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함
뒤로가기버튼 마선신룡.

1화

2018.05.08 조회 3,706 추천 21


 사람의 기척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 봐도 없는 곳이다.
 
 보이는 것은 오로지 웅장한 산과 무성한 나무들뿐이며, 그 속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갇혀 있다는 묘한 압박감이었다.
 
 이곳엔 맛있는 요리를 해 줄 객잔은커녕, 책을 볼 수 있는 서고조차 없었으며, 따뜻한 목욕물은 기대조차 하지 못할 것이고, 그리도 좋아하는 고기를 먹는 것 또한 쉽지 않을 것이다.
 
 이제 갓 열 살이 되었을 법한 주유선은 그저 멍하니 은거기인(隱居奇人)들조차 피할 것 같은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옥구슬 굴러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준비는 다 됐겠지?”
 
 수풀을 가르며 나타난 여인은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생머리에 백옥 같은 피부를 지녔다. 아니, 백옥이라 말하는 것 자체가 실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눈이 부신 피부였으며, 길게 자란 흑발은 완벽한 조화를 자아낸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미모는 또 어떠한가?
 
 침어낙안(沈魚落雁), 폐월수화(閉月羞花).
 
 경국지색(傾國之色)의 미모를 가진 이들을 꾸미는 말이라고는 하지만, 이 여인한테는 그러한 말조차 모자랄 지경이었다.
 
 그 여인의 주변에 짙게 깔린 장백산의 안개와 두둥실 떠올라 주위를 밝히고 있는 여우 불, 그리고 아름답다 못해 성스럽기까지 한 미모.
 
 이 모든 것이 여인의 분위기를 더욱 돋보이게 하고 있었다.
 
 한데 딱 하나 눈에 거슬리는 것은 눈앞의 여인에게 꼬리가 달려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무려 아홉 개나.
 
 아홉 개의 꼬리를 치며 요염하게 웃는 그 모습은 초선의 품 안에서 놀아났던 동탁뿐만 아니라, 그 누구라도 그녀의 치마 폭 아래 허우적대게 만들 것이 분명했다.
 
 여인은 못마땅한 얼굴로 자신과 주변을 쳐다보고 있는 주유선을 바라봤다.
 
 입가에 도도한 미소를 머금고, 그 요사스런 붉은 눈동자를 빛내며 입을 열었다.
 
 “강해지려면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섬광(閃光)처럼 빠르게 움직이는 각력(脚力)이요, 힘으로 능히 태산(泰山)을 쪼갤 두 주먹이니라.”
 
 여인의 말에도 주유선은 무엇이 그리 못마땅한지 눈살을 찌푸린 채 입술을 삐죽이고 있을 뿐이었다.
 
 하나 여인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계속 말을 이었다.
 
 “물론 이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천지(天地)를 베어 낼 검술 또한 필요하지. 하나 그것들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죽음을 직면한다 해도 죽지 않으려는 정신력과 끈기다. 이것들이 지금부터 네가 배울 것들이니라.”
 
 여인의 입가에 매혹적인 미소가 걸렸고 유선은 그것을 빤히 마주 보며 웃었다.
 
 “좆 까.”
 
 여인의 완벽한 미모가 처음으로 구겨졌다.
 
 第 一 章
 
 
 
 
 
 
 
 “이제 됐어”
 
 아홉 개나 되는 꼬리를 살랑이며 화사한 미소를 지은 그녀가 말했다.
 
 화용월태(花容月態), 절세가인(絶世佳人)이라는 말로도 도무지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눈부신 미모를 지닌 여인이다.
 
 주위는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안개가 짙게 끼어져 있었는데, 기이하게 그녀의 주변은 환하기 그지없었다. 두둥실 떠 있는 다섯 개의 여우 불이 빛을 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참 기기(奇奇)하고 묘묘(妙妙)했다.
 
 여인의 입가에 맺힌 미소, 요염한 표정과 아홉 꼬리, 거기에 더불어 주위를 환하게 밝혀 주는 여우 불.
 
 그것들은 마치 현실과는 동떨어진 존재를 보는 것만 같았다.
 
 만약 평범한 이가 보았다면,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릴지도 모르는 광경이었다.
 
 그녀의 눈앞에는 이제 갓 약관이 되었을 법한 청년이 거친 숨을 토해 내고 있었다.
 
 얼마나 맞았는지 전신의 꼴은 말이 아니었고, 주위는 마치 화포로 폭격(爆擊)이라도 맞은 것처럼, 황량한 폐허와도 같았다.
 
