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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상인(완전판) 1화

2018.05.25 조회 1,797 추천 5


 1.
 
 
 일원교의 경전에서 발췌
  ······
  일원교는 삼목이안수(三目二顔獸)란 신수를 숭배한다.
  전설에 의하면, 선인이냐 악인이냐에 따라 사람들에게 그 보이는 얼굴을 달리한다고 전해진다.
  선인에겐 그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달래 주는 천사의 모습으로, 악인에겐 나찰보다도 더 끔찍한 형상으로 출현한다.
  그것은 신수의 이마에 박혀있는 세 번째 눈이 선과 악을 가려 각기 전혀 다른 형상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즉, 신수의 눈에는 인간뿐만 아니라 사물의 본질까지 꿰뚫어 보는 영적인 힘이 내재된 것이다.
 
 
 
 서장
 
 태조 홍무제의 넷째 아들 연왕이 거병, 3년여의 격전 끝에 건문제를 몰아내고 즉위한 지 일년······.
 연왕은 전쟁으로 황폐해진 민초들의 삶은 등한시한 채 숱한 정벌사업을 벌였다. 이로 인해 곳곳에서 숱한 장정들이 징발되어 전장으로 끌려 나갔고, 그들은 이름모를 산야에 피 흘리며 뼈를 묻어야만 했다.
 빈곤한 처지에 놓인 백성들의 삶은 날로 피폐해져 밝은 미래는 꿈꿀 수도 없는 처지가 되었다. 더불어 연왕에 대한 백성들의 원망은 드세져 원말처럼 민란이 일어날 조짐마저 일었다.
 이렇듯 정국의 형세는 혼란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명 왕조의 국운이 흥왕기에 접어든 탓일까.
 민란이 일 것처럼 술렁이던 백성들의 고달픈 삶을 안타깝게 여겨, 헐벗고 굶주린 그들을 부모처럼 달래주고 어루만져 주는 자가 나타났다.
 장귀향!
 그는 일원상단이란 거대한 상단의 회주였다.
 장귀향은 자신이 보유한 황금 50만 냥을 풀어 민초들의 구제사업에 앞장섰다. 황궁에서조차 수수방관하던 민초들의 형편을 일개 상단의 힘으로 돕고 나선 것이다.
 백성들은 장귀향이란 인물을 날로 존경하게 되었다. 그에 반해 명 왕조는 민심으로부터 멀어져 갔다.
 그러던 어느 날, 백성들 사이에 칭송이 자자했던 휘명상단에 어둠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하는데···
 
 낮은 살아있는 생명에 생기를 불어넣지만, 밤은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게도 하고 사멸시키기도 한다.
 지나온 역사의 수레바퀴는 항상 밤에 커다란 이변을 만들어내곤 하였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이 대부분 깊은 잠에 빠져든 이 시각. 한 모처에서는 심상치 않은 대화를 주고받는 두 사람이 있었다.
 “어떻게 되었느냐?”
 “도착하려면 한 식경 정도 남았습니다.”
 “그래.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그 어떤 말도 새나가서는 안 되는 일이다. 그자들에게도 충분히 일러두었겠지?”
 “그 점은 염려 마십시오, 나리. 오늘의 일은 기억에서 영원히 지워 버리라고 일렀습니다. 뿐만 아니라 개미새끼 한 마리 빠져나가서는 안 된다고 충분히 전해 두었습니다.”
 보고를 하고 있는 자의 목소리엔 냉기가 흘렀다. 그는 전신에 흑의를, 머리엔 흑색 두건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뻣뻣하게 선 채 고개를 조아리며 보고하는 그의 몸에선 가공할 살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방과 방의 경계엔 대나무로 엮은 발이 쳐져 있었다. 나리라 불린 자는 발이 쳐진 건너편에서 묵묵히 흑의인의 나머지 보고를 받고 있었다. 그는 어둠에 묻혀 검은 형체만이 보일 뿐이었다.
 
