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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출사 1

2018.04.16 조회 317 추천 1


 아미출사 1권
 서장
 
 
 휙!
 바람을 가르는 소리.
 법당에 자라난 보리수 가지를 흔드는 바람 소리 이상의 어떤 의미가 있으랴.
 야조(夜鳥)마저 깊게 잠든 밤.
 곳곳에서는 수행사미들이 손에 월아산(月牙)과 편경을 들고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지만 바람의 실체는 알지 못했다. 한 순간에 삼 장을 도약해 삼 층 누각으로 스며드는 그림자는 그야말로 바람이었다.
 불각(佛閣)의 삼층으로 들어가는 창에 매달린 그림자는 한참 동안 주변을 살펴보았다. 누각의 안을 쳐다보기도 했고, 월아산을 들고 이리저리 움직이는 승인들을 살피기도 했다.
 야반삼경.
 가람(伽藍)을 도는 수행사미들을 제외한 모든 승인들은 깊은 잠에 들었다.
 그림자는 얼굴에 복면을 쓰고 있었다.
 다만 드러나는 머리가 삭도(削刀)로 민 것처럼 터럭 하나 없는 것으로 보아, 그가 승려이거나 목적을 위해 머리를 밀어버렸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몸에 걸친 것은 승복이었다.
 그는 한동안 주위를 살피다 창문에 귀를 가져다 붙였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는 조심스럽게 창을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누각 안에는 사람의 그림자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서고(書庫)!
 누각의 내부는 책들로 빽빽하게 채워져 있었다. 책이 썩지 않도록 뿌렸는지 진한 단목(檀木)의 향기가 코를 자극했다. 그림자는 바삐 움직였다. 책이 꽂혀 있는 수십 개의 서가를 지나친 그는 한 곳에 멈추어섰다.
 불화들이 걸려 있는 곳이었다.
 수없이 많은 괘불(卦佛)들이 걸려 있었다. 금어(金魚)들이 심혈을 기울였을 괘불들이 눈을 파고들었지만, 그림자는 이미 눈에 익은 듯 조금도 망설이거나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안쪽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가 이곳저곳을 뒤지기 시작했다. 너무도 능숙하여 소리는 나지 않았다.
 “오!”
 오래지 않아 그는 한 장의 불화를 찾아내었다.
 어둠 속에서도 불화가 확연하게 드러나는 것은 금분(金粉)을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불존이 가부좌를 하고 앉아 있었고 십대제자가 뒤에 시립한 모습을 그린 불화였다. 오백나한의 모습도 희미하게 보였다. 불화의 귀퉁이 곳곳에는 여러 가지 글귀가 쓰여져 있었는데, 고승들도 완벽하게 읽기 어렵다는 팔리어와 범어(梵語)였다.
 “팔절도(八節圖)!”
 그림자는 나직하게 탄성을 토했다.
 참을 수 없는 격동이 밀려오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림자는 주위를 다시 한 번 훑어본 뒤 서둘러 불화를 말아 등에 지었다. 떨어지지 않게 튼튼하게 몸에 묶은 뒤 창으로 다가가 한참 동안 밖의 동정을 살폈다.
 둥!
 어디선가 법고 소리가 울렸다.
 “서둘러야 한다.”
 그림자는 창을 타넘었다.
 그는 주변을 살피다 야조처럼 몸을 날렸다.
 
 
 1장 아미산(峨嵋山)
 
 
 중원인들은 천(川), 혹은 촉(蜀)이라 부른다.
 사천(四川).
 사천은 춘추전국시대에 파(巴)와 촉(蜀)의 땅이었다. 진대(晉代)에는 파군과 촉군에 속했고, 한대(漢代)에는 익주(翼州)에 속했다. 당대(唐代)에는 검남도(劍南道)와 산남서도(山南西道)로 분리되었다. 검남도는 검남서천, 검남동천의 절도사로 나뉘었고, 간략히 서천, 동천으로 나뉘어 불리기도 했었다.
 송대(宋代)에는 익주, 재주, 기주, 사주로 나뉘었고, 이를 합해 사천로(四川路)라 하였다.
 원대(元代)에는 사천행중서성(四川行中書省)이라 불렸고, 명대 들어 홍무 구년(洪武九年, 홍무는 명조를 세운 주원장의 시호, 생시에는 태조라 불렸다. 1376년) 주원장은 사천행중서성을 사천승선포정사사(四川丞宣布政使司)로 개칭했다. 간략히 부르기를 천(川)이라 하기도 하고, 성경서부가 춘추전국시대에 촉나라 땅이었으므로 촉(蜀)이라 부르기도 한다.
 사천은 온난한 기후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한겨울에도 따뜻하고 서리가 내리지 않는 기간이 길다. 사천이라는 이름이 분지를 둘러싸며 도는 네 개의 큰 강 때문에 지어진 이름이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분명하지는 않다.
 만약 네 개의 강줄기가 있어 사천이라 했다면, 그 중 하나는 금사강(金沙江)이라 불리는 장강의 상류일 것이다.
 장강은 인간의 상상을 불허하는 긴 강이다. 그 상류를 따라가다 보면 언젠가는 발원지를 만나겠지만 중원인으로서는 쉽지 않은 일이고, 아무리 하릴없이 떠도는 방랑벽이 있다 해도 장강의 최상류로 올라가 발원지를 파악하고자 하는 미친놈은 없을 것이다.
 어찌 되었든지 장강은 길다.
 장강은 청해의 내륙 깊숙한 곳에 자리한 치다(治多)에서도 한참을 들어가 황연(黃淵)이라는 곳에서 시작한다.
 황연에서 발원한 물줄기는, 청해에서는 제법 큰 시진으로 알려진 곡마채(曲麻菜)를 지나고 치다를 지나 통천하(通天河)라는 사천과 서장(西藏)의 경계를 따라 흐르기 시작한다.
 통천하를 경계로 하여 서쪽은 서장이고 동쪽은 중원이라 불리는 땅의 서단에 속하는 사천인 것이다. 그때부터 장강은 통천하라는 이름을 버리고 금사강이라 불린다.
 금사강은 강 주변에 널린 모래가 고와 그리 불린다 하지만, 결국 바위가 깎여 모래가 많이 쌓일 만큼의 굽이가 많고 바위가 적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통천하라 불리던 강이 어디서부터 금사강이라 불리는지 정확하게 구별지을 수 없지만 아마도 백옥현(白玉縣)부터일 것이다.
 금사강은 운남 북부와 사천 남부를 훑으며 지나간다. 사천을 지나 귀주(貴州)의 북단 일부를 스치듯 지날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장강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한다.
 길고 먼 길.
 누만 년 동안 흐른 물줄기는 계곡을 파고 고기를 키웠으며 애환과 아름다운 전설을 만들어내었다.
 사천은 장강이 싸고도는 땅이다.
 서부와 남부, 다른 지역과 마주보는 땅에서 육 할 이상을 훑고 지나갔으니, 사천은 장강에 둘러싸인 땅이라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더구나 사천이라는 지명을 만들어낸 강들. 물론, 장강을 포함하는 네 개의 강!
 네 개의 강줄기는 사천을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산맥을 흘러내린 물줄기가 모인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 물이 많은 것은 강수량(降水量)이 많다는 것이고, 결국 곡창지대(穀倉地帶)라는 말과도 통한다.
 온난하고 물이 많다.
 벼농사를 짓기에 어울리는 땅, 그곳이 사천이었다.
 사천 땅에서 장강으로 흘러드는 많고 많은 물줄기 중에 민강(岷江)을 빼놓을 수 없다.
 민강은 사천과 감숙(甘肅)의 경계를 짓는 민산(岷山)에서 발원하여 이천 리 이상을 달려 장강으로 들어간다. 민강은 남쪽으로 흘러가며 산과 들을 지나고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을 스치고 높은 산을 스치듯 지난다.
 중원의 다른 곳에 비교해 유난히 높은 고원지대.
 곡창지대에 풍부한 물을 대주기도 하고 고기를 키워 사람들의 생활을 윤택하게 만들어준다.
 아미산은 민강이 바라보이는 곳에 세워진 산 중의 하나다.
 비록 사천 남부에 치우친 산이라고는 하지만, 대량산(大凉山)이라 부르는 수백 리에 이르는 산의 군집 중에서 우뚝 솟아오른 주산이었 고, 산맥을 이루는 대량주맥(大凉主脈)은 때때로 눈이 내려 설경을 자아낸다.
 
 아미산(峨嵋山).
 사천 남부의 명산.
 중원 사대영장(四大靈場)의 하나로 불문 사대성지의 한 곳인 아미산은 오래 전부터 전설 속에 등장했다. 암동령굴(巖洞靈窟)이 많고 불교의 가람 중 가장 빼어난 곳이기도 하다.
 우심복호(牛心伏虎), 만년사(萬年寺) 등의 고찰이 많으며 향화객으로 하루라도 불심이 마르지 않는 곳.
 절강(絶江) 보타산(普陀山), 산서(山西) 오대산(五臺山), 안휘(安徽) 구화산(九華山)과 함께 사대명산의 하나로 손꼽힌다.
 사천의 문물경제가 집중되는 성도에서 남쪽으로 천 리나 떨어진 아미현에 자리 잡고 있으며, 맑게 개인 날에는 양쪽으로 마주 솟은 산이 마치 아리따운 여인의 눈썹 같다고 하여 아미산이라 불린다.
 만불정(萬佛頂), 금정(金頂), 천불정(千佛頂), 청음각(淸音閣), 세상지(洗象池) 등이 있다.
 그래서인지 소문에는 신선이 산다느니, 선녀가 하강하는 곳이니 하지만 사실은 머리를 빡빡 깎은 승인들만 득실거릴 뿐이다.
 
 ***
 
 뎅!
 뎅엥― 데― 엥!
 인시(寅時:밤 세시부터 다섯시까지) 초(初)!
 잠을 깨우는 종소리가 일정한 음률을 지닌 채 울려퍼지고 있었다. 종소리는 마치 살아 있는 뱀처럼 산기슭을 타고 올랐고 날개가 달린 새처럼 허공으로 퍼져 나갔다.
 다다다다!
 어탁(魚鐸)어탁(魚鐸):목탁의 다른 형태. 본시 목탁은 목어가 변형된 형태다. 나무를 파서 물고기의 꼬리 부분을 넓적하게 하고 방울 모양으로 고리 같은 손잡이를 단 것이 목탁이다. 한국이나 일본에서는 법회를 진행할 때 목탁을 사용하지만 중국은 물고기 모양으로 된 긴 나무판을 사용한다. 이를 어탁이라 한다. 이는 목어의 다른 형태이다.이 울기 시작했다.
 종소리와 어탁 소리는 일정한 간격으로 반복적으로 울렸고, 그때마다 밤새들은 날개를 푸덕거렸다.
 뎅!
 종소리가 길게 울렸다.
 “원차종성변법계 철위유암실개명 삼도이고파도산 일체중생성정각 나무비로교주 화장자존 연 보계지금문 포 낭함지옥축 진진혼입 찰찰원륭 십조구만오천사십팔자일승원교 대방광불화엄경 제일게 약인욕요지 삼세일체불 응관법계성 일체유심조!”
 뎅!
 모든 불자는 일어나야 하리라.
 종을 치는 불승들의 입에서 쇳송[鍾頌]이 울리니, 이는 잠을 자는 모든 제자들에게 기침을 하라는 소리였다.
 종을 울리는 승인은 반드시 목청을 돋우어 쇳송을 암송하니, 종소리와 함께 퍼져 나가 모든 제자들의 행동을 촉발함이다.
 “파지옥진언 나모 아따 시지남 삼먁 삼못다 구치남 옴 아자나 바바시 지리지리 훔!”
 이어지는 게송은 파지옥진언(破地獄眞言)이라.
 아스라이 들려오는 진언에 더 이상 잠을 재촉한다는 것은 무리였고 불자의 법이 아니었다.
 “벌써 개정(開靜:불제자들이 잠에서 깨어 일어나는 것)인가?”
 눈꺼풀을 밀어올리던 수행사미 지심(誌心)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고개를 돌렸다.
 아직도 졸음이 가셔지지 않은 눈으로 나무로 살을 댄 창을 바라보니 보이는 것이라고는 어둠뿐이었다.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먹물을 풀어놓은 듯 어둡기만 하던 창 밖에 희미한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칠흑처럼 어두웠지만 수유의 시간이 지나며 점점 밝아져 어쩔 수 없이 엉덩이를 들썩거리게 만들었다.
 아미산 곳곳에서는 불이 켜지기 시작하는 중이었다.
 아미산을 말하면 으레 복호사(伏虎寺)가 떠오르기 마련이다. 아미산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복호사를 안다. 아미산을 모르는 사람도 복호사는 안다.
 복호사는 청정도량으로 이미 그 이름을 얻었으니, 천하에 그 명성이 자자했고 불심이 깊은 납자(衲子)들은 복호사를 찾아 향화를 했다는 것만으로도 자랑을 삼았다.
 그토록 이름이 높은 복호사라 해도 개정의 부산함은 다른 절과 다르지 않다.
 복호사와 담을 마주댄 곳에는 수행사미들과 속가제자들이 머무는 곳이 있다.
 무욕방(無慾房).
 아미의 수행사미들과 속가제자들이 불법을 배우는 만불전(萬佛殿)을 비껴 서 있는 이 층의 불각(佛閣).
 아미는 여러 개의 가람으로 이루어진 문파였다.
 그들은 제자들을 받아들이기 위해 여러 가지의 검증절차를 거치는데 그 중의 한 곳이 만불전이었다.
 만불전은 복호사와 보국사(報國寺) 사이에 세워져 있는 거대한 불전이었다. 만불전은 이 층의 불전이었고 넓은 뜰을 가지고 있었다. 그 뜰을 건너면 연무전(鍊武殿)이 있었다. 그리고 주변으로는 단층의 누각과 이 층의 누각이 담처럼 둘러쳐져 있었는데 모두가 제자들의 선방으로 이용되고 있었다.
 만불전에서 수행하는 제자는 모두 백여 명.
 그들 중에는 수행사미들도 있었지만 속가제자들도 있었다.
 아미는 수행사미들과 속가제자들을 한 곳에 모아 불법과 무공을 가르치고 있었는데, 그곳이 바로 만불전과 연무전이 있는 부계평(不戒坪)이라 부르는 곳이었다.
 무욕방은 부계평을 둘러싸고 담처럼 늘어선 선방 중의 한 곳이었다. 사미의 계를 받았지만 비구의 계를 받지 못해 아직은 불법을 수행하는 제자들이 머무는 곳.
 또한 아미의 속가제자들이 머무는 곳이다.
 선방의 편액은 그렇게 쓰여져 있었다.
 무욕방이라······
 욕심이 없다는 뜻인가?
 그도 아니면 욕심을 버리라는 뜻인가?
 무욕은 성불을 찾아가는 불자들의 덕목이다. 하지만 이미 중원에 산재한 산사에 기거하는 많은 불자들이 불존의 법과 불자의 덕목을 버리고 대처로 나가 질타를 받고 있다.
 아미는 청정도량을 유지하며 사미의 계를 받은 제자이건, 속가의 법을 따르는 재가제자(在家弟子)이건, 모든 제자에게 불자가 지녀야 할 제자의 덕목을 가르치려 애쓰고 있었다.
 제자들이 머무는 불각이 무욕방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것은 그리해 지어진 것이다.
 창 밖으로 새어드는 어둠이 점차 밝아지며 자리바꿈을 하는 것으로 보아, 경내 곳곳에 불이 밝혀진 것 같았다.
 ‘일어나야겠군.’
 지심은 일어서려다 어깨를 움츠렸다.
 지이잉!
 귀를 파고드는 소리.
 먹물이 풀어진 물감처럼 어두운 밤에 울리는 소리가 예불을 알리는 종소리라는 것을 모르는 제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법승의 곁에 머물며 학문을 익히거나 차를 다리며 인성을 닦는 소사미의 틀을 벗고 사미의 계를 받은 수행사미로서, 삼 년을 수행해 온 지심도 알고 그의 곁에서 잠을 자는 모든 제자들도 종소리가 의미하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우우웅!”
 “아침이다. 아침이 밝았으니 근행(勤行)을 서둘러야겠군.”
 곁에서 잠을 자던 다른 제자들이 몸을 뒤틀었다. 그들도 종소리를 듣고 잠을 깨는 것이리라.
 하루도 다르지 않은 일과.
 축시(丑時)는 지났을 것이다. 종이 울리는 것은 시간의 흐름을 알려주는 잣대였다.
 밤새도록 이리저리 돌며 사찰로 침입하는 자를 경계하던 수행사미들이 편경(片鏡)을 쳐 시간을 알렸으리라. 또 하루가 시작되는 것이다.
 온 산이 부산해지리라.
 복호사의 편경은 가람의 대종을 울리게 만들 것이다. 대종 소리는 아미팔경(峨嵋八景)의 하나로 알려진 성적사(聖績寺)의 대종을 울리게 만들 것이며, 고요에 잠들었던 아미산에 몸을 기댄 모든 승인들을 일으켜 세우리라.
 아미산에 산재한 칠십여 개의 불찰들은 복호사의 내당에 있는 종각에서 울리는 종소리로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것이었다.
 댕댕댕댕!
 둥! 둥!
 귀를 파고들 듯 가깝게 들리던 종소리가 물러가고 곧 이어 다가오며 어렴풋하게 들리는 종소리는 콩을 볶듯 울리며 귀를 아프게 했다.
 한두 개의 종을 쳐서는 그처럼 요란하지 않을 것이다.
 복호사에서 울려퍼진 종소리가 아미산 곳곳을 울리면 계곡과 산중턱에 자리 잡고 있는 칠십여 개의 불찰들은 잠에서 깨어나며 불을 밝히고 일제히 종을 울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어서 일어나자고.”
 “어서 불당으로 나가야지. 이러다가는 늦겠어.”
 산을 울리고 우레처럼 쏟아져 내리는 종소리를 들은 제자들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그들의 목적은 한결같았다.
 불당에 들어 예불을 하는 것.
 일심으로 찬불이라······
 아미의 제자라면, 구족계(具足戒)를 받지 않아 아직은 진정한 승려가 아니라 해도 아미가 표방하고 있는 불가의 제자라면 찬불은 잊지 말아야 할 덕목의 하나였다
 뎅뎅뎅뎅!
 아미산은 한 순간에 종소리로 가득 차 마치 굉음이 이는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했다.
 모두가 급했다.
 어둠도 그들을 막지 못했다.
 항시 하는 일이었기 때문인지 그들은 어둠 속에서도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각자가 하는 일이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말이 없어도 일이 틀어지거나 지체되는 일은 없었다.
 ‘늦겠다.’
 지심은 급히 움직여 몸을 덮었던 모포를 개어놓고 어둠 속에서 잿빛 가사를 입었다. 이미 오래 전에 사미계(沙彌戒)를 받았으니 수계(受戒)도 멀지 않았다.
 아미산에 자리 잡은 수많은 불파들은 한가지로 종파를 이루고 있다. 아미의 종파는 사미의 계를 받았다 해도 수행하는 제자들의 머리를 깎게 하지는 않는다. 극히 일부의 제자들이 머리를 깎기는 하나 고승의 허락이 있어야 한다. 구족계를 받아 비구나 비구니가 되기 전에는 마음대로 머리를 깎을 수도 없다.
 산에 들어 사미의 계를 받았다 해도 수행에 용맹정진하지 못하거나 번뇌를 끊지 못해 마음이 흔들릴 때는 사바세계로 내보내는 것이 아미의 법인지라, 비구와 비구니를 제외하고는 모두 머리를 기르고 있다.
 수행사미 지심이라 해서 다를 것은 없었다.
 그도 머리를 기르고 있었고, 지난 삼 년 동안 단 한 번도 머리카락에 삭도를 댄 적이 없었다.
 과거에는 머리를 민 채 살았건만. 십오 년의 세월 동안 고승을 따르는 소사미로 구족계를 지키는 비구보다 더욱 정갈하게 살았지만, 삼 년 동안 기른 머리는 이미 어깨를 덮고 있었다.
 거추장스러운 일.
 머리를 묶고 단정하게 다스리기 위해 사용하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고 길지도 않았지만, 불자의 신분인 지심에게 아침 일찍 머리를 묶는 일은 번잡한 일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제 그만 일어나자고······”
 지심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누가 듣기를 바라고 한 말은 아니었다. 마음 속에 생각하고 있던 말이었을 뿐이다.
 입을 열고 나온 말이지만 스스로에게 한 말이었다.
 선방에 뒹굴던 제자는 모두 여섯.
 그들은 곧 몸을 정갈하게 하고 무릎을 꿇고 앉았다.
 아미산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너나 할 것 없이 제자의 신분이었고, 혹여 불자가 아니라 해도 불심을 닦고 향화를 위해 산을 오른 납자의 신분을 지니고 있을 테니 일어나 법당으로 달려갈 시간이었다.
 더구나 지심이 묵고 있는 선방의 제자는 한결같이 비구의 계를 받지 않았을 뿐으로, 곧 계를 받아 불자가 될 신분이었다.
 아미산이 밝았다는 것은 소란스러움을 의미한다.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부산함이 그다지 소란스러운 것이라 할 수는 없지만 모든 만물이 잠에서 깨어나고 있음이다.
 아미산은 온 산이 불찰로 둘러싸여 있어 종소리가 울리고 불자들이 기침을 할 시간이면, 수천 마리의 산새가 날개를 퍼덕이며 잠에서 깨어나기 마련이다. 날개 소리는 비록 미세하지만 불자들의 발걸음과 마구 뒤섞여 여간 시끄러운 것이 아니다.
 물론 아미산의 불찰들은 한결같이 종을 사용하고 있으므로 목어 소리로 아침을 깨우는 여타의 중원 불찰과는 다르다.
 ‘오늘은······’
 지심은 마음 속으로 생각했다.
 곧 몸을 일으켜야 한다는 것을 모르지 않지만 왠지 마음이 부담스럽기만 했다.
 계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
 십칠 년 전, 탯줄을 끊은 순간부터 복호사에 들어왔다.
 기억은 없다.
 언제 태어났는지, 부모가 누구였는지 모른다.
 알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자신의 부모가 장강의 물이 넘칠 때 죽었을 것이라는 것과 그 죽음 속에서 자신이 태어났다는 것. 그리고 아미의 승인 중 누군가가 자신을 구해 산으로 안고 왔다는 것.
 그 불승(佛僧)이 누구인지도 안다.
 기억의 저편을 살펴보면 모든 정신은 사찰에 있었다.
 모든 기억은 사찰이 주(主)가 되었고, 단 하루도 산을 내려가본 적이 없었다.
 머릿속에 정신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부터 하루도 쉬지 않고 불제자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으며 이제 소망을 이룰 수계가 눈 앞에 다가와 있었다.
 이 새벽이 지나면 수계를 받아 비구(比丘)가 된다.
 오래 전부터 기다려온 날이었다.
 “후!”
 입술을 여는 한숨.
 오늘은 다른 날과 달랐다.
 신상에 변화가 있는 날이고 오래 전부터 예정되어 있던 날이었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 기대하던 날이기도 했으니.
 “서둘러라.”
 언제나 그렇듯 선방은 부산스러웠다.
 왕후장상(王侯將相)을 불문하고 불문에 들어선 이상은 산의 법에 따라야 한다.
 제자들은 누구도 다르지 않다. 배분이 높고 낮음은 불문가지. 고승이라 해도 불문에 몸을 맡겼고 불존의 제자가 된 이상에는 아침 독경을 빼놓을 수 없는 것이다.
 뚜벅뚜벅.
 도도도도!
 제자들이 뒹굴던 선방으로 다가오는 발자국이 부산해지기 시작했다. 더불어 목어를 두드리는 소리가 울려왔다. 어탁의 둔한 소리와는 달리 청명한 소리였다. 서둘러 몸을 일으킨 종도승(宗徒僧)이 종루에 달려 있는 목어를 두드리는 것 같았다.
 모두들 허리를 세웠다.
 누가 다가오고 있는지 모르는 제자는 아무도 없었다.
 드드드―
 문이 열렸다.
 전신에 붉은 가사를 걸친 그림자가 나타나며 손에 든 선장에서 달빛이 쪼개졌다.
 교판도법승(敎判道法僧)이었다.
 비구의 계를 받지 못한 제자의 신분에서 계를 받고 사승(師承)이 정해지기까지 모든 사미들은 교판도법승의 지시를 따르는 것이 아미의 법이었다.
 아미파가 수십 개의 불찰로 이루어진 불파연합체(佛派聯合體)가 아니었다면 그러한 법도 없었을 것이다. 아미는 복호사를 중심으로 칠십여 개의 불찰로 나뉘어져 있었으므로 하나하나의 절차가 여간 복잡하지 않았다.
 아미는 불문에 귀의하려는 납자들을 한 곳에 모아 불심을 가르치고 참선을 익힌 후에 일정한 수위에 오른 제자들만을 골라 사미의 계를 내렸다.
 사미라 해서 제자가 되었다 할 수는 없었다.
 오랜 절차.
 다른 불파에서는 있을 수 없는 수행사미의 고난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미의 계를 받은 제자들의 머리를 깎지 않는 것이 바로 그러한 이유였다.
 수행사미로서 불심이 돈독하고 법을 지키며 아미의 무공을 착실하게 수련하는 제자들에게만 구족계를 내리고 아미의 각 사찰로 보내 사승을 잇게 했다.
 속가제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아미의 속가제자들은 수행사미들과 같은 배분으로 인정을 받았다.
 수행사미들이 머무는 만불전과 연무전이 같은 곳에 마주보는 이유는 무공을 익히기 위해 산으로 들어오는 속가제자들이 같이 수행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교판도법승은 각 사찰에서 나온 고승들로, 법력과 무공이 높았다. 속가제자들과 수행사미들은 그들의 가르침을 따라 만불전에서 삼 년을 보내야 했다.
 불문에 귀의하고 불자가 될 제자들은 그 기간이 더욱 길었다.
 불제자가 될 수 있는 자질이 인정되면 각 사찰에서 머리를 깎고 소사미가 되어 동자승(童子僧)으로 칠 년 동안 대덕고승의 시중을 들어야 한다. 그 후에 다시 머리를 기르고 삼 년을 만불전에서 보내야 했다.
 만불전은 그렇게 모인 제자들과 속가제자들을 모아 삼 년 동안 불법과 아미파의 무공을 전수한다.
 이제 삼 년이 지났다.
 “서둘러라.”
 교판도법승은 손에 들린 선장을 머리 위로 추켜올렸다 바닥을 내리찍었다.
 찡!
 선장이 울었다.
 흑오석(黑烏石)의 석판으로 깐 긴 복도가 울자, 나무로 깎아만든 넓은 침상 아래에서는 수행사미들이 이리저리 바삐 움직였다.
 “서둘러!”
 코에 주근깨가 덕지덕지 붙어 있는 수행사미 일수(佾修)가 몸을 일으키다 나지막한 소리를 질렀다.
 소리를 지르던 일수는 지심과 마주치자 목소리를 죽였다. 같은 수행사미라 해도 수계에서는 어떤 배분이 주어질지 알 수 없는 일이었고 어떤 사찰의 사승을 이어가게 될지 알 수 없었다. 더구나 지심은 세상에 빛을 본 순간부터 절에서 살았으므로 절에 들어온 세월을 따지면 다른 제자들과의 차이는 천양지차였다.
 더구나 지심이 어떤 배분을 받게 될지 예측이 어려웠다.
 그가 살아온 환경.
 그가 소사미로 모셨던 대덕은 복호사의 장로 중 한 명인 까닭이었다.
 모든 수행사미들은 은연중 지심을 한 배분 이상 높게 대우하고 있었으므로, 나서기를 좋아하는 수행사미 일수도 지심에게는 함부로 말을 할 수 없고 또한 삼갈 수밖에 없었다.
 “인시(寅時)가 되었군.”
 지심은 퉁기듯 일어섰다.
 여기저기에서 몸을 일으킨 제자들이 급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별빛이 그들의 발치에 부서지고 있었다.
 
