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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은퇴, 그리고··· (1)

2018.05.28 조회 82,551 추천 1,255


 1. 은퇴, 그리고··· (1)
 
 
 
 
 
 삐익!
 상암 구장에 휘슬이 크게 울렸다.
 끝을 알리는 휘슬이었다.
 경기의 끝.
 올 시즌의 끝.
 그리고··· 커리어의 끝.
 
 [경기 스코어 0 : 3]
 
 K리그 클래식 제 38라운드.
 FC서울과 수원삼성의 더비매치는 그렇게 원정팀 수원의 승리로 끝이 났다.
 완패였다.
 서울은 경기 내내 이렇다 할 찬스를 만들지 못했고, 수비에서는 너무 쉽게 세 골이나 허용하고 말았다.
 
 리그의 최종 순위는 이미 정해져 있었기에 양 팀 모두 동기부여가 강한 경기는 아니었다.
 상대가 수원이라는 점만 빼면, 말이다.
 서울과 수원의 경기는 소위 ‘슈퍼매치(Super match)’라고 불리는 K리그 최고의 더비전이었다.
 게다가 이곳은 서울의 홈구장인 상암.
 결국 최대 라이벌과의 홈경기에서 0대3 완패인 것이다.
 상암을 찾은 서포터 입장에서는 힘이 빠지는 결과임에 틀림없었다.
 하지만 경기 종료 후, 서울의 팬들에게 실망 혹은 원망의 눈빛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마지막 휘슬이 불린 뒤에는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서 기립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이윽고 전광판에 한 선수의 얼굴이 클로즈업 되었고, 박수 소리는 더욱 거세졌다.
 심지어는 수원의 원정팬들조차 기립 박수 행렬에 동참하였다.
 “형님. 고생하셨습니다.”
 “은퇴 축하드립니다.”
 필드 위 21명의 선수들은 그에게 다가가 악수와 포옹을 청했다.
 관중석에 대형 현수막이 걸렸다.
 서포터들이 미리 준비한 이벤트중 하나였다.
 
 [FC서울의 위대한 캡틴 서주혁!
 당신을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몇몇 서포터들은 넘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여성 팬들도 많았지만, 굳이 비율을 따지자면 남성 쪽이 더 많아 보였다.
 곱상한 얼굴에도 불구하고 유독 남성 팬이 많았던 주혁이었다.
 
 곧이어 전광판의 화면이 바뀌고, 주혁의 커리어 활약상을 담은 영상이 재생되었다.
 모두가 감동에 젖어있는 순간, 단 한 사람, 주혁만이 남몰래 입술을 깨물었다.
 ‘요란하게 하지 말라니까.’
 조용히 은퇴하고 싶었다.
 작년에 부상을 당한 이후로 자신은 오히려 팀에 마이너스였다.
 그랬기에 은퇴를 결심했던 것이다.
 팀이 완패한 마당에 기립박수를 받는 것도 실은 영 불편했다.
 
 하지만 구단 측에서도 별 도리는 없었다.
 선수의 바람대로 은퇴식을 생략했다면 분명 홈 서포터의 원망을 말도 못하게 받았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레전드 대우’도 못하는 팀, 다른 선수도 아닌 서주혁의 은퇴식을 생략하다니, 라며 말이다.
 
 서포터들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전광판에는 계속해서 주혁의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FC서울뿐만 아니라 국가대표 시절의 활약상까지 담은 영상이었다.
 주혁도 전광판을 바라보았다.
 속내를 알 수 없는 눈빛으로.
 
 거침없이 달려가 태클을 날리고,
 머리에 붕대를 감은 채 헤딩 경합을 하고,
 195cm의 떡대와 용감하게 몸싸움을 하고,
 팀원들에게 고래고래 소리치고,
 상대 선수와 격렬하게 신경전을 벌이고.
 거 참.
 커리어 활약을 담은 영상임에도 골이나 어시스트 장면은 좀체 보이지 않았다.
 