 그는 거친 숨을 토해 내며 여인의 옷자락을 바라봤다.
 
 깊게는 아니지만 상당 부분 베여 있었다. 그의 공격이 어느 정도 통했다는 것이다.
 
 “되긴 뭐가 돼?”
 
 그가 나지막하게 물었다.
 
 시선은 여전히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으나, 이곳에는 고작 여인과 둘뿐이 없으니, 필시 이 기묘한 여인에게 하는 말이 분명했다.
 
 “약속된 시간이 지났어.”
 
 여인의 청아한 목소리가 또다시 흘러나왔다.
 
 그녀는 맑고 깊은 눈은 군데군데가 찢어진 옷을 확인하고 있었다.
 
 사실 내색은 하지 않고 있었지만, 그녀 또한 청년 못지않게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이 정도까지 성장을 할 줄이야. 정말 놀라워.”
 
 간만에 들은 칭찬에도 청년이 피식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젓자, 여전히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여인은 더욱 화사하게 입술의 곡선을 그렸다.
 
 “이 산에서 너와 나의 시간은 끝났어, 유선.”
 
 
 
 
 
 * * *
 
 
 
 
 
 그가 번쩍 하고 눈을 떴다.
 
 부스스한 눈초리로 주위를 둘러보더니, 이내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폈다.
 
 잠시 동안 멍하니 앉아 있던 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자그마한 돌을 집어 들고 마치 날짜를 기록한 듯 수많은 줄이 그어져 있는 벽면에, 새로운 줄을 하나 더 그었다.
 
 “이제 백삼 년.”
 
 하나하나 세어 보면 어쩌면 그것보다 많을지도 모르고 적을지도 몰랐다. 그만큼 그어진 줄이 많았기에, 일일이 세는 것조차 힘이 들어 보였는데, 그러한 것을 보며 뜻을 알 수 없는 말을 내뱉은 그는 고개를 돌려 천천히 동굴을 둘러봤다.
 
 “정말 없잖아?”
 
 평소라면 자신이 일어남과 동시에 안겨 들어야 했을 여인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그는 적응이 되지 않는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혹시나 싶어 동굴 안을 더욱 둘러보았지만, 흔적도 없이 사라진 그녀는 마치 처음부터 이곳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만 같았다.
 
 “제길, 사람 꼭 찝찝하게 만드네.”
 
 들어 줄 사람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연신 투덜거렸다.
 
 시원섭섭한 눈으로 동굴을 살피던 그는 봇짐을 진 채 휘적휘적 걸음을 옮겨 동굴을 빠져나갔다.
 
 밖으로 나온 그의 눈에 펼쳐진 전경은 끝없이 펼쳐진 산림(山林)이었다.
 
 웅장하다 못해 험난해 보이기까지 했으며, 산의 기세(氣勢)가 보통이 아닌 것이 꽤 이름 있는 명산(名山) 같았다.
 
 “진심이었군.”
 
 백삼 년 동안 자신을 살게 해 주었고, 가두고 있었던 진법이 사라졌다.
 
 백삼 년.
 
 그가 진법 안에서 지낸 시간이다.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이곳은 벗어나려 해도 벗어날 수 없는 생지옥 같은 곳이었다.
 
 숱한 환영들이 그를 죽이기 위해 덤벼들었으며, 그는 그 위협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한 여인에게 온갖 무공을 배웠다.
 
 그렇게 보낸 시간이 총 백삼 년이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진짜로 지난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을 테지만······.
 
 동굴 앞에서 산을 바라보고 있던 그가, 크게 기지개를 켰다.
 
 진법으로 인해 안개가 끼지 않은 풍경을 본 것은 처음인지라, 자못 흥미로운 시선으로 주위를 둘러보던 그는 이윽고 일보(一步)를 내디뎠다.
 
 그러자 그의 몸이 허공으로 뜨더니 앞을 향해 날아갔다.
 
 그것은 마치 신선(神仙)의 춤사위처럼 우아하면서도 부드러운 동작이었고, 바람을 밟으며 나아가는 모습은 실로 경악을 자아내는 몸놀림이었다.
 
 백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무공을 익힌 것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해 보이는 순간이라 할 수 있었다.
 
 그의 몸은 우아하면서도 빠르게 나아갔다.
 
 나무와 나무 사이를 여유롭게 스치고 지나갔으며, 계곡이 나오면 수면을 박차 새처럼 떠올랐다.
 
 그가 한 걸음 디딜 때마다 주변의 풍광이 그의 옆을 빠른 속도로 스쳐 지나갔다.
 