 
 2장 조과(早課)
 
 
 둥!
 철로 만든 종이 울리는 소리가 아니라 북소리였다.
 철고(鐵鼓).
 삼족(三足)으로 다리를 만들어 받치고 그 위에 소뿔 모양으로 만든 북, 소가죽으로 덮은 북소리는 쇠로 만든 종과는 소리의 질감이 달랐다.
 더불어 그것은 아침 송경의 시작을 알리는 소리기도 했다.
 만불전!
 비구의 계를 받지 못한 제자들과 속가제자들이 모여 송축을 하고 게송(偈頌)을 하는 이 층 높이의 불전이었다.
 겉으로 보아서는 이 층의 누각처럼 보이는 불전이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밖에서 보았던 것과는 달리 하나의 거대한 불당으로 축조된 불전.
 만불전이 이 층 누각처럼 보이는 이유는 불존이 이 층 누각의 크기를 지니고 있어, 일층의 지붕이 있어야 할 자리에 벽을 세우고 이층을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모든 제자는 합장을 하고 서 있었다.
 합장은 일심을 뜻하고, 예배는 공경의 표시로써 아상(我想)과 교만심을 극복하는 수행이기도 하다.
 합장은 두 손바닥을 마주 합하는 자세인데 두 손 사이에 틈이 생기지 않도록 밀착시켜야 한다. 그리고 두 손은 각각 다섯 개의 손가락이 연꽃잎처럼 서로 밀착되어야 하고 특히 엄지손가락과 새끼손가락이 따로 떨어져서는 안 되며 오른손과 왼손의 손가락이 어긋난 것도 올바르지 않다.
 “오체투지(五體投地)!”
 오체투지는 불전에 나아가 헌(獻)하거나, 향이나 초, 기타의 공양을 올리기 직전과 올린 후에 행하는 것이다. 각각 무릎 꿇는 동작과 오른손부터 땅을 짚는 동작, 왼손과 이마를 땅에 대는 동작에 이어 손바닥을 위로하여 불존을 받드는 동작으로 나누어진다.
 첫째는 무릎 꿇는 동작인데, 발 끝을 모으고 선 자세에서 그대로 두 무릎만 땅에 대면 된다. 땅에 댄 두 무릎은 나란히 붙어 있어야 하며 벌어져서는 안 된다. 이때 두 발의 발가락은 땅을 딛고 서 있어야 한다.
 둘째는 오른손부터 땅을 짚는 동작으로서, 이때는 두 가지 동작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하나는 오른손으로 땅을 짚는 동작이고 다른 하나는 땅을 딛고 있는 발을 발등이 땅에 닿도록 하여 깔고 앉는 동작이다. 이때 오른발이 아래에 놓이고 그 위에 왼발이 놓여지게 한다.
 셋째는 왼손과 이마를 땅에 대는 동작이니, 허리를 더 깊이 숙이면서 가슴 근처에 남아 있는 왼손을 오른손과 적당한 간격으로 나란히 하여 왼쪽 무릎 앞에 놓고 허리를 그대로 숙여서 이마를 두 손 사이의 땅에 닿도록 한다. 이때 몸을 숙이는 반동에 의하여 둔부가 발에서 떨어져서는 안 된다. 위와 같은 자세에서 손바닥이 땅을 향하고 있으며 두 팔꿈치가 자연스럽게 땅에 닿고 두 무릎이 땅에 닿는 상태가 되어 오체투지의 상태가 되는 것이다.
 넷째는 손바닥을 위로 향하는 동작이므로, 완전히 오체투지가 이루어진 후에 두 손을 뒤집어 약간 들어올려서 불존의 발을 받듦과 같은 동작을 취하는 것이다.
 일어서는 동작은 절하는 순서의 정반대의 순서에 따라 행하여진다.
 둥!
 교판도법승의 목소리가 울리자 이십여 명의 제자들은 일제히 허리를 숙였다.
 발 끝에 힘을 주고 손을 연화장(蓮花掌)으로 만들어 가슴으로 끌어올린 뒤 눈을 부드럽게 하여 불존의 언저리를 바라본 뒤 허리를 숙인다. 불존의 존안을 우러른다 하지만 정면으로 눈을 뜨고 바라본다는 것은 제자들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언저리만 보는 이유도 이와 같아 눈을 피하는 것이다. 이 모든 동작은 하해와 같은 불존의 자비에 대한 공경이니 배례(拜禮)라 할 수밖에 없다.
 오체투지는 여타의 예법과 다르다.
 두 개의 팔꿈치와 두 무릎, 이어 머리까지 바닥에 닿도록 하여 온몸을 숙이는 것이다.
 머리를 숙이고 바닥에 얼굴이 닿게 한 후에는 몸을 앞으로 밀 듯이 하며 귀 옆으로 두 손을 펼쳐 마치 연꽃이 피어나듯 모양을 만든다.
 그리고 외친다.
 “나무아미타불! 나무화장세계!”
 일제히 시작된 오체투지는 쉬지 않고 계속되었다.
 삼배에 또다시 삼배, 이어지는 절은 삼칠배, 그리고 가없는 공경과 몸을 나투어 중생을 이롭게 한 불존에 대한 불심이 녹아나기 시작했다.
 “나무대불정(南無大佛頂), 여래밀인(如來密因), 수증요의제보살(修證了義諸菩薩), 만행수(萬行首), 능엄신주(嚴神呪)!”
 교판도법승의 입이 열리는가 했는데 사대축(四大祝)을 읊어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창노하지만 정기가 깃들여 있는 목소리가 울려나오자 법당 가득 오체투지를 하고 있던 제자들이 일제히 몸을 일으키며 게송을 외쳤다. 이어 쉬지 않고 이어진 오체투지는 백팔참회에 따라 진행되어 백팔 번이나 계속되었다. 이어 결가부좌를 틀고 최승주(最勝珠)최승주(最勝珠):흔히 염주라 불리는 것으로 108개의 기본 수를 가진 것이다. 흔히 불보살님께 예불할 때나 염불, 진언을 외울 때 그 횟수를 헤아리기 위해 사용하므로 순주(數珠)라 불리기도 한다. 108개를 기본으로 하나 그 절반인 54개도 있고 또 그 절반인 27개짜리도 있다. 또한 단주도 있다. 보리수 열매로 만든 염주를 가장 좋은 것으로 치며 남방계 불자들은 염주를 사용하지 않는다.를 굴리고 게송을 읊었다.
 “나무대불정, 여래밀인, 수증여의제보살, 만행수, 능엄신주!”
 흔히 근행이라 부르기도 하지만 조과라 부르는 예불은 반 시진 동안 계속되는 것이었다.
 오죽하면 조과라 불렀을까?
 말 그대로 아침에 행하는 과제이니, 그야말로 아미파의 모든 제자에게는 밥을 먹듯 빼놓을 수 없는 것이며 아미산에 든 사람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이다. 근행으로서의 조과는 속가제자이든 비구의 계를 받을 제자이든 다르지 않다.
 더욱이 만불전의 제자들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수행사미의 신분.
 만불전에 기거하며 배움을 익히는 그들로서는 반드시 행하여야 하는 일인 것이다. 그것은 의무였지 권리가 아니었고, 하루라도 빼먹을 수 없는 일이었다.
 웅얼거리는 독송 소리가 귀를 아프게 했다.
 독경 소리는 산을 울리고 있는 듯 여겨졌고, 마치 앞이 막힌 동굴 속에서 울리는 것처럼 들려오고 있었다.
 지심도 뒤질세라 부지런히 게송을 읊었다.
 “나무 사만다 못다남 옴 도로도로 지미 사바하. 나무 사만다 못다남 옴 도로도로 지미 사바하. 나무 사만다 못다남 옴 도로도로 지미 사바하.”
 세 번이나 반복하는 같은 문구.
 오방내외안위제신진언(五方內外安慰諸神眞言).
 새벽녘이 되면 언제나 들었던 진언이었다. 또한 언제나 읊었던 게송이기도 했다.
 사물을 인식하기 시작하기 전부터 들었던 게송이었다.
 태어나서 사물을 보는 눈에 총기가 어리기도 전에 아미산에 들어와 고승의 시자(侍子)가 되었고 고승의 소사미가 되었다. 머릿속에 사람이라는 인식이 들기도 전부터, 불심이 무엇인지 배우는 동안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들었던 게송이고 따라해 버릇처럼 입에 밴 게송이었다.
 산문을 들어서서 처음에 익혔고 오래도록 읊어 그의 머릿속에 각인된 게송. 소사미로 살아오는 동안만이 아니고 만불전에 머무는 삼 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았다.
 그는 문득 게송을 멈추고 한동안 움직이지도 않고 울려오는 불경 소리를 들었다.
 그의 몸은 한동안 진동하듯 떨었다.
 마치 게송 속으로 빠져 드는 것 같았다. 그러다 취한 듯 게송을 외기 시작했다. 그에게서 게송은 생활의 일부였고 몸을 나툰 여래에 대한 한 줌의 공경이었다.
 그의 입에서 홀린 듯 오방내외안위제신진언이 봇물처럼 밀려나오기 시작했다.
 오방은 사방과 중앙을 말하니, 이는 모든 귀신들이 천수대다라니 읽는 소리를 듣고 놀라 두려운 마음이 들어 모두 달아나게 됨으로 모든 신들을 편안하게 한다는 것으로, 사대축에 이어지는 오방내외안위제신진언은 아미의 불법에서는 가장 중요시 여기는 진언 중 하나였다.
 
