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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남백수 1

2018.03.29 조회 778 추천 5


 종남백수 1권
 서장 출발(出發)
 
 
 사막을 횡단한다는 것은 항시 사막을 오가는 대상(隊商)으로서도 괴로운 일임에 틀림없다.
 죽음과 삶이 교차하는 지점.
 “아차 하는 순간이면 죽음이지.”
 그들, 사막을 오가는 사람들은 그렇게 말한다.
 그들의 말이 사실이고, 그렇게 따진다면 초행인 안자명(晏雌鳴)에게는 사막으로 들어선 이후부터 하루하루가 지나감에 따라 더욱 고통스러운 날이 될 것이다.
 어디 사람 사는 세상이라 해서 모두 같다고 할 수 있을까?
 사막.
 사람이 살기에 어디 만만한 곳이 있으랴마는 사막이라는 곳은 사람이 살기에 가장 힘든 곳임에 분명했다. 더구나 중원처럼 환경이 좋은 곳에서 살던 사람이라면 더욱.
 “정말로 그럴라고!”
 그는 그렇게 말한 적이 있다.
 이제는 믿어야 했다.
 안자명이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제한적인 범위 내에서 사막을 경험한 사람은 모두 입을 모아 말했다. 사막은 사람뿐 아니라 짐승조차 살기 힘든 곳이고, 잘못해 길을 잃기라도 하는 날에는 결국 뼈만 남기게 될 거라고.
 안자명은 그들이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사막은 결코 녹록한 곳이 아니라는 것도.
 “이건 너무한걸!”
 그렇게 말해도 소용없는 일이다.
 운명의 끈은 주재자(主宰者)의 것이지, 꼭두각시처럼 살아가는 개개인에게는 그저 따라야 하는 숙명만이 있을 뿐이다.
 더구나 사막은 고사하고 인간이 사는 풍진(風塵)조차 경험하거나 깊숙하게 들어가 눈을 부릅뜨고 본 적조차 드문, 사람의 관계에 익숙하지 못한 안자명으로서는 사막이라는 낯선 땅이 더욱 황량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이건 지옥이야.”
 그는 쓰러질 것 같았다.
 사문(師門)밖에 모르는 사람.
 그 말은 나이를 먹도록 사문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말함인데······
 그야말로 두 팔과 두 다리가 달리고 외양이 사람이니 그저 사람이라 불러도 좋을 사람, 세상의 세파에 무지(無知)한 사람이 자신이 살던 곳을 나서서 눈에 익지도 않은 사막을 횡단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죽기 위해 길을 가는 것이나 다름없다.
 무지라고밖에는······
 안자명이 사막으로 들어온 것은, 그러니까 막연한 추측과 자신감만 가지고 사막을 헤엄치듯 뛰어든 것은 죽으려는 자의 모험과 같은 것이고 갓난아기가 두 발로 걷겠다고 울어제치는 것과 하등 다를 것이 없는 무모한 일이었다. 사문의 명이 지엄하다고는 해도.
 누군가 그랬다.
 사막에 대해 전혀 모르는 자나, 물길을 모르는 자나 마찬가지라고. 그러나 굳이 자위하여 말하자면 살 확률로 따져 사막이 그나마 높다고 할 수도 있다.
 준비만 든든하다면!
 보기에 그렇다고 하더라도,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키득거리며 말하기는 해도, 대개의 경우 준비를 한다지만 결국은 백골(白骨)만 남기는 경우가 수두룩한 법이다.
 준비! 사실 안자명의 준비는 매우 철저하다 할 수 있었다. 물론 그 철저한 준비가 오래가지 못했기에 문제가 되었지만.
 아무튼 안자명은 사막을 건너가기로 했다.
 사존(師尊)과 사부께서 며칠만 더 기다리면 속가제자들이 사문으로 들어올 것이니 그들을 따라 길을 나서라 했지만 어찌 그럴 수 있으랴.
 “아닙니다. 이제는 제자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저도 제 몫을 할 나이가 되었습니다. 안심하고 계십시오. 제자가 다녀오도록 하겠습니다.”
 안자명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호기(豪氣)라 해도 좋을 말이었다. 사존과 사부께서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안자명은 아주 태연한 척 행동했다.
 속가제자들의 신세는 지고 싶지 않았다.
 명색이 장문(掌門)의 대를 잇는 제자가 아니던가?
 무엇보다 지난해 춘절(春節)을 맞아 망아정(忘我亭)의 패검일잔(覇劍壹殘) 진(陳) 사숙(師叔)을 따라 소림(少林)에 다녀온 적이 있으므로 세상에 대한 약간의 이해가 있다고 생각했다. 사람 사는 세상은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 달리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안자명의 생각이었다. 무엇보다 언젠가는 사문의 대를 이을 사람으로서 스스로 생각하기에 무지한 제자들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것은 그다지 어울리는 일이 아니라 생각한 것이다.
 사문에서는 어린 제자를 홀로 내보내는 경우가 없다. 그러나 안자명은 혼자 떠나고 싶었다.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장령제자라는 멍에를 벗을 수는 없지 않은가.
 무엇보다 안자명은 사문의 어른들이 말하는 바와는 다르게 속박을 받지 않고 세상구경을 하고 싶었고, 그 또한 사존과 사부께서 원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속이야 들어가보지 않아 알 수 없지만 안자명이 느낀 것만으로 판단하자면, 그분들은 제자가 많은 것을 경험하길 원하고 있다.
 물론 그 경험이라는 것은 안자명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그가 살아가야 할 세월은 아직 많았고, 언젠가는 일문(一門)의 장문인이 될 사람으로서는 좋은 경험이 될 수 있었다.
 인간세상에서 확언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르지 않지만, 안자명은 사문에서 자신에게 많은 기회를 주었음을 알고 있었다.
 한 달이면 능히 다녀올 거리를 언제까지라도 좋다는, 일정한 기한을 정해 주지 않은 것을 보면 알 수 있었다.
 “경험은 산지식이야. 사람을 알지 못하면 무공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문파의 제자로서 무공 또한 중요하지만 어찌 사람으로서 사람에 대한 이해가 없을 수 있겠느냐?”
 사존의 말씀도 안자명을 감동시켰다. 그도 그럴 것이 안자명은 오래도록 산 속에 묻혀 무공수련으로 살아왔으니, 나이와 달리 그의 경험은 참새가 알에서 깨어난 것과 같을지니······ 그래도 어쩔 수 없이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너를 보내는 것이 어째 마음이 놓이지 않는구나.”
 사부는 그렇게 말했다.
 그럴 만도 할 것이다.
 안자명은 한 번도, 굳이 부연하자면 그가 사문에 든 이후 단 한 번도 혼자서 산문을 나서본 적이 없다. 나가볼 기회도 없었지만 그는 사문을 나서겠다는, 세상구경을 나가야 하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
 사문에 들었다는 말은 안자명에게도 의미가 있다.
 사실 안자명은 부모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얼굴을 본 적도 없다. 그가 기억하는 한, 안자명의 부모는 사부였다. 언젠가 오래 전 일이지만 누군가에게 듣기로 안자명은 네 살이 되기 전에 사존의 품에 안겨 사문에 들었다고 했으니,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그때의 일을 기억할수는 없을 것이다.
 아무려면 어떤가?
 안자명에게는 종남의 장문인이며 그를 손자처럼 사랑하는 사존이 계시고 부모처럼 잘 대해주시는, 언젠가는 장문인이 되실 사부가 있는데.
 언젠가 사존께서 말씀하셨다.
 “때로는 고난이 약이 될 때도 있느니라.”
 안자명에게 사존이 되는 종남파(終南派)의 장문인은 그에게 많은 기대를 걸고 있었다. 안자명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사실 사존인 종남휘검(終南輝劍)는 이미 연로하여 가까운 시일 내에 안자명의 사부, 종남수사(終南修士) 나일염(羅逸殮)에게 장문의 직위를 넘길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안자명은 비록 눈치가 빠르지는 못해도 그러한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는데, 그뿐 아니라 종남의 제자라면 누구나 인식하고 있는 일이었다.
 사존의 나이, 이미 구십이 넘었으니 내공이 화경(化境)에 이르렀다고는 하지만 세상사의 번잡한 일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이며, 늙은 몸으로 장문인으로서 반드시 겪어야 하는 대소사는 호수 같은 마음을 번잡스럽게 만드는 것이 분명했다.
 언제나 말씀하시기를······
 “이제는 물러날 때가 되었다. 장문인이 된 지 이미 삼십오 년이야. 너무 긴 세월이었지.”
 안자명이 생각하기에 사존께서는 돌아가시기 전, 단 일 년만이라도 마음 편히 지내고 싶으신지도 모를 일이다.
 안자명을 하산시킨 이유가 있을 것이다.
 서역에서도 아주 깊숙한 오지, 사막에 자리잡은 화염산(火焰山)의 친구에게 보낸 이유도 아마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사실 안자명은 거부할 수도 있었지만 기회가 자주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사존께서 넌지시 과거의 이야기를 하며 화염산 이야기를 했을 때 회가 동해 화염산으로 가보고 싶다고 강력하게 졸라 허락을 얻었던 것이다.
 안자명은 정말로 화염산에 가고 싶었다.
 언젠가 사부께서 해주신 말씀이 있었다.
 사존이시며 종남의 장문인이신 종남휘검께서는 천하에 적지 않은 친구를 두셨고 무림의 동도들에게 칭송을 받았지만 화염산의 친구에게 가장 인정받기를 원한다고.
 안자명은 그분이 누구인지 궁금했다.
 사존이나 사부께서 단 한 번도 그분이 누구인지 자세히 말해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일파의 장문으로 두려움이 없고 누구에게도 목을 숙이지 않는 사존께서 그 미지의 인물에게는 늘 존경과 저어할 수 없는 감탄을 보내는 것을 보면 무공도 그러하려니와 그 이면에 무엇인가가 있을 것 같았다.
 안자명은 그가 누구인지 몰랐다.
 그를 가리켜 사존과 사부께서 화염산의 은자(隱者)라 부르고 있다는 것만을 알고 있었다.
 언제나 이야기로만 들었던 화염산의 은자를 만나는 데 속가제자들을 대동하고 싶지는 않았다.
 안자명의 결정이 명예로운 일이라는 것은 아니다. 그저 마음이 그랬다.
 
 
 1장 초연(初緣)
 
 
 建寺祈長生 花林摘浮郞
 有情離合花 無風獨搖草
 喜去喜去覓草 色數莫令少
 
 절 짓고 장생 빌고, 꽃 속에서 임을 만났네.
 다정한 이합화에, 잔잔한 독요초.
 얼시구 절시구 풀을 잡게나, 갈래는 적지 말게나.
 
 
 第一連 사막(沙漠)의 바람
 
 
 역시······ 안자명은 길을 잃었다.
 
 ***
 
 어쩌면 그가 길을 잃었다는 것은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른다. 사막은 고사하고 혼자의 몸으로는 산문조차 나선 적이 없는 그였으니, 사막에서 제자리를 빙빙 돈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더구나 안자명으로서는 사막을 가로질러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으니······
 그가 선택한 길이다.
 천산북로(天山北路)를 택했다면 한 달이 지나지 않아 화염산에 다다를 것이 분명하지만, 안자명은 사문을 나섰으니 많은 것을 보고 배우고 싶었다.
 그것이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
 사막을 택했다.
 몽고에서 시작해 감숙(甘肅)에 이르는, 고비사막의 끝자락이라 할 수 있는 가욕관에서 사주(沙州:敦煌)에 이르는 사막을 건넌 뒤에는 자신감도 가질 수 있었다.
 과감한 결정.
 서역에서 가장 넓고 대상들조차 두려워한다는 탑리목분지(塔里木盆地)를 택했다. 그곳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모래바다, 타클라마칸 사막이 있었고 그곳에 가고 싶었다.
 사막을 지나가기 위해서는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우선은 낙타가 필요했다.
 낙타는 극한의 열기에서도 견디는 능력을 지니고 있을 뿐 아니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사막에서 물을 찾거나, 바람에 쓸려 희미해져 사람은 판별조차 할 수 없는 길을 찾는 능력도 지니고 있다. 안자명이 아는 많은 사람들은 동의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는 그렇게 믿는다.
 아무튼 그는 옥문관(玉門關)을 출발했다.
 
 ***
 
 안자명은 언젠가 상단을 운영하는 제자들이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사막이요? 아예 생각도 하지 말아요.”
 종남은 중원에서 내로라하는 문파들과는 다르게 도문(道門)이나 불문(佛門)이 아니다.
 흔히 무림이라 일컬어지는 강호를 손에 쥐고 흔드는 자들과 문파는 대부분 도가의 계보(系譜)를 지니고 있거나 불문의 제자이다. 또한 무림에서도 도가의 맥을 이었다거나 불문의 제자라는 말은 상대에게 위압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소림사(少林寺)가 그렇고 무당산(武當山)이 그랬다.
 한 지역을 차지하고 있는 화산파(華山派)나 청성파(靑城派), 공동파( 派)는 모두 도가를 표면으로 내세운 문파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중원에서는 제법 떨어져 있는 아미파(峨嵋派)나 곤륜파(崑崙派)의 경우도 결국은 불문과 도문이었다. 중원 곳곳에 흩어져 있는 개방( 幇)이 특별한 색채를 띠고 있지 않다고 할 수 있을까?
 종남은 다르다.
 속가일문(俗家一門).
 사람들, 강호인이라 지칭되는 사람들은 종남을 가리켜 그렇게 말한다.
 사실, 안자명이 생각하기에도 종남이라는 이름은 그다지 위대하지 않다.
 경험이 없고 강호에 나온 적이 없는 안자명이 귀동냥을 통해 들은 이야기를 토대로 생각해 보아도 강호에서 구파일방(九派一幇)이니, 혹은 오대가문(五大家門)이니 하는 문파나 무가(武家) 중에서도 종남은 말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무엇이 그런 서열을 정했는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그 서열이라는 것이 없어지든지 뒤바뀌어 종남이 앞에 설 날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그 서열을 바꿀 것이다.’
 안자명은 늘 그렇게 생각했다.
 아무튼 그가 생각하기에 종남이 구파일방이라는 지위에 속한 것은 속가(俗家)를 표방하는 무파에서 가장 강할 뿐, 뚜렷한 행적보다는 구색 맞추기가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혹시 모르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그의 사존, 종남휘검은 종남의 역대 장문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무공을 지니고 있으며, 당금 무림에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내공을 이루어 화경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안자명은 짧은 귀동냥으로 판단하기를, 사존이 있기 때문에 종남이 구파일방과 오대가문이라 지칭하는 무림 최고의 문파들 틈에서 그나마 말석이라도 차지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안자명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불현듯 고개를 젓고는 했는데, 그가 알기에 종남은 오래도록 무림에서 나름대로의 지위를 얻어왔던 것이다.
 그는 언제, 어느 때, 어느 시절에, 누구에 의해 무림이 만들어졌는지는 알지 못한다. 누구도 알지 못할 것이고 무림에서도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전설 같은 소문이야 구구하지만.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은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각 문파는 자신들의 문파를 위대하게 보이도록 만든다. 전설을 만들어내고, 있지도 않은 사실을 있었던 것처럼 만든다. 그래서 무수한 역사가 만들어지고 얼토당토않게 정파(正派)니, 혹은 사파(邪派)니 하는 말이 만들어져 무림을 양분했다. 그러나 무림인들 중에도 정사(正邪)의 구분을 정확하게 가르는 사람은 아직 없었다.
 아무튼 안자명이 아는 지식으로는 무림이 생성되고, 무인들이 있고 나서는 종남이 대문파의 지위에서 빠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것이 종남의 저력을 알려주는 것임을 알면서도 불현듯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이다.
 “언제나 고난은 있게 마련이다. 중원에 무림이 있는 한 종남은 영원히 망하지 않는다.”
 사존은 그렇게 말씀하셨다.
 그 말을 믿었다.
 안자명은 세상구경을 할 수 있는 기회가 풍부하지도 않았고, 세상과 인연을 끊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다지 알고 싶다는 욕망을 가지지 않았으므로 종남과 관련이 있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만난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귀는 열려 있었고 듣지 않으려 해도 장령제자라는 직위가 그를 가만두지 않아 어른들의 회의나 한담(閑談), 다례(茶禮)에 끌려다녔고, 무림에서 활동하고 있는 제자들의 예방을 받다 보면 그럭저럭 잡스러운 것을 포함해 사람이 살아가는 것에 대해 들어서 제법 많이 아는 편이었다.
 명색이 장문인이 될 사람의 제자이니 같은 또래의 제자들보다는 배분이 높고 문파 내부의 대소사에 대해서도 아는 것이 적지 않았다. 물론 안자명은 문파 내의 무서고(武書庫)나 장서고(藏書庫)를 비롯한 어느 전각이나 들어가고 나올 수 있었으며 원하는 것을 언제든지 볼 수 있고 익힐 수 있다.
 이는 장령제자가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다.
 사실 안자명의 호기심은 극한이었다.
 그 결과는 그에게 지식에 대한 열망을 주었고 결국 많은 서적을 읽게 했다.
 종남은 다른 문파와 비하면 제자의 수가 턱없이 적었다. 물론 제자의 수가 무공의 고하를 가리는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제자가 적다는 것은 그만큼 뛰어난 제자가 적을 수 있다는 것이고 규모에서 밀리는 것이다.
 그렇지만 안자명은 제자가 적다는 것으로 종남이 다른 문파에 비해 반드시 약하다고 믿지는 않았다. 종남의 뿌리는 이미 오래되어 속가제자들이 적지 않고, 반드시 제자라 하지 않아도 민간에 널리 퍼진 종남의 무공을 익히거나 그 기법을 전수받은 사람이 적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안자명은 생각했다.
 그가 장문인이 된다면 종남을 더욱 크게 키울 것이라고. 지금의 두 배 정도만 키운다면 소림에는 비견하지 못해도 부근의 공동파 정도는 쉽게 아우를 수 있다고 생각했다. 혹시 모르지만 같은 섬서(陝西)에 자리잡고 있는 화산을 발 아래 둘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그를 흥분시켰다.
 이번 출행이 더욱 그렇다.
 안자명이 찾아가는 사람, 그가 안자명에게 무엇을 줄지는 알 수 없지만 사존께서는 그에게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다면 천하에 두려울 것이 없다고 했다.
 화염산의 은자!
 종남산에서 모든 제자들에게 무공에 미쳤다는 소리를 듣는 안자명이 사부가 들려주었던 무공 이름을 잊어버린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언뜻 들은 적이 있는데 그 후로 사존과 사부께서는 늘 ‘그분’ 이라 불렀지, 이름을 부르거나 강호인들이 사용한다는 휘호(徽號), 혹은 외호(外號)를 부르지 않았다.
 아무튼 안자명은 서두르기로 했다.
 
