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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2018.06.04 조회 1,859 추천 6


 Prologue
 
 
 
 
 
 신들의 시대(Gods-Period)!
 
 많은 신들이 득세해서 세상은 혼돈에 휩싸였다. 이때 절대 존재 오딘의 여식이자 평화와 안식의 여신 루나께서 지상에 강림했다.
 
 여신 루나는 전투의 신으로 돌변해서 다른 신들과 싸웠다.
 
 불꽃이 대지를 뒤엎고 바닷물이 마르고 산은 무너져 평지로 변했고 대지는 다시 갈라지고 융기해 모습이 바뀌었다.
 
 그리고 그 위에 다시 몇 달에 걸쳐서 비가 쏟아졌고 바다와 강이 생겨났다.
 
 영겁의 영화를 자랑하던 신들의 시대도 마침내 종말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많은 신들이 루나 신에 의해 멸망하고 대륙은 온통 죽음의 땅으로 변했다.
 
 루나 신은 자신 앞에 굴복한 신들 중 코끼리 모양의 풍요 신 가네쉬로 하여금 대륙을 다시 비옥한 땅으로 만들게 했다. 그리고 대륙에서 가장 높은 메비르트 산에서 새로 만든 대륙의 이름을 명명했다.
 
 “이 땅을 이베리아 대륙으로 부를지어다.”
 
 루나 신은 새로 만든 대륙에 새 생명체를 만들었다. 그중 자신과 가장 닮은 생명체를 만들었으니 그 존재가 바로 인간이다.
 
 인간은 루나 신의 축복 속에서 문명과 나라를 만들었다. 그렇게 인간에 의해 최초로 만들어진 나라가 바로 베르 왕국이었다.
 
 베르 왕국 이후 이베리아 대륙에는 우후죽순 여러 나라가 세워졌다. 각 나라들은 대륙을 통일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 즉 전쟁을 벌였다.
 
 최후에 승리한 나라는 신성 로만 제국이었다. 로만 제국이 대륙을 통일한 후부터 인간들은 공통적으로 신성력을 사용했다.
 
 신성력 1,055년.
 
 천 년 동안 이베리아 대륙을 지배해 왔던 로만 제국은 북방 야만족인 우트족의 침략과 내부의 부패, 또 시대 흐름에 뒤처지면서 결국 멸망했고 대륙은 다시 혼란에 휩싸였다.
 
 신성력 1,300년.
 
 이베리아 대륙은 중앙 판게모니아 고원을 기준으로 위쪽은 야만인 우트 족이 만든 투르크 제국이, 아래쪽은 제노바 왕국과 이노트 왕국, 바이첸 왕국이 건국되어 대륙을 지배했다.
 
 이베리아 대륙의 3개 왕국은 각기 신성 로만 제국의 황족들이 세운 나라로 3국은 연합해서 강대국인 투르크 제국을 견제했다.
 
 그런 가운데 이베리아 대륙은 점차 안정되기 시작했고 다시 100년이 흐른 신성력 1,400년, 바이첸 왕국에서 이 이야기는 시작된다.
 
 
 
 Chapter 1 간신 말콤 공작의 부활
 
 
 
 
 
 『골든 로드(Golden road)란 황금의 길, 바로 통치자, 지배자의 길을 말한다. 이 골든 로드를 걸은 진정한 지배자를 사람들은 임페리얼 엠퍼러(Imperial Emperor)라 불렀다.』
 
 이베리아 대륙 역사에 있어서 대표적인 간신을 들라고 하면 사람들은 주저하지 않고 말콤 공작을 고를 것이다.
 
 말콤 공작은 천 년 전, 신성 로만 제국의 중흥기를 풍미한 권력자였다.
 
 역사학자들은 11대 마르쿠스 황제에서부터 13대 멤피스 황제에 이르기까지 3대 황제의 통치 기간을 가장 중흥기로 보았다.
 
 이때 신성 로만 제국은 북방은 물론 남쪽 섬 왕국에서도 조공을 바칠 정도로 강성했다. 그리고 문화도 가장 활발하게 꽃피웠다.
 
 그 3대 황제를 모두 곁에서 모신 자가 아이러니하게도 말콤 공작이었다.
 
 하지만 역사서에는 말콤 공작을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충신을 모함하고 배신에 배신을 거듭하는 등, 온갖 나쁜 짓만 골라 한 간신 중에 간신으로 기록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정말 말콤 공작은 간신이란 말인가?
 
 말콤 공작의 탄생을 두고 이런 전설적인 이야기가 아직까지 사람들 사이에 전해져 오고 있다.
 
