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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투야 1

2018.03.26 조회 487 추천 3


 만투야 1권
 서문
 
 
 나른한 봄날이다.
 산과 들, 하늘과 땅이 모두 따뜻한 햇살에 몸을 맡기고 하품을 하고 있는 봄날의 오후, 한 청년이 가파른 산길을 오르고 있었다.
 등에 진 지게에 산더미 같은 짐을 싣고도 모자라 두 손에도 커다란 보따리를 들고 있는 청년의 얼굴은 우직한 가운데 봄날만큼이나 정감이 넘쳤다.
 무엇이 그리 흥겨운지 연신 콧노래를 부르며 산짐승처럼 빠르게 산을 타던 그의 눈에 녹색 바다라 할 수 있는 작은 초원에 파묻혀 있는 초옥(草屋) 두 채가 보였다.
 청년이 해맑은 웃음을 머금었다.
 “후후후······. 내가 예정보다 일찍 와 두 분이 놀라시겠지.”
 생각만 해도 즐거웠다.
 작년 겨울만 해도 사부와 사형, 그리고 그 자신의 생필품을 구입하러 산을 내려갔다 오는 시간이 보름은 걸렸다. 그런데 이번엔 열이틀 만에 돌아온 것이다.
 사부와 사형이 보고 싶어 물건 구입을 서둔 이유도 있었지만 지난 겨울 동안 무공 수련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물론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깨닫는 사형에게는 비교도 할 수가 없지만.
 “가만. 이럴 게 아니라······.”
 무슨 생각이 불쑥 들었던 것일까?
 돌연 한달음에 뛰어가려던 청년의 입가에 풀잎처럼 싱그러운 웃음이 맺혔다. 그는 가만히 짐을 풀섶 속에 숨겨놓고 발뒤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초옥으로 가기 시작했다.
 사부와 사형을 놀래켜 줄 생각에 그의 마음은 들떠만 가는데······.
 초옥이 가까워질수록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하루 두 시간 이상은 자지 않고 초원에서 오직 무공(武功) 수련만 하던 사형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청년의 몸이 경직되었다.
 피!
 폭풍을 만난 듯 땅은 움푹움푹 패여 있고, 그 사이로 아직 채 마르지도 않은 피가 길게 이어져 있었다. 피가 이어진 곳은 사부의 방이었다. 난생처음 보는 피는 공포와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와들와들······.
 온몸이 거칠게 떨렸다.
 “사부님! 사형!”
 벼락같이 몸을 날려 왈칵 방문을 열어 젖힌 청년은 방안의 정경에 일시간 굳어지다가 엎어지듯 뛰어 들어갔다.
 “사부님, 이게···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꿈에서도 생각지 못한 일이다.
 방안은 온통 피로 범벅되어 있었고, 그 가운데 하얀 적삼을 입은 늙은 사부가 죽은 듯이 누워 있지 않은가. 아니 그의 눈에는 죽은 것으로 보였다.
 손잡이만 보일 정도로 깊이 박혀 있는 장검(長劍)은 반쯤 부러진 상태로 가슴에 박혀 있었다.
 부릅떠진 그의 눈동자와 아래위턱이 대책 없이 마구 떨렸다.
 “이, 이것은 사형의 검인데······.”
 그랬다.
 언제나 보아온, 그의 사형의 손에서 단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던 검(劍)이 분명했다.
 그때다. 죽은 줄 알았던 사부의 입술이 열린 것은.
 “와··· 완아냐?”
 “사부님­!”
 청년은 절규하며 사부의 몸을 일으켜 등뒤 명문혈(命門穴)을 짚었다. 자신의 진원진기(眞元眞氣)를 불어넣기 위함이었다.
 허나,
 “이 사부는··· 이미 틀렸으니 애··· 쓸 것 없다. 다, 다행히 하늘의 보살핌으로 네가 제때에··· 나타나 주었구나.”
 사부의 상태는 설사 대라신선(大羅神仙)이 하계(下界)해도 살릴 수 없음을 안다. 그러나 청년은 처음으로 사부의 엄명을 어겨야만 했다.
 사부는 사부 이전에 자신의 생명이요, 어버이였기에······.
 그는 굵은 눈물을 흘리면서 진원진기를 불어넣었다.
 “말··· 씀을 하지 마십시오, 사부님.”
 문득 늙은 사부의 입가에 고소가 어렸다.
 보통 사람 같으면 누가, 무엇 때문에 이런 짓을 했느냐고 물어야만 하거늘 이 제자는 자신만을 염려하고 있다. 이렇게 착한 제자를 무공 자질이 부족하다고 그토록 야단만 쳤으니······.
 ‘허허허! 진즉 알았어야 했어. 무공 자질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 씀씀이로 평가를 해야만 했어······.’
 때늦은 후회를 하던 그가 돌연 가슴에 박힌 검을 쑥 빼내자 기다렸다는 듯이 피분수가 천장까지 솟구쳤다.
 “사부님, 왜?!”
 그의 뜻밖의 행동에 대경실색한 청년은 명문혈에서 손을 떼어 황급히 검을 뽑은 자리를 막았다.
 “허허허, 고맙구나······.”
 쓸쓸한 웃음을 흘리며 제자의 손등을 가만히 두드린 사부는 곧 자신의 신발과 버섯을 벗고는 빠르게 검을 놀렸다.
 “헉!”
 순간 청년의 눈이 더할 수 없이 커졌다. 너무 놀라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저 턱만 덜덜 떨릴 뿐이었다. 사부가 돌연 양 발바닥의 피부를 도려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은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늙은 사부의 피부가 눈앞에 있었다.
 “어··· 서 받아라. 이것은 천단경(天丹經)의 후반부로··· 갖고 떠나··· 거라.”
 띄엄띄엄 말을 하던 그는 멍하니 쳐다만 보고 있는 청년의 손에 발바닥 피부를 건네주며 다급히 말했다.
 “놈이 오고 있다. 어서 여기··· 를 떠나거라. 그리고 노부를 해친 사람은 바로······.”
 말을 하려던 그는 옷깃 나부끼는 소리가 빠른 속도로 다가오자 버럭 고함을 질렀다.
 “빨리 떠나지 않고 무얼 하는 게냐! 감히 사부의 명을 거역할 참이냐?”
 허나 청년은 우직한 생김새답게 고집이 세었다. 그는 울먹이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사부님······.”
 “이······.”
 또다시 호통을 치려던 늙은 사부의 안색이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졌다. 피하기에는 이미 늦었던 것이다.
 “하늘이시여! 이 아이를 보살펴 주소서······.”
 깊이 탄식한 그는 제자의 전신 혈도를 재빨리 점한 뒤에 창문 밖으로 던졌다. 이어 그는 버선과 신발을 다시 신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눈썹에는 뜨거운 눈물이 맺혔다.
 
 
 1장 엉뚱한 놈
 
 
 위이잉!
 거센 바람은 주먹만한 눈을 머금고 있었다. 보기 드문 눈보라였다.
 건곤일색(乾坤一色)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드넓은 설원(雪原)에 하얀 눈과 대조적으로 긴 혈선(血腺)이 그어져 있었다.
 백(白)과 홍(紅)··· 실로 묘한 대비였다.
 길게, 또는 방울처럼 만들어진 혈선은 곧 눈보라에 파묻혔다. 그리고 그 끝에는 한 필의 말이 허연 김을 내뿜으며 정강이까지 파묻힌 발을 힘겹게 들어올리고 있었다. 등과 다리에 얼룩무늬가 있는 옥화총(玉花 )에는 한 사람이 죽은 듯 엎드려 있었다.
 아무렇게나 나부끼는 반백(半白)의 머리칼, 옥화총의 배 밑에서 덜렁거리는 두 팔 중 오른손에는 예리한 검광(劍光)을 번쩍이는 검이 쥐어져 있었고, 두터운 털옷은 피를 머금다 지쳤는지 백설 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있어 나이가 얼마인지 모를 그가 죽지 않았다는 것을 안 것은 옥화총이 투레질 섞인 숨가쁜 비명을 지르며 앞으로 꼬꾸라질 때였다.
 “크으······!”
 폐부를 쥐어짜는 신음과 함께 들려진 얼굴의 깊은 주름마다에는 하얀 눈이 묻어 있었다.
 육십 년의 세월이······.
 수하에게 배신당하고, 숱하게 생사(生死)를 같이 넘겼던 친구에게 배신당하기 전의 시간들이 슬픈 웃음을 던지고 있었다.
 아직도 믿고 싶지 않아 고개를 젓던 그는 문득 하늘이 보고파졌다. 그러나 몸이 움직여주지 않았다. 그에게 허락된 것은 겨우 눈 속에 파묻힌 고개를 약간 들 여력뿐이었다.
 입술을 뚫고 툴툴 메마른 웃음이 흘러 나왔다.
 “우습군. 이렇게 죽을 것을 왜 그리 살아왔지······?”
 지나친 욕심도 아니다. 다만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하늘만 보자는 것이다. 한데 그런 것조차 허용되지 않고 있다. 죽어 가는 이 순간에도 말이다.
 씁쓸한 고소가 맺혔다.
 “인과응보(因果應報)인가? 노부의 손에 죽임을 당한 망혼(亡魂)들의······.”
 그때다.
 뽀드득··· 뽀드득······.
 돌연 눈을 밟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들렸다 싶은 순간에 그의 시야에 하나의 발이 잡혔다.
 이런 날씨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옥당화(玉唐靴)였다. 하지만 어떠한 곳에서도 옥당화가 잘 어울리는 사람을 꼽으라면 바로 이 사람뿐일 것이다.
 그는 한숨처럼 입을 열었다.
 “왔는가.”
 즉시 대답이 없었다.
 그러다가,
 “······날 원망하나?”
 처음에는 어디 원망뿐이겠는가. 하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이왕 가는 마당에 죽마고우(竹馬故友)의 마음이라도 편히 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에게 주어진 시간이 없었다. 한마디 말을 하는 순간에 숨이 끊어질 것이기에.
 “하늘이 보고 싶네.”
 그는 끝내 하늘을 보지 못했다. 몸이 돌려지는 찰나에 이미 죽었기 때문이다.
 
 ***
 
 ­ 위에 천당(天堂)이 있고, 아래에 소항(蘇杭)이 있다!
 언제부터인가 이런 속담이 퍼졌다. 소주(蘇州)와 항주(杭州)는 지상 천국이라는 뜻이다. 특히 파양호( 陽湖)를 끼고 있는 소주의 풍경은 천하의 으뜸이었다.
 서역(西域)을 비롯한 모든 타국(他國)의 교역지임을 제외하더라도 소주 사람들은 온화한 성품을 가져 천하의 명망 있는 문장가(文章家) 및 기인재사(奇人才士)들이 밤하늘의 별처럼 많았고, 여러 가지 오묘한 기예의 재능을 가진 장인(匠人)을 비롯해 명의(名醫), 점복술(占卜術)에도 도통한 자들 또한 적지 않았다.
 구월 중순의 소주는 날씨가 제법 쌀쌀하여 간혹 두터운 솜옷을 입은 사람들이 보였다.
 그러나 한 사람.
 세 명의 표두( 頭)와 삼십 명의 표사( 士)만을 거느린, 산재해 있는 수많은 표국( 局) 및 표행( 行) 중에서 그 규모가 작은 편에 속하는 대동표국(大同 局)의 국주(局主)인 검인후(劒仁煦)는 너무 화가 나 머리 위에서 허연 김이 모락모락 피어날 지경이었다.
 “······그래, 깨어나 보니 오시(午時:오후 한 시)가 지날 무렵이었고, 만경학당(滿卿學堂)에 가보니 용아, 그놈은 만경학당에 가지도 않았더란 말이지?”
 청년, 즉 대동표국에 들어온 지 일년밖에 안돼 막내 표사인 주형구(朱亨九)는 죽을죄를 지은 사람처럼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국주님.”
 “허! 이런 기막힐 노릇이 있나?”
 분기를 삭히기 위해 탄식을 토하는 검인후의 잘생긴 눈썹이 우중충한 하늘처럼 찌푸려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대책이 서지 않았다. 한 달에 은화(銀貨)가 무려 열 냥이나 하는, 소주에서 가장 비싼 만경학당에 학문을 익히라고 보냈더니 가는 날보다 땡땡이 치는 날이 더 많다. 궁여지책(窮餘之策)으로 주형구를 감시자로 딸려 보냈더니 한번 찍히면 항우 장사(項羽壯士)도 용뺄 재주가 없이 잠이 들고 만다는 수혈(睡穴)을 찍어 짚더미 속에 숨겨 놓고 도망을 치지를 않나. 그것도 딸려 보낸 첫날에 말이다.
 그렇다고 무공(武功)이 고수(高手) 수준이라면 말도 하지 않는다.
 ‘이 자식을 어떻게 해야 잘했다고 소문이 나지? 달래도 안되고, 윽박질러도 안되고··· 이거, 혹시 어릴 적에 약을 너무 써서 머리가 좀 이상하게 된 거 아냐?’
 불현듯 자책감마저 들었다. 그러다 이내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냐. 하는 짓은 멀쩡해! 그렇다고 근골(筋骨)이나 무공 자질이 뒤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휴! 대체 누굴 닮아서 그 모양이지?’
 어찌 생겨먹은 놈인지 끈기 내지는 은근이라고는 눈을 씻어도 찾을 수 없다. 무슨 일을 하더라도 처음에는 목숨을 건 것처럼 덤비다가도 어느새 지겨워하며 곧잘 싫증을 내고 만다. 마치 쉽게 달구어진 쇠가 빨리 식는다는 속담이 이렇다 하는 것을 보여주듯이 말이다.
 변함없이 꾸준한 것이 있다면 먹는 거와 잠자기, 그리고 노는 것과 네댓은 잡아먹을 듯한 능청뿐이다.
 열다섯은 철없는 나이니까, 그럴 수도 있겠거니 했었다. 본시 유별난 아이가 철 들면 훨씬 똑똑하게 변한다는 말도 있고 해서 점차 나으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허나 세월이 지남에 따라 그런 기대감이 서서히 사그라지기 시작함을 느껴야만 하였다.
 스물이 지나고, 지금은 스물하나를 턱걸이하고 있는 이 시점까지 검용은 변하지 않았던 것이다.
 아니 변한 것이 하나 있기는 있다.
 꼴에 사내랍시고 여인들의 뒤꽁무니를 쫓아다닌다는 소문이 들려왔던 것이다. 허나 연초에 불같이 들려오던 소문이 요즘 들어 주춤해진 것을 보면 그 또한 시큰둥해진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이 이가?!’
 옆에 앉아서 검인후의 눈치를 살피던 이청하(李靑河)는 기분이 묘했다. 힐끗 자신을 쳐다보는 남편의 눈초리가 심히 불쾌하기 그지없었다.
 뭐랄까. 마치 아들을 잘못 키운 죄를 자신에게만 뒤집어씌우는 듯한······.
 그녀의 눈동자가 흰자위만 남았다. 새초롬해진 그녀가 한마디 톡 던지려 할 때였다.
 내실(內室)로 통하는, 낭하(廊下)라고 할 수 없는 짧은 통로를 하얀 천 하나로 이곳과 저곳의 경계를 그은 너머에서 찰랑찰랑한 음성이 들렸다.
 “오빠는 요즘 다른 일에 몰두하고 있어요.”
 하얀 휘장을 열며 나타난 사람은 검수란(劒水蘭)이다.
 예쁜 이름과 계란형의 작은 얼굴에 유독 반짝이는 동그란 눈이 돋보이는 미인, 그러나 미인답지 않게 차림새는 영락없는 사내의 그것과 같았다. 무인(武人)들이 즐겨 입는 검은 솜옷에 이마는 검은 끈으로 질끈 동여매고 허리에는 한 자루 청강검(靑剛劍)을 차고 있었다.
 그 모양새에 검인후의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믿었던 아들놈은 개차반이고, 계집아이는 저 모양이니. 이건 뭐가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됐어.’
 정말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될 수는 없었다.
 조신하게 있다가 좋은 남자를 만나 시집을 가면 어디가 덧난담? 그런데 허구한 날 무공을 연마한답시고 설쳐대니, 어느 남자가 좋아하겠는가.
 반년 전, 처음으로 검수란에게 중매가 들어왔다. 매파(媒婆)를 보낸 사람은 소주의 현승(縣承)이었다. 현승이라면 지현(知縣) 어르신의 보좌관으로 종팔품(從八品)에 해당한다. 높은 관료(官僚)는 아니지만 조정에서 십년에 한번밖에 치르지 않는 등용문(登龍門), 즉 과거제(科擧際)에서 장원(壯元)은 아니더라도 급제(及第) 정도는 해야 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런 대로 어깨에 힘을 줄 수는 있는 자리였다.
 그런 중요한 맞대면에서 검수란이 하는 말인즉슨, 자신과 싸워 이겨야만 시집을 가겠다고 했고, 당시 나름대로 무예 몇 수를 익히고 있던 현승 정웅(鄭雄)은 호탕하게 승낙했다. 한데 그 말 한마디의 결과는 너무나 엄청났다.
 정웅은 팔다리 한번 제대로 놀리지 못하고 떡이 되도록 두드려 맞고는 상갓집 개가 꼬리를 감추듯 도망치고 말았던 것이다.
 검인후는 가만히 한숨을 토하며 물었다.
 “다른 일이라니······. 네 오빠가 요즘 무슨 일을 하고 돌아다니는지 말해라.”
 검수란은 사내처럼 터벅 걸음으로 걸어오며 짤막하게 대답했다.
 “점복술이에요.”
 “뭐, 뭣이라고?”
 순간 검인후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점복술이라니?
 먼저 번뜩 떠오르는 생각은 저잣거리에 숱하게 깔려 있는 점쟁이들이었다. 마치 세상 이치를 통달(通達)한 듯 한결같이 누런 삼베옷에 허연 수염을 기른, 세상의 근심걱정은 혼자 짊어진 모양새로 근엄하게 좌정하고 있는······.
 “그래. 어느 현자(賢者) 밑에서 수학하고 있니?”
 아내인 이청하는 자신과 다르게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길거리에 앉아 있는 점쟁이가 아니라, 하늘과 땅의 이치를 깨달아 앞일을 예견할 수 있는 현자로 말이다.
 사실 소주에는 그런 사람들이 자신이 알기만도 세 명이나 있었다.
 ‘그렇다면 당분간 더 두고볼 수밖에.’
 정말 마음에 들지 않지만, 마음 같아서는 다리몽둥이를 바짝 분질러 방구석에 들여앉히고 싶지만 아니, 아들이 둘만 있어도 아예 족보에서 빼버리고 자식놈 하나 없는 셈치고 싶었다. 허나 불행히도 놈은 자신의 젯밥을 차려 줄 유일한 놈이었다.
 그래서 무엇이든지 간에 검용이 정신을 쏟을 일만 있다면 감지덕지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 기간도 얼마가지 않겠지만······.
 검인후가 그렇게 마음을 고쳐먹으며 솟구치는 분기를 겨우 삼키고 있을 때였다. 딸인 검수란이 꺼져가는 불씨에 부채질을 한 것은.
 “엄마도 참, 꿈도 야무지셔? 오빠가 어떤 사람인데 그런 분들이 제자로 받아주겠수? 저잣거리에서 제일 형편없는 점쟁이인 청심거사(淸心居士)의 제자로 들어갔다우. 그것도 만경학당의 수업료를 받쳐가면서 말이유.”
 입이 쩍 벌어질 겨를도 없다. 검인후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마치 검수란이 검용으로 보이는 듯이 버럭 악을 썼다.
 “내 이놈을 당장에! 어디냐? 앞장서라!!”
 
