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함
뒤로가기버튼 농업 혁명

1화

2018.02.09 조회 4,055 추천 48


 프롤로그
 
 
 
 
 
 많은 사람들이 북적북적 발을 놀리고 있는 어느 거리. 큰 건물에 부착된 거대 TV의 화면이 번쩍거리며 현실감 있는 홀로그램 영상을 3D의 형태로 쏟아 냈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 발 벗고 노력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고, 이미 꿈을 이룬 사람도 존재할 것입니다. 또한 아직 꿈이 무엇인지 모르는 분들도 분명 있겠죠.]
 
 
 
 뒤에 날개를 단, 마치 팅커벨처럼 귀여운 요정의 모습을 한 여성이 말을 끝내며 씨익 웃어 보였다.
 
 이어 요정이 크게 손을 휘젓자 영상이 뒤바뀌었다.
 
 
 
 [-우와아아아아-!]
 
 
 
 이어 나오는 건 마치 중세 시대의 기사처럼 검과 금속 갑옷을 착용한 남자가 사방으로 검을 휘저으며 눈앞에 등장한 돼지 머리의 몬스터를 도륙하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뒤이어 나타난 커다란 몸집의 몬스터에 갑옷을 착용한 남자가 흠칫했다.
 
 그러자 뒤에서 그를 서포트하듯이 지팡이와 활을 쥐고 있던 이들이 화려한 각종 마법과 노련한 활 솜씨를 뽐냈다.
 
 그것은 대전투의 서막이었다.
 
 보통의 남자들이라면 피가 절로 끓어오를 만한 장면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 숨 막히는 영상은 금방 끝이 났다.
 
 
 
 [-캉캉캉! 사각. 사각. 팍팍팍- 포옹!]
 
 
 
 전투의 영상이 끝난 다음에는 제법 큰 도시의 모습이 비쳤다.
 
 모루에 망치질을 하거나 약물을 섞는 이들, 그리고 요리와 낚시 등의 각종 생활에 관련된 활동들이 아기자기하게 펼쳐졌다.
 
 “흐아아암. 요즘 세상 차- 암 좋아졌네.”
 
 시내를 걷던 사람들은 가던 길을 멈추고 영상을 흥미롭게 바라봤다.
 
 하지만 그런 영상이 시시하다는 듯 입을 쩍 벌리며 하품하는 남자도 있었다.
 
 남자의 행색은 특이했다.
 
 평범해 보이는 주변 사람들과는 다르게 유난히 톡톡 튀는 허름한 옷가지에는 군데군데 흙이 묻어 있었다.
 
 거기다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지 퀴퀴한 거름 냄새가 스멀스멀 흘러나왔기에 그의 주변에 있던 이들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러섰다.
 
 “별. 평생 똥 안 싸는 놈들처럼 저런데?”
 
 사내는 남들이 눈살을 찌푸리거나, 말거나 상관없다는 듯이 근질거리는 등을 긁적여 댔다.
 
 그러면서 뒤바뀌는 영상을 슬그머니 쳐다보던 사내의 눈이 툭 튀어나올 듯이 불거졌다.
 
 
 
 [-꼬꼬꼭! 꼬끼오-! 왈왈!]
 
 짧게 소개된 생활 부분의 영상이었지만 사내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농장을 활보하는 가축들과 그 농장 속에서 자신과 똑 닮은 모습으로 풍요롭게도 자란 작물들을 수확하는 어느 남자의 모습.
 
 이제는 찾아보기 힘든 진정한 농사꾼의 모습에 사내가 놀라고 있는 사이, 영상은 다시금 바뀌었다.
 
 처음의 요정은 요염한 모습으로 나타나 손을 휘적휘적 그으며 한 문단의 글씨를 새겨 넣었다.
 
 
 
 [-모든 꿈을 위한 세계. 가상현실 게임 ‘드림’에서 그 꿈을 펼쳐 보세요!]
 
 1장. 드림
 
 “거참. 현실에서나 가상현실에서나 농사는 비인기 직업이라니.”
 
 전투나 여타의 생활 직업군들의 모습이 나올 때는 눈을 반짝이던 사람들이 농사와 관련된 영상이 띄워지자 시큰둥해졌다.
 
 그러면서 빨리 넘기라고 지껄여 대니, 이를 지켜보던 사내는 푸념하고 말았다.
 
 사내의 이름은 최춘삼.
 
 대한민국의 건장한 24살의 건아로 군대도 다녀왔다.
 
 현재 직업은 농부.
 
