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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회귀도 1

2018.05.21 조회 528 추천 2


 불회귀도 1권
 서장(序章)
 
 
 1. 여인들의 천국(天國)
 
 
 사실인지 아닌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소문은 난무하나 아는 사람도 없었다. 진위(眞僞)를 알 수 없는 막연한 이야기는 떠돌고 있었지만 눈으로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랬기 때문인지 혹자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말 같지도 않은 소리는 집어치우라고 코방귀를 뀌기도 했다.
 소문의 진위를 접어두고서라도 물질을 오래한 어부(漁夫)들에게는 신비한 이야기이기도 했지만 두려운 이야기이기도 했다. 믿지 않을 수도 없는 것이 간혹 보았다는 사람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자네, 이야기 들었나?”
 “뭘 말인데요?”
 “여인들만 산다는 섬이 있다는 이야기 말이야. 자네는 잘 모르겠구먼.”
 송가구(宋加九)를 보며 어부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마치 비밀이라도 알고 있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가구는 해남도(海南島)에 둥지를 튼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그가 어떤 연유로 뱃사람이 되고자 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남해도의 어부들은 굳이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이미 들었어요.”
 “소식은 빠르구먼. 아직 모르고 있는 줄 알았는데. 누가 이야기해 주던가?”
 “옥풍호(玉風號) 선주(船主)이신 막대인(莫大人)께서 알려 주셨습니다.”
 “그럼, 자네는 옥풍호를 타기로 한 건가?”
 “그랬지요. 이곳에 이사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배를 태워주신다니 고마울 뿐이지요.”
 가구는 막대인이 고맙기만 했다.
 오랜 육지 생활로 잔뼈가 굵은 그가 중원의 최남단 해남도로 이사를 오게 된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그였지만 가슴이 뛰었다. 배를 타본 적도 없는 자신을 어선(漁船)에 태워주겠다는 이야기만 들어도 가슴이 활짝 열리는 기분이었다. 살 길이 막막하던 가구로서는 고마운 이야기이기는 했지만 일면 두렵기도 했다.
 어부들 사이에 은근히 들려오는 전설같은 이야기는 심장을 오그라들게도 했다.
 가구가 처음 해남도로 이사를 왔을 때 어부들은 막대인을 지목하며 반드시 인사를 드리라고 했다. 막대인은 관부와는 다른 실질적인 해남도의 실권자였다.
 가구는 해남도의 대부호(大富豪)라는 막대인에게 인사를 드리기 위해 막대인의 장원으로 갔다. 막대인은 가구를 자신의 배에 어부로 태워주마고 했다. 가구는 감격했다.
 모든 것이 좋았다. 살 길이 생겼다는 생각도 잠깐, 우연히 흘러나온 이야기는 가구의 심장을 덜컥거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어딘지는 나도 모르네만 해남도에서 해리(海里)로 삼천 리를 가면 일곱 개의 섬으로 만들어진 섬이 있다고 하네. 나도 본 적이 없어 잘 모르겠네만 소문에 의하면, 여인들의 천국이라고 알려져 있는 곳이지.
 남자들은 모두 개나 소처럼 여인들에게 질질 끌려다닌다네. 소문에 듣자 하면 섬에 들어가기도 어렵고 들어간 자는 섬을 나오지도 못한다고 하네.
 사람들은 그 섬을 가리켜 불회귀도(不廻歸島)라 부른다네. 원래 이름은 일곱 개의 섬을 묶어 맹골군도(孟骨群島)라 했는데 왜 그렇게 불리게 되었는지는 나도 모른다네. 이곳에서 삼천 리길이니 가깝지도 않지만 멀지도 않지.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불회귀도라 알려진 곳으로는 가지 않아.
 들어갈 수도 없다네. 사시사철 부는 광풍(狂風)과 수시로 밀어닥치는 해일(海溢)이 접근을 허락하지 않으니 말이야.
 
 
 2. 출발(出發)
 
 
 천축(天竺)의 최남단 마다가리 항을 출발한 범선(帆船)은 불어오는 바람에 순조로운 항해를 시작했다. 명나라의 무역선인 곤룡호(昆龍號)는 명국(明國)의 황실(皇室)에 소속된 범선 중 가장 화려한 황급(黃級)이었고 일곱 명의 무관과 삼십칠 명의 관병들이 승선하고 있었다.
 노를 젓거나 돛을 관리하는 선부(船夫)는 도합 이십이 명으로 배에 탄 전체 인원은 육십육 명이었다.
 배에는 천축의 황제가 중원의 황제에게 보내는 조공(朝貢)이 실려 있었다. 십이 척에 이르는 금불상(金佛像)이 두 개나 실려 있었고, 삼백 권의 불경이 배의 선창(船艙)에 조심스럽게 모셔져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단단히 묶여져 있었다.
 영락 십이년 팔월 칠일.
 곤룡호는 북상(北上)하는 기류(氣流)를 타고 먼 길을 되돌아가기 위해 출발했다. 중원의 최남단 하구, 오문(澳門)을 출발한 시점으로 십 개월이 지나 있었고 천축에 도착한 지는 넉 달이 조금 지난 시점이었다.
 
 
 1장 풍운(風雲)의 마다가리 항(港)
 
 
 1
 
 
 “음!”
 중원에서 제법 먼 이역(異域), 천축(天竺)의 항구 마다가리 항구는 열대성 기후로 늘 후덥지근했다.
 잠을 자기 어려운 열대성(熱帶性) 기후(氣候)는 침상을 축축하게 적시고도 남을 땀을 흘리게 했고, 가뜩이나 떠지지 않는 눈은 천 근을 매단 듯 무겁게 짓눌렀다.
 “으음! 이게 뭐지?”
 설천후는 손에 무언가 잡히는 서슬에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손가락에 감겨드는 감촉은 타인(他人)의 몸이었다.
 부드러운 살결이 스치는 것으로 보아 자신의 몸과는 차이가 있는 여인의 몸이었다. 그것도 기름기가 자르르 흐르는 풍만하기 이를데 없는 여인의 살결.
 긴 머리카락이 손가락 사이에 감기는 감촉으로 보아 제법 가꾼 듯한 여인의 몸이었다. 설천후는 몸을 모로 돌려 세우며 여인을 내려다보았다. 눈에 익었지만 어딘지 낯설게 느껴지는 여인이 동공을 가득 채우며 다가들었다.
 “아으음!”
 여인은 꿈을 꾸는지 이 앓는 소리를 뱉았다. 여인의 입이 열리자 박속처럼 하얀 이가 드러났다. 후끈한 단내음이 코로 스며들자 하체의 일부에 가벼운 충동이 일어났다. 어젯밤에 온몸을 파고들던 저릿저릿한 느낌과는 매우 달랐다.
 마냥 끌어안고 뒹굴고 싶다는 생각도 아니었다. 어딘지 가슴이 묘하게 쓰라려 오는 아련함이었다.
 “휴-- 우!”
 설천후는 몸을 뒤척여 다시 누우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어제 그가 잠들었던 침실의 정경이 세세하게 눈을 파고들었다. 역관숙(驛館宿)은 그가 천축에 올 때마다 사용하는 곳이지만 지난 밤은 다른 어느 때보다 감흥(感興)이 남달랐다.
 대리석으로 만든 기둥과 흰 벽면이 눈에 들어왔다. 어울리지는 않지만 정성을 들여 만든 모습이 보이는 벽면이 눈을 자극했다. 열대죽(熱帶竹)으로 만든 창살은 어제 잠들 때와 달라진 것이 없었다.
 “어제···”
 말을 하려고 했으나 목이 탔다. 손을 더듬어 머리 밑을 휘저어 보았으나 손에 잡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빈 손이 허공을 맴돌았을 뿐이다.
 눈을 돌리자 여인의 희멀건 등판이 아릴 듯 눈에 들어왔다. 중원인들보다 검은 피부를 가진 천축의 여인치고는 비교적 흰 피부였다.
 세우려던 몸을 다시 뒤집으며 여인의 보드라운 살결을 더듬었다. 손에 감겨드는 이국여인(異國女人)의 살결이 다시 한 번 마음을 산란하게 했다.
 “아이잉!
 여인이 코먹은 소리를 토했으나 무의식적인 것 같았다. 잠을 깰 것 같지 않은 여인의 모습이 왠지 처량하다는 생각이 들자 가슴이 무거워졌다.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여인을 쳐다보았다. 여인은 깊이 잠이 들었는지 씨근거리는 숨소리가 들렸다. 검은색도 아니고 그렇다고 금발(金髮)도 아닌, 중간 정도의 색을 지닌 머리칼이 눈에 들어왔다. 갈색의 머리카락이 얼굴을 덮고 허리까지 마구 엉겨붙어 있었다.
 땀이 났기 때문일까? 머리카락이 몸에 착착 감긴 모습은 또 그렇게 요염하게 보일 수가 없었다.
 “뜨거운 여인이었다.”
 어젯밤의 뜨겁고 폭죽이 터지듯 찬란했던 여인의 몸짓을 생각하며 설천후는 몸을 뒤집었다. 몸에 걸친 것은 없지만 볼 사람도 없었고, 굳이 가릴 것도 없었다.
 “아아!”
 여인이 이를 앓는 듯한 소리를 내며 몸을 뒤집었다.
 머리카락에 감겨 있던 등이 사라지고 대신 봉긋한 가슴이 보였다. 유실이 파르르 떠는 높은 가슴은 어젯밤의 뜨거웠던 정사(情事)를 생각나게 했다.
 여기저기 가늘게 난 손자국과 고혹적으로 감겨드는 여인의 입술만으로도 능히 사내의 갈증을 식혀줄 수 있는 자태였다.
 “가시면 안 돼요. 다시는 오지 않을 거죠? 아아아! 사라는 슬퍼요.”
 잠결에 꿈을 꾸는 모양이었다. 팔등신의 미녀는 손을 뻗어 설천후의 몸에 손을 얹었다. 잠결에 행한 무의식적인 행동이었다.
 가슴에 얹혀진 팔뚝이 은어(銀魚)의 비늘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동안 팔뚝은 설천후의 가슴에 얹혀진 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설천후는 여인의 팔을 가슴에서 살며시 들어 침상에 내려놓았다.
 ‘모두가 부질없는 생각이야.’
 설천후는 자신을 채근했다.
 “대단한 여인이었다.”
 설천후는 지난밤의 뜨거웠던 여인을 생각했다.
 일 년만에 돌아온 마다가리 항(港)은 사시사철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거리에는 이국의 미녀들이 중원인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사라(思羅).
 여인의 이름은 사라라고 했다. 그것이 여인의 진정한 이름인지 아닌지는 굳이 중요하지 않았다. 설천후에게 중요한 것은 여인의 이름이나 아름다움이 아니라 뜨거운 밤을 식혀줄 여인의 몸이었다.
 중천축국(中天竺國)의 발융제천(拔隆帝天)이 마다가리 항구에 설치한 역관숙에 머무르는 여인 중 가장 뜨겁다고 알려진 여인이었다.
 “그녀를 품으면 몸이 녹아 죽는다는 소문이 있어요.”
 사라의 동료라는 마타(麻妥), 마타는 그렇게 말하며 입을 가리고 웃었다. 그것이 그토록 중요하다고 여겨지지는 않았다. 그냥 넓은 침상의 한모퉁이를 차지해서 빈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 여인으로 족했다.
 역관숙에 몸을 담고 있는 오십여 명의 여인은 중천축국의 미기(美妓) 중 선발된 여인들로 천하에서 중천축국에 무역을 오는 역관들을 위해 준비되어 있는 여인들이었다.
 “당신을 눈여겨보았었지요.”
 “나를?”
 “그래요. 당신이 처음으로 역관숙에 나타난 날부터 당신이 나와 함께하기를 기다렸어요. 삼 년이 지난 오늘에야 당신의 가슴에 안길 수 있다는 사실이 꿈이 아니기만을 바랄 뿐이에요.”
 “왜지?”
 “당신은 나와 같이 처절하도록 외로운 분위기를 풍기는 남자니까요.”
 사라는 그렇게 말하며 설천후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내일이면 중원을 향해 출발한다는 설천후의 말에 사라는 몸을 비비며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한 마리 비맞은 참새로구나.’
 설천후는 뜨겁게 타오르는 사라의 몸을 안으며 쓴웃음을 지었었다.
 사라의 형제(兄弟)는 모두 죽었다고 했다. 도적(盜賊)에게 죽었는지 불에 타 죽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아무튼 세상에 피붙이 하나 없이 혼자라고 말했다. 그렇게 말하며 맑은 눈물을 흘렸다.
 그녀가 역관숙으로 팔려온 것은 열한 살이 되던 해 봄이었다고 했다. 자신은 한때 고루거각(高樓巨閣)이 즐비한, 천축에서도 뒤지지 않는 가문의 딸이었다고 했다.
 아쉬워하면서도 사라는 말끝을 흐렸다. 이야기해 봐야 자신의 마음에 비수를 꽂는 것과 다름없다고 말하며 희미하게 웃기도 했다.
 “내 신세와 똑같구나.”
 설천후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달리 아무것도 없었다. 말만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정말로 자신의 모습과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부모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자란 설천후에게 품을 파고드는 사라의 몸은 미약(迷藥)과도 같았다. 슬픔인 줄 알았는데 뜨거운 정열(情熱)이 밀려들어 환희(歡喜)가 되었고 다시 이슬비 같은 슬픔이 되었다.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슬픔과 기쁨의 어우러진 편린(片鱗)들은 미치도록 그를 흔들었다. 설천후는 미친 듯 여인을 안아갔고 사라도 설천후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너무나 뜨거운 밤이었다. 새벽이 지나서야 설천후는 잠이 들었다.
 “후!”
 설천후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여인의 품 속을 헤매고 나면 어딘지 모르게 허탈해지는 감정을 완전하게 배제하기가 어려웠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안고 가야 할 숙명이었다.
 설천후는 열대죽으로 만들어진 창문 틈으로 하늘을 보았다. 하늘은 맑았고 비록 창살 사이로 보이기는 하지만 구름 한 점 보이지 않았다.
 “비라도 한줄기 뿌려줄 일이지.”
 비가 와서 모든 것이 잠겨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굴뚝 같았지만 보이는 것이라고는 한 줌의 푸른 하늘뿐이었다. 눈을 돌렸다. 여인은 아직까지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모든 것이 일 수유의 고통인 것을······.’
 후회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늘 그랬다. 정사(情事)가 깊으면 깊을수록 몸이 뜨거우면 뜨거울수록 모든 것이 끝난 후의 허탈함이란 가슴을 도려내는 아픔이었다. 늘 겪는 것이지만 피하기는 쉽지 않았다. 아니, 미치도록 탐닉(眈溺)했다.
 아픔이 밀리면 쓰러지고 또 일어서기가 무섭게 쓰러지는 그였다. 알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그였기에 아픈 가슴을 끌어안기보다는 자신을 던져 버렸다.
 “이제 일어나야겠다.”
 몸을 일으킨 설천후는 침상을 내려와 방바닥에 떨어진 자신의 옷가지를 주워 들었다. 옷들은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사라가 입고 있었던 보드라운 옷은 명(明)의 역관(譯官)이 입는 빳빳한 옷과 마구 엉겨 있었다. 호마대삼(湖麻大參)으로 만든 설천후의 옷이 너저분하게 뒹구는 모습이 볼썽사나웠다.
 “나도 꽤나 급했던 모양이군.”
 설천후는 어지럽게 널려진 자신의 옷을 챙기며 ‘피식’ 하고 바람을 불어냈다. 돌이켜 생각하니 자신의 모습이 가관이 아니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하나하나 주워 올린 옷을 몸에 걸쳤다. 후덥지근한 옷은 이미 열기에 데워져 있었고 몸에 걸칠 때마다 숨이 막혔다. 옷을 걸친 설천후는 사라를 돌아보았다.
 “다신 오지 않을 거다. 행복을 찾도록 해라.”
 설천후는 여인의 등에 대고 말했다. 사라가 깨어 자신의 말을 듣든, 잠을 자고 있든 그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사라에게 한 말이지만 자신에게 한 말이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설천후인 것이다.
 