 어느 날 황금 드래곤 꿈을 꾼 말콤 공작의 아버지는 이것이 일세의 영웅을 알리는 태몽임을 알았다. 하지만 그날 하필 부인과 첩들이 모두 이웃 영지의 연회에 참석한 터라 그는 하녀를 억지로 취했다. 결국 하녀가 덜컥 아이를 가지게 되었는데 그 아이가 바로 말콤 공작이었다는 것이다.
 
 민간에 전해져 오는 설화이기는 하지만 그 말이 맞다면 말콤 공작은 드래곤의 기운을 타고 났다는 뜻이다. 그것도 골드 드래곤으로 말이다.
 
 황금과 드래곤은 모두 황제를 상징했다. 그만큼 말콤 공작은 뛰어난 인물이었다는 말이다.
 
 로만 제국의 역사서에 보면 그는 11대 마르쿠스 황제에 의해 발탁되었다.
 
 당시 그의 나이 20살이었는데 놀랍게도 그는 그때 무의 정점이란 소드마스터였다고 한다.
 
 마르쿠스 황제는 그를 황궁 근위 기사단의 단장으로 삼았고 그의 나이 40살에 그는 인간이 이를 수 있는 마법의 정점인 7서클 마스터 마도사가 되었다.
 
 12대 옥타비오 황제는 그를 황궁 수석 마법사로 삼고 재능을 아껴 항시 가까이 두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당시 옥타비오 황제는 반기를 든 이민족과 제국 내 반란 세력을 소탕하며 황제의 권위에 도전하는 세력을 가차 없이 제거하면서 역대 황제 중 가장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다.
 
 이때 말콤 공작은 지휘관으로서 최고의 역량을 발휘해 불패의 명장으로 유명해졌다.
 
 뿐만 아니라 그는 글 쓰는 능력이 뛰어나고 음악에도 천부적인 재능이 있어서 제국 문화의 꽃을 활짝 피웠다.
 
 무엇보다 말콤 공작의 가장 큰 장기는 정치적인 감각이었다. 그는 정치가로서 탁월한 식견을 가지고 제국의 정치에 영향을 미쳤다. 그의 정치는 백성들을 위한 민의의 정치였다.
 
 당연히 초창기 그의 정치는 제국민들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급진적인 개혁 성향의 정치는 보수적인 성향의 귀족들과 항상 부딪칠 수밖에 없었다.
 
 한 손으로 여러 손을 막을 수는 없는 법. 결국 그의 개혁안은 기득권층 귀족들에 의해 모두 무산되고 말았다.
 
 하지만 말콤 공작은 이에 실망하지 않고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정치를 기록에 남겼다. 그것이 바로 ‘정계개혁론’이다.
 
 그는 제국 최강의 소드마스터이자 마도사였다. 또한 시대를 앞서 간 정치가이자 뛰어난 문장가에 작곡가였지만 40대 후반까지 그의 작위는 고작 백작이었다.
 
 당시 신성 로한 제국에서는 소드마스터만 되어도 공작의 작위를 내렸다. 마도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말콤은 20살에 소드마스터로 백작이 된 이후 계속 백작의 자리에 머물렀다.
 
 새롭게 등극한 13대 멤피스 황제가 대신들에게 물었다.
 
 “말콤 백작은 능력도 있고 선황께서 아끼던 인재인데 왜 쓰지 말아야 하는가?”
 
 제국의 대귀족들은 입을 모아서 말콤을 헐뜯었다.
 
 “그는 성정이 사납고 치졸해서 중임을 맡길 그릇이 못 됩니다.”
 
 “글이나 노래로 백성들이나 현혹하는 그런 자가 어떻게 대신이 될 수 있단 말입니까?”
 
 “선황께서는 그자의 세 치 혀에 속으셨을 뿐입니다.”
 
 “그자의 간계 때문에 고생한 대신이 한둘이 아닙니다.”
 
 귀족들은 모두 말콤 공작을 간신이라고 비난했다.
 
 귀족들이 이렇게 말콤을 싫어한 이유는 바로 그의 신분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말콤 공작은 어머니는 노예 신분으로 알려졌다.
 
 당시 귀족들은 부인과 첩을 두었는데 부인은 귀족가의 여인이었고 첩은 미색이 고운 평민 여자들이었다.
 
 당연히 모친의 신분에 따라서 귀족가에서 태어난 자식들은 신분 격차가 있었다.
 
 첩에서 태어난 서자들에 비해서 노예 신분의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말콤은 신분이 더 낮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런 자가 출세해서 귀족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으니 귀족들로서는 당연히 못마땅했을 것이다.
 
 다행히 멤피스 황제는 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말콤을 제국의 재상으로 삼고 공작 작위를 내린다.
 
 그런 기대에 부응해 말콤 공작은 재상이 된 후, 귀족들과 화합해서 상생의 정치를 펼치며 안정되게 제국을 이끌었다.
 
