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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경록 1

2018.04.03 조회 535 추천 0


 추경록 1권
 서장 감주부(甘州府)
 
 
 “죽여라!”
 “모조리 베어라!”
 한 떼의 무인들이 순식간에 거리를 점령했다. 한결같이 칠흑 같은 검은 무복을 입고 있었고, 턱만 보이는 방갓을 내려쓰고 있었다.
 손에 들고 있는 병기도 제각각이었다.
 “무인들이 난동을 부리고 있다.”
 길을 가던 행인들은 혼비백산(魂飛魄散)하여 흩어졌지만 그들이 휘두르는 칼날 아래 온전할 수 있는 자는 없었다.
 사람들은 그들이 가욕관(嘉 關)을 넘어온 흉노족(匈奴族)의 무인이거나 위구르족의 군사들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이 왜 감주부로 난입해 살인을 저지르는지 알 수 없었다.
 “쿠아아아!”
 “컥!”
 한적하던 관도에는 비명이 울리고 붉은 피가 허공으로 분수처럼 뿜어져 올랐다.
 푸하하하하―
 붉은 피가 허공으로 뿌려지며 무지개가 피어 올랐다.
 그들은 미친 듯 사람에게 달려들며 닥치는 대로 베고 쓰러뜨렸다. 평화롭기만 하던 감주부는 한 순간에 유혈이 낭자한 도살장(屠殺場)으로 변해 갔다.
 “산단산장주(山丹山莊主)에게 알려라.”
 골목 곡목으로 도주를 하던 사람들 가운데 누군가 소리를 질렀다. 감주부의 외곽에는 감숙에서 위용을 날리기 시작한 산단산장(山丹山莊)이 포진하고 있었고 그들이라면 능히 무인들을 제압하리라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모두 죽여라.”
 이십 명의 무인들은 자신들이 인간이기를 포기한 것 같았다. 그들에게 사람은 한낱 미물(微物)과도 같이 여겨지는 것 같았다.
 순식간에 관도에는 백여 명의 시체가 나뒹굴었다. 시체에서 흘러 나온 피가 관도를 붉게 물들였고 바람에 날리던 먼지는 가라앉았다.
 “미친놈들을 막아라!”
 “어서 죽여라.”
 공동파( 派)와 종남파(終南派)의 제자들로 보이는 자들이 달려들어 그들을 상대하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이들은 흐르는 피와 잘려진 수급의 숫자를 보탤 뿐이었다.
 한동안 만행을 자행하던 무인들은 갑자기 관도의 중앙에 모였다. 지속되던 살육도 멈추어졌다. 이미 사람들은 골목과 집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근 뒤였다.
 살육을 저지르던 무인들 틈바구니에서 거칠고 탁한 목소리가 울렸다.
 “산단산장주에게 알려라.”
 산단산장은 십칠 년 전 감주부 부근 흑하(黑河)와 산단목마장(山丹牧馬場) 사이에 장원을 세우며 두각을 나타낸 신흥방파(新興邦派)였다.
 그들은 한 순간에 감숙을 아우를 정도로 강대해져 공동과 종남파와 어깨를 겨루고 있었다.
 “우우우!”
 사람들은 감히 접근할 수도 없었다. 온통 피를 뒤집어쓴 그들의 모습은 사람이라 볼 수 없었다. 그들은 피를 즐기는 악마들이었다.
 살육을 멈추었던 무인들은 한동안 기다려도 달라지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자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들이 몸을 움직여 들어간 곳은 모래 벽돌로 지어진 삼 층의 누각이었다. 감주부에서는 가장 큰 빈관(賓館)인 서새루(西塞樓)에 그들이 들어가면서 관도에서 일어난 한바탕의 혈풍은 가라앉았다.
 서역(西域)의 무인들과 군사, 한족의 무인들과 군사들이 늘 부딪치고 피를 뿜어내며 혈륜(血輪)의 바퀴를 굴리는 곳이 감숙이었다. 그러나 누구도 그들처럼 사람을 처참하게 죽이고 난도질하는 자들은 보지를 못했었다.
 
 
 1장 살인흔적(殺人痕迹)
 
 
 1
 
 
 달이 떠오르고 있다. 붉고 둥근 달이다. 사람들은 그 달을 가리켜 보름달이라 불렀다.
 피가 끓어오른다.
 미칠 것 같은 열기가 온몸을 옥죄어 오는 것 같아 말로 형언할 수가 없다. 누군가 곁에 있다면 죽이고 말 것 같다.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나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게 될지도 모른다.
 만월(滿月)이 떠오르고 있다.
 피를 부르는 달이다. 멈출 수 없다. 어서 가야 한다. 피가 나를 부른다.
 
 ***
 
 마의(麻衣)인은 오랫동안 쪼그린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길을 가다 지친 나그네가 머리를 무릎 사이에 끼고 앉아 쉬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산발한 머리가 그의 안면(顔面)과 머리를 덮고 있었다. 제법 큰 덩치에 건실해 보이는 몸이었다.
 행적이 끊어진 관도는 고요 속에 잠들어 마치 물이 가득한 어항 같았다. 지나가는 사람도 보이지 않았고 무심한 달만이 빛을 토하며 흘렀다.
 두두두두두―
 마의인이 쪼그리고 앉은 지 한 시진이 지났을 때, 말발굽 소리가 들리며 두 필의 말이 빠르게 달려왔다. 마의인의 몸이 꿈틀거렸지만 이내 잠잠해졌다.
 “호호호! 이제 감주부가 멀지 않았군요.”
 “이제 반 시진만 달리면 감주부가 나타날 거다. 섬서행도사(陝西行都司)가 있는 곳이지.”
 말에 탄 두 명의 남녀는 무엇이 그리도 즐거운지 명랑한 목소리를 토하며 말을 달렸다. 관도에서 뿌연 먼지가 있어나 쪼그려 앉은 마의인의 머리에 한 꺼풀 먼지를 씌웠다.
 만월이 천중(天中)에 떠 있었다.
 더하지도 않았고 덜하지도 않은 십오야(十五夜)의 만월이었다. 하룻밤이 지나면 찌그러지기 시작할 그런 달이었다.
 마의인은 잠을 자듯 웅크린 모습으로 흘러가는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핫!”
 두두두두두―!
 두 필의 말이 사라진 지 반 다경이 지나지 않아 어디선가 말을 재촉하는 소리와 나무로 만든 다리 위를 달리는 것처럼 요란스러운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오래지 않아 말을 달리는 소리가 가까워졌고 사람의 형상이 희끄무레하게 드러났다. 등에 한 자루의 병기를 둘러메고, 무엇이 그리도 바쁜지 허벅지로 말의 겨드랑이를 압박하고 있었다.
 “흐흐흐! 기다리던 자가 온다. 저 말에는 산단산장의 무인이 타고 있다.”
 마의인은 갑자기 머리를 들며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사막을 달리는 혈랑(血狼)이 침을 질질 흘리는 듯한 느낌이 드는 목소리가 관도 위를 덮었다. 듣는 것만으로 전율과 먹은 것을 토할 것 같은 불결함을 느껴졌다.
 “이제 피 맛을 보리라.”
 마의인은 나직한 중얼거림을 토하며 칠 척은 넘을 것으로 보이는 큰 키를 일으켰다.
 휘르르르르―
 그가 몸을 일으키자 주변으로 회오리 같은 바람이 일어났다. 마구 헝클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붉게 충혈된 눈이 스쳐 지나갔다.
 두두두두!
 거칠게 달려오는 말은 갈 길이 바쁜지 입가에 거품을 물고 그 앞으로 달려왔다.
 휙!
 마의인은 갑자기 관도로 뛰어들었다. 말이 눈 앞으로 달려가고 있었음에도 마의인은 망설이지 않았다. 마치 말에 부딪쳐 죽으려는 듯한 모습이었다.
 “으헛! 이런 미친놈이 있나?”
 히히히히―!
 말을 달리던 사내는 놀란 외침을 토하며 말의 고삐를 잡아당겼다.
 경직되었던 허리가 뒤로 젖혀지며 말의 고삐를 당겼지만 말은 쉽게 멈추지 않았다. 달려오는 속도를 제어하기에는 말의 발이 너무도 빨랐다.
 와그작!
 “히히히힝!”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리고 말의 몸이 심하게 기울어지며 앞으로 나뒹굴었다. 말을 타고 달리던 사내의 몸이 허공에서 재주를 넘으며 오 장을 날아가 착지했다.
 “어떤 놈이 감히 유극렬(劉極烈)의 앞을 막느냐?”
 사내는 급히 몸을 돌려 등에 메고 있던 칠성도호검(七星屠虎劍)을 뽑았다. 그러나 그의 몸은 순식간에 굳어 버렸다. 말이 십여 장을 달려가더니 그대로 주저앉아 버리는 것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자신을 유극렬이라 외친 사내의 얼굴에 경악이 스쳤다.
 “말의 다리를 맨몸으로 부러뜨리는 사람이 있다니······.”
 유극렬은 검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달빛 아래 한 마의인이 귀기(鬼氣)를 뿌리며 서 있었다. 그의 눈에서는 굶주림에 지친 이리가 뿜어내는 한기와 같은 눈빛이 아리게 파고들었다.
 ‘누구지?’
 유극렬은 가슴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자신을 함부로 막을 수 있는 자는 감숙무림에 존재하지 않았다. 굳이 따지자면 공동파와 종남파가 있었지만 그들은 감주부 근처로는 제자들을 하산시키지 않았다.
 감주부를 지배하는 것은 산단산장이었고, 유극렬은 산단산장의 열 명이나 되는 당주(堂主) 중 한 명으로 낙화구류검(洛花九流劍)을 극성으로 연마한 것으로 소문이 난 무인이었다.
 근래 들어 감숙 남부를 지배하고 있는 종남파가 서서히 감숙의 중부지방과 북부지방에 나타나 이권개입(利權介入)을 하는 경우가 있기는 했지만 산단산장과 대립을 하는 경우는 없었다.
 “네놈은 누구냐?”
 소리를 지르면서도 유극렬은 급히 마의인을 훑어보며 그가 과연 누구인가를 판단하려 했다.
 ‘공동파에서 보낸 자인가?’
 얼마 전 공동파와 산단산장은 작은 분쟁이 있었다. 마무리가 잘 되어 봉합(封合)이 이루어졌다고는 하지만 이십여 명의 공동파 제자들이 죽은 일이었기에 완벽한 봉합이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유극렬은 정신을 집중했다.
 푸르르르―
 멀리서 나뒹구는 말이 입술을 떨며 투레질을 했지만 앞다리가 부러졌는지 힘겨운 몸부림만 칠 뿐이었다.
 “네놈이 누구냐고 물었다.”
 유극렬은 날카롭게 소리를 질렀다.
 머리가 헝클어진 마의인은 그린 듯 서 있었다. 전신에서는 회오리가 일어나듯 진기가 넘실거리고 있었다.
 “크크크!”
 귀신의 호곡성이 있다면 마의인의 입에서 울리는 소리가 그러했을 것이다. 목에서 울리는 것인지, 멀리서 들려 오는 것인지 파악하기 어려운 웃음소리가 울렸을 때 유극렬은 가슴이 가라앉는 것 같았다.
 “혹시?”
 갑자기 가슴을 치며 물이 거슬러 올라오듯 밀려오는 생각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가 아니기만을 바랄 뿐이다.’
 유극렬은 입술을 깨물었다. 근래 감주부를 피로 물들이고 있는 소문의 주인공이라면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유극렬은 급히 발을 옮겨 전궁보(前弓步)로 보법을 밟고 검을 앞으로 내밀었다. 낙화구류검의 개문식(開門式)이었다.
 마의인의 한이 섞여 있는 듯한 음성이 터져 나왔다.
 “크크크! 네놈이 산단산장의 무인이라는 것을 안다. 네놈이 산단산장에 몸을 담고 있는 이상 죽어 주어야겠다.”
 유극렬은 한 순간에 몸이 굳었다. 자신의 생각이 옳았다는 것을 의식하기에는 겨우 반 다경의 시간이 흘렀을 뿐이었다.
 “누구냐? 나는 너와 은원이 없거늘······.”
 마의인은 말이 없었다. 다만 붉게 달아오른 눈으로 유극렬을 바라볼 뿐이었다.
 ‘불길하다.’
 유극렬은 입술을 깨물며 전신에 진기를 유통시켰다. 이십 년 동안 익힌 구합신공(九合神功)의 내력이 전신의 혈도를 따라 돌며 몸에 충만한 기운을 넘치게 했다.
 두렵기만 하던 마음이 가셔지며 전의(戰意)가 피어 올랐다.
 다다다닷!
 마의인의 몸이 격하게 움직이더니 말보다 더욱 빠르게 달려들었다. 마의인의 발 밑에서 뽀얀 먼지가 피어 오르고 마의인의 몸이 두 개로 갈라지는 듯 보였다.
 “어림없는 수작. 미친놈이군! 내가 유극렬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달려들다니······.”
 유극렬은 마음을 안정시키며 급히 검을 휘둘러 허공에 일곱 개의 원을 그렸다. 네 개의 방위를 차단하는 질식할 듯한 검의 그림자가 허공으로 뻗쳐 나갔다. 낙화구류검의 첫 번째 초식 위타헌비류(韋馱軒飛流)였다.
 가가가가!
 마의인이 달려들자 허공에서 수없이 많은 손의 그림자가 피어 올랐다. 허공에서 바람이 부딪치며 거친 격랑이 일 듯 옷깃이 말리고 거친 소리를 울렸다.
 “으헛!”
 유극렬은 화급히 소리를 지르며 왼발을 뒤로 뺐다.
 한 순간에 마의인의 손에서 일어나는 손 그림자가 검기(劍氣)의 틈을 비집으며 유극렬의 목을 향해 밀려들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유극렬이 대경(大驚)하여 소리를 질렀다.
 자신이 뿌려낸 검의 그림자를 파고든다는 것이 눈으로 보면서도 믿어지지 않았다. 유극렬은 급히 고개를 젖히고 왼손으로 원을 그리며 달려드는 마의인의 가슴을 후려쳤다.
 “흥!”
 마의인의 입에서 바람이 새는 듯한 가는 숨소리가 들리고 순식간에 이 장을 물러갔다.
 “헛! 이럴 수가!”
 유극렬은 마의인의 가슴에 전개한 장공(掌功이 허공으로 스며드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마의인의 몸은 전연 타격을 받지 않은 듯 보였다.
 ‘무언가 잘못되었다.’
 머리털이 하늘로 치솟아 오르는 듯한 불안감이 덮쳤다.
 “크으으으으!”
 짐승의 울음소리 같은 비명을 토하며 마의인이 다시 날아든 것은 유극렬이 미처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기도 전이었다.
 마의인의 손이 허공에서 어지럽게 난무하자 유극렬은 급히 진기를 끌어올려 전신에 일주천(一周天)시키며 검을 허공에 휘둘렀다. 검이 허공에 수십 개의 번개문양을 그리며 마의인의 몸으로 다가들었다.
 낙화구류검의 초식 중 대혈(大穴)을 골라 공격하는 낙화영낙일(洛花影落日)의 초식이었다.
 촤촤촤!
 해변에 파도가 밀리듯 검기가 허공을 갈가리 찢을 듯 밀려갔다. 그러나 그는 곧 눈을 부릅떴고 심장이 파열되는 듯한 경악을 터뜨렸다.
 “으헛! 믿을 수 없다.”
 마의인의 몸이 허공에서 제비가 날 듯 흔들리자 그의 몸으로 쏘아져 들어가던 수십 줄기의 검영(劍影)이 목표를 잃고 허공으로 흘러 나갔다.
 순식간에 마의인의 몸이 다가왔다.
 ‘급하다!’
 유극렬은 급히 손을 흔들어 백회(百會)와 인중(人中)을 보호한 후, 손바닥을 펼쳐 후려치려 했지만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몸을 옥죄는 듯한 강렬한 느낌이 머릿속으로 파고들자 유극렬은 나직한 비명을 뿌렸다.
 조금 전까지 느껴지지 않던 강한 힘이 마의인의 몸에서 뿜어져 나와 유극렬의 몸을 옴쭉달싹 못하게 만들었다. 온몸이 물엿에 감긴 것 같았다.
 슈슈슛!
 바람을 가르는 마의인의 손이 순식간에 다가와 유극렬의 목을 움켜잡았다. 유극렬은 자신의 목이 잡히고 숨을 쉬기가 거북하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자신이 뿌려낸 낙화구류검이 자취도 없이 흩어질 것이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유극렬이었다. 더구나 장공을 사용하기 위해 쳐들었던 손도 허공에서 멈추어져 있었다. 혈도에는 내공이 충만했지만 사용할 수가 없었다.
 ‘이건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다.’
 유극렬은 자신이 마의인의 격한 몸 동작과 미친 듯 달려드는 모습에 몸이 긴장으로 굳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남은 시간은 없었다.
 “산단산장에서 무공을 지닌 놈들은 모두 죽어야 해!”
 우드드드득!
 마의인의 격한 목소리가 울리고 유극렬의 목이 뜯겨져 나갔다. 허공에 붉은 피가 분수처럼 솟구치고 마의를 붉게 물들였다.
 털썩!
 유극렬의 몸이 뼈가 없는 연체동물처럼 무너졌다. 널브러진 유극렬의 몸이 격하게 꿈틀거렸지만 곧 고요해졌다.
 “크크크! 모두 죽여. 무공을 지닌 놈들은 모두 죽여야 해!”
 마의인은 미친 듯 고함을 지르며 몸을 돌렸다. 마의인의 몸은 한 번에 삼 장 이상을 도약하며 멀어져 갔다.
 