 
 2
 
 
 아극타(亞極唾)의 얼굴에서 희열이 피어올랐다. 그의 주변에 늘어섰던 부하들도 기쁨으로 코를 벌름거렸다. 오랫동안 달려온 보람이 있었다. 무려 이 년여에 걸친 세월의 소모가 있은 후에야 겨우 목적지를 찾을 수가 있었던 그들이었다.
 “그래, 이곳이 확실하단 말이야?”
 “그렇습니다.”
 “이제 우리가 움직일 차례라는 말이렷다.”
 아극타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의 앞에 깊숙하게 허리를 숙이고 부복한 부하는 눈을 크게 뜨고 아극타를 바라보았다.
 이미 사십 년 동안 아극타를 보필한 시위(侍衛), 무라사(茂拏些)는 아극타가 그토록 기뻐하는 모습을 처음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잘 되었어. 궁주께서 이리도 기꺼워하시다니.’
 무라사는 가슴에서 피어오르는 희열(喜悅)에 가는 떨림을 일으켰다. 궁주를 닮아 쉽게 표정을 드러내지 않는 무라사였지만 만약 혼자였다면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웃음을 터뜨릴 수는 없었다.
 평상시에는 늘 말이 없는 아극타였다. 냉정함이 처절하게 느껴지는 아극타의 주위에서는 늘 서릿발 같은 냉기가 풀풀 날렸다. 열대지방(熱帶地方)인 마다가리 항구라고 해서 변하는 것은 없었다.
 아극타가 귀중한 단서를 잡고도 웃음이 없으니 무라사도 감히 웃음을 터뜨릴 수가 없는 것이었다.
 “아버님께서 이곳에서 배를 탔다는 것이 사실이냐?”
 “그렇습니다. 너무 오래 전 일이라 기억하는 자가 많지는 않았지만, 해남도에서 파도에 밀려 온 아홉 명이 배를 갈아타고 다시 동해로 나갔다는 것을 알고 있는 자가 제법 있었습니다.”
 “사십 년 전의 일이다. 확실해야 한다.”
 “물론입니다. 그들 이야기로도 아홉 명이 천중구객(天中九客)이라 했답니다. 오십 년간 역관숙의 하인을 했다는 자가 거짓말 할 리는 없었을 겁니다.”
 “수고했다.”
 “감사합니다. 문주!”
 무라사는 깊숙하게 허리를 굽혔다. 날씨 탓인지 아극타는 전에 보여주지 않던 모습을 종종 드러내고 있었다. 누구에게도 마찬가지로 단 한 번도 고맙다는 말을 해 본 적이 없었던 아극타였다.
 한때 천중구객이라 존경받던 전대의 문주를 찾기 위해 설산(雪山)을 떠난 지 어언 삼 년, 삼 년 동안 각고의 노력 끝에 겨우 천중구객의 실마리를 잡았다.
 “천중구객께서 간 곳은 알아보았느냐?”
 “역시 짐작대로입니다.”
 무라사의 말에 아극타의 눈이 번쩍 하고 빛을 발했다. 동시에 그의 입이 가볍게 열렸다.
 “여인천국(女人天國)이라는 불회귀도(不回歸島)!”
 “그렇습니다.”
 아극타는 주위를 돌아보았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부하들이 다가와 허리를 숙였다.
 “준비하라.”
 “존명!”
 
 
 3
 
 
 “이상한 일입니다.”
 느닷없는 노중량(盧仲良)의 말에 사마장용(司馬長龍)은 눈썹을 찌푸렸다. 중원 구대문파의 장로급(長老給) 어른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데 끼여든 노중량이 미덥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마장용의 앞에는 십여 명의 무인들이 깊은 숙의를 하는 중이었다. 그들 중에는 사마장용이라 해도 함부로 대하기 어려운 고인들이 수두룩했다.
 설사 자신의 사부인 소림(少林)의 금강동주(金剛洞主) 불각대사(不覺大師)가 나타난다 해도 앞에 앉은 각파의 장로들에게는 함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사마장용이었다.
 비록 자신이 소림을 대표해서 천축까지 왔다고는 하나 아직 경륜이 모자란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그였다. 나름대로 조심스러운 몸가짐을 하던 차이고 보니 제자의 언행(言行)은 참으로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
 구파에서는 한결같이 장로들이 왔지만 소림에서는 장로가 아닌 이대제자인 자신이 참가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송구스러울 뿐이었다.
 구파일방이 장로들을 보내 불회귀도를 찾으려고 한 것은 오랜 숙원이었다. 늘 반목(反目)하고 질시(疾視)하던 그들, 오랜만에 구파일방은 사심을 버리고 힘을 합쳐 제자들을 천축까지 보낸 것이다.
 무엇이 그들을 한마음으로 모았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다만 장문인들끼리 모종의 계획이 있었지 않나 하는 생각 외에는 어떤 단서도 없었다.
 “사마아우, 이제 우리의 결실이 보이는 모양이다.”
 “그런 것 같습니다.”
 “이곳까지 온 보람이 있어야 할 텐데?”
 “물론입니다. 구파일방의 숙원이니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매듭을 지을 필요가 있겠지요.”
 무당(武當)의 장로 현숙자(賢熟子)가 입을 열며 사마장용을 쳐다보았다. 사마장용을 제외한 아홉 명의 구파일방 장로 중 가장 나이가 어린 장로였다.
 열 명의 장로가 이끄는 구파일방의 연합세력은 무려 백여 명에 육박하는 숫자였다. 면면을 보더라도 결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제자들만 고르고 추렸기에 그들이 떠날 때 구파일방의 제자들 사기는 하늘을 찌르고도 남았다.
 소림은 속가제자(俗家弟子)이며 사마세가(司馬世家)의 혈손(血孫)인 사마장용이 열 명의 제자를 이끌고 먼 여행에 참가한 상태였다.
 비록 속가제자라고는 하나 불각대사가 소림방장(少林房長) 활련대사(活鍊大師)의 사숙인 관계로 사마장용은 나이는 어려도 배분이 높았다. 방장과 배분이 같아 소림의 장로들도 머리를 숙여야 하는 형편이었다.
 사마장용은 열 명의 제자 중 다섯 명을 금강동(金剛洞)의 동인(洞人)으로 선정했고 나머지 다섯 명의 속가제자는 무림에서 흔히 소림오호(少林五湖)라 불리는 후지기수를 선출했다. 노중량은 그 중의 한 명으로 무림에서는 소소쾌랑(素笑快郞)이라 불리는 자였다.
 “이제 시작이겠지요.”
 “물론이지. 자네가 남해도에서 얻은 정보 때문에 생각보다는 빨리 도착할 수가 있었네.”
 사마장용도 빙그레 웃었다. 사마장용의 웃음이 무엇을 뜻하는지 익히 짐작하겠다는 듯 현숙자가 따라 웃었다. 사마장용이 그들의 진로를 단축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사마장용과 호형호제하는 사이인 현숙자는 무당의 장로치고는 젊은 연배를 지니고 있었고 도인(道人)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속가제자의 분위기를 풍기는 자였다.
 무당칠유(武當七儒)라고 불리는 일곱 명의 제자를 거느린 현숙자는 제자들과 다르게 도복도 입지 않고 불진도 들지 않았다. 오히려 날렵한 경장에 태극건(太極巾)을 쓰고 있어 무예수련을 떠나는 무도자의 모습에 가까웠다.
 “이제 배(船)가 고쳐졌으니 떠날 수 있을 거다.”
 그들이 타고 온 배는 파손되어 장기간 수리를 요했다. 그들이 마다가리 항구에서 정보를 수집하는 동안 배는 완벽하게 수리를 마친 상태였다.
 “해로(海路)는 정해졌는지요?”
 “불확실하다네. 다행히 해로를 아는 자가 있다고 해서 사람을 구하러 갔으니 곧 방법이 있겠지.”
 “잘 돼야 할 텐데요.”
 “너무 걱정하지는 마시게. 곤륜(崑崙)의 쾌비수장로(快飛手長老)가 갔으니 무리없을 걸세.”
 과연, 숙의가 끝난 듯 눈에 보이는 장로들은 모두 여덟 명뿐이었다. 사마장용 자신을 빼고도 여덟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한 명의 장로가 어디론가 갔다는 사실을 말해 주는 단서였다.
 곤륜의 쾌비수가 보이지 않았다.
 구 척 장신의 키를 지닌 쾌비수는 어디에서건 눈에 들어오건만, 구 척 장신의 모습을 지닌 사람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쾌비수를 따라 곤륜산을 벗어나 천축까지 온 곤륜의 제자들도 눈에 보이지 않았다. 곤륜은 여섯 명의 제자들을 거느리고 참가했는데 소문에는 쾌비수가 직접 키운 곤륜의 기재들이라 했다.
 중원의 모처(某處)에서 뱃길을 따라 만 리 길을 떠난 지 벌써 육 개월이 흘렀다. 구파일방의 고수들은 무려 칠 개월이나 걸려서야 천축에 도착했다.
 구파일방의 고수들을 모으는 데 삼 개월이 소요되었고 해로를 타고 천축에 다다르는 데는 무려 사 개월이 걸렸다.
 중원의 무인들이 출중(出衆)한 무공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그토록 오랜 시간이 걸려 천축에 도착할 수 있었던 것은 사십 년 이전에 불회귀도를 찾아 떠난 천중구객의 흔적을 더듬어 뒤를 따랐기 때문이다.
 “어서 말하라.”
 어디선가 걸걸한 목소리가 울렸다. 마치 탁한 술을 한 잔 한 듯한 목소리였다.
 사마장용이 고개를 돌렸다. 소리가 난 방향이었다.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현숙자도 얼굴을 들어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눈을 향했다.
 “쾌비수장로가 오신 모양이구려!”
 부지런히 말을 하던 현숙자가 고개를 고정시켰다. 사마장용도 따라 고개를 돌리다 눈을 정지시켰다. 과연 쾌비수를 비롯한 곤륜 문인들 사이에 천축인 하나가 따라오고 있었다.
 천축인은 오랫동안 어부생활을 했는지 행색이 볼품이 없었고 얼굴에는 생활고(生活苦)가 찌들어 있었다. 발에는 다 떨어진 초혜(草鞋)가 끌리고 있었다.
 “우리도 그만 가봅시다.”
 “그러시지요.”
 말을 마친 현숙자가 발길을 돌렸다. 사마장용도 거칠 것 없이 발걸음을 돌렸다. 뒤를 따라 소림의 제자들이 열을 지어 따라갔다.
 그들의 앞, 멀지 않은 곳에 중원의 무림인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중앙에는 천축인이 에워싸여 눈을 반짝이며 의아한 눈초리를 빛냈다.
 “곤륜성인(崑崙聖人)께서 드디어 일을 해결하셨구려?”
 전신에 윤기가 흐르는 청색(靑色)의 도복(道服)과 도관(道官)을 걸친 육순의 도사가 쾌비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도복과 도관의 색은 무파를 뜻하기도 하고 검에 달린 수실은 본파와 속가, 지파를 구별하는 하나의 수단이었다. 도사는 허리에 곤색의 수실이 달린 허리띠를 매고 등에 진 검에 달린 수실은 붉은색과 황색이 섞여 있었다.
 “허허허, 무일자(武佾子)장로에 비하면 약소하지요.”
 키가 큰 곤륜의 쾌비수가 가벼운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나 얼굴에 어리는 자랑스러운 기색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무일자라 불린 도인은 가볍게 손을 모았다. 쾌비수에 대한 예의를 표하려 함이었다. 그의 모습에는 예의가 습관처럼 따라다니는 중원무림의 단면을 보게 했다.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허허허, 칭찬으로 듣겠소.”
 청색도복은 화산의 제자임을 뜻하고 허리에 달린 곤색의 요대와 검에 달린 두 가지 색의 수실은 장로라는 것을 의미했다. 더구나 붉은색은 장로라 하더라도 제자를 받아 무공을 전수한 후, 제자가 오대(五代)를 넘어섰을 때 장문인이 매어주는 수실이었다. 그것은 무한한 영광의 표식이기도 했다.
 화산의 장로 무일자였다.
 무일자는 등에 한 자루의 칠성검(七星劍)을 차고 있었는데 한 팔이 유난히 길어 보였다. 무일자는 병기를 쥐는 왼팔이 오른팔에 비해 반자는 길게 느껴지는 자였다.
 무일자가 익힌 쇄비장(碎飛掌)은 긴 팔을 사용해 시전하는 것으로 그 위력이 놀라워 그의 외호인 장수비검(長手飛劍)이라는 이름은 이미 사장(死藏)되고 쇄비수(碎飛手)라 불렸다.
 본디 화산은 무당과 함께 검의 일가를 이루었으나 쇄비수는 검보다 장법을 더욱 현란하게 시전할 수 있었다.
 “아니오이다. 장로가 아니었으면 우리는 곤욕을 치를 뻔했습니다.”
 “이것 참! 치켜세워 주시니 고맙소이다.”
 무일자와 쾌비수는 서로의 칭찬을 주고받으며 기꺼움에 어깨를 들썩였다.
 