 ***
 
 저잣거리란 말을 풀이하면 아침저녁으로 반찬거리를 팔기 위해 짧은 시간 서는 시장통이라는 뜻이다.
 저잣거리의 중앙에 얼마나 오래됐는지 모를 거목(巨木) 한 그루가 인간 군상들을 굽어보며 서 있었다. 장정 열이 손을 맞잡아야만 겨우 그 지름을 알 수 있는 이 거목은 나라가 어지러울 징조가 있으면 스스로 울음을 운다 하여 신목(神木)이라 불렀다.
 한데 지금 소주 사람들이 신성시하는 신목 아래, 하늘이 내린 신목에 걸맞게 무려 열세 명이나 되는 신선풍의 노인들이 두 눈을 지긋이 내리 감고 결가부좌(結跏趺坐)를 틀고 앉아 있었다.
 그중 유독 눈길을 끄는 노인 하나가 있는 바, 그 이유는 다른 노인들에 비해 풍채가 뛰어나서가 아니라 오로지 바로 뒤의 신목에 비스듬히 세워놓은 깃발에 쓰인 필체 때문이었다. 용과 뱀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듯하다는 용사비등(龍蛇飛騰)의 글씨체로 쓰여진, 그러나 아는 사람은 안다. 웅후한 기상이 물씬 풍기는 그 필체를 적은 사람이 따로 있다는 것을.
 ­ 인간사(人間事)의 길흉화복(吉凶禍福)은 모두 청심거사 손안에 있노라(淸心居士於手內有)!
 네댓 폭의 깃발에 쓰여진 이 글의 내용이 너무나 엄청나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기에 족했다. 그러나 멈추게 했을 뿐이지 누구 한 사람 자리에 앉아 점(占)을 보는 사람은 없었다.
 왜냐하면 저잣거리에는 이방인이 잘 다니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도 파리만 날리니······. 이거 완전히 사기당한 것 같은 기분이 드는걸.’
 끄덕끄덕 졸다가 슬금슬금 찾아오는 그런 생각에 깜짝 놀라 눈을 뜨고 주위를 살피던 청심거사의 눈 깊숙한 곳이 돌연 반짝 빛났다.
 그림자.
 아래로 향해진 동공 속으로 크고 작은 두 개의 그림자가 다른 사람도 아닌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게 보였다.
 ‘왔다!!’
 기겁할 듯한 환호성을 지른 그는 얼른 눈을 완전히 감고 표정 관리에 들어갔다.
 그 순간 묵직한 발걸음이 바로 코앞에서 딱 멈추어 서더니,
 “노인장이 청심거사요?”
 ‘어라······. 웬 시비조?’
 점을 보러 온 사람의 말투가 아니었다. 마치 싸우러온 듯이 투박하기가 그지없었다.
 ‘그런데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음성인데?’
 고개를 갸웃거리며 슬며시 눈을 치켜 뜨던 청심거사의 눈이 화등잔만해졌다.
 앞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얼굴은 바로 검인후와 검수란이었기 때문이다. 얼마나 놀랐던지 심장이 뜨악하니까 입이 자동적으로 딱 벌어졌다.
 “아··· 아, 아버······.”
 벙어리처럼 ‘아’만 거듭하던 청심거사는 다음 말이 튀어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 황급히 손으로 입을 틀어막아야만 했다. 끝말을 내뱉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기실 근 한 달에 걸쳐 청심거사로부터 인신(人身)이 소우주(小宇宙)이며, 대우주(大宇宙)인 자연과 소우주인 인간의 신체와 음양오행(陰陽五行)의 연관관계에 대해 배운 검용이었다.
 그 짧은 기간에 오묘하기 그지없는 역학(易學)을 다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은 어림도 없는 일! 그러나 검용이 슬슬 지겨워하는 기색을 보이자 돈줄이 끊어질 것을 염려한 청심거사가 묘책을 내놓았던 것이다.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니 직접 해보라고.
 그 말은 강론 때 하품을 찍찍 하며 지겨워하던 검용에게는 가뭄에 내린 단비였고, 그는 즉시로 청심거사로 변장했다. 이는 귀때기가 새파란 젊은 사람에게 점을 볼 사람은 없다는 청심거사의 말씀에 따른 것이다. 더욱이 소주 땅에는 자신의 얼굴을 아는 사람들이 많으니 천상 이렇게 변장을 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청심거사 역시도 나이 육순밖에 되지 않아 가짜 수염에 가발을 쓰고 있었기에 변장은 수월했다. 수염도 어디 그냥 수염인가. 온 얼굴을 다 가릴 수염과 눈썹이었으니······.
 그런데 사흘 동안 단 한 명의 손님도 받지 못한 상태에서 부친과 손아래 누이를 만난 것이다.
 ‘말더듬이였던가?’
 검인후로서는 참으로 한심하기 그지없었다. 한눈에 척 보아도 도통한 도인(道人)은커녕 현자의 발뒤꿈치도 따라가지 못하는 위인에게 무얼 배우겠다고······. 한숨을 푹푹 쉬던 그는 조용하나 묵직한 음성으로 말했다.
 “대동표국을 경영하는 검인후라 하오. 이만하면 왜 찾아왔는지 짐작하리라 하오만······.”
 검용의 눈동자가 또르르 돌아가다가 멈춘 순간, 돌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대호성을 터뜨렸다.
 “물론 알고 있지요! 당신이 바로 제황지상(帝皇之相)을 가진 검용의 부친······! 오오······! 이럴 때가 아니지.”
 ‘제황지상? 그놈이?’
 느닷없는 말에 눈이 둥그래진 부친의 표정을 살핀 그는 과장된 몸짓으로 옷깃을 여미면서 엄숙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앞으로 천하에서 가장 고귀한 신분이 되실 분의 어버이이시니··· 보잘것없는 소인이 구배(九拜)를 올리겠나이다.”
 이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세상에서 제일 쓰잘데없는 사람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 검용이······. 자신의 아들놈이 앞으로 가장 고귀한 사람이 된다니!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구름 위를 노니는 신선의 기분이 이러할까? 정신이 하나도 없었고, 하늘이 오색찬란하게 보였다. 그래서인지 좀전에는 사기꾼에 말더듬이로 보이던 청심거사의 모습이 어딘가 모르게 신비롭게 자리잡았다.
 명리(名利)가 싫어 풍진세상(風疹世上)에 몸을 담은 듯한.
 이 순간 요란하게 소매를 떨친 검용이 더없이 경건한 모습으로 천천히 무릎을 꿇자 그는 번뜩 제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이, 이러시면 안됩니다. 어서··· 어서 일어나십시오.”
 당황한 그는 황급히 검용의 몸을 잡아 일으켰다.
 자신이 아무리 귀한 분의 부친이라 하더라도, 아니 된다손 치더라도 수염이 허연 노인의 절을 받을 만큼 뻔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아들은 뻔뻔했다.
 “아닙니다, 귀인(貴人).”
 가만히 고개를 저은 그는 좀더 큰 목소리로 말했다.
 “천하가 경배할 분의 부친을 만난 것은 금생(今生)에 다시없는 영광!! 어찌 경배하지 않을 수가 있으리요!”
 “아무리 그렇지만 노인장에게 절을 받는다는 것이 좀··· 그렇구려.”
 검용이 짐짓 더욱 얼굴을 굳히며 대답했다.
 “천지간(天地間)에 법도가 있듯이, 인간 세상에도 법도가 있으니······. 이는 늙고 젊음을 따질 일이 아니며, 또한 많고 적음에 연연할 수 없음이지요.”
 말을 하고 보니 너무나도 그럴싸해 검용은 역시 사람은 배워야 한다는 것을 실감하며 마무리 작업에 들어갔다.
 “주위를 한번 둘러보십시오. 지금 많은 사람들이 귀인에게 경배를 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지 않습니까?”
 “!”
 그 말에 고개를 돌린 검인후는 눈살을 찌푸렸다.
 ‘언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지?’
 길 가던, 거의 아낙 내지는 낭자들이 걸음을 멈추고 구경하고 있었다. 뿐이랴? 옆에 앉아 있는 다른 점쟁이­스스로는 역술가라 자청하겠지만­들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보고 있었다. 허나 경배를 하기 위함이기보다는 검용의 큰 음성과 행동에 호기심이 생긴 것이 틀림없었다.
 참으로 곤란한 일이었다.
 이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사양한다는 것은 자신의 아들이 제황지체가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자인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의 손아귀에서 저절로 힘이 빠져 나갔다.
 기회를 포착한 검용은,
 “그럼 사양 마시고······.”
 슬그머니 손을 슬쩍 뿌리치고는 천천히, 아주 경건한 자세로 절을 올리기 시작했고,
 “허··· 참!”
 난처해진 검인후는 혀를 차며 마주 허리를 굽혔다. 아무래도 어색했던 것이다.
 일 배, 이 배······.
 반신반의하던 마음이 어느덧 절을 하는 횟수가 거듭될수록 사라지고 대신 아들놈에게 무언가 남다른 면도 있는 것 같았다.
 ‘혹··· 용아, 그놈이 곧잘 싫증을 낸 것은 천하에 없는 다시없는 기재(奇才)라 모든 것을 이미 습득(習得)하고는 능청을 떤 것이 아닐까?’
 라고, 그가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하는 동안,
 ‘됐다! 전화위복(轉禍爲福)이란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흐흐······. 앞으로 나를 어떻게 대할지 눈에 선하군, 선해.’
 검용은 내심 낄낄거리고 있었다.
 생각만 해도 몸서리치게 좋았다. 얼떨결에 나온 발상이었지만 스스로 생각해도 기발하기 짝이 없었다.
 부친에게 황제나 스승에게 하는 구배를 한다고 하더라도 손해날 것이 하나도 없지 않겠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위기에서 벗어남과 동시에 항상 쓸모 없는 놈이라고 타박하던 부친이 앞으로는 그러지 않을 것이다.
 제황지체가 될 자신에게 감히······!
 이는 도랑 치고 게 잡고, 돈 줍는······. 그야말로 일석삼조(一石三鳥)의 효과이다.
 마침내 구배를 마쳤다. 검인후의 눈치를 살피며 몸을 일으키던 그는 이제야 확실히 알았다. 청심거사가 거의 돌팔이에 가까운 점쟁이라는 것을.
 기실 오늘 아침에 청심거사는 ‘네 일진이 몹시도 사나우니 오늘은 그만두거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이죽거리는 말로 ‘앞으로 네 인생은 알조다. 고생문이 훤해요.’ 했다.
 뒷말은 미래에 관한 일이라 아직 판단할 수 없지만 반나절도 내다보지 못하는 것을 본다면 이 또한 엉터리일 것이다. 상대에게 겁을 준 뒤에 그렇다고 방법이 전혀 없지는 않지, 하면서 거액을 받고 부적(符籍) 나부랭이를 팔아먹자는 수작이 분명했다.
 ‘절대 안 사! 지금까지 속은 것만 해도 뼛골이 팍팍 쑤시는데······.’
 한데 왜 이리 허전한가.
 차라리 청심거사의 예언이 맞았으면 이렇게 허탈하지는 않을지도······. 은화 열 냥도 아깝지 않을 테고.
 절로 한숨이 나왔다. 그러나 내색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쯤은 생각할 줄 아는 그였기에 조금 쑥스러운 듯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귀한 걸음을 하셨는데··· 길이 어긋났나 보군요. 용아··· 아니, 그분은 소인이 칠십 평생 동안 얻은 심득(心得)을 한 달도 안되어 모두 익혀 좀전에 하산(下山)··· 아니, 아니. 하산이 아니라, 이거 참! 귀인을 만나니 이렇게 정신이 없어요. 허허허······.”
 대충 헛웃음으로 얼버무린 그가 다시금 입을 열기 전, 다른 목소리가 불쑥 끼여들었다.
 “왜 내게는 구배를 올리지 않죠?”
 ‘엥! 이 무시기 소리?’
 검수란이었다.
 짚이는 바가 있는 그는, 검수란의 목소리가 은쟁반을 구르는 옥구슬 같고 꾀꼬리가 지저귀는 듯 영롱하다더라도 이 순간만큼은 절대 아름답지 않다는 데에 목숨을 걸고 내기할 수가 있었다.
 허나 불쌍하게도 그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눈을 끔뻑거리며 의뭉스레 묻는 길밖에 없었다.
 “무슨 말인지······. 노부가 왜 낭자에게 구배를 해야······.”
 순간 검수란의 입에서 대갈성이 터져 나왔다.
 “네 이놈! 지금 감히 뉘한테 낭자라 하느냐?”
 검용의 머릿속이 텅! 하고 생각이 끊어졌다. 어디 검용뿐이겠는가.
 백발이 성성할 정도가 아니라 머리에 눈꽃이 핀 노인에게 귓불에 솜털도 안 벗겨진 아이가, 그것도 앉아서 오줌 누는 사람이 이놈이라니, 이를 보던 사람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던지기 시작했고,
 “저, 저 버릇없는 것을 봤나?”
 “쯔쯔! 말세야, 말세! 으이그······! 내가 저런 꼴이 보기 싫어서라도 빨리 죽어야지.”
 그러다가 언제나 그렇듯 화살은 부모들의 잘못으로 이어졌고, 삽시간에 무지개 위를 걷다가 화살을 맞고 추락한 검인후의 얼굴은 잘 익은 사과처럼 붉게 물들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화가 난다고 해서 그대로 나타낼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주위의 이목 때문이다. 그는 겨우 노기를 억누르며 점잖게 타일렀다.
 “란아, 어른께 그 무슨 말버릇이냐. 어서 잘못을 빌어라.”
 검인후는 자식에게 예의범절 하나만큼은 칼같이 가르쳤다고 스스로 자부하고 있어 이렇게 말하면 검수란이 아무리 말괄량이라도 자신의 말을 따르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더욱이 제 오라비와 달리 눈치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것을 종종 보아온 터가 아니던가. 그런 검수란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저 중에는 자신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머릿수가 비슷할 판국에 감히 거역하지 않으리라.
 그러나 다음 순간, 그는 자식 농사를 잘못 지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의 바람을 무너뜨리는 말이 검수란의 입에서 튀어나왔기 때문이었다.
 “천황지상을 가진 사람을 오라비로 둔 사람이 바로 본 낭자다! 그런데도 구배를 하지 않을 참이냐?”
 딴에는 맞는 말이다. 오라비가 제왕이면 그녀는 공주 내지는 군주가 아닌가. 그 말이 떨어지자 주위의 공기가 달라졌다. 경멸에 가까운 눈으로 보고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을 표하고 있었다.
 사람 마음은 조석(朝夕)으로 변한다더니.
 ‘이 계집애가 기어코 염장을 찔러!’
 그러다 불쑥, 기분 나쁜 생각 하나가 삐죽이 튀어나왔다. 자신이 청심거사가 아니라는 것을 눈치채지 않았나 하는······.
 눈치를 챘다면 굳이 동생에게 절을 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소태 씹은 표정으로 은근슬쩍 검수란의 표정을 살펴 본 결과 그는 웃을 수 있었다.
 비록 검수란이 도끼눈을 하고는 있지만 눈치는 채지 못한 듯 보였다. 하면, 결론은 났다.
 ‘아버지께 뒈지게 맞는 것보다야 백번 낫지.’
 결심은 굳혔다. 한데 묘한 게 사람 마음이라더니 이번에는 왜 이리 속이 쓰리지?
 미적거리는 그의 모습에 검수란이 쌍심지를 켰다.
 “어서 절을 올리지 않을 거예요! 그렇게 자꾸 시간을 끌면··· 흥!”
 냉랭한 코웃음을 날린 그녀는 검용이 밟고 있는 거적을 힐끗 응시한 뒤에 말했다.
 “거적에 앉아서 받을 거예요!”
 “엥!”
 검용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그녀의 말인즉, 땅바닥에서 확실하게 절을 하라는 뜻이다. 어느 쪽이 더 편한가 하는 정도쯤은 아는 검용은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아, 아니오. 그냥 서서 받으시오.”
 그가 막 무릎을 막 꿇으려 할 순간, 구원의 음성이 들렸다.
 “관두시오.”
 검인후였다. 그는 검용의 두 손을 잡아 몸을 일으켜 세우고는 묵직한 음성을 발했다.
 “란아, 가자.”
 “아버지······.”
 “가자니까!! 무슨 말이 그렇게 많으냐?!”
 윽박지르듯 버럭 소리를 지른 그는 몸을 돌림과 동시에 검수란을 잡아끌면서 총총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무언가 켕기는 것이 있는 사람처럼.
 사람들 사이로 사라져 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쳐다보던 검용은 문득 기이한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왜 저러실까?’
 그는 이맛살을 찌푸리고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머릿속만 복잡하고 고개만 아플 뿐이었다.
 그러다,
 ‘아차! 내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아버지보다 먼저 집에 가 있어야 된다!’
 번쩍 정신이 든 그는 구경거리가 사라져 흩어지는 사람들 사이로 파고들며 뛰듯이 걸음을 옮겼다.
 닭다리 하나와 독하지만 제일 값이 싼, 그래서 만만치 않은 숙취(宿醉)를 각오해야 하는 백주(白酒)를 마시고 곤하게 잠들어 있던 청심거사는 더 이상 견딜 수 없다고 생각했다.
 스승님께서 곤하게 오수(午睡)를 즐기고 계시면 알아서 기어야 할 게 아니냐 말이다. 아니, 기지는 않더라도 조심한다는 눈치 정도는 있어야 하는 법이다.
 그런데 이놈은 어찌 된 놈인지 눈치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없다.
 쫑알쫑알, 투덜투덜······.
 게다가 옷 하나 갈아입는데 무슨 소리가 그리 큰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런 것들 정도야 자장가로 여기고 잘 수 있다.
 한데 추위는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귀찮아서, 또 더러는 돈이 없어 장작을 살 수 없었기에 군불 한번 지피지 않은 냉방으로 황소바람이 쌩쌩! 들어오고 있었다. 검용이 문을 닫지 않아 그런 것이다.
 심통을 부린 것이 분명했다.
 ‘세상 참 많이 좋아졌다. 내 소싯적에는 스승님의 그림자도 밟지 못했거늘······.’
 청심거사는 한숨을 쉬며 버럭 고함쳤다.
 “야, 이놈아! 좀 조용히 못해! 그러게 오늘은 가지 말라 했잖아!!”
 고함을 지르고 나니 골이 시끄럽다고 야단법석이다.
 “아이고······. 골이야. 자다 일어났더니 완전히 골 안에서 운동회를 하는구먼.”
 웃옷을 걸치던 검용의 손이 멈추었다.
 “어, 안 잤네.”
 “뭐··· 안 잤네?”
 청심거사는 일순 허탈해졌다. 아무리 은화 열 냥이 탐이나 사정사정해서 제자로 만들었지만 그래도 명색이 스승님이 아닌가.
 그는 점점 화가 나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내 이놈을 그냥······! 다른 사람을 위해서라도 저 버르장머리를 뜯어고쳐 놔야 해.’
 소매를 걷어붙이고 정말이지 죽을힘을 다해 반쯤 몸을 일으키던 청심거사는 그럴 필요가 없음을 곧 깨달았다. 덜렁거리는 방문 너머로 두 사람이 서 있는 것이 보이는 순간, 그는 길게 기지개를 켜며 검용이 들을 수 있는 음성으로 혼자말처럼 중얼거렸다.
 “아함······. 나이 때문인지 술 몇 잔에 이렇게 맥이 없다니······. 잠을 더 자면 나아지려나? 아마 그럴걸. 갈 때 문이나 닫고 가려무나.”
 이어 자리에 누운 청심거사는 꼬질꼬질한 때와 누런 빛깔로 각양각색의 기이한 문양(文樣)이 그려져 있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는 이내 코를 드르릉 골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얄밉상스러워 검용은 한마디를 톡 던졌다.
 “노인네가 잠귀신이 붙었나. 눕자마자 코를 골아? 벌건 대낮에 저리 잠만 자니 요 모양 요 꼴로 살지. 쯔쯔! 게을러 터져 가지고는······.”
 ‘지랄······. 사돈 남 말하고 있네. 이놈아, 너는 구리 동경(銅鏡)도 안보고 사냐? 이 스승님의 모습이 장래 네 모습이니라. 그리고 이놈아,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닐걸. 흐흐흐······.’
 이불 속에서 청심거사가 낄낄거리고 있음을 알 리 없는 검용은 옷을 다 입은 뒤,
 “지금은 바빠서 그냥 갑니다만··· 내일 봅시다! 아마 신상이 좀 피곤할 걸요. 순 엉터리 사기꾼 같으니라고······.”
 하며 몸을 돌리던 검용은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멈추었다. 눈은 화등잔만 해졌고, 입은 절로 딱 벌어졌다.
 “어, 어떻게······?”
 처음이었다. 초면인 사람을 만나듯 낯설어 보이는 얼굴에 저렇게 무서운 눈은.
 잠시 이글거리는 시선으로 쏘아보던 검인후는 억양 하나 없이 한 자, 한 자 끊듯이 말했다.
 “따라오너라.”
 자신의 발끝만 보고 고개를 이리저리 갸웃거리며 따라가던 검용은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알아낼 수가 없어 검수란의 옆구리를 꾹 질렀다.
 “어떻게 알았니? 완벽했는데······.”
 “웬 완벽 타령? 완벽이 어디 소풍갔어?”
 “소풍을 갔건, 이주(移住)를 했건 어떻게 알았냐니까!”
 “뭐 뀐 놈이 뭐 싼 놈에게 화를 낸다더니, 왜 내게 성질을 부리고 그래.”
 연년생이라 그런지 아니면 검용보다 총명하고 무공이 뛰어나 그런 것인지 오라비 알기를 영 우습게 안다. 한두 번 당한 것도 아니지만 당할 때마다 기분은 아니올시다였다.
 “너, 어휴! 내가 말을 말아야지. 자고로 군자(君子)는 아녀자와 어린애하고는 상종을 하지 말라 했으니······.”
 “쳇! 군자가 씨가 말랐나.”
 “그래 너 잘났으니까 어찌 알았는지 말이나 해줘.”
 검수란은 짤막하게 말했다.
 “오빠 손!”
 “손? 내 손이 어디가 어때서······? 아무 표시도 안 나는데?”
 “띨하기는. 변장을 하려면 손에 주름살도 좀 넣고 그래야지. 청심거사의 나이가 몇인데 그렇게 탱탱한 손을 가지고 있겠어?”
 “맞아! 그랬구나.”
 그제야 머리에 번갯불이 들어왔다. 헤어지기 전에 검인후가 손을 슬쩍 만지고 지나갔다는 사실.
 검용은 히죽 웃으며 손을 들여다보았다.
 “하긴, 내 손이 좀 탱탱하기는 하지.”
 이 판국에 생각하는 거라고는······.
 검수란은 어처구니가 없어 고개를 휘휘 내저었다.
 “못 말려.”
 히죽 웃던 검용은 문득 또 하나의 의문이 생겼다. 그는 검수란의 옆구리를 콕 찌르며 물었다.
 “넌? 설마 오빠인 줄 알고 절을 하라고 한 것은 아니겠지? 그냥 못된 네 성미가 시킨 거지?”
 “뭐어? 못된 성미가!”
 검수란의 그린 듯이 고운 아미가 상큼 치솟았다.
 감히 누구에게······. 그러나 지금은 강짜를 부릴 시기가 아니었다. 검인후가 저만치 걸어가고 있으므로.
 ‘어디 오늘 내게 한번 죽어봐라!’
 그녀는 내심으로 오도독 이를 갈아붙이면서도 꿈결처럼 달콤한 미소를 머금었다.
 “척하면 삼천리지. 당연한 걸 왜 물어봐. 나같이 똑 소리 나게 예쁘고, 똑똑한 아가씨가 모르고 했겠어.”
 검용은 머저리같이 히죽 웃었다.
 “거짓말! 넌, 내 손을 만지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알아? 괜히 해보는 소리지? 그렇지?”
 “편한 대로 생각해. 하지만 오빠 손은······.”
 말끝을 흐리고 덜렁거리는 검용의 손을 힐긋거린 검수란은 남몰래 한숨을 쉬었다.
 게을러서, 아니면 곧장 싫증을 내는 성격답게 물 한 방울 제대로 묻히지 않아서인지 손 하나는 여자인 자신이 보아도 부러울 정도로 고왔다. 세수도 고양이처럼 식지에 물을 쬐금 묻혀 눈두덩이에만 찍어 바르는 손이 저렇게 은빛으로 빛날 수 있을까 싶었다.
 “맞구나. 내 생각이! 계집애가 앙큼스럽기는······. 후후, 네가 대장부 흉내를 낸답시고 오두방정을 떨지만 어쩔 수 없는 계집아이야.”
 북 치고, 장구 치고! 엄마 없이도 잘 놀고 있었다.
 노는 것 보고 누가 뭐라 하나? 그런데 계집애라니······. 그것도 한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검수란은 잘 놀고 있는 아이의 장난감을 파괴하고 싶었다.
 “내가 아버지 같은 줄 알아! 만져 보아야만 알게? 오빠 손은, 손은······.”
 그녀는 거친 숨결을 토하며 뾰족하게 외쳤다.
 “하도 씻지 않아 더러운 냄새가 난단 말야!!”
 
