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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견환 1

2018.05.14 조회 313 추천 3


 상견환 1권
 서시(序詩)
 
 
 상견환(相見歡)
 
 무언독상서루(無言獨上西樓)
 월여구(月如鉤)
 적막오동심원쇄청추(寂寞梧桐深院鎖淸秋)
 전불단, 이환란(剪不斷, 理還亂)
 시이추(是離秋)
 별시일반자미재심두(別是一般滋味在心頭)
 말없이 홀로 서루에 오르니
 달은 고리같이 빛나고
 오동나무숲은 적막한데 가을 하늘은 맑기만 하다
 끊어도 안 끊기고, 거두어도 엉키는
 이별의 쓰라림이여
 가슴 끝 저리는 이별이어라.
 남당(南唐) 후주(後主) 이욱(李煜)의 가사로 애끓는 이별의 노래이다. 사랑하는 님과 헤어졌으나 오죽 마음이 아팠으랴!
 일국의 황제임에도 사랑하는 님을 떠나보내니 그 애달픔이 가슴을 비수로 도려내는 것 같았을 것 같다. 그러나 상견환은 그가 황제의 자리에서 몰락한 제후가 되었을 때 지은 사(詞)이다.
 이욱은 십 오 년 동안 제위에 머물렀으나 송에 의해 남당이 멸망하고 송에 의해 제후(諸侯)로 봉해졌다.
 그의 사는 애통한 마음이 구구절절 녹아있어 읽는 이로 하여금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그치지 못하게 한다.
 
 
 서장 그녀가 내 곁을 떠났다
 
 
 그녀가 나를 떠났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언제까지나 나를 사랑하겠노라고 맹세했던 그녀였다. 그것이 모두 거짓이었다는 말인가?
 난 믿을 수가 없다.
 그녀가 나를 사랑했었다는 것을 나는 믿는다. 아니 그녀는 떠난 것이 아니라 납치(拉致)된 듯하다. 만약 떠나려 했다면 한 통의 서찰이라도 남길 여자였다.
 그녀는 나보다 똑똑했고 또 배움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나를 사랑했다. 그녀는 그렇게 말했고 나 또한 믿어 의심치 않았다.
 문제는 그녀가 떠났다는 사실이다.
 나는 짐을 꾸렸다.
 그녀를 찾아 떠날 생각이다.
 중원 어딘가에 그녀가 있을 것이라는 것은 나는 안다. 그리고 그녀가 어디에 있을 것이라는 추측도 한다.
 그녀와 내가 달콤한 보금자리를 꾸민 지 벌써 십 년이 흘렀다.
 내가 한때 머물렀던 곳, 그곳은 여전히 변함이 없을 것이다. 그곳에 가면 그녀가 있을 것이다. 그곳은 강호(江湖)라는 삭막한 이름을 가졌다.
 나는 이제 오랫동안 깊숙이 넣어두었던 반검(半劍)을 꺼내야 한다.
 그것이 사람을 죽이고 피를 묻히게 될지라도 난 갈 것이다. 그리고 반지도 끼어야겠지. 내가 발견된 곳에서 같이 발견되었다는 반지를 가지고 갈 것이다.
 확인(確認)해야 한다.
 그녀가 나를 떠난 것인지 이제 확인을 해야 한다. 그것만이 나에게 희망일 뿐이다.
 
 
 1장 그가 떠나는 것을 본 사람이 있다
 
 
 1
 
 
 그 날!
 작얼산(雀 山)은 비가 온 이후였는지라 사람을 쪄 죽일 정도로 날씨가 무더웠다. 그러나 삼 개월에 걸친 긴 우기(雨期)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북천(北天)에서는 검은 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지난 며칠간 몰려왔던 비보다도 더욱 많은 습기(濕氣)를 머금은 검은 구름이 북천을 검게 물들이고 있었다.
 
 ***
 
 열흘이나 내리던 지루한 비가 멈추었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안개에 싸여있던 작얼산의 크고 작은 봉우리가 모두 한눈에 들어왔다.
 겁 없이 나이만 먹은 노파의 볼이 개구리의 울음처럼 씰룩거리며 뿜어낸 연초(煙草)의 연기처럼 영봉(靈峰)에 한 무더기의 구름이 걸려있었다.
 “비가 그치려는 모양이군!”
 초풍비(楚風飛)는 가물거리는 눈으로 영봉에 걸린 구름을 바라보았다.
 자욱한 그것이 구름이 아니고 안개라는 것을 아는 그였지만 습관처럼 구름이라 말했다. 구름과 안개라는 말은 그에게 주는 어감(語感)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벌써 반 시진이 족히 되었으련만 그의 눈을 산 정상에서 멀어지지 않고 있었다.
 “이제 이곳에 다시 오지 못할 수도 있겠지.”
 초풍비의 목소리는 어딘지 모르게 한곳이 빈 것 같은 허망함을 담고 있었다. 그의 목소리에서는 좋든 싫든 간에 작얼산을 떠나야 한다는 생각이 진하게 묻어 있었다.
 생각해보면 참으로 자신을 따듯하게 안아주었던 작얼산이었다. 언제까지나 속세(俗世)를 버리고 묻혀 살 수 있을 것이라 여겼던 작얼산이지만 지금은 둘 중 누구 하나는 배반을 해야 했다. 산이든지 초풍비든지!
 초풍비는 몸을 돌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을 따듯하게 품었던 초막(草幕)을 바라보았다.
 언제나 그를 따듯하게 품어주었던 초막은 변함이 없었지만 모든 것이 예전 같지 않았다.
 따듯한 온기(溫氣)도 느껴지지 않았고 항상 그를 따듯하게 맞아주었던 초란(草蘭)의 명랑한 목소리도 없었다. 그것을 느끼면서부터 비애감이 몰려들었다.
 “이제 이곳에 나를 반기는 사람은 없다.”
 초풍비는 걸음을 옮겨 초목으로 다가가 방문을 거칠게 열었다. 찬바람이 거친 소리를 내며 지나갔다. 가슴이 쓰라려 울컥거릴 뻔했다.
 “빌어먹을!”
 십 년 동안 몸을 담았던 집이었다. 추위가 몰려올 때는 그의 몸을 따듯하게 감싸주었고 초란이 늘 그를 따듯하게 대하던 곳. 아니, 그의 터전이었다.
 이제는 그가 떠날 차례였다.
 “이제 간다.”
 초풍비는 초막의 마루에 놓였던 등짐을 지었다. 등짐이라고 해 보아야 특별한 것도 없었다.
 누더기처럼 기운 두 벌의 옷을 싸고 그 동안 짐승을 사냥해 마련한 은자(銀子) 조금, 그리고 노숙(露宿)할 경우를 대비해 길고 넓은 천을 준비했다.
 넓은 천은 올이 성긴 삼베와 짐승의 가죽이 적절하게 배합되어 꿰매진 것으로 한기가 몰아와도 거뜬하게 막아줄 물건이었다. 그가 사냥을 다닐 때 늘 가지고 다니던 물건으로 눈이 무릎까지 싸여도 추위를 느끼지 않도록 해주었던 귀한 물건이었다.
 옷가지를 천에 넣고 둘둘 말아 등에 지자 완벽한 등짐이 되었다. 은자와 몇 개의 금원보(金元寶)를 챙겨 허리에 작은 주머니를 만들어 묶었다. 그리 많지 않은 양이었지만 초란을 찾을 때까지는 아껴 써야 했다.
 허리 앞쪽에 조그만 주머니에는 동전(銅錢)을 넣었다. 동전은 오십 문(五十紋) 정도 되었는데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게 하기 위에 앞쪽에 주머니를 만들었다.
 굳이 동전을 앞에 넣는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꺼내기가 편하다는 이유도 있지만 다른 이유가 더욱 강할 수도 있었다. 사용되기를 바라지는 않지만 정말로 동전이 사용된다면 정말 불행한 일이었다.
 허리에는 십 년만에 나무 밑에서 파낸 반검이 걸려있었다. 십 년 전 다시는 강호에 나가지 않으리라는 생각으로 땅에 묻었던 반검이었다.
 십 년만에 반검을 다시 보니 감회(感悔)가 새롭기도 했지만 다시 손에 피를 묻혀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언짢기도 했다.
 손에는 반지를 끼었다.
 그 동안 아무도 모르는 곳에 깊숙이 넣어두고 끼지 않았던 반지였다. 둥근 보석이 달리고 보석의 중앙에는 호랑이가 실같은 금으로 정교(精巧)하게 새겨진 반지였다.
 “간다. 다시 오기는 힘들겠지.”
 초풍비는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마치 자신을 십 년 동안 감싸주었던 모든 것들에 대한 인사 같았다. 그는 예감(豫感)하고 있었다. 다시는 작얼산에 돌아오지 못하리라는 것을.
 
