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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2018.05.08 조회 1,462 추천 8


 오늘 오전 두 시 십오 분경 강원도 철원 지역에서 리히터 규모 3.0의 지진이 발생했습니다. 철원군 복계산 부근에서 발생한 이번 지진으로 인근의 군부대가 동원되어 이 일대의 교통을 통제하고 삼엄한 수색에 나섰습니다. 청화대 고위 관계자는 지진 피해를 입은 지역에서 북한의 남침용 땅굴이 발견되었다고 전했습니다······.
 
 
 
 
 
 1972년 봄.
 
 강원도 철원군에 가벼운 지진이 일어났다.
 
 언론에 전해진 이야기는 북한의 남침용 땅굴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이었지만 어쩐 일인지 땅굴이 공개되고 난 이후에도 1년 가까이 철원 지역은 철저한 통제가 이루어졌다.
 
 무언가 비밀스러운 움직임이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일은 사람들의 머리에서 지워져 갔다.
 
 그리고 시간은 빠르게 흘러 지나갔다.
 
 1장
 
 
 
 
 
 
 
 “천류대구식 일식 천류개원!”
 
 13살 어린 소년의 낭랑한 목소리가 산자락을 타고 울렸다. 이른 아침의 서늘한 공기도 소년의 몸짓에는 그 서늘함을 잃어버리고 있었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도록 해라.”
 
 소년이 팔을 내지르고 다리를 차올릴 때마다 기합성이 터졌다. 너른 연무장 한편에는 그런 소년의 수련을 지도하는 사십 대의 사내가 서 있었다.
 
 “어깨를 더 이상 벌리지 마라.”
 
 엄한 스승의 목소리에 현수는 동작을 멈추지 않으면서도 자세를 교정했다.
 
 “팔꿈치가 어깨와 균형을 맞추도록 해라.”
 
 어깨의 움직임이 더욱 안정되었다. 사내는 현수의 자세를 보면서 또다시 외쳤다.
 
 “거기서는 왼발이 반보 정도 물러나야 안정된 초식이 된다.”
 
 차가운 목소리였다. 하지만 사내의 속내는 차가운 것과는 반대였다.
 
 ‘이제 열세 살의 어린아이에게 가르치기엔 너무 위험한 것이지만 내게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 적어도 기초는 다져 줄 수 있겠지.’
 
 현욱은 자신이 목숨을 담보로 익힌 무공이지만 조금도 아깝지 않았다. 현수는 자신과 자신이 목숨처럼 사랑했던 아내가 남긴 사랑의 결실이었다.
 
 ‘저 아이에게 모든 것을 주고 수연의 곁으로 가는 것도 즐거운 일이지.’
 
 그 생각에 현욱은 잠시 애정 어린 눈으로 현수를 지켜보다가 순간 벼락같이 고함을 질렀다.
 
 “풍류행은 흔들리지 않는 가운데 자유롭게 흐르는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몸의 중심을 상하로 나눌 필요가 없다. 다시!”
 
 현수가 그 말에 빠르게 다시 풍류행을 펼쳤다.
 
 그러자 현수의 몸이 부드럽게 좌우로 움직이는 듯하더니 어느 순간 몇 미터 떨어진 곳에서 나타났다.
 
 그 모습에 현욱은 절로 감탄했다.
 
 ‘아무리 천류신공을 위해 태어난 아이라지만 벌써 저런 경지라니······.’
 
 속으로는 감탄하면서도 현욱은 일부러 혹독하게 가르쳤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다. 그동안 자신의 모든 것을 현수에게 가르쳐야 했다. 현수 역시도 아버지의 그런 마음을 아는지 단 하나의 가르침도 흘리지 않으려는 듯 집중하고 또 집중했다.
 
 “마음을 언제나 냉정하게, 차갑게 중심을 잡아라.”
 
 현욱은 현수를 향해 여러 가지를 주문했다. 하지만 무공을 펼치는 현수보다 지도하는 현욱이 먼저 지친 얼굴이 되어 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이었다.
 
 “마음을 중······.”
 
 말을 하려던 순간 현욱은 비틀거리며 쓰러져 버렸다. 현수는 곧바로 달려와 현욱을 안아 들었다.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졌기에 극도로 당황했지만 이미 그런 일이 수차례 있었다. 현수는 몇 번 아버지를 부르다가 그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자 방으로 옮기기 위해 안아들었다.
 