 무상심심미묘법(無上甚深微妙法)
 백천만겁난조우(百千萬劫難遭遇)
 아금문견득수지(我今聞見得受持)
 원해여래진실의(願解如來眞實義)
 
 오방내외안위제신진언에 이은 독경 소리는 개경게(開經偈)였다. 개경게는 경전을 찬탄하는 게송(偈頌)으로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송축을 하겠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귀가 아프게 들었기 때문인가?
 지심은 자신도 모르게 귀를 후비고 들려오는 게송을 따라 외우고 있었다. 아니, 오래도록 익혀지고 몸에 배인 일이라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게송이었다.
 “무상심심미묘법이요, 백천만겁난조우라. 아금문견득수지요, 원해여래진실의라. 가장 높고 미묘하며 길고 깊은 불존의 법이라, 백천만겁이 지나도록 만나뵙기 어려워라. 나는 이제 다행히 듣고 지니오니, 마음을 열고 원하며 청하옵건대 불존님의 진실한 뜻을 알아지는도다.”
 그는 한동안 그대로 웅크리고 앉아 게송을 외었다.
 그의 주위에서 목탁(木鐸)목탁(木鐸):중국 악기인 탁(鐸)의 한 종류에서 발전하여 불구(佛具)로 자리 잡았음. 본시 중국의 황실에서 사용하던 악기의 하나. 구리로 작은 종 모양을 만들고 가운데 줄을 달아서 흔들면 소리가 나는 것으로 이것을 금탁(金鐸)이라 하였고, 나무로 만든 것을 목탁(木鐸)이라 하였다. 불교의식에서 사용하는 목탁은 악기로 사용되었던 이 목탁의 변형이다. 종의 모양에서 방울 모양으로 변형되었다.을 두드리고 최승주를 굴리는 교판도법승도 다르지 않았다. 어둠이 점점 밝아오며 창이 환해지고 있었지만 그들은 일어설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모두가 석상처럼 앉아 있었다.
 바라락!
 만불전의 측문이 열리며 하나의 인형이 들어섰다.
 전신에 잿빛이 나는 가사를 걸치고 목에는 긴 최승주를 건 팔척장신의 노승이었다. 석양의 노을처럼 붉은 얼굴에 난 수염이 바람을 맞아 펄럭이는 것같이 흔들렸다.
 방 안으로 불쑥 들어온 노승은 만불전과 연무전을 함께 관장하는 나심대사(拏尋大師)였다.
 나심대사는 불전을 휘둘러보았다.
 그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웃음기가 머물렀다. 그것도 잠시 그는 소매가 길게 늘어진 가사를 휘저으며 벽력 같은 소리를 질러 제자들의 마음을 잡았다.
 “불법수호! 게송을 계속하라.”
 나심대사의 목소리가 불전을 쩌렁하게 울렸다.
 나이가 칠십이 넘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목소리만큼은 삼십대의 청년승인을 연상시키듯 힘이 넘쳤다.
 그는 겉으로 보아 어느 사찰에도 소속되지 않은 불승이었다.
 아무 곳에도 소속되지 않았다는 말은 일견 의아하게 들릴 수도 있다. 이는 아미파만의 특징적인 일이며, 오로지 만불전과 연무전을 지휘하는 지위라 할 수 있었다. 그가 연무전과 만불전을 묶어 제자들을 가르치는 부계평(不戒坪)의 평주(坪主)임에도 불찰에 소속되지 않다니.
 그가 어디에 소속되어 있는지 모르는 제자는 아무도 없다.
 부계평에 머문다고 해야 할까?
 만불전이 아미산의 절 중 복호사의 경내에 이어져 있다는 것을 모르는 제자는 없으니······
 그는 본시 복호사의 장로였다.
 본시 부계평에 딸린 만불전과 연무전은 사승이 이어지지 않은 제자들에게 학문과 아미파의 제자로서 반드시 익혀야 하는 무공을 가르치는 곳이다. 또한 아미의 속가제자들은 한결같이 만불전에 머문다.
 속가제자의 무공수련은 연무전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제자도 다르지 않다.
 만불전과 연무전이 한 곳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애초부터 두 개의 전각은 속가제자와 사미의 계를 받았지만 비구로서 구족계를 받지 못한 제자들이 머물며 때를 기다리는 장소로 이용되는 곳이기도 했다.
 그래서 만불전은 아미파에서는 독특한 지위를 차지하는 불당이라 할 수 있는 곳이었다. 어느 곳에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사승을 잇지 못한 수행사미와 속가제자들이 모여 있는 곳이란 점에서 독특한 위치였다.
 아미파의 제자지만 사승을 받지 못한 제자들의 불당. 이는 어느 문파에도 있지 않은 계율이며 법이다. 제자이되 누구도 사부로 모시지 못했다는 말과 같으니.
 불존의 제자라 하면 할말은 없다.
 그들이 아미의 제자이면서도 사승을 받지 못해 불가의 스승이 없는 이유는?
 그것은 아미파의 사승 때문이기도 했다.
 무림에서는 아미파가 하나의 무파로 알려져 있지만 실상은 다르다. 아미파는 아미산(峨嵋山)에 몰려 있는 칠십여 개의 사찰을 통칭하는 이름일 뿐이다.
 물론 아미산에 뿌리를 박고 있는 사찰의 제자들이나 불자들은 한결같이 자신들의 사문을 아미파라 이야기를 한다. 또한 아미파의 제자로서 긍지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무림에서도 굳이 아미산에 산재한 불찰들을 구분하여 복호사니 하는 이름으로 부르지 않고 아미파라 부르는 것은 아미산에 똬리를 튼 모든 불파(佛派)를 통칭하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하나의 문벌로 이루어져 있거나 한 채의 건물에 모여들어 만들어진 문파는 흔하지 않았고, 간혹 그러한 문파가 있기는 했지만 힘은 극히 미약했다.
 흔히 대문파라 불리는 문파들도 하나의 힘으로 이루어지거나 한 줄기의 사승(師承)으로 이루어진 경우는 드물었다.
 중원무학의 태두라 불리는 소림(少林)의 경우만 하더라도 하나의 문파라 보기는 어려웠다.
 명백하게 말해 소림이라 이름 붙은 사찰은 중악(中岳)이라 불리는 숭산(崇山)의 소실봉(少室峰) 기슭에 자리 잡고 있었지만, 그 주변에 자리 잡은 백여 개의 불찰들을 모두 모아 소림파라 칭하고 있었고, 소림사를 둘러싼 모든 사찰의 제자들을 소림제자라 칭하고 있었다.
 소림이 자리 잡은 숭산의 경우만 하더라도 소실산(少室山)과 태실산(太室山)이라 불리는 두 개의 커다란 산으로 나뉘어져 있었고, 도합 칠십사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었다.
 아미파는 그 정도가 더욱 심했다.
 아미산의 초입에 세워진 보국사(保國寺)를 시작으로 산 곳곳에 자리 잡고 있는 복호사(伏虎寺), 중봉사(中峰寺), 생심사(生心寺), 만년사(萬年寺), 뢰음사(雷音寺) 등 칠십여 개의 모든 사찰을 포함해 아미파라 불렀다.
 그 많은 사찰 중의 중심은 단연 복호사로서, 흔히 아미를 이야기하면 복호사를 지칭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아미에는 여승들도 적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천하에 이름이 높은 금정사(金頂寺)가 아미산에 있기 때문이었다.
 중원에는 여승들이 기거하는 절이 적지 않았지만 금정사를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위상이 단연 두각이었다.
 나심대사는 복호사의 장로이기도 했지만 아미파의 장로이기도 했다. 더구나 그가 아미파의 승인 중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무공을 지녔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더구나 아미파에서는 속가제자를 따로 분리하여 누구의 제자라는 명칭을 사용하지는 않는다. 간혹 독특하게 사제자(私弟子)라는 이름으로 고승의 제자가 되는 속가제자가 있기는 하지만 가뭄에 콩이 나는 것처럼 보기가 힘든 일이었다.
 아미는 칠십여 개의 불찰이 이루어낸 사승으로 이어지니.
 그것은 각 사찰의 비전절기(秘傳絶技)가 다르기 때문이었다. 아미라는 이름으로 뭉쳐 있으면서도 어느 사찰의 제자가 되느냐에 따라 무공이 달라지고 배분도 달라지는 것이다.
 만불전은 사승을 잇기 전에 집단적으로 제자들을 기르는 곳으로, 제자들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이다. 더불어 제자들이 한 곳에 모여 불법을 익히고 아미의 제자라면 당연히 익혀야 하는 무공을 같이 배움으로써 아미산에 흩어져 있는 불찰들의 유대를 강화하는 것이다. 그 후에야 제자들은 각 사찰로 흩어져 사승을 잇는 것이다.
 “아미타불. 불존의 자비가 넘치는구나.”
 나심대사는 어탁이 놓인 본존불 앞에 가사를 가지런히 하고 앉았다. 그와 같이 어느 불전이나 어탁이 놓여 있는 것은 집전(執典)을 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 또한 어탁은 목탁과 달리 들고 다니기에는 너무 큰 것이기에 운반하기도 불편했다. 각 불전에 어탁이 배치되어 있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운반하기에 힘이 든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아미타불, 오늘이라고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사상(思想)에 얽매인다면 이미 대덕의 길을 놓치는 것이다. 불법이 마음 속에 있거늘 어찌 이리도 흔들린단 말이냐!”
 나심대사의 목소리가 쩌렁하고 법당을 울렸다.
 ‘마음이라······’
 지심은 자신의 마음이 격하게 흔들리는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아미타불. 사소한 일에 마음이 안정되지 않다니······ 이는 마음이 정갈하지 못한 탓이다. 나무화장세계!’
 그제야 지심은 마음을 다잡는 게송을 뇌까린 뒤 눈을 들어 앞을 바라보았다.
 돌이켜 생각하니 만불전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계속해 오체투지를 하고 불존의 존안을 우러러보았지만 어떤 것도 기억에 남아 있지 않았다. 입으로는 게송을 외고 습관적으로 허리를 숙이면서도 마음은 다른 곳에 있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머리카락이 뻗치는 듯 간지러웠다.
 ‘아서라. 불자의 길을 가야 할 제자가 무슨 물욕인가?’
 눈을 들어 앞을 바라보니 삼존불(三尊佛)이 현신하듯 앉아 있었다.
 본존불이 자애로운 미소를 띠고 있었고, 좌우에 거느린 아란존자(阿難尊者)아란존자(阿難尊者):阿難陀, 부처님의 사촌동생으로, 출가하여 열반에 드실 때까지 25년 동안 언제나 정성을 다해 부처님의 시중을 들었다. 그리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가장 많이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십대제자 중 多聞第一이라 불린다. 부처님의 열반시 임종을 지켰다. 불경의 대부분은 그의 입을 통해 구술된 것이다.와 마하가섭(摩訶迦葉)마하가섭(摩訶迦葉):十二頭陀를 실천하여 능히 고행을 잘 견디어 頭陀第一, 修行第一이라 칭송을 받았다. 불멸 후 제1결집을 주도했으며 禪家에서 서천 第二十八祖 중 第一祖로 추앙받고 있다.이 부릅뜬 눈으로 제자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아미타불, 수계가 나에게 무슨 아픔을 줄 것인가? 달라지는 것이 있단 말인가?’
 두려웠다.
 마음을 들킨 것 같았다.
 번뇌 때문인가?
 번뇌라 할 수도 없는 일이다.
 원했던 일이었고 앞으로 갈 길이다. 수계라는 것이 그다지 마음을 흔들리게 할 것이라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갑자기 몰려오는 화두(話頭)라니.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다.
 갑자기 부끄러워졌다.
 마음의 안정.
 늘 습관처럼 게송을 외우고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고 생각한 일이 아니던가?
 욕심인가?
 지심은 눈을 감았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스스로를 자책하며 손가락을 모아 수결(手結)을 취했다.
 ‘마음이 안정되지 않은 탓이다.’
 늘 자애롭게만 보이던 불존들의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서먹하게 보이는지라 지심은 마음을 쓸었다.
 비단 지심만이 아니었다.
 제자들의 사승이 정해지는 날이었기 때문에 한결같이 들떠 있었다. 그것은 그들의 게송이 불전을 울릴 듯 우렁차기는 하지만 마음 속에서 우러나오는 깊이가 없기 때문에 서로가 느끼고 있는 일이기도 했다.
 “이놈들아!”
 눈치를 챘을까?
 나심대사의 목소리가 격하게 떨리고 있었다.
 부계평은 아미파의 제자가 되려는 납자들과 속가제자들이 함께 기거하고 오랜 세월을 수양하는 곳이지만, 두 개의 전각을 벗어나는 길은 각각 달랐다.
 그것은 속가제자들이 연무전에서 무공을 익히고 세상으로 나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며, 본산에서 계를 받을 제자는 만불전에서 수행을 하고 구족계를 받아 비구가 되어 사승을 잇는다는 말이다. 아무튼 아미파의 제자로서 발심(發心)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전각이었다.
 “모두들 운행을 취하도록 하라.”
 나심대사의 목소리가 우렁차게 울리자 불당이 흔들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모두들 자세를 고쳐 잡았다.
 일제히 몸을 일으켜 엉덩이부터 바닥에 닿게 하여 앉은 후, 두 발을 들어 발바닥이 하늘로 향하도록 했다. 두 개의 발이 하늘로 향하도록 하는 자세는 오로지 한 가지뿐이었다. 그것이야말로 불자들이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가부좌였다.
 그사이에도 나심대사는 이리저리 발걸음을 옮기다 제자들 앞에 가서 포단을 깔고 앉았다.
 “호흡을 조신하게 하라. 마음들이 흔들리고 있구나. 마음이 흔들리니 게송이야 올바르겠느냐? 입으로 외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게송을 하지 않아도 마음 속의 불존을 원함이 차라리 성불이라는 것을 모른단 말이냐? 어리석은 제자들 같으니라고······ 발심이 마음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화두를 생각하지 마라. 마음을 비워야 하느니라.”
 언제나 그렇듯 조과는 설법으로 시작되는 법.
 모든 제자들이 숨을 죽였다.
 조과는 아미불교(峨嵋佛敎)에서 관행으로 여겨지는 것으로, 선덕(先德)의 설법을 통해 아미불파의 전통을 계승하고 불존의 극선을 설법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지심은 손을 무릎 위에 모았다.
 법계정인(法系定印).
 두 손을 하복부에 닿도록 하고 이어, 오른손을 펴 손바닥이 하늘로 향하게 하여 밑에 깔고 왼손의 손가락이 오른손의 손가락에 겹치도록 했다. 마지막으로 왼손과 오른손의 엄지손가락을 겹치게 하여 동그랗게 만들었다.
 대삼마야인이라······
 이어 호흡을 조절했다.
 마음 속으로 하나에서 다섯을 셀 동안 들이쉬고 폐부에 가둔 뒤 다섯이 지나도록 다시 숫자를 세었다. 그리고 마치 가는 물줄기가 흘러내리듯 다섯에 걸쳐 불어내었다.
 아침이면 늘 그렇듯 혼란하고 몽롱하던 마음이 점차 가라앉기 시작했다.
 딱!
 나심대사가 자신의 손바닥에 죽비(竹)를 쳤다.
 눈을 반개하고 머리를 비우는 일련의 조식에서 조는 제자가 있음이었다.
 죽비를 손바닥에 치는 것은 졸음을 쫓아내는 것.
 어차피 만불전에서 견성(見性)을 하고자 함은 아니다. 오로지 불성을 기르고자 하는 곳이다.
 “호흡을 조절하고 머리를 비워라. 사념(思念)은 불자의 심장을 갉아먹는 벌레다. 눈을 반개하고 자신의 코를 본다고 생각하라. 허리를 세우고 목이 경직되지 않도록 하라.”
 제자들의 몸이 흔들렸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변하지 않는 근행이라지만 제자들의 몸을 바로잡는 나심대사의 목소리는 제자들에게 있어 불호령과 다름이 없었다.
 제자들의 몸에서 가사 자락이 밀리는 소리가 들렸음에도 나심대사는 만족하지 못했는지 다시 입을 열었다.
 “일산(日産)은 제자들을 계도하라.”
 측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등으로 차가운 바람이 들어왔다. 측문이 열렸다는 것은 누군가 들어섰다는 것. 불문의 제자는 어떤 경우라도 불존의 눈이 마주치는 곳으로 들어설 수 없다. 왼쪽의 측문으로 나설 때는 왼발이 먼저 나가야 하고 오른쪽의 쪽문으로 나갈 때는 오른발이 나가야 한다.
 이는 항시 불존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려는 불자들의 예법이었다. 반대로 오른쪽으로 나갈 때 왼발이 먼저 나간다면 이는 불존에게 등을 보이는 일이다. 역시 왼쪽으로 나갈 때 오른발이 먼저 나가면 등을 보이니 이는 자애로우신 불존에게 등을 보이는 행동이다. 등을 보인다는 것은 배척이 아니던가.
 불당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항시 눈은 불존을 향해야 한다.
 들어설 때도 불존의 존안(尊顔)에서 눈을 떼지 않으려면 일정한 행법에 따라야 한다.
 오른쪽의 쪽문에서 들어설 때는 왼발이 먼저 들어가며 몸의 정면을 본존에게 향해야 한다. 왼쪽에서 들어올 때는 오른발이 먼저 들어와야만 본존의 존안을 놓치지 않고 바라볼 수 있다.
 사르르르!
 조심스럽게 문이 닫혔다. 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였으니 얼마나 조심스러운지 느껴졌다.
 “나무아미타불!”
 가볍게 뇌는 불호가 들렸다.
 왼쪽으로 난 측문에서 들리는 소리인 것으로 보아 들어선 제자가 불존을 향해 가볍게나마 허리를 숙여 반배를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문이 닫히고 은근히 새어들던 바람이 멈추었지만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저벅, 저벅!
 조심스럽게 걸어 마치 바람이 지나가듯 가벼운 발걸음 소리가 귀를 파고들었다.
 ‘아미타불, 일산대사로군.’
 지심은 마음 속으로 생각했다.
 일산대사가 들어선 것을 알 수 있었다.
 일산대사는 나심대사의 제자는 아니지만 만불전에 소속된 경승(經僧)으로 제자들을 계도하는 직위를 지니고 있었다. 이는 교판도법승보다 배분이 높은 법승이었다. 만불전이 제자들에게 주어진 불당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계도하는 경승이 있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만불전과 연무전은 서로 마주보고 있으며 같은 제자를 계도하고 있지만, 목적과 하는 역할이 달랐다.
 교판도법승은 연무전 소속이었으며, 그들의 역할은 속가제자와 수행하는 사미들에게 무공을 가르치는 무승들이었다. 반면 만불전은 경승들이 머물며 제자들의 고뇌와 번뇌, 또는 일과 중 불자들이 지켜야 할 계율을 지도하고 있었다.
 모든 제자는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하루에 세 번씩 만불전에서 불법을 게송하고 불존의 존안을 뵈었다. 그것은 그들이 비록 무공을 가르치는 교판도법승이라 해도 불존의 제자였고 아미의 법을 지키는 제자들이기 때문이었다.
 연무전에 서면 기세가 등등하던 그들도 막상 불전에 들어서면 경승이라 불리는 승인들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일산대사는 경승들을 이끌고 있는 우두머리였다.
 경승이라 불리는 승인들.
 그들은 무공을 익혔다 할 수 없다.
 그저 선법(禪法)과 호신무예 정도를 익혔지만 아미도량을 수호하는 무승이라 할 수 없었다. 그들은 오래도록 경전을 연구하고 새로운 법문을 연구하는 학승이라 해야 옳았다. 그들은 출가하여 열반에 이르도록 법승으로 불문의 경전인 불경을 익히고 불자들의 선을 추구하는 일을 도왔다.
 만불전에 들어서면 어떤 제자들도 경승의 죽비를 피할 수 없으니, 이는 아미파가 비록 무파이기는 하지만 근본적으로 불파이기에 불존의 말씀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었다.
 “후!”
 지심은 숨을 골랐다.
 흐트러지던 숨결이 서서히 잡혀가며 누에가 만든 고치에서 실이 뽑혀나오듯 점차 가늘어졌다.
 숨이 가늘어진다는 것은 호흡이 길어진다는 것이다. 결국 마음이 안정되고 운기토납(運氣吐納)이 자리를 잡아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의 귀로 나심대사의 목소리가 흘러들었다.
 “사람들은 일상을 살아가며 무의식으로 숨을 쉰다. 숨을 멈춘다는 것은 죽음을 말하는 것이다. 해탈을 이야기하는 것과는 다르다. 죽음이 모두 해탈이 될 수 없음이다. 저마다 생각이나 생활습관, 환경, 성격에 따라 호흡의 방법이나 형태도 다르다. 보통 사람의 경우라면 일 각에 이백오십여 회를 쉰다. 그러나 사람은 평생 쉴 수 있는 호흡의 양이 주어져 있으니 호흡의 숫자를 줄이면 그만큼 생명이 길어지는 것이다.”
 언제나 들었던 이야기였다.
 그렇다고 들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와 같은 말은 마음을 움직이도록 하기 위해 선승들이 화두로 삼아온 말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의식을 의념(疑念)하도록 하기에는 더할 수 없이 좋은 말이기 때문이었다.
 선어(禪語)를 사용하지 않고도 모든 납자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였다.
 “후우우우!”
 지심은 다시 숨을 불었다.
 점점 길어지는 호흡의 순간이 그가 점점 깊은 경지로 빠져 들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지만 스스로는 알지 못했다. 그사이에도 나심대사의 목소리는 계속해 울리고 있었다.
 “너희들은 좌선으로 호흡이 단련된 불문의 제자들이다. 일 각에 오십 회 이하로 줄여야 할 것이다. 조금 더 수련을 하면 일 각에 단 한 번 들이쉬고 내쉬는 경지에 이를 것이다. 이와 같이 의식적으로 호흡을 조절하는 것을 조식법(調息法)이라 한다. 조식법은 불자에게 있어 마음을 다듬는 가장 빠른 방법이다.”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던 호흡 소리가 작아지기 시작했다.
 평소 인식하지 못하던 소리라 해도 의식하고자 하면 천둥처럼 들리는 법이다.
 귀란 여러 가지 묘용이 있지만 듣고자 하는 것만을 가려 듣는 묘용이 있다. 막상 조식에 들어가면 자신이 들이쉬고 내쉬는 숨소리가 천둥처럼 들리기도 한다.
 점차 멀어진 숨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조식에 의한 토납이 안정되었다는 것이다.
 나심대사의 목소리는 쉬지 않았다.
 나심대사는 모든 제자들과 속가제자를 가르치는 불승으로 자신이 무엇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자신의 노력에 따라 아미의 제자들에게 변화가 온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계를 받지 않은 속자제자들마저도.
 그는 이미 물욕을 버린 승인이기도 했지만 자신이 할 일을 마다하지 않았기에 모든 제자가 조식법을 알고 있음을 인식하지만 애써 입을 열었다.
 “조식은 깨달음의 근본이며 수행법(修行法)의 기초가 된다. 또한 아미의 제자로서 익히는 많은 무예의 기본이 되느니라.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바르고 편한 호흡은 심신을 상쾌하게 하고 사고를 밝게 만든다. 그와 반대로 바르지 못한 호흡은 불안한 마음과 질병의 원인이 되느니라. 때로는 사고를 그르쳐 운명마저 그르치게 된다. 호흡은 육입(六入:안(眼), 이(耳), 비(鼻), 설(舌), 신(身), 의(意))에 따라 영향을 받으며 심신도 그에 상응한다. 심하게 화가 났을 때는 화기가 머리로 몰려 숨이 멈추고 가슴이 답답하며 머리가 무거워진다. 반대로 기분이 상쾌하고 마음이 편안하면 호흡이 길고 깊어지며 머리도 맑아진다. 호흡법은 이미 오래 전 불존께서 보리수 아래 앉아 고행의 과정에서 얻어낸 것이다. 아나파나사티아나파나사티:불존의 호흡법이라 알려진 행법. 후에 선호흡법(禪呼吸法)으로 발전하는 것으로 참선의 기본자세가 된다.는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고행의 결과니라.”
 수만 번도 더 들었던 선어(禪語).
 제자들은 망설이지도 않았고 게으른 표정을 짓지도 않았다. 그들은 은연중 자신들의 수련이 누군가의 눈에 비쳐지고 있음을 알고 있었으므로 혼신을 다했다.
 지심도 다르지 않았다.
 그는 늘 그래 왔던 것처럼 마음을 가다듬고 마음을 안정시키려 애를 썼다.
 “조식을 함에 있어 먼저 바른 자세를 가져야 한다. 이는 조신(調身)이라 부르는 것으로 몸의 자세가 정하지 못하면 모든 것이 정하지 못하다. 조신이 있는 후에야 조식이 있는 것이니 척추를 바로 세우고 턱을 당겨라. 가슴을 편안하게 하고 몸에 힘을 주지 말아라. 반드시 입을 다물고 입술과 치아가 겨우 서로 닿을 정도로 하고 혀를 들어서 윗잇몸을 향하게 하라. 눈을 감듯 뜨고, 반개하여 겨우 바깥에서 들어오는 빛을 차단할 정도로 떠라. 몸과 목, 팔다리를 긁거나 움직이지 말아야 하며 두 손은 선정인(禪定印)의 자세를 취하여야 한다. 이는 선정에 들어가는 고른 법이라는 의미가 있지만 무공을 익히기 위한 좌정(坐定)의 기본이고 운기(運氣)의 기본이다. 너무 조이지 말며 너무 느슨하게 풀어져도 안 된다.”
 지심은 깊은 숨을 천천히 불어내었다.
 그의 좌정은 어느 정도 수련의 결과를 드러내고 있다 할 수 있었다.
 그가 기억하는 한 늘 산에 살았다. 그의 부친은 승인들이었고 모친은 불상이었다. 눈을 뜨고 보느니 산과 절이요, 둘러보면 승인들뿐이었다.
 그에게 있어 선정은 이미 오래 전부터 몸에 익어 잠을 자듯 편한 것이었으니 그다지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좋았다. 그러나 자신이 어떤 사승을 이을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몸이 흔들렸는가?
 슉!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는데 어깨가 시큰하고 아려왔다.
 죽비였다.
 일산대사는 가차없었다.
 죽비는 대나무를 여러 조각으로 갈라 다시 뭉친 것으로 소리만 요란했을 뿐 그다지 통증은 없었다. 그러나 그 소리와 어깨에 밀려드는 자극으로 정신이 들기 마련이었다.
 지심은 모든 번뇌를 잊으려 노력했다.
 스스로가 마음 속에 만들어낸 번뇌였다.
 “나모라 다나다라 야야 나막알약바로기제 새바라야 모지사다바야 마하 사다바야 마하가로 니가야 옴 살바 바예수 다라나 가라야 다사명나막 가리다바 이맘 알야······”
 신묘장구대다라니(神妙章句大陀羅尼)를 게송하자 번거롭던 마음이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정법을 수호하는 모든 보살과 신장의 비밀명호를 기록한 신묘장구대다라니를 게송하는 것만으로도 모든 사심이 사라지고 몸 주위에 가피력이 가득 찬 것 같았다.
 그는 쉬지 않고 게송을 계속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제자들이 마음을 가라앉혔다고 생각했는지 나심대사는 포단을 가지런히 놓고 가부좌를 틀어 몸을 고정시켰다. 손을 내밀어 자신의 머리보다 커 보이는 목탁을 들어 한쪽으로 치운 후, 어탁을 끌어 자신의 발치에 놓고 두 개의 채를 들었다.
 딱딱, 딱! 도로로로로······
 어탁이 울자 지심은 마음이 향을 마신 듯 가뿐해졌다. 오래 전부터 귀에 익숙하게 익었던 소리였다. 늘 듣던 소리이기도 했었다. 차라리 듣지 못하면 마음이 불안하고 허공에 붕 뜬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소리.
 “아미타불······”
 지심은 나직하게 뇌었다.
 코를 타고 스며든 향내가 폐부 깊숙하게 파고들며 마음이 상쾌해졌다. 그리고 가뜩이나 가지런해졌던 숨결도 점차 가라앉아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나심대사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옴 아라남 아라다. 옴 아라남 아라다. 옴 아라남 아라다.”
 불자로서 반드시 지켜야 할 법장을 여는 진언, 개법장진언(開法藏眞言)을 세 번 반복해 읊는 소리가 귀를 파고들었다.
 개법장진언은 천 개의 손과 천 개의 눈으로 중생을 구제하시는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의 광대하고 원만하며 걸림없는 자비의 다라니를 청하는 게송이었다.
 둥!
 북소리가 울렸다.
 반개한 눈으로 바라보니 나심대사가 곁에 놓여진 작은북을 쳐 게송이 시작됨을 알리고 있었다.
 “천수천안관자재보살광대원(千手千眼觀自在菩薩廣大圓),만무애대비심대다라니계청(滿無石疑大悲心大陀羅尼啓請)!”
 관자재보살은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의 다른 이름이다.
 일체 중생들의 온갖 소리를 다 주재하시고 들어주시는 법, 일천 개의 눈을 가지고 있으며 일천 개의 손으로 구제해 주시는 관자재보살이라 한다.
 관자재보살의 자비와 공덕이 광대무변하고 원만구족하여 걸림이 없고, 자유자재한 큰 힘으로 일체 중생의 고뇌를 건져 준다는 의미의 게송이었다.
 