 
 2
 
 
 비를 맞으며 번(番)을 선다는 것은 뼈 속에 한기가 스미는 일이었다.
 혹자는 비라는 것이 세파(世波)에 찌든 마음을 순화(純化)시키고 어쩌고 하며 주절대지만 정말로 두 시진이나 되는 시간을 맞아보면 순화고 뭐고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었다.
 비록 비를 막을 수 있도록 갈대와 짚으로 엮은 도롱이를 입고는 있지만 두 시진 동안이나 화살처럼 내리붓는 빗줄기를 맞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도롱이 속으로 파고든 빗방울은 속옷을 적시고 후끈한 열기를 만들어 내었다.
 몸을 타고 흐르는 비는 어깨를 적시고 등을 타고 흘러 사타구니를 끈적거리게 만들었고 기분을 울적하게 만드는 묘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우라질······ 이건 아예 쏟아 붓는군 그래.”
 “그래, 하늘에 구멍이 나지 않는 한 이토록 거친 비가 온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어.”
 장노(張老)의 말에 좌명(左明)이 거들었다.
 비가 오는 날, 그것도 황량한 벌판에서 언제 올지도 모르는 행인을 기다리며 번을 선다는 것은 더없이 처량하고 황당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짜증이 나는 일이기도 했다.
 분명 사람이 지나다니는 관도(官道)이기는 했다. 그렇지만 산천초목(山川草木)이 떠내려 갈 것 같은 빗줄기 속에 누가 온단 말인가?
 “미치겠군.”
 장노는 신경질적으로 창을 바닥에 꽂았다.
 장창은 질퍽거리기 시작하는 황토 흙에 깊숙하게 박혀들었다. 초혜(草鞋)로 물이 스며들고 마치 거머리가 달라붙은 듯 종아리가 가려웠다.
 허리를 숙이는 것조차도 귀찮았다.
 허리를 숙이면 허리에 비가 고스란히 맞을 것 같았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다.
 장노는 허리를 숙이는 대신에 다른 발로 비비기로 했다.
 먼저 오른발을 들어 왼발의 종아리를 뻑뻑 소리가 나도록 비볐다. 처음에는 까칠한 느낌이 들었으나 연속해서 비벼대자 가려움이 가라앉았다.
 풀과 싸리나무의 껍질을 섞어 만든 초혜는 제법 까칠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왼발이 시원해지자 이번에는 왼발을 들어 오른다리의 종아리를 긁기 시작했다.
 몸서리가 처지는 희열이 느껴졌다. 산채에 있는 열 계집도 그에게 그런 희열을 주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등이 다시 축축해지는 느낌이 들자 장노는 다시 심통이 올랐다. 아무리 생각해도 기가 찰 노릇인지라 원인 모를 욕설이 입안을 맴돌았다.
 ‘제기랄! 이런 날은 산채(山寨)에서 따듯하게 데운 탁주나 마시던지 가슴이 풍만한 앵앵(鶯鶯)이나 껴안고 있어야 제격인데.’
 장노는 불현듯 술 생각이 났다.
 술이 없다면 앵앵의 속살도 그만일 것 같았다. 앵앵은 산채에 머무르는 이십여 명의 계집 중 가장 풍만한 몸을 지니고 있었다.
 앵앵의 주인은 없었다.
 지아비가 없으니 당연히 먼저 눈을 맞추는 놈이 임자였다. 앵앵은 산채에 머무르는 오십여 명의 배설을 받아주는 그렇고 그런 계집 중 하나였다. 그러나 장노가 생각하기에는 천하제일의 명기(名器)가 바로 앵앵이었다.
 “이거 그 개놈의 새끼가 앵앵을 품고 있는 것 아닌지 몰라. 우리는 초번(哨番)이나 세워놓고 말이야.”
 좌명도 앵앵을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무엇보다 좌명은 자신들에게 비를 맞으며 번을 서도록 한 막주(幕主)를 욕하고 있었다. 그도 앵앵을 좋아하기에 앵앵에게 욕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듣는 자가 없으니 막주를 욕해도 하등의 문제는 없었다. 설사 누가 듣는다 해도 동감을 표할 것이 틀림없었다. 그들에게 유일한 재미란 계집을 품거나 술을 마시는 것을 제외하고는 막주를 욕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들이 번을 서는 곳에서 오십여 장을 이동하면 조그만 초막이 있었고 산채의 식구들은 그곳을 초막(哨幕)이라 불렀다.
 번을 서는 자들이 몸을 녹이거나 잠을 자게 만들어진 곳이지만 늘 막주가 기거하는 곳이기도 했다.
 그들이 멋대로 깔아뭉개고 성토의 대상으로 삼는 막주는 산채의 세 두령 중 막내였다.
 산채의 식구들은 모두 그를 가리켜 낭리보(狼里步)라 했는데 그건 그가 지닌 보법이 특이하게 늑대의 발걸음을 닮았다 해서 지어진 이름이었다.
 “맞아, 바로 내 말이 그 말이지. 이런 날 번을 서라고 한 그 새끼는······.”
 장노는 갑자기 벨이 꼴렸다.
 자신이 좋아하는 앵앵이 반 시진 전 초막으로 내려온 것을 보았던 것이 생각났다. 보나마나 두 년 놈은 한 덩어리가 되어 뒹굴고 있을 것이었다.
 보지 않아도 눈에 선했다.
 “으이그······.”
 좌명도 앵앵의 보드라운 속살이 생각나는 것인지, 그도 아니라면 몸에 스며드는 빗줄기가 참을 수 없으리 만치 으슬으슬했는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사실 평소에도 인적이 뜸한 작얼산 기슭에 번을 선다는 것 자체가 무리이기도 했다. 그나마 비라도 온다면 지나가는 사람이 있을 턱이 없었다.
 인적이 뜸하기는 하지만 사천에서 청해(淸海)로 연결되는 유일한 관도인 청해관도(淸海官道)에는 그럭저럭 재미가 괜찮은 편이었다.
 간혹 관군이 이동을 하기는 하지만 그들만 피한다면 벌어들이는 재미가 쏠쏠했다.
 간혹 대상(隊商)들도 이동을 했고 청해와 사천의 소금장수들이 지나다녔는데 그들은 제법 많은 금화(金貨)를 지니고 있었다. 그들은 아예 산채의 식구들에게 적지 않은 상납을 하기도 했다.
 그들이 상납하는 황금과 곡물은 산채에 머무는 오십 명의 호걸들에게 충분한 생활을 주었고 이십 명의 계집들도 그럭저럭 만족시켜 줄 수도 있었다.
 “우후후후! 뼈 속까지 시리군.”
 장노는 정말로 뼈가 녹아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어릴 때 어머니가 하시던 말씀이 생각났다.
 어머니가 늘 말씀하시기를 오래도록 비를 맞으면 뼈가 시리다고 했었다.
 나중에야 어머니가 그랬던 것은 집안이 너무도 가난해 신발이 빨리 떨어질까 봐 했던 이야기라는 것을 알았지만 세월이 지날수록 정말 뼈가 시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또다시 뼈가 시리고 몽둥이로 한 대 맞은 것처럼 무릎이 저렸다.
 “교대자(交代者) 올 시간은 멀었어?”
 “이미 반 식 경은 지났을 거야. 놈들이 우리보다 높으니 어쩌면 후임자(後任者) 몫까지 서야 될지도 몰라.”
 좌명이 입술을 내밀었다.
 말을 하는 도중에도 비는 억수같이 내리고 머리 위에 갈대를 촘촘히 엮어 만든 파립(破笠)을 쓰고는 있었지만 비를 피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주변에 큰 나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잡목과 관목뿐이니 몸을 피할 수도 없었다.
 몇 달 전부터 막주에게 그토록 작은 우막(雨幕)이라도 지어달라 했지만 모든 것을 말아먹었는지 들어 처먹었는지 아직도 아무런 확답이 없었다.
 “뭐야······ 이곳을 뜨던지 해야지. 정말······ 어라!”
 중얼거리던 장노의 눈이 불거졌다.
 너구리의 가죽으로 만든 토시로 눈을 비벼보았다. 아무리 보아도 사람이었다. 뿌연 물안개 사이로 바위처럼 보이지만 움직이는 물체가 눈에 들어왔다.
 우중(雨中)에 작얼산 기슭을 지나간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지만 분명 사람의 그림자가 분명했다. 눈을 감았다 다시 떠보아도 사람이었다.
 장노는 땅에 박아두었던 장창을 뽑아 가슴으로 끌어당겼다. 오랜만에 나타난 먹이가 분명했다.
 “뭔데 그래?”
 좌명은 다가오는 사람을 보지 못한 듯 싶었다. 자욱한 물안개와 모든 것을 산산이 부술 것 같은 빗줄기 속이니 알아보지 못할 수도 있었다.
 장노의 행동이 이상했는지 좌명이 몸을 흔들며 허리에 찬 박도(朴刀)를 움켜잡았다.
 “저거······ 사람이지?”
 “어디?”
 “저기 말이야. 눈깔 좀 똑바로 떠봐!”
 장노는 좌명이 가리키는 방향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좌명은 장창(長창)으로 자욱한 물안개를 가리키고 있었는데, 과연 장창의 끝에 하나의 움직이는 물체가 나타났다. 장노의 말대로 사람이었다.
 둘은 서로를 마주보았다.
 도저히 있을 수 없다는 표정이 서로의 얼굴에 떠올랐다.
 그들이 번을 서고 있는 곳에서 보았을 때, 인가는 적게 잡아도 오십 리 길이었다. 오십 리의 먼길을 비를 맞으며 가겠다는 미친놈이 나타났던 것이다.
 둘의 얼굴은 뜨악한 표정으로 변했다.
 미친놈이거나 급한 물건을 나르는 놈이 분명했다. 후자의 경우라면 그들은 비오는 날 번을 섰다는 칭송(稱訟)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었다.
 어쩌면 한 이틀 동안 번이 없을는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적어도 앵앵의 속살을 마음대로 더듬을 수도 있을 것이었다. 이틀 중 하루는 앵앵과 미친 듯 뒹굴 수도 있을 것이었다.
 막주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는 거친 수염을 흔들며 그는 만족한 웃음을 터트릴 것이다. 생전 하지 않던 칭찬을 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재수가 좋으면 술을 상으로 받을지도 모른다.
 막주는 신이 나서 놈을 족치게 될 것이고 결국은 은자가 생길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나 장노와 좌명은 하체가 벌떡 일어서는 흥분을 맛보았다.
 “어서 놈을 막아야지.”
 “물론. 술과 계집이 눈앞에 있는데 마다할 수는 없지.”
 둘은 몸을 움직여 관도에 나란히 섰다. 누가 보아도 자신들이 위압감이 있다는 생각을 하며 둘은 다리를 벌렸다. 그럭저럭 관도를 가로막은 꼴이 되었다.
 그림자는 점점 다가와 이제는 한눈에 들어왔다.
 다가오는 자가 어떤 얼굴을 지니고 있는지, 혹은 무엇을 하는 놈인지 완벽하게 파악은 되지 않았다. 얼굴이 드러날 정도로 다가온 사내는 사십대로 보이는 사내였다.
 온몸에 비를 맞아 생쥐처럼 젖은 모습은 장노나 좌명과 같았다. 사내의 온몸도 젖어 있어 ‘이거 미친놈 아냐?’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장노와 좌명이 도롱이를 입고 있는 반면 사내는 도롱이는커녕 비를 막아줄 수 있는 아무 것도 걸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몸에는 올이 성긴 마의(麻衣)를 입고 있었다.
 등에 진 봇짐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특히 마구 솟구친 수염과 구레나룻, 허리까지 마구 자란 긴 머리카락은 지저분해 보이기도 했다.
 어찌 보면 산적(山賊)들보다 더욱 산적 같은 모습이었다. 특이한 것은 사내의 허리에 검갑(劍匣)도 없이 엇비슷하게 찔러있는 반검이었다.
 사내는 장노와 좌명이 길을 가로막고 서 있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작정 앞으로 걸어왔다. 몸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이 간혹 비바람에 흔들렸다.
 ‘병신 같은 새끼가 겁 대가리를 상실했구나.’
 장노는 중년사내가 자신들을 몰라본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작얼산의 산 두령들을 몰라 볼 리가 없었다.
 거창하게도 흑룡채(黑龍寨)라 이름 붙여진 산채는 그들이 생각하기에 사천(四川)에서는 공포의 집단이라 알고 있었다. 막주가 그랬고 채주가 그랬으니 그건 틀림없을 것이었다.
 “크흐흐흐흐!”
 “이거 오늘 재미있는데······ 이 털보 정신이 없구먼!”
 장노와 좌명은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아무리 보아도 반은 미친놈 같았다.
 장노는 개구리처럼 튀어나갔다. 좌명도 기다리지 않았다. 그도 먹이를 발견한 똥개처럼 순식간에 앞으로 나아가 장노와 보조를 맞추었다.
 그들은 마음이 급했는지 기다려도 될 것을 굳이 삼 장을 달려가 중년인과의 거리를 십여 장으로 맞추어 섰다. 다가오는 사내는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그것으로 그들의 임무는 끝난 것이 아니었다. 산채의 규율대로 고지(告知)를 해야 했다.
 “멈추어라!”
 장노는 제법 위엄을 갖추었다는 생각이 드는 목소리로 다가오는 중년인을 향해 목소리를 뿌렸다. 그의 생각대로라면 목소리는 위엄과 일말의 살기까지 내포하고 있을 것이었다.
 아니, 살벌한 기운이 느껴져 담이 약한 놈이라면 아래로 배설(排泄)을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무튼 장노는 자신의 목소리에 자부심이 있었다.
 허나, 중년인은 귀가 먹은 것 같았다. 아니라면 긴 머리카락이 귀를 덮어 잘 들리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사내는 땅만 쳐다보고 있었다.
 장노의 음성이라면 몸이 와들와들 덜리고 온몸에 소름이 돋아야 하는데 중년인은 묵묵히 걸어 거리를 좁혀오고 있었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믿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장노와 좌명은 한동안 어찌 할 바를 몰랐다.
 “이런 뼈를 발라 버릴 놈 같으니라고······ 멈추라는 소리가 들리지도 않느냐?”
 장노는 약이 올랐다. 자신의 말을 어느 개가 짖나 하는 표정으로 계속 걸음을 옮기는 중년인을 향해 또다시 버럭 소리를 질렀다.
 자신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고 있었지만 자신이 겁을 먹었다는 생각은 할 수도 없었다.
 죽여도 시원치 않을 놈이었다.
 가뜩이나 날씨가 시원치 않은 판에 웬 똥파리 같은 놈이 말을 듣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자 울화가 치밀었다.
 “뼈를 추릴 놈 같으니······.”
 장노는 놈을 잡아 자근자근 밟아 뼈를 추려 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우라질 놈 같으니······ 네놈은 이 장장군(張將軍)의 목소리가 들리지도 않는단 말야.”
 장노는 장창을 앞으로 겨누었다.
 잠깐 몇 마디 하는 사이에 중년인은 삼 장 앞으로 다가서고 있었다. 구름이 흐르듯 느린 발걸음 같았으나 계곡의 물처럼 빠른 걸음을 가진 자였다.
 사내가 전개하는 발걸음이 일반의 초부(樵夫)들 발걸음이 아니고 내공을 바탕으로 한 축지성촌(縮地星寸)의 한가지 경공이라는 것을 알 리 없는 장노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중년인은 장창이 가슴 앞으로 다가오자 걸음을 멈추었다.
 ‘옳지, 이제야 조금 겁을 먹은 모양이군.’
 장노는 머리가 산발한 중년인에게 다가갔다.
 “야, 이놈의 자식아. 어르신이 서라면 서야 될 것 아냐. 내 말이 우습게 들려? 뭐야!”
 장노는 삼 장 앞에 선 중년인을 향해 멧돼지처럼 씩씩거리며 달려가 창모(槍矛)로 찌를 듯 위협하며 악다구니를 썼다. 제법 해먹는 놈의 모습이었다.
 좌명도 지지 않고 박도를 뽑아들며 중년인의 주위에 맴을 돌았다. 그래도 중년인은 움직이지 않았다.
 장노와 좌명은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중년인이 조금은 괴이한 모습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자신들의 위세에 질렸다고 생각했다.
 “자식, 건방지게 까불었구먼!”
 “하여튼 간에 겁 대가리를 상실하고 설치는 놈들은 몽둥이 찜질을 해 줘야 한다니까!”
 중년인이 눈을 내리깔며 장노와 좌명을 훑어보았다. 장노와 좌명은 개의치 않았다. 사내는 마의(麻衣)를 입고 있지만 모든 것이 부조화(不調和)를 이루고 있었다.
 중년인은 한눈에 보아도 오래 동안 산에서 짐승이나 잡던 사냥꾼이라는 것을 알 것 같았다.
 거친 마의는 그렇다 치더라도 손과 다리에는 귀한 곰의 가죽으로 토시를 만들어 찼고 신발마저도 습지에 산다는 습지 도롱뇽의 가죽을 꿰매어 만든 것이었다.
 중년인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어렸지만 장노와 좌명은 미쳐 알아보지 못했다.
 “어서 내놔!”
 장노는 다짜고짜 창을 중년인의 턱으로 밀었다.
 “반항할 수 있으며 입을 닫을 권리가 있다. 죽은 후에는 염라대왕(閻羅大王)에게 항의할 권리가 있으며 물건을 내놓고 도주할 권리도 있다. 단 우리에게 반항하거나 애원을 할 권리는 없다. 알아들었어.”
 좌명이 명석한 두뇌를 자랑하기라도 하듯 자신들이 정한 고지사항을 알려주었다.
 “재미있군. 아주 감동적이야.”
 중년인이 입을 열었다.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비꼬는 듯한 목소리였다.
 중년인의 말투를 장노와 좌명이 알아듣지 못할 리가 없었다. 비록 산채에서 산적질을 하고 있지만 좌명은 한때 성도부(成都府)에서 한가락한다고 생각했던 성문지기였다.
 죄명은 중년인의 비꼬는 말에 참을 수가 없었다. 손을 부르르 떨며 창을 움켜쥐었다.
 “반항하면 죽을 것이고 무릎을 꿇고 백배사죄하면 이 장군들이 목숨을 살려주겠다.”
 장노는 아무리 생각해도 좌명은 머리가 좋았다.
 어쩌면 그렇게 고지사항을 정확하게 외우고 있는지 모를 일이었다. 세세하게 들어보면 좌명의 고지는 단 한 글자도 틀림이 없었다.
 피식!
 중년인의 입가에서 바람이 새어나왔다.
 “비웃어. 이 빌어먹다 거꾸러져 뒈질 놈이.”
 장노는 격한 음성을 토하며 중년인을 창극으로 찔러갔다. 그렇다고 죽일 생각은 없었다. 창극은 중년인의 옷깃을 건드리기는 했지만 몸으로 파고들지는 않았다.
 그들의 규칙이었다.
 사람을 죽이면 점차 관도를 이용하는 자가 없어질 것은 분명했다.
 어찌되었건 죽이지만 않으면 어쩔 수 없이 관도를 이용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그것으로 그들은 영원히 수입원(收入源)이 유지가 될 수 있었다.
 산채의 대두령은 자신이 생각해낸 묘안(妙案)이 천하제일이라고 떠벌렸다. 비교적 쓸모 없는 생각을 많이 하지만 관도를 오가는 사람들을 죽이지 않는다는 생각은 옳은 것 같았다.
