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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이즌 킹 1-1권

2018.06.22 조회 6,181 추천 41


 # Prologue
 
 
 
 
 
 오늘은 슬픈 날이다.
 아내 세트린느가 결국 세상을 뜨고 만 것이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 오늘은 기쁜 날이다.
 아내와 같은 푸른 눈동자를 가진, 세트린느와 나의 분신이 태어난 날이다.
 기쁨과 슬픔 그 위에 찾아온 것은 불안감이다.
 귀족 전쟁의 마지막 날 겪은 한 번의 패배. 그 후 끊임없이 나를 괴롭혀 온 독기와의 싸움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
 언제 나에게도 죽음이 찾아올지 알 수가 없다.
 죽은 그 자체는 두렵지 않다. 아이에게 보다 많은 것을 알려 주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할까 봐 그것이 두려울 뿐이다.
 그렇기에 이 일기를 시작한다.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물려주기 위해.
 비록 나는 하지 못했으나 아이는 해낼 수 있으리라.
 중원에서는 방계라는 나의 한계 때문에, 이곳에서는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던 시간의 한계 때문에 하지 못한 일.
 이 게르네스 대륙에 사천당문의 힘을 떨치는 일을.
 아이에게는 하인츠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그리고 당세천이라는 이름도 지었다. 물론 이 이름은 영원히 쓰이는 일은 없겠지만.
 이제 내가 할 일은 이 일기를 완성하는 것뿐.
 
 -아이언 포리버의 일기 서문
 
 
 
 
 
 # Chapter 1 사천당문의 후계자
 
 
 
 
 
 음양쌍각사를 구해 오라는 가주의 명을 수행하기 위해 1달을 넘게 태산을 뒤지고 또 뒤졌다.
 그리고 보름간의 사투 끝에 음양쌍각사를 잡았다.
 하지만, 그 순간 하늘에서 떨어져 내린 한 줄기 뇌전. 그것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아이언 포리버의 일기 中
 
 “말해!”
 소년은 매서운 눈빛으로 중년인을 노려보았다.
 “주,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중년인은 무릎을 꿇은 채 머리를 조아렸다.
 “죽을죄를 지었다면 죽어야지.”
 빠드득 이가는 소리가 내부를 울렸다. 동시에 소년이 옆에 있던 병사의 롱 소드를 뽑아 들었다.
 “헉! 사, 살려 주십시오!”
 중년인은 바닥에 머리를 찧어 대며 빌고 또 빌었다.
 이 소년이 누구던가.
 아스탈 공작의 가신 중 가장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아이언 포리버 남작의 외아들이 아닌가.
 소년의 손짓 한 번에 목이 달아날 수도 있었다. 게다가 명백히 잘못을 저지른 상황이니 어디 가서 하소연할 길도 없다.
 소년의 이름은 하인츠 포리버였다.
 “말해!”
 “그, 그것이!”
 소년의 손에 들린 롱 소드가 위로 올라가며 햇빛을 반사시켰다.
 “베, 베스컬 남작입니다!”
 카앙!
 날카로운 검이 바닥을 때리자 사방으로 불꽃이 튀었다. 바로 코앞을 스쳐 지나간 칼날에 식은땀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다시 말해 봐!”
 “베스컬 남작입니다!”
 베스컬, 그 독사 같은 놈이 또 훼방을 놓은 것인가? 설마 했건만!
 소년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지금 상황에서 절대 듣고 싶지 않은 이름이었다. 베스컬 남작 역시 아스탈 영지에서 커다란 영향력을 가진 자였다. 상인으로서도 어쩔 수 없었으리라.
 ‘아버지의 약재가!’
 헤메스.
 한 포기만으로 어른 한 명쯤은 능히 즉사시킬 수 있을 정도의 극독을 담은 풀. 상인이 구해 주기로 한 식물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것만이 지금 자신의 부친, 포리버 남작의 목숨을 연장시킬 수 있었다.
 그걸 얻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했던가?
 몇 달 전부터 백방으로 수소문을 했었고, 이 상인이 꼭 구해 오겠다는 말과 함께 선금을 챙겨 갔었다. 그리고 드디어 헤메스를 구했단 연락을 받았는데 어떻게 이런······.
 더욱이 요사이 아버지의 병세가 악화된 상황이다. 불가항력임은 인정하지만, 이대로 넘길 수는 없었다.
 “장사치가 신용을 잃으면 어찌 되는지 몸소 경험해 보도록!”
 하인츠는 가차 없이 롱 소드를 휘둘렀다.
 “크아아악!”
 중년인의 입에서 찢어질 듯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는 잘려 나간 팔을 움켜쥐고 고통으로 바닥을 굴렀다.
 하인츠가 감정 한 올 담기지 않은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만약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그땐 이 정도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돌아가자!”
 하인츠는 황급히 문밖으로 달려 나갔다.
 
 베스컬 남작의 저택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빌어먹을! 제 일이나 똑바로 할 것이지!”
 그곳으로 향하는 하인츠의 발걸음이 점점 빨라졌다.
 곱게 빗어 내린 칠흑 같은 검은 머리가 거칠게 요동쳤다. 푸른 눈동자에 맺힌 싸늘한 살기가 보는 이로 하여금 저도 모르게 몸을 떨게 만들었다.
 “그따위 놈이 작위를 얻은 것부터가 정상이 아니지!”
 베스컬 남작은 원래 상인이었다. 밀수는 기본이었고, 고리대금업과 노예 거래까지. 돈이 되는 일이라면 어떤 것도 가리지 않는 악덕 상인이었다. 남작의 직위를 받은 이후에는 정도가 더 심해졌다.
 폭정을 참지 못해 영지를 이탈하는 주민도 수십 명씩 나오는 상태였다. 어차피 그 부분은 그의 땅이니 상관없지만, 결정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심심하면 시비를 걸어온다는 것이다.
 ‘하이에나 같은 놈!’
 공작령 내에서도 가장 막대한 부를 쌓고 있는 베스컬 남작에게 다른 남작들이 친해지기 위해 애를 쓰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것을 통해 베스컬 남작은 아스탈 공작의 가신들 중에서도 두 번째 서열을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베스컬 남작은 그 정도로 만족할 위인이 아니었다. 공작의 가장 큰 신임을 얻고 있는 포리버 남작을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전개였다.
 ‘개자식!’
 열이 오를 대로 올랐다.
 아버지가 건강하셨을 땐, 알랑거리던 놈이었다. 어렸을 때 봐 왔던 것들과 지금 그가 보이는 행동은 너무나 달랐다.
 어느새 베스컬 남작의 저택이 점점 가까워졌다.
 하인츠를 처음 맞이한 것은 저택 입구를 지키는 경비병들이었다.
 무서운 표정을 짓고 다가오는 하인츠의 낌새가 이상했는지 황급히 창을 들어 길을 막았다.
 “무슨 일이십니까?”
 경비병의 물음에 하인츠가 고개를 치켜들었다.
 “흡!”
 경비병은 저도 모르게 흠칫 뒤로 물러섰다.
 “베스컬 남작을 만나러 왔다.”
 하인츠의 두 눈에 담긴 살벌한 기운에 병사들은 마른침을 삼켰다. 그렇다고 임무를 게을리 할 수는 없었다.
 “안 됩니다. 미리 연락을 하시고······.”
 “비켜라!”
 하인츠는 막무가내였다.
 “고, 공자님! 제발······.”
 그때 안쪽에서 묵직한 호통이 터져 나왔다.
 “무슨 일이냐!”
 “나, 남작님. 그것이 여기 하인츠 공자님께서······.”
 고개를 돌려 보니 베스컬 남작이 정원에 서 있었다. 이럴 줄 알고 기다리고 있었다는 모습이었다.
 하인츠는 병사들을 뿌리치고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어어! 도련님!”
 놀란 경비병이 뒤따라 왔으나 남작이 손짓으로 그것을 저지했다.
 “무슨 일이지?”
 남작은 씩씩거리고 있는 하인츠를 향해 미소를 보였다. 그 여유가 더욱 맘에 들지 않았다.
 “포리버 남작가의 하인츠 포리버입니다.”
 “알고 있네. 그런데?”
 “헤메스를 구입해 가셨다고 들었습니다. 본래 우리 가문에서 계약을 맺어 구한 물건이니 돌려주시기 바랍니다.”
 하인츠는 분노를 간신히 진정시키며 정중하게 말했다. 남작은 비릿한 웃음을 머금은 채 아무 말도 없이 가만히 있다가 하인츠의 움켜쥔 주먹이 파르르 떨릴 때쯤에야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랬나? 몰랐군.”
 목구멍 까지 치밀어 오르는 욕을 억지로 집어 삼켰다.
 “아버지의 병세에 꼭 필요한 약입니다. 돌려주십시오.”
 “그랬으면 좋겠지만 이미 다 사용해 버려서 그럴 수가 없군.”
 어깨가 부들부들 떨렸다.
 “돌려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이미 다 써 버렸는데, 어쩌란 말이냐?”
 “돌려주십시오.”
 “이미 없는 물건을 내가 만들어 낼 수도 없는 노릇이지.”
 베스컬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분노로 말을 잇지 못하는 하인츠에게 한마디를 덧붙였다.
 “서둘러 보거라. 운이 닿는다면 구할 수 있겠지.”
 당장 달려가 등판에 칼을 꽂아 버리고 싶다는 충동이 일어났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아버지의 약재를 구하는 것이 더 급했다.
 ‘두고 보자! 오늘 일을 절대 잊지 않으마.’
 움켜쥔 주먹에서 손톱이 살을 파고들어 피가 뚝뚝 떨어졌다.
 
 “공자님!”
 불안한 표정으로 저택 앞을 서성이던 소년이 하인츠를 발견하고는 황급히 달려왔다. 하인츠의 시동인 에번스트였다.
 “무슨 일이야?”
 좋지 않은 느낌을 받았는지 하인츠의 얼굴에도 불안감이 번졌다.
 “남작님께서!”
 “아버님이!”
 하인츠는 에번스트를 밀쳐 내고는 곧장 아버지의 방으로 달려갔다.
 “아버지!”
 문을 벌컥 열어젖히고 방 안으로 뛰어들었다.
 사람의 몰골인가 싶을 정도로 깡마른 몸. 도저히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푸르게 변색된 피부. 죽을 때가 된 노인처럼 하얗게 세어 버린 머리카락.
 그가 바로 아스탈 공작이 가장 신임하는 아이언 포리버 남작이었다.
 남작은 고개를 돌릴 힘도 없는지 누운 상태 그대로 눈동자만 돌려 아들을 바라보았다.
 “와, 왔느냐?”
 태연한 척하고 있었지만, 힘겹게 고통을 참고 있는 것이 너무도 확연히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에 더욱 서글픔이 밀려왔다. 그런 부친의 마음을 저버릴 수 없어 억지로 밝은 표정을 지었다.
 “예, 괜찮으시죠?”
 “그래, 괜찮단다. 요즘 네가 너무 무리하는 것 같아, 그게 더 걱정이지.”
 “무리는요. 그것보다 몸은 좀 어떠세요?”
 이미 아버지의 몸 상태는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물었다.
 어제보다 훨씬 더 좋지 않았다.
 그나마 생기가 있던 눈이 흐릿해졌고, 베개엔 빠진 머리카락이 가득했다. 아버지는 죽어 가고 있었다.
 “후후, 한결 좋아진 것 같구나.”
 “아, 아버지.”
 하인츠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미안하구나. 이 아비가 이제는 가야 할 때가 된 것 같구나.”
 “그런 말씀 마세요!”
 당장이라도 아버지가 눈을 감을 것 같다는 생각에 아버지의 손을 잡은 손아귀에 더욱 힘을 주었다.
 ‘헤메스!’
 그게 필요했다. 오직 그것만이 부친의 목숨을 연장할 수 있었다.
 ‘빌어먹을 놈!’
 하인츠는 베스컬 남작을 떠올리며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헤메스를 되찾을 수만 있다면 병사들을 이끌고 가서 전쟁이라도 벌이고 싶었다. 하지만 다시 구할 수 없을 것이다. 비열한 베스컬 남작이 그것을 보관하고 있을 리가 없다.
 손을 뻗어 아버지의 맥을 짚었다.
 세심하게 맥을 살필수록 하인츠의 표정은 더욱더 어두워졌다.
 산 사람이 아닌 것처럼 너무도 가늘고 느리게 뛰는 맥박. 지금 살아 있는 것만도 기적이라 할 만했다.
 ‘길어야 열흘······.’
 “끄으으윽!”
 그 순간 남작의 입에서 억눌린 신음이 새어 나왔다.
 “아버지!”
 “괘, 괜찮다!”
 지독한 고통을 참기 위해 이를 악물고 말을 뱉었다. 아들에게만은 나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다.
 ‘구해야 해! 없다면 직접 찾아 나서는 수밖에 없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조금만 참으세요, 아버지.”
 