 경기장 곳곳에 걸린 현수막 걸개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그라운드의 투사! 서주혁 선수, 당신은 이미 레전드입니다.]
 [FC서울의 가투소. 은퇴를 축하합니다.]
 
 ***
 
 기자회견장에는 꽤 많은 기자들이 모여 있었다.
 폼은 떨어졌어도 여전히 주혁은 주목도가 높은 선수였던 것이다.
 곧이어 양복을 차려입은 주혁이 들어왔다.
 유니폼을 입고 있을 때와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필드 위의 그가 그야말로 전사의 모습이라면, 말끔히 갖춰 입은 그는 말끔한 신사 그 자체였다.
 선이 가는듯한 외모와 거친 플레이스타일의 언밸런스한 조화는 분명 그의 인기요소 중 하나였다.
 
 주혁이 자리에 앉자 드디어 은퇴 기자회견이 시작되었다.
 “구단과 서포터를 비롯한 모두에게 감사드린다.”며 짧게 은퇴 소감을 밝힌 그는, 여느 은퇴선수들과 달리 매우 담담한 얼굴로 인터뷰를 이어갔다.
 
 “서주혁 선수는 K리그 올스타에 총 7회나 선정될 정도로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으셨는데요, 본인 인기의 비결은 뭐였다고 생각하시나요?”
 대학생쯤 되어 보이는 기자가 눈망울을 빛내며 물었다.
 질문의 퀄리티와 기자의 외모.
 어느 쪽으로 보나 스포츠보다는 연예가중계 쪽이 어울릴 듯 했다.
 은퇴선수의 기자회견에 어울리는 질문은 아니었던 것이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저보다 팬들의 사랑을 받을만한 선수는 얼마든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주혁은 이번에도 더없이 진지하고 담담한 어조로 대답했다.
 누군가는 겸손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았다.
 ‘잘 모르겠다.’는 말은 지극히도 솔직한 그의 심정이었다.
 
 “서울과의 계약이 아직 1년 남았음에도 은퇴를 선언한 것에 대해서 여러 가지 추측이 오가고 있습니다. 구단 측에서 은퇴를 권유했다는 소문이 사실인가요?”
 그러자 이번에는 배가 두둑히 나온 중년 기자가 손을 들었다.
 제법 날카로운 질문이었다.
 기존계약의 종료 후 연장계약이 되지 않아 은퇴하는 선수는 더러 있다.
 하지만 아직 계약기간이 남은 선수가 은퇴를 선언하는 일은 그리 흔하지 않았다.
 게다가 주혁은 FC서울의 코치직 제안도 거절했다고 하니, 팀과의 불화로 인한 은퇴는 아닌지 하는 소문이 도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만약 은퇴 이유가 불화라면, 꽤 좋은 기삿거리가 될 것임에 틀림없었다.
 배 나온 기자도 제발 그러하기를 바라며 물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주혁은, 기자들의 바람을 뒤로 한 채, 단칼에 소문을 일축했다.
 “사실이 아닙니다. 제가 먼저 서울 측에 은퇴의 뜻을 밝혔고 구단에서 상호 계약해지에 동의해 주었습니다.”
 “그럼 계약 기간을 채우지 않고 은퇴를 결심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제 플레이가 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주혁의 어조에 망설임이나 슬픔, 아쉬움 등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단호하고 명료한 대답.
 그 뿐이었다.
 
 재작년.
 서른다섯의 나이에 FC서울과 3년 계약을 체결했을 때, 축구계의 반응은 놀라움이었다.
 일반적으로 노장의 계약은 단년 혹은 2년 계약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울과 주혁, 양 측 모두 자신이 있었다.
 주혁은 자신의 몸 상태에.
 서울은 그의 자기관리 능력에.
 
 실제로 계약 첫해, 주혁은 팀에서 가장 많은 경기를 소화하며 훌륭하게 자신의 역할을 수행했다.
 매 경기 팀 활동량 1위를 놓치지 않았고, 운동능력의 감퇴도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그의 철저한 몸 관리 덕분이었다.
 
