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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 경험이 쌓여! 1

2018.05.17 조회 8,539 추천 66


 책을 읽으면 경험이 쌓여! 1권
 서장
 
 
 난 책 냄새가 좋다.
 인터넷과 게임들이 널려 있고 컴퓨터와 핸드폰으로 책을 볼 수 있는 요즘 세상에 누가 책 같은 것을 볼까 싶지만······.
 난 책이 좋다. 책장 한 장, 한 장을 넘길 때의 그 손맛이 난 좋다.
 
 그래서 난 오늘도 헌책방을 가고 있었다.
 
 
 1장 특이한 양장본
 
 
 헌책방 ‘고서방’에 고등학생 이종석이 들어서고 있었다.
 딸랑!
 익숙한 종소리와 함께 주인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종석이 왔니?”
 “안녕하세요. 새로 들어온 책들 있어요?”
 “저 안쪽에 포대들 있으니까. 잘 찾아봐라.”
 “네.”
 주인 아저씨의 말에 이종석이 익숙한 걸음으로 서가들 사이를 들어갔다.
 작은 편의점 크기만 한 고서방은 이종석이 초등학교 때부터 다닌 곳이었다.
 학생들 참고서부터 잡지, 소설, 과학과 의학 서적들까지 수만 권의 책들이 서가와 통로에 쌓여 있었다.
 주인 아저씨조차도 책들이 어디에 어떻게 있는지 잘 모를 정도로 많은 책들이 있었다. 그래서 손님이 필요한 책을 말하면 알아서 찾아보라고 할 뿐이었다.
 어쨌든 주인 아저씨의 말에 이종석이 서가와 통로에 쌓인 책들을 조심히 피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서가 뒤쪽에 포대들이 보였다. 고서방에 들어오는 책들은 헌책방이라는 이름에 맞게 모두 헌책들이었다.
 물론 학생들이 자신들이 보던 책을 팔러 오기도 했지만 그것은 극히 일부였고 대부분 구입처는 고물상이었다.
 사람들이 버리거나 종이 값만 받고 판 헌책들을 이렇게 포대로 가져오는 것이다.
 그래서 이 포대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것이 이종석은 좋았다.
 마치 무엇이 들어있는지 모르는 보물 상자를 여는 것 같은 기분이랄까?
 ‘그래, 너는 안에 뭐가 들어 있니?’
 친구에게 말을 거는 것처럼 포대를 보던 이종석이 줄을 끌렀다.
 스르륵!
 포대를 푼 이종석이 그 안에 있는 책들을 하나둘씩 꺼냈다.
 “종석아, 책 정리하는 것 잊지 마라.”
 “네!”
 주인 아저씨의 말에 기분 좋게 답을 한 이종석이 책들을 꺼내 바라보았다.
 포대로 들어오는 책 중 그나마 가격이 되는 것은 학생들 참고서였다.
 과학이나 수학이 하루아침에 변할 수 없는 것처럼, 참고서 역시 대부분 비슷한 내용이 비슷하게 나온다.
 그리고 돈이 되는 것은 소설책이었다. 소설책 역시 새 책이냐 헌책이냐의 차이만 있을 뿐 내용이 변하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아니 소설책 중에는 헌책이라서 오히려 돈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 절판이 된 소설책을 모으는 사람들도 있으니 말이다.
 참고서는 참고서대로 소설은 소설대로 나누는 이종석의 손놀림이 빨라졌다.
 ‘별다른 것이 없네.’
 포대에서 책을 꺼내며 자신이 볼 만한 책이 있나 살피던 이종석의 얼굴에 호기심이 어렸다.
 포대 안쪽에 양장본으로 된 책 한 권이 있었다.
 ‘양장본이다.’
 양장본 책은 이종석이 좋아하는 책 중 하나였다. 고급스러운 분위기도 있고 종이도 고급이다.
 그래서 넘기는 손맛이 좋은 것이다. 그에 양장본을 집은 이종석이 표지를 바라보았다.
 표지는 그저 회색의 면에 황금색의 도안이 그려져 있을 뿐 제목은 없었다.
 ‘눈인가?’
 황금색 도안은 얼핏 보면 사람의 눈처럼 보였다. 마치 자신을 바라보는 것 같은 황금색 눈을 보던 이종석이 책을 펼쳤다.
 제목이 없는 책이 흥미를 끈 것이다.
 두꺼운 양장본 표지를 들추자 그 안에 약간은 노란색이 도는 종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종이가 고급지네.”
 손가락에 잡힌 종이는 한지처럼 따스한 느낌과 질감을 주었다.
 그런 종이를 잠시 쓰다듬던 이종석이 종이를 넘겼다.
 스륵! 스륵!
 종이를 한 장 두 장씩 넘기던 이종석의 얼굴에 의아함이 어렸다.
 “어라?”
 휘리릭! 휘리릭!
 종이를 빠르게 넘겼지만 그 안에는 아무 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마지막 페이지까지 종이를 모두 넘긴 이종석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야, 책이 아니라 공책 같은 건가?”
 양장본으로 된 공책, 엄청 고급스러운 느낌이기는 하지만 아쉬웠다.
 이런 고급스러운 책에 내용이 없다는 것이 말이다.
 잠시 노트를 보던 이종석이 양장본을 한쪽에 놓고는 포대에 있는 책들을 종류별로 분류하기 시작했다.
 
 ***
 
 헌책방에서 시간을 보내고 이종석은 집으로 돌아왔다.
 “다녀왔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이종석의 코에 매운 냄새가 맡아졌다.
 ‘또 소스 연구하시네.’
 아버지 퇴직 후 이종석의 집은 초등학교 근처에서 작은 분식집을 하고 있었다.
 초등학생 입맛 잡는 것 정도야 쉬울 거라 생각을 했던 것과 달리 요즘 장사가 되지 않아 고전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부모님들은 요즘 소스 연구를 하고 있었다. 바로 초딩들의 친구, 떡볶이 소스 말이다.
 집에 들어가자 그 생각대로 아빠가 거실에서 통에 붉은 소스를 젓고 있었다.
 “너 또 헌책방 갔다 왔지!”
 집에 들어가자 엄마의 고성이 그를 반겼다.
 “다른 데 간 것도 아니고 책방 간 걸로 뭘 그리 목소리를 높여.”
 아빠의 말에 엄마가 눈에 쌍심지를 키웠다.
 “공부 하러 가는 것도 아니고 맨날 헌책방만 가니 그렇죠.”
 “놔둬. 사고 안 치는 것만 해도 다행이지.”
 “당신이 늘 그리 말하니 애가 공부는 안 하고······.”
 “그럼 다른 집 애들처럼 사고나 치면 좋아?”
 “누가 그렇대요!”
 거실에서 다투기 시작하는 부모님을 뒤로하고 이종석이 자신의 방으로 슬며시 들어갔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이 정도는 그냥 인사 수준이다.
 가방을 책상 위에 올려놓은 이종석이 안에서 양장본을 꺼내 내려놓았다.
 안에 적힌 것은 없지만 종이 질감이 마음에 든 이종석은 주인 아저씨한테 천 원 주고 사온 것이다.
 “흠······.”
 양장본을 펼친 이종석이 연필을 꺼내서는 글을 적었다.
 사각! 사각!
 노트와는 다르게 조금은 거친 느낌과 함께 자신의 이름이 적혀나갔다.
 
 <이종석>
 
 “필기감 좋······.”
 말을 하던 이종석의 눈이 크게 떠졌다.
 
 <경험치북에 당신의 경험을 적으시겠습니까?>
 
 자신의 이름 밑으로 황금색의 빛나는 글씨가 나타나 있었다.
 “이건 뭐야?”
 이종석의 중얼거림과 함께 빛나는 글씨가 깜빡였다. 마치 빨리 답을 해 달라는 듯이 말이다.
 “내 경험을 적으라니 대체······.”
 잠시 반짝이는 글을 보던 이종석이 그 밑에 네, 라는 글자를 적었다.
 
 <경험치북의 새로운 필기자로 설정되었습니다.>
 
 노트에 다시 나타난 글자들에 이종석의 머리가 복잡해졌다.
 ‘이건 대체 뭐지? 경험치북이라니?’
 잠시 노트를 보던 이종석이 글을 적었다.
 
 <당신의 경험을 적으세요.>
 
 노트에 새겨지는 글자에 가만히 있던 이종석이 글을 적었다.
 
 <내 경험을 적으면 어떻게 되는 거지?>
 <필기자의 경험만큼 다른 필기자의 경험을 얻을 수 있습니다.>
 <다른 필기자면 나 말고 다른 필기자들이 있었다는 건가?>
 <네.>
 <경험? 그걸로 뭘 하는데?>
 <무엇을 하고 싶으십니까?>
 
 무엇을 하고 싶으냐는 말에 잠시 있던 이종석이 글을 적었다.
 
 <뭘 할 수 있는데?>
 <이전 필기자가 적은 경험이라면 무엇이든 가능합니다.>
 <무엇이든?>
 <필요한 경험이 있으십니까?>
 
 필요한 경험이라는 말에 이종석의 손이 꿈틀거렸다.
 
 <환상의 떡볶이 소스 같은 것도 가능해?>
 
 엄마와 아빠가 밤마다 떡볶이 소스 만든다고 고생을 하는 것을 알고 있다.
 이 책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런 것도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리고 이 책 자체가 믿을 수 없는 일이기도 하고 말이다.
 
 <음식에 관한 경험이 있습니다.>
 <떡볶이는?>
 <떡볶이에 대한 경험은 없습니다.>
 <음식에 관한 경험은 이전 필기자가 적은 건가?>
 <그렇습니다.>
 
 생각이 길어지자 노트, 아니 경험치북에 어서 경험을 적으라는 듯 새로운 글이 나타났다.
 
 <경험을 적으십시오.>
 
 잠시 생각을 하던 이종석이 오늘 있었던 일을 적었다.
 
 <오늘 고서방에서 양장본을······ 집에 와서 여기에 글을 적으니 이 책에 글이 나왔다.
 내가 쓴 적이 없는······. 그래서 나는 오늘 일을 적어 본다.>
 <흔한 경험을 적으셨습니다. 경험치 25를 획득하셨습니다.>
 
 자신이 적은 글 밑으로 나오는 글에 이종석의 얼굴에 의아함이 어렸다.
 ‘흔한 경험? 이게 어떻게 흔한 경험이야?’
 스스로 글을 적는 경험치북을 얻은 것과 그에 대한 이야기를 적었는데, 경험치북은 흔한 경험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다 문득 이종석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아! 경험치북에 담긴 경험들은 모두 이 책을 얻은 이들이 적은 경험이라고 했지······ 그렇다면 흔할 수밖에 없겠구나.”
 경험치북에 경험을 담은 자들은 모두 이 책을 얻은 사람들이니 그들에게는 흔할 수밖에 없는 경험이었다.
 “흔한 경험이라도 경험치는 준다. 그럼 흔하지 않은 경험을 적으면 경험치를 더 많이 주는 건가?”
 잠시 생각을 하던 이종석이 글을 적었다.
 
 <요리에 대한 경험을 보여줘.>
 <보유하신 경험치 중 몇을 요리에 대한 경험으로 바꾸시겠습니까?>
 <25.>
 
 스륵!
 노트가 저절로 펼쳐지며 다음 장이 나타났다.
 
 <요리의 기본은 간이다. 짜고, 달고, 맵고, 시고, 쓴 다섯 가지의 맛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는 것이 바로 요리의 시작이고 끝이다.
 고급 식재료를 쓴다고 맛이 좋아지지 않는다. 좋은 식재료도 간이 맞지 않으면 그것은 쓰레기일 뿐이다.
 하지만 사람의 입맛은 다 제각각이다. 그래서 완벽한 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요리 경험치 25를 얻으셨습니다.>
 <더 많은 경험치를 얻기 위해서는 필기자의 경험이 필요합니다.>
 
 반 페이지 정도의 글을 읽자 경험치를 얻었다는 글씨와 함께 페이지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더 많은 경험치를 얻기 위해서는 필기자의 경험을 적어야 한다는 글과 함께.
 
 <경험치를 더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해?>
 <필기자의 경험을 적어 경험치를 얻으시면 됩니다.>
 <내가 얻은 경험치로 글을 더 볼 수 있다는 거야?>
 <그렇습니다.>
 <글을 읽으면 경험에 대한 경험치를 얻고?>
 <그렇습니다.>
 <그리고 어떠한 경험이든 상관없다는 거지?>
 <그렇습니다.>
 
 노트에 적힌 내용에 이종석이 잠시 있을 때 아빠가 방에 들어왔다.
 “엄마가 씻으란다.”
 아빠의 목소리에 이종석이 급히 노트를 덮었다.
 “호오!”
 그 모습에 아빠가 웃으며 슬며시 다가와서는 양장본을 바라보았다.
 “그래, 사춘기 때는 호기심 삼아 보고 싶은 책들도 많겠지.”
 말과 함께 아빠가 양장본의 표지를 쓰다듬었다.
 “후! 우리 때도 수학 참고서 표지를 잡지에 씌워서 봤는데.”
 옛 추억이 떠오르는 듯 웃던 아빠가 양장본을 슬며시 펼쳤다.
 “아! 그런 게 아니라······.”
 “괜찮아. 아빠도 네 때는 다······ 응?”
 뭐가 괜찮다는 것인지 연신 웃으며 양장본을 펼치던 아빠의 얼굴에 의아함이 어렸다.
 자신의 생각과는 달리 빈 노트인 것이다.
 ‘일기라도 쓰려고 한 건가?’
 그런 생각을 한 아빠가 양장본을 덮고는 말했다.
 “일기 쓰려고?”
 “일기요?”
 “일기 쓰는 그런 책 아니야?”
 아빠의 말에 이종석이 첫 장을 펼쳤다. 그리고 그의 얼굴에 의아함이 어렸다.
 어느새 자신이 적어 놓은 글들이 모두 사라지고 없는 것이다.
 ‘어?’
 잠시 노트를 보던 이종석이 급히 고개를 저었다.
 “그런 것 아니에요. 그리고 방에 들어올 때 인기척 좀 내요. 아빠 말대로 사춘기 소년의 방이잖아요.”
 “후! 괜찮아. 괜찮아. 아빠는 네 방에서 뭘 보더라도 다 이해할 수 있다. 나도 너 때는 그랬고, 우리는 남자 아이가.”
 툭!
 웃으며 내 어깨를 두들긴 아빠가 짐짓 굳은 얼굴로 문 밖을 보고는 말했다.
 “그래도 엄마에게는 걸리지 않게 조심해라. 그런 모습 걸리면 며칠은 어색하니까.”
 “하아! 알았어요.”
 “그래, 어서 씻고 자라.”
 아빠의 말에 이종석이 양장본, 아니 경험치북을 보다가 몸을 일으켰다.
 
 샤워를 하고 나오니 식탁 위에 떡볶이와 튀김이 놓여 있었다.
 “팔고 남은 건 좀 버리면 안 돼?”
 부모님들은 작은 분식집을 하고 있었다. 아니 그 작은 분식집의 이층이 이종석의 집이고 아래층이 분식집인 것이다.
 팔고 남은 음식들을 간식으로 내주는데 이게 또 너무 자주다 보니 질리는 것이다.
 “음식 버리면 나중에 지옥 간다.”
 엄마의 말에 한숨을 쉰 이종석이 떡볶이를 포크로 찍어 입에 넣었다.
 그리고 그의 눈이 꿈틀거렸다.
 ‘맛······ 더럽게 없네.’
 따뜻하게 덥혀 놓기는 했지만 떡은 퍼져 흐물했고 소스는 맵기만 하고 이상했다.
 ‘어제만 해도 이렇게 맛없지 않았는데?’
 그런 생각을 하며 이종석이 슬며시 포크를 내려놓고는 한쪽에 놓인 통을 바라보았다.
 통을 열자 새빨간 양념장이 하나 가득 보였다. 살짝 손가락을 찍어 맛을 본 이종석이 입맛을 다셨다.
 ‘요리 경험치를 얻었다고 하는데 별다른 것을 모르겠네. 경험치가 25밖에 안 돼서 그런가?’
 그런 생각을 하던 이종석이 방으로 들어갔다.
 “경험치북이라······.”
 작게 중얼거린 이종석이 경험치북을 보다가 아버지가 말을 한 일기라는 말이 떠올랐다.
 ‘일기는 내 경험을 적어 놓은 것이니······ 일기처럼 쓰면 이것도 경험이 될까?’
 그런 생각을 한 이종석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흔한 경험이라도 경험치는 준다. 그럼 흔하지 않은 경험을 적으면 경험치를 더 많이 주는 건가?”
 그런 생각이 든 이종석이 잠시 경험치북을 보다가 옛날 기억을 떠올렸다.
 자신에게도 남이 하지 못한 경험이 몇 가지 있었다.
 