 콰르르르르!
 손이 미끄러졌다. 하필이면 잡은 곳이 바위가 아닌 무딘 흙덩이였다.
 “크윽!
 다급한 신음이 새어 나왔다. 손바닥이 새까맣게 타는 듯했다.
 턱!
 5미터나 미끄러진 후에야 단단하게 튀어나온 바위가 손에 잡혔다.
 “젠장!”
 어깨가 빠질 듯이 아팠지만 절대 포기할 수는 없었다.
 ‘이깟 아픔쯤 참지 못하면 아버지의 약을 구할 수 없지!’
 하인츠가 헤메스를 구하기 위해 찾은 곳은 페르닌 산이었다. 벨크로 성에서 가까우면서도 그나마 헤메스가 자생할 만한 환경을 갖춘 곳은 이곳밖에 없었다.
 산을 헤매고 다닌 지도 벌써 4일.
 헤메스는 쉬이 눈에 띄지 않았다. 이곳에서 헤메스를 봤다는 사람이 있긴 했으나, 그것도 몇 년 전에 한 번이 고작이었다.
 ‘꼭 찾아야 해!’
 원래는 깔끔했을 옷은 이미 누더기가 된 지 오래였다.
 얼마나 산을 누비고 다녔는지 상처가 없는 곳이 없었다. 챙겨 왔던 음식들도 다 떨어졌고, 힘도 거의 다 떨어졌다. 남은 것이라곤 오직 아버지의 약을 구하겠다는 일념뿐이었다.
 산을 샅샅이 뒤진 후 남은 곳은 수직에 가까운 암벽의 위쪽이었다.
 어른이라 해도 엄두를 못 낼 정도로 가파른 경사. 4일 동안 산속을 헤맨 소년이 오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에게 단련을 받아 오지 않았다면 꿈도 꾸지 못했으리라.
 저곳을 오른다는 것은 정말 목숨을 걸어야 하겠지만, 아버지의 약을 구할 수 있다면 목숨도 걸 수 있다.
 얼마나 손발을 놀렸을까.
 정신이 혼미해질 무렵에야 하인츠는 꼭대기에 오를 수 있었다.
 “후우!”
 긴 한숨을 쉬며 급히 호흡을 골랐다. 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한시라도 빨리 헤메스를 찾아야 했다.
 “아!”
 긴장감에 젖어 있던 하인츠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암벽 위쪽은 푸른 초지였다. 드디어 찾았다. 군데군데 뿜어져 나오는 헤메스의 독한 냄새가 향기롭게 느껴졌다.
 “아, 아버지. 조금만 기다리세요. 헉!”
 헤메스를 향해 달려가던 하인츠는, 얼어붙은 듯 그 자리에 멈춰 서야 했다. 그리고 온몸의 힘이 풀려 그 자리에 철퍼덕 주저앉아 버렸다.
 풀숲 사이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몸을 일으켰다.
 “흐으으윽!”
 저도 모르게 신음이 새어 나왔다.
 움직이기 시작하자 한층 더 거대해졌다. 네 발로 서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인츠가 고개를 뒤로 젖혀야 머리가 보일 정도였다.
 사박.
 무지막지한 크기에 비해 들리지도 않을 정도로 작은 소음이 귀를 자극했다.
 ‘크레치온?’
 크레치온은 호랑이와 비슷한 생김새였지만, 머리에서 등까지 길게 갈기가 자란다는 점이 다른 동물이었다.
 ‘아, 아니야! 크레치온은 아니야!’
 분명히 아니었다. 그가 알고 있는 크레치온은 황금색과 검은색이 뒤섞여 아름다운 무늬와 갈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눈앞의 놈은 녹색의 갈기를 가지고 있었고, 그 갈기는 꼬리까지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눈!’
 눈동자가 크레치온의 그것과는 사뭇 달랐다.
 괜히 쳐다보고 있다간 토악질이 나올 것 같은 진득한 녹색 빛이 흘러나왔다. 어떤 책이나 이야기에서도 보지 못했던 묘한 생김새였다.
 더불어 길고 뾰족한 송곳니에서 푸르스름한 액체가 흘러내렸다.
 ‘독!’
 푸른 액체가 떨어진 곳 주변의 풀들이 순식간에 말라비틀어졌다.
 머릿속에 큰 종이 마구 울려 대는 것 같았다.
 ‘움직여, 제발!’
 마침내 몸이 말을 듣기 시작했다.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서는 순간, 놈이 앞발로 땅을 찼다.
 그 거대한 몸집이 소리도 없이 허공으로 뛰어오르는 것은 넋을 잃고 쳐다볼 정도로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당장 괴물의 배를 채우는 식사 거리가 될 것이 분명했다.
 황급히 바닥을 구른 덕분에 피할 수 있었다.
 놈은 재차 발톱을 세우고 달려들었다. 이미 바닥에 널브러진 하인츠는 어쩔 수 없이 다시 한 번 바닥을 굴렀다.
 얼마나 바닥을 굴렀는지 눈앞의 세상이 빙글빙글 돌았다. 그렇지 않아도 누더기가 된 옷은 이제 거의 헤져서 옷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지경이었다.
 “헉! 헉! 질긴 놈!”
 4일 동안 죽도록 고생을 한 탓에 놈을 쫓아내기가 쉽지가 않았다. 놈은 하인츠를 가지고 놀기라도 하듯이 주변을 돌며 그를 노려보았다.
 ‘이대로 이런 산속에서 죽을 수는 없지!’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조금 전 죽을 고생을 하며 기어 올라왔던 암벽이 있었다.
 ‘또 뛰어서 달려들겠지?’
 놈의 패턴은 의외로 단순했다. 허공으로 몸을 띄워 목을 노리는 것이었다.
 ‘도망칠 수 없으면 보내 버리는 수밖에!’
 일부러 다른 곳을 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순간 놈이 뛰어올랐다.
 하인츠는 황급히 상체를 비틀었다.
 크허어엉!
 “크으윽!”
 순간 왼쪽 어깨를 불로 지지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동시에 거대한 압력에 중심을 잡지 못하고 바닥을 굴렀다. 계획대로 놈은 암벽 아래로 굴러 떨어졌지만, 이빨을 피하지 못해 어깨를 긁히고 말았다.
 쿠웅!
 육중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인츠는 황급히 낭떠러지 끝으로 다가가 아래를 살폈다. 엄청난 높이에도 불구하고 놈의 거대한 몸집은 확실하게 눈에 들어왔다.
 “저럴 수가!”
 휘둥그레 뜬 눈으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놈은 절벽에서 떨어졌음에도 별로 충격을 받지 않은 듯 일어나 이쪽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크허어어엉!
 놈의 포효가 우렁차게 메아리쳤다.
 하인츠는 황급히 방향을 돌려 헤메스가 있는 쪽으로 움직였다. 혹시나 다른 길이 있어서 돌아온다면 큰 낭패였다. 한시라도 빨리 헤메스를 캐서 돌아가야 된다.
 “헉!”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갑자기 호흡이 가빠졌다.
 놈의 이빨에 스친 왼쪽 어깨는 마치 원래 없던 부위처럼 감각이 없었다. 무릎은 덜덜 떨렸고, 등줄기를 타고 싸늘한 감각이 오르내렸다.
 ‘중독!’
 마음이 급해졌다. 하필 이런 곳에서 중독이 되다니!
 “어, 어디야?”
 사지로 바닥을 기며 벌게진 눈으로 주변을 샅샅이 뒤졌다. 해약은 늘 독과 가까운 곳에 있는 법이었다.
 “으으윽!”
 미친 듯이 바닥을 기어 다녔다. 하지만 해약이라고 할 만한 것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대로 있다가는 오히려 독이 더 빨리 퍼질 뿐이야!’
 금방이라도 정신을 놓아 버릴 것 같은 격한 통증 속에서도 스스로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독이 퍼지고 있어!’
 숨을 쉬기도 힘들었지만 황급히 호흡을 골랐다.
 억지로 양다리를 꼬고 양손을 아랫배에 모아 주었다.
 ‘마나를 끌어 올려 독에 대항해야 한다!’
 어려서부터 배운 마나 수련법을 황급히 생각해 냈다.
 
 -몸속에서 움직이는 것은 모두 다 기운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독에 중독이 되었다면 그 독 역시 기운이다. 이 마나 수련법을 익히면 그 독을 하나의 기운으로 보고 스스로 몸속에서 정화시키고 몸 밖으로 내보내거나 갈무리 할 수 있게 된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독에 대한 내성이다.
 
 몸은 죽도록 뜨겁고 아픈데 머릿속은 이상하게도 맑았다. 아버지가 마나 수련법을 가르치며 했던 말이 분명하게 떠올랐다.
 ‘극독이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죽는다!’
 절대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하인츠는 재빨리 호흡을 가다듬고 몸속에 침투한 독기의 움직임을 살폈다.
 ‘이럴 수가!’
 뭔가 이상했다.
 사람의 몸에는 마나가 흐르는 일정한 법칙에 따라 흐른다. 지금 하인츠가 물린 부분에서는 기운이 손끝으로 갔다가 다시 팔 바깥쪽을 돌아 나와야 했다.
 그런데 이 독은 그 경로를 거꾸로 타고 심장으로 바로 몰려오고 있었다.
 ‘어, 어떻게 해야 되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상황에 처하게 되자 갑자기 정신이 혼란스러워졌다. 그러자 지금까지 애써 생각하지 않으려 했던 몸속의 통증이 극심하게 신경을 자극했다.
 또 다시 엄습하는 죽음의 그림자.
 ‘안··· 돼!’
 이를 악물었다. 억지로 아랫배에 모인 기운을 끌어 올려 경맥을 타고 흐르게 만들었다.
 “끄어어억!”
 흐르던 마나가 역류해 들어오는 독기와 충돌했다. 혈맥이 부풀어 터져 버릴 것 같은 고통! 자칫하면 정신을 놓아 버릴 정도였다.
 ‘차, 참아야 해! 독기를 밀어내야 해!’
 일단은 역류하는 독기를 바른 흐름을 타게 만들어야 했다. 그래야 몸 밖으로 밀어내든 뭘 하든 할 수 있었다.
 상황은 하인츠의 바람과 달리 점점 이상하게 흘렀다.
 ‘이것은!’
 독기를 밀어내려던 마나가 점점 독과 섞여 들기 시작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몸속에 쌓인 마나는 순수한 자연력의 정화였다. 그런 것이 탁한 독기와 섞여 들어가다니.
 ‘이러면··· 안 되는데!’
 머릿속에 점점 아득해져 갔다.
 
 “헉!”
 하인츠가 다시 정신을 차린 것은 동녘 하늘이 어슴푸레 밝아 오는 시간이 되었을 때였다.
 천천히 자세를 잡고 몸속의 마나를 움직였다. 별다른 무리 없이 몸속을 한 바퀴 휘도는 마나를 느끼며 하인츠는 고개를 갸웃했다.
 오히려 어제보다 한층 더 힘차게 몸속을 휘돌았다.
 “어떻게 된 거지?”
 계속해서 궁금증이 일었지만 아무리 고민을 해 봐도 해답을 찾을 수 없었다.
 “일단 아버지 약부터!”
 고민은 나중에 해도 되지만 아버지의 약은 나중에 하면 안 되는 일이었다.
 