 
 2
 
 
 날이 새기에는 이른 시간이었다.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 불쾌했지만 화를 낼 형편도 아니었고, 무작정 짜증을 내는 것도 마음이 허락하지 않았다.
 사조(思潮)는 급히 서둘렀다.
 벌거벗은 몸에 속옷을 입은 후, 겉으로는 마사로 만든 관복을 입고 포두(捕頭)를 의미하는 금승(錦繩)을 허리에 둘렀다. 허리에 박도를 차고 손에 황금포승을 들자 나갈 준비가 되었다.
 “아잉!”
 나직한 소리가 들렸다.
 눈을 돌려보니 금침에 몸을 누인 계집이 지난 밤의 욕정이 남았는지 몸을 비틀고 있었다.
 지난 밤, 섬서행도사의 부장(部將) 장진천(張塵 )이 안겨준 계집이었다. 유난히 하체의 탄력이 넘쳤던 계집은 삼경(三更)이 지나도록 사조를 잠들지 못하게 했었다.
 근래에 보기 드문 계집을 만났기 때문에 사조는 활화산처럼 타올랐었고, 폭죽처럼 폭발을 했었다.
 “조금 기다려라. 급히 다녀올 데가 있다.”
 사조는 몸에 짐승의 가죽으로 겹쳐 만든 장포를 입으며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어찌 되었든 나가 보아야 할 일이 벌어져 있었고, 갈 곳이 없는 흉노족의 계집은 침상에서 그를 기다릴 것이었다.
 사조는 하체의 일부가 벌떡 일어서는 것을 느끼고 있지만 마냥 계집을 껴안고 있을 처지도 아니었다.
 “어서 일어나십시오. 서두르셔야 합니다. 그들보다 먼저 도착해야 합니다.”
 “에잉!”
 문 밖에서 들려 오는 목소리는 사조를 재촉하고 있었다. 항시 일어나는 일이지만 한 번도 기분 좋게 달려나간 적이 없는 사조로서는 자신을 재촉하는 말소리 자체가 짜증이었다.
 사조는 마지막으로 손에 짐승 가죽으로 만든 장갑을 끼며 심드렁하게 물음을 던졌다.
 “어서 가자. 어디라 했느냐?”
 “연지산(燕支山) 기슭이라 합니다. 산단산장의 무인들이 달려오기 전에 서둘러 나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누가 갔느냐?”
 “포두님과 저를 제외한 모두를 먼저 보냈습니다. 포쾌(捕快)들이 단서를 찾고 있습니다.”
 드르르르르―
 사조는 귓가를 파고드는 목소리를 들으며 문을 밀었다. 긴 회랑이 눈에 들어왔다. 감주부의 부중(府中)에 자리잡은 추관사(推官舍)는 제법 넓었지만 어두운 것이 흠이었다.
 사조가 나서자 허리를 숙이고 있던 한 사내가 몸을 일으켰다. 키가 작달막한 추기(錐圻)였다.
 한시도 곁에서 떠나지 않는 추기가 아니라면 마음 편히 잠을 잘 수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가 잠을 깨우고 방사를 방해할 때는 화가 치미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말은 준비가 되었는가?”
 “부중(府中)에 묶어 놓았습니다.”
 추기는 서둘러 대답했다.
 이미 오래 전부터 몸에 익은 모습이었다. 사조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조가 앞장섰다.
 기다렸다는 듯 추기가 뒤를 따랐다. 칠 척의 키에 육박하는 사조와 달리 육 척을 겨우 넘기는 추기의 몸이 유난히 왜소해 보였다.
 “멀리서도 일어났군.”
 사조는 부중을 벗어나기 위해 발끝에 힘을 주었다. 추기의 몸이 서둘러 뒤를 따랐다. 그들의 입에서 허연 김이 뿜어져 나왔다.
 몸을 돌리던 사조는 생각 난 듯 걸음을 멈추었다. 뒤를 따르던 추기가 의아한 표정으로 눈을 빛냈다.
 “왜 그러십니까?”
 “아니다.”
 추기의 물음에 대답을 했지만 사조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대장군이 군영으로 오라한 말을 잊을 뻔했군.’
 사조의 눈이 얼음처럼 투명해졌다.
 
 
 2장 기억(記憶)
 