 <어릴 때 시골집에서 밤에 귀신이 나를 부르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밖에서 나를 부르는 “종석아, 종석아!” 하는 소리에 밖을 나간 적이 있다.
 나도 모르게 네! 네! 하고 두 번을 답하다가 무서워서 방으로 들어왔는데 나중에 들으니 저승사자가 사람을 데려갈 때 세 번 부른다고 한다.
 그때 두 번만 답하고 방에 들어와서 아마 나는 살아남은 것이 아닐까?>
 <신기한 경험을 적으셨습니다. 경험치 2500을 획득하셨습니다.>
 
 경험치 2500이라는 것에 이종석이 웃었다. 흔한 경험에 비해 백 배나 많은 경험치를 받았다.
 ‘남이 해 보지 않았을 경험을 적으면 더 많은 경험치를 주는구나. 그럼 혹시?’
 이종석이 연필을 들어서는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난 어렸을 적 외계인에게 납치가 되어 외계 행성에서 살아야 했다. 그곳에서 만난 엘프, 드워프 친구들과 함께 마왕을······.>
 
 판타지 소설에서 나올 만한 이야기를 지어내 적은 이종석이 웃었다.
 ‘이 정도 경험이면 세상에 더 없는 경험이라고 하겠······.’
 속으로 중얼거리던 이종석의 눈에 글이 보였다.
 
 <자신이 겪은 경험만을 필기하실 수 있습니다.>
 
 경험치북의 글과 함께 이종석이 적은 글이 사라졌다.
 ‘쩝! 내가 겪은 경험이 아니면 경험치를 얻을 수 없는 거군.’
 그런 생각을 하던 이종석이 문을 힐끗 바라보았다.
 ‘저 소스로 장사를 하면 우리 집 망하기 딱 좋겠어.’
 망하는 것도 그렇지만 밤마다 소스 만든다고 고생하는 부모님도 안쓰러웠다.
 “요리에 대한 경험을 얻으면 뭔가 소스 만드는데 도움이 될지도 몰라.”
 그런 생각을 한 이종석이 경험치북에 글을 적었다.
 
 <요리, 2,000>
 
 요리에 관해 경험치 2.000을 사용하겠다는 의미였다. 그러자······.
 스륵!
 책장이 펼쳐지며 새로운 글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내가 처음 음식이라는 것을 했을 때가 여섯 살 때였다. 아픈 어머니를 위해 처음으로 내가 만든 것은 콘 수프였다.
 물론 그때는 그저 냄비에 물과 옥수수를 넣고 끓인 것이 전부기는 했지만 그때 나는 처음으로 음식을 만들었고, 어머니는 그것을 아주 맛있게 드셨다.
 지금 생각을 해 본다면 콘 수프가 맛이 있을 일이 없었다. 그저 옥수수와 물만 넣고 끓인 것이 전부였으니······.>
 
 ***
 
 “종석아! 일어나!”
 큰 소리로 자신을 깨우는 엄마의 외침에 이종석이 멍하니 눈을 떴다.
 “끄응!”
 작은 신음과 함께 눈을 뜬 이종석이 몸을 일으켰다.
 우두둑! 우두둑!
 몸을 일으킬 때마다 뼈마디가 부러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으윽!”
 온몸이 저린 듯한 느낌에 몸을 주무르던 이종석은 자신을 재촉하는 엄마의 부름에 답을 하고는 밖으로 나왔다.
 “빨리 씻고 학교 갈 준비해.”
 “네.”
 간단하게 답을 하고 씻고 나온 이종석이 가방을 챙기다가 책상에 놓여 있는 경험치북을 보았다.
 
 <요리 경험치 2,000을 얻으셨습니다.>
 <요리 경험 ‘절대 미각’을 얻으셨습니다.>
 <요리 경험 ‘간 맞추기’를 얻으셨습니다.>
 <요리 경험 ‘식칼 마스터리’를 얻으셨습니다.>
 
 어제 요리에 관한 글을 다 읽자 그 밑에 경험치를 얻었다는 것과 ‘절대 미각’과 ‘간 맞추기’를 얻었다는 글이 나타났었다.
 책을 다 읽고 나자 이미 새벽에 가까워 온 시간이고 유난히 피곤해 잠을 잤는데 꿈을 꾸었다.
 꿈의 내용은 자신이 글을 읽은 요리사의 이야기였다. 자신은 콘 수프를 끓이고 있었고,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마치 자신이 그 일을 진짜 한 것처럼 생생하게 말이다. 잠시 책을 보던 이종석의 귀에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종석아, 밥 먹고 학교 가야지!”
 “네!”
 크게 답을 한 이종석이 가방에 경험치북을 넣고는 방을 나왔다.
 방 밖에는 어느새 밥상이 차려져 있었고 아빠가 막 식사를 하고 있었다.
 “어서 밥 먹어라.”
 아빠의 말에 하품을 하며 자리에 앉은 이종석이 콩나물국을 한 숟가락 떠서는 입에 넣었다.
 “후루······?”
 국을 마시는 순간 이종석의 얼굴에 묘한 표정이 떠올랐다.
 ‘맛이······.’
 이상했다. 마치 간이 미묘하게 맞지 않는 것처럼······.
 “아빠, 간 이상하지 않아?”
 “왜? 평소 먹던 맛인데.”
 이상하지 않다는 듯 콩나물국을 떠먹는 아빠를 보던 이종석이 다시 국물을 떠먹었다.
 “맛 이상한데?”
 이종석의 말에 아빠가 부엌에 있는 엄마를 힐끗 보고는 살며시 말했다.
 “국 투정하면 엄마한테 혼난다. 그냥 먹어.”
 아빠의 말에 잠시 국을 보던 이종석이 뭔가 생각하다가 소금을 가져다가 살짝 국에 넣었다.
 그리고 숟가락으로 흔들어 본 이종석의 머리에 뭔가가 떠올랐다.
 “엄마, 우리 집에 올리브유 없어?”
 “올리브유가 집에 어딨어? 근데 그건 왜?”
 “아냐.”
 하긴 집에 식용유라면 모를까, 올리브유가 있을 일이 없었다. 그에 다시 국을 떠먹은 이종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낫네.’
 그에 이종석이 아빠 국그릇에도 소금을 살짝 더 넣었다.
 “난 괜찮은데······ 응? 맛있네?”
 소금을 조금 더 넣은 것으로 맛이 바뀐 것에 아빠가 이종석을 바라보았다.
 “우리 아들 요리사 해도 되겠네.”
 “간 조금 더 한 것뿐인데 뭘.”
 그리고는 국을 떠먹던 이종석이 문득 자기 방을 바라보았다.
 ‘요리 경험치······ 설마 그것 때문인가?’
 그리고 생각을 해 보니 올리브유 맛도 모르는 자신이 왜 콩나물국에 그것을 넣을까 생각을 했는지도 이상했다.
 그에 서둘러 밥을 챙겨 먹은 이종석이 일어나서는 어제 아빠가 만들어 놓은 소스 통에 다가갔다.
 소스 통을 열고 그 안을 보는 이종석의 모습에 아빠가 말했다.
 “그것도 실패야.”
 “실패?”
 “너무 평범해. 휴우! 맛집처럼 파악! 한 소스를 만들어야 하는데······.”
 아빠의 말에 잠시 그를 보던 이종석이 손가락으로 소스를 찍어 입에 넣었다.
 ‘매움이 약간 부족하고 단맛은 많이 부족하다. 그리고······ 뭔가 시원한 맛······ 무즙을 넣고 단맛은 꿀······ 을 넣기에는 단가가 너무 높지. 그럼 물엿이나 조청을 넣으면 꿀을 대체할 수 있을 거야. 그럼 떡볶이의 색상도 살 거야.’
 소스에 부족한 것들이 떠오르기 시작한 이종석이 힐끗 엄마와 아빠를 바라보았다.
 거실에서 TV를 보며 밥을 먹고 있는 두 사람을 보며 이종석이 싱크대 밑에서 고춧가루와 물엿을 꺼내 소스 통에 넣기 시작했다.
 ‘무즙은 어떻게 한다?’
 잠시 생각하던 이종석이 부엌 옆 베란다에서 무를 하나 가져다가는 빠르게 손질을 하기 시작했다.
 타타탓! 타탓!
 이종석의 손놀림에 무의 껍질이 빠르게 벗겨졌다. 그리고 무를 빠르게 썰은 이종석이 채를 썰기 시작했다.
 타타탓! 타탓!
 “종석아, 부엌에서 뭐 해?”
 “응, 잠깐만!”
 타타탓! 타탓!
 빠르게 무를 채 썰던 이종석의 얼굴에는 살짝 놀람이 어렸다.
 ‘무 써는 것이 이렇게 쉽나?’
 혼자 있을 때 김치 썰어 본 것 외에는 경험이 없는 이종석이다. 그런데 지금 그의 손에 들린 식칼은 빠르게 무를 채 썰고 있는 것이다.
 타타탓! 타탓!
 무를 가늘게 채 썰어버린 이종석이 그것을 소스 통에 넣고는 빠르게 비볐다.
 휙휙휙!
 “너 뭐 하는 거야!”
 그제서야 그것을 본 엄마가 놀라 급히 다가왔다.
 “간 좀 했어.”
 “종석이 네가 소스를 뭘 안다고 간을 해! 뭐야? 너 무채 넣었어?”
 “응.”
 “무슨 떡볶이에 무채를 넣어! 이놈이 소스를 다 버리려고.”
 “어차피 잘 되지도 않았다면서.”
 주걱으로 소스를 비비는 이종석의 말에 엄마가 한숨을 쉬다가 문득 말했다.
 “근데 무채를 네가 했어?”
 “응.”
 “언제?”
 “방금.”
 “뭘로?”
 “칼로 하지, 뭘로 해.”
 “무채를 지금 다 했다고?”
 “응!”
 엄마의 질문에 답을 하면서도 쉴 사이 없이 소스를 비빈 이종석이 간을 한 번 보았다.
 ‘매운맛이 조금 강하기는 하지만······ 떡 넣으면 조금 중화될 거고. 이 정도면 적당해.’
 속으로 중얼거린 이종석이 엄마를 바라보았다.
 “숙성이 안 됐으니까. 떡 넣기 전에 먼저 한 번 끓이고 해야 해.”
 이종석의 말에 엄마가 소스를 손으로 한 번 찍어 먹었다. 그리고는 놀란 듯 이종석을 바라보았다.
 “맛있네.”
 그리고는 다시 소스를 한 번 찍어 먹어 본 엄마가 잠시 있다가 말했다.
 “맛있기는 한데 너무 매운 것 아냐? 그리고 간도 좀 쎈 것 같은데?”
 엄마의 목소리는 누그러져 있었다. 어제 만들었을 때보다 확실히 감칠맛도 돌고 맛이 더 나아져 있었다.
 “지금 막 해서 그래. 시간 좀 지나면 매운맛 좀 날아갈 거야. 어쨌든 약한 불로 살짝 끓이고 해.”
 “그런데 이거 어디서 배운 거야?”
 엄마의 말에 이종석이 잠시 있다가 웃으며 말했다.
 “어제 헌책방에서 ‘떡볶이 맛있게 하는 비법’이라는 책에서 봤어.”
 “그래? 그럼 그 책 좀 사오지 그랬어.”
 “내가 다 외웠으니까 됐어. 그럼 학교 갑니다.”
 서둘러 방에 들어온 이종석이 교복을 입고는 서둘러 책가방을 챙겨 집을 나섰다.
 
 ***
 
 초등학생들을 상대로 하는 장사는 아침 일찍 시작을 한다.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가기 전 아침 8시부터 9시까지가 하루 매상의 반을 차지할 만큼 말이다.
 그래서 이종석을 서둘러 학교로 보낸 부부는 서둘러 아침 장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떡볶이 판에 소스를 먼저 부은 엄마가 살짝 불을 켰다.
 ‘약한 불로 먼저 끓이라고 했지?’
 약한 불로 소스가 살짝 끓어오를 때 떡과 어묵을 집어넣었다.
 그렇게 떡볶이가 익어갈 때쯤 길에 아이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떡볶이 냄새 좋다.”
 “여기 맛없는데 냄새는 좋네.”
 아이들이 지나가면서 하는 말에 엄마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맛이 없어서 미안하구나. 에휴!’
 애들만큼 잔인한 사람도 없다. 생각 없이 말을 한다는 것은 그만큼 솔직하다는 것이니······.
 입맛을 다시며 떡을 버무릴 때 길을 가던 아이 중 한 명이 냄새에 이끌려 다가왔다.
 “아줌마, 오백 원어치만 주세요.”
 “그래, 잠시만.”
 종이컵에 오백 원어치를 덜어준 엄마가 아이의 눈치를 보았다.
 ‘맛있다고 해야 할 텐데······.’
 이종석이 만든 소스다 보니 평소보다 조금 더 우려가 되었다.
 “와, 맛있다!”
 아이가 맛있다는 듯 입가에 소스를 묻히며 먹는 것을 본 엄마의 얼굴에 안도감이 어렸다.
 “맛있니?”
 “네! 정말 맛있어요.”
 “그래?”
 아이의 말에 엄마가 떡볶이를 보다가 이쑤시개로 하나를 찍어서는 입에 넣었다.
 “어머! 여보!”
 엄마의 말에 뒤에서 튀김을 준비하던 아빠가 나왔다.
 “왜?”
 “이거 먹어봐요!”
 엄마의 말에 아빠가 떡볶이를 한 번 먹고는 눈이 커졌다.
 “맛있다.”
 “그렇죠! 어머! 이거 왜 이리 맛있어.”
 두 사람의 말에 아이 역시 동감이라는 듯 떡볶이를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모습에 지나가던 아이들이 한두 명씩 다가와서는 떡볶이를 사 먹기 시작했다.
 
 ****
 
 오늘은 헌책방에 가지 않고 일찍 돌아온 이종석은 뭔가 신기한 것을 볼 수 있었다.
 웅성웅성!
 일층 분식집 안이 꼬마들로 가득 차 있었다.
 “떡볶이 이 인분 주세요!”
 “떡볶이 일 인분 더 주세요!”
 아이들은 하나같이 떡볶이를 시키고 있었고, 안에 들어오지 못한 아이들은 창가에 있는 판매대에서 컵으로 된 오백 원짜리 떡볶이를 먹고 있었다.
 “와, 여기 진짜 맛있다.”
 “응, 맛있어.”
 아이들이 맛있게 떡볶이를 먹는 만큼 부모님의 손도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게다가 떡볶이가 맛있어서 그런지 그와 함께 먹는 순대와 튀김 등도 같이 많이 나가고 있었다.
 떡볶이 소스에 순대와 튀김을 찍어 먹는 것도 별미이니 말이다.
 그 모습에 이종석이 엄마에게 눈짓을 하자, 그녀가 급히 말했다.
 “너도 안으로 들어와서 일 좀 도와.”
 “내가?”
 평소 일 도우라는 말을 하지 않던 엄마의 말에 이종석이 의아해하다가 바쁜 안을 보고는 말했다.
 “바쁜 것 안 보여!”
 “알았어. 옷 갈아입고 바로 내려올게.”
 “그래 빨리 와!”
 엄마의 말에 이층으로 올라가 옷을 갈아입고 온 이종석이 아이들이 빠진 탁자에서 그릇들을 부엌으로 가져갔다.
 “아이고 정신없다!”
 함박웃음을 지으며 연신 설거지를 하고 있는 아빠의 모습에 이종석이 말했다.
 “근데 장사 안 된다고 하지 않았어? 왜 이리 애들이 많아?”
 “그게 다 떡볶이 덕이다.”
 “떡볶이?”
 “그래, 엄청 맛있어. 야, 가서 하나 집어 먹어봐.”
 아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이종석이 떡볶이를 비비고 있는 엄마한테 다가갔다.
 “아!”
 아 하며 입을 벌리는 이종석의 모습에 엄마가 떡볶이를 하나 집어 그 안에 쏙 넣어주었다.
 떡볶이를 입에 넣은 이종석이 잠시 그 맛을 보다가 슬쩍 밑에 있는 쓰레기통에 뱉었다.
 “왜? 맛없어?”
 기대감에 차 있는 엄마의 얼굴을 본 이종석이 앞에 있는 아이들을 보고는 살짝 속삭였다.
 “혹시 어묵 국물 넣었어?”
 “소스가 졸아서. 왜?”
 “넣지 말지.”
 “왜? 맛있는데?”
 엄마가 떡을 하나 집어 입에 넣으며 하는 말에 이종석이 고개를 저었다.
 “칼칼해야 할 소스 맛이 어묵 기름 때문에 탁해졌어.”
 “그럼 어떡해? 계속 불을 켜두고 있으니 시간이 지나면 소스가 졸아드는데 그렇다고 물을 붓자니 소스가 묽어질 것 같고.”
 “그래도 여기에 어묵 국물은 넣지 마. 그냥 조금씩 물 넣는 식으로 해.”
 “그래 알았다. 아이구! 우리 아들 떡볶이 요리사님이 다 되셨네.”
 기분 좋은 얼굴로 웃은 엄마가 학생들의 성화에 서둘러 종이컵에 떡볶이를 담아 팔기 시작했다.
 