 눈초리가 파르르 떨렸다.
 “아···버지!”
 목이 잠겨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너무 늦었다.
 페르닌 산으로 떠날 때만 해도 그나마 생기가 있던 아버지의 검은 눈동자는 이제 탁한 잿빛을 띠고 있었다. 생기 없이 퀭한 눈동자는 어설픈 화가의 그림처럼 무미건조했다.
 “와, 왔느냐.”
 “기운 차리세요!”
 떨리는 손으로 아버지의 가슴을 부여잡고 흔들었다. 거칠게 흔들리는 아버지의 몸은 이제 거의 무게가 느껴지지도 않을 정도로 가벼웠다.
 “헤메스를 구해 왔어요!”
 하인츠는 가방에서 헤메스를 한 움큼 꺼내 들고 아버지의 입가에 대고 쥐어짰다.
 한 방울··· 두 방울······.
 헤메스를 쥐어짠 즙이 남작의 입 안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까지 구해 온 헤메스는 하인츠의 기대를 무참히 저버렸다.
 포리버 남작의 메마른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갈 때가 되어서 그런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그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아버지의 눈동자에 조금이지만 생기가 돌아오고 있었다. 그것을 본 하인츠의 표정은 한층 더 처참하게 구겨졌다. 정말 아버지의 목숨이 다했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었다.
 죽기 전에 잠시 기운을 차리는 현상.
 마지막 남은 생명력을 모두 불태워 완전한 죽음을 맞이하는 수순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차라리 몰랐다면.
 어려서부터 아버지에게 배운 의술 때문에 이 현상이 절망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면, 그랬다면 잠시라도 기뻐할 수 있었을 것을······.
 남작은 힘겹게 몸을 일으켜 베개 밑에서 한 권의 두꺼운 책을 꺼내 들었다.
 “너에게 줄 수 있는 것이 많지 않구나.”
 남작은 깡마른 손을 뻗어 아들의 손을 붙잡았다.
 “이 아비의 이야기를 잠시 해야겠구나.”
 하인츠의 두 눈에 뜨거운 무언가가 차올랐다. 눈앞의 사물들이 뿌옇게 흐려졌다. 아버지의 얼굴을 조금이라도 더 보아 두려고 눈을 깜빡거렸다. 뜨거운 무언가가 주르르 흘러내렸다.
 포리버 남작은 손짓으로 주변에 있던 하인들을 방에서 내보냈다.
 “길게 이야기할 수 없으니 짧게 알려 주마. 아버지의 고향은 이곳이 아니란다. 전혀 다른 차원의 세계지.”
 하인츠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큰 충격이 뇌리를 강타했지만, 지금 의문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은 조금이라도 아버지의 말을 더 들어 두어야 하는 시간이었다.
 “중원이라는 곳이란다. 그리고 아버지의 가문은 중원 무림의 명가인 사천당문이다. 이 아비의 이름은 당철휘라고 한다. 어려서부터 너에게 가르쳤던 말과 글자는 바로 그곳의 언어란다.”
 하인츠가 갓 말을 하기 시작할 무렵부터 남작은 아들에게 중원의 말과 글을 가르쳐 왔던 것이다.
 “그리고······.”
 포리버 남작은 이쪽 세계에 오기 전의 이야기부터, 넘어온 후 당시 백작이었던 아스탈 공작과의 만남, 하인츠의 어머니인 세트린느와의 인연에 대해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다음은 너도 잘 알고 있는 귀족 전쟁이다.”
 귀족 전쟁은 20여 년 전 칼스타온 제국을 통째로 뒤흔들었던 귀족들 간의 전쟁이었다. 당시 그 전쟁으로 아스탈 공작은 자신의 입지를 굳히고 지금의 공작이라는 작위를 얻을 수 있었다.
 그 이야기는 하인츠도 여러 번 들었기에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사천당문의 사천이라는 이름은 4개의 강이 흐른다는 뜻이다. 그래서 하사받은 영지의 이름을 그런 의미로 붙였지. 여기까지가 아버지가 걸었던 길이다.”
 하인츠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머릿속에 각인시켰다.
 남작은 귀를 기울이며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아들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아직은 감당하기 벅찬 이야기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알아야 했다. 자신의 근원이 어디인지. 자신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핏줄을 이어받았는지를.
 이제 아들은 자신이 만든 토대 위에 이곳 게르네스 대륙에 사천당문이라는 튼튼한 건물을 지을 것이다.
 어려서부터 영특한 아이였다.
 또한 남작의 계속된 교육으로 인해 사천당문의 정신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아이였다. 충분히 양어깨에 짊어지고 갈 수 있으리라.
 하인츠가 정신을 차린 듯 몇 번 눈을 깜빡이더니 아버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이 아버지의 본가에 대해서도 알아야겠지? 너의 본가인 사천당문은 독과 암기로 명성을 떨치던 세가다.”
 그가 지금 이렇게 독에 의해 만신창이가 된 이유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자신이 사천당문의 핏줄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는 포리버 남작이었다.
 “이것을 받아라.”
 남작은 아까 꺼내 들었던 두꺼운 책을 내밀었다.
 “이건······.”
 “이 아버지의 일기쯤 되겠지. 지금까지 이 아버지가 살아왔던 이야기가 들어 있다. 그리고 아버지가 알고 있는 사천당문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하인츠는 새삼스럽게 손에 들고 있던 책을 내려다보았다. 꽤나 두꺼운 책. 손수 이 책을 쓰기 위해 아버지는 얼마나 많은 시간과 공을 들였을까.
 “내가 없더라도 너는 잘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마지막을 고하는 아버지의 말에 하인츠는 입술을 깨물었다.
 “예, 아버지.”
 가슴이 찢어지는 듯 아팠지만 애써 의연한 표정을 지었다. 마지막 가시는 길이라도 마음 편하게 보내드려야 하지 않겠는가.
 “강해져야 한다. 그 누구도 넘볼 수 없을 만큼. 이곳에 사천당문의 힘을 떨쳐야 한다.”
 하인츠의 손을 잡고 있던 남작의 손아귀에서 점점 힘이 빠져나갔다.
 “아···버···지!”
 하인츠는 힘없이 떨어지려는 아버지의 손을 애써 끌어 잡았다. 아버지의 얼굴에서는 점점 핏기가 사라지고 있었다.
 “아버지!”
 
 탁!
 책 덮는 소리가 무미건조하게 울려 퍼졌다.
 하인츠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해쓱한 얼굴에 박힌 푸른 눈동자만이 형형한 안광을 뿜어내고 있었다.
 “공자님!”
 방문이 열리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에번스트의 초췌한 얼굴이었다. 에번스트는 초췌한 얼굴에 반색을 띠며 하인츠에게 다가섰다.
 “몸은 괜찮으세요? 뭐라도 좀 드셔야······.”
 하인츠는 에번스트의 말을 듣지 못했는지 느린 걸음으로 복도를 걸었다.
 “몸부터 챙기셔야죠!”
 에번스트가 뒤따라오며 외쳤다. 방금 전까지 반색을 하던 얼굴에는 다시 걱정스러운 빛이 떠올랐다.
 하인츠가 홀로 자신의 방에 들어간 지 닷새. 그동안 끼니때마다 식사를 들여보냈지만 거의 입에 대지도 않았다. 게다가 중요한 일을 하지도 않았다.
 “남작님의 장례식을 치러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제야 하인츠의 발이 멈췄다.
 “장례식이라······.”
 잠시 뭔가를 생각하더니 이내 걸음을 옮겼다.
 “라텍에게 알아서 하라고 해. 내가 아버지에게 해 드려야 할 것은 장례식이 아니니까.”
 “그래도 남작님의 마지막 가는 길입니다.”
 “아버지를 보내는 의식은 이미 했어.”
 더 이상 발을 멈추지 않았다. 지난 닷새 동안 아버지가 남겨 준 일기를 읽으며 마음속 깊은 곳에 아버지를 묻었다. 아버지의 장례는 그걸로 충분했다.
 지금 해야 할 일은 아무것도 남지 않은 육신을 땅에 묻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잇는 것, 그리고 복수를 하는 것이었다.
 “공자님!”
 “더 이상 따라오지 마.”
 낮게 깔린 목소리였지만 그 말 속에 스며 있는 싸늘한 냉기에 에번스트는 더 이상 하인츠를 따라가지 못했다.
 긴 복도를 지나 도착한 곳은 아버지의 서재였다. 건강하셨을 때는 자주 이곳에 들러 이것저것 가르쳐 주기도 하셨고, 큰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어 주기도 하셨다.
 그러다 언제부터인가 아버지는 이 서재에 들어오시지 않았다. 아버지의 시종이자 저택의 집사인 라텍만이 하루에 한 번 이곳에 들렀을 뿐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좋아하는 책을 찾아 여기저기를 기웃거렸을 하인츠였다. 그러나 지금은 곧장 서재의 가장 깊숙한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 아버지가 말한 지하실의 입구가 있었다.
 그그그긍!
 크지 않으면서도 묵직한 소리가 울리더니 서재의 책장 한 면이 통째로 밀려났다. 그리고 아래로 이어진 계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후우······.”
 지하실로 통하는 계단에는 먼지 한 올 없이 깨끗했다.
 ‘라텍이군.’
 라텍이 매일 서재에 들어오는 이유가 바로 이 지하실을 관리하기 위해서 일 것이다.
 계단의 끝에는 다시 하나의 문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문을 여니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아무것도 없는 둥근 방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인츠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안으로 들어가 벽에 듬성듬성 박혀 있는 등잔 중 하나를 잡아당겼다.
 키릭! 키릭!
 사방 벽 곳곳에서 쇠가 맞물리는 소리가 울렸다. 동시에 방 전체가 빙그르르 돌기 시작했다.
 그 소리가 멈추자 원래 문이 있던 곳에 또 하나의 통로가 나타났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지하의 공간을 이중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통로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니 알싸한 향기가 코끝을 스쳤다. 동시에 약간은 소란스러운 듯한 짐승들의 소리가 귓속으로 들어왔다.
 10미터를 더 들어가서야 새로운 공간이 나왔다. 사방 5미터쯤 되는 방이 있었고, 정면에는 2개의 문이 있었다.
 하인츠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오른쪽 문을 열고 들어갔다. 거기에는 조금 전의 방보다 훨씬 더 큰 방이 있었는데 마치 닭장처럼 칸칸이 들어선 작은 우리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세모꼴의 눈동자를 부릅뜨고 있는 뱀에서부터, 생전 들어 본 적도 없는 희한하게 생긴 거미며 개구리, 심지어 개미 같은 작은 벌레에 묘한 빛을 뿜어내는 꽃도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은 하나같이 독을 품고 있는 독물들이었다. 아이언 포리버 남작이 아들을 위해 그동안 준비했던 것들이었다.
 하인츠의 메마른 입술이 살짝 휘었다.
 “이제 시작이야.”
 하인츠는 오른쪽의 가장 앞쪽에 있는 우리를 열었다. 그곳에 들어 있는 것은 붉은 등껍질을 가진 지네였다.
 “크크크.”
 죽어 가던 아버지의 마지막 말은 강해지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일기에는 강해지는 법이 상세하게 적혀 있었다.
 독공.
 아버지는 독공을 전수해 주었다.
 독공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과 수련 방법에서부터 시작하여 혹시 있을지 모르는 모든 가능성에 대한 대처 방법을 적어 놓았다.
 어려서부터 마나 수련법이라고 알고 배웠던 그 수련은 사실은 사천당문의 방계들이 배우는 내공 심법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독공을 배우기 위한 준비 단계였다. 포리버 남작은 오래전부터 아들을 위해 준비해 온 것이었다.
 이제부터 그것을 익히면 된다. 그것을 익혀 힘을 기르고, 아버지를 죽음으로 내몬 베스컬 남작을 처단한다.
 ‘그리고 그다음은······.’
 아버지의 몸속에 있던 독이 갑작스레 발작을 일으킨 것에는 당연히 이유가 있었다.
 20여 년 전의 귀족 전쟁, 그 마지막 전투에서 아버지가 입은 부상. 그것이 아버지가 독의 발작으로 몸져눕게 된 원인이었다.
 ‘모두 짓밟아 주마. 그리고 그 위에 사천당문, 아니 포리버 가문의 성이 올라갈 것이다!’
 