 
 4
 
 
 어부의 눈에 경악이 스쳤다.
 “안 됩니다. 갈 수 없습니다.”
 자신을 아루타(阿累朶)라 소개한 어부는 갑자기 사지를 부들부들 떨며 주저앉았다. 얼굴에는 굵은 땀방울이 송글거리다 못해 목까지 흘러내렸고 얼굴은 사색(死色)으로 물들었다.
 중원의 무인들은 얼굴색을 변화시켰다. 쾌비수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얼굴에는 분노의 표정과 아울러 광대뼈 위가 심하게 씰룩거렸다.
 “이런!”
 쾌비수의 이마에 파란 힘줄이 돋았다.
 ‘이게 무슨 개망신이냐? 해로를 아는 놈을 잡아왔다고 목에 힘을 주었더니, 초를 치는군.’
 쾌비수는 천축인의 앞으로 한 발 다가섰다. 바닥이 울릴 정도로 거친 발걸음이 그의 분노를 대변했다. 쾌비수가 다가서자 주위에 몰려 서 있던 중원의 무인들이 한 발 물러서 길을 열어주었다.
 쾌비수의 성격이 열화(烈火)와 같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었다. 구파일방의 장로들과 제자들이 물러서는 것은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하다고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익!”
 쾌비수는 어부의 멱살을 쥐고 들어올렸다. 가뜩이나 키가 큰 쾌비수의 손에 목이 잡힌 어부는 허공에 매달린 조롱박처럼 대롱거렸다.
 어부의 얼굴에 파란 실선이 생기는가 싶더니 곧 썩은 돼지의 간처럼 거무죽죽하게 변했다. 숨이 막히는지 하체를 심하게 버둥거렸다.
 “켁! 켁! 켁!”
 어부는 극도로 숨이 막혔는지 순식간에 얼굴이 붉게 변하며 심줄이 툭툭 불거져 올랐다. 호흡이 버거웠는지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이마에 흐르는 땀이 우박(雨雹)처럼 굵었다. 혀는 입 속으로 말려들었는지 우물거렸다.
 두 손은 허우적거리다가 겨우 힘이 모아졌는지 자신의 목줄기를 잡은 쾌비수의 팔목을 잡았다. 그러나 기를 써도 쾌비수의 손을 풀 수는 없을 것 같아 보였다.
 “켁! 켁! 제발.”
 닭이 고통스러운 재채기를 할 때 나는 소리가 어부의 목구멍을 통해 쏟아졌다. 밭은 신음이 섞인 소리였다. 폐(肺)가 갈라지는 듯 거칠어진 숨소리가 어부를 더욱 고통스럽게 하는 것 같았다.
 구파일방의 제자들은 싱글거리는 웃음을 흘리며 쾌비수와 어부를 바라보았다. 개중에 한두 명만이 얼굴을 찡그렸을 뿐, 당연하다는 표정들이었다.
 무학에 대한 자부심이 넘치는 구파일방의 제자들에게 천축의 어부쯤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 미물(微物) 같아 보였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익!”
 콰-- 다당!
 쾌비수는 어부를 집어던졌다. 어부는 이 장여를 날아가 땅바닥에 널브러졌다. 개구리처럼 널브러져 한참을 버둥거리던 어부는 어렵게 자리에 주저앉았다.
 연신 거친 숨을 불어내느라 씩씩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가슴의 기복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제······ 제발!”
 목이 풀어진 어부가 통사정을 했다. 얼굴은 사색이 되었고 온몸은 학질이라도 걸린 듯 심하게 버둥거리고 있어 보는 이로 하여 측은지심(惻隱之心)을 느끼게 했다.
 처참함이 오죽했는지 소림의 금강동인들과 불가(佛家)에 적을 둔 아미파(蛾眉派)의 제자들이 얼굴을 돌리고 가볍게 불호를 외웠다.
 물론 쾌비수는 조금도 신경쓰지 않았다.
 “이 놈아, 네놈이 분명히 불회귀도로 가는 방법을 안다고 하지 않았느냔 말이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이런 망할 놈! 불회귀도라고 했다.”
 “물론 알지요.”
 다시 한 번 쾌비수가 솥뚜껑만한 손을 머리 위로 치켜들자 어부는 바닥을 구르며 죽는 소리를 토했다.
 손을 쓰지 않았음에도 어부는 충분히 주눅들어 있었고 어쩌면 이들의 손에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드리워져 있는 상태였다.
 바닥을 개처럼 뒹굴던 어부가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이마에 툭툭 불거졌던 핏줄이 제법 많이 가라앉아 있었으나 땀은 멈추지를 않았다. 온몸에 묻은 흙이 어부를 볼썽사나운 모습으로 만들었다. 쾌비수는 어부의 지저분한 모습에는 관심도 없었다.
 “그런데 왜 갈 수 없다는 거냐?”
 “가면 죽습니다요.”
 “죽어?”
 “저는 아직 젊습니다요. 아직 죽을 때가 되지 않았어요. 한 번만 봐 주세요.”
 어부는 두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었다. 어부는 오랫동안 중원인들을 상대했는지 중원 말을 능수능란하게 구사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쾌비수는 무심하게 어부를 다루었다.
 어부는 누가 보아도 처절하리만치 불쌍해 보였다. 어부가 걸친 의복은 마포(麻布)로 만든 의복이었는데 이미 붉은 흙으로 범벅이 되어 황색으로 보였다.
 더욱 가관인 것은 얼마나 고통스럽고 중원인들의 무위에 질렸는지 배설(排泄)을 해 맡기조차 거북한 냄새가 풍기고 하의(下衣)에도 흔적이 만들어졌다.
 “이 놈아! 그럼 왜 불회귀도를 안다 하였느냐?”
 “안다고 했지, 간다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쌍!”
 휘익-- 퍽!
 허공을 가르는 손의 그림자가 보이고 가죽북이 터지는 듯한 격타음이 들렸다. 비명이 울리기도 전에 어부의 몸이 삼 장을 날아가 널브러졌다.
 어부의 입에서는 붉은 핏줄기가 흘러나왔다. 성질이 급한 쾌비수로서는 말보다 주먹이 먼저 나가는 것이 당연한지도 몰랐다. 어부는 그가 휘두른 단 한 번의 권풍(拳風)에 갈비뼈가 부러지며 날아가 버렸다.
 “크아아악! 어이구, 사람 살려요.”
 어부는 자지러지는 신음을 뿌리고 남아 있는 온몸의 힘을 모아 소리를 질렀다.
 무공을 모르는 어부의 몸으로 쾌비수의 육장(肉掌)을 견디기는 어려웠다. 다행스러운 것은 쾌비수가 내공을 운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만약 쾌비수가 분노를 참지 못해 내공을 실은 장권(掌拳)을 날렸다면 어부로서는 간단히 이승을 하직했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우아! 사람 죽인다.”
 너무나 소란스러웠기 때문인지 여기저기서 머뭇거리던 천축인들이 다가왔다. 중천축국의 소유인 마다가리 항구에 중원인들이 빈번하다 해도 사람을 죽이는 일은 흔하지 않았다.
 마다가리 항을 들락거리는 중원인들은 대개가 상인들이거나 명나라의 사신(使臣)들이었기에 거친 욕설이나 주먹을 휘두를 일이 거의 없었다.
 설사 일어나는 사소한 싸움은 중천축국의 역관숙을 관리하는 관리들이 나와 해결해 주었고 문제가 생겨도 변상(辨償)을 해 주었기 때문에 큰싸움이 일어나거나 사람을 죽일 정도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중원인들이 사람을 죽인다.”
 “큰일났다. 어서 역관숙에 알려라.”
 천축인들이 바삐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아우성소리는 점차 높아갔고 모여드는 사람의 숫자도 많아졌다. 개중에는 호신용(護身用)으로 차고 다니는 패도(佩刀)를 만지작거리는 자들도 있었다.
 ‘이것, 별로 유쾌하지 않은데.’
 사마장용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 심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무언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몰려든 천축인들은 하나같이 적의(敵意)를 드러내고 그들을 에워싼 모습이었다. 물론 그들이 무공은 지니고 있지 못하다고 하더라도 명나라와 천축의 문제가 될 소지는 충분했다.
 사마장용은 옆에 서 있는 현숙자를 쿡 하고 찔렀다.
 “왜?”
 “이거 심상치가 않은 것 같습니다. 만약 이러다가 천축의 고수들과 맞닥뜨리기라도 한다면 적지 않은 피해가 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아우 말이 맞는 것 같네.”
 현숙자는 고개를 끄덕여 수긍하고 쾌비수에게 다가갔다. 그러더니 귓속말을 했다. 구파일방의 무인들은 둘이 무엇하는 것이냐는 표정으로 두리번거렸다.
 귓속말이 끝나자 쾌비수는 빙그레 웃었다.
 쾌비수는 찡그렸던 인상을 풀고 어부에게 다가갔다. 손을 펼쳐 어부의 등짝에 반쯤 풀어헤쳐진 옷을 집더니 성큼성큼 자신들의 배가 있는 곳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어부는 쾌비수의 손에 등어리 부분이 대롱대롱 매달린 채 끌려가기 시작했다. 이미 기절했는지 축 늘어져 있었고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놈들이 마하타마(麻荷陀磨)를 끌고 간다.”
 “막아라! 중원 놈들이 천축에 들어와 사람을 패고 개처럼 질질 끌고 간다.”
 천축인들이 아우성을 쳤지만 쾌비수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천축인들은 목이 터져라 외쳤지만 누구 하나 나서서 중원인들을 막지는 않았다.
 어부가 불쌍하기는 하지만 목숨을 걸고 막을 수 있는 뱃심을 가진 자는 없었다. 쾌비수와 구파일방의 고수들을 막아선 자들은 한결같이 어부들이거나 평범한 범인들이었기 때문에 막는다는 것은 엄두도 낼 수 없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오로지 아우성을 터뜨리는 방법뿐이었다.
 “이 놈! 게 섯거라!”
 젊은 천축인 하나가 다가와 욕설을 퍼부으며 손을 흔들어대었다. 개중에 그래도 제법 용기가 있는 자였던 모양이었다. 새카맣게 탄 얼굴에 살결이 거친 것으로 보아 어부를 아는 동료 어부쯤으로 보였다.
 곤륜의 무인들이 다가갔다. 그러나 어부는 조금도 길을 비켜줄 생각이 없는 듯 보였다.
 퍽!
 “어이구! 죽겠네.”
 어부가 땅바닥으로 데구르르 굴렀다.
 곤륜의 제자 하나가 길을 막아서는 천축의 어부를 향해 육합권(六合拳)을 내질렀다. 육합권은 무인들에게는 시시한 권법이었다. 무공을 익히는 중원의 무인들에게는 기초에 불과한 권법이었지만 무공을 모르는 어부가 막기에는 너무나 무서운 권법이었다.
 핏!
 손을 거두어들인 곤륜의 제자는 입가에 실소를 터뜨리며 쾌비수를 따라 걸어갔다.
 
 
 2장 욕망(慾望)의 전조(前兆)
 
 
 1
 
 
 역관숙의 한 곳.
 파초가 창살을 가리고 있는 역관숙의 방에서 두 사람이 마주앉아 있었다. 상석에 앉은 자는 배가 불룩한 자로 얼굴에 개기름이 흘렀다. 어딘지 모르게 위엄이 흘러 마냥 허망한 자는 아닌 듯싶었다.
 상석에 앉은 자는 둥근 얼굴에 좋아 보이는 인상을 지닌 초로인(初老人)이었다. 몸에는 명나라의 장군복장(將軍服裝)을 걸치고 있었다.
 비록 몸에 걸친 복장은 무복(武服)이었지만 어디를 보아도 거칠거나 강해 보이지 않는 모습이었다.
 두 사람이 앉아 있는 역관숙의 방은 황제의 명으로 무역을 온 황실의 배에서 가장 높은 자가 머무르는 방이었다. 상등실(上等室)이라 불리는 방은 다른 여타의 방보다 모든 것이 고급스럽게 꾸며져 있었다.
 “하하하, 그러니까 네 말은 영영 여기에서 살아도 여한이 없다는 말이렷다.”
 장군 복장의 초로인은 탁자를 두드리며 호탕하게 웃었다. 초로인은 황제의 사신(使臣)으로 천축에 온 자였다. 장군은 첨도장군(尖刀將軍)이라 불리는 예운경(芮雲庚)이었다.
 그는 겉으로 보기에는 유려(流麗)하고 마음이 좋아 보였으나 들리는 소문은 매우 달랐다.
 장군은 한때 국경수비대(國境守備隊)에서 오랫동안 변방을 방어했던 사람이었다. 장성(長城) 부근의 이민족(移民族)과 소수민족(少數民族)들에게는 악마처럼 무서운 무장이었다는 소문을 지니고 있기도 했다.
 청년무장(靑年武將) 시절, 이십 명의 관병들을 이끌고 청해지방(靑海地方)에서 이백 명이 넘는 변방의 수이족(水夷族)을 막았다는 이야기는 이미 모든 관병들에게는 전설(傳說) 같은 이야기로 전해지고 있었다.
 첨도장군 예운경 하면 명나라의 관병들에게는 이미 신적인 존재가 된 지 오래였다. 그가 왜 쉽게 변방의 국경수비대를 떠났는지는 모를 일이었다. 다만 황제가 곁에 두고 싶어 불렀기 때문에 경도(京道)로 돌아왔다고는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미심쩍은 구석이 있는 것만은 확실했다.
 “장군, 위험하지 않을까요?”
 “물론, 위험하고 말고.”
 전신에 무복을 입고 팔각요대(八角腰帶)를 두른 예운경이 입을 열었다. 앞에 앉아 있던 중년인이 어깨를 흠칫했다. 두려워서 그런 것이 아니고 습관이었다.
 중년인은 예운경에는 훨씬 미치지 못하는 지위를 가진 것으로 보였다.
 걸치고 있는 의복이 그랬고 허리에 걸고 있는 병기 또한 황제가 하사한 장군도(將軍刀)가 아닐 뿐만 아니라 무관들이 걸치는 지휘도(指揮刀)도 되지 못한다는 사실이 그것을 증명했다. 십인장(十人將)의 격에 어울릴 것 같은 사내였다.
 “위험하다고요?”
 “물론이다. 그러나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문제는 설역관을 어떻게 설득하느냐가 문제 아니겠나.”
 “그렇군요. 그런데 설역관이 말을 들어줄까요. 글이나 읽는다는 역관 놈들은 말을 잘 듣지 않아서 말이지요.”
 “걱정하지 말아라. 이미 내게 그럴 듯한 계책(計策)이 세워져 있느니라.”
 “그러실 테지만요!”
 중년인은 예운경의 말에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그들은 죽이 척척 맞아떨어지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미 그들은 오래도록 살을 맞대고 살아왔고 수족(手足)같이 부리는 부하와 하늘 같은 상전(上典)이었기 때문이다.
 “최만호(崔萬浩)!”
 “예, 장군!”
 “우리는 바다로 나간 뒤, 항로를 변경해 불회귀도로 간다. 곧 출발준비를 알리고 한 시진 후에 출발한다.”
 “알겠습니다.”
 최만호라 불린 중년인이 싱긋이 웃었다. 최만호는 장군의 심복(心腹)이랄 수 있는 관병으로 자신의 말로는 십 년이 넘도록 장군을 모셨다고 했다.
 장군은 원래부터 수군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국경수비대의 홍군(紅軍)을 지휘하던 자였으나 황제의 총애를 받아 황궁으로 들어온 자로 천축으로는 처음 출항한 자였다.
 처음으로 황제의 사신으로 천축으로 향했지만 그런데로 자신의 임무를 잘 소화하는 능력을 보였다. 그를 믿고 따르는 병사들이 있어서였다.
 장군은 부하들에게 존경을 받으며 거드름만 없다면 인간성(人間性)까지 뛰어날 자였다.
 최만호는 국경수비대 시절부터 장군을 따른 자로 일설에는 장군의 가솔(家率)이라는 소문도 있었다. 항상 장군의 곁에 자리하는 자도 바로 그였다.
 “그만 나가보도록 해라. 단, 어떤 일이 있어도 설역관에게는 우리가 항로를 변경한다는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된다.”
 “물론입니다.”
 “좋다! 나가보도록 해라.”
 “존명!”
 최만호는 자신의 가슴을 주먹으로 두드려 예(禮)를 취하고 가볍게 허리를 숙인 후 파초잎을 손으로 밀며 밖으로 사라졌다. 어디선가 서늘한 바람이 밀려들어왔다.
 최만호가 사라진 지 반각이 지났다. 예운경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갑작스럽게 주위를 둘러보는 그의 얼굴에는 강한 경계심과 아울러 느물거리는 웃음이 번져나왔다.
 “흐흐흐, 오랫도록 기다렸다. 계획대로만 된다면 나는 황제가 부럽지 않게 될 거다.”
 예운경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불룩하니 나온 아랫배가 전형적인 황관대인(皇官大人)의 모습이었다.
 예운경이 장군의 직을 물러나 황궁에 머문 지 이 년만에 바로 지금의 배불뚝이 모습으로 변했다.
 “후후후, 누구도 접근하지 않으렷다.”
 예운경은 다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디에도 인기척은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았다. 그래도 미심쩍었는지 예운경은 파초잎을 밀며 창밖을 보기도 했고 문가로 다가가 보기도 했다.
 한참 동안 움직임없이 문 밖에 들리는 인기척을 확인하기 위해 귀를 기울이기도 했다.
 “흐흐흐, 아무도 없구나.”
 예운경은 창가를 돌아 침상 머리로 다가갔다.
 침상은 화려했다.
 역관숙의 방에도 차등(差等)이 있었다. 예운경이 머무는 거처는 최고의 상등실(上等室)이었다. 침상은 보기 드문 열대관음죽으로 만든 배근(背筋)을 사용했고 상아로 만들어진 모서리가 빛을 발했다.
 침상에 깔린 금침은 서역산 명주로 만든 것이었고 아름답게 수가 놓아져 있었다.
 침상에서는 여인의 냄새가 났다. 지난밤 예운경은 중천축국의 역관사(驛館使)가 베푸는 연회에 참석했다. 역관사는 하루만 지나면 길을 떠나 다시 중원으로 돌아가는 사신 일행을 위해 성대한 연회를 베풀었다.
 예운경에게는 막대한 보물이 주어졌고 연회가 파했을 때에는 춤을 추던 미희 중 한 명이 침상까지 따라왔다. 밤시중을 들기 위한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었다.
 불쾌한 점도 있었다.
 예운경이 점찍은 계집이 한사코 설역관을 따라가겠노라고 앙탈을 부렸던 것이다. 지위는 자신이 높았으나 마음에 드는 계집을 하찮은 역관에게 빼앗기고 보니 영 기분이 찜찜했었다.
 다행스럽게도 자신을 따라온 계집은 밤기술이 매우 뛰어났다. 지난밤에 따라왔던 열여덟 살밖에 되지 않았다는 천축계집은 예운경을 몇 번이나 까무러치게 만들었다.
 그것으로 만족했다. 예운경은 나름대로 지조가 있고 절도가 있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했기에 그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여인의 냄새는 어젯밤 자신의 침상에서 뒹굴던 계집의 냄새였다. 머리에서 진한 유채의 냄새가 났던 계집은 침상에 진한 암놈의 냄새를 뿌려놓았다.
 “훗, 좋은 계집이었다.”
 예운경은 침상에 떨어진 긴 머리카락을 한 올 주워올려 냄새를 킁킁거리며 웃었다.
 그것도 잠시, 그는 침상 밑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상체를 반쯤 숙인 손가락에 둔탁하게 느껴지는 물건이 걸려들었다. 예운경은 서둘러 침상 밑에 있는 물건을 잡아당겨 침상 위로 끌어올렸다.
 “끙! 제법 무게가 나가는군.”
 손에 걸린 물건이 무거웠는지 예운경은 쉽게 들어올릴 수가 없었다. 이마에 잔 땀방울이 솟았다.
 작지 않은 물건이었다. 가로세로가 각각 한 자(尺) 정도 되어보이는 옥함(玉函)이었다. 뚜껑에 상아를 붙여 만든 코끼리의 모습이 선명했다.
 “후후후, 평생을 모아도 얻지 못할 것을 단 한 번에 얻을 수가 있다니!”
 예운경은 주저하지 않고 옥함의 뚜껑을 열었다. 지난밤, 천축의 역관사가 준 물건이었다. 눈을 감았다 뜬 예운경의 눈에 옥함속에 들어 있는 모든 것이 낱낱이 들어왔다.
 상자 속에 든 온갖 진기한 보물이 눈에 들어왔다. 상자를 가득 채운 채 나름대로 빛을 발하고 있는 보석들의 모습이 알알이 맺힌 이슬 같았다. 천장에도, 벽에도 빛은 없었으나 오색영롱(五色玲瓏)한 빛이 사방으로 쏟아져 나왔다.
 와락--!
 예운경은 옥함 속에 들어 있는 보물들을 거칠게 움켜쥐었다. 구슬로 만든 목걸이며 상아로 만든 소품(小品)들이 손에 잡혔다. 무엇보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사람의 눈보다 커 보이는 짙푸른 보석이었다.
 중원인들이 묘안석(猫眼石)이라 부르는 보석은 중원에서 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비싼 값으로 매매되는 귀한 돌이었다. 중원에서 귀하게 취급되며 매매되는 묘안석은 천축이나 서역을 통해 흘러드는 것이었다.
 “안 돼. 더 이상 보다가는 내 심장이 멎어 버릴 것 같아.”
 턱--!
 예운경은 서둘러 옥함의 뚜껑을 덮었다. 누가 볼세라 두려운 표정이 얼굴에 떠올랐다.
 “후후후, 이건 아무것도 아니다. 이것보다 수천 배의 보물이 있다고 알려진 불회귀도에만 갈 수 있다면 내 인생 모두를 걸어도 좋아. 더구나 계집들만 산다고 알려졌으니 갈 수만 있다면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환락(歡樂)과 부귀영화(富貴榮華)를 누리게 될 것이다.”
 예운경은 서둘러 몸을 돌렸다. 기름진 예운경의 볼에 땀이 흐르고 있었다.
 눈에서는 탐욕(貪慾)이 이글거리는 안광이 줄기줄기 뻗어나오고 있었다.
 축 늘어진 턱이 접혀지며 땀이 흘렀다. 평상시 그가 보여주던 공명정대(公明正大)하고 패기만만(覇氣滿滿)한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
 
 휙!
 하나의 그림자가 창문에서 뛰어내렸다. 그림자가 뛰어내린 창문은 조금 전 예운경 장군이 보석을 만지며 기뻐서 어쩔 줄 모르던 방에 나 있는 창이었다.
 창문에서 뛰어내린 인영은 한동안 창문을 쳐다보았다.
 “하늘이 돕는구나. 어서 알려야겠다.”
 휙!
 그림자는 바삐 사라졌다.
 
