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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의 허지훈 1-1권

2018.03.22 조회 6,964 추천 68


 # 집안의 천덕꾸러기
 
 우리 집안은 대대로 한의사 집안이다.
 할아버지는 허준의 후손이라고 주장하지만, 본류 쪽은 아니고··· 조선 말기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워낙 많은 족보 세탁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사실 여부는 알 수 없다.
 조선 시대 그 많던 노비, 평민들은 다 어디 가고 지금은 어느 집안이든 선조가 양반이 아닌 집이 없으니 말이다.
 
 어쨌든 우리 집안은 할아버지, 아버지, 삼촌, 형, 누나 다 한의사인 한의사 집안이다.
 나만 빼고···.
 
 “허지훈, 빨리빨리 안 다닐래?”
 “수업 끝나자마자 온 거예요.”
 
 어머니는 들어오자마자 닦달이시다. 우리 집에서 나만 천덕꾸러기다. 3남 1녀의 막내로 큰형, 누나, 작은형 모두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은 한의대를 진학했다. 큰형과 누나는 벌써 졸업해서 한의원을 개업했고 작은형은 군대를 다녀와서 이제 3학년이다.
 
 나? 나는 공부를 못했다. 수능 점수 맞춰서 강원도에 있는 집 근처 국립대에 관심도 없는 물리학과로 진학했다. 크면서도 항상 형 누나와 비교 대상이었는데 지금은 더 심각하다.
 다른 형제들은 다 독립해서 따로 살고 있지만 나만 부모님과 할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신세다. 아니 얹혀산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우리 집에서는 항상 내가 동네북이었다.
 
 친구들하고 술 한 잔만 마시고 와도 등짝 스매싱이 날아왔으며, 연애는 꿈도 꾸지 못했다.
 
 “빨리 들어가서 공부해.”
 
 어머니는 내가 그나마 사람 구실 할 길은 공무원밖에 없다고 하셨다. 그럼 차라리 대학은 그만두겠다고 했지만, 대학은 나와야 어디 가서 무시 안 당한다고 졸업만 하고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라고 했다.
 
 그래서 어머니는 이렇게 딱 학교 수업 가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잠시도 내가 딴짓을 하는 것을 못 보신다.
 그래서 남들 다 가는 신입생 환영회, MT 한 번을 못 가고 매일 우리 집 책상 앞에서 1학년을 다 보냈다. 그리고 본 공무원 시험에서는 당연히 불합격···.
 집안에서 나를 보는 시선은 더욱 차가워졌다.
 
 이제 2학년인 학교에 다니면서 공부도 하고 만약 또 불합격한다면 군대에 가야 할 상황이다.
 
 “네네, 알겠어요.”
 
 머리 나쁜 제가 죄인입죠 네네···.
 내 방으로 바로 들어왔다.
 
 책상에 앉아서 국사책을 펴려는데···.
 
 “책상이 왜 이렇게 어지러워···.”
 
 이런 정리 안 된 책상에서는 머리도 어지러워져 공부할 수가 없다. 책상 위에 늘어진 지우개 가루를 털어 내고··· 여기저기 중구난방 꽂혀 있는 책들을 모두 꺼냈다. 먼지를 하나씩 닦아 내고 크기별 카테고리별로 하나씩 정리해서 넣기 시작했다.
 그리고 흩어진 연필, 볼펜도 모아서 높이를 맞춰 연필꽂이에 정리해서 넣었다.
 모두 정리하고 보니 깔끔해 보인다.
 
 다시 앉아서 공부하려는데 이번에는 방 안이 눈에 들어온다.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이불들··· 그리고 바닥에 쌓인 먼지···.
 
 ‘아예 청소 다 해 놓고 시작하자.’
 
 깨끗한 방에서 해야 공부 효율도 더 오른다.
 방 안에 빗자루를 찾았다. 그리고 바닥을 쓸기 시작했다.
 
 이쪽을 쓰니 저쪽이 더러워 보이고··· 다시 그쪽을 쓰니 이쪽이 다시 더러워 보이고···.
 왔다 갔다 하면서 먼지를 쓸어 냈다.
 
 드르르···.
 그때 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너 뭐 하니?”
 
 어머니 목소리다. 손에는 과일이 든 접시를 들고 있다. 접시를 책상 위에 내려놓고··· 나에게 다가오신다. 그리고 올라가는 손···.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줄 알고 과일 깎아서 왔더니만···.”
 “으엌~”
 
 분노의 스매싱이 내 등짝에 꽂힌다. 억울하다. 방을 빙빙 돌면서 외쳤다.
 보통 어머니라고 부르지만 자연스럽게 엄마가 나왔다.
 
 “엄마. 엄마. 청소하고 공부하려고 했어요.”
 “청소는 무슨!! 공부하기 싫으니 맨날 핑계 대는 거지···.”
 
 4평 남짓의 작은 방 안에서의 추격전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밥 먹어라.”
 
 쓰라린 등을 거울에 비춰 얼마나 빨개졌는지 보고 있는데 어머니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네~”
 
 밝은 소리로 대답했다. 천덕꾸러기는 삐져 있을 자격도 없다. 이렇게 한바탕 혼나고 난 후에도 난 항상 밝고 유쾌한 모습을 유지했다. 나름의 생존 전략이다.
 내 방을 본채와 약간 떨어진 별채에 있다.
 밥이 다 차려지기 전에 본채로 건너왔다.
 
 그리고 어머니가 밥 차리는 걸 도왔다. 밥, 국, 반찬을 나르고 숟가락을 놓고···.
 이거 봐 나도 나름 집안에서 쓸모가 있는 사람이라고···.
 
 드르륵···.
 안방 문이 열리고 아버지가 나오신다. 손에는 신문지를 든 채로다. 나오시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쯔쯔~”
 
 혀를 차시더니 시선을 돌리신다. 그리고 밥상 쪽으로 가셨다. 밝은 마음을 유지하려고 했는데··· 다시 기분이 우울해지려고 한다.
 
 안 돼. 그러면···.
 스스로를 다잡았다.
 
 “지훈아. 할아버지 모시고 와라.”
 “네 알겠습니다.”
 
 할아버지 방은 마루에서 안방 건너편에 안방보다 약간 더 작은 방이다.
 물론 내 방보다는 세 배 정도 크다. 할머니가 3년 전쯤에 돌아가시고 할아버지는 안방을 부모님에게 내주셨다.
 
 똑똑~ 대답이 없으시네···.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었다. 할아버지는 저녁잠을 주무시고 계셨다.
 다가가서 할아버지의 어깨를 조심스럽게 흔들며 귀에 대고 조용히 말했다.
 
 “할아버지, 진지 잡수시래요.”
 “으음~”
 
 신음 소리만 한 번 내시고 여전히 주무신다. 86세의 할아버지는 가는귀가 어두우신 편이다.
 조금 더 큰 소리를 내봤다.
 
 “할아버지~”
 
 여전히 반응이 없으시다. 에라, 모르겠다.
 
 “할아버지!!!~~~”
 
 더 큰 소리로 소리를 지르는 순간···.
 할아버지는 깜짝 놀라 잠에서 깨시며 옆에 있던 곰방대를 드셨다.
 
 “악~!!!”
 “귀청 떨어지겠다. 이것아. 할아비를 놀라게 해서 죽일 셈이여~”
 
 곰방대로 내 팔을 인정사정없이 내려치면서 말씀하셨다. 오늘도 내 동네북 신세는 면할 수 없구나···. 아픔을 참고 공손하게 말했다.
 
 “할아버지··· 어머니가 식사하시래요.”
 “그렇게 조용히 말하면 될 것이지. 끌끌···.”
 
 할아버지가 이렇게 대하는 사람은 우리 집안에서 내가 유일하다. 형 누나에게는 언제나 인자한 미소를 보내시고, 아버지와 어머니께는 어느 정도 예의를 차리시는 편이다.
 
 할아버지는 몸을 일으켰다. 그래도 몸을 완전히 피지는 못하신다. 등을 구부리신 채로 지팡이를 찾아 들고 문밖으로 나가신다.
 
 “지훈아 뭐 하니. 할아버지 부축 안 해 드리고···.”
 
 부축해 드리면 화내신단 말입니다. 어머니···.
 
 “됐다. 내가 무슨 거동도 못 하는 사람도 아니고.”
 
 할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손을 내저으며 말씀하셨다. 거보세요.
 지팡이를 들고 한 걸음씩 천천히 상으로 가신 할아버지는 자리에 앉으셨다.
 그리고 숟가락을 들고 국을 한술 뜨셨다. 그제야 아버지와 어머니도 숟가락을 드신다.
 어릴 때 할아버지가 수저를 들기 전에 먹으려다가 많이 혼났었다.
 
 나도 젓가락을 들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 숟가락은 국 먹을 때 말고는 잘 안 쓰는 편이다.
 아버지는 신문을 밥 먹느라고 더 보지 못하자 허전하셨는지 리모컨을 들었다.
 삐빅~ 그리고 TV를 켜고 뉴스를 트셨다.
 
 ―청년 실업이 갈수록 심각해져 가고 있는 이때··· 6개월 이상 장기 청년 실업자도 사상 최대치인 14만 명을 돌파했습니다.
 
 “끌끌··· 젊은것들이 무슨 일이든 해 보려고 할 생각은 안 하고···. 우리 때는 처자식 먹여 살리려고 나가서 땅이라도 팠는데 말이야.”
 
 할아버지는 TV를 보시며 한심하다는 듯 말씀하셨다. 그리고 내 쪽을 한 번 힐끔 보신다. 할아버지 저는 이제 고작 대학 2학년입니다만···.
 그리고 할아버지 때와 지금은 시대가 다르다. 고도성장기의 시대를 살아온 할아버지와 아버지 세대는 우리의 입장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희망이 있던 시대···. 자기 한 몸만 잘 굴려서 일해도 처자식을 건사하고 재산도 모을 수 있던 시대···. 물가는 임금 대비 낮았으며 은행에 맡겨 놓기만 해도 이자가 연 10퍼에서 최대 15퍼가 넘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 세대는 다르다. 일자리 수가 부족한 것은 둘째 치고라도··· 아무리 일해도 돈은 모이지 않는다. 임금 상승 대비 물가 상승은 살인적인 수준이고··· 은행 이자는 연 1~2퍼도 채 되지 않는다. 아무리 죽으라고 일해도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는 희망이 없는 세대···. 그것은 도전하고자 하는 정신마저 빼앗아 버린다.
 
 물론 그때보다 지금이 자유롭고 풍족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고충이 있음에도 일부 위 세대 분들은 현재의 좋은 점만 보고, 우리가 정신력이 약한 탓으로 개인의 탓으로만 책임을 돌린다.
 경쟁에서 승리한 최상위층에 소수를 제외하곤 희망이 없는 세대··· 그것이 내가 속한 세대이다.
 
 마음속으로 입 밖으로는 꺼내지 못할 신세 한탄을 이렇게 길게 늘어뜨리고 있을 때···.
 할아버지가 말씀하신다.
 
 “지훈아, 놀지만 말고 밥 먹고 나면 창고 정리라도 해라. 그렇게라도 밥값을 해야지.”
 
 그냥 창고 정리해라 한마디면 될 걸 말씀을 해도 꼭 그렇게 상처를 주게··· 우리 집 식구들은 나에게만 상처 주는 말을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것 같다. 언젠가는 나도 폭발하겠지··· 하지만 오늘은 아니다.
 
 “네 알겠어요.”
 
 밥을 다 먹고 어머니가 상을 정리하는 것을 도와드리고 창고로 향했다.
 우리 가문이 허준의 후예인지까지는 모르겠지만, 오래전부터 의원 가문이었던 것만은 확실하다. 오래된 의서와 각종 한방 기구들이 창고에 잔뜩 쌓여 있다.
 
 “켁켁.”
 
 창고 문을 여니 오래된 먼지가 바로 내 호흡기로 들어온다. 손바닥을 코앞에서 휘둘러 먼지를 쫓아내고··· 창고 안 유일한 조명인 전구를 켰다.
 
 “헐···.”
 
 창고에 들어오는 건 정말 오래간만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완전 개판이었다. 뭐가 뭔지 모를 잡동사니들이 한가득 쌓여 있고 찬장 위에는 각종 의서가 있다. 할아버지 말씀에 따라 의서로 추정하는 것이다.
 
 바닥에 있는 것들부터 정리를 좀 해야겠다. 그래야 먼지도 털어 내고 청소도 가능할 듯하다.
 쌓을 수 있는 건 쌓고 옆으로 치울 수 있는 건 치우며 정리를 시작했다. 완전히 버려야 하는 것들도 꽤 있었다. 그런 것들은 창고 앞으로 내놨다.
 바닥을 치우다 보니 엎어져 있는 나무로 된 상자 하나가 걸렸다. 위치가 그것을 좀 세워서 옮겨야 정리할 각이 나올 것 같다. 상자를 세우기 위해 힘을 줬다. 끙~ 움직이지 않는다. 젖 먹던 힘까지 다해서 상자를 세우는 순간···.
 
 우당탕탕~
 “어어~”
 
 상자와 닫혀 있던 찬장을 받치던 기둥이 부러지면서 그 위에 엄청난 양의 책들이 쏟아져 내렸다. 순간적으로 그 수많은 책 사이로 한 권의 책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한자를 읽을 줄 모르는데 그 책에 쓰인 한자는 바로 읽을 수 있었다.
 
 ‘천의비록?’
 