 지하실의 중앙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하인츠는 조금 전 잡아 온 지네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이제부터 독공을 익힐 것이다. 극의의 경지에 들어서게 되면 마음을 먹은 것만으로도 독을 부릴 수 있다고 한다.
 하인츠는 앞섶을 풀어 헤치고 오른손에 든 지네를 자신의 왼쪽 가슴으로 가져갔다.
 “후우, 후우!”
 긴장한 표정으로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아버지가 남겨 준 독공은 3개의 경지로 구분된다. 그리고 각 경지는 다시 3개의 단계로 나뉜다.
 그 첫 번째 경지가 이독지독以毒知毒의 경지. 독으로 독을 안다는 뜻이었다.
 아버지의 설명에 따르면 세상의 모든 독을 직접 경험하여 몸에 새기는 것이다. 이 경지를 완전히 깨우치게 되면 어떠한 독도 몸에 영향을 줄 수 없게 된다.
 이독지독의 세 단계 중 첫 번째는 바로 회독懷毒의 단계. 즉 독을 품는 단계이다.
 이 단계는 스스로 중독을 당함으로써 몸속에 독기를 갈무리하는 과정이었다.
 집게처럼 생긴 지네의 입이 피부를 뚫고 들어왔다.
 “크윽!”
 몸속의 기혈을 수천 개의 칼날이 난도질하는 듯한 통증에 머릿속이 산산이 부서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내공을 끌어 올려 독에 대한 방비를 해서도 안 된다. 이 과정은 순수하게 몸으로만 독기를 받아들여야 했다. 공력을 일으켜 독기를 자신의 것으로 갈무리하는 것은 그 후의 일이었다.
 “끄으윽! 정신을!”
 지금부터가 중요했다.
 지네는 사람을 즉사시킬 수 있을 정도의 맹독을 품은 놈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
 ‘일단은 독기의 움직임을 몸으로 기억해야 한다!’
 고통을 참기 위해 입술을 깨물었다.
 ‘이 정도에 질 줄 알고?’
 독공 수련의 첫날이었다. 회독의 단계에 사용될 독물은 약한 독부터 시작하여 점차 강한 독으로 그 강도를 더해 가야 했다.
 그런데 겨우 첫날 수련에서 쓰러질 수는 없었다. 아버지의 아들로서 그런 나약함은 스스로도 용납할 수 없었다.
 얼마나 세게 물었는지 뜨거운 피가 목구멍으로 타고 넘어갔다.
 ‘지금!’
 침투한 독기가 몸속 구석구석을 훑었다. 이제 이 독기를 본래 지니고 있던 공력과 융화시켜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일만 남았다.
 단전에 힘을 주고 천천히 공력을 끌어 올렸다. 내공을 몸 구석구석으로 보내 퍼져 있는 독기를 삼키고 다시 단전으로 끌어 모아야 했다.
 몸속의 기운과 침투한 독기의 융화. 그것은 페르닌 산에서 녹색 갈기의 크레치온에게 물렸을 때와 똑같은 현상이었다. 어쩌면 그날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은 어려서부터 아버지에게 배운 내공 심법 덕분이었는지도 몰랐다.
 한번 그런 경험이 있어서인지 공력과 독기를 융화시키는 것은 의외로 수월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하인츠의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혔다. 그러더니 전신에서 탁한 잿빛의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흡수되고 남은 독기가 모공을 통해 땀에 섞여 몸 밖으로 배출되는 과정이었다.
 이때 하인츠의 몸은 독에 시달려 체온이 극도로 올라간 상태. 그러다 보니 배출되자마자 그대로 수증기가 되어 허공으로 흩어지는 것이었다.
 “후우!”
 하인츠는 긴 호흡을 토해 내며 그대로 옆으로 쓰러졌다. 죽음과 같은 피로감에 온몸이 물먹은 솜처럼 무거웠다.
 그러면서도 몸속은 더할 수 없이 상쾌했다. 마치 청량한 바람이 불어 몸속 곳곳을 편안하게 쓸어 주는 것 같았다.
 ‘이대로 백독!’
 독공 수련의 가장 첫 번째 단계인 회독은 모두 백 가지의 독을 흡수해야만 끝이 나는 고난의 길이었다.
 ‘버틴다!’
 
 
 
 
 
 # Chapter 2 독공
 
 
 
 
 
 사천당문은 독과 암기로 이름을 떨친 가문이다. 또 한편으로는 뛰어난 의술로도 이름이 높았다. 오늘부터 아이에게 중원의 말과 글. 그리고 의술을 가르치려 한다.
 -아이언 포리버의 일기 中
 
 
 “공자님.”
 라텍의 부름에 하인츠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방해하지 말라고 했던 것 같은데?”
 “흡!”
 라텍은 저도 모르게 헛바람을 들이켰다.
 ‘어떻게 단 2달 만에!’
 사람이 변해도 저렇게 변할 수 있을까? 하인츠는 더 이상 소년이 아니었다. 겉모습이야 여전히 소년의 모습이었으나, 라텍의 눈에는 더 이상 그렇게 비치지 않았다.
 눈동자에 일렁이는 지독한 독기 탓이었다.
 웬만한 일에는 놀라지 않는 냉철한 성격의 라텍조차 화들짝 뒤로 물러설 만큼 그의 눈에서 흘러나오는 독기는 강렬했다.
 이 지하실에 들어온 지 단 2달 만의 일.
 ‘후우!’
 라텍은 속으로 긴 한숨을 쉬었다. 남작가의 후계자로서 거듭난 것을 기뻐해야 할지, 이전의 모습을 찾을 수 없다는 사실에 안타까워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러고 싶었지만 조금 문제가 생겼습니다.”
 “문제?”
 하인츠는 두 눈에 맺혀 있던 독기를 거두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라텍이 저렇게까지 나오는 데엔 분명히 이유가 있을 터였다.
 “작위 수여가······.”
 “작위 수여가 왜?”
 “방해를 받고 있습니다.”
 “방해?”
 하인츠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두 눈 가득히 살기가 뿜어졌다. 당장 머릿속에 한 가지 이름이 떠올랐다.
 “베스컬?”
 “그렇습니다.”
 하인츠의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번졌다.
 “제깟 놈이 방해해 봐야······.”
 라텍은 고개를 저었다.
 “그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무슨 말이지?”
 “잊으셨습니까? 황제 폐하께서 직접 수여한 작위가 아닌 이상 세습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건 알고 있지. 하지만 그것은 수여한 공작의 재량으로······.”
 “그 재량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뭐?”
 제국 법상 작위를 수여할 수 있는 사람은 황제뿐이었다.
 공작들에게 남작 위를 수여할 권한이 있긴 했지만 그 작위는 세습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제국의 공작들은 관례적으로 그 아들에게 다시 작위를 수여하곤 했다. 그 집안에 뭔가 큰 문제가 있지 않는 한.
 “재량에 문제가 생겨?”
 “작위를 다시 수여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관례일 뿐 그리해야 한다는 법칙은 아니지 않습니까?”
 하인츠의 표정이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졌다. 라텍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늘 그래 왔으니 이번에도 당연히 그리해야 한다는 법은 없었다.
 “그래, 그놈들이 뭐로 걸고넘어진 거지?”
 “제국 법입니다.”
 하인츠의 표정이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졌다.
 이렇게 엉뚱한 문제가 생기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늘 그래 왔으니 당연히 작위를 받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제국 법이라고?”
 “예.”
 조심스럽게 고개를 숙이는 라텍의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빌어먹을!”
 하필이면 가장 껄끄러운 제국 법을 걸고넘어지다니.
 법이라는 것은 상황에 따라 든든한 아군이었다가도 최악의 적으로 돌변하기도 한다.
 지금 하인츠에게 법은 가장 큰 적이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문제가 불거져 나오자 당장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라텍이 다시 말을 이었다.
 “그리고······.”
 라텍의 말이 끝나지 않은 듯하자 하인츠의 얼굴이 한층 더 심하게 일그러졌다.
 “또 있나?”
 “예, 선대 남작님의 장례식에 불참한 것도 빌미가 되었습니다.”
 “뭐라고? 언제부터 그놈들이 우리 집안사에 그리도 관심이 많았다고?”
 “그것이······.”
 라텍은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하인츠는 괜찮다는 듯 손짓을 하며 라텍을 재촉했다.
 “괜찮으니 말해 봐.”
 “부친의 장례식도 제대로 치르지 않았다는 것은 그 자리를 물려받을 의사가 없다는 뜻이 아니겠느냐 하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리고?”
 라텍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음에도 하인츠는 다시 물었다. 베스컬 남작이 그 정도만 말했을 리가 없다.
 “그런 의사가 없다면 제정신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고······.”
 라텍이 조심스럽게 말했지만, 굉장히 순화된 표현일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이 갔다.
 하인츠가 알고 있는 베스컬이라면 더욱 저급한 표현을 나열하고도 남았다.
 “우습군. 그래, 공작님께서는 뭐라고 하시는가?”
 “지금 위에 와 계십니다.”
 “뭐? 공작님이?”
 아스탈 공작은 1년의 대부분을 수도에 머무르기 때문에 공작령에서 지내는 시간이 그렇게 많지가 않았다. 그런 공작이 와 있다는 말에 하인츠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예. 그래서 서둘러서 내려온······.”
 “알았어.”
 하인츠는 라텍의 말을 자르며 그대로 지하실 계단을 밟았다. 회독의 단계를 완전히 연성할 때까지 나가지 않겠다고 다짐했건만.
 세상은 마음먹은 대로만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너무 오랜 시간 기다리시게 했군요.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응접실로 들어선 하인츠는 공손하게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네 부친은 그런 격식을 아주 싫어했지.”
 부드러운 인상을 가진 50대 후반의 남자가 두 손으로 하인츠의 숙여진 허리를 펴 주었다.
 빈스 아스탈 공작.
 20년 전 있었던 귀족 전쟁 마지막 승자 중 한 명이며, 칼스타온 제국에서 5명밖에 없는 공작 중 한 명이었다.
 “앉으시지요.”
 하인츠는 정중한 표정으로 자리를 권하고는 자신도 맞은편 자리에 엉덩이를 붙였다.
 “공작령으로 내려오신 줄 알았다면 제가 한번 찾아뵈었어야 하는 것인데··· 어려운 걸음을 하시게 만들었군요.”
 공작은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안타까움과 미안함을 함께 담은 얼굴이었다.
 “내가 직접 와서 말을 하고 싶었을 뿐이니 마음에 담아 두지 말아라.”
 공작은 서글픈 눈빛으로 하인츠를 바라보았다. 하인츠는 아무 말 없이 그 눈빛을 받았다.
 “평상시대로라면 네가 아이언의 작위를 물려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네 아버지는 충분히 그런 공을 세웠다. 하지만······.”
 공작은 잠시 말끝을 흐린 후 손으로 팔걸이를 매만지며 말을 이었다.
 “이번에 조금 문제가 생겼단다.”
 이미 무슨 문제인지 알고 있었으나 공작의 입을 통해 직접 들으니 더욱더 가슴이 답답해졌다.
 ‘하긴, 나 때문에 다른 귀족들을 버릴 수는 없을 테지.’
 “미안하다, 하인츠.”
 공작은 다시 한 번 사과를 했다. 적어도 하인츠가 보기에는 진심으로 미안해하고 있는 얼굴이었다.
 ‘어떻게 이런 사람이 최고의 권력을 쥘 수 있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공작은 그저 인자한 영주였고 관대한 군주일 뿐, 다른 이를 밟고 자신의 입지를 넓힐 만큼의 야망이 큰 인물로 보이지 않았다.
 그런 그가 귀족 전쟁을 통해 제국의 5대 가문으로 올라섰다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거기에는 하인츠가 모르는 사실이 있었다.
 아스탈 공작이 결심을 하고 검을 빼어 든 뒤에는 그의 아버지 아이언 포리버의 설득이 있었다는 것을. 아니, 하인츠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렇지만 나는 아이언, 그 친구에게 진 빚이 너무 많아.”
 공작은 한숨을 쉬며 하인츠를 바라보았다.
 “네 아버지의 영지는 당분간 내가 관리를 하도록 하겠다.”
 ‘음?’
 하인츠는 방금 공작이 한 말을 되씹어 보았다. 분명 당분간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는 것은?’
 하인츠는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너의 작위 수여는 일단 보류를 하기로 했다.”
 “지금 보류라고 하셨습니까?”
 “그래. 일단은 네가 작위를 수여받을 때까지 보류해 두기로 했지. 작위 수여 문제는 그때 다시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정말입니까?”
 생각지도 못했던 말을 들으니 목소리 톤이 갑자기 올라갔다.
 라텍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이제 정말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했었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공작님.”
 “이 정도밖에 못 해 줘서 미안할 뿐이구나. 다른 문제는 그 후에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기로 하자꾸나.”
 “알겠습니다.”
 하인츠는 애써 태연한 표정으로 대답을 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기쁨에 겨워 저택이 떠나갈 정도로 웃고 싶었다.
 사방이 모두 적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의외의 우군이 나타난 것이다. 그것도 공작령의 주인인 아스탈 공작이라는 우군이.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공작은 여전히 미안한 표정이었다.
 