 ***
 
 옥문관(玉門關)을 지나 하루가 지나기 전에 말은 지쳐 버렸다.
 사주지로(絲走之路)를 따라 국자처럼 길게 늘어진 감숙 땅을 거슬러 올라올 때는 그래도 편하다고 할 수 있었는데······
 감숙이 황량한 곳이라 말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는데, 그들의 말이 과장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물론 안자명에게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의 대부분은 종남파의 속가제자들이었다.
 중원에 사는 사람들의 허풍은 유난스러울 정도이고, 상단이나 표국( 局)을 이끄는 사람들의 말은 두 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안자명은 때때로 생각했다.
 “어쩐지······ 믿은 내가 병신이지!”
 안자명은 중얼거렸다.
 황량하고 모래먼지만 날린다는 소문과는 달리 사주지로 주변에는 물산(物産)이 풍부했다.
 “화······!”
 감탄이 나올 수밖에.
 곳곳에 객관(客官)이 서 있었고 그들의 환대는 놀랄 지경이었다. 늘 보았던 얼굴들만 있는 것이 아니고 놀랍게도 푸른 눈을 가진 이국적인 여인과 금빛이 나는 머리, 혹은 유난히 검은 얼굴을 지닌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다른 세상이다.’
 안자명은 그렇게 생각했다.
 모든 것이 새로웠다.
 추운 지방이라는 안자명의 생각과는 달리 철 이른 과일이며 카레즈(사막에서 모래 밑을 흐르는 물)의 달콤한 샘물, 이리저리 흐르는 강에서 잡은 잉어는 단 한시도 그로 하여 감숙이 황량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탄(坦)이 시작될 겁니다, 이미 고비탄은 지났으니.”
 앞서가던 상인이 말했다.
 옥문관에서부터 함께 길을 재촉했던 상인이었다. 사실 그들이 장사를 하러 서역으로 들어가는 뒤꽁무니를 따랐다는 말이 옳을 수도 있었다.
 아무리 낯선 사람도 지나면 친구가 될 수 있다.
 아무튼 안자명은 며칠이 지났을 때 상인들과 아주 친한 사이가 될 수 있었다.
 “탄이요?”
 “그렇소이다. 탄이오.”
 안자명은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의 이치를 모두는 모른다 하지만 지닌 바 학습능력이 있고 사문에서 수많은 책을 읽었으므로 상인들이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를 리 없었다.
 탄!
 사람들은 사막을 가리켜 그렇게 부른다.
 평평하다는 뜻이다. 이 말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지만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황량하다는 말이며, 끝이 보이지 않는 넓은 땅이라는 말이다.
 고비탄!
 이 말은 회족(回族)과 몽고족(蒙古族)이 부르는 말이다.
 중원인들은 감숙에서 몽고 방향으로 펼쳐진 사막을 하나의 이름으로 부른다. 그러나 몽고의 초원에 사는 사람들은 분리해 부르며, 위쪽에 자리잡은 사막을 가리켜 파단길림사막(巴丹吉林沙漠)이라 부른다. 안자명도 처음에는 이 고비탄이 등격리사막(騰格里沙漠)인 줄만 알았다. 물론 등격리사막은 그 아래쪽이며, 중원인들은 몽고 초원에 자리잡은 사막은 무조건 등격리사막이라 부르는 경향이 있다.
 무식의 소치다.
 등격리사막은 감숙의 옆구리 부분에 마주닿아 이어지는 곳으로, 몽골의 초원으로 펼쳐진 곳이기는 하나 감숙을 지키는 군사들에게는 주요거점 중 하나인 무위(武威)라는 곳의 아래쪽에 해당하는 곳이다.
 고비탄은 감숙 땅의 무위에서 시작해 가욕관(嘉 關)을 스치듯 지나 옥문관에 이르는 넓은 곳이고 몽골의 땅을 깊숙하게 잠식해 들어가 펼쳐진 곳이니 탄이라는 말로 부르는 것이 이해가 갔다.
 결국 감숙의 북부는 동북으로 등격리사막이 허리 부분을 침범하고, 허리 위로 북쪽으로는 고비탄이 밀려 들어온 셈이다. 그리고 서쪽으로는 기련산(祁連山)이 틀어막고 있으며, 그 산을 넘으면 청해 땅의 자달목분지(紫達木盆地)가 끝이 보이지 않는 평원을 이룬 곳인 셈이다.
 그러나 평원이라 해서 무조건 탄이라 부르지는 않는다. 그래서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니 탄이라는 말은 끝이 보이지 않는 사막에 어울리는 말인 것 같았다.
 고비탄을 지나니 그야말로 모래만이 보이는 사막이다. 그래서 그냥 탄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만 했을 것이다.
 아무튼 감숙의 사막은 그리 흉하다거나 황량하다는 생각을 버리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막상 사막에 들어섰으나 걱정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럭저럭 살 만한 곳이오.”
 상인들은 그렇게 말했다.
 안자명은 고개를 끄덕였다.
 감숙을 지날 때의 생각이 났던 것이다.
 감숙을 지날 때 두발채(頭髮菜)의 향기까지 그를 잡아묶는 바람에 감숙의 군사집결지이기도 하지만 요충지이며 상인들에게도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 사군(四郡)이라 불리는 장액(張掖)과 주천(酒泉) 등을 지나는 동안에도 안자명은 사막에 대한 걱정은 전혀 하지 않았었다.
 한사군(漢四郡) 이후 감숙으로 몰려와 정착한 눈이 파란 사람들과 머리카락이 노랗거나 은회색인 회회족들도 오고가는 사람들에게 마음 편하게 대해 주었다. 그들은 오래 전부터 하서회랑(河西回廊)을 타고 들어와 사주지로를 따라 서역으로 이동하는 여행자들을 보아왔고 그들이 뿌리는 황금의 맛을 보았기 때문인지 적의를 가지거나 해를 입히지 않았다.
 “사막이요? 말을 타고 갈 수는 없지요. 이곳에서 낙타를 구한 뒤 기다렸다 상단을 따라가시지요.”
 고비탄을 지나 옥문관 앞에서 양의 가죽으로 천막을 치고 장사를 하던 노인, 스스로를 장노(張老)라 불렀던 그 노인은 그리 말했지만 안자명은 믿지 않았다.
 그와 같이 여행하던 상인들도 말을 몰고 있었던 것이다. 대부분의 상단 사람들은 낙타를 가지고 있었지만 짐이 실린 마차를 끄는 것은 분명 말의 몫이었다.
 안자명은 자신을 믿었다.
 종남의 무공은 약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그는 장문의 맥을 잇는 장령제자로서 누구보다 수련을 게을리 하지 않았고 사부님의 말씀대로 굴하지 않는 정신력을 지니고 있다 믿었다.
 글쎄, 자연의 조화를 무공이나 그가 지닌 정신력으로 이길 수 있다 생각한 것이 문제였다.
 아무튼 그는 장노의 말을 무시했다.
 
 ***
 
 옥문관을 벗어난 것은 이른 새벽이었다.
 동쪽에 떠 있는 신성(新星:金星)을 보았으니 해가 뜨기에도 이른 새벽이었다.
 상인들이 출발했으므로 어쩔 수 없이 따라나선 길이었다.
 안자명은 자신이 타고 있는 말을 믿었다. 그렇지만 모든 것이 그의 예측을 빗나가 버렸는데······
 그가 탄 말은 종남의 제자들이 정성을 다해 기르는 우마청(牛馬廳) 중에서도 제법 갈기가 곱고 힘이 넘친다는 말이었지만, 하루가 지나기 전에 이미 축 늘어진 파김치가 되어버렸고 그는 무척이나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최악의 상황이었다.
 
 ***
 
 늦은 저녁이었다.
 그는 지친 말을 몰아 이리저리 헤매었다. 그것은 몸을 누이고 쉴 수 있는 곳을 찾기 위해서였다.
 “어디서 쉬어가야 할 텐데······”
 그랬다.
 안자명은 쉴 곳을 찾고 있었다.
 머리 위에 있던 해는 멀리 사선으로 기울어가고 땅과 하늘이 모두 붉게 물든 시간이었다.
 아무리 주위를 둘러보아도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바람이 문제였다.
 상단을 따라 사막 한가운데로 들어섰을 때 거친 바람이 불어왔고 몸이 허공으로 떠오르는 것 같았다. 그 후 눈을 뜨고 바라보니 사막에는 오로지 혼자였다. 그 많던 사람들과 낙타, 말과 다른 물건들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수가 없었다. 참으로 기이한 일이었지만 무어라고 설명할 수도 없었고, 어찌 된 일인지 짐작조차도 할 수 없었다.
 말고삐를 놓치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라 할 수밖에.
 제법 오랜 시간 동안 모래언덕을 넘으며 동행하던 상인들을 찾았다. 그러나 그들이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는 않았다.
 ‘살아야 해.’
 안자명은 자신에게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생각했다. 바람은 사람들뿐 아니라 그가 말 등에 실어놓았던 모든 것을 날려버린 것이다. 물이 담겨 있던 가죽부대와 건량(乾糧), 그리고 말이 먹어야 할 건초(乾草)도 없어졌다. 건초는 옥문관에서 제법 많은 돈을 주고 사서 상인들의 마차에 싫었던 것인데 이제는 그 흔적조차 없어지고 말았다. 그나마 만약을 위해 따로 만들어 안장 밑에 아주 튼튼히 묶어놓았던 혁낭(革囊)이 남아 있다는 것은 삶의 희망을 가지게 했다. 은자가 담긴 것이므로.
 주위를 둘러보니 날이 저물고 있었다. 그림자는 길게 늘어지고 반짝거리던 지표면에서는 음습하게 가라앉은 모래언덕 사이의 어둠이 찾아들었다.
 “녹주(綠州:오아시스)!”
 안자명은 들은 적이 있었다.
 사막이라고 반드시 모래만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자잘한 풀이 자라기도 하고, 흙 속에서 튀어나온 대지의 뼈처럼 드러난 바위도 있다. 어딘가는 물이 나고 나무가 있으며, 간혹 풀도 자라는 곳이 있는데 상인들은 녹주라 부른다 했다. 상인들과 헤어지지 않았다면 녹주를 찾느라 고생할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그들은 녹주에 대해 훤히 알고 있으며 그들이 가는 길을 따라가면 그만이었을 테니.
 상단을 만나면 희망은 있다.
 “제발!”
 입술이 타는 것 같았다.
 종남의 제자들은 대부분 상단의 주인일 가능성이 크다. 그것은 종남산이 사주지로의 연변에 위치한 탓도 있지만, 속문(俗門)의 제자로 할 수 있는 일이 군문(軍門)에 들어 장수가 되거나 표국( 局)의 표사( 士), 혹은 상단에 몸을 맡기는 것이 가장 쉽기 때문이다.
 소문에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사주지로를 오가는 상단의 주인들을 찾아 물으면 열 명 중 다섯 명은 종남의 제자라는 말이 있었다. 비록 종남의 제자들이 자랑삼아 부풀려 한 이야기일지라도 어느 정도는 가능성이 있는 말이었다.
 그들은 간혹 산문으로 들어오기도 했는데 사주지로를 달리고 때로는 토비(土匪)를 만나 싸워 몇 명을 죽였다는 등, 전공담을 자랑삼아 이야기를 했으므로 안자명의 머릿속에도 적지 않은 지식들이 들어 있었다.
 ‘그 말을 믿은 내가 잘못이지.’
 안자명은 씁쓰름한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전연 달랐다.
 사막은 상상을 불허하는 곳이다.
 안자명은 그들의 이야기 중에 겉만 보았지 이면(裏面)은 보지 못한 것이다. 어디에도 상단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안자명은 어쩔 수 없다는 생각으로 무작정 헤매기 시작했다.
 