 재료가 떨어져 더 팔 수 없게 되어서야 가게 문을 닫은 식구들이 이층으로 올라왔다.
 “아이고, 힘들다.”
 힘이 든다고 하면서도 연신 웃으며 엄마와 아빠는 오늘 팔고 번 돈을 연신 세고 있었다.
 “35만 7500원!”
 “꺄악!”
 아빠의 말에 엄마가 환하게 웃으며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재료만 더 있었으면 사십만 원 찍었겠다.”
 “그러게 말이야. 이렇게 벌면 금방 부자 되겠다.”
 환하게 웃던 아빠가 종석을 불렀다.
 “종석아!”
 아빠의 부름에 손을 씻던 이종석이 다가왔다.
 “왜?”
 “자!”
 아빠가 만 원짜리 세 개를 꺼내 이종석의 손에 쥐어주었다.
 “오!”
 “기분이다.”
 기분 좋게 웃으며 돈을 쥐어준 아빠가 말했다.
 “그리고 그 책 가서 사오거라.”
 “책?”
 “그 떡볶이 맛있게 하는 방법이라는 책 말이야.”
 “아······ 그 책 팔리고 없어.”
 “그래? 그럼 앞으로 소스는 어떻게 하지?”
 “내가 만들면 되지.”
 “네가?”
 “응. 생각난 김에 만들어 보자.”
 말과 함께 이종석이 방에서 올리브유를 가지고 나왔다. 집에 오는 길에 생각이 나서 사온 것이다.
 “그건 왜?”
 “넣으면 맛있을 것 같아서.”
 말과 함께 이종석이 고춧가루와 고추장을 꺼내자 엄마와 아빠가 그 옆에서 재료들을 꺼내는 것을 도왔다.
 그리고 재료들을 빠르게 섞기 시작했다.
 소스를 섞은 이종석이 마지막으로 올리브유를 넣으려다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왠지 올리브유가 필요할 것 같기는 한데 소스에 넣으려니 망설여지는 것이다.
 대신······.
 ‘떡에 바를까?’
 왜인지 소스보다는 떡에 바르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 이종석이 떡을 가져다가 올리브유를 살짝 발랐다.
 ‘너무 바르면 단가가 안 맞지.’
 초등학생 상대로 일 인분에 이천 원 받고 파는 떡볶이다. 너무 고급스러운 재료가 들어가면 팔 수 없다.
 그에 살짝 떡에 묻히는 것으로 마무리를 한 이종석이 만들어진 소스의 간을 보았다.
 ‘잘 됐네.’
 “엄마, 떡볶이 해 봐.”
 “알았어.”
 이종석이 하던 것을 보던 엄마가 프라이팬에다 소스와 떡을 섞어서는 떡볶이를 만들어냈다.
 “마······ 맛있다.”
 “응! 진짜 맛있다.”
 다 만들어 놓은 떡볶이를 먹은 부모님이 감탄을 하는 것과 달리 이종석의 얼굴에는 묘한 표정이 어려 있었다.
 ‘아직 숙성이 안 되서 그런가? 간이 묘하게 따로 노네.’
 “씁!”
 숨을 날카롭게 들이쉰 이종석이 입안에 남은 향과 맛을 음미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양념 이대로 두고 내일 아침에 다시 간을 봐야 할 것 같아요.”
 “왜, 이대로도 좋은데?”
 “숙성을 하고 나면 맛이 변할 수 있어요. 그리고······ 내일부터는 떡을 넣기 전에 올리브유 조금 넣고 비빈 후에 넣으세요.”
 “알았다.”
 엄마의 말에 이종석이 샤워실로 들어갔다.
 
 샤워를 하고 나온 이종석이 가방에서 경험치북을 꺼냈다.
 ‘확실히 요리에 대한 경험이 생긴 것은 맞는 것 같아.’
 그렇지 않다면 음식 맛에 대한 감각이 이렇게 어제와 다를 수는 없었다.
 오늘 점심에 급식을 먹을 때 너무 맛이 없어서 토할 뻔하지 않았던가.
 그전만 해도 맛은 몰라도 먹을 만하다 생각을 했었는데 말이다.
 게다가 오늘 떡볶이 장사가 이렇게 잘된 것은 분식집 시작한 이후 처음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좋아하는 부모님의 모습도······.
 ‘엄마 말대로 이렇게 장사가 되면 금방 부자가 되겠다.’
 그런 생각을 하며 이종석이 경험치북을 펼쳤다.
 “이게 정말 말도 안 되는 물건이기는 하구나.”
 자신의 글에 답을 한다는 것도 그렇고 경험을 준다는 것도 그렇고······ 신기한 물건이었다.
 ‘경험치를 만들어 놓는 것이 좋겠지?’
 뭐가 어찌 되었든 경험치북에서 경험을 얻으려면 경험치를 만들어야 한다.
 잠시 있던 이종석이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컴퓨터를 켰다.
 우우웅!
 낡은 컴퓨터가 진동을 하며 켜지자 이종석이 자신의 얼굴북에 들어갔다.
 그리고는 그 내용들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이건 괜찮네.”
 얼굴북에 자신이 적은 일들 중 일상 속에 있었던 일들이었다. 그리고 그중에서 경험치북에 적을 만한 내용을 찾았다.
 ‘그래, 이런 일도 있었지.’
 속으로 중얼거린 이종석이 경험치북에 글을 적어가기 시작했다.
 
 <내가 중학교 이학년일 때 아빠 심부름으로 슈퍼를 가고 있었다.
 추운 겨울날이었는데 어떤 아저씨가 술에 취해 길거리에서 자고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아무도 그 아저씨를 깨우거나 하지 않았다.
 나는 걱정이 되었다. 날도 추운데 혹시 얼어 죽으면 어쩌나 하는······.
 그래서 아저씨를 깨우고 집에 전화를 걸어 그 집 아들이 와서 데려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사람을 구하는 경험을 적으셨습니다. 경험치 2,500을 획득하셨습니다.>
 
 2,500이라는 말에 이종석이 미소를 지었다.
 ‘신기한 경험과 같은 경험치를 주는구나.’
 미소를 지은 이종석이 다시 경험치북에 글을 적기 시작했다.
 
 <작년이었다. 길을 가는데 갑자기 뒤에서 쾅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보니······.>
 
 이종석은 태어나서 세 사람을 구해 본 적이 있었다. 첫 번째는 술 취한 사람이었고, 두 번째는 오토바이 사고자를 보고 119를 부른 것, 세 번째는 무단 횡단하던 할아버지의 교통사고를 보고 달려가서 자동차가 오지 못하게 막고 119를 부른 것이었다.
 
 <사람을 구하는 경험을 적으셨습니다. 경험치 1,500을 획득하셨습니다.>
 <사람을 구하는 경험을 적으셨습니다. 경험치 500을 획득하셨습니다.>
 
 두 개의 경험을 적을 때마다 획득 경험치가 줄어들었다.
 ‘특이한 경험이라도 같은 경험이라면 포인트가 줄어드는구나. 하긴 의사나 구급대원들이라면 이런 경험을 계속하게 될 테니까.’
 일반인이 사람을 구하는 경험은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학생으로서 이런 경험을 세 번이나 한 이종석이 특이한 것이었다.
 어쨌든 경험치를 총 4,500을 얻은 이종석이 경험치북을 바라보았다.
 ‘이제 어떤 경험을 얻어 보지?’
 그런 생각을 잠시 하던 이종석이 요리라고 적을까 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생각을 해 보면 분식집에서 고급 요리를 내놓을 것도 아니고 지금 요리 실력만 있어도 장사는 잘 될 것이다.
 게다가 절대 미각인가 뭔가로 입맛이 예전 같지 않다. 솔직히 떡볶이를 잘하게 돼서 집안에 도움이 된 것은 좋지만······ 예전처럼 싸구려 입맛이 좋았다.
 ‘입맛이 이래서야 이제는 뭘 먹어도 맛있다고 느끼지 못할 거야. 그런데 더 미각이 예민해지면······ 으! 끔찍하다.’
 그런 생각을 하던 이종석이 경험치를 생각했다.
 ‘어제 안 쓴 경험치가 500이니까. 오늘 얻은 것까지 5,000······ 2,000으로 요리 솜씨가 좋아졌으니 5,000이면 어느 정도의 경험이 생길까. 그리고 어떤 경험을 얻는 것이 좋을까?’
 잠시 생각을 하던 이종석이 경험치북 위에 종이를 하나 올려놓고는 글을 적었다.
 
 <공부?>
 <연애?>
 <운동?>
 <어떤 것을 하는 것이 나에게 가장 좋을까?>
 
 잠시 종이에 적힌 글을 보던 이종석이 생각을 하다가 몸을 일으켰다.
 “엄마!”
 “왜?”
 엄마가 무슨 일이냐는 듯 바라보자 이종석이 말했다.
 “나 뭐가 됐으면 좋겠어?”
 “너? 왜 엄마가 돼 달라는 사람 되려고?”
 “뭐, 할 수 있으면.”
 “그럼 일단 대학부터 잘 가지 그래.”
 “대학?”
 “근데 지금 성적으로 대학은 무리인가?”
 엄마의 말에 잠시 생각을 하던 이종석이 방으로 들어왔다.
 ‘대학이라······ 그 생각을 하지 못했네.’
 확실히 좋은 대학을 가면 부모님이 좋아할 것이고 자신의 장래에도 좋을 것이다.
 다만 지금의 성적이 문제다.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못하는 것도 아닌 그저 평범한 성적을 가진 것이 바로 이종석이다.
 가려고 하면 못 갈 것도 없지만 인 서울은 무리다. 지방에서도 조금은 안 좋은 곳을 갈 정도의 성적······.
 ‘공부 경험도 있으려나?’
 그런 생각을 한 이종석이 경험치북에 글을 적었다.
 
 <공부에 관한 경험도 있나?>
 <공부에 관한 경험을 얻으시겠습니까?>
 <공부 2,000>
 
 스르륵!
 그러자 페이지가 넘어가며 글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어렸을 적 내 첫 번째 스승님은 호북 균현에 위치한 무당학관의 관주님이셨다.
 호북의 유명한 명사셨던 스승님을 존경하신 부모님께서는 나를 여섯 살 때 그분에게 보내셨다.
 그분의 밑에서······.>
 
 호북 균현이라는 글과 무당학관이라는 글에 이종석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중국 사람이었나 보네. 그런데······ 설마 이 공부라는 경험, 사서삼경 같은 것에 관한 경험은 아니겠지? 그거면 경험치 2,000 날리는 건데.’
 대학을 가는데 사서삼경이 무슨 소용이 있겠나? 이종석이 필요한 경험이 아니었다.
 하지만 일단 이종석은 글을 계속 읽어 내려갔다. 이미 경험치를 2,000을 사용하였으니 안 읽으면 똥이 되는 것이다.
 그에 이종석이 일단 글을 읽어 내려갔다.
 
 <나는 그리 머리가 좋은 편은 아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스승님께서는 나를 좋게 보셨다.
 “너는 문일지십의 머리는 아니나, 하나를 배우면 그 하나를 네 자신의 것으로 삼을 줄 아니 문일지일의 마음은 가졌구나.”
 라는 말로 나를 칭찬······.>
 
 ***
 
 이종석은 꿈을 꾸고 있었다. 공부의 경험을 적은 중국 명나라 학사의 경험을 꿈으로 겪고 있었다.
 그리고 꿈속에서 이종석은 그가 아닌 학사 그 자체였다. 학사가 하는 행동과 그에게 벌어진 일들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마치 그 자신이 학사가 된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조금 당황스러운 것은······ 그 학사가 적어 놓은 공부의 경험이 조금 다르다는 것이었다.
 
 <공부>
 
 중국에서는 공부를 이렇게 발음한다. 쿵푸······.
 이 학사는 학사로서 시작을 했지만 균현에 있는 무당파의 서고 정리를 도와주러 갔다가 무공을 익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공부 경험치 2,000을 얻으셨습니다.>
 <공부 경험 ‘문일지일’을 얻으셨습니다.>
 <공부 경험 ‘건곤구공’을 얻으셨습니다.>
 
 ***
 
 “아들! 학교 가야지!”
 잠을 깨우는 엄마의 외침과 함께 이종석의 눈이 번쩍 떠졌다.
 “끄응!”
 작은 신음과 함께 몸을 일으키던 이종석이 문득 자신의 어깨를 좌우로 비틀었다.
 “응? 왜 이리 개운하지?”
 온몸이 새털처럼 가벼웠고 몸이 부드럽게 움직였다.
 부웅! 부웅!
 몸을 이리저리 비틀어 보던 이종석이 일어나다가 문득 자신의 팔을 만졌다.
 “응? 근육?”
 자신의 팔에 근육이 있었다. 말랑말랑하기만 하던 자신의 팔에 근육이 있었다.
 헬스하는 사람들처럼 크고 두껍지는 않지만 어제는 없던 잔근육들이 보였다.
 보기 좋게 갈라져 있는 근육들에 이종석이 의아해할 때 엄마의 외침이 다시 들려왔다.
 “아직도 자! 어서 안 일어나!”
 “알았어요!”
 엄마에게 외친 이종석이 방을 나와서는 서둘러 욕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샤워를 하기 위해 옷을 벗던 이종석의 얼굴에 놀람이 어렸다.
 “왕(王) 자다.”
 샤워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배에 왕 자가 있었다. 아니 왕 자뿐만이 아니었다. 온몸에 잔근육이 자글자글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이게······ 내 몸이야?”
 몸을 비틀어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던 이종석의 얼굴에는 미소가 어렸다.
 근육이 크지는 않아도 확실히 보기 좋은 근육이었다.
 ‘확실히 꿈을 꿀 때 뭔가 있어.’
 어제 요리사 꿈을 꿀 때는 몸이 극도로 피곤했다. 하지만 일어나고 보니 식칼도 다룰 수 있게 되었고 미각도 변했다.
 그리고 오늘은 학사의 꿈을 꾸고 몸이 이렇게 변했다. 꿈속에서 학사는 공부도 했지만 건곤구공이라는 무공을 익히며 수련도 했었다.
 건곤구공이란 공을 가지고 하는 일종의 수련으로 공을 던졌다가 받으며 그 흐름을 따라 몸으로 굴리는 것이었다.
 그러는 과정에서 몸의 근육이 풀리고 부드럽게 해 주는 효과가 있었다.
 또한 흐름에 관한 수련도 할 수 있었다.
 아마도······.
 ‘꿈을 통해 경험이 내 몸에도 적응이 되는 모양이다. 그럼 경험을 얻으려면 꼭 잠을 자야 하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한 이종석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책을 통해서도 경험은 쌓였어. 다만······ 몸이 경험에 적응을 하려면 잠을 자야 하는 걸 거야.’
 그런 생각을 잠시 하던 이종석의 귀에 엄마의 고성이 들렸다.
 “빨리 씻고 나와!”
 엄마의 고성에 몸을 감상하던 이종석이 급히 샤워기를 틀고는 빠르게 몸을 씻고 나왔다.
 욕실에서 샤워를 하고 나오는 이종석에게 밥 먹으라고 말을 하려던 엄마가 문득 그를 위아래로 흩어보았다.
 “어머! 아들 운동해?”
 “무슨 말이야?”
 “아니 우리 아들이 언제 이렇게 근육들을 키웠어? 배에 복근도 있네.”
 엄마의 말에 자신의 몸을 내려다본 이종석이 피식 웃었다.
 “그냥 별것 아냐.”
 말과 함께 자신의 방으로 빠르게 들어간 이종석이 서둘러 교복을 입고는 밖으로 나왔다.
 이미 상에는 아빠가 앉아 밥을 먹고 있었다.
 “와서 밥 먹어라.”
 아빠의 말에 대충 고개를 끄덕인 이종석이 소스통을 열었다. 손가락으로 살짝 찍어 맛을 본 이종석이 미소를 지었다.
 ‘역시 맛이 겉돌았던 건 숙성이 필요했던 거였어······ 하지만 아직도 많이 부족한데.’
 소스를 찍어 먹자 넣으면 좋을 것 같은 식재료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버섯하고 멸치 간 것······ 생크림을 조금 섞으면 부드러운 맛도 날 것 같······.’
 생각을 하던 이종석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지. 이건 어디까지나 오백 원에 한 컵, 일 인분에 이천 원짜리인데 원가가 너무 비싸면 안 돼.’
 속으로 중얼거린 이종석이 고춧가루하고 소금, 그리고 물엿을 조금 가져다가 더 섞었다.
 아무래도 숙성을 하면서 맛이 조금 변했기에 부족한 간을 한 것이다.
 “어때 아들, 괜찮아?”
 “응. 이건 숙성 다 된 거니까. 따로 끓일 필요 없고 그냥 소스 넣고 끓이면 돼. 대신 어제 말한 대로 올리브유에 떡 비비고 넣는 것 잊지 마.”
 “알았어. 그리고 어서 밥 먹어!”
 엄마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이종석이 서둘러 밥을 먹다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역시 내 입맛이 변한 게 문제구나.’
 오늘 아침은 카레였다. 누구나 좋아하고 맛이 이상할 일이 없는 것이 카레인데······.
 이것도 맛이 이상했다. 간이 너무 강하다고 해야 하나······.
 ‘그냥 먹자.’
 먹지 못할 정도는 아니기에 대충 밥을 말아서 먹은 이종석이 가방을 가지고 나오다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비닐봉지에 양념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건 뭐 하러?”
 “필요해서.”
 소금, 설탕, 고춧가루 정도를 조금씩 덜어 챙긴 이종석이 그것을 가방에 넣고는 서둘러 집을 나섰다.
 