 그들이 산채를 짓고 약탈에 들어간 지 십 오 년이 넘었지만 관도를 이용하는 이용객(?)이 줄지 않은 것만 보아도 능히 짐작이 가는 일이었다.
 “네놈이 날 무시해?”
 장노는 정말 이마에 열이 올랐다. 중년인은 장노의 격한 행동에도 한 오라기의 동요 없이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장노를 바라보았던 것이다.
 “물러서거라. 애들은 다칠라!”
 처음으로 중년인의 목에서 목소리가 울렸다. 낮은 저음이었다. 어딘지 모르게 힘이 실려있는 목소리였는지라 장노는 움찔하며 한발 물러섰다.
 비가 점차 가늘어지고 있었다.
 “이런 싹수머리 없는 새끼. 뭐라고?”
 파슷!
 장창이 중년인의 가슴을 향해 빠르게 밀려갔다. 제법 힘이 실린 일지창(一支槍)의 수법이었다. 창은 눈 깜짝할 사이에 중년인의 가슴으로 다가들었다.
 “장난이 심하군.”
 중년인의 목소리가 조금 높아졌다. 중년인은 다가오는 창극을 바라보다 몸을 가볍게 두어 번 정도 좌우로 흔들었다. 그것으로 되었다.
 창은 중년인을 찌르지 못했다. 어찌된 영문인지 창은 중년인 몸을 미끄러지듯 흘러 어깨위로 지나갔다.
 창을 급히 회수하며 장노는 어이가 없다는 눈으로 중년인을 바라보았다. 실패한 적이 기억에 없는 장노였다. 아니, 그 동안 자신이 창을 찌르도록 한 자가 없었다.
 대개의 상단들은 알아서 통행료(通行料)를 상납했고 혹시 지나가는 길손은 짐을 내팽개치고 달아났기에 자신이 자랑하는 창을 쓸 기회가 없다는 것이 옳았다.
 “이 자식이······ 이게 장난으로 보여.”
 장노는 허공에 창으로 원을 그렸다.
 산채에서도 장노는 창을 잘 쓰기로 유명했다. 창을 돌려 만천화우(滿天花雨)의 수법으로 한줄기 둥근 막을 형성하자 중년인의 인상이 구겨졌다.
 장노는 용기백배했다.
 만천화우의 수법은 창을 신체의 각각 다른 주변으로 옮겨가며 돌리는 것으로 엄밀한 방어막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적의 기선을 제압하는데도 사용되었다.
 장노가 최근에 몇 달이나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고 익힌 창법이었다.
 “죽여버릴 거다.”
 장노가 빠르게 다가들었다.
 “어어······ 어라! 장노, 그만 둬!”
 좌명이 무엇을 느꼈는지 벼락같이 소리를 질렀지만 장노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정신없이 창을 돌리고 있었던 장노는 자신의 창에 온 정신이 쏠려있었다. 필시 자신이 앞으로 산채에 돌아가 떠벌릴 무용담(武勇談)에 미리부터 도취해 있을 것이었다.
 폭포 같은 소리를 뿌려 내며 쏟아지는 빗줄기 속에서 좌명의 목소리는 듣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사실, 장노는 좌명의 목소리를 들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또한 중년인의 모습이 조금만 빠르고 정교하게 찌르면 충분히 제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는 좌명의 목소리를 무시했다.
 “어른을 몰라보는 어린아이는 매를 맞아야 한다.”
 퍽―
 장노는 얼굴이 얼얼한 느낌이 들었다.
 눈앞으로 가까워지던 중년인의 모습이 순식간에 삼 장으로 멀어졌다. 갑자기 몸이 출렁하는 느낌이 들며 허공에 떠 있는 것 같았다.
 퍽―털썩!
 갑자기 엉덩이뼈가 부러졌는지 충격을 호소했다. 무엇이 어떻게 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늘이 노래지고 백열(白熱)을 뿜어내는 별이 피어올랐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눈가에 별이 술래잡기를 돌았다. 엉덩이가 차가워졌다.
 온몸이 끈적거리는 느낌이었다. 어안이 벙벙하여 일어서고자 하는 마음도 들지 않았다.
 빗물이 실개천 되어 땅에 손이 닿은 것으로 보아 자신이 넘어졌다는 것은 알지만 사지(四肢)에 힘이 빠져나간 후라 버둥거리기도 힘이 들었다. 앵앵과 하루종일 방사(房事)를 치른 것보다 더 힘이 없었다.
 입이 찝찔한 느낌이 들고 끈적거렸다. 알 수 없는 냄새가 입안에 가득 고였다.
 ‘뭐지?’
 냄새의 실체가 피라는 것을 알아차리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코를 통해 피가 입안으로 흘러들었다.
 “장······ 장노!”
 좌명이 혼비백산(魂飛魄散)한 소리를 질렀다.
 장노는 피가 목안으로 넘어가려 하자 침을 뱉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침이 뱉어지지 않았다.
 손을 들어 입을 만져 보았다.
 턱이 축 늘어져 있었고 침과는 다른 무엇인가가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손을 눈에 가져오고서야 흘러내리는 것이 피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으으으으!”
 장노는 비명을 토했다.
 턱이 산산이 부서져 있었다.
 입이 다물어지니 않는 것은 턱뼈가 조각조각 부서져 축 늘어졌기 때문이었다. 손으로 다시 만져보니 부러진 이가 입 속에 가득 들어있었다.
 어이가 없었다. 상대가 무엇으로 쳤는지도 알 수 없었다.
 ‘이건 꿈이야.’
 평생 입을 다물지 못하는 신세가 되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는 없었다. 앞으로 음식을 씹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할 수 없었다.
 평생을 죽으로 연명(延命)하며 구더기처럼 꿈틀거려야 한다는 생각은 더더욱 하지 못했다. 그나마도 앵앵의 입술을 빨지 못하게 되리라는 것도 생각하지 못했다.
 “으으으으!”
 고통스러울 뿐이었다.
 장노는 물기가 흥건한 땅바닥에 주저앉아 멍한 표정으로 중년인을 바라보았다. 중년인은 아무런 감정도 보이지 않으며 장노를 바라보고 있었다.
 미안한 표정도, 그렇다고 가소롭다는 표정도 지니고 있지 않은 털북숭이 얼굴이었다.
 단 한가지 장노가 알 수 있는 것은 잠깐동안, 아주 잠깐동안 중년인이 애처로운 표정을 지었다가 흩트렸다는 사실이었다. 그의 웃음이 진노가 평생동안 살아갈 애처로움이라는 것을 알리 없었다.
 “으어어어어!”
 장노의 말(言)은 사람의 말이 될 수 없었다.
 장노는 멍청한 표정으로 사내를 올려다보았다.
 사내는 움직이지도 않은 것 같았다. 달라진 것이 있기는 했다. 횡으로 서 있던 다리 중 오른다리가 반 족장(半足仗) 앞으로 나와 있었다.
 “너, 꼼짝 마라.”
 삐이이이익―
 좌명의 황급한 목소리가 울리고 날카로운 호적(胡笛)소리가 울렸다. 조릿대라 불리는 산에 자란 대나무를 잘라 만든 호적은 그들이 신호용으로 사용하는 것이었다. 소리가 날카로워 천여 보는 능히 전달되는 소리였다.
 좌명이 불어 젖힌 날카로운 호적소리를 듣지도 못한 듯 장노의 눈을 중년인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뭐야?”
 “무슨 일이 생긴 거야?”
 갑자기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리더니 빗줄기를 뚫고 열 개의 신형이 나타났다.
 본시 흑룡채는 다섯 개의 조로 이루어져 있었다. 다섯 개의 조가 일률적으로 돌아가며 관도를 지키고 있었다.
 나타난 자들은 장노와 같은 추풍조(醜風組)였다. 그들은 초막 밑에서 비를 피하며 마작(麻雀)을 즐기고 있다 갑작스럽게 울리는 호적소리를 듣고 달려나온 것이었다.
 한결같이 손에는 산적이 아니랄까봐 무식하기 이를 데 없는 병기들을 들고 있었다.
 “에워싸라.”
 장노의 처참하게 뭉개진 얼굴을 바라보던 산전들이 일제히 몸을 움직여 중년인을 에워쌌다.
 중년인의 눈가에 언뜻 안타까움이 스치고 지나갔다.
 “길을 열어라. 이 몸은 너희들과 푸닥거리를 할만큼 한가하지 않다.”
 중년인은 낮은 저음으로 입을 열었다.
 비록 작은 목소리이기는 했지만 누구나 들을 수 있었다. 기이한 것은 좌명을 제외한 누구도 중년인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좌명만이 슬금슬금 꽁무니를 뒤로 뺐다.
 중년인의 눈에 잠시 애잔한 감정이 스쳤다. 그러나 나타난 산적들은 오해를 했다. 오해할 만도 했다.
 중년인의 눈에 비추어진 빛이 후회를 하는 것으로 착각했던 것이다.
 장노를 묵사발로 만든 후회라 생각했던 것이었고 그것은 곧 자신들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려 버렸다.
 “모두 놈을 포위하라.”
 손에 대부(大斧)를 든 놈이 소리를 지르자 제법 빠르게 몸을 움직인 산적들이 중년인을 에워쌌다. 중년인은 움직이지 않고 자신을 둘러싼 자들을 바라보았다.
 “길을 열어라. 초풍비가 네놈들에게 괄시를 당할 만치 녹슬지는 않았다.”
 초풍비!
 그는 작얼산에서 길을 떠난 지 불과 두 시진만에 봉변 아닌 봉변을 당하고 있었다.
 생각 같아서는 한번에 산적들을 쓸어버리고 싶었으나 과거 산적생활을 했던 아우들을 생각해서 함부로 죽일 마음이 일지 않았다.
 초풍비는 일부러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분명 그들 중 누군가는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이었다.
 비록 세월이 오래되었지만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는 자가 단 한 놈이라도 있다면 길을 열 것이 분명했다.
 도주(逃走)하려고 마음을 먹는다면 산적 천명이 달려와도 자신을 막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꽁무니를 말고 싶은 생각은 꿈에라도 없었다.
 자신이 과거 십 년 전에 가졌던 쩌렁한 명성을 생각하면 조무래기들과 푸닥거리를 한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도주한다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따끔한 훈계(訓戒)를 내리리라.’
 초풍비는 눈을 들었다.
 “죽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무식하게 생긴 파풍도(破風刀)가 머리를 쪼개며 떨어져 내렸다. 초풍비의 얼굴에 언뜻 어이가 없다는 듯한 희미한 웃음이 걸렸다.
 휙!
 초풍비의 몸이 앞으로 움직였다.
 한발자국 움직인 것 같았는데 그의 몸이 파풍도를 든 자의 앞에 있었다.
 “크아아악!”
 파풍도를 휘둘러 들어가던 산적이 이마를 감싸며 나뒹굴었다. 피풍도는 허공에서 빙글빙글 돌아 바닥으로 떨어졌다.
 무엇이 어찌 되었는지는 초풍비를 제외한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초풍비의 동작은 너무도 간단한 것이었다.
 파풍도를 휘두른 산적은 힘을 모으기 위해 등뒤에서부터 큰 곡선을 그리며 그어왔고 그 시간은 극히 짧았다.
 산적의 용기는 가상했지만 초풍비처럼 강한 내공을 익힌 내가고수(內家高手)에게 등에서 앞으로 쏘아져 오는 시간은 수십 명을 죽일 수도 있는 시간이었다.
 초풍비는 번개처럼 쏘아갔고 손바닥을 펼쳐 파풍도를 잡은 손을 허공으로 후려쳐 올렸다. 동시에 몸을 돌리며 팔 굽으로 산적의 얼굴을 후려친 것이었다.
 너무도 빨라 산적들은 다만 한 발 다가간 것으로만 느꼈을 뿐이었다.
 쿵!
 둔탁한 소리가 들리고 산적의 몸이 물기 흥건한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죽여버리겠어.”
 파풍도를 들었던 사내는 급히 몸을 움직여 땅바닥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것도 잠시, 그의 얼굴이 참혹하게 변해버렸다.
 퍼퍽!
 둔탁한 소리가 들리고 산적은 다시 허공으로 날아갔다. 날아간 거리는 삼 장이었다. 온몸에 이는 충격으로 그는 사시나무처럼 떨었다.
 “우웩!”
 낙상(落傷)의 충격만으로도 가슴에서 피가 솟아오르는지 그는 입을 벌리고 헛구역질을 토했고 누런 위액(胃液)과 불그스름한 피를 게웠다.
 과도한 충격으로 몸에 흐르는 기가 깨어졌는지 얼굴이 붉게 물들어갔다.
 자세히 보면 그의 얼굴에 가는 선이 수십 줄기나 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전사경(纏絲勁)의 일종으로 팔로 상대를 칠 때 강한 회전력(回轉力)을 일으켜 돌려 찍기 때문에 나선형의 상처가 남기 마련이었다.
 “우우! 놈을 죽여라.”
 누구인지 불분명한 고함소리가 들리고 일곱 개의 병기가 일제히 초풍비를 산산조각으로 만들 것 같은 강한 기파(氣波)를 뿌리며 밀려들었다.
 ‘귀찮은 파리 떼로군.’
 초풍비는 빠르게 일을 마무리 짓는 것이 좋다는 생각을 했다. 어차피 그들을 격퇴시키기로 했다면 질질 끌어서 좋을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초풍비는 양손을 벌려 머리위로 삼각형이 되게 모았다. 일곱 개의 병기가 지척에 다가와 있었다.
 초풍비는 급히 몸을 돌려 다가드는 병기를 피했다.
 병기를 피한 그의 몸이 풍차(風車)처럼 회전을 일으켰다. 순식간에 그의 모습이 흐릿하게 보였다. 그러나 내공을 사용한 것은 아니었다. 만약 내공을 사용했다면 그가 회전하는 속도는 열 배 이상 빨라졌을 것이었다.
 “중앙을 찔러라.”
 “머리도 공격해라.”
 산적들이 당황했는지 제각각 소리를 질렀다.
 물러서기에는 이미 늦었다는 것을 그들도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산적들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떠나지 않았다.
 초풍비가 한곳에 고정된 모습으로 회전을 일으켰을 뿐 그들을 공격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이젠 틀림없이 죽였다’하는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후회는 빨라도 늦는다.”
 산적들이 드리운 병기의 그물 속에서 한소리 호통이 울려 나왔다. 정신없이 병장기를 휘둘러가던 산적들의 얼굴에 두려움이 어렸다.
 퍼퍼퍼퍽!
 갑자기 울려나온 소리는 살을 가르고 뼈를 자르는 소리가 아니었다. 마치 가죽으로 만든 북을 두드리는 듯한 둔탁한 소리였다.
 “쿠악!”
 제일먼저 퉁겨 나온 자는 이십 근이 나가는 철부(鐵斧)를 든 자였다. 그는 다리를 움켜쥐며 이 장을 날아갔는데 한번 나뒹군 후에는 일어서지 못했다.
 다리가 부러졌는지 제비새끼처럼 끙끙거리고 있었다.
 철퍼덕! 털썩!
 뒤이어 나뒹구는 두개의 신형은 머리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들이 들었던 대감도(大坎刀)와 철퇴(鐵槌)는 이미 허공으로 날아갔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그들도 눈초리가 흐트러진 상태로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너무나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라 그들 모두 어안이 벙벙한 모습이었다.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둔탁한 소리가 연속으로 들리더니 네 개의 신형이 허공을 날았다. 마치 날개 달린 날짐승처럼 날아간 산적들은 한결같이 신체의 일부가 상처로 물들어 있었다.
 그리 심한 상처는 아니었고 치명적이지 않아 죽지는 않겠지만 최소한 한 달은 요양(療養)해야 기능을 발휘할 수 있을 정도의 상처가 그들의 몸에 남았다.
 “이······ 이건······.”
 싸움에 참가하지 않았던 좌명은 그만 입을 다물고 말았다. 아니 반대였다.
 입을 하마처럼 벌리고 입 속으로 들어가는 빗물을 받아 마시고 있었다. 턱뼈가 빠졌는지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처음 있는 경험이었다.
 기가 막히는 일이었다.
 작얼산에서 천하에 두려울 것이 없다던 자신들이 단 일합에 무너졌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것도 일곱 명의 합공(合攻)이 아니었던가?
 좌명은 사내를 바라보았다.
 사내는 여전히 무심한 얼굴로 서 있었다. 언제 어떤 일이 있었느냐는 듯한 표정이었다.
 “무슨 일이야?”
 갑자기 들려온 소리.
 마치 탁한 술에 목구멍이 젖은 듯 들리는 소리가 들리고 언덕에서 철퍼덕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 오는군.’
 좌명은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언덕 위에는 초막이 있었고 막주라 불리는 산채의 셋째 두령이 기거하고 있었다. 그토록 탁하고 거친 음성은 오로지 그자의 목소리뿐이었다.
 시간만 있으면 부하들을 모아놓고 한때 자신이 무림에서 칠절검예(七絶劍藝)라 불렸다고 침을 튀기며 열을 올리는 등하명(鄧河皿)이 바로 그였다.
 등하명은 비에 젖어 철퍼덕거리는 땅을 밟으며 마구 달려왔다. 어림잡아도 이 백 근은 나갈 것 같은 몸집이 구르지 않는 것이 신기했다.
 “어떤 개망나니 아들놈이냐.”
 등하명은 미친 듯 달려 초풍비의 앞에 떡 하니 버티고 섰다. 그의 인상이 묘하게 비틀어지는 것을 초풍비는 멍한 시선으로 지켜보기만 했다.
 처음 소리를 지를 때와는 달리 등하명의 인상은 차갑게 식어 있있다. 차갑게 식었다고 하기보다는 새파랗게 얼굴이 얼어 있었다.
 “혹시?”
 “나를 아는가?”
 초풍비는 나직하게 물었다.
 등하명의 눈이 도르르 굴렀다.
 그의 눈이 구르는 곳이 만약 쟁반 위였다면 정말로 소리가 들릴 것 같았다. 한참동안 눈알을 굴리던 등하명의 얼굴이 비굴하게 물들었다.
 “혹시······ 오지회(五指會)의 대형(大兄)이 아니십니까?”
 “눈알이 제대로 박혔구나.”
 초풍비는 처음으로 싸늘한 목소리를 흘렸다.
 말이 떨어지지 무섭게 기다렸다는 듯이 등하명이 철퍼덕 소리를 내며 무릎을 꿇었다. 주위에서 신음을 흘리던 모든 수하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등하명은 감히 얼굴도 들지 못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하도 가관이라 웃을 만도 한데 부하들은 얼굴이 굳어 버렸는지 웃을 수가 없었다.
 단 한번도 남에게 머리를 숙인 적이 없었던 등하명이었던 것이다. 설사 산채의 대두령에게도 그는 머리를 숙이는 따위를 하지 않는 안하무인격(眼下無人格)인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허리를 숙이고 머리를 숙이며 무릎을 꿇었다는 것은 애처롭기보다는 차라리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었다.
 