 ***
 
 날은 이미 저물고 어둠은 도둑의 은밀한 손길처럼 지척에 다가와 있었다.
 “응?”
 바삐 말을 몰던 안자명은 말고삐를 당기고 멈추어섰다.
 갑자기 귀를 파고드는 소리.
 바람 소리였다.
 물론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소리였는데, 그가 달리 들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주 색다른 환경에 미처 적응하지 못한 탓이었을 것이다.
 지친 말을 달래며 모래언덕을 넘어갈 때 갑자기 돌풍이 몰려왔다. 모래가 섞인 바람이었다.
 정면으로 볼 수 없는 것이 차라리 다행스럽다 생각할 지경인 것이, 옷 밖으로 드러난 피부에 날려와 부딪친 모래는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어도 살을 에이는 것 같고 강한 검기에 마구 쓸려 살갗에 상흔이 남는 것 같았다.
 바람의 중심이 어디인지, 언제 사라져 버릴 바람인지도 알 수 없었다.
 ‘더욱 거센 바람이야. 죽을지도 몰라.’
 그랬다.
 조금 전 상인들과 헤어지고 모든 것을 잊어버리게 만든 바람과는 그 느낌이 달랐다.
 안자명은 말을 재촉했다.
 “너도 죽기는 싫겠지. 나도 그래. 어서 이곳을 벗어나야 해.”
 애원도 해보고 등허리도 때려보았지만 지친 말은 속수무책(束手無策)이었다. 아무리 재촉해도 푹푹 빠지는 모래밭을 헤어나지 못했다. 그사이에 바람은 아주 가까운 곳에 다가왔다.
 끝이 보이지 않았다.
 하늘은 어두워졌고 보이는 것이라고는 오로지 바람에 말려 올라간 모래뿐이었다.
 쉬이이익!
 귓가로 스며드는 바람 소리는 아예 칼바람이었다. 귓바퀴가 떨어져 나가는 것 같고 귓속에서는 공명(空冥)이 생겨 웅웅거리는 소리가 파고들어 머릿속이 텅 비어버리는 것 같았다.
 “잘못하면 죽겠는걸.”
 일찍이 사막의 모래바람이 얼마나 무서운지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들은 적이 있기는 했다.
 그렇지만 들어서 알고 있는 것과 몸으로 부딪치는 것은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누가 만든 말인지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는 말이 실감났다.
 모래가 눈으로 들어갔다.
 ‘이건 뭔가 잘못되었다.’
 그는 매우 당황했다.
 말은 지쳐 발조차 움직이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빙빙 돌았으며, 그는 눈을 뜰 수조차 없었다. 그야말로 눈이 있으되 소경이었고, 발이 있으되 걷지 못하는 앉은뱅이 신세였다.
 갑자기 눈 앞으로 몰려오는 먹구름이란!
 그것이 모래바람이라는 것을 느낀 것은 피부를 따갑게 만드는 바람이 몸을 감았을 때의 일이다.
 ‘죽는 일만 남았다.’
 그랬다.
 달리 방법을 생각할 수 없었다. 그저 바람을 피해 몸을 돌리고 땅에 머리를 처박고 바람이 지나가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나마 죽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우선은 몸을 피하고 볼 일이다.”
 안자명은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보이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제야 그는 사막의 거친 바람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주위를 감싸며 몰아치고 있는 바람의 실체가 얼마나 두려운 것인지 가슴 서늘하게 인식할 수 있었다.
 용권풍(龍卷風)이라 했던가?
 안자명은 문득 두려워졌다.
 말하기 좋아하는 사문의 제자들의 이야기를 완전히 믿는 것은 아니지만 막상 바람을 맞고 보니 어쩌면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죽을 수 없어!”
 안자명은 소리를 질렀다.
 용권풍은 사막에서 양쪽으로 불어오던 바람이 한 곳에서 맞부딪쳐 일어나는 것으로 회오리처럼 말리며, 그 힘이 놀라워 낙타 정도는 오십 리 정도까지 날려버린다고 했다.
 사람이 어느 정도 날려갈 것인지, 날려간 사람이 살 수 있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피해야 해.’
 그렇게 생각했지만 방법은 없었다.
 안자명은 달리 생각하기로 했다.
 어차피 피할 수 없다면 최선의 방법을 찾아야 했다. 아니, 피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었지만 피하지 못했으니 이제 차선책(次善策)만이 남았을 뿐이다.
 안자명은 말에서 내려 고삐를 당기며 이리저리 배회했다.
 턱!
 눈 앞을 막아서는 무엇이 있었다.
 손을 뻗었다.
 손에 잡히는 것은 면이 매끄러웠는데 그것이 바위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살았다!”
 그는 소리를 질렀다.
 목소리는 울리지 않았다. 바람 소리가 모든 것을 삼켜버린 후였기 때문이다. 온 세상에 오로지 바람 소리만이 존재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바위, 그가 찾던 것이다.
 그는 서둘러 고삐를 바위에 감고 몸도 묶었다. 그러지 않는다면 말은 고사하고 스스로의 생명도 구하지 못할 것이다. 말고삐를 이용해 자신의 몸을 묶자 그나마 안심이 되었다.
 그는 품 속에서 작은 사건을 꺼내 얼굴을 가렸다. 사매가 준 손수건이었는데, 문득 그녀의 머리에서 맡았던 향긋한 냄새가 난다는 생각을 했다.
 ‘사매와 함께 오지 않은 게 정말 다행인걸.’
 그건 그랬다.
 만약 사매와 같이 행동했다면 그는 무척이나 후회했을 것이다. 그녀가 따라온다는 것을 말리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부의 호령이 없었다면 그녀는 죽자 살자 울부짖으며 안자명을 따라왔을 것이다.
 휘리리리!
 바람은 거칠었다.
 몸을 날릴 것 같았고 한 순간에 정신을 잃어버릴까 아뜩해지는 기분을 맛보아야 했다.
 다다다다!
 콩을 볶는 듯한 소리가 들렸을 때는 정말로 정신이 아뜩해져 몇 번인가 침을 삼켜야 했다.
 바람이 몰리고 허공에서 빙빙 돌며 몸 속의 모든 피가 빨려나가는 것 같은 기이한 압력을 느꼈다. 안자명은 미친 듯 말고삐를 움켜잡았다. 날려가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리고 서서히 정신을 잃어갔다.
 
 ***
 
 바람이 지나간 뒤 안자명은 몸이 모래 속에 반이나 묻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제길!”
 모래바람에서는 내공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바람이 불어왔을 때 그는 무의식적으로 내공을 불러일으켜 모래를 날려보내려 했지만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나마 머리까지 모래가 쌓이지 않았다는 사실이 다행스러웠다.
 “어디로 가지······”
 허탈해졌다.
 이제는 모래바람에 방향마저 잊어버렸으니 난감할 뿐이었다.
 죽음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래에 묻힌 몸을 뽑아낸 후에는 아예 기진맥진(氣盡脈盡)이었다. 자리에 주저앉아 운기조식을 한 후에야 겨우 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었는데, 영 마음이 개운하지 않았다.
 ‘내가 겨우 이 정도였던가?’
 한탄이 흘렀다.
 안자명은 주저앉고 싶었지만 언젠가 들었던 사막의 지배자, 혈랑(血狼)을 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앞뒤 가리지 않고 하염없이 걸어가기 시작했다.
 
 ***
 
 안자명이 그들을 만난 것은 서역이라 일컬어지는 땅에서 옥문관을 지나온 후 사막으로 들어선 지 사흘이 지나고 새로운 날이 밝아지느라 밤하늘에 찬연한 별무리가 지고 있을 때였다.
 눈 깜짝할 사이에 흘러간 사흘.
 그사이에도 안자명은 미친 듯 이리저리 움직이며 길을 찾아헤맸지만 사람의 그림자는 고사하고 길이라 여겨지는 흔적조차 발견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문득, 환영을 보았다고 생각했었다. 그는 신기루(蜃氣樓)처럼 다가온 불을 향해 달려갔다.
 있었다.
 불과 열 평이 되지 않을 것 같은 작은 공터.
 그곳에는 커다란 바위가 두 개나 있고 나무도 서 있었다. 바닥에는 파릇한 이끼 같은 풀이 자라고 있었는데, 다섯 명의 장사치가 모닥불을 피우고 앉아 있었다.
 그들은 안자명이 나타나자 눈에 적의를 드러냈다. 그러나 안자명으로서는 물러날 수 없었다.
 사흘 만에 찾은 녹지. 이곳을 버리고 떠난다면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자명은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러던 중 누군가 안자명에게 말을 걸었다.
 “어디로 가는 거요?”
 안자명은 대답했다.
 “화염산으로 가려 하오.”
 그가 웃었다.
 “애초에 길을 잘못 들었소.
 그는 맥이 풀리는 것 같았다.
 
 
 第二連 대상(隊商)의 주인
 
 
 그러니까······
 장번후(張飜厚)가 그 기이한 사내를 만난 것은, 어이없는 일이지만 하룻밤을 지샌 좁은 녹주에서 행장을 꾸리고 막 길을 떠나려던 참이었다.
 일행은 먼지를 털고 앞으로 가야 할 길을 생각하고 있었다.
 이른 아침을 먹은 것도 그 때문.
 지난밤에도 언제나 그랬듯 거친 모래바람이 불었지만 장번후가 이끄는 상단에 피해를 입히지는 못했다. 언제나 준비가 철저했고, 오래도록 사막을 지나다닌 사람들은 본능과 경험으로 바람을 피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장번후의 경우도 다르지 않아 지난밤에 불어온 바람이 몇 년 동안의 경험으로 처음 보는 거친 것이었지만 피해를 볼 정도는 아니었다.
 새벽이었다.
 이십 년 동안 대상(隊商)을 따라다녔다.
 무수한 경험이 오늘의 장번후를 만들어내었다. 사막을 왕래하는 상인들은 적지 않지만, 이제 장번후의 경험을 앞지를 사람은 그다지 많다고 할 수 없었다. 이제는 세월이 흘러 상단의 주인이 되었고 배운 것이 도둑질이라는 말이 있듯 지난날과 변함없이 서역과 중원을 오가는 장번후였지만 지금과 같은 경우는 처음이었다.
 “누군가 온다.”
 상단의 식솔 중 번초(番哨)를 서던 장칠(張七)이 소리를 질렀을 때 장번후는 머리카락이 하늘로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새벽이다.
 이 시간에 다가올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장번후는 그다지 드러나지 않게 허리에 걸려 있던 한 자루의 곡도(曲刀)를 가슴으로 끌어당기며 낮은 목소리로 소리를 질러 경각을 주었다.
 “장칠, 서두르지 마라! 모두 준비해라.”
 그것은 기우(杞憂)였다.
 사내는 자신을 주시하고 있는 눈을 무시하듯 다가왔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어쩐지······”
 장번후는 말 끝을 흐렸다.
 사막을 횡단하는 사내, 물론 그가 누구인지 몰랐다. 알 필요도 없었고 그다지 관심도 없었다. 애초에 신경을 쓰지 않으려 했지만 자꾸만 눈이 돌아갔다. 그의 의지는 아니었다. 신경을 쓰지 않으려 했지만 그가 보여준 행색이 자꾸만 관심을 끌었다.
 ‘나하고는 관계없는 일이다.’
 장번후는 무시하려고 했다. 언제나 그렇지만 사막이라고 다른 것은 없다.
 사람이 사는 곳은 어디나 같다.
 어쩔 수 없이 주어진, 눈 앞으로 다가오는 환경이나 처해진 상황에 따라 각기 다른 모습을 보이기는 하지만 살아간다는 점에서, 사람이 보여줄 수 있는 행동에서 그리 차이가 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그 사내가 장번후가 이끄는 대상이 밤을 지샌 곳으로 다가오면서부터 일은 엉뚱한 곳으로 꼬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의심이 들었다.
 “혈랑대(血狼隊)가 아닐까?”
 정말 그렇다면······ 개 같은 경우라 할까?
 아무튼 그랬다.
 사막을 휩쓸고 돌아다니는 혈랑대에 대해 모르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사막의 무법자!
 그들은 통상적이고 일상적인 사람들에게 버림받은 자들이며, 사람을 죽이고 재물을 빼앗으며 존재의 이유를 찾는 자들이다. 그들은 사람을 죽이는 것으로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하듯 행동한다.
 아무튼 장번후는 백 년 이상의 전통을 지닌 혈랑대를 피해 이십 년 동안 사막을 안방처럼 드나들었다.
 이제는 자신도 붙었다.
 혈랑대가 나타난다고 해도 두려울 것이 없다고 생각한 것이 아니라 그들을 마주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만에 하나 갑자기 나타난 그가 혈랑대의 일원이고, 장번후가 이끄는 상단의 정탐을 위해 다가왔다면 그야말로 뒷걸음질치다 똥 밟은 격이다. 모든 것이 걱정한 대로 흘러간다면 범의 아가리에 머리를 들이민 것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말이다.
 아주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두려움이 있었지만 그가 혈랑대의 일원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보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의심은 가시지 않았다.
 황량하기만 한 사막에서 느닷없이 다가온 사내, 그가 의심스러운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것도 날이 새기 전, 꼭두새벽에 다가왔으니 의심의 눈초리를 던질 수밖에.
 더구나 기이한 사내, 기이할 것도 없지만 장번후는 그렇게 생각했다.
 