 
 1
 
 
 사상누각(沙上樓閣)하면 많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결국 모래 위에 지은 집이라는 뜻이니, 지어도 소용이 없거나 아예 지을 수 없는 누각을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감숙에는 대다수의 건물을 모래 위에 짓고 산다.
 한무제(漢武帝)때 지어져 천 년을 유지한 성벽이 사상누각이라는 말을 무색케 한다.
 모래와 진흙, 회를 섞어 지은 성벽은 모진 풍상(風霜)과 일 년의 반이나 되는 추운 겨울을 이기고 하루도 빠짐없이 서역을 향해 달려나갈 준비를 하는 한족들을 보호해 왔다.
 중원인들은 감숙이 중원의 서쪽에 치우쳐 있다 해서 서새(西塞)라 불렀다. 수백 년 전 중원을 손에 넣었던 한무제는 감숙의 요소요소에 진을 설치했고 장액(張掖)과 주천(酒泉)은 사군(四郡) 중 하나였다. 당시에는 장액이라 불렸지만 명대(明代)에 들어 감주(甘州)라 불리게 되었고 주천은 숙주(肅州)라 불리게 되었다. 감숙은 두 개 군현의 머릿글자를 따 지어진 이름이었다.
 명조가 몽고족이 세운 원을 몰아내고 황실을 세운 지 어느덧 백 년이 지나가고 있었다. 지금 명조의 군사들은 심하게 위축되어 서역을 모두 잃어버리고 감숙의 십여 개의 군현(郡縣)마저도 달단(??)과 흉노에 빼앗긴 후였다.
 백 년 전 태조의 명을 받아 정서대장군(征西大將軍) 풍승(馮勝)이 쌓은 가욕관(嘉 關)이 아니었다면 감숙 전체를 급격하게 팽창한 흉노와 달단에게 내주었을 것이고, 국경은 섬서와 사천(四川)까지 축소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명조는 사주부(沙州府)를 흉노족에게 빼앗기고 나서 첨예한 대립에 직면한 감주부와 숙주부를 보호하고 변방을 방어하기 위해 감숙을 섬서의 일부에 포함시키고 섬서행도사를 세웠다.
 섬서행도사에는 흉노와 위구르족, 만주족과 몽고족으로 구성된 십만 변군(邊軍)과 중원 각처에서 차출된 한족으로 이루어진 방군(榜軍)이 휘하에 있었다.
 섬서행도사는 십 년 전 감주부의 외곽에 군막을 설치하고 마종산(馬 山)의 비탈에 성을 쌓아 북방 서역민족의 침략에 대비했다.
 “그를 찾아내고 말 거야.”
 소녀는 오랫동안 별을 바라보고 있었다. 반월형으로 만들어진 창에 몸을 걸친 소녀는 저녁이 되면 창을 통해 들어오는 달빛과 별빛을 보며 잠을 잘 때까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오랜 습관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벌써 삼 년째였다.
 “후!”
 소녀는 긴 한숨을 불었다. 만약 그녀의 입술 앞에 향촉이 타고 있었다면 한숨으로 능히 끌 수 있을 것 같았다.
 열 여덟이나 되었을까?
 겉으로 보기는 나이에 비해 성숙해 보였고 유려한 몸매를 지니고 있었다. 비단으로 만든 것으로 보이는 얇은 나삼을 입고 있었는데, 몸의 굴곡이 모두 드러났다.
 소녀가 머무는 방은 제법 컸다.
 대전의 형태를 지니고 있는 방은 사방으로 십 장이 넘을 것 같았고, 한쪽 벽에 금침이 깔린 침상이 벽에 달린 궁등의 은은한 불빛을 받았다. 문이 있는 입구에는 작은 침상이 따로 놓여 있었다.
 방의 중앙에 있는 작지만 아담한 둥근 탁자 위에는 향촉이 넘실거리듯 불꽃을 흔들었다. 사방의 벽에는 몇 편의 문인화(文人畵)가 걸려 있었다. 창이 없는 벽면에는 서가(書架)가 있어 아담하고 고아한 풍취(風趣)를 자아내게 했다.
 만약 서가의 한 귀퉁이에 여인들이 사용하는 바느질 쌈지가 없었다면 문인의 방이라고 생각이 들 것 같았다.
 “그는 죽었을까? 아니 살아 있을 거야.”
 소녀는 뜻 모를 한숨을 섞어 나직한 음성을 뿌려내었다. 고민이 적지 않은 듯 보이는 아미를 찌푸린 모습에서 소녀가 마음속에 품고 있는 아련함을 느낄 수 있었다.
 창턱에 걸쳐진 엉덩이가 반월처럼 아름다웠다.
 “그는 나를 기억하지 못할지도 몰라. 나는 그의 얼굴을 또렷하게 기억하는데. 비록 그가 나를 겁탈(劫奪)했다고는 하지만 분명 맨 정신은 아닌 것 같았어.”
 소녀는 눈을 돌려 먼 산을 바라보았다. 한참 동안 별과 달을 바라본 후였기 때문인지 가볍게 현기증이 일었다. 오래 된 습관이고 늘 느끼는 현기증이었기에 그리 신경이 쓰이는 것은 아니었다.
 멀리서 명멸(明滅)하던 불빛들이 다가왔다.
 그녀가 머물고 있는 장원은 섬서행도사가 진을 치고 있는 마종산 기슭에서 멀지 않는 곳이었다. 총 이십여 칸이나 되는 단층의 건물 중에서 그녀가 머무는 전실(專室)은 가장 좌측에 달린 넓은 방이었다.
 위지휘사사(衛指揮使司)나 도지휘사사(都指揮使司), 혹은 번왕(藩王)들을 감시하는 군병들과 장군들은 수시로 장소를 이동하고 군막(軍幕)의 주둔지를 바꾸는 것이 관례였다.
 그것은 지방관리들과 결탁해 민생을 문란하게 하거나 번왕들과 결탁하여 거병(擧兵)할까 두려웠기 때문이었는데 감숙의 변방에 나온 섬서행도사는 달랐다.
 섬서행도사에 몸을 담고 있는 장수들은 중원의 다른 곳에 주둔하고 있는 군병들과는 달리 한 곳에서 오래도록 머무는 것이 허락되었고 가솔까지 거느리고 임지로 나갈 수 있었다. 가솔이 전선 바로 뒤에 있게 되면 장수들이 함부로 퇴각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을 해서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런 이유로 혼인을 한 장수들은 자신의 식솔들을 끌고 와 감주부의 외곽이나 섬서행도사가 진을 친 석성(石城)의 외곽에 머물게 했다.
 군병들이 있는 석성의 내부에도 머물 수는 있었지만 대다수의 식솔들은 위기상황이 벌어질 때를 제외하고는 성의 외곽에서 머물렀다.
 소녀도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부친이 섬서행도사를 지휘하는 정서대장군 마등호(馬藤昊)임에도 그녀 스스로 성 내에 머무르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녀가 군병들로 인해 물샐 틈없이 보호되는 성을 거부하고 장원에 머무르는 것은 이유가 있기 때문이었다.
 “삼 년이 걸렸지만 아직 찾지 못했어. 그가 감주부에 살지 않는다는 건가?”
 그녀의 일과는 간단했다.
 오시(午時) 이전에는 장원에서 학문을 익히거나 여인의 미덕이라 할 수 있는 바느질과 규중예절을 배우고, 오후에는 시비와 호위무사를 거느리고 사람을 찾아 거리를 누비는 것이었다.
 “나는 저 불빛 어디엔가 그가 있을 것이라고 믿어. 그 동안 감주부의 성 내부를 모두 뒤졌지만 찾지 못했지. 그는 감주부 외곽에 살고 있을지도 몰라!”
 소녀는 반딧불처럼 부유하듯 느껴지는 성 외곽의 불빛들을 바라보았다. 성 안에 모여 있는 불빛들과 달리 곳곳에는 불빛들이 드문드문 빛을 뿌리고 있었다.
 감숙의 대부분이 모래 언덕으로 이루어진 땅덩어리라고는 하나 모래 언덕 사이로 간혹 목초지(牧草地)나 몇 무(畝)의 논과 밭이 있기 마련이었다. 그곳에서 생산되는 포도나 채소가 늘 시장에 나오고 있었고, 군사들에게도 제공되고 있었다.
 “그래, 어쩌면 나는 멍청하게 성 안을 고집했는지도 몰라. 그가 감주부의 외곽에 산다면 내가 그를 만날 수 있을 가능성은 더욱 희박했겠지.”
 소녀는 손을 움켜쥐었다.
 “아야!”
 소녀는 날카로운 통증에 비명을 토한 후, 몸을 방 안으로 들이밀며 손바닥을 들여다보았다. 화려하게 빛을 발하는 조그만 장신구가 놓여 있었다.
 여인의 장지(長指)만큼이나 작은 검이었다. 검이라 하지만 사람을 해할 수 없을 정도로 앙증스러웠다. 검에는 목에 걸 수 있는 은사(銀絲)가 걸려 있었다.
 소녀는 손에 들린 장신구를 바라보며 방 안으로 다가가 원탁 앞에 놓인 나무 의자에 주저앉았다.
 “내가 그에 대해 아는 것은 아무 것도 없어. 그러나 나는 그를 보면 알 수 있어. 십오야(十五夜)의 밤이긴 했지만 그의 얼굴을 똑똑하게 기억할 수 있었지.”
 소녀는 빙그레 웃었다.
 오뚝한 코가 웃을 때 약간 찡그려지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허리에 이르는 긴 머리카락을 손으로 쓸어 올렸을 때 그녀의 넓은 이마가 드러났다.
 “그는 아마 정신이 없었던 것 같아. 그의 몸에서 나는 피 냄새로 보아 그는 무인이었을지도 몰라. 더구나 나를 안았던 그의 몸에서는 기이하게도 앵속(罌粟)의 냄새가 났었는데······ 그걸 생각하면 지금도 불안해!”
 소녀는 코를 찡그리는 것이 습관인 듯 보였다.
 “나는 나를 믿어! 나 마주련(馬珠蓮)이 생각했던 것 중에 한 가지도 어긋난 것은 없어. 내 느낌은 정확해!”
 소녀는 자신의 이름까지 들먹여가며 자신감을 보였다. 그녀의 부친인 정서대장군까지 이미 포기한 일이었지만 그녀는 잊지 않았다.
 “이 장신구의 주인이 나를 범했을 때 나는 죽고 싶었지. 그러나 이제는 모든 것이 흐릿해지는 기분이야. 그를 찾으려는 것이 죽이기 위한 것인지도 알 수가 없어.”
 시간이 가면 갈수록 마주련은 자신이 없었다.
 자신이 찾으려 하는 남자가 살아 있다거나 감주부에 머문다는 보장도 없었다. 애초에 사내를 찾으려 한 목적이 퇴색된 느낌이었고 오로지 찾아야 한다는 의무감만이 남아 있는 것 같았다.
 마주련은 손을 내려보았다.
 삼 년 전부터 자신의 손에 들려 있었던 작은 신물이 눈 앞으로 다가왔다.
 “반드시 찾고 말 거야.”
 마주련은 이를 악물었다.
 스르륵!
 “아씨!”
 미세한 소리에 이어 문이 열리고 마주련의 나이에 버금가는 듯한 소녀가 방으로 들어섰다. 나이는 비슷했지만 소녀는 중원인과는 다른 얼굴과 눈을 지니고 있었다.
 머리는 검었지만 눈은 짙은 녹색이었고, 유난히 키가 커 보이는 소녀는 한눈에 보아도 서역의 여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서역이라 해서 모두 눈이 파란 것은 아니었다.
 서역에 살고 있는 삼십육 개의 종족 중 서하족(西夏族)과 우전국(宇田國)을 세웠던 오로족(墺露族) 만의 눈이 초록색이었는데 그녀는 서하족의 후인이었다.
 서하족은 이미 오백 년 전에 멸망의 길을 걸은 종족이지만 한때는 서하라고 불리는 왕국을 세웠었고, 소문에는 그들의 조상이 회족(回族)이었다고 알려졌다.
 “아가씨! 또 그 목걸이를 보고 계시는군요!”
 “국아(菊兒), 너도 내 생각이 틀렸다고 생각하니?”
 “그렇지는 않아요. 그러나 그를 찾아내기는 어려울 거예요. 감숙은 항상 말이 달리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중원과 서역을 왕래하는데 그를 찾을 수 있겠어요?”
 “나는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해!”
 처음에 그녀는 자신을 범한 사내를 찾아 죽일 생각이었다. 열여섯의 나이에 순백의 몸을 더럽혔으니 당연히 죽이지 않으면 참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정조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유문(儒門)에서는 정조를 강조하고 양가의 처녀들에게 입막음처럼 몸을 조신하게 할 것을 강조했지만 중원에서 지켜지는 경우는 드물었다.
 수십 개로 민족이 갈라진 운남(雲南)이나 광서(廣西), 감숙과 같은 곳에서는 한 여인이 수 명의 남자를 거느리고 사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또한 황성(皇城) 부근에서도 밤마다 남녀가 숲 속으로 사라져 새벽이 되어서야 나타나는 경우는 흔한 일이었다.
 사내에게 몸을 버렸다고 혼인에 불이익을 당하거나 배척을 당하는 경우는 없었다.
 국아는 마주련이 자신을 강제로 범한 사내를 잊지 못한다는 것을 의아하게 생각했다.
 “그를 사랑하나요?”
 “사람은 누구나 한 번쯤 실수를 할 수가 있어. 더구나 내가 느끼기에 그는 정신을 잃고 있었던 것 같아. 그렇다면 다시 한 번 달리 생각해 볼 수 있을 거야.”
 “저는 아씨의 생각을 모르겠어요.”
 “너도 생각해 두어야 할 거야. 내가 혼인을 하면 너의 운명도 달라진다는 것을 모르느냐?”
 “그건 그래요.”
 국아는 시무룩하게 대답했다.
 정서대장군은 정일품(正一品)의 품작(品爵)에 해당하는 군벌의 직위였다.
 흔히 섬서행도사를 서역정벌대(西域征伐隊)라 부르기도 하지만 실상은 오군도독부(五軍都督府)의 한 지류였고, 결국 섬서행도사의 수장인 정서대장군은 도독(都督)의 지위를 지니고 있는 셈이었다.
 품작이 정일품인 집안에서 딸을 혼인시키며 시비를 보내지 않는다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결국 국아의 인생은 마주련의 혼사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제 그만 자자!”
 마주련은 몸을 일으켜 자신의 침상으로 다가가 누웠다. 푹신한 금침이 그녀의 몸을 감쌌다.
 더 이상 길게 이야기해 보아야 국아의 입에서는 포기하라는 이야기밖에 나오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기에 그녀는 침상으로 올라간 것이었다.
 국아가 건방지거나 학식이 없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비록 마주련의 부친이 서역으로 진군했을 때 포로로 잡혀온 소녀이기는 했지만 배움이 없는 것도 아니었고 생각이 짧은 것도 아니었다.
 마주련과 국아의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의 차이일 뿐이었다.
 “그만 생각하고 주무세요. 내일도 또 그 사내를 찾으러 나가시겠죠?”
 “물론이지.”
 국아는 빙그레 웃으며 다가와 마주련의 몸에 금침을 덮어주었다. 습관이 된 일이기는 하지만 미주련은 국아가 금침으로 몸을 덮어주거나 같이 목욕을 할 때가 가장 기분이 좋았다.
 국아는 다시 한 번 정실을 둘러보았다.
 “그만 불을 끄겠어요.”
 “그렇게 해!”
 국아는 벽으로 다가가 먼저 궁등의 불을 껐다. 전실이 갑자기 어두워졌지만 마주련은 눈을 뜨고 국아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국아는 문 앞에 있는 자신의 침상으로 다가가 옷을 벗기 시작했다. 투박한 마삼(麻衫)을 벗자 서역 여인의 풍만한 몸이 나타났다.
 그녀는 속옷까지 모두 벗어 버리고 맨몸을 드러내었다.
 가슴이 유난히 컸고 엉덩이도 중원의 한족 여인들로서는 비견할 수 없을 크기를 지니고 있었다. 그와 비례해서 허리는 눈에 도드라지게 가늘었다. 가슴의 두툼함과 엉덩이의 살집으로 허리가 더욱 가늘어 보이는 것 같았다.
 “역시 국아의 몸은 황제(皇帝)의 진상품(進上品)으로 써야 한다니까.”
 “아가씨도 참!”
 늘 듣는 이야기였지만 듣기에 좋은 소리였기에 국아는 나직하게 웃었다. 침상의 이부자리 속에 들어 있던 나삼을 꺼내 맨몸에 걸친 국아는 원탁으로 다가가 향촉을 껐다.
 잠시 발자국 소리가 들리고 이부자리가 버석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으로 국아가 자신의 침상에 들어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2
 