 “으, 으윽, 하학.”
 
 아버지를 방 안에 눕히고 나오는 현수의 귓가로 신음 소리를 들려왔다. 현수의 얼굴이 더 어두워졌다.
 
 ‘할 수만 있다면, 할 수만 있다면 아버지를 살리고 싶습니다······.’
 
 
 
 “다 내 죄다.”
 
 박성필은 현욱이 다시 쓰러지자 죄스러움과 미안함을 가득 담은 시선으로 현수를 바라보았다.
 
 “······.”
 
 이미 어느 정도 사정을 짐작하고 있었던 현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박성필은 그런 현수의 태도를 이해한 것인지 조용히 한쪽에서 무언가를 꺼내 앞으로 내밀었다.
 
 스윽.
 
 비단에 곱게 싸인 무언가를 앞으로 내민 박성필은 현수에게 말했다.
 
 “이제 네 것이다.”
 
 그 말에 현수는 비단 보자기를 풀어 보았다.
 
 보자기 안에는 크고 두툼한 책이 몇 권 있었다. 책의 겉표지에 금가루로 선명하게 쓴 행서(行書)체의 글자가 보였다.
 
 천류신공(天流神功).
 
 
 
 현수는 그것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자신이 익힌 무공이기도 했지만 이 책은 박성필이 가장 소중하게 아끼는 보물 중에 보물이었다. 절대로 밖에 내놓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런 현수의 표정을 읽었기 때문일까?
 
 박성필은 허탈하면서도 애증이 엇갈린 눈빛으로 그것을 보며 말했다.
 
 “그래, 그것을 발견한 것이 문제였지. 차라리 그걸 발견하지 않았더라면······. 아니, 내가 나라에 대한 충성심에 그런 일을 벌이지만 않았더라면 우리 집안에 이런 불행은 없었겠지.”
 
 그러면서 그는 과거에 있었던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가 정보기관에 있을 때였다. 어느 날 철원 지역에서 제법 강한 지진이 발생했다. 그 지진으로 산 중턱에서 고려 왕족의 무덤으로 보이는 것이 세상에 드러났다. 고문과 사학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그것을 보자 직접 발굴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더구나. 나는 그걸 직접 조사했다.”
 
 말을 하면서도 박성필은 목이 타는지 물을 한 잔 마시고 다시 입을 열었다.
 
 “다른 것은 문제될 것이 하나도 없었어. 문화제 급의 유물을 얻는 것은 굉장히 기분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그러다가 몇 권의 서적과 함께 그것을 발견했다. 이미 무공을 익히고 있었고 고문에 밝은 나조차 처음에는 그게 무얼 뜻하는 것인지 자세히 알 수 없을 만큼 굉장한 것이더구나.”
 
 박성필은 이야기를 할수록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때 알았어야 했어. 이런 결과가 생길 줄 알았더라면 차라리 모두 묻어 버리고 조용히 나 혼자만의 비밀로 간직했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지금과 같은 일은 없었겠지.”
 
 하지만 박성필은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당시의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강대국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강한 힘을 갈구하던 대통령은 그 일을 비밀에 붙였다. 그리고 언제고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발견하고도 숨겨 왔던 북한의 땅굴을 공개하는 강수까지 두었다.
 
 그 일을 철저하게 비밀로 부쳐졌다.
 
 그리고 비밀리에 무공을 익힌 무인을 양성하는 극비 작전이 진행되었다.
 
 문제는 대통령이 원하는 것이 온전한 무공을 익힌 초인이 아니라 그저 언제든 써먹을 수 있는 인간 병기라는 사실이었다. 당연히 시간이 오래 걸리는 무공 수련을 그대로 진행할 수는 없었다.
 
 거기서 파탄이 생겨 버렸다.
 
 “최소 이, 삼십 년의 시간이 필요한 그 일을 그분은 십 년 안에 완성하라고 하셨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속성법과 양귀비입니까?”
 
 현수의 말에 박성필은 고개만 끄덕일 뿐 제대로 된 답을 내놓지 못했다.
 
 “가장 성공에 근접했던 이가 너의 아비다. 하지만 그도 문제가 있었지. 네 아비를 마지막으로 무인 양성 계획은 폐기되었다.”
 
 이미 많은 것을 짐작하고 있던 현수는 이상한 점이 있어 물었다.
 
 “저도 그렇습니까?”
 