 ***
 
 일이 꼬였다 할 수도 없다.
 그는 그저 왔고 장번후는 그곳에 있었을 뿐이다.
 공교로운 일도 아니다.
 아무튼 사막이라는 것은 예측을 불허하게 만드는데, 그 사내를 만난 것도 그랬다.
 마치 지나가는 사람처럼.
 사내는 녹주 주변으로 앉아 있거나 출행준비를 서두르는 사람들이 안중에도 없다는 듯 다가들었다. 그 모습이 장번후와 일행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사막은 복사열(輻射熱)이 심해 아지랑이처럼 하늘로 올라가는 열기정도는 쉽게 볼 수 있다.
 또한 바람이 불어와 운무의 벽처럼 보이는 어두운 세상을 만들기도 한다. 그 사내와의 만남은 사막이 만들어내는 온갖 조화 속에서 우연히 내리쬐어진 빛과도 같았다.
 물론 처음에는 반대로 생각했다.
 ‘우라질, 똥 밟았다.’
 그게 속마음이었다.
 사막을 모르는 자들이 사막을 횡단하겠다고 하면 도시락을 싸가지고 가 말릴 장번후다. 자신이 다년간 사막을 출입하며 얻은 결론으로 치자면, 사막은 사람을 반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무튼 어리석은 사내였다.
 장번후가 보기에 그 사내는 사막을 모른다는 경지를 넘어 아예 자살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덤비는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을 바라보는 장번후를 바라보며 흰 이를 드러내었다. 그의 입에서 쏟아져 나온 말은,
 “문제 있소?”
 어이가 없었다.
 문제가 있느냐고?
 너무 많았다.
 사내는 자신이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다는 표정이었다. 물론 사내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 그러나 타인에 대한 잘못을 살폈을 때의 일이지, 자기 자신에 대한 판단은 다르다.
 그는 자기 자신에게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장담하건대 그 사내가 만약 장번후를 만나지 못했다면 한낮이 되기 전에 말라 비틀어진 야채 쪼가리처럼 변했거나 사막을 어슬렁거리는 혈랑에게 뜯겨 뼈밖에 남은 것이 없는 시체로 변했을 것이다.
 단, 그가 혈랑대의 일원이 아닐 때의 경우다.
 사막을 휩쓰는 비적(匪賊)의 무리, 혈랑대의 일원이라면 그가 어디에 있든지 상관할 바는 아니다. 오히려 그를 피하거나 주살해야 할 일이지만 그가 혈랑대의 일원이거나 염탐을 하러 온 자는 아닌 것 같았다.
 그것은 느낌이기도 했지만, 어쩐지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확증과도 같은 것이었다.
 “죽이세요······ 혈랑대가 분명합니다.”
 식솔 중 누군가 두려움에 젖은 목소리로 아주 은근하게, 그리고 속삭이듯 그렇게 말했을 때 장번후는 잠시 마음이 흔들린 것도 사실이었다. 손에 힘이 들어가 하마터면 허리의 병기를 뽑아들 뻔한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차분해지려고 노력을 했고, 곧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아니, 혈랑대가 아닐지도 몰라.”
 장번후는 그렇게 말했다.
 사람에게는 감각적으로 느낌을 판단하는 능력이 있다.
 장번후가 그랬다. 그가 느끼기에 사내의 모습은 그가 아는 혈랑대의 무리와는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그것은 그의 행색에서 표시가 났다.
 사막을 가기 위해서는 아주 긴한 준비가 필요하다.
 일일이 열거하기는 어렵지만 몇 가지만 예를 들면, 우선 낙타가 필요하다. 낙타는 등에 난 혹에 지방(脂肪)을 축척하고 있는데, 이것으로 어떤 더위도 이겨내며 모래 밑을 흘러가는 물을 찾아내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어떤 사람은 그 혹에 물이 고여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극한 지경에 이르게 되면 낙타를 죽이고 혹을 베어 물을 마시면 살 수 있다고 떠벌리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혹에 물이 축적되어 있다는 말은 상상일 뿐이며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농담이다. 또한 사막과 낙타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들의 이야기일 뿐이다.
 그 말을 믿는 사람도 있기는 하다.
 그 어쭙잖은 말을 믿고 낙타를 죽이고 혹을 자르는 사람이 있다면 사막에서 탈진해 죽어도 싸다. 아무튼 그러한 어이없는 소문이 나올 정도로 낙타는 웬만해서는 지치지 않는 지구력을 지니고 있는데 이는 주인이 지쳐도 일정한 거리, 혹은 목적지를 찾아간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사막을 횡단하는 사람은 말보다 느린 낙타를 이용하는 것이다.
 또 물도 준비해야 한다.
 물주머니는 초원에 사는 몽고인들에게 구해야 한다. 무거운 사기 그릇이나 옹기(甕器) 단지에 물을 담아 낙타의 등에 싣고 갈 수는 없는 일이다.
 초원에 사는 몽골인들, 그렇게 표현하지만 이 말엔 어폐가 있는데 사실은 유목민(遊牧民)들이라 부르는 것이 옳다. 아무튼 사람들이 몽골인이라 부르는 사람들은 초원뿐 아니라 사막에서도 가장 슬기롭게 살아가며 혹한(酷寒)과 혹서(酷暑), 그리고 인간이 견디기 어려운 극한 상황을 잘 이겨내는 민족이다. 아무튼 그들이 만든 물주머니가 가장 좋다.
 그들은 양이나 가축을 잡아 목을 베어내고 가죽에 칼질을 하지 않고 뒤집어 벗겨낸 후에, 그 가죽으로 물을 넣는 가죽부대를 만든다. 짐승의 가죽이기 때문에 물이 새지 않을 뿐 아니라 원하는 모양으로 굴곡을 일으켜 몸에 두르고 다니기에 아주 좋다. 상단은 그러한 물 가죽부대를 소지한다.
 나타난 사내에게는 물 가죽부대도 없었다. 그 밖에도 사막을 지나가기 위한 아주 기초적인 물건조차 없었다. 더구나 그에게서는 사막이 초행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었다.
 “물을 넣은 가죽부대는 어디 있소?”
 녹주는 물이 샘솟는 곳이다. 장번후가 그렇게 물은 것은 녹주의 샘에서 물을 채워주기 위한 것이었다.
 사막을 횡단하는 사람에게 물은 주인이 없다.
 물론 녹주에 한정되는 이야기라 할 수 있지만, 물에는 주인이 없으니 장번후가 그의 물 가죽부대에 물을 채워준다 해도 나쁠 것은 없다.
 “그런 건 없소.”
 사내는 짧게 대답했다.
 기가 찰 노릇이지만, 사내의 말을 들으니 무지(無知)가 사람을 얼마나 편안하게 만드는지 알 것 같았다.
 떳떳한 모습.
 그는 잘못없다는 듯 말했다.
 물론 잘못은 없다.
 사실 사내의 행색과 몰골, 행동으로 보아서는 무지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가 사막에 들어온 모습이나 다름없었다.
 다른 것은 보나마나 뻔한 일이었다.
 “다른 것도 없겠지?”
 장번후의 말에 사내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물 다음에는 건량이나 건포(乾脯) 따위의 식량이 있어야 한다. 사막을 가로지르며 밥을 해 먹을 수는 없는 일이니 건량이나 건포를 사용하는 것이다.
 유목민이나 사막에 사는 회회족(回回族)은 말똥을 주워 물을 끓이고 마른나무로 불을 땐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중원인들에게 그리 능숙한 일이 아니다. 어디에서 말똥을 줍는단 말인가. 그다지 마음에 와닿는 말이 아니다. 차라리 건량이나 건포를 준비하는 것이 중원인들의 습성과도 같은 준비였다.
 건량은 쌀을 찌고 말려 만든 것으로, 물을 붓고 기다리면 물에 불어 밥이 되는 것이다. 물론 필요시에는 마른 상태로 씹어먹을 수도 있는데, 이는 사막을 건너가는 사람에게 아주 중요한 먹거리다. 그러나 아무리 보아도 사내는 건량을 준비하지 않았다.
 ‘차라리 자살을 하고 말지.’
 장번후는 그렇게 생각했다.
 건포는 흔히 육포(肉脯)라고 불리기도 하는 것으로, 돼지나 소를 잡아 일정한 두께로 각을 떠 온갖 양념을 한 후 찌고 말려 만든 것으로 체력을 보충해 주기에는 그만이다. 무엇보다 가볍고 적은 양으로도 몸을 지탱할 수 있다.
 사내는 이 두 가지 모두 없었다.
 그는 마치 가까운 곳에 유람을 나온 것 같은 표정이었다. 갈기가 고운 적색의 말을 타고 있었기에 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그러나 말은 이미 지친 상태였다.
 비록 사막에 적응을 하지 못해 지친 것 같기는 했지만 한눈에 보아도 그 말이 명마(名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붉은 갈기에 발목이 가늘다는 것은, 그리고 눈이 가늘고 눈썹이 길다는 것은 몽골인들이 기르는 초원마(草原馬)라는 것을 알려준다.
 초원마의 지구력은 이미 소문이 나 있었다.
 더불어 키가 크고 꼬리에 힘이 실렸다는 것은 서역마(西域馬)의 특징이다. 결국 그가 탄 말은 초원마와 서역마를 교배시켜 얻어낸 말로, 혈통을 떠나 빠르고 지구력이 있으며 어디에서나 적응을 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한혈보마(汗血寶馬)나 백설총(白雪總), 혹은 흑려구(黑驢驅)처럼 명마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느 말이 유용할지 모르니, 이 교배를 시켜 얻어낸 말이 명마가 아니라는 말은 절대로 아니다.
 “어디로 가오?”
 “화염산이오.”
 맙소사!
 장번후는 숨을 불어냈다.
 아무리 생각해도 한참 잘못 왔다.
 그가 아는 한 화염산은 서역에서 한 곳밖에 없다. 이글거리는 불덩어리처럼 붉다고 해서 화염산이라 부르지만 본시 이름은 홍산(紅山)이었다. 화염산이나 홍산이나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으니 받아들이기에 느낌은 그다지 다르지 않다.
 아무튼 화염산은 옥문관 방향이 아니고 우루무치 방향에 있다. 그리고 토노번과도 가깝다.
 화염산으로 가기 위해서는 옥문관을 통과 해 사막으로 들어설 것이 아니고 마종산(馬 山) 기슭을 타고 성성협(星星峽)을 건너는 것이 빠르다.
 옥문관 방향에서 화염산으로 가기 위해서는 북쪽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데, 끝이 보이지 않는 사막이 펼쳐져 있을 뿐이다. 거리도 만만치 않았다.
 “쯧쯧!”
 장번후는 혀를 찼다.
 사내는 사막이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 모르는 것이 분명했다. 아무리 초행이라 하지만 기가 차는 일이었다.
 세상에 그런 멍청한 짓이 어디에 또 있단 말인가?
 아무리 무지한 사람이라 해도, 지리는 고사하고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해도 자신이 가야 할 방향도 모르고 길을 나서는 사람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더구나 사막이 아닌가?
 생각할수록 어이없는 일이고 이해가 되지 않아 장번후는 의심이 드는 것을 억제할 수 없었다.
 “이곳은 화염산과는 반대요.”
 “알고 있소. 나는 사막을 구경한 후에 화염산으로 가기 위해 일부러 탑리목의 타클라마칸으로 왔소.”
 맙소사!
 장번후는 욕을 해주고 싶었다.
 유람(遊覽)이라······
 사막이 유람을 하기에 적당한 곳이라 생각하는 이 사내는 무언가에 홀린 것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심도 생겼다.
 “혹시 혈랑대를 만난 건 아니오?”
 장번후는 그렇게 물었다.
 그가 아무것도 없이, 형편없는 몰골로 나타난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혈랑대에 쫓겼거나 그들의 습격을 받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던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어찌 저런 몰골로 거친 사막을 헤매고 있단 말인가?
 아무리 보아도 그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마치 유람을 하듯 마음이 편해 보였는데 그다지 지쳐 보이지도 않았다. 그 모습이 마치 우연히 만난 지난날의 친구를 생각나게 만들었는데, 사내는 그 정도로 여유가 있었고 편안한 얼굴을 보여주었다.
 유난히 반짝이는 눈에는 사심이 없었고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서도 그다지 걱정하는 것 같지 않았다.
 ‘기이한 일이다.’
 장번후는 그렇게 생각했다.
 나이 사십이 넘도록 사막을 헤맸다.
 이십 년이 넘는 세월이었다. 그 세월 동안 사막에서 죽은 자의 뼈를 본 적도 있었고 친구의 죽음도 보았다. 이제는 세월이 흘러 그다지 이름없는 상단의 주인이 되었지만, 아직도 사막은 두려움의 대상이고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죽음에 대한 준비를 하게 만드는 곳이다. 그럼에도 직접 상단을 이끌고 사막을 횡단하는 것은 사막이 마음을 부르는 곳이기 때문이다.
 “만나기는 했지요.”
 “만났다고요?”
 “물론이지요.”
 장번후는 말을 하면서도 사내의 대답을 믿을 수 없었다. 명색이 칼 깨나 휘두른다는 자신도 혈랑대에게는 꼼짝할 수 없다. 그런데 그들을 만났다고?
 사내는 빙그레 웃었다.
 “그런데 어떻게······”
 살아나올 수 있었소, 하고 물음을 던지려 했지만 그보다는 사내의 입술이 먼저 열렸다.
 “그들이 그냥 보내주던데요.”
 믿을 수 없다.
 그렇지만 그가 그리 말하는데 어찌 믿지 않을 수 있겠는가. 믿지 못한다 해도 반박은 할 수 없다. 물어보고 싶었지만 물어볼 수 없었다. 그것은 사내의 모습에서 거짓이 아니라는 강한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알 수 없는 지각(知覺)이었다. 그제야 사내의 허리에 한 자루의 검이 매달려 대롱거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을 죽이기라도 했단 말인가?’
 고개를 저었다.
 길게 이야기해도 그에게서 얻을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아는 이상 꼬치꼬치 캐묻는 것이 사막의 예법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가 중원인이라는 생각에 동질의식(同質意識)도 한몫을 했다.
 장번후는 물이 들어 있는 가죽부대를 내밀었다.
 “드시구려.”
 사내는 가타부타 말없이 가죽부대를 받아 거친 동작으로 마셨다. 제법 많은 양의 물을 마신 후에야 품에서 작은 사건(絲巾)을 꺼내들었다. 그것은 백색의 천에 목단(牧丹)이 수놓아진 것인데, 여인의 정성이 올올이 녹아 있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아름다운 사연이 있는 친구로군.’
 장번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언뜻 보아도 이십을 겨우 넘었을 것 같은 나이. 모래바람에 머리카락이 엉클어지고 얼굴에 땀이 범벅되어 자세히 볼 수 없지만, 그가 비범하지는 않아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그런 사람이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반짝이는 눈이 그랬다.
 누구나 그렇지만 지친 모습으로 본다면 기진맥진, 눈빛이 흐려져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내의 눈동자는 지나치도록 맑았고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그런 아름다운 수가 놓아진 깨끗하고 값진 사건을 가진 사내라면 사연이 없을 수 없다. 여인의 정성은 어디서나 표시가 나게 마련이니.
 묻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갈라진 입술에 혀를 비비던 사내는 장번후의 눈을 마주보았다. 검은 눈동자가 깊게 느껴졌다.
 장번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사이 사내는 물이 담긴 가죽부대를 기울여 사건에 물을 적셔 얼굴을 닦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얼굴이 서서히 드러났는데 그 후에야 사내의 이목구비(耳目口鼻)가 확연하게 드러났다.
 말짱하게 생긴, 그래서 어딘지 모르게 사람의 시선을 끄는 인상을 지닌 청년이었다. 이목구비는 모두 커 눈에 드러나지만 얼굴은 지나치게 작아 보였다. 검을 곳은 검고 희어야 빛이 나는 부분은 희었다. 새삼스럽다고 할 수 있지만 그제야 사내의 키가 범인보다 크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키가 칠 척을 넘기는 장번후보다 컸으니.
 기이한 것은 사내가 지친 기색을 보이기는 했지만 얼굴은 맑았고 모래바람을 만났다고 말하면서도 공포심을 드러내거나 혈랑대, 혹은 사막의 무법자 혈랑에 대한 두려움 따위는 추호도 내비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다지 고생을 하지 않은 얼굴.
 비록 먼지가 몸에 달라붙었지만 그가 입고 있는 옷은 금백(金帛)을 들여야 입을 수 있는 입성이었다.
 “사막을 와보기나 했소?”
 “처음이지요.”
 장번후는 사람을 볼 줄 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의 의복이며 눈에 어린 총기(聰氣), 그리고 바람이 살랑거리듯 여유있는 몸가짐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오랜 세월 살아오며 체득된 것이다.
 일정한 세월이 흘러 불혹(不惑)의 나이를 지나면 사람을 보는 눈이 생긴다. 그 후에도 사람을 보고 판단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무지하거나 세상을 허투루 산 것이다. 장번후가 나름대로의 재력을 지니고 있고 강호의 경험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반말로 지껄이거나 대거리를 하지 못하고 새삼스레 존댓말을 붙인 것은 자신의 눈이 빗나가지 않으리라는 예측 때문이었다.
 장번후는 손을 들었다.
 그의 수신호(手信號)를 알아들은 상단의 식솔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오랜 세월 서로에 대한 신뢰와 함께 다져진 것으로,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서로가 알아볼 수 있는 것이기도 했다.
 아무 일 없다.
 이 사내는 혈랑대가 아니다.
 그런 의미를 알아들은 식솔들은 경각심을 풀어버리고 출발준비를 서둘렀다.
 사실 작기는 하지만 녹주였는지라 물이 나오는 샘이 있었다. 사내는 샘을 마다하고 장번후의 가죽부대에 담긴 물로 얼굴과 목, 그리고 옷을 들치고 몸 구석구석을 닦은 다음 사건을 물에 빨아 머리를 묶었다.
 그제야 느낀 것이지만 그의 머리는 길었다.
 엉덩이까지 늘어지는 머리카락은 비록 모래먼지에 색이 바랬지만 검은빛이 유난스러워 까마귀 털보다 더 빛이 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오발(烏髮)이군.”
 장번후가 한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다는 듯 사내는 빙그레 웃었다.
 그보다 더 어울리는 말이 있을까?
 검은 머리카락에는 그보다 좋은 칭찬이 없을 것이다. 오발은 오발선빈을 줄여 말한 것이다.
 비록 오발선빈이라는 말이 미인의 머리를 칭찬하는 말이기는 하지만, 그가 여자라 해도 미인 소리를 들을 것이다.
 장번후는 사내가 몹시 시장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몸에 지닌 것이 없으니 배도 고플 것이고 목도 마를 것이다. 그의 말이 사실이든 그저 창피함을 피하기 위한 것이든 그다지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그에게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침은?”
 사내가 고개를 저었다.
 “드시겠소? 우리는 막 아침을 먹었소. 며칠이나 굶었소?”
 “사흘 정도. 주시면 고맙게 먹겠소.”
 사내는 솔직하게 말했다.
 장번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이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장번후는 그가 입성을 다듬기를 기다려 자신의 낙타로 다가가 혁낭을 열고 육포를 주었다.
 “고맙습니다.”
 사내는 예의를 잃지 않았다.
 이미 자신이 어떤 지경에 놓여 있는지 알고 있다는 듯 거부하지도 않았고 사양하지도 않았다. 그는 장번후가 넘겨준 육포를 아주 맛있게 먹었다. 육포를 다 먹은 다음에 잘 먹었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사이 상단의 식솔들은 이미 출행준비를 끝내놓았다.
 “이곳이 어디입니까?”
 사내가 물었다.
 생각하면 우습게도 아주 갑작스러운 질문이었지만 장번후는 그가 그 말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의 예측은 틀리지 않은 셈이었다.
 장번후는 빙그레 웃었다.
 어쩐지 이 기이한 사내와의 만남이 우연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막, 멀지 않은 곳에 나포박(那浦泊)이 있지요. 그러나 지금은 가물었으니 호수는 말랐을 것이오. 아니, 반월처럼 보이는 아주 작은 호수는 남아 있을지도 모르지요. 암, 아주 좋은 곳이지. 그러나 땅 밑으로 흐르는 카레즈는 있을 거요.”
 그 말이 정확한 설명이 되지 못할 것을 알지만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 부근에는 마을도 없고 녹주도 없다. 하루 종일 걸어가야 겨우 나포박에 다다를 것이다. 그리고 사내가 사막에 무지한(無知漢)이라 해도 나포박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포박은 충분히 사내에게 거리 개념을 알려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맙소사.’
 사내는 표정이 없었다.
 탑리목분지로 들어서는 입구에, 비록 타클라마칸 사막에서는 조금 벗어난 지역이라고 하지만 눈을 들어보면 여전히 모래구릉만이 보이는 곳에 자리잡은 넓은 호수. 사막은 이정표가 없다. 그러나 부근에서 가장 큰 호수인 나포박이 사막을 왕래하는 사람들에겐 이정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사내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 표정을 본 장번후는 사내가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막의 무서움은 고사하고 지리마저.
 장번후는 이 사내를 나포박까지 안내해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나포박까지 가서 행장을 다시 꾸려야 한다. 사막을 통과하기 위한 약간의 준비는 필요한 것이다. 사내와 길이 다르다고 해서, 그와 안면이 없다는 이유로 냉정하게 사막에 두고 갈 수는 없는 일이다.
 서로가 돕는 것은 사막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있어 서로간에 지켜지는 불문율(不文律)이다.
 “길은 아오?”
 그의 물음은 최대한 배려였다.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보다는 상대의 의견을 존중하겠다는 생각이었다.
 사내가 고개를 저었다.
 예상이 맞았다고 할까?
 만에 하나 그렇다면 도와주어야 한다. 서로 돕는다는 것은 사람이 사는 세상에 가장 필요한 일 중의 하나다. 더구나 사막을 횡단해야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서로 돕고 때로 물을 나누어 먹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로 인식되고 있다.
 문득 돌아보니 여명(黎明)이 밀려오고 있었다.
 “우리는 나포박까지 갈 생각이오. 동행하겠소?”
 사내가 웃었다.
 그것이 승낙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어쩐지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았다.
 장번후는 뒤를 돌아보았다.
 이미 모든 준비가 끝났기 때문에 식솔들은 낙타의 고삐를 잡고 기다리고 있었다.
 
