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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약婚約

2018.04.23 조회 3,201 추천 57


 프롤로그
 
 국립외교원 교수 오민吳敏은 오늘 무척 기분이 좋았다. 새로 부임해온 원장이 술을 사서가 아니라 현 안보상황에 대한 브리핑을 받고서는 대단한 만족감을 표시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못하는 술이지만 조 원장과 대작하느라 흠씬 취해 대리기사를 불렀다. 머지않아 대리기사가 왔고 오민은 차키를 주고 뒷좌석에 가서 앉았다. 그리고 딱 한마디 했다.
 
 “파주까지 갑시다.”
 “네, 손님!”
 곧 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오민은 깊숙이 몸을 묻었다.
 
 가는 동안 잠은 청하기 위해서였다. 서초동에서 파주 문발까지는 상당한 거리가 차가 있기 때문에 그동안 부족한 수면을 보충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잠은 쉽게 오지 않았다.
 
 이 정도 술을 마셨으면 다른 때 같았으면 벌써 곯아 떨어졌을 텐데 말이다. 그런 그의 머리에 칭찬을 받은 자부심 때문인지 지난 이력들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S대 정외과를 나와 동대학원 같은 과에 진학해 석사학위까지 받았다. 그리고 그는 돌연 유학을 떠났다. 뉴욕주립대로. 그곳에서 박사학위까지 딴 오민은 곧 귀국해 지방대학 조교로 몇 년을 보냈다.
 
 그러다 대학 은사가 국립외교원장에 부임하면서 부름을 받아 연구소 조교수로 시작해 만 10년 만에 교수직까지 오를 수 있었다. 그런 그에게 오늘 신임 원장은 연구원들 다 내버려두고 자신을 불러 현 안보상황에 대한 의견을 구했다.
 
 그래서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그대로를 브리핑 했더니 상당한 만족감을 표시하며 술까지 샀던 것이다. 아무튼 이런 오민에게는 늦게 장가를 들어 일곱 살 차이나는 아내와 그 사이에 예쁜 딸 하나를 두었다. 지금의 아내와는 10년 전 결혼을 했는데 아내 또한 예뻤다.
 
 그러고 보면 남자는 스펙 아니 직업이 좋아야 한다. 솔직히 오민은 170cm의 작은 키에 못생긴 외모 때문에 대학 때부터 애프터가 성사된 적이 없었다. 그렇지만 외교원 조교수라는 직책을 얻자 상황이 달라졌다.
 
 아내부터가 자신이 먼저 첫 만남에서 번호를 따고 먼저 만남을 제안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오민은 그런 외모의 열등감 때문인지 성격이 상당히 내성적인 편이었다.
 
 따라서 취미도 은둔형으로 독서나 게임 바둑 등이었다. 독서나 게임도 삼국지 마니아답게 그와 관련된 서적이나 게임이었다. 이런 오민과는 다르게 아내는 외향적인 성격에 상당히 활달했다.
 
 그래서 자석의 N극과 S극처럼 서로 당겨 결혼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예쁜 아내를 생각하며 더욱 기분이 좋아진 오민은 상체를 꼿꼿이 세웠다.
 
 잠이 오지 않는 걸 억지로 청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 상체를 세우는 순간 그는 보았다. 대리운전 기사가 신호위반 하는 것을. 신호가 황색 불이 들어오는 데도 무리하게 밟아 교차로를 통과한 것이다.
 
 그래서 한마디 할까 하다 내성적인 성격인 그는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차마 뱉지 못하고 꾹 눌러 참았다. 그러나 서울을 빠져나가는 동안만도 두 차례나 더 신호위반을 했다. 이에 오민이 더 참지 못하고 말했다.
 
 “기사 양반 신호위반 하지 말고 천천히 좀 갑시다.”
 “네, 손님을 위해서나 저를 위해서라도 그렇게 해야 하나 이 시간대가 피크타임이라 서요. 이 시간 놓치면 오늘은 그야말로 한 건에 그치니 생계에 지장이 많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때였다.
 콰쾅!
 
 무언가 뒤에서 들이받는 느낌과 함께 오민의 상체가 앞으로 튕겨나갔다. 동시에 순간적으로 그는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그가 깨어난 것은 아니 환생한 것은 옛 오吳 나라 땅이었다.
 
 그것도 후한後漢 말末 영제靈帝의 재위기간인 희평熹平 4년이었다. 즉 서기 175년이었다.
 