 언뜻 보기에도 수백에 달하는 흑의인들. 월담하는 그들의 몸놀림은 한결같이 예사롭지 않았다.
 일장에 달하는 담장을 뛰어넘고, 주변을 살피며 건물 곳곳으로 은신해 가는 그들. 움직임은 쾌속했으며 미세한 기척조차 남기지 않았다. 다들 형체가 없는 어둠의 그림자 같았다.
 곳곳에 무사들이 창을 들고 경계를 서고 있었다. 이따금씩 병사들이 병영을 돌 듯 순시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지만, 애석하게 그들은 그 어떤 낌새도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다.
 꼬리를 잇듯 연달아 건물로 숨어들던 흑의인들의 간격이 뜸해졌을 때였다.
 펑-
 퓌우우웅-
 어디선가 갑자기 폭죽 터지는 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칠흑 같이 어둔 하늘로 붉은 연막탄이 치솟았다.
 그와 동시에 전각 곳곳에 은신해 있던 흑의인들은 일제히 모습을 드러냈다. 공격신호가 떨어진 것이다.
 
 다다다닥-
 “웬 놈들이!”
 푹-
 “커억!”
 써걱-
 쿵-
 수십 채에 달하는 건물 곳곳에서 일제히 모습을 드러낸 흑의인들. 그들은 건물을 경비하는 무사들을 닥치는 대로 도륙하기 시작했다.
 무사들은 침입한 흑의인들을 발견하기가 무섭게 변변한 대응조차 못하고 선혈을 흘리며 바닥에 쓰러져 내렸다. 그만큼 흑의인들의 동작은 날렵했고 검의 움직임은 섬전 같았다.
 그들에게선 살인에 대한 일말의 주저함도 찾아볼 수 없었다. 거침없는 흑의인들의 검이 움직일 때마다 건물 곳곳에서 처절한 비명소리와 신음소리가 잦아들었고, 무사들의 시신은 늘어만 갔다.
 
 그들의 만행은 방안에서도 이뤄지고 있었다.
 콰당-
 “누구냐!”
 “으아아아!”
 “침입이다!”
 방으로 뛰어들어 흑의인들이 살인을 하고 다닐 때 어디선가 절규에 가까운 고함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지만 흑의인들은 당황하거나 망설임이 없었다. 마치 감정이 없는 사람들처럼 자신들의 임무를 수행할 따름이었다.
 뒤늦게나마 사태를 파악한 무사들이 건물 곳곳에서 뛰쳐나왔다.
 무사들의 수는 수백에 달했다. 대체 이곳이 어디기에 이렇게 많은 무사들이 쏟아져 나오는지 의문이 일 정도였다.
 곧이어 여기저기서 무사들과 흑의인들의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채앵-
 “으아아아- 내 팔!”
 쇄애애액-
 “윽-”
 “회주님께 보고하라!”
 “살인귀다!”
 누군가의 절규하듯 외치는 소리가 허공을 맴돌았다. 그 소리는 마지막 삶의 발악처럼 들렸다.
 그랬다. 그들에게 있어 흑의인들은 진정 인간이 아니었다. 단지 겉만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 존재일 뿐이었다.
 
 다음날.
 “자네, 들었는가?”
 “무슨 말?”
 “놀라지 말게. 글쎄, 휘명상단이 하룻밤 사이에 잿더미로 변했다는 게야?”
 “뭐, 뭐라고! 그게 정말인가? 도무지 믿기질 않는군.”
 누구에 의해 시작된 건지는 모르지만, 이런 소문은 삽시간에 중원을 휩쓸기 시작했다.
 휘명상단(煇明商團)이 무너지다니······.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틀림없이 상단을 음해하려는 자들의 헛소문일 거라고 생각하면서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휘명상단이 어떤 곳인데, 그리 쉽사리 무너진단 말인가. 사람들은 믿고 싶지 않았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한다면, 그 뒤에 올 파장에 겁이 났다는 말이 옳을 것이다.
 그러나 믿고 싶지 않은 소문은 진실로 판명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휘명상단!
 어느 날 혜성처럼 등장해 삽시간에 중원 상권의 삼분지 일을 차지한 상단이다. 황제 영락제가 등극하자 그들의 성세는 급류를 타듯 중원 곳곳으로 뻗어나갔다. 무슨 연유인지 휘명상단에 대한 영락제의 지원은 전폭적이었다.
 상황이 이러하니 상단이 성장하는 것은 당연했다. 휘명상단은 갈수록 자금이 넘쳐 났고, 중원 중소상단의 모든 자금줄이 휘명상단의 손아귀에서 좌지우지 될 정도에 이르렀다.
 황제 영락제는 등극을 한 후에도 몽고족을 몰아내기 위한 숱한 전쟁과 주변 지역에 대한 대규모 정벌을 단행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휘명상단에서 상당액의 자금이 군자금으로 흘러 들어갔다고 한다.
 사람들이 말하길, 그들이 자금을 동결시킨다면 나라의 재정이 휘청거릴 정도라 하였다.
 영락제가 권력으로 나라를 움직인다면, 이제 휘명상단은 그들의 자금력으로 중원 곳곳의 상단을 좌지우지할 정도였다.
 불안해진 중원 대부분의 상단은 은밀히 연합을 하여 휘명상단을 견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하지만 이미 자신들의 손으로 무너뜨리기엔 너무도 거대한 상단으로 부상한 터였다.
 국고를 능가하는 자금력!
 만일 군자금을 동원하여 명 황조를 전복시키려 한다면 능히 성공할 것이란 소문이 공공연히 나돌기까지 했다.
 