 
 2장 사서 고생하다
 
 
 연무실(鍊武室).
 대동표국 뒤꼍에 마련된 연무실은 창문 하나 없이 밀폐되어 있었다. 무공 연마를 하는 모습을 누출 않기 위해서라고 생각하지만 박달나무로 삼중(三重)으로 만든 벽면은 지나침이 없는 바도 아니다.
 그런 연무실에서 무예를 닦는 표사들을 밖으로 내몰기도 처음이거니와 대낮에 찾아오기는 머리에 털 나고는 처음이었다.
 철거덩······!
 무쇠로 만든 빗장이 문에 걸리는 소리를 들을 때야 검용은 부친이 생각보다 열 배 정도는 더 노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검인후가 돌아서는 순간 그는 정정해야 했다. 백 배로 노하고 있다는 것으로.
 사방 벽면에 붙은 횃불보다 더 이글거리는, 그러나 깊이 침착(沈着)된 눈빛으로 응시하던 검인후는,
 “무기(武器)를 선택해라.”
 눈빛만큼이나 무거운 음성이었다.
 흠칫!
 고개를 푹 떨구고 있던 검용의 몸이 눈에 띄게 떨렸다.
 이 또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여태까지는 작은 잘못에는 꾸중을 하셨다. 그리고 큰 잘못에는 환무칠혼식(幻霧七魂式)의 입문(入門) 자세인 기천세(氣天勢)를 한두 시진 취하던가 검수란과 비무(比武)를 하던가 양자택일(兩者擇一)하면 되었다.
 둘 다 만만치 않았지만 지금보다는 나을 것이다.
 그것들이 어떤 것인가 하면 기마 자세에서 양 발끝을 안으로 모으고, 두 팔은 타원을 그린 상태에서 팔목을 안으로 비튼, 관절마다 꺾어야 하는, 그런 묘한 자세가 기천세의 자세였다. 범인으로서는 단 일각도 버티기 어려운 그것을 장시간 버틴다는 것이 죽을 맛이라 검용은 검수란과 비무를 했고, 그 결과 칠 일을 꼼짝없이 누워 있는 걸로 결론이 났다.
 사실 역술을 배우기로 결심을 한 것은 바로 검수란의 하루 일진(日辰)을 뽑기 위함이었다. 잘못을 저질렀을 경우 그녀의 일진에 따라 비무를 하든, 아니면 기천세 자세를 취하든 선택하기 위해서였다.
 검수란의 기분이 좋을 때면 아무래도 살살 때려 줄 테니까.
 한데 오늘은 부친이 직접 나서니 비무를 핑계삼아 무차별하게 두드려 팰 것이 분명했다.
 ‘중상 아니면 사망이다!’
 이제야 사태 파악이 된 검용은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 입술을 달싹거렸다.
 “아버지······.”
 “듣기 싫다!”
 냉랭하게 말을 자른 검인후는 처음으로 음성을 높였다.
 “이 아비가 언제 네가 해달라는 것을 안 해준 적이 있어, 엉?”
 검용의 눈알이 우상(右上)으로 향해졌다. 사람의 뇌(腦)는 실로 오묘한 것이라 깊은 사색이나 추리를 할 시에는 왼쪽 뇌가 활발하게 움직인다. 그와 반대로 눈동자는 오른쪽 위를 향하게 되는 것이다.
 결론은 싱거울 정도로 빨리 났다. 검용은 눈을 아래로 깔고 힘없이 대답했다.
 “······없습니다.”
 “너에 대한 사랑이 모자란다고 느낀 적이 있느냐?”
 철철 넘쳐서 탈이었다. 아쉬움이 있다면 자유롭지 못하게 속박을 한다는 것이다. 물론 장래를 위함이겠지만 검용의 생각은 후일, 그러니까 대동표국을 이어받을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이다. 그러면 크게 잘 살지는 못해도 끼니 걱정은 하지 않을 것이다. 표행을 맡기는 사람이 없으면 소주에서도 노란 자위에 해당하는 표국의 알짜배기 땅을 팔면 되는데 무엇 때문에 기를 쓰고 무공을 익힌단 말인가.
 또 학문은 어떤가. 이름 석자와 책만 읽을 줄 알면 됐지 끝도 없다는 학문을 닦아 어디 써먹는단 말인가. 세상에는 그보다 좋은 일이 줄지어 있는데······. 시간은 많고, 할 일은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자신만이라도 그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사람은 그저 생긴 대로, 하고픈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제일인 법!
 귀찮게스리 이것저것 배울 게 뭐가 있느냐 말이다.
 할말은 있지만 이런 식으로 말했다가는 겁나게 맞는다는 사실쯤은 아는 검용의 고개가 힘없이 푹 꺾였다. 숙여진 그의 주둥이가 다발은 족히 튀어나왔다.
 “아뇨.”
 “그런데!”
 싸늘하게 굳은 얼굴로 버럭 고함치듯 언성을 높인 검인후는 길게 숨을 들이켰다. 지금 기분을 그대로 유지한다면 검용을 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기 때문이다.
 “후우, 옛말에 이런 것이 있다. 자식의 허물은 부모들의 잘못이라고······.”
 순간 검용의 눈이 반짝 빛났다.
 ‘때리지 않으시려나? 그럼, 그렇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인데··· 히힛!’
 다행이었다. 하기 싫은 일을 하는 것보다 더욱 무서운 것은 맞는 것임을 뼈저린 체험으로­검수란을 통해­익히 알고 있는 그는 내심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러다 문득 걱정스러웠다. 무기를 들어 당신을 때리라고나 하지는 않을지 하는······.
 그러면 어찌할 것인가. 눈감고 때려? 아니지. 그럴 수는 없지. 싹수는 없을지 몰라도 누렇게 변하지는 않았으니까.
 ‘할 수 없지, 뭐. 잘못했다고, 용서해 달라고··· 그러다 안되면 종아리를 걷을 수밖에······. 휴우, 되게 아프겠지?’
 그답지 않게 기특한 생각을 하는 동안, 다시 숨결을 고르며 마음을 추스른 검인후가 입을 열었다.
 “해서 아비는 결심했다. 이제부터라도 네가 더 이상 엇길로 가는 것을 방관하지 않겠다고 말이다. 무기를 들고 덤벼라.”
 “!”
 검용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이게 아닌데······.’
 고래(古來)부터 전해져 오는 이야기는 이렇지 않았다. 자식이 부모를, 제자가 스승의 종아리를 때리게 만드는······. 육체적인 고통을 주기보다는 심적 고통을 주어 스스로 깨닫게 만드는 뭐, 그렇고 그런······.
 “뭐하고 있어? 어서 덤비지 않고!”
 추상같은 말에 검용은 땅이 꺼지라고 한숨을 내리 쉬고는 원망스러운 듯 부친을 쳐다보다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찔끔했다.
 검인후가 눈을 딱 부릅뜨고 노려보고 있었다.
 그 눈은 ‘버텨보았자 네게 돌아갈 것은 더 심하게 두드려 맞는 길밖에 없다.’라고 무언의 으름장을 놓고 있었다.
 검용의 눈이 왼편으로 돌아갔다. 생각함이 아니라 왼편 벽면에는 검(劍), 도(刀), 창(槍), 곤(棍), 봉(棒), 편(鞭) 등 예리한 빛을 뿜는 진병(鎭兵)들과 박달나무로 만든 연습용 무기들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쩝! 맞는 게 났지. 어떻게 아버지에게 저런 흉악한 것들을 들고 덤빌 수 있겠어.’
 그는 두 손을 가슴께로 슬며시 들어올렸다.
 “그냥 맨손으로 할래요.”
 평상시 같으면 기특하게 보일 행동이었으나 이미 마음을 모질게 먹은 검인후는 아무런 감흥도 없는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호오! 그래? 그것도 좋겠지. 어디 권각(拳脚)이 얼마나 늘었는지 볼까?”
 검용은 몹시 후회스러웠다.
 ‘한번만 더 권하시지 않고······.’
 그때,
 “아비에게 네가 먼저 손을 쓰지는 못할 테니··· 간다!”
 말의 여운이 채 끝나기 전에 무언가 희끗한 물체가 허공을 가르며 날아들고 있었다.
 “엇!”
 이렇게 빨리, 경고도 없이 손을 쓸 줄 몰랐던 검용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허나 놀라고 있을 시간도 없었다.
 두 사람 사이에 무려 삼 장이나 되는 거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눈 깜짝할 겨를도 없이 팔꿈치가 관자놀이를 향하고 있었다.
 먼저 팔꿈치로 상대의 중심을 흩트리는 박주등각(迫 脚)이란 초식이 끔찍하게도 빠르게 보였다. 아니 보였다는 순간에 이미 지척에 도달해 있었다.
 검용은 본능적으로 몸을 웅크렸다. 그 덕분인지 검인후의 일격은 어깨 위로 스치듯 지나갔다. 윙! 하며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기에 족했다.
 “이런 멍청한 놈! 그렇게 하면 이건 어떻게 막을 셈이냐?”
 노호성(怒號聲)을 터뜨린 검인후의 왼발이 관절이 꺾어지듯 기이한 호선(弧線)을 그리며 검용의 어깨를 찼다. 머리를 찰 수 있지만 그래도 자식이라고 사정을 봐준 것이다.
 퍽!
 왼발은 정확하게 검용의 어깨에 적중되었다.
 “악!”
 비명을 지른 검용의 몸이 풀썩 튀어 올라 이 장 밖에 패대기쳐지는 순간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파란 불똥이 보이고 어깨는 욱신거렸다.
 잊고 있었던 것이다. 박주등각은 팔꿈치 공격에 이어 발이 날아온다는 사실을.
 문득 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제대로 무공을 연마하지 않았더라도 그렇지. 단 일초식에, 그것도 자신이 마르고 닳도록 연습한 무공에 개구리 마냥 나뒹굴었다는 것이 창피하다는 생각에 이를 악물었다. 그러니까 신기하게도 별로 아프지도 않은 것도 같았다. 그뿐인가. 없던 힘도 솟아나는 것 같았다.
 한데 수치감 사이로 삐쭉 솟구치는 생각 한 조각!
 ‘일어나면 더 맞겠지.’
 오기를 부린답시고 일어나서 공매를 맞는다는 것은 바보 멍텅구리들이나 하는 짓이다. 그렇다고 죽기 살기로 싸워야 할 철천지원수도 아닌 바에는.
 검용은 어깨를 감싸쥐며 버둥거렸다.
 “아이고오··· 나 죽어요!”
 ‘저, 저··· 한심한!’
 검인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사정을 봐준다고는 했지만 좀 심했나 싶었다. 한데 하는 꼬락서니하고는······.
 “일어나라.”
 낯선 음성처럼 들려 불길한 예감이 전신을 훑고 지나갔지만 그래도 고통에 몸부림치는 아들을 또 때리시기야 하겠나 싶어 뻗대기로 작정했다.
 “으으으······.”
 그는 오만상을 있는 대로 찡그리며 몸을 비틀었다.
 한데 이 순간 잠깐이라도 검용이 만약 고개를 들었다면 감히 엄살을 피워 부정(父情)에 호소할 생각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얼굴에 살짝 살얼음을 얹어 잠시 더 기다렸지만 일어날 생각을 않자 검인후는 말로서는 도저히 해결책이 서지 않음을 새삼 깨달았다. 그는 완전히 굳어진 마음가짐으로 바닥을 박차고 훌쩍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파라락······!
 옷자락 나부끼는 소리에 슬그머니, 설마 아니겠지 하는 심정으로 고개를 옆으로 틀던 검용의 눈이 믿을 수 없는 크기로 커졌다.
 칼날같이 곧추세워진 한 쌍의 발이 바람을 가르며 내려오고 있지 않은가. 그 발은 결코 속이 텅텅 비고 덩치만 큰 공갈빵이 아니었다. 휙! 바람이 이는 소리며, 내려오는 위치가 너무도 정확했다.
 ‘악! 내 아버지 맞아?’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 그는 해답을 얻기 전에 움직여야만 했다. 그대로 있다가는 뼈 몇 개가 부러질 테니까.
 위기의 순간에는 자신도 모르는 어떤 힘이 솟아나는 모양이었다.
 놀랍게도 꼼짝도 안할 것 같았던 팔이 절로 움직였고, 두 다리가 허공에서 교차를 했다고 느끼는 찰나에 발바닥은 바닥을 밟고 있지 않은가.
 신통방통했다.
 ‘햐아······! 나도 영 깡통은 아니네.’
 그러나 기쁨도 잠시,
 휙!
 시커먼 물체가 눈앞으로 다가왔다.
 공격에 실패한 순간, 검인후는 지체하지 않고 발끝으로 살짝 바닥을 찍음과 동시에 무릎을 차올린 것이다. 강호무림에 명함도 내밀지 못하는 대동표국의 국주라고는 믿을 수 없는 몸놀림이었다.
 다급해진 검용은 두 팔로 열십자(十)를 만들었다.
 빡!
 뼈와 뼈가 부딪히는 순간 검용은 감당할 수 없는 힘에 밀려 뒤뚱! 몸이 절로 뒤로 물러났다.
 한데 그때였다. 검인후의 무릎이 힘껏 펴지며 명치에 발끝이 박힌 것은.
 “큭!”
 검용은 입을 딱 벌렸다. 숨이 막히고 온몸이 짜릿한 것이 자신의 몸이 자신의 것이 아닌 듯했다.