 
 손에 들린 작은 장신구를 만지작거려 보았지만 지루하게 이어지는 상념 때문인지 잠은 오지 않았다.
 마음속으로 기억하는 말들을 일일이 세어 보았지만 잠이 오기는커녕 점점 또렷해지는 정신에 침상을 박차고 일어서고 싶은 심정이었다.
 쌕쌕!
 국아는 잠이 들었는지 숨소리가 고르게 들려 왔다.
 “국아, 자니?”
 대답이 없었다.
 ‘자는구나.’
 갑자기 허전해지는 느낌에 마주련은 침상에서 좌우로 굴렀다. 보드라운 금침이 몸에 감기자 왠지 모를 슬픔이 밀려왔다. 간혹 일어나는 감정의 변화였다.
 ‘그 사내는 정말 정신이 없어 나를 범했을까?’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그녀는 늘 사내에 대해 생각했다. 단 하루도 잊어본 적이 없는 사내였다. 처음에는 죽이고 싶었지만 이제는 그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것이 몸을 주었기 때문인지, 어렴풋한 사랑인지 분명하지는 않았다. 몸을 주었다고 사랑이라 말한다면 그것은 그녀 스스로에 대한 모독이었다.
 ‘가끔은 내가 왜 그를 찾고 있는 것인지 잊을 때가 있어.’
 그녀의 마음은 하루에도 열두 번씩 갈등을 겪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를 찾아 능지처참(陵遲處斬)을 해 죽여 버리겠다는 생각이었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무감각해졌다. 그리고 삼 년이 흐른 지금은 그를 찾아야 한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 뿐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잊혀져야 하는 얼굴이어야 했고 그것이 사람이 지닌 인지능력(認知能力)이었지만 날이 가면 갈수록, 해가 가면 갈수록 또렷해지는 얼굴을 생각하며 그녀는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을 키우고 있었다.
 수없이 자신을 부정하기도 했지만 그러고 나면 더욱 애틋한 마음이 되었고 울컥거리도록 보고 싶기도 했다.
 ‘그는 죽었을지도 몰라.’
 마주련은 목을 더듬었다.
 과거 삼 년 전에는 목에 하나의 목걸이가 걸려 있었다. 그러나 운명의 그날 이후로 목걸이는 보이지 않았다. 자신의 손에 들려 있는 목걸이와 바꿔치기를 당한 것 같았다.
 ‘나는 그가 살아 있다는 것을 믿어. 내가 죽지 않았는데 그가 죽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창으로 다가오는 달빛이 보였다.
 “그날도 달이 밝았는데······.”
 갑자기 한숨이 일어나며 운명 같았던 그날이 떠올랐다.
 경사를 떠나 감주부에 도착한 지 한 달이 되지 않은 날이었다. 그녀가 살던 경사와 다른 감주부의 모든 것이 신기했고, 열여섯의 방심(芳心)은 하루도 멈추지 않고 산과 들을 쏘다니게 했다.
 “아가씨, 아가씨!”
 멀리서 부르는 국아의 목소리를 무시하며 그녀는 연지산 기슭으로 올라갔다. 언덕이 가팔라 숨이 턱에 닿았지만 파릇파릇 피어나는 새순이 달빛 아래 드러나는 것이 참으로 신기하고 눈을 잡아끌었다.
 밤이라 하지만 하늘에 떠 있는 보름달은 온 누리를 대낮처럼 밝게 했고 계곡에는 미처 녹지 않은 얼음이 달빛을 반사시키고 있었다.
 산을 오른다고 해서 걱정할 이유는 없었다.
 여기저기에 군병들의 주둔지가 있어 산짐승이 내려올 리도 없었고, 설사 군병들에게 발각된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정서대장군의 딸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제재를 가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가씨! 그만 돌아가셔야 합니다.”
 부친이 시위병(侍衛兵)으로 보내준 군병들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려 왔다. 마주련은 더욱 신이 났다. 그들이 자신을 찾지 못한다는 사실에 왠지 모를 흥분까지 일고 있었다.
 연지산의 골짜기는 너무도 깊었고 한 번 들어가면 찾아 나오기가 힘들다는 것을 그녀는 몰랐기에 두 발과 두 팔이 네 발 달린 짐승처럼 되도록 기어올랐다.
 “후!”
 한참을 올라간 후, 그녀는 계곡이 산등으로 이어지는 곳에 자리한 넓은 반석 위에 몸을 주저앉힐 수 있었다.
 멀리 감주부의 불빛들이 눈에 들어왔고 희미하기는 하지만 섬서행도사의 군병들이 머무는 석성과 흑하(黑河)에 비추는 달빛도 눈에 들어왔다.
 한참이 지나도 군병들과 국아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모든 것이 그녀 자신의 세상 같다는 생각을 하며 마주련은 반석 위에 몸을 눕혔다.
 “크르르르르!”
 짐승의 울음소리 같은 기이한 소리가 들려 온 것은 그녀의 머리가 반석에 닿기도 전이었다.
 그녀가 들어본 적은 없지만 커다란 짐승의 울음소리라 생각한 것은 목소리가 울림이 제법 컸고 숨소리가 거칠었기 때문이었다.
 ‘이곳에 호랑이가 있다는 말인가?’
 그녀가 아는 가장 큰 짐승은 호랑이였다. 국아도 기련산령에는 호랑이가 살고 있다고 이야기를 했었다. 마주련은 몸이 굳는 것을 느끼며 가까스로 몸을 일으켜 세웠다.
 “누구?”
 그녀가 누우려 했던 반석에서 불과 오 장의 거리부터는 마종산의 능선으로 이어지는 곳으로 단풍나무와 회목(檜木)이 즐비하게 자라고 있었다.
 나무의 그늘에 나타난 그림자는 짐승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그러나 목소리는 사람의 음성이 아니라 짐승의 목 울림 같은 것이었다.
 ‘무슨 일이지?’
 두려움이 앞을 가렸으나 그녀는 정신을 가다듬었다. 소리를 질러 군병들을 불러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웬일인지 목이 잠겨 입이 열리지 않았다.
 “크르르르르!”
 그림자가 나무의 그림자를 벗어나 그녀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다가오는 자가 사내라는 것을 알아보기는 어렵지 않았다.
 칠 척은 넘을 것 같은 큰 키에 머리는 마구 헝클어졌지만 전에는 단정하게 묶었던 것처럼 반은 등뒤에 묶여 있었고, 반은 앞으로 쏟아져 얼굴의 일부를 가리고 있었다.
 “아, 아, 안돼!”
 마주련은 그가 자신을 죽이려 한다고 생각했다. 손에는 기이하도록 면이 넓은 도를 들고 있었고, 어깨에 손을 들어올려 팔꿈치가 앞으로 나왔다. 달빛이 어깨 위의 도신에 부딪쳐 산산조각으로 부서지고 있었다.
 마주련은 잠긴 듯 낮은 목소리로 외치며 손을 저었지만 사내는 막무가내로 다가왔다.
 사내가 멈춘 것은 불과 일 보 전이었다. 그때까지도 그녀는 반석에서조차 몸을 빼지 못하고 있었다. 도주해야 한다는 생각에 미친 듯 손으로 밀었지만 엉덩이는 바닥에서 한 번도 떨어지지 않았다.
 “크르르르르!”
 사내는 무작정 다가와 도를 집어던졌다.
 탱그렁!
 반석에 도신이 부딪치며 맑은 소리를 내었지만 그녀에게는 먼 곳에서 들려 오는 메아리 같았다.
 사내는 무작정 다가들어 그녀의 어깨를 눌렀다. 그때 사내의 머리가 지면을 향해 늘어졌고 얼굴을 자세하게 볼 수 있었다.
 “살려줘!”
 퍽!
 그녀는 홀연히 정신을 차리며 미친 듯 소리를 질렀으나 곧 정신이 얼얼해지며 모든 것이 머릿속을 떠나고 있다는 것을 의식할 수 있었다.
 진한 혈향과 무엇인가 불에 탄 듯한 냄새가 먼지 냄새와 섞여 콧속으로 파고들었다.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 없지만 그녀는 눈을 떴다. 하늘에서 별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너무나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어 그녀는 손을 뻗었다. 별들이 손에 잡힐 것 같았다. 그러나 몸은 움직이지 않았고 천 근처럼 무거웠다.
 무언가 자신의 몸을 누르고 있고 어디선가 맡았던 후끈한 냄새가 코를 파고들었다.
 ‘뭐지?’
 갑자기 턱이 얼얼하고 하체에서 뻐근한 통증이 밀려왔다. 몸이 흔들리는지 별이 마구 춤을 추고 있었고, 말 등에서 나는 것 같은 냄새가 코를 찔렀다.
 “뭐야?”
 정신을 가다듬던 마주련은 소스라쳐 놀라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러나 몸은 요지부동(搖之不動)이었고 하체의 통증은 점점 거세게 복부를 향해 올라왔다.
 가슴이 이지러지는 것 같았다.
 “헉! 헉!”
 귓가로 거친 신음이 들렸다.
 ‘이건 꿈이야.’
 그녀는 꿈에서 깨어나고 싶었다. 그러나 모든 것은 현실이었다. 그녀의 몸 위에는 둔한 사내의 몸이 격정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사내는 계속해서 거친 숨을 뿜어내었고, 그때마다 그녀의 몸은 파도를 탄 조각배처럼 움직였다.
 “이······이놈!”
 비명처럼 고함을 질렀지만 연약한 몸으로 미친 듯 몸을 파고드는 사내를 밀칠 수는 없었다. 하체에서 느껴지던 통증이 점점 사라질 때 사내의 눈이 다가왔다.
 한참 동안 자신을 바라보던 사내의 눈이 갑자기 사라졌다.
 ‘붉게 충혈 된 눈이야. 마치 야수의 눈을 보는 것 같았어.’
 자신이 어떤 처지라는 것도 모르고 그녀는 자신을 내려다보았던 사내의 눈을 생각했다.
 “헉헉!”
 사내의 숨소리가 다시 거칠어지고 하체가 마구 이겨지는 것 같았다. 불에 달군 쇠뭉치가 몸을 찢고 들어오는 것 같았고 눌린 가슴이 아팠다.
 진한 사내의 땀 냄새가 코를 파고드는 것을 느끼며 그녀는 의식의 끈을 놓아버렸다.
 다시 잠을 깨었을 때 사내는 보이지 않았다. 둔기(鈍器)에 맞았는지 하체가 뻐근하고 몸을 일으킬 수도 없었다. 몸에서는 진한 땀 냄새가 났다.
 몸을 일으키고 싶어도 몸을 일으킬 수가 없었다.
 “내가 강간(强姦)을 당했다는 말인가?”
 주르르르르―
 막막하고 어이가 없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귀밑으로 흘러내렸다. 몸이 나른하고 천 근처럼 무거워 한동안 그대로 누워 있었다.
 ‘누굴까?’
 누워서 사내를 생각했다. 모래땅에 떨어진 바늘을 찾는 것처럼 막막했다. 감주부에 온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은 그녀로서는 아는 자가 있을 리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에 없는 사내의 얼굴 윤곽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마치 돌비석에 조각을 해 놓은 듯 잊혀지지 않을 것 같았다.
 “뭐지?”
 무엇인가 손에 거치적거리는 느낌이 들어 어렵게 들어보니 하나의 장신구가 들려 있었다.
 황금으로 만든 손가락만한 검이었고, 목에 걸었던 것처럼 은사가 달려 있었다. 은사는 끊어져 있어 자신이 사내의 목에서 뜯어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으으으으!”
 하체가 찢어지는 것 같았지만 우선 일어나 앉기로 했다. 어이가 없는 일이기는 했지만 죽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았다. 막막할 뿐이었다.
 자신이 강간을 당했다는 것도 믿어지지 않았다. 하체에 마치 말뚝을 박아놓은 것 같은 통증이 느껴진다는 사실과 몸에 힘이 하나도 없고 손에 이상한 장신구가 들려 있다는 사실뿐이었다.
 “난 겁탈을 당한 건가?”
 머릿속이 실타래처럼 엉켜진 것은 가까스로 몸을 일으켜 세우고 자신의 몸을 보았을 때였다. 옷은 갈가리 찢겨져 있었고 채 여물지 않은 가슴에는 푸른 멍이 들어 있었다.
 처음 보는 것이고 느낌이지만 하체에도 사내의 흔적이 남아 있었고 복부는 아팠다. 옷깃을 여미려 해도 찢어진 옷이라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그 사내는 누구였지?”
 스스로 생각해도 한심한 일이었다. 죽음을 생각하든지 절망을 생각해야 했건만 그녀는 사내의 얼굴을 떠올리며 그가 누구인지 궁금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흑!”
 몸을 일으키려던 그녀는 다시 주저앉았다. 하체와 허벅지에서 밀려오는 충격이 그녀의 상상을 초월하고 있었다. 그녀는 멍청하게 주저앉아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마에서 땀이 났지만 바람이 불어 제법 시원해졌다. 별들이 더욱 빛을 발하고 있었고, 아릴 듯 차가워 보이는 십오야의 만월이 그녀의 눈으로 쏘아져 들어왔다.
 “내 목걸이가 없어졌어.”
 그제야 그녀는 자신의 목에 걸려 있던 목걸이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기억에 없는 일이었다. 산을 오를 때 떨어졌는지, 사내에게 겁탈을 당하며 없어졌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녀는 몸이 움직여지지 않아 머리만 돌려 찾아보았지만 자신의 목걸이는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모친이 딸을 변방으로 보내며 준 귀한 물건이었다. 그 목걸이는 이미 오대(五代)를 거슬러 내려온 것이라 했었다.
 “죽여 버리겠어.”
 마주련은 이를 갈며 중얼거렸다. 그때가 되어서야 사람의 정신으로 돌아온 듯 눈에서 맑은 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방 안이 희미하게 밝아 오고 있었고, 모든 생각을 지워 버린 마주련은 목걸이를 움켜쥐고 잠들어 있었다.
 생각이 깊었으므로 그녀는 늦잠을 잘 것이지만 사내를 찾는 일은 잊지 않을 것이었다.
 
