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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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2018.06.04 조회 1,501 추천 7


 Prologue
 
 
 
 
 
 
 
 “야, 이 자식아! 까라면 까! 뭔 말이 이리 많아!”
 
 피곤함이 잔뜩 어린 서준영의 면전으로 고 사장의 험한 말이 쏟아졌다.
 
 고 사장은 자신의 명령에 대드는 준영이 영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못마땅한 걸로 따지자면 준영이 더했다.
 
 “이번에는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인터뷰를 방송하기로 했잖습니까? 제가 한 달 내내 수요 집회 따라다니면서 할머님들 취재하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르십니까? 겨우겨우 설득해서 인터뷰 따고, 밤새워서 편집까지 마쳤는데, 게다가 당장 내일 아침에 방송해야 하는데 이제 와서 갑자기 촬영을 다시 하자시면 어쩝니까?”
 
 “이 새끼야, 그냥 좀 다시 하라고!”
 
 “사장님!”
 
 “야, 인마! 이번 건 그냥 가서 인터뷰만 간단하게 따면 되는 거야. 설득할 필요도 없어. 그쪽과 이미 이야기가 다 된 거란 말이야. 그런 건 내일 방송이 아니라, 오늘 오후 방송이라도 충분히 만들 수 있잖아!”
 
 “아니, 그래도 취재한 게 안 나가면 할머님들이 얼마나 상처를 입으시겠습니까? 제가 약속한 것도 있는데······.”
 
 “야! 그 노인네들이 너네 할머니야? 어차피 앞으로 안 보면 그만이잖아! 잔말 말고 당장 가서 인터뷰나 따!”
 
 준영은 고 사장의 윽박지름에도 말없는 반항인 양 물러나지 않고 불만 어린 표정으로 서 있었다.
 
 “이 새끼가 진짜······!”
 
 휙!
 
 퍽! 땡그랑!
 
 재떨이가 준영의 귓가를 스쳐서 문에 처박히곤 바닥에 떨어졌다.
 
 “너, 이 새끼! 자꾸 이러면 재미없어! 고등학교 퇴학당한 놈이 여기 말고 어디서 일할 수 있을 것 같아! 엉? 이 바닥 인생 쫑 내고 싶냐? 내가 못할 것 같아!”
 
 “······알았습니다. 촬영하고 오죠.”
 
 준영의 반항은 거기까지였다. 밥줄을 쥐고 있는 고 사장 앞에서 그만큼 개갠 것도 충분하다 못해 넘쳤다.
 
 준영이 고 사장의 쏘아 대는 시선을 뒤통수로 맞으면서 사장실을 나오니, 은근히 귀를 기울였을 게 뻔한 다른 직원들이 관심 없다는 양 딴청을 피우고 있었다.
 
 준영이 지친 표정으로 몇 걸음 옮겼을 때, 고 사장의 비서인 이수진이 다가왔다.
 
 “이거 받으세요.”
 
 수진이 내미는 손에는 서류 봉투가 들려 있었다.
 
 “뭔데요, 그게?”
 
 “뭐긴 뭐예요, 새 기획안이죠. 꼭 그것대로 인터뷰랑 편집하시래요. 특히 굵은 글씨로 써져 있는 건 꼭 자막 처리하라고 하셨어요.”
 
 “······.”
 
 대명 프로덕션이라는 회사의 VJ 겸 PD인 준영의 어느 날 아침은 그렇게 한숨만 나왔다.
 
 준영은 자기 자리에 털썩 앉아서 서류 봉투에서 기획안을 꺼냈다.
 
 보아하니 대명 프로덕션에서 짠 게 아니라 인터뷰이(interviewee, 인터뷰에 응하는 사람) 쪽에서 작성한 것 같았다.
 
 “어디 보자, 이번에는 어떤 놈팡이가 방송을 홍보물로 만들려나······.”
 
 준영은 자조하며 기획안을 몇 장 넘겼다.
 
 비서가 말했던 굵은 글씨가 종종 눈에 띄었다.
 
 건설업계의 차세대 리더, 지안 건설! 두려움 없는 개척자! 포기를 모르는 불도저! 등등.
 
 피식.
 
 “쌍팔년도 방송도 아니고, 이건 뭐······.”
 
 어제 고 사장이 좋은 데 간다며 들떠 있더니만, 누군가 방송 로비를 한 모양이었다.
 