 
 2
 
 
 예몽호(乂夢號).
 중원 구파일방의 팔십여 명 무인들이 타고 온 배는 마다가리 항구의 외항(外港)에 묶여 있었다. 너무나 우람한 배였고 높은 파도에도 흔들리지 않게 만든 배라 용골이 깊었다.
 그러나 배 밑창이 망가져 물 속으로 깊게 가라앉은 상태였기에 내항(內港)으로는 들어올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망가진 부분은 완전히 수리가 끝나 있었다.
 마다가리 항에 도착한 지 이미 보름이 지나 있었기에 돛과 닻은 내려져 있었고 몇몇 무인만이 갑판에 올라 남국(南國)의 바닷바람을 즐기는 중이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그랬다.
 겉으로 보기와는 다르게 그들은 삼엄한 경계를 서는 중이었다. 천축의 어부를 끌고 들어온 지 하루가 꼬박 지났고 예몽호 주위로 나타나는 천축무인들의 모습이 점차 많아지는 모습이 그들을 불안 속으로 몰고 갔다.
 구파일방의 명숙들은 숙의(熟議) 끝에 만전을 기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우선 배에 먹을 것과 마실 수 있는 음료를 가득 싣고 언제든지 출항(出港)할 준비를 마쳤다.
 기회만 된다면 언제든지 출발할 수 있었다.
 
 ***
 
 파지지지지--!
 선실에서는 뜨거운 열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어두컴컴하기는 했으나 벽에 걸린 궁등(宮燈)이 빛을 발하고 있어 사람의 얼굴을 식별하기에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더구나 선실의 중앙에 타오르는 향로는 바람이 없음에도 불길이 솟구치거나 수그러들기를 반복했다.
 향로에서 불길이 솟구치거나 수그러들 때마다 둘러선 사람들의 얼굴을 적갈색으로 물들이기도 했고 환하게 밝히기도 했다. 모두들 약간 긴장한 모습들이었다.
 설사 궁등이 아니라 하더라도 고강한 내공을 지닌 그들에게 어둠은 하등의 방해가 되지 못했다.
 “자, 어떻게 하면 좋겠소이까?”
 “무얼 말이오. 원래 계획대로 어부를 길잡이 삼아 바다로 나가면 되지 않겠소?”
 “하지만 놈이 계속 거부하고 있으니 모든 것이 허사가 될 수도 있는 일이 아니겠소. 놈이 말하는 것처럼 죽음이 두려워 진로를 조금만 이탈한다면 우리는 영영 불회귀도를 찾을 수 없을 거외다.”
 “휴!”
 머리를 맞댄 십 인은 뛰어난 내공을 지닌 무림의 명숙들이었다. 그들은 칠흑같이 어두운 암야(暗夜)에서도 능히 사물을 구별할 수 있는 안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들의 중앙, 한 장의 지도가 펼쳐져 있어 모두의 시선을 모았다. 양피지(羊皮紙)로 만든 듯 보이는 지도는 비록 투박하기는 했으나 명나라에서 만든 군사용(軍士用) 해로임에는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右)로 크게 돌아 맹골군도(孟骨群島)로 나아가야 하겠구려.”
 “물론이오. 역관사들이 말하기를 천중구객이 맹골군도로 가기위해 그와 같은 방법을 취했다고 하니 우리도 그와 같이 가야 할 것이오.”
 무일자가 손끝으로 지도에 반원(半圓)을 그렸다. 그의 손끝이 마다가리 항구에서 출발해 중원에서 삼천 리나 떨어진 해상(海上)까지 길게 이어졌다.
 모두들 고개를 끄덕거렸다.
 무려 한 시진에 가까운 회합 끝에 그들은 결론을 내리는 중이었다.
 각지에서 조사한 모든 것과, 천축에서 사람들에게 들은 천중구객에 관한 이야기를 총합하여 결국 자신들이 가야 할 길을 선택했던 것이다.
 “장로님들! 화산의 도영자(都英子)입니다.”
 다급한 발자국 소리가 들리더니 갑자기 밖이 소란스러워졌다.갑자기 밖에서 들려온 소리에 모두들 고개를 들었다.
 구파일방의 장로들 모두는 도영자의 소식을 기다리던 중이었다. 각지로 보낸 모든 제자들이 모두 하루 전에 돌아왔지만 도영자만이 돌아오지 않았다.
 모두들 걱정스러웠고 특히나 무일자는 제자를 잃은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을 느끼고 있는 상태였다. 다행히 도영자가 나타난 것이다.
 “어서 들라.”
 무일자가 말을 마치기가 바쁘게 젊은 도인 하나가 들어섰다. 전신에 걸친 청색도복(靑色道服)과 적색 수실을 단 장검을 등에 멘 것으로 보아 화산의 오대제자가 분명했다.
 도영자는 가볍게 손을 모아 예의를 취했다. 무일자를 비롯한 장로들이 예의를 받는 둥 마는 둥 낯빛을 변화시켰다. 늦은 것에 대한 질책(叱責)이 떨어질 상황이었다.
 “왜 이리 늦었느냐?”
 무일자가 핀잔을 터뜨렸다. 도영자는 무일자의 핀잔을 무시하고 자신이 할 말을 먼저 내뱉았다.
 “사숙, 곤룡호가 불회귀도를 향해 곧 출발합니다.”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야단을 치려던 무일자의 목소리가 목 안으로 들어가고 전혀 생각과는 다른 물음이 터져나왔다. 깊은 생각에 잠겨 있던 구파일방의 장로들 시선이 모아졌다.
 장로들의 시선이 모아진 것으로 보아 도영자의 과감한 보고는 성공한 것이라 할 수 있었다. 그를 질책하려던 무일자까지도 생각이 바뀌었다.
 구파일방의 장로를 포함한 무인들 모두는 마다가리 항구에 곤룡호가 정박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곤룡호가 황궁의 사신들을 실어 나른다는 것과 예운경 장군이 배를 지휘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는 상태라 그리 놀랄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것이 무슨 소리냐?”
 “놀라운 일입니다. 예운경 장군이 불회귀도로 가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무엇이!”
 “그가? 그는 사심(邪心)이 없는 자일 텐데.”
 도영자의 느닷없는 말에 장로들이 놀람의 음성을 뿌렸다. 전혀 상상도 하지 못한 말이었던 탓이다. 무엇보다 황궁의 배가 불회귀도로 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장로들은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것도 잠시뿐, 모두들 시선을 도영자에게로 향했다. 무일자는 수양(修養)이 깊은 도인이었으나 참지 못하고 물었다.
 “누구에게 들었느냐?”
 “우연입니다. 역관을 지나다 예운경 장군의 숙소를 지나게 되었습니다. 창문 틈으로 그가 얼핏 보였는데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으로 정신없이 주위를 둘러보기에 천이통(千耳通)을 전개해 알아낼 수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사실인가?”
 “사실입니다. 예운경 장군은 곧 출발하기 위해 모든 역관과 군사들을 배에 태우고 있습니다. 불과 반시진이 지나지 않아 출발할 것 같습니다.”
 도영자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화산의 제자들 중에서도 나이가 가장 어린 도영자였다. 무엇보다 자신이 가져온 소식에 흥분하는 장로들을 보며 마음이 흡족했다. 누구보다도 귀중한 일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도영자는 다시 말을 하려고 입을 오므렸다. 그러나 더 이상 말을 이어갈 수가 없었다. 그보다는 장로들의 말과 행동이 빨랐기 때문이다.
 “나가봅시다.”
 “그럽시다. 그들이 출발한다면 우리도 머뭇거릴 시간이 없지 않겠소.”
 우루루루--!
 구파일방의 장로들은 허겁지겁 밖으로 몸을 옮겼다. 비좁은 통로였지만 그들이 움직이는 데는 하등의 문제가 되지 않는 듯싶었다. 아니 그들의 몸은 물찬 제비처럼 날쌔 도영자가 얼굴을 돌렸을 때는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구파일방의 장로들이 사라지고 난 뒤, 혼자 남은 도영자는 고개를 갸웃했다.
 “내가 너무 귀한 소식을 가져온 걸까?”
 
 
 3
 
 
 파라라락--!
 돛이 바람을 받아 찢어질 듯 나부꼈다.
 한 척의 배가 유유히 마다가리 항구를 벗어나 푸른 바다로 나아가고 있었다. 멀리 수평선 끝에는 뭉게구름이 한껏 자태를 뽐내는 듯했고 가벼운 미풍(微風)은 마삼(麻蔘)을 꼬아 만든 황포(黃布) 돛을 극도로 팽창시켰다.
 끼루룩! 끼루루룩!
 갈매기가 울었다. 마치 출항하는 배를 배웅하듯 돛대 주위를 맴도는 갈매기는 목이 터져라 울음을 터뜨렸다. 갈매기는 한 쌍 이었다.
 촤! 촤! 촤!
 배는 기분좋게 물살을 가르며 힘차게 전진했다. 멍이라도 들었던 듯 시퍼렇게 보이던 바닷물이 흰포말을 일으키며 좌우로 갈라졌다. 마치 바닷물이 배를 미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바람도 좋았고 날씨도 순조로웠다.
 배의 고물 쪽에서는 몇 마리의 갈매기가 끼룩거렸고 손에 잡으면 잡힐 듯 다가서는 구름덩어리가 배의 갑판으로 서서히 스치고 있을 뿐이었다.
 명나라를 출발해 천축에서 일을 마친 곤룡호는 다시 명의 황제를 배알(拜謁)하기 위한 많은 보물을 가득 싣고 한여름을 뚫고 서서히 북상을 시작했다.
 
