌지시 말을 걸었다.
 
 “형, 아레나 월드라고 알아요?”
 
 아레나 월드? 어젯밤 현철이 전화까지 걸어 말하던 그 게임 아니던가. 그 게임이라면 돈과 관련됐었기에 물론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게임 머니를 현금으로 바꿔 준다는 그 게임 말야?”
 
 “어! 짠돌이 형이 그 게임도 알아요?”
 
 평소 어떻게 보였으면 이런 놀란 물음이 되돌아올까.
 
 씁쓸하게 웃은 민준은 설거지 하던 대야의 물을 손으로 조금 떠내 강욱에게 뿌려 버렸다.
 
 “으엑! 형 이러기에요?!”
 
 앗 뜨거라 물을 피한 강욱이 눈을 흘겼다.
 
 눈을 흘기거나 말거나 민준은 묵묵히 그릇을 닦으며 한마디 내뱉었다. 거기다 턱을 살짝 들어 강욱의 뒤편에 주의까지 주었다.
 
 “시답잖은 소리 말고 용건이나 말해, 인마.”
 
 민준의 행동에 강욱이 슬며시 돌아보니 사장 아주머니의 눈초리가 심상찮다.
 
 어쩐지 뒤통수가 따갑더라니.
 
 강욱은 다시 그릇을 열심히 닦으며 민준에게 작게 소곤거렸다.
 
 “그 게임 제법 괜찮겠던데요? 일단 게임 회사에서 골드를 사니까 시세는 고정이잖아요.”
 
 “무슨 말야?”
 
 “어휴, 형도 참.”
 
 답답해 하는 강욱에게 민준이 다시금 물을 뿌릴 자세를 취했다. 그러자 강욱은 얼른 자세한 설명을 시작했다.
 
 “자자, 제가 게임 회사에요. 제가 일 골드를 천 원에 산다고 쳐요. 형은 좋은 무기를 사기 위해 골드가 필요해요. 그런데 게임 회사는 골드를 사기만 하고 팔진 않아요. 그럼 당연히 필요한 골드를 유저끼리 거래하게 되는데 골드를 파는 사람은 일 골드에 천 원 이상에 파는 게 당연하지 않겠어요?”
 
 그릇을 씻으며 강욱의 이야기에 집중한 민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시세는 당연히 일 골드에 천 원 이하로는 떨어지지 않는단 거죠. 저도 담주부턴 그거 해 보려고요.”
 
 “여긴 그만두고?”
 
 “아뇨. 다른 곳 아르바이트만 그만두려고요. 여긴 보수도 괜찮은 편이라 그만두긴 아깝네요. 거기다 게임하는 시간도 쪼개려면 차라리 새벽에 일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고생 없이 컸을 것 같은 강욱도 다른 곳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나 보다.
 
 “넌 하고 다니는 꼴은 부잣집 아들인데 꽤 고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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