 그리고 책이 밝게 빛나는 것 같다고 느끼는 순간 수많은 책이 내 몸을 덮으면서 정신을 잃었다.
 
 
 # 너 내 눈에만 보이는 거니?
 
 꿈을 꾸었다.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인가 3학년 때인가···.
 할아버지는 형들과 누나 그리고 나를 모아 놓고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아마 그때의 장면 같았다.
 
 “인간은 누구나 어떤 상처나 병이든 치료할 수 있는 선천의 기운을 가지고 태어난단다.”
 
 그 말에 큰형 허주원이 멀뚱거리는 표정을 지으며 질문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누구나 병들고 상처 입잖아요.”
 
 할아버지는 큰형 허주원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그래 주원아···. 누구나 아프고 병들지···. 그건 혈이 막혀서 선천의 기운이 제대로 흐르지 못하기 때문이야. 그래서 그 막힌 혈을 뚫어 주는 것이 한의학의 요체란다.”
 “그럼 한의사가 침을 놓는 것이 바로 그 막힌 혈을 뚫어 주는 것이군요.”
 
 이번에는 작은형 허기호다. 이번에도 할아버지는 대견하다는 표정을 지으셨다.
 
 “그래 맞다. 하지만 같은 병 같은 증상이라도 사람에 따라 막힌 혈 자리는 다를 수 있어. 만 명의 환자가 있다면 각각의 실제 막힌 혈 자리는 모두 다른 것이지···. 아무리 뛰어난 의원이라도 그것을 모두 알 수는 없다. 그래서 병에 따라 어느 혈 자리를 뚫으면 되는지 최대한 통계를 낸단다. 그게 한의학의 침구술이다.”
 “그럼 누군가 모든 사람의 병에 따라 정확히 막힌 혈 자리를 알고 침술로 뚫어 줄 수 있다면 못 치료할 상처도 병도 없겠네요?”
 
 이번 건 나다. 할아버지는 인자한 표정을 지으신다. 이때는 나도 별로 미움받지 않았을 때인가 보다.
 
 “그래··· 혹시 모르지. 그 의술이 하늘에 다다른 자라면 가능할지도···.”
 
 ***
 
 “지훈아~”
 
 멀리서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어머니 목소리 같은데?
 
 “지훈아!!”
 
 이번에는 조금 더 가까워진 것 같다. 눈을 떴는데 아직 밤인지 시야가 캄캄하다.
 
 “지훈아!!!”
 
 이제 바로 옆에서 말하는 것 같다. 그리고 시야가 서서히 밝아졌다. 아~ 걱정스러운 표정의 어머니가 보인다. 그리고 그 옆에 아버지도···.
 
 “여보. 지훈이 눈 떴어요.”
 
 아버지는 계속 나를 보고 계시다가 어머니 말에 고개를 돌리며 무심한 듯 말했다.
 
 “내가 말했잖아 곧 깨어날 거라고···. 호들갑은···.”
 
 그리고 신문을 펼쳐서 보는 척을 하신다. 목소리를 내 보았다.
 
 “엄··· 엄마···.”
 “그래. 엄마 여기 있어.”
 
 내 눈앞으로 오며 말씀하신다. 눈가를 보니 눈물이 살짝 맺혀 있는 것 같다. 역시 부모님들은 툴툴거리셔도 다 자식을 소중하게 여기는구나. 다시 한번 느꼈다.
 흠··· 이 냄새는··· 뜸이구나. 이제 보니 온몸에 뜸에 침이다. 기절했으면 구급차를 부르셔야지··· 누가 한의사 집안 아니랄까 봐.
 
 “일어났으면 됐다. 여보 나 출근하오.”
 
 아버지는 그렇게 말씀하시고 나에게 다가와 침을 뽑았다. 그리고 뜸도 치우셨다. 나 때문에 출근도 안 하고 계셨구나. 할아버지는 안 보이네. 고개를 돌려 찾으려는데··· 이상한 게 눈에 들어온다.
 
 ‘저게 뭐지?’
 
 내 얼굴에 왼쪽으로 공중에 둥둥 떠 있는 원통 모양의···.
 
 ‘침통인가?’
 
 할아버지가 가지고 계신 옛날 침통들 모양하고 좀 비슷한 것 같다. 차이점이 있다면 이게 더 고풍스럽게 보인다는 정도? 그런데 어떻게 공중에 떠 있는 거지? 손을 뻗어 잡으려고 해 봤다.
 그런데···.
 
 “어~”
 
 손이 그대로 침통을 통과해 버린다. 그 모습을 어머니가 보고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지훈아 뭐 하니? 왜 허공에 손을 내저어.”
 
 아··· 내 눈에만 보이는 거구나. 만져지지도 않는 걸 보니 헛것이 보이는 건가 보다.
 
 “아니에요. 엄마. 팔이 약간 저려서···.”
 “그러니?”
 
 어머니는 옆으로 오셔서 내 팔을 주물러 주셨다. 혹시 걱정하실까 봐 공중에 떠다니는 침통이 보인다는 이야기는 할 수 없었다.
 
 “그런데 할아버지는요?”
 “아~ 어제 너를 제일 먼저 발견한 게 아버님이었어. 침하고 뜸도 직접 놔 주셨고···. 밤새 옆에 계시다가 아버지가 방으로 모셔서 주무시게 했어.”
 
 할아버지도 나를 많이 걱정하셨구나···. 가족은 역시 가족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나저나···.
 
 ‘나중에 시간 내서 병원에 가 봐야겠다. 이건 어디로 가 봐야지? 정신의학과인가?’
 
 잠시 더 누워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학교 가야 하는 날이다.
 어머니는 걱정이 되는지 계속 옆에서 말리신다.
 
 “오늘은 그냥 쉬지 않고···.”
 “괜찮아요. 멀쩡해요.”
 
 심각한 건 다른 게 아니라 지금 옆에서 떠다니는 이 침통입니다. 어머니. 몸을 일으켰는데도 계속 내 머리 왼쪽에 수평으로 20cm 정도 떨어진 지점에서 둥둥 떠서 나를 따라다닌다. 빨리 병원에 가서 상담을 받아 봐야겠다.
 
 수업 가기 전에 병원에 들르기 위해서는 지금 바로 나가야 한다.
 우선 씻기 위해 화장실로 향했다.
 거울을 보니 얼굴이 좀 초췌하긴 하다. 근데···.
 
 ‘거울로 봐도 침통이 보이네?’
 
 이건 진짜 심각한 환각인 것 같다. 가는 길에 병원이 뭐가 있더라···. 이건 아무래도 큰 병원으로 가 봐야겠지? 생각해 보니 우리 대학에도 대학 병원이 있다. 대학 병원은 생각도 안 하고 있었는데. 그리로 가야겠다.
 
 세수를 하고··· 이빨을 닦고··· 머리도 감았다. 밤새 침을 계속 꽂고 있었기 때문에 샤워는 생략했다. 나와서 내 방으로 가 옷을 골랐다. 아직 한여름이다. 잠시 반바지에 눈길이 갔으나···.
 
 ‘남자가 가오가 있지.’
 
 청바지를 꺼내 입었다. 그리고 하얀색 티셔츠를 걸쳤다. 침통은 더도 덜도 아닌 딱 그 자리 그 위치 그대로 계속 떠 있다. 참 신기한 환각이다.
 컴퓨터를 잠시 켜서 우리 학교 대학 병원의 위치를 검색해 보았다. 그런데···.
 
 ‘정문 바로 옆이네?’
 
 한 번도 본 기억이 없다. 인터넷에 나온 게 정확하겠지···.
 병원 위치까지 확인했으니 가방을 메고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어머니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무리하지 말고··· 수업 중이라도 안 좋으면 교수님한테 말하고 들어와.”
 
 마지막까지 걱정스러우신지 말을 보태셨다.
 나와서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학교 정문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가 탔다.
 띡~ 기계음이 울리고··· 1500원이 내 통장에서 빠져나간다. 이것도 나에게는 뼈아픈 큰돈이다.
 
 버스에는 빈자리가 많았다. 춘천은 인구밀도가 그렇게 높은 도시는 아니라서 대중교통이 그렇게까지 혼잡하지는 않았다. 내리는 뒷문 뒤쪽에 두 명이 앉을 수 있는 자리로 가서 앉았다.
 어젯밤에 빛나던 책도 그렇고 지금 옆에 떠 있는 침통도 그렇고···.
 
 ‘내가 요새 몸이 많이 허해지기는 허해졌나 보다.’
 
 오늘 부모님하고 할아버지의 분위기를 보면 보약 한 제 해 달라고 해도 크게 무리가 없을 것 같다.
 버스가 덜컹거릴 때마다 가슴 쪽에 약간의 통증은 있었다.
 어제 몸에 충격이 전혀 없지는 않았던 것 같다. 허리를 펴고 몸을 가볍게 풀어 줬다.
 
 학교 정문까지는 10 정거장이다. 3번째 정거장에 도착했을 때···.
 
 “어~”
 
 익숙한 얼굴이 버스에 탔다. 짧은 스포츠머리에 얼굴에 약간의 주근깨···. 박병철이다. 내가 신입생으로 1학년에 입학하자마자 친해진 친구다. 동아리도 못 하고 술자리도 참석 못 하고···. 대학 와서 거의 유일하게 친해진 녀석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어이, 지후지후 지훈이~”
 
 능글맞은 표정을 지으며 박병철은 내 옆자리로 와 앉았다. 그리고 어깨 위에 손을 턱 올리더니 내 얼굴을 보며 말한다.
 
 “근데 안색이 썩 좋진 않다? 무슨 일 있었어?”
 “어··· 창고 정리하다가 책이 쏟아져서 기절했었다.”
 
 솔직하게 말해 주었다. 딱히 숨기는 게 없는 친구이기도 하고 성격상 거짓말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예상대로 박병철은 걱정하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헐~ 어쩌다? 몸은 괜찮아?”
 “그래 이제 좀 괜찮아졌음. 근데 너는 왜 이렇게 일찍 가냐?”
 
 병철이의 수업 시간표는 ‘역사의 이해’ 하나 빼고 나와 완벽하게 똑같다. 그 다른 하나는 오늘은 아니다. 나는 병원을 들렀다 가야 해서 일찍 나왔지만···. 병철이는 바로 대답했다.
 
 “나? 나는 도서관에서 공부 좀 하다 수업 들어가려고 너는?”
 
 역시···. 병철이는 2점 초반대 학점이 나오는 나와 다르게 4점대를 유지하는 우등생이다. 간략하게 대답해 주었다.
 
 “나는 병원···.”
 “아 그렇군.”
 
 병철이는 내 아까 사고와 연결하여 바로 이해한 것 같다.
 잠시 뒤 버스는 학교 정문에 도착했고, 우리는 같이 내렸다.
 
 “그럼 이따 보자. 치료 잘 받고.”
 “그래.”
 
 병철이는 내리자마자 인사하고 학교 중앙 도서관 쪽으로 뛰어갔다.
 흠···. 대학 병원은 정문 바로 옆이라고 했지.
 눈을 돌려 보니 떡하니 거대한 대학 병원 건물이 보인다.
 
 ‘관심을 가져야 보인다고 하더니···.’
 
 딱히 아파 본 적도 많이 없고 주로 집에서 치료했기 때문에 일반 병원을 관심 있게 본 적이 없다.
 병원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
 
 병원을 들어서자 넓은 복도에 오른쪽에 접수창구가 보였다.
 잠시 서서 고민을 했다.
 
 ‘흠··· 어디로 가야 할까. 아무래도 정신의학과겠지?’
 
 접수창구로 향했다. 번호표를 뽑는 기기가 있어서 번호표를 뽑았는데 번호가 129번이고 내 앞에 대기가 20명이다. 예상 대기시간 15분···.
 창구 앞에는 의자가 준비되어 있었다. 의자에 가서 앉아 기다렸다.
 잠시 뒤 방송이 나왔다.
 
 ―띵동, 129번 고객님 4번 접수대로 오세요.
 
 무슨 은행 같은 느낌이다. 4번 접수대로 가자 간호사가 친절하게 나를 맞았다.
 
 “안녕하세요. 어느 과로 접수해 드릴까요?”
 “정신의학과로 부탁드립니다.”
 “네, 알겠습니다. 결재 도와드리겠습니다.”
 
 진료도 받기 전에 결제부터 하는 건가? 체크카드를 건넸다.
 
 “결제되었습니다. 오른쪽 복도 끝 정신의학과에 가셔서 보여 주시면 됩니다.”
 
 간호사는 카드와 함께 영수증과 진료증을 줬다.
 알려 준 길을 따라 정신의학과로 갔다. 정신의학과에 가니 또 접수처가 있었다.
 
 ‘의사가 두 명인가?’
 
 접수처를 사이에 두고 방이 두 개다. 각 방에는 의사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이리로 오세요.”
 
 내가 가서 두리번거리자 간호사가 나를 부른다. 간호사에게 다가가 진료증을 보여 줬다.
 바코드를 찍더니 내 팔에 스티커 같은 것을 붙여 줬다.
 
 “2번 진료실 앞에서 기다리세요.”
 
 간호사의 말에 따라 2번 진료실 앞으로 갔다. 의사 이름이 박봉우? 특이하네···. 나는 세 번째인가?
 진료실 앞에 의자에 앉아서 기다렸다.
 
 잠시 뒤···. 간호사가 문을 열고 나를 불렀다.
 
 “허지훈 환자분 들어오세요.”
 