 계수관음대비주
 원력홍심상호신
 천비장엄보호지
 천안광명편관조
 진실어중선밀어
 무위심내기비심
 
 나심대사의 목소리가 점점 그의 마음 속을 파고들었다. 끊임없이 울려오는 목소리가 가슴에 거대한 통증을 주는 것 같았다. 머릿속으로 파고드는 게송이 커질수록 그의 마음은 태풍을 만난 편주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따라 게송하거라. 마음에 지닌 것은 모두가 번뇌이니라. 소용돌이는 소용돌이가 일어나도록 남겨두고 마음 깊숙한 곳에 흔들리지 않는 커다란 그릇을 만들어라. 그릇이 크면 아무리 파도가 거세고 물이 거친 소용돌이가 일어도 모두 담을 수 있느니라. 일체의 번뇌를 담아라.”
 게송 중에도 나심대사의 나직한 말소리는 끝나지 않았다.
 제자의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나심대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뿐인 것 같았다.
 사승을 잇는다는 것.
 그것은 만불전을 떠나 각 사찰로 떠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며 전혀 다르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새로운 변화가 눈 앞에 와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었다.
 만불전에서는 누구나 같다.
 같은 무공을 익히고 같이 잔다. 같이 게송을 하고 같이 예불을 한다. 같이 먹고 같이 불경을 외운다.
 사승을 잇는다는 것은 다르다.
 그들은 각각의 사찰로 흩어져 갈 것이다.
 겉으로야 같은 아미파라 하지만 사승은 다르다. 복호사의 제자가 되는 수행사미가 있을 것이고 만불사의 제자가 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한 산에 둥지를 틀어도 십 년이 지나도 만나지 못할 수 있다. 그것이 불심이며 수행이다. 어쩌면 헤어지면 그들 중에는 평생 만나지 못할 사람도 있다.
 ‘이제······’
 지심은 마음에 동요가 일어나는 것 같았다.
 그는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었다.
 마음 속에서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사승에 대한 미련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체의 현상을 잊어버리고 싶었다.
 “아미타불, 모든 것은 아집(我執)이야. 내가 사승을 잇는 것과 불심을 깨우치는 것이 무엇이 다르랴.’
 그저 편한 마음으로 게송에 열중하고 싶었다.
 차라리 모든 것을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 아예 생각하지 않음이 마음을 안정시키는 것이다.’
 그는 숨소리조차도 잊으려 노력했다.
 오래 전부터 그가 무공을 익히고 미친 듯 몸을 단련할 때는 마음을 가다듬는다는 것이 그다지 어렵지 않았었다. 불과 사소한 마음의 변화가 몸과 정신을 흐리게 만들고 있었다.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오로지 게송에 매진하자 숨을 두 번 쉬기 전에 삼매(三昧)에 오를 수 있었다.
 모든 것이 변했다.
 마음이 있어도 쉽사리 마음이 안정이 되지 않았다.
 
 我若向刀山
 刀山自折
 
 귓속을 파고드는 게송.
 지심은 정신이 번쩍 드는 것 같았다.
 ‘칼산지옥도 내가 가면 절로 무너진다. 게송에 말해 주듯 내가 선택한 길이라면 주저할 수 없지 않은가?’
 그의 귓속으로 파고드는 게송의 소리가 높아질 때 그는 점차 자신만의 무아로 빠져 들고 있었다.
 
 
 3장 수계(受戒)
 
 
 불찰은 마음의 번뇌를 정화(淨化)하고 지혜를 닦는 수행장으로써 불존을 모신 신성하고 장엄한 성전(聖殿)이며 기도하고 참회하는 신앙의 귀의처이다.
 또한 불찰은 불존, 불존의 가르침, 그리고 불존의 제자이신 스님들이 상주하시는 곳이며, 불자들이 모여서 삼보를 호지(護持)하고 수행하며 법의 중심이 되게 하는 장소이다. 그러므로 정성을 다하여 도량의 성스러움을 보호해야 함은 물론 불자들의 마음에도 참배를 드려야 한다.
 수십 명의 고승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제자들은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옴 마니 반메훔!”
 “옴 도로도로 모지 사바하.”
 복호사의 불전, 복호전에서 시작해 대웅보전이란 편액이 걸린 대불전으로 오르는 백팔 계단 앞에 수많은 승인들이 몸을 가지런히 하고 섰다.
 울리는 진언.
 아미산 각 불찰에서 모여든 고승들과 계단 곁으로 길게 늘어선 복호사의 경승(經僧)들이 일제히 진언을 외웠다.
 단청이 빛을 반사시켜서인지 눈이 아렸다.
 여기저기에서 목어가 울리는 소리가 들리고 땅에서 뿜어올려진 아지랑이가 눈 속으로 파고들 듯 흔들렸다. 돌꽃이 핀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계단을 따라 걸으며 지심은 귓속으로 파고드는 무수한 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는 마치 아우성을 치는 소리 같기도 했고, 귀청을 울리는 북소리 같기도 했다. 더구나 곳곳에서 울려오는 목어가 울리는 소리는 지축을 흔들고도 남을 것 같아, 지면이 출렁거리며 튀어오르는 것 같았다.
 “좌정.”
 어디선가 우렁찬 소리가 들려왔을 때 계단 앞에 다다른 수행사미들은 일제히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사미들의 눈에 보이는 것은 계단뿐.
 지심이라 다르지 않았다.
 오래 전에 무수히 걸었던 계단이었지만 마음에 와닿는 무거움 때문인지 낯이 설어 보였다.
 둥!
 법고 소리가 울렸을 때 지심은 고개를 들었다.
 가장 깊숙한 불당의 지붕은 녹화(綠花)가 핀 듯 보였다. 길게 늘어지고 제비꼬리처럼 말려 올라간 처마 밑에는 고색창연한 글씨가 쓰여져 있었다.
 복호전.
 아미산에 자리 잡은 칠십여 개의 가람 중 가장 큰 사찰로서 실질적인 아미파를 이끄는 복호사의 가장 깊은 곳에 세워진 불전의 이름이었다.
 복호전 앞의 백팔 계단에서는 모닥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계단을 따라 좌우 양 옆으로 일렬로 세워진 향로에서는 하늘빛보다 파란 향이 머리를 풀고 흐드러지고 있었으므로 모든 이는 진한 향을 맡을 수 있었다.
 각 사찰에서 수계의식을 집전하기 위해 모인 오십여 명의 고승들이 복호전의 기단 위에 앉아 있었고 백팔 계단을 따라 양 옆으로 손에 계도를 든 불승들이 도열해 있었다. 계단마다 각기 두 명씩이니 이백 명이 넘는 숫자였다.
 그 곁에는 수계를 돕는 법승들이 즐비하게 서 있었고, 속인들의 모습도 보였다. 그들이야말로 자식들이 수계를 받는 모습을 지켜보기 위해 달려온 납자들이었다.
 기단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사람의 몸집보다 큰 대고(大鼓)가 달려 있었고, 가사를 벗어버려 바위 같은 근육이 드러나 금강역사(金剛力士)를 연상하게 하는 대고승(大鼓僧)이 북채를 들고 서 있었다.
 기단 위에 선 오십여 명의 고승들이 일제히 자리를 잡았다.
 “법고!”
 둥!
 어디선가 우렁찬 함성이 울리자 가사를 벗어버린 무승이 자신의 키보다 큰 법고를 울렸다.
 법고는 복호전의 동쪽 사리탑 옆에 세워져 있었다. 오래 전 불심이 사천에 전해지고 아미에 이르렀을 때 복호사를 세웠다고 알려진 사성법사(士性法師)의 사리탑이었다.
 기단 위에 앉아 있던 오십여 명의 고승들이 일제히 일어났다. 그들은 한결같이 바닥에 끌리는 긴 가사를 입고 있었으며 손에는 자단목으로 깎은 합장주(合掌珠)합장주(合掌珠):흔히 묵주, 단주라고도 한다. 손목에 감고 다닌다., 목에는 백팔 개의 염주알로 만들어진 최승주를 감고 있었다.
 몸을 앞으로 이동시킨 오십여 명의 고승들은 각 사찰의 주지를 겸하고 있는 아미의 장로들로서 제자들을 맡을 사찰에서 몰려온 법승들이었다.
 그들은 법고 소리가 끝나기 무섭게 입을 맞추어 범창(梵唱)을 하기 시작했다.
 
 일쇄동방결도량(一灑東方潔道場)
 이쇄남방득청량(二灑南方得淸凉)
 삼쇄서방구정토(三灑西方俱淨土)
 사쇄북방영안강(四灑北方永安康)
 
 첫째, 동방을 씻어 청정도량 이루었고
 둘째, 남방을 씻어 끓는 마음을 청량하게 하였네
 셋째, 서방을 씻어 안락한 정토를 이루었고
 넷째, 북방을 씻어 영원토록 편안하도다
 