 
 3
 
 
 “들어오라!”
 마등호는 이른 아침부터 사조의 방문을 받았다. 사조가 먼저 마등호를 찾아오는 경우는 드물었기에 그가 파발(擺撥)을 보내어 사조를 오게 한 것이었다.
 삐이이익!
 문이 열리고 사조가 들어섰다.
 “대장군, 부르셨습니까?”
 굳이 물을 필요도 없는 말이었지만 아침 인사를 대신해 한 말이었다.
 마등호는 호피(虎皮)로 싼 의자에 앉아 있다. 얼굴을 들며 앞에 놓인 의자를 가리켰다. 사조는 조심스러운 걸음걸이로 다가와 마등호가 가리킨 자리에 앉았다.
 마등호가 앉은 의자처럼 호피에 싸이지는 않았지만 서역산 천으로 싸인 푹신한 의자였다.
 작은 탁자가 마등호와 사조 사이에 가로놓여 있었다.
 “흉수의 그림자는 찾았나?”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지난밤의 사건으로 몇 가지 공통점은 찾을 수가 있었습니다.”
 “오오! 그래?”
 마등호는 가슴을 앞으로 내밀며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사조는 마등호를 볼 때마다 불호령이 떨어질까 가슴이 조마조마했지만 어린아이처럼 가슴을 내미는 모습을 보자 마음이 놓였다.
 지금 감주부 외곽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살인사건은 당연히 감주부의 추관에 딸린 포방(捕房)의 순검(巡檢)과 포쾌들이 할 일이었다.
 하지만 마등호는 제형안찰사사(提刑按察使司) 소속의 포두인 사조를 감주부로 불러 수사를 시키고 있었다.
 이곳 감숙은 흉노나 위구르족들이 언제 가욕관을 깨고 넘어올지 모르는 일이었으므로 섬서행도사의 대장군이 섬서의 십여 개 부와 현(縣), 주(州)를 포함해 성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곳과 달리 군부의 장군인 그가 포방의 일에 관여를 할 수 있는 것이다.
 마등호는 사조가 수사에 외압을 받지 않기를 원했기 때문에 자신이 사조에게 직접 명령을 내리고 감주부의 추관 마저 사건 수사에 배제하고 있었다. 그것은 감주부에서 오래도록 살아온 추관이 일련의 사건들과 연관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지방관들은 유야무야(有耶無耶)로 민생에 개입되어 있었고, 결국 그들은 자신의 길이 어긋났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발을 묻고 몰락해 가는 경우가 허다했다.
 “뿐만이 아닙니다. 이번에 죽인 자와 앞서 시체로 발견된 두 명의 무인도 모두 산단산장과 연관이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산단산장을 노리는 자의 소행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흠.”
 막상 보고를 했지만 사조는 고개를 제대로 들지 못했다. 일 년이 되도록 겨우 단서같지도 않은 단서를 조사했다고 내놓는 자신이 스스로 생각해도 어이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생각할수록 울화가 치밀고 자신이 부끄러워 참을 수가 없었다. 한 때는 난주성(蘭州城)에서 그가 나타났다 하면 살인사건이나 강탈사건이 아예 꼬리를 감출 지경으로 그의 범인 추적은 놀라웠다.
 감주부에서 이런 고전을 하게 될 줄은 몰랐었다. 만약 쥐의 굴이 있다면 당장이라도 도주를 하고 말 것 같았다.
 “서둘러 주게. 언제까지 죽은 자의 시신만을 뒤쫓아다닐 수는 없는 일이 아니던가? 더구나 그는 이미 일 년 전 섬서행도사의 정백호 장군을 죽였다. 본 장은 묵과할 수 없다.”
 “네, 알겠습니다.”
 “총포두.”
 “예, 장군!”
 “총포두는 내게 고민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리라 믿네. 오래지 않아 이 연쇄적이고 엽기적(獵奇的)인 살인사건을 마무리지으리라 보네.”
 “신명을 다하겠습니다.”
 사조가 할 수 있는 말은 많지 않았다. 아무리 어휘를 선택하려 해도 결국은 같은 말이 될 것이 뻔했다. 마등호도 그에게 할 수 있는 말이 한정되어 있었고, 사조도 그에게 할 수 있는 말은 많지 않았다.
 마등호는 고개를 숙이고 얼굴에 드러나지 않는 생각을 한참 동안 했다.
 사조를 누르고 있던 침묵이 깨어졌다.
 “내 부탁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나?”
 “아직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사조는 난감한 얼굴이 되었다.
 마등호가 부탁한 일은 사람을 찾는 일이었다.
 본시부터가 포교의 일이 사람을 찾거나 추적하고 죄를 지은 자들을 잡거나 포박하는 일이었기에 사람을 찾는 일 정도를 부탁했다고 기분이 나쁠 것은 없었다.
 하지만 백방의 노력과 수소문에도 불구하고 마등호가 부탁한 미지의 사람을 찾을 수가 없자 또 다른 부담이 되어 가슴을 눌렀다.
 “그것 참!”
 “찾아내겠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사조로서는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오로지 찾아내겠다는 말만이 그가 할 수 있는 말이었다.
 마등호는 몸을 일으켜 세웠다.
 한족으로는 큰 키에 해당하는 칠 척 장신에 번쩍이는 어린도를 들고 있는 모습이 보는 것만으로 대해(大海)를 가르고 높은 산을 무너뜨릴 것 같았다.
 “부탁하네.”
 “알겠습니다.”
 사조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3장 단서(端緖)
 
 
 1
 
 
 ‘새상강남(塞上江南)’이라는 옛말이 있을 정도로 풍족한 감주부를 둘러싸고 있는 연지산의 눈보라는 언제나 봄이 올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거칠게 뿌려졌다.
 “빌어먹을!”
 사조는 입맛이 썼다.
 벌써 일 년에 걸친 긴 시간 동안 살인자를 추적하고 있었지만 그림자조차 발견할 수 없었다.
 지난밤에는 눈까지 왔건만 흉수의 발자국은 연지산 아래에서 사라져 버렸다. 못내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한때는 감숙 최고의 포두였던 내가 겨우 살인자나 추적하고 있다니······.’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었다.
 총포두 사조가 이끄는 포두들은 모두 제형안찰사사 관할의 포방에 소속된 자들로 이런 살인 사건이나 수사하고 있을 위치가 아니었다.
 본시 살인자를 잡아들이고 사인을 조사하는 것은 감주부의 추관(推官)과 그에게 딸린 순검들이 할 일이었다.
 하지만 감숙은 오랫동안 서역과의 대치로 안정이 깨어져 있었고 섬서행도사가 정경(政經)을 모두 틀어쥐고 사소한 일까지 관여를 하고 있었다.
 제형안찰사사가 있는 난주 포방의 포두에 대한 명령권이 첨사의 손을 떠나 섬서행도사에게 넘어갔고, 살인사건도 마찬가지로 섬서행도사의 일이 되어 버린 지 오래였다.
 사조가 감주부로 오게 된 것도 섬서행도사의 요구 때문이라서 탐탁치 않기는 했지만 수사를 맏지 않을 수 없었다. 덕분에 포두에서 총포두로 직급이 높아긴 했지만 변방으로 발령이 나는 것은 좌천(左遷)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도 확실히 월중살(月中殺)의 소행인가?”
 “그렇습니다. 이번에도 사람을 죽인 수법이 월중살이 그 동안 저질렀던 수법과 동일합니다.”
 곁을 따르던 추기가 서둘러 대답했다.
 “우라질!”
 사조는 이를 갈았다. 십오야에 나타나 사람을 죽이고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살인자를 가리켜 감주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달밤에 나타나는 살인자라고 하는 의미로 월중살이라 불렀다.
 “월중살이라는 놈이 누구야! 어떤 새끼가 나를 이토록 곤경으로 몰아넣고 있는 거야.”
 입에서는 상스러운 말이 밀려나왔다. 평소에는 욕을 잘 하지 않는 사조였지만 생각할수록 이가 갈리는 일이었다. 원치 않았던 일들이 눈 앞에 전개되고 있었고 복잡다난한 행사가 그의 앞길을 막았다.
 참을 수 없으리 만치 머리에서 열이 올랐다.
 사조는 눈 덮인 관도와 연지산을 바라보았다. 머리를 식히겠다는 단순한 생각에서였다. 연지산이 눈에 덮여 불러온 듯 가까이 있었다.
 “눈이 오기 전에 죽은 것 같습니다.”
 연지산에 난 발자국을 더듬다 돌아온 그에게 포쾌들은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를 주절거리고 있었다. 시체가 눈에 쌓인 것을 모를 리가 없는 사조였다.
 퍽!
 사조는 신경질적으로 시체를 걷어찼다. 시체가 산단산장의 당주 중 한 명인 유극렬이라는 것만 보아도 앞으로 벌어질 일이 눈앞에 선명히 드러났다.
 “이번에는 산단산장이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한두 번이 아닌데다가 이번에는 당주입니다.”
 십 년의 세월을 이기며 사조를 따르는 심복 추기는 사조의 심장에 불을 붙이고 있었다. 그렇다고 화를 낼 수도 없는 일이었다. 만약 추기라도 없다면 자신이 직접 시신을 만져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사조였다.
 사조는 물끄러미 시체를 내려다보았다. 보는 것만으로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사인(死因)은?”
 “동일합니다. 단 일 수에 목줄이 뜯겨져 나갔습니다. 여전히 수법은 바꾸지 않은 것 같습니다. ”
 추기는 말을 하며 코를 훌쩍거렸다. 그의 모습은 마치 일련의 사건들을 즐기고 있는 듯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생각 같아서는 대갈통을 후려쳐 버리고 싶었지만 꾹꾹 눌러 참았다.
 ‘일 년이다. 일 년 동안 난 흉수의 그림자만 쫓고 있다. 그런데도 실마리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차가운 바람이 사조의 머리카락을 날렸다.
 감숙의 바람은 매서웠다. 한 순간에 모래가 섞인 바람이 불기도 했고 눈발이 날리기도 했다.
 사조는 시체를 바라보았다.
 날씨가 추웠기 때문인지 시체 곁에 쭈그려 앉아도 시체가 썩는 냄새는 나지 않았다. 그러나 곧 시체가 썩기 시작할 것이고 진한 냄새가 코를 파고들 것이었다.
 주변에 쌓인 눈이 녹고 있었다.
 감숙은 넓은 사막으로 이루어진 땅이었기 때문에 밤은 춥고 낮은 머리가죽을 벗길 듯 더웠다.
 “가공하군. 단 일 수에 죽였다.”
 사조는 몸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감숙에서 십 년 동안 포두 생활을 한 그였기에 감주부에서 거들먹거리는 산단산장에 대해 듣는 것은 어렵지 않았었고, 유극렬에 대해서도 몇 마디 들어 둔게 있었다.
 “시체는 모든 것을 말해 주지.”
 시체는 말로 알려줄 수 없는 것을 알려주는 중요한 단서였다. 시체를 보면 죽인 방법과 무공의 종류는 추측할 수 있었다.
 사조는 한참 동안 시체를 내려다보았다.
 “유극렬 또한 조공(爪功)에 당했다.”
 열두 번째의 시체였다.
 달이 둥근 십오야가 되면 한결같이 목줄이 끊긴 채 죽은 시체가 발견되었다.
 ‘빌어먹을······!’
 입맛이 썼다.
 ‘또?’ 하는 생각이 머리를 쳐들게 하고 목이 간질거렸지만 부하들이 뒤를 지켜보는 상황에서 놀랍다는 표정을 지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아주 나를 가지고 놀려고 드는군.’
 이가 갈리는 일이었다.
 한 달에 한 번씩, 정확하게 보름달이 뜨면 나타나는 월중살은 사조의 머리털을 모두 뽑아낼 것 같았다.
 섬서행도사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었던 제형안찰사사의 안찰사(按察使) 이주병(李 )은 사조를 감주부로 보내며 단시일 내에 마무리짓고 난주로 돌아오라 했지만 벌써 일 년이 다가오고 있었다.
 “벗겨라!”
 “옷을 벗기라는 말씀입니까?”
 “그렇다.”
 “아니, 이자는 산단산장의 당주입니다. 산단산장에서 가만히 있겠습니까?”
 추기는 불안한 음성을 감추지 않았다.
 산단산장은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들은 감주부에서 개파(開派)하여 이십 년 이상의 역사와, 적지 않은 제자들을 감숙에 뿌려 놓고 있었다.
 그들의 반발이 거칠게 다가올 수 있었다. 그들이 관과 맺고 있는 인맥을 생각할 때 사조에게 불이익이 올 수도 있었다.
 “벗겨라.”
 추기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유극렬의 옷을 벗겼다. 얼어붙어 추기는 손을 입김으로 녹여가며 옷을 벗겼다.
 해가 머리 위로 떠오르고 있었다.
 옷이 벗겨지자 사조는 시체를 세세한 눈으로 바라보았지만 뚜렷하게 드러나는 것은 없었다.
 “역시 단 일 수에 목을 뜯어 죽였군.”
 사조는 씁쓰레하게 중얼거렸다.
 그가 본 여덟 번째의 시신이었지만 이미 보았던 시체들과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거친 나무의 끝으로 긁힌 듯 보이는 목의 상처는 불과 두 치가 넘어 보이지 않았다.
 “무엇으로 죽인 것 같은가?”
 사조가 주위를 돌아보며 물음을 던진 것은 신임 포쾌들의 교육을 위한 것이다.
 “비조(飛爪)나 필가차(筆架叉) 같은 병기가 아니었을까요? 그도 아니라면 목을 뜯어낼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습니다.”
 “이 상처가 감기며 뜯긴 것이라 생각하나?”
 “그렇군요.”
 추기는 자신이 무엇인가 잘못 생각했다는 것을 인정했다. 목에 긁혀진 상처는 예리한 병기에 당하지 않았다는 것이 분명했다.
 “손톱으로 긁은 상처가 아닐까?”
 “손톱이란 말입니까?”
 “난 그렇게 생각하는데······.”
 추기는 몸을 숙이고 다시 한 번 시체의 목을 살펴보았다. 그의 눈에도 가는 상처가 보인 것 같았다.
 손톱에 긁힌 상처라 생각하니 머리가 굳어 버린 듯 다른 방법으로는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추기는 고개를 저었다.
 “믿어지지 않습니다. 분명 손톱에 긁힌 상처라는 심증은 가지만 누가 감히 무공의 고수라는 유극렬을 조법(爪法)으로 죽일 수가 있겠습니까?”
 수긍이 가는 말이라 사조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손톱에 죽었다는 추론(追論)을 도출해 내기는 했지만 눈으로 보면서도 믿어지지 않았다.
 사람의 신경이나 근육은 급격한 힘에 의해 놀라거나 타격을 받으면 수축되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유극렬의 목에 난 상처는 그렇지가 않았다.
 평상시 사람의 목줄기처럼 늘어진 모습이었다.
 ‘이것은 유극렬이 미처 방비를 하지 못할 정도로 빠른 공격이 일어났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다. 사람의 힘으로 그것이 가능한가?’
 눈으로 보면서도 믿을 수가 없었다.
 “몸이 죽음에 대한 공포로 수축될 사이도 없이 강하고 빠른 공격이었다.”
 사조는 누구에게 들으라고 하는 말은 아니었다. 추기는 몸을 세우고 사조를 멍청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도 더 이상은 알아낼 것이 없다는 표정이었다.
 ‘누굴까?’
 궁금증의 안개처럼 일어났다.
 산단산장에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간다는 소문이 있는 유극렬을 일 격에 죽인 자가 누구인가 하는 궁금증으로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아무리 되짚어 보아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특징이랄 것도 없었고 단서랄 것도 없었다. 굳이 찾고자 한다면 목에 난 상처가 전부였다.
 “미치겠군.”
 사조는 말을 씹었다. 한때는 스스로 영악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출세를 위해 관문에 몸을 던진 것이었다. 그러나 생각이 한계에 부딪치는 것을 느끼며 사조는 주저앉고만 싶었다.
 한심스러운 일이지만 방법이 없었다. 월중살을 추적하기에는 너무도 단서가 모자랐다.
 사조는 허리를 숙이고 시체를 내려다보았다. 그가 주의해서 보는 것은 시체의 근육이었다. 사람이 죽으면 근육이 이완되어 시체가 축 늘어지게 된다. 주변에 추위가 몰려와도 마찬가지였다.
 죽은 후 네 시진 정도가 지나면 시체의 경직현상이 전신에 나타나 온몸이 마치 나무토막처럼 딱딱하게 굳어지기 마련이었다. 따라서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사람이 들어도 구부러지지 않고 한일자로 빳빳하게 보이는 것이 통례였다. 그렇지만 열 두 시진이 지나면 시체는 다시 풀어지고 부패하기 시작했다. 시체가 빳빳하게 굳는 시강은 어떤 시체에나 일어나는 것이지만 정확하게 판단하기 위해서는 경험과 안목이 필요했다.
 사조는 시체에 일어난 시강(屍剛) 현상으로 유극렬이 적어도 두 시진 이전에는 죽었을 것이라 판단했다.
 시체는 이미 허리까지 굳어 있었다.
 “하행성(下行性) 시강이군. 허리까지 굳었다면 이미 두 시진이 지났다는 것이 확실하다.”
 그의 말에 서 있던 십여 명의 포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범인을 추적하고 살인자를 밝혀 내는 것을 따로 배우는 것이 아니었다.
 포두들을 따라다니며 귀동냥으로 듣고 뒤치다꺼리를 하며 배우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포두가 되고 다시 포쾌들을 거느리는 것이었다.
 시강은 두 가지 방법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그들 모두는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하행성 시강은 시체의 턱이 제일 먼저 굳고 목, 어깨, 팔꿈치, 팔, 손, 허리, 다리, 발의 순서로 굳어지는 것이었고, 상행성(上行性) 시강은 흔하지 않지만 반대로 다리에서 상체로 옮아가는 방법으로 시체가 굳어지는 것이었다.
 “제법 좋은 일을 많이 한 모양이군.”
 사조는 무의미하게 중얼거렸다.
 그의 말대로 시체를 조사하는 추시관(推屍官)이나 포두들은 하행성 시강이 일어난 시체는 살아 있을 때 좋은 일을 많이 했다고 믿고 있었고, 상행성 시강이 일어나는 시체는 살아 생전에 험한 일을 하고 악한 일을 많이 했다고 생각하는 통념을 지니고 있었다.
 이런 통념은 범인을 추적하는 첫 걸음으로 나타났다. 시강이 하행성으로 일어난 시체는 우발적인 타살이나 지나가는 행인들의 목적 없는 살인으로 보고 범인을 추적해 갔고, 상행성으로 일어난 시체가 발견되면 은원관계를 더듬어 갔다.
 “역시 우발적이었나? 아니면 유극렬이 이곳을 지나가다 우연히 월중살과 만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인가?”
 하행성 시강을 바탕으로 할 때 그 이상의 추리는 불가능했다.
 “시체는 삼 일은 보존하며 시강과 몸에 일어나는 반점을 주시해야 한다. 지금은 추운 계절이니 적어도 사흘 동안은 시강이 풀리지 않을 것이다.”
 “예!”
 포쾌들이 급히 허리를 숙였다.
 삼 일이라는 시간이면 시체에서 조금 더 자세한 것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처음 죽었을 때 시체는 겉으로 드러난 상처만을 보여주지만 시간이 지나면 체내나 미세한 흠집마저도 드러내는 경우가 있었다. 그래서 시체는 가장 중요한 단서였고 증거가 될 수 있었다. 오랜 포두 생활에서 체득한 모든 경험들이 오늘의 사조를 만들고 있었다.
 그의 말대로 시체에서 일어난 시강은 날씨에 따라 다르지만 추운 계절에는 사흘 정도의 시간을 두고 시체에 시강이 풀렸다.
 “유극렬이라 했는가? 이자는 죽기 전에 주먹을 쥐어 누군가 후려치려 한 것 같군.”
 사조는 유극렬의 좌수를 보며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유극렬은 왼손 주먹을 쥔 채 팔 굽이 안으로 웅크려져 있을 뿐 아니라 다른 어떤 곳보다도 단단하게 근육이 굳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람은 죽을 때 극도로 긴장한 상태에서 어떤 근육에 강한 힘을 주면 사후에 시간 흐름에 따라 일어나는 시강 현상과는 전연 관계없이 나타나기 마련이었고, 그것으로 시체가 죽기 전에 무엇을 하려 했는지 유추할 수 있었다.
 ‘이것으로 시체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모두 얻은 셈이다.’
 사조는 일어섰다.
 더 이상 살펴보아야 시체에서 알아낼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보다는 차라리 다른 경로를 통해 월중살의 행방을 추적하는 것이 나으리라고 생각했다.
 “산단산장에 알려라. 유극렬이 시체로 발견되었다고······. 그리고 추기는 나를 따르도록 하라.”
 “알겠습니다.”
 귀찮은 일을 마치게 되어 홀가분하다는 듯한 음성으로 추기가 입을 열었다.
 
