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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경험

2018.03.01 조회 6,236 추천 66


 죽을 각오를 했던 것은 아니다. 그냥 삶의 의욕을 잃었을 뿐이다.
 ‘의욕이란 것이 있기나 했을까?’
 죽지 못해서 산다는 의식조차 없었다. 맞는 것이 아프고 두렵다. 배를 곯는 것이 고통스러웠다.
 주면 주는 대로 먹고 때리면 때리는 대로 맞았다. 넋 놓고 맞다가 죽은 애들도 있다. 요령껏, 조금이라도 덜 아프게 맞는 것. 그런데도 오지랖 넓은 짓을 했다.
 ‘아마도, 그러다 죽었나 보다.’
 분명히 그랬을 것이다.
 이런 황당한 생각을 하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조금 웃기는 일이다.
 호되게 맞았다. 죽을 지경으로 맞았다.
 어른 여럿이 들러붙어 때렸다.
 나 혼자서는 별다른 대책도 없었다. 몸은 거의 다 자란 고등학생이라고 하더라도. 그런 다음 버려지다시피 했다.
 ‘그랬는데!’
 분명히 그랬는데 깨어났다. 그리고 문제가 생겼다.
 분명히 그렇게 두들겨 맞아 내팽개쳐진 김영호가 분명한데.
 누구의 자식인지도 모른 채 고아원으로 보내진 김영호가 분명한데.
 ‘그런데 왜 머릿속은 내가 김영호이기도 하지만 정문현이라고 의식을 할까?’
 정체성에 혼란이 온 것이다. 자기 몸인 것 같으면서도 남의 몸 같은 이 기분은 도대체 뭘까?
 ‘분명히 김영호인 것 같은데 왜 스스로는 정문현도 맞다고 의식하는 것일까?’
 버려지다시피 했다는 말은 먹을 것을 주지도 않고, 깨어나든 말든 신경도 안 쓴다는 뜻이다.
 보육원에서 영호의 위치가 고작 그런 정도였다.
 갓난아기 때부터 이런 취급을 받으며 자랐다.
 보육원 구석방의 한쪽 구석에, 때에 찌든 낡은 이불 하나 덮어 놓았을 뿐이었다.
 ‘그나마 이불은 애들이 덮어 준 것이겠지.’
 멍하니 천장만 쳐다보았다.
 김영호와 정문현, 두 사람의 기억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것 같았다.
 팽팽하게 맞선다고 해서 대결 구도라는 뜻은 아니다.
 김영호도 그 자신이고 정문현도 하나 모자람 없는 본인이라는 생각 때문에 황당한 기분을 느끼는 것일 뿐이다.
 김영호.
 고등학교 2학년.
 갓난아기 때 버려져 부모를 전혀 알 수 없는 고아.
 의욕도 별로 없고 생각도 별로 없는 녀석.
 거기에 더해 특별한 능력도 없는 놈.
 앞날에 대한 생각도 없다.
 그저 오늘 하루 덜 배고프고 덜 맞으면 그만인 태평한 놈이다.
 조만간 보육원을 나서야 하는데 그에 대한 생각조차 전혀 없이 오늘 하루만을 살아가는 하루살이 같은 녀석이다.
 멍텅구리다.
 정문현.
 명문 대학을 졸업하고 잘나가는 회사를 다니며 그럭저럭 살다가 이사로 여러 해 근무했었다.
 퇴직 후 사업을 벌여 잘 먹고 잘살았다.
 다만 부모님은 그가 막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가셨고 아내 역시 중년의 나이에 병으로 먼저 보냈다.
 자식도 없이 혼자 사는 삶이 인생의 절반에 가까웠다.
 나이 들어서 생긴 암과 몇 년간 싸우다 결국 79세 때 죽었다.
 정상적인 가정에서 나고 자라 배곯지 않고 살았으며 큰 고생도 하지 않으며 무난하게 살았다.
 다만 죽을 때 앓고 있던 병 때문에 몹시 고통스러웠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마지막에 가까워서는 강력한 진통제 덕분에 몽롱하긴 했지만 크게 고통받지 않고 숨을 거두었다.
 ‘그런데 왜 김영호의 몸에서 깨어난 것일까?’
 오래 생각했지만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이유를 모르니 해결 방법 따위가 있을 턱이 없다.
 ‘해결이라니? 도대체 뭘 어떻게 해결한다는 소리인가?’
 이런 일은 상상도 하지 못했었고 배운 적도 없었다.
 물론 배움이 있으니 이런저런 얘기는 들어 보았지만 어느 것도 이런 경우와는 꼭 맞지 않는다.
 의식을 회복한 그날 하루 꼬박 누워 있었다.
 두들겨 맞은 곳이 아파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이미 벌어진 일은 어쩔 수가 없다.
 그래서 방구석에 누워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를 궁리했다.
 ‘보육원을 나갈 때 지원받는 금액이 1백만 원이던가?’
 그렇게 들었던 기억이 난다.
 지역에 따라서 큰 차이가 난다고 들었다.
