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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검마영 1

2018.03.08 조회 403 추천 3


 신검마영 1권
 1장 그는 누구인가
 
 
 낙양(洛陽).
 한때의 영화가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린 옛 성도(城都).
 비록 가버린 세월 속에 영화는 퇴색되어 버렸다고는 하나, 천년 영화의 옛 자취는 고독한 세월의 여정 속에 과거의 화려했던 위용을 조심스럽게 드러내고 있다.
 술[酒]과 여자(女子)로 이름 높은 중원삼대색향(中原三大色香) 중의 하나로 더욱 유명하다.
 오향원(五香院)!
 술과 여자로 유명한 낙양에서도 꽤나 알려진 기루다.
 낙양의 번화가에 자리하고 있다.
 황금 백 냥!
 오향원에서 하룻밤을 묵기 위해서 필요한 화대다.
 소월화(蘇月花)!
 직업은 오향원의 기녀다.
 올해 나이 정확히 스물아홉, 시들어 가는 꽃이랄까?
 스물아홉이면 기녀로서의 생명은 이미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요즘 들어 소월화의 생활은 비참하다.
 폐기나 다름없는 그녀를 찾아주는 손님이 없기 때문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사내들이 기녀를 찾는 주요 원인은 보다 싱싱하고 탄력이 있는 여체와 더불어 황홀한 쾌락으로 자신을 태우고 싶은 욕망 때문이다.
 그런 사내들이 폐기나 다름없는 소월화를 찾을 이유는 만무하다.
 언제인가, 소월화가 거리에 나가 화사한 웃음을 피워 물며 손님에게 추파를 보냈을 때, 손님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말했다.
 
 ― 너와 그 짓을 하느니 차라리 마누라에게 화대를 지불하고 그 짓을 하겠다.
 
 그 이후 소월화는 거리에 나가 손님을 붙잡지 않았다.
 한때는 기녀로서 그런대로 명성을 날렸던 자존심도 자존심이려니와 정작 그녀가 그렇게 하지 않았던 것은 그 누구도 자신을 거들떠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녀를 찾는 손님은 더더욱 없다.
 그런데 오늘 소월화는 믿어지지 않는 한 가지 소식을 들었다.
 총관으로부터 믿어지지 않는 소식을 들은 것은 자시(子時)가 가까워서였다.
 “세상에 별 미친놈이 다 있다. 미쳐도 한참 미친놈이야.”
 “무슨 일이 있는가요?”
 “삼백육십 일 만에 너에게 가장 반가운 소식이 있다. 물론 우리에게도 좋은 일이다. 그동안 너에게 투자했던 돈도 받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럼 저에게 손님이라도?”
 “골빈 놈이지. 이제 막 꽃봉오리를 터뜨리는 장미 같은 계집들도 많은데······.”
 “농담이시겠죠.”
 “믿어지지 않는 모양이구나······ 그럴 만도 하지. 일년 만에 처음으로 너를 찾아주는 손님이니 말이다.”
 소월화는 처음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아니, 사내의 정신 상태를 의심했다.
 ‘어느 얼빠진 놈이······.’
 솔직한 소월화의 심정이었다.
 폐기나 다름없는 그녀다.
 그래서 일년 동안이나 손님 한 명 받지 못한 소월화.
 더욱이 오향원에는 싱싱하고 탄력이 있는 어린 기녀들이 많다.
 그런 기녀들을 모두 마다하고 황금 일백 냥이나 지불하고 자신을 찾는 사내가 있다는 사실에 그녀는 쓸쓸하게 웃으며 사내에게 갔다.
 
 맨 처음 사내를 만났을 때, 소월화는 피식 웃고 말았다.
 정말 볼품없는 사내였다.
 오 척(五尺)도 되지 않는 단신에, 조금만 강한 바람이 불어도 날아가 버릴 것만 같은 허약한 체구를 지니고 있었다.
 ‘저런 놈은 필경 허우적거리다 자기 기분만 채우고 말 놈이다.’
 기녀 생활 십삼 년에 사내에 대해서는 달통해 버린 소월화다.
 처음 사내를 대한 순간 그녀는 그렇게 단정을 내렸다.
 두 번째로, 사내와 같이 목욕탕에 들어갔을 때 소월화는 눈을 흘겼다.
 욕조에 들어간 지 채 일각도 되지 않아 사내는 비 오듯이 땀을 흘리고 있었던 것이다.
 ‘과연 사내 구실을 할까?’
 세 번째로, 사내가 처음으로 숨을 헐떡거리며 자신의 배 위에서 광란하듯 무엇인가를 분류하기 위해 발광을 할 때, 소월화는 오늘 받은 화대를 어디에 쓸 것인가를 생각했다.
 비록 사내는 광란하고 있었으되 소월화에게는 아무런 자극도 주지 못했던 것이다.
 ‘얼빠진 놈에게서 횡재했으니, 이 돈으로 쓸 만한 사내를 골라 그동안 굶주린 쾌락이나 즐겨야겠다.’
 육체의 노예가 되어 버린 여자에게 중요한 것은 향락이다.
 소월화도 그런 여자였다.
 사내가 발광하는 말든 소월화는 자기만의 난잡한 환상에 사로잡혀 있다.
 건장한 사내와 육욕을 불태우는 환상에 그로부터 일각이 흘렀다.
 아직도 자신의 배 위에서 발악하고 있는 사내를 바라보며 소월화는 처음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보기보다는 야무진 놈인데······.’
 소월화는 처음으로 사내에게 관심을 가졌다.
 처음에는 아무런 자극도 받지 못했던 그녀였으되 서서히 그녀의 육신도 달아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반시진이 흘렀다.
 소월화가 눈살을 찌푸린 것도 그때였다.
 ‘완전히 본전을 뽑을 생각이구나, 이놈······.’
 그래도 소월화는 불쾌하지 않았다.
 그때에는 그녀 자신이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던 것이다.
 또다시 반시진이 흘렀다.
 소월화는 약간 놀랐다.
 자신의 배 위에서 허우적거리다 말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내는 아직도 무엇인가를 분류하기 위해 발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쓸 만할 정도가 아니라 대단한 놈이다.’
 사내에 대한 소월화의 생각은 완전히 달라져 버렸다.
 생각해 보라.
 말이 쉬워서 한 시진이지, 천하에 어떤 사내가 있어 한 시진 동안이나 끝없이 여자를 학대할 수 있겠는가?
 소월화는 이제 주체할 수 없는 쾌락의 노예가 되어 있었다.
 절정을 향해 치달리고 있는 그녀 자신이 광란하고 있었다.
 기녀 생활 십삼 년이지만 오늘처럼 그녀가 육욕에 광란하기는 단언하건대 처음이다.
 그렇게 흘러간 시간이 얼마였을까?
 “하악!”
 금방이라도 숨이 멎어 버릴 것만 같은 신음성을 흘리며 소월화는 해파리처럼 늘어졌다.
 온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으며 전신에 응집되어 있던 힘이란 힘은 모조리 소멸되어 버리는 무력감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사내는 학대하는 동작을 멈추지 않았다.
 소월화의 안면이 일그러졌다.
 ‘윽······! 아예 죽일 셈인가?’
 소월화는 확실히 알았다.
 자신의 배 위에서 광란하고 있는 사내, 아예 여자를 죽일 사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다.
 반시진······ 한 시진······.
 그리고 새벽이 되었을 때 오향원의 기녀들은 자신의 귀를 의심해야 했다.
 
 ― 제······ 제발 그만해라. 원한다면 화대도 숙박비도 다 안 받겠다.
 
 소월화는 죽는다고 하소연하고 있었던 것이다.
 
 ***
 
 세궁역진(細窮力盡).
 완전히 탈진한 상태라는 뜻이다.
 해파리처럼 침상 위에 늘어져 있는 소월화의 모습이 세궁역진, 바로 그것이다.
 손가락 하나 움직일 힘마저 남아 있지 않은 소월화.
 초점 없이 풀려 버린 시선은 천장을 향하고 있다.
 간밤에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렸는지 그녀는 모른다.
 축축하게 젖어 있는 이불이 다만 그녀가 지난밤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렸는가 하는 것을 대변해 주고 있다.
 지난밤 내내 사내에게 짓밟힌 하복부에서는 몸 일부가 떨어져 나가는 듯한 극단의 통증이 지금도 밀려오고 있다.
 ‘악몽이었다.’
 소월화는 간밤의 일을 악몽으로 돌려버렸다.
 그렇게 해서라도 조금이나마 위안을 받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무슨 사내가 저러한가?
 자신의 난폭한 행동으로 인해 여자는 아직도 고통에 휩싸여 있건만 그런 소월화에게 일별도 주지 않은 채 사내는 의복을 갖추고 있다.
 지극히 무심하게, 완전히 의복을 갖춘 후 무심한 시선으로 침상에 늘어진 소월화를 응시하며 하나의 주머니를 던졌다.
 쨍그랑!
 주머니가 땅에 떨어지며 그 속에서 쇳소리가 요란하게 터져 나왔다.
 섬칫하도록 무심한 음성이 사내의 입술을 비집고 흘러 나온 것도 바로 그때였다.
 “화대다.”
 “······.”
 “정확히 금화 천삼백예순두 냥과 은화 이천삼백스물닷 냥이다. 그것이면 하룻밤 화대로는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황금이면 귀신도 부린다는 말이 있다.
 해파리처럼 늘어져 있던 소월화의 귀가 번쩍 뜨였다.
 금화 천삼백예순두 냥과 은화 이천삼백스물닷 냥.
 얼마나 엄청난 액수인가?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평생 동안 이 돈만을 소모한다고 해도 불가능하다.
 더욱이 소월화처럼 폐기로서는 꿈에서도 만져 볼 수 없는 어마어마한 액수다.
 ‘완전히 미친놈이군. 하룻밤 화대로 이렇게 많은 돈을 주다니······.’
 소월화는 꿈만 같았다.
 하복부에 밀려오던 통증도 한순간에 사라져 버린 것만 같았다.
 소월화는 사내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렇게 많은 돈을 왜······?”
 그렇게 말을 하고 있는 순간에 그녀의 손은 이미 돈주머니 위에 올려져 있다.
 그런 소월화의 행동에는 아무런 상관도 없이 사내는 여전히 무심한 시선으로 그녀를 응시하며 말했다.
 “그것은 내가 평생 동안 모은 돈이다. 그러나 오늘이 지나면 황금 따위는 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
 “나는 너에게 모든 것을 주었다. 내가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사내는 묻지 않은 것까지 말했다.
 소월화는 사내의 그 무심한 음성 속에 왠지 모를 허탈감이 서려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살인적인 허무 같기도 했다.
 사내의 음성은 그때에도 계속되고 있었다.
 “그러나 나에게 고마움을 느낄 필요는 없다. 어차피 그 돈은 처음부터 나의 것은 아니었다. 나는 사람들을 죽여 준 대가로 그 돈을 받았던 것이다.”
 부르르!
 소월화의 눈빛이 걷잡을 수 없이 떨리고 말았다.
 
 ― 나는 사람들을 죽여 준 대가로 그 돈을 받았다.
 
 그 한마디에 소월화는 사내의 직업을 알았던 것이다.
 사람을 죽여 준 대가로 돈을 받는 직업이라면 천하에 단 한 가지뿐이다.
 살수(殺手)!
 무림에서도 가장 이질적인 직업인 살수다.
 “그······ 그렇다면······?”
 소월화의 말은 중간에서 뚝 멈추어지고 말았다.
 얼음장처럼 차갑고 야수의 그것처럼 전율스런 사내의 눈빛을 보았기 때문이다.
 순간적으로 소월화의 얼굴에 죽음보다 더 깊은 공포가 서렸다.
 서릿발처럼 차가운 음성이 소월화의 귓전으로 파고든 것도 바로 그때다.
 “많은 것을 알려고 하지 마라.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 때로는 죽음을 부르는 원인이 될 수도 있으니까.”
 소월화는 아예 입을 열지 못했다.
 공포감이 서려 있는 그녀의 눈빛만이 파랗게 떨리고 있다.
 “이제 나에게 남은 것은 검(劍)뿐이다. 그러나 그것도 오늘을 넘기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검치(劍痴) 광혼(光魂)을 만나야 하기 때문이다.”
 그 말이 끝났을 때, 언제 사라져 버렸는가?
 사내의 모습은 이미 방안에 남아 있지 않았다.
 
 ***
 
 번쩍!
 콰르르르릉······!
 언제부터인가?
 검은 구름이 하늘을 뒤덮고 번갯불과 함께 벽력성이 울리며 장대 같은 빗줄기가 쏟아지고 있었다.
 그것은 봄[春]의 시작을 알리는 춘우(春雨)일진대, 흡사 장마철의 폭우를 연상케 할 만큼 쏟아져 내리고 있다.
 
 폐찰.
 쏟아지는 빗속에 고스란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폐찰은 금방이라도 허물어져 버릴 것처럼 낡았다.
 한 병의 술과 안주로는 군만두 하나, 하나의 모닥불과 한 자루의 검(劍).
 추위에 떨면서 술을 데우고 있는 한 사람.
 나이는 이십칠 세 가량 되었을까?
 일신에 걸치고 있는 의복이 흠뻑 젖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사람이 몸을 녹이고 있다는 것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 검치(劍痴) 광혼(光魂)!
 
 운명이 부여한 이름이다.
 검에 미친 인간, 사람들은 흔히 그를 검의 노예라고 한다.
 그의 인생은 오로지 검뿐이다.
 그가 처음으로 무림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그의 나이 십오 세 때이다.
 그 해, 그는 한 사람을 죽였다.
 중원무림의 삼류고수다.
 십육 세 때 그는 또 한 사람을 죽였다.
 중원무림의 이류고수다.
 그때까지만 해도 천하는 그의 존재를 중요시 여기지 않았다.
 천하가 그의 존재에 관심을 지니기 시작한 것은 광혼의 나이 이십 세 되던 해, 한 사람의 죽음에서부터였다.
 
 ― 백인검우(百刃劍雨) 옥천후(玉天候)!
 
 당시 중원무림을 통틀어 이십대고수에 속했던 그가 광혼의 단 일초를 받아내지 못하고 죽임을 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무림은 경악했고 천하는 광혼에게 관심을 지니기 시작했다.
 일취월장(日就月將).
 광혼의 검도(劍道)는 하루가 다르게 고절해 갔다.
 그리하여 지금에 이르러 광혼이 죽이지 못할 사람은 천하에 없다.
 천하제일쾌검!
 천하는 광혼을 그렇게 인정해 버렸다.
 