 집을 나선 이종석은 학교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이종석의 학교 태진고등학교는 남녀공학으로 집에서 삼십 분 정도 걸어야 했다.
 게다가 아침 자율학습 시간이 8시에 시작을 해서 최소한 8시까지는 교실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그래서 넉넉잡아 집에서는 7시 10분쯤에는 나서는 것이다.
 걸음을 옮기며 이종석은 경험치북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경험치북에는 얼마나 많은 필기자들이 있었을까?’
 경험치북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경험치북은 경험에 관한 것만 답을 하고 알려 줄 뿐 필기자들에 대한 것을 답해주지 않았다.
 ‘그나저나 건곤구공이라······.’
 어제 자신이 본 부분까지와 꿈속에서 본 건곤구공은 무협 소설에서 보던 무당파의 기본 무공이었다.
 하지만 필기자는 그것으로 수련을 했고 시비가 붙은 이들과 싸움을 해 이겼다.
 건곤구공으로 말이다. 만약 그 경험도 자신이 얻었다면 자신도 그렇게 싸움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럼 나도 꿈에서 보던 것처럼 강해졌으려나?’
 그런 생각을 하며 걸음을 옮기던 이종석이 문득 땅에 떨어져 있는 캔을 발로 툭 건드렸다.
 툭!
 이종석의 발에 닿은 캔이 솟구쳤다. 그리고 떨어지는 캔을 이종석이 발등으로 잡았다.
 스르륵!
 정확히 발등 위에 선 채 발의 움직임에 따라 위아래로 움직이는 캔을 보며 이종석이 툭! 다시 차 올렸다가 떨어질 때 발로 찼다.
 파앗!
 휘이익!
 발에 맞은 캔이 근처 쓰레기통으로 쏘옥 하고 들어가는 것을 보던 이종석이 자신의 발을 바라보았다.
 ‘축구를 해 볼까?’
 꿈에서 필기자는 공을 가지고 건곤구공을 수련했다. 발과 손을 이용해 마치 몸에 붙은 것처럼 공을 가지고 수련하던 것을 생각하니 축구를 해도 잘할 것 같았다.
 그리고 지금 이종석은 뭐든지 하면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넘쳤다.
 그런 생각을 하며 걸음을 옮기던 이종석의 등을 누군가가 후려쳤다.
 휘익!
 하지만 누군가의 그 손짓은 조금은 이상하게 끝이 났다.
 이종석의 등에 손이 닿는 순간, 그의 등이 부드럽게 앞으로 움직이며 비틀어지자 그 손이 마치 이종석의 등을 쓰다듬으며 지나가는 것처럼 앞으로 나간 것이다.
 휘청!
 “어라!”
 이종석의 등을 후려쳤던 사람이 손이 앞으로 미끄러져 나가자 중심을 못 잡고 앞으로 자빠지려 했다.
 그에 이종석이 급히 그 사람을 잡았다.
 “야! 조심해!”
 이종석의 말에 사람이 급히 중심을 잡고는 웃었다.
 “이 자식, 몸놀림 좋은데. 나 오는 거 알았냐?”
 웃으며 이종석과 나란히 서는 사람은 그와 같은 학교 반 친구 김영우였다.
 김영우의 말에 이종석이 문득 자신의 몸을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어떻게 한 거지?’
 김영우가 자신을 때릴 때 자기도 모르게 몸이 반응을 했다. 그리고 그 반응의 결과가 김영우의 손을 몸으로 흘려버린 것이다.
 ‘혹시 진짜 나 고수 된 것 아냐?’
 
 ***
 
 학교에서 수업을 하고 점심시간이 되었다.
 “밥 먹으러 가자.”
 잠을 자던 김영우가 어느새 일어나서는 재촉을 했다.
 “기다려.”
 이종석이 가방에서 비닐을 챙기는 것에 김영우가 의아한 듯 그것을 바라보았다.
 “하나는 고춧가루인 것 같은데 그거 다 뭐냐?”
 “소금하고 설탕, 그리고 후추.”
 “그걸 왜 가지고 왔어?”
 “요즘 급식 너무 맛없더라.”
 “그래? 난 먹을 만하던데.”
 ‘나도 이틀 전만 해도 먹을 만했다.’
 입맛을 다시며 이종석이 비닐들을 주머니에 넣고는 김영우의 어깨를 툭 쳤다.
 “가자.”
 
 이종석이 조금 미적거리는 사이 학생식당에는 어느새 기다란 줄이 늘어서 있었다.
 “에이! 신발 같으니······ 너 때문에 늦었잖아.”
 김영우의 말에 이종석도 입맛을 다시고는 길게 늘어선 줄을 바라보았다.
 “지금 서도 이십 분은 걸리겠다.”
 “차라리 이십 분 있다가 와서 줄 서자. 이래서는······ 뭐 점심시간 줄 서고 밥 먹으면 끝이겠다.”
 김영우의 말에 이종석도 고개를 끄덕이고는 학생식당 옆에 있는 운동장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과 같은 생각을 한 학생들이 있는지 이미 운동장에는 삼삼오오 모여 햇볕을 쬐거나 놀고 있는 아이들이 있었다.
 그것을 보던 이종석의 눈에 한쪽에 떨어져 있는 야구공이 보였다.
 “야구공이네.”
 발로 야구공을 툭 차자 김영우가 잘 되었다는 듯 공을 들었다.
 “이십 분 간 공놀이나 하자.”
 “글러브도 없이 무슨 공놀이야. 그거 맨손으로 잡으면 아파.”
 “누가 쎄게 던진대? 가볍게 툭툭 던지자는 거지.”
 말과 함께 김영우가 가볍게 공을 던졌다.
 휘익!
 날아오는 공을 잡은 이종석이 이 정도면 할 만하겠다는 생각에 마찬가지로 가볍게 공을 던졌다.
 툭! 툭!
 그렇게 가볍게 공을 주고받던 김영우가 재미없다는 듯 공을 던졌다.
 “여자애들 공놀이도 아니고 재미없다.”
 공을 받은 이종석도 동감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가볍게 던지고 받으니 이게 무슨 짓인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러다 이종석이 손에 쥔 공을 위로 던지고 받았다.
 ‘건곤구공이라······.’
 건곤구공은 공을 가지고 하는 수련법이다. 그리고 이종석의 기억 속에도 선명한 것······ 하지만 직접 해본 적은 없는······.
 잠시 공을 쥐고 있던 이종석이 힐끗 학생식당을 바라보았다. 아직도 줄은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건곤구공 해보자.’
 생각과 함께 이종석이 공을 휙 하고 높이 던졌다.
 높이 치솟는 공과 함께 이종석이 가볍게 양손을 좌우로 펼치고는 무릎을 살짝 구부렸다.
 처음 해 보는 동작인데도 어색하지 않았다.
 ‘이게 그 필기자의 경험인가?’
 자신이 겪어 보지 않았지만 책과 꿈을 통해 얻은 학사의 경험이 그에게도 익숙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휘이익!
 가볍게 그의 앞에 공이 떨어져 내렸다.
 스윽!
 공이 허리춤까지 떨어졌을 때, 이종석의 무릎이 들려졌다.
 스르륵!
 무릎에 닿은 공이 부드럽게 다리의 선을 따라가다가 발에 닿았다.
 탓!
 가볍게 발을 튕기자 공이 다시 솟구쳤고, 이종석의 손이 공을 감싸며 회전을 했다.
 휘익! 휘익!
 손과 손 사이에 끼어 회전을 하는 공이 부드럽게 이종석의 몸을 타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몸이 부드럽다. 마치 내가 문어나 오징어가 된 것 같아.’
 건곤구공을 펼치며 공을 움직이는 이종석의 몸에는 직선이 없었다.
 공을 부드럽게 받고 몸의 곡선을 타고 부드럽게 움직였다.
 마치 몸의 뼈란 뼈는 하나도 없는 연체동물이 된 것처럼 이종석은 공을 온몸으로 굴리고 있었다.
 스슥! 스슥!
 건곤구공을 펼치며 몸을 움직이던 이종석의 얼굴에는 미소가 어렸다.
 ‘내 몸이 내 마음대로 움직인다. 이거······ 좋구나.’
 공을 굴리는 것뿐이었지만 이종석은 좋았다. 자신의 몸이 자신의 마음대로 움직인다는 것이 기분이 좋았다.
 게다가 건곤구공을 펼칠수록 몸이 개운해지는 느낌도 들고 말이다.
 그렇게 얼마를 건곤구공에 빠져있었을까 김영우가 소리쳤다.
 “야, 줄 빠지기 시작한다.”
 소리를 지르며 학생식당 쪽으로 뛰어가는 김영우의 외침에 이종석이 공을 잡았다.
 휘리릭! 휘리릭!
 손에 쥐어질 때까지 손바닥 안에서 빠르게 회전을 하는 공을 보던 이종석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파앗!
 빠르게 회전을 하던 공이 주먹에서 그대로 멈췄다. 손바닥이 쓰릴 정도로 빠르게 회전을 하던 공을 잠시 보던 이종석이 그것을 휙 하고 원래 있던 땅에 던지고는 서둘러 김영우의 뒤를 따랐다.
 건곤구공이 재밌기는 했지만 지금은 밥이 먼저다.
 김영우의 뒤를 따라 빠르게 식당으로 가 안으로 들어간 이종석이 입맛을 다셨다.
 밖의 줄은 없었지만 급식대까지의 줄은 여전히 있었다.
 “선생들은 따로 편하게 먹더만. 학교의 주인은 학생인데 이거 너무 차별하는 것 아냐?”
 학생식당 뒤쪽에는 교직원 식당이 따로 있었다. 그래서 선생님들은 따로 줄을 서지 않아도 될 만큼 편하게 식사를 하였다.
 김영우가 투덜거리며 줄의 뒤에 서자 그 뒤를 따라 줄을 선 이종석이 말했다.
 “그럼 네가 선생님이 돼라.”
 “무슨 소리가 그러냐? 이럴 때는 선생님들 욕하면서 울분을 토해야지. 이 시대의 차별에 대해서!”
 “시끄럽고 급식이나 받아. 이 급식충아.”
 급식대 앞에 있는 인식기에 학생증을 가져다 댄 이종석이 식판을 들고는 급식을 받았다.
 ‘오늘의 메뉴는 제육에 김치, 김, 음료수, 김칫국이네.’
 평소라면 좋아했을 메뉴다. 양이 적기는 해도 제육에 밥을 비벼 먹으면 그런대로 먹을 만하니 말이다.
 하지만······ 입맛이 절대 미각으로 변한 후에는······.
 ‘맛없겠지. 밥 먹는 것이 이렇게 중요할 줄은 몰랐네.’
 맛없는 것을 먹는다는 것이 이렇게 괴로운 일일 줄은 생각을 못했다.
 “야, 저기 자리 났다.”
 김영우가 빠르게 걸음을 옮기자 그 뒤를 따르던 이종석이 자기도 모르게 걸음을 멈췄다.
 ‘이 새끼가 자리를 골라도.’
 김영우가 찾은 빈자리는 전후좌우로 모두가 여자애들이 앉아 있는 곳이었다.
 그에 멈칫했던 이종석에게 김영우가 눈치 없이 말했다.
 “이리 와.”
 김영우의 말에 밥 먹던 여자애들 몇이 그를 바라보았다. 그에 이종석이 작게 한숨을 쉬고는 김영우의 옆에 식판을 내려놓았다.
 ‘이 자식은 사춘기도 안 오나?’
 남녀공학이기는 하지만 남자와 여자 반이 달라 자주 접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아직 이종석에게는 여자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마치 핸드폰 게임 속 얻기 힘든 칠성 각성 카드 같은 느낌?
 있기는 하지만 얻기 힘든, 그리고 여자 친구는 마치 용과 같은 환상의 생물이라고 할까?
 그런데 김영우 이놈은 거리낌이 없는 것이다. 아마 여자와 싸우라고 하면 머리카락 잡고 서로 싸울지도 모르는 놈이 바로 이 김영우였다.
 조금은 어색하게 식판만을 주시하던 이종석이 소매를 걷었다.
 ‘밥 빨리 먹고 가자.’
 생각과 함께 주머니에서 비닐봉지들을 꺼낸 이종석이 일단 음식들을 먹었다.
 ‘역시나네.’
 입에 맞지 않는 것을 느끼며 이종석이 소금 봉지에서 소금을 꺼내서는 손바닥 사이에 넣고는 비볐다.
 스슥! 스슥!
 손바닥 사이로 소금이 갈리는 것을 느끼며 이종석이 제육과 김칫국에 조금씩 넣었다.
 “소금을 뭐 하러 갈아서 넣냐? 어차피 넣으면 녹을 텐데.”
 “이렇게 식은 요리에는 소금 그대로 넣으면 잘 녹지도 않고 어디는 짜고 어디는 싱거울 수 있어.”
 그리고는 고춧가루도 조금 꺼내 풀었다.
 ‘설탕은 안 넣어도 되겠다.’
 단맛은 충분하다는 생각을 하며 음식을 먹어보니······ 그런대로 먹을 만해졌다.
 “그냥 먹지. 새끼 유별은.”
 옆에서 그것을 보던 김영우가 젓가락으로 이종석의 제육을 한 점 집어 먹었다.
 “오! 뭐야? 왜 이리 맛있어?”
 김영우의 말에 이종석이 한숨을 쉬었다. 김영우의 호들갑에 여자애들의 시선이 느껴진 것이다.
 “그냥 먹자.”
 “야, 나도 해 줘.”
 김영우의 말에 이종석이 그냥 자기 식판을 그에게 주고는 그 식판을 가져다가 다시 간을 맞췄다.
 “오! 이거 소금 좀 넣었다고 맛이 이렇게 달라지냐?”
 “고춧가루도 넣었다.”
 “어쨌든 어떻게 한 거야?”
 제발 닥치고 밥 좀 먹자고 하고 싶은 이종석이다. 하지만 답을 하지 않으면 계속 귀찮게 할 것 같아 이종석이 말을 해 주었다.
 “어떤 음식이든 맛이 없다는 건, 짠맛, 단맛, 쓴맛, 신맛, 매운맛 이 다섯 가지 맛의 균형이 틀어졌다는 거야. 그래서 대충이지만 부족한 짠맛과 매운맛을 더 넣은 거고.”
 “그것만으로도 이렇게 맛이 좋아진다고?”
 “너 컵에 물을 따르면 넘치고 안 넘치는 것의 차이가 뭔지 아냐?”
 “많이 따르면 넘치고 덜 따르면 안 넘치고?”
 “한 방울의 물이야.”
 “한 방울?”
 “한 방울의 물이 더 따라지느냐 아니냐에 따라 물이 넘치느냐 안 넘치느냐가 결정이 돼. 난 지금 맛에 그 한 방울을······.”
 말을 하던 이종석의 눈에 김영우가 밥에 제육을 비벼 먹는 것이 보였다.
 어느새 자신의 말은 듣지도 않고 있었다.
 ‘씹어 먹을 새끼······.’
 속으로 중얼거리던 이종석이 돼지처럼 허겁지겁 급식을 들이키고 있는 김영우를 부럽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먹성이 아니라 저 싸구려 입맛이 말이다.
 ‘이게 맛있다? 하아! 식도락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구나.’
 먹는 것에도 도가 있고 즐거움이 있다는 말······ 아마 진짜 유명한 맛집이 아니면 앞으로 이 식도락을 느끼기 힘들 것 같았다.
 고개를 저은 이종석이 김영우의 식판에 담긴 반찬의 맛을 보고는 다시 간을 했다.
 그리고 밥을 먹으려 할 때 앞에 있던 여학생이 슬며시 말했다.
 “저기, 나도 그거 한 번 먹어봐도 돼?”
 여학생의 뜬금없는 말에 이종석이 그녀를 보다가 순간 놀랐다. 그녀와 주위에 있던 여학생들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김영우와 이종석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
 김영우가 워낙 요란을 떨어 그들이 하는 대화를 들은 것이다.
 “그······.”
 자기도 모르게 그러세요, 라는 존댓말을 쓸 뻔했던 이종석이 급히 말을 반말로 바꿨다.
 “그래.”
 이종석의 말에 여학생이 젓가락으로 제육 작은 것을 하나 집어 입에 넣었다.
 “어머······ 맛있어.”
 여학생의 맛있어, 라는 말에 주위에 있던 다른 여학생들도 호기심 어린 눈으로 이종석의 제육을 바라보았다.
 “나도 밥을 먹어야 해서.”
 “그럼 미안한데 내 것도 좀 간을 봐 주면 안 돼?”
 반찬을 얻어먹은 여학생이 자신의 식판을 슬며시 밀어주자 이종석이 그녀를 보다가 숟가락 머리로 음식을 찍어 간을 보고는 소금을 꺼내 손바닥 사이에 넣고는 비볐다.
 그러자 이종석의 팔뚝 근육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근육 좋다.’
 여학생이 이종석의 팔뚝 근육을 볼 때, 간을 다 한 이종석이 식판을 밀었다.
 “고마워.”
 싱긋 웃는 여학생의 미소에 이종석의 얼굴이 살짝 붉어지고는 식판으로 고개를 숙였다.
 ‘빨리 먹고 나가야겠다.’
 그에 급히 김칫국에 밥을 말은 이종석이 빠르게 밥을 먹기 시작했다.
 “맛있다!”
 “웬일이니.”
 “이거 진짜 맛있다.”
 여학생 식판의 고기를 옆에 있던 애들이 같이 한 점씩 먹고는 감탄을 했다.
 “소금하고 고춧가루 조금 더 넣은 것뿐인데 맛이 어쩜 이리 변하니.”
 “그러게.”
 “이거 어떻게 한 거야?”
 여학생의 물음에 이종석이 고개도 들지 않고 빠르게 먹으며 말했다.
 “간만 맞춘 거야.”
 “아까 그 물컵 이야기?”
 물컵의 물방울 이야기를 들었는지 여학생이 그에 대해 물었다.
 “정말 간만 맞춰도 이렇게 맛이 변하는 거야?”
 대충 고개를 끄덕인 이종석이 빠르게 국물에 밥을 말아 허겁지겁 먹었다.
 그리고는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자 김영우가 급히 그 손을 잡았다.
 “왜?”
 “그거 안 먹을 거면 나 먹을래.”
 김영우의 말에 이종석이 한숨을 쉬었다.
 ‘여자애들 앞에서 이러고 싶나?’
 급히 먹느라 손도 대지 않은 제육을 보는 김영우의 말에 이종석이 그 식판에 고기를 덜어주었다.
 “빨리 먹고 가자.”
 “알았어.”
 이종석이 식판을 들고 가자 김영우가 빠르게 고기를 먹고는 그 뒤를 따라갔다.
 그 모습에 여학생들이 멀어져 가는 이종석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음식 잘하네.”
 “그러게. 아! 근데 아까 팔뚝 봤어?”
 “아! 봤어. 근육이 꿈틀거리는데 장난 아니더라.”
 “아까 소금 비빌 때 봤어. 팔뚝 근육이 막 꿈틀꿈틀하는데 와! 완전 뻑 갔잖아.”
 여학생들이 이종석을 보며 수군거릴 때 소금 간을 부탁했던 여학생이 고기를 입에 넣었다.
 “확실히······ 맛있어. 간만 했다고 맛이 이렇게 변한다고?”
 “은지야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옆에 있던 여학생의 말에 이은지가 말했다.
 “너희들 저 애 알아?”
 “몰라. 명찰 보니까 이종석이라고 쓰여 있던데.”
 “이······ 종······ 석.”
 이름을 가만히 새기던 이은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자.”
 이은지가 몸을 일으키자 여학생들이 몸을 일으켰다.
 