 살짝 졸음이 오려던 차에 잠이 달아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간호사의 안내에 따라 진료실에 들어갔다. 박봉우 의사는 곱슬머리에 안경을 낀 수더분한 인상이었다.
 
 “여기 앉으세요. 무슨 일로 오셨죠?”
 
 박봉우 의사의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내 사정을 말하기 시작했다.
 
 “어젯밤에 창고를 정리하다가 책들이 쏟아져서 기절을 했었는데요. 오늘 아침에 깨어나서 보니 이상한 게 보입니다.”
 “이상한 거요?”
 “네. 무슨 원통인데 침통 같아 보이기도 하고···. 지금도 여기 떠 있어요.”
 
 침통이 보이는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박봉우 의사는 차트에 무엇인가를 적더니 나에게 물었다.
 
 “침통이라··· 생김새는 그냥 원통이라고 하셨는데 침통이라고 생각하시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네. 집이 한의원을 하는데 할아버지 방에서 이런 모양의 침통을 여러 번 봤거든요.”
 “그렇군요.”
 
 또 차트에 무엇인가를 적는다. 그리고 다시 말을 이었다.
 
 “우선은 외상 후 스트레스성 장애로 인한 일시적인 환각 증세로 보이네요. 더 자세한 건 CT나 MRI를 찍어 봐야 알겠지만 지금 단계에서 할 건 아니고··· 우선 약을 처방받으시고··· 일주일 후에도 증상이 호전되지 않으면 다시 생각해 보죠. 일주일 후에 꼭 다시 오세요.”
 “네 알겠습니다. 끝난 건가요?”
 “네 끝났습니다. 나가셔서 기다리시면 돼요.”
 
 기다린 시간에 비해서 진료 시간이 너무 짧게 느껴진다.
 일어나서 박봉우 의사에게 고개를 숙여서 인사한 후 밖으로 나왔다.
 다시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니 간호사가 불러서 진료증을 준다.
 
 “가지고 가셔서 입구 창구에서 수납하시면 처방전 줄 거예요.”
 “네 알겠습니다.”
 
 진료증을 받아서 입구 창구로 갔다. 창구에서 수납하니 처방전을 줬다.
 처방전을 들고 약국으로 가서 약까지 탔다.
 
 “에휴.”
 
 자동으로 한숨이 나온다. 진료비에 약값까지 만 원이 넘는 돈을 썼다. 한 달 용돈이 고작 20만 원인 내게 엄청난 타격이다. 아르바이트라도 하고 싶은데 어머니가 공무원 9급 공부하라고 아무것도 못 하게 하신다. 말 그대로 교통비와 통신비, 가끔 사 먹는 밥값 하면 남는 게 없다.
 
 약봉지를 가방 안에 넣었다. 집에서 들키면 아마 난리가 날 거다. 잘 숨겼다.
 
 병원에서 약 한 시간 정도 소비한 것 같다. 이제 바로 수업을 가면 된다.
 
 ‘병철이는 벌써 수업 들어갔을까···?’
 
 핸드폰을 꺼냈다. 요새 같은 시대에 나는 아직도 2G폰이다. 스마트폰은 현재 내 용돈으로는 요금도 감당하기 힘들다. 박병철을 찾아 전화를 걸었다.
 잠시 통화음이 울리고 전화를 받는다.
 
 ―헤이요~ 끝났어? 어디 문제는 없대?
 “어 방금 나와서 약까지 샀다. 다행히 큰 문제는 없나 봐.”
 
 아무래도 정신이랑 관련된 부분이다 보니 솔직히 말하기가 애매하다. 병철이가 그러지는 않겠지만 혹시라도 괜히 소문이 나면 곤란하다.
 
 ―알겠다. 지금 바로 나갈게. 중도(중앙 도서관) 앞에서 보자.
 “그래. 중도 앞으로 갈게. 계단 아래에서 보자.”
 ―그래 알았다.
 
 약속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내가 들어야 할 강의실은 중도 바로 맞은편에 있다. 중도 앞에서 만나는 게 합리적이다. 중도는 후문 바로 옆에 있다. 내가 있는 정문에서 완전 끝에서 끝이다.
 
 ‘오늘도 운동 되겠네···.’
 
 중도의 계단은 엄청나게 많고 가파르다. 그래서 계단 아래에서 만나자고 한 것이다. 정문에서 중도까지도 먼 길인데 이 더운 날 계단까지 오르면 완전 퍼지고 말 것이다.
 날씨가 더워서 천천히 걸어갔다. 여기저기 커플들 천지다. 다들 손을 꼭 붙잡고 걸어가고 있다.
 
 ‘이 더운 날에··· 손에 땀띠 난다 이것들아···.’
 
 지금 내 얼굴을 타고 흐르는 것은 땀인가요 눈물인가요. 외로움이 물밀듯 밀려온다.
 중도 앞까지 걸어가는 데는 20분이 걸렸다.
 
 대학 중앙 광장에 들어서자 병철이가 계단 아래 나무 그늘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보인다. 병철이는 나를 발견하고 손짓하며 말했다.
 
 “야 빨리 뛰어와.”
 ‘못 뛰어 이색꺄. 이 날씨에 뛰다가는 골로 간다.’
 
 무시하고 천천히 걸어갔다.
 병철이 앞까지 가자 갑자기 헤드록을 걸어온다.
 
 “형님이 뛰어오라면 뛰어와야지.”
 “야야 땀나, 땀나.”
 
 힘쓰기 싫어서 녀석의 옆구리에 간지럼을 태웠다.
 
 “으히히히.”
 
 웃으면서 녀석은 나를 풀어 줬다.
 
 “간지럼도 잘 타는 놈이 까불기는···.”
 “내가 봐 준 거야 새꺄.”
 
 새끼, 허세는···. 병철이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말했다.
 
 “가자 빨리 수업 늦겠다.”
 
 수업은 물리학 별관 2층이다. 이론 수업이다. 1학년 학점이 평균 2.01이 나온 나는 수업 내용을 당연히 이해하지 못한다.
 강의실로 들어가 뒤쪽에 자리 잡고 앉았다. 교수님이 들어오고 수업이 시작되었다.
 
 “흐아아암~”
 
 절로 하품이 나온다.
 병철이가 그런 내 모습을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다.
 
 “좀 열심히 해라. 우리 학교 전국적으론 그다지 알아주지도 않는데 학점이라도 좋아야지.”
 “난 어차피 공무원 할 거라서 상관없어···.”
 
 사실 공무원도 아직 합격 점수엔 근처도 못 간 건 비밀···.
 병철이는 어이없다는 웃음을 한 번 짓고는 가까이 다가와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야 근데 오늘 임지영 이쁘지 않냐?”
 “지영이야 매일 이쁘지···.”
 
 임지영···. 1학년 풋풋하던 새내기 시절···. 설렘을 안고 고백한 나를 대차게 깠던 그녀다. 그때는 몰랐다. 그것이 내 대학 생활의 유일한 설렘이 될 줄은···.
 병철이는 웃으면서 말했다.
 
 “아직도 예쁘냐? 기억나? 지영이 처음 본 날.”
 
 당연히 기억난다. 어머니 성화에 신입생 오티 참석은 불가능했다. 결국, 내가 동기들을 처음 만나게 된 것은 전공 필수과목 물리학 개론 수업 시간이었다.
 1학년 전체가 같이 수업을 듣는 유일한 과목···. 강의실에 들어서자마자 오티에서 친해진 애들끼리 무리 지어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날 동기들을 처음 봤기 때문에 친한 애도 없어서 쭈뼛거리면서 뒤쪽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뒤쪽에 나와 같이 무리에 들어가지 못하고 혼자 앉아 있는 녀석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첫눈에 서로를 알아봤다.
 
 ‘저 녀석도 신입생 오티 안 갔구나···.’
 
 녀석에게 바로 일직선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녀석은 자신의 옆자리에 놓인 가방을 치워 준다.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안녕. 나는 허지훈이다.”
 “난 박병철···. 너 신입생 오티 안 갔지?”
 “그래. 너도 마찬가지 아냐?”
 “맞아.”
 
 우리는 신입생 오티를 참석 못 했다는 동질감으로 앉아서 대화를 나눈 지 얼마 되지 않아 금방 친해졌다.
 그리고 어느새 우리는 동기 여자애들의 품평회를 하고 있었다.
 
 “쟤는 어느 정도냐. 키는 163? 몸무게는 한 52킬로 나가려나? 비율은 그렇게까지 좋은 거 같진 않은데···.”
 “한 B 정도 될 거 같다.”
 
 그렇게 본인들이 알면 기겁할 등급을 나누고 있는데···.
 입구에서 한 여자애가 들어오는 게 보였다. 사자 머리 파마를 해서 옆에서 볼 때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몸은 말랐는데 머리가 엄청 커 보였다. 병철이가 나를 보며 말한다.
 
 “야 쟤는?”
 “저 비율 봐라. 한 5등신 나오겠네. D 이하일 듯?”
 
 그녀는 걸어가서 앞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책을 꺼내려는 듯 가방을 열기 위해 몸을 숙이고 돌리는데··· 그녀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풍성한 사자 머리 파마가 페이크였다. 그 안에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작고 오밀조밀한 얼굴이 있었다. 그 짧은 순간이 나에게는 슬로모션처럼 느껴졌다. 하얀 피부에 눈은 크고 깊어 보였다.
 저 정도 얼굴 크기면 최하 8등신이다···.
 나는 멍한 표정으로 병철이에게 말했다.
 
 “야··· S다.”
 
 
 # 생명을 구하다
 
 지영이의 번호를 알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어색한 몇 번의 연락 후···. 그녀에게 고백한 것은 비 오는 날이었다.
 내 고백을 들은 그녀는 크게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미안해. 내가 지금 남자친구를 사귈 마음이 없어.”
 “그래. 그럼 그냥 친구로 지내자.”
 “그래 정말 좋은 친구···.”
 
 그렇게 우선은 친구로 천천히 다가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나에게 남자친구를 사귈 마음이 없다고 한 지 불과 한 달 만에 과의 다른 녀석과 연애를 시작했다. 결국 ‘나’를 남자친구로 사귈 마음이 없었던 거다.
 
 “야! 무슨 생각해?”
 
 병철이가 어깨를 두드리며 묻는다. 고개를 돌려 녀석을 보며 말했다. 최대한 우수에 젖은 눈빛을 하며···.
 
 “옛날 생각···.”
 “옛날 생각은 개뿔. 이제 눈 뜨고 조냐? 수업 끝났어, 나가자.”
 
 앞을 보니 다들 가방을 챙겨서 일어나고 있다. 어느새 끝났구나.
 나도 가방을 챙겨서 일어났다. 오늘 수업은 이거 하나다. 병철이가 은근히 다가와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뭐 할까?”
 “뭐 하기는 나 집에 가야 해.”
 “안 돼. 나 오늘 할 거 없단 말이다.”
 
 내 팔을 잡고 안 놓는다. 병철이는 집이 서울로 혼자 자취를 하고 있다. 보통은 동아리나 친구들과 약속을 잡고 놀거나 공부를 한다. 그런데 내 사정을 어느 정도 알면서도 이렇게 말할 정도면 진짜 놀 사람이나 할 게 없고, 오늘은 혼자 있기 싫다는 거다.
 
 “알았어. 뭐 하자고.”
 “일단 밥부터 먹자. 가자 학관으로~”
 
 학관에서는 학생들에게 돈가스를 2500원에 판다. 거기에 300원을 더하면 치킨 돈가스를 먹을 수 있는데 맛이 꽤 괜찮았다. 외부인은 거기에 1000원을 더 내야 한다.
 
 “치킨 돈가스 두 개요.”
 
 병철이는 자기가 계산했다.
 
 “야, 내 건 내가 낼게. 내가 거지냐?”
 “나랑 놀아 주니까 오늘은 내가 사 주는 거야.”
 
 멋있는 녀석···. 우리는 치킨 돈가스를 받아서 중앙에 식탁으로 가서 앉았다.
 앉자마자 병철이는 돈가스를 썰기 시작한다.
 
 “공부는 잘돼 가?”
 
 병철이는 사범 과정을 노리고 있다. 보통 한 학년에 한두 명이 교수 추천으로 물리학 고등학교 선생님이 되는 사범 과정을 밟을 수 있다. 그래서 그걸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것이다.
 
 “모르겠다. 워낙 경쟁이 치열하고··· 또 교수들한테 잘 보여야 하는데 내가 그런 걸 잘 못하잖아.”
 “하긴···.”
 
 그렇긴 했다. 병철이는 친구들이나 후배들에게는 정말 잘하는데 선배들이나 교수들 대하는 걸 어려워했다. 동료나 아랫사람에게 인기가 많고 윗사람에게는 어색한 스타일이다. 사회생활 하기 힘든 성격이다.
 
 “너야말로 공무원 시험 준비는 잘돼 가냐? 요새는 공무원이 짱이긴 해. 열심히 해 봐.”
 “뭐··· 그럭저럭···.”
 
 합격 커트라인에 근접도 못 하고 있긴 하지만···. 솔직히 나는 공부에 재능이 없는 것 같다. 노력하면 된다고 하지만 내 생각으론 노력할 줄 아는 것도 어찌 보면 재능이다.
 
 그렇게 자기 앞가림도 못 하는 두 놈의 상대방 걱정이 이어지고··· 그릇은 어느새 깨끗해졌다.
 병철이가 휴지를 한 장 꺼내 입을 닦으며 말했다.
 