 삭초제근!
 위험한 싹은 사전에 제거해 버린다는 말이다.
 고래부터 전해 내려오는 진리다.
 이제 휘명상단은 황궁의 시각에서 보면 당연히 제거해야만 하는 대상이 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런 움직임은 없었다.
 영락제는 휘명상단에 굵직굵직한 국책사업의 대부분을 넘겨주기까지 한 것이다. 그것은 바로 그들에게 날개를 달아준 격이라고나 할까.
 휘명상단은 갈수록 철옹성이 되어 갔고, 중원에 산재한 수많은 상단들은 견제는커녕, 자신들이 살아남기 위해 이제 그들의 눈 밖에 나지 않도록 몸을 사려야 할 지경에 처하고 말았다.
 중원을 다스리는 건 황제다. 하지만 중원 안에는 무림이란 전혀 이질적인 세계가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은 황제도 감히 손을 대지 못할 정도였다.
 중원과 무림!
 이제 그 중심에 또 하나의 낯선 세력이 등장했다고 사람들은 말했다. 당연히 그것은 휘명상단을 일컫는 말이다. 그런데 이런 거대한 세력이 하루아침에 잿더미로 화하게 될 줄이야······.
 과연 누가 짐작이나 했을까?
 
 “알고 보니, 휘명상단이 영락제의 황위 찬탈 때 군자금으로 황금 십만 냥을 대기도 했다는군.”
 “정말인가?”
 “소문이 파다하다니까.”
 “허허!”
 “그뿐인 줄 아는가? 듣자하니 휘명상단의 회주가 무림의 엄청난 고수래.”
 
 상단이 무너진 이후. 갖가지 소문이 무성했지만 진실의 여부는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정확하게 알려진 사실은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하룻밤 사이에 벌어진 휘명상단 소속 삼천여 명의 몰살 사건······.
 이러한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중원 전체가 벌집을 쑤신 듯 정국이 어수선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뭐라고!! 반드시 원흉을 찾아내도록 하라!!”
 휘명상단에 대한 보고를 받은 영락제는 진노했다. 그는 황궁고수들을 선발, 암황대(暗皇隊)란 비밀조직을 구성했다. 상단을 무너뜨릴 정도면 어지간한 군소세력으론 불가능하단 판단에서였다.
 암황대는 황제의 특명에 의해 살인 면책을 부여받아 무림을 들쑤시고 다녔다. 그렇지 않아도 어수선한 중원은 암황대로 인해 더욱 혼란스럽게 돌아갔다.
 그러나 근 일년여에 걸쳐 중원 곳곳을 뒤졌지만 실낱 같은 단서 하나 잡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암황대에 의해 다소라도 혐의가 있는 자로 판명되면 모두 사형에 처해졌다. 그 수가 무려 500여 명에 달했으나 범인은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휘명상단의 3000여 명에 달하는 목숨을 앗아간 원흉은 과연 누구란 말인가?
 그런 가운데 시간은 흘러갔고, 사건은 해결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한동안 중원을 술렁이게 하던 이 일은 미궁 속에 빠져 점차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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