 
 3
 
 
 초풍비가 멀어진 뒤에도 등하명은 한참동안 몸을 일으키지 않았다.
 산적으로는 어울리지 않게 바단 옷을 차려입었지만 쏟아지는 빗줄기와 땅에서 튀어 오른 흙으로 그는 무논에서 한참동안이나 뒹군 똥개의 모습이 되어있었다.
 “삼 채주(三寨主)! 그는 갔습니다.”
 멀뚱하게 서 있던 좌명이 초풍비가 완전히 모습을 감추자 등하명에게 다가가 입을 열었다.
 “휴!”
 등하명은 긴 한숨을 불어내며 몸을 일으켰다. 그는 얼마나 긴장을 하고 있었는지 안색이 창백했다.
 육중한 몸을 숙이고 있었기에 얼굴에 피가 몰려 붉게 변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창백하다 못해 노랗게 변한 까닭을 좌명은 알 수 없었다.
 몸을 일으킨 등하명은 초풍비가 멀어져간 방향으로 한참동안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그가 누구입니까?”
 좌명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불었다.
 “그는 강호에서 가장 강한 자다. 그가 마음을 먹으면 아마도 중원을 평정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
 좌명은 입을 다물었다.
 그가 들었던 수많은 이야기 중에 가장 황당한 이야기를 듣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등하명은 누구도 추켜세우는 법이 없는 자였다. 그가 그렇다고 하면 그것은 맞는 말일 것이었다.
 좌명은 초풍비가 사라진 방향으로 얼굴을 돌렸다. 물론, 초풍비의 모습이 보일 리가 없었다.
 자욱한 물안개가 사람의 모습을 가려버렸고 설사 비가 오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가 얼마나 빠른 걸음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가 그리도 센 사람인가?’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사실이었다. 천하에서 가장 강한자가 자신의 눈앞을 스치고 지나가다니······
 “그가 왜 나타난 걸까? 소문에는 십 년 전에 은거(隱居)를 했다고 하는 것 같았는데.”
 좌명의 귀로 나직하게 중얼거리는 등하명의 목소리가 흘러들었다. 그의 목소리는 아직도 두려움이 가시지 않았는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2장 그가 나타난 것을 본 사람도 있다
 