 또 잊었던 것이다.
 환무칠혼식을 익힌 검인후의 무공은 하나에 그치지 않고 물처럼 연결되어진다는 것과 관절이 자유자재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배를 움켜잡고 푹 꼬꾸라지는 검용은 이를 악물지 못했다. 기절한 것이다.
 검인후는 미간이 찌푸려졌다.
 사실 아들인 검용에게 들인 공이 얼마이던가?
 검용이 제 모친인 이청하의 뱃속에 들어 있을 때부터 보약 기운에 젖게 만들었고, 태어나서는 매일같이 약물로 목욕시켜 여섯 살 나이 때는 이미 상승무공(上昇武功)을 익힐 수 있게 기초가 만들어줌과 동시에 호흡법을 가르쳤다. 그리고 여덟 살부터 팔다리의 근골을 수련시켰다. 그뿐이면 말도 안한다.
 열 살부터 손수 운기법(運氣法)을 지도하지 않았던가.
 그 정도면 이 정도의 타격은 순간적인 고통은 느낄망정 기절할 정도는 아니다. 하물며 진짜 죽일 요량이 아니었던 검인후는 손속에 내공을 실지 않았다.
 그렇다면······.
 빙그르 몸을 돌린 검인후의 얼굴은 결연한 빛으로 굳어져 있었다.
 얼마나 잠을 잤을까?
 들릴락말락하게 골던 코골이가 멈춤과 동시에 검용의 코가 벌름거렸다.
 구수하고 달콤한, 상당히 낯익은 냄새가 후각을 자극하고 있었다. 검용이 정신을 차린 것은 순전히 이 냄새 때문이었다.
 오늘 낮잠도 한번 자지 못하고 얼마나 피곤했던가. 게다가 어울리지 않게 신경전을 벌인 것도 모자라 두 대나 맞지 않았던가.
 ‘킁킁! 이 냄새는··· 맞아! 연자탕(嚥子湯)이다! 후후! 어머니가 날 보신시키기 위해서 만들었나 봐.’
 그럴 것이다. 얼마나 아들 생각을 하시는 분이신가. 자나깨나 자식 걱정뿐이었다. 그런 아들이 모질게 맞고 기절, 아니 한 척하였으니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어쩌면 귀한 아들을 때린 것이 가슴아파 검인후가 연자탕을 만들라고 했는지도 모르겠고.
 조금 미안하다는 생각에 고개를 들어 슬그머니 눈을 뜨던 검용은 일이 이상한 방향으로 흘렀다는 것을 쉽게 알 수가 있었다.
 자신이 누워 있는 곳은 침실이 아니라 여전히 연무실이 아닌가! 그리고 연무실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은 탁자가 놓여 있었고, 맞은편에는 검인후가 앉아 있었다.
 눈이 부딪히자 검인후가 말했다.
 “다 잤으면 일어나 밥을 먹어라.”
 검용은 마치 보이지 않은 실로 조종된 꼭두각시처럼 벌떡 일어나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아버지.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소자가 왜 여기에······.”
 검인후의 대답은 간단했다.
 “오늘부터 우리 둘은 여기서 생활한다.”
 “예에?!”
 생각지도 않은 말에 검용의 눈이 커졌다. 그는 눈을 끔뻑거리다가 귀를 후벼팠다. 혹시 잘못 들었는가 싶어서였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이다,라고 검인후의 표정이 말해주고 있었다.
 “왜 여기서 생활을 한다는 거죠?”
 “무공을 연마하기 위함이다.”
 역시였다.
 쏴아 하니 늦가을 삭풍(朔風)이 전신을 훑고 지나갔다. 검용은 전신을 부르르 떨어 삭풍을 몰아내며 입을 열었다.
 “밥은 아무렇게나 먹어도 잠자리만큼은 가려서 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잠은 침실에서 자고, 무공은 여기서 연마하면 되잖아요. 침실이 그리 멀리 있지도 않은데······.”
 “네가 언제 자리를 가려가며 잤느냐? 등만 붙이면 잤지. 그리고 좀전에 보니 딱딱한 바닥에서도 잘도 자더구나.”
 “!”
 할말이 없었다. 차라리 몇 대 더 맞고 기절할 것을.
 위잉······!
 놀기 좋은 봄날은 갔다. 늦가을도 가고, 춥고 배고픈 겨울 바람이 가슴을 때렸다. 그런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검인후는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자느라고 힘들었을 텐데, 이리 와서 밥이나 먹어라.”
 밥 생각이 싹 가신 검용은 고개를 저었다.
 “혼자 드세요······.”
 검인후는 한번 더 권했다. 자식이니까.
 “연자탕인데······. 먹지 그래?”
 연자탕이라는 말에 검용의 입안 가득 침이 고였다.
 왜 먹고 싶지 않겠나. 하지만 지금은 순간의 쾌락에 눈이 어두울 때가 아니었다. 그는 꿀꺽! 침을 넘기면서도 용감하게 유혹을 뿌리쳤다.
 “입안이 깔깔한 게 영 몸이 안 좋네요. 아까 맞은 배도 아프고··· 몸살기도 있고······.”
 이쯤이면 기대하던 반응이 와야만 한다.
 한데,
 “거, 안됐구나.”
 그뿐이었다.
 후루룩··· 쩝쩝!
 검인후가 소리도 요란하게 먹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이 순간 검용은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배고픈 상황에서,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있는 사람을 구경한다는 것은 최대의 고통이요, 또 보란 듯이 먹는 사람은 천하에서 가장 못된 악인(惡人)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망설여졌다.
 검인후는 어제의 검인후가 아니었다. 하나뿐인 아들이 배고픔에 눈이 까뒤집어져 있다는 것을 모를 리 없을 텐데 밤새, 아니 오늘 아침에 무얼 먹었는지 사람이 싹 달라졌다.
 그렇다면 괜히 배를 주릴 필요가 있겠나 싶었다.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다던데······.’
 한 말도 있고 해서 검인후의 눈치를 보며 비칠 걸음을 옮겼다. 다행히 검인후는 모르는 척해 주었다.
 슬그머니 의자에 엉덩이를 걸친 순간 검용의 손과 입은 눈부신 빠름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런 빠름으로 무공을 펼친다면 아마 천하고수(天下高手) 수준은 될 법도 했다.
 순식간에 밥 한 그릇과 연자탕을 게눈 감추듯이 먹어 치우고도 모자라 접시를 핥고 있을 때였다.
 “시작하자.”
 검용은 혓바닥이 굳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검인후를 보며 겨우 굳어진 혀를 풀 수 있었다.
 “막 밥을 먹었는데 소화라도 좀 시키고······.”
 검인후는 못들은 척하며 병장기가 꽂힌 곳으로 걸어갔다. 미리 생각해둔 바가 있는 그는 봉(棒)을 잡았다. 봉은 연습용으로 끄트머리에는 솜을 넣은 헝겊이 둥글게 감겨 있었다.
 빙글 몸을 돌린 그는 아직도 의자에 죽치고 앉아 멀뚱거리는 검용을 쏘아보며 말했다.
 “앞으로 네가 명심할 것이 있다.”
 “?”
 “네가 이곳을 나가는 길은 아비를 이기는 수밖에 없다.”
 순간 검용의 머릿속이 텅 비었다.
 사실 검인후가 싸움 내지는 대결을 한 것을 본 기억이 없다.
 허나 일년 반 전이다. 이렇게 정확히 기억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강호무림에서 고수 두 사람이 소주에서 대결을 하던 장면이 아직 기억에 생생히 남아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소주를 거점으로 온갖 흉악한 짓을 도맡아하는 거마(巨魔)인 금도복마(金刀伏魔) 웅응룡(熊應龍)과 강호에 혜성처럼 등장한 신진고수인 천환검(千幻劍) 배악양(裵岳陽)이었고, 이 두 사람의 대결은 배악양이 웅응룡의 왼팔을 자르는 것으로 끝이 났다.
 두 절정고수들의 대결은, 가끔 한번씩 ‘똑똑히 보아라.’ 하며 보여주었던 검인후의 진실된 무공과 간접비교를 하는데 있어 좋은 자료가 되었다.
 한데 비교 분석한 결과, 놀랍게도 소주에서 겨우 이름이 알려진 검인후의 무공이 웅응룡과 배악양보다 더 높지 않을까 하는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이러한 기억이 새삼스레 떠오른 검용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다시는 햇볕을 못 볼 거야. 내가 무슨 재주로······.’
 며칠을 굶은 사람처럼 해쓱해진 아들의 얼굴을 보면서도 아무런 감정이 일지 않는지 검인후는 하고자 하는 말을 다했다.
 “그리고 같은 말을 두 번 하게 만들지 말길 바란다. 그게 네 만수무강에 좋을 것이다. ······일어나라.”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검용은 벌떡 일어났다. 그가 이렇듯 아무 망설임 없이, 말 한마디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것은 처음이었다.
 보는 검인후도 처음이라 자연히 눈길이 부드러워졌다. 그는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아주 마음에 든다.”
 그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황소 마냥, 넋이 빠진 실혼인(失魂人)처럼 병기 쪽으로 흐느적거리며 걸어가는 검용 앞을 봉으로 가로막으며 봄날같이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깜박 잊고 말 안했는데··· 너는 병기를 들 필요가 없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검인후는 더욱 부드럽게 말했다.
 “복잡하게 머리 굴릴 필요가 없다. 늙은 이 아비는 봉을 쓰고, 젊은 너는 맨손으로 하면 되는 것이다.”
 정말 간단했다.
 딱 벌어진 검용의 입 속을 훤히 들여다보며 검인후는 매몰차게 입을 열었다.
 “준비해라.”
 “이크!”
 흠칫 놀란 검용은 어디서 그리 빠른 동작이 나왔는지 뒤로 훌쩍 칠팔 척이나 물러났다. 동작이 얼마나 잽싼지 먼지 하나 피어나지 않았다.
 “좋다!”
 그 동안 검용에게 들인 노력이 아주 헛수고는 아니구나 싶어 검인후는 크게 고개를 끄덕인 후에 행운유수(行雲流水) 신법으로 그림자같이 따라붙으며 봉을 내질렀다.
 피잉!
 봉이 다가오는 속도가 얼마나 쾌속한지 공기를 가르는 파공음이 들릴 정도였다.
 검용은 봉을 보기 위해 이를 악물고 눈을 부릅떴다. 검인후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단번에 허점을 찾아보란 듯이 이기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야만 이곳을 나갈 수 있기에.
 그러나······.
 퍽!
 눈을 부릅뜬 사이에 봉은 이미 가슴팍 중정혈(中庭穴)을 강타한 뒤였다.
 당장에 숨이 턱 막히고 머리가 어찔어찔해 비명도 나오지 않았다. 상체는 구부려지고, 양손이 저절로 가슴팍을 감싸쥐고 있었다. 적나라하게 드러난 목덜미의 대추혈(大椎穴)을 내리치며 검인후는 말했다.
 “한번 선기(先期)를 잡으면 절대 놓쳐서는 안된다. 지금처럼 말이다.”
 “쿠엑!”
 검용의 입에서 듣기에도 안쓰러운 비명이 터져 나왔다. 중정혈을 맞았을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고통이 엄습해 왔다. 정신이 아득해지는 가운데 방금 먹은 밥알이 곤두서고, 연자탕이 구역구역 목구멍을 밀고 넘어왔다.
 그러나 불행히도 토할 겨를도 없었다.
 검인후는 다시 봉을 내리치며 혼자말처럼 중얼거렸다.
 “한번에 안되면 두 번, 세 번이라도 숨돌릴 틈을 주지 말아야 한다.”
 검용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한번만 더 같은 곳을 맞으면 꼭 죽을 것만 같아 그는 밥알이며, 연자탕을 목구멍으로 쑤셔 넣고는 두 팔로 바닥을 짚음과 동시에 옆으로 데구르르 굴렀다.
 “자알 피했다. 위기를 넘겼으면 매서운 반격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너는 그럴 수가 없을 것 같구나. 그게 바로 실력 차이라는 것이다.”
 목표물을 상실한 봉이 허공에서 멈칫 한다 싶은 순간에 어느새 횡으로 쓸어가고 있었다. 봉은 여지없이 검용의 옆구리에 틀어박혔다.
 이번에야말로 입을 딱 벌리고 진짜로 기절하는 검용의 눈앞에 청심거사가 이죽거리고 있었다.
 “거 봐라. 오늘은 나가지 말라 했잖아.”
 