 ***
 
 이십여 마리의 낙타.
 적은 수라 할 수 없었다. 그 낙타의 등에는 각종 물건이 바리바리 실려 있었다.
 짐들 중에는 파사국(婆娑國)과 대식국(大食國)으로 팔려나갈 비단이나 보옥(寶玉)이 실려 있기도 했지만, 세 마리의 등에는 사막을 횡단할 동안 낙타가 먹을 건초도 실려 있었다.
 물론 낙타의 뒤를 따르는 두 마리의 말도 적지 않은 양의 건초를 축낼 것이다. 낙타의 등에 실려 있는 건초가 적은 양은 아니지만 사막을 횡단하려 한다면 보충을 해야만 한다. 언제나 그렇듯 그 장소는 정해져 있었다. 더구나 사내가 타고 온 말도 시장했는지 적잖은 양의 건초를 먹어버렸다.
 사실 건초가 없다 해도 낙타가 살아가는 것은 그다지 걱정하지 않는다.
 낙타는 사막에 어울리는 동물이다. 우선 사막을 건너가기 위해서는 낙타 이상이 없다. 오죽하면 사막에 사는 사람들은 낙타를 가리켜 사막의 배라 부른다.
 낙타는 여러 가지 용도로 쓰이는데, 우선 젖과 고기를 주고, 타고 다닐 수도 있다. 그뿐인가? 사막에서 물없이도 잘 견딘다. 더욱 유용한 것은 유순하지, 새끼 잘 돌보지, 낙타가 싸는 똥은 사막에서 음식을 만들 때 불을 피울 수 있는 연료로 쓰이기도 한다. 사막에서 살아가기에 더할 수 없이 좋은 동물이다.
 무엇보다 낙타는 물이 없어도 열흘 동안 사막을 횡단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뿐인가?
 낙타는 먹이에 그다지 구애받지 않는다.
 흔히 생각하기를 사막이라 하면 모래만이 있을 것 같지만 간혹 풀도 보인다. 물론 나무도 있다.
 사막에 자라나는 풀과 나무는 극소량의 수분만 가지고도 살아남을 수 있는, 생존능력이 뛰어난 식물이지만 그 나름대로의 살아가는 방식과 보호능력을 지니고 있다. 외피에 뱀의 피부 같은 껍질을 지녀 수분이 빠져 나가는 것을 막기도 하고, 잎이나 수액(樹液)에 독이 있어다른 동물이 뜯어먹지 못하게 하는 경우가 적지 않으나 낙타에게는 무용지물이다.
 그래서인지 사막의 모래언덕이나 바위틈, 혹은 선인들이 만들어놓은 판축토성(版築土城)의 흔적 위에 자라 있는 나무나 풀을 삼보(三寶)라 부르는데, 이것은 각기 홍류(紅柳), 낙타풀, 적적초(積積草)라 부르는 것들이다.
 가장 흔한 것은 낙타풀이라 불리는 것으로, 약용으로도 쓰이는 이 풀은 흡사 말라빠진 쑥과 같은 모양을 지녔다. 가지에는 길고 가는 가시가 달렸다. 낙타가 즐겨 뜯는 풀로, 석 달 열흘 동안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아도 끈질기게 살아나는 생명력을 지녀 사막을 오가는 사람과 낙타에게 힘을 준다.
 홍류는 흡사 애철쭉처럼 생긴 것으로, 가지가 가늘고 불그죽죽하며 파랗고 작은 입사귀가 빽빽하게 달린다. 철쭉나무에 여러 겹으로 붙어 있는 새싹을 보는 것 같다. 이 또한 낙타의 주식으로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은 먹을 수가 없는 풀이다.
 마지막으로 적적초는 갈대처럼 생긴 풀로 키가 훤칠하게 크고 잎이 아주 넓었다. 사막에 어울리지 않게 넓은 잎이 마치 물가에 다가온 듯한 착각을 주기도 하는 풀이었다.
 사막 어디에나 있는 이 세 가지 풀만 있으면 낙타는 건초나 물이 없어도 죽거나 쓰러지지 않는다.
 ‘말이라······’
 사내가 말을 타고 사막으로 들어온 것이 잘못이랄 수는 없다. 초원마는 사막에서도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다. 사내는 그런 이야기를 듣고 무심코 말을 몰고 들어왔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초원마라 해도 사막에 익숙하지 못하면 오래 지나지 않아 지치고 결국은 쓰러진다.
 장번후는 불현듯 사내의 잘못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그에게 위로라도 해줄 생각으로 고개를 들었다.
 사내를 돌아보니 매우 피곤한 표정이었다.
 잠을 자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번후는 그를 편히 가게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타고 있던 말은 이미 지쳐 그는 걸어가고 있었다.
 “낙타를 타고 가는 것이 어떻겠소?”
 낙타 한 마리는 맨몸으로 이동 중이었다. 그놈이 지고 있던 건초를 모두 먹어버린 탓에 지고 갈 짐이 없기 때문이었다.
 사내는 웃었다.
 이를 드러내며 웃는 모습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기 때문에 장번후는 마음이 더욱 편안해지는 것 같았다.
 “타보지 않았는걸요.”
 그는 거부하지 않았다. 그러나 솔직히 말을 할 만큼 그는 최악의 몸 상태를 지니고 있었다.
 그럴 줄 알았다.
 낙타를 타는 일은 그리 흔하지 않다.
 사막에 사는 사람들이나, 혹은 대상들이 사막을 건너기 위해 타는 것이 낙타다. 중원에 사는 사람들에게 낙타는 그다지 어울리는 동물이라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사내는 재미있다는 표정이었다.
 말과 달리 앞발을 꿇은 후 뒷발을 구부려 물건을 싣거나 사람을 태우는 낙타의 속성을 모르는 사내는 신기하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어쩐지 그 모습이 순진무구한 어린아이를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을 들어 보이자 사내가 낙타에 올라탔다.
 “등에 난 혹을 잡으시오.”
 사내는 주저하지 않았다.
 사실 낙타를 타는 일이 그리 쉬운 것은 아니다. 더구나 경험이 없다면 더욱 힘든 일이다.
 쌍봉낙타는 두 개의 봉 사이에 앉으니 편하기는 하지만 일어설 때 뒷부분부터 벌떡 일어서기 때문에 몸이 앞으로 쏠리는 것 같은 느낌에 놀라 몸을 숙이게 마련이다. 그러나 사내는 몸의 균형을 잡는 데 조금도 어려워하지 않았다. 그것만으로 사내가 신경이 발달했거나 몸의 평형감각(平衡感覺)이 매우 뛰어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말을 타는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인가?
 아무튼 장번후는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가 혈랑대와 관계없다는 것을 확신했고 이왕 친절을 베풀 것이라면 아무것도 생각지 않기로 했다.
 “출발!”
 장번후가 소리를 지르자 일행은 다시 출발했다.
 낙타는 말처럼 빠르지는 않지만 멈추지 않는 지구력을 가지고 있으므로 막상 한참 동안 움직여보면 그 차이가 그다지 크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장번후는 눈을 들어 앞을 바라보았다.
 평생을 지나다닌 길이다.
 이십 년 동안 같은 길을 왕복했으니 눈에 익을 만도 하건만 도무지 사막은 눈에 익지 않는다. 바람이 불면 눈 앞에 펼쳐져 있던 모래언덕이 사라지고 갑자기 새로운 산맥 같은 높은 언덕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사구(砂丘)는 수시로 만들어지고 사라진다. 때로는 신기루가 보이기도 하는데 그때는 무조건 쉬어야 한다.
 바람이 지나간 자국이 빗자루로 쓴 듯, 혹은 수면에 바람이 스쳐 잔잔한 물결이 이는 듯 아름다운 모래언덕이 여자의 젖무덤처럼 끝이 보이지 않게 펼쳐져 있었다.
 해가 떠오르며 불쑥불쑥 자라나는 그림자는 점점 짧아지고 결국에는 모래언덕에서 파열되는 빛이 시선을 묶었다.
 모래능선은 파도가 되어 출렁거렸다.
 사막의 바다.
 장번후는 문득 고개를 돌렸다.
 자신은 이미 이십 년 동안 눈으로 보고 그 바람의 소용돌이 속에 살아왔으므로 그 아름다움이 그다지 느껴지지 않지만 과거에는 달랐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 자신도 처음 상단을 쫓아 사막에 왔을 때는 그 황홀경과 끝이 보이지 않게 이어진 모래능선에 취해 수십 번이나 감탄을 토했었으니······
 “역시!”
 사내라 해서 다를 것이 없었다.
 그도 아득한 과거에 장번후가 그랬던 것처럼 눈을 어디에 둘지 모르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멋있지 않소?”
 “그렇군요. 나는 이런 장관을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요. 사막이 막막하고 지나치게 허하기는 해도 이런 멋스러움을 주기도 하는군요.”
 장번후는 기분이 좋아졌다.
 비록 자연의 조화이기는 해도 자신이 그 장관을 펼쳐 사내에게 보여주는 것 같은 우쭐함이 일어났다.
 ‘가만······’
 앞을 바라보던 장번후는 갑자기 몸이 굳는 것 같았다.
 믿을 수 없는 세상, 언제나 등을 조심해야 하는 무림을 경험한 사람으로 갑자기 눈 앞에 나타난 사내를 보고도 신분조차 확인하지 않았다는 것이 기이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음식을 주었고 물을 주었으며 이제는 동행을 하여 일정한 거리까지 안내하고 있다.
 장번후는 그를 바라보다 생각난 듯 입을 열었다.
 “나는 장번후라는 사람이오. 지금은 왕역상단(往域商團)이라는 조그만 상포(商鋪)의 주인으로 서역과 중원을 오가고 있지만, 한때는 소림에서 권각을 익히려고 기웃거렸던 적이 있었소. 지금은 잊혀진 이름이지만 한때 번쾌투권(飜快投拳)이라는 이름도 얻었던 적이 있다오.”
 말을 마친 그는 눈치를 살폈다.
 스스로 생각해도 그다지 이름을 얻은 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하남에서 소림의 제자라는 신분은 다른 지방에서 패자로 군림하는 것과 맞먹는 이름을 지닌 것이나 다름없다.
 소림의 제자.
 사실을 논하자면 소림에 들어 절밥을 먹기는 했지만 본산의 제자로 무공을 익혔다고 하기보다는 속가제자라 해야 옳았다. 그것도 더욱 세밀하게 말하자면, 소림의 연무전(鍊武殿)에서 등봉현(登封縣) 주변의 어린아이들을 모아 체력단련을 위해 일 년에 한 번씩 권각을 가리키는 수련에 참가했을 뿐이다.
 삼 년 동안이었다.
 장번후의 고향은 등봉현이었으므로 자연스레 소림의 문하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속가제자로서도 인정을 받지 못하는 문외제자(門外弟子)라는 신분이었다. 그러나 무공에 소질은 있어 백보신권(百步神拳)을 비롯해 여섯 종의 권각과 한 가지의 도법(刀法)을 전수받았다.
 장번후는 사내를 바라보다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나름대로 하남성에서 열심히 돌아다니고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해 감초처럼 끼여들어 이름을 얻었다 생각했지만 이 사내는 장번후의 이름 따위는 듣지 못했다는 표정이었다.
 그의 안색이 변했다는 것을 눈치챘는지 사내가 얼굴을 돌리고 말했다.
 “용서하십시오. 말학(末學)은 세상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강호의 풍습이나 고명을 모릅니다.”
 장번후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강호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면 무엇을 알겠는가?
 ‘누구이기에.’
 의문이 들었다.
 장번후가 바라보자 사내는 자신이 무엇을 실수했는지 알았다는 듯 다시 입을 열었다.
 “안자명이라 합니다. 종남의 제자입니다.”
 “아, 안 형이구려. 종남의 제자이셨구려!”
 장번후가 호기롭게 소리를 질렀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무림에서 구파일방이라 지칭되는 대문파들의 제자들은 은연중 서로 돕고 때로는 배분을 따지기도 했다. 장번후의 반응은 당연한 것이었다.
 안자명은 고개를 외로 꼬았다.
 쑥스럽다는 표정이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그다지 마음에 든다는 표정이 아니었기에 장번후는 입을 다물었다. 사실 장번후는 그가 누구의 제자인가에 대해 물어볼 생각이었다.
 관례라는 것이 있다.
 서로가 만나면 누구의 제자인가, 사부를 확인하고 배분이 어떤가를 따져 서로가 사문은 달라도 형과 아우를 나누어 부르고 또 서로간에 친숙해지려고 노력하는 것이 구파일방의 제자들이 가진 생각이었다.
 잠시 시간이 흘렀다.
 그사이에도 바람에 실려온 모래가 쌓여 떡시루처럼 솟아오른 모래언덕을 밟는 낙타의 발걸음은 무심하기만 했고, 결국에는 또다시 바람이 불어 바람에 날리는 모래를 만들어냈다.
 가도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사막.
 “본시 길이란 없소. 사람이 다니다 보니 길이라는 것이 생겼을 뿐. 그러나 사막에는 길이 만들어지지 않소. 아무리 다녀도 바람은 흔적을 지워버리게 마련.”
 장번후는 변명하듯 말했다. 아니, 말을 하고 보니 어쩐지 변명하듯 들리는 자신의 목소리였다.
 “저 사람은······”
 무료함과 어색함을 피하려 했을까?
 장번후는 애써 입을 열고 손을 들어올렸다. 그는 낙타를 모는 상단의 식솔들을 일일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후 그가 누구인지 이야기를 해주었다.
 안자명은 그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낙타의 고삐를 당길 뿐이었다.
 생각을 하는지, 아니면······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번후를 따르는 식솔들은 모두가 소림의 제자라 할 수 있었다. 산문을 넘어 본산의 제자가 되지는 못했지만 소림의 본산이 마련한 무관에서 무공을 익힌 제자들. 그들에게서는 자부심이 넘치고 있었다.
 사실, 사막을 횡단하는 것은 말처럼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바람이 불고 펄펄 끓는 대지도 사람을 극한으로 몰고 가지만, 그것보다는 상단을 노리는 자들이 더욱 두려운 것이다. 토비들이야 어디에나 있게 마련이지만 사막은 특히 더했다.
 사막은 사람이 살 수 없을 것 같지만 곳곳에는 산도 있고 녹주도 있다. 그 산 속에는 동굴이 있고, 한낮이 불볕처럼 뜨거워도 동굴은 시원한 법. 그 동굴과 녹주를 발판삼아 살아가는 비적들이 있는데 그 수는 적지 않다. 그들 중에서 가장 숫자가 많고 강한 자들이 바로 혈랑대라는 자들이고, 그들 외에도 때때로 도적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어떻게 알았는지 바람처럼 나타나 물건을 빼앗거나 약탈하고, 여자를 겁간(劫姦)하기도 한다. 그리고 나타날 때처럼 썰물 빠지듯 사라진다.
 사막은 관부(官府)도 없다.
 명조의 군부는 겨우 옥문관에서 버티기를 할 뿐이다. 그나마도 몇 개의 망루(望樓)와 봉수대(烽燧臺), 그리고 산성(山城)을 지키는 군병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가욕관에 물러가 있다.
 토비들이 아무리 흉악한 짓을 하고, 상단이 물건을 빼앗기며 죽음의 위협을 당해도 어쩔 수 없이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자구책이 필요했다.
 그래서 사막을 지나는 대상이나 표국 등은 사막을 건널 때 사람을 구한다. 바로 사막을 건너갈 때까지 보호해 주는 사람들이다. 간혹 무인들의 병기나 힘에 의지하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상단이나 물건을 나르는 자들이 무인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표국의 표사들은 한결같이 무인들로 이루어져 있으니, 어떤 경우라도 자신들이 맡은 물건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들도 그랬다.
 장번후를 위시한 모든 식솔들이 무공깨나 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굳이 시위(侍衛)나 사막을 횡단하며 힘을 보태줄 무인들이 필요없었던 것이다.
 아무튼 순조로웠다.
 멀지 않은 곳에는 나포박이 있었고, 그곳에서 갈 길이 다르더라도 장번후로서는 이 사내를 만난 일이 그다지 나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第三連 사막의 쉼터, 행행루(行行樓)
 