 군대 생활을 하던 중 농부였던 선임의 말에 홀라당 넘어가서는 전역 후 다니던 학교도 휴학하고 귀농한 이였다.
 
 하지만 농부는 먹고살기에 썩 좋은 직업이 아니었다.
 
 최근에 와서는 곡식에서부터 싱싱한 채소까지 다른 나라에서 대부분 수입해 오고 있었다.
 
 그런데 무엇하러 굳이 비싼 돈을 들여 가며 국산 농산물을 사려 들겠는가?
 
 물론 과거에는 국산 쌀이 더 맛있다는 이유로 잘 팔리기도 했었다지만 이제는 외국산 쌀도 상향 평준화된 상태였다.
 
 뭣보다 쌌다.
 
 덕분에 현대의 농부는 그리 많은 돈을 벌지 못한다. 더욱이 춘삼은 귀농한 지 약 2년밖에 되지 않은 초짜 중의 초짜 농부였으니 그 정도는 더욱 심했다.
 
 온실이나 비닐하우스 등 건물의 도움 없이도 잘 자라는 상추나 감자 같은 작물들은 이미 한 번씩 다 재배해 본 경험이 있었다. 물론 돈은 그렇게까지 많이 벌지는 못했다.
 
 2년 동안 귀농하면서 벌어들인 수입이 약 2천만 원.
 
 어쩌면 많아 보일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하나 생각해야 할 게 있는데, 이 2천만 원이라는 돈은 2년 동안 번 수입 전체를 통틀어서 말한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여기에서 농사에 사용했던 농기구나 모판, 작물의 종자와 거름 등등의 지출을 제하자면 실제로 벌어들인 돈은 거의 반 토막이 난다.
 
 그렇게 계산하면 대충 순수익은 1천만 원 정도.
 
 1년 동안 500만 원을 벌어들였다는 소리다.
 
 “으음······ 장난하냐?”
 
 편의점이나 음식점 알바를 뛰어도 1년에 500만 원은 더 벌고, 오히려 일도 농사보다 쉬웠을 것이다.
 
 “오랜만에 선임 얼굴 좀 뵙고 싶네.”
 
 새삼스럽지만 자신에게 귀농의 꿈을 싹 틔우게 했던 장본인인 선임 최성룡의 얼굴을 떠올린 춘삼이 이를 바득바득 갈아붙였다.
 
 최성룡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춘삼을 꾀었다. 농자천하지대본이니, 땀의 결실이니, 노력한 자가 승리하는 남자의 직업이니 뭐니 하는 말을 함께 복무했던 1년 내내 문자 그대로 ‘세뇌’를 시켰다.
 
 그런 꼬임에 춘삼이 넘어간 것이고 말이다.
 
 물론 춘삼은 자신이 농부의 모습을 하고 있고, 농사를 짓고 있는 현실이 그렇게 싫은 것만은 아니었다.
 
 도리어 뿌린 만큼 거둔다는 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본래 그렇지 않은 세상이지 않은가.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죽도록 노력해도 벌어들이는 돈은 야간 편의점 알바들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못 버니 얼마나 배알이 뒤틀리겠는가?
 
 게다가 이제 슬슬 부모님께서도 헛짓거리 집어치우고 학교에 복학하라고 압박하시는 실정이었다.
 
 아마도 간신히 짤막하게나 부치고 있던 용돈이 끊겨서일 것이리라 생각하며, 춘삼은 한숨을 푹푹 내쉬다가 문득 아까 보았던 게임 광고를 떠올렸다.
 
 “기분 전환이나 해 볼까······.”
 
 소싯적부터 온라인 게임이라고 하면 사족을 못 쓰던 춘삼이었다.
 
 그나마 군대에 가서 사람이 되어 나온 것이지, 군대도 안 갔다면 지금쯤 방구석 폐인이 됐을 거다.
 
 물론 귀농한 뒤에는 게임에 거의 손대지 않았다. 논일과 밭일은 게임을 하면서 설렁설렁할 수 있을 만큼 녹록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농사일이 게임만큼 즐겁기도 했고 말이다.
 
 그래도 요즘에는 귀농 2년 차여서 그런지 조금은 시간이 남는 참이었다.
 
 어쩌면 최성룡의 말처럼 춘삼은 농사일에 재능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춘삼은 곧 결심했다.
 
 시내 한편에 자리 잡고 있는 PC방 내부로 들어선 춘삼은 북적거리는 학생들을 뚫고 컴퓨터 자리에 앉아서 드림에 대한 정보를 검색해 보았다.
 