 
 2
 
 
 범인은 어디로 도주했을까? 도주로를 짚어 보는 것은 시체에서 얻을 수 있는 것만큼 중요한 증거이며 단서라는 것을 모르지 않는 사조는 추기를 대동하고 산비탈을 기어올랐다.
 발자국을 찾기는 어려웠지만 한동안 주위를 샅샅이 더듬어 보자 산비탈에서 발자국이 발견되었다. 범인의 발자국은 눈에 찍혀 있었다. 월중살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을 때 눈이 오기 시작했는지 발자국 위에는 눈이 살며시 덮여 있었다.
 사조는 월중살이 산으로 오른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월중살이 왜 산으로 도주했다고 보는가?”
 “자신의 신분이 노출될까 그랬던 것이 아니겠습니까? 관도를 따라 감주부로 들어갔다면 필시 누군가의 눈에 발각되었을 테니 말입니다.”
 “그럴까?”
 추기의 말에 사조는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긍정도 아니고 부정도 아닌 애매모호한 대답이었다.
 사조는 기이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유극렬을 죽일 정도의 무공을 지닌 자라면 누구의 눈에도 들키지 않고 몸을 이동할 수 있었을 것이었다. 더구나 늦은 밤에 일어난 일이었다.
 ‘당모율(唐 )은 무얼 했는지 알 수가 없군.’
 사조는 마음속에서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중원 어디나 다를바 없겠지만 감숙의 각 현과 부에도 추관이 있었다. 추관은 부중의 지부(知府) 밑에서 사법(司法)을 담당하는 자로, 모든 살인사건을 추적하고 해결하며 범인의 취조와 형벌을 내려 제형안찰사로 보내는 일을 하고 있었다.
 헌데 감주부의 추관 당모율은 수사의 기본인 월중살의 도주로조차 파악하지 않고 있었다. 덕분에 사조가 수사에 착수한 봄부터 지금까지 월중살의 흔적을 추적해 나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생각할수록 화가 치밀어 올라 이마에 열이 올랐다. 만약 당모율이 자신의 직분에 충실했다면 이미 범인이 포승을 받았거나 사조가 감주부까지 오는 일이 없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사조는 감주부에 도착한 후에도 오랫동안 단서를 잡을 수가 없었다. 봄에는 모래폭풍 때문에 흔적을 아예 기대 할 수 없었고, 여름과 가을에도 이렇다할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눈이 내리는 겨울이었고, 월중살은 자신 앞에 발자국을 남긴 것이다.
 사조는 마음이 푸근해졌다.
 “이제야 놈이 어느 곳으로 가는지 알 수 있게 되었다.”
 발자국을 따르면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무하나 없는 초지의 비탈을 내리 부는 바람은 차가웠다. 발자국은 비탈을 따라 감주부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다. 사조는 땅을 파고 들어간 발자국을 자세히 살폈다. 마치 술에 취한 듯 보이는 발자국이었다.
 “제법 무거운 몸을 지닌 자로군.”
 “얼마나 될까요?”
 “적어도 백 이십 근 이상은 나가는 자다. 발의 크기도 무시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자는 다시 조사해 보아야겠지만 필시 키도 클 것이다.”
 사조는 눈 위에 찍힌 발자국을 보며 중얼거리듯 입을 열었다.
 사조는 한참 동안 움직이다 반듯하게 찍혀 있는 발자국을 찾아낼 수 있었다. 비록 발자국이 찍힌 이후에 온 눈으로 약간 메워지기는 했지만 식별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다.
 눈에 찍힌 발자국은 많은 것을 이야기해 주고 있었다. 발의 길이뿐 아니라 그가 신었던 신발의 흔적도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초혜(草鞋)를 신은 것 같군.”
 사조는 손가락을 벌려 눈 위에 찍힌 신발의 치수를 재었다. 한때 사조는 주먹이 크고 손이 커서 ‘왕손’이라는 별명을 지니고 있었다. 투박하지만 긴 손가락을 벌렸을 때 웬만한 신발의 길이는 모두 잴 수 있었다. 그런 그의 한 뼘으로도 길이가 모자랐다.
 “발이 크군.”
 한참을 지나가자 밭이 나타났다. 성큼성큼 뛰어 밭을 지난 것 같이 발자국 사이가 넓었다.
 ‘이곳부터는 달려갔군.’
 추위에 얼어붙은 밭이랑에는 무너진 곳도 있었다. 이랑의 넓이는 한 자가 조금 넘었는데, 발자국은 일곱 개의 이랑마다 하나씩 찍혀 있어 월중살이 밭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달렸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달리지 않아 체중이 실리지 않았다면 그토록 확연히 족적(足炙)이 남을 이유도 없었다.
 한참을 추적하자 구릉 아래 작은 마을이 들어왔다.
 빈한하게 보이는 허름한 열 가구 정도로 이루어진 마을의 등으로는 밭이 이어졌고, 앞으로는 가는 시냇물이 흘렀다.
 이 리(里) 정도의 앞에는 감주부를 둘러싼 토성(土城)이 보였다.
 “저곳이 어디인가?”
 추기는 마을을 바라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사조가 아무리 감주부를 돌아본다 해도 발바리 같은 추기보다는 감주부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없었다.
 추기가 인상을 찌푸렸다.
 “도축장이 있는 곳입니다.”
 “도축장?”
 “그렇습니다. 섬서행도사에서 감주부에 허가를 내준 단 하나의 도축장입니다.”
 “주인이 누구인가?”
 “도겸(都 )이라는 자로 알고 있습니다.”
 추기는 한 번 생각해 내자 망설임 없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사조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언지 알 수 없는 강한 감흥이 다가오고 있었다.
 “추기!”
 “예.”
 “추적은 끝났다. 발자국은 저 아래 마을로 찍혀 있고 결국 마을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침이 밝으면 이 마을을 뒤진다. 단서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알겠습니다.”
 추기의 대답에는 힘이 넘쳤다.
 사조는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느꼈다. 추기의 서두름으로 인해 이른 새벽부터 잠이 깨었기에 계집과의 운우지정(雲雨之情)을 제대로 나누지도 못했고, 살인이 일어난 곳까지 달려와 시체를 보았을 뿐 아니라 거친 숨을 뿌리며 산과 초지를 달려야 했다는 것이 기분 나빴지만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
 월중살에 대한 대략적인 윤곽을 그릴 수 있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었다.
 “그는 빈한한 자다. 초혜가 잘 말해 주지.”
 “그렇습니다.”
 무심코 흘린 말이지만 추기는 바로 찬동했다.
 “우후후후!”
 사조는 기지개를 켰다. 멀리 붉은 홍운(紅雲)이 일어나고 있었다. 하루의 시작이 열리고 있었다.
 ‘그 계집은 아직 자고 있겠지.’
 사조는 갑자기 피로가 가시는 기분이었다. 그를 죽이기라도 하려는 듯 열정적으로 파고들던 흉노의 계집은 아마도 그의 침실에 아직도 하체를 드러내고 있을 것이었다.
 서둘러 가면 날이 완전히 밝기 전에 질탕한 방사를 즐길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3
 
 
 공동파의 장문인 추령자(鰍靈子)는 손에 들린 한 통의 서찰을 받아들고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무심불(無心佛)? 이 자가 누구란 말인가? 어떻게 내 제자들이 백하에서 죽었다는 것을 알며 그 흉수로 산단산장을 지목하는 것인가?”
 추령자는 난해한 기분에 머릿속이 어지러워졌다.
 공동사수라고 불리는 공동파의 제자 중 가장 뛰어난 네 명은 추령자의 꿈이며 희망이었다. 그들이 어느 날 가욕관 부근의 백하(白河)에서 시체로 발견된 것이 불과 한 달 전의 일이었다.
 추령자는 공동사수의 시체를 거둔 후 은밀하게 흉수를 추적하고 있었다.
 추령자는 서찰을 꾸욱 움켜 쥐었다.
 “무심불과 산단산장. 한 곳도 소홀이 할 수 없다.”
 추령자는 입술을 깨물며 문 밖의 그림자를 처다 보았다.
 