 사방찬(四方讚)이었다.
 고승들이 일제히 입을 열어 게송을 하는지라 귀가 얼얼할 지경이었다.
 제자들은 무릎을 꿇은 상태에서 숨도 크게 쉴 수 없었다.
 지심이라 해서 다르지 않았다.
 사방찬은 불찰에 행사가 있을 때는 늘 게송하여 시방세계를 다스리는 진언이기는 했지만, 그토록 가슴에 와닿는 것임을 느끼기는 처음이었다.
 마음도 새로우면 모든 것이 새로워진다 했던가?
 둥!
 다시 한 번 법고 소리가 울리자 계단에 서 있던 무승들이 일제히 몸을 돌렸다. 그들이 몸을 돌린 방향은 대웅보전이 한눈에 보이는 곳이었다.
 대웅보전의 문이 활짝 열려 희미하게나마 본존불(本尊佛)이 보였다.
 “보아라.”
 그때까지도 제자들은 여전히 무릎을 꿇고 바닥에 앉아 있었다. 목소리가 울려 눈을 들었을 때 그들은 오십 명의 고승 중 한 노승이 앞으로 걸어나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수염이 배꼽에 이르고 붉은 가사를 입은 노승이었다.
 더구나 몸에는 검은 광택이 나는 최승주를 걸고 손에는 경장(驚杖)을 짚고 서 있었다.
 일심선사(一尋禪師)였다.
 그는 나이가 칠십이 넘은 복호사의 주지승으로 수계를 내리는 법회의 주재자였다.
 복호사는 아미의 중심에 있다.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복호사의 주지는 아미파의 장문인으로 인식되기 마련이었다. 또한 무림에서는 달리 말하지 않아도 복호사가 아미파라 생각하는 이도 적지 않았다.
 더불어 모든 아미산의 불찰들은 복호사를 중심으로 뭉쳐 있으므로 복호사의 주지를 장문인으로 추대함에 주저하지 않았다. 복호사의 주지라는 지위는 아미의 장문인을 겸하고 있었는데, 그 전례는 단 한 번도 깨어진 적이 없었다.
 “수계를 시작하겠노라!”
 두두두둥!
 일심선사의 목소리가 울리자 법고가 바삐 울리기 시작했다. 그것을 시작으로 아미산 곳곳에서도 법고 소리가 들려왔다. 오늘 제자들이 비구의 계를 받는 것을 모르는 불찰은 없었다. 아미산 곳곳에 세워진 불찰의 제자들은 비록 복호사로 내려오지는 못하지만 경사임에 틀림없었다.
 그들이 법고를 울려 아미산을 떠나가게 만드는 것은 자신들의 불찰에도 제자들이 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고, 매년 치르는 비구의 수계는 각 사찰의 인원을 충족하는 길이기도 했다.
 “제자들은 몸을 돌려 대불(大佛)을 앙배하라.”
 지심은 몸을 일으켜 뒤로 돌았다.
 그와 다름없이 이십 명의 제자들이 몸을 돌렸다. 그들은 몸을 돌리고 다시 꿇어앉았다.
 그들의 눈에 대웅보전의 본존불이 눈에 들어왔다.
 지심은 눈을 높이 들었다.
 멀리 희끄무레하게 다가오는 산이 있었고 그 정상에 아릴 듯 보이는 거대한 절벽이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일심선사가 요구하는 것은 그 산을 바라보라는 것이었다.
 낙산(樂山)이었다.
 낙산은 복호사가 자리 잡은 아미산에서 동쪽에 우뚝 솟은 산으로 삼십 척에 조금 미치지 못하는 대불이 바위에 새겨져 있었다. 당대(唐代)에 구십 년의 세월 동안 조성된 불사(佛事)로서 산 전체를 가리켜서 능운산(凌雲山)이라 칭한다.
 또한 능운산은 멀리서 보면 석가가 열반에 들어 있는 듯 누워 있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아미파의 제자들은 낙산을 포함하고 있는 능운산을 침석가불산(寢釋迦佛山)이라 부르고 있었다.
 일심선사가 보라 한 것은 바위에 새겨진 대불이 아니었다.
 능운산 자체를 보라 한 것이었다.
 바라보이는 곳에 석가가 누워 있으니 이 아니 홍복이라 할 수 있겠는가?
 ‘자비로운지고······’
 지심은 나직하게 탄성을 뿌렸다.
 그의 눈에는 길게 누운 와불(臥佛)처럼 보이는 산줄기가 아스라이 눈을 파고들고 있었다. 안개인지 구름인지 분간조차 하기 어려운 기운이 스멀거리고.
 낙산 주위에는 물이 많다.
 장강을 제외하고는 사천에서 가장 긴 강이라는 민강이 산허리를 감았고 청의강(靑衣江), 대도하(大渡河)가 합류하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물안개가 마치 꿈인 양 아스라이 피어오르고 태양빛을 받아 홍자(虹子:무지개)가 일어나 마치 후광처럼 보였다.
 “보이는고?”
 일심선사의 목소리에 법고가 흐드러지게 몸살을 떨었다.
 제자들은 일찍이 비구의 계를 받은 불자들을 통해 아미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수계의 의식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제자들은 일심선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제자들은 일제히 우슬착지(右膝着地)로 칠배를 올리며 합장하여 불호를 터뜨렸다.
 “아미타불!”
 “아미타불!”
 우슬착지는 맨땅 위에서 불존께 마음을 올릴 때 사용하는 방법이었다.
 합장한 자세로 반배를 한 후 왼발은 앞으로 내딛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붙이며 오른쪽 발 끝은 땅을 버티게 하여 왼쪽 무릎을 세우고 왼쪽 발은 땅을 밟고 있는 자세. 합장한 후에는 조용히 일어나 두 발을 모으고 반배한다.
 “아미타불!”
 그들의 불호가 떨어지기도 전에 여기저기에서 게송이 일어나고 합장이 줄을 이었다.
 “몸을 돌려라. 수계를 내리겠노라.”
 일심선사의 말이 있자 제자들은 일제히 몸을 돌렸다.
 기단 위에 앉아 있던 고승들이 일제히 자리에 앉아 손목에 걸려 있던 합장주를 뽑아 손가락에 잡았다.
 둥둥둥!
 “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법고 소리가 울리자 고승들이 일제히 게송을 읊기 시작했다.
 계를 내린다는 말은 불파가 태동한 이래 율(律)이 되어온 삼장(三藏) 중에서도 율장(律藏)에서 설한 것으로, 잘못된 것을 막고 악을 그치게 하며 날로 선을 증장시키게 하는 것이다. 계율은 계학(戒學), 정학(靜學), 혜학(慧學)의 삼학 중 계학에 넣어 중시하고 있다.
 아미의 불계도 이에 어긋나지 않으니 더욱 엄격하여 그 의식은 중원의 어느 불사도 감히 따르지 못했다.
 대승의 삼귀계(三歸戒)와 섭율의계(葉律義戒)로 사용하는 삼취정계, 십중금계, 사십팔경계 등의 재가계와 이백오십 가지나 되는 비구계를 모두 설법하고 확언함으로써 연자와 납자의 도리를 포함하는 비구의 계를 내리니 그 소요되는 시간과 장대함은 감히 필설로 형언할 수 없었다.
 “삼사(三師) 칠증(七證)을 모셔라.”
 “아미타불!”
 일심선사가 경장을 들어올리자 나직한 불호와 함께 열 명의 승려가 앞으로 나섰다.
 그들 또한 아미산에 들어선 불찰의 주지를 맡고 있으며 아미파의 장로로 존경을 받는 고승들이었다.
 본시 삼사란 비구의 계를 주는 계화상(戒和尙)과 구족계를 받는 승인들에게 지침이 되는 갈마사(磨師)갈마사(磨師):대승은 갈마사라 하나 소승에서는 학덕과 법랍을 갖춘 스님으로 하문수보살을 갈마사로 삼기도 한다.를 말한다.
 따라서 갈마사는 불법에 몸을 맡긴 이래 모든 불법을 숭상하고 계율을 어긴 적이 없는 사문의 법승일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수계하는 제자로서 지켜야 할 불법을 가르치는 교수사(敎授師)를 말한다.
 칠증이란 덕이 높은 일곱 명의 불승으로 수계를 정해 주는 법사를 말한다.
 “아미타불. 소승이 계를 내리겠소이다.”
 갈락사(褐樂寺)의 주지이며 아미의 장로직을 맡고 있는 칠십대의 승인이 앞으로 나섰다.
 “아미타불. 갈락사의 법현(法玄)이오이다. 소승은 갈락사를 맡아 문수보살의 덕과 지혜를 나투어 모든 제자들이 덕을 쌓고 불심에 깊이 전진하도록 축수하겠소이다.”
 앞으로 나선 승인은 나이가 그리 많다고 여겨지지 않는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이마에는 주름 하나 보이지 않았고 수염은 참나무 숱을 태운 듯 검었다.
 빙그레 웃는 얼굴에 자비가 넘쳤다.
 겉으로 보아서는 겨우 사십을 넘겼을 것 같지만 그의 나이는 몰려나온 열 명의 승인 중 가장 나이가 많았다.
 “소승이 교수사이오.”
 나직한 소리가 들리고 육십을 넘은 노승이 앞으로 나서 가볍게 손을 모았다.
 그는 복호사의 장로이며 천문암(天門岩)의 암주이기도 한 유심대사(柔尋大師)였다.
 그는 복호사의 장로로서 아미의 장로를 겸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산 아래 세속으로 내려가 술에 취해 난장판을 만들고 때로는 사람을 죽이는 살계를 열었다는 소문도 있지만, 제자들에게는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는 별로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고 제자들도 그를 보기는 어려웠다.
 더구나 그는 복호사에서도 한참이나 걸리는 아미산 정봉 부근에 자리한 천문암에 암자를 짓고 생활하고 있었다.
 유난히 큰 눈.
 눈을 감싸듯 자란 눈썹은 유난히 길어 귓가까지 뻗치고 눈썹은 눈동자를 찌를 것같이 아래로 늘어졌다.
 광대뼈는 그의 고집을 이야기하는 듯하다.
 수염은 가슴에 이르렀지만 흑염(黑髥)과 백염(白髥)이 뒤섞여 먼 산의 눈이 온 바위 같은 모양을 연상케 하는데······
 남루한 가사.
 바람이라도 불면 조각조각 부서질 것 같은 가사를 입은 노승은 입가에 미소를 베어물었다.
 “아미타불!”
 그를 본 불승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수계를 증명할 준비는 끝났소이다.”
 일곱 명의 노승.
 수계를 증명하는 칠증의 노승들이 일제히 합장을 하자 일심선사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나섰다. 그가 한 발 앞으로 나서자 삼사 칠증이 뒤로 물러섰다.
 둥!
 법고가 울렸다.
 “예경(禮敬)!”
 일심선사의 목소리가 울리자 고승들이 다시 앞으로 나섰다.
 고승들은 일제히 손을 합장하여 서방에 반배하고 입을 모아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을 외쳤다.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정구업진언은 사람이 살아가며 말로써 짓는 업을 씻어내는 진언으로, 앞으로 불제자가 되어 입을 조심하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거불(擧佛)!”
 일심선사가 다시 한 번 앞으로 나서자 법승들이 목어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모든 제자들이 오체투지를 하며 입으로는 게송을 외기 시작했다.
 따락따락······
 목어는 쉬지 않고 울었다.
 둥!
 법고 또한 간간이 제자들을 깨우치고 있었으므로 수계의식은 그야말로 더할 수 없이 엄숙하고 장중해졌다.
 “나모현거도솔미륵존불이오니, 거룩하신 불존님께 귀의하오니 이 법회에 임하여 주시오소서. 나모당래교주미륵존불이오니, 거룩하신 가르침에 귀의하오니 이 법회에 임하여 주시오소서. 나모삼회도인미륵존불이오니, 거룩하신 스님들께 귀의하오니 몸을 나투어 이 법회에 임하여 주시오소서.”
 고승들이 자리를 잡고 서자 거불이 이루어지고 여러 가지 불자에게 어울리는 진언이 독송되었다.
 계단의 좌우에 늘어서 있던 비구들은 연신 쉬지 않고 독송을 하느라 목이 쉴 지경이었지만 누구 하나 고개를 꺾거나 몸을 돌리지 않았다.
 그들은 계도를 허리에 두르고 언제 들었는지 손에는 목어와 최승주가 들려 있었다.
 “보소청진언(譜所聽眞言)!”
 일심선사는 다급하게 들릴지도 모르는 목소리로 외쳤다.
 그의 뒤에 서 있던 아미파의 장로들과 계단에 줄지듯 서 있던 이 백 명이 넘는 불승들이 일제히 손을 모아 합장하며 대웅보전을 향해 돌아섰다.
 그들은 일제히 오체투지를 하며 한결같은 마음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나무보보제기, 가리다리, 다타, 아다야. 나무보보제기, 가리다리, 다타, 아다야. 나무보보제기, 가리다리, 다타, 아다야!”
 다라라라!
 귀를 파고드는 목어 소리.
 삼 회 진언 게송이라······
 세 번을 반복한 진언이 끝나자 분위기는 깊은 물 속처럼 조용하게 가라앉았다.
 “마치!”
 일심선사가 고함에 가까운 목소리를 토하자 공양주들이 나타나 대웅보전으로 들어갔다. 공양주들의 손에는 한결같이 목기와 다반(茶盤), 향로(香爐)가 들려 있었다.
 그들은 오래지 않아 대웅보전에서 물러났다.
 손에 들려 있던 목기와 향로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불단에 내려놓았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일심선사는 두 손을 펴고 대웅보전을 향해 반배를 하고 이어 삼정례(三頂禮)를 올렸다. 이어 다시 반배를 한 후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우주에 충만하사 아니 계신 곳 없으시고, 영겁에 항상 하사 아니 계신 때 없으시는 불보살께 돌아가나이다. 불존이시여. 대자대비하시고 구족하신 불존이시여, 둥글고 또한 밝은 우주를 싸고 고르며 넓은 은덕이 만물을 기르셨습니다. 억만겁토록 불전에 한몸으로 나아갑니다. 모든 이치 중에서 가장 지혜로우시고 은덕이 넘치신 불존이시어. 하늘 가운데서 가장 높고 세상 만류 중에 제일이시오이다. 지혜와 복덕이 넘치는 불존이시여. 앙축하고 바라옵건대 제자를 받으소서. 이제 마음 거두어 합장하오니 자비의 문을 열고 지혜의 단비를 내려 목마른 가슴에 싹을 돋게 하시오소서. 항상 욕심이 넘치고 어리석어 고통스런 업보의 굴레를 벗지 못하는 모든 중생에게 불존의 찬란한 해탈세계로 나아가기 원하옵니다. 복덕과 지혜를 모두 갖추신 불존이시여. 다툼과 미움, 시름과 절망으로 어두워진 이 미망(迷妄)의 사바에 하루 속히 영원한 생명과 화합의 빛을 밝혀주시오소서. 바라옵고 청하옵니다. 바라옵건대 이 공덕으로 멀리 있거나 가까이 있거나, 모든 사람 모든 생명에게 평화와 안식이 항상 하게 하여주시오소서. 이 제자들이 구원을 행하고 불존의 서방정토(西方淨土)에 나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주시오소서. 거룩하신 불존께 귀의합니다. 나무마하반야바라밀. 나무마하반야바라밀. 나무마하반야바라밀.”
 일심선사는 수계의 취지를 불존께 아뢰었다. 이는 수계에서 가장 중요한 순서 중의 하나로 이제 제자들이 불존의 제자가 된다는 것을 선포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모든 승인들이 게송으로 화답했다.
 일심선사는 뒤를 돌아보며 굵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헌좌(獻坐)!”
 게송 사이로 일심선사의 목소리가 울리자 계단에 서 있던 제자들이 일제히 진언을 외쳤다.
 “아미타불!”
 “묘보리좌승장엄, 제불좌이성정각, 아금헌자역여시, 자타일시성불도! 옴바라야 미나야 사바하. 옴바라야 미나야 사바하. 옴바라야 미나야 사바하.”
 불존께서 자리하셨다는 진언.
 이로써 수계를 내리기 위한 모든 준비는 다 된 셈이었다.
 둥!
 모든 제자가 대웅보전을 향해 허리를 굽히고 오체투지를 했다. 삼배가 끝났을 때 헌좌의 의식은 끝이 났다.
 그사이에도 연신 두드리는 목어 소리와 게송으로 여간 시끄러운 것 같지 않았지만, 자세히 정신을 집중해 보면 모든 제자들이 입 속으로 게송을 웅얼거리고 있었다.
 “정법계진언(淨法戒眞言)!”
 일심선사가 손을 모아 합장하며 다시 소리를 지르자 고승들이 일제히 입을 열었다.
 “옴 람!”
 “옴 람!”
 둥!
 법고 소리가 울리며 법을 수호하겠다는 진언이 끝나자 이어 다게(茶偈)가 이어졌다.
 “공방시어조어사, 연양청정미묘법, 삼승사과해탈승, 원수자비 애납주. 시방 삼세 불존시어, 삼승의 해탈을······ 삼승사과······ 원컨대 드리우사 불제자들을 받아주소서. 자비를 드리우사 받아주소서. 원컨대 자비를 드리우사 받아주소서.”
 우렁찬 게송.
 일심선사가 직접 나서 집전한 다게는 신속하지만 장엄하게 이루어졌다. 그리 길지 않은 게송이 끝나도록 모든 제자들이 일제히 오체투지를 했다.
 삼배.
 한결같이 삼배를 하는 것은 몸을 나투신 불존의 가피력에 대한 찬(讚)이라.
 “아미타불!”
 한시도 멈추지 않은 오체투지와 불승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불호는 천지간을 가득 메운 광휘로움과 같았고 모든 사람에게 내려지는 불존의 가피력과 같았다.
 게송이 끝난 후에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수계!”
 일심선사가 소리를 지르자 오십여 명의 고승 중 이십여 명이 앞으로 나섰다.
 그들은 일제히 발걸음을 움직여 제자들 앞에 섰다. 이어 수계의식에는 참가하지 못하고 멀찍이 서서 보고 있던 제자들이 불경을 외기 시작했다.
 계단에 서 있던 이백 명이 넘은 제자들 중 이십 명이 앞으로 나서며 고승들에게 삭도(削刀)를 내밀었다.
 삭도를 받아든 고승들은 일제히 허리를 숙였다.
 “아미타불!”
 “아미타불!”
 제자들은 몸을 꼿꼿하게 세웠다.
 지심도 다르지 않아 몸을 꼿꼿하게 세우고 두 손을 합장하여 마음을 다잡았다.
 일심선사의 목소리가 울렸다.
 “귀의불(歸依佛) 양족존(兩足尊)!”
 지심은 감격하여 부르짖었다.
 “귀의불 양족존, 거룩한 불존님께 귀의합니다. 만세토록 변하지 않겠습니다.”
 비단 그만이 아니었다.
 이십 명의 제자들은 일제히 합창을 하며 목소리에 경건함을 심었다. 그들의 목소리가 복호전의 용마루를 쩌렁하게 울리고 계단에 서 있던 승인들의 입에서 게송이 울려나왔다.
 일심선사의 목소리가 다시 울려나왔다.
 머리에 이는 감촉!
 고승들이 일제히 삭도를 들어 머리에 대었다.
 가는 머리가 한 올 한 올 흩어지며 바람에 날렸다. 지심은 자신의 눈 앞으로 떨어져 내리는 머리카락을 보며 눈을 감았다.
 “귀의법(歸依法) 이욕존(離欲尊)!”
 “귀의법 이욕존, 거룩한 법보님께 귀의합니다. 영원토록 귀의합니다.”
 머리카락이 잘려나가 맨살이 드러나자 정수리가 시원해졌다. 그사이에도 멈추지 않고 삭도는 계속해 움직였고 점차 몸이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언뜻 코로 스미는 향내.
 계속해 향내를 맡고 있었지만 유난히 진한 향의 냄새에 지심은 마음이 울컥거리는 것 같았다.
 “귀의승(歸依僧) 중중존(衆中尊)!”
 “귀의승 중중존, 거룩한 승보님께 귀의합니다.”
 고승들이 물러났다.
 삼귀의를 마칠 사이에 이미 머리카락은 잘려 한 올도 남아 있지 않았다. 왠지 몸이 가벼워지고 모든 번뇌가 사라져 버리는 것 같은 기분에 마음이 가벼워졌다.
 삼귀의는 본래 불가에 접한 초심자가 근본으로 삼는 의지처라는 의미가 강했지만 수계를 받는 제자들에게도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다.
 특히 불제자들에게 삼귀례(三歸禮)라 불리는 이 세 가지의 예법은 극히 미미해 보이지만 가장 근본적인 것이었다.
 “설계(說戒)!”
 일심선사가 외침을 뿌리자 삼사 칠증으로 나선 고승, 갈락사의 주지승이며 수계를 내리는 계화상으로 내정된 법현대사가 앞으로 걸어나왔다. 그는 수계승들이 본받아야 할 삼사의 스승 중 계화상으로 추대되었으므로 계를 내리는 수계의식을 직접 집전하는 입장이었다.
 법현대사는 손에 죽비를 들고 앞으로 걸었다. 그는 걸음을 옮기는 중에도 합장주를 손에 들고 최승주를 몸에 감았다. 그가 나서자 계단에 서 있던 승인 중 이십여 명이 계단에서 벗어나 그를 따르기 시작했다.
 그들의 손에는 각기 여섯 가지가 들려 있었는데, 각각 최승주와 합장주, 목어와 법복(法服)이 보였다. 또한 계도(戒刀)와 발우(鉢盂)도 들려 있었다.
 법현대사는 일렬로 앉아 있는 제자들에게 다가가자, 첫 번째 제자에게 죽비를 내려 어깨를 후려쳤다.
 “삼취정계(三聚淨戒)라······ 섭율의계, 섭선법계, 섭중생계를 지키겠느냐?”
 “아미타불. 지키겠습니다!”
 제자는 취한 듯 소리쳤다.
 법현대사는 뒤를 따르던 불승에게 몸을 돌려 합장주와 최승주를 받아 제자에게 내렸다.
 이어 다시 물었다.
 “모든 목숨 있는 것을 죽이거나 남을 시켜 죽이지 마라. 방편(方便)으로 죽이거나 죽이는 것을 칭찬하거나 기뻐하지 마라. 그리고 자비심으로 모든 중생을 구하고 건져라. 이는 오계의 으뜸인 불살생(不殺生)이라. 지키겠느냐?”
 “아미타불!”
 법현대사는 목어와 계도를 내렸다.
 “자기 손으로 도적질하거나 남을 시켜 도적질을 하지 말아라. 방편으로 도적질하지 말아라. 이는 불투도(不偸盜)이니 오계의 하나라. 지키겠느냐?”
 “아미타불, 진심으로 지키겠습니다!”
 법현대사는 다시 발우와 법복을 내렸다. 법현대사는 합장을 하고 몸을 떠는 제자의 머리에 최승주를 끌러 올려놓은 뒤 좌중을 둘러보며 외침을 터뜨렸다.
 “너는 이제부터 흑오(晤)라 불릴 것이다. 속명을 버리고 승명을 받으니 불존의 제자가 되었노라. 법명 흑오는 오늘부터 천불사(天佛寺)의 제자로 승적(僧籍)을 봉하며 사승을 이으리라.”
 “아미타불, 하해와 같은 불존의 은혜에 머리를 숙이며 삼보에 귀의하겠습니다!”
 속명(俗名) 진후량(陳候良)은 이제 흑오가 되었다. 그가 파문을 당하지 않는 한 그의 승명은 아미의 이름에 빛이 날 것이다.
 법현대사는 걸음을 옮겨 다음 제자에게 다가갔다.
 그는 흑오에게 했던 것처럼 죽비로 어깨를 후려치며 외침을 터뜨렸다.
 “자기도 음란하거나 남을 시켜 음란하게 하지 마라. 그리고 항상 슬기로운 마음으로써 모든 중생을 널리 구원하며 깨끗한 법을 가르치도록 하라. 이는 불사음계(不邪淫戒)이니라. 승인이 지켜야 할 열 가지의 계행 중 한 가지로 오계에도 드는 것이다!”
 “아미타불, 명심하겠습니다.”
 법현대사는 흡족한 표정으로 제자에게 발우와 목어를 내리고 다시 입을 열었다.
 “자기도 거짓말을 하거나 남을 시켜 거짓말을 하지 말며 거짓을 말하도록 가르치지 마라. 방편으로 거짓을 말하지 마라. 그리고 항상 바른 말과 바른 소견을 가질 뿐 아니라 온갖 중생들로 하여금 바른 말과 바른 소견을 갖게 하라. 이는 십계 중 하나이며 오계에 미치는 불망어계(不忘語戒)이니라. 이를 어길 시에는 아무리 정구업진언을 외우고 게송해도 소용이 없으리라.”
 “감읍하옵니다. 아미타불.”
 법현대사는 최승주와 합장주를 내렸다.
 이어 정색한 얼굴로 다시 입을 열기 시작했다.
 “술을 팔거나 남을 시켜 술을 팔지도 마라. 술은 죄악을 일으키는 인연이 된다. 모든 중생의 밝고 빛나는 지혜를 길러주어야 한다. 이는 불음주계(不飮酒戒)라 한다.”
 “지키겠습니다.”
 제자는 합장을 하고 몸을 앞으로 숙이며 몇 번인가 감격으로 떨었다.
 게송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십 년 이상의 긴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에게 불승이 된다는 것은 구복(求福)을 위한 구현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불문에 몸을 맡기고 정법을 구현하겠다는 의지를 지닌 제자들에게 수계의 의식은 기다리고 고대하던 일이었다.
 아무리 굳은 마음을 먹고 산을 들어섰다 해도 십 년 가까운 동자승(童子僧)의 수련과 행자수련, 심지어 사미의 수련을 거치다 보면 지난날 결연했던 의식과 마음은 퇴색되기 마련이었다. 고통이 불심을 흐트러뜨리는 경우도 허다해 십 년도 채우지 못하고 산을 내려가는 제자가 적지 않았다.
 그랬기에 사미승으로 고승을 모시고 다기(茶器)를 닦고 차를 다리며 불경을 배울 때도 진설(眞設)의 무공을 가르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고승들은 그 뿌리를 찾고 제자의 불심을 측정하여 밀결(密訣)로 전해지는 여러 가지를 가르치기도 하는데 그 중의 하나는 무공이었다.
 법현대사는 합장을 하고 만족한 표정으로 계도와 법복을 내렸다.
 속명이 주일형(朱一衡)이라던 제자는 법복을 받아 무릎 앞에 놓고 나머지 불기(佛器)들을 가지런히 놓았다.
 그 모습이 정연하고 단련되어 있었는지라 법현대사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목에 걸려 있던 최승주를 끌러 머리에 올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속명은 버리도록 해라. 이제 너는 아미의 제자로다. 승명을 흑전(塡)으로 정하노니 정애암(淨涯庵)의 일현노구(壹峴老軀)를 따라 불법을 배우고 익히며 사승을 계승토록 해라.”
 “감읍하옵니다! 아미타불.”
 수계는 계속되었다.
 법현대사는 각각의 제자에게 삼귀례를 이야기하고 삼취정계를 논하였다. 십중금계를 설법하고 사십팔경계를 이야기하니 모두가 한결같은 불심으로 머리를 조아렸다.
 열일곱 번째가 되었을 때 법현대사는 지심의 무릎 앞에 설 수 있었다. 지심은 두 손을 합장하여 눈을 감고 반개한 눈으로 스며드는 빛을 보고 있었다.
 연신 게송을 하느라 아무것도 의식하지 못했다.