 하지만 귀족들은 연합해서 말콤 공작을 제거하려 했다.
 
 결국 말콤 공작은 멤피스 황제가 붕어한 다음 해, 의문의 죽음을 당한다. 사람들은 말콤 공작이 귀족들에 의해 암살당했을 거라 생각했다.
 
 기득권층인 귀족들이 암살해서 죽이고 싶을 정도로 싫어했던 말콤 공작을 당시의 백성들과 노예들은 과연 미워했을까?
 
 그는 노예 어머니에게 태어나서도 소드마스터에 마도사가 되었다. 그리고 황제의 신임을 받으며 제국 최고의 권력자가 된 인물이다.
 
 과연 이런 말콤 공작을 백성들은 미워했을까?
 
 오히려 본받아서 자신들도 그를 따라 성공하고 싶지 않았을까?
 
 말콤 공작의 사후, 많은 작가들의 소설 속에 이런 말이 자주 등장한다.
 
 “자식을 낳으려면 말콤 공작 같은 자식을 낳아야 한다.”
 
 말콤 공작을 간신으로 보는 것은 당시 귀족들의 편견을 그대로 따르는 것일지도 모른다.
 
 말콤 공작은 죽은 뒤 희대의 간신이란 죄목으로 무덤이 파헤쳐져 유골의 목이 베여 거리에 내걸리는 치욕을 당했다.
 
 그런데 여기서 또 다른 민간의 전설이 나돈다.
 
 바로 말콤 공작이 자신의 사후를 예측하고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무덤에 묻히게 했다는 이야기가 말이다.
 
 그만큼 말콤 공작이 약았다는 말도 되지만 말콤 공작을 흠모한 백성들은 그가 영원한 그들의 우상이길 원했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 희대의 간신 말콤 공작에 대한 새로운 고찰 -
 
 평론은 많았다. 하지만 그중에서 말콤 공작에 대한 호평은 특히 많았다. 신성 로만 제국 시절에는 말콤 공작을 호평하는 것 자체가 금지되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야만인 우트족과 대치하면서 과거 제국 시절의 겉멋 든 그런 몽상적인 정치는 현실적인 국정 운영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에 비해 말콤 공작의 개혁적이며 적극적인 정치가 현재 이베리아 대륙 3국에서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었다.
 
 말콤 공작의 ‘정계 개혁론’은 현 시대 3국 정치가들의 가장 뜨거운 감자였다.
 
 이베리아 대륙 남부 3국 중 하나인 바이첸 왕국의 수도, 제드. 그곳에 위치한 왕궁 양쪽에는 아카데미와 귀족회관이 나란히 있었다.
 
 바이첸 왕국은 귀족회의에서 모든 의사 결정을 내린다. 국왕은 상징적인 존재로 모든 정치는 귀족회의에서 뽑은 재상이 담당한다.
 
 이런 왕궁과 귀족회관과 함께 나란히 서 있는 아카데미는 바로 귀족회관의 귀족 정치가들을 배출해 낸 근원지였다.
 
 때문에 바이첸 왕국에서는 아카데미를 특별히 중요하게 여겼고 재정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아카데미에 다니는 학생들은 대부분 중앙 귀족 정치가의 자식들이거나 지방 영주들의 자식들이었다.
 
 바이첸 왕국은 중앙 정치계와 지방 정치계가 분리되어 있었다.
 
 중앙 정치인들은 수도를 중심으로 영지를 가진 귀족들이었고 지방 정치인들은 그 외곽에 영지를 가진 귀족들이었다.
 
 빈센트 드 보리스.
 
 지방 정치계의 거두인 빈센트 백작을 부친으로 둔 이 금발의 잘생긴 청년은 아카데미 6학년으로 이제 곧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끄응!”
 
 그는 지금 졸업 논문 때문에 아카데미 도서관 자료 열람실에서 열심히 책과 싸우고 있었다.
 
 그의 졸업 논문은 다름 아닌 말콤 공작의 ‘정계 개혁론’의 재해석이었다.
 
 보리스는 벌써 세 번째로 말콤 공작이 남긴 정계 개혁론을 읽고 있었지만 도무지 무슨 소린지 이해가 안 됐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뼛속까지 귀족인 보리스의 입장에서는 비교적 자유롭게 정치를 논한 말콤 공작의 이론이 잘 이해될 리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쓴 평론을 보면 나을까 싶었는데 그것마저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보리스, 뭐 해?”
 
 그때 일단의 귀족 자제들이 보리스에게 다가왔다.
 
 “젠장, 졸업 논문 쓰는 중이다.”
 
 보리스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신경질적으로 대답했다.
 
 “에이, 그딴 걸 왜 네가 써?”
 
 “그러게 말이야.”
 
 “뭐? 그럼, 누가 대신 써 주기라도 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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