 ***
 
 종남파의 오대제자 이형도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장문인께서 이렇게 격동하시는 모습을 본 것은 처음이다.’
 이형도는 산문에서 발견한 한 통의 서찰을 읽어보고 너무도 황당한 사안이었지만 혹여 사문을 욕되게 하려는 자의 소행일 수도 있다고 여겨 장문인의 회순(廻巡) 때 서찰을 올린 것이다.
 종남파 장문인 국연성은 서찰을 꾸욱 움켜쥐고 이형도를 처다 보았다.
 “누가 이 사실을 알고 있느냐?”
 “제자가 감히 입밖에 내지 못하였습니다.”
 “어느 놈들이 본 파를 음해 하려는지 은밀히 조사를 하려고 하는데 이 사실을 외부로 유출을 시켜서는 안 된다.”
 이형도는 무릎을 꿇었다.
 “제자는 목에 칼이 들어와도 이 사실을 발설하지 않겠나이다.”
 국연성은 이형도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네 공부가 적지 않구나?”
 “무슨 ······.”
 “삼 장로가 있는 연무동으로 가서 삼 년 폐관 수련을 하거라.”
 이형도는 고개를 쳐들었다.
 “자 장문인. 제, 제자는 ······.”
 국연성은 미소를 머금었다.
 “평소 너를 눈여겨보고 있었느니라. 그리 알고 즉시 연무동으로 향하거라.”
 이형도는 간신히 몸을 세워 조심스럽게 물러났다.
 이형도가 물러나자 국연성의 두 눈에서 불같은 신광이 뿜어져 나왔다.
 “무심불! 이자가 어떻게 본파의 제자들 중 몇 명이 앵속에 중독 되었으며, 본인이 비밀리에 조사를 한다는 것을 안단 말인가?”
 국연성은 서찰을 다시 살펴 보았다.
 “산단산장을 조사해 보라고······?”
 국연성은 팔뚝에 힘줄이 돋을 정도의 강한 힘으로 서찰을 움켜쥐었다.
 “산단산장과 무심불!”
 
 
 4장 추살령(追殺令)
 
 
 1
 
 
 침상에 어울리지 않는 학창의(鶴 衣)를 걸친 요동명(遼 )은 한동안 숨을 쉬지 않는 것 같은 모습으로 깊은 생각에 잠겼다.
 침상 앞은 짙은 망사(網絲)가 가리고 있어서 전실에 앉은 후방역(侯坊 )은 침상에 앉아 있는 요동명의 얼굴을 알아볼 수 없었다. 단지 요동명이 지나칠 정도로 오랫동안 고요하다는 것만이 은은한 망사 주렴을 통해 보일 뿐이었다.
 요동명의 목소리는 가라앉아 있었다.
 “흠! 그렇게 생각하는가?”
 ‘분노하고 계시는가?’
 하마처럼 뚱뚱한 후방역의 얼굴이 가볍게 탈색을 일으켰다.
 요동명이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 듯 느껴졌지만 망사가 가려져 있어 정확하게 볼 수는 없었다.
 어딘지 모르게 요동명의 목소리에는 음울한 기색을 띄고 있어 듣는 것만으로도 몸이 떨릴 정도였다.
 “아직도 찾지 못했다고?”
 “그렇습니다.”
 후방역은 짧게 대답했다.
 전신에 사람의 몸에서 흘러 나온 피보다 붉은 홍의를 입고 있는 후방역의 얼굴에는 긴 상흔이 남아 있었다.
 얼굴에 난 자상과 뚱뚱한 몸에 허리에 차고 있는 한 자루의 병기로 인해 그의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투박한 그릇을 보는 것 같은 인상이었다.
 “아무래도 삼 년 전 살아남은 자가 있는 것 같군.”
 휘장에서 울리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 오자 후방역은 퉁기듯 목을 세웠다. 눈은 경악과 강한 부정이 떠오르고 있었다.
 “그들은 이미 죽었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시체를 확인했고 이미 지나간 일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나? 만에 하나라도 그들이 살아남아 움직이지 않는다고 장담을 할 수 있나?”
 요동명의 음성은 목을 조를 듯한 분기(憤氣)를 담고 있었지만 후방역은 물러설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무작정 물러섰다가는 모든 책임을 자신이 뒤집어쓰게 될지도 알 수 없는 일이었고 결과적으로 흔적을 남겨야 할지 모른다는 생각은 온몸에 소름을 돋게 했다.
 “비록 십오야에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있지만 그들이 용정(龍井)의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 수 없지 않습니까?”
 “물론 단정할 수는 없겠지.”
 “우리가 선택한 자들을 제외하고 그들은 모두 죽었습니다. 오래도록 그들의 그림자에 파묻혀 계시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함부로 입을 열 수는 없었는지 극히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말투였다. 후방역의 모습으로 보아 휘장에 가려진 자의 신분이 두려움을 주는 존재인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요동명의 목소리가 낮게 깔리자 후방역은 한동안 입을 열지 못했다.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고 싶었지만 요동명의 목소리가 너무 가라앉아 있었기 때문에 그를 설득하기도 어려워 보였다.
 후방역은 입을 다물었다.
 “그 날, 사조가 도착한 시기는?”
 “우리가 연락을 받고 도착하기 불과 일 각도 되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는 유극렬의 시신에서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다행이군.”
 “그렇습니다. 유극렬까지 죽음으로 해서 이번 살인사건의 목적이 우리 산단산장을 겨냥하고 있다는 것이 명백해졌습니다.”
 요동명은 한심스럽다는 듯이 한숨을 불어내었다. 긴 한숨마저도 깊게 가라앉아 있었는지라 후방역은 사시나무처럼 몸을 가늘게 떨었다.
 질식할 것 같은 정적이 한동안 유지되고 있었다. 요동명은 요동명대로, 후방역은 후방역대로 생각에 젖어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분명, 그때 그들은 모두 죽었나?”
 “물론입니다. 제자들이 오십여 명이나 죽고 화탄이 삼십육 발이나 터졌습니다. 당시 우리는 삼십이 구의 시신을 보았습니다. 인질이 있었다고 하지만 찾지 못하고 산산조각으로 부서진 시체도 있었습니다.”
 “장담할 수 있나?”
 “물론입니다. 누구도 화탄을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저와 저를 따르던 부하들이 직접 눈으로 목격한 것이니 틀림없습니다. 당시 같이 계시지 않으셨습니까?”
 “의심이 들어서 말이다. 믿을 수 있나?”
 “물론입니다.”
 “좋다. 난 그대, 후방역을 믿겠다.”
 “감사합니다. 후방역은 장주님을 위해 신명을 받칠 것입니다.”
 후방역은 고개를 수그렸다.
 대를 이어 충성을 한 인물이었다. 그의 부친이 요동명의 부친에게 충성을 다했던 것만큼 후방역 역시 요동명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후―우!”
 다시 휘장 안으로부터 긴 한숨이 흘러 나왔다.
 요동명의 한숨이 밀려나오자 후방역은 가슴이 바싹바싹 타는 것 같았다. 오래 전부터 그들의 가슴에 쌓인 회한이 적지 않기 때문이었다.
 “벌써, 일 년 동안 열두 명의 부하를 잃었다. 많은 숫자는 아니지만 간과할 수는 없다.”
 후방역은 요동명의 목소리가 너무도 깊게 가라앉아 있다는 것을 느끼며 머리를 숙였다.
 무어라 대답하고 싶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그저 요동명의 목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여인의 탐스러운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려 미장부의 어깨에 드리워지듯 밤이 다가오고 있었다. 고양이의 조심스러운 행동처럼 내려온 어둠은 모든 것을 침묵으로 몰아갔다.
 오래도록 요동명과 후방역은 밀담을 나누었다. 그들 사이에 흐르는 기류는 은밀했고 마치 소곤거리는 듯해 곁에 누가 있다고 해도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요동명은 한참 동안 휘장 밖의 창을 응시했다.
 창 밖에는 어둠이 안개처럼 밀려오고 있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일 년 동안 계속해서 월중살을 찾기 위해 애를 썼습니다. 이제 어느 정도 접근했고, 곧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휘장 너머에서 후방역의 목소리가 가볍게 흔들렸다.
 그의 말대로 산단산장의 무인들은 오래도록 월중살을 추적하고 있었다. 열두 번에 걸친 살인은 한결같이 산단산장과 연관이 있는 자들이었다.
 당연할 수도 있는 것이 감주부에서 활동하는 무인 열 명을 잡아놓고 물으면 그 중 아홉 명은 산단산장의 무인이었고, 나머지 한 명은 다른 지방의 무인이거나 낭인무인들이었다.
 “나, 천리검후(千里劍候) 요동명이 이런 일로 고심을 해야 한다는 것이 어울린다고 생각하나?”
 요동명이 몸을 돌리며 후방역을 바라보았다. 후방역의 얼굴이 창백하게 물들었다. 그는 요동명이 어떤 경우라도 화를 내는 경우를 본 적이 없었다.
 요동명이 인상을 쓰거나 원로(元老)들을 모아놓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의도적인 경우였다. 진정으로 그가 화가 났을 때는 오히려 말소리가 낮아졌다.
 요동명의 목소리는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후방역은 그것이 두려웠다.
 ‘극도로 화를 내시고 계시는가?’
 두려운 일이었다.
 요동명이 스물네 살의 나이에 산단산장을 세운 이래 어느 덧 이십 년이 지났다. 불과 이십 년의 짧은 세월이지만 감숙에서는 누구도 그의 말을 무시하지 못했다.
 그는 입지전적(立志傳的)인 인물이었다.
 “일 년 동안 끊임없이 팔다리가 잘려 나가고 있는데 멍청하게 당하고 있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몇 군데 보아 둔 곳이 있습니다. 단지 제형안찰사사의 사조가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의심이 가는 곳을 모두 공격할 수 없을 뿐입니다.”
 “음.”
 요동명의 목소리가 더욱 가라앉았다.
 그에 대해 아는 자라면 그가 인내심을 발휘하고 있으리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는 평소에도 화를 내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항상 고인 물처럼 차분했고 얼음처럼 냉정해 산단산장에 몸을 담은 사람들 중에서도 일부의 사람들은 그를 냉혈동물(冷血動物)이라 했다.
 그랬기에 스물네 살의 나이에 일파를 세울 수가 있었고, 그가 세운 산단산장은 이십 년이 지난 지금 감숙을 아우르는 가장 큰 문파가 될 수 있었다.
 “그가 있는 곳은?”
 “감주부 외곽의 유하촌(流下村)으로 반경을 좁혀 두었습니다.”
 “유하촌이라고 했나?”
 “그렇습니다. 감주부에서 십여 리 떨어진 작은 마을입니다.”
 “네가 직접 보았느냐?”
 “아닙니다. 부하들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이제 월중살로 보이는 자의 위치가 확인되었기 때문에 제가 직접 가 보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요동명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생각하는 부하들의 능력은 약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 년 동안 열두 번의 살인을 저지르고 산단산장의 무인들에게 잡히지 않았다는 것은 그가 얼마나 강한 자인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산단산장으로서도 가볍게 대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누가 그를 감시하고 있나?”
 “모허당(謨虛堂)의 우륵결 당주와 그를 따르는 삼십 명의 제자들입니다.”
 “그라면 믿을 수 있지.”
 요동명이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모허당이라면 설사 소림사의 방장을 추적하더라도 실수를 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우륵결이라면 믿을 수 있었다.
 “분명 그가 월중살이라는 살인자가 분명한가?”
 “그가 월중살이라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정황으로 보아 그일 가능성은 백 중의 백이라고 보고를 받았습니다.”
 “흠, 좋은 일이군. 그러나 오늘이 보름이라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야.”
 “이미 포석(布石)을 깔아 놓았습니다.”
 요동명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오늘이 보름달이 뜨는 십오야라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기다리기로 했다. 자신들이 추적한 자가 움직여야 진위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결과는?”
 “내일이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기대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후방역은 호기롭게 말했다.
 요동명은 고개를 끄덕였다. 휘장사이로 희미하게 후방역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좋다. 그만 돌아가도록 하라. 은밀하게 일을 추진하되 군사(軍師)들을 제외한 누구에게도 발설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것을 잊지 마라.”
 “알겠습니다.”
 후방역은 가볍게 허리를 숙인 다음 뒷걸음으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탁! 문을 열고 사라진 그의 모습 뒤로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려 왔다.
 촤아아악!
 요동명은 침상을 가리고 있던 휘장을 걷어 버렸다. 요동명의 눈에는 붉은 기운이 한 꺼풀 내려와 있었다.
 “벌써 삼 년이 지난 이야기다.”
 창가로 다가간 요동명은 몸을 밀착시켰다. 그의 눈이 창 밖을 향했다.
 멀리 만년설을 머리에 이고 있는 기련산령이 다가오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요동명은 한참 동안 만년설을 바라보다 몸을 돌렸다.
 