 무림인들이 봤다면 입을 쩍 벌렸을 정도로 그의 경공은 대단했다.
 
 그는 허공을 가르며 자유를 만끽했다.
 
 
 
 
 
 * * *
 
 
 
 
 
 네 명의 남녀가 수풀을 가로지르며 다급하게 경공을 전개하고 있었다.
 
 내력이 점점 바닥이 나고 있다는 것을 느끼며, 거친 숨을 토해 내면서도 결코 신법을 멈추지 않았다.
 
 “멈추지 마세요!”
 
 백리연이 소리를 치자 지친 기색이 역력한 팽무결이 더욱 기세를 끌어 올렸다.
 
 그때였다.
 
 쉬쉬쉭!
 
 팽무결의 요혈을 향해 세 자루의 단검이 이를 드러내며 날아왔다.
 
 휘이잉!
 
 어느새 검을 빼 든 백리연의 검풍(劍風) 덕에 단검은 모두 팽무결의 몸을 아슬아슬하게 스쳤을 뿐이었다.
 
 그러나 식은땀을 흘리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백리연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필시 주검이 되었을 테니 말이다.
 
 “제길! 언제까지 쫓아올 생각인 거지?”
 
 팽무결이 거칠게 말을 하며 이를 갈았다.
 
 저들과 쫓고 쫓기는 추적전이 시작된 지도 벌써 삼 일이 흘렀다. 하지만 저들은 전혀 추적을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자신들은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다. 이대로 가다간 한 시진 안에 주검이 될 것이 분명했다.
 
 “생각할 시간이 있으면 달려요!”
 
 남궁지가 매섭게 소리를 치며 말을 하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 팽무결이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내공을 쥐어짜 다시 경공을 전개했다.
 
 그 순간, 흑의인 하나가 팽무결의 옆으로 다가서서 검을 휘둘렀다.
 
 챙!
 
 나란히 달리고 있던 모용혁의 검이 매섭게 휘둘러지며, 팽무결의 목을 치려는 검을 쳐 냈다.
 
 “괜찮은가?”
 
 “혁! 고맙네. 이 은혜는 잊지 않겠네.”
 
 그렇게 또다시 일각.
 
 쫓기는 이들은 마치 사냥감이 된 기분이었고, 쫓는 이들은 사냥감을 가지고 노는 것처럼 느긋하다 못해 태평스럽기까지 했다.
 
 “또 습격이 멈췄어.”
 
 남궁지가 인상을 찌푸리며 내력을 가라앉혔다.
 
 “젠장! 언제까지 이럴 생각인 거지? 가지고 노는 것도 아니고!”
 
 모용혁이 거칠게 말을 하니, 백리연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그의 생각은 틀렸다. 저들은 진짜 자신들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죽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죽이지 않는다.
 
 지친 기색을 보일 때면 쉴 수 있는 시간을 주었고, 그 시간이 지나면 또다시 추격을 계속해 왔다.
 
 마치 어디 끝까지 도망쳐 보라는 듯했다.
 
 “그러니까 왜 산으로 들어왔냐 이 말이에요! 그저 장백산 마을에서 그들의 거취만 알아봤으면 되는 일 아니었나요?”
 
 “남궁 소저, 우린 저 수상한 자들이 이 장백산에서 무엇을 찾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었습니다.”
 
 “뭐라고요? 그래서 우리가 알아낸 게 뭐죠?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쫓기고 있을 뿐이잖아요!”
 
 “그래도 아직까진 무사하지 않습니까.”
 
 “하, 그게 아니라 저자들이 우리를 죽일 생각이 없는 거겠죠. 만약 저들이 진심으로 칼을 들이댔다면, 이 자리에서 서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거예요. 모용 소협! 정신을 좀 차리세요!”
 
 남궁지가 따지 듯 말하자 모용혁이 찔끔했다.
 
 확실히 그녀의 말대로 그들이, 살기(殺氣)를 품고 검을 휘둘렀다면 이런 추격전 따위는 애초에 없었을 것이다.
 
 앙칼지게 소리를 친 남궁지가 인상을 찌푸리자,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백리연이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은 우리끼리 싸우고 있을 때가 아니에요. 어떻게 이곳을 빠져나가느냐가 중요해요. 그리고 지아야, 모용 소협도 무슨 생각이 있으셨을 거야.”
 
 “언니! 저 사람이 생각이 있어 보여요? 아무도 죽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지금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일이라고요.”
 
 “소, 소저! 말이 심하시오.”
 
 모용혁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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