 “잘 먹었다~ 일어나자.”
 “그래 이제 뭐 할 거야?”
 “나가면서 생각하지 뭐. 당구나 한 게임 칠까?”
 
 뭐~ 당구도 나쁘지 않다. 지면 타격이 크지만 이기면 되니···.
 
 “그러던가.”
 
 식기를 반납하고 학관을 나오는데··· 익숙한 얼굴 세 명이 보인다.
 경민, 우진, 지호··· 항상 붙어 다니는 3총사로 우리와도 꽤 친하다.
 녀석들은 우리를 보자마자 막 달려왔다. 뭐지? 분위기가 이상한데··· 피해야 하나.
 하지만 타이밍을 놓치고 녀석들은 어느새 우리 앞이다.
 
 “병철, 지훈 안녕. 너희 지금 뭐 해.”
 “뭐 하긴 뭐 해, 밥 먹고 방금 나왔지. 왜 뭔데 보자마자 뛰어와?”
 
 병철이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경민 녀석은 그래도 좋다고 신나서 말했다.
 
 “우리 지금 롤 하러 갈 건데··· 딱 원딜하고 서폿이 없다. 병철이가 원딜, 지훈이가 서포터 맞지?”
 
 맞기는 하다. 나는 공부는 못해도 게임에는 꽤 소질이 있다. 물론 프로게이머를 하거나 그럴 수준은 아니지만···.
 우리는 많이 하진 않지만, 꽤 좋은 호흡을 자랑했다. 그래서 학교에서 롤 대회를 할 때도 우리를 스카우트하려는 애들이 꽤 많았다. 병철이는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난 상관없는데···. 지훈이 너는?”
 “나도 상관없어.”
 
 당구보다는 롤이 낫다. 당구는 지면 출혈이 너무 크다···. 근데 너무 늦게까지 놀다간 내 등짝이 남아나지 않을 거다.
 
 “대신 나는 한 판만 해야 할 것 같다. 집에서 난리 날 거라.”
 “그건 해 보고 결정하는 거고. 일단 그럼 같이 한다는 거네. 빨리 가자.”
 
 우진이 녀석이 내 팔을 잡아끌며 말했다. 하긴 이렇게 하고 가서 한 판 만에 끝낸 적이 없지···. 오늘도 그러면 진짜 어머니는···.
 학교 후문 길 건너편에 피시방으로 향했다.
 
 한 판만 하려고 했던 게임은···.
 
 “야 딱 한 판만 더 하자.”
 
 두 판이 되고··· 세 판이 되고···.
 나왔을 때는 이미 날이 어둑어둑해진 뒤였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진짜 한 판만 하려고 했는데···.”
 
 주위의 애들은 웃겨서 죽으려고 한다.
 
 “하하하, 항상 그 소리냐?”
 
 너희는 모르겠지···. 이제 집에서 나에게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그걸 알면서 이런 내가 진정한 미친놈이지만···.
 그래도 한바탕 즐기고 나오니 기분이 좋아졌다.
 
 오늘 계속 환각이 보이면서 내가 진짜 미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우울했는데···.
 물론 이런 생각을 하는 지금도 침통은 여전히 둥둥 떠서 내 시야에 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침통이 떠 있는 게 전혀 어색하지 않게 되었다.
 경민이가 내 어깨를 치면서 말했다.
 
 “야 신나게 놀았으니까 술 한잔 빨러 가자.”
 
 그 말에 나는 정색하며 말했다.
 
 “내가 언제 술 마시는 거 봤냐?”
 “그니까 오늘 하루만 마시자고···. 너 술을 못 하는 건 아니잖아. 엄마 핑계로 항상 빠지는 거지···. 마마보이냐?”
 “뭐? 다시 말해 봐.”
 
 이 새끼가.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 병철이가 내 분위기를 눈치채고 빠르게 내 앞을 막았다.
 
 “야야~ 진정해. 경민이가 말이 헛나왔다. 야, 이경민 빨리 사과해.”
 
 이경민도 좀 심했다 느끼긴 했는지 바로 사과했다.
 
 “미안해. 마마보이는 내 실수다. 근데 술자리 항상 빠지는 건 맞잖아.”
 
 사과를 듣자 갑자기 기분이 가라앉았다. 휴~ 니들이 내가 집에서 어떤 취급을 당하는지 알면···. 경민이가 하는 말이 전혀 틀린 말은 아니라는 게 더 화가 난다. 뒤돌아서 얘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말했다.
 
 “난 들어간다.”
 “야~ 밥이라도 먹고 가···.”
 “됐다. 지금도 늦었어. 다음에 보자~”
 
 얘들과 인사를 하고 집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기 위해 걷기 시작했다.
 춘천은 바람이 많이 불어서 해가 지고 나자 좀 쌀쌀해졌다.
 
 ‘외투를 하나 챙겨올걸.’
 
 몸을 약간 움츠리고 걸었다. 걷다 보니 몸에 열기가 올라와서 괜찮아지는 것 같다.
 버스를 타는 곳은 정문 쪽이다. 학교를 통과하는 길과 학교 주위를 도는 길이 있다. 가깝기는 학교를 통과하는 길이 더 가깝지만 오늘은 왠지 산책을 하고 싶다는 마음에 학교 주위를 도는 길을 택했다.
 
 “엄마, 붕어빵 사 주셔서 감사합니다.”
 
 귀여운 꼬마 여자애가 붕어빵을 들고 엄마와 함께 옆에서 같이 걸어가고 있다. 저런 작은 일도 감사하다고 표현하는 걸 보니 착한 아이가 분명하다. 절로 웃음이 지어졌다.
 그런데···.
 
 ‘꼬마 안색이 좀 안 좋아 보이네?’
 
 안색도 파리한 것 같고 숨 쉬는 모습도 좀 이상하다.
 숨을 충분히 안 쉬고 색색거리는 느낌이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아서라, 내가 뭘 안다고···.’
 
 어렸을 적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환자들을 치료하는 걸 본 경험은 있긴 하지만···. 제대로 공부를 한 적은 없다. 애초에 내 성적으로는 한의대 쪽은 갈 엄두도 못 냈으니 일찌감치 포기했었다.
 그런데 무슨 진단을 내리겠다고···.
 
 그래도 혹시 모르니 두 모녀와 발걸음을 맞춰 걷기 시작했다.
 아이의 모습이 점점 더 이상해진다. 엄마도 이제 느끼기 시작한 것 같다.
 
 “아영아. 왜 그래? 어디 아파? 괜찮아?”
 “엄··· 엄마··· 나··· 심장이 너무 빨리 뛰는 것 같아. 힘들어···.”
 
 목소리가 작다. 조금 가까이서 보니 식은땀도 엄청나게 흘리고 있다.
 엄마는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리고 아이를 잡으며 말했다.
 
 “아영아 엄마가 업어 줄게. 병원에 가자.”
 
 그런데 아이가 대답이 없다. 그리고 그 순간 아이의 눈이 감기며 바닥에 쓰러졌다.
 아이 엄마는 쓰러지는 아이를 잡으면서 발작적으로 외쳤다.
 
 “아영아!! 아영아!!! 얘가 왜 이래? 여기요. 누가 좀 도와주세요!!!”
 
 아이 엄마의 외침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누군가는 바로 119 신고를 했다.
 사람들 틈에서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어떻게 하지? 애가 심각하게 아픈 건가?’
 
 그 순간··· 아영이라는 아이의 손목에서 밝은 빛이 났다.
 
 ***
 
 ‘어~ 저 불빛은 뭐지?’
 
 하얀색 불빛이 손목에서 계속 깜빡거리고 있다. 그 불빛을 계속 보고 있자 무엇을 해야 할지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뭐? 맥을 짚으라고?’
 
 무슨 말도 안 되는···. 지금 이것도 어제의 사고에 따른 환각 작용에 일종인 건가?
 아영이라는 아이의 가슴 쪽을 보니 오르내리는 움직임이 전혀 없다. 숨을 안 쉬고 있을 확률이 높다.
 
 “제발 우리 아이를 살려 주세요···.”
 
 아이 엄마는 발작적으로 외치고 있다. 만약 숨을 안 쉬는 게 사실이라면 구급차가 올 때까지 버틸 수 없을 것이다.
 
 ‘뭐라도 해 봐야 돼.’
 
 아이에게 다가가 손목을 잡고 들어 올렸다. 그리고 손가락을 손목에 갖다 대고 맥을 짚었다.
 다들 너무 위급한 상황이라 내 돌발 행동을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아이 엄마조차 패닉 상태가 되어 아무런 말도 행동도 하지 않고 눈물만 흘리고 있다.
 
 아이의 손목에 손가락을 대는 순간···.
 두둥···.
 뭔가 이상한 감각이 느껴진다. 아이의 전신 혈맥이 느껴지고 몸 상태를 직감적으로 알게 되었다.
 
 ‘심정지다.’
 
 그리고 그 순간···.
 계속 공중에 뜬 상태로 내 시야에 들어와 ‘내가 미친 건가?’ 고민하게 했던 침통이··· 반짝거리기 시작한다. 이번에도 내 머릿속에서 다음에 해야 할 행동이 떠오른다.
 
 ‘이건 또 어떻게 하라는 거야? 저걸 잡으라고? 분명 안 잡히고 통과했었는데···.’
 
 일단 침통을 향해 왼손을 뻗어서 잡아 보았다. 그런데··· 잡힌다. 왼손에 든 침통을 가만히 가져와서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침통의 뚜껑을 열었다.
 안에는 여러 개의 침이 들어 있고 그중에 하나가 또 반짝거리고 있었다.
 
 “한의사세요?”
 
 그때 들리는 남자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 보았다. 아이가 쓰러지면서 몰려든 사람 중의 한 명이 나를 내려다보며 던진 질문이다.
 응? 잠시···.
 
 ‘침통과 침이 보이는 건가?’
 
 그럼 이게 환영이 아니었다는 뜻이야? 침통에서 반짝거리는 침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아이를 내려다보는데··· 코 아래 인중에 붉은색으로 반짝이는 점이 보인다. 혈 자리다. 그리고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이 침으로 저 붉은색 점이 반짝거리는 곳을 찔러야 한다.’
 
 침을 가까이 가져갔다. 그리고 붉은색 점이 반짝거리는 곳에 침을 찔러 넣었다. 어느 정도 들어가자··· 붉은색 점이 노란색으로 바뀐다.
 
 ‘노란색으로 바뀌면 더는 깊게 찌르지 말라는 뜻···.’
 
 붉은색이 의미하는 것은 침을 찔러야 하는 위치, 노란색이 의미하는 것은 침의 깊이다. 그리고 침을 잠시 돌리고 톡톡 건드리자···. 노란색이 다시 녹색으로 바뀌었다.
 
 ‘이제 이건 빼라는 뜻···.’
 
 침을 뺐다. 그러자 이번에는 다른 부위에 붉은색 점이 세 개로 늘어났다. 침통을 보자 다른 침 두 개가 또 반짝거리고 있다. 우선 손에 든 침을 붉은색 점 중 하나로 찔러 넣었다. 어느 정도 깊이로 들어가자 노란색으로 바뀐다. 이번에는 돌리고 건드려도 색이 바뀌지 않는다. 빼지 말라는 뜻이다.
 
 나머지 반짝이는 두 개의 침을 꺼냈다. 그리고 각각 다른 붉은색 위치에 노란색이 될 때까지 찔러 넣고 돌리고 톡톡 건드렸다. 세 개를 모두 찌르자 이번에 또 다른 위치에 붉은색 점이 나타났다. 기존에 찔러 둔 침의 혈들은 여전히 노란색이다.
 
 ‘또?’
 
 침통을 보자 반짝거리는 침이 또 하나가 보인다. 꺼냈다. 그리고 이번에 반짝이는 붉은색 점으로 찔러 넣었다. 노란색으로 바뀌고··· 돌리고 톡톡 건드리는 순간···. 아까 찔러 뒀던 4개의 혈과 함께 동시에 모든 혈이 녹색으로 바뀐다. 그리고···.
 
 “콜록··· 콜록··· 흐으음···.”
 
 아이가 짧게 기침하더니 작은 신음을 내뱉고 다시 숨을 쉬기 시작한다. 가슴의 정상적으로 위아래로 움직였다. 그 순간 아이 엄마는 정신을 놓고 있다가 아이에게 달려들어 말했다.
 
 “아영아, 괜찮아?”
 “으음··· 엄마 괜찮아요···.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아영이는 눈을 간신히 뜨며 대답했다. 나는 아영이에게 찔러져 있는 침을 빼서 침통으로 넣었다. 그 순간 침통은 스스로 닫히면서 내 손에서 빠져나가 원래 떠 있던 위치로 돌아갔다. 다시 손을 뻗어서 잡아 보려고 했는데 그냥 통과해서 지나갔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영이 엄마가 갑자기 내 쪽을 보며 손을 잡고 말했다. 순간 당황해서 말했다.
 
 “아··· 아니 저는···.”
 
 아영이 엄마는 가방을 뒤적거리더니 지갑을 꺼내어서 5만 원짜리 지폐 두 장을 꺼냈다. 그리고 그것을 내 손에 쥐여 주며 말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걸로 사례가 될 수는 없지만 조그마한 마음의 표시라고 생각해 주세요.”
 “아··· 아니 저는 사례를 바라고 한 게···.”
 
 하지만 아영이 엄마는 내 말은 들으려고도 하지 않고 연신 감사하다는 말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다시 아영이에게 가서 아이를 부축했다.
 
 “아영아, 괜찮아? 일어날 수 있겠어?”
 “네 엄마, 괜찮아요.”
 