 
 2
 
 
 “자네가 진가장(陳家莊)에 온 지 얼마나 되었나?”
 진 대인이 입을 열었을 때 등량(登 )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하인들이 뼈가 부서져 죽어도 그것을 불쌍하다 여기지 않을 진 대인이 갑자기 자신을 불러세워 물음을 던지자 의야함을 느꼈다.
 등량은 습관적으로 콧등을 긁었다. 검은 점이 콧등에 사마귀처럼 앉아 있었다.
 “일 년에서 한 달이 빠지는 것 같습니다.”
 진 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흠! 내 부탁 좀 들어주게나.”
 성격이 불같고 천하에 두려운 것이 없는 진 대인이지만 그의 목소리는 애원에 가까웠다.
 “무슨······.”
 “내일 떠날 준비를 하게나.”
 “떠나라니요? 어디로?”
 “사막일세!”
 진 대인은 무의식적으로 눈을 돌렸다.
 ‘뭔가 있다.’
 등량은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가까운 곳이라면 등량도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진 대인의 표정으로 보아 가까운 곳 같지는 않았다. 더구나 진 대인은 무의식적으로 등량의 눈을 피하고 있었다. 등량으로서는 기분 좋은 일이 아니었다.
 “먼 곳입니까?”
 “그렇다네······. 아주 먼 곳이지.”
 등량은 가슴 한구석이 아려오는 것 같았다. 언제나 주변을 돌아보며 살아가는 생활이었다. 아차 하는 순간이면 목숨이 사라질지도 모르는 일이었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손길을 순간 순간을 느끼고 있기도 했다.
 언제부터인가는 잠을 자면서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못 갑니다.”
 “왜지?”
 “요즘 사막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모르는 것은 아니겠지요. 흉노와 위구르족의 무인들이 나타났다고 아우성입니다. 잘못하다가는 내 목을 보전하지 못할 것입니다.”
 “좋아. 난 자네에게 한 가지 제의를 하겠네.”
 “뭡니까?”
 “자네가 내 부탁을 들어준다면 한 재산을 떼어 주겠네. 섭섭하지는 않을 걸세.”
 등량의 눈이 찌푸려졌다.
 ‘그토록 중요한 일인가? 혹시 이 자가 눈치를 챈 것이 아닌지 모르겠군.’
 등량은 눈을 들고 진 대인을 바라보았다. 진 대인은 비굴할 정도로 입가에 웃음을 띄고 있었다.
 
 ***
 
 등량은 맑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곳을 떠나면 원수를 갚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몸에 이는 주체하지 못할 살의를 억누르고 타오르는 마음을 다스리는데 삼 년이 걸렸다.
 아직도 담쟁이덩굴처럼 주렁주렁 매달려 따라다니는 운명을 거역하지 못하고 있는 등량이었다. 평온하다가도 머릿속에 처절하고 안타까웠던 그 날의 기억이 떠오르면 그는 자신도 모르게 악마로 변하고 만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아직 몸에 흐르는 약효를 지울 수가 없다. 시간이 필요하다.”
 고민스러운 일이었다. 한 달에 한 번씩 몸을 타고 흐르는 강한 피의 욕구는 그를 마인(魔人)으로 만들었다.
 삼 년에 걸쳐 노력을 했었다. 이제는 겨우 마음을 억누를 수가 있었다. 그러나 불안전했다. 아직도 한 달에 한 번은 피를 보아야만 온전하게 마음이 가라앉는 그였다.
 보름달이 뜨는 십오야의 깊은 밤에 자신이 미친 짓을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처음에는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몽롱한 의식이지만 그는 자신이 저지르고 있는 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것은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기운이 상대적으로 약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갚아야 할 원수가 아직 남았지만 우선은 이곳을 피해야 한다. 그들의 추격이 이미 내 몸 가까이 왔다.’
 등량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는 이미 넉 달 전부터 자신을 향해 조여오는 눈을 알고 있었다. 그들이 누구인지도 알고 있었다. 그 동안은 그들을 무사히 피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너무도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그들의 눈을 벗어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무리 무공이 뛰어나다 해도 산단산장의 적지 않은 무인들과 겨룰 수는 없는 일이기도 했다.
 “방법은 하나!”
 등량은 이를 악물었다.
 추적을 피하고 죽음을 면할 수 있는 길은 오로지 하나뿐이었다. 그것은 아주 간단한 방법이었지만 실행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고, 생각이 잘못된다면 어이없게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일이기도 했다.
 “몸에 흐르는 약효를 완전하게 없애기 위해서는 그들이 손을 뻗치지 못하는 곳으로 가야 한다. 단 나의 발작을 막을 수 있는 곳이라는 전제조건도 성립이 될 수 있는 곳이라야 하고······.”
 등량은 몸을 일으켰다.
 그로서는 이미 모든 계획이 머릿속에 바둑판처럼 훤하게 세워져 있었다. 계획에 걸맞은 일을 만들어야 했다.
 그것은 가능했다.
 보름달이 뜨는 십오야가 바로 오늘이었고, 등량으로서는 가장 바라던 날이기도 했다.
 “드디어 기다리던 십오야다.”
 멀리 어둠을 가르며 달이 떠오르고 있었다. 만월이었다. 달걀의 노른자위처럼 보이는 달은 누가 잡아당기기라도 하는 듯 빠르게 천공으로 올라왔다.
 등량은 달을 노려보았다. 그의 눈에서 뿜어지는 열기가 붉게 달아오른 달을 익혀 버릴 것 같았다.
 “이제 월중살로 돌아갈 때다. 아마도 나는 또다시 살인을 저지를 것이다. 그 전에 나는 나를 원하는 자들에게 보여줄 것이 있다.”
 등량의 몸이 급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5장 혈풍(血風)
 
 
 1
 
 
 보름달이 떠오르고 있었다.
 나무를 잘라 얼기설기 엮어 만든 토막집의 창가에서 등량은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평소에는 허름한 마의를 입어도 단정한 그였지만 지금은 흘러 내린 머리카락이 얼굴을 덮어 누가 보아도 등량이라는 것을 알 수 없을 것 같았다.
 별이 총총했다.
 몸서리 처지도록 맑은 하늘이었다. 손을 뻗으며 푹 담겨질 것 같은 하늘에는 초롱초롱한 계집아이의 눈망울처럼 별들이 명멸하고 있었다.
 가슴으로 쏟아질 것 같은 눈망울들 사이에 천하를 덮을 듯 보이는 커다란 달도 있었다. 달무리는 애수(哀愁)에 젖은 달을 감싸고 돌았다.
 “후―우!”
 깊은 한숨이었다.
 불어내는 듯한 숨소리는 제법 길어 숨을 불어낸 그의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닌 것 같았다. 한숨이 한(恨)이라 한다면 그의 한이 놀랍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피가 끓어오르고 있다.”
 등량의 목소리는 탁하고 굵었다.
 뿌드드득!
 그는 이가 부서지도록 갈았다. 만약 누군가 곁에 있다면 듣는 것만으로도 몸에 오한이 일 지경이었지만 다행스럽게도 그의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만월이 떠오르고 있어. 또다시 정신이 혼란해지고 있다. 또다시 피가 나를 부르고 있다는 것을 알아. 달이 중천에 떠오르면 나는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할 것이다.”
 콰직!
 등량은 손을 뻗어 창틀을 움켜잡았다.
 단단한 나무로 만들어진 것 같아 보이는 창틀에 그의 손가락이 파고들고, 창틀은 기다렸다는 듯 엄살을 떨며 손톱을 박았다.
 “끄어어어.”
 비명 같은 소리를 지르며 등량은 창에서 떨어졌다. 그의 눈이 붉게 변해 가기 시작했다.
 그의 몸부림을 알고 있기라도 하는 듯 창가에서 빛나는 별은 그의 몸을 비추고 있었다. 마치 오래도록 그를 따라다니는 그림자와도 같은 모습이었다.
 “크크크!”
 등량은 무엇이 그리도 즐거운지 키득거리며 웃었다. 맨 정신을 지닌 사람이라면 감히 낼 수 없는 기이하고 소름이 돋는 목소리였다.
 미친 듯한 떨림이 그의 등에 머물렀다.
 “누구도 나를 말리지 못해.”
 등량의 목소리는 스산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달빛이 스며들며 등량의 몸을 훑고 지나갔다. 언뜻 드러나는 등량의 얼굴이 달빛에 빛났다. 머리카락에 가려져 자세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의 콧잔등에는 유난히 커서 돋보이는 검은 점이 있었다.
 
 ***
 
 감숙의 모래 바람은 누구도 막을 수 없다.
 으스스한 밤이었다. 눈이 내리는 계절이 가려면 아직 멀었는지 하늘은 깨질 것같이 차가웠다.
 밤이 이슥해졌을 때 사위(四圍)는 어둠에 잠겨 버렸지만 천공의 달은 높게 떠서 온 누리를 비추고 있었다. 달무리가 뿌우연 안개의 막을 만든 것 같아 보이는 밤이었다.
 달을 둘러싼 하늘은 얼어붙은 듯 차가웠고 하늘 끝까지 보일 만큼 청명해 보였다. 마치 뛰어들면 수영이라도 할 수 있으리 만치 푸른 물과 같은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드드드드―
 마차바퀴는 모래 먼지를 피워 올리고 돌을 퉁겨내며 달려왔다. 네 마리의 말이 모는 사두마차(四頭馬車)였다. 말은 갈기가 고왔고 키가 컸다.
 한결같이 허리는 잘록했고 진한 적색을 띄는 것으로 보아 명마(名馬)는 아니라 하더라도 준마(駿馬)는 될 것 같았다.
 키가 크다는 것은 서역의 사막에서 자라는 말이라는 것을 의미했고 허리가 잘록한 것은 초원의 말이라는 것을 의미했다. 두 가지의 특징 모두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말들은 서역마(西域馬)와 초원마(草原馬)를 교배해서 얻어낸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이랴!”
 마부는 사순 정도의 나이를 먹어 보이는 중년인이었다. 누가 보아도 특징이 없는 얼굴이었다. 머리에는 평면으로 보이는 평사모(平沙帽)를 쓰고 있었고, 등에는 한 자루의 장검을 메고 있었다.
 거친 수염이 마부의 얼굴을 결정지었지만 눈에는 빛이 어리고 있어 어줍잖은 마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걷고 있는 말발굽에서 서두르는 기색은 찾을 수 없었다.
 “달이 떴느냐?”
 “그렇습니다. 머리 위에 있습니다.”
 마차 안에서 늙수그레한 목소리가 울리자 마부는 머리를 돌려 마차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비록 엉덩이는 어자석(御字席)에서 움직이지 않았지만 목소리는 극도의 존경을 품고 있었다.
 마부는 채찍을 감아쥐었다. 말을 재촉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의 몸에는 은은한 긴장이 어리고 있었다. 긴장은 몸을 경직시켰고 손이라 해서 다를 것은 없었다.
 “우리가 있는 곳이 어디냐?”
 “흑하가 눈 앞에 있습니다. 멀리 만리장성이 보이고 낮은 토성이 무너져 가고 있는 곳입니다.”
 “흠! 하고성(河鼓城)이로군.”
 마차 속에서 울려오는 목소리에도 긴장이 묻어 있었다. 목소리로 판단해 보면 제법 나이가 들었을 것으로 보였다. 마차에서 들려 오는 목소리도 마부의 목소리만큼이나 굳은 듯했다.
 마부는 연신 눈을 돌려 사방을 쓸어보고 있었다. 누구를 기다리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긴장이 흐르는 눈에는 왠지 모를 진득한 두려움이 뿜어지고 있어 그의 모습에 안정감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주위를 살펴라.”
 “알겠습니다.”
 마부는 말의 고삐를 당겼다. 말은 한차례 허공에 발길질을 하고 몸을 출렁거리더니 걸음을 늦추었다. 말의 속도가 급격히 떨어졌다.
 말은 사람이 걷는 것 정도의 속도로 거친 관도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좌우로 두 줄의 나무 의자를 배치하고도 중앙에 작은 원탁을 놓을 만큼 넓은 마차의 내부에는 다섯 명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었다.
 한 명의 노인과 입고 있는 옷의 색이 같은 네 명의 사내였다.
 마차의 천장에 매달린 궁등이 마차의 움직임에 율동을 맞추어 흔들거리며 실내에 타고 있는 자들의 그림자를 흐느적거리게 만들고 있었다.
 “호법께서는 그가 정말 나타나리라 보시는 겁니까?”
 등에 한 자루의 검을 메고 있는 중년인이 노인을 바라보며 물었다. 한결같이 등에 검을 메고 있었지만 그가 유난히 돋보이는 것은 검환(劍環)에 오색의 수실이 매어져 있기 때문인 것 같았다.
 각각 다른 다섯 가지의 색을 지닌 수실은 마차가 덜컥거릴 때마다 출렁거리고 있었다.
 “그는 반드시 나타난다.”
 노인은 단정적으로 말을 끊었다.
 수염이 갈대꽃처럼 보이는 노인의 몸에서는 어딘지 모르게 마주하기 어려운 기운이 흐르고 있었다. 그의 등에도 역시 한 자루의 검이 메어져 있었다.
 그가 메고 있는 검에도 진한 청색으로 염색이 된 천이 수실처럼 보였다.
 “유극렬을 죽인 자를 그냥 둘 수는 없다.”
 노인은 이마를 쓸어 올렸다.
 매미의 이마처럼 반듯한 이마 위로 흘러내렸던 몇 오라기의 백발이 머리에 달라붙었다. 머리는 여인의 성장(盛裝)처럼 붉은 비단 천에 묶여 있었다.
 노인의 눈이 타오르고 있었다.
 “도호법(禱護法) 어르신! 그 자가 누구인지 모르지만 유극렬 당주를 일 격에 죽였다면 우리가 막을 수 있을까요?”
 눈이 유난히 작은 사내가 불안한 음색으로 물었다. 그의 말을 들은 노인의 눈가에 잔 떨림이 일어났다. 그것은 드러나지 않는 분노였다.
 노인이 눈을 들어 천장에 흔들리는 궁등을 바라보았다. 마차의 떨림이 약해졌는지 궁등의 흔들림은 현저하게 줄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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