 아침 일찍 저택을 나서던 하인츠는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찡그렸다.
 오랜만에 쳐다본 햇빛은 너무나 눈이 부셨다. 하인츠는 잔뜩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내렸다.
 고개를 숙여 햇빛을 보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인츠의 인상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
 긴 한숨을 내쉬고는 천천히 발을 움직였다.
 “큭!”
 몇 걸음 옮기지 못하고 신음을 토했다.
 지금 하인츠의 몸은 정상이 아니었다. 독공의 수련으로 인한 부작용이었다.
 완전히 흡수되지 못한 독기들로 인해 경맥 곳곳이 굳어 진기의 흐름을 막고 있는 탓이었다.
 처음에는 괜찮았지만 그러한 일이 계속 반복된 끝에 지금은 제대로 움직이는 것조차 힘이 들었다.
 그로 인해 독기를 흡수하는 데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처음 2시간이면 충분하던 것이 이제는 10시간은 소비를 해야 할 정도였다.
 회독의 수련 과정을 밟아 나갈수록 소모되는 시간은 점점 늘어날 것이 분명했고, 앞으로는 한 가지 독기를 흡수하는 데 하루 넘게 소모될 것이 분명했다.
 그렇기에 회독 수련에 사용되는 독은 100가지였지만, 소모되는 일자는 100일이 아니었다.
 ‘이래서 회독을 마스터할 때까지는 움직이지 않으려고 했건만!’
 이러한 현상은 회독을 수련하는 동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아버지의 일기에도 회독의 단계를 수련하는 동안은 가능하면 움직이는 것을 자제하라고 적혀 있었다.
 물론 그러한 현상에 대한 대비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몸속에 뭉친 독기들을 풀어 주는 일종의 동공인 활신법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몸속에 뭉친 독기를 완전히 풀어 줄 수는 없었다.
 방법이라면 오직 회독의 단계를 완전히 끝내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그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었다.
 영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지금, 계속 뭉그적거리고 있을 수는 없었다. 베스컬 남작이 또 무슨 트집을 잡을지 알 수가 없었다. 하루라도 빨리 작위를 넘겨받기 위한 움직임을 보여 줄 필요가 있었다.
 ‘개자식!’
 약재를 가로챘을 때 보았던 웃음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언젠가는 배로 갚아 주겠어!’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사내의 복수는 10년도 늦지 않는 법.
 그때 지금까지 받은 모든 것을 갚아 주면 된다. 지금 할 일은 조용히 힘을 기르는 것이었다.
 
 “하앗! 하앗!”
 아직 도착도 하지 않았는데 기합 소리가 먼저 들렸다.
 ‘언제나 활기차군.’
 하인츠는 피식 웃으며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힘겨운 걸음을 옮겼다. 멀리 소년들이 검을 쥐고 열심히 휘두르고 있었다.
 검술 학교.
 공작의 가신들은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자식들을 이곳으로 보냈다. 이곳에서 기초 과정을 수료하고 추천장을 받아야만 기사 아카데미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인츠 역시 이곳에서 검술을 배웠다.
 기사 아카데미가 목적이 아니라 기본적인 체술 정도는 익혀 두는 것이 좋다는 아버지의 권유 때문이었다.
 “검을 쥐는 손목은 언제나 유연해야 한다. 긴장을 풀고 쥔 듯 쥐지 않은 듯 검을 잡아라. 그것은 언제 닥칠지 모르는 돌발 상황에서 너희들을 구해 줄 수 있을 것이다.”
 굵직한 음성이 쩌렁쩌렁 퍼져 나가 아직 도착하지도 않은 하인츠의 귀에까지 와 닿았다.
 ‘젠장! 또 저 얼굴을 봐야 되는군.’
 하인츠는 와락 인상을 구기며 연무장 정면의 단 위에 있는 중년 남자를 쳐다보았다.
 릭 크리처 남작.
 검술 학교의 총교관이며 전직 은사자 기사단의 단장이었던 남자.
 “목소리가 작다! 기합은 곧 기세다. 적을 만나면 가장 중요시해야 할 것이 바로 기세 싸움이다! 기합은 상대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고 자신감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더 우렁차게!”
 그는 타고난 기사였다.
 20세에 은사자 기사단에 들어가 단 7년 만에 단장의 자리를 꿰찬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그가 단장이 된 후 은사자 기사단은 단 한 번의 패배도 기록하지 않은 걸로도 유명했다.
 크리처 남작은 단장 직에서 물러난 후, 곧장 후진 양성에 힘쓰겠다며 검술 선생 자리를 자청했다.
 하지만 그가 교관 자리를 자청한 데는 후진 양성이 아닌 다른 이유가 있었다.
 공작령에 있는 대부분의 귀족들이 그 사실을 알고 있었으나 모두들 쉬쉬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오히려 그에게 잘 보이기 위해 갖은 애를 다 썼다.
 그 이유는 기사 아카데미의 추천장이 바로 검술 학교 총교관의 손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었다.
 공작을 통해 귀족이 된 남작들은 자식의 기사 서임에 목을 맬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세습이 불가능한 작위를 물려줄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이기 때문이었다.
 크리처 남작이 노린 것은 바로 이 부분이었다. 기사 아카데미의 추천장을 쥐고 다른 귀족들에게 돈을 뜯어내는 것.
 젊은 시절만 해도 기사도를 숭배하는 진정한 기사였던 그가 언젠가부터 재물에 집착하기 시작하더니 결국에는 돈이라면 환장을 하는 속물로 변해 버린 것이다.
 검술 학교 총교관이 된 이후 그의 재산이 3배 이상 불었다는 사실이 그것을 증명해 주었다.
 마구 인상을 찌푸리고 있던 하인츠의 시선이 크리처 남작의 눈길과 마주쳤다.
 동시에 크리처 남작의 얼굴에 냉소가 가득 찼다.
 ‘빌어먹을!’
 불쾌한 기분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크리처 남작과 자신의 부친은 공작령 내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감정이 좋지 않았다.
 기사도를 숭배했던 젊은 크리처와 실용성을 중시했던 젊은 아이언. 애초부터 극과 극을 달리는 두 사람이었다.
 사실 크리처 남작이 돈만 밝히는 속물로 변한 것은 아이언 포리버 남작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귀족 전쟁이 끝난 후 아스탈 공작은 아이언 포리버 남작에게 가장 큰 비옥한 영지를 하사했다. 포리버 남작을 비열하게 뒤에서 독이나 푸는 놈이라고 은근히 무시해 왔던 크리처 남작에게 그 사실은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크리처 남작이 변한 것은 바로 그때부터였다. 포리버 남작이 일등 공신이 된 것은 크리처 남작으로서는 지금까지 신봉하던 기사도를 완전히 부인당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것은 가치관의 혼란으로 이어졌고, 결국 점점 변하기 시작하더니 종국에는 돈만 밝히는 속물이 되어 버린 것이었다.
 그러니 크리처 남작이 하인츠를 좋게 볼 리가 없었다.
 ‘어차피 이곳에서 뭔가를 기대하진 않았어. 그저 내 필요에 의해 나올 뿐이지.’
 애초부터 크리처 남작에게 추천장을 받겠다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그저 작위를 물려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 주기 위해 나오는 것뿐이었다.
 “무슨 일이냐?”
 싸늘한 남작의 물음에 하인츠는 무뚝뚝한 얼굴로 대답했다.
 “수련을 쉬어서는 안 될 것 같아 다시 나오게 되었습니다.”
 “후후, 수련을 한다고 해서 뭔가 달라지지는 않을 텐데?”
 속마음을 조금도 숨기지 않는 크리처 남작의 말에 하인츠는 속으로 이를 악물었다.
 ‘아니, 크게 달라질 거야.’
 “어쨌든 다시 나와 수련을 하겠다니 기특하구나. 열심히 해 보아라.”
 마음에도 없는 그의 없는 말에 하인츠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숙여 보였다.
 