 타다닥!
 모닥불은 하염없이 타오르고 모닥불에 술을 데운 광혼은 조그마한 대접에 술을 따랐으며, 천천히 입술로 가져간다.
 바로 그때였다.
 꽝!
 폐찰의 창문이 그대로 부서져 나가고 장대 같은 빗줄기가 쏟아져 들어왔다.
 번쩍!
 찰나 창백한 광채를 발하며 한 자루의 검이 광혼의 목젖을 일직선으로 찔러 왔다.
 암습도 암습이려니와 검이 찔러 오는 속도는 눈부시게 빨랐다.
 점(點)과 점(點)을 잇는 것이 선(線)이라면 창문을 부수고 쏟아지는 빗줄기 속에서 광혼의 목젖을 겨냥한 채 폭사해 온 검의 길은 자로 잰 듯한 일직선이었으며, 천하에서 가장 빠른 것이 빛[光]이라면 지금 광혼의 목젖을 찔러 오는 검은 빛, 바로 그것이었다.
 광혼의 눈에 강렬한 이채가 스쳐 간 것은 창백한 광채를 발하며 찔러 오는 검이 자신의 목젖과 다섯 치 정도의 거리까지 육박해 왔을 때다.
 “후후! 이제 보니 마검(魔劍) 소사(蘇死)로군.”
 음성은 담담했다.
 위기에 처해 있는 인간이 발할 수 있는 음성은 도저히 아니다.
 그리고 그 음성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이었다.
 슥!
 손이 움직이는가?
 술잔을 들어 막 입으로 가져가던 광혼의 손이 술잔을 놓음과 동시에 옆에 두었던 검을 잡아갔으며, 그렇게 느낀 순간에 허공에는 이미 아련한 빛이 피어났다.
 번······ 쩍!
 마치 꿈결에서 보았던 것처럼 아련하게 느껴지는 빛.
 그것은 흡사 하늘에서 희미한 빛을 뿌리는 은하수와 같았는데, 그 빛이 사위를 훑고 지나갔을 때 침묵은 너무 무겁게 흐르고 있었다.
 모든 것은 그것뿐,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광혼은 다시금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지극히 담담하게.
 말로 하자면 길다.
 그러나 폐찰의 창문이 부서지고 그 사이로 한 자루의 검이 빛살처럼 광혼의 목젖을 찔러 온 것과 광혼이 잡았던 술잔을 놓음과 동시에 검법을 펼친 후 다시 검을 원래의 위치에 놓아두고 담담하게 술잔을 기울인 것은 불과 눈 한 번 깜빡일 순간이었다.
 광혼이 입으로 술잔을 가져간 그 순간, 한 사람이 무겁게 광혼의 바로 일 장 앞에 떨어져 내렸다.
 쿵!
 그런데 이 사람.
 바로 소월화에게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쾌락 아닌 고통을 안겨주었던 그 사내가 아닌가?
 마검 소사.
 광혼을 응시하는 그의 눈빛은 걷잡을 수 없이 떨리고 있다.
 아마도 그것은 경악이리라.
 “이렇게 빠르다니······ 과연 천하제일의 쾌검이다.”
 불신과 회의, 그리고 경악이 한데 어우러진 음성이었다.
 황금만 주어진다면 천하의 그 누구라도 죽일 수 있다고 믿어 왔던 살수 소사.
 또한 칠년 전까지만 해도 천하제일의 쾌검을 구사하는 인물로 자타가 공인하기를 서슴지 않았던 인물이다.
 그러나 칠년 전, 검치 광혼으로 인해 천하제일쾌검이란 그의 아성은 무너졌다.
 오늘 그가 광혼을 암습했던 것도 실추된 천하제일쾌검이란 명예를 되찾기 위해서다.
 광혼은 담담하게 술을 마셨다.
 소사의 말이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처럼 술잔을 비운 후 잔을 내려놓으며 하는 말.
 “그렇게 생각하느냐?”
 소사는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의 능력으로 펼칠 수 있는 가장 빠른 쾌검이었다.”
 광혼은 담담하게 고개를 저었다.
 “내 검이 아무리 빨라도 한 사람을 따라갈 수는 없다.”
 광혼의 음성은 지극히 담담했다.
 그렇다고 소사까지 그 말을 담담하게 받아넘길 수는 없었다.
 부르르!
 여지없이 흔들리는 그의 눈빛만을 보더라도 그가 받은 충격이 어느 정도인가를 알 수 있다.
 “그런 사람이 있다니······?”
 “만약 그분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나는 아예 검을 뽑을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 죽음만 더욱 초라해질 테니까.”
 소사의 눈빛은 정신없이 흔들렸다.
 “믿을 수 없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그것은 사실이다.”
 “그자가 누구냐?”
 “그분의 이름은 목야홍(木夜紅)! 바로 이 광혼에게 광섬(光閃)의 진리를 알려준 분이시다.”
 “목야홍······.”
 소사는 목야홍이란 이름을 곱씹었다.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들어 본 적이 없는 이름이다.
 광혼이 담담하게 말한 것도 그때였다.
 “기억하려 애쓰지 마라. 그분을 이해하기에는 너에게 주어진 생명이 너무 짧다.”
 그때서야 소사의 미간에 하나의 혈선(血線)이 그어지기 시작했다.
 미간에서 시작된 혈선은 인중과 목을 거쳐 자를 대고 줄을 긋듯이 일직선으로 가슴으로 이어졌고, 끝내 소사의 몸은 두 쪽으로 갈라지고 말았다.
 주르르!
 그때서야 분수처럼 피가 쏟아지고, 양분된 소사의 몸은 지면으로 쓰러졌다.
 쿠쿵!
 마검 소사의 죽음이었다.
 평생을 살수란 이질적인 직업에 종사하며 살아왔던 그.
 실추된 명예를 되찾고자 하였지만 그의 노력은 죽음으로 그 끝을 맺고 만 것이다.
 
 검치 광혼.
 한 잔의 술을 마신 후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사의 시신에서 신형을 돌리며 그는 한마디를 남겼다.
 “그분의 빠름을 따를 수 있는 자는 천하에 아무도 없다.”
 광혼의 신형은 조용히 멀어진다.
 
 타다닥!
 마검 소사의 죽음과는 아무런 상관 없이 모닥불은 여전히 타오른다.
 목야홍!
 광혼이 천하제일의 쾌검이라고 인정해 버린 그는 과연 누구인가?
 
 
 2장 천하제일인(天下第一人)
 
 
 황금이면 귀신(鬼神)도 부린다고 했다.
 이 말, 황금이 지닌바 무서움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말임에 틀림없다.
 사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황금만 있으면 불가능한 것은 거의 없다.
 인간은 누구나 황금을 좋아하며 그래서 황금 앞에서는 아무리 청렴결백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고개를 조아리게 된다.
 한 사람, 천하에서 가장 많은 황금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다.
 
 ― 황보충(黃甫蟲)!
 
 황금성(黃金城)의 성주이자, 억세게 운이 좋은 인간이다.
 부자인 아버지를 두었기 때문이다.
 뿐만이 아니다.
 황보충은 돈 버는 것에 관한 한 남다른 소질을 지니고 있다.
 상술이 뛰어남은 물론이요, 어려서부터 돈 버는 데에는 특별한 재주가 있었다.
 또한 지독한 구두쇠이기도 하다.
 그가 얼마나 구두쇠인가 하는 것은 그가 늘상 입버릇처럼 말하는 한마디를 안다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 나는 은화 한 닢을 쓰기 위해서 만 하루 동안을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 은화 한 닢을 투자함으로 인해 나에게 얼마의 이익이 돌아올 것인가를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비렁뱅이들이 황보충에게 구걸을 하였지만 황보충이 그들에게 쌀 한 톨 내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비렁뱅이들에게 적선하다는 것은 자신에게 아무런 이익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 철저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살아온 황보충.
 당금에 이르러서는 천하에서 가장 부자가 되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정작 황보충은 자신이 천하제일의 부호라는 사실을 부인하고 말았으니, 언젠가 그를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물었었다.
 “세상이 돈만으로 살아가는 세상이라면, 당신은 황제요.”
 그때 황보충은 고개를 저었다.
 “모르는 소리 말게.”
 “아니라는 말씀입니까?”
 “이 황보충보다 많은 황금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 천하에 단 한 분이 있네.”
 “그럴 리가?”
 사람들은 놀라야 했다.
 아니, 황보충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황보충이 누구인가?
 그의 재산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심지어 황금성의 총관마저도 황금성의 총 자산이 얼마인가 하는 물음에 난색을 표하며 이렇게 말했다.
 
 ― 황금성의 자산을 헤아린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황금성의 자산은 하루가 다르게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황보충보다 더 많은 돈을 지닌 사람이 있단다.
 어디 쉽사리 믿어지는 말인가?
 놀라고 있는 사람들에게 황보충은 더욱 믿어지지 않는 말을 했었다.
 “그분이 계시는 한 나는 영원히 황제가 될 수 없다. 나의 재산은 그분의 재산에 비하면 조족지혈(鳥足之血)에 불과하다.”
 “그 사람이 누구요?”
 “이 황보충의 주인이신 목야홍이라는 분이시지.”
 믿어지지 않는 말이지만 사람들은 믿어야 했다.
 다름아닌 황보충의 말이었으니 말이다.
 목야홍!
 천하제일의 부자.
 그는 누구인가?
 
 ***
 
 열두 명의 미녀와 열두 병의 술, 그리고 열두 가지의 안주.
 열두 명의 기녀들은 제각기 독특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늘씬한 몸매도 아름답지만 어딘지 모르게 일반의 여인들과는 색다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비에 젖은 한 떨기 수선화처럼 청순함 속에서도 사내의 눈길을 끄는 강한 호소력을 지니고 있는 기녀가 있는가 하면, 장미처럼 농염하고 거기에 가벼운 탕기마저 흐르는 도전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여인도 있다.
 술 또한 그렇다.
 열두 개의 술병마다 제각기 다른 술이 담겨져 있다.
 모두가 명주(名酒)들뿐이다.
 이슬을 받아 담근다는 백로홍(白露紅).
 백(百) 가지의 꽃잎을 따서 담근 백화주(百花酒).
 천일취(千日醉), 경지(景芝)의 고량주(高粱酒)도 준비되어 있다.
 뿐만이 아니다.
 열두 가지의 안주.
 그것 또한 가효(佳肴)라 함이 옳다.
 그리고 열두 명의 기녀들에 싸여 열두 종류의 명주들을 음미하며 열두 가지의 가효로 풍류(風流)를 누리는 한 사람이 있다.
 나이는 삼십이삼 세 가량 되었을까?
 윤기가 흐르는 머릿결을 반듯하게 빗어 넘겨 청순한 이미지를 풍긴다.
 헌앙한 이마에 짙은 검미(劍眉).
 우뚝 솟은 콧날에 조금은 강인해 보이는 입술을 지녔다.
 미남자(美男子)가 지녀야 할 조건을 모두 갖추었으며 거기에 호탕한 분위기까지 풍긴다.
 한마디로 풍류객의 기질을 풍기는 쾌남아(快男兒)다.
 
 ― 풍랑군(風浪君)!
 
 천하제일의 미남이며 천하제일의 풍류객이라고 말하기를 사람들은 서슴지 않는다.
 모든 여인들의 선망의 대상이자 사련의 대상이기도 하다.
 천하의 모든 여자들이 그의 가슴에 안겨 보는 것을 꿈꾼다.
 풍랑군이 좋아하는 것은 천하에 단 두 가지다.
 그 첫째는 술이며, 둘째는 바로 여자다.
 오늘도 그것은 마찬가지다.
 그는 열두 명의 미녀들에 싸여 술을 마시고 있는 것이다.
 “백화주이옵니다. 향기가 상큼하고 맛이 일품이옵니다.”
 한 명의 미녀가 옥음을 발하며 백화주를 풍랑군의 입에 먹여 준다.
 모란처럼 화사한 웃음을 머금고 있는 여인이다.
 풍랑군은 자신의 가슴에 안겨 아양을 떨고 있는 미녀의 가슴을 매만지며 말없이 술을 받아 마신다.
 상큼한 향기가 입 안에 가득하다.
 “역시 명주로군.”
 풍랑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한 명의 미녀가 안주를 먹여 준다.
 풍랑군은 거절하지 않는다.
 무슨 상념이 저리도 깊은 것인가?
 한 명의 미녀.
 아양을 떠는 미녀들의 모습에는 관심 없이 풍랑군의 얼굴을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다.
 어떤 갈망과 애증으로 인해 서글픈 감정이 물씬 서려 있는 눈빛이다.
 그러나 끝내 미녀는 긴 한숨을 토해내고 만다.
 ‘아아! 저분의 품에 안길 수만 있다면······.’
 풍랑군의 품에 안기고 싶다는 것은 미녀들의 꿈이다.
 그러나 풍랑군의 가슴에 안긴다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문득 풍랑군이 자신의 품에 안겨 아양을 떠는 미녀를 바라본다.
 장미처럼 농염하면서도 가벼운 탕기마저 흐르는 도전적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는 미녀다.
 “오늘 밤은 너의 수청을 받고 싶다.”
 순간이었다.
 풍랑군의 가슴에 안겨 아양을 떨던 미녀의 얼굴이 흥분되었다.
 이 얼마나 듣고 싶던 말이던가?
 천하제일의 풍류객 풍랑군.
 미녀는 감격에 겨워 눈물까지 글썽거린다.
 “정말이신가요?”
 “이 풍랑군은 결코 여자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미녀는 풍랑군의 이마에 입맞춤을 한 후 튕기듯이 일어섰다.
 “당신에게 가장 편안한 밤이 되도록 침실을 준비하겠어요.”
 그녀는 날아갈 듯이 신형을 돌렸다.
 ‘그분이 나를 선택해 주실 줄은 몰랐어······.’
 그녀의 가슴은 한없이 부풀어올랐다.
 벌써부터 풍랑군과의 황홀한 정사가 환상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그녀는 채 한걸음도 옮기지 못하고 다시 신형을 돌려야 했다.
 풍랑군이 고개를 저으며 그녀의 발걸음을 막았던 것이다.
 “아니다.”
 그녀는 신형을 돌렸던 때보다 더 빠르게 다시 돌렸다.
 풍랑군의 마음이 변해 버리지 않았는가 하는 걱정이 밀물처럼 밀려왔던 것이다.
 “그러시면······?”
 그때까지도 미녀는 걱정을 떨쳐버리지 못했다.
 그러나 풍랑군의 한마디에 기우였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이곳에서 너의 수청을 받고 싶다.”
 여자의 얼굴에 당혹감이 서렸다.
 풍랑군의 말을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그녀는 아둔하지 않다.
 
 ― 나는 이곳에서 너의 수청을 받고 싶다.
 
 해석은 간단하다.
 바로 이 자리에서 그녀와 정사를 나누겠다는 말이다.
 여자의 얼굴은 금방 잘 익은 홍시처럼 붉어졌다.
 “이렇게 사람이 많은 곳에서······.”
 “싫은 모양이구나?”
 여자는 당혹감이 서린 모습으로 거세게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 것이 아니오라 부끄러워서······.”
 여자는 말끝을 맺지 못했다.
 아무리 퇴폐적인 여자라고 할지라도 부끄러움이란 사치스런 감정이 있다.
 어찌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육체를 불태운다는 것이 쉬운 일이겠는가?
 부끄러움에 여자가 고개를 들지 못하자 풍랑군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가 부끄러우면 나 또한 부끄럽다.”
 풍랑군은 바로 옆자리에 앉아 있던 미녀에게 시선을 돌렸다.
 한 떨기 수선화처럼 청순한 아름다움을 지닌 여자다.
 “나의 의복은 그대가 벗겨 주지 않겠는가?”
 수선화처럼 청순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는 여자는 힐끗 풍랑군을 쳐다본다.
 아쉬움이 찰랑거리는 눈빛이다.
 그러나 이내 그녀는 고개를 숙이며 나직하게 대답했다.
 “알겠사옵니다.”
 여자는 풍랑군의 의복을 벗기기 시작했다.
 주위에 있던 여자들이 환호한 것도 바로 그 순간이다.
 “역시 천하제일의 풍류객다우셔.”
 “이런 식으로 향락을 즐기시는 분은 천하에 당신밖에 없을 거예요.”
 여자들이 이구동성으로 그렇게 환호할 때 풍랑군이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천하의 소문은 잘못된 것이다. 나는 그분이 계시는 한 절대로 천하제일의 풍류객이 될 수 없다.”
 여자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경악성을 토해냈다.
 “예엣······?”
 “그럴 리가?”
 놀라고 있는 여자들의 귓전으로 풍랑군의 담담한 음성이 들려 왔다.
 “그분은 천하제일의 미남자이시자 천하제일의 풍류객이시다.”
 여자들은 불신 서린 시선으로 풍랑군을 응시하며 물었다.
 “그분이 누구신가요?”
 “이 풍랑군의 주인이자 이 풍랑군에게 풍류를 가르쳐 주신 분이시다.”
 “······.”
 “너희들이 만약 그분을 만날 수 있다면 아마 이 풍랑군은 거들떠보지도 않을 것이다. 그분의 이름은 목야홍이시다.”
 그래도 여자들은 믿으려 하지 않았다.
 천하제일의 풍류객은 풍랑군으로 그녀들의 뇌리 속에는 너무 뿌리깊게 박혀 있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서도 한 가지 궁금한 것은 있었다.
 ‘이분에게 풍류를 가르쳐 주신 분이라면 그분은 과연 얼마나 멋진 분이실까?’
 여자들은 목야홍이란 이름을 가슴 깊이 새겼다.
 풍랑군이 천하제일의 풍류객이라고 서슴없이 말해 버린 목야홍!
 아마 여자들은 이제부터 그를 사모하게 될는지도 모른다.
 