 아영이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문제없다는 듯 콩콩 뛰었다.
 아영이 엄마는 아영이를 와락 껴안았다.
 
 “와아아아~”
 
 주변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갑자기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돈을 돌려줘야 하는데 두 모녀에게 말을 걸 분위기가 아니다.
 
 ‘에라 모르겠다.’
 
 그냥 무리를 빠져나와 발걸음을 재촉했다. 사람들은 두 모녀에게 관심이 쏠려서 다행히 나를 쫓아오지는 않았다.
 손에 든 10만 원을 보았다.
 
 ‘그래 목숨을 구해 줬는데. 이 정도 받아도 되겠지. 그게 아이 엄마도 마음이 편할 거고.’
 
 돈을 주머니 안으로 넣었다.
 
 ‘그런데 진짜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둥둥 떠서 나를 따라오고 있는 침통을 바라본다. 너 도대체 뭐냐?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걸어가면서도··· 버스 안에서도··· 계속 멍한 상태였다.
 도무지 믿기지 않는 일이다.
 
 ‘설마 방금 있었던 일도 환각인가?’
 
 그리고 마침내 집 앞에 도착해서도 멍한 상태는 돌아오지 않았다.
 넋이 빠진 듯 있다가 정신을 차리며 나무로 된 집 문을 열며 말했다.
 
 “다녀왔습니다.”
 “허지훈 너!! 어디서 뭘 하다 이제 들어와!!”
 
 아, 맞다···. 어머니···. 순간 정신이 더 퍼뜩 들었다.
 
 “아··· 죄송해요. 어제 일로 몸 상태도 안 좋고 스트레스도 쌓여서 친구들이랑 좀 놀면서 풀다 보니···.”
 “지금 네가 놀면서 스트레스 풀 때야!!!”
 
 빗자루를 거꾸로 들고 마루에서 내려오시는 게 보인다. 고작 한나절 사이에 원래대로 돌아오셨구나···. 아침에 다정하시던 어머니는 어디에···. 어머니를 피해 마루를 빙빙 돌면서 뒤를 보며 외쳤다.
 
 “엄마 죄송해요. 다신 안 그럴게요.”
 “일단 이리 오고 말해!!!”
 
 어젯밤 좁은 내 방에서 펼쳐졌던 추격전이 무대를 넓혀 마당에서 펼쳐졌다.
 
 “아아···.”
 
 엉덩이에서 불이 나는 것 같다. 어머니도 참···. 공부하라고 해 놓고 아들 엉덩이를 이 지경을 만들어 놓으면···. 의자에 앉아 있는데 계속 따끔거린다.
 책을 편 지 10분도 안 되어서 졸음이 솔솔 밀려온다. 하아~ 나란 놈은 진짜···.
 뒤를 보니 침대가 너무 매혹적으로 나를 유혹하고 있다.
 
 ‘10분만 누워 있다 다시 공부하자.’
 
 침대에 누워 생각했다. 이 침통의 정체는 뭘까···. 진짜 내가 완전히 미쳐 버린 건가?
 손을 뻗어 다시 침통을 잡아 보려 했지만··· 역시나 그냥 통과해 버린다.
 몇 번을 계속 손짓했다. 누가 보면 허공에다가 삽질하는 미친놈이라고 생각할 거다.
 
 ‘역시 잡을 수 없네. 아픈 사람이 있어 진맥을 했을 때만 잡을 수 있는 건가?’
 
 진짜라면 신기한 일이다. 분명 그날 창고에서 보았던 천의비록이라는 책과 관련이 있다.
 일어나서 컴퓨터를 켰다. 그리고 인터넷으로 ‘천의비록’을 검색해 봤는데···.
 나오는 게 없다.
 
 “에이~”
 
 다시 침대로 가서 누웠다. 역시 내가 미쳐 있는 건가···.
 
 ‘조금만 더 누워 있자.’
 
 “허지훈!! 일어났어? 아침 먹어야지.”
 “으으음~”
 
 왜 이렇게 눈이 부시지? 쉬었으니 일어나서 공부해야 되는데···.
 
 “허지훈!! 빨리 안 나와? 나와서 수저라도 놔!!”
 
 어머니 목소리···. 화가 나신 거 같은데···.
 눈을 떴다. 헉~ 아침이다.
 잠깐 누워 있겠다는 게 잠이 들어 버렸나 보다. 급하게 일어나면서 말했다.
 
 “네~ 엄마 나가요.”
 
 옷은 입고 있고···. 거울을 보고 눈곱을 뗐다. 드르륵···. 내 방문은 밀어서 여는 문이다. 문을 여니 어머니가 마당을 쓸고 계신다. 내 쪽을 보며 말씀하셨다.
 
 “잘 잤니? 조금 있으면 밥 다 되니까. 밥 먹기 전에 세수라도 해. 반찬이랑 수저도 놓고.”
 “네, 어머니.”
 
 내려와서 마당 수돗가에서 대충 세수를 했다. 이빨도 닦고~
 할아버지와 부모님에게 어제 있었던 일을 상의해 볼까?
 안 그래도 천덕꾸러기인데···. 미친놈 취급까지 받는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일단은 천의비록과 침통에 관한 이야기는 숨기고 더 알아보자.’
 
 꿈속에서 본 광경···. 할아버지가 어린 시절 말씀하셨던 의술이 하늘에 다다른 자···. 그것에 어떤 힌트가 있을지도 모른다.
 가장 중요한 건 우선 환각인지 실제인지 알아야 한다. 만약 증세가 심각하다면 어제 사건 전체를 내 머릿속에서 멋대로 만들어 낸 거일 수도 있다.
 
 수건으로 얼굴을 닦아 내고 부엌으로 갔다. 그리고 밥과 국을 퍼서 놓고··· 수저를 놓고··· 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내고··· 밥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 학교의 슈퍼스타가 되다
 
 아버지는 일찍 출근하셨다. 일주일에서 평일 중 하루는 한 시간 반 일찍 문을 여신다. 주말에는 토요일 오전만 열기 때문에 직장인들을 배려해서 출근하기 전에 오라고 그렇게 하시는 것이다.
 
 그런 날에는 아침을 아버지 혼자 먼저 드시고 나간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다. 그래서 지금은 할아버지, 어머니, 나 이렇게 셋이 먹고 있다. 할아버지는 내가 정신이 든 이후에 처음 뵙는 것이다. 어제 집에 들어왔을 때는 이미 주무시고 계셔서 못 뵈었다.
 할아버지는 오랜만에 자상한 표정을 보이며 말을 거셨다.
 
 “몸은 어때? 괜찮으니?”
 “네, 멀쩡해요. 괜찮습니다.”
 
 나는 씩씩하게 알통을 보이며 대답했다. 그 모습에 할아버지는 다시 미소 지으셨다. 오랜만에 보는 미소이다. 그리고 어머니를 보면서 말씀하셨다.
 
 “어멈아. 애 몸도 안 좋은데 너무 뭐라고 하지 마렴.”
 
 아마 어제 내가 들어와서 한바탕 추격전을 벌일 때 안에서 다 듣고 계셨던 것 같다.
 어머니는 약간 민망하다는 표정을 지으시며 대답하셨다.
 
 “안 그래도 어제는 방에 들어갔을 때 일찍 자고 있어도 아무 말 안 했어요. 아버님···.”
 
 아, 내가 자고 있을 때 들어오셨었구나. 나에게 이런 따스한 분위기라니···. 한 번씩 아플 만하네···.
 오랜만에 가족의 따스함을 느끼며 아침을 먹고 나서 방으로 돌아왔다.
 오늘은 학교 수업이 세 개나 있는 날이다.
 
 여전히 내 옆을 떠다니는 침통···. 물을 떠 와서 어제 병원에서 받아 온 약을 먹었다.
 학교에 나갈 준비를 했다. 복장은 어제와 거의 동일하다. 청바지에 티셔츠···. 그리고 가방에 공무원 국사 교재를 넣었다. 좀 일찍 나가서 도서관에서 공부를 할 생각이다. 집에서는 어머니가 수시로 감시를 하셔서 오히려 더 공부가 안되는 느낌이다.
 
 다시 생각해도 어제 일은 모두 환각인 것 같다. 그게 현실이란 게 말이 안 된다.
 어제 아영이와 그 엄마, 그리고 주위의 사람들 모두 내가 만든 환각 만들어진 이야기일지 모른다. 그렇다면···.
 
 ‘나 진짜 완전히 미친 건가?’
 
 그렇게 생각하고 주머니에 손을 넣는데··· 지폐가 만져진다. 꺼내 보니 5만 원짜리 두 장··· 10만 원이다.
 
 ‘이걸 보면 환상이 아닌데···.’
 “후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더 심하게 미친 거일 수도 있다. 이 10만 원조차 다른 데서 생긴 건데 내가 만든 스토리에 끼워 넣은 걸지도 모른다. 지금 고민해 봤자 소용도 없다.
 가방을 메고 문을 열었다.
 
 “어머니,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벌써 나가니?”
 
 어머니는 설거지를 하다 말고 나를 보며 말씀하셨다.
 
 “네. 도서관에 가서 공부 좀 하다 수업 들어가려고요.”
 “그래, 알았다. 오늘은 일찍 들어와.”
 
 오늘도 늦게 들어오면 내 엉덩이가 남아나지 않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문을 열고 나섰다. 버스 정류장에서 학교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그리고 자리에 앉아서 갔다.
 
 그리고 습관적으로 침통을 향해 손을 뻗었다. 역시 그냥 통과한다. 진짜 그냥 내 환각인 건지··· 아니면 병자가 있을 때만 만질 수 있는 건지···.
 
 “쟤 맞지?”
 
 갑자기 옆에서 들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여자 둘이다. 둘 다 우리 학교 학생으로 보인다. 분명 나를 보고 있다가 내가 고개를 돌리자 갑자기 앞을 본다. 그리고 바로 자기들끼리 마주 보고 또 웃는다. 입 모양을 보니 ‘맞지, 맞지.’ 하는 것 같다.
 
 ‘뭐야 저것들은···.’
 
 날 아나? 사정상 난 지금 거의 아웃사이더에 가깝다. 과에 가끔 노는 녀석들이 있긴 하지만 존재감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처음 본 여학생들이 나를 알아봤을 리가 없다.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겠지.’
 
 맘 편하게 그렇게 생각하고 넘겼다. 지금 다른 문제들만으로 머리가 깨질 지경이다.
 버스가 학교 정문에 정차하고··· 버스에서 내렸다.
 띠띠띠··· 그때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한다.
 
 ‘누구지?’
 
 폴더형인 내 핸드폰을 열어 ‘박병철’이라는 이름을 확인하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
 ―헤이요~ 마이 슈퍼스타.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밑도 끝도 없는 소리를 한다.
 
 “뭔 소리야?”
 ―아직 못 봤어?
 “뭘 못 봐?”
 “―지금 어딘데?
 “이제 학교 정문···. 중도로 공부하러 갈 건데 왜?
 ―오키. 중도에서 보자.
 
 그리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
 아까 버스 안에서 웃었던 여자애들이 옆에서 나를 쳐다보고 있다. 내가 고개를 돌려서 눈이 마주치자 자기들끼리 키득거리더니 학교 안으로 들어간다.
 
 ‘오늘 진짜 이상한 날이군.’
 
 하늘을 한 번 쳐다보고 학교 정문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중앙 도서관으로 가기 위해 후문 쪽으로 걸어가는데 평소와 다르다. 자꾸 지나가는 애들이 나를 쳐다보는 느낌이 든다.
 
 ‘대체 뭐야···.’
 
 항상 관찰을 해도 내가 하는 쪽이었다. 내가 대상이 되는 것은 익숙하지 않다. 더군다나 그 이유를 모르겠으니 더 환장하겠다.
 어차피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없다. 이 무거운 발걸음을 계속 옮기는 것 말고는···.
 그때 내 이 답답한 심경을 단박에 해결해 줄 구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야~ 슈퍼스타!!”
 
 박병철!! 오늘만큼 네가 반가운 날이 없었다.
 달려가서 녀석을 끌어안았다.
 
 “반갑다, 이 새끼야!!”
 “뭐야 너 왜 이래?”
 
 녀석은 무엇인가 징그러운 게 몸에 기어오른 것처럼 나를 밀쳐 내며 말했다.
 하지만 나는 지금 그런 걸 문제 삼을 생각이 없다. 빨리 해결해야 할 궁금증이 있기 때문이다.
 
 “빨리 말해 봐. 슈퍼스타가 뭐야? 왜 자꾸 학교 애들이 나를 쳐다보는 느낌이 드는 건데?”
 “아~ 그거···.”
 
 박병철은 당연히 이유를 알고 있다는 듯 능청스러운 말투를 하고는···.
 
 “그게 뭐냐면 말이야···.”
 
 뜸을 들인다. 나를 약 올리고 있는 거다. 주먹을 쥐고 서서히 들어 올렸다.
 병철이는 바로 눈치채고 꼬리를 내린다.
 
 “알았어. 알았어. 말해 줄게.”
 “빨리 말해. 내가 아직 못 봤다고 한 게 뭔데?”
 
 녀석은 주머니에서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냈다. 그리고 화면을 나에게 보여주는 상태로 유튜브에 접속했다.
 
 “유튜브?”
 “일단 봐 봐.”
 
 그리고 검색을 한다. 춘천 히어로? 그중 가장 높은 조회 수의 동영상을 클릭했다.
 섬네일만 봐도 어디서 많이 보던 광경이다.
 