 “크윽! 젠장!”
 하인츠의 입에서 얕은 신음이 새어 나왔다. 제대로 움직이지도 않는 몸을 이끌고 검술 수련을 한 터라 온몸이 비명을 질러 댔다. 이 상태로 집으로 돌아갈 수나 있을지 걱정이었다.
 잠시 쉬었다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나무 그늘에 몸을 뉘었다.
 “하인츠.”
 익숙한 목소리에 하인츠는 뒤를 돌아보며 반색했다.
 “라이젠.”
 찰랑거리는 금발 머리에 또래에 비해 키가 훤칠한 소년이 반가운 얼굴로 뛰어오고 있었다. 유일한 친구인 라이젠이었다.
 “아버님 일로 상심이 크지?”
 “괜찮아.”
 “그래도 다시 나오게 되서 다행이야.”
 “걱정해 줘서 고마워.”
 라이젠의 진심 어린 얼굴에 잠시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고 보면 아버지가 죽은 후 2달 동안 한 번도 마음이 편한 적이 없었다. 미친 듯이 독공 수련에 매진한 것도 어쩌면 모든 것을 잊기 위한 몸부림이었는지도 몰랐다.
 “앞으로는 계속 나올 테니 네가 많이 도와줘.”
 “응? 내가 뭐 아, 아는 게 있어야지.”
 “후후, 내가 볼 때 검술 학교에서 제일 실력이 좋은 건 너야.”
 “에이, 농담도 잘한다.”
 “진짠데?”
 농담하듯 말을 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진심이었다.
 객관적인 실력만 놓고 보면 그가 학교에서 가장 실력이 좋았다. 하지만 실제 대련을 해 보면 언제나 중간 정도의 성적밖에 내지 못했다.
 ‘자식, 성격만 바꾸면 정말 네가 최고다.’
 소심한 성격 탓에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였다. 열일곱이나 되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어린 티를 벗지 못한 것도 그런 이유였다.
 “아무튼 다시 다니게 됐으니 이제 자주 볼 수 있겠네?”
 라이젠은 뭐가 그리 좋은지 연신 방긋거렸다.
 둘은 잠시 더 밀린 이야기를 나누다가 걸음을 옮겼다. 잠시 쉰 덕에 그럭저럭 움직일 만했다. 연무장을 거의 벗어나려 할 때, 다분히 시비조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예 안 나올 줄 알았더니 다시 나오긴 하는군.”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누군지 알 수 있었다. 하인츠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옆에 있던 라이젠이 깜작 놀라 뒷걸음질 칠 정도로 하인츠의 표정은 살벌했다.
 노메른! 노메른 베스컬!
 하인츠는 고개를 슬쩍 기울이며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일이지?”
 “뭐, 너무 오랜만이라 반가워서 말이지.”
 노메른은 짧은 갈색 머리를 손으로 쓸어 올리며 말했다. 나름대로 반가운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조금의 진심도 실려 있지 않았다.
 하인츠도 픽 웃으며 답례했다.
 “그래? 나도 반갑군.”
 하인츠는 선뜻 그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는 재미있다는 듯 하인츠를 바라보다가 그 손을 맞잡았다.
 “앞으로 또 자주 보게 되겠군. 잘 지내보자고.”
 “나쁘진 않겠지.”
 생각 같아선 놈을 박살 내 버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그랬다간 당장 문제가 발생할 터였다.
 더군다나 독공의 부작용으로 몸 상태도 말이 아니었다. 앞으로 갈수록 강도가 세지는 독기에 버티는 것만도 충분히 벅찬데, 굳이 놈을 자극해서 스스로 궁지에 몰릴 필요는 없었다.
 하인츠는 손을 털어 내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냥 보내 주려고?”
 “놔둬. 애비도 없는 불쌍한 놈이잖아. 안 그래? 그리고 시간은 아직 많으니까.”
 하인츠의 발이 우뚝 멈춰 섰다. 어찌나 세게 쥐었는지 여린 주먹에 힘줄이 툭툭 불거져 나왔다.
 “하, 하인츠!”
 옆에 있던 라이젠이 깜짝 놀라 하인츠의 팔을 붙잡았다.
 “이제야 자기 처지가 어떤지 생각이 난 모양이지?”
 하인츠는 그 자리에서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빠득빠득 이를 갈아붙였다.
 아무리 무시하려 애써도 이런 말까지 참고 넘길 수는 없었다. 아버지의 죽음이 누구 때문이던가? 지금 저따위 소리를 하고 있는 놈의 아비가 저지른 짓이 아닌가!
 “얼른 집에 가야지!”
 라이젠이 난처한 표정으로 하인츠를 잡아끌었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하인츠의 발은 요지부동 떨어질 줄을 몰랐다.
 “헉!”
 하인츠의 팔을 잡아끌던 라이젠이 깜짝 놀라며 황급히 뒤로 물러섰다. 하인츠의 눈에서 녹색의 기광이 피어오른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마침내 하인츠가 고개를 돌렸다.
 “뭐, 할 말이라도 있으신가? 음?”
 피식 웃으며 다가서던 노메른이 걸음을 멈추며 눈을 가늘게 떴다.
 ‘웃어?’
 하인츠의 입가에는 한겨울 삭풍만큼이나 차가운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단지 보고 있을 뿐인데도 몸에 소름이 돋는 듯했다.
 하인츠는 노메른을 향해 성큼 다가섰다. 그리고 나직하게 속삭였다.
 “조금만 기다려.”
 하인츠는 슬쩍 물러나려던 그의 어깨를 붙들고 하던 말을 마저 이었다.
 “재미있는 경험을 시켜 줄 테니까.”
 노메른은 주먹을 불끈 쥐고 눈에 힘을 주었다. 이 정도로 밀리는 모습을 보여 줘서는 안 된다.
 하인츠는 할 말을 다 했다는 듯 그대로 돌아서서 라이젠의 어깨에 팔을 걸쳤다. 간신히 태연한 표정을 지을 수 있었지만, 라이젠의 어깨가 아니었다면 쓰러졌을지도 몰랐다. 라이젠이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티 나지 않게 하인츠를 부축했다.
 한참 멀어지고 있을 때, 뒤에서 노메른의 외침이 들려왔다.
 “그 전에 네 몸부터 사리는 게 좋을 거야!”
 하인츠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노메른의 경고는 바로 다음 날부터 그 효력을 발휘했다.
 “뭐 하자는 거지?”
 하인츠는 자신을 둘러싼 10여 명의 아이들을 훑어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후후, 그동안 너 참 마음에 안 들었거든.”
 “그러게 말이야. 실력도 없으면서 어깨에 힘주고 다니는 게 정말 꼴 보기 싫었지.”
 “애비가 공작님의 총애를 받으면 겁도 사라지나 보지?”
 “그러면 뭐 하나. 이제 애비도 없는데 말이야. 큭큭!”
 저마다 한마디씩 내뱉는다.
 하인츠는 손에 힘을 꽉 주었다. 자신을 둘러싼 소년들과 눈을 마주쳤다. 치기 어린 질투심이 맺혀 있는 눈동자들. 하인츠는 그들의 비웃는 얼굴 뒤에 걸린 두려움을 읽었다.
 하인츠는 천천히 시선을 들어 소년들의 뒤에서 팔짱을 끼고 서 있는 노메른을 쳐다보았다.
 “너무 애쓰지 마라. 너희들론 무리다.”
 하인츠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몸이 정상이라도 감당하기 힘든 숫자였다. 어차피 피할 수도 없는 상활. 결국 맞아 주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죽어도 약한 모습을 보여 줄 수는 없다.
 “뭐! 이게 지금 우리가 그렇게 만만해 보여?”
 한 소년이 발악적으로 외치는 순간 하인츠가 고개를 치켜들었다.
 “흡!”
 하인츠의 매서운 눈매에 소년들이 오히려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몰랐나 보네?”
 “이, 이게!”
 한 소년이 뭐라고 외치려고 했지만 누구 하나 먼저 나서지 않았다.
 “병신 같은 놈들!”
 그때 뒤에서 지켜보고만 있던 노메른이 신경질 적으로 외치며 앞으로 나섰다.
 “아주 고상한 취미가 있으셨군?”
 앞으로 나서는 노메른을 향해 하인츠가 비아냥거렸다.
 순간 노메른의 목검이 움직였다.
 깜작 놀란 하인츠가 옆으로 피하려고 했으나, 검술 학교의 대련에서만큼은 누구에게도 진 적이 없는 노메른이었다.
 묵직한 소리와 함께 하인츠는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다.
 ‘제기랄!’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몸 상태가 좋지 않았는데, 맞은 부분이 뭔가 잘못된 모양이다.
 하인츠는 두 눈을 부릅떴다.
 쓰러지고 있는 하인츠의 허벅지로 날아드는 노메른의 목검.
 퍼억!
 맞은 곳은 한 곳인데 전신의 근육이 비명을 질렀다. 하인츠는 비집고 나오는 신음을 억지로 집어 삼켰다.
 “밟아!”
 노메른의 외침이 떨어지자마자 준비하고 있던 소년들의 목검이 쏟아져 내렸다. 하인츠는 반항 한 번 하지 않고 고스란히 몸으로 때웠다.
 “죽어, 개자식아!”
 “망할 새끼가 우릴 우습게봐?”
 하인츠가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한 소년들은 한층 더 거세게 날뛰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이, 이건!’
 목검이 떨어져 내릴 때마다 죽을 만큼 아팠다.
 그런데 고통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고통이 지나간 그 자리에 개운한 느낌이 퍼졌다.
 절대 정상적인 반응이 아니었다.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순간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독공이었다. 이러다가 독기가 폭주라도 해 버리면.
 덜컥 겁이 났다.
 애써 자신의 것으로 만든 독기가 갑자기 원래대로 돌아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기엔 몸이 너무 개운했다. 그와 함께 묵직한 무언가가 경맥을 따라 흐르는 느낌이 전해졌다.
 ‘설마?’
 하인츠는 온몸을 두드리는 고통을 애써 무시한 채 몸속의 기운에 정신을 집중했다.
 ‘흐르고 있어!’
 뭉친 독기로 인해 굳어 있던 경맥으로 진기가 유통되고 있었다.
 정상적으로 원활하게 흐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독공의 부작용으로 진기 흐름을 거의 멈춰 있던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힘찬 흐름이었다.
 ‘설마 이건!’
 머릿속에 불꽃이 튀는 듯했다.
 더 이상 통증엔 생각이 미치지 않았다. 온 정신을 흐르고 있는 진기에 집중했다. 점점 더 기운차게 움직이는 것이 조금 전 생각했던 것이 맞는 모양이다.
 “크크크!”
 하인츠 자신도 모르게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목검을 휘두르던 소년들은 갑작스러운 소리에 움찔하며 손을 멈췄다.
 “크크크큭!”
 웃음소리의 근원지는 하인츠였다. 섬뜩한 느낌에 소년들은 손을 움직일 수 없었다.
 아쉬움을 느낀 하인츠가 소리를 버럭 질렀다.
 “더 해! 더 때리라고! 뭐 해, 멍청한 놈들아! 겨우 그 정도밖에 안 되는 거냐?”
 “이, 이 자식 왜 이래?”
 “뭐, 뭐야?”
 “이거 미···친 거 아냐?”
 소년들은 겁먹은 표정으로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더 때려!”
 하인츠의 반응에 소년들은 더욱 공포에 질렸다. 멀리까지 물러났던 소년 하나가 목검을 떨어뜨리며 더듬더듬 중얼거렸다.
 “미, 미친 게 분명해!”
 그 소년이 도망침과 동시에, 다른 소년들도 달아나기 시작했다. 놈들은 순식간에 사라졌고, 하인츠는 입맛을 다시며 아쉬워했다.
 “어쩔 수 없지.”
 하인츠는 상체만 일으킨 채 천천히 몸을 움직여 보았다.
 온몸에 시퍼렇게 멍이 들고 지독하게 아팠다. 그에 반해 몸속에서 요동치던 통증은 많이 사그라진 상태였다. 완전하지는 않았지만 이전보다 훨씬 편안했다. 자신을 팬 소년들이 고맙게 느껴질 정도였다.
 이로써 더뎠던 수련 속도를 다시 원래대로 할 수 있을 것이다.
 “후후, 이런 방법이 있었군.”
 하인츠는 아주 홀가분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아!”
 하루라도 빨리 회독을 완성시킬 수만 있다면 방법이야 어찌 되든 상관없었다.
 
 “좋아!”
 기쁨에 찬 목소리가 넓은 지하실 안에서 메아리가 되어 울려 퍼졌다.
 “크크크! 노메른에게 고맙다고 전해 줘야겠군.”
 소년들이 하인츠를 뭇매를 놓았던 것에는 추궁과혈의 효과가 있었다. 추궁과혈은 가볍게 몸을 주물러 주는 것에서부터 구타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의 타격까지 다양한 방법이 존재하는데, 소년들이 하인츠를 때렸던 강도 역시 추궁과혈의 범주에 속했다.
 ‘왜 이걸 몰랐을까!’
 하인츠는 아버지의 일기에 쓰여 있던 내용을 떠올렸다.
 회독의 단계를 수련할 때는 외부로부터의 충격을 절대 경계하라고 적혀 있었다. 부작용의 경우는 어차피 회독의 단계를 완성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풀리니 참는 것이 좋다는 내용도 있었다. 그러한 모든 것이 수련의 한 과정이라고.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독공이란 독기를 다루는 심법이었고, 독기는 세상에서 가장 예민하면서도 흉폭한 기운이었다. 그런 기운을 몸속에 갈무리할 때 외부로부터의 충격이 몸속의 독기에 어떤 반응을 불러올지 아무도 장담을 할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추궁과혈로 뭉친 독기를 풀어 주는 방법은 생각도 못 했고, 그 누구도 시도를 해 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해 보니 효과가 있었다.
 굳은 경맥이 풀어진 후 독기를 흡수하는 데 소모된 시간이 한층 줄었다. 처음 수련을 시작하던 때만은 못하지만 고작 3시간 만에 독기의 흡수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큭!”
 몸을 일으키려는데 갑자기 전신으로 통증이 퍼졌다.
 조금 전 흡수한 독기로 인해 다시 경맥이 굳어 버린 것이다. 보통의 기운이 아닌 독기다 보니 흡수한 즉시 몸에 반응이 나타났다. 아무렇지도 않게 몸을 움직이려던 하인츠는, 갑작스러운 통증에 어깨를 떨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제길!”
 하지만 이제는 해결 방법이 있었다. 문제는 어떻게 실행을 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이른 아침.
 저택을 나서는 하인츠의 표정은 과히 좋지 않았다.
 ‘빌어먹을, 그 짓을 또 해야 되는 건가?’
 어제 녀석들에게 맞으며 상당한 효과를 보았지만, 그 효력이 일회성이었다. 그것을 알게 된 후 여러 가지 방법으로 고민을 한 끝에 에번스트를 불러 자신을 때리라고 명령했다. 결과는 실패였다.
 하인의 입장으로 어찌 주인에게 몽둥이찜질을 할 수 있겠는가. 라텍에게도 시켜 보았지만, 평소에 냉정하면서도 과감한 성격의 라텍도 그것만은 하지 못했다.
 어쨌든 하인츠는 인정사정없이 자신을 두들겨 패 줄 사람이 필요했고, 결국 그 적임자는 검술 학교 내에 있었다.
 죽도록 때려도 시원치 않을 판에 스스로 맞아 줘야 한다는 것이 영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맞아 주지! 그 정도쯤 참아 주겠어!’
 지금은 하루라도 빨리 수련을 마치는 것이 우선이었다.
 어젯밤 라텍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했던 말이 있었다.
 
 -서두르지 말고 꾸준히 수련하시는 편이······.
 
 물론 시간을 들여 회독을 끝낼 수도 있다.
 그러나 하인츠에게는 서둘러야 할 이유가 있었다.
 앞으로 하인츠가 할 일들은, 기사 서임을 포함해 대부분이 직접 움직이며 해결해야 할 것들이었다. 지금의 몸 상태로는 그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지금 와서 독공 수련을 멈출 수도 없다. 몸을 정상적인 상태로 만들기 위해서는 회독을 완성해야 했다.
 결국 험한 길이라고 해도 지름길을 택하는 수밖에 없었다.
 