 ***
 
 “에그··· 더러.”
 한 손으로는 코를 거머쥐고, 고개를 외로 돌린 상태에서 남은 한 손을 엉거주춤 내밀던 검수란의 고운 얼굴은 흐린 날씨처럼 잔뜩 찌푸려져 있었다.
 문제의 요강을 거머쥐는 순간, 그녀의 얼굴은 장마철 하늘이 되었다.
 귀퉁이를 조심스럽게 잡은 요강의 무게는 묵직했다. 처음보다 훨씬 무거웠고, 어제보다도 무거웠다.
 “더럽게도 많이 쌌네.”
 그녀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부친인 검인후는 검용이 잠들거나 혹은 기절한 상태 때에 몰래 나와 측간에서 사람답게 볼일을 보기 때문이다.
 사실 첫날에는 거의 빈 요강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다음날은 핏물 같은 약간의 오줌이 담겨 있었지만 역시 가볍기는 매일반이었다. 그렇다고 밥을 굶어 오줌만 나온 것은 아니다.
 부엌에서 일하는 찬모(饌母)에게 맡기지 않고 ‘에고, 에고! 내 아들······.’ 하며 앞치마로 연신 눈물을 찍다가 모자라면 손등으로 훔치던 이청하가 손수 음식을 마련하였으니 얼마나 그 양이 많겠으며, 또 얼마나 열량(熱量)이 높은 음식만 들여보냈겠는가!
 그런 음식을 개 죽사발 핥듯이 비워 놓고도 배설물은 거의 없다는 것은 그만큼 운동량이 많다는 것이다. 아니 운동량이라기보다는 일방적으로 두드려 맞는 것이겠지만.
 마음이 아파야 당연하지만 늘 아들 타령만 하는 이청하의 얼굴이 떠오르는 순간, 그녀는 검인후가 검용을 더 모질게 두들겨 패서 아예 오줌도 안나오게 만들었으면 싶었다.
 그런데 그 즐거움도 잠시, 오 일째 되던 날 마침내 건더기가 조금 나와 있었다. 오줌에 붉은빛도 보이지 않았다.
 한데 마흔두 번의 밥상을 나르고 난 지금은 어떤가?
 손목 만한 건더기가 꽈리를 틀고 물 속에 잠겨 있었다.
 흐를세라, 튈세라 조심에 또 조심을 더해 걸음을 옮기는 검수란은 몹시 걱정스러워졌다.
 “나보다 세지면 큰일인데······.”
 