  * * *
 
 전생의 기억을 갖고 태어난 손책孫策 아니 오민으로서는 사고 당시의 상황이 지금까지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였다. 다만 주변상황으로 유추해 볼 수 있는 것은 분명 대리기사가 자신과 이야기를 하느라 속도를 잠시 늦추었다는 점.
 
 이 때 뒤를 따라오던 차가 음주운전인지 전방주시 태만인지 순간적으로 덮친 것이 사망의 원인이 아닐까 추측할 뿐이다.
 
 
 혼약婚約
 
 1
 
 어머니 뱃속에 갓 태어나 듣는 소리가 이상했다. 아기가 말을 알아듣는 것도 이상했지만 귀에 익은 듯 아닌 듯한 소리 때문이었다. 이내 깨달았다. 그 소리가 중국어임을. 이렇게 전생의 기억을 갖고 태어난 오민에게 어느 정도 부모 및 주변의 말소리가 익숙해질 무렵이 되자 그는 더욱 놀랐다.
 
 전생의 기억을 갖고 태어난 것만 해도 놀랍고 기쁜 일인데 자신이 빠져 살던 한 말 삼국시대에 태어났다는 것, 더구나 조금 더 세월이 흘러 손책으로 태어난 것을 인지했을 때는 신의 외경심마저 느꼈다.
 
 지속되는 난으로 인해 수없는 생령이 죽어나가는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원술의 근거지였던 회하 일대애서는 조개류를 상식常食하고, 원소 진영은 오디를 상식했다는 이 시대의 참상을 생각할 때, 이 가엾은 백성들을 구제하라는 사명감마저 느꼈던 것이다.
 
 이렇게 시대의 소명을 자극한 오민 즉 손책은 정성을 기울여 아버지 손견의 부하였던 정보, 황개, 한당, 조무의 무예를 익히는 한편 이 시대의 교과서라 할 수 있는 사서삼경은 물론 제자백가에 통달하기 위해 수많은 불면의 밤을 보냈다.
 
 그렇게 열 살이 되자 손책은 주변의 교유관계를 넓혀가며 익힌 무예와 지식으로 명망을 쌓아나갔다. 그 가운데는 주유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결정적으로 손책의 운명이 결정되는 날이 왔다.
 
 즉 부친 손견이 옛 원한을 갚고자 형주 정벌에 나선 것이다. 이 시기가 서기 192년 즉 동한 헌제 초평初平 3년 정월로 삼국지 마니아였던 오민으로서는 아비가 죽음에 이르는 길임을 직감했던 것이다.
 
 그래서 손책은 결사적으로 반대했지만 한 고집하는 부친 손견은 끝내 자신의 뜻대로 행하니 곧 죽음에 이르는 길이었다.
 
  * * *
 
 겨울비가 주룩 주룩 내리고 있었다.
 겨울비 속에 아버지 손견의 유해를 모시고 곡아曲阿(현 강소성 단양丹陽)으로 향하는 손책의 마음은 더욱 구슬펐다.
 
 부친 손견이 유표를 치겠다고 했을 때 손책으로서는 그가 곧 죽음의 길로 들어서는 것임을 아는 까닭에 극구 말렸지만 끝끝내 허사였다.
 
 결국 부친은 현산峴山을 순시하다가 황조黃祖의 군사가 쏜 화살을 맞고 돌아가셨다. 자신이 참전하겠다고 말릴 때부터 한 고집하는 부친이 거부하더니 끝끝내 불귀의 객이 되고 만 것이다.
 
 차가운 겨울 비 속에 장례를 모시고 하염없이 우는 어머니 오 부인을 모시고 집에 돌아오니 더욱 한심하다 못해 처량했다. 올해 열일곱인 자신보다 무려 일곱 살이나 어린 권權을 비롯해 익翊, 광匡 등 올망졸망한 순진무구한 눈동자들을 보고 있노라니 그런 마음이 더 했다.
 
 여기에 어머니의 여동생 즉 이모마저 부친은 취해 그녀에게서도 일남일녀를 낳아 하나 같이 어린 동생들만 다섯이 옹기종기 모여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를 보고 한숨을 들이쉬고 내쉬던 손책은 자신의 방으로 가더니 그대로 틀어박혀 곡기마저 끊었다. 그런 아들이 걱정되어 어머니 오 부인은 함께 장례를 모신 여범呂範을 손책의 방으로 들여보내 동정을 살피게 했다.
 