 철썩!
 어깨에서 벼락이 치는 것 같았다.
 죽비였다.
 법현대사는 지심의 앞에 이르러 손에 들고 있던 죽비를 후려쳐 그의 정신을 일깨웠다.
 예로부터 죽비는 승가에서 불경을 외우거나 학습을 할 때, 화두에 너무 빠져 들어 불망에 들 때 어깨의 경락을 두드려줌으로써 망아에서 빠져 나오도록 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었다.
 “너는 불제자로서 모든 계율을 지키겠느냐? 그렇다면 삼귀례를 읊어보거라.”
 지심은 정신이 번쩍 드는 것 같았다.
 그가 아는 것은 수계의식에서 계화상은 계를 주며 일일이 계에 대해 조목조목 따져 물어보고 설명하는 것이었다. 앞에서도 그리했고 모두가 계를 받았다.
 자신도 다르지 않을 것이라 믿었다.
 한데 갑자기 삼귀례를 읊어보라니······
 삼귀례는 불자가 아닌 납자라 해도 알고 있었다. 향화객만 하더라도 삼귀례를 아는데 하물며 십 년이 넘도록 절밥을 먹은 그에게 삼귀례를 묻는 의도를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어찌하랴.
 삼귀례는 불자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것이고 불존의 모든 사상이 담겨 있는 것이니······
 “예, 아미타불! 귀의불 양족존이니, 불존께 스스로 귀의하며 원컨대 중생이 대도를 체해(體解)하여 가없는 뜻을 내어지이다. 귀의법 이욕존이요, 달마께 스스로 귀의하여 원컨대 중생이 경장(經藏)에 들어가 광대한 지혜를 얻을지이다. 귀의승 중중존이요. 승가(僧伽)께 스스로 귀의하며 원컨대 중생이 대중을 통리(統理)하여 다같이 걸림이 없어지리다. 이를 삼귀례라 하니 불자가 반드시 지킬 것이라.”
 “허허!”
 법현대사는 가볍게 웃으며 손을 머리에 얹었다. 그리고 다시 물었다.
 “무엇을 불존으로 삼겠느냐?”
 “아미타불, 아는 것이 없고 배운 바 불존의 말씀만을 믿었으니 경(經)을 지보(至寶)로 삼겠습니다.”
 법현대사는 빙그레 웃으며 법복을 포함하여 불구 일체를 그의 앞에 놓아주었다.
 그를 바라보는 모든 고승들의 눈에 열기가 어렸다. 그들의 시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지심은 알지 못했다. 수계를 받는 것으로 만족하다고 생각했었다. 마음 한구석에 욕심이 있기는 했지만 이제는 이루어졌으니 아무런 욕심도 없었다.
 법현대사는 한동안 주위를 둘러보다 입을 열었다.
 “수행사미 지심은 불가의 법에 따라 수계를 받으리라. 계명을 내려 수계를 이루며 불가의 이름을 내리니 현암(玄岩)이라 하라. 이는 오래 전부터 불문에 몸을 담은 이유이니라. 또한 복호사의 장로이며 천문암의 암주(庵主)인 유심대사에게서 십 년 이상을 다향을 준비하고 수발을 들었으니 그 입지 또한 놀랍고 공덕이 인정되니 유심대사의 사승을 이을 것이라.”
 둥!
 법고가 울었다.
 ‘이것이었나?’
 어느 정도 예상은 했던 일이라 할 수 있었다.
 기억이 있기도 전에 산으로 들어왔다.
 천문암은 복호사에서 칠백여 척이나 산으로 올라가야 하는 곳으로, 산세가 험하고 바위가 여간 아니어서 건장한 청년도 하루가 걸리는 거리였다.
 만불전으로 내려오기 전에 그는 천문암에서 동자승으로 유심대사의 수발을 들고 있었다.
 그것이 삼 년 전의 일이었다.
 어쩌면 그가 천문암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천문암으로 다시 들어간다는 것은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었음이 분명했다. 무릎을 꿇고 수계를 받던 모든 제자들의 얼굴에 떠오른 경악과 고승들의 눈에 떠오른 놀람이 그것을 증명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유심대사는 아미파에서 최고 배분의 고승이었다.
 복호사의 장로이며 아미의 장로이기도 한 유심대사의 사승을 잇는다는 것은 파격에 가까웠다. 사승을 잇는다 해서 유심대사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유심대사의 맥을 잇는다는 것은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우선 유심대사에게는 단 한 명의 제자 외에는 사승을 이을 제자가 없었다.
 한 명의 제자.
 유심대사의 직전은 아니라 해도 사손(師孫)은 될 수 있었다. 유심대사의 일맥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수명의 제자들로 이루어진 다른 고승들과 달리 배분에도 차이가 있었다.
 유심대사의 단 한 명뿐인 제자에게 사승을 잇는다면 이는 아미파에서도 삼대제자에 해당하는 배분이다. 대부분 수계를 받는 제자들이 오대제자 이하의 배분을 지니게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하품이 나올 지경이 아닐 수 없었다.
 그 밑 배분은 무려 일곱이나 된다.
 사미계를 받은 제자들이 있고 행자승이 있다. 그리고 동자승이나 소사미가 있고 공양주나 불을 때고 나무를 하는 화승(火僧) 따위의, 경을 외우는 법승과는 거리가 먼 잡승이 있으니 삼대제자라 함은 놀라운 것이었다.
 기존의 질서를 물리치고 무려 칠팔 개의 배분을 뛰어넘어 삼대제자가 되는 것이었으니······
 누구도 상상치 못했을 것이다.
 현암.
 지심의 새로운 이름.
 앞으로 그 이름을 버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열반에 들어 몸이 진토(塵土)가 될 때까지는.
 ‘이제 나는 진정한 불존의 제자가 되었는가? 이제 내가 갈 길이 정해졌는가? 십 년이 넘도록 불존의 자비 속에 살아오며 늘 부족하고 마음이 안정되지 않았다. 이제 계를 받음으로써 마음 속의 번뇌를 끊을 수 있을까!’
 현암이 머릿속을 파고드는 게송을 들으며 엉클어진 실타래 같은 생각을 정리하는 동안 법현대사는 계속해 제자들을 지나치며 수계를 내리고 있었다.
 현암은 너무도 가슴이 벅차 설계(設戒:수계의 다른 말)가 끝나도록 정신을 모으지 못했다.
 둥! 두두둥!
 법고가 울었다.
 언뜻 정신을 차리고 눈을 들어보니 법현대사는 이미 모든 계를 전하고 기단 위로 올라가 있었다.
 “불퇴전(不退殿)!”
 일심선사의 목소리가 울리자 수계를 받은 제자들은 일제히 일어서 대웅보전 앞으로 나아갔다. 모든 제자가 보고 있는 가운데 현암은 멍청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수계제자 중 현암의 배분이 가장 높으니 불전에 분향(焚香) 후 삼배하라.”
 일심선사의 목소리가 울려서야 현암은 정신을 차리고 급히 움직였다. 현암은 급히 오른쪽 측문으로 들어가 반배를 하고 세 자루의 향을 들어 향촉으로 가져가 불을 붙였다.
 그리고 손을 저어 향에 불을 끈 뒤 불존 앞에 꽂고 오체투지를 하기 시작했다.
 일배, 이배······ 삼배.
 “아미타불!”
 “나무화장세계!”
 게송이 울렸다.
 수계를 받은 제자들뿐 아니라 모든 불승들의 목소리가 마치 천둥처럼 울리고 있었다.
 보통의 경우, 물론 한두 사람의 불승에게 수계를 내린다면 그와 같이 한 명의 제자가 분향을 하고 삼배하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십여 명의 제자가 모두 분향 삼배를 하기는 어려웠으므로 현암이 불존을 알현한 것이었다.
 “연비(燃臂)!”
 일심선사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의 목소리는 적잖이 떨리고 있었는데 그것은 흥분이 여간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과 같았다.
 지난 몇 년 동안 아미는 그다지 성세를 누렸다 할 수 없었다.
 사천제일의 도량이고 중원 전체를 통틀어 사대도량의 한 곳이면서도 이름이 퇴색되어 있었다. 그것은 아미가 중원과는 다른 불파였기 때문이었다.
 이름난 관리의 자제나 거상(巨商)의 자제들이 제자가 되어야 이름을 얻을 수 있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러나 몇 년 동안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했다.
 이유는 아미가 불파이고 제약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불존이 정한 모든 계율을 이길 수 있는 제자는 드물었고, 관료들과 황금을 주무르는 자들은 자신들의 자식을 승인들에게 맡기기를 꺼려했었다.
 더구나 아미의 문규는 다른 어떤 불사(佛舍)들의 문규보다 엄격했다.
 소림의 경우만 하더라도 어린 나이에 수계를 받아 비구가 될 수 있었다. 그래서 대개의 불찰들은 열 살만 되어도 계를 받는 경우가 허다했다.
 아미는 달랐다.
 십 년 이상의 수행과 소사미로서의 동자승 생활, 만불전에서 이루어지는 삼 년간의 수행자 생활.
 이 모든 것이 많은 제자들이 산을 떠나게 만들었다.
 지친 수행자들은 불자의 길을 포기하고 산을 내려갔지만 아미는 진정한 불자를 기르고 진정한 불도를 세운다는 생각에 그들을 잡지 않았다.
 “아미산의 불법은 사천제일이다.”
 사천 사람들은 그렇게 말했다.
 그것이 존경과 앙모로 비쳐지기도 했지만, 달리 생각하면 고집스럽다는 뜻으로도 들리는 말이었다.
 아미가 불법을 받들어 계율을 기초로 한 문규(門規)를 고집스럽게 지키고 있는 동안에도 사천의 다른 무파들은 급격히 성장했다. 아미를 주름잡고 수많은 제자들을 배출했던 지난날의 영화는 서서히 스러져 가는 듯했으며 아미의 무공마저 외면당하는 경우도 생겼다. 그것은 아미가 불존의 계율을 받들어 살생을 하지 않음에 기인하고 있었다.
 불살생계는 문규의 첫 번째 항목이며 덕목이라.
 아무리 죄를 지었다 해도, 아미에 거칠게 대항하거나 제자들에게 살수를 뿌린 자에 대해서도 아미는 징계를 내려 목숨을 빼앗기보다 계도를 내려 교화하려 힘을 썼다.
 삼십 년 이상의 세월 동안 아미가 위축되어 보이는 것은 그런 이유였다. 아미가 뜻을 굽히지 않는 것은 대도적(大道的)이라고밖에는 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
 아미와 함께 사천을 나누어 주름잡는 나머지 방파들은 아미가 주춤하는 사이 나름대로 사문의 문규를 재해석하며 세력을 확대하고 있었다.
 삼십 년 전에는 아미가 사천무림의 중심이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변했다.
 비록 도가(道家)의 도량이라 알려진 점창(點蒼)과 청성(靑城)이 아미와 어깨를 겨룬다고는 하나, 삼십 년 전에는 감히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것으로 무인들은 거론조차 하지 않았다.
 과거 제후국(諸侯國)의 후손임을 자랑하며 일가를 이룬 사천당문(四川唐門)도 다르지 않았다.
 모든 것이 변했다.
 삼십 년이면 강산이 세 번은 바뀌었다.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말은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아미가 아미산으로 파고들어 문규를 엄중히 하며 불법에 힘쓰는 동안 청성과 점창, 사천당문은 스스로 아미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기고만장하여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아미와 같이 사천을 주름잡는 청성과 점창은 기존의 문규를 재해석하고 개방적인 태도로 속가제자들을 지원하며, 극히 기본적이라 할 수 있는 현교(玄敎)의 교리만을 주장했으므로 아미보다 그다지 문규가 강압적이라 할 수 없었다.
 그들에게 많은 제자들이 몰린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일심선사는 그와 같은 일에 아미가 위축되었다 생각하고 있었기에 근래 보기 드물게 많은 제자들이 구족계(具足戒)를 받았으므로 감격하는 것이었다. 근 십여 년 동안 구족계를 받아 비구가 된 제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백여 명이나 될까?
 지난날의 성세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하여 빈곤의 악순환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아미의 불전에 젊은 승인들이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일 년에 열 명 정도의 수계를 내리던 아미가 이십 명의 제자에게 수계를 내렸으니, 장문인이며 복호사의 주지 방장인 일심선사가 감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는 불심이니 청정한 마음과는 다른 문제였다.
 공양을 올렸던 공양주(供養主)들이 다가왔다.
 그들의 손에는 한결같이 같은 물건이 들려 있었는데 그것은 향이 피어오르는 향로였다.
 공양주들이 향로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기단에 서 있던 고승 중 이십여 명이 내려와 수계를 받은 제자들 앞에 섰다.
 그들은 일제히 품에 손을 넣어 향의 가루를 꺼내들어 향로에 뿌렸다.
 불길이 거세졌다.
 “연비(燃臂)하라.”
 귓가를 파고드는 소리.
 현암은 손을 내밀었다.
 고승이 그의 손을 잡아 향로 위에 올려놓았다.
 새끼손가락이 향로 위에 놓여지고 서서히 살이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살이 타는 고통.
 짐승의 털이 타는 듯한 냄새가 나고 온몸에 땀이 흘렀다. 비명이라도 지를 것 같은 고통이 등골을 타고 지나갔다. 손가락에 느껴지는 고통은 아픔이라 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차라리 마음을 편하게 하기로 마음먹었다.
 “아석소조제악업, 개유무시탐진처, 종신구의지소생, 일체아금개참회!”
 귓가를 울리는 게송.
 그것마저 없었다면 고통은 더했으리라.
 차라리 잊으리라.
 고통을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모두 버리리라.
 생각마저 잊으리라.
 “참제업장보승장불, 보과왕화렴조불, 일체향화자재력왕불, 백억항하사결정불, 진위덕불, 금강견강소복괴산불, 환희장마니보석불, 무진향승왕불, 사자월불, 환희장엄주왕불, 제보당마니승광불, 살생중죄금일참회, 투도중죄금일참회, 사음중죄금일참회, 망어중죄금일참회, 기어중죄금일참회, 양설중죄금일참회, 탐애중죄금일참회, 진애중죄금일참회, 치암중죄금일참회, 백겁적집죄, 일념돈탕진, 여화분고초, 멸진무유여, 죄무자성종심기, 심약멸시죄역망, 죄망심멸양구공, 시즉명위진참회,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나무화장세계.”
 귀를 기울였다.
 귀를 파고드는 게송이 마음을 후련하게 만드는 것 같아 손가락에 이는 고통이 절로 사라지는 것 같았다. 불자에게는 마음을 비우고 게송을 하는 것만이 마음의 안식이었다.
 참회게에 이어 귀를 파고드는 참세업장십이존불의 게송은 마음에 파문을 주기에 충분했다.
 눈물이 나려 했다.
 오로지 산만 보고 살아온 나날들.
 오로지 승인의 길만 생각했건만 막상 수계를 받은 지금 눈물이 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손가락의 고통이 점점 심해지는 것 같았다.
 살이 타고 뼈가 타리라.
 노승의 손에서 이는 차가움이 왠지 모르게 기분을 청량하게 만들었다. 고승들이 향로에서 손을 들어올렸다.
 왼손의 새끼손가락 한 마디가 완전히 익어버렸다. 차라리 타버렸다는 생각이 틀리지 않을 것 같았다. 현암의 손가락을 잡은 노승은 급히 품을 뒤져 옥병(玉甁)을 꺼내 우유처럼 짙은 흰색이 나는 액체를 붓고 깨끗한 천으로 감쌌다. 그것으로 소지공양(燒指供養)은 끝이 났다.
 손가락을 태우는 연비는 어느 사찰에서나 거행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미산의 모든 제자들에게는 반드시 행해지는 의식이었다.
 “팔을 내밀어라!”
 일심선사의 목소리가 울렸을 때 현암의 손은 이미 내밀어져 있었다.
 손가락이 타고 온몸이 재가 되었다는 느낌은 그를 유쾌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고통을 즐기려 한 것도 아니고 의당 치러야 하는 일이니 마음을 편히 가지려 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마음이 그리 애석하지는 않았다.
 고승들은 제자들의 팔꿈치 안쪽에 향을 꽂았다.
 둥!
 대고를 두드리는 소리가 울렸을 때 고승들은 향로의 불을 조심스럽게 붙여 향에 옮겨놓았고, 향내가 피어오르며 향이 살갗을 향해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현암은 눈을 감았다.
 무섭거나 거부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포근해지는 마음.
 얼마나 기다렸던가?
 이 한 번의 의식을 받고 불제자가 되기 위해 긴 세월 동안 마음을 졸였다.
 동자승으로 사미의 계를 받아 산 속 깊은 곳에서 차를 다리며 불경을 외었다. 목탁을 치며 번뇌에 대해 배웠고, 죽비로 어깨를 맞으며 몸을 나투어 대중 앞에 나타나신 불존의 자비를 배웠다. 그럼에도 마음은 허전하기만 했었다.
 ‘이제는 불제자가 되었어.’
 절로 나는 흥분.
 사미라 해서 불제자가 아닐 수 없다.
 재가제자라 해서 불자가 아닌 것은 아니다.
 수계라는 것.
 현암으로서는 그것이 진정한 불제자라는 생각이 드니······
 현암으로서는 뛸 듯이 기뻤다. 누가 보아도 좋았고 보지 않아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이제야 자신이 불제자가 되었다는 확신이 섰기 때문이었다 .
 그는 나직하게 읊조리기 시작했다.
 “옴 살바못자 모지 사다야 사바하. 옴 살바못자 모지 사다야 사바하. 옴 살바못자, 모지 사다야 사바하. 준제공덕취, 적정심상송, 일체제대난, 무능침시인, 천상급인간, 수복여불동, 우차여의주, 정획무등 등, 나무 칠구지불모 대준제보살. 귀의합니다. 귀의합니다. 칠구지불모 대준제보살께 귀의합니다.”
 마음이 편해졌다고 할까?
 범어에서 구지라 하는 말은 억(億)을 말하는 것이니, 칠구지는 칠억(七億)이다. 준제보살은 불존의 어머니가 되신 분이다.
 참회진언을 게송한 후 눈을 뜨자 이미 고승은 향로를 들고 멀리 물러난 후였다. 고개를 숙여 팔꿈치 안쪽을 보니 화농(化膿)이 든 상처가 남아 있었다.
 수계의 표식 중 하나이다.
 연비를 통해 향불의 자국을 남긴 것은 그가 완연한 불존의 제자가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황제(皇帝)에 삼배.”
 다시 일심선사의 목소리가 울려왔다.
 현암은 몸을 돌려 북동을 향했다. 아미산은 사천의 중심에서 남쪽으로 조금 치우쳐져 있으므로 황제가 기거하는 북평(北平)은 북동쪽에 자리하고 있었다.
 중원의 불파는 모두가 황제의 윤허 아래 자신의 영역을 차지하고 있었다.
 모든 대파가 다름없었으니 아미파라 해서 다르지 않았다. 아미는 장문인이 해탈하여 열반에 들면 배분과 제자들의 의견을 모아 새로운 장문인을 추대한다. 그러나 황제의 칙령이 없을 때에는 장문인으로서 나설 수가 없다. 황실에서 보낸 흠차(欽差)가 아미산에 와 장문인을 인정하는 계식(戒式)을 치른다. 그 후에야 아미의 장문인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황제의 흠차가 늦게 도착할 때도 있으므로, 장문인의 열반 이후 간혹 장문인의 자리가 공석으로 남는 경우도 있었다.
 결국 아미의 제자는 모두 황제의 부하라는 의식인 것이다. 이는 황제가 국가의 최고 어른이기 때문에 정해진 의식이었다. 따라서 불존의 제자라 하지만 현생에서는 황제의 신민(臣民)이 되므로 수계의식에서 불제자가 되며 삼배를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할 수 있는 의식이었다.
 불존의 제자라는 일파의 장문인도 황제가 보낸 흠차에 의해 윤허를 받아야 선사(禪師)라는 이름을 가질 수 있었고 도가계열의 문파는 오로지 황제의 전언에 의해 장문인만이 진인(眞人)이라는 이름을 사용할 수 있었다.
 간혹 도력이 높고 무공이 뛰어난 장로들에게 진인이라 칭송하는 경우가 있지만, 엄격하게 말하면 도가문파의 장문인만이 진인이라는 이름을 사용할 수 있었다. 이는 불파와 다르지 않게 도교 일파에도 황제의 윤허로 장문인이 진인이라는 이름을 받기 때문이었다.
 “부모에 삼배하라.”
 일심선사의 목소리가 울리자 스무 명의 제자들은 각기 한 곳을 바라보았다.
 대웅보전과 복호전에 이르는 계단 앞에 오륙십 명의 속인들이 앉아 있었다. 그들은 수계를 받는 제자들의 부모들로서 아미의 제자들은 수계를 받을 때 부모 앞에서 의식을 행하는 것이 오랜 전통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간혹 불파로 출가를 하면 사람과의 잔정을 끊기 때문에 부모에 대한 불효를 한다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불존은 일찍이 부모의 은혜를 이야기한 바가 있다.
 불파는 어느 종교보다 조상과 부모에 대해 깊이 생각한다.
 다른 것이 있다면 다른 많은 토속신앙(土俗信仰)과 그 밖의 사상들, 유문(儒門)이나 도문이 부친의 아름다움과 고마움을 높이 칭송했다면 불문은 모친의 아름다움과 은혜로움을 더 많이 칭송을 했다.
 불문에서는 경전을 세 가지로 나눈다.
 각기 경(經)경(經):부처님의 교설을 기술한 불교성전의 총칭. 경, 율, 논을 잘 간직하여 담고 있는 광주리라는 뜻이다., 논(論)논(論):후세에 경장과 율장의 정신을 설명하고 철리(哲理)를 기술한 것., 소(疏)소(疏):경전에 주석을 달아놓은 것.로 나뉘는데 그 중에는 은중경(恩重經)이라는 경전이 있다. 부모의 은혜를 찬탄한 은중경이야말로 불가의 사상이 부모의 은혜를 깊이 새기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불문에 은중경이라는 경전이 있듯 불자들에게 효도는 매우 귀중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몸을 나투어주신 부모는 불존의 덕과 같다. 아무리 승인의 몸이 되었다 해도 몸을 나투어주신 부모는 불존과 같이 중하다.
 현암은 고개를 돌렸다.
 “아버님! 어머님.”
 현암은 나직하게 부르짖었다.
 자랑스러운 눈으로 자식들을 바라보는 수십 명의 사람들 사이에 그의 부모는 없었다.
 단 한 번도 부모의 죽음에 대해 의심한 적이 없다.
 왜 부모가 없을까?
 갑자기 밀려드는 궁금증.
 돌아가신 것을 모르기 때문이 아니었다. 다만 자신에게 부모가 없음에 마음이 아프고 서러울 뿐이었다.
 현암은 다른 제자와 같이 급히 삼배를 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이 전부였다. 현암은 온 마음을 모아 깊숙하게 절을 했다. 모여 있는 모든 사람들이 부모처럼 여겨졌기 때문이었고, 그들에게 절을 하는 것이 이미 돌아가신 부모님을 대신하여 마음의 안정을 찾고자 하는 것과 같았다.
 절을 마친 모든 제자들이 무릎을 꿇고 앉았다.
 “탈의(脫衣)!”
 제자들은 일심선사의 목소리에 일제히 옷을 벗었다. 그들은 이제까지 속의(俗衣)를 입고 있었으므로 옷을 벗는다는 것은 속세의 모든 인연을 끊겠다는 것을 나타내주는 의식이었다.
 속의를 벗은 그들의 몸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 같았다.
 “법의를 입어라.”
 계를 받은 제자들은 일제히 승복을 입었다.
 최승주를 목에 걸고 합장주를 손목에 감았다. 이어 발우를 가슴에 품고 계도를 허리에 찼다. 계도를 주는 것은 그들이 불자의 몸이라 하지만 사문이 무파(武派)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기도 했고 근본적으로 계를 지키겠다는 표현인 것이다.
 계도를 받는 의식은 아미파만의 고유한 것으로 어느 불파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것이었다.
 “삼배!”
 제자들은 다시 부모들에게 삼배를 했다.
 이는 출가를 허락하여 주십시오, 하는 의도의 절이었다. 부모에 대한 처음의 삼배가 낳아주고 키워주신 은혜에 대한 정례였다면, 이는 불제자가 되어 불존의 제자로서 소소한 인연을 끊는다는 예법이었으니 지금이라도 수계를 철회할 수 있었다.
 하지만 누구도 수계를 철회하지 않았다.
 부모들은 일제히 반배를 하여 출가를 허락하는 배송례(拜誦禮)를 취했다. 이로써 계를 받은 승인들은 부모로부터 출가가 허락된 것이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경승들이 법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사홍서원(四弘誓願)이었다.
 