 
 1
 
 
 대도하(大渡河)는 사천에서 장강(長江)으로 이르는 가장 큰 지류중의 하나였다.
 강이 얼마나 크기에 오죽하면 대자(大字)를 붙였을까마는 대도하가 사천에서 유명한 것은 물살이 거칠고 주변 경관이 수려한 때문이기도 했다.
 대도하는 청해에서 발원하여 대설산(大雪山) 기슭을 거쳐 아미산(峨嵋山)을 바라보며 장강으로 들어가는 긴 강으로 길이만도 근 삼천여 리에 이르는 강이었다.
 특히 대설산에서 흘러내리는 차가운 물이 대도하에 섞여 물이 차갑고 맑아 늘 은어(銀魚)와 빙어(氷魚)가 살며 하루도 쉬지 않고 유람객을 불러들였다.
 “사천제일수(四川第一水)는 대도하를 가리키는 말일 것이다.”
 많은 시인들과 묵객들이 대도하를 가리켜 그와 같이 말했다. 대도하는 사천의 명물이었다.
 오죽하면 아미파가 사천에 있는 이유가 대도하 때문이라는 소리가 강호에 흘렀다.
 아미파가 자리를 잡음으로써 그들이 자리한 산이 아미산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었고 아미산에 무파가 자라잡아 아미파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아무튼 아미파가 경치가 수려하기 때문에 대도하를 바라보는 곳에 자리를 잡은 것은 신빙성이 있는 이야기였다. 대도하(大渡河)라고 불리는 긴 강은 그렇게 사천을 감으며 휘돌아 장강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긴 우기가 끝나고 가을로 접어든 길목에서 산의 경치는 서로 뽐내기에 날이 저무는 줄 몰랐고 하늘거리는 갈대는 구름을 유혹하고 있었다.
 차가운 물이 안개가 되어 피어오르는 태양하구(太陽河口)는 대도하에서 유람선이 다다르는 마지막 나루터였다.
 수십 개의 나루터가 있지만 태양하구는 늘 붐볐다. 사천을 유람하는 사람들의 마지막 기착지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장강에 이르는 길목이었기 때문이었다.
 태양하구에서 배를 타려면 반드시 거처야 하는 주루(酒樓)가 있으니 사천의 명물로 이름이 높은 태양루(太陽樓)였다.
 태양루는 태양하구에 있는 하나뿐인 주루였다. 주루라고는 하지만 음식도 먹을 수 있고 잠도 잘 수 있는 말하자면 빈관(賓館)과도 같은 곳이었다.
 “하하하하! 어서 한 잔 들게나.”
 “그렇게 하자고. 그나저나 이제 장강으로 들어가 한 번 장사를 시작해야지.”
 오후의 태양루는 시끌벅적하기가 시장 같았다. 물론 이층까지만 시끄러웠지 삼층부터는 조용했고 품위가 있는 자들이 조용히 차를 음미하는 곳이었다.
 바위가 휘어질듯, 무너질 듯 자리한 강안(江岸)에 서 있은 태양루는 바위를 벽 삼아 지어진 오층 건물로서 강에서 보아야만 건물이 보이는 구조를 지니고 있었다.
 태양루에 이르는 길은 두 개로 강으로 이어진 길은 나루터였고 오층은 관도로 이어지는 길로 연결이 되어 있었다. 마치 하나의 긴 상자가 벼랑에 달라붙은 모양을 하고 있었다.
 한 사내가 이층의 주루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주루 내에서 술을 마시는 사람들 모두가 쌍쌍이었고 흔치않게 장사치들이 왁자하니 소란을 피우기는 했지만 사방 십여 장은 넘을 것 같은 주청(酒廳)에서 혼자 술을 마시는 자는 그 혼자 뿐이었다.
 “오늘도 허탕인 모양이군. 그가 장강을 따라 호북(湖北)으로 가자하면 오로지 이곳에서 배를 타야 하는데······.”
 사내는 술잔을 내려놓으며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허리에 이르는 긴 머리카락은 창(窓)으로 들어오는 바람으로 하늘거렸고 몇 날, 몇 칠을 깍지 않았는지 마구 뻗친 수염은 마치 산적을 연상하게 했다.
 사내는 초풍비였다.
 그는 사라진 초란의 발자취를 따라 작얼산에서 동쪽을 향해 이동하는 중이었다.
 그가 작얼산을 떠난 지 벌써 두 달의 세월이 흘렀다. 이미 사라진 여인의 뒤를 쫓는다는 것은 누구나 초조하게 만들고 쓸쓸함을 풍기게 마련이다.
 이미 흩어져 버린 흔적을 찾는 것은 장강에 빠져 파도에 실려간 어린이이의 초혜(草鞋)를 찾는 것이나 같았다.
 “이곳에서부터는 전혀 찾을 수가 없다.”
 초풍비는 긴 숨을 몰아쉬었다.
 태양하구에서 초란의 발자취는 끝나 있었다. 배를 탄 것인지 육로(陸路)를 선택했는지 아무 것도 알 수 없었다.
 그 동안 장강으로 흘러드는 삼십 칠 개의 지류를 건넜고 배를 타야하는 큰 강만 해도 다섯 개를 건넜다. 물을 건널 때마다 그의 발걸음은 수일씩 지체되고는 했었다.
 “이곳하고는 인연이 깊군. 내가 아우들에게 마지막 서찰을 보낸 곳도 이곳이었지.”
 초풍비는 나직하게 중얼거리며 대나무를 잘라 만든 술잔에 술을 따랐다. 맑은 옥향미주(玉香美酒)가 잔을 채우며 불그스름한 빛을 띠었다.
 오랜만에 형제들의 생각이 났다.
 초란을 만나 은거를 하기 위해 작얼산으로 들어가기 위해 배를 내린 곳이 태양하구였다.
 그는 초란이 원하는 대로 은거를 선택했고 아우들을 버려야 한다는 죄책감을 버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태양루에서 한 통의 서찰을 써서 인편(人便)으로 오지회에 남아있던 아우들에게 보냈던 것이었다.
 당시 아우들은 사천의 남부에 치우쳐져 있는 금불산(金佛山)에 머물고 있었다.
 의욕이 넘쳤던 아우들은 금불산에 오지회의 장원을 짓느라 분주했고 칠월 보름을 기준으로 하여 모두가 만날 약속이 되어 있었다.
 금불산은 귀주성(貴州省)과 인접하고 있었고 호남(湖南), 호북(湖北)과 모두 가까운 지역이었기에 아우들이 선택한 곳이었다. 더구나 금불산은 장강과도 가까워 장강을 마음대로 이용할 수도 있으리라는 것이 아우들의 생각이었다.
 “벌써 십 년 전의 이야기로군.”
 초풍비는 잠깐 생각에 젖어 있었다. 벌서 두 시진째였다. 그는 오늘 하루만도 반나절동안이나 태양루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사흘이 지났다.
 태양루에서 한사람을 기다린 지는 이미 사흘로 접어들고 있었다. 그는 반드시 만나야 했다. 초란의 행방을 추적할 수 있는 자는 오로지 그 뿐이었다.
 초풍비는 창 밖으로 눈을 돌렸다.
 그가 바라보는 곳은 대도하의 푸른 물결이 태양을 받아 은파(銀波)를 번뜩이고 있었다.
 어제저녁에 보았던 붉은 빛의 낙조(落照)와는 다른 운치가 느껴졌다. 아니, 하루하루 대도하를 바라보며 느낌이 바뀌고 있었다.
 하루에 네 척이 들어오고 나가는 태양하구에서 오늘 떠날 배는 이제 마지막 한 척이 남았다. 그 배가 떠나버린다면 또다시 하루를 기다려야 했다.
 “아우들을 불러내면 일이 수월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들에게 또다시 짐을 지워주고 싶지는 않다.”
 초풍비가 자신의 아우들을 불러낸다면 초란을 찾는데 많은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을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마음이 허락지 않았다.
 이미 십 년 전에 얼굴도 보여주지 않고 훌쩍 떠난 자신이 아닌가?
 아마도 아우들은 진한 아픔을 지니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것도 아니라면 분노로 심장이 타들어 갔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들도 많이 변했겠지.”
 막내의 곰 같은 모습이 술잔에 어렸다. 유난히 그를 따르던 막내아우는 아마도 그를 찾다 지쳐 들판에 쓰러져 버렸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달리 생각해 보면 앞으로는 어떤 일이 있어도 그들 앞에 나설 자격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격한 의미에서 초풍비는 그들을 배신(背信)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들도 이제는 나이를 먹었겠지. 그나저나 결혼들은 다 했는지 모르겠군.”
 초풍비는 불현듯 자신이 나이를 먹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강호에 이름을 날릴 때만 하더라도 이십대였다.
 무림을 누비는 후지기수들 중에서 첫째로 치는 무명(武名)뿐만이 아니라 그가 강호를 횡협(橫俠)한 지 삼 년만에 그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그런 그가 나이 삼십이 되던 해에 그는 초란과 사랑을 이루기 위해 무림을 떠났다.
 벌써 십 년 전의 일이니 나이가 사십을 넘어 버렸다. 아우들도 이제는 삼십대 후반이었다.
 “자 한 잔 마시자고?”
 갑자기 걸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눈을 들어보니 키가 장대같이 큰 사내와 옆으로 퍼져 키보다 살찐 것처럼 보이는 두 사내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들어서고 있었다.
 그들은 생긴 모양만큼이나 독특한 복장에 독특한 병기를 지니고 있었다.
 키가 장대처럼 커 한눈에 보아도 구 척은 족히 되어 보이는 사내는 사십대의 나이로 보였는데 피처럼 붉은 홍포(紅布)를 걸치고 있었다.
 손에는 자신의 키보다 큰 대도(大刀)를 들고 있었다. 대도의 도신(刀身)은 이 척이 넘어 보이는데 구 척의 키 위로 튀어나와 있었다.
 그 옆의 난쟁이는 더욱 가관이었다. 등이 불룩하게 솟아오른 것으로 보아 그는 원래부터 난쟁이가 아니라 등을 다쳐 성장이 멈춘 것으로 보였다.
 난쟁이는 알록달록한 색동옷을 입고 있었다. 마치 유랑가극단(流浪歌劇團)의 원숭이 같은 모습이었는데 허리에는 어울리지 않게 장도(長刀)가 걸려있었다.
 오 척이 되지 않는 그의 몸보다 컸으면 컸지 작지 않은 장도였다.
 장도가 도신(刀身)을 숨긴 도갑(刀匣)의 맨 밑바닥에는 철제로 만들어진 조그만 바퀴가 달려있어 그가 걸을 때마다 도갑이 바닥에 잘 굴리도록 했다.
 ‘흠! 저들은 소문에 듣던 장단이괴(長短二怪)가 분명하군. 그런데 저들도 그가 필요하지는 않겠지.’
 초풍비는 신경이 곤두섰다.
 그들에 대한 소문은 작얼산에서 먼 거리를 돌아 태양하구에 이르는 동안 나불거리기 좋아하는 상인들과 많은 무인들로부터 들은 적이 있었다.
 그들은 본시 중원의 무림인이라고 하기보다는 변방(邊方), 서장(西藏)의 무인들이었다.
 서장 홍교(紅敎)의 이단자(異端子)로 낙인찍힌 자들인데 오래도록 홍교에서 무공을 익혀 서장에서는 그 적수가 없으리 만치 가히 놀랄만한 무공을 지니고 있다고 알려졌다.
 그들이 왜 홀연히 서장을 떠나 사천으로 들어섰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막연하게 중원을 가로지르고 있다고 믿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초풍비는 한동안 눈을 가늘게 뜨며 그들을 주시했다.
 초풍비가 보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들은 주위를 한번 둘러본 뒤 비어있는 자리를 찾아 앉아 점소이를 불러 음식을 주문하고 있었다.
 “의외로 무인들이 많군.”
 장단이괴 중의 난장이, 따로 부르기는 단구도괴(短軀刀怪)라 불린다는 요달각(療達覺)이 일부러 들으라는 듯 소리를 내었다.
 초풍비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과연, 주루에 앉은 사라들 중 반수가 무인이었다.
 장사치로 혹은 농부로 모습을 감추고 있지만 눈이 형형하게 빛나고 동작들이 가벼운 것으로 보아 단구도괴의 말은 틀림없는 것 같았다.
 “모두 그가 오기를 기다리는 것 같군.”
 장단이괴중 키가 큰 사나이, 장구철도(長驅鐵刀) 저유평(猪柳萍)이 거들었다. 그들이 입을 놀리자 그들에게 눈을 모았던 십 수명의 사람들이 듣지 못한 척 음식을 먹었다.
 ‘그라고? 혹시!’
 초풍비는 그들이 말하는 그가 자신이 기다리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가 알아낸 바에 의하면 그는 서장에서 도주를 시작하여 청해를 건넜다고 했다.
 초풍비가 기다리는 자는 청해에서 한동안 숨어 지내다가 더 이상 도주할 곳이 마땅치가 않자 청해와 감숙(甘肅)을 나누는 적석산(蹟石山) 줄기를 따라 사천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사천으로 진입했다면 십중팔구 태양하구로 들어올 것이 틀림없었다. 누구나 알 수 있는 추론이었다.
 그렇다면 서장의 무인들인 그들이라고 사천에 들어오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들도 충분히 그를 따라 사천으로 들어왔을 수도 있었다.
 적지 않은 무림인들이 한사람을 놓고 쟁탈전(爭奪戰)을 벌이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건 달갑지 않은 불유쾌한 일이 될 것이 틀림없었다.
 초풍비가 생각하기에 그가 가장 필요한 사람은 자신이었다.
 초풍비는 사방을 둘러 보았다.
 여기저기 무림인들로 측정되는 자들은 많았지만 초풍비가 얼굴을 아는 자는 없었다. 너무도 오랫동안 무림을 떠나있었기에 세상이 너무도 변한 것 같았다.
 “나타났다.”
 갑자기 주청이 소란스러워졌다. 사람들의 눈의 빛났다. 그것은 한눈에 파악할 수 없는 감정들이었다.
 갑자기 술렁이던 주청이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마치 바늘 하나만 떨어지더라도 천둥 같은 소리가 울릴 것 같은 침묵이 흘렀다.
 모두의 시선이 계단으로 향했다. 시선이 모아지는 곳은 일층에서 이층으로 오르는 계단이었다. 모두의 시선이 열기를 담고 있어 나무계단이 타버리지나 않을까 의심이 들 정도였다.
 하나의 인형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처음에 보인 것은 챙이 넓은 죽립(竹笠)이었다.
 죽립은 그늘을 만들어 나타난 자의 코 위로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전신에는 날아갈 것 같은 몸에 달라붙는 흑의경장(黑衣輕裝)을 입었지만 오랜 여행을 했는지 어깨 위에 먼지가 뿌옇게 앉아있었다.
 나타난 사내는 발걸음도 지쳐 보였다.
 ‘소문과 똑같은 모습이로군.’
 초풍비는 침을 삼켰다.
 그가 기다리던 사나이가 나타난 것이었다.
 그가 사흘동안 고생하며 기다리던 사내, 만리당혜(萬里唐鞋) 풍무영(風無影)이 태양루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2
 