 여범이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손책은 벽을 마주보고 앉아 깊은 생각에 빠져있었다. 자신이 들어와도 모를 정도로. 이에 여범이 그를 툭 치며 물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깊이 하고 있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될까 생각하고 있었소. 그 무엇보다 선친을 따르던 군사들을 찾아야겠는데 방법이 없겠소?”
 
 손견이 죽자 그를 따르던 장수 및 군사들은 모두 원술 진영으로 넘어가 지금 그 밑에 있었다.
 “지금은 원술의 그늘이 필요해 그렇게 한 것으로 아나, 조만간 찾긴 되찾아야겠지요.”
 
 “방법이 없느냐 말이오?”
 “글쎄, 지금 당장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드는 여범을 보고 일단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 속으로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한 손책은 원술을 찾아가기로 결심했다.
 
 결심이 서자 손책은 분연히 자리를 떨치고 일어나 여범에게 말했다.
 “갑시다!”
 “어딜?”
 “원袁 공로公路에게.”
 
 “흐흠.......!”
 잠시 생각하던 여범이 말했다.
 “기왕 갈 거면 유兪 백해(伯海:본명 유하로 훗날 손하孫河로 개명)는 물론 전부터 백부(伯符:손책의 자)를 따르던 삼백여 무리를 모두 데리고 갑시다.”
 
 “삼백은 너무 많고 엄선해 100명만 데리고 갑시다.”
 “그러던지.”
 일찍이 밝힌 바와 같이 손책은 열 살 무렵부터 교우관계가 넓고 명망이 있었다.
 
 그때부터 따르는 무리가 있었으니 주유를 비롯해 지금은 그 숫자가 수백 명에 이르렀다. 그들 중 손책은 100명만 엄선해 데리고 가자고 하는 것이다.
 
 의논이 정해지자 두 사람은 일을 분담했다. 여범과 유하는 무리 중 100명을 엄선하고, 손책은 어머니와 이모 그리고 어린 동생들을 데리고 현 단양태수로 재직 중인 외삼촌 오경吳景을 찾아갔다. 그리고 그에게 식구 모두를 맡겼다.
 
 이 일이 끝나자 손책은 다시 곡아로 돌아와 두 사람이 뽑아놓은 무예가 절륜한 장정壯丁 백 명을 데리고, 두 사람과 함께 현 원술의 근거지인 남양南陽을 향해 출발했다.
 
 그로부터 한 달의 긴 여정 끝에 손책은 남양 성중으로 들 수 있었다. 손책은 곧 원술의 부중으로 찾아가 그를 만났다. 그러나 손책을 본 원술의 표정은 한마디로 데면데면, 결코 반가운 얼굴이 아니었다. 손책의 속내를 짐작하고 벌써부터 경원시하는 분위기였다.
 
 그렇게 손책의 긴 기다림과 인내의 세월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이 해도 다 넘어가는 섣달. 돌연 원술은 대규모 군사를 일으켰다. 조조를 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손책은 때는 이때다 싶어 선봉을 자원했다. 그러나 원술은 결코 그의 청을 들어주지 않고 후군에 옛 손견의 부하들과 함께 배치했다. 결국 이 싸움에서 조조와 원소의 연합군에 대패한 원술은 근거지로 향하지도 못하고 남으로 남쪽으로 도망을 쳤다.
 
 이때는 이미 해가 바뀐 193년.
 손책이 다시 한 번 원술 앞에 섰다.
 “기왕 남으로 내려갈 것이라면 수춘壽春 성을 빼앗아 그 근거로 삼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수춘 성으로 말하면 양주자사의 치소가 있는 곳으로 그 성벽이 높고 튼튼하기 이를 데 없는데 어떻게 빼앗겠다는 말인가?”
 “저를 선봉으로 세워주시면 기필코 수춘 성을 취해 넘겨드리겠습니다.”
 
 “하하하.......! 정말이냐?”
 “네!”
 “얼마의 군사가 필요한데?”
 “아버지를 따르던 군사 1천명이면 됩니다.”
 
 “겨우 그 군사로?”
 “가능합니다.”
 “진중에서는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허언이 있을 수 없다.”
 “군령장이라도 써 놓겠습니다.”
 