 많은 곳은 6백~7백만 원까지 주는 곳도 있다지만 영호가 몸담고 있는 이곳은 1백만 원인가 2백만 원인가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 정도라고 했다.
 지방자치단체의 예산이나 재정 규모 등에 따라 차이가 난다고 했다.
 문제는 그것조차도 순조롭게 다 받아서 나가기가 쉽지 않다.
 또 한 가지 문제는 보육원에 있을 때는 봉사 활동이라거나 생활 실습이라는 명목으로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 방이나 청소하는 수준이 아니다.
 어린애들은 보육원 내의 청소, 세탁, 설거지 같은 주방 보조 같은 일을 해야 하고 조금 자라면 보육원 근처에 있는 작은 공장들에서 일해야 한다.
 평소엔 방과 후부터 자기 전까지, 방학 때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한다.
 원래 그렇게 운영하는 보육원은 없다.
 다른 보육원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하여간 이 보육원은 그렇다는 뜻이다.
 원래 그래서는 안 된다. 보육원 아이들을 노동에 내몰아서는 안 된다. 그러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 보육원은 그러고 있었다. 강제로.
 급료? 그런 건 받아 본 적이 없다.
 기본적으로 보육원에서 아침과 저녁을 챙겨 주긴 하지만, 이 중 저녁은학기 중으로 한정된다.
 방학 중에도 점심이 지원되긴 하나 어디까지나 일하러 간 공장에서 나오는 것이니 보육원에서 지원하는 것은 정말로 하루 두 기가 끝인 셈이다.
 명백한 노동력 착취.
 임금은 누군가가 받겠지만 아주 저렴할 것이다.
 그나마도 그걸 보육원 측에서 가로채는 것이 분명했다. 애들에게는 주지 않으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보육원에서 도망치는 애들도 있다.
 중간에 도망치면 부랑아가 되거나 범죄의 대상이 될 뿐이다. 오히려 더 빨리 범죄자가 되기 십상이다.
 정상적으로 나가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
 보육원에 매우 협조적인 자들이 많다. 경찰도 그렇고 상점의 주인들도 그렇다.
 표시가 나는 것도 아닌데 심부름 가는 것과 탈출하는 것은 차이가 나는 모양인지, 도망쳤다가 금방 붙들려 오곤 했다.
 그러고 나면 김영호처럼 두들겨 맞고 몇 끼니 굶긴다.
 이번에는 다른 이유로 맞았지만.
 ‘생각, 생각을 해야 해.’
 보육원을 나설 때까지 앞으로 남은 것은 1년 반이다.
 ‘두 사람의 인격과 기억과 의식을 갖고 있으니 남들보다 두 배는 더 잘 살아야 정상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기초로 어떻게 하면 잘 먹고 잘살지를 고민했다. 문제는 딱히 할 수 있을 만한 일이 그다지 없다는 것.
 생일이 빠른 김영호는 벌써 주민등록증이 나왔다.
 ‘이걸 잘 이용한다면······.’
 생각해 보니 쉽지 않다. 경찰도 보육원 편인데 아무리 신분증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걸 들고 은행에 가서 통장을 만든다면 금방 들통이 날 것이다.
 원래대로라면 보육원 소속 아이라고 해서 통장을 만들지 말라는 법은 없다. 후원자와 연결하여 통장을 만드는 경우도 있다.
 문제는 원장이다.
 원장은 자기가 모르게 후원금이나 물품이 오가는 것을 병적으로 싫어한다. 그래서 후원을 받는 아이들의 경우 통장을 만들기 했지만 그걸 원장이 관리한다고 들었다.
 영호와는 전혀 상관도 없는 일이다.
 보육원 어느 아이와도 상관없는 원장만의 사업이었다.
 아이들이 보육원 내에서 따로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기는 어렵다.
 또 누군가를 믿고 뭔가를 맡긴다는 것도 불가능하다.
 자기 몸에 감추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니다. 수시로 수색을 당한다. 원장 밑에 붙어서 아이들을 관리하는 감찰 완장을 찬 아이들이 뒤진다.
 하여간 뭔가를 감추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아이들처럼 먹을 거나 감춘다면 혹시 또 모르겠지만.
 ‘하아!’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맹렬하게 김영호로서의 기억들을 떠올렸다.
 도대체 얼마나 아무 생각 없이 산 놈인지 학교를 오가는 길에 대해서도 뚜렷한 기억이 없다. 멍하니 아무 생각 없이 오간 게 분명하다.
 ‘거의 평생을 이 도시에서 살았는데도 주변 지리에 대해서 이렇게 모를 수가 있을까!’
 오히려 이곳에 살아 본 적이 없는 정문현의 기억이 더 뚜렷하다. 정문현은 업무 때문에 이 도시에 몇 번 오간 적이 있다.
 ‘당장 눈앞의 것만 생각해서는 안 돼. 나중을 생각해서 미리 준비하고 움직여 놓아야 해.’