 ***
 
 한 여자가 있다.
 운명이 부여한 그녀의 이름은······.
 
 ― 을지비연(乙支琵姸)!
 
 올해 나이 스물둘.
 여자로서는 아름다움이 한창 피어날 때이다.
 직책은 황사(皇師).
 간단하게 말해서 황제의 스승인 것이다.
 용모가 빼어날 뿐만 아니라 천하에서 가장 많은 것을 아는 여자다.
 그녀가 모르는 것은 천하가 모른다.
 남존여비(男尊女卑) 사상이 기승을 부리던 대명(大明) 황실에서 일약 황사로 내정된 재색을 겸비한 여자.
 박학다식함에 있어 천하가 놀란 지는 이미 오래 전이다.
 오죽하면 천하의 석학(碩學)들이 총망라해 있는 한림원(翰林院)의 이름있는 석학들이 을지비연 앞에서 고개를 숙이는 것을 수치로 생각하지 않을까?
 인간의 몸으로 태어났으되 지혜만은 신(神)의 영역을 넘보는 그런 여자다.
 언젠가 황후(皇后)가 을지비연을 불러 한 가지를 물었다.
 을지비연으로서는 모르는 것이었다.
 “신(臣)의 능력으로는 알 수가 없사옵니다.”
 을지비연의 그 한마디에 황후는 한숨처럼 말했다.
 “황사가 모르는 문제라면 천하에 아는 사람이 없겠군.”
 그때 을지비연은 고개를 저었다.
 “그분이라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황후는 그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천하제일의 석학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황사가 알지 못하는 것을 아는 사람이 있다니 어찌 쉽사리 믿을 수 있겠는가?
 “그 사람이 누구인가?”
 “목야홍이라는 분이십니다.”
 “황사보다 더 많은 것을 아는 사람이 천하에 존재하고 있단 말인가?”
 황후의 불신 서린 음성에도 을지비연은 너무 태연하게 말했다.
 “천하는 그분을 모르지만 그분은 천하의 모든 것을 알고 있습니다.”
 “······.”
 “또한 그분은 열 살의 나이에 열두 살인 소녀에게 육도삼락(六道三樂)과 제자백가를 가르친 분이시기도 합니다.”
 “믿어지지 않는 말이군.”
 황후는 오랫동안 그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대명황실의 황사인 을지비연이 천하제일의 석학은 목야홍이라고 서슴없이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황사까지도 서슴없이 인정하는 천하제일의 거유(巨儒) 목야홍!
 천하에 그가 모르는 것은 무엇일까?
 
 ***
 
 두 개의 술잔과 두 사람.
 술이 찰랑거릴 정도로 채워진 두 개의 잔은 구층석탑의 맨 꼭대기에 올려져 있고 두 사람은 지면에서 그 술잔을 바라보고 있다.
 청의(靑衣)를 걸친 사십대의 중년인과 이십오륙 세 가량의 청년이다.
 청년은 일신에 어둠 같은 흑의(黑衣)를 걸치고 있다.
 한동안 두 사람은 그렇게 술잔만을 응시하고 있고, 그로 인해 주위에는 무거운 침묵만이 앙금처럼 깔려 흐른다.
 그렇게 있기를 얼마였을까?
 휘이잉!
 바람[風].
 한 줄기 삭풍이 불어와 두 사람의 옷자락을 스쳐 갔다.
 먼저 청년이 입을 연 것도 그때였다.
 “지금도 시간은 늦지 않았다. 당신이 원한다면 오늘의 일은 없었던 것으로 돌릴 수도 있다.”
 중년인이 청년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분노한 눈빛이다.
 “이 비절풍(飛絶風) 쌍행리(雙行里), 빠름에 있어서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패배를 허락하지 않았으며 생각해 보지도 않았다.”
 청년이 문득 흐트러진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랬었다. 한때는 당신이 천하에서 가장 빠른 인간이었으니까······ 특히 당신의 표운신보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극쾌의 신법이다.”
 “그러나 풍신(風神) 유성추(流星追), 그대의 출현으로 이 쌍행리의 아성은 금이 가기 시작했다.”
 “후훗! 그랬지,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이 유성추를 천하에서 가장 빠른 인간이라고 말해 버렸지.”
 “그대가 과연 이 쌍행리보다 빠른지 시험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청년이 흐릿하게 웃었다.
 어찌 보자니 상대를 비웃는 웃음 같기도 했다.
 “후후! 꼭 결과를 보아야 하겠다는 말이군.”
 중년인은 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결연한 의지가 서려 있는 표정으로 보아 자신의 의견이 관철되지 않는 이상 물러서지 않을 기세다.
 청년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당신이 원한 일······ 후회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 쌍행리가 자네보다 빠르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겠다.”
 “후후후! 그럴 수 있기를 빌어 주지. 방법은?”
 쌍행리는 구층석탑 위에 올려져 있는 두 개의 술잔을 가리켰다.
 “저 술을 마시고 먼저 내려온 사람이 승자다.”
 “이기는 자가 천하에서 가장 빠른 자가 된다는 말이군.”
 “그렇다.”
 “후훗! 그렇다면 보여 주지, 이 유성추가 얼마나 빠른 인간인가를······.”
 이유는 바로 그것이다.
 석탑 위에 올려져 있는 두 개의 술잔.
 두 사람 중 누가 과연 천하에서 가장 빠른 인간인가 하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술잔인 것이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이 어떤 인물들인가?
 
 ― 비절풍 쌍행리!
 
 자타가 공인하기를 서슴지 않았던 천하에서 가장 빠른 인간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쌍행리의 독보적인 아성은 무너지고 말았다.
 풍신 유성추의 출현 때문이다.
 유성추의 출현 이후 사람들은 쌍행리를 접어두고 유성추를 천하에서 가장 빠른 인간이라고 말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쌍행리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 천하에서 가장 빠른 인간이 누구인가를 증명하기 위해서 두 사람은 이 자리에 선 것이다.
 “출발은 우리 두 사람이 셋을 셈과 동시에 하는 것이 어떨까?”
 “좋은 방법이다.”
 “그럼 시작하자. 하나······ 둘······ 셋······!”
 두 사람의 입에서 동시에 셋이라는 숫자가 흘러 나오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두 사람의 신형은 일시에 빛살처럼 구층석탑의 정상을 향해 솟구치며 날아올랐다.
 파팟!
 천하에서 가장 빠른 인간이 누구인가를 다투는 두 사람.
 과연 그들은 빨랐다.
 얼마나 빨랐던지 두 사람의 신형은 분간할 수도 없고 다만 흐릿한 물체가 아른거리는 것만을 느낄 뿐이다.
 그런데 한 가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최단의 거리를 계산해 넣은 듯 철저하게 일직선으로 솟구쳐 날아오르는 흐릿한 그림자가 하나, 석탑을 끼고 돌 듯 다른 흐릿한 그림자는 석탑의 주위를 돌아서 올라가는 것이었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다섯 번, 흐릿한 두 그림자가 교차되었다.
 
 탁!
 두 사람이 출발 지점으로 돌아온 것은 불과 눈을 서너 번 깜박일 시간에 지나지 않았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두 사람은 동시에 원래의 위치로 돌아온 것이다.
 그렇다면 승부는?
 
 ***
 
 “후훗! 이렇게 되면 결국 우리의 승부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고 말았군.”
 처음으로 유성추가 흐트러진 미소를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서로가 서로를 이기지 못했으니 말이다.”
 그 말, 두 사람의 승부는 결국 무승부였단 말인가?
 그런데 쌍행리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고개를 흔든 것은 바로 그때였다.
 “우리의 승부를 무의미한 한마디로 돌리기에는 우리의 빠름에는 너무 큰 차이가 있다.”
 “······.”
 “솔직히 믿어지지 않는 일이지만, 자네가 이 쌍행리보다 빠르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유성추는 묵묵하게 쌍행리를 응시했다.
 “우리 두 사람이 출발점까지 돌아온 것은 동시였다.”
 “나는 직선으로 정상까지 올라갔다 직선으로 내려왔다. 그러나 자네는 새끼를 꼬듯이 석탑을 돌며 올라갔다가 그렇게 내려왔다. 그대가 날아간 거리는 이 쌍행리가 날아간 거리보다 약 세 배는 멀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대답 대신 유성추는 희미하게 웃었다.
 “그런가?”
 그랬더란 말인가?
 뇌전이 거꾸로 작렬하듯 일직선으로 솟구쳐 날아간 사람이 바로 쌍행리였고 석탑을 끼고 돌 듯 곡선을 그리며 날아간 사람이 바로 유성추였단 말인가?
 그렇다면 적어도 유성추가 쌍행리보다 세 배는 빠른 인간이라는 것이 증명된 것이 아닌가?
 “졌다. 너는 과연 천하에서 가장 빠른 인간이다.”
 그런데 유성추가 고개를 저어 버리고 말았다.
 “본인이 당신보다 빠르다는 것은 인정할 수 있으나 천하에서 가장 빠른 인간은 아니다.”
 “천하에서 자네보다 빠른 인간은 없다.”
 “후훗! 그분을 모르는 사람들은 종종 그런 말을 하지. 천하에서 이 유성추보다 빠른 사람이 단 한 사람 있다.”
 담담하게 들려 오는 유성추의 말.
 그러나 담담한 그 한마디에 쌍행리의 눈빛은 여지없이 흔들리고 말았다.
 불신 때문이었다.
 쌍행리에게 얼마나 충격적인 불신이었는가 하는 것은 한동안 말문을 열지 못하는 쌍행리의 표정만을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유성추의 말은 담담하게 계속되었다.
 “만약 그분이 매라면 이 유성추는 참새 정도로 비교하면 가장 적절한 표현이 될 거야.”
 “믿을 수 없다.”
 “후훗! 믿어지지 않는 모양이군. 하기야 그렇겠지. 지금까지 본인이 그 같은 사실을 천구백구십구 명에게 들려줬지만, 그중에서 단 한 명도 본인의 말을 믿지 않았으니까.”
 쌍행리는 여전히 믿으려 하지 않았다.
 불신으로 아직까지 떨리고 있는 그의 눈빛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믿어지지 않는다면 당신의 이해를 돕는다는 의미에서 한 가지 사실만 더 알려주지.”
 “······.”
 “지금까지 그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은 사실인데······ 사실 이 유성추는 그분에게서 어풍비행(御風飛行)을 배웠지.”
 한동안 쌍행리의 눈빛은 정신없이 떨렸다.
 그는 까무러칠 정도로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풍신 유성추가 그에게서 어풍비행을 전수 받았다면 그는 과연 얼마나 빠를 것인가?
 쌍행리는 가볍게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그가 누구인가?”
 “그분의 이름은 목야홍.”
 쌍행리는 목야홍이라는 말을 곱씹었다.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처음 듣는 이름이다.
 “목야홍······ 처음 듣는 이름이다.”
 “그분을 알려고 하지 마라. 이 유성추가 십오 년이란 세월 동안 그분을 모셔왔지만 이 유성추도 그분의 삼 할을 알지 못하니까.”
 그 한마디를 남기고 유성추는 신형을 돌려 멀어져 갔다.
 비절풍 쌍행리!
 넋이 나간 표정으로 멀어져 가는 유성추를 응시하고 있다.
 그렇게 있기를 얼마였을까?
 쌍행리는 긴 한숨처럼 한마디를 흘려냈다.
 “만약, 그런 인간이 정말 존재한다면 이 쌍행리는 지금까지 정말 우물 안의 개구리에 불과했다는 말인가?”
 쌍행리의 음성에는 회의와 불신, 그리고 살인적인 허무가 담겨져 있다.
 
 다섯 가지의 분야에서 천하제일인 목야홍!
 진정한 그의 신분은 무엇인가?
 
 
 3장 끝없는 도전(挑戰)
 
 
 제남(齊南).
 산동성(山東省)의 성도(省都).
 위치적으로는 태산(太山)의 북방, 황하(黃河)의 남쪽 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명승고적 대명호(大明湖)가 바로 이 제남에 있다.
 
 언제부터인가?
 천하인들의 이목은 제남성에 집중되었다.
 신흥세력인 여벌이 바로 그곳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벌(女閥)―!
 
 십년 전, 여벌은 무림에 등장했다.
 그때만 해도 천하인들은 여벌을 눈여겨보지 않았다.
 원래가 무림이란 이질적인 세계.
 한 자루의 검끝에 부평초와 같은 생명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수천 년 무림의 역사상 풀잎에 매달린 아침 이슬처럼 한순간 반짝이다 명멸해 간 대소방파가 부지기수다.
 여벌 또한 그 세력 중 하나 정도로 생각했다.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서 여벌은 일취월장했다.
 십 일 만에 제남을 장악해 버렸고, 한 달 만에 산동성을 자신들의 세력으로 끌어들였다.
 일년 만에 하북(河北)과 안휘(安徽)를, 그리고 다시 일년이 흘렀을 때 절강과 하남(河南), 산서(山西) 지방을 치맛자락으로 휘감아 버렸다.
 무림의 역사가 피로 점철되어 온 것은 어쩔 수 없는 숙명이다.
 여벌 또한 피의 숙명으로 주위의 대소방파를 장악해 갔다.
 그러나 피로 점철된 역사라 할지라도 한 가지 다른 점은, 검(劍)의 피와 치맛바람이 쏟아낸 피라는 것이다.
 여벌은 치맛바람으로 무림을 장악해 나가기 시작했고 수많은 고수들이 그녀들의 기름진 배 위에서 피를 쏟으며 죽어 갔다.
 그리하여 지금에 와서는 정도무림의 종주(宗主)로 굳건한 아성을 구축하고 구파일방(九派一幇)의 명성을 능가해 버린 것은 물론이요, 당금 천하를 장악하고 있는 천황마교(天皇魔敎)에서도 감히 경시하지 못할 엄청난 세력이 되어 버렸다.
 