 
 “저건?”
 안자명은 막상 입을 열었지만 스스로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자신도 모르게 흘러나온 소리였다.
 옥문관을 출발해 도착한 서역 땅, 그것도 사막에 들어선 지 이미 나흘이 지났다. 이제 나흘이 지나갔을 뿐이지만, 그는 사막이 자신에게 그다지 어울리는 곳이 아니라 생각하고 있었다.
 사실 어울린다는 표현은 어폐가 있다.
 적당한 말이 없는 것이다.
 사실 안자명만이 그처럼 사막에서 고난을 겪고 자신에게 그다지 어울리는 곳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막에 초행인 사람의 경우라면 누구를 불문하고 사막이 어울리지 않을 것이다.
 사막에 사는 사람들이 어울리지 않느냐고?
 천만의 말씀이다.
 그들도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며 살아가고 있을 뿐이지, 어울리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만약 그들도 주변에 농지가 있거나 떠돌아다니지 않고 한 곳에 주저앉아 먹고 살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사람이 아무리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가고, 때론 그 환경을 피하거나 그 환경을 개척하기는 하지만 근본적으로 파고들면 적응이라는 말이 먼저 실감나는 것이다.
 안자명은 앞을 바라보다 태양이 쪼개지는 수면을 발견하고 장번후를 돌아보며 소리를 질렀다.
 “호수로군요!”
 “그렇습니다. 바로 나포박의 흔적이지요.”
 장번후는 시큰둥하게 보이는 모습으로 대답했다. 안자명은 그의 표정이 왠지 가라앉은 것 같아 막상 말을 해놓고도 기분이 묘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도 잠시, 안자명은 장번후의 말투를 무시하기로 했다. 그에게 실수한 것이 없으니, 피곤해서 그랬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던 안자명은 고개를 쳐들었다.
 “흔적이라니요?”
 “그렇지요. 흔적일 뿐이지요.”
 흔적이라······
 흔적이라는 말이 가당키나 한가?
 제법 넓어 보이는 호수였다. 마을 앞에 있는 연못이나 연꽃이 피는 사찰의 경내에 있는 작은 연지(蓮池)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넓은 호수.
 사실 호수라 하면 작은 규모에 속하지만 그 호수가 흔적이라는 장번후의 말은 그다지 어울리는 것 같지 않았다. 그 정도의 호수가 흔적이라면 파양호( 陽湖)나 동정호(洞庭湖) 정도의 크기를 지닌 호수만이 호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흔적이라······’
 안자명은 다시 한 번 생각했다.
 흔적이라······ 이해할 수 없는 말이기는 하지만 되묻거나 의문을 표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것이고 묻기보다는 눈으로 확인하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눈을 들어보니 잠시 동안 낙타는 발걸음을 빨리했고 호수가 눈 앞에 있었다.
 호수는 반쯤 휘어진 모습이라, 안자명은 언뜻 보면 그 모습이야말로 사매의 눈썹 같다고 생각했다. 반월처럼 휘어진 모습이 그랬다.
 ‘사매.’
 갑자기 떠오르는 얼굴.
 사매가 웃고 있었다. 가늘고 휘어진 눈썹과 검은 눈동자, 그리고 박속같이 흰 이가 보이고 붉은 입술이 눈 앞으로 다가와 그녀의 몸에서 나는 향기를 맡은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호수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부근의 마른땅이 검은색이었고, 물에서 자라는 밀풀이 있는 것으로 보아 지금은 말랐지만 제법 넓은 호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흔적이라!’
 이해가 되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그 호수를 보았을 때 말괄량이 사매의 눈썹이 생각났을까?
 아무튼 눈에 힘을 주고 살펴보니 호수였던 것으로 짐작되는 땅 위로는 낙타 발자국이 어지러이 나 있고 물소 몇 마리가 말라 죽지 않은 풀을 뜯고 있었다. 물소는 살이 피둥피둥 쪄 있어 사시사철 물이 마르지 않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소는 물이 없으면 한 순간에 비루 먹듯 말라버리기 때문이었다.
 “물소?”
 안자명은 눈을 돌리다 갑자기 생각이 난 듯 소리를 질렀다. 사막에서 물소를 보았다는 것이 너무도 신기했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밭이나 논의 흔적은 없었다. 그런데 중원에서 밭갈이용으로 쓰이는 물소가 서역의 호수에서 풀을 뜯고 있다니.
 세상은 참 좁은 곳이다.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
 안자명은 그 풍경이 참으로 시선을 끄는지라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그 말의 뜻을 모르지 않지만, 지금 안자명이 생각하기에 자신이 보고 있는 이 풍광도 그에 합당한 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사람도 보이지 않고 호수가 있으며,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물소의 모습.
 바로 도화(桃花)가 없는 무릉도원(武陵桃源)이 아닐까?
 비록 물이 마르기는 했지만 샘처럼 솟아나오는 복류수(伏流水)에서 흘러나온 물과 사막을 흐르다 솟구친 카레즈의 물이 아직은 호수를 적시고 있었다. 호숫가의 둔덕처럼 보이는 풀밭과 물이 마주닿아 있는 곳에서 솟아나오는 물이 저물어가는 석양을 받아 마치 이른 새벽 풀잎에 맺힌 영롱한 이슬처럼 빛을 반사시켰다.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시원해지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멀리 보이는 사막과는 달리 부근에는 나무가 있고 갈대도 있었다. 모르기는 해도 호수의 흔적으로 보이는 곳에 물이 찬다면 그 끝이 보이지 않을 것이다.
 “넓은 호수로군요?”
 안자명은 물이 고여 있는 물을 보고 이야기한 것이 아니고 검게 물든 땅, 본시 호수로 물이 차 있었을 것 같은 넓은 대지를 보며 말을 한 것이다.
 장번후는 그의 말을 알아들었던 모양이다.
 “물론이오. 만약 우기(雨期)가 몰려와 물이 찬다면 아마 아무리 시력이 좋아도 그 끝이 보이지 않을 것이오.”
 “물이 가득 차는 적도 있소?”
 “물론, 이 물은 공작하(孔雀河)의 줄기 끝에 만들어진 호수요. 이천 리 이상 흘러온 공작하는 모래 속으로 스며들지만 어느 시기에는 갑자기 용출수(溶出水)처럼 변해 이 호수에 물을 채우게 되오. 흔한 일이 아니지만 만약 공작하의 물이 용출되면 적어도 동정호만한 호수가 생길 거요.”
 안자명은 입을 벌리고 말았다.
 장번호라는 사내, 이 사내가 거짓말을 할 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가 비록 강호는 초행이지만 장번후가 사람을 속일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다.
 더구나 스스로가 소림의 제자라고 생각하고 자부심을 느끼는 사내가 아닌가?
 그 말을 믿었다.
 안자명도 사막은 초행이라 하지만 귀가 있고 눈이 있으니 들은 이야기가 있다. 서역에도 적지 않은 물이 흐르고 대부분 땅 속으로 스며든다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간혹 땅 위를 흐르는 물줄기도 있고 물이 불어나기도 하는 강도 있다. 그 강들 중에서 탑리목하(塔里木河)를 제외하고 공작하가 다음으로 크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저기요.”
 장번후가 손가락을 들어 한 곳을 가리켰다.
 거무죽죽하게 보여 호수의 밑바닥처럼 보이는 곳, 미인의 아미(蛾眉)처럼 구부러진 호수의 수면이 찰랑거리는 곳에서 멀지 않은 풀숲에 집이 세워져 있었다.
 놀라운 것은 황량한 사막 한가운데 호수가 있다는 사실이 아니었다. 물론 호숫가에 집이 세워져 있다는 사실도 아니었다. 또한 그 집 문 앞에 붉은 깃발이 세워져 있고 객잔을 의미하는 ‘주(酒)’ 자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는 사실도 그다지 놀라운 것은 아니었다.
 삼 층.
 호숫가에 세워진 집은 삼 층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놀라운 것은 그것이었다.
 이 오지에, 오가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은 이곳에 삼 층으로 지어진 집이 있다는 사실이 놀라운 것이다. 물론 그 삼 층의 집 주변에 늘어서 있는 낙타와 마차, 그리고 사람의 흔적을 볼 수 있는 여러 가지 물건들이 즐비하기도 했다.
 장번후는 낙타를 재촉해 한 발 앞으로 나서며 스쳐 지나가는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저곳이 행행루(行行樓)요. 다른 이름으로는 행행루(行幸樓)라 부르기도 하지요”
 장번후는 자신이 길을 안내했다는 사실을 드러내려 애를 쓰고 있는 것 같았다. 묻지도 않았는데 말을 한 것이며, 자신을 따르는 식솔들을 통해 이야기를 해줄 수도 있었는데 손수 앞으로 달려나와 이야기를 한 것으로 미루어 그의 생각을 짐작할 수 있었다.
 달리 의도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안자명은 장번후가 천성적으로 마음이 넓은 사람이며, 사해(四海)는 동도(同道)라는 말을 상기하고 또 행동한다 믿었다.
 “행행루?”
 안자명은 웃었다.
 그 주루인지, 그도 아니면 객잔인지 알 수 없는 건물의 이름이 너무도 웃기기 때문이었다.
 지나다니는 사람에게 행복이 있으라는 말인지, 그도 아니면 행복이 지나다니는 주루라는 말인지 구별할 수 없지만 행복하라는 의미는 통했다.
 “그렇지요. 신기루(蜃氣樓)라는 말을 들어보았소? 사막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이곳 행행루는 신기루 같은 곳이오. 아무튼 기이한 이름이기는 하지만 이곳의 술맛과 음식맛은 근동에서 최고지요. 사막을 횡단하는 사람들은 늘 이곳에 들러 여장을 풀게 돼요. 마치 습관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는데, 그래서 우리도 이곳에서 건초를 준비하고 하루를 쉬어갈 생각이오.”
 안자명은 수긍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왕역상단의 식솔들도 얼굴에 피곤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들이 하남(河南)에서 출발했다면 적잖이 지쳤을 것이다. 더구나 사막에 익숙한 그들이라 해도 모래바람을 피하느라 달리다 보면 지칠 것은 뻔한 일.
 하루 정도 쉬는 것이 당연했다.
 안자명은 그의 말을 새겨들으며 행행루라 부르는 그 건물을 바라보았다.
 마치 성벽 같은 건물이었다.
 일 층에서부터 위로 갈수록 점점 좁아지는 건물, 일 층은 열두 자[尺]짜리 방이 다섯 개는 들어가고 남을 넓이였지만 삼 층은 그저 작은 초막처럼 보이는 집이었다.
 무엇보다 집의 구조가 특이하게 눈을 잡았는데, 중원의 집과는 너무도 달랐다.
 중원의 집은 대부분 나무로 기둥을 세우고 가는 나무나 대나무로 흙이 잘 붙도록 끼운 뒤, 흙을 바르는 것이 보통이었다. 간혹 돌을 붙이거나 돌기둥을 세우지만 그것은 재력이 있는 경우이고, 그 경우에도 황제가 정한 법령(法令)을 어길 수는 없었다. 그것은 재력에 상관없이 법령이 정한 바에 따라 집을 짓는 것으로 규모나 넓이, 높이까지 정해져 있었다.
 행행루는 달랐다.
 안자명이 다른 건물을 많이 본 것은 아니지만 종남은 속가일문이기 때문에 다양한 지식을 지닐 수 있다. 그것은 도가의 제자로서 현문(玄門)의 법이나 불문의 선법을 찾기보다 사람이 살아가는 법을 먼저 생각하기 때문이다. 속가일문이라는 무림의 속설이 말해 주듯 속인들이 모인 문파이기 때문에 관리들과의 친분이나 국법에도 민감할 수밖에 없다. 자연히 아는 것이 아니고 많은 것을 익히게 되는 것이다. 건물의 모습은 안자명이 아는 어떤 행법(行法)에도 미치지 않았다. 아니, 무시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이한 건축물이군요.”
 안자명은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달리 할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소. 행행루는 오로지 흙과 풀로 지은 집이오. 진흙을 물에 개어 양 옆에 판자를 대고 이겨넣은 다음 풀을 깔고 다시 흙을 채우고 물을 부어 다진 집이오. 기둥 따위는 없소.”
 안자명은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다. 이는 건물을 짓기보다는 성을 쌓을 때 사용하는 방법이다.
 “판축토성(版築土城)?”
 “그렇소이다. 같은 공법(功法)이라 생각하면 될 거요.”
 장번후는 무슨 자랑이라도 되는 양 만족스럽게 대답했다. 마치 행행루가 자신의 집이라도 되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오래도록 사막을 지나쳐 익숙해졌다는 것을 그리 표현하는 것이라면 조금 지나친 감이 있었다.
 아무튼 행행루는 겉에서 보면 진흙이 말라 붉은 벽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갑시다. 요기를 해야 하지 않겠소?”
 장번후의 말에 안자명은 그저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었다. 문득 고개를 돌려보니 상단의 식솔들은 이미 행행루가 있는 곳으로 낙타를 몰아가고 있었다.
 
 
 第四連 한 잔의 술을 마시며
 
 
 행행루의 안으로 들어온 안자명은 매우 놀랐다.
 삼 층의 건물.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누각(樓閣)도 아니고, 그렇다고 전각(殿閣)의 형태를 지녔다고 할 수도 없다. 중원에서 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건물 형태가 안자명으로 하여 몇 번이고 눈을 돌리게 만들었다. 만약 누군가 그를 예의 주시했다면 먼 곳에서 왔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뿐만 아니라, 그를 이용해 먹으려 다가들었을지도 모르는 일.
 ‘기이한 건물이야.’
 안자명이 늘 생각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사람의 표현력은 한계가 있는데, 이때마다 그는 사람의 생각을 따라가지 못하는 말이 얼마나 불편한가 생각했었다.
 지금이 그랬다.
 안자명은 자신이 표현력이 부족하거나 지식이 모자라 눈에 보이는 것을 표현하지 못할 정도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표현할 수가 없었다.
 “정말 기이한 모습이군요.”
 그렇게 이야기를 할 수밖에.
 아무튼 행행루는 특이한 건물이었다.
 안으로 들어가는 문을 제외하고는 창이라고 할 수도 없는 작은 구멍이 일정한 간격과 배열로 뚫려 있었다. 그랬다. 구멍이었다. 구멍이 무엇인가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그것이 각 방으로 공기가 통하게 하는 창의 구실을 대신한다는 것을 깨닫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으니.
 그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바람도 통하지 않을 것 같은 구조.
 행행루 밖, 그러니까 호수와 연결되는 제법 넓은 공터에는 잔풀이 자라 있었고 갈대와 비슷한 풀들이 물을 따라 키재기를 하고 있었다. 그 물가에 적지 않은 말과 낙타가 풀을 뜯거나 물을 마시고 있었는데, 예상은 했지만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있었다.
 말과 낙타가 풀을 뜯고 있는 곳은 눈이 시리도록 맑았다. 그러나 눈을 돌리고 보면 바로 행행루가 나오는데 그 주변은 뿌연 안개에 싸여 있는 것 같았다.
 “들어갑시다.”
 장번후가 말했을 때 안자명은 그저 고개를 끄덕여주었을 뿐이었다.
 