 그러나 시즌 말미에 당한 거친 백태클과 그로 인한 무릎부상.
 커리어 내내 ‘철인’이라고 불려온 주혁이었지만, 십자인대 부상에서 돌아온 뒤에도 원래의 폼을 되찾기란 불가능했다.
 지나치게 감퇴한 순발력과 속도.
 원래도 부족한 테크닉을 왕성한 활동량과 운동능력으로 커버하던 주혁이었다.
 때문에 긴 재활 끝에 복귀한 올 시즌의 그는, 확실히 기대 이하였던 것이다.
 
 주어진 역할을 철저하게 수행해내는 것이 주혁의 프라이드였다.
 그것만이 필드 위 자신의 존재가치라고 생각했다.
 항상 120%를 쏟아내며 필사적으로 팀에 도움이 되고자 했다.
 하지만 기동력을 잃어버린 그는 더 이상 팀에 보탬이 되지 못했다.
 본인의 떨어진 폼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누구보다도 그 자신이었다.
 그랬던 주혁이었기에, 은퇴 결정에 망설임은 없었다.
 후배들을 위해 길을 터주는 쪽이 옳은 방향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막상 동료 선수들은 아쉬워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실제로 오늘 인터뷰에서도 주장 장우영 선수가 ‘은퇴 번복하고 1년만 더 뛰어줬으면 좋겠다.’고 밝히기도 했구요.”
 장우영은 서울의 중앙수비수이자 올해부터 주혁의 배턴을 이어받은 신임 주장이었다.
 그런 그가 경기 후 인터뷰에서 공식적으로 아쉬움을 밝힌 것이다.
 1년만 더 뛰어줬으면 좋겠다고.
 립서비스가 아닌 백퍼센트 진심이었다.
 하다못해 플레잉 코치의 자리에서라도 함께해주기를 바라는 것이 신임 주장의 바람이었다.
 주혁은 그 존재만으로도 팀을 하나로 묶는데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글쎄요, 잔소리꾼이 사라져서 오히려 좋아할 것 같습니다.”
 주혁은 역시나 무덤덤한 어조로 대답했다.
 다만 이번에는, 그의 얼굴에 살짝 미소가 걸렸다가 곧 사라졌다.
 
 그렇게 약 50분 남짓의 기자회견도 끝나갈 무렵.
 마지막으로 한 여기자가 손을 번쩍 들었다.
 붉은 계열의 체크셔츠위에 카키색 야상을 대충 걸쳐 입은 캐주얼 차림.
 하지만 외모만큼은 유명 여배우 못지않았다.
 그 ‘미모의 여기자’는 웃음기를 가득 머금은 채 말을 꺼냈다.
 “그 동안 축구와 결혼했다는 소문이 있을 만큼 축구에만 몰두했던 서주혁 선수이신데요,”
 ‘축구와 결혼했다.’는 말에 몇몇 기자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온라인상에서 종종 언급되고는 했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주혁이 하도 축구밖에 모르는 삶을 산다고 하여 어느 네티즌이 지어준 별명이었다.
 
 주혁은 자신을 웃음거리로 만든 그 여기자를 살짝 흘겨봤다.
 하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은퇴 후의 계획은 어떠신가요? 코치라든지 유소년 육성이라든지, 축구 쪽으로 뜻이 있으신가요?”
 다른 기자들의 눈에도 호기심이 어렸다.
 그녀의 말마따나 축구와 ‘결혼’했던 서주혁이었다.
 음주, 흡연, 기타 사생활 문제 일체 없음.
 말 그대로 축구만 보고 살았던 축구 외길인생.
 그랬던 그가 이제는 축구와의 ‘이혼’을 앞두고 있으니, 과연 그 다음은 어떻게 될지 궁금한 것도 당연했다.
 