 ***
 
 갑작스러운 일에 구파일방의 장로들은 적잖이 놀랐다. 허공을 솟구친 삼십여 명의 천축인들은 미친 듯이 검을 휘둘러 중원무인들을 베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차차창!
 캉!
 “선실(船室)로 난입하지 못하도록 막아라.”
 너무도 급작스러운 일이었기에 중원무인들은 미처 경종(警鐘)도 올리지 못한 것 같았다.
 만약 도영자가 선실에 뛰어들어와 곤룡호가 떠난다는 말을 하지 않았던들, 설사 그렇다 치더라도 확인하고자 갑판으로 나오지 않았다면 예몽호는 그야말로 피로 점철(點綴)되었을 것이 틀림없었다.
 츠츠츠츠--!
 질식할 것 같은 도기(刀氣)가 갑판을 쓸었다.
 “크아악! 피해라.”
 갑판에서 망을 보던 십여 명의 중원무림인들이 난도질되어 퉁겨나갔다. 허공에 피가 솟구치며 굵은 피보라를 일으켰다. 진한 피비린내가 바람결에 흩어졌다.
 잠시간 멍청하게 보고 있던 구파일방의 장로들이 기쾌하게 몸을 솟구쳐 천축무인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멈추어라. 무슨 일이기에 난동(亂動)을 부리느냐?”
 차차창!
 예몽호의 갑판에서는 너무도 급한 사태가 벌어지고 있었다. 한떼의 천축무인들이 다짜고짜 중원의 무인들을 향해 살초를 뿌려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사마장용은 몸을 솟구치며 검을 뽑았다. 금강동인들 앞으로 쏘아가는 털보 장한의 손에 들린 만도(灣刀)를 검으로 퉁기며 외쳤다.
 “멈추어라.”
 퍼퍼펑!
 강기의 충돌음과 고함소리는 비단 사마장용의 입과 손에서만 울린 것은 아니었다. 사방에서 한바탕의 소란스러움이 울리고 천축무인들과 중원무인들은 두 패로 갈라져 대치했다.
 이미 갑판에는 수 명의 중원무림 제자들이 목이 잘리거나 의식불명(意識不明)인 상태로 뒹굴고 있었다. 붉은 피가 흘러 갑판을 붉게 물들였다. 판자에 스며들어 붉다 못해 검은 빛을 띠는 갑판도 눈에 들어왔다.
 “누가 감히 소란을 피우는 거냐?”
 곤륜의 쾌비수가 앞으로 한 발 내디디며 호통을 질렀다. 어느새 그의 손에는 팔십 근짜리 언월도(彦月刀)가 번뜩이고 있었다. 쾌비수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리기나 했듯 천축무인들 중 한 명이 앞으로 나섰다.
 손에 둥근 방패(干) 같은 병기를 든 무인이었다. 특이하게도 머리가 마구 볶아놓은 듯 보이는 무인이었다. 한눈에도 천력(天力)을 지닌 듯 기골(氣骨)이 장대했다.
 “중원의 무인 놈들! 왜 우리 천축에서 소란을 피우느냐?”
 “소란이라고? 누가 소란을 피웠다는 거냐?”
 쾌비수는 호갈을 내질렀다. 그의 목소리에는 가당치도 않다는 듯한 노여움과 은은한 분노가 물들어 있는 것이 역력했다.
 분노로 인해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을 굳이 감추려 하지도 않았다. 이미 피로 물들어 갑판에 쓰러진 수 명의 무인들 중에는 곤륜의 제자가 제일 많았다. 그러한 사실이 쾌비수를 더욱 분노하게 만들었다.
 “네놈들은 이곳이 중원인 줄 아느냐? 감히 소란을 피우고 사람을 납치하다니······.”
 “사람을 납치하다니······ 무슨 돼먹지 않은 트집이냐?”
 “어부를 납치하고도 발뺌을 하다니, 이곳이 네놈들이 설치는 중원인 줄 아냐?”
 그제서야 쾌비수는 천축인들이 분노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서너 시진 전, 어부를 구타하고 납치한 사실을 눈치챈 것 같았다. 쾌비수는 아차 싶었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요 쏘아진 살이었다.
 쾌비수는 다시 한 발 앞으로 나섰다.
 “우리는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 확인하지도 않고 감히 사람을 죽이다니, 용서할 수 없다.”
 “저런, 뻔뻔스러운 놈!”
 “죽여 버려라.”
 쾌비수의 말은 결국 불을 지르는 결정적 이유로 충분했다. 분노의 음성을 뿌린 천축의 무인들이 다시 허공으로 솟구쳤고 중원무인들도 지체하지 않고 몸을 퉁겨올렸다.
 파아아아--!
 카드드등!
 파징!
 “피, 피하라. 크아악!”
 허공에서 한소리 파공성이 들리고 붉은 핏방울이 갑판으로 후두둑 소리를 내며 쏟아졌다.
 사마장용의 빛살 같은 빠름이 모든 것을 앞질렀다. 허공에 빛이 산산이 쪼개지는 변화가 일고 만도를 잡은 천축인의 손이 어깨에서부터 싹뚝 잘려 떨어졌다.
 “크아아악!”
 천축인 하나가 비명을 토하며 바닷물로 퉁겨졌다. 천축인이 빠진 바닷물은 곧 검붉게 변해 버렸다. 물 속으로 추락한 천축인은 다시는 솟아오르지 않았다.
 개방( 幇)의 장로 용존개(龍尊 )는 급히 타구봉(打狗棒)을 휘둘러 날아드는 천축인의 만도를 퉁겼다. 그를 공격한 천축의 무인은 얼굴이 칠흑처럼 검은 자로 제법 위력이 있는 도법을 구사했다.
 쾅!
 타구봉과 만도가 허공에서 부딪쳤다.
 찌르르르--!
 용존개는 어깨에 이는 충격에 몸을 흠칫하고 움츠렸다. 근육이 놀라고 뼈가 충격을 받았는지 어깨가 시려웠다. 하마터면 타구봉을 놓칠 뻔했다.
 “어랏! 감히 타구봉에 상처를 입히다니!”
 용존개는 비록 호통을 내질렀으나 심장이 가볍게 떨리는 것을 느꼈다. 삼만을 헤아리는 개방에서도 유일하게 칠결(七結)을 매는 자신의 무상권위(無常權威)에 도전할 만한 고수는 흔치 않았다.
 ‘무서운 내공이다.’
 용존개는 눈을 들어 자신의 앞에 버티고 선 사내를 바라보았다. 삼십대를 갓 넘겨 보이는 검은 피부를 지닌 천축무인은 흰 이빨을 드러내며 히죽하고 웃었다.
 “네놈은 누구냐?”
 용존개는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고 급히 물었다. 그러나 말을 마치자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상대가 누구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상대의 무공이 얼마나 강한가 하는 것이었다.
 “후후후,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닌 것 같은데.”
 천축무인의 말을 들으며 용존개는 처음부터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축무인들과는 싸우지 않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머리를 강하게 지배했다. 어부를 강제로 끌고 오지 않았다면 싸움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상황은 천축인들도 마찬가지였다. 무조건 살수를 전개하지 않았다면 역시 싸움은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용존개는 가슴이 무거워졌다.
 지금은 누구냐가 중요하지 않다. 누가 죽고 누가 살아남느냐의 문제였다.
 “후후후, 그깟 어부 하나를 트집잡아 감히 중원의 구파일방을 업신여기겠다는 말이더냐?”
 탕-- 탕--!
 용존개는 타구봉을 거칠게 흔들었다. 타구봉에 부딪친 갑판이 거칠게 울었다. 자단목(紫壇木)을 삶은 뒤 삼 년 동안 그늘에 말려 불에 달구어 만든 타구봉은 웬만한 강철보다도 단단했고 검을 퉁겨내는 반탄력을 지니고 있는 병기였다.
 “시끄럽다. 목을 내밀어라.”
 “이봐! 잠깐!”
 “말이 필요없다. 모가지를 도려주마.”
 “핫!”
 한순간, 천축무인의 몸이 떠올랐다. 이 장이나 솟구친 천축무인의 만도가 반원을 그리며 용존개의 목을 감아왔다. 희미한 그림자는 분명 만도에서 반사된 빛이었다.
 파라락!
 용존개는 급히 손으로 갑판을 짚으며 몸을 뒤집었다. 만도의 넓은 면이 눈앞을 스치며 지나갔다.
 스스슷--!
 엉클어진 머리카락 몇 올이 잘려 날아가는 것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아차 하는 순간이면 머리카락이 아니라 용존개의 목이 도려졌을 것이다.
 ‘빠르다. 그러나 나 용존개도 호락호락하지 않다.’
 용존개는 급히 타구봉을 횡으로 그었다.
 “광구견미(狂狗見尾), 규화타구(叫花打狗).”
 용존개는 입술을 깨물었다. 악을 쓰듯 마구 외치는 용존개의 입에서는 타구십팔초(打狗十八招)의 이초식의 이름이 울려나왔다. 용존개는 뒤집던 허리를 다시 펴며 타구봉을 연속으로 휘두르며 천축무인의 머리를 가격했다.
 퍼퍼퍽!
 허공의 공기에서 마찰이 일어나며 파공성이 울렸다. 과도하게 뿜어낸 진기가 공기를 갈랐다.
 “으헛!”
 갑작스럽게 변한 용존개의 신위에 천축의 무인은 급히 몸을 피했으나 미처 몸을 잡기 전이었다. 정신없이 피하던 용존개의 몸에서 반격이 나왔으니 공격하던 입장에서 피하기는 쉽지 않았다.
 등을 바닥에 누이며 철판교(鐵板橋)의 신법을 전개했으나 숨넘어가는 개를 후려패듯 휘두르는 타구봉은 절묘하게 천축인의 십대요혈(十大要穴)을 물고 늘어졌다.
 퍼퍼퍽!
 둔탁한 소리는 마치 호박이 담에서 굴러떨어지는 소리 같았다. 허공에 피화살이 솟구쳤다. 천축무인의 머리가 깨어지며 피가 허공으로 뿌려졌다.
 “이······ 이렇게 빠른 몽둥이라니······. 크아아악!”
 연속 세 번이나 타구봉에 가격당한 천축무인은 심하게 비틀거렸다. 이미 머리가 깨지고 뇌수(腦水)가 흘러나오는 천축무인은 이미 살아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다만 고강한 내공으로 겨우 서 있는 모습이 역력했다.
 천축무인의 입에서 한탄스런 음성이 뿜어져 나왔다.
 “크으으으! 이런 개 같은 경우가······.”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천축무인이 죽은 것은 분명했다.
 쿵!
 둔탁한 소리가 들리며 천축무인의 몸이 뒤로 넘어갔다. 머리에서 붉은 피가 분수처럼 솟아올랐다. 갑판이 순식간에 붉게 물들어 갔다.
 뇌수가 갑판으로 흩어졌다. 그것도 잠시, 분수처럼 솟구치는 핏줄기가 한동안 계속되었다. 백전노장(百戰老將)인 용존개였지만 사람의 몸에 피가 참으로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휴!”
 용존개는 긴박했던 한순간을 생각해 내고 안도(安堵)의 한숨을 불어냈다. 한순간만 방심했어도 갑판에 누워 있는 자가 자신이 될 수 있었다는 사실이 느껴졌다. 용존개는 자신도 모르게 손으로 목을 쓸었다.
 끈끈한 땀이 느껴졌다.
 “어, 곤룡호가 항구를 출발했다.”
 누군가의 입에서 다급한 신음성이 터졌다. 중원무인들은 무의식적으로 몸을 돌렸다. 멀리 바람을 맞으며 바다로 나가는 배가 보였다.
 뱃머리에 달린 용의 머리가 보이는 것으로 보아 틀림없이 곤룡호가 분명했다. 곤룡호의 속도는 제법 빨랐다.
 처음 배가 출발할 때 울리는 대고(大鼓)소리가 들렸을 때는 항구 입구의 수석(首石)을 지났는가 싶었는데 곤룡호는 순식간에 항구를 벗어나 빠른 속도로 망망대해(茫茫大海)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급하다.”
 “빨리 처리하고 뒤를 따르자.”
 중원의 무인들이 아우성을 터뜨렸다. 모두가 한결 같은 마음이었다.
 캉! 카드드드--!
 아직까지도 여기저기에서는 병장기의 충돌음이 울리고 피를 토하며 쓰러지는 자들이 보였다. 그중에는 중원의 무인들도 있었으나 천축의 무인들도 마냥 무사하지만은 않았다.
 ‘중원무인들도 피해가 심한 것 같다. 급하다.’
 사마장용은 입을 오므렸다.
 “삐이이익!”
 사마장용은 휘파람을 불었다. 마음이 급하기는 비단 그만이 아니었다. 구파일방의 장로들 모두 똑같은 생각이었다. 손발이 어지러워질 상황이었다.
 구파일방의 장로들은 미친 듯 병기를 휘두르며 다가서는 천축의 무인들을 사방에서 압박하기 시작했다.
 
 
 4
 
 
 푸슛--!
 갑자기 허공의 일각에서 날아드는 파공성이 뱃전을 울렸다.
 “크아악!”
 파공성이 끝나기도 전에 뱃전에서 펄쩍 뛰어오르더니 허리를 꺾으며 무너지는 자는 천축의 무인이었다. 천축의 무인은 목에 은빛으로 빛나는 한 자루의 강전(强箭)을 박고 있었다. 화살의 끝에 은빛의 깃털이 달린 작은 화살이었다.
 파르르--!
 화살은 쏘아진 탄력(彈力)을 이기지 못해 부르르 몸을 떨었다. 바닥에 널브러진 무인은 말린 오징어처럼 몸을 오그리는 듯 싶더니 축 늘어졌다.
 “커으으윽!”
 무너지는 천축무인의 목구멍에서 가래가 끓어대는 듯한 거친 소리가 들렸다. 얼핏 들으면 작은 구멍으로 물이 빠져드는 소리같기도 했다.
 “설산전궁시(雪山電弓矢)!”
 날아든 화살을 보고 비명을 토한 것은 곤륜의 장로 쾌비수였다. 곤륜은 청해(靑海) 깊숙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고 수십 년간 설산파(雪山派)와 적지 않은 혈투를 벌인 적이 있기에 설산전궁시를 알아보는 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중원에서 제법 멀리 떨어진 청해에서는 곤륜파가 유일하게 구파일방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사천과 이어지는 청해의 한곳에는 곤륜파가 있었고 곤륜은 근래 서장(西藏)과 사천(四川)으로 세력을 넓히는 중이었다. 청해에서 변방을 지나 북방으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설산을 지나야 했다.
 설산과 천산은 중원의 지붕과 같이 대륙의 끝을 덮고 있었고 두 개의 산을 지나면 중원인들이 이역(異域)이라 부르는 암흑의 땅이었다.
 근래 명나라 황실도 중원의 영토를 넓히기 위해 천산과 설산의 북쪽을 호시탐탐(虎視耽耽) 염탐하고 있었다.
 서장과 청해의 삼각지점에는 설산의 줄기가 있었고 수백 년 동안 그들은 서로의 영역을 넓히기 위해 피를 말리는 싸움을 해온 것 또한 이미 오래 전에 중원무인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더구나 설산파는 정사중간(正邪中間)의 방파(邦派)였다. 설산파는 주인이 바뀔 때마다 추구하는 이념이 달라졌다. 그랬기 때문인지 중원무인들은 설산파를 정사중간으로 인식했다.
 당금의 설산파는 뚜렷하지는 않았으나 사도(邪道)를 추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설인(雪人)의 후예로 알려진 아극타는 성격이 괴팍하고 성격이 불 같은 자로 알려졌고, 곤륜파는 근래 아극타의 무위에 눌려 심히 위축당하는 상황이었다.
 “누구냐?”
 천축의 무인 중에 나이가 칠십이 넘어 보이고 손에는 한 자루의 장도를 든 자가 고개를 돌리며 호통을 내질렀다.
 핏!
 갑자기 날아드는 파공성에 천축의 무인은 몸을 비틀며 풀쩍 뛰었다. 한 자루의 강전이 배에 박혀들었다. 천축무인은 분노에 젖은 한소리 호통을 내질렀다.
 “어떤 놈이 감히 천축뇌종(天竺雷宗)을 노리느냐?”
 슈아아아--!
 가는 파공성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바람이 밀리는 듯한 소리가 모여든 무인들의 귀를 찢을 듯이 가까워졌다.
 찌이익--!
 미처 설산전궁시를 피하지 못한 듯 천이 찢어지는 날카로운 소음이 울렸다. 강전이 뱃전에 박힌 후 들려온 소리로 보아 강전이 얼마나 빠른지 알 수 있었다.
 허공에서 몸을 비틀어 착지한 천축뇌종의 가슴에는 한줌의 옷섶이 찢겨져 있었다.
 천축뇌종의 가슴을 스친 설산전궁시는 어른의 허리보다 굵어 보이는 돛대에 깊숙하게 박혀 있었고, 천축뇌종의 가슴 앞섶에서 찢겨진 것인 듯 붉은 천이 매달려 있었다.
 “본인을 찾는가?”
 예몽호의 곁에 정박(碇泊)해 있던 어선을 박찬 하나의 인영이 삼 장을 날아 예몽호에 내려섰다.
 설산파의 당대 문주인 아극타였다. 그가 나타나자 쾌비수는 고개를 돌렸다. 오래 전부터 혈전을 벌이고 있는 곤륜과 설산파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빌어먹을······ 이곳에까지 와서 놈을 보게 되다니. 재수 옴붙었다. 퉤!”
 쾌비수는 침을 뱉았다.
 순식간에 싸움이 중지되었다. 중원무인들은 그들 나름대로 한곳으로 모여들었고 천축의 무인들은 그들 역시 한무리로 모여들어 대치상태(對峙狀態)를 이루었다.
 처음보다 무인들의 숫자는 제법 줄어 있었다. 바닥에 널브러진 시체들도 서로의 눈에 들어왔다. 중원무인들의 피해는 제법 컸다. 무려 십오 명이 넘는 무인들이 팔다리가 잘려 즉사를 면치 못했다.
 천축의 무인들도 반 이상으로 줄어들었다. 처음에는 삼십여 명이 예몽호에 나타났으나 지금은 십여 명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그나마도 온전한 몸을 지닌 자는 서너 명에 불과했다.
 나타난 아극타를 본 천축뇌종의 안색이 변했다.
 “그대가 이곳에 나타나다니, 천만 뜻밖이로군.”
 천축뇌종과 아극타는 일면식(一面識)이 있는 듯 보였다. 아극타는 빙그레 웃으며 두 손을 모았다. 어찌 보면 너무나 단아한 자세로 예의를 취하는 듯 보였다.
 아극타와는 달리 천축뇌종은 얼굴이 붉어졌다. 분노라기보다는 수치심(羞恥心)이 깃든 것임을 누구나 알 수 있는 표정이었다.
 “종(宗) 선배(先輩), 오늘은 이 아극타를 보아서 물러서 주시기를 바라오이다.”
 너무나 간단한 한마디에 천축뇌종은 고개를 끄덕였다. 중원무인들은 어떻게 돌아가는 영문인지 모르는 일이라 눈을 둥그렇게 뜰 수밖에 없었다.
 기세등등하던 그들이 너무도 쉽게 물러서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극타가 그리도 무서운 위력이 있으리라고는 아무도 믿지 않았다.
 더구나 천축뇌종이 누구인지 몇몇의 장로는 알고 있는 눈치였다. 중원에 그다지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천축뇌종은 천축무림에서 백 위(百位) 안에 드는 무웅이었다. 더구나 그가 활동하는 영역(領域)이 마다가리 항구 주변이라는 것을 아는 중원인도 제법 되었다.
 “좋다. 단 이것으로 본 뇌종이 설산파에 진 빚은 모두 갚은 것으로 하겠다.”
 “고맙소이다. 선배.”
 아극타가 다시 허리를 숙였다.
 “가자.”
 천축뇌종이 한소리 호통을 터뜨리고 허공으로 도약하자 뒤를 따라 나머지 천축무인들이 솟구쳤다. 눈 한 번 깜짝일 사이에 그들 모두는 예몽호에서 사라졌다.
 어찌된 영문인지 알 수 없는 중원무인들이 아극타 주위로 몰려들었다.
 “정파(政派)의 명숙들을 뵈오이다.”
 “어쩐 일인가?”
 쾌비수가 불쾌하다는 음성을 뿌렸다. 오래도록 적대관계(敵對關係)를 유지하고 있는 곤륜과 설산파의 모습이 그들 사이에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쾌비수의 물음에 일언반구(一言半句)도 없이 아극타는 다른 장로들을 바라보며 손을 모아 가벼운 예를 올렸다. 비굴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건방지지도 않았다.
 “고맙소이다, 시주.”
 아미파의 여장로 무현사태(無顯師太)가 가볍게 손을 모았다. 쾌비수를 제외한 각파의 장로들이 손을 모아 모두 고마움을 표시했다.
 “이것 참! 먼리 이역에까지 와서 설산파에 신세를 졌습니다그려!”
 곤륜을 제외한 다른 문파는 직접적인 적대관계가 없을 뿐더러 과거 설산파의 몇몇 문주는 중원무림에 대해 호의적이기도 했었다.
 사실 설산파에 대해 적대감정을 가지고 있는 중원문파는 그리 많지 않았다. 너무 거리가 멀어 서로 충돌할 일이 없었던 탓이었다.
 “한 가지 부탁을 드리고자 끼여들었습니다.”
 “무슨 일이오? 우리를 도와주셨으니 우리도 의당 아극타 궁주를 도와 드리겠소이다.”
 무현사태가 기꺼이 고개를 끄덕였다. 주변에서 묵묵히 듣고있던 장로들도 고개를 끄덕여 찬동을 표했다. 마치 반대할 이유가 없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간단합니다. 우리도 이 배에 승선(乘船)할 수 있도록 해 주시지요. 사태.”
 느닷없는 말에 모두들 눈을 크게 떴다. 그러나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들을 도와주었으니 그 정도는 괜찮지 않느냐는 반응이었다.
 “그렇게 하시지요.”
 “반대할 이유가 없군요.”
 장로들 대부분은 곧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 무일자는 적극적으로 나섰다. 일설에 설산파와 화산파가 친하다는 이야기가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그들 문파 사이에는 여전히 흠모(欽慕)의 정(情)이 있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모두 찬성하는 것은 아니었다. 일말의 두려움과 의아심을 보이는 장로들과 무인들도 있었다. 생각을 해보아야겠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 장로도 있었다.
 “당신들이 불회귀도에 가려 한다는 것을 알고 있소이다. 본인은 단지 전대문주(前代門主)의 시신(屍身)이라도 수습하려 할 뿐, 다른 것에는 욕심이 없다는 것을 미리 말해 두겠소.”
 “허허허, 그러시구려. 신세를 졌으니 그 정도는 이해하겠소.”
 용존개가 앞으로 나섰다. 용존개가 나서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구파일방의 장로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자가 용존개였기에 함부로 반론을 펴기는 어려웠다.
 더구나 중원의 많은 문파는 설산파의 전대 문주와는 인연이 있기도 했다. 설산의 전대 문주는 정도를 추구하고 있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용존개가 쉽게 허락한 이유도 따지고 보면 설산파의 전대 문주와 친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흥!”
 코방귀를 뀐 쾌비수가 선실로 들어가 버린 것은 바로 그때였다. 불쾌한 표정을 굳이 지우려 하지도 않았다.
 척--!
 아극타가 손을 들자 십여 명의 인물들이 어선에서 솟구쳐 예몽호로 날아들어왔다. 전신에 짐승의 가죽으로 만든 옷을 걸친 모습으로 보아 설산의 제자들이 분명했다.
 용존개가 눈을 돌렸다.
 멀리 곤룡호의 돛대 꼭대기에 걸린 손바닥만한 명황실(明皇室)의 깃발이 눈에 들어왔다.
 