 ***
 
 핑!
 여전히 빨랐다. 공기를 찢을 정도로.
 그러나······.
 ‘아함! 지루해. 이거 한숨 자고 나면 도착하려나?’
 검용은 무엄하게도 눈을 부릅뜨는 대신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했다.
 서너 차례 하품을 하고 나니 봉이 목전(目前)에 다다랐다. 봉의 끄트머리가 크기는 또 왜 이리 큰가. 본 적이 없는 태산(泰山)이 이만할까 싶어 고개를 갸우뚱하는 순간,
 파앙!!
 바로 귀 옆에서 찢어진 공기가 폭발했다.
 허공 한곳을 찍은 검인후는 우뚝! 그 자리에 봉을 멈추었다.
 한 시진 동안 숨쉴 틈 없이 공격을 퍼부었다. 한데 검용은 단 한 대도 맞지 않았다. 불과 십이 일 만에 생긴 이 일은 그를 흡족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허허허······. 나는 백일(百日)이 걸렸거늘······. 대견한지고! 과연 내 아들답다.’
 검용은 돌연변이였나 보다.
 백일이나 걸린 사람을 닮았다면 최소한 구십 일 정도는 걸려야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십일이라는 차이를 주는 것은 모계(母系) 쪽이 뛰어날 때의 이야기이다.
 검용은 검지(檢指)로 봉을 건드리며 오만스럽게 턱을 치켜올렸다.
 “왜 공격 안하세요?”
 순간 검인후는 좋았던 기분이 싹 가셨다. 교만스런 검용의 행동이 심사를 비틀었던 것이다.
 그는 면도를 못한 탓에 시커먼 털로 뒤덮여 있는 검용의 턱주가리를 쥐어박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억누르며 대꾸했다.
 “아비가 최선을 다해 공격해 보련?”
 검용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뭐, 길이를 꼭 재어봐야만 길고 짧은 것을 아남요. 척 보면 알 수 있어야 고수지요.”
 ‘이놈이!’
 검인후의 눈썹이 저절로 꿈틀거리고 봉을 쥔 손등에는 새파란 힘줄이 솟구쳤다.
 ‘히힛! 약발이 좀 듣네. 그러나 그 동안 받은 설움과 압박, 그리고 아픔에 비하면 약과지.’
 검용은 모른 척하며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
 “결과야 뻔할 뻔자이지만··· 뭐, 굳이 눈으로 확인하시겠다면야 아들인 제가 어떻게 말릴 수 있겠어요.”
 건방이 하늘로 치솟았다.
 “아버지 체면도 있고 하니, 한 수 접는 셈치고 제가 한쪽 눈을 감아드리죠.”
 이렇게 말하면 눈에 불을 켜야 하는 법이다. 한데······.
 “푸흐흐······!”
 몹시 기분 나쁜 웃음이었다. 무언가 자신이 말실수를 한 것 같은 느낌을 들게 만드는 묘한 웃음이었다.
 ‘왜 웃으시지? 기분 이상하게······. 그런데 저, 저건?’
 방금 한 말이 며칠 휴식을 취하게 한 후에 감각수련(感覺修練)에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한 검인후의 마음을 아낌없이 사그라지게 만든 것도 모르고 검용은 다른 곳에 정신을 빼앗기고 있었다.
 그것은 흐벅지게 웃는 검인후 입술 사이로 보이는 치아의 반짝거림이었다. 놀란 그는 손가락을 들어 가리켰다.
 “어! 아버지 이빨은 왜 하얗죠?”
 뜨끔한 검인후는 합죽이처럼 입을 오물거렸다.
 “이가 왜?”
 “그 동안 이를 닦지 않아 누렇게 되어 있어야 하는데··· 어째서 아버지 이는······?”
 머리를 갸웃거리던 검용은 자신의 손바닥에 호! 하고 입김을 불어 냄새를 맡아보았다.
 ‘크! 지독하다!’
 확실했다. 자신 몰래 검인후는 씻었던 것이다.
 그가 양 볼따구니에 커다란 사과를 하나씩 넣고, 입술은 오리주둥이가 되어 입을 열려는 바로 그 순간, 주의를 돌릴 필요성을 절감한 검인후는 미리 준비했던 것을 불쑥 내밀었다.
 “받아라.”
 힐끗 보니 가죽인 듯한데 묘하게 생긴 물건이었다. 봉투처럼 밑은 터져 있고, 그 밑부분에는 역시 가죽으로 된 끈이 있어 묶을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어디에 쓰는 물건인지 궁금증이 일었으나 이미 심사가 상한 검용은 불퉁하게 말했다.
 “싫어요!”
 순간,
 딱!
 “아얏!”
 골이 다 흔들렸다. 본능적으로 만져보니 벌써 혹이 돋아나 있었다.
 검인후는 팔을 조금 더 내밀었다.
 “두 번 말하게 하지 말라 했다. 받아라.”
 그렇다고 비겁하게 선전포고도 없이 때려?
 입술이 꼼지락거리는 것을 겨우 말린 검용은 묘한 물건을 빼앗듯 받으며 물었다.
 “이건 대체 어디에 쓰는 물건입니까?”
 검인후는 봉을 세우며 되물었다.
 “방금 왜 맞았는지 아느냐?”
 “같은 말을 되풀이하게 만들어서요.”
 “맞다. 하지만 안 맞을 수도 있었다.”
 그걸 말이라고 한담. 안 때리면 안 맞지. 허나 검인후가 그런 뜻으로 말하지 않았다는 것쯤은 아는 검용은 볼멘소리로 대답했다.
 “기습만 하지 않았으면 피할 수 있었어요.”
 검인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하지만······.”
 말끝을 흐린 그는 검용의 손에 들린 물건을 힐끗 응시한 뒤에 이었다.
 “네가 만약 감각수련을 했다면 기습적인 공격이라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쇠가죽으로 만든 그것은 감각수련에 꼭 필요한 물건이다.”
 “쇠가죽? 감각수련?”
 곱씹던 검용은 불현듯 떠오른 생각에 스스로 깜짝 놀라 따지듯이 물었다.
 “끝난 게 아니었어요?”
 검인후는 흐릿한 미소를 지었다.
 “잊은 모양이구나. 이곳을 나갈 방법을 말이다.”
 “어째 이런 일이······!”
 눈앞이 캄캄했다.
 당장이라도 검인후를 이기고 당당하게 걸어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런 재주가 없지 않은가.
 검용은 한숨을 쉬었다.
 “아버지도 감각수련을 했어요?”
 검인후는 서슴없이 대답했다.
 “물론이다.”
 “얼마나 걸렸어요?”
 뜻밖의 질문에 검인후는 움찔했다.
 “글쎄다. 하도 오래돼놔서······.”
 눈동자가 오른쪽 귀퉁이에 박혔다가 제자리로 돌아왔다.
 “기억나기로는··· 한 오십 일쯤 걸리지 않았나 싶다.”
 ‘입술에 침이라도 바르시지.’
 그러나 검용은 짐짓 감탄사를 터뜨렸다.
 “햐아! 그 정도면 굉장히 빠른 거지요?”
 “아무렴! 빨라도 예사로 빨랐던 게 아니었지.”
 “사조님의 칭찬이 대단하셨겠어요.”
 갑자기 목뼈가 뻣뻣해진 검인후는 두 손의 힘의 빌어서야 겨우 끄덕일 수 있었다.
 “대단했지. 얼마나 대단했느냐 하면, 사부님께서 그날 이후로 열흘 동안 물만 자시고 지내셨을 정도였지.”
 “물을··· 왜요?”
 당시 생각이 나는지 검인후는 ‘흐흐!’ 하고 음흉한 웃음을 흘리며 대답했다.
 “왜이겠느냐. 칭찬하느라 체내의 물기가 다 말라 그랬지.”
 ‘윽! 저 공갈!!’
 검용은 속이 느물거려 하마터면 하고픈 말을 할 뻔했다. 겨우 뒤틀린 비위를 진정시킨 그는 손뼉을 딱 쳤다.
 “아깝다! 아까워······. 그때 제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사조님도 뵐 수 있었을 테고, 또 사조님이 아버지를 극찬하시는 걸 봤을 텐데······.”
 그러면서 힐끗, 가자미눈으로 검인후를 살피니 이제 슬슬 낚싯대를 건져 올려도 될 성싶었다.
 검용은 감탄 어린 표정을 지우지 않고 말했다.
 “그런데 아버지. 감각수련을 하시는 동안 편히 주무시면서도 그 정도밖에 안 걸렸겠지요. 그렇지 않다면 정말 별거 아닌데······.”
 ‘욘석이, 이제 보니······.’
 이제야 왜 검용이 지나칠 정도로 아부를 떨었는지 깨달은 검인후는 잠시 망설였다.
 강행군을 해? 말어?
 결론은 놀라울 정도로 빨리 났다.
 “물론이다. 쉬엄쉬엄··· 놀다가 피곤하면 쉬었다가··· 틈나는 대로, 짬나는 대로 익혔지.”
 ‘우헤헤! 걸렸다!’
 “하지만 넌 안돼! 왜냐? 너는 내가 아니니까. 쉽게 말하면 네 자질은 놀라울 정도로 형편없다는 뜻이다.”
 ‘들켰다! 작전변경!’
 눈꺼풀이 천근만근이고, 몸은 물먹은 솜처럼 축 처져 있는데 무공 자질이 뛰어나든 형편없든 그딴 게 무슨 상관인가.
 검용은 기억을 더듬었다. 언젠가 자신의 쌈짓돈을 몽땅 비우게 만든 한 걸인의 모습을 떠올리며 검지를 폈다.
 “아버지, 딱 하루만······! 예?”
 검인후는 눈물마저 글썽이는 검용을 빤히 보면서도 고개를 저었다.
 “안된다.”
 “이틀도 아니고 하룬데요. 하루만 쉬게 해주시면 앞으로 꾀도 안 부리고, 투정도 안하고 진짜로 열심히 할게요. 예? 아버지이잉?”
 제 행동을 알긴 아는 모양이었다.
 어깨를 뒤트는 모습이 좀 역겹기는 하지만 일단은 기다리던 답이 나왔다.
 “호, 그래······. 그게 정말이냐?”
 물실호기(勿失好機)!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검용은 부동자세를 취하며 오른 손을 번쩍 들었다.
 “옙! 맹세합니다!!”
 검용이 비록 어디로 뛸지 모르는 청개구리이지만 자신이 한 말은 칼같이 지킨다는 것을 아는 검인후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좋다! 딱 하루뿐이다!”
 쩍 벌어지는 검용의 입을 보며 검인후는 한마디 툭! 던졌다.
 “너, 이걸 알고 있느냐?”
 “······?”
 “네 건방이 며칠 쉴 수 있었던 것을 단 하루로 줄어들게 만들었다는 것을······.”
 
 
 3장 아버지만의 법(法)은, 아버지 마음대로다
 
 
 모자(母子)가 상봉했다.
 검용은 콧물을 찔끔거리면서 얼마나 심하게 맞았는지에 대해 미주알고주알 고자질했고, 이청하는 눈물을 찔끔거리며 듣다가 먼 산을 바라보는 검인후를 하얗게 째려보았다.
 그런 이청하이었지만 마지막에는 배신을 하였다.
 “씨이······. 말로는 누가 못해, 응? ‘아이고! 내 새끼. 하나밖에 없는 내 귀한 아들.’ 하면서 왜 실천을 하지 않는 거야? 그렇게 사랑한다면 ‘오냐, 좋다! 이 에미만 믿고 무공 따위는 익히지 말아라!’ 하면 어디가 덧나!? ······뭐? 무공만은 익혀야 된다고 등을 떠밀어!”
 꽝! 꽝!
 울화통이 터진 검용의 심술에 복도 바닥만 곤욕을 치르고 있었다.
 뒤에서 어디가 얼마큼 변했는지 유심히 살피며 따라가던 검수란은 콧잔등을 찡그렸다.
 ‘에구······. 귀가 다 따갑네. 무슨 사내가 무슨 말이 저리 많을까? 무공을 연마해 천하에 이름을 떨치면 좀 좋아? 그런데 아버지도 좀 이상하셔. 싫다는 사람을 왜 가르치시는지 몰라?’
 요리 보고 저리 보아도 변한 점이라고는 눈을 씻고도 찾기 어려웠다.
 은연중에 풍기는 그런 것이 말이다.
 ‘가르치나마나한 사람을 말야. 총명한 나나 가르치시지 않구서는······. 그러면 오빠는 내가 잘 돌봐 줄 텐데······.’
 그때다.
 검용의 발길에 뻥! 걷어차여 벌컥 열린 방에서 고약한 냄새가 풍긴 것은.
 “캭! 냄새!!”
 검수란은 코를 감싸쥐고 주춤 두어 걸음 물러섰고, 검용은 두 다리를 떡 벌리고 힘껏 들이켰다.
 “흠! 흠! 냄새 한번 조오타!”
 같은 냄새를 두고 반응은 엄청 달랐다.
 ‘내가 잘못 맡았나?’
 귀는 막지 않은 까닭에 검용의 탄성을 들은 검수란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코를 잡은 손을 슬그머니 놓았다. 아니, 놓기도 전에 기다렸다는 듯이 예의 냄새가, 곰팡이 썩는 퀴퀴한 냄새와 땀에 절인, 마치 석 달 열흘 동안 아랫목에서 띄운 메주에게서나 맡을 수 있는 냄새였다.
 속인 사람도 없지만, 속았다고 생각한 그녀의 입에서 뾰족한 음성이 튀어나온 것은 촌각에 지나지 않았다.
 “이 냄새가 좋아?!”
 “당연히!”
 검용은 맡아보란 듯이 콧구멍 평수를 넓히며 말했다.
 “누가 따라 오랬어? 그리고 이건 내 잘못이 아냐. 청소를 안한 너와 엄마 잘못이지.”
 검수란은 빽! 소리 질렀다.
 “내가 오빠 하녀야?”
 “아님 말어.”
 “뭐야!!”
 고함과 동시에 빤하게 보이는 뒤통수를 향해 주먹이 날아갔다. 평상시처럼.
 한데 이게 웬일인가? 당연히 딱! 하고 맞은 뒤, ‘악!’ 하는 비명이 뒤따라야 하는데 애꿎은 바람만 잡히는 것이 아닌가.
 어느새 피하고, 몸을 돌렸는지 검용은 검지를 세워 살랑살랑 흔들며 실실 웃었다.
 “이젠 안돼. 어설픈 네 실력으로는······.”
 ‘어설퍼? 내가?’
 별안간 검용의 목이 자라목처럼 길게 늘어났다. 씻지도 않은 그 얼굴을, 누런 황금빛으로 빛나는 이빨과 악취의 근원인 잇몸이 드러나도록 씩! 쪼갰다.
 “이 얼굴을 때리고 싶지. 응? 힘들겠지만, 한번 때려볼래?”
 검수란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가 감전된 사람처럼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떨림이 물결 마냥 이어졌지만 그녀는 손을 쓰지 않았다.
 약이 올라서가 아니었다. 입에서 나는 악취 때문은 더더욱 아니었다.
 ‘변했어. 분하지만··· 인정 안할 수 없어.’
 한 번의 실험으로 알아차린 그녀의 어깨가 축 처지고, 입에서는 긴 한숨이 흘러 나왔다.
 “휴우······! 오빠는 좋겠다.”
 ‘수상해. 뭔가 있다!’
 평소답지 않은 검수란의 인내심과 밑도 끝도 없는 말에 검용은 경각심을 바짝 불러일으키면서 물었다.
 “뭐가?”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검수란은 탄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고수가 돼서······.”
 “고수? 내가? 정말?”
 “그래. 이제 강호에 나가 이름을 날릴 일만 남았네. 예쁜 여자들도 만나고. 얼굴도 그런 대로 괜찮으니까 예쁜 여자들이 오빠 부대를 만들지도 모르고······. 누구는 좋겠다.”
 순간 검용의 눈이 몽롱하게 변했다.
 이름이야 어떻든 관계없다마는 오빠 부대라니? 손짓 하나, 발질 하나에 괴성을 지르는 어여쁜 지지배배들 가운데 턱하니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이 그려졌다. 그 귀여운 것들 중에 아무나, 생각나는 대로 고르면 되는 것이다. 손가락만 까딱하면 웃옷을 벗고, 아래옷도······. 으흐흐흐!
 절로 침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헤······.”
 ‘에그, 더러! 꼴에 사내라고······.’
 검수란은 손이 가려웠다.
 지금 날려? 말어? 그러다 실패하면? 재미 적겠지.
 “피곤할 텐데··· 그만 자. 나는 갈게.”
 힘없이 중얼거리며 돌아서는 그녀를 보는 검용의 눈은 의혹으로 물들었다.
 ‘뭔가 있는 것 같았는데··· 아닌가?’
 그래서일까?
 언제나 활달했던 동생의 축 처진 어깨가 새삼스레 다가와 한마디하고 말았다.
 “너무 실망하지 마. 아버지에게 네게도 무공을 가르쳐주라고 부탁할게.”
 검수란의 걸음이 우뚝 멈추어 섰다. 잠시 망설이던 그녀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말은 고맙지만··· 싫어.”
 뜻밖의 반응이었다.
 딸로 태어나 알게 모르게 차별 대우를 받아 무슨 일이든 검용보다 더 나아 보이려고 기를 쓰던 그녀가 아니던가. 그런데 싫다니, 의외도 이런 의외는 없었다.
 이제야 철이 든 건지, 아니면?
 “왜 싫어? 너답지 않게.”
 기다렸다는 듯이 검수란은 냉큼 대답했다.
 “피똥을 누기도 싫고, 또 오빠처럼 젊은 나이에 백발도 되기 싫어.”
 “뭐어! 내가 백발이라고!!”
 대경한 검용은 머리칼을 눈앞으로 잡아당겼다.
 오랫동안 감지 않아 하얀 꽃잎들이 말라붙어 있어 희끄무레하지만 결코 백발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다.
 적이 안심한 그는 히죽 웃었다.
 “너, 괜히 심술 부린 거지? 내가 너보다 세니까.”
 검수란의 몸이 빙글 돌려졌다.
 “기분이 좋지만은 않다는 것은 인정해. 하지만 남도 아닌 우리 집안을 이끌 오빠가 고수가 됐는데··· 반갑게 맞이 못하는 내가 옹졸하지. 미안해, 오빠.”
 “!”
 검용은 멍해졌다.
 오기와 자신감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이 대개 그렇듯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코만 높아 자기 비하 식의 발언은 절대 하지 않는다. 그런 그들에게 당당하게 이름을 올리고도 남을 검수란이······.
 ‘너무 충격이 컸나? 저 정도인 줄 알았다면 맞아줄걸.’
 눈도 마주치지 못하겠는지 검용의 눈길을 피하면서 검수란은 처연한 어투로 입을 열었다.
 “그러나 아직 백발 정도는 아니지만 오빠 뒷머리에 나 있는 흰 머리칼을 보는 순간 내 마음이 몹시 아팠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해.”
 ‘뒤통수에!’
 움찔한 검용의 손이 절로 뒤로 돌아갔다. 그러나 틀어 올리고 남은 머리칼 몇 올만 잡을 수 있었을 뿐이다. 그 몇 가닥도 길이가 짧아 끝만 약간 보였다.
 심히 걱정된 그는,
 “흰머리가 많아?”
 하고 물었고, 검수란은 ‘한 열 가닥 정도······.’ 하고 대답했다.
 