 “구체적으로 은퇴 후의 계획을 세우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주혁은 살짝 한숨을 내쉬고는 대답했다.
 “축구 관련 일을 할 생각은 없습니다.”
 
 ***
 
 서울 모처의 35평짜리 오피스텔.
 모든 일정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주혁이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은퇴 경기에 이어 기자회견까지.
 드디어 ‘끝났다’는 실감이 났다.
 어제까지만 해도 경기를 앞둔 탓에 그럴 겨를이 없었는데.
 
 그의 시선이 TV 옆 진열장으로 향했다.
 우승 상패와 트로피가 꽤 있었다.
 비록 MVP는 받아본 적 없었지만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는 6번이나 선정되었다.
 모아놓고 보니 꽤 뿌듯한 느낌도 들었다.
 늦게 빛을 본 선수치고 충분히 훌륭한 커리어를 보냈다고 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과분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주위에서 자신의 은퇴를 두고 ‘정말 후회 없겠느냐’고 물어왔지만 정말로 미련은 없었다.
 서른일곱.
 은퇴하기에는 적당한 나이였다.
 
 냉장고 안에는 캔맥주가 있었다.
 얼마 전, “은퇴 선물이야”라며 미모의 여기자이자 대학 동창인 주아가 전해준 것이었다.
 지난 13년 동안에는 그의 집에서 절대 찾아볼 수 없던 음료였다.
 프로선수가 된 후로, 주혁의 사전에 음주란 없었기 때문이다.
 금연은 당연한 것이고, 심지어는 그 맛 좋은 탄산조차도 입에 대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자신은 프로선수가 아니었다.
 오늘 막 은퇴했으니.
 주혁은 잠깐 고민하다가, 파삭하고 캔을 땄다.
 그리고는 꿀꺽꿀꺽 목구멍으로 넘겼다.
 왠지 모를 죄책감.
 하지만 그 이상으로 시원한 청량감이 느껴졌다.
 크.
 짜릿했다.
 
 ‘내일부터는 뭐 하지?’
 그제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사실 당장 오늘까지도 수원과의 경기에 집중하느라 다른 생각은 해볼 틈이 없었다.
 다 끝났다며 맥주까지 마실 여유가 되자, 그제야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내일은 우선 늦게까지 퍼질러 자다가, TV도 좀 보고, 시간 남으면 드라이브라도 하고···.
 
 맥주를 마시며 이런 저런 고민을 하다 보니 졸음이 왔다.
 90분 풀타임을 소화하고, 기자회견에, 맥주까지.
 이래저래 정신적 육체적으로 피곤했기 때문일까.
 주혁은 소파에 앉은 채로 스르르 잠이 들었다.
 
 그날 새벽.
 웬일로 꿈을 꿨다.
 꿈에서, 한 노인이 말했다.
 “자네, 회귀하게.”

댓글(69)

건필자    
재밌어요! 하하
2018.05.31 10:25
탱율    
금연이면... 원래는 폈는데 축구하면서 끊은건가요?? 그렇게보면 언제부터 흡연을 한건지... 비흡연이라고 해야하눈데 잘못 적으신건지...
2018.06.06 07:57
조아라사장    
기대되네요
2018.06.06 17:18
풍뢰전사    
회귀 방식이 신선하네요. 너, 회귀해 !! 건필하세요.
2018.06.06 23:23
so****    
구질구질 사연도 없고 복수나 원수도 없고 깔금한 회귀 강추입니다.
2018.06.08 06:07
라임젬    
나름 잘 은퇴했는데.. 재시작..
2018.06.11 17:39
흑웅천하    
크하하하. 회귀하게. ㅎㅎㅎㅎ
2018.06.11 18:40
넌아니야    
ㅁㅈ..? 뜬금없이 꿈에서 회귀하래 ㅋㅋㅋ
2018.06.12 07:52
소선비    
갑자기?. !
2018.06.12 14:18
didn    
참신하네요!!! 회귀트럭이나 죽음이 아니라서 ㅋㅋㅋㅋ
2018.06.12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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