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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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2018.03.30 조회 1,646 추천 12


 prologue
 
 
 
 
 
 
 
 오래전 어느 봄날의 일이다.
 
 검은 양복을 입은 덩치들이 들이닥치고 집안은 난장판이 됐다. 장식장이 박살 나고 도자기가 깨지고, 집안에 남아나는 것이 없었다.
 
 그들이 행패를 부리는 동안 나와 가족들을 차가운 시선으로 주시하는 남자가 있었다. 그는 피부가 창백할 만큼 희고 검은 선글라스를 쓴 예리한 인상의 남자였다.
 
 남자는 흰 장갑을 낀 손으로 나이프를 장난감처럼 다루며 말했다.
 
 “길게 말하지 않겠소. 언제까지 갚을 거요?”
 
 아버지께서 고개를 조아렸다.
 
 “조금만 더 기간을 주면 그때······.”
 
 “말귀가 어둡군.”
 
 남자는 아버지의 말을 중간에 끊고는 턱을 까닥였다. 그러자 덩치 하나가 앞으로 나서며 아버지를 발로 차 넘어트렸다.
 
 고통에 신음을 흘리는 아버지를 목도했을 난 제정신이 아니었다. 내 안에서 작은 불씨가 타오르기 시작한 건 아마 그때였을 거다.
 
 겁먹은 채 꼼짝도 않던 난 무슨 용기가 생겼는지 덩치를 향해 달려들었다.
 
 “아빠 때리지 마!”
 
 뻑.
 
 덩치의 허벅지에 매달리기 무섭게 뒤통수에 묵직한 충격이 전해졌다. 앞으로 고꾸라진 날 잡아 일으킨 건 선글라스를 낀 그 남자였다.
 
 그는 감정이 담기지 않은 탁한 시선으로 날 쳐다봤다.
 
 “얼굴이 곱구나.”
 
 남자가 날 보며 던진 말이다.
 
 그가 왜 그런 말을 던진 건지 그 순간에는 알지 못했다.
 
 설사 알았다고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겠지만.
 
 남자는 내 머리채를 쥐어 고개를 젖히게 만들고는 나이프를 스윽 그었다. 창졸지간에 벌어진 일이라 어느 누구도 말리지 못했고 소리조차 지를 수 없었다.
 
 “······!”
 
 피부가 갈라지는 아찔한 느낌과 함께 뜨거운 액체가 내 왼 뺨을 흥건히 적셨다.
 
 손에 묻어난 핏물을 봤을 때, 신기하게도 내 머릿속엔 고통과 공포가 싹 사라졌다. 감당할 수 없는 충격으로 무아지경에 빠져 버렸던 것이다.
 
 사람이 너무 놀라면 그런 상태에 이를 수 있구나 하는 걸 난 그때 알았다.
 
 어째서? 왜? 왜?
 
 의문에 의문을 거듭했다.
 
 왜 이런 일이 내게 벌어진 것인지 그 이유가 무척 궁금했었나 보다.
 
 아버지께서 남자 발밑에 꿇어앉아 사정하는 모습이 내 눈에 비쳤다. 그 장면을 목도했을 때야 비로소 뺨의 상처에서 아린 고통이 느껴졌다.
 
 비굴했다.
 
 꿇어앉아 절한 건 아버진데도 비굴해지는 건 나였다.
 
 “끄으······.”
 
 내면 깊은 곳에서부터 뜨거운 무언가가 고개를 내밀었다.
 
 기분 좋은 따듯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가슴은 물론 머릿속까지 뒤죽박죽 만신창이로 만드는 뜨거운 열기였다. 그 열기 때문에 생긴 주체할 수 없는 갈증은 날 더욱 견디기 힘들게 만들었다.
 
 형용할 수 없는 분노.
 
 그 뜨거운 열기의 정체는 바로 분노였다. 누굴 향한 분노인지 스스로도 가늠할 수 없었다.
 
 꿀꺽.
 
 마른 침을 삼키며 억지로 분노를 삼키려 했다.
 
 하지만······ 이미 거대해진 불덩어리를 삼키기엔 너무 늦어 있었다.
 
 흐릿해진 눈시울만 더욱 뜨거워질 뿐이었다.
 