 대전(大殿).
 바닥에는 백옥석(白玉石)이 비단처럼 깔려 있다.
 중앙에 놓여 있는 것은 하나의 백옥석 탁자.
 탁자 앞에는 한 여인이 앉아 있다.
 여인, 실로 아름답다.
 칠흑 같은 머릿결은 구름처럼 틀어 올려 봉황잠 하나로 모았고, 그 위에는 화관을 썼다.
 조롯한 이마와 고즈넉한 콧날.
 장미의 화편(花片)처럼 강렬한 느낌을 자아내는 붉은 색감을 발하는 입술을 지녔다.
 백옥 같은 피부에 선정적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또한 일신에 걸친 자의(紫衣)는 선정적인 용모와 너무도 멋들어진 조화를 이룬다고 생각이 드는데······.
 언뜻 도도한 일면에 차가운 야망이 여인의 전신에서 풍긴다.
 
 ― 야제(夜帝) 구음화(歐陰花)!
 
 다름아닌 여벌의 총수다.
 오년 전, 그녀는 무림에 공언했다.
 
 ― 검(劍)이 아닌 여자(女子)의 미소로 나 야제 구음화는 십년 안에 무림을 여인천하(女人天下)로 만들어 버리겠다.
 그것으로 사내들의 검보다 여자들의 미소가 더욱 무서운 무기라는 것을 증명해 보이겠다.
 사람들은 부인하지 못했다.
 아름다운 미모의 여인들로 주축을 이루고 있는 여벌.
 사내들은 그녀들의 아름다운 추파에 넋을 잃고 이미 치맛자락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술[酒].
 술의 이름은 포도주.
 진홍빛을 발하는 포도주를 담고 있는 술잔은 수정배다.
 구음화는 술잔을 기울여 여유로운 모습으로 반쯤 마신 후 술잔을 내려놓았다.
 바로 그때였다.
 펑!
 폭음이 터지고 황색의 불꽃이 아스라이 허공에 피어났다.
 마치 폭죽처럼 불꽃을 바라보고 있던 구음화의 입가에 사내의 혼을 빨아들일 것만 같은 강렬한 미소가 피어난 것도 바로 그때다.
 “천요선(天妖仙)!”
 구음화의 일보 뒤에 시립해 있던 여자가 구음화를 응시했다.
 용모가 빼어난 이십오륙 세 가량의 여자다.
 특히 혜지가 서려 있는 듯한 그녀의 두 눈은 맑고 인상적이다.
 
 ― 혈매화(血梅花) 천요선!
 
 여벌의 군사(軍師)이자 제이인자이다.
 “하명하세요.”
 허공 중에 흩어지는 황색 불꽃에서 구음화는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황색 불꽃이 피어났다. 이는 목야홍이 아홉 관문 중 네 관문을 통과했다는 증거······ 그는 과연 이 구음화를 실망시키지 않고 있다.”
 천요선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우리 여벌이 생긴 이래 네 개의 관문을 통과한 사람은 목야홍이 세 번째입니다.”
 구음화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그들 또한 제오 관문을 통과하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가장 비참한 죽음이었지.”
 “인간의 능력으로 아홉 관문을 모두 통과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능력으로는 통과할 수 없도록 구성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말인즉, 인간의 몸으로는 도저히 아홉 관문을 모조리 통과할 수는 없다는 말인데······.
 두 사람은 여전히 황색 불꽃이 피어났던 허공을 응시하고 있다.
 그렇다고 아직까지 황색 불꽃이 허공에 남아 있는 것은 아니다.
 “이 구음화가 필요로 하는 인간은 신의 능력을 지닌 사내다.”
 “목야홍이 과연 아홉 관문을 통과할 수 있을까요?”
 구음화는 모호한 눈빛으로 허공을 여전히 응시하고 있다.
 어디를 보고 있는 듯하면서도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은 듯한 그런 눈빛이다.
 “처음에는 나도 삼 할의 확률을 생각했다.”
 “그렇다면 지금은?”
 “칠 할의 확률을 주고 싶다. 어쩌면 그 이상이 될 수도 있고······.”
 순간적으로 천요선의 눈빛이 미미하게 흔들렸다.
 ‘그렇다면······.’
 천요선은 느낀 것이다.
 구음화가 칠 할의 확률을 운운하기는 하였으되 그녀는 지금 목야홍이 아홉 관문을 통과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그자의 능력을 너무 높게 평가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구음화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충분히 그럴 만한 능력이 있는 사내다.”
 구음화의 음성에는 확고한 믿음이 서려 있는 듯했다.
 천요선에게는 그것이 충격이었다.
 원래가 타인의 능력을 평가하는 데 있어서는 무척 인색한 여자가 바로 구음화다.
 그런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천요선이다.
 ‘그가 그토록 대단한 인물인가?’
 천요선은 반신반의했다.
 그런데 목야홍이라고 했는가?
 목야홍.
 익숙해진 이름이다.
 광혼은 그를 천하제일의 쾌검이라고 말했으며, 황보충은 천하제일의 부호라고 말했다.
 또한 풍랑군은 천하제일의 풍류객은 바로 목야홍이라고 극찬하였으며, 황사 을지비연은 천하제일의 거유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뿐만이 아니다.
 풍신 유성추는 말하기를 천하에서 가장 빠른 인간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 그가 구음화와 천요선의 입에서 거론되고 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통과하지 못했다는 여벌의 아홉 관문에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구음화가 느리게 몸을 일으켰다.
 희미하나 무엇인가 깊은 의미가 서려 있는 미소가 그녀의 얼굴에 피어나 있다.
 “나는 이제 그를 맞을 준비를 해야겠다.”
 그 한마디를 남기고 구음화는 내실을 향해 걸음을 옮기고 있다.
 혈매화 천요선.
 구음화가 떠난 순간 그녀의 눈빛이 미묘하게 변해 갔다.
 ‘목야홍! 그자에 대해 갑자기 궁금해지는군.’
 
 ***
 
 한 사람.
 이십 세 가량 되어 보이는 청년이다.
 그런데 청년의 용모를 보라.
 너무 신비하고 아름답다.
 인간이 지닐 수 있는 가장 완벽한 구조와 아름다움으로, 강인함과 고귀한 기품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일신에 걸친 것은 눈부신 백라화복(白羅華腹).
 윤기 흐르는 머리는 영웅건 하나로 묶었다.
 백옥 같은 피부에 헌앙한 이마에서는 호탕한 기질을 느낄 수 있다.
 먹을 흠뻑 찍어 발라 놓은 듯한 짙은 눈썹.
 깊이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깊고 혜지가 서려 있는 한 쌍의 눈은 성안(星眼)이라 함이 옳다.
 태산준령 같은 영준한 콧날에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붉은 색감을 지닌 입술이다.
 뿐인가?
 손에는 백색 보검(白色寶劍), 발에는 하얀 가죽신발을 신었다.
 관옥 같은 용모는 천하제일의 미남자요, 훤칠한 전신에서 풍기는 기품은 천하제일의 풍류객다운 호탕함과 절속함이다.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청년의 눈은 한곳에 고정되어 있다.
 하나의 편액이다.
 편액에는 용비봉무한 휘체로 이렇게 쓰여져 있다.
 
 <제오 관문― 입문사자(入門死者)>
 
 편액을 응시하는 청년의 얼굴에 흐릿한 미소가 서렸다.
 ‘들어오는 자 반드시 죽는다······ 광오한 말이군.’
 한동안 편액을 물끄러미 응시하던 청년.
 그렇게 있기를 잠시, 청년은 다시금 영원히 열리지 않을 듯이 꽉 닫혀져 있는 철문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굳게 닫혀진 철문.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뜻 모를 전율을 느끼게 한다.
 끄릉!
 집채만한 암석이 강제로 밀려나는 듯한 그 소리는 청년이 철문 앞에 당도했을 때 철문이 자동적으로 열리며 토해낸 괴음이었다.
 처음으로 청년의 얼굴에 엷은 긴장감이 스쳐 간 것은 바로 그때였다.
 ‘오차 관문이다. 이곳까지 오면서 내가 느낀 것이라면 관문을 통과할수록 더욱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청년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놓고 있었다.
 주저함이라든가 두려운 빛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표정이다.
 ‘사실 나는 중원에 떠도는 소문을 전적으로 믿지는 않았다. 일차 관문을 통과한 순간까지만 해도 그랬다. 그러나 이차 관문을 통과하면서 나는 알았다. 여벌의 아홉 관문을 통과한 사람이 지금까지 단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청년은 열린 철문 앞으로 들어섰다.
 안은 석실이었는데······.
 밀폐된 석실은 의외로 넓었다.
 족히 오십여 평은 되어 보였다.
 사방 벽에는 석등이 밝혀져 그런대로 밝은 편이었으되, 밀폐된 석실을 희미하게 밝히고 있는 석등의 불빛으로 인해 귀기스러운 기운이 감돌고 있어 더욱 음산하기만 하다.
 끄르릉!
 청년이 완전히 석실로 들어서자 철문은 다시 괴음을 토하며 다시 닫혀 버렸다.
 침중한 빛이 청년의 눈에 스쳐 갔다.
 ‘철저하군. 일단 안으로 들어선 이상 통과하지 못하면 죽어야 한다는 말이군.’
 청년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여벌의 오차 관문에 들어선 이상 자신에게 주어진 길은 오직 한 가지, 관문을 통과하는 것만이 남아 있다는 것을 청년은 알 수 있었다.
 물론 그것이 불가능할 경우, 자신은 그 어떤 방법으로든 목숨을 부지하지 못한다는 것도 알았다.
 그러나 두려운 기색이라곤 없었다.
 이미 이런 상황을 짐작하고 있었다는 듯한 그런 담담한 눈빛이다.
 ‘후훗! 비록 여벌의 아홉 관문이 오직 죽음만이 기다리는 사지라고는 하나 결코 이 목야홍의 목적을 뒤바꿀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것이라고는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가장 중요시 여기는 것은 여벌의 아홉 관문이 아니라 바로 여벌의 총수인 야제 구음화다.’
 실로 대단한 자부심과 자신에 대한 믿음이 넘쳐흐르는 말.
 여벌이 생긴 이래 단 한 명도 통과하지 못했다는 여벌의 아홉 관문이다.
 그럼에도 청년의 음성에는 그것을 별로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다는 그런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목야홍이라고 했는가?
 천하제일쾌검이며 천하제일부호이자 천하제일석학이며 천하제일의 풍류객임과 동시에 천하에서 가장 빠른 인간이라는 목야홍.
 그렇다면 이 청년이 바로 그 장본인이란 말인가?
 각설하고, 석실로 들어선 목야홍의 뇌리에 스쳐 가는 음성이 있었으니······.
 그것은 이곳에 오기 전 설산옥녀 옥비설이 남긴 말이었다.
 
 “천황마교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먼저 여벌을 우리의 전위세력으로 삼아야 해요.”
 “여벌을 얻으라는 말이군.”
 “가능하다면 그렇게 하세요. 만약 당신이 여벌을 얻을 수 있다면 천황마교의 세력 중 삼 할을 분쇄한 거나 다름없어요.”
 “후훗! 그러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야제 구음화를 정복하지 않으면 안 되겠군.”
 “그러나 조심하세요.”
 “······.”
 “여벌에서도 당신이 가장 조심해야 할 인물은 야제 구음화예요. 상황에 따라서는 당신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어요.”
 “구음화가 그렇게 대단한가?”
 “지금까지 수많은 중원의 젊은 기재들이 그녀의 쾌락팔식에 제압당해 그녀와 정사를 가졌지만 살아 남은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쾌락팔식······ 꽤 흥미로운 이름이군.”
 “당신이 조심해야 할 첫째로는 그녀의 쾌락팔식이에요. 일단 쾌락팔식에 빠져들면 무학의 고하를 막론하고 살아 남을 수 없어요.”
 
 목야홍의 얼굴에 흐릿한 미소가 스쳐 갔다.
 사실이 그러했다.
 목야홍이 죽음의 관문이란 여벌의 아홉 관문에 도전하고 있는 것은 한 가지 목적 때문이다.
 여벌을 우호세력으로 삼아 천황마교에 대항하기 위해서인 것이다.
 ‘후훗! 신화 탄생의 서장은 이 목야홍으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그것도 이 여벌에서.’
 
 ***
 
 가장 완벽한 대조를 이루는 사람들이다.
 키다리와 난쟁이.
 한 사람의 키는 무려 구 척에 달한다.
 반면, 또 한 사람의 키는 잘해야 삼 척이나 될까 하다.
 난쟁이는 키다리의 목에 목마를 타고 있는데 난쟁이의 상체가 너무 짧아 얼핏 보면 목이 두 개인 사람이 아닌가 착각할 정도다.
 괴이한 두 사람은 괴이한 모습으로 석실의 중앙에 버티고 서 있었다.
 목야홍은 그들의 이 장 앞에 걸음을 멈추었다.
 칼날처럼 예리한 무형의 살기가 목야홍의 전신으로 엄습해 왔다.
 ‘한 번쯤 인간의 몸으로 감당할 수 없는 지옥수련을 거친 인물들이다.’
 고수는 고수를 알아본다고 했던가?
 청년은 두 사람의 전신에서 파도처럼 밀려오는 칼날처럼 예리한 무형의 살기에서 그들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지옥수련을 닦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았다.
 목야홍의 생각이 거기까지 미쳤을 때, 키가 구 척에 달하는 인물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나는 대곡(大哭)이다.”
 대곡이란 자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대곡의 목에 목마를 타고 있던 난쟁이가 공중곡예를 부리며 지면으로 사뿐히 뛰어내렸다.
 팟!
 그 신법은 심히 절륜하여 마치 하나의 낙엽이 떨어지듯 미세한 음향마저 발산하지 않았다.
 가볍게 지면으로 내려선 난쟁이가 이번에는 말했다.
 “나는 소곡(小哭)이다.”
 소곡의 말이 끝난 순간 두 사람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우리는 이곳에서 너를 죽여야 한다.”
 청년이 잔잔한 미소를 머금으며 자신의 코를 가리켰다.
 “나 목야홍을?”
 “그렇다.”
 “후훗! 여벌에서는 손님을 이렇게 환대하는가?”
 목야홍의 말은 아무런 상관도 없다는 듯 대곡이 싸늘하게 웃으며 목야홍 앞으로 한걸음 다가섰다.
 “나 대곡은 한 가지 불문율을 지니고 있다.”
 “그것이 무엇인가?”
 “나보다 키가 작은 인간은 모조리 죽인다는 것이다.”
 “본인이 죽어야 할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인가?”
 대곡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네가 이 대곡보다 키가 더 큰 인간이었다면 나 대곡은 결코 너를 죽이려 하지 않을 것이다.”
 목야홍은 어이없다는 듯 실없는 웃음을 흘렸다.
 “후훗! 결국 그대보다 키가 작다는 것이 죽어야 할 죄라는 말이군.”
 실로 어이없는 말이다.
 키라는 것이 결코 인위적으로 늘이고 줄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천부적으로 타고난 것으로써 운명이나 다를 바 없으며 인간의 능력으로는 어쩔 수 없는 그런 불가항력이 아닌가?
 그런데 자신보다 키가 작다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 사람을 죽인단다.
 목야홍이 실로 어이없는 웃음을 흘리며 소곡에게 시선을 돌렸다.
 소곡은 음사한 미소를 흘리며 목야홍의 전신을 훑어 내렸다.
 “나 소곡이 너를 죽여야 할 이유도 한 가지뿐이다.”
 “본인의 생각이 틀리지 않다면 그대보다 키가 크다는 이유 때문이겠지.”
 “흐흐흐! 생각보다는 머리 회전이 빠른 놈이군. 나 소곡은 나보다 키가 큰 인간은 결코 살려두지 않는다.”
 “후훗! 그럴 만한 이유라도 있는가?”
 소곡은 사악한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이유 따위는 필요치 않다. 중요한 것은 너를 죽여야 한다는 것이다.”
 “후훗! 편한 대로 생각하는 인간이군.”
 “아마 그럴 것이다.”
 “후훗! 그렇다면 세상 사람들이 모두 그대들의 손에 죽어야 하겠군.”
 “그것을 알았다면 이제 죽어 줘야겠다.”
 그 한마디가 끝남과 동시에, 팟! 소곡의 신형이 허공으로 삼 장 가량 솟아오르더니 대곡의 목에 걸터앉았다.
 참으로 괴이한 모습인데, 그 순간에 이미 두 사람의 쌍장에서는 산악 같은 대거력이 표출되며 목야홍을 향해 해일처럼 밀려오고 있었다.
 쿠오오오!
 해일처럼 밀려오는 와선형의 대거력.
 일단 스치는 날이면 뼈마저도 온전히 보존할 수 없을 것만 같다.
 대곡의 공격 부위는 주로 하반신이었으며 소곡의 공격 부위는 반대로 상반신이었다.
 목야홍의 얼굴은 굳어져 있었다.
 참으로 괴이한 공세다.
 목마를 태우고 탄 채 공격을 가하는 두 사람의 모습도 목야홍으로서는 생전 경험하지 못했던 것이지만, 두 사람의 공세는 실로 엄청난 위력을 지니고 있을 뿐만이 아니라 무학 또한 다채롭고 괴이했다.
 사공(邪功)이 있는가 하면 마공(魔功)이 있고, 정공(正功)이 있는가 하면 밀공(密功)이 함유되어 있다.
 휘젓고 내갈기는 손짓은 요란하였으되 무학과 무학과의 연결은 실로 매끄럽고 유려하다.
 ‘과연 여벌의 제자답다.’
 목야홍은 놀랐다.
 불과 오차 관문을 지키는 무사들의 무학 수준이 무림 절정고수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들보다 고절한 무학을 소유한 고수가 여벌에는 얼마나 존재하는지 알 수 없다.
 생각이 이어지고 있는 동안에도 산악 같은 공세는 목야홍의 전신을 휩쓸어 오고 있었다.
 쿠오오오!
 그러던 한순간이었을까?
 더 이상은 방관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스르릉!
 목야홍은 힘차게 자신의 검을 뽑아 들었다.
 