 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誓願度)
 법문무량서원학(法門無量誓願學)
 번뇌무진서원단(煩惱無盡誓願斷)
 불도무상서원성(佛道無上誓願成)
 
 맹세코 중생을 건지오리다.
 맹세코 번뇌를 끊으오리다.
 맹세코 법문을 배우오리다.
 맹세코 불도를 이루오리다.
 
 사홍서원의 게송이 끝나자 모여서 있던 모든 불승들이 일제히 한 목소리로 외치기 시작했다.
 “대자대비민중생, 대희대사제함식, 상호광명이자엄, 중등지심귀명례, 지심귀명례, 금강상사, 귀의불, 귀의법, 귀의승, 아금발심, 불위자구인천복보, 성문연각, 내지권승, 제위보살, 유의최상승, 발보리심, 원여법, 계중생, 일시동득, 아녹다라삼, 막삼보리, 지심귀명례, 시방, 진허공계, 일체제불, 지심귀명례, 시방, 진허공계, 일체존법, 지심귀명례, 시방, 진허공계, 일체현성승, 지심귀명례, 여래, 응공, 정변지, 명행족, 선서세간해, 무상사, 조어장부, 천인사, 불세존, 지심귀명례, 보광불, 지심귀명례, 보명불, 지심귀명례, 보정불, 지심귀명례, 다마라발전단향불, 지심귀명례, 전단광불, 지심귀명례, 마니당불, 지심귀명례, 환희장마니보적불, 지심귀명례, 일체세간요견상대정진불, 지심귀명례, 마니당등광불, 지심귀명례, 혜거조불, 지심귀명례, 혜덕광명불, 지심귀명례, 금강뢰강보산금강불, 지심귀명례, 대강정진용맹불, 지심귀명례, 대비광불, 지심귀명례, 지력왕불, 지심귀명례, 자장불, 지심귀명례, 전단굴장엄승불, 지심귀명례, 현선수불······”
 게송을 지루하리만치 오래도록 계속되었다.
 백팔대참회문이 끝나야 겨우 수계의 의의를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니 모든 불승은 일심으로 게송을 하였다.
 “법문!”
 게송이 끝나기를 기다리던 일심선사가 굵은 목소리로 외치자, 교수사로 내정되어 근엄한 표정으로 기단 위에 서 있던 유심대사가 가사 자락을 휘날리며 앞으로 나섰다.
 “아미타불!”
 “아미타불!”
 여기저기에서 불호 소리가 들려왔다.
 유심대사는 고문만으로 따지자면 누구도 말릴 수 없는 승인이었다. 그 배분이 높기도 했지만 그의 독설(毒舌)은 사천이 다 아는 일이었고 안하무인에 가까운 그의 행동은 모든 문파에서 두려워하는 것이었다.
 물론 과거의 일이기는 했다.
 나이를 먹고 배분이 장로에 이른 지금, 그는 속세에 나가는 일이 없이 청정한 마음으로 도량에 머물고 있다. 과거와는 비교조차 되는 일이 아니었지만 유심대사에 대한 소문은 늘 제자들의 마음에 불을 지피고 있었다.
 과거의 그는 아미의 영웅이었다.
 파계다 싶을 정도의 행동도 서슴지 않았으므로 한때 중원에서는 그를 가리켜 파불(破佛)이라 불렀다 한다.
 그는 어떤 일에도 굴하지 않았다.
 어떤 경우라도 옳은 일에서는 발을 빼지 않았다.
 그는 관부(官府)의 일에도 개입하여 소란을 피울 때가 많았고 무파들의 언쟁이나 분쟁에도 끼여들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오죽하면 그가 나타났다는 소문만으로도 모든 언쟁이 끝난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였다.
 삼십 년 전의 일.
 그가 산으로 들어오고 나서 비무행(比武行)을 떠나는 제자도 없었고 중원무림에 나가 아미의 법을 보여준 제자가 없었으므로 무림의 일각에서는 아미가 비밀리에 전해지던 무공의 수련방법을 잊어버렸다는 말도 있었다. 사문의 명으로 수계를 받은 제자가 탁발을 하며 사바세계를 떠도는 의식은 있지만 비무행에 대한 허락은 주어지지 않았다.
 세월이 지난 탓인가?
 소문을 몰고 다니는 유심대사에게서는 이제 패도적인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더구나 이십 년 전 그 일이었으니······
 아미를 수치로 밀어넣은 일.
 도둑.
 도둑질을 한 자가 있었고 도둑 맞은 일이 있었다.
 이미 지나간 일.
 그저 있을 수 있는 일이라 치부하기에는 그 상처가 너무 컸고 아미의 명예는 땅에 떨어졌다 할 수 있었다.
 도둑 맞은 물건.
 그것이 문제였다.
 더구나 도둑질을 한 자는······
 유심대사가 교수사로 내정이 되었다는 것은 대단히 놀라운 일이었지만, 누구나 고개를 끄덕인 것은 일찍이 그가 교수사를 자청하고 나섰다는 소문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왜 교수사를 자청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그는 늘 아미가 지닌 힘을 잃어가고 있다는 사실에 매우 분개(憤慨)하고 있다는 말이 흐르고 있었다.
 둥둥둥둥!
 법고 소리가 끝나기를 기다리는가?
 유심대사는 한동안 무릎을 꿇고 주저앉아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는 수계승들을 바라보고 고리짝 같은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바람이 불어 그의 가사를 흔들었다.
 잡아당기면 조각조각 끊어질 것 같은 가사 자락은 그가 지닌 모습을 과거와 대비시켜 주었다.
 법고가 끝나기를 기다리다 앞으로 나선 유심대사는 망설임없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불자들이여, 그대들이 불존의 제자인가? 누가 그대들을 불존의 제자라 알려주었는가? 본승은 불존의 제자이다. 이 또한 우리 스스로가 작의적(作意的)으로 내린 일이었다. 그대들에게 구족계를 내린 것은 중대가리들의 일이다. 이미 불존은 그대들의 마음에 있으니 이는 이미 그대들이 불존의 제자로 태어났다는 것이다. 그대들에게 계를 내림은 이미 제자였던 것을 확인하는 것에 불과하니 그대들은 새로운 마음을 가질 이유도 없으며, 마음을 다잡을 이유도 없다. 오로지 늘 했던 그대로 불존의 마음이 무엇인지 깊게 생각하고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따라할 뿐이로다. 더불어 그대들이 불존의 제자임을 잊지 마라. 누구라도 그대들을 건드리면 불존의 이름으로 일어남을 상기하라. 그대들에게 힘을 주는 것은 불존의 마음이 아니라 마음 속에 숨어 있는 힘이다. 불전은 그 힘을 키우고 위대하게 만드는 것이다. 나무아미타불, 나무화장세계!”
 둥둥둥!
 법고 소리가 높아졌다.
 그의 법문은 제자들에게 반발을 주기에 충분함이 있었다. 불존의 법문이라 하기에는 지나친 감이 있었고, 아니라 하기에는 불존의 말씀과 너무도 닮아 있었다.
 기이한 것은 모든 고승들이 입을 다물고 오로지 게송만을 외치고 있다는 사실.
 “나는 중대가리다. 승인은 무슨 승인, 나는 불존의 제자이며 중대가리이니 무엇을 설하라. 굳이 계라 한 것은 모두가 지켜야 할 일이다. 이 계를 지킴으로써 올바른 길을 갈 수 있을 것이다. 계는 타율적(他律的)으로 보이는 것이지만 되돌아보고 거슬러보면 극히 자율적(自律的)인 것이다. 단순히 하지 말라고 해서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계율을 지키는 것이 바로 참모습임을 알기에 지키는 것이다. 이는 모든 중생을 구원하기보다는 자신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해서도 어울리는 것이다. 어떤 중생에게도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여 불존의 제자가 되라 하지 못하는 것과 같이 어떤 경우라도 마음을 잃어서는 안 된다. 또한 어떤 경우라도 어기지 말라는 말을 해주고 싶은 것이다. 아미타불, 나무관세음보살. 들어라. 그러나 모든 것이 계를 따질 수는 없는 것이니라. 나는 이미 살생을 한 경험이 있다. 술을 마시기도 했다. 이는 계율에서 으뜸으로 치는 불살생계와 불음주계를 범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까까중이 불존의 제자가 아니라 할 수 있더냐? 모든 것은 마음에 있다. 사람을 죽이라는 말이 아니다. 술을 마시라 하는 말이 아니다. 이 말은 진정한 모든 것들이 마음에 있다는 것이다. 이는 해탈이 아니라 번뇌이니라. 나는 오늘 파계를 하고 내일 저잣거리에서 탁발(托鉢)을 하더라도 살계를 열어야 할 때는 열어야 한다고 생각하느니라. 백 명의 중생을 구하기 위해 한 명의 마군(魔軍)을 죽여야 할 때는 계도를 들어라. 이야말로 요설(妖說)과 논설(論說)이 아니라 진정한 불생살계와 같으니라. 모든 계율은 이미 마음 속에 있나니 자신 스스로 백일하에 청천이며 거리낌이 없다면 행할 것이로다. 계율 속에 묶이지 마라. 계율에 파고들어 진정한 불존의 참다운 의미를 깨달아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불제자의 길이니 법이라 말하지도 말며 율이라 말하지도 마라. 아미타불!”
 둥둥둥둥!
 온몸의 힘을 들여 치는 법고 소리가 심장을 마구 두드리는 것 같았다.
 현암은 그저 묵묵히 듣기만 했다.
 오래 전부터 유심대사를 곁에서 보아왔으므로 그가 무엇을 말할 것인지 짐작은 했었다.
 말의 내용은 다르다 해도, 설법의 범위는 다르다 해도 그가 하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는 일찍이 알고 있었다.
 ‘역시······’
 가슴이 뭉클했다.
 언젠가 유심대사를 위해 술을 거르고 차를 다리던 생각이 나자 웃음이 절로 흘렀다.
 말을 마친 유심대사가 물러났다.
 “나무화장세계!”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불호가 우렁차게 흘렀다.
 비록 유심대사의 말이 어폐(語弊)가 있고 억지스러운 점이 있지만 많은 제자들에게 환호를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의 성격이 호방하며 대소사(大小事)에 강한 아미를 주장하고 있으니 젊은 승인들은 그의 말 한 마디에 자지러지고 감격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변화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불전에 상공축원이 높아가며 점차 수계의식이 무르익어 가기 시작했다.
 법고 소리 또한 높아가고.
 한동안 법고가 울리고 게송이 계속되었다.
 “지심향(指尋香).”
 일심선사의 목소리에 수계를 받은 제자들이 모두 몸을 일으키고 합장을 한 후 일렬로 서서 오른팔의 가사 자락을 걷었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이십 명의 고승들이 가사 자락을 펄럭이며 계단을 내려가 수계승들 앞에 자리를 잡았다.
 둥!
 짧은 법고 소리.
 “독송!”
 일심선사의 목소리가 울리자 계단에 서 있던 이백 명이 넘는 제자들이 일제히 목어를 두드리며 외치기 시작했다.
 “옴 살바못자 모지 사다야 사바하, 옴 살바못자 모지 사다야 사바하, 옴 살바못자 모지 사다야 사바하.”
 현암은 잠시 얼굴을 찡그렸다.
 가는 불꽃.
 코로 스며드는 향.
 지심향이 타들어가며 팔꿈치 안쪽 요골(撓骨)이 맞닿는 부근에 손을 울리는 통증이 몰려왔던 것이다. 통증은 팔을 거슬러 어깨를 흔들었고, 이어 등골에 시원하게 느껴지는 땀이 흐르게 만들었다.
 작은 고통.
 ‘아석소조제악법, 개유무시탐진처!’
 현암은 마음 속으로 참회게(懺悔偈)를 외쳤다. 당장으로는 그것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연비가 끝난 후라 수계의식은 일사천리로 지나가기 시작했다.
 사다리니가 있었고 특사가지가 진행되었다. 사로감로주진언이 계속되는 동안 모든 불제자들은 합장을 한 채 서 있었고 게송을 하는 일심선사만이 작은 쇠종, 요령을 흔들고 있었다.
 “일자수륜감진언.”
 일심선사는 목소리를 토하며 숨을 몰아쉬었다.
 “옴 밤 밤 밤 밤.”
 “옴 밤 밤 밤 밤.”
 제자들의 진언이 높아지는 동안 일심선사는 요령을 내려놓고 목어를 들고 일정한 음률에 따라 두드리기 시작했다.
 “나무사만다 못다남 옴 밤.”
 그의 입에서 유해진언이 이어지는 동안 목어 소리는 청명하게 귓 속으로 파고들었고 모든 제자들은 쉬지 않고 대웅보전을 향해 오체투지를 했다.
 먼지가 일어날 지경이었다.
 “지심귀명례······”
 애창이 이어지고 공양진언이 뒤를 이었다. 모든 제자들이 일어나 목어를 두드리자 산이 울리고 불각이 흔들리는 것 같은 착각이 일어날 지경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발향(拔香).”
 모든 제자들이 서 있던 자세에서 앞으로 나서며 목어를 두드리고 대오를 맞추어섰다.
 둥!
 법고가 울리자 모든 제자들은 일제히 목청을 높이기 시작했다.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온개공도 일체고액 사지라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 역부여시 사리자 시 제법송상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 시고 공중무색 무수상행식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 무안계 내지 무의식계 무무명 역무무명진 내지 무노사 역무노사진 무고집멸도 무지역무득 이무소득고 보리살타 의반야바라밀다고 심무가애 무가애고 무유공포 원리전도몽상 구경열반 삼세제불 의반야바라밀다고 득아욕다라삼약삼보리 고지반야바라밀다고 시대신주 시대명주 시무상주 시무등등주 능제일체고 진실불허 고설 반야바라밀다주 즉설주왈.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반야심경(般若心經)의 독송은 수계의식이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일심선사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리며 법고가 울었다. 모든 승인들이 법고 소리에 맞추어 목어를 울리며 몸을 일으켜 이동하기 시작했다.
 모든 불제자들은 대웅전 방향으로 나아갔다.
 “회향게(廻香偈)!”
 일심선사가 다시 소리를 지름으로써 모든 수계의 절차는 끝났다고 할 수도 있었다. 승인들은 대웅보전을 돌며 연신 게송을 외쳤고, 목어 소리와 법고 소리는 점점 높아가고 있었다.
 “나무관세음보살, 나무보현보살, 나무미륵보살, 나무허공장보살, 나무지장보살, 나무제재장보살, 나무묘길상보살, 나무금강수보살······ 나무관세음보살,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여불유인, 여불유연, 불법상인, 상락아정, 조념관세음, 모념관세음, 념념종심기, 념념불리심, 천라신, 지라신, 인이난, 난이신, 일체재앙화위진, 나무마하반야바라밀······”
 아미산을 울리는 독경 소리와 게송은 홰를 치던 야조가 자리를 찾아들 때까지 계속되었다.
 