 ***
 
 자욱한 연기.
 사람 냄새가 그토록 역겨울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느끼는 순간이었다.
 장번후와 그 일행이 앞장서 들어간 후에도 한참이 지나서야 안자명은 행행루 안으로 들어섰다. 내부는 외부에서 짐작했던 대로 그다지 좁지 않았지만 과장되게 말해 발 디딜 수 없으리 만치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있었다.
 생각보다 많은 숫자였다.
 “후!”
 안자명은 숨을 불어내었다.
 건물 주변을 에워싸고 있던 안개 같은 기운의 실체를 깨닫는 순간이었다. 안자명은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연기는 사람들의 코와 입에서 뿜어져 나온 것이었다.
 속이 뒤집힐 것 같은 냄새.
 골이 핑 도는 느낌이 이럴까?
 엽연초(葉煙草)를 태우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그들은 중원인들과 회회인, 때때로 몽고인들도 섞여 있었는데 회회인들이 지나치게 많은 엽연초를 태우고 있었다.
 그들이 피워대는 엽연초의 연기로 일층의 주청(酒廳)은 아예 굴뚝을 연상하게 했다.
 안자명은 엽연초를 피우지 않을 뿐 아니라 냄새를 맡아본 적도 극히 드물었기 때문에 속이 뒤집어지는 것 같은 역한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조금의 시간이 흐른 뒤에는 그다지 거부감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어디로 모실까요?”
 급히 다가온 점소이가 물었다.
 “잠을 자고 내일 떠날 걸세.”
 안자명은 행행루의 내부를 둘러보며 대답했다.
 은자 두 냥으로 하룻밤 편히 잘 수 있는 방을 얻었다. 물론 그 은자에는 오늘 저녁과 내일 아침의 식대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것이 규칙이었다. 하룻밤 잠을 자려면 반드시 두 끼의 식사를 하라고 했다. 그것이 규칙이고 행행루의 법이라고 하니 따를 수밖에. 사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안자명으로서는 두 끼를 모두 먹어야 할 것이고 이곳을 출발할 때는 여러 가지 도움을 받아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 은자 두 냥은 그리 비싼 값이 아니었다.
 만약을 위해 목에 주먹만한 사마귀가 난 점소이에게 오수전(五銖錢) 두 닢을 쥐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필요하면 그를 불러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도 하면서.
 “고맙소.”
 그것으로 인사를 삼을 수 없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는다. 그러나 당장에 장번후에게 달리 해줄 일이 없다.
 중원으로 돌아가면 고마움을 표시하겠다는 생각이었다.
 “별말씀을······ 사해(四海)는 동도(同道)이고 종남과 우리 소림은 형제나 같으니 그런 말씀 마십시오.”
 역시 장번후는 좋은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언젠가는 은혜를 갚으리다.”
 그건 본심이었다.
 반드시 은혜를 갚으리라.
 안자명은 장번후와 그들 일행이 이층에 짐을 푸는 것을 본 다음, 점소이가 알려준 자신의 방, 삼층의 모서리에 있는 작은 방으로 들어섰다.
 
 ***
 
 안자명은 탁자에 앉아 대나무 젓가락을 이용하여 와보반(瓦寶飯)과 팔색채(八色菜)로 저녁을 먹고 있었다.
 한 잔의 술도 주문했는데 점소이 말이 행행루에서 음식을 시키면 반드시 반주가 나온다는 것이었다. 술을 즐기지 않으면 시키지 않아도 된다는 뜻으로 해석했다.
 술은 취소했다.
 눈이 파란 점소이 말대로 반주로 술이 한 병 나왔다. 아무튼 사막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후한 인심을 베푸는 곳이고 보니 마음마저 편해지는 것 같았다.
 술의 색이 푸른색으로 빛나는 것으로 보아 죽엽청(竹葉淸)이 틀림없었다.
 죽엽청이라······
 감숙의 남부에서 보고는 보지 못한 대나무가 아니던가? 서역으로 들어와 대나무를 보았던가? 본 것이라고는 모래와 바람뿐이다. 대나무를 숙성시켜 담그는 죽엽청을 사막에서 만났다는 사실이 새롭게 느껴졌다.
 황량한 사막에서 죽엽청을 마신다는 사실이 조금은 어울리지 않지만 그것만으로도 이 주루가 중원을 떠나 서역을 오가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제공해 주고 그만한 대가를 받는지 알 수 있었다. 아주 흡족한 기분이 들었다.
 ‘세상은 정말 넓구나. 애초에 서역을 구경하겠다는 생각을 하기는 했지만 이런 곳이 있을 줄이야. 죽을 고비를 넘기기는 했지만 정말 마음에 들어. 내가 사막을 구경하기로 한 것은정말 잘한 일이었어.’
 안자명은 흡족해져 마음 속으로 중얼거렸다. 사막에서 고생했던 기억은 모두 사라져 버렸다.
 누군가 그의 말을 들으면 욕을 할지도 모른다. 그 욕은 필시 ‘미친놈 지랄하고 자빠졌네’
 하는 것일 수 있다. 사막은 치열한 생존을 요구하는 곳이지, 유람하는 곳이 아니다. 이미 경험을 했다. 그러나 안자명은 누가 자신의 마음 속을 들여다보고 욕을 해도 좋다는 생각을 했다.
 사존도 화염산에 언제까지 도착해야 한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시간의 제약을 두지 않았다는 사실이 처음에는 의아했지만 이제 이해가 되기도 했다. 만약 편안한 마음이 아니었다면 생각해 내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야 그 무언(無言)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아마도 세상구경을 하고 돌아오라는 뜻일 것이다.
 사문의 어른들이 보여준 배려가 새삼 고마웠다.
 안자명은 습관적으로 왼손을 뻗어 자신의 허리에 매달린 한 자루의 병기를 쓰다듬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마치 애완용 동물을 쓰다듬는 것처럼 정이 들어 있는 손길이었다.
 길을 떠날 때 사존께서 주신 병기.
 이 한 자루의 검은 사존께서 여섯 살때 그분의 사부이신 종남노룡(終南老龍) 이갑용(李甲鏞) 노사(老師)께 물려받은 것이라 했다. 사존은 그 후 나이 구십이 넘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 검을 품에서 떼어논 적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귀한 물건을 주시다니······
 의미가 있을 것이다.
 “가지고 가거라.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사부께서는 그리 말씀하셨다.
 사조께서는 담담히 웃으셨지만 사부의 말씀대로라면 이 병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반드시 지니고 가야 한다고 했으니, 혹시 화염산의 그 은자를 찾을 때 자신의 신분을 대신해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겉으로 보아서는 아주 평범한 장검이었다.
 길이는 한 자 길이의 검병(劍柄)을 포함해 모두 다섯 자. 호수반(護手盤)은 연꽃 문양으로 새겨져 있고, 검병의 환에는 둥근 고리가 있다. 그리고 검환(劍環)의 끝에는 작은 돌이 달려 있는데 반짝임이 유난한 것으로 보아 보석의 일종일 것이다.
 특이한 점은 또 있다.
 검신에 새겨진 가는 선인데, 마치 갈매기가 날아가는 것 같은 무늬가 새겨져 있다.
 혈조(血漕)라고 불리는 것이다.
 정파의 무인들이 사용하는 대개의 병기는 그다지 화려하거나 일정한 규격, 혹은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처럼 깊이 파인 혈조는 장검에서도 특이한 부류에 속했다.
 아무튼 생각할 이유가 없었다.
 짐작한 바가 있으니.
 ‘화염산의 은자와 약속이겠지.’
 그렇게 생각했을 뿐이다.
 술맛은 좋았다.
 안자명은 술을 그다지 즐기는 편도 아니고, 취하도록 술을 마시는 편도 아니었다.
 한 잔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다.
 “오늘은 이곳에서 자고 내일 출발하면 모레쯤에는 도착할 것이다. 어서 올라가서 잠을 자고 화염산으로 가야겠지.”
 아마 혼자 마시는 술이 그다지 어울리지 않았기에 흘러나온 말일 것이다. 그는 불현듯 들려온 목소리가 자신 스스로 한 말이라는 것을 깨닫고 피식 웃었다.
 헛소리를 중얼거리다니.
 그다지 어울리는 일은 아니었다.
 안자명을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를 안내했던 상단의 식솔들과 장번후는 보이지 않았다. 내일 아침 일찍이 아라사(俄羅斯:러시아)를 거쳐 파사국(破邪國:페르시아) 방향으로 간다더니, 일찍 잠을 청하기 위해 각자의 방으로 들어간 것 같았다.
 ‘차라리 그들과 친한 척이라도 해볼걸.’
 왠지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그다지 외로움을 타는 성격은 아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섭섭해지는 것 같았고, 아무도 알지 못하는 곳에 혼자 떨어져 있다는 생각이 들자 괜히 기분이 좋지 않았다.
 외로움일까?
 지금처럼 혼자 있다는 생각을 가져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북적거리는 주루였지만 그가 아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고 그들과는 친구조차 될 수 없었다. 가뜩이나 즐기지 않는 술이다. 어쩐지 그곳에 자신이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바늘방석에 주저앉은 것 같았다.
 ‘에라, 모르겠다.’
 안자명은 소경이 고개를 넘어가듯 아주 천천히, 세월이 좀먹느냐고 하는 듯 술잔을 채우며 주위에서 들려오는 온갖 소음에 귀를 기울였다.
 그제야 그는 기이한 느낌을 받았다.
 처음에는 무심코 생각했었다.
 사막의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이 주루에 사람이 많은 것도 이상하지만, 그들이 모두 장사를 위해 이리저리 움직이거나 서역과 중원을 오가는 상단은 아닐 것이다.
 ‘이상하군. 정말 이상한 일이야. 이 외진 곳에 적잖은 사람들. 몸에 지닌 병기로 보아 무인인 것 같은데······ 상단이나 표국의 표사들이 몸에 병기를 지니고 다닌다는 것을 알기는 하지만 어쩐지 불안한걸.’
 안자명은 술을 마시면서도 주위의 동정을 살피기에 주저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초행의 두려움이라고 하기보다는 많은 사람을 본다는 것이 신기해서였다.
 몸에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
 뭐랄까?
 본능처럼 다가오는 기이한 느낌, 그것은 전율과도 같았다.
 그 동안 산에서 보아왔던 제자들이나 간혹 무공을 익히거나 사문에 인사를 하러 오는 속가제자들과는 다른 느낌을 주는 사람들이었다.
 사실 속가제자라 부르는 개념은 도문이나 불문의 제자에게 어울리는 말이다. 그들이야 그리 부를지 모르지만 속가일문인 종남이 제자를 본산제자와 속가제자로 나눈다는 것은 그다지 어울리는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종남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리 나누고 있었는데 안자명으로서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간혹 눈에 보이는 사람들 중에는 주당(酒黨)이 섞여 있었다.
 그들은 오늘 열 동이의 술을 마시고 죽어도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같았다. 술잔을 버리고, 탕(湯)을 담아 먹는 그릇으로 사용되는 커다란 주발에 콸콸 소리가 나도록 술을 따라 단숨에 털어넣는 사람들.
 그들은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고 입에 술을 들이붓고 있는 것 같았다.
 안자명은 한동안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도 했지만 그들이 부럽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사실, 안자명은 자신이 나름대로 누구에게 뒤지지 않는 내공을 익히고 있다고 생각했다. 내공이 강하다는 것은 쉽게 술에 취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내공을 이용해 몸속에 축적되는 술기운을 기화(氣化)시켜 날려버릴 수 있는 것이 바로 내가고수였다. 따라서 내공이 강하면 강할수록 술은 무한정 마실 수도 있었다.
 누구보다 술을 많이 마실 수 있지만 애써 자제하고 술 마시는 일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안자명은 매우 조심스럽게 술을 마셨다.
 주호(酒壺)를 기울여 대나무 그림이 새겨진 청분사기(靑粉沙器)에 술을 따라 한 모금씩만 마셨다. 한 모금은 정확하게 술잔의 반이다. 안자명은 그렇게 마시는 것을 좋아했다.
 이미 자시(子時)가 넘었을 것 같은 이슥한 밤이었다.
 