 검(劍).
 검의 길이는 석 자 일곱 치.
 눈이 시리도록 하얀 검신(劍身)을 석등의 불빛 아래 드러내고 있는 백색 보검.
 그 이름은 추로신검(秋露神劍)이다.
 피 한 방울 묻지 않는다는 목야홍의 애병이다.
 촤라라!
 목야홍의 좌수가 허공에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부챗살처럼 펼쳐지는 장심을 타고 강기의 회오리가 휘몰아치기 시작한다.
 콰우우우!
 해일처럼 일어나며 대곡과 소곡이 표출해 낸 장력과 맞부딪쳐 가는 목야홍의 장력.
 십팔나한장.
 그것은 바로 소림무학(少林武學)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십팔나한장이었으며, 이왕 내친 김이라는 듯 휘젓는 손길에 따라 회오리치듯 일어나는 나선형의 대거력.
 달마반선수(達磨盤禪手)가 있고 불문무학의 정수라는 대승반선강기가 있는가 하면 밀종대수인(密宗大手印)이 그 뒤를 따른다.
 뿐인가?
 그의 우수가 덩달아 춤을 추니, 대곡과 소곡의 공세를 차단하며 허공을 가르는 검법은 다름아닌 천년 소림이 자랑하는 달마삼검(達磨三劍) 중 제일초식인 일주마천(一柱磨天)이다.
 일주마천이 채 그 위력을 드러내기도 전에 일주마천은 다시 달마삼검 중 제이초식으로 화려하게 전환하고,
 빙글, 추로신검의 검봉(劍鋒)이 허공에서 한 번 호선을 그으며 줄지어 이어지는 것은 달마삼검 중 제삼초식인 천운경혼(天雲驚魂)이며, 두 사람이 놀라움을 감추기도 전에,
 츠파앗!
 환상처럼 대기를 가른 것은 연달아 펼쳐지는 달마삼검과 소림의 천불장(千佛掌)을 검식으로 운용해서 펼친 항마여래(降魔如來)가 아닌가?
 목야홍의 일신에서 쏟아지는 가공할 무예들.
 이것이 어찌 인간이 흔히 말하는 무(武)요, 술(術)인가?
 정(靜)이 있는가 하면 동(動)이 있고 쾌(快)가 있는가 하면 변(變)이 있으니, 이는 만상(萬象)의 묘가 그의 전신에서 뿜어지는 것 같았다.
 “으윽!”
 “음!”
 대곡과 소곡.
 목야홍의 일신에서 쏟아져 나오는 가공할 무학 앞에 참담한 신음성을 흘리며 정신없이 무려 오 장 가량이나 물러났다.
 그런 그들의 얼굴에 서린 것은 불신이요, 대곡의 앞가슴 옷자락은 거미줄처럼 베어져 지면에 떨어져 있었으며 소곡의 목 언저리에는 가느다랗기는 하되 길다란 혈선이 그어져 있었으며, 그 사이로는 쉼 없이 피가 흘러 나오고 있다.
 정신없이 오 장 가량이나 물러선 후에야 간신히 신형을 바로잡은 대곡과 소곡.
 은은하게 떨리는 시선으로 목야홍을 응시하는데······.
 무슨 사람이 저러한가?
 아무런 일도 없었던 사람처럼 목야홍은 흐릿한 미소를 머금은 채 두 사람을 응시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그것도 잠깐, 목야홍은 이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두 사람에게 다가온다.
 희미한 미소가 떠올라 있는 입술이 열리며 잔잔한 음성이 흘러 나온 것도 바로 그때였다.
 “본인의 발걸음을 막고 싶다면 그렇게 해도 무방하다. 그러나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것은 이번에도 본인의 검이 사정을 보아주리라는 생각은 버려야 할 것이다.”
 고저가 없이 잔잔함으로 일관된 음성이었으되 두 사람은 감히 목야홍의 발걸음을 막으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알았던 것이다.
 자신들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인간이라는 것을.
 다만 신음처럼 한마디를 흘려내고 있었으니······.
 “너는 바로 소림의 제자였구나?”
 목야홍은 두 사람이 비켜 선 사이로 지나치며 담담하게 내뱉었다.
 “후훗! 소림의 무학이 쓸 만한 것 같아 배워 두었을 뿐 중이 된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소곡과 대곡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통과!”
 두 사람이 그렇게 말했을 때 목야홍은 이미 석실에 남아 있지 않았다.
 
 펑!
 적색 불꽃.
 아스라이 높은 허공으로 피어나고 있었다.
 마치 폭산되는 폭죽처럼 화려하게.
 
 ***
 
 사라라라!
 감미롭고 화려한 유혹으로 채색되어 있는 그 소리는 매미가 껍질을 벗듯 한 여인이 일신에 걸치고 있던 의복을 벗어 내릴 때 발산된 음향이다.
 바람에 실려온 음률처럼 감미로운 그 소리는 아마 사내들이 가장 강렬한 호기심을 지니고 있는 음향일 게다.
 
 두 명의 시비가 구음화의 의복을 벗겨 내리고 있다.
 사르르!
 미끄러지듯이 감미로운 음향과 함께 여인의 몸을 감싸고 있던 한 가닥의 신비가 흘러내렸다.
 그와 함께 국화 향기 같은 여인의 체향이 물씬 풍긴다.
 그 화려하고 관능적인 미태를 어찌 표현할까!
 진탕되는 염기와 혼을 빨아들일 듯한 강렬하면서도 도전적인 모습으로 옷을 벗어 가는 그 자태란 아무리 무정한 사내라도 열흘쯤 침을 흘리고 말 모습이 아니던가?
 스르르르!
 또 하나의 신비는 아릿한 전율마저 담은 채 흘러내렸다.
 서러워 안으로만 감추고 있던 황홀한 여체는 흘러내린 신비 속에서 드러난다.
 사르르 홍조를 담은 가늘고 긴 목은 학(鶴)을 닮아 슬프다.
 물결치듯 갸름한 호선으로 이어지는 어깨선의 그 황홀함과, 오랜 날을 사랑하는 사람의 손길만을 기다려온 듯 팽만한 두 개의 젖가슴엔 이미 뜨거운 사랑의 열정이 서려 있고, 한줌 손아귀에 들어올 듯 가늘고 잘록한 허리는 가벼운 미풍에도 흔들릴 것만 같아 보인다.
 뿐만이 아니다.
 기름진 아랫배를 지나는 그곳, 인간의 존속 본능이 꿈틀거리는 비림은 흑(黑)과 백(白)이 한데 어우러져 더욱 현란하고 신비스럽다.
 
 원형의 욕조.
 유황수가 찰랑거리고 있다.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것은 물안개 같은 뽀얀 수증기.
 의복을 벗어버린 구음화는 뽀얗게 피어나는 수증기를 헤치며 욕조 속에 몸을 담근다.
 바로 그때였다.
 천요선이 욕실로 들어서며 감정 없는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적색 불꽃이 피어났습니다.”
 구음화는 시비들에게 몸을 내맡긴 채 희미하게 웃었다.
 혼을 빨아들일 것만 같은 강렬한 마력이 담겨져 있다.
 “오차 관문을 통과했다는 소리군.”
 “여벌이 생긴 이래 지금까지 오차 관문을 통과한 사람은 그가 처음입니다.”
 “그만큼 그가 강한 인간이라는 증거다.”
 “······.”
 “나의 생각이 틀리지 않다면, 그는 구차 관문까지도 통과하는 최초의 인물이 될 것이다.”
 구음화는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를 머금은 채 가볍게 물을 퍼 올려 젖가슴을 쓸어 내렸다.
 촤라라!
 물보라가 피어나고 유황수는 구음화의 가슴 융기를 타고 흘러내린다.
 목욕을 즐기며 약간은 달뜬 음성을 구음화가 발산했다.
 “이 목욕이 그를 위한 것이 될 수 있다면 더욱 좋겠다.”
 
 ***
 
 두 사람.
 그들의 이름은 비육과 갈육.
 직책은 여벌의 아홉 관문 중 육차 관문을 지키는 수호무사다.
 두 사람 몸무게의 합은 삼백팔십 근.
 두 사람의 몸무게치고는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개개인의 몸무게다.
 한 사람은 능히 삼백삼십 근이 넘어 보인다.
 반면 또 다른 한 사람.
 말라도 너무 말랐다.
 말라비틀어진 장작개비를 떠올릴 정도로 그는 말랐다.
 “이곳은 육차 관문이다.”
 “너의 무덤은 이곳이 될 것이다.”
 두 사람은 장단을 맞추듯 그렇게 빠르게 말을 뱉었다.
 섬칫하도록 가라앉은 그 음성의 이면에는 몸서리쳐지는 살기가 깔려 있다.
 목야홍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지극히 담담한 시선으로 두 사람을 응시하고 있을 뿐이다.
 비대한 자가 말을 계속했다.
 “나는 비육(飛育)이라 한다. 나보다 마른 사람은 모조리 죽이는 것이 나의 취미다.”
 비육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비쩍 마른 사람이 자신의 코를 가리켰다.
 “나는 갈육(葛育), 나보다 살이 찐 인간은 꼭 죽인다.”
 두 사람의 소개가 끝나자 목야홍의 얼굴에는 여지없이 흐릿한 미소가 떠오르고 말았다.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다는 듯 한바탕 호쾌한 웃음을 터뜨리고 마는 목야홍.
 “하하하! 썩 잘 어울리는 이름이군, 살찐 고기와 마른 고기라는 그대들의 이름은······.”
 목야홍의 한마디에 두 사람의 얼굴이 무참하게 일그러지고 말았다.
 ‘뭐라고? 내가 살찐 고기라고?’
 ‘죽일 놈! 감히 나 갈육을 두고 마른 고기라니······.’
 사실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이지만, 그렇지 않아도 젊은 시절부터 몸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은근히 부아가 치밀었던 두 사람이다.
 그런데 목야홍은 비육(飛育)을 비육(肥肉)으로 해석하고, 갈육(葛育)을 갈육(竭肉)으로 해석해 버리는 것이 아닌가?
 분노로 인해 얼굴이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진 두 사람.
 “네놈의 그 잘난 주둥아리부터 교육시키겠다.”
 “천하에서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네놈을 찢어 죽이겠다.”
 그렇게 욕설을 퍼부은 두 사람.
 팟!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마치 약속이나 한 듯 두 사람의 신형이 동시에 번쩍이며 목야홍을 향해 폭사해 갔다.
 그런 두 사람을 응시하며 목야홍은 흐릿한 미소를 떠올렸다.
 ‘후훗! 저런 몸집에 빠르면 얼마나 빠르다고······, 갈비처럼 마른 저자라면 그런대로 빠를 수도 있겠지.’
 목야홍은 단정지어 버렸다.
 비육이 아무리 빠르다고 해도 어린아이가 달리는 것보다 더 빠르지는 않을 것이라고.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다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생각해 보라.
 삼백 근이 넘는 엄청난 체구가 빠르면 얼마나 빠르겠는가?
 그렇기에 목야홍이 별로 비육을 경계하지 않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게다.
 그러나 목야홍이 자신의 생각이 잘못된 판단이라는 것을 안 것은 바로 다음 순간이다.
 번쩍!
 일단 비육이 검을 뽑아 들고 그의 손이 느릿하게 호선을 그리자 한 가닥 파리한 검광은 이미 그 순간에 피어올랐으며, 피어난 검광은 일순간에 목야홍의 가슴을 찔러 오는 것이 아닌가?
 빨랐다.
 목야홍을 찔러 오는 비육의 검도 빨랐지만 그보다 더 빠른 것은 검이 채 형상으로 드러나기도 전에 목야홍을 섬칫하게 압박해 오는 검광과 첨예한 예기였다.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빠름.
 삼백 근이 넘는 몸집에서 도저히 우러나올 수 없는 그런 빠름이었다.
 목야홍의 눈빛이 처음으로 흔들렸다.
 자신의 판단이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이런······ 완전히 반대다.’
 그러했다.
 목야홍의 예상과는 전혀 반대로 비육의 몸놀림은 눈부시도록 빨랐다.
 한 번의 오판으로 인해 목야홍은 일순간에 위험에 처했다.
 비육의 검은 이미 목야홍의 몸과 약 한치 가량을 남겨 둔 거리까지 육박해 왔던 것이다.
 위험을 느낀 목야홍, 번개처럼 그는 신형을 틀었다.
 파파팟!
 딴에는 극단의 빠름으로 허공과 지면을 사이에 두고 신형을 무려 서른여섯 번이나 꺾고 뒤집었으나 약간은 늦고 말았다.
 파앗!
 섬랄한 파육지음이 목야홍의 오른쪽 어깨에서 터지고, 기다렸다는 듯 섬연한 피분수가 그곳에서 뿜어져 나왔다.
 ‘음!’
 무거운 신음성을 토해낸 목야홍.
 지혈할 생각도 않고 그는 비육을 응시했다.
 그런 그의 얼굴에 떠오르는 것은 믿을 수 없게도 자조적인 미소다.
 “후훗! 그랬었군. 누군가 이곳에서 죽임을 당했다면 그것은 그들이 갈육만을 경계했을 뿐 그대를 너무 경계하지 않았던 탓이겠군. 그것이 바로 그대들의 함정이었고 말이다.”
 이유는 바로 그것이었다.
 실상 빠르리라 예상했던 갈육은 느리지만, 정작 몸놀림이 빠른 사람은 비대한 비육이었기 때문이다.
 비육이 음흉한 웃음을 흘렸다.
 “흐흐흐! 그것을 알았다고 해서 결과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후훗! 과연 그럴까?”
 문득 목야홍의 얼굴에 싸늘한 미소가 피어났다.
 피를 말려 버릴 듯한 미소다.
 “후훗! 말해 두지만 본인의 몸에 상처를 남긴 사람은 그대가 처음이다. 그 대가로 본인은 그대의 한쪽 귀를 잘라 버리겠다.”
 “미친 소리······.”
 비육과 갈육의 신형이 번뜩이며 재차 목야홍을 향해 폭사해 왔다.
 움직이는 그들의 신형보다 더 빠른 것이 있다면, 검(劍)!
 피의 숙명을 타고난 창백한 검이다.
 번쩍!
 창백하게 대기를 섬단하는 두 가닥의 빛.
 그 빛은 피어나는 순간에 벌써 목야홍의 하반신과 목을 쓸어왔다.
 일순 허공은 창백한 검영과 검광에 가려졌고, 목야홍은 그 검광에 묻혀 버린 듯했다.
 풍전등화(風前燈火) 같은 그 위기 속에서 믿을 수 없게도 목야홍의 얼굴에 창백한 미소가 피어났다.
 그리고 그 미소의 여운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목야홍의 우수가 추로신검의 검자루를 잡아갔고, 그렇게 느낀 순간에 검광은 피어났다.
 번쩍!
 창백하게 피어나는 일광백섬.
 그것은 바로 천년 무당이 자랑하는 양의검도였으며, 양의검도가 그 위력을 발휘하기도 전에, 츠파앗! 대기를 휘말아 올리는 파공음 속에서 덩달아 펼쳐지는 검은 무당의 통천태극검(通天太極劍)이 아닌가?
 목야홍의 검에서 무당의 절예들이 펼쳐지자 허공에 떠오르는 검은 검영과 검광뿐이었으며 비쾌하게 번쩍이는 것은 번개처럼 움직이는 목야홍의 신형이다.
 그러던 한순간이었다.
 비육과 갈육의 눈빛이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리고 말았다.
 부르르!
 그들은 보았던 것이다.
 섬(閃)!
 자신들이 사력을 다해 발출한 검망이 일순간에 환상처럼 갈라지며 그 사이로 가공무비할 속도로 폭사해 오는 일광백섬(一光白閃)을.
 그리고 그것을 보았을 때 한 가지 사실에 그들은 창백한 전율을 일으켰다.
 ‘피할 수 없다.’
 ‘너, 너무 빠르다. 천하에 이렇게 빠른 검법이 있었다니······.’
 바로 그것이었다.
 자신들에게 그 어떤 절세적인 신법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빛만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을 두 사람은 느낀 것이다.
 그렇게 느낀 순간에 백섬(白閃)은 이미 두 사람의 신체 일부분을 창백한 전율로 훑고 지나갔다.
 “윽!”
 “크윽!”
 무거운 비명성을 거의 같은 순간에 토해낸 두 사람.
 본능일까?
 비육은 창백한 전율이 훑고 지나간 자신의 오른쪽 귀로 손을 가져갔고 갈육은 왼쪽 귀를 더듬었다.
 그들의 얼굴이 창백하게 탈색된 것도 바로 그때였다.
 ‘이런······.’
 ‘귀······ 귀가 없다.’
 허전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 자리에 있었던 귀가 잡히지 않았다.
 엉겁결에 두 사람은 귀를 잡았던 손을 눈앞으로 가져왔다.
 시뻘건 피.
 놀란 두 사람의 시선은 바닥으로 향했고, 그들은 자신들의 귀로 보이는 두 개의 귀가 땅바닥에 떨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
 지극히 무심한 목야홍의 음성이 두 사람의 하나 남은 귓전으로 파고들었다.
 “그대들의 귀를 잘라 버린 것은 본인의 몸에 검흔을 남겼던 것에 대한 보답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죽음을 원한다면 죽여 줄 수도 있다.”
 두 사람은 음성이 들려 온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목야홍은 두 사람을 지나쳐 서서히 걸음을 옮기고 있다.
 후광인 양 담담한 한마디가 목야홍의 어깨너머로 흘러 나왔다.
 “앞으로는 듣는 것에 상당한 어려움을 느껴야 할 것이다.”
 그것을 끝으로 목야홍의 음성은 더 이상 들려 오지 않았다.
 