 
 3장 출항(出港)은 순조로웠다
 
 
 1
 
 
 까르르르--!
 끼룩--!
 갈매기가 머리 위에서 맴돌았다. 항구에서 출발한 지 어느덧 두 시진이 지났다. 곧 육지로 돌아갈 것처럼 보이던 두 마리의 갈매기는 두 시진이 넘도록 돛대 위에서 맴돌았다.
 간혹 돛대의 머리에 내려앉기는 했으나 암수(雌雄) 쌍(雙)으로 보이는 갈매기는 시종 맴을 돌기도 하고 멀리 솟구쳐 하늘에서 쏘아져 내려오기도 하며 시선(視線)을 끌었다.
 “허! 놈들, 자발스럽기도 하군.”
 설천후는 나지막하게 중얼거리며 고물에 엉덩이를 붙였다. 두 시진 동안 눈을 떼기가 어렵게 하더니 두 마리의 갈매기는 오랜만에 돛대가 아닌 고물 쪽으로 내려앉았다.
 설천후의 발끝에서 불과 칠팔 척(七八尺)의 거리였다. 갈매기들은 신기한 것이라도 발견한 듯 설천후를 바라보았다. 마치 사람의 눈 같다는 생각이 드는 설천후였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
 “구구구······!”
 갈매기가 그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듯 날카로운 주둥이를 벌려 짖는 듯한 소리를 내었다.
 설천후는 한참 동안 갈매기들이 하는 양을 바라보았다. 불현 듯 떠오르는 생각에 몸을 일으킨 설천후는 바다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후!”
 폐부까지 시원하게 하는 바닷바람이 불어왔다. 비린 듯하게 느껴지는 바람은 싱그러웠다.
 멀리 솜털처럼 보이는 구름이 수평선(水平線)에 맞닿아 끝이 보이지 않았다. 설천후는 눈에 손을 들어 햇빛을 가리고 수평선 너머를 보려고 애를 썼으나 보이는 것은 없었다.
 “이번이 마지막이야.”
 설천후는 의미없이 중얼거렸다. 겉으로는 그렇게 보이나 속으로는 다시는 이 지긋지긋한 해로를 다시는 가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는 그였다.
 벌써 세번째였다.
 수없이 많은 관병(官兵)과 무관(武官)들 틈에서 통역관(通譯官)은 오직 자신뿐이었다. 그를 제외한 역관들은 통역을 담당하는 것이 아니라 문서를 수발하거나 예운경 장군의 개인적인 시중을 들었다.
 황궁에도 적지 않은 통역관이 있었다. 유독 자신이 천축에 이르는 먼 길을 수 차례나 다녀와야 한다는 사실은 불합리(不合理)하다고 생각되었다.
 따지고 보면 그가 아니고도 해로를 아는 사람은 많았다.
 수없이 반복되는 황궁무역에 그가 선택된 것은 해로에 탁월한 선견지명(先見之明)이 있기도 했으나 무엇보다도 천축의 말을 잘하기 때문이었다.
 배 위에서 무인이 아닌 자는 설천후뿐이다. 무관들과 관병들은 모두 한가닥 한다는 자들로 설천후와는 근본적으로 걷는 길이 다른 사람들이었다.
 다행히 무인들이 그를 무시하지는 못했다. 설천후에게는 바다의 일기(日氣)를 읽는 탁월한 눈이 있었고 무엇보다 천축인들을 상대할 통역자는 그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 계셨군요. 설역관(雪歷官)!”
 목소리가 나는 곳으로 머리를 돌려보니 한 무장(武將)이 서 있었다. 허리에는 한 자루의 도를 매달고 몸에는 등나무로 만든 목갑주(木匣鑄)를 입고 있는 무장이었다.
 목갑주를 입는 무장은 백인장(百人將)이었다. 백인장의 직위를 지닌 관병이 입는 갑주는 나무의 껍질을 벗겨 만든 목갑주였다.
 명군(明軍)에는 직위에 따라 몸에 걸칠 수 있는 병기나 갑주에 차등이 주어졌다. 천인장(千人將)이나 만인장(萬人將)만 되더라도 최소한 귀갑(龜匣)이 그려진 철갑주(鐵匣胄)나 동갑주(銅匣胄)를 입을 수 있었다. 목갑주를 걸친 것으로 보아 배에 탄 두 명의 백인장 중 한 명이었다.
 “어쩐 일로 나를 찾으셨소. 백무장!”
 백무장이라 불린 사나이는 이십대 후반의 청년무장(靑年武將)으로 오관(五官)이 단정해 보였다. 머리에 투구를 쓰지 않아 환한 얼굴이 보였는데 이마가 넓고 짙은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어 누가 보아도 호감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미 오래 전 일이지만 그들은 친한 사이가 아니었다. 그러나 일 년이 넘는 긴 여로(旅路)에 그들은 친숙해졌고 스스럼없는 사이로 변했다.
 배에 탄 육십육 명의 선원 중 그들은 나름대로 가장 친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사이이기도 했다.
 “장군(將軍)이 뵙잡니다.”
 “장군이 나를요?”
 설천후가 눈을 크게 떴다. 굳이 놀랄 것도 없는 일이지만 장군과 설천후는 그다지 좋은 관계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딱히 나쁜 관계라고 말하기도 어려웠다. 아무튼 그저 그렇고 그런 상사(上司)와 부하(部下)의 관계일 뿐이었다. 그래서인지 장군은 반드시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설천후를 부르는 경우가 흔하지 않았다.
 “그렇습니다. 급히 모셔오라는 명을 내리셨습니다.”
 “어디에 계시오이까?”
 “선미(船尾)에 있는 지휘실에 계십니다.”
 “알았소.”
 설천후는 몸을 돌리다 아직까지도 고물에 앉아 있는 갈매기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이내 몸을 돌려 선실로 내려가는 계단에 발을 얹었다.
 푸드드드--!
 갑자기 갈매기들이 날아올랐다. 얼굴을 돌려보았으나 백무장이 쫓아 버린 것은 아닌 듯 싶었다.
 살랑-- 살랑--!
 갈매기에서 떨어졌는지 백색으로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깃털이 떨어졌다. 갈매기의 깃털은 백무장의 눈앞을 스치고 완만하게 떨어져 내렸다. 백무장의 앞을 스친 깃털은 바람을 타고 설천후의 앞섶에 달라붙었다.
 파르르르--!
 ‘왠지 불길(不吉)하다.’
 설천후는 몸에 가는 떨림이 온다고 느꼈다. 갈매기가 날아오를 때 자세히는 보지 못했지만 짙은 황혼(黃昏) 같은 무지개가 덮치는 착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삼 년 동안 배를 타고 천축과 중원을 왕복했지만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현상이었다.
 ‘잘못 보았겠지.’
 설천후는 그렇게 생각하며 가벼이 넘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늘은 맑았고 물기를 머금은 구름도 보이지 않았다. 멀리 떠있는 구름은 곤룡호가 향하는 곳과는 반대 방향으로 흘러가는 중이었다.
 “날씨는 그런 대로 괜찮은 것 같은데.”
 미풍(微風)은 살랑거렸고 고양이가 혀로 목덜미를 간지럽히는 이상의 바람은 느껴지지 않았다.
 해는 머리 위에서 뜨거운 빛을 화살처럼 내리붓고 있었으니 날씨는 최상의 조건이었다. 일기를 점쳐 보았으나 무서운 태풍(颱風)이 일거나 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태풍이 일거나 혹은 일기가 불순했다면 배를 출항시키지도 않았을 것이다.
 설천후는 기분 나쁜 감정을 털어 버리듯 고개를 돌려 백무장을 바라보았다. 백무장은 조금 전 설천후가 그랬던 것처럼 비둘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 다녀오리다. 다녀와서 술이나 한잔 합시다.”
 “그럽시다. 내가 준비해 놓고 있겠소.”
 백무장은 흔쾌히 대답했다. 설천후가 그렇게 말해 주기를 기다렸다는 듯한 말투였다. 눈이 마주치자 백무장이 환하게 웃음을 던졌다. 설천후는 계단으로 한 발 한 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선미에 위치한 지휘실은 제법 멀었다.
 
 
 2
 
 
 길이가 삼십 장이나 되는 곤룡호에는 이십칠 개의 선실이 있었고 두 개의 주방과 두 개의 식당, 작은 무기고(武器庫)가 하나, 그밖에도 갑판에는 두 문의 화포(火咆)가 실려 있어 위용이 화려했다.
 황실에는 무려 이백삼십여 척의 배가 있었다. 물론 수군(水軍)이 운용하는 전투선(戰鬪船)과는 다른 것으로 대개 상황에 따라 용도가 다르게 사용되었다. 대다수는 규모가 작은 것으로 불과 열 명이 탈 수 있는 소선들이었고 간혹 큰 것도 있기는 했으나 바다에 나오는 배는 흔하지 않았다.
 황실의 배들은 주로 황하(黃河)나 장강(長江)에 띄워져 있어 황실의 잔치나 특별한 행사때 사용되었다. 대개는 작은 유엽선(柳葉船) 정도로 황제(皇帝)나 황태자(皇太子), 혹은 고관대작(高官大爵)들이 사용하기 위해 중원 전역에 골고루 배치되어 있었다.
 곤룡호는 개념부터가 다른 배였다.
 황실이 가지고 있는 황급(皇給)의 철선 일곱 척 중 하나로 크기로만 따져도 장강의 입구, 숭명도(崇明島)에서 항상 황제의 명을 기다리는 화룡호(火龍號) 다음으로 컸다.
 화룡호는 황제가 친히 바다로 나가거나 정벌(征伐)을 하러 떠나는 관병들에게 출항명령을 내릴 때만 사용되므로 물에 뜨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곤룡호는 달랐다. 곤룡호는 황실의 무역선이었다. 중원에 흩어진 천하각지의 무역상들이 있기는 하나 황실도 무역을 했다. 간혹 조선(朝鮮)이나 부상(夫桑), 혹은 천축으로 출항을 나가기도 했다.
 조공(朝貢)을 받거나 사신을 실어나르는 일도 했다. 그래서 보기 드물게 범선처럼 돛이 달려 바람의 힘으로 움직이기도 했고 바람이 없으면 사람의 힘으로 노를 저어 움직이기도 했다. 간혹 장강을 거슬러 웅천부(雄天府)에 들러 타국에서 실고 온 조공을 황제에게 진상하기도 했다.
 곤룡호는 완벽한 전투선이기도 했다. 갖가지 병기가 배 안에 실려 있었고 사면에 방패(防牌)가 세워져 있기도 했다. 특히 배에 실린 화포는 무서운 무기였다.
 
 ***
 
 두 척의 배는 적어도 이천여 장의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곤룡호를 따르는 예몽호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간격을 좁히지는 않았다.
 크기가 곤룡호의 반밖에 되지 않는 예몽호는 거친 파도와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바다를 헤치며 쉬지 않고 곤룡호의 뒤를 추적했다.
 이천여 장의 거리, 규모가 큰 곤룡호에서는 예몽호를 식별하기가 용이하지 않은 거리였으나 반대로 규모가 작은 예몽호에 탄 중원무인들은 곤룡호를 바라볼 수가 있었다. 더구나 예몽호에 몸을 실은 무인들은 한결같이 내공이 뛰어난 자들이기에 곤룡호를 식별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
 “하하하, 자네의 부친이 살아계셨다면 자네를 무척이나 자랑스러워했을 것이네.”
 용존개는 갑판에 올라 까만 점으로 보이는 곤룡호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열 개의 정도 문파와 설산파는 각기 한 시진씩의 시간을 정해 곤룡호를 놓치지 않게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고맙습니다.”
 아극타는 기분 좋게 웃으며 손을 모아 가볍게 흔들었다.
 날이 저물어 가는 유시 말.
 개방이 맡은 저녁 시간은 매우 중요했다. 해가 뜨는 묘시(猫時)와 해가 지는 유시(庾時)는 눈이 부시고 때때로 눈에서 착시 현상(錯視現狀)이 일어나기 때문에 곤룡호를 놓쳐 버릴 수도 있었다.
 “하하하! 별말씀을 다하십니다. 과거 아버님만 같으면 아마도 설산파가 중원무림에서 환대를 받았겠지요.”
 아극타는 눈을 빛내며 대답했다. 아극타는 설산파를 이끌던 중원인 아버지와 서역의 여인 사이에서 태어난 사내였다. 그랬기 때문에 중원인보다는 가늘어 보이는 머리카락과 갈색에 가까운 색조를 지니고 있었다.
 더욱 눈에 띄는 것은 눈동자였다. 중원인들의 눈동자는 칠흑처럼 검은 것이 일반적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서역인들은 간혹 푸른색이나 갈색의 눈동자를 가지고 있기도 했다.
 아극타의 눈은 진한 갈색이었다. 중원인들이 그를 설인(雪人)의 자식이라고 부르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갈색으로 빛나는 눈 때문이었다.
 “그럴지도 몰라.”
 “사실이었을 겁니다. 제가 사도(邪道)를 따르지 않았다면 저도 역시 중원무림에서 환대를 받았을지도 모릅니다.”
 용존개는 아극타를 내려다보았다. 이미 칠십을 넘어선 용존개로서는 아극타가 말하려고 하는 말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그가 원하는 것 또한 물론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불쌍한 아이, 중원무림에서 이 아이에게 너무도 많은 짐을 지웠구나.’
 용존개의 눈이 뜨거워졌다. 아극타는 멀리 어둠 속에서 하나둘 향등(向燈)이 세워지고 있는 곤룡호를 바라보았다. 날이 저물어지자 아마도 배의 돛이나 고물에 궁등(宮燈)을 켜는 것처럼 보였다.
 “만약, 중원이 자네를 믿고 살아가는 가솔(家率)들과 설족(雪族)들을 건드리지 않았다면 아직도 설산파와 중원은 좋은 관계가 유지되고 있겠지.”
 “지난 일입니다. 어차피 정과 사는 마음 속에 있는 것이 아닙니까? 설사 정(正)이라 해도 마(魔)를 추구할 시기가 있을 수 있고 마를 추종한다 해도 언젠가는 진정한 정을 추구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용존개는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곤륜파가 설산파가 자랑하는 만년설삼(萬年雪蔘)을 욕심내어 설족 마을을 피로 물들이지만 않았더라도 설산파는 결코 곤륜을 적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되었다면 아극타는 중원무림에서도 결코 만만치 않은 정도의 핵심이 되어 있을 수도 있었다.
 모든 것은 곤륜의 무인들이 설삼을 탐낸 탓이었다. 결과는 설산파가 사파(邪派)로 낙인 찍히는 것으로 결론이 나기는 했지만 모두 곤륜의 장난이었다.
 설산파를 사파라 규정하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모두 곤륜의 입김 때문이었다.
 설산파에 대한 자세한 내막은 모른다고 할지라도 중원의 소식빠른 대파들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랬기에 아극타가 예몽호를 타고자 했을 때 굳이 반대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벌써, 교대 시간이 다 되었군.”
 “그렇군요. 곧 화산의 제자들이 올라올 것 같은데요.”
 용존개와 아극타는 멀리 반짝이는 곤룡호를 바라보았다.
 날은 이미 저물어 어둠이 짙게 내리고 있었다. 곤룡호는 떠오르는 달빛을 벗삼아 하나의 점으로 변해 마치 고정(固定)된 듯 보였다.
 용존개와 아극타는 갑판을 지나 어깨를 나란히 하고 계단을 내려갔다.
 