 현수의 물음에 박성필은 절대 아니라는 듯 강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너는 아니다.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너만은 그것과는 상관없는 사람이지.”
 
 그러고는 사정을 설명했다.
 
 “이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 가장 신경 쓴 것이 비밀 엄수였다. 하지만 그보다 더 신경을 쓴 부분이 있었으니 바로 이 힘을 가지게 될 사람이다.”
 
 박성필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그것만은 그도 양보할 수 없는 것이라는 듯.
 
 “우선해서 선택한 사람들이 바로 국가 유공자. 그것도 서류상이 아니라 실제 국가를 위해 충성한 그런 분들의 후손을 대상으로 했다. 사욕에 사로잡힐 자들이나 매국노의 후손에게 이 힘을 전해 줄 수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현수가 알고 싶은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그는 아버지의 몸을 보면서 자신도 후일 그렇게 되지 않을까 그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런 현수를 향해 박성필은 허탈하게 말했다.
 
 “네 아비는 속성으로 천류신공을 익혔다. 그리고 네 어미는 정상적인 순리에 따른 천류신공을 익혔지. 이제야 알게 된 일이다만 천류신공은 그 자체로 여자에게는 어울리지 않았어. 차라리 네 아비 현욱에게 정상적인 천류신공을 수련케 했더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을······. 내 욕심이 너무 과했구나.”
 
 한눈에 보아도 무공을 익히기에는 최적인 몸을 가진 현욱이었다. 그러나 박성필은 제대로 된 비전의 천류신공을 자신의 딸인 수연에게만 전했다.
 
 운명의 장난이었을까.
 
 그런 두 사람이 사랑에 빠졌다.
 
 깊은 산중에 비슷한 또래의 남녀가 함께 있었으니 자연스럽게 가까워지고 연정을 품은 것이다. 현욱이나 수연은 둘 모두 외모가 출중했으니 그것은 어쩌면 피할 수 없는 일이었을지도 몰랐다.
 
 그때 이미 다른 속성 무공을 익힌 자들은 죽거나 백치가 되어 버린 후였다. 그 일로 정신없는 와중이라 박성필은 두 사람이 사귀고 있다는 것도 몰랐다.
 
 결국 나중에 수연의 배 속에 현수가 생기고 나서야 모든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제야 서둘러 현욱의 수련을 중지시키고 수연을 돌보기 위해 애를 썼다.
 
 수연은 배 속에 아이가 생긴 이후 굉장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정상적인 천류신공을 익힌 수연과 비정상적인 천류신공을 익힌 현욱의 기운이 동시에 만났기 때문이었다.
 
 현욱의 기운과 수연의 기운, 서로 다른 기운의 충돌로 인해 아기는 자칫 사산(死産)될 위기였다.
 
 그때 기적이 생겼다.
 
 태아가 살아남기 위해 아버지에게서 전해진 기운과 어미에게서 전해진 기운을 동시에 받아들여도 상관없도록 스스로 변해 갔던 것이다. 그 와중에 수연의 공력이 상당 부분 태아에게 유입되었다.
 
 내공은 적정 이상의 수준에 이르면 퍼낸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빈 곳을 다시 채우는 성질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수연은 계속해서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결국 태아를 지키기 위해 그 어마어마한 고통을 모두 감내하며 원기를 소모한 수연은 현수를 낳고는 며칠을 버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허무한 심정으로 그 일을 이야기하는 박성필의 목소리. 현수는 가슴이 아팠다.
 
 ‘그래서 나를 볼 때면 아버지의 눈이 그렇게 슬퍼 보였던 걸까?’
 
 사랑했던 아내를 죽게 만든 아들.
 
 하지만 그 사랑스런 아내가 남긴 유일한 흔적.
 
 현수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런 현수의 귀로 박성필의 말이 들렸다.
 
 “한 사람의 희생이 있었지만 기적 같은 일이지. 너는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천류신공을 완전히 익힐 수 있는 몸으로 태어났다. 남들이 삼십 년은 수련해야 오를 경지에 올라 있는 것이 그 증거지.”
 
 현수는 자신이 남들과 많은 부분 다르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원인을 듣고 나자 기쁘기보다는 슬프고 가슴이 아팠다.
 
 ‘이 힘 때문에 어머니가······. 이것이 뭐라고······.’
 
 
 
 * * *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후.
 
 현수는 계속되는 아버지의 신음 소리를 들으면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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