 펑!
 청색 불꽃이 아스라이 허공으로 피어올랐다.
 목야홍이 육차 관문을 통과했다는 보고다.
 
 
 4장 여자의 무기는 육체(肉體)다
 
 
 용정향(龍井香)이라는 향(香)이 있다.
 정력 증진에 영험한 효과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사서(史書)에 전하는 말로는 당(唐)의 안록산(安綠山)이 현종(玄宗)에게 용정향을 바쳤으며, 현종은 양귀비(楊貴妃)와 더불어 용정향의 효험으로 오랫동안 운우지락을 누렸다고 한다.
 
 손[手].
 도합 네 개의 아름다운 손이 한 여인의 나신에 향(香)을 바르고 있다.
 향의 이름은 용정향, 정력 증진에 효험이 있다는 향이다.
 향을 손에 듬뿍 바르고, 그 손은 이내 여인의 백옥 같은 나신을 스쳐 간다.
 학처럼 긴 목에서 갸름한 호선으로 이어지는 어깨를.
 풍만한 젖가슴에 쓸어 내리듯 향을 바르고 다시 기름진 아랫배를 지나 존속 본능의 신비가 도사리고 있는 옥기 근처까지 향을 바른다.
 더 정확히 말하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용정향을 바른다.
 야제 구음화!
 그녀는 나신에 향을 바르는 두 시비의 손길에 몸을 내맡긴 채 조용히 두 눈을 감고 있다.
 살포시 두 눈을 감고 있는 구음화의 얼굴에는 엷은 웃음이 걷히지 않고 있다.
 그러다 문득 구음화가 꽃잎 같은 입술을 나풀거렸다.
 “한군데도 빠뜨리지 말고 발라라. 목야홍이 이 향에서 벗어날 수 없도록 진하게 발라라.”
 두 명의 시비는 나직하게 대답한다.
 “알겠사옵니다.”
 “천하의 그 어떤 사내도 용정향의 향기에 넋을 잃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옵니다.”
 구음화의 얼굴에 요사스런 기운이 서렸다.
 “호홋! 목야홍을 유혹할 수 있는 길이라면 나는 그 어떤 것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곧 나를 위한 길이니까.”
 구음화의 음성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펑!
 무엇인가 터지는 폭발음이 구음화의 귓전으로 은은하게 들려 왔다.
 구음화의 얼굴에 서려 있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어떤 일에 만족하였을 때 떠올리는 그런 의미가 서려 있는 미소다.
 ‘호홋! 목야홍이 육차 관문을 통과했다는 신호군.’
 구음화는 보지 않아도 안다.
 ‘목야홍! 놈은 예상했던 것보다 더욱 뛰어난 인간이다. 그렇다고 해도 이 구음화의 손에서 벗어나지는 못한다.’
 구음화의 생각이 여기까지 미쳤을 때, 문이 조심스럽게 열리며 천요선이 구음화에게 다가왔다.
 “목야홍이 육차 관문을 통과했습니다.”
 구음화는 눈을 감은 채 가볍게 대꾸했다.
 “알고 있다.”
 “지금쯤 칠차 관문에 도전하고 있을 것입니다.”
 “칠차 관문을 지키는 자들은 누구냐?”
 “옥인(玉人)과 추인(醜人)입니다.”
 “무학 수준은?”
 “구대문파 장문인들과 겨루어도 결코 패하지 않을 것입니다.”
 광오한 말.
 구대문파 장문인들이 누구인가?
 정도무림의 종주라고 할 수 있는 구파일방의 최고 수뇌다.
 여벌의 칠차 관문을 지키는 일개 수호무사들이 그런 구파일방의 장문인들과 겨루어도 패하지 않는다니······.
 천하에 이런 말을 이토록 쉽게 뱉어 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구음화는 희미한 미소를 피워 물며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고 해도 결코 목야홍을 잡아 두지는 못한다. 이 구음화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그가 칠차 관문을 통과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얼마만큼 빨리 그곳을 통과하느냐 하는 것이다.”
 담담하게 구음화가 뱉어 버린 그 한마디에 천요선의 눈빛이 가볍게 흔들렸다.
 “그렇다면······.”
 “본녀는 이제 그가 구차 관문까지 얼마나 짧은 시간 안에 통과하느냐 하는 것에 관심을 갖기로 했다.”
 말의 의미는 확실해졌다.
 구음화는 지금 목야홍이 구차 관문까지 통과할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
 
 ***
 
 추남(醜男)과 미남(美男).
 그들의 차이는 과연 무엇일까?
 가장 먼저 느낌의 차이를 들 수 있다.
 잘생겼다는 것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시선의 즐거움을 주지만 추남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역겨움을 느끼게 한다.
 두 사람, 만약 누군가가 이 두 사람을 보았다면 그는 두 번 놀라야 할 것이다.
 한 번은 인간이, 그것도 사내가 너무 잘생겼다는 것에 놀라야 하고 또 한 번은 인간이 너무 못생겼다는 사실에 놀라야 한다.
 극(極)과 극(極)의 대조.
 그렇다.
 빼어나도록 잘생긴 인간과 인간의 모습이 어디까지 추악해질 수 있는가, 그 한계를 느끼게 하는 두 사람이다.
 
 칠차 관문에 들어선 목야홍은 회의를 느꼈다.
 ‘후훗! 추악한 인간의 한계를 제시하는 인물이군.’
 목야홍이 관심을 지닌 인간은 잘생긴 인간이 아니라 추남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토록 못생긴 인간은 처음 대한 것이다.
 목야홍이 들어서자 추인이 한걸음 다가오며 말문을 열었다.
 “나는 추인이다. 솔직히 말하면 얼굴이 워낙 못생겼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목야홍은 담담한 시선으로 추인을 응시한다.
 추인의 눈빛은 강렬한 살기를 담고 있다.
 “후훗! 솔직해서 좋군.”
 원래가 인간에겐 열등감이라는 것이 있다.
 못생긴 사람에게 못생겼다고 말한다면 그는 분노하게 된다.
 그런 것을 두고 볼 때 목야홍의 말은 지나쳤다.
 추인이 지독하게 못생긴 것은 사실이지만 목야홍의 말은 추인으로 하여금 분노케 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추인은 분노하지 않았다.
 다만 내뱉는 한마디 한마디에 얼음장같은 살기가 서리서리 맺혀 있다.
 “나는 이곳에 오기 전까지 백아흔아홉 명을 죽였다.”
 “이유는?”
 “너와 같은 말을 했으며 모두 나보다 잘생겼기 때문이다.”
 “후훗! 그렇다면 결국 그대보다 잘생긴 인간은 모조리 죽인다는 말이군.”
 “틀리지 않았다.”
 “후훗! 그렇다면 본인 또한 마찬가지가 되겠군.”
 “네놈이 나보다 잘생겼기에 그럴 것이다.”
 “······.”
 “그리고 너는 이 추인의 손에 죽는 이백 번째의 인물이 될 것이다.”
 더 이상 들을 가치도 없다는 듯 목야홍은 다른 사내에게 시선을 돌렸다.
 천하에서 그 짝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절륜한 용모를 지니고 있는 사내다.
 목야홍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대의 이름은?”
 잘생긴 사내는 묵묵히 목야홍의 표정을 응시한다.
 “옥인이다.”
 “후훗! 좋은 이름이군, 잘생긴 얼굴만큼이나.”
 옥인이 희미하게 웃었다.
 “그렇다고 이름이나 표정만큼 좋은 인간은 아니다.”
 “후훗! 그대는 주로 어떤 인간들을 죽이는가?”
 “나보다 못생긴 인간들이다.”
 여기에서 목야홍은 잠시 말을 멈춘 채 물끄러미 옥인을 응시했다.
 보면 볼수록 잘생긴 인간이다.
 그러던 한순간이었다.
 무슨 생각에서인지는 모르지만 문득 목야홍이 흐릿한 미소를 피워 문다.
 하나의 습관이라면, 상대를 난처하게 만들고자 할 때 목야홍은 이런 미소를 떠올린다는 것이다.
 “후훗! 흥미로운 취미로군.”
 “죽어야 할 사람도 그렇게 생각할까?”
 “물론 아니겠지. 죽어야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서글픈 일이니까.”
 목야홍은 옥인이 무어라고 말할 틈도 주지 않고 말을 계속했다.
 “한 가지만 묻겠다.”
 “얼마든지.”
 “그대에게 본인을 죽여야 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옥인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놈은 이 옥인이 부끄러울 정도로 잘생겼다.’
 이유는 그것이다.
 목야홍이 자신보다 잘생겼다는 사실이 옥인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 옥인의 마음을 목야홍은 꿰뚫어 보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냥 입을 다물고 있을 목야홍이 아니다.
 “후훗! 본인의 생각으로는 그대보다는 본인이 조금은 잘생긴 것 같은데······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옥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보다 목야홍이 잘생겼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부인할 수는 없었다.
 “네가 이 옥인보다 잘생겼다는 것은 인정한다.”
 “후훗! 그렇다면 그대에게는 본인을 죽일 자격이 없다는 사실도 인정하겠는가?”
 목야홍은 비릿한 미소를 피워 물고 있다.
 그것은 일종의 회심의 미소였다.
 그런 목야홍의 표정에 옥인은 분노를 느꼈다.
 자신의 자존심이 무참히 짓밟혀 버린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표정과는 달리 의외로 담담하게 옥인은 말했다.
 “나는 방금 한 가지를 결심했다.”
 “스스로 물러나겠다는 말인가?”
 옥인은 고개를 저었다.
 “반대다.”
 “후훗! 스스로 자신의 철칙을 파괴하겠다는 말이군.”
 “너는 최초로 이 옥인의 자존심을 건드린 인간이다. 이 옥인의 자존심을 건드린 대가로 너를 죽이겠다.”
 “후훗! 편한 대로 생각하는 인간이군.”
 “죽음 앞에서도 그렇게 태연할 수 있는지 시험해 보겠다.”
 말이 끝남과 동시에 옥인과 추인은 검을 뽑아 들었다.
 스르릉!
 등골이 서늘한 쇳소리를 토하며 파리한 검신을 드러내는 두 자루의 검.
 검을 뽑아 든 단순한 그 한 동작에서도 몸서리쳐지는 살기가 퍼들거린다.
 그러던 한순간이었다.
 옥인과 추인이 동시에 신형을 날리며 목야홍을 향해 가공할 살초를 전개하기 시작했다.
 