 
 
 
 
 
 
 1. 전조(轉調)
 
 
 
 
 
 
 
 1.
 
 
 
 길거리 막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건 깡과 배짱이다.
 
 깡으로 기선제압하고 악으로 물고 늘어지면 웬만해선 지는 법이 없다. 물론 상대가 프로 격투가나 경험 많은 노련한 싸움꾼이 아니라는 전제 하에서 가능한 일이다.
 
 후미진 골목에서 교복이 서로 다른 학생들끼리 쌈질이 한창이었다. 아니, 전세가 이미 한쪽으로 기울어져 막바지에 이르고 있었다.
 
 “아우, 이 개새끼들이. 그냥 확!”
 
 승리에 도취된 학생들이 쓰러진 학생들을 향해 삿대질을 하며 욕을 퍼부었다. 그것은 승자만이 누릴 수 있는 당연한 권리였다.
 
 유난히 덩치 좋은 놈이 학생 하나를 깔아뭉개며 말했다.
 
 “용마고 새끼들도 별거 아니구만. 이딴 새끼들이 여태껏 어깨에 힘주고 다녔던 거야?”
 
 덩치는 거대 이스터 석상을 연상케 하는 두상을 가졌는데 인상이 매우 험악했다. 그런 녀석이 부리부리한 눈으로 쏘아보자 잔뜩 기가 죽은 용마고 학생들은 감히 덤벼들 생각을 하지 못했다.
 
 “새끼들, 쫄았네!”
 
 덩치가 껄껄 웃자 그의 패거리들도 따라 웃었다.
 
 “피라미는 필요 없으니까 어서 가서 너네 학교 대가리 데려와.”
 
 “이미 와 있어, 새꺄!”
 
 방금 외친 목소리의 주인공이 골목 입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덩치와 그의 패거리들은 조금 긴장한 눈빛으로 목소리의 주인공을 주목했다.
 
 덩치는 자신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오는 놈을 보고 한눈에 만만치 않은 상대란 걸 느꼈다.
 
 “남준상?”
 
 준상은 자신을 알아보는 덩치를 보며 같잖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강인해 보이는 근육질 몸매와 큰 키, 날렵한 턱선, 오뚝한 콧날과 짙은 눈썹하며. 여기까지 보아서는 모델 뺨치는 잘난 주인공을 상상할 법도 한데, 그놈의 성깔 더러운 눈매가 문제였다. 게다가 왼쪽 뺨엔 길쭉한 흉터까지 있어 험악해 보이기까지 했다.
 
 어느덧 준상은 덩치 앞에 발걸음을 멈추고 나란히 섰다. 두 사람이 나란히 서고 보니 키 차이가 제법 났는데 덩치가 반 뼘 이상 더 컸다.
 
 ‘새끼, 졸라 크네!’
 
 준상의 입꼬리가 살짝 씰룩였다.
 
 이거 상대하기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겉으로 드러내진 않았다.
 
 명색이 싸움으론 용마고를 대표하는 자신인데 겁먹은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이럴 때일수록 더욱 강하게 나가 깡으로라도 이기는 모습을 보여 줘야만 했다.
 
 준상은 덩치를 마주 쏘아보며 말했다.
 
 “깔아.”
 
 “뭐?”
 
 “눈 깔라고.”
 
 얕잡아 보는 준상의 말투에 버럭 화가 난 덩치는 대뜸 주먹부터 내질렀다.
 
 퍽!
 
 준상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다리도 한걸음 벌리고 나서야 겨우 서 있는 자세를 지탱할 수 있었다.
 
 “퉤!”
 
 준상이 침을 뱉자 피가 섞여 나왔다.
 
 ‘이런, 씨발!’
 
 엄청 아팠다. 정신이 멍한 것이 쓰러지지 않은 게 요행일 지경이다.
 
 하지만 그걸 내색할 수 없다. 쪽팔리니까.
 
 “이것도 주먹이라고. 덩치만 컸지, 완전 솜 주먹이네.”
 
 그 솜 주먹에 나가떨어진 애들이 수십이었다. 조금 전에도 서너 명이 그 주먹에 맞아 맥없이 쓰러졌었다.
 
 준상이 허세를 부린다고 생각한 덩치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달아올랐다.
 