 “이··· 이건···.”
 “그래 이거 너 맞지?”
 
 그건 아영이에게 내가 침을 놔 주는 모습을 촬영한 동영상이었다. 내 얼굴은 모자이크도 안 되고 다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조회 수를 보니··· 20만??
 
 “이··· 이거 말이 돼? 난 일반인인데 뭐 개인정보 보호, 응? 뭐 초상권 그런 거 없어?”
 “유튜브에 요청하면 내려 주긴 할걸? 그런데 그럼 뭐 해, 댓글 봐라. 벌써 너 신상 다 털렸어. 이거 우리 학교 게시판에도 올라왔고 학교 전체에 쫙 퍼졌다.”
 
 이제야 애들이 나를 쳐다보던 이유를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잠시만···. 이 동영상이 있다는 건.
 
 “야, 다시 줘 봐.”
 
 병철이의 손에서 스마트폰을 가져와서 동영상을 다시 클릭했다. 내가 침을 놓는 장면···.
 그리고 잠시 뒤 아영이가 정신을 차리는 장면까지··· 모든 장면이 다 찍혀 있다.
 
 ‘환각이 아니야···.’
 
 확인해 봐야 한다.
 
 “야 손목 내놔 봐.”
 “손목은 왜?”
 “오늘 어디 아픈 데 없어?”
 “아픈 데?”
 
 병철이는 잠시 갸우뚱하며 생각을 한다.
 
 “아침을 급하게 먹어서 체기가 좀 있긴 한데··· 왜?”
 “체기라···.”
 
 순간 병철이에게 체기가 있다는 말을 듣고 그것을 생각하는 순간···. 병철이의 손목이 반짝거리기 시작한다.
 
 “일단 손목 줘 봐.”
 “아아아아··· 아파 알겠어.”
 
 녀석의 손목을 비틀자 한바탕 엄살을 떨더니 결국 손목을 맡겼다.
 병철이의 맥을 짚는 순간···.
 아영이의 맥을 짚을 때 느꼈던 기묘한 감각이 다시 한번 느껴졌다.
 그리고··· 또다시 침통이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손을 뻗어서 침통을 잡았다. 이번에는 통과하지 않고 잡히면서 침통이 내 손에 들려 있다.
 
 “어? 야 그거 뭐야?”
 
 병철이가 내 손에 들린 침통을 가리키며 말한다.
 역시···. 내 손에 잡히는 상태가 되면 다른 사람들 눈에도 보이게 되는 것이다. 침통을 열자 여러 개의 침 중에 반짝거리는 것이 보인다.
 
 그것을 잡고 꺼냈다. 그리고 다시 병철이를 돌아봤다. 가슴 부위 쪽에 붉게 반짝이는 점이 보인다. 저곳이 막혀 있는 혈이다.
 붉게 반짝이는 혈 자리로 침을 가져갔다. 병철이는 놀라며 말했다.
 
 “야야!! 너 뭐 하는 거야? 그걸로 나 찌르게?”
 “가만히 있어 봐!!! 체한 거 낫게 해 줄 테니까.”
 “야. 나 주사 맞는 거 싫어서 병원도 안 가는 사람이라고.”
 
 자랑이다. 억지로 병철이의 어깨를 붙잡고 침을 찔러 넣었다.
 그러자 반항하던 녀석이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어? 안 아프네?”
 
 녀석의 말은 무시하고 집중했다. 침을 어느 정도 깊이로 넣자 붉은빛이 노란색으로 바뀐다. 그리고 살살 돌리고 톡톡 치자··· 녹색으로 바뀌었다. 침을 뽑았다. 다른 곳에 붉은빛이 난다.
 그 과정을 두 번 더 반복했다. 그러자···.
 
 “끄억~”
 
 병철이가 한바탕 트림을 했다. 그리고 배를 쓸어 만지며 말했다.
 
 “와 진짜 괜찮아졌어. 너 뭐냐? 이런 건 어디서 배운 거야?”
 
 어디서 배웠냐고? 둘러댈 말을 찾았다.
 
 “집안 비전이야.”
 
 대충 둘러대고 생각한다.
 이건 환각이 아니다. 나에게 사람을 치료하는 초능력이 생긴 것이다!!!
 
 ***
 
 “대박···. 그 동영상에서 네가 그 아이를 치료한 게 진짜였단 거네?”
 
 병철이는 옆에서 흥분하고 난리가 났다. 녀석의 반응이 중요한 게 아니다. 지금 나는 멍하니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어떻게 나에게 이런 일이···. 이런 행운이···. 이거면 엄청난 돈을 벌 수도 있잖아?’
 
 이것으로 사람을 치료할 수 있는 범위가 어느 정도까지인지는 모르겠다. 그건 차차 알아 가면 되는 거고···. 이 능력이 어디까지 효용이 있는지 확실히 알기 위해서 앞으로도 가능한 많은 실험을 해 봐야겠다.
 
 ‘이미 영상 등으로 퍼졌으니 찾아오는 애들만 해 주면 되겠지.’
 
 단순히 그냥 침을 놔 주는 거다. 혹시 잘못돼도 큰 부작용은 없을 거다. 괜히 먼저 나서서 원망을 듣기보단 자발적으로 치료해 달라는 애들만 대상으로 하면 된다.
 그런데 갑자기 생각이 끊겼다. 병철이가 헤드록을 걸어온 것이다.
 
 “야, 이놈아!!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냐? 지금까지 이런 걸 이 형님한테 왜 숨긴 거야?”
 “읔읔···.”
 
 이 새끼 평소에 뭘 먹기에 이렇게 힘이 좋은 거야? 힘으로 도저히 빠져나올 엄두가 안 난다. 그렇다면 비장의 무기··· 두 손을 들어 손가락을 세우고 옆구리를 간질였다.
 
 “이히히히···.”
 
 역시 백발백중이다. 녀석은 웃으면서 단숨에 헤드록을 풀었다. 풀려나자마자 거리를 벌리고 말했다.
 
 “길거리에서 이러지 말자. 쪽팔린다. 중도 가서 공부나 하자.”
 
 병철이가 미묘한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이내 대견하다는 듯이 내 머리를 쓰다듬으려 했다.
 
 “오~ 세상이 뒤집히려나 보다? 네 입에서 공부가 나오고···.”
 “뭐 하는 짓이야?”
 
 병철이의 손을 피하면서 말했다. 녀석은 가방을 들어서 어깨로 멨다. 그리고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예전이야 진짜 확실한 목표가 없었으니까···. 이제 한의사가 되기만 하면 재벌이 확정되어 있는데 어떻게든 해 봐야지.’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세상에 노력해서 안 되는 일이 있을라고···. 하지만 언제나 예외는 존재한다.
 도서관에 와서 자리 잡고 앉은 지 10분도 안 돼서 눈이 감기기 시작한다.
 
 “쯔쯔···.”
 
 혀 차는 소리에 잠이 깨서 고개를 드니 병철이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다. 이러면 안 되는데··· 공부해서 한의학과에 가야하는데···. 병철이가 손을 입에 대고 조용하게 속삭였다.
 
 “야 음료수나 한잔 마시고 오자.”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 바로 대답했다.
 
 “그래. 가자.”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자판기가 있는 휴게실로 갔다.
 덜컹~ 자판기에서 음료 두 개를 뽑았다. 병철이는 청량, 나는 이온 음료다. 창 쪽에 있는 긴 의자에 앉아서 음료수 캔을 땄다. 그리고 한 모금···. 시원한 액체가 목을 넘어가자 정신이 맑아지는 느낌이다. 병철이도 옆에 앉아 캔을 따고 마시기 전에 말했다.
 
 “야··· 어떻게 책을 편 지 3분도 안 되서 눈을 감기 시작하냐?”
 “야!! 3분은 아냐 10분···.”
 “끄억~”
 
 내가 말하는데 녀석은 손에 든 청량음료를 한 모금 들이켜더니 트림을 했다.
 
 “10분은 개뿔···. 3분도 안 됐어.”
 
 하아~ 그럼 이제 어쩐다. 한의사가 될 수 없다면 이 초능력은 쓸모가 없는 게 아닐까?
 그러면 어떤 식으로 능력을 이용하고 살아야지? 많은 고민이 필요할 것 같다.
 손에 든 음료수를 원샷하고 캔을 악력으로 구기면서 말했다.
 
 “들어가자. 놀 시간이 없다.”
 
 병철이는 그런 나를 보며 황당하다는 표정을 잠시 짓더니 따라왔다.
 
 ***
 
 “허지훈··· 허지훈···.”
 “아흠~”
 “뭘 아흠이야. 허지훈 일어나.”
 
 응? 내가 뭘···. 눈을 뜨니 시야가 책상 바닥이다. 후다닥 몸을 일으켰다. 가방을 챙겨서 어깨에 메고 있는 박병철이 눈에 들어온다. 녀석을 올려 보며 말했다.
 
 “너 뭐 해? 공부해야지.”
 “앉자마자 자던 놈한테 들을 소리는 아닌 거 같다. 일어나. 이제 수업 들어가야 할 시간이야.”
 
 무슨 소리야 수업 시간까지 두 시간이 넘게 남았··· 10분 남았네?
 
 “야··· 시간이 언제 이렇게···?”
 
 병철이에게 말을 하려는데 이미 녀석은 가방을 메고 한참을 가 있다. 그리고 내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고 어서 오라고 손짓한다. 빠르게 책을 가방 안으로 밀어 넣은 뒤 메고 뒤를 쫓아갔다.
 따라붙어서 바로 물어봤다.
 
 “야, 나 언제 잠들었냐?”
 “앉고 나서 한 5분 있다가 엎드리더니 바로 자더라. 코는 안 골아서 다행이다.”
 
 후~ 심각한 건 알고 있었지만 병철이에게 이렇게 말로 들으니 더 와닿는다.
 
 “그냥 포기해. 공부도 때가 있고 되는 사람이 있는 거야.”
 
 포기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단 말이다 이 자식아.
 도서관을 나와 수업이 있는 강의실로 향했다.
 
 미래과학관···. 최근에 지은 건물로 이번 학기부터 개방되었다. 우리 물리학관에 비해 비교도 할 수 없게 좋다. 아치형 붉은 지붕에 사방이 유리로 되어 있는 세련된 건물이다. 우리는 건물로 들어가며 계속 감탄사를 내뱉었다.
 
 “와 여기는 바닥도 대리석이네.”
 “천장 높이 봐···. 그리고 천장도 유리야. 하늘이 다 보여.”
 
 시골에서 서울에 갓 상경한 촌놈처럼 우리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걸어갔다. 그리고 잠시 뒤···. 서로를 한 번 쳐다보고 자괴감에 거의 동시에 한숨을 쉬었다.
 
 “후~ 뭐 하는 거냐? 우리?”
 “그러게. 그래도 물리학과 건물도 페인트칠 벗겨진 거라도 다시 칠해 주면 좋으련만···.”
 
 위치도 구석이고 여기저기 옛날식 건물에 여기저기 페인트가 벗겨져 다른 과 애들에게 물리학과 건물은 별명이 폐가이다.
 사실 크게 상관은 없는데 이상하게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부끄럽고 신경이 쓰인다.
 
 이번 수업은 영어 작문 수업이다. 우리 과 말고도 다른 과 애들도 많다.
 병철이가 들어가면서 중얼거린다.
 
 “이 수업은 예쁜 애들이 많아서 수업이 지루하지가 않아.”
 
 녀석의 마음이 곧 내 마음과 같다. 강의실은 강단이 아래쪽에 있고 학생들의 책상이 경사져 올라가는 구조이다.
 많은 애들을 관찰할 수 있게 이번에도 뒤쪽에 가서 자리 잡았다.
 
 앞쪽 자리들이 속속들이 찼다. 이경민 일행도 들어와서 우리 앞쪽에 자리를 잡았다. 시야 가리지 마라!!! 여름이라 시원한 짧은 치마의 여성 학우들이 많이 보인다. 이런 교양 수업을 듣는 가장 큰 즐거움이다.
 
 잠시 뒤···. 외국인 강사님이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Hello~ everyone.”
 
 들어오자마자 유쾌한 목소리로 인사를 하셨다.
 
 “Hi~”
 
 학생들도 모두 강사님께 인사를 하며 수업이 시작됐다.
 
 또르르~ 나는 연필 굴리기를 하고 있다. 영어는 공무원 시험 때문에 꾸준히 공부하는데 아무리 해도 30점을 넘지 못하는 약한 과목이다.
 
 “아하하하~”
 
 애들은 강사님 말 한마디에 웃기도 하고 하는데 나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다. 처음에는 여학우들 보는 재미라도 있었는데 보다 보니 그것도 지겹다. 도서관에서 숙면을 한 덕에 잠도 오지 않는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이 연필 굴리기다.
 
 또르르~ 끝까지 굴러가면··· 다시 주워서 굴린다. 또르르~ 반복했다. 단순 동작을 반복하다 보면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 든다. 맑아지다 못해 텅텅 비어 가는 듯한···. 그러다가 병철이 쪽을 봤다. 집중해서 수업을 잘 따라가고 있다. 역시 우등생은 다르다.
 
 띵딩딩딩···. 구원의 소리가 들려왔다. 드디어 끝났구나.
 
 “으으~~~”
 
 기지개를 크게 켰다. 다들 필기구와 책을 정리해서 가방에 넣고 일어나고 있다. 나도 정리를 하는데··· 앞자리 이경민이 눈에 들어온다. 아까부터 느꼈는데 고개가 오른쪽으로 심하게 기울어져 있다. 어깨를 툭툭 치며 말을 걸었다.
 