 
 ***
 
 번쩍!
 맨 처음 허공을 섬단하며 목야홍의 미간을 향해 질풍처럼 폭사해 오는 한 가닥의 파리한 빛.
 그것은 바로 옥인의 검이 표출해 낸 검광이었으며,
 츠파앗!
 섬뜩한 섬단음을 발산하며 목야홍의 허리를 쓸어 오는 검.
 그것은 바로 추인의 검이었다.
 잘 짜여진 각본처럼, 두 사람의 공세는 일순간에 이루어졌으며 그 검망은 천라지망처럼 목야홍의 모든 퇴로를 완전히 차단한 채 폭사해 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목야홍은 당황하지 않았다.
 목야홍, 그가 누구인가?
 천하에서 가장 빠른 인간이라는 풍신 유성추가 천하에서 가장 빠른 인간은 자신이 아니라 목야홍이라고 극찬하였으며, 검치 광혼은 천하제일의 쾌검을 구사하는 인물은 다름아닌 목야홍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철저하게 자신을 믿어서인가?
 마치 죽음을 자초하는 사람처럼 옥인과 추인의 검이 자신의 미간과 허리를 막 쓸어 오고 찔러 오는 그 순간까지도 지나친 태연과 방관으로 두 사람의 공세만을 응시하고 있을 뿐,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런 목야홍의 모습은 언뜻 죽음마저도 초월해 버린 사람 같다.
 옥인과 추인의 얼굴에 회심의 미소가 피어났다.
 ‘죽고 싶어 환장했군.’
 ‘우리의 검과 놈과의 간격은 불과 세 치, 놈이 아무리 빨라도 우리의 검보다 빠를 수는 없다.’
 두 사람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결코 지나친 것이 아니다.
 생각해 보라.
 옥인과 추인의 검과 목야홍과의 간격은 불과 세 치다.
 이런 상황에서 목야홍의 검이 아무리 빠르다고 하더라도 두 사람의 검이 목야홍을 베어 버리는 순간보다 빠를 수는 없다.
 인간의 상상으로는 그러한데, 바로 그 순간이었다.
 스윽!
 검이 움직이는가?
 소리도 없고 빛도 없으며 검의 형상도 없이 목야홍의 검이 미미하게 움직였다.
 지극히 완만한 동작.
 검이 움직이는 속도는 너무 느려 차라리 지루하게 느껴질 정도인데······.
 환상이었을까?
 번쩍!
 지극히 파리하여 마치 꿈결에서 보았던 것처럼 느껴지는 한 가닥의 빛이 창백하게 피어났다.
 움직임이란 간단한 그 한 동작뿐, 그렇기에 떠오르는 빛도 한 가닥뿐이었다.
 근원마저도 알 수 없는 곳에서부터 환상처럼 피어났던 한 가닥의 빛.
 그것은 피어난 순간에 다시 사라져 버렸다.
 마치 피어났을 때와 같은 환상처럼 공간의 한 모퉁이로 소멸되어 버리고 말았다.
 변화는 그것뿐이었다.
 목야홍은 원래의 상태에서 두 사람을 묵묵히 응시하고 있다.
 그런 그의 검은 이미 검집에 들어가 있었기에 언제 목야홍이 검을 뽑았을까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세 사람.
 목야홍과 옥인, 그리고 추인은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원래의 위치에서 서로를 응시하고 있다.
 변한 것이 있다면 처음과 마찬가지로 목야홍의 눈빛은 미진한 흔들림도 없는데, 옥인과 추인의 눈빛은 걷잡을 수 없이 떨리고 있다는 것이다.
 부르르!
 그런 그들의 얼굴에 떠오른 것은 불신이다.
 “네가 방금 사용했던 검법은 바로 낙성추혼(落星追魂)?”
 “그렇다면 너는 낙성마검(落星魔劍) 엽사한(葉師漢)의 제자냐?”
 
 ― 낙성마검 엽사한!
 
 이는 천황마교(天皇魔敎)의 사태상 중 한사람이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목야홍이 펼쳤던 검법은 낙성마검의 독문무학인 낙성추혼이었던 것이다.
 목야홍은 흐릿한 미소를 피워 물며 고개를 저었다.
 “후훗! 방금 본인이 펼쳤던 검학이 낙성추혼인 것은 사실이지만 본인이 낙성마검 엽사한의 제자라는 말은 본인에 대한 지독한 모독이군.”
 “그럼······?”
 “후훗! 낙성추혼이 쓸 만한 검학인 것만은 사실이지만 사실 낙성추혼은 내가 알고 있는 검학 중 불과 이류에 불과하다.”
 목야홍의 그 한마디에 옥인과 추인의 얼굴은 불신으로 일그러졌다.
 “그럴 리가?”
 “낙성추혼이 이류에 불과하다니?”
 믿어지지 않는 말이다.
 그들이 알고 있는 낙성추혼은 쾌검으로 무서운 위력을 지니고 있다.
 오죽하면 낙성마검 엽사한이 이 하나의 검법만으로도 천황마교의 사태상 중 당당하게 일인이 되었겠는가.
 또한 지금까지 단 한 번의 패배도 허락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낙성추혼이 목야홍에게는 불과 이류검학에 불과하단다.
 불신으로 일그러진 두 사람을 바라보며 목야홍은 담담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믿어지지 않는다면 믿지 않아도 상관없다. 구태여 그대들에게 믿어 달라고 애원할 이 목야홍은 아니니까.”
 그렇게 말하며 목야홍은 두 사람의 곁을 스쳐 갔다.
 그러자 보라.
 머리카락, 옥인과 추인의 머리카락이 하얗게 잘려진 채 떨어져 내리는 것이 아닌가?
 이제서야 밝히는 사실이지만 한 번의 대결, 그 짧은 순간에 목야홍은 두 사람의 머리카락을 베어 버린 것이다.
 조용히 멀어지는 목야홍을 옥인이 불렀다.
 “목야홍!”
 목야홍은 조용히 걸음을 멈추었다.
 여전히 시선은 전면을 응시한 채 담담하게 말했다.
 “아직도 볼일이 남아 있는가?”
 “우리를 살려 두는 이유가 무엇이냐?”
 옥인은 알고 있다.
 목야홍이 자신들을 죽이려고 마음만 먹었다면 자신들은 결코 목숨을 부지할 수 없었다는 것을.
 전면을 응시하고 있는 목야홍의 어깨너머로 흐트러진 웃음소리가 들려 왔다.
 “후훗! 궁금한가?”
 “목숨을 선물 받은 것 같은 기분이다.”
 “후훗! 살아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든 좋은 일이다. 마치 살아 있다는 사실에 회의를 느끼는 사람처럼 그렇게 말할 필요는 없다.”
 “······.”
 “그리고 지금 그대에게 중요한 것은 그대들이 죽지 않았다는 사실이 아니라 본인이 칠차 관문을 통과했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이 아닐까?”
 어느새 목야홍의 신형은 저만큼 멀어져 가고 있다.
 
 펑!
 백색 불꽃.
 아스라한 허공에 피어난 것은 백색 불꽃이다.
 
 ***
 
 아름답다는 것, 어떤 의미에서든 기분 좋은 일이다.
 그래서 모든 인간은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특히 여자에게 있어서 아름다움이란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다.
 여자란 원래가 사치성이 강한 동물이기 때문이다.
 
 한 여인, 이름은 채홍이다.
 올해 나이 스물둘, 직책은 야제 구음화의 화장을 담당한다.
 그녀는 미(美)를 중시하는 구음화에게 만족을 느끼도록 아름다움을 가꾸어 준다.
 미(美)의 조제자.
 타고난 미가 아니더라도 그녀의 손끝이 스쳐 간 여자의 얼굴은 아름답게 변한다.
 즉, 채홍은 손끝으로 미를 창조해 내는 마술을 지니고 있는 여자인 것이다.
 타다다닥!
 요란한 손짓으로 채홍은 한 여인의 얼굴에 볼연지를 찍어 간다.
 지금 그녀가 아름다움을 가꾸어 주고 있는 여자는 야제 구음화.
 채홍이 천하에서 가장 아름답게 꾸며 주어야 할 여자인 것이다.
 아무리 추한 여자라도 채홍의 손을 거치면 자신 있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모하고 만다.
 그렇기에 구음화처럼 천성적인 아름다움을 타고난 여인일수록 화장을 하기에는 쉽고 그 아름다움 또한 배가된다.
 눈썹이 그려지고 홍염한 입술 사이로 붉은 색감이 깔려 갈 때였다.
 ‘아!’
 채홍은 그만 자신도 모르게 나직한 탄성을 자아내고 말았다.
 아름다워도 너무 아름답다.
 인간이 어찌 이토록 완벽한 아름다움을 지닐 수 있을까 의심스러울 정도다.
 채홍은 반쯤 넋이 나간 사람처럼 수초처럼 휘늘어진 구음화의 속눈썹을 응시하고 있다.
 그때 천요선이 구음화 옆으로 다가왔다.
 “목야홍이 칠차 관문을 통과했다는 소식이라도 있느냐?”
 천요선은 나직하게 대답했다.
 “방금 백색 불꽃이 피어났습니다.”
 구음화는 만족한 웃음을 흘렸다.
 “호홋! 역시 예상했던 것처럼 대단한 사내로군.”
 약간 격정에 달뜬 음성으로 천요선이 말한 것도 그때다.
 “총수! 그는 예상했던 것보다 더욱 무서운 인간입니다.”
 처음으로 구음화가 눈을 떴다.
 의문 서린 시선으로 천요선을 응시했다.
 “무슨 뜻이냐?”
 “그의 무학은 도저히 그 근원을 종잡을 수 없습니다.”
 “근원을 종잡을 수 없다면?”
 “구대문파의 무학은 물론이요, 낙성추혼까지도 놈은 펼치고 있습니다.”
 구음화의 눈빛이 잔잔하게 흔들렸다.
 “낙성추혼까지?”
 “낙성추혼은 천황마교의 사태상 중 한 명인 낙성마검 엽사한의 독문무학입니다. 그런데 목야홍은 낙성추혼을 낙성마검 엽사한보다 완벽하게 펼쳤습니다.”
 “그럼 낙성마검 엽사한의 제자란 말이냐?”
 천요선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으로썬 그의 신분을 안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칠차 관문까지 통과하는 동안 그는 천하의 모든 무공을 펼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으음!”
 구음화는 무거운 신음성을 흘려냈다.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어느 한 문파의 무학을 익히는 것만도 범인이라면 평생을 소모해야 한다.
 그런데 목야홍은 아직 약관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천하의 모든 무학을 섭렵하고 있다니 말이다.
 구음화가 신음성을 흘리는 동안에도 천요선의 말은 이어진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일은 구대문파의 무학이라고 하더라도 그의 손에서 펼쳐지면 그 위력은 배가된다는 것입니다. 비록 삼류무학이라고 하더라도 그의 손에서 펼쳐지는 그 순간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위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구음화는 한동안 아무 말도 없이 생각에 잠긴다.
 그렇게 있기를 얼마, 굳었던 표정은 어디 가고 구음화의 얼굴에는 흐릿한 미소가 피어났다.
 “호홋! 그가 만약 천하제일인이라면 이 구음화는 더욱 즐거운 마음으로 그를 맞이할 수 있다. 그가 아무리 강해도 한 명의 사내, 그 역시도 이 구음화의 치맛자락 속에서는 어쩔 수 없는 한 명의 야만인에 불과할 것이며 결국 죽게 될 것이다. 가장 참혹한 모습으로.”
 이 순간 구음화의 얼굴에는 진탕되는 요기가 구름처럼 일어나고 있었다.
 
 ***
 
 “나를 사랑하겠느냐?”
 목야홍이 석실로 들어서자마자 맨 처음 그에게 들려 온 음성이요, 질문이었다.
 당돌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질문.
 목야홍은 실소를 머금으며 음성이 들려 온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다음 순간 결코 두려움에 떠는 것이 아니다.
 파르르!
 목야홍의 눈빛이 미미하게 흔들리고 말았다.
 목야홍에게 그렇게 물었던 사람은 다름아닌 여인이 아닌가.
 ‘저것도 얼굴이라고 달고 다닌단 말인가?’
 목야홍의 눈빛이 흔들렸던 것은 바로 여인의 용모 때문이었다.
 못생겨도 너무 못생긴 여자였다.
 실패작이라고나 할까?
 천하제일추녀의 표본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봉두난발한 머리에 코는 하늘을 향한 들창코요, 벌렁 뒤집어진 하마 입술이다.
 뿐인가!
 비뚤어진 사팔뜨기의 눈은 게슴츠레하게 빛나고, 너무 비대한 두 볼은 골을 이룬다.
 거기에 몸매 또한 살이 찐 돼지를 보는 것처럼 비대하니······.
 여인의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먼 여자라 아무리 좋게 보아주려고 해도 어디 한구석 그런대로 보아줄 곳이라곤 없다.
 목야홍은 고개를 추녀를 향해 자라목처럼 쭉 뽑아 올리며 자신의 코를 가리켰다.
 “그 말, 본인에게 한 말이냐?”
 거기에 흐릿한 웃음까지 머금고 있는 그 모습이란 차라리 가관이다.
 그렇지 않아도 못생긴 추녀의 얼굴이 무참하게 일그러졌다.
 아무리 미련한 여자라고 해도 목야홍이 자신을 희롱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를 정도로 미련하진 않다.
 추녀의 눈빛이 싸늘한 안광을 표출했다.
 “나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내는 모조리 죽인다.”
 “사랑한다면?”
 “물론 본녀와 평생을 살아가는 거다.”
 목야홍이 어이없다는 듯 비릿한 미소를 머금었다.
 지금까지의 상황을 보건대 목야홍이 비릿한 미소를 머금었다는 것은 상대를 희롱하기 위함이다.
 “후훗! 아무래도 그대는 오늘 아침 거울을 보지 않았던 모양이군.”
 “네가 나를 사랑하는 것과, 내가 오늘 아침 거울을 보지 않은 것이 무슨 상관이 있느냐?”
 목야홍의 유들유들한 기질은 서서히 태동하고 있었다.
 “물론 상관이 있다. 왜냐하면 만약 그대가 오늘 아침 거울을 보았다면 자신의 주제를 알았을 것이고, 그렇다면 본인에게 그런 것을 묻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람이 분노가 극에 달하면 할말을 잃는다고 했다.
 추녀가 바로 그런 상황에 놓여 있다.
 추녀가 할말을 잃고 파랗게 안면 근육을 씰룩거리고 있을 때, 유들유들한 목야홍의 말은 계속된다.
 “후훗! 사실 그대와 본인을 한 입으로 말하는 그 자체만으로도 본인에 대한 모독이 아닐까?”
 추녀의 얼굴은 더 이상 싸늘해질 수 없을 만큼 싸늘해졌다.
 그러나 그녀는 애써 분노를 억누르며 차갑게 한마디를 내뱉었다.
 “본녀가 알고 싶은 것은 많은 것이 아니다. 네가 선택할 수 있는 단 두 가지 중 하나다. 본녀를 사랑할 것인가, 아니면 죽음인가?”
 “후훗! 꼭 듣기를 원하는가?”
 “너의 생사가 달린 문제다.”
 “후훗! 듣고 나면 후회할 텐데.”
 “내가 후회한다면 그것은 너의 죽음을 의미한다.”
 “후훗! 차라리 돼지를 사랑하겠느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대답해 줄 수 있지만, 그대를 사랑할 수 있다는 말은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다.”
 “네가 죽는데도 말이냐?”
 “후훗! 솔직히 말해 그대와 하룻밤을 지낼 수 있느냐고 묻는다고 해도 본인은 거절할 것이다. 보기 좋은 음식이 맛 또한 있듯이 아름다운 여인과의 정사가 황홀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추녀의 얼굴이 석상처럼 굳어졌다.
 너무 치욕적인 말이다.
 그렇지 않아도 얼굴 이야기만 나오면 걷잡을 수 없는 살심을 느껴 온 그녀다.
 추녀는 저주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목야홍을 노려본다.
 “나는 지금까지 한 가지만 생각하며 살아왔다.”
 “어떤 생각?”
 “인간을 가장 잔인하게 죽이려면 어떻게 죽여야 하는가, 그것만을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리고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내들을 그 방법으로 죽였다.”
 “······.”
 “그러나 너만큼은 특이한 방법으로 죽일 것이다. 그것이 아마 가장 잔인한 방법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궁금하군, 그대가 본인을 죽이고자 하는 그 방법이.”
 “나는 너를 이백아흔다섯 조각으로 찢어 죽일 것이다.”
 “후훗! 그럴 만한 이유라도 있는가?”
 “네놈이 본녀를 이백아흔다섯 마디의 말로 농락했기 때문이다.”
 추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또 한 명의 여인이 목야홍에게 다가왔다.
 그 순간 목야홍의 눈빛이 달라졌다.
 여인, 끔찍하도록 아름다운 미녀였던 것이다.
 목야홍과 이 장의 거리를 두고 미녀가 걸음을 멈췄다.
 박명의 하늘에 울려 퍼지는 산새의 지저귐처럼 아름다운 음성이 미녀의 입술을 비집고 흘러 나온 것도 바로 그때다.
 “본녀를 사랑하겠느냐?”
 목야홍은 주저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후훗! 미녀를 사랑하지 않을 사내는 없다.”
 “나를 사랑하는 결과가 너의 죽음인데도 말이냐?”
 “죽다니?”
 “나를 사랑하는 남자를 죽이는 것이 본녀의 취미이기 때문이다.”
 “후훗! 어차피 한 번은 죽어야 할 운명이다. 그대처럼 아름다운 여자의 기름진 배 위에서 죽어 간다는 것은 그래도 추녀의 배 위에서 죽어 가는 것보다 행복한 일이다.”
 “그럴까?”
 “그리고 본인이 중요시 여기는 것은 아직 본인은 죽을 운명이 아니라는 것이다.”
 “호홋! 그렇다면 죽여 주겠다.”
 말보다 빠른 것은 그녀의 행동.
 채앵!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녀는 한 자루의 검을 뽑아 들었으며 그 순간에 검은 이미 불을 뿜고 있었다.
 번쩍!
 파리한 예광을 토하며 미녀의 검은 목야홍을 향해 폭사해 갔다.
 