 “끄응······ 무슨 게임기 가격이 저러냐.”
 
 드림의 홈페이지에 접속한 춘삼의 표정은 시꺼멓게 죽어 버렸다.
 
 그 이유는 바로 돈 때문이었다.
 
 드림이라 불리는 최초의 가상현실 게임을 플레이하기 위해서는 ‘캡슐’이라고 하는 게임기가 필요했다. 그런데 이 캡슐의 가장 저렴한 버전도 자그마치 300만 원이라는 거금을 자랑했다.
 
 게다가 출시된 지 얼마 안 된 가상현실 게임답게 인기는 당연히 최고조에 육박해서, 300만 원짜리 캡슐의 물량도 지금 춘삼이 바라보고 있는 동안 빠른 속도로 소모되고 있었다.
 
 춘삼은 조금이라도 돈을 아끼기 위해 중고 사이트를 찾았다.
 
 물론 매물은 없었다.
 
 정품도 불티나게 팔려 나가고 있는 실정인데 캡슐이 중고 매물로 나올 턱이 없었다.
 
 “해 보고는 싶은데, 그렇다고 300만 원이라는 거금을 덥석 쓸 수도 없으니, 이거야 원······.”
 
 고민하는 춘삼의 시야에 인파로 북적거리는 PC방 한편이 보였다.
 
 춘삼은 그곳을 뚫어지라 바라봤다.
 
 정확히 따지자면 춘삼이 보는 것은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이 신기해 하는, 관 같은 생김새의 기계였다.
 
 그건 바로 춘삼이 방금까지 검색해 보았던 가상현실 게임, 드림의 접속기인 캡슐이었다.
 
 춘삼은 캡슐이 PC방에 설치되어 있다는 것을 지금에서야 눈치챘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PC방이라는 것 자체가 게임을 할 수 있게 해 주는 곳이었으니 가상현실 게임의 캡슐도 도입되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일단 PC방에 설치되어 있는 캡슐은 총 10개로, 그중 8개는 동작 램프를 빛내며 돌아가는 중이었기에 현재 남은 자리는 딱 2개라는 소리였다.
 
 춘삼이 재빨리 카운터로 가서 문의하자, 제법 풋풋해 보이는 젊은 여성 직원이 활짝 웃으며 친절하게 답변해 주었다.
 
 “캡슐의 이용 시간은 1시간에 만 원입니다. 1시간 단위로만 이용이 가능하시고 게임 속에서 시간을 연장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현재 남는 자리는 2개인데요.”
 
 “주세요. 일단 2시간 정도만 할게요.”
 
 시간당 만 원이면 PC의 이용 금액보다 무려 5배나 더 비싼 금액이었지만 춘삼은 주저하지 않았다.
 
 300만 원짜리 캡슐을 덥석 사는 것보다는 2만 원을 들여 적어도 드림이라는 게임을 한 번이라도 체험해 보는 게 더 현명한 선택이었다.
 
 고작 2시간을 플레이하는 데 배춧잎 2장을 써야 하는 것이 다소 아깝기는 했지만 해 보고 싶은 마음이 더욱 간절했기에 춘삼은 곧바로 2만 원을 지불했다.
 
 “여기. 다중용 머신이라고 하는 기계를 착용하시고 캡슐에 오르시면 돼요.”
 
 춘삼은 접속할 때 필요하다는 기계를 알바생에게 건네받아 손목에 착용했다.
 
 이어 춘삼이 캡슐에 들어가 뚜껑을 닫자 바깥에서 들리던 시끌벅적한 소리가 차단되었다.
 
 그다음 알바생에게 들었던 대로 캡슐의 한편에 놓여 있는 ‘스타트’라는 초록 색깔의 스위치를 누르자 춘삼의 눈앞에 홀로그램 알림창이 띄워졌다.
 
 [-가상현실 게임 드림에 접속하기를 희망하십니까? 수락 시 현재 사용자님에게 부여되었던 시간이 소모됩니다. -현재 사용 가능 시간 120분.]
 
 
 
 “당연히 접속해야지.”
 
 춘삼이 접속의 뜻을 밝혀 오자 이어 포옹-! 하는 소리와 함께 광고 영상에 등장했던 쪼그마하면서도 도도한 요정이 헤실거리며 등장했다.
 
 아마도 이 게임의 마스코트이자 캐릭터 생성에 도움을 주는 AI인 듯했다.
 
 

이용약관 유료이용약관 개인정보처리방침 청소년보호정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