 
 풍무영은 피곤해서 쓰러질 지경이었다.
 서장의 오지마을 파청(巴靑)을 출발해 근 십일만에 청해의 적석산에 다다랐던 그는 오일이 걸리지 않아 태양하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적석산과 태양하구는 근 천리길이나 되는 먼길이었다.
 범인이라면 십일은 걸릴 길이었다.
 그것도 적석산과 민산(珉山)으로 이루어진 산락군을 주파하는 무서운 길이었다.
 거리 상으로는 범인이 열흘이 걸릴 거리지만 실제로는 보름이 걸릴지도 모르는 험한 길이었다.
 그가 그리도 빨리 움직일 수 있는 것은 그의 이름앞에 붙은 무림명호(武林名號)가 대신 말해주듯 뛰어난 경공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었다.
 풍무영은 무공에서 일가를 이루지는 못했으나 경신법은 놀라운 성취를 이루고 있었다.
 “휴!”
 너무도 지쳐 눈이 감길 지경이었다. 풍무영은 앞뒤 재지 않고 비어있는 자리에 엉덩이를 디밀었다.
 모든 자리가 꽉 차있었는데 오로지 한가한 자리는 그가 앉은 자리 뿐이었다. 더구나 창가였기 때문에 장강의 경치가 한눈에 보였다.
 “한 잔 드실 텐가?”
 갑자기 들려온 소리에 풍무영은 눈을 들었다.
 “응?”
 대답을 하기도 전에 잔이 놓여지고 분홍빛이 나는 술이 딸려졌다.
 ‘에라 모르겠다.’
 풍무영은 술잔을 들이켰다. 가슴이 시원해지며 피로가 한꺼번에 날아가는 것 같았다.
 “누구요?”
 풍무영은 눈을 들었다.
 처음에는 빈 자리인 줄 알았는데 언제부터인지 그의 앞, 탁자건너에는 한 괴인(怪人)이 앉아 있었다. 그랬다. 괴인이라고 밖에는 할 수 없는 기이한 사람이었다.
 우선 긴 머리가 눈을 끌었다.
 엉덩이까지 자랐을 것 같은 긴 머리칼은 언뜻언뜻 흰머리가 섞여 있었다.
 지저분하기로 하면 머리만으로 만족을 못했는지 얼굴은 수염이 뒤덮여 있었다. 자세히 파악할 수는 없었으나 얼굴의 수염을 밀면 제법 준수(俊秀)할 것 같은 사내였다.
 풍무영이 유난히 그를 가슴에 심은 것은 눈이었다. 아무리 집중을 해도 사내의 눈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 없을 것 같이 깊고도 착 가라 앉은 눈이었다.
 인간의 눈은 마음의 창이라 했다.
 눈을 보면 그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고 심지어 무인의 눈은 공격방향을 나타내 주기도 했다. 눈을 보면 상대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일이 다반사(茶飯事)였다.
 어찌된 일인지 사내의 깊게 가라앉은 눈에서는 아무 것도 알아볼 수가 없었다.
 “한 잔 더 할 텐가?”
 “주십시오.”
 풍무영은 왠지 가슴이 포근해졌다.
 상대가 누구이건 간에 문제가 될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요한 것은 사내가 마음이 악독하지만 하지 않으면 되었다.
 그가 그같이 생각하는 것은 풍무영은 오로지 뛰어난 경공 하나로 강호를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한결같이 그를 원했다. 그를 위해주는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었다.
 사람들이 그를 칭송하고 후대했다. 그것은 목적이 있어서였다.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의 빠른 다리를 이용해 자신들의 사리사욕(私利私慾)을 채우려 해서였다.
 그를 진정한 무인으로 여겨주고 대우해주는 무인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벌써 삼 년이 흘렀다.
 나이 스무 살이 되던 해에 가문이 몰락(沒落)하고 어둠 속으로 도주해 목숨을 구한 뒤부터 강호를 싸돌아 다녔지만 얻은 것이라고는 발이 빠르다고 만리당혜라는 이름뿐이었다.
 ‘어, 저자까지 나타나다니······.’
 풍무영의 눈이 붉게 물들었다. 그것은 경악이었다. 술을 들이키던 풍무영의 몸이 굳었다.
 한 사나이의 모습이 풍무영의 눈에 들어왔다. 나이는 삼십이 채 되지 않아 보였고 전신에는 하늘처럼 푸른 남색의 넓은 장의(長衣)를 입고 있었다.
 잘록해 보이는 허리에는 대나무가 그려진 넓은 요대(腰帶)를 차고 있었고 특이하게도 양쪽 팔에 가죽으로 만든 토시를 감고 있었다.
 “신경 쓰지 말고 마시게.”
 풍무영은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듯한 소리를 들었다. 목소리의 주인은 풍무영과 마주앉은 괴인이었다. 풍무영은 그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다.
 풍무영이 본 자는 사천당문(四川唐門)의 이손(二孫)인 당천엽(唐天燁)이었다. 당천엽은 지루할 정도로 서장에서부터 그를 추적하고 있었다.
 풍무영은 괴인이 따라주는 한 잔의 술을 들이켰다. 연거푸 마 신 술이 그를 불안에서 해방시켰다. 서서히 풍무영의 몸과 마음이 안정을 찾아갔다.
 기이한 것은 괴인이 누구인가 하는 점이 하나도 궁금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쫓기는 그로서는 자신 주위에 몰려든 한사람 한사람이 모두 궁금하고 경계의 대상이 되어야 하겠지만 기이하게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괴인이었다.
 그가 만약 강호에 대한 풍부한 지식이 있었고 괴인이 초풍비였다는 것을 알았다면 아마도 그는 혼이 유체이탈(遺體離脫)을 해 십리는 달아날 것이었다.
 한동안 술을 마시던 풍무영은 갑자기 눈을 크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의 눈에 하나의 그림자가 들어왔다.
 “저 자가 벌써 쫓아오다니.”
 풍무영의 얼굴이 탈색되었다.
 항상 마음속으로 생각했지만 너무도 놀라 입술을 비집고 말이 되어 튀어나오는 것은 경악이었고 두려움이었다. 풍무영이 얼마나 두려움에 젖어있는가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풍무영이 바라보는 곳에는 한 명의 인물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위층으로 오르는 계단이었는데 아마도 그는 오층에서 거꾸로 내려오는 것 같은 모습으로 서 있었다.
 마치 강시(疆屍)처럼 깡마른 노인이었다.
 얼굴은 핏기가 말라 창백해 보였고 얼굴 전면에 그물처럼 얽힌 주름살은 적어도 그가 백살은 넘은 것으로 추측할 수 있도록 했다.
 턱이 매의 부리처럼 뾰족하여 찢어진 눈과 함께 인상을 결정하고 있었다.
 특히 휘적거리며 걸을 때마다 드러나는 손이 심상치가 않았다. 손톱은 보이지 않고 번쩍거리는 빛이 반사(反射)가 되었는데 그때마다 풍무영은 목을 움츠렸다. 심지어는 그가 몸을 돌릴까 두려워 목을 숙이기도 했다.
 “그가 누구기에 그리도 두려워하나?”
 괴인, 초풍비는 술을 마시며 담담하게 물었다.
 풍무영은 눈을 들어 자신의 앞에 앉은 초풍비를 바라보았다. 그제야 그는 초풍비의 허리에 부러진 반검이 달려있다는 것을 알아보았다.
 초풍비가 빙그레 웃었다.
 아무런 사심(邪心)이 없는 웃음이었다. 풍무영도 엉겁결에 웃고 말았다.
 “그는 무서운 사람이지요. 그는 나를 서장에서부터 추적하고 있답니다. 혈응마조(血鷹魔爪) 봉조환(奉照奐)은 무서운 사람입니다.”
 풍무영은 말을 마치자 다시 몸을 움츠렸다.
 그가 얼마나 두려워하는지는 그가 행동하는 모습만 보아도 알 것 같았다.
 굳이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의 모습은 결국 그는 서장에서부터 봉조환을 피해 도주를 계속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었다.
 갑자기 봉조환이 고개를 돌렸다.
 그는 시선을 한곳에 던져두고 움직이지 않았다.
 그가 눈을 고정시킨 곳은 풍무영이 고개를 수그린 탁자였다. 봉조환이 풍무영을 바라보든지 말든지 초풍비는 느긋한 표정으로 술잔을 들이키고 있었다.
 봉조환은 얼굴에 키득거리는 듯한 웃음을 흘리며 풍무영을 향해 다가왔다.
 “제길!”
 눈을 들던 풍무영은 봉조환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느끼고 터져 나오는 욕설을 뿌렸다. 이제 더 이상 도주할 곳도 없다는 체념이었다.
 봉조환이 다가오자 풍무영은 얼굴을 탁자에 처박으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마치 죄를 지은 아들이 어머니 앞에서 벌벌 떠는 모습과도 같았다.
 봉조환은 순식간에 다가왔다.
 “비켜, 빌어먹을 놈들아.”
 콰지지직―
 봉조환은 다가서다 발에 걸리는 물체가 있자 그대로 걷어차 버렸다. 그것은 주탁(酒卓)이었고, 날아간 주탁은 벽에 부딪치며 산산이 부서졌다.
 갑자기 주청이 얼어붙었다.
 “어서 가자!”
 “우리도 그만 갑시다.”
 갑자기 얼어붙은 냉기에 질린 수많은 주객들이 서둘러 계산대에 은자를 던지고 계단으로 물러갔다.
 주객들뿐만이 아니었다.
 턱이 가슴까지 늘어져 욕심 많게 생겨 보이는 주청의 주인도 계산대에서 허겁지겁 일어나 걸음아 날 살려라 삼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통해 도주를 해버렸다.
 황금을 밝히는 자도 목숨이 아깝다는 것은 아는 것 같았다. 그런 모습들이 너무도 오랜만이고 웃음을 참을 수 없어 초풍비는 피식하고 웃었다.
 주객들이 아우성을 지고 미친 듯 도주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십여 명에 이르는 주객은 남아 술을 마셨다.
 ‘흠! 저들의 목적은 모두 한가지로군.’
 초풍비의 얼굴에 웃음이 옅게 흩어졌다.
 초풍비의 생각대로 남은 자들은 모두 무림인들이었다. 그들은 태연함을 가장하며 술을 마시고 있지만 자세히 보면 쉴 사이 없이 눈알이 돌아가고 있었다.
 뿐만이 아니라 그들 모두는 크든 작든 간에 병장기(兵仗器)를 소유하고 있었다. 드러나는 병기도 있었지만 드러나지도 않는 병기를 지니 자도 있었다.
 이미 초풍비는 그들이 지닌 병기를 모두 파악하고 있었다. 병기를 보면 사용하는 무공을 짐작할 수 있었다. 뿐만이 아니라 때로는 가문과 문파(門派)까지도 드러나는 법이었다.
 초풍비가 냉정하게 파악해본 결과 구파일방(九派一幇)의 제자는 보이지 않았다. 중원을 손아귀에 넣고 좌지우지(左之右之) 한다는 육대세가(六大世家)에서도 단지 사천당가의 후손만이 모습을 보일 뿐이었다.
 “날 따라가자.”
 봉조환은 다가서자 다짜고짜 손을 내밀었다.
 풍무영의 몸이 가늘게 떨렸다. 풍무영은 초풍비를 흘끔 쳐다보았다.
 그는 오래 전부터 이 괴인이 한 수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초풍비는 술잔을 내려놓았다.
 “어리석군. 만리당혜를 끌고 저자들을 모두 물리칠 수 있다는 것은 아닐텐데.”
 초풍비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모두 들을 수 있는 정도의 소리였다. 어찌 들으면 봉조환이 풍무영을 데리고 가니 막으라는 소리 같기도 했다.
 봉조환이 갑자기 몸을 돌려 주청을 쏘아보았다. 그의 눈에서는 파란 광망(光芒)이 줄기줄기 쏟아졌다.
 한참동안 주위를 훑어보던 봉조환의 입 꼬리가 말아 올라갔다. 그도 한눈에 주청에 모여 앉은 모두가 풍무영을 노리고 몰려들었다는 것을 안 것 같았다.
 “어떤 놈이 감히 내일을 방해하느냐?”
 기선(機先)을 잡으려 했음인가?
 봉조환은 벽력같이 소리를 내질렀다.
 그의 목소리에 강을 조망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반월창(半月窓)들이 마구 흔들렸다. 주청이 웅웅 소리를 매며 흔들리는 것 같은 고함소리였다.
 늙은이치고는 무서운 고함소리였다.
 “늙은이가 너무 설치는군.”
 말이 끝나기가 바쁘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울렸다. 봉조환은 번개처럼 몸을 돌렸다. 봉조환의 눈이 멈춘 곳에 사인(四人)이 음충맞은 눈웃음을 뿌리며 서 있었다.
 한눈에 보아도 그들이 결코 약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느낌을 들게 했다. 한결같이 등에 둥근 방패를 매고 있었는데 햇빛에 말린 조개껍질처럼 흰색이었다.
 허리에 덜렁거리는 삼척길이의 병기는 한결같이 유엽도(柳葉刀)였다. 방패와 합쳐지면 무서운 위력을 나타내리라는 것은 충분히 인식이 가능했다.
 그들은 쌍둥이 같았다.
 한결같이 하관(下官)이 처지고 눈초리가 말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독한 기운을 느끼게 했다. 아무리 보아도 그들은 일란성 쌍둥이가 분명했다.
 “오호! 건방지기가 호랑이의 코털을 건드린다는 대산파(大山派)의 쌍둥이들인가?”
 “저들이 팽가(彭家) 형제(兄弟)였구나.”
 “저들은 사천무인이 아닌데 이곳까지 오다니······.”
 봉조환의 입에서 그들이 누구인지 밝혀지자 여기저기에서 가벼운 소란이 일어났다. 그러나 그들의 신경전에 끼어 들기는 싫었는지 일어서는 자는 없었다.
 나타난 사인 중 가장 앞에 섰던 사내가 얼굴을 찡그렸다. 한결같이 사순(四旬)은 되어 보이는 중년인들이었다. 그는 허리에 붉은 요대를 하고 있었다.
 그들 쌍둥이들은 하나같이 검은 무복을 걸치고 있었는데 그가 걸친 붉은 색 요대가 가장 강렬했다. 그들 쌍둥이는 각각 다른 요대를 매고 있었는데 요대의 색이 그들의 이름과 형제 서열을 나타내고 있었다.
 붉은 요대를 맨 자가 그들 중 맏형으로 단월도(斷月刀) 팽무강(彭武剛)이라 불렸고 녹색의 요대를 맨 자는 둘째로 파월도(破月刀) 팽자강(彭滋剛)이라 불렀다.
 조금 야윈 듯 보이는 자로 허리에 청색의 요대를 맨 자가 쌍둥이들 중의 셋째로 파수도(破水刀) 팽현강(彭鉉剛)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허리에 흰색의 요대를 맨 자가 막내로 파천도(破天刀) 팽염강(彭炎剛)이라 불리는데 그가 가장 무서운 무공을 소유하고 있다고 소문이 나 있었다.
 “우후후후! 늙은이 우리 대산파를 그렇게 가볍게 보다가는 큰 코 다칠텐데.”
 팽무강이 나직하게 음소를 뿌렸다. 봉조환의 얼굴이 수치로 물들었다. 그럴 이유가 그들 사이에는 충분했다.
 “빌어먹을 놈들! 주둥아리를 함부로 놀리다니······ 네 놈들은 나서지 말아야 했다.”
 봉조환이 이를 갈았다.
 대산파는 설립된 지 십 년이 되지 않은 문파로 청해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지만 누구나 함부로 대하기에는 너무 커져버린 문파였다.
 십 년만에 청해의 힘을 모은 그들은 무려 삼 백 명에 이르는 문인들을 가지고 있었다. 더구나 대산파의 총수는 한때 청해무림의 우상이었던 청해노조(淸海老祖) 장무백(張武伯)이었다.
 봉조환이 수치스러워하는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그 이유와 원인을 찾아보면 바로 대산파에 대한 은원(恩怨)이었고 그들로 인해 봉조환이 강호를 유랑할 수밖에 없도록 운명지어진 것이었다.
 봉조환이 몸을 담았던 청해탈방(淸海奪幇)은 대산파에 겨루어 끝까지 항전했던 문파였다. 결국은 무너지게 되었지만 청해탈방의 장로였던 봉조환은 대산파에 대한 불같은 원한을 가지고 있었다.
 “크! 잘 만났다. 이제야 이곳에서 네놈들의 살가죽을 벗길 수 있게 되었구나.”
 봉조환은 이를 갈아붙였다.
 그에게 풍무영은 뒷전이 되었다. 봉조환은 주루의 중앙으로 나가 그들 쌍둥이들과 마주섰다.
 쌍둥이들의 눈이 가볍게 흔들렸다.
 비록 눈이 흔들리기는 했지만 믿는 구석이 있었는지 얼굴에 웃음을 띄웠다. 쌍둥이 팽가 형제들은 봉조환을 바라보며 은근한 경멸을 보내고 있었다.
 “물론. 언젠가는 네놈을 죽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기회가 나쁘지는 않군. 얘들아!”
 “대형, 기다리고 있었소이다.”
 팽무강의 명이 떨어지자 나머지 형제들이 일제히 유엽도를 뽑았다. 유엽도를 뽑은 그들은 등에서 조개껍질 같은 방패를 끌러 왼팔에 끼웠다.
 방패의 크기는 그리 크지 않아 보였다.
 방패는 둥근 원형이었는데 사방 일 척의 넓이로 팔뚝에 고정되게 만들어진 모습이었다. 그러나 무엇으로 만들어진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강한 재질로 만들어져 웬만한 병기로는 격파할 수 없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더구나 방패의 면은 날카로워 보였다. 때로는 강한 위력을 발휘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놈의 패합진(牌合陣)으로 나를 이길 수 있을 것 같으냐?”
 “물론이지.”
 봉조환의 날카로운 빈정거림에 역시 쌍둥이들이 빈정거림으로 대답했다.
 “그럼 어디 막아보아라.”
 분노의 음성을 뿌린 봉조환의 몸이 마치 제비가 날개를 치듯 수평으로 달려들었다.
 두 손이 허공으로 뻗어있었는데 한눈에 보아도 그의 손에 끼워진 철골조(鐵骨爪)가 무서운 위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철골조는 빳빳하게 세워진 모습으로 쌍둥이들을 향해 다가갔다. 독수리의 발톱처럼 구부러진 철골조가 허공에 무수한 빛의 편린을 뿌렸다.
 철골조는 순식간에 쌍둥이들의 면전에 이르렀다.
 봉조환의 응조권(鷹鳥拳)은 무림에서도 높이 칭송 받는 절기였다. 그가 손가락을 뻗으면 두 자 두께의 흑오석(黑烏石)도 부술 수 있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였다.
 소문의 진위야 어찌되었던 봉조환의 응조권이 무서운 것은 사실이었다.
 “합!”
 단월도 팽무강의 목소리가 울린 것은 봉조환의 철골조가 팽무강의 가슴에서 세 자 거리로 다가섰을 때였다. 기다렸다는 듯 쌍둥이들의 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팽무강은 무릎을 꿇고 앉으며 자세를 낮추고 조개껍데기 같은 방패를 이용해 안면을 가렸다. 그들이 사용하는 방패처럼 날이 있는 살상용 방패는 흔히 비패(飛牌)라 불렸다.
 결국 그들의 방패는 이름 그대로 방패로 사용이 되기도 하지만 어느 때인가는 병기로 사용된다는 뜻이기도 했다.
 방패는 넓이가 사방으로 자로 재서 한 자밖에 되지 않는 면적이지만 거의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몸이 가려졌다. 그보다 팽무강이 몸을 잘 웅크리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둘째인 팽자강도 빨랐다.
 팽자강은 급히 몸을 숙이며 팽무강의 오른쪽에 팽무강과 같은 모양과 자세를 만들었다. 그도 급히 몸을 말듯 웅크려 방패 뒤에 몸을 숨기고 말았다.
 셋째인 팽현강이라고 해서 다를 것이 없었다. 다른 것이라고는 그가 팽무강의 왼쪽을 막았다는 것 뿐. 마지막 팽염강은 팽무강의 머리 위를 방어했다. 날아드는 공격을 완벽하게 차단하는 방패의 진이었다.
 “허헛!”
 순식간에 이루어진 일이라 몸을 날린 봉조환은 몸을 멈출 수가 없었다.
 놀란 음성을 부린 봉조환은 급히 몸을 뒤집으며 두발로는 각각 팽자강과 팽현강이 가린 좌우측의 방패를 차며 손가락을 뻗어 팽염강의 방패를 훑어갔다.
 빠드드드드―
 손톱이 갈리는 것과 같은 거친 소리가 들리며 봉조환의 철골조와 방패가 부딪친 곳에서 파란 불꽃이 튀었다. 그러나 방패가 뚫릴 것 같지는 않았다.
 쌍둥이 팽가 형제들이 사용하는 방패는 금강석(金剛石)의 가루와 백금철(白金鐵)을 섞어 장공(匠工)으로 유명한 청해의 파공공(杷工工)이 만든 것으로 단단하기가 만년오석(萬年烏石)에 버금갔다.
 비록 봉보환의 철골조가 강호의 일절(一節)로 이름을 얻을 정도로 강하다고는 하나 방패를 뚫을 수는 없었다.
 비록 강한 방패라고는 하나 파고드는 봉조환의 철골조가 만만치 않았든지 쌍둥이들은 어깨를 들썩이며 무려 네 걸음이나 물러섰다.
 우지끈!
 강한 회오리가 일어나며 주청의 창이 부서져 날아가고 주탁과 술잔들이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순식간에 주청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주객으로 모습을 감춘 무인들도 강한 여력에 움찔하며 몸을 움직이기도 했고 회심의 눈초리로 웃고 있는 자들도 보였다. 순식간에 쌍둥이들과 봉조환은 주청을 살벌한 긴장의 도가니로 몰아가고 있었다.
 “살격(殺擊)!”
 갑자기 몸을 가린 방패 속에서 팽무강의 고함소리가 들리고 네 자루의 유엽도가 허공을 향해 솟구치고 앞으로 뻗어 나와 공격을 시작했다.
 방패가 맞닿는 부분에는 미세한 간격이 있었고 그 사이로 유엽도가 솟구친 것이었다.
 “어라! 빌어먹을 놈들.”
 급격한 반전에 놀라움을 토한 봉조환은 급히 몸을 뒤집으며 발로 방패를 박차고 공중제비를 돌아 몸으로 날아드는 유엽도를 피하며 물러섰다.
 사각!
 빠르게 물러섰지만 완벽하지는 않았다.
 봉조환의 가슴앞섶이 쩍 벌어졌다. 다행스러운 것은 옷만 베어졌을 뿐이라는 사실이었다. 몸이 빨랐기에 망정이지 한치의 오차라도 있었다면 봉조환의 가슴은 늑골이 베어지고 말았을 것이었다.
 “우하하하하! 어리석은 놈! 죽을 각오가 되었느냐?”
 몸을 일으킨 팽무강이 호기가 철철 넘치는 거친 호령을 터트렸다.
 한번의 충돌에서 우위를 점했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기고만장(氣高萬丈)한 모습이었다.
 개개인으로는 봉조환에게 감히 상대할 염두도 낼 수 없었으나 쌍둥이들이 힘을 합치자 한때는 청해에서도 열 손가락에 들었던 봉조환을 가볍게 격퇴시킬 수가 있었다.
 “으드득!”
 봉조환이 이를 갈았다.
 적어도 쌍둥이들은 봉조환을 상대하기 위해 적지 않은 노력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의 합격이 오차 없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봉조환을 상대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 같은 진이었다.
 봉조환이 추춤거리자 쌍둥이들이 일사불란(一絲不亂)하게 간격을 흐트러뜨리지 않으며 한발씩 다가들었다.
 “빌어먹을 애송이들!”
 봉조환은 눈을 부라리며 이를 갈았지만 어절 수 없었는지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한 개의 손으로 열 개의 손을 막지 못한다는 강호의 고사가 여실히 증명이 되는 순간이었다.
 “산개(散開) 대형(隊形)으로!”
 다시 한 번 팽무강이 외침을 터트리자 쌍둥이들은 일제히 앞으로 달려들었다. 봉조환의 인상이 험악해졌다.
 그는 급히 몸을 허공으로 띄우며 발과 손으로 쉬지 않고 공격을 가했다. 그가 자랑하는 응조십이수(膺爪十二手)를 모두 사용했으나 우위를 점하기가 어려웠다. 허공에 수없이 많은 불꽃들이 피어올랐으나 모두가 방패에 긁힌 그의 손톱에서 일어난 불꽃이었다. 한때 천하가 부럽지 않던 그의 철골조는 무용지물이 되어 있었다.
 