 ***
 
 이종석은 손바닥을 볼펜으로 꾹꾹 누르고 있었다.
 “뭐 하냐?”
 “너무 급하게 먹어서 속이 안 좋아.”
 “속이 안 좋으면 약을 먹지 왜 그러고 있어?”
 “소화에 좋은 혈 자리 누르고 있······ 커억!”
 이종석이 트림을 요란하게 하자 김영우가 급히 뒤로 물러났다.
 “이 새끼가 더럽게.”
 “아까 너 처먹는 것이 더 더러워. 이제 속이 좀 편하네.”
 손바닥을 쥐었다 폈다 하는 이종석의 모습에 김영우가 말했다.
 “그런 건 또 어디서 배웠어?”
 “배워?”
 그 말에 이종석이 문득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그저 속이 안 좋아서 무의식적으로 손바닥 혈 자리를 자극했다.
 하지만 이런 것을 배운 적이 없다. 그리고 경험치북에서도 혈 자리 누르는 것에 대한 것도 읽은 적이 없다.
 ‘어떻게 된 거지? 책에 적히지 않은 경험인데?’
 잠시 자신의 손바닥을 보고 있던 김영우가 주위에 있던 학생들이 하나둘씩 옷을 갈아입는 것을 보고는 급히 말했다.
 “야, 우리도 빨리 도복 입자.”
 김영우의 말에 이종석이 아차 싶었다.
 “아! 오늘 유도 수업 있는 날이냐?”
 “이 미친놈, 너 도복 안 가지고 왔어?”
 “깜박했어.”
 “너 이제 뒤졌다.”
 태진고등학교는 체육 수업의 일환으로 유도를 가르치고 있었다.
 그래서 어지간히 운동 재능이 없는 사람이 아니면 졸업을 할 때 일 단은 따고 실력이 되면 이 단까지 따고 학교를 졸업했다.
 그런데 오늘 유도 수업이 있는데 도복을 미처 챙기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도복 안 입고 온 사람은 수업 내내 체력 단련이라는 명목의 얼차려를 받았다.
 “기다려 봐. 삼반도 오늘 아침에 유도 수업 있었으니까. 내가 가서 빌려올게.”
 “그래, 부탁한다.”
 김영우가 급히 교실을 나갔다가 잠시 후 돌아왔다.
 “휴! 하나 빌려왔다. 대신 입고 빨아서 돌려달래.”
 “알았어.”
 고개를 끄덕인 이종석이 도복을 받아들다가 순간 눈을 찡그렸다.
 ‘땀 냄새······.’
 유도 수업을 하고 난 후의 도복이라 땀이 진하게 묻어 있었다.
 역한 땀 냄새에 한숨을 쉰 이종석이 일단 옷을 벗었다.
 어쨌든 도복 안 가지고 와서 얼차려를 받는 것보다는 냄새 좀 참는 것이 나았다.
 도복으로 갈아입은 이종석과 반 애들이 서둘러 유도장이 있는 강당으로 향했다.
 “하앗!”
 “타앗!”
 유도장의 중앙에는 유도부원들이 대련과 체련 훈련을 하고 있었다.
 “와! 쟤네들 몸에서 연기 나는 것 봐. 무슨 활화산 같네.”
 김영우의 말에 이종석이 유도부원들을 바라보았다. 김영우 말대로 유도부원들의 몸에서는 수증기가 뿌옇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마침 갓 쪄 놓은 감자에서 김이 올라오는 것처럼 말이다.
 ‘감자 먹고 싶네.’
 문득 감자가 먹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감자로 만드는 요리들이 떠올랐다.
 베이컨과 구운 감자를 섞어서 만드는 감자 소테, 로즈마리에 감자를 으깨거나 잘라서 만드는 감자 케이크, 간단하게 감자를 으깨서 소금과 후추로 양념을 한 것까지······.
 ‘요리 필기자가 서양 사람인가? 전에 콘 수프도 동양식은 아니었는데.’
 그런 생각을 할 때 건장한 체구를 가진 유도부원 중 한 명이 다가왔다.
 “자 서.”
 유도부원의 가슴에는 조현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제길! 조현 선배가 오늘 하려는가 보다.”
 유도 수업은 대부분 선생이 아닌 부원들이 가르쳤는데 그중 가장 무서운 선배가 조현이었다.
 수업도 가장 힘들게 가르쳤고 말이다.
 어쨌든 조현의 서라는 말에 학생들이 빠르게 도열을 했다.
 “자! 스트레칭부터 하자. 시작!”
 조현이 스트레칭을 앞에서 하자 학생들이 그것을 따라 스트레칭을 했다.
 그렇게 스트레칭이 끝나자 조현이 학생들을 서로 마주 보게 하고는 말했다.
 “대련 시작!”
 “아앗!”
 “하아!”
 바로 대련으로 넘어가자 학생들이 기합을 지르며 서로에게 달려들었다.
 “설렁설렁하는 놈들은 내가 직접 상대해 줄 거니까. 요령 피우지 마! 힘 더 넣고! 파이팅!”
 “파이팅!”
 “파이팅!”
 조현의 말에 학생들이 서로 기합을 지르며 대련을 시작했다.
 김영우와 마주 선 이종석도 기합을 지르며 그에게 다가갔다.
 스으윽! 스윽!
 천천히 발바닥으로 바닥을 비비며 다가오는 이종석의 모습에 김영우가 어깨를 비틀었다.
 우두둑! 우두둑!
 “아프면 아프다고 해라!”
 “오기나 하시지.”
 “후! 간다!”
 외침과 함께 김영우가 땅을 박차며 빠르게 이종석의 옷깃을 향해 손을 뻗었다.
 휘익!
 빠르게 다가오는 김영우의 손을 이종석의 손이 부드럽게 밀어냈다.
 “야, 그 정도······ 어라?”
 김영우의 몸이 순간 부웅 떠올랐다가 그대로 떨어졌다.
 팡!
 본능적으로 낙법을 치며 떨어진 김영우가 잠시 멍하니 있다가 급히 몸을 일으켰다.
 “오! 종석이 잘하는데!”
 자신이 실수로 넘어졌다 생각을 한 김영우가 다시 이종석을 향해 손을 뻗었다.
 “하앗!”
 기합과 함께 뻗어오는 김영우의 손을 향해 이종석의 손이 움직였다.
 그리고 두 사람의 손이 닿았다. 밀어 오는 김영우의 손에 이종석의 손이 가볍게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지체 없이 앞으로 몸을 밀어붙이는 김영우에 이종석의 손이 앞으로 움직였다.
 그에 김영우의 손에 담긴 힘이 강해지며 버텼다. 그리고 그것을 다시 잡아당긴 이종석이 뒤로 한 발을 빼며 몸을 비틀었다.
 부웅!
 그와 함께 김영우의 몸이 부웅 떠올랐다가 떨어졌다.
 쿵!
 “어라?”
 설명은 길었지만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고, 김영우는 이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 자식이 이렇게 잘했나?’
 김영우가 놀랄 때 이종석 역시 놀라고 있었다.
 ‘내가 영우를 이렇게 넘어뜨리다니.’
 운동신경이 없는 이종석이다. 유도 수업도 하는 둥 마는 둥 했고 김영우는 힘이 좋았다.
 그래서 한 번도 이겨 본 적이 없는데 지금은 너무 쉬운 것이다.
 ‘건곤구공이다.’
 꿈에서 본 학사도 이랬다. 상대의 공격을 상대의 힘을 이용해 자세를 무너뜨리고 넘어뜨렸다.
 ‘그래 건곤구공이나 유도나 상대의 힘을 이용해 자세를 무너뜨리고 넘기는 거니까. 이거 재밌는데.’
 기분 좋은 미소를 지은 이종석이 김영우를 향해 자세를 잡았다.
 “하자!”
 이종석의 말에 김영우가 이번에는 쉽게 넘어가지 않겠다는 듯 자세를 잡고는 달려들었다.
 
 
 2장 명문 왕가훈기
 
 
 팡! 팡! 팡!
 유도장 내에서는 낙법 치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고 있었다. 유도 선수는 아니더라도 학교에서 체육 수업으로 유도를 이 년 가까이 배운 아이들이다.
 잘하지는 못해도 기본기는 있었다. 그래서 낙법은 잘들 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야 너! 허리 계속 빼고 있으면 유도가 돼! 허리 펴고!”
 유도부 삼학년 조현은 감독 대신 하는 수업이지만 그냥 대충 가르칠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애들 동작에서 부족한 부분을 찍어주고 가르쳤다.
 “그렇지! 허리에 힘 팍! 주고! 너 이 자식! 그것밖에 못해! 이리 와!”
 대충 하는 애 한 명을 붙잡아 바로 엎어 치기로 꽂아 버린 조현이 소리쳤다.
 “대충 하는 놈들은 나한테 다 엎어 치기 당할 줄 알아! 대답 안 해!”
 “네!”
 “네!”
 애들의 답에 고개를 끄덕이던 조현의 눈에 대련을 하는 두 명이 보였다.
 팡! 팡!
 연신 자빠지고 있는 녀석과 가볍게 손과 발을 움직여 넘어뜨리는 녀석.
 ‘어쭈······ 좀 하는데.’
 조현의 눈에 한 녀석이 다른 한 명의 균형을 빠르게 무너뜨리며 넘기는 것이 보였다.
 상대의 힘을 이용해 균형을 무너뜨리고 쓰러뜨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을 보던 조현이 막 상대를 넘어뜨리는 애에게 다가갔다.
 
 팡!
 “크윽!”
 신음을 흘리며 눈을 찡그리는 김영우를 보며 이종석은 신이 났다.
 ‘재밌다!’
 김영우를 넘어뜨리는 것이 재밌다기보다는 자신의 몸이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것이 신이 났다.
 “후우!”
 숨을 길게 뱉은 이종석이 다시 김영우를 향해 손을 내밀려 할 때 그 옆에 조현이 모습을 드러냈다.
 “넌 나하고 한다.”
 “선배님하고요?”
 “그래, 들어와!”
 조현의 말에 이종석이 침을 삼켰다. 조현이 누구인지 이종석은 잘 알고 있었다.
 태진고 유도부 에이스이기도 하고 이학년 때부터 유도 수업 대부분을 조현이 가르치기도 했고 말이다.
 호랑이 같은 조현이 들어오라는 말에 이종석이 몸이 굳어졌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조현과 같이 무서운 선배가 자세를 잡자 두려운 마음이 이는 것이다.
 그런 이종석의 모습에 조현이 눈을 찡그렸다.
 ‘이 자식, 겁먹었잖아.’
 그것을 안 조현이 그대로 손을 뻗었다.
 파앗!
 조현의 손짓에 이종석의 손이 본능적으로 위로 솟구쳤다.
 스윽!
 ‘반응한 것은 칭찬해 주마.’
 파앗!
 이종석의 손이 자신의 왼손을 잡자 조현이 손을 강하게 잡아당겼다.
 그리고 딸려오는 이종석의 팔, 그리고 팔이 당겨지자 자연스럽게 이종석의 몸도 딸려왔다.
 그와 함께 조현이 자신의 몸을 비틀며 오른손으로 이종석의 겨드랑이 사이로 손을 넣고는 힘을 주었다.
 원래는 목뒤를 잡아야 하는 허리 후리기를 등을 잡고 돌려 버린 것이다.
 부웅!
 ‘어?’
 이종석을 넘겼다 생각을 했던 조현의 눈에 순간 천장이 보였다.
 ‘왜?’
 라는 생각도 잠시 조현이 순간적으로 허리를 비틀었다.
 “하앗!”
 기합과 함께 조현의 몸이 비틀리며 앞으로 떨어졌다.
 쿵!
 선수로서의 본능이 등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은 것이다. 이대로 떨어지면 그대로 한 판인 것이다.
 낙법을 치지도 못하고 앞으로 떨어진 조현이 본능적으로 옷깃을 여미며 움츠렸다.
 마치 거북이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조현이 눈을 찡그렸다.
 ‘아!’
 이건 시합 중이 아니라는 것을 안 조현이 급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놀란 눈으로 자신을 보고 있는 이종석이 보였다.
 ‘이 자식 봐라?’
 그리고 조현은 자신이 넘어갔다는 것을 알았다.
 ‘기술이 크기는 했지만 내가 되치기를 당해?’
 시합이라면 절대 이런 식으로 달려들거나 기술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큰 기술은 자세가 큰 만큼 허점도 많다. 그리고 허점이 많다는 것은 되치기를 당하기 쉽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거야 선수들 사이의 일이지, 일반인을 상대로는 허점이고 뭐고 상관없었다.
 그런데 일반인한테 되치기를 당한 것이다.
 “후우!”
 습관처럼 손가락에 숨을 불어 넣은 조현이 이종석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이리 와봐.”
 “네?”
 “이리 와.”
 조현의 말에 이종석이 그에게 다가갔다. 이종석이 다가오자 조현이 도복을 잡고는 그대로 벌렸다.
 쫘악!
 “헉!”
 갑자기 자신의 도복을 벌리는 조현의 모습에 이종석이 뒤로 물러나려 했다.
 하지만 조현의 손은 이종석이 뒤로 물러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꿈쩍도 하지 않는 손으로 이종석의 옷을 좌우로 벌린 조현이 그 몸을 바라보았다.
 “왜······ 왜 그러세요?”
 놀라 보는 이종석을 힐끗 본 조현이 도복을 완전히 벗겼다.
 “헉!”
 갑자기 도복을 벗기는 조현에 놀란 이종석의 몸이 굳어졌다.
 ‘왜 이러지?’
 이종석이 당황해할 때 조현이 그를 돌려세웠다. 그리고는 이리저리 그 몸을 손으로 눌러 보다가 말했다.
 “너 운동 어디서 했어?”
 “네?”
 “운동 어디서 했냐고?”
 “그냥 집에서······.”
 “집? 유도는?”
 “학교에서만요.”
 “중학교 때 유도를 했다거나 뭐 그런 것 없어?”
 “없는데요.”
 “진짜?”
 “네.”
 이종석의 말에 조현이 그 몸을 바라보았다.
 ‘근육이 좋다. 어디 특출난 곳은 없지만 고루 잘 나와 있어. 게다가 근육이 말랑말랑해.’
 운동선수들은 자신들이 사용하는 특정 근육들이 커진다. 야구 선수들은 어깨 근육이 커진다면 축구 선수들은 하체 근육이 더 발전을 한다.
 그리고 유도는 팔과 등에 근육이 많이 붙는다. 잡고 당기고 미는 상체의 근육이 많이 발전을 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하체 쪽이 부실하다는 것은 아니다. 전신 근육이 다 발달을 했지만 상체가 조금 더 크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종석의 근육은 어디 하나가 특출난 곳이 없었다. 이것은 어떤 운동을 하더라도 발전을 할 가능성이 있다.
 게다가 근육이 말랑말랑하다. 그 말은 유연하다는 말이니······ 유도 선수로서는 최적의 근육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방심했다고 해도 자신을 넘겼다. 그것도 학교에서만 배운 유도로 말이다.
 “너 유도해 볼 생각 없냐?”
 “유도요?”
 “그래.”
 조현을 잠시 보던 이종석이 한쪽에서 대련을 하고 있는 유도부원들을 바라보았다.
 구슬 같은 땀을 흘리며 몸에서 모락모락 김을 피워 올리고 있는 이들······.
 ‘하고 싶지 않다.’
 남자들과 부대끼며 땀 흘리는 것은 학교 유도 시간이면 충분했다.
 “저는 공부를 해서 대학을 갈 생각인데요.”
 “너 공부 잘해?”
 “그냥 보통······.”
 “유도 잘하면 대학도 특기생으로 들어갈 수 있어.”
 “그래도······.”
 “왜 유도 싫어?”
 험악해지는 조현의 얼굴에 이종석이 손을 저었다.
 “아뇨, 그게 아니라 집에서 못하게 할 것 같아서.”
 이종석의 말에 잠시 그를 보던 조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케이.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도복 입어.”
 조현의 말에 이종석이 한숨을 쉬고는 도복을 입었다. 이종석이 도복을 입자 조현이 뒤로 한 발 물러났다.
 “들어와.”
 “네?”
 “들어와.”
 조현의 말에 이종석이 입맛을 다시고는 자세를 잡았다.
 ‘그래 방금 난 조현 선배를 넘겼어. 무서워하지 말자. 난 학사의 공부 경험을 얻었잖아.’
 한 손은 살짝 위로 그리고 다른 한 손은 그 밑을 받치는 자세를 취한 채 다가오는 이종석의 모습에 조현 역시 신중하게 앞으로 움직였다.
 ‘방심하지 않는다.’
 조심스럽게 다가오던 조현이 이종석을 향해 번개처럼 손을 뻗었다.
 파앗!
 그와 함께 치켜 올려진 이종석의 손이 조현의 손을 막았다.
 탓!
 그와 함께 이종석의 소매를 잡은 조현이 강하게 손을 밑으로 당겼다.
 스윽!
 조현의 손에 이종석이 버텼다.
 ‘크윽!’
 ‘역시 힘도 좋군.’
 자신의 손을 버티는 이종석의 힘에 조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조현이 아래로 향하던 손을 좌우로 흔들었다.
 ‘크윽! 손이 잡혀서 움직이지를 않으니······ 건곤구공을 하기가 쉽지 않다.’
 상대의 힘을 이용해서 넘겨야 하는데 조현의 손에 소매가 잡혀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자신의 힘으로 어떻게 하기 힘든 힘이었다.
 ‘크윽!’
 신음을 토한 이종석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순간 이종석의 다리가 움직였다.
 좌우로 움직이며 자신을 흔드는 조현의 하체가 이동을 할 때 그 틈을 노린 것이다.
 모두걸이, 하지만 그건 조현이 노린 거였다.
 ‘한 번 당한 걸 두 번이나 당할까?’
 생각과 함께 이종석의 다리가 조현의 다리를 차기 전, 그의 몸이 회전을 하며 손을 크게 올리며 앞으로 잡아당겼다.
 “타앗!”
 기합과 함께 자신의 다리를 향해 오는 이종석의 다리를 그대로 걷어 올렸다.
 부웅!
 이종석의 몸이 그대로 크게 회전을 했다.
 쾅!
 그대로 매트에 꽂혀 버리는 이종석······ 깔끔한 한 팔 업어치기였다.
 “헉······.”
 이종석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숨넘어가는 소리만을 흘리고 있었다.
 학사가 남긴 경험에는······ 낙법 같은 것은 없었던 것이다.
 부들부들!
 몸을 떠는 이종석과 함께 수업 끝을 알리는 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띠리리! 띠리리!
 