 ***
 
 푹 숙인 정수리 너머로 보이는 부스스한 머리칼, 축 처진 어깨하며, 어기적거리는 걸음걸이······.
 한심스럽기 짝이 없었다.
 “씻지도 않고 잠만 잔 거냐?”
 “피로가 너무 누적돼서······.”
 ‘말은 잘한다.’
 안쓰러운 바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검인후는 흔들리는 마음을 잡듯 어금니를 지긋이 깨물고는 쇠가죽으로 만든 그것을 검용에게 던졌다.
 “머리에 써라.”
 가슴팍에 닿아 엉겁결에 받아든 검용은 생각지도 않은 말에 자신도 모르게 번쩍 고개를 들었다.
 “이걸 머리에 쓰라고요? 구멍도 하나뿐인데요.”
 순간 검인후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왼쪽 눈탱이가 왜 그 모양이냐?”
 검용의 고개가 다시 수그러졌다.
 “맞았구나. 수란이에게?”
 “!”
 검용은 입을 다물었다.
 뒤통수의 흰 머리칼을 뽑아준답시고 머리칼을 잡고 때리는 통에 어쩔 수 없이 맞았다고 한들 무슨 좋은 소리를 듣겠는가.
 “쯔쯔! 못난 놈······.”
 그럼에도 대충 사태를 짐작해 혀를 차던 검인후는 조금 언성을 높였다.
 “빨리 머리에 쓰지 않고 뭘 하느냐?”
 피잉!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쇠가죽으로 만든 복면 아닌 복면, 즉 겨우 호흡만 할 수 있게 입과 코만 뚫린 가죽 복면을 쓰고 있는 검용의 귀와 전신 세포가 바짝 긴장했다.
 왼쪽? 오른쪽? 아래? 위?
 소리는 들린다. 그러나 어느 부위로 찔러오는지, 아니면 후려쳐 오는지 몰라 피하는 방향을 대충, 행운이 따르면 피할 수 있을 거라고 망설이는 찰나,
 ‘윽! 벌써··· 맞았다!’
 왼쪽 가슴 부위인 천지혈(天地穴)이 뻑적지근했다. 허나 다행히도 검인후가 전력(全力)을 기울이지 않은 이유도 있지만 태아 때부터 약물로 근골을 단련시킨 데다 내공수련, 게다가 그 동안 부지런히 혈도(血道)를 맞아 근(筋)에 배인 터라 그다지 큰 충격은 없었다.
 사실 검용이 몰라 그렇지 호신강기(護身 氣)를 펼치지 않아도 내공을 연마하지 않은 무사(武士)들이 펼치는 공격쯤은 가만히 있어도 될 만큼 피부가 딱딱해져 있었다.
 주르르 일 장이나 밀려난 검용은 은근한 아픔에 만질 겨를도 없이 귀를 쫑긋 세웠다.
 ‘이번만은 정신 똑바로 차리고······.’
 이리저리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데 어찌 된 일이지 한참이 지나도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게 않는가.
 ‘귀신이시네. 내가 피할 줄 알고 기회를 노리시나 봐. 흥! 그래도 어림없어요!’
 그가 전신세포까지 동원하는 그 순간,
 톡······.
 ‘뭐야, 이건?’
 무언가 옷자락을 살짝쿵 건드리고 지나갔다. 어찌 생각해 보면 긴장으로 인해 생긴 땀 한 방울이 떨어진 것 같은······.
 그때 검인후의 음성이 귓속을 파고들었다.
 “어떠냐?”
 느닷없이 어떠냐라니?
 영문을 알 수 없어 어리둥절해진 검용은 음성이 들려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뭐가요?”
 “천지혈을 공격한 것과 구미혈(鳩尾血)을 공격한 것과의 차이 말이다.”
 ‘구미혈?’
 검용은 잠시 기억을 더듬었다. 그러다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방금 옷을 건드린 것도 같았는데······. 혹시 그걸 말씀하시는 건가요?”
 검인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그 둘의 차이점을 알겠느냐?”
 생각할 것도 없다. 검용은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첫번째는 무척 아프고, 두 번째는 안 아팠어요!”
 검인후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직 느끼지 못한 모양이구나. 하긴, 단 한 번에 네가 무얼 알겠냐? ······준비해라.”
 말을 마친 그는 봉을 번개같이 찔러갔다.
 
 ***
 
 스무 번의 밥상을 받았고, 수없이 두드려 맞았다.
 아무 생각 없이 때리는 사람이야 약간의 즐거움도 누릴 수 있다지만 흐릿한 문제의 해답을 생각하며 맞는 사람은 죽을 맛인 법이다.
 검인후는 이마에 맺힌 진득한 땀을 훔치면서 비지땀을 뚝뚝 떨어뜨리는 검용을 향해 말했다.
 “어떠냐? 이제 좀 알겠느냐?”
 검용은 결코 바보가 아니다.
 그의 약점은 단 한 가지! 어떤 일을 오랫동안 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를 역설(逆說)로 풀이한다면, 목숨 걸고 매달릴 필요성을 느낄 그런 일을 찾지 못했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한데 지금은 아니었다.
 맞기도 싫었지만, 무엇보다도 수면 부족으로 죽을 것 같기에 목숨을 걸었다.
 “후··· 훅!”
 허리를 구부리고 가쁜 숨결을 고르고 있는 검용의 눈은 쇠가죽 속에서 희번덕거렸다.
 ‘흥! 오기 하면 나도 한 오기 한다구요!’
 잔뜩 열 받은 상태인 그는 느긋하게 대답했다.
 “에··· 첫번째는 아프고, 두 번째는 아무리 맞아도 죽지 않을 것 같습니다요.”
 대답은 검인후의 마음을 아프게 하기에 족했다.
 ‘간혹 피하기에 뭔가 깨달음이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칠 일은 역시 무리였나?’
 회오(悔悟)가 걷잡을 수 없이 밀려들었다.
 ‘허허 저놈도 어쩔 수 없는 내 핏줄인가?’
 감각수련을 할 때 둔하다고, 미련하다고 얼마나 많은 꾸중을 들었던가. 겉으로는 ‘허허’ 했지만 그 말들이 너무나 뼈에 사무쳐 후손만은 반듯한 놈으로 낳으리라 작정했다. 그래서 인물도, 가문도 볼품없지만 머리 하나만은 뛰어난 이청하와 결혼하였다.
 물론 그렇다고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었다. 이청하는 완벽에 가까운 현모양처였으니까.
 검인후는 심장을 토하는 기분으로 한숨을 쉬었다.
 “모른다니 일러주마.”
 라고 말한 그는 겉옷이 후줄근하게 젖은 검용을 보는 순간 새삼 측은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를 악물어야만 했다.
 “사실 네가 조금이라도 깨달은 게 있었다면 며칠 쉬게 해주려 했다만··· 휴우! 어쩔 수 없이 강행군을······.”
 듣고 있던 검용은 감히 말꼬리를 잘라먹었다.
 “잠깐만요!”
 벼락같이 고함을 지른 그는 행여 검인후의 마음이 바뀔세라 숨넘어가듯이 물었다.
 “그 거짓말 진짜 거짓말이죠?”
 미친 사람처럼 손을 흔들며 젊은 세대나 재빨리 이해할 수 있는 말을 검용이 툭 던져 일순간 검인후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거짓말에 거짓말을 더하면, 부정(不正)에 부정을 더하는 것과 같은 이치······?’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았다.
 하지만 그의 이런 걱정은 눈 한번 깜짝할 사이도 기다릴 여유가 없는 답답한 사람이 먼저 우물을 파 줘 해결되었다.
 “에이··· 알면 쉬게 해준다는 말은 거짓말이었구나. 대답을 못하시는 것을 보니······. 난 또 그것도 모르고 깜빡 속아넘어갈 뻔했잖아.”
 “너, 그게 무슨 말버릇······.”
 버르장머리없는 어투에 한소리 하던 검인후의 몸이 전류에 감전된 사람처럼 부르르 떨렸다.
 ‘설마······? 혹시?’
 그는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너··· 깨달음이 있었더냐?”
 검용은 고개를 홱! 돌리며 야멸차게 대답했다.
 “없어요!”
 검인후의 눈썹이 불끈했다. 놀림을 당해 기분이 나쁜 것 보다 잠시나마 기대감을 갖게 만든 행위가 괘씸해 그는 고함치듯 말했다.
 “그런데 왜 아는 것처럼 말했느냐?!”
 흠칫! 검용은 놀랐다.
 저런 음성 끝에 돌아오는 대가가 어떻다는 것을 아는 그는 괜한 말을 했다 싶어 입술을 비쭉거렸다.
 “얻는 것도 없이 나서는 것보다 가만있으면 입도 안 아프고, 듣는 시간 동안 쉴 수도 있는데··· 왜 나서겠어요.”
 이랬다, 저랬다······. 약간의 헷갈림이 있었지만 말의 요지만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검인후는 좀전과 다른 의미의 떨림을 보이며 물었다.
 “네 말인즉슨, 깨달음이 있었다는 것이냐?”
 검용은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제가 부처(깨달은 사람)도 아닌데 무슨 깨달음이 있겠어요. 다만 느낌은 좀 있었죠.”
 ‘그런가? 있었다 이거지.’
 듣고 싶었다. 그러자면 꼬드겨야 했다.
 “며칠 쉬게 해주겠다. 말해 보아라.”
 귀가 번쩍 뜨이는 소리였다. 검용은 다그치듯 물었다.
 “그 거짓말 진짜 거짓말이죠?”
 습관인 듯······.
 검인후는 설레설레 고개를 내젓다가 끄덕였다.
 “알았다.”
 “에이, 그런 어쩡쩡한 말씀이 어디 있어요. 헷갈리게······. 약속한다, 안 한다 똑 부러지게 대답해 주셔야지요.”
 제 눈의 것은 못보고, 남의 눈에 든 티끌은 잘도 본다더니······. 검인후는 순순히 승낙했다.
 “약속하마.”
 “좋아요! 그럼 말씀드리죠!”
 잠시 생각을 정리하는 듯 뜸을 들이는 듯하더니 마침내 검용의 입이 열리기 시작했다.
 “쾌(快)의 공격은 빨라요. 허나 빠르다는 것은 기세(氣勢)를 숨길 겨를이 없다는 것이고, 기세만 감지할 수 있으면 능히 피할 수 있습니다.”
 검인후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하지만 느린 만(晩)의 공격에는 기세가 없지요. 기세가 없다는 뜻은 그만큼 방비하기가 어렵다는 것이고··· 이는 바로 정(靜)은 동(動)을 제압한다는 맥락에서 이해하면 쉬워요.”
 서서히 입가에 웃음꽃이 피어나는 검인후는 그 자신이 꼭 가르침을 받는 듯한 찜찜한 기분이 언뜻 들었다.
 ‘어째 좀······. 그러나 허허, 이렇게까지 뛰어나다니······! 누구 집 자식인지, 아들 하나는 똑 소리나는구먼.’
 잠시 말을 멈춘 검용은 돌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있어요.”
 기쁨에 겨운 자의 음성은 어떨까? 아마 나긋나긋?
 “오? 그래, 의문이 뭔지 말해 보아라.”
 “쾌가 강해요, 만이 강해요?”
 순간 검인후의 입이 딱 벌어졌다.
 이 질문? 기억난다.
 머리통이 벌집이 되도록 쥐어 박히고도 모르자 답답해진 사부가 가르쳐준 해답이 아니던가!
 부자지간(夫子之間)인데 이렇게 다를 수가 있을까 싶었다. 그러나 엄청 기분 좋은 차이였다.
 “음······. 아주 예리한 질문이다. 예전에 이 아비가 네 사조님께 했던 그대로구나.”
 믿거나 말거나 일단은 동일선상에 올려놓은 후에 검인후는 기억을 더듬으며 말했다.
 “그것은 갈대와 거목(巨木), 미풍(微風)과 태풍(颱風)의 차이라고나 할까? 좀더 쉽게 풀이하자면······.”
 그 순간 검용은 두 손바닥을 마주쳤다.
 “아, 이제 알았어요!”
 ‘벌써? 겨우 맛보기만 보고··· 어찌 이런 일이?’
 얼마나 놀랐던지 자신도 모르게 생각이 불쑥 언어로 변신해 튀어나올 뻔했다.
 검인후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침착하게 말했다.
 “좀 감이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라도 알았다니 다행이다. 어서 말해 보아라.”
 쇠가죽 복면 속의 또르르 눈알 굴러가는 소리와 함께 검용의 음성이 들려왔다.
 “유(柳)와 강(强)의 차이로, 부드러움이 단단함을 이긴다는 겁니다. 부드럽다는 것은 즉, 끊임없음으로 제아무리 단단한 바위라도 연속된 물방울로 능히 뚫을 수 있다는 거지요.”
 검인후의 입이 헤벌쭉 벌어졌다가 닫혔다.
 “음, 옳다.”
 “그런데······.”
 검용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문을 표하는 순간, 검인후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설마··· 아니겠지.’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풀지 못한 단 하나의 숙제! 만약 그것을 묻는다면······. 끔찍했다.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검용을 고개를 이리저리 기울이며 혼자서 주절거리기 시작했다.
 “가만··· 부드러움과 강함 중 어떤 게 중요할까? 흐흥. 이거봐라, 정말 재미있는걸······. 중요한 것은 버리면 안되지. 그건 국가적인 낭비니까. 그렇다면 어느 한쪽도 버릴 수 없다? 하면?”
 불안에 떨며 가만히 듣고 있던 검인후는 가슴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검용은 어떤 결론에 다다른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둘 다 시간싸움이다. 빠름은 자신이 생각할 시간도 없이 빠르다. 고로, 상대 또한 시간이 없다! 느림은 시간이 많다. 시간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단순하다면······. 그래, 맞아. 변화(變化)다!”
 순간 검인후는 불투명했던 뇌리로 작렬하는 벽력음을 들었다.
 ‘이, 이놈······.’
 머릿속이 웅웅거렸다. 웅웅거림은 곧 입으로 전달되었다.
 “프흐, 흐··· 으하하하······!”
 이렇게 통쾌한 일이 또 어디에 있단 말인가. 있으면 누구 나와보라고 해. 비교를 해보게.
 ‘흐······. 됐다. 이제 쉬는 날만 남았어.’
 검인후의 파안대소(破顔大笑)를 듣던 검용도 무척 기분이 좋았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졌다.
 경험으로 비추어볼 때 하품만 해도 눈물이 나오지 않던가. 그런데 저렇게 심하게 웃으면 얼굴 근육이 당길 것은 불문가지한 일. 당긴 근육은 눈물샘을 자극할 것이고······.
 ‘벗고 한번 볼까? 들키면 되게 쑥스러워하시겠지. 그렇다고 평생 가도 볼 수 없는 진풍경을 놓칠 내가 아니지.’
 그의 손이 겁대가리 없이 턱밑의 매듭을 잡을 때였다. 눈물을 줄줄 흘리며 웃던 검인후의 입에서 대갈성이 터져 나온 것은.
 “수련할 준비를 해라!”
 “!”
 검용의 손이 멈추었다.
 수면 부족으로 내가 잘못 들었나? 아니면 너무 웃다가 머리가 좀······. 하지만 그런 확인보다도 ‘약속’을 재인식시켜 주는 것이 더 필요했다.
 “아버지 같은 분이 철석같은 한 약속을 잊으실 리는 없고······. 그렇구나! 날 놀리시려고 일부러 하신 말씀이구나! 그렇지요?”
 “약속은 없던 걸로 친다.”
 검용의 눈이 화등잔 만큼 커졌다.
 “예에? 그, 그 무슨 끔찍한 말씀을······?”
 “두 번 말해주련?”
 검용은 수많은 파리 떼를 쫓듯 손을 휘휘 저으며 악을 썼다.
 “두 번이고 백 번이고 간에······. 그게 문제가 아니라, 약속이란 말입니다, 약속!”
 “귀 안 먹었다. 조용하게 말해라.”
 누가 들을까 겁난다,라는 말은 생략되어진 말이다.
 검용은 목숨을 걸었다.
 “아··· 글쎄! 먹고, 안 먹고 간에, 제게 뭐라 가르쳤습니까? ‘약속은 네 생명이다. 고로, 죽지 않았다면 지켜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 말을··· 금과옥조(金科玉條) 같은 이 말을 잊으신 겁니까?”
 “잊지 않았다.”
 “그런데 왜 약속을 어기시려는 겁니까?”
 “기분이 좋으니까.”
 그게 무슨 핑계라고······.
 어처구니가 없어진 검용은 한숨을 팍팍! 내쉬었다.
 “기분이 좋으면 더 지키셔야지요. 어기면 어떡합니까? 세상에 그런 법도 있습니까?”
 “있다.”
 “?”
 검인후는 히죽 웃었다.
 “이게 바로 아버지들만이 가진 고유의 법이라는 것이다.”
 검용의 입이 딱 벌어졌다.
 그리고 이내 깨달음을 얻어 결심했다.
 ‘나도 조속히 하나··· 아니, 능력 닿는 대로, 열심히 많이 만들어야지.’
 어쩌면 죽는 순간까지도 알 수 없을지도 모를 깨달음이었다. 그리 소중한 깨달음을 한시바삐 시험해 보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게다가 시간이 지나면 다 잡은 고기를 놓칠 수도 있음을 배제할 수 없었다.
 봉을 불끈 움켜쥔 검인후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싶은 순간, 성큼 한걸음 나섬과 동시에 상체를 낮추고 빙글 돌았다.
 파앗!
 파공음은 검용의 청각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밑!’
 생각이 신경 계통에 전달되기 전에 그의 몸은 이미 허공에 떠 있었다.
 ‘이번에는 느린 공격이겠지.’
 허공에서 느릿하게 떨어져 내려오던 검용은 전신 신경을 전부 가동시켰다. 그만큼 방비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허나 다행이라면 속도가 무지하게 느리다는 것이다.
 한데 다음 순간,
 핑! 하는 소리와 함께 거궐혈에 둔중한 충격이 전해졌다. 충격은 곧 아픔이었다.
 “악!”
 우당탕! 바닥에 패대기쳐진 그는 벌떡 일어나며 고함쳤다.
 “약속이 틀리잖아요!!”
 갑작스런 약속 타령에 어리둥절한 검인후는 되물었다.
 “무슨 약속?”
 검용은 불퉁하게 말했다.
 “빠른 공격 다음에는 느린 공격이잖아요!”
 순간 검인후는 스치는 생각이 있어 흐릿하게 웃었다.
 “너는 정말 띨방하다. 꼭 그래야 한다는 그 발상은 어디서 나온 거냐?”
 “지금까지 그······.”
 무심결에 대답하려던 검용은 끝말은 입 속에서 해야 했다.
 ‘여태 그래 놓고는······. 이제 좀 몸에 익나 했었는데 비겁하게 방법을 바꿔?’
 검용은 투박한 어조로 물었다.
 “그럼, 이제부터 두 번 빠른 공격 뒤에 느린 공격을 할 거예요?”
 저렇게 단순한 놈이 어떻게 그 어려운 걸 깨달았나 싶어 검인후는 한숨을 쉬었다.
 “공격하는 사람이 정해진 형틀대로 공격한다더냐? 공격자 마음대로지.”
 ‘물어본 내가 바보지.’
 검용의 머리가 독오른 뱀대가리처럼 꼿꼿하게 세워졌다.
 “어서 덤비세요!”
 해가 지고, 달이 떴다. 그 달이 지고 해가 뜨기를 얼마나 거듭했는지 알지 못한다. 밥상 수를 칠십까지 헤아리다가 귀찮아서 그만두었다.
 