 “대체 어떤 놈이 방송을 장난으로 아는 거야?”
 
 준영은 기획안을 다시 앞쪽으로 넘겼다.
 
 그리고 인터뷰이의 이름을 발견했다.
 
 “방혁태······.”
 
 준영의 이맛살이 와락 구겨졌다.
 
 
 
 01. 더 이상은······ 못 참겠다!
 
 
 
 
 
 
 
 서초구에 위치한 어느 5층 건물의 주차장.
 
 낡은 아반테 승용차 안에서 준영은 담배 연기를 조금 열린 창문 너머로 흘리고 있었다.
 
 “진짜 미치겠네······.”
 
 준영은 정말 미치고 팔짝 뛸 것 같았다.
 
 그가 취재해야 할 인터뷰이의 이름이 하필 방혁태였다. 가뜩이나 인터뷰이가 졸업한 학교는 세한고인데다 준영과 나이도 같았다.
 
 동명이인이길 빌었지만, 동창인 혁태일 수밖에 없었다.
 
 아니, 준영은 고3 때 퇴학을 당한 몸이니 동창이라고 부르긴 애매했다.
 
 어쨌든 중요한 건 하나였다.
 
 준영 자신을 퇴학당하게끔 만들었던 혁태를 이제부터 직접 취재해야 한다는 것.
 
 “후우, 준영아. 이건 그냥 일이다. 네가 해야 할 일일 뿐이야. 과거는 잊자. 제발, 제발······.”
 
 준영은 그렇게 스스로를 달래며 차에서 내렸다.
 
 지안 건설은 5층 건물의 3층부터 사용하고 있었다.
 
 준영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에 내리자, 안내 데스크 안에서 안내원이 그를 맞이했다.
 
 “대명 프로덕션의 서준영입니다. 혁······, 방 사장님과 인터뷰 약속이······.”
 
 “아! 잠시만요.”
 
 준영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안내원 아가씨는 알겠다는 듯 바로 호출 버튼을 눌렀다.
 
 이윽고 중년의 사내가 나타났다.
 
 그의 뒤로 검은 양복 안에 흰 티를 받쳐 입은 덩치 두 명이 따르고 있었다.
 
 “어서 오십쇼. 장 부장이라고 합니다.”
 
 장 부장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한 중년의 사내는 준영에게 명함을 내밀었다.
 
 명함에는 ‘지안 건설 제2기획부장 장승화’라고 적혀 있었다.
 
 “서준영이라고 합니다.”
 
 명함 같은 걸 가지고 다니지 않는 준영인지라 말로 자신을 소개했다.
 
 “반갑습니다. 그런데, 조금 늦으셨습니다?”
 
 “아, 생각보다 차가 좀 막혔습니다. 죄송합니다.”
 
 사실 주차장에서 괴로워하느라 늦은 것이지만, 준영은 흔한 변명으로 대신했다.
 
 “하하, 아닙니다. 정 미안하시면 저희 사장님 인터뷰나 때깔 나게 뽑아 주십쇼. 그러면 됩니다.”
 
 “네······.”
 
 “이리 오십쇼.”
 
 장 부장이 길을 안내하자 준영은 그의 뒤를 따라갔다.
 
 덩치 두 명은 준영의 뒤에 바싹 붙었는데, 준영으로선 마치 포위라도 당한 느낌을 받았다.
 
 ‘뭐야, 이 조폭 같은 놈들은······.’
 
 준영은 덩치들을 힐끗 돌아보면서 장 부장을 따라 사장실로 향했다. 둘이 사장실 앞으로 가고 나서야 덩치들은 더 이상 따라오지 않았다.
 
 사장실 문 앞에서 어여쁜 비서가 준영과 장 부장을 맞이했다.
 
 “미스 오, 사장님께 인터뷰 촬영 왔다고 전해 드려.”
 
 장 부장은 비서에게 실실 웃으며 말을 전했다.
 
 “네, 잠시만요. 사장니임, 인터뷰 촬영 왔다는데요?”
 
 비서가 인터폰에 대고 콧소리를 내며 말했다.
 
 -들어오라고 해.
 
 “네. 들어오시래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사장실 문을 열어 주었다.
 
 준영은 문을 여느라 자리에서 일어난 그 비서의 치마가 좀 심하게 짧다고 생각하며 사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사장실 안에서 준영은 책상에 다리를 걸친 채 의자에 기대앉은 누군가를 볼 수 있었다.
 