 ***
 
 처음에는 별로 대단해 보이지 않았던 미녀의 공세.
 일단 추녀가 가세하자, 그 위력은 목야홍의 상상을 뛰어넘었다.
 영묘로운 뱀의 혓바닥처럼 목야홍의 전신 요혈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미녀의 검.
 빠르기도 빨랐지만, 정(靜)한 듯하면 동(動)하고 쾌(快) 속에 변(變)이 함유되어 있었고, 유려한 듯하면서도 그 속에는 강함을 함유하고 있었다.
 뿐인가.
 말없이 이루어진 묵계처럼 미녀의 검과 장단을 맞추며 섬랄하게 목야홍의 전신을 쓸어 오는 추녀의 검.
 바늘끝 같은 세기의 검세는 천라지망처럼 목야홍의 모든 퇴로를 차단해 버린다.
 두 사람의 합공은 완벽했다.
 어지간한 무림의 절정고수라고 하더라도 바늘끝만큼의 빈틈도 허락하지 않는 두 사람의 합공 앞에서는 단 십 초도 견디지 못하고 피를 토하고 말 것이다.
 목야홍이 지금까지 경험한 합벽검진 중 가장 완벽하고 무서운 것을 꼽으라면 목야홍은 서슴없이 이들의 합벽검진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추녀의 검이 좌(左)에서 우(右)로 목야홍의 목을 베어 오면, 반대로 미녀의 검은 우(右)에서 좌(左)로 목야홍의 허리를 쓸어 온다.
 허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빈틈이라고는 단 한치도 없이 완벽하게 퇴로를 차단한 채 해일 같은 기세로 폭사해 오는 두 자루의 검은 인간의 능력으로 막기에는 불가능해 보였다.
 구름을 쫓는 유성(流星)인가?
 철(鐵)을 그림자처럼 따르는 숙명을 타고난 자석인가?
 미녀와 추녀의 검은 그림자처럼 목야홍의 뒤를 따르며 빈틈을 노리고 있다.
 그러나 목야홍이 누구인가?
 이 시대가 배출해 낸 기린아(麒麟兒)다.
 결코 그는 당황하지 않았으며 서두르지도 않았다.
 또 한차례의 섬광이 허공을 섬단했다.
 번쩍!
 바늘끝 같은 세기를 토해낸 검.
 비스듬히 작렬하는 뇌전처럼 목야홍의 전신을 향해 비스듬히 내려꽂혔다.
 유려한 호선을 그리며 타원형으로 베어 가는가 하면, 한순간에 급변하여 최단의 거리를 두고 일직선으로 목야홍의 목을 찔러 가는 검.
 그것이 추녀의 검이라면, 면도날 같은 예기를 토하며 수평으로 목야홍의 하반신을 쓸어 가는 검은 미녀의 검이다.
 츠파앗!
 그 기세는 눈부시게 빨랐으며 검세의 면밀함은 천라지망이다.
 목야홍의 신형은 일순간에 두 사람이 발출해 낸 검망에 휩싸이고 말았다.
 그런데 믿을 수 없는 것은, 정신없이 검을 휘두르며 밀려오는 검세를 차단해도 시원치 않을 판국에 목야홍은 흐릿한 미소를 피워 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미소의 여운이 걷히기도 전에, 번쩍! 목야홍의 추로신검에서 시리도록 하얀 백광이 표출되었으며 백섬은 그대로 두 여인이 쏟아낸 검세를 향해 폭사해 갔다.
 세 자루의 검이 허공에서 뒤엉켰다.
 까까강!
 불협화음이 세 자루의 검에서 터져 나오고, 유성이 한꺼번에 폭멸하는 것인가?
 폭죽이 터지듯 허공에는 무수한 불꽃이 화려하게 피어났다.
 그 혼돈한 와중에서 두 여인의 검은 목야홍의 추로신검에 뒤엉킨 순간에 수십 토막으로 잘려진 채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추녀는 섬칫한 기운이 자신의 머리를 스쳐 가는 것을 그 순간 느껴야 했다.
 그와 같은 순간에 미녀는 검자루만 남아 있는 손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너무 빨랐다.”
 그러나 그녀는 생각하지 못했다, 자신에게 어떤 수모가 다가서고 있는가를.
 와락!
 목야홍이 무례하게 미녀의 허리를 끌어안아 버린 것은 그녀의 중얼거림이 끝나기도 전이다.
 너무도 갑작스런 목야홍의 행동에 미녀는 아무런 반항도 하지 못한 채 안겨 버리고 말았다.
 미녀를 끌어안은 것만으로 만족할 목야홍은 아니다.
 목야홍은 미녀를 끌어안음과 동시에 앵두 같은 여인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포개어 버렸다.
 “읍!”
 여자는 어찌해 볼 틈도 없이 목야홍에게 입술을 빼앗기고 말았다.
 두 사람의 입맞춤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목야홍이 놓아주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던 한순간 목야홍은 아무런 미련 없이 신형을 돌려버리고 말았다.
 두 여자는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두 사람이 패한 것은 목야홍의 무학이 너무 강했기 때문에 그랬다고 치자, 그런데 추녀의 머리는 중 머리처럼 파리하게 깎여 버렸고 미녀는 입술을 빼앗기지 않았는가?
 넋을 잃고 멀어져 가는 목야홍을 응시하는 두 사람의 귓전으로 흐트러진 음성이 들려 왔다.
 목야홍의 음성이었다.
 “후훗! 본인이 그대의 머리를 깎아 버린 것은 번거로움을 덜어 주기 위해서다. 그대에게는 비구니가 가장 잘 어울릴 것 같아서 말이다.”
 추녀에게 한 말이다.
 목야홍의 음성은 계속되었다.
 “후훗! 그대에게 입맞춤을 한 것은 본인의 체온을 남기기 위해서다.”
 맨 마지막 음성은 목야홍이 사라져 버린 후에 들려 왔다.
 
 펑!
 녹색 불꽃이 허공으로 피어올랐다.
 
 ***
 
 의복이 날개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의복은 그 사람의 이미지를 표현하는 데 있어 중요한 일익을 담당한다는 말이다.
 
 구음화.
 오늘따라 그녀는 아름다움을 가꾸는 데 많은 신경을 썼다.
 목욕 재계함은 물론이요, 가장 아름답고 요염하게 화장을 했고, 이제는 가장 화려한 의복으로 치장하고 있다.
 목에는 진주목걸이, 팔에는 홍옥의 팔찌로 치장했다.
 또한 귀고리는 청옥으로, 손가락에는 황금의 반지를 끼었다.
 원래는 치장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구음화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달랐다.
 마치 오랜 세월 동안 떨어져 있던 님과의 재회를 기다리는 여인처럼 구음화는 가장 아름답게 자신을 치장하고 있다.
 옆에서 시중을 들던 두 명의 시비가 나직한 탄성을 자아내고 말았다.
 “너무 아름답사옵니다.”
 구음화는 치장하는 손길을 멈추지 않으며 말했다.
 “그렇게 보이느냐?”
 “천상의 선녀라 할지라도 총수님보다는 아름답지 못할 것이옵니다.”
 “천상의 선녀······.”
 “······.”
 “호홋! 만약 천상의 선녀가 목야홍을 매혹시킬 수 있다면 나는 스스로 천상의 선녀가 될 것이다.”
 구음화의 얼굴에는 요사한 기운이 서렸다.
 사내의 혼을 진탕시켜 버릴 듯한 농염하고 요사한 기운이다.
 문득 움직이던 손길을 멈추고 구음화가 뒤에 시립해 있는 천요선을 응시했다.
 “목야홍은 어찌되었느냐?”
 천요선은 무거운 안색으로 구음화를 응시한다.
 가벼운 긴장감이 그런 천요선의 얼굴에 깔려 있다.
 “이제 마지막 관문이 남았을 뿐입니다.”
 “호홋! 그래?”
 무엇이 그리도 좋은가?
 마치 실성한 사람이 아닌가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구음화는 소리내어 웃었다.
 뻗쳐 오른 기쁨을 참을 수 없다는 듯, 한동안 그렇게 요사하게 웃던 구음화.
 그녀는 돌연 거짓말처럼 웃음을 멈추며 강렬한 시선으로 천요선을 응시했다.
 “천요선!”
 천요선은 의문 서린 시선으로 구음화를 바라본다.
 이렇게 강렬한 음성으로 구음화가 자신을 부른 까닭을 그녀는 모른다.
 “무슨 하명하실 말씀이라도?”
 천요선은 나중에야 한 가지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 구음화의 전신에서 서릿발처럼 차가운 야망이 서리서리 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이미 오래 전부터 가슴이 뛰고 있었다. 얼마 후에 있을 일들을 나는 상상했다, 아름다운 상상을.”
 “······.”
 “그리고 이 구음화를 더욱 기쁘게 하는 것은 이제 얼마 후면 그 상상이 현실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아마 그것은 나에게 가장 황홀한 순간이 될 것이다.”
 
 ***
 
 상 위에는 단 한 개의 군만두가 놓여져 있고 그 옆 바닥에는 무려 이십여 개에 달하는 술통이 놓여져 있다.
 술상을 앞에 두고 나란히 앉아 있는 두 여인이 있다.
 이십 세 가량의 나이에 빼어난 미모를 지닌 여인들이다.
 일신에 걸친 것은 창백한 청의(靑衣)와 농염해 보이는 홍의(紅衣)다.
 그런데 두 사람의 얼굴을 보라.
 쌍둥이!
 구태여 설명하지 않아도 두 사람이 쌍둥이 자매라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팔짱을 낀 채 두 여인을 응시하고 있는 한 사내가 있다.
 목야홍이다.
 그는 지금 마지막 관문에 들어서 있는 것이다.
 그렇게 있기를 얼마, 석실에 흐르는 침묵을 깨며 청의를 걸친 여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한잔하지 않겠느냐?”
 바람에 실려 온 선율처럼 맑고 고운 음색이다.
 아는 사람은 이미 알고 있겠지만 미녀의 청을 거절할 목야홍이 아니다.
 목야홍은 두 여인의 맞은편에 털썩 주저앉으며 흐트러진 웃음을 흘렸다.
 “후훗! 풍류와 술, 그리고 여자를 아는 사내는 미녀의 청을 거절하지 않는 법이오.”
 목야홍이 앉기를 기다려 청의를 걸친 여인이 술잔을 내밀었다.
 “청접(靑蝶)이라 한다.”
 목야홍은 청접이 권하는 술잔을 받으며 흐릿한 미소를 피워 문다.
 “후훗! 푸른 나비라······ 그대와는 잘 어울리는 이름이군.”
 청접은 목야홍의 잔에 술을 따른다.
 쪼르르!
 한 잔의 술은 죽음의 유혹처럼 잔을 채우고 목야홍은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듯 술잔을 입술로 가져간다.
 목야홍이 막 술잔을 입술로 가져갔을 때 청접의 얼굴에 싸늘한 미소가 피어났다.
 “네가 모르는 것 같아 한 가지 사실을 말해 주겠다.”
 목야홍은 입술에서 술잔을 떼며 청접을 응시했다.
 “무엇인가?”
 “나 청접은 나보다 주량이 센 사람은 결코 살려 두지 않는 성미를 지니고 있다.”
 “그대의 주량은?”
 “주향만 맡아도 나는 취하고 만다.”
 목야홍은 물끄러미 청접을 응시했다.
 정말 청접의 주량이 그 정도라면 청접은 이미 취해 있어야 한다.
 자세히 살펴보니 과연 청접은 이미 술에 취해 있는 듯했다.
 “후훗! 만약 본인이 이 술잔을 비운다면 본인은 어쩔 수 없이 그대의 손에 죽어야겠군.”
 “믿어지지 않는다면 직접 시험해 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일 게다.”
 목야홍은 잠시 동안 말없이 청접의 얼굴만을 응시했다.
 그러다 돌연 목야홍은 단숨에 술잔을 비워 버렸다.
 청접의 눈빛이 싸늘한 살기를 표출하기 시작한 것도 바로 그때였다.
 “네 스스로 자초한 죽음······ 나를 원망하지 마라.”
 청접의 싸늘한 표정과는 아무런 상관 없이 목야홍은 비릿하게 웃었다.
 “후후훗! 죽음이 두려워 마시려던 술을 포기하는 그런 교활함을 아쉽게도 본인은 배우지 못했던 모양이다.”
 “지옥에서는 상황에 따라서는 교활해질 수 있는 인간이 되거라.”
 청접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목야홍을 죽이기 위해서일 게다.
 목야홍이 가볍게 손을 들어 청접을 제지한 것도 바로 그때다.
 “한 가지 부탁이 있다.”
 청접이 고개를 저었다.
 “죽음을 취소하겠다는 부탁이라면 들어줄 수 없다.”
 “후훗! 목숨을 구걸하는 그런 인간은 아니다.”
 “그럼 무엇이냐?”
 “시간이 필요하다.”
 “얼마만큼?”
 “여기에 이 많은 술을 남겨 두고 죽는다면 아마 나는 아쉬움에 눈을 감지 못할 것이다.”
 청접은 잠시 동안 목야홍의 얼굴을 뚫어지게 응시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그러나 네가 이 술을 마신 후에는 보다 잔인한 방법으로 죽어야 할 것이다.”
 “고맙군.”
 목야홍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번에는 홍의를 걸친 여인이 꽃잎 같은 입술을 나풀거렸다.
 “너는 한 가지 실수를 하고 말았다.”
 의문 서린 시선을 목야홍이 홍의여인에게 돌렸다.
 “실수라면?”
 “나는 홍접(紅蝶)이라 한다. 나의 취미는 나보다 주량이 약한 사람을 모조리 죽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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