 크리처 남작은 하인츠가 상처와 멍이 가득한 얼굴로 나왔음에도 그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비릿한 웃음을 머금었다.
 훈련의 강도도 더 세졌다.
 검을 휘두르는 것도, 체력 훈련이라는 명목하에 벌어지는 연무장을 도는 횟수도 늘었다.
 “괘, 괜찮아?”
 수련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라이젠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다가와 물었다.
 “크크, 이 정도쯤 버텨 줘야지.”
 하인츠는 비릿한 미소를 입에 걸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뭘 찾아?”
 “어제 그놈들.”
 “응?”
 검술 학교에서 아이들끼리 말하는 것을 듣고, 어제 하인츠가 당한 일을 알게 된 라이젠이었다.
 “뭐, 뭐 하려고?”
 하인츠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 라이젠으로서는 불안한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다.
 “별거 아냐. 먼저 집에 가.”
 “응? 가, 같이 가지?”
 “아니. 꼭 필요한 일이라서 그러니까 먼저 가.”
 “그, 그래도.”
 하인츠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고 빙긋이 웃으며 라이젠의 어깨를 떠밀었다. 라이젠은 걸음을 옮기면서도 몇 번이나 뒤로 돌아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렇지만 하인츠의 성격을 잘 알고 있기에 결국 한숨을 뱉으며 걸음을 옮겼다.
 라이젠의 모습이 가물거릴 즈음, 하인츠는 어제 그 소년들을 향해 다가갔다.
 “어제는 고마웠어.”
 그는 손까지 흔들어 주며 인사를 했다.
 “흥! 또 얻어맞고 싶어서 왔냐?”
 한 소년이 목검을 휘두르며 나름대로 위협적인 포즈를 취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다리를 후들후들 떨고 있었다. 어제 자신들에게 뭇매를 맞으며 키득거리던 하인츠의 모습이 아직까지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은 탓이었다.
 “어떻게 알았어?”
 “뭐라고?”
 “후후, 오늘도 한번 붙자!”
 “이 자식 무슨 헛소리······.”
 소년은 말을 다 하지 못했다. 하인츠가 어느새 빼 든 목검을 휘둘러 온 탓이다.
 따악!
 목검이 머리를 때리며 경쾌한 소리를 냈다.
 “이 자식이!”
 “야! 밟아!”
 동료가 당한 데 분노한 소년들이 사납게 검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어제 있었던 공포 따위는 이미 저만치 날아가 버린 후였다.
 “좋아!”
 하인츠는 큰 소리로 외치고는 아예 손에 들고 있던 목검을 내팽개쳐 버렸다.
 ‘회독의 단계가 완성될 때까지!’
 세 자루 목검이 동시에 덮쳐 왔다.
 
 
 
 
 
 # Chapter 3 선택
 
 
 
 
 
 난세가 영웅을 만든다고 했던가. 이는 곧, 영웅이 난세를 만나 기회를 잡았다는 말이리라.
 하지만 난세에 기회를 잡는 것은 꼭 영웅 만은 아닌 듯하다. 나 같은 사람도 전쟁의 시기를 만났기에 포리버 남작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수 있게 되었으니까.
 -아이언 포리버의 일기 中
 
 아이언 포리버 남작이 세상을 뜬 지 3달 정도가 흘렀다. 산의 나무들이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고, 북에서 내려오는 바람이 점점 한기를 더해 갔다.
 혹독한 계절이 다가옴에 따라 귀족은 귀족대로, 평민들은 평민들대로 겨울을 대비해 바쁜 손길을 재촉했다.
 아스탈 공작가 역시 바쁘기는 매한가지였다. 그런데 공작가의 분주함에는 다른 이유가 들어 있었다. 공작가의 대공자 엔크레스 아스탈의 금의환향이었다.
 제국의 북쪽 켈리모크 산맥 너머에 사는 스누 족을 토벌하는 데 큰 공을 세운 것이었다.
 황제의 차출령에 엔크레스는 은사자 기사단과 함께 아스탈 공작령의 자랑 중 하나인 기마대를 이끌고 출전을 했다.
 토벌전은 결코 쉽지 않았다. 사시사철 몰아치는 극한의 추위와 험한 산맥이 토벌대의 길을 막은 것이다. 게다가 스누 족의 저항도 만만치가 않았다.
 그런 어려운 상황에서 엔크레스가 기지를 발휘해 스누 족을 함정으로 몰아넣어 완전히 토벌을 할 수가 있었다.
 그 공로를 인정한 황제가 엔크레스에게 백작 위를 내린 것이었다.
 제국에서 부친의 작위를 물려받기도 전에 스스로의 힘으로 직접 작위를 받는 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었다.
 하물며 백작 위는 제국에서 큰 권력을 의미한다. 제국 법상 중앙 정치의 참정권은 백작 이상에게만 주어지기 때문이었다.
 이는 엔크레스 개인은 물론 공작가 전체에도 크게 명예스러운 일이었기에 영지민들까지도 마치 자신의 일인 양 기뻐했다.
 마침 공작령에서 머물고 있던 아스탈 공작은 이런 기쁜 일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며 축제를 준비했고, 영지민들은 손이 더욱 바빠졌음에도 오히려 그걸 반기는 분위기였다.
 성내의 들뜬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홀로 겨울을 준비하는 이가 있었다.
 하인츠였다.
 “스으으읍!”
 싸늘한 공기가 깔려 있는 정원.
 놀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부친의 죽음과 여러 주변의 드센 압박을 피하기 위해선 힘이 필요했다.
 검술 학교 내에서 노메른과의 일도 얼른 해결을 해야 했다. 지난 1달간 노메른은 끈질기게 하인츠를 괴롭혔다. 게다가 10일 전에는 우연히 끼어들게 된 라이젠의 다리가 부러지는 일도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두 사람의 악감정은 깊어만 갔다.
 이 모든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조금이라도 힘을 기르는 것이 최선이었다.
 바람이 점점 차가워지고 있었다. 겨울이 오면 훈련도 쉽지 않을 터, 지금 해 두지 않으면 안 된다.
 하인츠는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 손에는 엄지와 검지 사이에 비도가 들려 있었다.
 “타앗!”
 기합성과 함께 손을 뿌렸다.
 비도가 빠른 속도로 날아가더니 30미터 거리에 있던 표적의 정중앙에 꽂혔다.
 비도가 박힌 곳 주변에는 벌써 몇 개의 비도가 박혀 있었다.
 “됐어!”
 하인츠는 저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독공 수련과 함께 시작한 암기술 수련이었다. 단 3개월 만에 이 정도 경지까지 도달한 것은 쾌거라고 할 만했다.
 아버지의 일기에도 이렇게 되려면 5달은 필요하다고 적혀 있었다. 그런 것을 단 3개월 만에 터득한 것이다.
 독공 역시 고된 수련 끝에 어느덧 회독 단계의 끝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축하드립니다, 공자님.”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라텍이 수건을 건넸다.
 “고마워.”
 라텍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고 있는 하인츠를 보며 저도 모르게 감정이 복받쳐 오르는 것을 느꼈다.
 ‘이런 모습을 못 보시다니.’
 죽은 포리버 남작은 떠올리니 안타까운 마음에 저도 모르게 눈가가 뜨거워졌다.
 “대공자께서 돌아오는 날이 언제지?”
 “이제는 아스탈 백작님입니다. 내일쯤 아스탈 공작령으로 들어선다고 했으니 3일 후면 성에 도착하겠군요.”
 “그래?
 “참석하실 겁니까?”
 엔크레스가 도착하는 당일 날 내성에서는 연회가 준비되어 있었다.
 “내가 거길 왜?”
 “공작님의 초대장이 온 것을 잊으셨습니까?”
 “가 봐야 분위기만 흐릴 뿐이지.”
 “공작님의 초대를 무시하겠다는 말씀이십니까?”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신경 쓰지 마.”
 하지만 라텍으로서는 하인츠를 꼭 보내고 싶었다.
 “가셔서 선대 남작님과 친분이 있던 다른 가신들도 만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미 베스컬 그놈에게로 돌아선 놈들이야. 필요 없어.”
 “그러니까 더욱더 가셔야죠.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선대 남작님의 이야기를 하면서 다시 친분을 쌓아야 합니다.”
 “그놈들에게 아무런 힘도 없는 나와 친분을 유지할 필요가 있을까?”
 하인츠의 싸늘한 반응에 라텍은 말문이 막혔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하인츠가 아무리 공작의 총애를 받는다 해도 아직은 작위도 물려받지 못한 상태다. 따지고 들면 평민과 다름없는 신분. 그들에게 하인츠와 친해져야 할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지금은 필요 없어.”
 “나중을 위해서라도······.”
 “됐어. 어차피 힘을 가지게 되면 그런 놈들은 자연스럽게 모이는 법이야.”
 “하지만 그런 관계는 힘이 없으면 깨지기 마련입니다.”
 “떠날 테면 떠나라지.”
 “그건 좋지 않습니다.”
 라텍이 고집을 부리려 하자 하인츠는 곧장 말을 돌려버렸다.
 “나쁠 것도 없지. 그건 그렇고 이번 전쟁, 뭔가 상당히 바뀔 것 같지 않아?”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이잖아.”
 “이상하다니요?”
 “스누 족이 겨울을 대비해 산맥 남쪽의 마을들을 습격한 건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던 일이야.”
 “그야 그렇습니다만.”
 “이전에는 그저 북부 방위군을 넓게 배치해서 약탈을 막았을 뿐이었단 말이지. 그런데 이번에는 이전과는 다르게 토벌을 했어. 이유가 뭐겠어?”
 “그 말씀은······.”
 “이번 토벌전에는 뭔가 다른 이유가 있을 거란 말이지.”
 “그럴··· 수도 있겠군요.”
 라텍은 놀라고 있었다. 평소 독공 수련 외에 다른 일에는 관심이 없는 줄 알았는데 언제 이런 것 까지 생각하고 있었단 말인가? 라텍은 하인츠가 작위를 받았을 때, 그를 도와주기 위해 제국의 정세에 대해 많은 신경을 쓰고 있었다. 그런 라텍조차 생각하지 못하고 있던 부분을 하인츠가 짚어 낸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 다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라텍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글쎄? 확신할 수는 없지만, 남쪽의 카모트 밀림에 대한 토벌이 있지 않을까 싶어.”
 “네에!”
 라텍은 저도 모르게 크게 소리를 질렀다.
 “뭘 그렇게 놀라?”
 “하지만 카모트 밀림은 칠 필요가 없는 곳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켈리모크 산맥도 마찬가지야.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스누 족이 내려오는 것만 막으면 되는 일 아닌가?”
 “음, 그래도······.”
 “절대 이유 없이 그러지는 않았을 테지. 그렇다면 이유가 뭘까?”
 “모르겠습니다.”
 라텍은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스누 족 토벌을 빌미로 다른 야만족들을 모두 정벌할 생각인 거지.”
 “다시 말씀드리지만 그럴 필요가 없는 곳입니다.”
 “있어.”
 하인츠가 단정 짓자 라텍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반문했다.
 “네?”
 “평화가 너무 오래 지속되었어.”
 “그게 어째서 이유가 된다는 말씀이신지······.”
 “다른 왕국들이 점점 반항적인 태도를 취하기 시작했거든. 아무 왕국이나 하나 무너트려 버리면 간단하겠지만, 왕국들이 그 정도의 꼬투리는 잡히지 않거든. 명분이 없으니 우회하는 방법을 택하는 거지.”
 “아!”
 라텍은 그제야 하인츠의 말을 이해했다.
 “무력시위군요. 남쪽 밀림을 정벌함으로써 제국의 힘을 보여 주면 함부로 반항하지 못할 테니까.”
 “어디까지나 내 생각일 뿐이야.”
 하인츠는 남 얘기를 하듯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라텍은 하인츠가 한 이야기가 상당히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다.
 ‘언제 이런 생각까지 하셨을까?’
 라텍이 받은 충격은 대단히 컸다.
 이제 겨우 열일곱의 나이로 이 정도까지 생각을 한다는 것은 보통일이 아니었다. 문득 하인츠가 힘을 가졌을 때를 생각해 보니 왠지 마음이 들떴다.
 “만일 내 예상대로 전쟁이 벌어진다면, 제국의 정세에는 큰 변화가 찾아올 거야.”
 하인츠는 그 말을 끝으로 저택 안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엔크레스의 귀향은 예정대로 이루어졌고, 그날 벨크로 성은 온통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귀족들은 내성에서 열린 연회에 참석해 평민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엔크레스의 금의환향을 축하했다.
 하인츠는 라텍의 거듭된 권유에도 불구하고 연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하루 종일 독공과 암기술 수련에 매진할 뿐이었다.
 그리고 다시 이틀이 지났다.
 “후우!”
 하인츠는 긴 한숨을 내쉬며 방금까지 자신에게 뭇매를 놓던 녀석들의 뒷모습을 노려보았다.
 그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흠씬 두들겨 맞으며 독공 수련에 전념해 온 하인츠였다. 이제는 맞는 것도 이력이 붙을 정도였다.
 “이제 며칠 안 남았어.”
 하인츠는 온몸에 묻은 먼지를 털어 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힘겹게 걸음을 옮기려는데 그의 시선을 끄는 것이 하나 있었다. 화려하기 짝이 없는 베스컬 남작의 마차였다.
 베스컬 남작의 마차는 검술 학교 교사 앞에 멈춰 섰다.
 ‘저놈이 대체 무슨 일이지?’
 크리처 남작과 베스컬 남작이 긴밀한 관계라는 사실은 알려져 있었지만, 이런 곳까지 찾아올 정도로 드러내 놓고 다닐 정도는 아니었다. 왠지 신경이 쓰여 발걸음이 잘 떨어지지가 않았다.
 하인츠는 재빨리 교사 뒤로 돌아갔다. 막 모퉁이를 돌자마자 베스컬 남작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로 보자고 했소? 남들 이목도 있는데······.”
 자못 불만이 어린 목소리였다.
 “험험, 급한 일이 있었소.”
 “급한 일? 그게 무슨 말이오?”
 “오늘 아침 공작님의 부름이 있어 다녀왔소이다.”
 베스컬은 다시 묻지 않았고, 잠시 뜸을 들이던 크리처가 말을 이었다.
 “하인츠, 그놈 때문이었소.”
 “하인츠? 그놈이 왜?”
 그 말에 하인츠도 궁금한 마음이 들어 귀를 바짝 가져갔다.
 “하인츠, 그놈의 수준에 대해서 물으셨소.”
 “그래서 뭐라고 하셨소?”
 “당연한 일 아니겠소? 제 구실을 하려면 멀었다고 했지.”
 “그랬더니?”
 “안타까운 표정을 짓더니 기사 아카데미에 대해 이야기하시더군.”
 “그 말은 그놈에게 추천장을 써 주라는 무언의 압박이 아니오?”
 “일단 제대로 실력도 없는 자가 아카데미에 들어가면 오히려 위험해질 수 있다고 말씀을 드리긴 했소만. 공작님께선 조금 생각이 다르신 듯하였소. 하지만 그놈에게 추천장을 써 줄 수는 없는 노릇 아니오?”
 “흐음, 지긋지긋하구려. 아직까지 공작님께선 포리버 가문에 정이 남으신 모양이오. 정만으로 처리할 사안이 아니거늘. 쯧쯧······.”
 숨어서 듣던 하인츠의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얼굴엔 분노보다 오히려 비웃음을 어려 있었다. 그는 한층 더 숨을 죽인 채 두 사람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아무튼 공작님은 하인츠, 그놈에 대한 관심이 너무 큰 것 같소.”
 “그거야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이 아니오?”
 “요즘 들어 더 과해진 건 같단 말이오. 일전에 연회에도 그놈이 나오지 않았다고 대단히 침울해하시지 않았소?”
 “으음. 그렇기는 하지만······.”
 잠시 정적이 흘렀다.
 하인츠도 그사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공작님께서 날 그렇게까지 생각하셨던 건가?’
 그저 아버지에 대한 의리 때문에 조금 챙겨 주는 정도라고 생각했었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사방에 적밖에 없는 이 공작령 내에서 큰 힘이 되었지만, 이 정도까지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괜히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
 ‘뭐, 나중에 보답하면 될 일이지.’
 그때였다.
 “죽여 버리는 건 어떻소?”
 베스컬 남작의 목소리였다.
 하인츠는 저도 모르게 손끝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이런 식으로 계획을 잡을 줄이야. 마른침이 입에 고였다.
 “하지만 죽이는 것은 조금······.”
 크리처 남작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에 반해 베스컬 남작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노메른의 말을 들어 보니 우리에 대한 원한이 이만저만이 아닌 듯했소이다. 놈이 이대로 작위를 물려받아 힘을 기른다면 언제 우리 목에 칼을 들이댈지 알 수가 없소. 싹은 미리 제거를 해야지.”
 “하지만 아이언 포리버가 죽은 상황에서 하인츠, 그놈까지 죽는다면 문제가 커질 텐데······.”
 “그러니 방법을 생각해야 하는 것 아니겠소?”
 “어떻게 하자는 말이오?”
 “그거야 크리처 경에게 맡기겠소.”
 “내가 말이오?”
 크리처 남작이 놀란 표정으로 물었으나, 베스컬 남작은 곧장 고개를 끄덕였다.
 “내 손에만 피를 묻힐 수는 없는 일이 아니겠소? 흐흐, 명심하시오. 우리는 이미 한 배를 탔다는 것을.”
 “험험!”
 크리처 남작은 헛기침을 하며 베스컬 남작의 시선을 피했다.
 가만히 듣고 있던 하인츠의 눈에 살기가 피어올랐다.
 ‘개자식!’
 베스컬의 말에 다시 그날의 일이 떠올라 움켜쥔 주먹이 바들바들 떨렸다. 하지만 지금은 흥분할 때가 아니었다. 한층 더 숨을 죽였다.
 “그럼 오늘은 이만 돌아가겠소이다. 나중에 다시 자세한 이야기를 하도록 합니다.”
 “그럽시다.”
 두 남작은 그것을 끝으로 이야기를 마쳤다. 하인츠는 방 안에서 인기척이 들리지 않을 때까지 몸을 숨기고 있다가 안전하다고 생각되었을 때에 조용히 그곳을 벗어났다.
 이런 이야기를 알게 되다니. 운이 좋았다. 미리 알고 대비를 하면 당할 일은 없을 것이다.
 ‘나를 죽이겠다고? 크크, 어디 해 보라지!’
 