 
 3
 
 
 똑똑--!
 설천후는 가볍게 선실 문을 두드렸다. 오동나무를 이용해 짠 선실 문은 습기를 머금기는 했으나 청아한 소리로 울렸다. 속이 빈 대나무를 두드리는 듯한 소리였다.
 “누구냐?”
 거칠지만 어딘지 모르게 무게가 실린 듯 들리는 목소리는 바로 곁에서 말하는 듯 가깝게 들렸다. 문안에서 대답하는 목소리가 얼마나 컸는지는 짐작이 되었다. 곧 안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조심스럽게 걷는 기척이 느껴졌다.
 삐이익--!
 문이 열리고 마찰음이 들리며 짙은 남색으로 물들인 관복을 입은 관병이 얼굴을 내밀었다. 설천후도 익히 알고 있는 최만호였다.
 “역관께서 오셨습니다.”
 “어서 들라 이르라.”
 “알겠습니다, 장군.”
 최만호가 뒤를 돌아보며 말하자 문에 가려 보이지 않는 선실 뒤쪽에서 역시 걸걸한 목소리가 들렸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여실하게 드러내는 목소리였다.
 장군의 목소리는 설천후와 최만호 모두의 행동을 재촉했다. 최만호가 문을 열고 허리를 가볍게 숙이자 설천후는 조용한 걸음걸이로 장군의 지휘실로 들어갔다. 선실 바닥에는 배와는 어울리지 않게 발목까지 빠지는 융단이 펼쳐져 있어 걸음을 불편하게 했다. 설천후는 무시하고 한 발 한 발 다가갔다.
 “장군을 뵈오이다.”
 설천후는 장군의 모습이 보이지도 않았지만 허리를 굽혔다. 장군은 무관(武官)으로 매우 높은 지위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역관이라 함은 겨우 백인장과 맞먹는 수준의 지위를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더구나 장군은 이미 오십을 넘은 사람이었고 설천후는 이십을 갓 넘겼으니 예를 올림은 당연했다.
 “어서 들라.”
 “예!”
 “기다린 지 오래다.”
 설천후는 눈을 들어 장군을 바라보았다. 장군은 등을 보이고 있었고, 무엇이 그리도 바쁜지 탁자 위에 눈을 처박고 무엇인가를 열심히 쳐다보는 중이었다.
 설천후는 다가가 장군 앞에 앉았다. 장군은 바닥에 커다란 해도(海圖)를 펼쳐 놓고 삼각형으로 보이는 백색 투명한 모서리 각대(角帶)를 들고 선을 그어보기도 하고 거리를 재보기도 하는 모습이었다.
 “부르셨습니까?”
 “거기 앉게.”
 장군이 눈을 들었다.
 
 
 4
 
 
 한참만에 장군은 입을 열었다.
 “자네를 부른 것은 해로를 변경하면 어떨까 해서 부른 것이야.”
 “해로를 변경하다니요?”
 “글쎄, 이걸 보게나.”
 장군은 해도를 탁자 위에 폈다. 익히 수백 번은 본 적이 있는 해로였다. 중원에서 천축으로 이르는 길이 푸른색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해도 위에 푸른 선으로 그어져 있어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는 것이라 설천후는 해도를 보기보다는 장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어렵지 않겠습니까?”
 “왜?”
 “우리는 늘 같은 길을 왕복(往復)하고 있습니다.”
 “이번 기회에 벗어나 보는 것도 과히 나쁘지는 않아.”
 “아직 다른 곳은 조사되지 않았습니다. 바다의 깊이뿐만 아니라 해적(海賊)들의 움직임도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를 따르는 군사들을 믿지 못하나?”
 장군의 말에 설천후는 입을 다물었다. 장군은 나름대로 자신의 부하에 대해 깊은 신뢰를 지니고 있는 듯 보였다. 그도 그럴것이 그를 따르는 부하들은 모두 국경수비대에서부터 그가 양성하고 길러낸 용병(勇兵)들이었다.
 날래기가 표범 같고 무기를 휘두르는 것이 독이 오른 살모사 같다고 자랑하는 그였다.
 장군 앞에서 그의 부하들을 깎아내린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건 아닙니다. 장군의 군사가 명나라 최고의 군사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그럼 무얼 걱정하는 건가?”
 “주산해로(駐珊海路)는 너무나 넓은 지역이고, 더구나 해로가 그려진 해도 또한 변변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돌발적인 변수(變數)에 능히 대처하기가 어렵습니다.”
 “걱정하지 말게. 내 부하들은 일당천(一當千)이야.”
 “그것 말고도 또 있습니다.”
 “무엇인가?”
 “지금은 팔월입니다. 언제 태풍이 밀려 올지 모릅니다. 사태를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그것도 걱정하지는 말게. 곤룡호는 아이들 장난으로 타고 노는 공작선(孔雀船)이 아니네.”
 “그건 압니다.”
 “그걸 안다면 내 말에 따라주게.”
 장군은 할 말을 다했다는 듯 해도로 얼굴을 돌렸다. 설천후는 어찌해야 할지 잠시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천하에 설천후라 해도 바다는 두려움이었다.
 장군은 한참 동안 해도를 들여다보았다. 아무런 말없이 해도를 들여다보던 장군이 갑자기 눈을 들었다. 눈에서는 왠지 모를 열기가 흘렀다.
 “이쪽 해로는 어떤가?”
 장군은 해로의 한 방향을 검지로 짚었다. 설천후도 장군의 손을 따라 시선을 돌렸다. 자연스럽게 장군이 짚은 해도를 보게 되었다.
 ‘안돼!’
 비명이 목에 걸렸다.
 
 ***
 
 곤룡호의 뱃길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세 차례의 천축무역에서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없었던 진로였다.
 중원의 오문(奧門)을 떠난 곤룡호는 해남도를 바라보며 남쪽으로 열하루를 달린 뒤 서쪽으로 다시 열흘을 바람을 받아 달려야 했다. 멀리 남만(南灣)이 보이면 해안을 따라 이동하며 여러 개의 협곡(峽谷)과 군도(群島) 사이를 지나서 남만의 남쪽 바다로 나서야 한다.
 굳이 섬 사이와 해안가로 움직이는 것은 파도와 풍랑도 문제지만 만약에 경우 덮쳐오는 태풍을 피하기 위한 것이었다. 남만의 바다를 지나는 데는 무려 한 달이 소요된다.
 군데군데 남만의 지배자들에게 황금(黃金)을 주어야 하고 때에 따라서는 그들과 약간의 실랑이도 벌여야 한다.
 남만의 섬을 벗어나 긴 육지를 따라 남쪽으로 다시 열흘을 가면 오른쪽으로 꺾어 배를 서쪽으로 가야 한다. 그곳에서 마주치는 섬이 있다. 슬랑가(瑟狼嘉)라 불리는 섬으로 그곳에서 한 달 동안 휴식을 취하며 천축의 남해가 좋아지기를 기다려 배를 상륙시키면 되는 것이다.
 석 달이 걸리는 여정(旅程)이었다.
 배를 마다가리 항구에 정박시킨 후, 예물을 준비하고 천축의 황제를 기다려야 한다. 천축은 모두 다섯 개로 나뉘어져 있었고 각각의 황국(皇國)은 다시 수십 개의 작은 왕국(王國)으로 쪼개져 있어 상대하기가 쉽지 않았다.
 더구나 천축의 관도 사정은 너무나 열악해 중원인들이 내륙으로 들어가려 하면 막대한 고통이 뒤따랐다.
 결국은 중천축국의 황제를 알현하고 다시 배로 나오는 데는 왕복으로 이 개월이 소요되었다. 마다가리 항구에서 배를 띄워 중원으로 돌아오는 것은 역순(逆順)이었다.
 
 ***
 
 설천후는 완강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어렵습니다.”
 “그런 소리 하지를 말게. 설사 자네가 말린다고 해도 나는 갈 것이야.”
 장군은 손가락으로 자신이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길게 반 원을 그었다. 중원과는 무려 삼천 리나 멀리 떨어져 돌아가는 거리였다. 해도에는 아무런 표식도 되어 있지 않았다.
 설천후는 기가 막혔다.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길이었다. 그곳에 괴물(怪物)이 있는지, 해적(海賊)이 있는지조차도 알 수 없었다. 하물며 낯선 곳의 일기를 예측한다는 것은 더욱 불가능했다.
 “장군!”
 “더 이상 말하지 말게.”
 장군은 단도직입적으로 잘라 말했다.
 설천후는 입을 다물었다. 말린다고 들을 장군이 아니었다. 장군의 고집은 누구라도 꺾기가 어렵다는 것을 일 년여의 경험으로 체득한 설천후였다. 장군의 결정이 번복되지 않으리라는 것은 굳이 입으로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후!’
 목구멍을 넘어오는 한숨을 겨우 추슬렀지만 눈앞이 아득했다. 이런 경우는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감을 잡을 수가 없는 설천후였다.
 “유백장(劉百將)을 부르라.”
 “예.”
 장군의 명령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최만호가 대답하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설천후는 주저앉아 멍하니 해도만 응시했다. 달리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했기 때문이다.
 
 ***
 
 유인걸(柳仁杰)은 이 층 갑판에서 두 명의 관병들과 술을 마시다 달려오는 최만호를 보았다.
 “유백장님!”
 “무슨 일이기에 이렇게 호들갑스러우냐?”
 유인걸은 술잔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두 명의 백인장 중 하나인 유인걸은 유백장이라는 별호로 불렸다. 유씨 성을 가진 백인장이라는 뜻이었다.
 유인걸은 첨도장군을 따라 검을 휘두르고 전쟁터를 누빈 것이 벌써 십 년이 가까워 오는 삼십대의 중년무장이었다.
 백무장이 원래부터 황궁을 지키던 관병에서 선출된 자라면 유백장은 첨도장군을 따라다니며 공을 세워 자연스럽게 백인장의 위에 오른 철혈무인(鐵血武人)이었다.
 더구나 그는 변방에서 물러나온 뒤로 장강에서 이 년 동안 수군에 몸을 담은 적이 있기도 했다.
 “장군께서 부르십니다요.”
 “장군께서?”
 “그렇습니다.”
 “무슨 일이 있느냐? 갑자기 나를 부를 이유가 없으실 텐데······.”
 “자세히는 모르나 해로를 변경시키신다는 말씀을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해로라면 설역관이 있지를 않느냐?”
 “설역관도 이미 와 계십니다. 장군의 의견에 반대를 하는 것 같았습니다. 얼른 가보시지요.”
 “그러세.”
 유인걸은 몸을 일으켰다. 나름대로 물이라 하면 자신 있는 그였다.
 
 ***
 
 덜컹!
 문을 연 유인걸은 지체하지 않고 장군의 지휘실로 들어왔다. 가볍게 오른손을 왼쪽 가슴에 대고 예의를 갖춘 후, 설천후의 옆자리에 앉았다.
 “어서 오라.”
 “소장(小將)을 부르셨습니까?”
 “해로 변경을 하려 하는데 그대의 생각을 듣고자 했다.”
 “말씀하시지요.”
 유인걸은 전혀 망설이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얼굴에는 자신감이 넘치고 있었다. 표정으로만 보자면 천하에 해내지 못할 것이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설천후는 왠지 불안해졌다.
 ‘불안해. 결과가 뻔하다.’
 설천후는 차라리 돌아앉고 싶었다.
 장군이 설역관을 앉혀 놓은 상태에서 굳이 유인걸을 불러들인 것은 자신의 생각을 유인걸로 하여 굳히려는 의도 외에는 다른 것은 없는 듯 보였다.
 “본장은 우리가 처음 계획했던 주산해로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약간 길기는 하지만 남에서 불어오는 바람만 탄다면 두 배는 빠르게 오문으로 돌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소장도 그리 생각됩니다.”
 유인걸의 대답은 예상했던 대로 너무도 쉽게 장군의 의견에 동조(同調)를 했다. 깊게 생각하지 않는 모습에서 어떤 경우라도 유인걸은 장군의 의견을 수용하리라 보여졌다.
 해도는 유인걸에게 관심 밖이었다. 문제가 되는 것은 누가 명령을 내렸냐 하는 문제인 것이다.
 “불가(不可)합니다.”
 설천후는 강한 어조로 반대를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반드시 후회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굳이 다투기는 싫었지만 입을 열었다. 마지막 기회였다. 지금 장군을 막지 못한다면 결과는 돌이킬 수 없는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드는 것과 같았다.
 장군과 유인걸이 설천후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얼굴이 붉어진 유인걸의 숨결이 조금 거칠어진 것 같았다.
 “역관인 주제에 지나치게 잘난 체를 하는군.”
 “뭐라고?”
 유인걸의 말에 설천후의 인상이 심하게 찌푸려졌다. 그러나 설천후는 더 이상 언성을 높이지는 않았다. 소위 무인이라는 자들이 어떤지는 잘 알고 있는 그였다.
 세 차례에 걸쳐 천축을 다녀오며 설천후는 적지 않은 무인들을 볼 수가 있었고 생리(生理)를 익혔다. 한결같이 무공을 지녔다는 이유만으로 설천후를 핍박하거나 무시하는 자들이 수두룩했었다.
 더욱 황당한 것은 그들이 천축에 갈 때까지는 설천후에 극진하다가도 모든 일이 마무리되고 돌아올 때가 되면 태도가 돌변했었다.
 그나마 예운경 장군은 다른 무장에 비해서는 인품(人品)을 지닌 것으로 보였다.
 “아아! 그만두게. 어차피 해로를 수정한다 해도 설역관의 눈은 필요하니 큰 역할을 맡게 될 거다.”
 “장군! 제가 맡겠습니다. 근본(根本)도 모르는 자에게 더 이상 우리의 목숨을 맡길 수는 없습니다.”
 장군이 화해에 나섰지만 유인걸은 거만하게 말했다. 유인걸은 의자를 손으로 두드리며 몸을 일으켰다. 얼굴에는 거만한 빛이 흐르고 있었다.
 설천후는 가슴 한구석이 답답해져 오는 느낌에 머리가 띵 하고 울렸다. 그가 가장 싫어하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근본도 모르는 자라고 했나.’
 설천후는 이를 악물었다.
 
 ***
 
 화산의 제자 하나가 급히 선실로 내려왔다. 해시(亥時)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으므로 선실 곳곳은 불이 꺼졌고 중원의 무인들은 서서히 잠들기 시작한 시각이었다.
 깨어 있는 자들은 선실에서도 볼 수 있었지만 많지는 않았다. 대개 잠을 자지 않는 자들은 망을 보는 무인들로 갑판에서 곤룡호를 주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드디어 그들이 행동을 개시했습니다.”
 우당탕!
 화산이 초계(哨戒)를 맡고 있는 갑판에서 급박하게 뛰어내려온 제자가 있다는 사실은 심상치 않은 변화가 생겼다는 것을 의미했다.
 태풍(颱風)이나 기타 위급한 상황이 닥치면 고물 쪽에 있는 무인이 삼베를 꼬아 만든 줄을 당기기로 되어 있었다. 삼베 끈은 길게 늘어져 예몽호의 지휘실로 연결되고 끝에는 조그만 종(鍾)이 달려 있어 장로들이 신속하게 대책을 세울 수 있도록 약속이 정해져 있었다.
 “무슨 일이냐?”
 해도를 바라보며 숙의를 거듭하던 장로들이 뛰어내려온 화산의 제자 우현자(遇賢子)를 바라보았다. 조금 답답한 듯 호령을 지른 것은 화산을 이끌고 대장정(大長征)에 참가한 무일자였다.
 우현자는 한동안 멍한 표정이 되었다. 갑작스럽게 호통을 내지르는 장로의 목소리가 순간적으로 뇌를 정지시킨 것이다.
 “곤룡호가 방향을 바꾸고 있습니다.”
 “방향을 바꾼다고?”
 “벌써 주산해로에 들었단 말인가?”
 장로들이 술렁거렸다.
 해로에 대해 정확한 지식 없이 곤룡호를 따르는 그들에게는 예측만이 있을 뿐이었다. 곤룡호가 방향을 바꾸면 당연하게 그들도 방향을 바꾸어야 했다.
 천축에서 강제로 끌고 온 어부가 있기는 했지만 무엇이 분한지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버티는 중이라 체력을 많이 소비한 상태였다. 체력이 저하(低下)된 천축의 어부를 길잡이로 쓰느니 곤룡호를 확실하게 따라가는 것이 더욱 유리했다.
 “방향은?”
 “동북동 방향으로 좌현을 꺾어 방향을 틀고 있습니다.”
 “하필이면 이 밤에 말이냐?”
 “그렇습니다.”
 우현자는 누가 묻든 꼬박꼬박 대답했다. 모두가 하늘 같은 장로들이라 오대이하의 제자인 우현자로서는 감히 얼굴을 마주보기조차 어려운 배분을 지닌 어른들이었다.
 한참의 침묵이 흘렀다. 서로를 마주볼 뿐 말을 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무심히 눈을 들어 해도를 바라보던 용존개가 지도의 한 곳을 짚었다.
 해도에 그려진 파란선이 크게 곡선(曲線)을 그리는 지점이었는데 조그만 점이 하나 있고 주산도(駐珊島)라 적혀 있었다.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올라가 상황을 보는 것이 좋겠소이다.”
 무심히 듣고 있던 사마장용이 먼저 몸을 일으켰다. 나머지 아홉 명의 장로들도 모두 몸을 일으켰다. 졸리운지 눈을 껌벅이던 무현사태까지도 눈을 크게 뜨며 몸을 일으켰다.
 사마장용이 선실을 나서 복도를 걸었다. 그의 앞에는 갑판으로 오르는 나무 계단이 보였다. 나머지 장로들이 모두 일렬로 서서 사마장용을 따랐다.
 “무슨 일이 있소?”
 잠을 자러 간다고 자리를 떴던 아극타가 소란스러움을 느끼고 선실 문을 열고 다가왔다. 용존개가 손가락으로 머리 위를 가리켰다.
 아극타가 머리를 끄덕였다.
 