 “이게 장난하나!”
 
 화가 난 덩치가 주먹을 뻗자 준상도 같이 오른 주먹을 휘둘렀다.
 
 뻐억!
 
 주먹이 교차하는 순간, 준상은 피했고 덩치는 맞았다. 한 방에 다리가 풀린 덩치가 주르르 쓰러지려 할 때, 준상은 놈의 승모근을 쥐어짜듯 움켜쥐었다.
 
 “끄아아악!”
 
 고통을 참지 못한 덩치가 바들바들 몸을 떨며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준상은 차가운 눈빛으로 덩치를 쏘아보며 말했다.
 
 “앞으로 내 앞에서 눈 깔고 다녀라.”
 
 
 
 * * *
 
 
 
 주택가 골목길 옆에서 준상은 친구 김태환과 함께 나란히 쪼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태환은 길쭉한 얼굴을 가진, 누가 봐도 뻔질뻔질해 보이는 아이였다. 작은 키가 콤플렉스인 태환은 키 높이 구두를 신고 있었는데 그럼에도 함께 있는 준상과 제법 키 차이가 나 보였다.
 
 “준상아 오늘 수고 많았다.”
 
 태환은 친구의 노고를 칭찬하듯 준상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하지만 준상의 반응은 영 싸늘했다.
 
 “다음부터 애들 싸우는데 나 부르지 마.”
 
 “야, 그래도 애들이 맞고 있는데 어떻게 그냥 두냐.”
 
 “몰라, 귀찮아!”
 
 일진이라는 감투가 언뜻 멋져 보일지 몰라도 그만큼 귀찮은 것도 없었다.
 
 ‘무슨 해결사도 아니고, 애들 쌈질만 하면 쫓아다니기 바쁘니 원······.’
 
 연신 툴툴거리는 준상을 보고 태환은 끌끌 웃었다.
 
 얼마 전에 싸움이 있었을 때도 준상은 이와 똑같은 반응을 보였지만 결국엔 달려왔었다. 말은 저렇게 툭툭 거칠게 내뱉으면서도 누구보다 잔정이 많고 의리감 넘치는 놈이란 걸 태환은 알고 있었다.
 
 멀뚱히 준상을 쳐다보던 태환이 말했다.
 
 “눈에 힘 좀 빼니까 훨 보기 좋구만. 사람이 확 달라 보이네.”
 
 조금 전 덩치와 싸울 때와는 다르게 준상의 눈빛은 평온해 보였다. 험한 눈빛이 사그라지자 얼굴에 보기 흉한 흉터가 있어서 그렇지 충분히 호감을 주는 외모였다.
 
 태환이 히죽 웃으며 새끼손가락을 흔들어 댔다.
 
 “요즘엔 주리랑 잘 지내냐?”
 
 “그냥 그럭저럭.”
 
 준상은 담배를 비벼 끄며 내뱉듯 대답했다.
 
 별일 없는 것처럼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실은 보름이 넘도록 주리에게서 연락이 없었다. 전화를 해도 받지 않고 문자를 넣어도 씹히기 일쑤였다.
 
 어쩐지 이별 수순을 밟는 것 같아 두렵기까지 했다.
 
 ‘젠장, 싫으면 싫다고 말을 하던가!’
 
 은빛 여고 3학년에 재학 중인 한주리는 준상과 동갑이었다. 가수 지망생인 한주리는 이미 인터넷을 통해 깜찍한 외모로 소문이 났던 인기인이었다. 아직 연예인으로 데뷔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그녀를 위한 인터넷 팬 카페까지 있으니, 외모만큼은 발군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그런 한주리가 준상에게 먼저 대뜸 사귀자며 제안을 했을 때 주위 친구들이 도저히 믿기지 않아 한 건 당연한 반응이었다.
 
 얼마나 놀랍고 부러웠으면 태환은 준상과 주리를 두고 미녀와 야수라며 심심찮게 놀려 댔을 정도였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준상과 태환 사이를 오가는 가운데, 누군가 둘을 향해 헐레벌떡 뛰어왔다. 키가 크고 잘생긴 학생이었는데 풍기는 분위기만 봐서는 두 사람과 전혀 어울려 보이지 않았다.
 