 “좋아! 허 한다!”
 “감사합니다.”
 감사를 표하고 돌아선 손책은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원술이 진류로 진격할 때부터 손책은 이 싸움의 결과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손책은 여범과 유하를 불러 미리 수춘 성으로 잠입하도록 했다. 장사치로 변장한 백 명의 장정과 함께. 바로 이튿날 손책은 선친을 따르던 다섯 장령과 함께 수춘 성으로 향했다.
 
 곧 사촌형 손분孫賁을 비롯해 주치朱治, 정보程普, 황개黃蓋, 한당韓當 등 일기당천의 무장 다섯을 앞세운 손책이 수춘으로 향하며 가장 먼저 한 일은 그답지 않은 노략질이었다.
 
 이르는 곳마다 소를 훔치거나 강제로 빼앗아 병사들로 하여금 끌고 가게 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손책은 훔치거나 빼앗을 때마다 이를 기록으로 남기도록 했다.
 
 그렇게 해 보름 만에 수춘 성을 4마장 앞둔 곳까지 왔을 때는 소가 이백여 마리로 불어나 있었다. 이쯤에서 진군을 멈춘 손책은 병사 중에서도 눈치 빠르고 날랜 자 하나를 성중으로 들여보내 여범을 만나보게 했다.
 
 그리고 그 병사 하나가 돌아와 복명하길 그대로 행하면 된다는 수수께끼 같은 말만 전했다.
 
 이튿날 밤.
 일찍 저녁밥 해먹인 손책은 병사와 소 이백여 마리를 휘몰아 수춘 성으로 향했다. 그리고 수춘 성이 빤히 바라보이는 야산에 도착하자 횃불을 돌리는 것으로 군호로 삼았다.
 
 그러자 저 쪽에서도 응답이 왔다. 똑같이 횃불을 세 번 돌려 알았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다. 머지않아 북문에서 화광이 충천했다. 때는 이때다 싶자 손책은 소지한 횃불에 모두 불을 붙이도록 했다.
 
 그리고 그 횃불을 미리 기름을 칠해 놓은 소꼬리에 들이댔다. 그러자 소꼬리에 붙은 소들이 일제히 날뛰기 시작했다. 이에 손책은 병사들로 하여금 미쳐 날뛰는 소를 에워싸 한 방향으로 몰아가기 시작했다. 곧 화광이 충천하고 이미 성문이 활짝 열린 수춘성 북문을 향해.
 
 물론 북문이 열린 것은 미리 잠입한 여범 이하 백 명의 장정들이 밤이 깊길 기다려 일시에 북문을 지키는 병사들을 제거하고 활짝 열어젖힌 때문이다. 그리고 군호로 볏짚더미에 불을 붙여 성공했음을 알린 것이다.
 
 아무튼 꼬리에 불이 붙은 소들의 미친 질주가 성안으로 향하더니 이리저리 그대로 내닫기 시작했다. 이에 불을 보고 쫓아 나온 수춘 성 군사들은 미친 소 때려잡으랴 밀려오는 손책 군 막으랴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우왕좌왕 갈피를 못 잡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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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8)

오들이햇밥    
32% 어마니 -> 어머니
2018.04.23 14:24
깔끔공주    
우하하하 1빠닷 !!
2018.04.23 14:45
오들이햇밥    
41% 삼국지 마이나 -> 마니아
2018.04.23 14:52
오들이햇밥    
41% 죽음에 이르는 길이임을 -> 길임을
2018.04.23 14:53
매검향    
오들이햇밥님! 반갑고 고맙습니다! 덕분에 수정할 수 있어 더욱 좋았고요. 늘 좋은 일만 가득하시길 기원합니다! 깔끔공주님! 반갑고 고맙습니다. 모사 희지재에 이어 이 글 또한 제일 먼저 달려와 주시니 감사, 감사합니다. 늘 행복하시고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2018.04.23 17:43
백발마인    
신작! 잘 보고 갑니다. 건필하세요.
2018.04.24 00:21
매검향    
백발마인님! 이 작품도 이른 시간에 함께 해주셔서 진정 감사드립니다! 늘 좋은 일만 가득하시길 기원합니다!
2018.04.24 01:34
우당가딩가    
작가님의 건승을 기원 합니다. 건필하시길!!!
2018.04.24 14:41
매검향    
우딩가딩가님! 오래간만에 글로 대하는 것 같습니다! 반갑고 고맙습니다! 앞으로는 더 자주 뵙길 바라옵고, 늘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
2018.04.24 14:47
바보세끼    
40퍼에 익히는
2018.04.24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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