 
 4장 다가오는 위기
 
 
 1
 
 
 항해는 순조로웠다.
 한 달이 넘는 긴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비 한 번 오지 않았고, 오히려 날씨가 이상하리만치 청명했다. 마치 가을 날씨 같았다.
 설천후와 백무장은 이 층의 갑판에 올라 바람을 즐기고 있었다. 설천후는 천축에서 구한 천리경(千里鏡)을 눈에 대고 사방을 훑어보았다. 천리경은 긴 원통(圓筒)으로 만들어진 죽관(竹管)에 온갖 무늬를 새기고 양쪽에는 투명한 옥석(玉石)을 갈아 끼운 것이었다.
 눈으로 볼 수 있는 거리의 열 배를 볼 수 있었고, 가까운 거리의 물체도 열 배는 크게 볼 수가 있는 물건이었다. 무려 황금 반 근을 주고 구한 물건이었다.
 “뭐가 보이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큰일이군.”
 “글쎄 말이야. 주산군도를 지난 지 벌써 한 달이 지났는데 배 한 척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너무 이상한 일이야.”
 “혹시 보지 못한 건 아닐까?”
 백무장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슬랑가의 마다 항을 떠날 때까지만 해도 수없이 많은 배가 곤룡호를 지나쳤다. 한 달이 다 가도록 배가 한 척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도가 지나친 일임이 분명했다.
 설천후는 다시 천리경을 들고 눈에다 가져다댔다. 불현듯 느낀 것이 있는지 설천후는 천리경을 내리며 입을 열었다.
 “이상한 일이야.”
 “뭐가?”
 “너무 맑아. 지금은 계절적으로 태풍이 불어올 때거든. 더구나 배가 한 척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모든 배들이 피신했다는 뜻이 아닐까?”
 “우리의 앞길을 막는 배는 모두 비키라는 신의 계시(啓示)가 있었나 보지. 장군이 워낙 주도면밀한 분이잖아.”
 설천후의 걱정에 백무장이 별걱정을 다한다는 표정으로 웃었다. 그동안 친해질 대로 친해졌기 때문인지 백무장과 설천후는 말을 터놓고 지내고 있었다.
 설천후가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자는 백무장뿐이었다.
 “별일 없잖아.”
 “아니야, 저기를 봐!”
 설천후가 돛대 끝을 가리켰다. 백무장은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백무장이 보기에는 어떤 변화도 없었다. 세 폭의 돛은 바람을 받아 팽팽했고 황실을 표기하는 황금색 깃발도 바람을 받아 눈이 아리게 펄럭였다.
 돛대 끝에서 펄럭이는 깃발 위에서는 뜨거워 보이는 태양이 화살 같은 빛줄기를 뿜어냈다.
 “뭐 말인데?”
 “갈매기가 보이지 않아.”
 “갈매기?”
 “그래, 줄곧 따라왔는데 이틀 전부터 보이지 않아.”
 백무장은 여전히 알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백무장은 처음으로 배를 탔기에 갈매기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지 못했다.
 백무장은 곤룡호를 타기 전에는 바닷가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었다. 더구나 화산(華山) 근처의 마을에서 태어난 그가 갈매기의 생리를 알기는 더욱 어려웠다.
 백무장은 한참 동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럼에도 별다른 이상이 보이지 않자 하릴없는 듯 설천후의 등을 툭 하고 건드리며 웃었다.
 “별일 없잖아.”
 “아니, 있어.”
 “그럼, 그게 뭔데 그래.”
 “갈매기가 사라졌다는 것이 나를 불안하게 하는 거지.”
 “그게 어쨌는데?”
 백무장은 여전히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설천후는 피식 웃었다. 두려움이 마음 속을 파고들어 움츠러 들어가는 자신과는 다르게 너무나 평화로워 보이는 백무장이 부러웠다.
 설천후는 고물에 기대며 백무장을 바라보았다.
 “갈매기는 바닷길에서 매우 중요하지.”
 “그래?”
 “물론이야. 태풍이 몰려오거나 바다에 우환(憂患)이 일어나려하면 먼저 피신하는 걸 볼 수 있어. 마찬가지로 배에 살던 쥐들도 모두 배를 떠나는 것으로 알고 있어.”
 “맞아, 어쩐지 쥐가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했어.”
 백무장도 얼굴에 불안한 빛을 감추지 못했다.
 배는 크든 작든 쥐가 많았다. 뱃사람들은 어떠한 경우라도 쥐를 잡지 않았다. 쥐가 식량(食糧)을 먹어치우고 있다는 것을 알기는 해도 결코 쥐를 잡지 않았다.
 뱃사람들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언제부터인지 쥐가 보이지 않아. 벌써 사흘 동안 쥐를 한 번도 보지 못했어. 갈매기도 이미 떠났지. 곧 무서운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겠어.”
 “그럼 어떡하지?”
 “나도 모르겠어. 장군께 진로(進路)를 바꾸면 안 된다고 간곡하게 말씀을 드렸지만 막무가내로 듣지를 않으시니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
 설천후는 나직한 신음을 뱉아냈다. 백무장은 더욱 긴장한 얼굴로 설천후에게 다가왔다. 이미 핏기가 사라지고 창백하게 굳은 얼굴에는 웃음이 떠오르기는 했지만 결코 기쁨의 웃음이 아니었다.
 “큰일이군.”
 “이건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야.”
 “그 정도인가?”
 “물론이야. 위험한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니야. 수 년 동안 배를 탔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어찌해야 할지 감을 잡을 수가 없네.”
 “그토록 위험한 결정이란 말인가?”
 백무장은 곤룡호에 탄 육십육 명의 무인 중 유일하게 설천후를 이해하여 주는 인물이었다. 누구보다도 설천후의 바닷길에 대한 경륜(經綸)을 이해해 주었고 해박(該博)한 지식에 감동을 표했다.
 “우리의 앞길에 어떤 난관(難關)이 닥쳐올지에 대해 나는 어떤 자신도 할 수가 없네.”
 “그게 무슨 말인가? 난 알아들을 수가 없군.”
 “우리가 가는 길은 해로가 아니야. 아직 한 번도 배가 통과한 적이 없는 망망대해일 뿐이지.”
 “그래!”
 백무장도 놀랐는지 눈을 부릅떴다. 누구보다도 백무장은 설천후를 믿었다. 설천후가 자신하지 못한다면 누구도 자신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백무장이었다.
 백무장의 눈이 암울하게 가라앉았다.
 “더구나 팔월일세. 언제 태풍이 밀려올지도 알 수 없는 일이야. 아무리 곤룡호라 하더라도 태풍을 만나게 되는 날에는 산산조각으로 부서지고 말걸세.”
 “그렇겠지.”
 백무장은 묵묵하게 대답을 했다. 바다에 대한 지식이 일천한 백무장으로서는 어떤 반박도 있을 수 없었다.
 백무장의 얼굴이 하늘로 향했다. 때마침 불어온 가는 바람이 백무장의 얼굴을 스쳤다. 생각난 듯이 백무장이 얼굴을 돌려 설천후를 바라보았다.
 “정말인가?”
 “무엇 말이야?”
 “자네의 말 말이네. 우리는 정말 죽음 속으로 가고 있는 걸까?”
 “난 그렇게 생각해. 폭풍전야(暴風前夜)라는 말이 있지. 난 이곳을 삼 년 동안 지나다녔어. 태풍의 중심에 들어오면 다른 곳보다도 유난히 청명하고 바람이 없어. 그러나 곧 깊은 수렁에 빠진다는 것을 모든 뱃사람들은 알고 있는 법이지.”
 “그래?”
 백무장도 모든 것을 이해하겠다는 표정으로 설천후의 옆으로 비스듬히 몸을 기대었다. 백무장의 몸이 풀먹은 솜처럼 맥이 없어 보였다.
 백무장은 눈을 들어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약간의 열기(熱氣)가 넘치는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보던 백무장이 느닷없이 입을 열었다.
 “그럼, 우리는 모두 죽는 건가?”
 “그렇지는 않겠지. 운이 좋으면 살 수도 있지. 태풍에 휩쓸려 꼭 죽는다는 법은 없어. 살았다는 사람도 많이 보았어.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판단하고 있는 것과는 다르게 태풍 속으로 들어오지 않았을 수도 있는 일이야.”
 “그래도 살기보다는 죽기 쉽겠지?”
 “그건 그래! 모든 것은 하늘의 뜻이겠지.”
 백무장과 설천후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서로의 눈에 안타까움이 스쳐 지나갔다.
 갑자기 백무장이 몸을 일으키고 설천후를 쳐다보았다. 잠시 스쳐간 눈동자에는 무궁(無窮)한 궁금증이 넘쳐났다. 백무장은 설천후를 향해 다가섰다.
 백무장이 설천후의 손을 잡았다.
 “그런데 궁금한 게 있네, 설역관.”
 “뭐가?”
 “내가 알기로 자네는 가장 뛰어난 역관이고 학문(學文)도 이름이 높다던데 왜 이런 험한 일에 내몰린 거지?”
 “말하자면 사연이 길지.”
 설천후는 입술을 깨물었다.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던 자신의 아픈 과거가 주마등(走馬燈)처럼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다. 설천후는 입술을 깨물었다.
 
 ***
 
 설천후는 자신이 누구인지 몰랐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자신의 부모(父母)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누구도 그의 신세 내력을 알려주지 않았다고 해야 옳았다.
 설천후가 기억하는 바로는 자신을 기른 사람은 승려였다.
 응천부(應川部) 외곽에 자리한 서하산(棲霞山)은 응천부에서 약 십여 리 떨어진 곳에 위치한 산이었다. 서하산에는 서하사(棲霞寺)라는 육십이 칸의 승방을 지닌 고래사찰(古來寺刹)이 있었고, 당금의 방장(房長)은 소림의 제자인 유련선사(唯蓮禪師)라고 부르는 고승이었다.
 설천후를 길러준 사람은 유련선사였다. 마치 자신의 자식을 키우듯 설천후를 위했지만 한 번도 부모에 대해서 이야기한 적이 없었다. 설천후도 굳이 자신의 부모에 대해서는 물은 적이 없었다.
 설천후는 유련선사 밑에서 자라며 학문을 익혔고 보기 드물게 열세 살의 나이에 향시(鄕試)에도 등과(登科)한 적이 있었으나 가문이 알려지지 않은 관계로 등과의 꿈을 접어야 했다.
 명의 건국 초기부터 주원장(朱元章)은 철저한 가문위주의 등용(登用)을 했기에 가문이 화려하지 않으면 입신양명(立身揚名)을 이루기가 어려웠다. 설천후의 경우도 희생자였다. 결국 뛰어난 학문을 지닌 설천후였지만 가문의 뒷바침 없이는 한계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설천후가 선택한 것은 역관이었다. 나름대로 이민족(異民族)의 언어에도 능통한 면이 있었지만 천하를 돌아다니며 사심없이 사는 것도 좋을 것이라는 유련선사의 의견 때문이기도 했다.
 관(官)의 문(門)에 들어온 지 어언 삼 년, 역관의 직을 받은 그날부터 천축의 황실 통역관이 된 설천후는 일 년 중 십 개월을 바다에서 사는 몸이 되었다.
 
 
 2
 
 
 “그런 사연이 있었군.”
 “그래! 따지고 보면 나도 참 한심한 인생이지.”
 “난 몰랐다.”
 “이해해! 나를 알려고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니까.”
 설천후는 백무장의 변하는 안색을 보며 빙그레 웃었다. 아무에게도 말한 적이 없었으나 능히 그럴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백무장의 얼굴에는 안쓰럽다는 생각과 차마 말하기가 어렵다는 듯한 표정이 함께 어우러져 지워지지 않았다.
 
 ***
 
 멀리 조그만 점이 나타났다. 하늘에 떠 있는 조그만 점은 마치 붓으로 찍은 작은 점으로 보였다.
 “무슨 점같이 보이지 않아.”
 소림오호 중의 한 명인 금강도수(金剛刀手) 두호수(杜護洙)는 곁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원래 미시(未時)는 소림의 관찰시간이 아니라 점창(點蒼)이 일기 관찰을 하고 곤룡호를 감시하는 시각이었다. 그러나 날씨가 너무 좋았던 관계로 적지 않은 수의 제자들이 갑판에 올라 하늘을 보고 바다를 즐기는 중이었다.
 “글쎄, 잘 모르겠는데요.”
 소림오호 중의 한 명, 패도신장(覇刀神將) 복명후(卜明候)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나 눈은 빛을 뿌렸다. 하늘의 중앙에 동심원(同心圓)처럼 생겨나는 점을 보았던 것이다.
 복명후는 얼굴에 손을 얹어 가리며 하늘의 중앙을 바라보았다.
 “무언가 보이는데요. 마치 점 같아요.”
 “그렇지.”
 두호수는 자신이 먼저 보았다는 생각에 괜히 가슴이 뜨거워졌다. 끝없는 항해(航海)에 그들이 할 일이라고는 딱히 소일거리가 없었다. 소일거리라고는 서로 갑판에 나와 물 위로 솟구쳐 오르는 고기를 관찰하거나 내공을 이용해 고기잡는 내기를 하는 정도였다.
 그랬기에 하늘에 생겨난 조그만 점을 찾았다는 것은 매우 재미있는 일이고 으쓱해도 좋을 일이었다.
 “그런데 이상해요. 점이 커지는 것 같아요.”
 “어디?”
 복명후의 말에 도호수는 다시 눈을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과연 복명후의 말은 한 치의 오차(誤差)도 없었다. 점은 점점 커지고 있었다.
 “저게 뭐냐?”
 “모르겠어요.”
 그들의 말이 너무도 컸기 때문에 갑판에 올라와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무인들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복명후도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상해, 하늘이 갑자기 뿌연 느낌이 드는걸.”
 복명후의 말에 모두들 공감(共感)했다. 그렇게 맑게 보이던 하늘이 점차 어두워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누구도 눈치챌 수가 없었다. 너무도 은밀하게 어두워지고 있었고 하늘은 맑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시 눈을 돌리고 훑어보니 사방이 칠흑처럼 어두워오고 있었다. 복명후는 가볍게 몸을 떨었다.
 ‘불길하다. 혹시!’
 복명후의 집은 중원에서도 최남단 남해도였다. 얼굴이 파랗게 질려가는 복명후를 본 두호수도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콰아아아--!
 검은 흑점(黑點)이 떨어져 내린 것은 바로 그때였다.
 
 
 3
 
 
 우루루루--!
 쾅-- 콰드드--!
 갑자기 마른 하늘에 칼로 그은 듯한 섬광(閃光)이 일어났다. 동시에 사방에서 바위가 구르는 듯한 굉음이 울리기 시작했고 잔잔하던 수면이 천번지복(天飜地複)하기 시작했다.
 휘이잉!
 쏴아아-- 아아--!
 바람이 불었다.
 모든 것을 송두리째 쓸어가 버릴 것 같은 거친 광풍(狂風)이었다. 하늘은 급격히 어두워졌고 청명하던 하늘에서는 갑자기 굵은 소나기가 줄기줄기 사선(斜線)을 그으며 곤룡호를 내리쳤다.
 바람을 받을 대로 받은 돛대는 부러질 듯 휘어졌으며 돛은 찢어질 듯 팽팽하게 당겨졌다.
 미시(未時)를 조금 넘긴 시간이었으리라.
 쾅!
 콰드드드드--!
 사선으로 그어진 번개는 허공을 격하여 돛대에 떨어져 내렸다. 돛대는 중간이 부러져 선미로 덮쳤고 질긴 삼으로 만든 황포돛은 순식간에 걸레쪽처럼 찢어져 버렸다. 돛대는 무너지며 갑판에서 어쩔 줄 모르는 칠팔 명의 관병과 선부(船夫)를 덮쳐 버렸다.
 콰드드드드--!
 “악!”
 “피하라! 돛대가 무너진다.”
 갑판 위에서 우왕좌왕하던 관병들과 선부들이 혼비백산하여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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