 그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헉헉, 너희 여기 있었구나?”
 
 태환은 손목시계로 시간을 확인하더니 그를 향해 고개를 갸웃해 보였다.
 
 “너 여긴 왜 왔어?”
 
 “니들 여기서 싸우고 있단 얘기 듣고 달려왔지.”
 
 태환은 잘생긴 놈을 보고 기가 막혀 깔깔 웃기까지 했다.
 
 “허이구, 누가 의리의 사나이 차연우 아니랄까 봐.”
 
 준상이 용마고 일진에서도 대표격이라면 연우는 용마고를 대표하는 얼굴마담이었다.
 
 출중한 외모에 모델 뺨치는 신체 사이즈, 주먹도 만만치 않아 곱상함과 터프함을 동시에 갖춘 용마고의 왕자였다. 키는 준상이보다 조금 더 큰 185센티고, 수영으로 단련된 건장한 체격과 쭉 뻗은 긴 다리는 어떤 옷을 입혀도 소화가 가능했다.
 
 그뿐인가.
 
 학업 성적은 전교 1퍼센트인 최상위권, 아버지는 판사 출신의 유명한 변호사로 재력까지 받쳐 주어 그야말로 팔방미인이었다.
 
 공부 잘하지, 얼굴 잘났지, 집안도 좋지. 어디 하나 준상과 어울릴 구석이 없음에도 주먹을 나눈 사이라며 친구가 되었다. 곱상한 생김새와 달리 연우는 의리에 죽고 의리에 사는 별종 중의 별종이었다.
 
 머리를 벅벅 긁던 준상이 연우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넌 새꺄, 대학 가야지. 괜히 이런데 불려 다니지 마.”
 
 잘생긴 놈, 연우가 히죽 웃어 보였다.
 
 “요즘 통 니들 얼굴도 못 보고 해서 간만에 몸도 풀 겸 뛰어왔다.”
 
 자기 얼굴 보고 싶어서 왔다는데 준상도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는 연우를 까칠하게만 대할 수 없었다.
 
 “쯧, 얌전히 공부나 할 것이지.”
 
 그때 준상의 핸드폰이 삑삑거리며 문자가 왔다는 소식을 알렸다. 폴더를 열어 확인해 보니 대부 업체에서 돈 빌려 주겠다는 광고였다.
 
 그걸 보고 준상은 이맛살을 구기며 험한 인상을 지었다.
 
 “씨발, 또 대부 업체 광고네.”
 
 버럭 화를 내는 준상을 보고 태환이 키득거렸다.
 
 “허이구, 그냥 지우면 그만이지. 별것 아닌 걸 가지고 꼭 저렇게 열을 내요.”
 
 “모르는 소리 한다. 이런 사기꾼 새끼들은 죄다 조져 버려야 해!”
 
 못 말리겠다는 듯 태환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넌 아무래도 전생에 대부 업체랑 철천지원수 사이였나 보다.”
 
 굳이 전생까지 갈 필요도 없었다.
 
 대부 업체, 사채업자, 조폭들. 6년 전부터 준상의 가족을 핍박하던 놈들이었다. 그들의 이름만 들어도 준상은 분노로 치를 떨 정도였다.
 
 ‘경찰들은 뭐 하나? 이런 놈들 안 잡아가고.’
 
 준상이 씩씩거리고 있는데 핸드폰이 위이잉 하고 진동했다. 액정화면으로 번호를 확인하니 여동생인 수연으로부터 걸려온 전화였다.
 
 받을까 말까.
 
 준상은 고민했다.
 
 수연은 수재다. 싸움만 잘하는 준상과는 격이 다른 아이였다.
 
 사실 준상은 몇 년 사이 수연과 사이가 많이 벌어졌다. 툭하면 사고나 치고 집조차 드문드문 들르는 오빠를 달가워할 여동생이 어디 있을까.
 
 고민하던 준상이 결국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통화 중이던 준상의 표정이 점점 묘하게 일그러졌다. 벽돌처럼 단단히 굳은 그의 표정에서 뭔가 심상치 않은 소식을 접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 표정의 변화를 놓치지 않은 태환이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표정이 왜 그래? 집에 무슨 일이라도 생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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