 
 3
 
 
 “누구를 살리는 것이 유리하다고 생각하나?”
 초풍비의 물음에 풍무영은 어이가 없었다. 그의 생각으로는 그들 모두가 죽어야 했다. 그것만이 그를 자유롭게 할 것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아니, 그들이 모두 죽어야만 오랜 추적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풍무영은 초풍비를 빤히 쳐다보았지만 그의 생각을 읽을 수는 없었다. 그가 보고 있는 관점에서 초풍비는 희미하게 웃는 것을 제외하고는 안색이 단 한 번도 변하지 않았던 것이다.
 “모두 죽여야······.”
 “멍청하군. 다른 놈들은 기회를 노리고 있을 뿐이야. 그들도 생각해야지.”
 쿵!
 풍무영은 머리 속에서 울리는 둔한 철고(鐵鼓) 소리를 듣는 것 같았다. 초풍비가 말하지 않았다면 풍무영은 오로지 봉조환과 쌍둥이들만 생각했을 것이었다.
 풍무영은 눈을 가늘게 뜨고 주위를 돌아보았다. 과연, 이십여 명의 무인들이 제각기 병장기에 손을 대고 기회를 노리고 있는 것이 눈을 파고들었다.
 만약 그들이 초풍비가 누구인가를 파악했다면, 그래서 이름도 없는 무명소졸(無名小卒)인 것을 알았다면 풍무영은 이미 그들의 손에 넘어 갔을 것이었다.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초풍비도 무명의 삼류 무인이 아니었다.
 혹시 개중에 풍무영이 누구인지 알았다면 풍무영을 포기하고 물러섰을지도 모르는 일이기도 했다.
 물론 풍무영이 그들에게 끌려간다고 하더라도 죽지는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것을 알기에 풍무영은 태양루로 들어왔다. 도주를 포기한 심정이었던 것이었다.
 풍무영이 잡혀가거나 그들에게 끌려가도 죽지 않으리라는 것은 그들 모두는 죽은 풍무영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풍무영이 필요한 때문이었다.
 결국 최후로 살아남는 자는 풍무영을 얻을 것이 분명했다. 당연히 초풍비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계산 하에서의 결론이 될 수 있었다.
 무인들은 기회를 보고 있었다. 어디에선가 팽팽한 균형이 무너지기를 바라고 있었다.
 “우선 숫자를 줄여야겠지?”
 “그거야 물론이죠.”
 초풍비는 여전히 무감각한 얼굴로 주탁 위에 놓여있던 술잔을 들어 벌컥거리는 소리가 나게 들이켰다. 마치 한바탕 싸움을 하기 위해 준비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풍무영은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초풍비를 바라보았다.
 카카캉!
 마침 접전은 종국(終局)을 향해 치달리고 있었다. 얼마간 버틸지는 몰라도 봉조환이 수세(守勢)에 몰리고 있는 것만은 분명했다.
 허공에 울린 병장기의 충돌소리는 팽무강이 단월도라 이름 붙인 유엽도와 봉조환의 철골조가 허공에서 부딧치며 울리는 소리였다.
 “빌어먹을 애송이들. 모두 죽여주마.”
 봉조환은 연신 뒷걸음질로 물러나면서도 노한 음성을 터트리고 있었다. 그의 비기(秘技) 응조공도 단단하기 이를 데 없는 방패와 네 자루의 유엽도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이거 재미있는 구경거리를 보여주는군.’
 초풍비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어리는가싶더니 몸이 크게 뒤로 제쳐졌다. 한참동안 입가와 코를 씰룩거리더니 그의 몸이 앞으로 숙여졌다.
 “에취!”
 핏-피피핏!
 갑자기 초풍비의 입에서 재채기가 터지고 술 줄기가 뿜어져 나갔다. 쌍둥이 팽가 형제들이 초풍비와 풍무영을 향해 등을 보이고 있는 순간이었다.
 누가 보아도 사래가 들린 것처럼 보이는 토해진 술이었지만 눈으로 보는 것과는 천양지차(天壤之差)가 있었다.
 초풍비가 뿌려낸 술은 주우비성(酒雨飛星)이라는 절기였다. 술에 내공을 실어 뿌려내는 것으로 치명적이지는 않아도 몸을 보호하는데는 도움이 되는 무공이었다.
 접전시(接戰時)에는 내공을 모아 화살처럼 외줄기로 뿜을 수도 있고 안개처럼 분사시켜 상대의 눈을 흐리게 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뭐냐?”
 “암습을 하다니······ 더러운 놈들!”
 갑자기 경기가 실린 기파(氣波)가 밀려들자 합세의 진을 구성하고 있던 쌍둥이들 중 팽현강이 급히 몸을 돌려 방패로 막으며 유엽도를 허공으로 휘둘렀다.
 그것이 실수였다.
 첨예(尖銳)한 대립이 일어나는 고수들의 접전에서 약간의 충격은 진을 흐트러뜨리는 위력을 가져왔고 쌍둥이들의 진은 한순간에 균열이 일어났다.
 진의 좌측이 비어버리자 봉조환의 눈이 불을 뿜었다.
 “죽어라. 응조살벽기(鷹爪殺劈氣)!”
 봉조환은 노련한 살쾡이였다. 근 팔십 년 동안 강호 밥을 먹었으니 무공의 고하를 막론하고 조금의 빈틈도 놓칠 위인이 아니었다.
 봉조환은 급히 몸을 낮추어 응조보(鷹鳥步)로 보법을 바꾸며 당랑(螳螂)이 먹이를 공격하듯 두 개의 손을 구부려 좌측으로부터 긁어갔다.
 마치 갈퀴가 낙엽을 긁어 가는 듯한 모습이었다.
 “좌측이 열렸다.”
 상단부(上段部)를 막고있던 팽염강이 화급하게 소리치며 몸을 낮추어 좌측을 막았으나 이미 늦었다. 봉조환의 쌍수에 달린 열 개의 철골조가 중앙을 막고있던 팽무강의 옆구리를 갈랐다.
 찌이이익―
 옷이 찢어지며 붉은 피가 허공에 번졌다. 봉조환은 기회를 잡자 동작을 늦추지 않았다. 그의 철골조는 무형의 강기를 동반하며 팽무강의 옆구리로 파고들었다.
 “크어어어억!”
 팽무강이 비명을 토했다.
 사람의 살가죽은 질겼다.
 철골조가 아무리 강하고 날카롭다고 한들 쉽게 사람의 복부를 뚫고 들어갈 수 없었다.
 퍼퍼퍽!
 봉조환은 몸을 돌려 좌측을 막아오는 팽염강의 방패를 선풍각(旋風脚)의 기법으로 연속으로 돌려 차며 손은 팽무강의 복부로 밀어 넣었다.
 몸이 회전하며 손에도 나선형(螺旋形)의 강기가 형성되었다.
 찌이이이―푹!
 비단천을 찢는 소리와 함께 봉조환의 우수가 팽무강의 복부로 파고들었다. 만약 몸이 돌지 않고 손에 회전력이 생기지 않았다면 설사 철골조가 달렸다해도 복부는 뚫지 못했을 것이었다.
 “핫! 철응조파쇄(鐵鷹爪破碎)!”
 봉조환의 손이 비스듬한 사각으로 기울어지며 팽무강의 복부로부터 빠져 나왔다. 봉조환의 손에는 피에 젖은 창자가 줄줄이 달려나왔다.
 창자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솟아올랐다.
 “크어어억!”
 팽무강의 비명이 주루를 울렸다.
 봉조환은 자신의 손에 딸려 나오는 창자를 마구 잡아당겨 삼 장 여를 뽑아내었다. 진한 혈향이 주루에 뿜어지고 찢어진 팽무강의 복부에서 붉은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오랏, 네놈 형의 창자다.”
 봉조환은 매우 잔인한 성격을 가진 듯했다.
 그는 미친 듯이 허우적거리는 모습으로 앞으로 나가며 맹무강의 창자를 그들 형제에게 집어던졌다. 동시에 기울어지는 팽무강의 목을 발로 밟았다.
 팽무강의 몸이 심하게 들썩거리고 온몸의 신경이 살았는지 손가락과 하체가 들썩거렸다.
 “엇 형님의 창자가 날아온다.”
 “피해!”
 아무리 죽음이 눈앞에 있다고는 하나 형님의 창자를 유엽도로 끊을 수는 없었다. 그들은 일제히 뒤로 물러서며 전열을 가다듬으려 했다.
 그들에 물러선 것은 커다란 실수였다. 미쳐 진형을 가다듬기도 전에 봉조환의 손이 구수(拘手)로 변하며 팽자강의 가슴을 후벼팠다.
 “커흑! 이렇게 허망하다니.”
 팽자강의 가슴이 길게 찢어지며 늑골이 드러났다. 봉조환은 좌수를 뻗어 팽염강의 허리를 감아가며 왼손은 팽자강의 가슴으로 우겨 넣었다.
 우지지직―가각!
 가슴을 가리는 흉부의 늑골(肋骨)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며 봉조환의 좌수(左手)가 팔목까지 파고들었다.
 “크하하하하! 이것이 네놈의 심장이다.”
 봉조환은 손을 뺏다.
 그의 손에는 펄떡거리는 심장이 들려있었다.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팽자강의 심장이었다. 팽자강은 두 눈을 멀뚱히 뜨고 있었으나 달리 어찌해볼 방법이 없었다.
 팽자강은 자신의 심장이 봉조환의 손에서 터져 나가는 것을 눈으로 보면서 무너졌다.
 쌍등이 형제는 순식간에 네 명에서 두 명으로 줄어들었다. 그들은 매우 허둥거리고 있었다. 허둥거리는 것에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봉조환은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급히 허공으로 선회하며 손을 부챗살처럼 펼쳤다.
 바바바바박!
 다시 방패를 긁는 소리가 들렸다.
 “이 늙은 놈! 목을 늘여라.”
 봉조환이 다가서자 기다렸다는 듯 팽염강의 유엽도가 봉조환의 무릎을 베며 낮게 깔려 날아왔다.
 “기다렸다.”
 봉조환은 허공에서 공중제비를 돌며 팽염강의 등을 부인각(婦人脚)으로 걷어찼다. 팽염강의 몸이 앞으로 퉁겨져 나가며 한 사발의 피가 쏟아졌다.
 사람의 심장은 배보다 등에 가까웠다. 사람의 복부에 담긴 창자를 제외하고는 대다수의 모든 장기가 같았다. 등을 정통으로 맞았다는 것은 치명적이었다.
 울컥!
 충격으로 달려나가던 팽염강의 입에서 검붉은 피가 흘러나왔다. 팽염강은 급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러나 차라리 누워있는 것만 못했다.
 봉조환의 몸이 바람처럼 돌아서며 팽염강의 등으로부터 엉덩이에 이르는 깊은 상처를 만들었다.
 푸욱―시스슥!
 우드둑!
 봉조환은 분노가 극에 도달해 있었는지 입을 열지 않았다. 다만 자신의 목표를 놓치는 법은 없었다. 봉조환은 자신의 철골조에 힘을 주며 다가설 뿐이었다. 정신을 차리지 못한 팽염강의 목 울대에 오른손의 철골조를 감았다.
 철골조는 좌로 움직였고 울대가 한 무더기나 뜯겨져 날아갔다. 목에서 피가 폭포처럼 흘렀다.
 “으으으으! 이렇게 허무할 때가.”
 팽염강은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무너졌다. 목이 뜯겨져 나가 말이 바람 새는 소리에 섞여 들렸다.
 쌍둥이 네 형제 중 이제 남은 것은 오로지 하나, 팽현강 뿐이었다.
 너무도 갑자기 반전(反轉)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팽현강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어 뒤로 주춤거리며 물러섰다.
 이미 피 맛을 본 봉조환의 눈이 살쾡이를 닮아 있었다. 물러서게 놔둘 봉조환이 아니었다.
 봉조환은 급히 다가가며 전소퇴(前掃腿)의 수법으로 몸을 낯추어 팽현강의 발을 걸어 눕혔다. 봉조환은 허공으로 오 척을 치솟았다 손을 합장한 체 떨어지듯 내리 꽂히며 팽현강의 가슴을 찍었다.
 “어림없다. 늙은이.”
 팟!
 정신을 차린 팽현강의 방패가 날아오르며 봉조환의 어깨를 스쳤다. 허공에 피가 번졌다. 봉조환의 오른쪽 어깨에 백설처럼 빛나는 뼈가 드러났다.
 푹!
 이어서 들리는 섬뜩한 소리는 봉조환의 쌍수가 팽현강의 뼈를 부수고 들어가는 소리였다. 뼈가 부서지며 솟구친 피가 허공을 붉게 수놓았다.
 “으으으! 대산파가 네놈을 죽여줄 것이다.”
 무엇이 그리도 원통했는지 팽현강은 애끓는 소리를 마지막으로 목을 떨구었다.
 “으으!”
 봉조환은 비틀거리며 물러섰다. 왼손이 감싼 어깨에서 피가 폭포수처럼 흘러나왔다.
 “재미있군요.”
 “물론 내가 싸울 때는 목숨을 걸어야 하기 때문에 신중하고 어렵지만 남이 싸우는 것은 너무나 재미있는 일이지.”
 풍무영의 말에 초풍비가 맞장구를 쳤다. 초풍비는 맞장구를 치며 싸움구경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않았다. 연속 들이키는 술이 목에서 천둥 같은 소리를 냈다.
 “어찌 될까요?”
 “뭘?”
 “저들은 싸움이 끝난 건가요?”
 풍무영의 물음에 초풍비는 희미하게 웃었다. 풍무영은 움찔했다. 초풍비가 얼굴에 다른 변화를 보이는 것은 오로지 희미한 웃음뿐이었다.
 초풍비는 싸움에 정신을 빼앗긴 듯 풍무영을 바라보지도 않았다. 그러나 듣기는 문제가 없었는지 풍무영의 물음에 또박또박 대꾸를 해주고 있었다.
 “봉조환은 죽어.”
 “예?”
 풍무영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풍무영은 고개를 개웃했다.
 그의 생각으로는 누구도 함부로 봉조환을 건들이지 못할 것 같았다.
 봉조환이 비록 어깨를 다치기는 했지만 고수인 그로서는 급히 지혈(止血)을 할 수도 있을 것이고 설사 그렇지 못하다 하더라도 도주는 할 수 있을 것 같아 보였다.
 봉조환이 죽는다는 것이 눈에 보이는 상황에는 맞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러나 반박할 수는 없었다.
 “저들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거야. 아마 저들도 숫자를 줄이려 할거라는 거지. 그도 아니라면 저들은 짧은 시간에 은연중 동맹을 했을지도 모르지.”
 “그럴 리가?”
 풍무영은 믿을 수 없어 눈을 크게 떴다.
 “놈을 죽여라.”
 누구의 음성인지는 불분명했다.
 봉조환은 눈을 크게 떴다. 이십 개의 신형이 그를 향해 폭사되고 있었다.
 우당탕!
 주탁과 의자가 날아가고 이십 자루의 병기가 봉조환의 신체 곳곳을 향해 날아들었다.
 “비열한 놈들!”
 봉조환은 비통하게 부르짖으며 쌍장을 어지럽게 흔들었다. 그러나 역부족이었다. 순식간에 봉조환의 몸은 이십 개의 그림자에 휩싸이고 말았다.
 퍼퍼퍽― 차창!
 둔탁한 소리가 들리고 병장기의 거친 마찰음이 일어났다. 무엇이 어찌되는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아니, 싸우고 있는 당사자들은 알지도 모를 일이었다.
 “크아아악!”
 얼굴이 뭉개져 버린 하나의 인형이 퉁겨져 날아갔다. 아마도 얼굴을 철골조에 긁혔는지 허연 뼈가 드러나 있었다. 얼굴뼈는 곧 붉게 물들어갔다.
 퍽! 부르르르르!
 둔탁한 소리가 들리고 날아간 인형은 주청의 기둥에 부딪혀 허연 뇌수를 뿌리며 스르르 미끄러졌다. 몇 번인가 목에서 숨을 몰아쉬는 소리를 토했으나 그가 살아날 수 있으리라는 보장은 아무 것도 없었다.
 꿈틀거리던 손이 축 늘어졌다.
 얼음처럼 빛을 반사시킬 정도로 새하얗게 드러난 뼈가 점차 잿빛으로 변해갔다. 아니, 붉어졌다. 잿빛으로 물드는 것은 뼈가 상하는 것이었고 붉은 색은 흘러나온 피가 뼈를 덮는 것이었다.
 창!
 “크헉! 더러운 놈들!”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를 끝으로 분노에 젖은 목소리가 울렸다. 모든 것은 순식간에 끝나있었다. 죽 늘어선 발 사이로 봉조환의 모습이 보였다.
 봉조환은 이제 사람이 아니었다.
 비썩 마른 몸이었지만 온몸에 적어도 십여 개 이상의 병기를 박은 체 버러지처럼 꿈틀거리고 있었다. 주청 바닥에 피가 자욱하게 깔렸다.
 역한 냄새에 풍무영은 가슴을 두드려야 했다. 그래도 가슴이 가라앉지 않자 한 잔의 술을 들이키고서야 가슴이 안정되었다. 열 개의 병기가 봉조환의 몸에서 뽑아졌다.
 츄아아아―
 몸에서 탈출을 노리던 붉은 피가 허공으로 솟구쳤다.
 초풍비가 희미하게 웃었다.
 “어때, 내 말이 틀림없지?”
 풍무영은 고개를 끄덕여 수긍을 할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4
 