 
 4장 제자행(弟子行)
 
 
 넓은 대전.
 키로는 십여 척이 넘고 얼굴 전면에 자비로운 미소가 넘치는 삼불존이 안치되어 있는 거대한 불전이었다. 삼불존이 몸을 앉힌 뒷벽에는 마군을 물리치는 불존의 웅자가 한눈에 보이는 불화가 화려하게 그려져 있었다.
 복호사의 대웅보전은 화려하기도 하거니와 웅장함에서도 아미산 제일이라 할 수 있었다.
 세 명의 노승이 그린 듯 포단 위에 단정하게 앉아 연신 웅얼거리는 듯한 게송과 함께 오래도록 목어를 두드리다 멈추며 뒤돌아 앉았다.
 그들의 뒤에도 승인들이 있었다.
 “아미타불, 불존의 가피력이 있었구나.”
 일심선사는 흡족한 표정이었다.
 그의 곁에는 두 명의 노승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었는데 그들도 몸을 돌리고 뒤쪽에서 단정하게 앉아 있는 제자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 명의 노승은 유심대사였고 다른 한 명은 나심대사였다.
 복호사는 아미파를 이끌어가는 가람답게 가장 많은 수의 제자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이백 명이 넘는 본산의 제자들이 있음을 생각해 보면 아미파에 소속된 다른 칠십여 개의 불찰에 비교해 턱없다 싶을 정도로 많은 제자였다.
 물론 이해는 할 수 있었다.
 아미산에 처음 세워진 불찰이라는 점도 중요했고 모든 불찰들이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면 복호사에서 갈라져 나왔음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두가 불존의 대자대비입니다.”
 유심대사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겉으로야 용맹스러웠지만 막상 복호사의 장로로 돌아와, 이야기를 나눌 때는 패도적인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승인의 모습이었다.
 “이리······ 나무아미타불.”
 나심대사가 무엇인가 말을 하려 했다는 듯 입을 열다 다물고 나직하게 불호를 뇌었다.
 일심선사는 빙그레 웃었다.
 그가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 이미 알고 있다는 표정이었거니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이해한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것만으로도 그들 사형제는 충분히 공감하고 있는 듯 보였다.
 이제 세 명만이 남아 있는 사형제.
 전대 장문인이었던 찰라선사(刹喇禪師)에게는 여섯 명의 제자가 있었지만 이제는 그들 삼 인이 남았을 뿐이었다. 세 명의 제자는 이미 오래 전에 열반에 들어 단지 사리만을 남겼을 뿐.
 그들 삼 인은 전대 장문인의 뒤를 이어 장문인과 장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모두 모였느냐?”
 일심선사는 나직한 목소리를 토하며 얼굴을 들었다.
 조금 전까지 눈 앞에 있던 삼존불은 그의 뒤에 있었고 몸의 방향이 바뀌어서인지 얼굴의 색도 달라졌다. 처음에는 불단에 피어오른 향촉과 향의 불꽃으로 인해서 그의 얼굴에 황혼처럼 붉은 기운이 돌았지만, 몸을 돌리자 어스름한 밤기운이 스며들어 음영이 드리워졌다.
 “예. 사백(師伯).”
 “아미타불··· 사부님의 부름에 모였습니다.”
 그의 앞에는 여덟 명의 제자들이 단정한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한결같이 회색에 가까운 잿빛 가사를 걸쳤고 목에는 긴 최승주를 차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이대제자로서 심(尋) 자(字) 돌림의 배분을 지닌 일심선사와 나심대사, 그리고 유심대사의 뒤를 이을 복호사의 동량들이며 뛰어난 법승들이었다.
 그들과는 조금 떨어진 가장 뒤쪽에 이제는 현암이라 불리게 된 지심도 조용한 얼굴 표정으로 끼어 있었다.
 현암을 제외한 여덟 명의 승인들은 모두 허(虛) 자(字) 돌림의 배분이었다. 다섯 명은 일심선사의 사승을 이은 제자였으며 두 명은 나심대사의 사승을 이었다. 단 한 명만이 유심대사의 사승을 이은 지 이미 오래였다.
 “오늘 불존의 가피력이 현세에 나투셨기에 우리 복호에 새로운 제자가 수계를 받았다. 이는 삼 년 만의 일이다. 그 동안 복호사의 산문을 넘은 제자가 없어 많이 고심했지만 이제 새로이 불존의 제자가 들었으니 부지런히 불도를 닦을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느니라.”
 “아미타불···”
 “명심하겠습니다!”
 “허(虛) 자(字) 배분은 복호에서는 이대제자이며 아미파를 통틀어도 삼대의 높은 배분이다. 이제 너희들이 안팎을 살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라. 이제 제자를 배분에 맞게 사승을 정리할 것이다.”
 모두들 침을 삼켰다.
 그들은 이미 어느 정도 예측을 하고 있었다. 현암이 애초에 어느 곳에서 생활했고 어떤 이유로 산문을 들어섰는지 모르는 불승은 아무도 없었다.
 무엇보다 그가 수계을 받으며 암 자 돌림으로 수계를 받았다는 사실.
 법호는 마음대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만약 현암이 유심대사와의 인연이 없었다면, 지심이 불문에 들어서는 일이 발생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것을 모르는 불승은 복호사에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일심선사가 앞에 앉은 승인들을 바라보았다.
 “진허(眞虛)!”
 “예, 사부님.”
 가장 나이가 많아 오십을 바라보는 초로의 승려가 고개를 숙였다.
 “네 제자는 몇인고?”
 “일곱입니다.”
 “그렇구나. 진허가 일곱, 잔허(孱虛)가 둘, 망허(莽虛)가 하나, 그리고 포허(疱虛)가 셋이고 노허(駑虛)가 다섯이니, 이는 이미 복호사의 대맥을 주축하고 있구나. 이 다섯은 이미 사승을 이었으니 제자가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습니다.”
 이마에 점이 달려 언뜻 보면 불존의 이마 한가운데 찍힌 백호처럼 보이고 얼굴 만면에 자비가 넘치는 초로의 승려가 가볍게 합장했다.
 진허였다.
 복호의 이대제자의 배분.
 진허는 장문인 일심선사의 수제자(首弟子)로서 그 불법이 신묘하고 경지를 이룬 불제자로 알려지고 있었다. 더구나 그의 무공과 인품이 뛰어났다.
 장령제자.
 복호사를 이끌어갈 동량이라는 의미를 깨닫게 해주는 승인.
 그래서 일심선사가 열반에 든 이후의 복호사는 그의 손에 의해 움직이게 될 것이라는 것을 누구도 모르지 않았다. 심지어 그에게는 사숙이 되는 나심대사나 유심대사마저 복호사의 장문인 따위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고 떠밀듯 진허를 밀고 있었다.
 진허는 그런 이유로 아미의 장로라 할 수는 없지만 복호사에서는 계율장(戒律長)의 지위를 맡고 있었다.
 계율장은 불존의 계율을 받들고 제자들의 잘못을 계도하는 곳으로, 차기 장문인이 될 제자에게 주어지는 직위였다. 그는 아미파의 장로는 아니지만 복호사로만 볼 때는 이미 장로의 반열에 올라 있는 승인이었다.
 무엇보다 그는 일심, 나심, 유심의 사형제 중 일심의 뒤를 잇는 다섯 명의 제자 중 우두머리라 할 수 있었다.
 “그래!”
 일심선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진허대사가 자신의 의도를 알고 적절한 대답을 해주었으니 만족스럽다는 표정이었다.
 “허허허! 그렇다면 앞으로도 삼대제자의 배분에서는 진허에게는 물론 다른 배분에게 어떤 제자도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대제자를 받아들일 수 있는 자격을 주겠노라.”
 “감사합니다. 아미타불.”
 진허는 감격했다.
 그에게 사대제자를 받아들일 수 있는 자격이라는 것은 직계의 사손(師孫)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일심으로 이어져 내려온 사승의 직계가 번창하리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기도 했다.
 일심선사는 고개를 끄덕이다 나심대사를 바라보았다.
 나심대사가 빙그레 웃었다.
 그는 수계를 받지 못한 제자들을 가르치는 부계평의 최고 배분으로 만불전의 전주이기도 했지만 복호사의 장로이며 아미파의 장로라는 신분을 가지고 있었다.
 “사제는 두 명의 제자가 있다. 그 제자들은 각각 다른 제자들을 데리고 있으니······ 궁허(芎虛), 비허(毘虛)라, 그들도 이미 제자들을 기르고 있으니 현암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습니다, 사형.”
 나심대사는 일부러 보란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현암이 어떤 길로 가야 하는지 알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의 사승이나 명리엔 관심조차 없었다. 그의 대답은 암시적이고 묵계(契)에 해당하는 것으로, 지난날 오래도록 유심대사가 현암을 데리고 있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나심대사의 마음을 알았다는 것인지 그의 앞에 앉아 있던 두 명의 중년승인이 일제히 합장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부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아미타불······ 제자들은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두 명의 중년불승들은 서둘러 의견을 개진함으로써 자신들이 제자에 욕심이 없다는 것을 나타내려 했다. 그들도 사부인 나심대사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었으므로 앞에 나설 수 없었고 그저 사부의 처분에 따를 뿐이었다.
 일심선사는 입가에 만족스러운 웃음을 띠며 유심대사를 바라보았다.
 유심대사는 묵묵히 앉아 있었다.
 달리 보면 그는 불전 안에서 일어나는 일체의 일들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불전 안에 모여 있는 사람들 중 그의 마음이 가장 심하게 두근거리고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유심대사는 그들 사형제 중 막내였다. 본시 그는 심 자 돌림의 배분을 지닌 사형제 중 막내였으므로 일심이나 나심대사와 비교해 나이마저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가 지니고 있는 위치는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는 법호장(法護長)이라는 지위를 지니고 있었다.
 이는 복호사의 수호법승이라는 의미를 가진 직위.
 불파에서 말하는 신장(神將)의 의미를 지닌 것으로, 가람으로 이야기를 하지면 그는 사천왕(四天王)에 해당되는 인물이었다. 그래서 그가 지닌 힘은 뛰어나다 할 수 있지만, 지난날부터 오래도록 사천에서 아미를 위협하는 세력이 없었으므로 그다지 할 일이 많은 것은 아니었다.
 법호장은 일 인으로 전승되는 것이며, 그런 이유인지 그에게는 단지 한 명의 제자가 있었다.
 그 제자의 법호는 무허(无虛)였다.
 “사제.”
 일심선사가 은근한 목소리로 부르자 고개를 숙이고 생각에 골몰한 듯 보이던 유심대사가 고개를 들었다.
 “예, 사형.”
 “아미타불, 본시 현암은 네가 거둔 제자와 같다. 이 아이가 강보에 싸여 있을 때부터 네가 거두어 제자와 같이 길렀으니 네 사승을 이어야 할 것이야. 더구나 이 아이의 자질은 매우 뛰어나구나. 골격이 좋고 오랜 수양으로 근육이 튼튼하니 법호장으로서는 제격이다. 사제에게는 오로지 한 명의 제자 무허가 있으니······ 아미타불, 안타깝구나. 어쩔 수 없는 일! 법륜(法輪)이 무서우니 어쩔 수 없이 차선책(次善策)을 택할 수밖에 없구나. 이 아이를 사제의 제자로 삼기에는 연륜이 부족하고 주위의 눈도 있으니 무허의 제자로 삼는 것이 어떠하겠느냐?”
 “사형의 말씀에 감사드리오.”
 유심대사는 가볍게 합장했다.
 무엇보다 기뻐하는 사람은 무허대사였다.
 비록 나타내지 않으려 하지만 눈가에 어리는 웃음기는 그가 지닌 마음을 대변하고 있었다.
 그와 배분이 같은 모든 사형제들은 이미 제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아직 제자를 맞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단 한 번도 불만을 이야기한 적이 없지만 내심 제자를 바라고 있었다.
 제자를 가질 나이가 지났고 배분으로 따져 충분한 자격도 지니고 있었다.
 어느 정도 예측하지 못했다고 한다면 거짓이었다.
 그는 이미 오래 전부터 현암이 자신의 제자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랬기에 수시로 사부인 유심대사가 머무는 천문암에 들러 현암에게 무공을 전수하곤 했었다.
 남들 몰래 들인 공이 있다 할까!
 유심대사는 고개를 돌려 자신의 수제자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길이 머문 곳에 무허대사가 있었다.
 사부와 다르지 않게 각진 얼굴에 커다란 코, 마치 백호(白虎)의 눈을 보는 것 같은 강렬함을 지닌 불승이었다.
 언뜻 보아서는 도살장의 살도부(殺屠夫) 같은 모습이었지만 턱의 곡선만큼은 부드러워, 그가 급한 성격을 지니고 있지만 천성이 부드럽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게 해주었다.
 “무허야.”
 “예, 사부님.”
 유심대사의 나직한 부름에 무허대사가 황급히 허리를 곧추세웠다.
 “네 생각은 어떠하냐?”
 “아미타불, 제자는 이를 불존의 가피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유심대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눈을 돌려 불전에 가부좌(跏趺坐)를 틀고 앉아 있는 모든 제자들을 둘러본 뒤 일심선사를 향해 입을 열었다.
 “사형, 수계에서 이미 밝혔던 것과 같이 이 아이를 무허의 제자로 받아들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이 아이의 불심을 도야시키고 무공을 전수하는 것은 저와 무허가 같이 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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