 “사장님, 이 사람이 오늘 인터뷰를 촬영할 겁니다.”
 
 장 부장은 의자에 앉은 사내에게 공손하게 말했다.
 
 사내는 당연히 혁태였다.
 
 제법 살이 찐 모습을 보고 혹시 싶었지만, 그 동태처럼 탁한 눈빛만큼은 여전했다.
 
 준영은 자신이 아는 혁태가 맞구나 싶어 벌써부터 한숨이 푹 나왔다.
 
 “어서 오시오. 안 그래도 기다리고 있었는데······ 음?”
 
 준영은 카메라 가방을 열고 6밀리 카메라를 삼각대 위에 설치하다 혁태와 눈이 마주쳤는데, 자신을 보는 혁태의 시선에 물음표가 생기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제발 알아보지 마라. 제발······!’
 
 하지만, 사실 못 알아보는 게 더 힘들 준영과 혁태 사이였다.
 
 “잠깐, 어디서 많이······? 혹시 서준영?”
 
 ‘이런 젠장!’
 
 “서준영 맞지, 세한고 다니던? 하하하, 네가 나 인터뷰하러 온 거냐?”
 
 준영이 인정을 한 것도 아닌데, 혁태는 이미 확신을 한 듯 보였다.
 
 “오랜······ 만이다······.”
 
 준영은 애써 웃으려고 노력하면서 말을 이었다.
 
 “용케 살아 있었네? 마지막으로 봤을 땐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은 표정이더니만······.”
 
 혁태의 말에 애써 그린 미소가 준영의 얼굴에서 확 사라졌다.
 
 “사장님, 아시는 분이십니까?”
 
 장 부장이 끼어들며 물었다.
 
 “어, 나랑 같은 고등학교 다녔던 놈이야.”
 
 “아, 그럼 사장님 동창생이십니까?”
 
 “동창은 무슨······ 이 새끼, 고3 때 퇴학당했었어.”
 
 멈칫.
 
 촬영 준비를 하던 준영의 손이 일순 멈추었다가 다시 움직였다.
 
 준영은 스스로가 대견하다고 느껴질 만큼 잘 참아 내고 있었다.
 
 “아······.”
 
 장 부장은 전혀 예상치 못한 이야기가 나오자 일순 난처해 했다.
 
 “그래도 이 넓은 세상에서 같은 학교에 다니던 사람을 인터뷰하게 된 게 보통 인연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니 이번 인터뷰도 더 잘해 주시겠죠?”
 
 말하는 투가 마치 인터뷰 잘 만들라고 강요하는 것 같았다.
 
 “잘해야지. 내가 이 인터뷰 공중파에 내보내려고 쓴 돈이 얼만데? 내가 너네 사장에게 먹인 술값만 해도······.”
 
 혁태는 고 사장에게 접대한 걸 갖고 나불거렸다.
 
 사실 준영으로서는 이미 짐작했던 바라서 별로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내용이었다.
 
 “인터뷰 시작할게.”
 
 “······할게?”
 
 준영이 무심코 한 말에 혁태는 같잖다는 표정으로 말꼬리를 잡았다.
 
 제가 먼저 반말에 새끼 운운하더니, 정작 반말 듣긴 싫은 모양이었다.
 
 “······인터뷰 시작하겠습니다.”
 
 “여기가 좋겠지?”
 
 혁태는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 앞의 소파에 앉으면서 말했다.
 
 사실 어디에 앉든 무슨 상관이 있을까.
 
 준영은 얼른 이 망할 인터뷰를 해치우고 이곳을 떠나고 싶을 뿐이었다.
 
 “아,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장 부장이 갑자기 껴들더니 책상 위의 사장 명패를 혁태의 뒤쪽 가까이 옮겼다.
 
 “우리 사장님 명패가 뒤로 잘 보이게 부탁 좀 합시다. 사장님 성함 세 글자가 딱 각인돼야 하니까.”
 
 찍는 사람 입장에서는 보통 인터뷰이 얼굴 뒤쪽으로 검은 명패가 이어지는 구도를 피하기 마련이지만, 준영은 아무래도 좋았다.
 
 준영은 무심하게 광도를 체크하고 화이트 밸런스도 조정하고서, 녹화를 시작하려 했다.
 
 “아, 잠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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