 
 열 여덟 개의 그림자가 초풍비와 풍무영을 향해 다가왔다. 풍무영은 얼굴에 사색을 띠우고 어쩔 줄 몰랐다. 초풍비는 감정의 기복이 없는 표정으로 다가서는 자들을 바라보았다.
 “이리오라.”
 제법 나이가 든, 오십 줄은 넘어선 사내가 손을 내밀었다. 그의 표정에는 초풍비는 안중에도 없었다.
 풍무영이 초풍비를 바라보았다.
 “안돼!”
 초풍비의 음성이 주청의 바닥에 깔렸다. 조용했지만 단호(斷乎)한 음성이었다. 덜도 아니고 넘치지도 않는 음성이 울리자 다가서던 자들이 모두 멈추어 섰다.
 오십 줄의 사내는 자신이 무시당했다는 것을 알았는지 볼을 씰룩거렸다.
 풍무영은 일어서지도, 그렇다고 앉지도 못한 상태로 엉거주춤 서 있었다. 그의 눈은 초풍비의 눈에서 떠나지 않고 있었다. 마치 애원을 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앉아라.”
 초풍비의 한마디에 풍무영은 ‘에라 모르겠다’하는 표정으로 털썩 주저앉았다. 어차피 자신을 죽이지는 못하리라는 계산이 서 있는 표정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초풍비의 말에 주눅이 든 것 같았으나 사실 풍무영은 될 대로 되라는 자포자기(自暴自棄)의 심정도 깔려 있었다.
 어차피 그는 초풍비가 누구인지도 몰랐고 어떤 능력을 지니고 있는지도 알지 못했다.
 “이런 괘씸한 놈! 감히 사천의 이리, 사천혈랑(四川血狼) 감운량(甘雲量) 을 장기판의 졸로 보다니.”
 “흠, 그래! 한가지 경고하지. 시답지 않은 이름으로 나를 억압하려고 하지 않는 것이 좋아. 나도 저 친구가 필요해.”
 “뭐라고?”
 감운량은 자신의 잘난 이름을 밝히면 초풍비가 물러가리라 생각했던 것 같았다. 그러나 오히려 비꼼을 당하자 참을 수가 없었는지 손에 들고 있던 대도를 내리그었다.
 쉭!
 파공성이 울리고 한줄기 백색 선이 초풍비의 머리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는다.”
 사칵!
 초풍비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마치 얼음을 베는 듯한 소리가 허공으로 울렸다. 미약한 소리이기는 했지만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들을 수 있었다.
 텅!
 대도가 주탁에 박혔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초풍비는 멀쩡했다.
 대도에 목이 잘리기는커녕 한치의 움직임도 없었던 것 같았다. 감운량이 휘두른 대도는 초풍비의 오른쪽 어깨를 약 이 촌 정도 벗어나 주탁을 반이나 쪼개고 박혀있었다.
 신기한 것은 탁자에 올려져있던 술잔과 몇 점의 시답지 않은 안주가 한 점도 흐트러지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아무 것도 변한 것이 없었다.
 아니,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초풍비의 앞에 한 자루의 검이 놓여져 있었다. 검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짧은 병기였다. 모양으로 보아 장검(長劍)이 잘린 것 같았다. 검신의 대부분이 잘려 나가고 일 척도 남지 않은 반검이었다.
 모두들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다. 상황이 어찌되었는지 몰라 한결같이 눈을 멀뚱하게 뜨고 꼿꼿이 서 있는 감운량과 초풍비를 바라보았다.
 휭!
 어디선가 한줄기 바람이 불어왔다.
 “그만 누워라!”
 초풍비는 가볍게 탁자를 쳤다. 탁자는 가볍게 이 촌을 밀려 감운량의 복부를 건드렸다.
 스르르르르―
 쿵!
 감운량은 마치 연체동물(軟體動物)처럼 물러앉았다. 마치 고목이 무너지듯 뒤로 자빠지던 감운량의 머리가 심하게 소리를 내며 주청의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곧 감운량의 가슴에서 붉은 피가 바람이 새는 소리를 내며 밀려나오기 시작했다. 모두들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초풍비가 검을 휘둘렀다는 것을 본 자는 아무도 없었다.
 몰려들었던 무인들이 본 것은 오로지 초풍비의 앞에 한 자루의 반검이 놓여있었다는 것과 감운량이 아무런 이유 없이 쓰러졌다는 것 정도였다.
 파하하하하―
 감운량의 가슴이 갈라지며 피가 허공으로 솟구쳤다. 아주 작은 부위만 베어졌는지 피는 마치 작은 구멍을 통해 뿜어지는 간헐천(間歇泉) 같았다.
 “우우!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잔인한 놈이다. 단칼에 심장을 도려버리다니.”
 몰려들던 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신음을 뱉었다.
 그들은 초풍비를 잔인하다 말하고 있었다. 자신들이 모두 달려들어 봉조환을 죽인 일이 정말 잔인한 일이라는 것을 망각하고 있었다.
 “만리당혜는 내가 필요하다. 그만 물러가면 더 이상 추궁하지 않겠다.”
 초풍비는 단아한 목소리로 입을 열어 경고를 발했다. 그러나 듣는 입장에서는 그가 단아하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긴 머리와 덥수룩한 수염으로 그가 괴인의 모습으로만 보일 뿐이었다.
 판단을 하기가 어려웠는지 십 칠 명은 한참동안 초풍비와 풍무영을 바라보았다. 풍무영은 내심 적잖이 놀라고 있었지만 물어볼 상황도 아니었기에 묵묵히 초풍비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초풍비! 나를 아는 자가 있는가?”
 초풍비가 주탁에 놓여있던 반검을 들어 손에 잡으며 물었다. 반검의 검환(劍環)에는 가는 마삭(麻索)으로 이어진 끈이 있었는데 초풍비는 반검을 잡고 마삭을 검과 손에 칭칭 감았다. 죽기 전에는 검을 놓치는 일이 없을 것 같은 준비였다.
 한참동안 침묵이 흘렀다.
 초풍비는 몸을 일으켰다. 일전을 결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준비가 필요했다.
 “혹시······ 오지회?”
 “그렇다. 더 이상 말하기 싫다. 죽음이 두려운 자는 신속하게 이곳을 떠나라.”
 초풍비의 음성이 울리자 서너 명의 얼굴이 흑빛이 되었다. 그들이라고 십 년 전 천하를 경악에 몰아넣었던 오지회의 대형인 사나이 이름을 모를 리가 없었다.
 한참동안 술렁거리는 듯한 소리가 들리더니 아예 겁을 집어먹었는지 네 명의 무인들이 뒤로 물러나 창가로 물러섰다. 그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지만 그렇다고 목숨을 걸고 덤비겠다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었다.
 “설마? 그는 은퇴했는데.”
 “미친놈 아냐? 초풍비이란 이름이 십 년 전 사라졌는데······ 놈은 사기꾼이다.”
 “잘되었다. 놈을 주살하자.”
 갑자기 열기가 번졌다.
 그들은 모두 초풍비를 죽여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것이 떠올랐다. 그들은 서로 눈짓을 교환하며 다가들었다.
 믿지 못하겠다는 듯, 함성이 울리고 열세개의 신형이 바람처럼 날아들었다. 그들 모두는 누구도 초풍비가 재출도(再出道) 했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
 초풍비의 위명(威名)이 한때는 천하를 울렸다고는 하나 이제는 잊혀진 이름이었다. 그들 모두의 마음속에는 약간의 두려움과 믿을 수 없다는 의구심, 그리고 혹시나 하는 요행심이 깊이 어려있었다.
 ‘이상하다. 이들은 나를 죽여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초풍비는 고개를 갸웃했다.
 파하하하하―
 열세 자루의 병기가 미친 듯 밀려들었다. 그러나 그들이 보지 못한 것이 있으니 초풍비의 반검이 살아있는 미꾸라지처럼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사실이었다.
 “믿지 않으면 죽는 수밖에. 너는 이곳에서 움직이지 말고 기다려라.”
 초풍비는 풍무영을 바라보며 말했다. 동시에 그의 몸이 탁자를 뛰어넘었다.
 초풍비의 몸이 탁자를 넘어 다가서는 자들을 향해 달려갔다. 초풍비가 다가가자 열세 개의 그림자는 일제히 협공을 시작했다. 장병기와 단병기가 어우러진 공격은 난마(亂麻)처럼 얽혀 초풍비의 몸으로 파고들었다.
 처음으로 초풍비의 몸에 다다른 자는 사천에서 백인의 무인 중에 든다는 철혈척(鐵血尺) 탁명수(卓明洙)였다. 그는 빠르게 손을 휘두르며 다가섰다.
 그가 든 삼 척 길이의 철척(鐵尺)은 한번도 그를 배신한 적이 없는 병기였다.
 “건방진 놈! 뒈져라.”
 쾅!
 거친 폭음이 일고 그의 몸은 말이 끝나기도 전에 삼 장을 퉁겨져 날아갔다. 이미 얼굴이 뭉개져 있었다. 무엇으로 당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날아가며 그가 본 것은 두 개의 무릎이 연속으로 뛰어올라 자신의 몸에 충격을 준 것 같았다.
 두번째의 죽음은 한번에 네 명이 퉁겨지는 것으로 종결되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목에 가는 실금이 그어져 있었는데 병장기로 당한 흔적이었다.
 “우우우! 정말로 초풍비이다.”
 정신없이 병장기를 휘두르던 자들 사이에서도 경악이 뿜어져 올랐다. 손을 쓰기도 전에 퉁기듯 날아가는 무인들은 죽기 전에 눈이 굳어있었다.
 “하하하! 난 두 번 말하지 않는다고 했다.”
 초풍비의 몸에서 은은한 홍색의 안개가 뿜어지는 것 같은 착각이 일어났다. 그것은 그가 내공을 끌어올렸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의 몸이 붉은 색으로 변했다. 마치 술을 마시지 못하는 사람이 술을 마시고 얼굴이 붉어진 것처럼 드러나는 피부는 모두 붉었다.
 초풍비의 몸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주청의 천장에 손을 짚은 초풍비의 몸이 허공에서 급격히 회전을 하며 반검을 흩뿌리듯 휘둘렀다.
 “막아. 천장이다.”
 “뭐야. 머리를 조심해!”
 사각! 파드드득!
 아우성이 엉켜들었지만 초풍비의 반검을 막을 자는 흔치 않았다. 순식간에 두 개의 머리가 반검에 의해 수박이 쪼개지듯 벌어졌다.
 살이 베어지는 소리와 반검이 뼈에 부딪치는 소리와 어우러지며 살에 소름이 돋게 했다.
 순식간에 무인들의 숫자가 반으로 줄어들었다.
 모두들 경악을 토했지만 발이 굳었는지 도주할 수도 없었다. 등을 돌리면 사신(死神)이 등을 따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난 나를 건드리지 않으면 누구도 건들이지 않는다. 오지회의 철칙을 모른단 말인가?”
 초풍비는 연신 몸을 날리며 외쳤다.
 그랬다.
 과거 그가 이끌었던 오지회는 몇 가지 철칙이 있었는데 건드리지 않으면 절대 해코지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오지회는 자신들을 배척(排斥)하고 이유 없이 적대하는 자들만을 상대로 손을 썼다.
 간혹 무공대련(武功對鍊)을 위해 구파를 찾거나 명문세가를 찾았지만 결코 살수를 쓰는 법은 없었다.
 그들의 규칙을 지키던 오지회도 악인을 만났을 때는 달랐다. 그들은 악인을 만나면 악인보다 더욱 악한 모습으로 변해 살겁(殺劫)을 일으켰다.
 십 년 전 무인들이 오지회를 두려워한 것은 그들의 손이 잔인하기 때문이었다. 오지회는 결정을 내리면 지옥의 유황불까지라도 쫓아가 결국은 끝장을 보아야 모든 것을 끝냈다.
 “흥! 나는 오지회 따위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파파파팟!
 어디선가 분노한 소리가 들리고 허공으로 수십 개의 빛 무리가 쏘아갔다. 초풍비는 급히 공중제비를 돌아 허공에서 주청의 중앙으로 떨어졌다.
 열세 명 중 살아남은 자는 이제 여섯뿐이었다. 그중 나이가 많아 보이지는 않는 이십대 후반의 청삼 사내가 손을 마구 휘젓고 있었다.
 그는 당가의 후손인 당천엽이었다. 천수(千手)라는 외호가 어울리게 암기술이 뛰어난 사천당문의 후지기수로 사천에서 근래 서서히 떠오르는 자였다.
 당천엽의 손에서 뿌려진 것은 암기였다.
 가는 우모침(牛毛針)에서부터 시작하여 손가락 굵기에 이르는 투오정(投蜈丁), 심지어는 나한전(羅漢錢)에서 비황석(飛蝗石)까지 다양한 종류의 암기들이 그의 전신에서 뿜어졌다.
 “흥! 당가도 이일에 개입되어 있는가?”
 초풍비는 분노가 석인 음성을 외치며 쌍수를 풍차 돌리 듯 휘둘렀다. 맨손과 반검이 어우러져 마치 불가를 표시하는 만자(卍字)처럼 회전했다.
 날아들던 암기들이 허공에서 주춤했다. 초풍비가 일으키는 거력이 방어막을 형성한 탓이었다.
 팅팅팅!
 몇개의 암기가 검에 부딪혀 튕겼다.
 “크아아악!”
 울려나오는 비명은 초풍비를 공격하던 자의 목소리였다.
 당천엽의 등뒤에서 회심의 미소를 짓던 무인 하나가 이마를 감싸며 나뒹굴었다. 무인의 이마에는 굵은 투오정이 깊숙하게 박혀 있었다.
 날아들던 투오정이 초풍비의 반검에 부딪혀 퉁겨졌고, 날아드는 투오정을 미쳐 피하지 못한 무사는 황천행 마차를 타고 말았던 것이었다.
 몇 번인가 버둥거리던 무인은 축 늘어졌다. 이미 허공에 자욱하던 암기들은 바닥에 떨어져 나뒹굴고 있었다. 몇 개의 암기가 초풍비의 팔목에 박혀 있었다.
 초풍비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그의 팔목을 감싼 것으로 보이는 짐승의 가죽토시는 안에 도롱뇽의 가죽으로 촘촘하게 덧대어진 가죽토시로 이중의 보호막을 구성하고 있었다.
 더구나 도롱뇽의 가죽에는 묵철(墨鐵)로 만든 단추가 빽빽하게 박혀있어 최악의 경우에는 날아드는 대도를 막을 수도 있었다.
 “이제 그 잘난 사천당가의 만천화우(滿天花雨)도 끝난 것인가?”
 초풍비의 말에 당천엽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그것은 가문에 대한 모독이었다.
 당문은 사천의 패자로서 독과 암기에 관한 한 최고의 가문이라 자부하는 일파였다.
 오죽하면 그들은 가문의 비전절학(秘傳絶學)을 밖으로 유출시키지 않기 위해 딸을 밖으로 출가시키지도 않았다. 혼기에 찬 딸이 있을 때에는 오히려 데릴사위를 통해 가문의 비전을 숨기는 일가였다.
 그들이 자랑하는 암기수법 중 가장 위력이 있고 뛰어나다는 절기가 만천화우였다.
 몸에 지니고 있는 모든 암기, 심지어는 옷에 달린 단추까지 모두 뿌려 상대를 고슴도치로 만들어 버리는 수법으로 소문이 자자했다.
 특히 투오정이나 척전(擲箭)에는 내공을 주입시킴으로써 암기에 정신없이 몸을 움직이는 상대를 일거(一擧)에 쓰러뜨리기도 했다.
 그토록 놀라운 만천화우의 절기를 시전한 당천엽이었지만 초풍비에게는 어린아이의 장난 같은 몸짓이었다. 만천화우를 전개하고도 초풍비를 어찌할 수가 없었다.
 “이잇! 받아라. 탄비척전(彈泌擲箭)!”
 피이이이―
 당천엽이 두 손을 앞으로 내밀자 팔목에 두르고 있던 두 개의 토시에서 번뜩이는 빛이 초풍비를 향해 퉁겨나갔다.
 퉁겨진 빛은 모두 열 개였다. 각각의 토시에서 다섯 개의 빛이 반사되었는데 그것은 무서운 암기였다. 근래 당문에서 개발한 탄비척전이라는 암기였다.
 척전과 같이 던져지는 원리를 이용했지만 발사방식(發射方式)이 사람의 힘이나 내공이 아니라 기계식이었다.
 강한 강철을 둥글게 말아 조그만 원통에 넣고 그 안에 궁노(弓弩)처럼 화살을 장전하는 것으로 사람의 힘으로는 장전이 되지 않아 기계로 장전해야 하는 것이었다.
 내공의 힘으로 만든 호신강기와 내공의 방어벽을 뚫어 상대를 척살하기 위해 만든 병기였다.
 “죽어라, 이 망할 놈아.”
 당천엽은 분기탱천(憤氣 天)하여 소리쳤다. 가문의 비전 만천화우가 깨어졌다는 사실이 그를 못내 분노하게 만들고 만 것 같았다.
 “온당치 못한 수법이군.”
 초풍비는 날아드는 열 개의 그림자가 감히 무시당할 수법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했다. 막으려면 막을 수 있겠지만 몸에 가벼운 상처라도 입게 된다면 기분 좋은 일이 아니었다.
 “찻!”
 초풍비는 낮게 기합을 터트리며 자리에 주저앉음과 동시 하나의 물체를 집어들었다. 대도회의 네 쌍둥이 팽씨 형제가 사용하던 방패였다.
 초풍비는 방패를 이용하여 앞을 가리며 몸을 뒤집어 회전을 일으켰다. 마치 버섯이 옆으로 누운 것 같았다.
 마침 방패는 우산처럼 둥글고 볼록한 형태를 취하고 있었고 뒤를 받친 초풍비가 회전을 일으키자 정말로 버섯이 따로 없었다.
 핑―
 파파파팟!
 열 개의 탄비척전이 방패에 부딧치며 사방으로 방향을 바꾸어 퉁겨져 나갔다. 과연 단단하기 이를 데 없는 방패였다. 무쇠도 뚫는다는 틴비척전은 방패에 흠집을 주지도 못했다.
 “좋군! 이제부터 너를 패갑둔(覇甲遁)이라 부르겠다.”
 짧은 순간 초풍비는 방패를 자신의 병기로 사용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벼웠고 강한데다 자세히 보면 파립과 같은 용도로 머리에 쓰고 다녀도 나쁠 것 같지는 않았다.
 초풍비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초풍비는 알지 못했다. 자신이 들고 있는 방패가 얼마나 귀한 물건이지를······
 어찌 어찌해서 팽씨 쌍둥이들에게 들어가게 되었지만 황금을 수레로 주고도 구하기 힘든 병기였던 것이다.
 “가랏!”
 파아아아―
 초풍비의 손에서 갑작스럽게 패갑둔이 날아올랐다. 포물선을 그리던 패갑둔이 당천엽의 목으로 날아들었다. 너무도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이라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당천엽의 얼굴이 짧은 순간에 백지처럼 탈색되었다. 손을 내저었지만 날아드는 패갑둔을 피할 수는 없었다.
 사각― 뎅겅!
 패갑둔의 날은 면도(面刀)보다 날카로웠다.
 당천엽의 머리가 허공으로 솟구쳤다. 목이 베어졌음에도 당천엽은 눈을 뜨고 있었다. 머리의 신경이 살아 있었는지 눈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파아아아아―
 붉은 피가 허공으로 솟구치고 한참이 지나서야 당천엽의 몸이 기울었다. 허공으로 솟구쳤던 당천엽의 머리와 몸뚱어리가 동시에 바닥으로 굴렀다.
 패갑둔은 포물선을 그리며 초풍비의 품으로 날아 들어가 왼쪽 팔목에 착용되었다.
 사실 초풍비가 패갑둔이라 방패의 이름을 정하고 날린 것은 짧은 시간이었고 내공을 사용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원심력(遠心力)과 회전(回轉)을 이용했음에도 고수의 목을 베어버릴 수 있었다.
 초풍비는 회(回)의 원리를 알고 있었다.
 그가 작얼산에서 사냥을 하며 초란과 은거생활을 할 때도 내공을 사용하지 않고 그와 같은 원리를 이용하여 사냥을 하고는 했다.
 이제 그에 상응하는 병기가 생겼으므로 그가 만든 한 초식의 무공은 무림에 알려질 것이 틀림없었다.
 “우우우우! 저자는 초풍비가 틀림없다.”
 “모두 도망가자.”
 살아남은 네 명의 무인들이 몸을 뒤집었다. 방향을 틀고 걸음아 날 살려라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흥! 네놈들을 살려주면 다시 욕심을 내게 될 것이다.”
 초풍비는 손에 들어온 패갑둔은 다시 날렸다. 바람을 가르며 날아간 패갑둔은 다시 두 명의 목을 베었다. 목이 잘려서인지 비명도 울리지 않았다.
 초풍비는 발로 바닥을 연속으로 걷어찼다.
 피―핑!
 바닥에 떨어져 있던 세 개의 방패 중 두 개가 날아가 다른 두 명의 무인을 쓰러뜨렸다. 하나의 방패는 도주하는 무인의 목을 잘라버렸고 다른 하나는 허리를 베어버렸다.
 방패는 위력이 놀라웠다.
 목도 아니고 허리를 벨 정도라면 그 위력은 놀라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웬만한 병기로는 내력을 주입시켜도 사람의 허리를 뎅겅 자른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핫!”
 날아드는 패갑둔을 받아든 초풍비는 다시 날아오는 두 개의 방패에 부딪쳐 갔다. 내력이 실린 패갑둔이 흰색에서 붉은 빛으로 변했다.
 팍―
 방패끼리 연속으로 충돌하자 허공에 불꽃이 일어났다. 허공에서 날아들던 두 개의 방패가 산산이 부서졌다. 아무리 강해도 내력이 실린 같은 방패로 치는 데야 부서질 수밖에 없었다. 금강석을 부수기 위해 금강석을 사용하는 것과 같은 원리였다.
 주청은 조용했다.
 누구하나 얼굴을 내밀고 들여다보는 자가 없었다. 심지어는 계산대에 앉아있던 주인도 사라지고 없었다.
 초풍비는 다가가 땅에 굴러다니는 나머지 하나의 방패를 주웠다. 주위를 휘휘 둘러보다 팽염강의 시체에 눈이 머물렀다. 팽염강은 검은 색이 도는 장갑을 양손에 끼고 있었다.
 “이것이었군.”
 초풍비는 시체에서 두 개의 장갑을 빼내었다. 장갑은 무엇으로 만든 것인지 부드러웠으나 기이하게도 껄끄러웠다. 반짝이는 무수한 모래 같은 것이 달려있었다. 그것이 금강석의 가루라는 것을 모를 리가 없는 초풍비였다.
 초풍비는 장갑과 방패를 들고 경악으로 입을 벌리고 있는 풍무영에게 걸어갔다.
 팍!
 방패가 주탁에 내리 꼽혔다. 장갑도 주탁에 떨어졌다.
 “내가 잔인하다고 생각하나?”
 “그게······.”
 풍무영은 할말이 없었다.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은 그는 욕지기를 겨우 참고 있는 중이었던 때문이었다. 그러나 기이하게도 초풍비가 잔인하거나 악마 같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잔인하지!”
 갑작스럽게 들려온 말은 주청의 주방 쪽에서 들려온 말이었다. 언제부터인지 두 사람이 서 있었다.
 키가 유난히 큰 사내와 눈에 뜨이게 작은 사나이. 장단이괴가 서 있었다. 그들은 이미 싸울 준비가 되어 있었는지 병기를 뽑은 상태였다.
 “그대들도 관심이 있나?”
 초풍비는 이미 그들이 도망가지 않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초비풍은 전혀 놀라지 않았고 그들이 다가와도 흔들리지 않았다.
 아니, 기다리는 듯한 모습이었다.
 “오늘 이곳에서 풍무영을 잡을 생각이었는데 초풍비를 만나니 감개가 무량하군.”
 “나에게 감정이 있는 모양이군.”
 “물론이야. 네놈 때문에 내 명예가 실추(失墜)되었으니 이제 그 은혜를 갚아야겠지.”
 키가 오 척에도 이르지 못하는 요달각이 어깨를 흔들며 음소를 뿌리고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요달각의 말이 재미있다는 듯 구 척의 키를 가진 저유평도 키득거렸다.
 초풍비는 그들이 자신에게 원한이 있다는 이야기가 이해되지 않았다. 그들과는 만난 적도 없었거니와 서장에서 사람을 죽인 적도 없었다.
 “놀랍군, 나에게 원한이 있었다니······.”
 “아, 별것 아니지. 석년 을목세가가 우리에게 네놈 목을 청부했지. 십 년 전 네놈이 사라져 버려 아직까지 을목세가의 빛을 갚지 못했었는데.”
 “그렇군.”
 초풍비는 가늘게 신음을 흘렸다.
 이곳에서 을목세가의 이야기를 듣게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초풍비였다.
 을목세가라면 그와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그가 찾고자 하는 여인, 그의 여자 초란이 을목세가와 혼약을 했었던 관계이기 때문이었다.
 “이제 한판 벌여보지. 네 목을 가지고 을목세가로 가야겠다.”
 “그것도 좋지.”
 초풍비가 앞으로 나섰다.
 장단이괴가 기다렸다는 듯 앞으로 나섰다. 그들은 초풍비를 에워쌌다. 에워쌌다 하기보다는 키가 큰 저유평이 대도를 들고 초풍비의 앞을 막아섰고 키가 작은 요달각이 장도를 들고 뒤를 막았다.
 초풍비가 가볍게 웃었다. 그들이 어떤 공격을 가해오게 되리라는 것을 안다는 표정이었다.
 “찻! 쌍검이합(雙劍離合)!”
 기다리기가 지루하다는 듯 장단이괴가 일제히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었다.
 저유평은 긴 대도를 돌리며 목을 노렸고 요달각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초풍비의 하체를 쓸어왔다. 초풍비는 병기도 뽑지 않은 상태였다.
 ‘단 일수로 끝낸다.’
 초풍비는 상대가 대도를 사용할 때, 섣불리 단병기를 사용하면 오히려 위험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더구나 주청은 천장이 낮고 좁은 지역이었다.
 대도를 무한정 사용하기에도 한계가 있었다.
 더구나 초풍비는 박투술(搏鬪術)에 자신이 있었다. 그가 익힌 무공의 근원은 백타(白打)에서 시작되었고 소림의 요결(要訣)을 얻은 뒤부터는 그의 백타는 입신의 경지에 올라 있었다.
 사실 그의 박투술은 병기를 사용하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다만 그가 병기를 사용하는 것은 단시간에 결정을 보아야 하는 경우나 강한 기파를 흘리기 위해 내공을 끌어 올려야 할 때였다.
 사사사사―
 대도가 허공에서 묘한 바람을 일으키며 물이 굽이치듯 휘둘러졌다. 처음에는 목을 노리는 것 같았는데 도신이 향하는 방향이 불규칙했다.
 ‘강한 무공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다.’
 초풍비는 그들 장단이괴가 내공이 강하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공이 강했다면 기파가 느껴져야 했다.
 “핫! 과호세(戈虎勢)!”
 초풍비는 몸을 퉁기듯 앞으로 뻗어 달려나갔다. 순식간에 오 척을 달려나간 초풍비는 저유평이 휘둘러오는 대도의 장봉(長棒) 중간을 손바닥으로 퉁겨 방향을 바꾸었다.
 놀라는 저유평의 눈이 가득 들어왔다.
 “죽어라. 이 놈아!”
 등으로부터 장도가 밀려드는지 고함과 파공성이 느껴졌다.
 초풍비는 방향이 틀어지는 대도의 장봉을 손으로 잡으며 몸을 횡으로 움직였다. 발로 바닥을 찍어 반탄력을 얻어 몸을 회전시키며 두발을 연속으로 걷어찼다.
 퍼퍼퍼퍽!
 대도의 봉을 잡고 엉겁결에 놀란 표정을 짓던 저유평의 몸에 초풍비의 발이 연속으로 날아가 박혔다. 무섭도록 빠른 족기(足技)였다.
 “커흑! 이리도 빠르다니.”
 저유평의 입에서 비명이 울리더니 손에서 대도를 놓치고 말았다. 그것이 초비풍이 바라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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