 ***
 
 유도 수업이 끝나고 이종석은 김영우의 부축을 받으며 교실로 올라가고 있었다.
 “이야, 너 유도 언제 그렇게 늘었냐?”
 남의 속도 모르고 대단하다는 듯 보는 김영우를 보며 이종석이 가슴을 쓰다듬었다.
 “아직도 가슴이 너무 아프다.”
 “아까 우리는 너 죽은 줄 알았어. 꽂히는 소리가 쩌렁쩌렁하더라.”
 “아이고 죽겠다.”
 김영우의 부축을 받으며 교실로 들어간 이종석이 옷을 갈아입었다.
 “그나저나 너 몸 언제 이리 좋아졌냐?”
 유도 수업을 하러 갈 때는 워낙 바빠 보지 못했다가 이제야 몸을 보게 된 것이다.
 김영우의 말에 반 애들이 이종석을 바라보았다.
 “오! 종석이 요즘 운동 좀 하나 보네.”
 “그러게. 종석이 몸이 이렇게 좋은 줄 몰랐네.”
 “아까 보니까. 조현 선배도 종석이한테 넘어가던데?”
 “그거야 조현 선배가 봐줘서 그렇겠지.”
 “야, 선수가 봐줘도 선수여. 조현 선배가 봐준다고 여기서 넘길 사람이 있겠냐?”
 “그래도 마지막에는 종석이 피 토할 것 같더만.”
 애들이 수군거리는 소리에 이종석이 얼른 옷을 갈아입었다. 언제 그렇게 운동을 했냐고 물어대고 그러면 설명하기 복잡한 것이다.
 아니 설명할 길도 없다. 책 보고 자고 일어났더니 이랬다고 말을 못하니 말이다.
 옷을 갈아입은 학생들이 수업 준비를 하기 위해 자리에 앉았다.
 
 ***
 
 학교 수업을 마치고 가방을 챙기는 이종석에게 김영우가 말했다.
 “집에 가자.”
 어느새 가방을 챙긴 김영우가 옆에서 하는 말에 이종석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교실 뒤 사물함에 넣어 뒀던 유도복을 꺼냈다.
 “그렇게 들고 가게?”
 “쇼핑백도 안 들고 왔는데 어쩔 수 없지.”
 “가방에 넣지?”
 “가방 버릴 일 있냐?”
 땀 냄새로 진동을 하는 유도복을 가방에 넣었다가는 그 안에 있는 학용품들이 썩어버릴 위험이 있었다.
 도복을 도복 띠로 묶어 든 이종석이 교실을 나서자 김영우가 뒤를 따라 나왔다.
 “주말에 뭐 하냐?”
 내일부터 주말이다. 다른 애들이야 고2라 학원 다니고 어쩌고 하겠지만 김영우나 자신이나 그리 대학에 관심이 없었기에 학원은 다니지 않았다.
 원래 이종석의 계획은 졸업하면 바로 군대를 가고 그 후 공무원 준비를 하려고 했던 것이다.
 지금은 경험치북으로 새로운 계획이 생겼지만 말이다.
 “책방 갈 건데.”
 “고서방?”
 “왜, 너도 올래? 가면 아저씨가 밥도 주는데.”
 이종석의 말에 김영우가 피식 웃었다.
 “미쳤냐? 내가 책방에 가게.”
 “네 마음대로 해라.”
 김영우에게 웃으며 말을 한 이종석이 그와 함께 학교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학교를 나온 이종석은 근처에 있는 공원에서 잠시 경험치북을 꺼내 놓고 보고 있었다.
 잠시 생각을 할 것도 있어서 공원에 들른 것이다. 잠시 경험치북을 보던 이종석이 턱을 쓰다듬었다.
 ‘건곤구공은 확실히 도움이 되는 것 같은데······ 문일지일 경험은 효과를 모르겠네?’
 건곤구공은 몸과 관련이 있는 경험이라면 문일지일은 공부에 관한 것이다.
 하나를 배우면 하나를 익힌다는 의미로 해석을 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오늘 수업을 들으면서 그다지 별 효과를 못 봤다.
 어려운 것은 어려웠고 쉬운 것은 쉽다 느껴진 정도였지, 어려운 것이 팍 쉽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공부라는 것이 무술에 더 관련이 되 있는 건가?’
 그런 생각을 잠시 하던 이종석이 경험치북을 가방에 넣었다. 아마 집은 꼬마손님들로 한창 바쁠 것이다.
 일을 도와줄 생각에 급히 뛰어가는 이종석의 달리기가 조금씩 빨라지기 시작했다.
 타타탓!
 걸어서 삼십 분이 걸리는 집까지 거의 십 분 만에 도착을 한 이종석이 분식집을 바라보았다.
 어제와 같이, 아니 어제보다 더 많은 꼬마들이 떡볶이에 순대와 튀김을 찍어 먹고 있었다.
 “아줌마 떡볶이 더 주세요!”
 “저도요!”
 아이들의 요란한 주문에 이종석이 떡볶이를 빠르게 비비고 있는 엄마에게 소리쳤다.
 “옷 갈아입고 내려올게요.”
 “그래!”
 엄마의 외침에 서둘러 집으로 올라간 이종석이 옷을 갈아입고는 내려왔다.
 그리고는 서둘러 빈 식탁에 놓인 그릇들을 주방으로 날랐다. 하지만 아이들은 쉴 사이 없이 들어왔다.
 그렇게 애들이 한참 왔다 빠지기를 하고 여섯 시가 다가올 때쯤 문을 닫아야 했다.
 준비해 놓은 떡들이 다 떨어져 더 이상 떡볶이를 팔 수가 없었다.
 “떡볶이 다 떨어졌어요?”
 “그래, 미안하구나. 내일 다시 오렴.”
 “그럼 국물만 좀 찍어 먹어봐도 돼요? 여기 떡볶이 국물 엄청 맛있다는데······.”
 한 아이가 아쉬운 마음에 떡볶이판을 보자 엄마가 어묵을 하나 꺼내서는 소스를 묻혀서 손에 쥐어주었다.
 “다른 아이들한테는 비밀이다.”
 “주시는 거예요?”
 “그래, 먹어.”
 “고맙습니다.”
 고개를 숙인 아이가 어묵을 먹었다. 그리고 얼굴이 환해졌다.
 “맛있어요.”
 “그렇지? 애들한테 여기 떡볶이 맛있다고 이야기 좀 잘해 줘.”
 “네!”
 아이가 어묵을 쥐고는 달려가는 것을 보던 엄마가 문득 눈을 찡그렸다.
 “꼬치를 들고 갔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엄마가 웃으며 떡볶이판을 들어서는 부엌으로 가져갔다.
 어제와 오늘 연속 이틀 재료가 떨어질 정도로 장사가 잘 되어서 그런지 두 분의 얼굴은 환했다.
 그 모습에 효도를 한 것 같은 기분이 든 이종석이 따라 웃다가 문득 말했다.
 “그런데 오늘 재료 왜 이리 일찍 떨어진 거야?”
 “애들이 포장을 많이 해 갔어.”
 “포장?”
 “줄이 길었으니까. 그래서 재료가 똑 떨어졌지 뭐니.”
 엄마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이종석이 부모님들을 도와 가게 뒷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뒷정리를 마친 이종석은 부모님에게 소스에 관한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날그날 습도와 온도에 따라 같은 양의 양을 넣어도 맛의 차이가 있어요.”
 “그런데 아들 요리에 관심 있어?”
 “응?”
 “아들 칼질하는 것 보면 칼질 많이 해 본 솜씨인데?”
 “아······ 조금 관심 있어.”
 “요리사도 요즘 돈 잘 번다고 하니까. 그것도 괜찮네.”
 “요리사 할 정도는 아니고. 어쨌든······ 이제 맛 봐봐.”
 이종석의 말에 엄마가 간을 한 번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맛있다.”
 “그럼 이제 엄마가 한 번 만들어 봐.”
 이종석이 만든 것은 평소의 십분의 일밖에 되지 않는 양이었다.
 소스를 만드는 것이 귀찮은 일은 아니지만 엄마도 소스를 만드는 법을 알아야 하니 알려주는 것이다.
 그에 엄마가 이종석이 한 것처럼 소스를 만들기 시작했다.
 엄마가 소스를 다 만들자 이종석이 그 간을 보았다.
 “무채가 너무 많이 들어갔어.”
 “그래?”
 “나중에 무채에서 물이 나오면 소스가 묽어질 거야.”
 “그럼 어떻게 해?”
 “그거 생각해서 고춧가루를 조금 더 넣어야지. 그리고 조청도 조금 더 넣고.”
 이종석은 정말 조금의 고춧가루와 조청을 더 넣었다. 그 모습에 엄마가 눈을 찡그렸다.
 “아들, 새 모이만큼 더 넣을 거면 차이가 없지 않아?”
 엄마의 말에 이종석이 문득 소스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한숨을 쉬며 입맛을 다셨다.
 “그렇네.”
 “그렇지?”
 엄마의 말에 이종석이 고개를 저었다. 이종석이 그렇네라고 한 것은 엄마의 말에 화답을 해 준 것이 아니다.
 다만······ 지금 소스의 문제를 깨달은 것이다. 절대 미각으로 인해 이종석은 소스의 부족하고 과한 것을 미세하게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엄마는 그것을 할 수 없다.
 김영우에게 말을 했던 것처럼 물 한 방울만큼의 미세한 간의 차이로 맛이 변할 수 있다.
 그리고 그 한 방울의 간을 엄마는 할 수 없는 것이다.
 ‘간은 어쩔 수 없이 내가 봐야겠네.’
 레시피는 알려줘도 마지막 물 한 방울이 될 간은 엄마에게 알려줄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러다 떡볶이집 물려받는 것 아닌가 모르겠네.’
 장차 자신의 미래가 떡볶이집 사장이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하며 이종석이 한숨을 쉬었다.
 
 방에서 이종석은 경험치북을 보고 있었다.
 “문일지일이라······.”
 이종석은 문일지일 경험에 대해 생각을 하고 있었다.
 건곤구공이나 절대 미각 그리고 식칼 마스터리와 같이 경험이라 표시가 되기는 하지만, 게임으로 비교를 하면 패시브 스킬과 비슷했다.
 그리고 절대 미각과 식칼 마스터리는 확실히 성과가 있었다.
 절대 미각이야 간 보는 것, 식칼 마스터리는 칼질하는 것만 봐도 효과를 알 수 있다.
 그런데 문일지일만은 전혀 그런 효능을 보이지 않았다.
 ‘분명 무슨 효과가 있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며 잠시 경험치북을 보던 이종석이 가방에서 수학책을 꺼냈다.
 수학책을 보던 이종석이 그것을 펼쳤다.
 ‘문일지일······ 하나를 들으면 하나를 안다.’
 오늘 수업을 했던 부분을 펼친 이종석이 연필을 들고는 책을 바라보았다.
 “문일지일······.”
 문일지일을 다시 되새기던 이종석이 수학 문제를 잠시 바라보았다.
 그러자 이종석의 머릿속에 문제의 풀이 과정이 떠올랐다.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풀이 과정에 이종석이 연필을 움직였다.
 스스슥! 스슥!
 긴 풀이 과정을 책에 적어 내려가던 이종석이 문득 책을 바라보았다.
 “어? 내가 이걸 풀었네?”
 보기에도 복잡한 문제다. 숫자보다 영어가 더 많은······ 그런데 그런 문제를 자신이 푼 것이다.
 잠시 수학 문제를 보던 이종석이 다시 다른 문제를 찾아 풀었다.
 그것도 풀렸다.
 그에 이종석은 문일지일이 뭔지 알 것 같았다.
 “문일지일······ 배운 것을 이해하고 잊지 않는 것이다.”
 단순히 잊지 않는 것만이 아니었다. 문제의 이해도도 높여 주었다.
 수학은 복잡한 문제다. 선생님이 풀어 준 과정을 기억하고 있다고 해서 순순히 다른 문제를 풀어 낼 수는 없었다.
 즉 문일지일은 배운 것을 이해하고 기억하게 해 주는 경험이었다.
 그에 웃으며 이종석이 책장을 넘기며 수학 문제를 풀었다. 그렇게 몇 번 문제를 풀어가던 이종석의 연필이 멈췄다.
 ‘모르겠다.’
 방금 전까지 잘 알겠던 문제들이 갑자기 막혔다. 그러다 이종석이 이유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안 배운 데구나.”
 배운 것에 대해서 기억하고 이해를 하게 해 주는 문일지일 경험이니 배우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소용이 없는 것이다.
 그에 이종석이 잠시 생각을 하다가 수학책을 앞으로 펼쳤다. 진도가 나갔다고 다 아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수학을 처음부터 정독하고 배울 생각이었다. 어차피 선생님이 하는 말과 풀이 과정은 다 책에서 나오는 것이니······ 굳이 선생님이 없어도 배우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이러다 전교 일등 하는 것 아냐?’
 전교 일등을 하면 부모님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 하는 생각이 드니 절로 웃음이 나는 이종석이었다.
 웃으며 수학책을 정독을 한 이종석이 시계를 잠시 보고는 경험치북을 꺼냈다.
 ‘일기를 쓰자.’
 대단한 경험이 아니더라도 작은 경험치를 준다. 그래서 이종석은 아빠 말대로 경험치북을 일기장처럼 사용할 생각이었다.
 하루에 조금씩이라도 경험치가 쌓이는 것도 무시 못 할 테니 말이다.
 ‘그럼 오늘 일은······.’
 잠시 연필을 들고 생각하던 이종석이 글을 적어 내려갔다.
 점심시간에 있었던 일과 여자애들이 간을 봐 달라고 한 일, 그리고 유도 시간에 있었던 일까지······.
 ‘그런데 참 생생하게 떠오르네.’
 경험치북에 오늘 있었던 일을 쓰는 동안 이종석은 마치 그 일을 다시 겪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만큼 일기를 쓸 때 마치 그 자리에 다시 있는 것 같은 생생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일기가 이런 느낌인가?’
 그런 생각을 하며 이종석이 연필을 내려놓았다.
 스으윽!
 그러자 일기가 사라지며 새로운 글이 떠올랐다.
 화아악!
 