 이렇게 원칙을 정하고 1년 반 정도가 지난 후에 있을 보육원을 나설 때를 생각했다.
 보육원의 원장과 선생들이 조금만 인간적이었다면, 그가 이렇게까지 극단적인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살고 있는 김영호였다면 모르겠지만.
 원장은 탐욕스러운 자다. 애들을 일부러 괴롭히거나 쥐어짜는 건 아닐지 모르지만 돈에 대해서는 악착같다. 그렇다 보니 보육원의 운영을 위한 최소한의 인원만 고용하고 있다.
 나머지는 다 애들의 몫이다.
 큰 애들을 가르쳐 작은 애들을 부리는 방식이다. 큰 애들은 선생들이 지휘한다. 그 선생들만 움직이면 원장으로서는 원하는 것을 얻어 낼 수 있다.
 그것은 바로 돈!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중학생과 고등학생은 거의 대부분 근처의 작은 공장들에 다닌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면 늦은 밤까지 그곳에서 일해야 한다.
 액세서리 제조, 전기 전자 부품 생산, 플라스틱 제품, 노끈 공장, 박스 제조 공장, 기타 등등 많은 종류의 영세 공장이 주변에 있는데 영호도 그 대부분의 공장에서 일해 본 경험이 있다.
 육체적으로 가장 힘든 것은 물류 창고와 냉동 창고였다.
 그렇게 애들이 일해서 모이는 액수는 얼마나 될까?
 정문현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았다.
 ‘최저임금도 안 될 거야. 그래서는 애들을 쓰지 않을 테니까. 최저임금의 절반, 아무리 적어도 그 정도는 돼야 원장에게도 떨어지는 게 있을 거야. 원장도 혼자 먹는 게 아니라 경찰이며 면사무소며 여기저기에 기름칠을 하겠지?’
 그렇게 생각해 보고 애들 숫자를 곱해 보면 답이 딱 나온다.
 정확치도 않고 대략적인 것이지만 매달 애들이 벌어들이는 금액이 50~60만 원 정도는 될 것 같았다.
 더 적을 수도 있고 더 많을 수도 있지만.
 공장에서 일하는 애들이 여든세 명이다. 그중 열 명 정도는 보육원의 일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주방에서 일하거나 힘쓰는 일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남자애들과 여자애들을 합쳐 십여 명 정도는 돈벌이를 하지 못한다.
 최하 50만 원에 일흔 명으로 친다면 3천 5백만 원이다.
 또 나라와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지원하는 돈이 있다. 그것도 거의 그 정도는 될 것이다.
 그런데 애들의 수가 많다.
 식비와 난방비를 아예 뺄 수는 없다. 전기 요금이나 수도세 역시 마찬가지다.
 고정비용이다.
 나라와 지방자치단체에서 지원받는 것 역시 거의 고정적이다. 애들 한 명당 식비 등을 포함해서 일정한 금액을 받는다.
 난방비 명목으로 또 얼마를 따로 받는다. 전기와 수도세는 지방자치단체에서 일부를 보조해 주는 식이다. 식비 등도 지역의 독지가나 봉사 단체 등에서 일부를 제공해 준다.
 이건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수입으로 잡기에 애매하다. 김영호의 기억을 총동원해서 궁리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
 하여간 원장이 현금으로 손에 쥘 수 있는 것은 이래저래 다 합치면 1억 원 정도인데 그중 보육원 운영비, 그러니까 식비, 난방비 등의 고정적인 비용이 3, 4천만 원쯤 된다.
 원래 보육원의 교사는 나라에서 급료를 지원해 주지만 원장이 따로 조금씩 더 쥐여 준다.
 왜냐하면 그들이 애들을 관리하기 때문이다.
 ‘원장과 선생들은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쯤일까?’
 정문현은 고개를 흔들었다. 잘 알 수 없다는 뜻이다.
 하여간 밀접하다. 그런 그들이 애들을 꽉 쥐고 흔든다.
 ‘흔드는 대로 흔들릴 수밖에 없는 것이 애들이지.’
 나라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지원해 주는 돈은 현금으로 직접 주는 경우가 그다지 많지 않다. 그러니 현금을 선호하는 원장은 애들을 공장으로 내모는 것이다.

댓글(50)

따가닥    
드디어 기다리던 작가님 퐈이팅입니다.
2018.03.06 05:50
이충호    
음...
2018.03.09 09:51
청동미르1    
한8년전 책 내용 아니가요
2018.03.14 15:29
청동미르1    
한8년전 책 내용 아니가요
2018.03.14 15:29
에크나트    
여억시 이번작품도 주인공을 억압하는 높은곳이 나오군요.
2018.04.09 10:05
bi******    
재미있게 봤어요.
2018.04.26 15:06
dharma    
잘보고있습니다
2018.04.27 08:46
라크안    
화이팅 하세여...^^
2018.04.30 09:37
앙큼상큼    
이벤트 참여 화이팅
2018.04.30 11:49
ca********    
건필하소서
2018.04.30 11:56
0 / 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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