 “야, 이경민. 왜 고개를 오른쪽으로 기울이고 있냐?”
 
 이경민은 고개를 못 돌리고 몸을 틀어 내 쪽을 보며 말했다.
 
 “어··· 잠을 잘못 잤는지 담이 걸렸나 봐. 여기서 고개를 들거나 돌리려고 하면 통증이 엄청 심해.”
 
 그 말에 병철이가 다가오며 말했다.
 
 “오, 지훈아. 실력 발휘 한 번 더 해 봐.”
 “실력 발휘? 무슨 실력 발휘?”
 
 이경민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병철이가 내 대변인처럼 나서며 대답했다.
 
 “아직 동영상 못 봤냐? 지훈이가 딱~ 죽어 가던 애 살리는 거···. 아까 나 심하게 체한 것도 한 방에 해결해 줬다. 그 정도는 그냥 치료해 줄 거야.”
 “진짜? 어떻게?”
 
 이번에는 내가 대답하려고 하는데··· 또 병철이가 나선다.
 
 “침술로. 가문 비전이래. 일단 한번 받아 봐. 통증도 하나도 없다.”
 
 경민이는 반신반의하지만 병철이가 워낙 자신 있게 말하니 어느 정도는 믿는 눈치다.
 경민이의 팔목을 향해 손을 뻗으며 말했다.
 
 “그럼 한다.”
 
 맥을 짚었다. 또다시 느껴지는 기묘한 감각···. 침통이 반짝거리기 시작한다.
 몸을 돌리고 가방에서 꺼내는 척하면서 침통을 잡았다. 그리고 침통에서 반짝거리는 침을 꺼내자···.
 경민이가 당황하기 시작한다.
 
 “어? 그걸 나한테 꽂는 거야?”
 “걱정 마. 형님이 보증한다니까.”
 
 병철이가 경민이를 움직이지 못하게 잡았다. 그리고 나는 침을 경민이에게 천천히 가져갔다.
 잠시 뒤···.
 
 “와~ 진짜 신기하네.”
 
 경민이는 고개를 좌우로 움직이면서 말했다. 갑자기 뒤도 확 돌아보고··· 고개를 위아래로도 움직이고···.
 
 “하나도 안 아파. 담 걸렸던 게 완전히 풀어졌어. 지훈이, 너 진짜 대단하다.”
 
 엄지손가락을 추켜올렸다. 그러더니···.
 
 “아까 입이 심심할 때 먹으려고 산 건데 내 성의다.”
 
 하면서 손에 초콜릿을 쥐여 줬다.
 
 “그래 잘 먹을게.”
 
 그땐 몰랐다. 병철이와 경민이를 치료해 준 게 불행의 씨앗이었음을···.
 
 
 # 내게도 봄날이 오는 건가요?
 
 “지훈아, 나 갑자기 복통이···.”
 “나 다리가 삐어서 엄청 부어올랐어. 어떻게 안 될까?”
 “콜록~ 지훈아···.”
 “야, 허지훈!!!”
 “지훈 선배···.”
 
 병철이와 경민이는 자기들을 내가 치료해 준 걸 동네방네 소문내고 다녔다. 덕분에 나는 완전 눈코 뜰 새가 없어졌다.
 내가 들어가는 수업마다 수업 직전 그리고 이후 완전 병원이 되었다. 처음에는 우리 과 애들만 왔는데 점점 다른 과 애들도 치료를 해 달라고 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어차피 능력을 시험해 보자’ 하고 치료해 주기 시작했는데, 점점 벅차다.
 
 “후아~ 미치겠네.”
 “왜 그래, 우리 슈퍼스타~”
 
 옆에서 깐족거리는 병철이를 노려보았다. 녀석은 나한테 치료받고 간 사람들이 준 과자를 먹으면서 책상에 앉아 있다. 요새 거의 내 매니저처럼 굴고 있다.
 
 바쁘기는 하지만 나쁘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내가 뭘 요구한 건 아니었지만, 치료를 해 주면 이런 거 저런 거를 주기도 했다. 주로 먹을 거고, 그 밖에도 노트, 필기구 등 다양하다. 제일 좋은 건 식권이었다.
 
 그리고 내게 가장 좋은 일은 따로 있었다.
 
 ‘아직 안 먹히는 병이 없었어···.’
 
 물론 심각한 병에 걸린 애들이 오진 않았다. 다들 기껏해야 체하거나 담이 걸리거나 어디가 삐거나, 감기에 걸리거나··· 일상적인 병이나 가벼운 외상으로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어차피 나는 내 능력을 시험해 보기도 해야 하고··· 봉사나 하자는 마음으로 모두 치료해 주었다.
 
 ‘언젠가는 큰 병에도 시험해 볼 날이 있을까?’
 
 암, 에이즈 같은 큰 질병에도 효과가 있다면 이건 진짜 획기적인 일이다. 내가 인류 역사를 바꿀 수도 있다.
 물론 그런 거창한 계획은 없다.
 
 난 그냥 내 한 몸 잘 먹고 잘살면 되는 주의다. 여유가 넘친다면 주위도 도와주기도 하겠지만···. 다른 것들보다 내가 우선이다. 그나저나 오늘은 이제 그만해야겠다. 더 늦으면 큰일 난다.
 
 “이제 슬슬 접어야겠다.”
 “왜? 벌써? 아직도 기다리는 애들 많은데···.”
 “나 힘들어. 그리고 집에도 빨리 들어가 봐야 하고···.”
 
 얘들 치료해 주다가 왔다고 하면 믿어 주시지도 않을 거다. 어디서 거짓말이냐고 더 맞기나 하겠지···. 병철이는 어느 정도 사정을 알기 때문에 내 말에 수긍하고 책상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기다리고 있는 얘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말했다.
 
 “자자~ 오늘은 여기까지···. 다음 기회를 노리세요.”
 “아~ 30분 기다렸는데···. 나까지만 해 주면 안 돼?”
 “어허! 우리 허 의원님도 사람인데 휴식이 필요하겠죠? 영업시간 끝입니다. 오늘은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다음에 다시 만나요~”
 
 여기저기서 불만이 나왔지만 병철이가 잘 수습했다. 얄밉기도 하지만 쓸모도 많은 녀석이다.
 얘들은 병철이에게 떠밀려 강의실 밖으로 다 나갔다.
 침통을 다시 떠다니는 모드로 날렸다. 그리고 가방을 챙기고 일어났다.
 
 병철이와 기분 좋게 대화를 나누면서 강의실 문을 열고 나가는데···.
 
 “허지훈···.”
 
 문밖에 서 있던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너는···.”
 
 나는 순간 멍해졌다. 작년에 한 번이라도 먼저 나에게 연락해 줬으면 하고 바랐던 그녀다. 하지만 그런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항상 내가 그녀에게 연락하고 부르고 다가갔었다. 그리고 결국 다른 녀석과 사귀게 되면서 나도 좋아하는 걸 포기하고 말았다.
 
 “임지영, 웬일이야? 너도 어디 아파?”
 
 내가 멍해 있는 사이 병철이가 선수 치며 나서서 물어봤다. 병철이의 물음에 지영이는 곤란한 듯 입술을 살짝 깨문다. 순간 가만히 서 있어도 내 심장이 뛰는 게 느껴질 정도여서 지영이가 혹시 눈치채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다행히 지영이는 내 반응까지 살필 여유는 없는 것 같다. 잠시 고민하던 그녀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으응···. 내가 아픈 건 아닌데··· 잠시 지훈이한테 볼일이 있어서···. 시간 좀 내줄 수 있어?”
 
 무슨 일이지?
 지영이는 작년에 내가 고백한 이후 나를 줄곧 불편해했다. 사귀던 녀석과 헤어진 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다시 접근하기 조심스러웠는데···. 내가 고민하는 사이 병철이 녀석이 이번에도 선수를 쳐 줬다.
 
 “그래. 잠깐 빌려주지. 지훈아, 건물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병철이는 내 어깨를 지영이 쪽으로 툭 밀치고는 우리를 지나쳐 건물 밖으로 나갔다.
 간신히 뛰는 심장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호흡을 가다듬고 말을 꺼냈다.
 
 “여기는 사람들 통행에 방해되니까 저쪽으로 가서 이야기하자.”
 “그래. 알았어. 가자.”
 
 내가 창 쪽을 가리키며 한 말에 지영이는 바로 승낙을 했다. 발걸음을 띄는데 간신히 진정시킨 심장이 다시 요동을 친다. 나대지 마라···. 혹시라도 눈치채면 쪽팔린단 말이다···.
 
 건물의 밖이 내다보이는 큰 유리 벽에 도착해서 간신히 마음을 진정시키고 뒤를 보며 말했다.
 
 “무슨 일이야?”
 “사실···.”
 
 여전히 지영이는 망설이고 있다. 내가 자기에게 고백을 하고 거절했던 입장에서 나한테 부탁을 하는 게 조심스러운 것 같다. 우물쭈물하는 그녀의 옆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 만났을 때처럼 여전히 하얀 피부···. 거의 주먹만 한 작은 얼굴 안에 눈, 코, 입이 오밀조밀하게 배치되어 있다. 그리고 하얗고 긴 목···. 꿀꺽~ 나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괜찮아. 편하게 이야기해. 과거 일은 과거일 뿐이야~”
 
 지영이의 기분을 좀 편하게 해 주기 위한 말을 했다. 그제야 그녀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사실 내가 주말에 거동이 불편한 시골에 독거노인분들 찾아다니는 봉사를 하는데··· 할머니 한 분이 몸이 많이 편찮으셔···. 그런데 완전 고집불통이시라 아무리 병원을 모셔 가려고 해도 노인네들은 아프면 아플 만큼 아프다 그냥 죽는 거라고 하시며 절대 안 가셔서···.”
 
 어떤 부탁인지 알 것 같다. 내가 요새 애들을 치료해 주고 있다는 소문을 들은 거다.
 
 “아··· 혹시 나보고 한번 같이 가서 봐 달라는 거야?”
 
 지영이는 갑자기 고개를 팍 숙이고 기도 또는 사과할 때 하듯 머리 위로 손바닥을 모으며 말했다.
 
 “미안···. 애들이 네가 못 고치는 병이 없다고 해서···. 혹시나 하고 한번 부탁해 보는 거야. 안 될까?”
 “풋~”
 
 그 모습이 귀여워서 웃음이 나왔다. 내 반응에 지영이가 움찔 놀라는 게 보인다.
 
 “왜? 안 돼?”
 “아냐. 한번 가 보지 뭐. 주말이면 토요일? 일요일?”
 “일요일.”
 “알겠어. 번호 안 바뀌었지?”
 
 내 말에 지영이는 또 안절부절못한다.
 
 “왜? 바뀌었어?”
 “아니···. 난 그대론데···. 내가 너 번호가 없어.”
 
 우리는 분명 교환을 했었다. 지웠구나···.
 
 “알겠어. 괜찮아.”
 “미안해.”
 
 지영이는 조심스럽게 폰을 꺼내서 나에게 내밀었다.
 
 “그냥 내가 전화하면 되잖아.”
 
 바로 내 폰을 꺼내 지영이에게 전화했다. 그리고 그녀의 폰이 울리기 시작하자마자 끊었다.
 
 “저장해. 이제 지우지 말고.”
 “응. 고마워. 이제 절대절대 안 지울게.”
 
 지영이는 폰을 끌어안고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말했다. 속으로 웃음이 나왔지만 다시 참았다. 그리고 약속을 잡기 위해 말을 꺼냈다.
 
 “그럼 일요일에 학교 정문 앞에서 볼까?”
 “그래. 시간은 언제로 할까?”
 “너무 이른 시간은 좀 그렇고 10시?”
 “그래, 좋아.”
 
 용건은 끝난 건가? 처음보다 지영이와 대화를 하는데도 심장이 그렇게 뛰지 않고 많이 진정됐다. 대화를 길게 하다 보니 익숙해져서 편해진 것 같다.
 
 “그럼 이제 된 거지? 나 2G폰이라 톡은 안 되니까 연락할 일 있으면 전화나 문자로 해 줘.”
 “그래, 알았어. 연락할게.”
 
 그녀에게 손을 흔들고 먼저 뒤돌아섰다. 시골에 혼자 사는 독거노인이면 가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거다. 그럼 이번 주말에는 그녀와 단둘이 데이트?
 
 “예스~”
 
 혼자 순간적으로 파이팅을 하고 화들짝 놀랐다. 그리고 혹시 그녀가 봤을까 하고 뒤돌아봤는데 다행히 이미 다른 곳으로 가고 없다.
 건물 밖으로 나오자 병철이가 심심한지 발로 땅에 그림을 그리며 기다리고 있었다.
 달려가면서 녀석을 불렀다.
 
 “헤이 병철~”
 
 병철이는 고개를 들어서 내가 보이자 손을 흔들었다.
 
 “오~ 기분 좋아 보이는데? 왜 지영이가 갑자기 네가 좋대?”
 “아니. 주말에 어디 좀 같이 가자네. 단! 둘! 이!”
 “오오~ 말해 봐, 말해 봐.”
 
 병철이는 지가 더 좋아서 호들갑이다. 작년에 내가 그녀를 좋아할 때 뒤에서 심적으로나 실질적으로 도움을 많이 줬다. 고백하는 날 꽃을 사다 준 것도 병철이다.
 