 <흔한 연애 경험을 적으셨습니다. 경험치 25를 획득하셨습니다.>
 <흔한 유도 경험을 적으셨습니다. 경험치 25를 획득하셨습니다.>
 
 경험치북에서 나온 글을 본 이종석의 얼굴이 슬쩍 붉어졌다.
 ‘무슨 연애를 했다고······ 손이라도 잡으면 난리 나겠네.’
 속으로 중얼거린 이종석이 침대 위로 올라갔다.
 
 ***
 
 “그럼 책방 갔다 올게요.”
 “너무 늦지 말고!”
 엄마의 쩌렁쩌렁한 목소리를 들으며 가볍게 답을 한 이종석이 집을 나섰다.
 주말이라 초등학교도 쉬니 굳이 자신까지 남아서 일을 도울 필요는 없다.
 어디까지나 분식집 주 고객은 초등학생들이니 말이다.
 집을 나온 이종석은 지하철을 타고 고서방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딸랑!
 방울 소리와 함께 이종석이 들어오자 주인 아저씨가 반겼다.
 “왔니?”
 “새로운 책 있어요?”
 “포대 몇 개 있을 거다. 정리하는 것 잊지 말고.”
 “네.”
 주인 아저씨의 말에 이종석이 서가 사이를 지나 포대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사실 고서방에 입고되는 책들의 정리는 대부분 이종석이 하는 편이었다.
 이종석이 와서 책을 정리해 주니 주인 아저씨도 책 포대가 들어오면 굳이 정리를 하지 않는다.
 이종석이 주말에는 꼭 오고, 평일에도 가끔씩 오니 그때마다 이종석에게 시키면 되는 것이다.
 아니 시킬 것도 없이 그가 알아서 정리하니 주인 아저씨로서는 종업원 한 명 둔 격이었다.
 어쨌든 서가로 들어간 이종석은 포대를 하나씩 풀어서는 그 내용물들을 꺼냈다.
 그런데 책들 사이로 옛날 서적들이 나왔다. 말 그대로 옛날 조선시대에서나 쓸 한지로 만들어진 서책이 말이다.
 게다가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 모를 정도로 퀴퀴한 냄새가 나는 서책들······.
 “이런 책들까지 들어오네. 왕가훈기, 중화신승······.”
 서책에 적힌 글들을 읽으며 이종석의 얼굴에 호기심이 어렸다.
 TV에서나 봤지 실제 이런 종이의 책을 본 적이 없는 이종석이 신기한 마음에 서책을 이리저리 보았다.
 ‘오늘 시간 많으니까. 일단 이것들 정리부터 하자.’
 할 일부터 하고 보자는 생각에 이종석이 포대를 빠르게 정리하기 시작했다.
 참고서는 참고서대로, 소설은 소설대로 잡서는 또 잡서대로 따로 분류를 한 이종석이 그것들을 서가들에 가져다 놓았다.
 이제 이 책들은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선택을 받기 전까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 것이다.
 책들을 정리한 이종석이 주인 아저씨가 있는 카운터에 다가갔다.
 “정리 다 했어요.”
 “뭐 쓸 만한 책 있던?”
 “참고서들 좀 있고 이런 서책들이 있던데요.”
 이종석이 따로 빼둔 서책들을 카운터에 올리자 아저씨가 그것을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돈 좀 되겠다.”
 “이런 것이 돈이 돼요?”
 요즘 시대에 이런 책을 누가 구하나 싶은 것이다.
 “가끔씩 이런 책들 인테리어 한다고 사가는 사람들 있어.”
 “인테리어?”
 “한약방이나 찻집 같은 곳에 한두 권 있으면 분위기 있어 보이잖아.”
 아저씨의 말에 이종석이 서책을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것도 그렇네요.”
 “그럼 따로 빼 놓을까.”
 아저씨가 서책을 집으려 하자 이종석이 말했다.
 “저 좀 보면 안 돼요?”
 “하긴 이런 책 신기하기는 하지. 이런 책 처음 보지?”
 “TV에서는 봤죠.”
 허락의 의미로 서책을 이종석에게 밀어낸 아저씨가 다시 TV로 고개를 돌렸다.
 그것을 보며 이종석이 카운터 밑에 줄로 묶여 있는 책들을 모아서는 그 위에 앉았다.
 
 <왕가훈기>
 
 왕가훈기라 쓰인 서책을 펼친 이종석이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좋은 집이었나 보네.’
 왕가훈기라는 서책은 왕씨라는 집안의 가훈을 적어 놓은 서책이었다.
 
 <높은 곳에 있을 때는 아랫사람의 일을 살피고, 낮은 곳에 있을 때에는 내 맡은 일을 행하며 다른 곳에 시선을 주어서는 안 된다.>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고, 사람이 자리를 만드는 것이다. 자리에 따라 사람이 변하는 이를 소인이라 하며, 어떠한 자리든 자신의 일을 행하고 변하지 않는 이를 군자라 한다.>
 <한 가지 일을 행함에 있어 열 번을 살피는 것도 부족하지 않다.>
 
 서책의 내용을 보며 연신 고개를 끄덕이던 이종석의 모습에 사장님이 피식 웃었다.
 “무슨 내용인지는 알고 그러는 거냐?”
 “네?”
 “검은 건 한자고 하얀 건 종이일 텐데.”
 아저씨의 농에 이종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야······.”
 말을 하던 이종석이 흠칫해서는 서책을 바라보았다.
 ‘내가 한자를 읽고 있었네.’
 그것도 술술 읽어 내려가고 있었다.
 놀란 눈으로 한자를 보던 이종석이 탄성을 토했다.
 “경험치북.”
 “경험치북? 무슨 소리냐?”
 “아······ 아니에요.”
 그리고는 이종석이 왕가훈기를 빠르게 읽어갔다. 술술 읽히는 한자와 내용에 확신을 했다.
 ‘학사의 경험이다.’
 명나라 학사였던 필기자다. 그러니 그 학사에게 한자 읽는 것은 일도 아닐 터······.
 그 학사의 경험 덕에 한자가 자연스럽게 읽힌 것이다.
 멍하니 왕가훈기를 보던 이종석이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카운터에 있는 종이와 펜을 집었다.
 “저 이것 좀 쓸게요.”
 “써.”
 아저씨의 말에 이종석이 잠시 생각을 하다가 옆에 놓인 책 한 권을 깔고는 글을 적었다.
 왕가훈기에서 본 내용들을 종이에 써내려가는 이종석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한 번 본 것밖에 되지 않았는데 보지 않아도 그 내용이 술술 써졌다.
 게다가······ 한문이 자기가 쓴 것 같지 않게 정말 잘 써졌다. 누가 보면 명필이라고 할 만하게.
 “큭!”
 자신의 손으로 써져 가는 한문을 보며 작게 웃었다.
 ‘한문 시험 만점은 따 놨다.’
 
 이종석은 서가 사이를 다니며 뭔가를 찾고 있었다.
 “불어······ 불어······ 불어!”
 서가를 뒤지던 이종석의 눈이 그가 찾던 프랑스 책을 찾을 수 있었다.
 “찾았다.”
 양장본으로 된 불어책은 온통 불어였다. 당연하게도 말이다.
 
 <햄릿>
 
 그리고 책의 제목을 본 이종석이 미소를 지었다. 한문을 읽고 쓸 수 있었던 것처럼 불어도 읽을 수가 있었다.
 요리 경험을 준 필기자는 프랑스 사람이었다.
 어쨌든 불어도 읽을 수 있다는 것을 안 이종석이 햄릿을 읽었다.
 ‘그런데 글은 읽고 쓸 수 있으면 언어도 되려나?’
 외국어도 할 수 있을까 싶은 이종석이 불어와 중국어를 떠올려 보았다.
 하지만 딱히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불어와 중국어를 해야지 마음먹고 말을 해도 나오는 것은 정직한 한국말이었다.
 ‘뭔가 계기 같은 것이 필요한 건가?’
 한문도 한문 책을 보기 전에는 자신이 한문을 쓰고 읽을 수 있다는 것을 몰랐다.
 건곤구공으로 유도를 할 수 있다는 사실도······.
 그렇다면 말하고 듣는 것도 직접 들어봐야 가능한지 알 수 있을지 몰랐다.
 그런 생각을 하던 이종석이 햄릿을 들고는 주인 아저씨에게 다가왔다.
 주인 아저씨는 TV를 보며 웃고 있었다.
 “저 이거 살게요.”
 이종석의 말에 주인 아저씨가 힐끗 그 손에 들린 햄릿을 보고는 말했다.
 “종석이 특가 천 원.”
 웃으며 하는 말에 이종석이 지갑에서 천 원을 하나 꺼내다가 서책을 바라보았다.
 “저 서책도 사고 싶은데······.”
 기념으로 서책 중 한 권도 가지고 싶었다. 게다가 그 질감이 특이해서 마음도 편해지는 것 같고 말이다.
 “어떤 걸로?”
 주인 아저씨의 말에 이종석이 서책들을 뒤지다가 그중 하나에 눈이 닿았다.
 
 <왕가훈기>
 
 ‘그래도 내가 한문을 할 수 있게 해 준 책인데 이걸로 해야겠다.’
 “이거요.”
 “천 원만 줘라.”
 “이거 돈 되는 책이라면서요.”
 “이삼만 원 받아야 하지만 종석이가 와서 책 정리해 주는 알바비 생각하면 천 원이면 돼.”
 “감사합니다.”
 주인 아저씨의 말에 웃으며 이천 원을 카운터에 올린 이종석이 햄릿과 왕가훈기를 가방에 넣었다.
 “끄응! 밥이나 먹자. 너도 먹을 거지?”
 “제가 할게요.”
 “네가?”
 아저씨의 말에 이종석이 웃으며 말했다.
 “책도 싸게 주셨는데 맛있는 밥이라도 해 드려야죠.”
 “맛있는 밥이라고 해도 반찬 놓고 먹는 건데 무슨.”
 “드시고 놀라실 걸요.”
 “그럼 해 보든지.”
 아저씨의 말에 이종석이 카운터 뒤에 있는 작은 문을 열고 들어갔다.
 작은 문 안에는 냉장고와 작은 싱크대 그리고 버너가 있었다. 냉장고를 연 이종석이 김치통을 꺼냈다.
 ‘국물만 있네.’
 김치 한 조각 보이지 않는 통을 흔들어 본 이종석이 입맛을 다시고는 냉장고 안을 보다가 말했다.
 “계란 써도 돼요?”
 “후라이 하게?”
 “뭐가 됐든요.”
 “써.”
 계란을 세 개 꺼낸 이종석이 버너에 프라이팬을 올리고는 기름을 둘렀다.
 ‘올리브유······ 쩝! 서양 요리사라 그런가, 기름 하면 다 올리브유를 떠올리네.’
 속으로 중얼거린 이종석이 프라이팬을 달구다가 밥을 넣었다.
 쏴아악! 쏴아악!
 밥이 기름에 튀겨지는 것을 보며 빠르게 팬을 흔든 이종석이 그 안에 김치 국물을 부었다.
 김치도 썰어서 넣으면 좋겠지만 국물밖에 없으니······.
 쏴아악!
 김치 국물에 밥이 붉게 변하기 시작하자 이종석이 더욱 빠르게 팬을 흔들었다.
 쏴아악! 쏴아악!
 밥이 볶아지기 시작할 때 이종석이 밥을 한쪽에 몰았다. 그리고는 한쪽에 참기름을 살짝 두르고는 그 위로 계란 두 개를 까 넣었다.
 쏴아악!
 참기름에 튀겨지는 계란을 빠르게 찢은 이종석이 곧 밥과 섞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간을 본 이종석이 미소를 지었다.
 “맛있네.”
 딱 맞게 간이 된 볶음밥을 보며 웃은 이종석이 숟가락 두 개를 챙겨서는 밖으로 나왔다.
 “볶음밥 드세요.”
 “냄새 좋네.”
 “맛은 더 좋을 걸요. 근데 김치 하나도 없던데요?”
 “어디 먹어볼까?”
 볶음밥을 입에 넣은 아저씨의 입맛을 다셨다.
 “괜찮네.”
 “괜찮다고요? 맛있지 않고?”
 “응······ 좀 간이 약한 것 아니냐?”
 아저씨의 말에 이종석이 맛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간은 딱 맞는데?’
 “간이 약해요?”
 “요즘 내가 좀 간을 쎄게 먹거든.”
 아저씨의 말에 이종석이 그를 보다가 부엌에서 간장을 수저에 덜어서는 가져왔다.
 “이거 먹어 보세요.”
 “간장 섞으면 되겠네.”
 볶음밥에 넣으려는 줄 아는 아저씨를 보며 이종석이 고개를 저었다.
 “일단 드셔 보세요. 간장만.”
 이종석의 말에 아저씨가 손가락으로 간장을 찍어서는 입에 넣었다.
 “어때요.”
 “간장이 간장 맛이지.”
 “얼마나 짜냐는 거죠.”
 “조금?”
 아저씨의 말에 이종석이 간장을 찍어 입에 넣고는 눈을 찡그렸다.
 ‘이렇게 짠 게 조금?’
 잠시 입맛을 다시던 이종석이 입을 열었다.
 “아저씨 병원 좀 가보세요.”
 “나 아픈데 없는데?”
 “입맛이 갑자기 변하는 건 몸이 아프다고 신호를 보내는 거예요.”
 “네가 그런 것을 어떻게 아냐?”
 “책에서 봤죠.”
 사실은 요리사의 경험이다.
 “그러니까 꼭 병원에 한 번 다녀오세요.”
 “후! 내 마누라보다 낫구나. 고맙다.”
 자신을 생각해서 해 주는 말에 미소를 지은 아저씨가 한쪽에 간장을 확 붓고는 비볐다.
 “어서 먹자.”
 아저씨의 말에 이종석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그를 보다가 볶음밥을 먹기 시작했다.
 
 ***
 
 고서방에서 점심을 먹고 몇 시간 더 있던 이종석은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가 떡볶이판에 떡을 비비다가 이종석을 보고는 말했다.
 “저녁 차려 놨으니까. 올라가서 먹어.”
 “몇 시까지 할 건데?”
 “만들어 놓은 것 팔릴 때까지는 해야지.”
 “손님 많이 안 왔어?”
 “주말이잖니. 어서 올라가.”
 엄마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이종석이 집으로 올라갔다.
 주말에는 평소 장사의 반도 되지 않는다. 그것을 감안해서 재료를 준비했으니 곧 장사 마치고 올라오실 거다.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온 이종석이 잠시 생각을 하다가 왕가훈기와 햄릿을 꺼내 책상에 올려놓았다.
 ‘왕가훈기······ 필체가 좋은데.’
 잠시 왕가훈기를 보던 이종석이 핸드폰을 꺼내 인터넷에 들어가 왕가훈기를 검색했다.
 하지만 검색되어 나오는 것은 없었다.
 ‘내용도 좋고 필체도 좋던데······.’
 유명한 서책인가 싶어 검색을 해 봤는데 아닌 모양이었다.
 잠시 왕가훈기를 보던 이종석이 그것과 햄릿을 책꽂이에 꽂고는 경험치북을 꺼냈다.
 고서방에서 왕가훈기를 찾은 것과 한문을 읽을 수 있다는 내용들을 적자 경험치를 얻을 수 있었다.
 
 <흔한 경험을 적으셨습니다. 경험치 25를 획득하셨습니다.>
 <명문 왕가훈기를 찾는 경험을 하셨습니다. 경험치 2,500을 획득하셨습니다.>
 
 경험치 내용을 보던 이종석의 얼굴에 크게 떠졌다.
 ‘경험치 2,500?’
 놀란 눈으로 이종석이 경험치를 바라보았다.
 사람을 구하는 경험과 귀신 소리라 추정되는 것을 들었을 때가 2,500이었다.
 그런데 왕가훈기를 찾았다고 2,500?
 그에 놀란 눈으로 경험치북을 보던 이종석이 왕가훈기를 꺼내 바라보았다.
 ‘명문 왕가훈기······ 그래, 확실히 내가 보기에도 좋은 필체라 생각을 하기는 했······ 어라? 내가 보기에?’
 이종석 자신이 한문에 대해 얼마나 안다고 내가 보기에라는 말을 한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내 경험이 아닌 그 학사의 경험이 이 글을 좋은 필체라 인식을 하고 있는 거다.’
 이종석이 꿈에서 본 학사는 정말 뛰어난 학사였다. 수십 명의 학사들에게 강의도 하고 입관도 한 그런······.
 그런 학사의 경험이 뛰어난 필체라고 인식을 했다면 정말 명필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거 설마 엄청 비싼 그런 것 아냐?’
 TV 같은 곳을 보면 옛날 글씨 한 점이 몇백, 몇천만 원에 팔리기도 하는 것을 본 것이다.
 ‘설마 나 로또 맞은 건가?’
 