 ***
 
 휘영청 밝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고운 달빛을 뿌리는 보름달은 북녘에서 불어오는 차디찬 북풍에 차츰 그 빛을 잃어 가는 대신 진눈깨비가 소리 없이 흩날리고 있었다.
 달빛이 있고, 확실한 겨울의 전령인 진눈깨비가 공간을 차지하고, 그 공간 속에 한 인간이 서 있었다.
 올해로 오십 하고도 아홉을 맞는, 이 겨울이 지나면 인간이 제일 불길하게 생각하는 아홉 고개를 넘을 나이지만 그보다 열 살 정도는 훨씬 더 들어 보이는, 오 척도 되지 않는 키에 오랜 고목이 견뎌온 풍상만큼이나 주름으로 가득한 예칠기(倪七起)는 그리움이 가득한 눈으로 서쪽 하늘을 하염없이 응시하고 있었다.
 서쪽 하늘······.
 그 하늘 아래 고향이 있다. 그러나 갈 수가 없다. 거리가 멀어서가 아니다. 두 다리가 성치 않아서는 더더욱 아니며 큰 죄를 지어 돌아갈 수 없는 것도 아니다.
 고향은 소주이고, 자신이 서당 훈장 노릇을 하고 있는 이곳은 항주이다. 무척이나 가까운 거리. 그런데도 갈 수가 없다. 오래 전 조부는 소주를 떠나 천하를 방랑하다가 자신의 부친을 데리고 귀향했다. 그리고 부친은 그를 낳았고, 그가 열 살 때 다시 고향을 떠났다.
 예칠기의 손을 잡고서.
 이런 이유로 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어쩌면 추괴하게 늙은 자신의 모습에서 조부를, 부친을 연상할 사람이 아직 살아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갈 수 있겠지······.”
 씁쓸하게 웃을 때였다.
 꾸꾸꾸··· 꾸우······.
 왼손에 들린 새초롱에서 낮은 새 울음이 흘러 나왔다. 흰 비둘기는 오래 전부터 울고 있었지만 혼자만의 생각에 잠겨 있어 이제야 들린 것이다.
 예칠기의 눈매에 깊은 골이 잡혔다.
 “이 녀석······. 네 어미에게 가고 싶어 안달이 났구나.”
 그렇다고 대답하듯 비둘기는 더 크게 울고, 예칠기는 초롱을 열었다. 그리고 비둘기 다리에 달려 있는 작은 원통에 준비된 것을 밀어 넣었다.
 그것은 둥글게 말린 종이였고, 종이에는 강호의 근간에 대해서 쓰여 있었다. 크게 중요한 정보는 아니다. 허나 내용보다 자신이 무사하다는 뜻이 더 중요했다.
 예칠기는 두 손으로 흰 비둘기를 힘껏 허공으로 날려보냈다.
 “자, 어서··· 어서 네 어미에게로 가거라.”
 전서구는 이별이 아쉬운 듯 그의 머리 위에서 두어 바퀴 선회하다가 마침내 힘차게 날갯짓을 하며 비스듬히 날아올랐다.
 한데 바로 그 순간,
 피융!
 전서구를 향해 하나의 물체가 궤적을 그리며 솟구치는 것이 아닌가. 달빛을 받아 번쩍이는 물체는 여지없이 전서구를 꿰뚫고 말았다.
 비명도 못 지르고 떨어져 내리는 전서구가 깡마른 손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본 예칠기의 얼굴이 하얗게 탈색되었다.
 “이제야 꼬리를 잡았어.”
 창노한 음성이 들림과 동시에 세 개의 인영이 유령처럼 허공을 훨훨 가로지르며 예칠기 앞에 나타났다. 그들은 예칠기 못지않은 나이에, 그러나 장대한 체구를 지닌 노인으로 장사치들이나 입는 흔한 솜옷을 입고 있었다.
 예칠기의 볼이 실룩거렸다.
 “당신들은······?”
 그의 말에 대꾸 없이 고리눈에 주먹코, 전서구의 원통에서 밀지를 빼내 읽던 노인의 입에서 탄성이 터졌다.
 “오! 역시 피라미가 아니다!!”
 
 ***
 
 파파파팡!
 두 다리를 쫙 벌려 봉(棒)을 머리 위로 흘려보낸 검용은 바닥을 짚은 두 손을 축으로 삼아 빙그르르 돌며 검인후의 하체를 걸었다.
 훌쩍! 허공으로 도약해 피하던 검인후는 한마디 아니 할 수가 없었다.
 “멋진 복신세(伏身勢)!”
 여느 때 같으면 ‘히힛, 과찬의 말씀을······.’ 하며 어깨를 으쓱할 검용이지만 지금은 그럴 마음이 아니었다. 한시바삐 이 지옥훈련에서 벗어나는 길은 이기는 것뿐이다.
 헛발질을 했다고 느낀 순간, 팔을 오므렸다 펴는 반동으로 따라 솟구치며 두 발을 벼락같은 기세로 차올렸다.
 파파파팟!
 바짓가랑이가 찢어질 듯 펄럭이며 일순간에 수십 번을 차는 모습은 절정고수(絶頂高手)의 간담이 써늘하게 만들 만큼 위력적이라 자신도 모르게 움찔한 검인후는 슬쩍 허리를 비틀자 기다렸다는 듯이 휙! 하고 눈앞으로 검용의 하체가 지나갔다.
 한데 상체와 상체가 허공에서 만나는 그 순간 검용은 쇠가죽 복면 속에서 하얗게 웃었다.
 “이것도 한번 받아 보십시오.”
 음성과 함께 그는 두 손바닥을 활짝 펴 쌍용출해(雙龍出海)로 검인후의 가슴팍을 향해 내질렀다.
 “웃!”
 마파람을 토한 검인후는 다급히 왼손으로 둥글게 휘둘렀다. 손바닥과 손바닥이 마주쳤다.
 짜짝!
 내공을 싣지 않고 노수(路數)와 육체의 물리적인 힘만이 실려 있어 경쾌한 박수 소리를 만들었다. 그렇지만 검인후를 뒤로 물러나게 하기에는 충분한 힘이었다.
 어쩔 도리 없이 사오 척을 뒤로 물러난 검인후는 발이 바닥에 닿자마자 느릿하게 봉을 뻗으며 즐거움이 가득한 음성을 토했다.
 “어디 너도 한번 받아 보아라.”
 소리도 없다. 속도는 더할 수 없을 만치 지루했다. 밥 두 그릇을 먹은 뒤 늘어지게 한숨을 자고 나면 ‘이제 왔네.’ 할 정도였다.
 한데 어느 순간에 이르러 봉 끝이 부르르 떨림을 보이자 놀랍게도 수십 개의 환영(幻影)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닌가.
 스스스슷······.
 환영은 눈속임을 위해 만들어낸 허깨비 같은 환영이 아니었다. 그 하나하나에는 거대한 힘이 숨겨져 있었다.
 검용이 예전의 그가 아니듯이 검인후도 달라졌던 것이다.
 하나 남은 난제(難題)를 뜻하지 않게 푼 그의 무공은 스스로도 놀랄 만치 장족(長足)의 발전을 하였던 것이다.
 지금 만약 검인후가 내공을 실었다면 아마 아지랑이 같은 운무(雲霧)가 피어남을 볼 수 있을지도······.
 ‘이번만은!’
 스스로에게 다짐한 검용은 스르르 눈을 감았다. 보이지도 않는데 눈을 감는다?
 정신과 육체의 문(門)을 모두 연 순간 그는 하마터면 너무 기뻐 미세하게 느껴지는 공기의 흐름을, 파동(波動)을 놓칠 뻔했다.
 그 느낌이 흐트러지기 전, 검용은 환영과 환영이 잇는 바늘 끝 만한 틈을 비집고 들어가며 오른손의 식지를 꼿꼿하게 세워 느릿하게 찔러갔다.
 속도는 검인후보다 더 느렸다. 허나 한 정점(定點)에 닿자 믿을 수 없이 빨라졌다.
 소리도, 흔적도 없는 쾌속함!!
 검인후의 눈이 부릅떠졌다. 몸 속 어디에선가 신음 같은 울림이 목젖을 타고 올라왔다.
 “환무천··· 홍점(幻霧天洪點)······!”
 운무(雲霧)를 뚫고 하늘로 솟구치는 하나의 붉은 기운······. 환무칠혼식의 마지막 절초였다. 검인후조차 아직 완벽히 터득 못한, 검용의 도움으로 이제 겨우 구성 수준에 머문 환무천홍점을 완벽하게 시전한 것이다.
 목상(木像)처럼 서 있는 검인후의 옷깃에 식지가 닿는 순간 검용은 쇠가죽 복면 속에서 히죽 웃었다.
 “이 시간 이후부터 자유지요?”
 검인후는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사부, 보셨습니까? 이 아이가 바로 제 아들입니다. 사부께서 그리 타박하셨던 제자의······.’
 그의 상념은 더 이어지지 않았다.
 언제 쇠가죽 복면을 벗었는지 검용이 히죽히죽 웃으며 빤히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뭘 보냐?”
 검용의 대답은 간단했다.
 “눈물.”
 움찔한 검인후는 소매로 눈자위를 훔치며 버럭 음성을 높였다.
 “이놈아! 이건 눈물이 아니라······.”
 검용은 대뜸 말을 잘라먹었다.
 “알아요. 눈에 티가 들어갔다고 하시려는 거지요. 뭐, 그래야 아버지 마음이 편하시다면 그렇다고 해두죠. 그건 그렇고 소자는 이만 실례.”
 빙글거리며 몸을 돌린 검용의 뒤통수가 얼마나 얄미운지 검인후는 고함치듯 말했다.
 “휴식은 열흘뿐이다!”
 검용은 걸음을 빨리 하며 물었다.
 “아직 밑천이 남았어요?”
 검인후도 걸음을 옮기며 오기에 가까운 음성으로 대꾸했다.
 “걱정 마라. 아직 무궁무진하니까.”
 “에이, 설마······.”
 여전히 이죽거리며 말끝을 흐린 검용은 연무실의 빗장을 벗기고 밖으로 나가다가 고개를 돌렸다.
 “잘했으면 잘했다고 칭찬 좀 하세요. 칭찬 받으며 자란 아이가 착하게 자란다는 것도 모르십니까? 감정이라는 것은 말로 표현해야지, 눈물만 흘린다고 누가 알아준답니까. 그래도 나 정도 되니까 알지······. 쯔쯔!”
 
 
 4장 소주(蘇州)에서 부는 바람
 
 
 만약 누가 있어 눈 내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아마 이렇게 표현할 것이다.
 사락사락··· 내린다고.
 모두가 잠든 소주의 흐릿한 밤하늘 사이로 그런 소리가 가득했다. 북쪽은 이미 눈밭인데 비해 진눈깨비에 이어 진짜 눈다운 눈이 내리는 것이다. 늦은 감이 있지만 눈발은 굵었다.
 외딴 초옥(草屋).
 그 초옥을 마주보는 곳에 흑건(黑巾)으로 얼굴을 가린 일단의 무리가 서 있었다. 십삼 명 가운데 유독 눈에 띄는 사람은 흑건에 하얀 목련(木蓮)을 수놓은 사람이었다.
 큼직한 체구에 유달리 짤막한 목, 그리고 무심한 가운데 가금씩 형형한 안광(眼光)이 번쩍이는 눈을 가지고 있어 그 무게를 더해 주었다.
 호롱불을 켠 듯 흐릿한 불빛이 새어나오는 초옥을 응시하길 얼마나 됐을까.
 마침내 백목련이 새겨진 흑건인의 입술이 열렸다.
 “조용히 접근한다.”
 고저장단(高低長短)이 없는, 그러나 제법 나이가 들어 보이는 음성이었다.
 스스스······.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흑건인들이 움직였다. 반나절에 걸쳐 내린 눈이 제법 수북이 쌓였건만 일체의 소리도 나지 않는다는 것은 극도의 수련을 거친 것이 분명했다.
 허리를 잔뜩 구부리고 초옥을 향해 다가가는 수하들을 보며 그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가 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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