 “뭐~ 그니까···.”
 
 그녀와 나눈 대화를 모두 설명해 줬다. 병철이는 맥이 빠진다는 반응을 했다.
 
 “에이~ 뭐야. 그니까 봉사 활동 하는 아픈 노인분 치료하는 데 그냥 네가 필요한 거잖아.”
 
 부정적인 색히···.
 
 “어쨌든 오랜 시간 단둘이 있을 수 있는 거잖아. 기회는 만들어 가면 되는 거야.”
 “그래그래. 네 말이 다 맞다. 잘해 봐라~”
 
 병철이는 내 어깨를 툭 쳤다.
 
 “어쭈~ 아까도 그러더니 또 쳐?”
 “그래. 쳤다 어쩔래?”
 
 나는 권투 자세를 취하며 허공에 섀도복싱을 했다. 녀석도 그것에 맞춰 같이 했고, 길을 지나가던 다른 애들이 우리를 이상하게 쳐다보는 걸 느낀 건 그 쇼를 시작한 지 한참 뒤였다.
 
 설레는 마음 때문인지 더럽게 느리게 흐르는 시간을 지나서 드디어 일요일이 되었다.
 
 ***
 
 항상 잠을 깨워 나를 짜증 나게 했던, 창문을 뚫고 들어오는 아침 햇살이 오늘따라 정겹다.
 띵동~ 문자가 도착했습니다. 기계음에 폴더폰을 열었다. 문자를 보낸 것은 지영이다.
 
 [하이~ 오늘 약속 안 잊었지? 이따 보아용. ^^]
 
 문자라서 그런지 지난번 대화 때에 비해 한층 편해진 말투다. 바로 답장을 써서 보냈다.
 
 [당연히 안 잊었지. 오히려 네가 잊어버렸을까 봐 걱정했다아. 이따 봐~]
 
 나름 약간의 애교를 넣어서 답장을 보냈다.
 그리고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거울로 가서 내 모습을 비춰 보는데···.
 부스스한 머리··· 눈에 낀 눈곱···. 빨리 씻고 준비해야겠다.
 어머니께는 주말에 봉사 활동을 다녀오겠다고 미리 말씀을 드렸다. 그 말에 어머니의 처음 반응은···.
 
 “거짓말하지 마. 네가 무슨 봉사 활동? 어디 가서 또 놀려는 거겠지.”
 
 이었다. 생전 해 본 적이 없는 것을 갑자기 한다고 하니 당연한 반응이다.
 나는 최대한 공손한 태도로 말했다.
 
 “이번에 사고도 당하면서··· 아픈 사람들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어머니. 특히 우리 할아버지와 같은 노인분들 중에서 가족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분들을 한번 되돌아봐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어머니는 전혀 미덥지 못하다는 표정을 지으셨다.
 
 “무슨 딴짓 하려는 거 아니지?”
 
 아들을 이렇게 못 믿으셔서야···. 마지막 방법을 썼다.
 
 “봉사 가서 노인분들과 인증샷도 찍어 오겠습니다.”
 
 그 말에 어머니는 잠시 생각에 잠기셨다. 그리고···.
 
 “그래 그럼. 제대로 찍어 와야 한다.”
 
 인증샷을 찍어 오는 조건으로 마침내 승낙하셨다.
 
 ‘잠시 지영이는 비켜 있으라고 하고 찍으면 되겠지···.’
 “룰루~”
 
 절로 콧노래가 나온다. 거울을 다시 본다. 주관적이지만 분명 어디 하나 빠지는 외모가 아닌데··· 남중 남고··· 대학 와서는 지영이에게 차이면서 아직 제대로 된 연애 한 번 못 해 본 모솔남 신세다.
 
 ‘반드시 이번 기회를 살려서 모솔 탈출한다.’
 
 속으로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우선 나와서 이빨을 닦고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았다. 그리고 다시 내 방으로 돌아왔다.
 옷장을 보면서 한참을 고민했다.
 
 ‘뭘 입지···.’
 
 지나치게 째를 내고 가면 어머니가 분명 의심할 거다. 그렇다고 너무 추레하게 갈 수도 없는 거고···.
 
 ‘그냥 무난하게 가자.’
 
 청바지에 옅은 체크무늬 하늘색 난방으로 결정했다. 어젯밤에 몰래 가져다 놓은 다리미로 옷을 다렸다. 모두 입으니 꽤 그럴듯하다.
 
 ‘남자 외모의 완성은 머리지.’
 
 왁스를 꺼내서 발라 봤다. 그리고···.
 
 “젠장···.”
 
 수돗가로 가 급하게 머리를 감았다. 그리고 드라이기로 말리고 다시 세팅하고···. 그 과정을 세 번 반복했다. 결국, 나름대로 만족스러운 머리가 나왔다.
 옷을 다 갖춰 입고 머리까지 세팅한 거울 속 내 모습을 보니···.
 
 “퍼펙트!!!”
 
 손가락으로 거울 속 나를 찌르듯 가리키면서 말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혹시나 누가 봤으면 두고두고 창피할 모습이란 걸 깨닫고 주위를 한 번 둘러보았다.
 이제 지영이를 만나기만 하면 된다.
 
 문을 열고 나오면서 어머니께 인사했다.
 
 “어머니, 다녀오겠습니다.”
 
 어머니는 집 안 청소를 하다 말고 당부하셨다.
 
 “그래 인증샷 찍어 오는 거 잊지 말고···.”
 
 끝까지 아들을 믿지 못하시는 어머니···. 죄송합니다.
 버스를 타고 학교 정문으로 갔다.
 
 정문이 보이기 시작한다. 시계를 보니 9시 50분···. 약속 시간 10분 전이다.
 
 ‘이 정도면 매너남이지.’
 
 그런 생각을 하고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는데··· 정류장에서 이미 지영이가 기다리고 있다.
 
 ‘어~’
 
 저번에 봤을 때와 스타일이 다르다. 풀어 내린 긴 생머리 스타일이었던 지난번에 비해 이번에는 머리를 양 갈래로 땋았다. 그리고 버킷햇을 썼다. 하얀색 원피스와 더불어 여름 소녀 느낌이 물씬 풍긴다.
 
 버스에서 내리자 그녀가 다가오면서 먼저 말을 걸었다.
 
 “지훈아~ 잘 지냈어?”
 “응. 너도 잘 지냈지?”
 
 지난번과 다른 스타일의 아름다움에 또 심장이 두근거린다. 에이~ 적당히 해라.
 
 “가자~ 여기서 멀어?”
 “응 조금 가긴 해야 돼. 버스 세 번 정도 갈아타야 하고···.”
 
 내 입장에서는 멀수록 오래 걸릴수록 더 좋다. 내 맘도 모르고 지영이는 정말 미안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우리는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어색해서 어떤 말을 나눠야 할지 몰라서 조용히 걸었다.
 우리가 타야 할 버스의 정류장은 학교 정문에서 10분 정도 거리에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지영이에게 말을 걸었다.
 
 “몇 번 버스 타야 돼?”
 “응. 108번···.”
 
 또다시 대화 단절···.
 잠시 생각한 후···.
 
 “몇 정거장 가면 돼?”
 “22 정거장.”
 
 멀다···. 근데 또 세 번을 더 갈아타야 한다고? 그건 멀어도 너무 먼데···.
 
 “오늘 내로 도착하긴 하는 거지?”
 “아, 걱정 마. 세 시간 정도면 가.”
 
 가는 데 세 시간 오는 데 세 시간이면 최소한 6시간···. 대화할 시간은 충분하다.
 잠시 뒤···. 버스가 오고 우리는 뒷자리로 가서 나란히 앉았다. 별다른 대화 주제를 찾지 못해 조용히 하고 있다가 갑자기 궁금한 게 생겼다.
 
 ‘너무 찐따 같은 질문일까?’
 
 잠시 고민을 했지만, 결국은 하고 말았다.
 
 “그런데 지영아.”
 “응?”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데 그 모습마저 너무 귀엽다. 순간 멈칫해서 말을 잇지 못하는데 큰 눈을 껌뻑거리며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다. 정신을 차리고 하려던 질문을 했다.
 
 “1학년 때 내가 고백했을 때 말이야···. 왜 거절한 거야?”
 “아···.”
 
 지영이는 순간 당황한다. 그때 댔던 남자친구 사귈 마음이 없다는 핑계는 이제 못 한다. 나를 거절한 뒤 얼마 되지 않아 다른 녀석을 사귀었으니까···. 잠시 고민하던 지영이가 입을 열었다.
 
 “사실은 내가 오해했어.”
 
 응?
 
 “나는 생긴 게 남자다운 애들이 성격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거든···. 근데 너는 너무 곱상하게 생겨서···. 그런데 막상 남자답게 생긴 애를 만나 보니 그렇지도 않더라고···. 미안해. 선입견을 품고 판단해서.”
 
 지영이는 고개를 숙이며 지난번처럼 두 손을 모았다. 잠시···. 그렇다는 건···.
 
 ‘희망이 있다는 거잖아.’
 
 내가 엄청나게 싫고 그런 건 아니었다는 소리다. 갑자기 기분이 급격하게 좋아져서 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 이후에도 우리는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면서 계속 길을 갔다.
 
 그런데 버스를 세 번 갈아타고 점점 시골로 들어가더니···. 이제 아예 완전 흙길이다.
 마을에서도 점점 멀어지는 것 같다.
 주위를 둘러보니 민가가 거의 안 보인다. 걱정이 돼서 지영이에게 물었다.
 
 “얼마나 남았어?”
 “어. 이제 두 정거장만 더 가서 내리면 돼.”
 
 그럼 완전 마을에서 멀어지는데? 지영이 말대로 우리는 두 정거장을 더 가서 내렸다. 주변에 집이라고는 보이지 않는다.
 
 “가자.”
 
 지영이는 내리자마자 씩씩하게 말했다. 그리고 앞장서서 걸어가는데···. 산길로 접어든다.
 
 “그쪽은 산 아니야?”
 “아··· 안복자 할머니는 산속에 사셔.”
 
 아니 왜? 사람들 사는 마을에서 안 사시고.
 지영이 뒤를 따라갔다.
 
 “그럼 사시는 데까지 전기가 들어가긴 해?”
 “응. 한전에서 할머니 때문에 전기를 연결해 줬다나 봐.”
 
 지영이는 많이 다녀 본 듯 익숙하게 길을 걸어갔다. 설마 나 이상한 조직에 넘기고 그런 건 아니겠지?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며 뒤를 따라갔다. 그녀는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주절주절 설명을 해 줬다.
 
 “할머니가 좀 괴팍해서···. 자식들이 있는데 거의 한 번도 찾아오질 않거든. 그래서 마을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사시기가 힘든가 봐. 산속에 밭에서 농사도 지으시고 하면서 거의 혼자 사는 게 익숙하셨는데. 요새 몸이 많이 불편해서 누군가 한 번씩 보지 않으면 생활이 좀 힘드실 거야.”
 
 아~ 얘는 얼굴도 예쁘면서 마음씨도 왜 이렇게 천사 같지?
 잠시 더 가서 초가집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마당은 가지들을 주워 와 만든 울타리로 둘러싸여 있다. 싸리문을 열면서 지영이가 말했다.
 
 “할머니, 저 왔어요.”
 
 그러자 집 문이 열리면서 할머니가 모습을 보였다.
 
 “안 와도 된다니까 뭘 자꾸 오고 그래.”
 “헤헤, 제가 할머니 보고 싶어서 오는 거예요.”
 
 지영이는 아양을 떨면서 마루에 앉아 할머니 손을 잡았다. 할머니는 그때서야 나를 발견하고 말씀하셨다.
 
 “너는 누구여?”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고 인사드리며 말했다.
 
 “저는 지영이 친구로 허지훈이라고 합니다. 할머니 건강이 안 좋으시다는 말을 듣고 제가 한번 뵙겠다고 했습니다.”
 
 안복자 할머니는 한껏 못 미덥다는 눈빛으로 내 위아래를 훑어봤다.
 
 “의원이여?”
 “네 할머니. 완전 명의예요. 제가 보장해요.”
 “지영이가 보장한다니 뭐···. 한번 봐 보든가.”
 
 역시 지영이가 말한 대로 까칠한 할머니시다. 하지만 공손히 말씀드렸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한번 맥을 짚어 보겠습니다.”
 
 그냥 눈으로 보기에도 안색이 그리 좋아 보이시진 않는다.
 
 ‘어디가 아프실까?’
 
 생각하는 순간 할머니의 왼쪽 손목이 빛나기 시작한다.
 다가서서 손목을 잡고 맥을 짚었다.
 
 <『천의 허지훈』 1-2권에 계속>

댓글(6)

달콤허니    
하루 일과를 다 적네...ㅠㅠ 느리다.
2019.02.04 12:29
우렁청년    
의사가아닌데 의료행위를하면 문제생기지않나..? 위급상황이라괜찮은가
2019.02.04 18:16
az****    
집안이 한의사 집안인데--무면허 치료?대가리가 돌인가
2019.02.07 12:31
극악한선물    
와따 무면허침치료에서 그냥 접게 만드네
2023.03.19 02:54
미려한    
무면허 의료행위로 돈 벌 생각에 머리가 꽃밭인 주인공이라니...
2023.03.19 05:13
습관성탈골    
진짜 돌대가리를 주인공으로 만드니 이런 거지같은 소설이 될수있구나 싶네요. 이게 상식적으로 이해가됨?
2024.04.04 21:10
0 / 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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