 
 3장 공부를 잘해도 문제다
 
 
 엄청 비싼 서책을 얻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잠시 하던 이종석은 고민이 되었다.
 보물을 앞에 두고 못 알아본 사람 탓도 있지만, 어쨌든 고서방 아저씨에게 미안한 것이다.
 비록 돈 천 원을 주고 정당하게 사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거야 그냥 준 것이나 마찬가지고······.
 잠시 고민을 하던 이종석이 일단 서책을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내가 좀 보고 난 후에 아저씨한테 말을 하자. 팔지만 않으면 상관이 없겠지.’
 바로 돌려주기에는 아까운 마음이 있어 조금 더 가지고 있고 싶었다.
 속으로 중얼거린 이종석이 경험치북을 바라보았다.
 ‘학사의 경험이 더 궁금하네.’
 꿈에서 보는 학사의 경험은 무척 재미가 있었다. 마치 무협 영화를 보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자신에게도 도움이 되었다.
 문일지일이 공부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안 이상 경험을 더 얻을 생각이었다.
 게다가 건곤구공의 경험도 좋았고 말이다.
 ‘내가 잘 배워서 부모님에게도 알려줘야겠다.’
 건곤구공이 몸에 무척 좋다는 것을 안 이상 부모님 건강을 위해서라도 자신이 경험을 더 얻어 알려드릴 생각이었다.
 
 <공부 1,000>
 
 스르륵!
 이종석의 글과 함께 페이지가 넘어가며 글이 나타났다.
 
 <무당에서의 생활은 좋았다. 도사들은 친절하고 예가 있었고, 무당 서고에는 수천, 아니 수만 권의 장서가 쌓여 있었다.
 그런 나에게······.>
 
 두 시간 정도 글을 읽자 글이 갑자기 끊기는 것과 함께 새로운 글이 떠올랐다.
 
 <공부 경험치 1,000을 얻으셨습니다.>
 <경험 ‘문일지일’이 익숙해졌습니다.>
 <경험 ‘건곤구공’이 익숙해졌습니다.>
 
 경험치북에 떠오르는 글자를 보며 이종석이 한숨을 쉬며 눈을 비볐다.
 경험치북에서 경험치를 얻고 나면 이상하게 몸이 피곤했다.
 ‘자자.’
 눈을 비빈 이종석이 침대에 드러누웠다.
 
 ***
 
 주말은 금방 지나갔다. 일요일에는 잠깐 가게에 내려가 일을 도와준 것 외에는 영어와 수학을 집중적으로 공부를 했다.
 국사와 국어 같은 것은 원래 읽는 것을 좋아하다보니 어느 정도 성적이 나왔지만, 영어와 수학은 거의 찍는 수준이라 부족함이 많았다.
 하지만 ‘문일지일’ 경험의 도움으로 이제는 그렇지 않다. 보는 대로 이해가 되고 암기가 되니 공부하는 재미가 있었다.
 
 깨끗하게 빤 도복을 손에 쥐고 이종석은 학교로 가고 있었다.
 “어이! 종석이!”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이종석이 고개를 돌리니 김영우가 손을 흔들며 다가오고 있었다.
 “주말 잘 있었냐?”
 “그저 그랬지.”
 이종석의 말에 김영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걷다가 문득 몸을 떨었다.
 “날씨가 점점 추워지네.”
 김영우의 말에 이종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곧 있으면 기말이고 방학······ 그럼 삼학년이다.”
 “에이! 제길!”
 갑자기 욕을 하는 김영우의 모습에 이종석이 그를 바라보았다.
 “왜?”
 “앞으로 우리 청춘이 일 년 남은 거잖냐.”
 “이십 대도 청춘이다.”
 “우리에게 놀 수 있는 청춘은 올해뿐이다. 내년에는 고삼이고, 그 후에는 군대, 그리고 취업······.”
 “내년에는 공부하려고?”
 “그럴 리가 있냐. 다만 놀아도 마음이 편한 고2와는 다르지.”
 김영우의 말에 그를 보던 이종석이 말했다.
 “대학 안 갈 거지?”
 “넌 갈 거냐?”
 “가 보려고?”
 “그래? 군대 갔다가 바로 공무원 준비하는 것 아니었어?”
 “마음이 좀 변했어.”
 이종석의 말에 김영우가 피식 웃었다.
 “마음이 변한다고 머리도 변할까. 지금부터 해도 대학 가려면 성적 엄청 올려야 할 거다.”
 김영우의 말에 이종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생각이다.’
 그리고 그럴 자신도 있었다.
 
 이 교시를 마친 이종석은 웃으며 책을 보고 있었다.
 ‘쉽다.’
 어제 한 예습 때문인지 수학 시간이 너무 쉬웠다. 선생님이 하는 말을 듣지 않아도 칠판에 적힌 문제들을 풀 수 있었다.
 ‘기말이 빨리 왔으면 좋겠네.’
 시험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자신이 하게 될 줄 몰랐던 이종석이 피식 웃을 때 김영우가 한숨을 쉬며 책상 위에 그림 도구들을 올렸다.
 “그림 그리기 같은 것은 초등학교 때만 하고 멈춰야 하는 것 아니냐?”
 “왜, 공부 안 한다고 좋아할 때는 언제고?”
 “손에 물감 묻고 어쩌고 하니 재미없다. 그리고 손도 씻어야 하잖아.”
 “더러운 놈.”
 두 사람이 웃으며 미술을 준비하고 있을 때 수업 벨이 울리며 선생님이 들어왔다.
 미술 선생님은 오십이 훌쩍 넘은 아저씨였다.
 “자! 모두 준비물 가져왔지.”
 “네.”
 학생들의 답에 선생님이 책상들을 주르륵 훑어 준비물을 확인했다.
 확인이 끝나자 선생님이 말했다.
 “너희들이 그리고 싶은 식물을 그려.”
 선생님의 말에 학생들이 별다른 말없이 물감을 짜기 시작했다.
 그저 그리고 싶은 식물을 그리라는 주제만 주고 의자에 앉아 신문을 펼치는 선생님의 모습에 김영우가 작게 속삭였다.
 “야, 이럴 거면 선생님이 무슨 필요냐?”
 “감독은 있어야지. 빨리 그리고 밥이나 먹으러 가자.”
 미술시간은 삼, 사 교시 두 시간 동안 진행이 된다. 그리고 보통 점심시간 되기 십 분 전에 수업을 끝내고 가니 미술시간이 있는 반이 제일 먼저 학생 식당에 들어가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자.”
 김영우가 물감을 푸는 것을 보던 이종석도 붓을 들고는 도화지를 바라보았다.
 ‘뭘 그릴까?’
 잠시 생각을 하던 이종석이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녹색과 검은 색을 풀었다.
 
 점심시간이 다가올 때까지 꼼짝도 하지 않고 있던 선생님이 신문을 접었다.
 그리고는 메모지를 하나 들고는 학생들 사이를 걸었다. 별다른 말없이 선생님이 메모지에 학생 이름을 적고는 그림 평가를 적었다.
 하는 일 없다가 수업이 끝날 때 평가를 내려 성적에 반영하는 것이다.
 그렇게 학생들 사이를 오가며 이름과 평가를 적던 선생님의 걸음이 멈췄다.
 그의 눈에 닿은 것은 도화지에 그려져 있는 대나무였다.
 ‘잘 그렸네.’
 물감보다는 물을 많이 넣어 연하기는 했지만 붓의 가감을 통해 대나무의 마디 부위를 잘 표현하고 있었다.
 게다가 대나무의 옆에 쓰여 있는 글씨······.
 
 <고죽사충(孤竹士忠)
 죽절사심(竹節士心)>
 
 ‘고아한 대나무는 학사의 충, 대나무의 마디는 학사의 마음이라.’
 대충 한자를 해석을 한 미술 선생님의 얼굴에 감탄이 어렸다.
 대나무 그림도 잘 그렸다 할 수 있지만······ 글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며······ 명필이다.’
 멍하니 도화지에 적힌 글을 보던 선생님이 책상에 있는 학생을 바라보았다.
 “이종석?”
 “네.”
 “너······ 이거 어디서 배운 거냐?”
 “그냥 책에서요.”
 “책을 보고?”
 놀란 눈으로 글씨를 보던 선생님이 책상에 있는 붓을 바라보았다.
 “이걸로 쓴 거니?”
 “네.”
 이종석의 말에 선생님이 글씨를 바라보았다.
 ‘그림 그리는 붓으로 이런 글씨를······.’
 감탄이 어린 눈으로 글씨를 감상하던 선생님이 잠시 있다가 그림을 들고는 둘둘 말았다.
 “점심 먹고 미술실로 오거라.”
 “미술실요?”
 “꼭 와라.”
 더는 말하지 않고 학생들 점수를 평가하기 시작했다. 모든 학생들 점수를 평가한 선생님이 종이 울리지도 않았는데 교실을 나갔다.
 그것을 본 학생들이 빠르게 미술 용품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야, 왜 미술이 너 오라고 하는 거냐?”
 미술 용품을 챙기는 김영우의 말에 이종석이 혀를 찼다.
 “난들 아냐. 어쨌든 밥 먹으러 가자.”
 “이거 정리는?”
 “먹고 와서 하지 뭐.”
 이종석이 서둘러 반을 나서자 김영우가 대충 책상을 정리하고는 그 뒤를 따랐다.
 
 이종석이 간을 해 준 밥을 먹고 기분 좋게 교실로 들어오던 김영우가 말했다.
 “너 미술실 가. 네 자리 정리는 내가 해 줄게.”
 “그럴래?”
 “그······ 꺼억!”
 말을 하다 트림을 거하게 하는 김영우를 보던 이종석이 뒤로 한 발 물러났다.
 “부탁한다.”
 손을 흔든 이종석이 미술실로 걸음을 옮겼다.
 ‘근데 왜 오라는 거야? 설마 유도처럼 미술 하라는 것 아냐?’
 자신이 봐도 대나무는 잘 그린 편이었다. 학사들이 기본적으로 하는 것이 시와 서화다.
 학사의 경험 덕에 대나무를 잘 그린 것이다. 하지만 이종석은 미술을 할 생각이 절대 없었다.
 미술가 하면 딱 생각나는 것이 바로 배고픈 직업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며 미술실 앞에 도착한 이종석이 노크를 하고는 문을 열었다.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오라고 하더니 자기가 안 왔네.”
 속으로 중얼거린 이종석이 미술실 한쪽에 있는 의자에 가서 앉았다.
 
 이종석이 미술 선생님을 기다리고 있을 때, 그는 교직원 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는 어딘가를 보고 있었다.
 그의 시선이 향하는 곳에는 나이 지긋한 백발의 선생님들이 모여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식사를 다 하고 커피를 마시기 시작하자 미술 선생님이 다가갔다.
 “교장 선생님.”
 “오 선생님. 커피 한 잔 하시지요.”
 교장 선생님이 커피포트를 가리키자 미술 선생님이 고개를 젓고는 손에 쥐고 있던 도화지를 슬쩍 내밀었다.
 “이것 좀 보시지요.”
 “이게 뭡니까?”
 웃으며 교장 선생님이 도화지를 펼치다가 웃었다.
 “좋은 그림이군요. 그리고······ 허! 이거 명필이군요.
 감탄을 하는 교장 선생님을 보며 미술 선생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하실 줄 알았다.’
 시, 서화에 관심이 깊은 교장 선생님이다. 그래서 일부러 가져와 보여 준 것이다.
 “서화에 조예가 있으신 교장 선생님 보시기에도 그리 보이십니까?”
 “저야 그저 조부님에게 조금 배운 수준인데 조예라 할 것이 있겠습니까.”
 말과는 달리 교장 선생님의 서화는 수준급이었다. 동호회 수준이기는 했지만 문인들끼리 모여서 하는 대회에서도 상을 탈 정도로 말이다.
 작게 고개를 저은 교장 선생님이 문득 도화지에 코를 대고는 냄새를 맡았다.
 “그런데······ 이건 먹으로 쓴 것이 아니군요. 그리고 쓴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교장 선생님이 미술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오 선생님께서 쓰신 것입니까?”
 “제가 아니라 제가 가르치는 학생이 오늘 미술 시간에 그리고 쓴 것입니다.”
 “학생이?”
 “그것도 미술용 붓으로요.”
 미술 선생님의 말에 교장 선생님의 얼굴에 감탄이 어렸다.
 “호오! 그 학생 한 번 보고 싶군요.”
 “지금 미술실에 있는데 가서 만나 보시겠습니까?”
 미술 선생님의 말에 교장 선생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명필을 가진 학생이 우리 학교 학생이라는데 만나지 않을 이유가 없지요.”
 
 ***
 
 이종석은 미술실에서 미술 선생님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언제 오는 거야?”
 이러다가 점심시간 끝나겠다는 생각을 할 때, 문이 열렸다.
 드륵!
 문이 열리는 소리에 몸을 일으키던 이종석의 얼굴에 의아함이 어렸다.
 ‘교장 선생님?’
 안으로 들어온 것은 교장 선생님과 교감 선생님이었다. 학교 최고 높은 분들이 줄줄이 들어오는 것에 이종석이 의아해 하다가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어쨌건 선생님들이 들어오는데 멀뚱히 쳐다만 볼 수는 없는 일이다.
 이종석의 인사에 교장 선생님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가 이종석 군인가?”
 “네.”
 “후! 그래, 글씨를 잘 쓴다고?”
 “네?”
 이종석이 의아한 얼굴로 그를 볼 때 뒤늦게 안으로 들어온 미술 선생님이 말했다.
 “교장 선생님께서 네가 쓴 글을 아주 칭찬하시더구나.”
 “제가 쓴 글요?”
 무슨 말인가 싶어 보는 이종석에게 교장 선생님이 도화지를 펼쳤다.
 “이것 말이다.”
 “아······.”
 이종석의 말에 교장 선생님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한 번 글을 쓰는 것을 볼 수 있겠니?”
 ‘니?’ 라 끝나지만 쓰라는 것과 같은 의미다.
 “네.”
 “지필묵연이 있나?”
 교장 선생님의 말에 미술 선생님이 어디선가 지필묵연을 가져다가 교탁에 올려놓았다.
 그에 이종석이 교탁에 다가가자 미술 선생님이 생수를 벼루에 붓고는 먹으로 갈려 하자 교장 선생님이 고개를 저었다.
 “명필은 먹을 가는 것도 자신이 하는 법이네.”
 “아! 그렇습니까.”
 미술 선생님이 뒤로 물러가자 교장 선생님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이종석을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 작게 입맛을 다신 이종석이 먹을 쥐었다. 그러자 먹이 손에 착 달라붙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먹이 이런 느낌이었나?’
 사실 미술 수업 중에 붓글씨 수업도 있었다. 그래서 먹을 가는 법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부드럽게 손에 달라붙는 것은 처음이었다.
 잠시 먹을 손에 쥐고 있던 이종석이 천천히 벼루에 먹을 가져가 갈기 시작했다.

댓글(8)

진격운    
이건추천 !! 볼만 합니다
2018.06.01 15:59
광개토태제    
앞에는 볼만한데…뒤에 주인공이랑 수십살 차이나는 사람들한테는 존댓말듣고, 주인공이랑 6살 차이나는 사람은 말까면서 친구하자그러고…보자다 짜증나서 욕나옴
2021.10.05 17:01
좋아좋아요    
선발대로써 개인적으로 평하자면 대부분 장르소설이 초반에는 탄탄한데 후반에 갈수록 무너져 읽다가 중단하게 되는데 조금씩 엉성해지지만 끝까지 읽었슴 나는 작가가 화교가 아닐까 생각하고 있을 정도로 주인공이 몸은 한국인인데 소프트웨어는 중국 소림사와 무당파 무술로 장착해서 온 세계에 퍼뜨리니 미국에도 소림사분점도 만들었고 백년쯤 지나면 자연스럽게 한국도 소프트웨어가 그러니 중국조선령쯤 되지 않았을까 생각나게 하는 소설임.태권도고 유도고 뭐고간에 소림과 무당무술앞에는 잽도 안되고 또 중국 서예가 최고임 읽는 내내 그런것들이 불편한데 그냥 재미있으면 된다는 맹한 사람은 읽어도 됨 비판댓글은 다 지우는지 없네
2021.10.08 04:31
보람이맘    
잘보고갑니다
2021.10.10 00:03
콩알이네1    
추천합니다 끝까지볼만 합니다
2021.10.11 21:34
ra******    
재미있습니다
2021.10.19 06:32
높고높아    
잘 보고 갑니다
2022.02.28 00:14
뵬돼    
호잇호잇 콩푸우!
2022.03.09 09:14
0 / 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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