 
 第五連 너무 하는군
 
 
 우당탕!
 갑자기 붉은 진흙을 구워 깔아놓은 입구에서 둔탁한 소리가 울리더니 두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결같이 사십대로 보이는 자들이었다.
 안자명은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숨결이 빨라지고 손에 힘이 들어가는 그 행위는 그의 사고(思考) 속에서 의식하는 것이 아니었다. 머릿속의 생각보다는 몸에서 느껴지는 본능적인 것으로, 사존은 그의 감응(感應)이 놀랍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사존의 말에 의하면 안자명은 뛰어난 감각을 지니고 있으며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하는 기이한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안자명은 이미 무언가 알 수 없지만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나리라는 것을 감지한 것이다.
 안자명은 불안한 마음을 억누르며 눈을 들어 입구로 들어온 자들을 바라보았다. 나타난 두 사람은 본 자로 하여금 웃음을 금치 못하게 하는 행색을 지니고 있었다.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키가 구 척이 넘어 보였는데 머리카락이 한 올도 없었다. 안자명은 그런 몰골을 지닌 사람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세상은 넓구나.’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참으며 눈을 들어보니 더욱 가관이라 할 수 있는 사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일부러 문신(文身)을 새긴 것인지, 태어날 때부터 그러한 흉터가 남은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머리카락이 한 올도 없는 전두부(前頭部)에는 퍼런 멍이 들어 있었다. 그 모습이 똬리를 튼 뱀의 모습과 같아 안자명은 일부러 새긴 문신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리고 머리는 얼마나 반질거리는지 곡유(穀油)를 발라 목욕을 한 것 같았고, 주청의 벽에 걸린 용봉등(龍鳳燈)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으로 인해 머리에서 빛이 반사될 지경이었다.
 눈이 부시다고 할까?
 아무튼 어디를 가도 시선을 묶을 수 있는 그런 몰골을 지닌 사내라는 것은 틀림없었다. 누구의 눈에나 드러나는 기이한 독두(禿頭)로 인해······
 “하하하, 안녕하시오!”
 독두 사내는 제법 호탕하게 느껴지는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지만 안자명은 기분이 개운치 않았다. 이토록 사람이 적지 않은데 마치 천하가 자신의 것인 양 소리를 지르다니. 모르기는 해도 배워먹지 못한 불한당 같은 놈일 것이다.
 알 만한 놈이 그처럼 무식하게 소리를 지르진 않을 것이다.
 만약 술을 마시고 있지 않았고 서역이 아니라면 안자명은 일어서서 한마디했을 것이다. 그러나 안자명은 소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고 자신은 아직 서역에 초행길이라는 것을 생각해 애써 참으며 술잔을 홀짝거렸다. 그 와중에도 독두 사내의 모습을 뜯어보기를 멈추지 않았다.
 독두 사내의 덩치에 어울린다고나 할까!
 그의 등에는 대부(大斧)가 걸려 있어 마치 도살장의 소를 잡으면 어울릴 것 같은 모습이었다. 더구나 칠흑처럼 검붉은 피부는 그가 오랜 세월 동안 외공(外功)을 연마한 무인이라는 사실을 말해 주는 듯했다. 아무튼 그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사실이었지만 그가 지닌 체격은 정말 부러울 지경이었다.
 ‘제길, 옷이라도 단정히 입고 다닐 일이지.’
 안자명은 입맛이 썼다.
 사냥꾼도 아닌 것 같은데 찢어발기다 만 짐승가죽을 둘둘 말고 다니는 건 또 뭔가?
 가슴이 모두 드러나 있었다.
 가슴의 근육 자랑을 할 일이 있다는 건가?
 아무튼 그를 보는 순간 안자명은 언젠가 종남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종남백사(終南白寺)의 경내에 세워져 있던 구 층의 철탑(鐵塔)을 생각했다.
 철탑같이 보이는 사내의 뒤에는 키가 육 척 정도밖에 되어 보이지 않는 가냘픈 사내가 매미처럼 따라왔다. 키가 작은 사내의 허리에는 자루가 짧은 한 쌍의 낫이 덜렁거리고 있었다.
 그것이야말로 외문병기를 극도로 수련한 외가고수들이 사용하는 병기 중 하나인 혈겸(血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쭉 째진 눈과 생쥐를 연상케 하는 용모를 지닌 사내, 어쩐지 밥맛이 없어지는 것 같았다.
 그는 주렴을 스치고 들어서며 째진 눈 틈으로 눈빛을 번뜩거렸는데 눈동자가 쉴새없이 구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곳에서 일이 난 것 같아.’
 안자명은 머리카락이 곤두서고 호흡이 가빠지는 것 같았다. 그것은 본능이라 할 수밖에 없는데.
 그들은 주청을 이리저리 훑어보다 무엇을 발견한 듯 거리낌없이 한 곳으로 다가갔다. 그곳은 문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곳이었는데 그곳에는 너무나 눈이 띄는, 각각 흰색과 칠흑처럼 검은 옷을 입은 두 명의 노인과 화사한 비갑(比甲)을 걸친 한 명의 소녀가 음식을 먹고 있었다.
 ‘저들도 관심이 있는 모양이군.’
 안자명은 눈에 힘을 주었다.
 분위기로 보아서는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은 관심이었다. 아무튼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안자명은 그들에 대해 일찍부터 주의를 가지고 바라보고 있었고 은근한 관심도 있었다. 그것은 소녀의 용모가 눈을 파고들 듯 뛰어나다는 이유도 있지만, 흑백이 뚜렷한 두 사람의 복장이 눈을 묶기 때문이기도 했다.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으니 당연히 그들에게 접근하는 사람이 있음을 알았고, 더불어 다가서는 자들이 좋은 인상을 지니지 않았다는 것도 짐작할 수있었다.
 그저 느낌으로 알 수 있는 일만은 아니었다.
 외양으로 보아 두 명의 노인은 평범해 보였지만 간혹 주위를 둘러볼 때 눈에서 흘러나오는 빛이 범상치 않았고, 소녀는 창백한 얼굴이 짙은 병색(病色)을 지니고 있었다.
 노인들의 나이는 육십을 넘었지만 소녀는 열일곱 정도의 나이를 지니고 있었다. 이목구비로 따지면 미녀로서 이름을 날렸겠지만 얼굴이 창백하고 병색이 짙어 아름다움을 상쇄시키고 있었다. 더구나 그녀의 눈은 파란색이었다.
 그러나 얼굴의 윤곽과 여러 가지 정황을 볼 수 있었기에 그녀가 혼혈(混血)이라는 것도 짐작할 수 있었다.
 ‘아름다운 소녀다.’
 안자명은 침을 삼켰다.
 몸에는 목단이 수놓아진 아리따운 비갑을 걸치고 있었고, 은은한 갈색이 나는 머리카락이 고왔다. 목단두(牧丹頭)를 틀어올린 머리가 중원의 여인들보다 곱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름다운 손이다.’
 안자명은 흥분했다.
 짜릿한 흥분이랄까?
 절로 가슴이 뛰는 일이었다.
 입술이 마르는 것 같아 혀로 축이고 나서야 마음의 안정이 될 정도였다.
 그녀의 손가락이 안자명의 눈에 들어왔던 것뿐인데.
 맹세하지만 안자명은 그녀의 손가락처럼 아름다운 손가락은 본 적이 없었다. 물론 종남산을 중심으로 삼아 근동 수십 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인이라는 사매에게서도 그처럼 온몸이 떨릴 정도로 전율이 일어나는 감정을 느낀 적이 없다.
 아마 사내들이 여인의 손만 보고도 사랑을 느끼고 몸에 이는 음심(淫心)을 느끼게 된다면 바로 그녀의 손이 그러했을 것이다. 안자명은 그녀의 손가락을 보는 순간 자신이 왜 그녀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있는가 하는 의문의 해답을 얻은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한숨이 나왔다.
 가지런한 손가락, 마디 없는 유려한 손, 실핏줄이 보일 것 같은 피부가 눈 앞에 있었다. 너무 길지도 않았고 짧지도 않았다. 손톱은 진한 분홍색으로 광택이 넘쳤다. 파리한 몸과는 다른 아름다움이 그녀의 손에 머물러 있었다.
 ‘너무 아름다운 소녀다. 미인박명(美人薄命)이라고 하는 말이 있다더니, 눈이 부시게 아름답기는 하지만······ 무슨 병이 걸렸기에······ 병색이 지나친 것이 흠이다.’
 비가 온 후 피어난 화사한 복사꽃 같다는 생각이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안자명은 그리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의 얼굴에 피어난 병색을 느끼는 순간에는 마음이 아파지는 것 같았다.
 안자명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소녀를 바라다보다 불현듯 어이없는 실수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여인의 손가락에 정신을 빼앗기다니.’
 그는 마음 속에 피어나는 소리를 들었다.
 창피한 마음이 들어 피하려고 눈을 돌리다 그녀의 가슴을 보고 말았다. 맹세코 원해서 본것이 아니었다.
 “이크!”
 절로 나는 부끄러움.
 고봉처럼 높은 가슴의 굴곡이 눈에 들어왔다. 안자명은 불현듯 관자놀이에 열기가 스미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떨구었다.
 망할!
 안자명은 한참 동안 고개를 숙이고 마음을 다잡은 뒤에야 얼굴을 들고 태연한 표정으로 그들을 다시 볼 수 있었다.
 색목(色目)의 여인.
 그녀의 얼굴까지도.
 안자명은 초점을 맞추듯 눈에 힘을 주고 그들을 주시했다. 그가 느꼈던 기이한 감응의 실체가 그들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기에는 그다지 어려움이 없었다.
 소녀는 얼굴을 수그리고 부지런히 음식을 먹는 척했다. 그러나 동작이 과장되었을 뿐, 그녀의 손놀림으로 보아서는 그다지 빠르지는 않았다. 한눈에 보아도 그녀의 행동이 극히 부자연스러워 보였고 어딘지 모르게 허둥거림을 숨기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자세히 보면 알 수 있었다.
 일부러 고개를 숙인 그녀는 어깨까지 움츠렸다.
 ‘이유가 뭐지?’
 안자명은 괜히 목이 가려워지는 것 같은 느낌에 영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나저나 내가 왜 관심을 쏟는지 모르겠군.’
 안자명은 어쩐지 우습다는 기분이었다.
 그들이 누구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소녀를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은, 그녀의 미모를 따지기 이전에 아픈 사람을 도와주어야 한다는 아주 단순한 생각이었다.
 안자명은 의학(醫學)에 조예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내공에 조예가 있기 때문에 그녀의 안색을 보는 것만으로도 심상치 않은 병을 앓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어떻게 한다······’
 마음이 여간 불안하지 않았다.
 한 순간, 철탑 같은 사내가 눈에 흉흉한 웃음을 흘리며 그들의 앞으로 다가왔다. 그들이 다가서는 것을 보면서 고개를 숙였던 소녀였지만 철탑 같은 사내가 다가서자 어쩔 수 없었는지 고개를 들었다.
 창백한 얼굴과는 대조적으로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얼굴이었다. 변화없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든 그녀의 모습은 조금 전 그녀가 그들의 눈을 피해 일부러 고개를 숙였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고개를 드는 소녀의 얼굴과 마주친 철탑 같은 사내의 얼굴에 징그러운 웃음이 흘렀다.
 “우후후! 모용지(慕容芝), 어디까지 도주했나 했더니 겨우 이곳에서 대가리를 처박고 있었군. 나는 모용가문의 보법이 빠른 줄 알았더니 겨우······ 이제야 모용필비(慕容弼琵)가 얻은 이름이 허명인 줄을 알겠다!”
 사내의 목소리는 우렁차게 들려왔지만 그다지 정감이 가거나 그 목소리에서 웅심 따위를 찾을 수 없었다.
 어딘지 모르게 쫓기는 듯한 어투.
 목소리와 말 속에 숨어 있는 내용은 너무도 차이가 났다. 만약 도주하는 사람이 안간힘을 써서 소리를 질렀다면 듣는 사람이 그러한 목소리라고 생각할 것이다.
 안자명은 인상을 찌푸렸다.
 ‘아무래도 기이한 일인걸.’
 고개를 들던 안자명은 보았다.
 모용지의 입술이 깨물려지는가 했는데 눈동자가 구르고 얼굴이 발그레하게 달아오르는 것을······
 그녀의 주위에 앉아 있던 두 명의 노인, 그들은 쌍둥이가 분명했다. 얼굴이 닮았을 뿐 아니라 몸집도 닮았다. 다른 것이라고는 한 명은 검은색의 옷을 입었고, 한 명의 노인은 백색의 옷을 입었다는 것 정도.
 ‘잠깐······ 지금 모용필비라 했던가?’
 안자명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는 분명 그 이름을 들었던 적이 있다는 생각을 했다. 아련하지만 이름이 특이하다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던 것 같다. 가물거리는 생각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조금 전 철탑 같은 사내의 입에서 나온 목소리가 아니라 어디선가 모용필비라는 이름을 들은 적이 있는 것 같았다.
 ‘누구였더라······’
 기이한 일이었다.
 안자명은 자신의 머리가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모용필비라는 이름은 기이하게도 수면(水面) 아래로 깊게 잠긴 것처럼 얼른 생각이 나지 않았다. 되짚어보고 새겨보아도 분명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는데. 그런데 그 모용필비라는 사람의 이름이 저 소녀와 관계가 있다는 말인가?
 ‘이름이 모용지라 했다.’
 안자명은 모용이라는 성을 기억해 내려고 애를 썼다. 어쨌든 그녀의 이름이 모용지라 했고, 모용필비라는 사람과 성(姓)이 같으니 그와는 혈연일 것이다. 딸이거나 손녀, 혹은 먼 친척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저 덩치만 큰 거지발싸개 같은 자의 말투로 보아서는 그 소녀가 모용필비라는 사람과는 아주 가까운 사이일 것이고, 모용필비의 무공을 전수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모용필비,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없지만 뛰어난 무공을 지니고 있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철탑 같은 사내가 그처럼 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마음이 끌렸다.
 ‘내가 왜 이리 신경을 쓰고 있지.’
 어이가 없었다.
 무슨 관계가 있는 사이도 아니고 기억에도 없다. 당장에 관계가 없다 해도 어디선가 들었거나 관계가 있는 사람이라면 생각이 났을 것이다. 소박하게 생각해 종남을 찾아왔던 손님이라 해도 기억이 날 터인데 도통 기억이 나지 않으니 인간관계는 없다 보아도 틀리지 않았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저 평범한 이름일 수도 있는데 고민을 한다는 것이 우습게 느껴졌다. 다시 생각하면 하등의 관계도 없는 사람이 아니던가?
 아무튼 모든 것을 무시한다고 해도 모용필비라는 이름이 머릿속에 남는 것은 어떤 이유일까?
 ‘나와 관계가 있는 사람인가?’
 무슨 이유인가?
 안자명은 바람 소리가 날 정도로 웃었다. 흔하지는 않아도 사람의 이름 하나 때문에 고민할 이유가 전혀 없는 그가 아니던가? 이야말로 사서 고생하는 격이라 할 것이다.
 기억나지 않지만 무엇인가 있기는 하다.
 뭘까?
 뭘까?
 도대체 뭘까?
 생각은 나지 않고 머릿속에선 개미가 기어다니는 것 같아 미칠 지경이었다.
 안자명은 애써 무심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마음 속으로는 모용필비가 누구인지 생각하려 애를 쓰고 있었다. 그것은 기이하게도 끌리는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마치 오랜 인연이 있었던 사람의 이름 같기만 했는데······
 안자명이 고민으로 머릿속의 핏줄 하나하나를 헤집고 기억을 더듬는 사이 백색 옷을 입은 노인이 일어섰다. 아주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모습은 허리가 구부러져 거동에 불편을 느끼는 노인의 모습을 연상시켰다.
 그때 안자명은 보았다.
 그 노인의 옆구리에는 한 쌍의 반월인(半月刃)이 걸려 있었다. 길이가 한 자를 넘을 것 같지 않은 한 쌍의 반월인이 그의 병기인 것 같았다.
 그가 무인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천하는 넓고 무인은 많다.
 무인이 아니라도 병기를 차고 다니는 사람은 적지 않다. 그것은 가문을 나타내거나 재력을 나타내기 위해, 혹은 호신용으로 차는 경우도 있다. 상단이나 표사들도 병기를 차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에 그들은 무인이랄 수 있지만 무림인이라 하지는 않는다.
 노인은 무림인이었다.
 무인들은 병기를 지니지만 노인처럼 기문병기(奇門兵器)를 사용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무림에 목을 매고 살아가는 무림인들만이 그처럼 기이한 외문병기를 소지할 뿐이다.
 아무튼 기이한 형태의 병기였다.
 반월인은 곡선으로 휘어져 있었고 등 쪽이 굵어 손으로 잡을 수 있는 홈이 파여져 있었다.
 ‘세상에는 참으로 많은 병기들이 있구나.’
 안자명은 병기에 눈길을 주었다.
 그는 그러한 병기를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한참 동안을 홀린 듯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안자명도 숱한 병기를 보았다.
 종남은 불문이나 도문처럼 심신을 단련하고 동도들을 보호하기 위해 무공을 발전시킨 것이 아니다. 대개의 무파들이 수련의 한 방편으로, 혹은 수련을 방해하는 것들을 방어하고 때로는 같은 목적을 지닌 사람들을 돕거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무공을 발전시켰다. 그러나 종남은 그 태동부터 달랐다.
 종남은 다른 문파들의 성립이 있은 후에도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야 이루어진 문파였다.
 목적을 지닌 문파.
 종남을 세운 목적은 속가사람들이 힘을 모아 목적을 이루기 위한 것으로, 그야말로 싸움기술을 익히기 위한 것이다. 세월이 흘러 그 의미가 달라져 지금은 무인들의 정신수양을 위해 정진하고 있지만, 과거에는 오로지 싸우는 기술을 익히고 무인들의 목적을 위해 세운 문파였다. 따라서 십팔반병기(十八班兵器)를 모두 포함하는 무공을 지니고 있었다.
 안자명은 종남의 제자로서, 언젠가는 장문인의 대를 이을 제자로서 완벽하다 할 수는 없어도 종남의 무공을 골고루 섭렵했다. 그 과정 중에는 각종 병기를 사용하는 법도 있는데 지금처럼 반월인을 사용하는 무공은 없었다.
 “외문병기, 심상치 않아.”
 안자명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지만 모르는 척 술잔을 기울였다. 그것만이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종남의 제자들은 한결같이 검을 사용한다. 언젠가 제자들이 하는 말을 들었는데, 검을 사용하는 것이 명문정파의 자존심이라는 말을 들은 것 같기도 했다.
 백일도(百日刀) 천일검(千日劍)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검을 익히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말해 주는 것인데, 종남의 제자들이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검을 소지하는 것은 검의 수련이 어려운 만큼 정도인들은 수련과 수양에 그 중심을 둔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더불어 도(刀)와 다른 외문병기를 사용하는 자들을 멸시하기도 한다.
 그때, 그는 보았다. 안자명이 술잔을 기울이기 위해 잔을 들어올렸을 때였다. 안자명은 불현듯 눈이 따갑다는 생각을 했다. 눈을 돌리고 보니 모용지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눈이 마주치자 안자명은 그녀의 푸른 눈이 자신의 마음을 뚫어보는 것 같아 서늘한 기운을 느꼈다.
 무어라 표현할까?
 그 눈의 의미를 알 수 없었다.
 “어······ 나는······”
 안자명은 황급히 얼굴을 돌렸다.
 어이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가슴이 뛰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안자명은 그녀의 얼굴과 몸매를 바라보았지만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았다. 다만 술기운에 얼굴이 붉어진 것이다. 그렇지만 가슴의 기복을 속일 생각은 없었다.
 그것이 그의 감정이었으니.
 안자명이 마음을 가다듬고 돌렸던 얼굴을 바로 하며 고개를 들었을 때 모용지도 눈을 돌리고 나타난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누, 누구예요?”
 철탑 같은 사내는 그저 누런 이를 보이며 웃었을 뿐이다.
 모용지가 다시 한 번 부르르 몸서리를 쳤다.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없지만 안자명은 마음 속을 파고드는 기이한 느낌을 받았다. 언젠가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안광(眼光)이야.’
 언젠가 사존은 극도의 수련을 통해 경지에 오르면 눈빛으로 사람을 제압할 수 있다고 알려준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에게 안광을 쏘아 보낸 적이 있었다.
 당시, 그리 오래 전도 아니었지만 안자명은 마치 뱀 앞에 웅크린 개구리처럼 몸이 굳는 것을 느끼며 옴짝달싹도 하지 못한 적이 있었다. 그것이 내공의 힘이라는 것을 모를 리 없었다.
 어쩌면 안자명도 안광 정도는 뿌릴 수 있을지 모른다. 단 한 번도 사용한 적은 없지만.
 아마 모용지도 그런 눈빛에 마음을 제압당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위압감을 느꼈을지도 모르는 일. 그렇다면 그녀를 핍박하기 위해 나타난 자는 덩치만 큰 것이 아니고 내공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대단한 자다.’
 안자명은 새삼 세상이 넓다는 생각을 했다.
 보통의 속설이지만 무림에서 서역은 역외로 컸다. 오죽하면 세외(勢外)라는 말 속에 서역을 포함시켰을까. 그것은 서역이나 서장(西藏), 천축(天竺)과 부상(扶桑), 해동(海東)과 같은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비하(卑下)라는 것을 속일 수 없지만, 그들이 지닌 무공도 별볼일 없다는 것을 비꼬는 말이기도 했다. 오죽하면 이 모든 세력들과 땅을 새외(塞外)라는 말과 세외(世外)라는 말을 혼용했을까?
 ‘내공과 외공을 두루 지닌 자로군.’
 안자명은 고개를 끄덕였다.
 외공에 일가를 이룬 자는 내공에 약한 것이 보통이다. 그것은 무림의 속설이기도 했다.
 사내는 달랐다.
 어쩌면 내공보다는 외공에 적합한 신체를 지니고 있어 내공보다는 외공을 익혀 외가고수가 되는 경우도 있다. 사리분별을 해보았을 때 철탑같이 덩치가 큰 사내는 내공보다 외공을 극성으로 익혔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데도 모용지의 몸에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은, 눈이 마주친 것으로 몸을 떨 정도라는 것은 사내의 내공이 눈을 통해 드러날 정도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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