 “공자님!”
 라텍이 두 눈을 휘둥그레 뜬 채 암기술을 수련하고 있는 하인츠를 향해 달려왔다.
 “무슨 일이야?”
 “예상이 맞아떨어졌습니다.”
 “예상이라니?”
 “황제 폐하께서 카모트 밀림 정벌을 명하셨다고 합니다.”
 “그래?”
 하인츠는 손에 들었던 비도를 탁자 위에 올려놓고는 의자에 앉았다.
 “자세하게 얘기해 봐.”
 “그러니까 오늘 내성으로 마법 통신이 왔다고 합니다.”
 “내용은?”
 “남부에 있는 각 영지에서는 군사를, 북부의 영지는 물자를 징집한다고 합니다.”
 “그래?”
 “남부 방위군은 밀림으로 향하고, 징집된 영지군은 원래 남부 방위군의 주둔지에 머물면서 그곳을 지키게 한다고 하더군요.”
 제국군의 편제는 동서남북의 4곳에 각각의 방위군이 있고, 중앙에는 황도를 중심으로 수도 방위군이 있다.
 이 중 남부 방위군은 평시에 2개의 군단으로 유지가 되고, 전시에는 각 영지군으로 2개의 군단을 꾸려 총 4개의 군단이 된다.
 라텍의 이야기로는 징집된 영지군은 남부 방위군의 주둔지를 지킨다고 하니, 이번 정벌에 총 10만 대군이 출정한다는 뜻이었다.
 “단번에 쓸어버리겠다는 생각이군.”
 “그런 것 같습니다.”
 “누가 꺼낸 이야기지?”
 “하이커스 공작입니다.”
 “흠, 듣던 성격 그대로군.”
 하이커스 공작은 아스탈 공작과 함께 제국의 5대 공작 중 한 명이었다.
 “아무튼 이야기가 그렇게 되는군. 알겠어.”
 “예.”
 라텍이 물러가고 하인츠는 혼자 생각에 잠겼다.
 ‘한 번은 가야 할 곳이기는 한데······.’
 카모트 밀림은 독공을 수련하기 위해 꼭 한 번 거쳐야 할 장소였다.
 ‘전쟁이라··· 조만간 정세에도 변화가 있을 거라는 말인데······.’
 하인츠는 조용히 지금까지의 일과 앞으로의 일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무엇을 하든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기사 서임이었다. 그것이 최우선 선결 과제였다.
 ‘하지만······.’
 크리처 남작이 검술 학교 총교관으로 있는 한 추천장을 받는 것은 애초부터 기대도 하지 않았다. 게다가 어제의 일을 떠올려 보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결국 기사 아카데미를 통하지 않고 다른 방법을 노리는 수밖에 없었다. 정규 기사의 종자로 들어가는 방법이나, 타이틀이 걸린 대회에서 인장을 받는 방법들 말이다.
 하지만 실제 지금의 하인츠가 써먹을 수 있는 방법이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시간이 너무 걸리고, 기회를 잡는다 해도 크리처나 베스컬이 그냥 놔둘 리가 없었다.
 불가능한 방법들을 제외하고 나니 남는 것은 하나밖에 없었다.
 ‘결국 참전인가?’
 제국 정규군의 상급 장교가 되면 정해진 테스트를 거쳐 기사 서임을 받을 수가 있었다.
 ‘공작님께 말씀을 드리면 중급이나 하급 장교까지는 가능할 것이다. 이번 전쟁은 오래갈 전쟁이 아니야.’
 승전의 뒤에는 당연히 대대적인 포상이 준비되어 있는 법이었다. 하인츠는 그것을 노렸다.
 ‘일단 공작님께 부탁을 드려 장교로 가야겠어. 어차피 오래갈 전쟁도 아니야. 밀림도 한 번쯤 가 봐야 하는 곳이니까······. 더불어 베스컬, 크리처 두 놈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이점도 있으니.’
 여러 가지 정황 상 전쟁터로 가는 것이 하인츠에게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일단은 회독 단계부터 마무리를 짓는다. 이제 며칠 남지 않았어.’
 생각을 정리한 하인츠는 홀가분한 기분으로 탁자 위에 올려 두었던 암기를 집어 들었다.
 
 지하실 바닥에는 탁한 연기가 자욱하게 깔려 있었다. 그 가운데 하인츠가 사방을 훑어보았다.
 “드디어 마지막인가?”
 100가지 독을 품어야 하는 회독의 마지막 100번째 독. 오늘이 바로 그날이었다.
 “시작해 볼까?”
 하인츠는 자리에 앉아 천천히 가부좌를 틀었다.
 “흐으으읍.”
 자욱하게 깔린 독기를 들이마시자마자 숨이 턱 막히고 가슴이 답답해졌다. 폐부를 쥐어짜는 듯한 막막함과 함께 머릿속을 수천 마리 개미들이 물어뜯는 듯한 고통이 뒤따랐다. 하인츠는 이를 악물고 버티며 천천히 독기가 몸속을 돌기를 기다렸다.
 ‘이쯤은 아무것도 아니지!’
 더욱 큰 문제는 이 독기를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든 그 후, 회독을 완전히 마무리하는 그 순간이다.
 하인츠는 지금까지 해 왔던 것처럼 천천히 독기를 받아들였다. 길고 규칙적인 호흡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동안 하인츠의 낯빛은 붉으락푸르락 시시각각 변했다.
 그렇게 얼마나 앉아 있었을까?
 바닥에 깔린 연기가 거의 사라질 때쯤 하인츠의 온몸에서는 잿빛의 수증기가 자욱하게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수련의 마무리를 알리는 신호.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잿빛의 수증기가 거의 사그라질 때쯤 하인츠가 천천히 눈을 떴다.
 드디어 100번째 독의 흡수가 끝났다. 하인츠는 여전히 긴장된 표정으로 눈을 감고 있었다.
 그때!
 콰르르릉!
 귓가로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하는 듯하더니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고통이 밀려왔다.
 “끄으으윽!”
 하인츠의 입에서 억눌린 신음이 새어 나왔다.
 회독의 마지막 단계.
 독공 수련의 첫 번째 고비가 찾아온 것이었다. 100가지 독을 모두 받아들이는 순간, 몸속에 있는 독들이 서로 부딪치며 강렬한 기운을 뿜어 올리게 된다.
 잠자고 있던 독기들이 하나의 완전한 기운으로 변해 몸속에 그 기운을 불어넣어 주는 과정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힘을 주는 과정만은 아니었다. 세상에 다시없을 엄청난 고통을 동반하는 과정.
 중원에 있는 모든 독공들은 그 종류를 불문하고 반드시 이러한 과정을 겪게 된다.
 그것은 큰 기로였다.
 진정한 독공의 길로 가느냐 아니면 100가지 독에 한꺼번에 중독되어 폐인이 되느냐!
 모든 것은 정신력에 달려 있다.
 고통으로 정신을 잃게 되는 그 순간, 통제를 잃은 독기들은 몸속을 마구 날뛰며 온몸을 난도질해 버리는 것이다.
 ‘이러면 안 돼!’
 하인츠는 점점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큭!”
 생각할 것도 없이 곧장 혀를 깨물었다.
 아릿한 통증과 함께 입 안 가득 퍼지는 혈 향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것도 잠시, 갑자기 눈앞으로 거대한 칼이 날아들었다.
 ‘환상!’
 이미 눈앞에 헛것이 보이리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아버지의 일기에도 이미 언급되어 있었다.
 ‘피하면 안 돼!’
 주먹을 불끈 쥐었다.
 “크윽!”
 거대한 칼은 하인츠의 목을 훑고 지나갔다. 환상임에도 불구하고 목 언저리가 화끈거렸다.
 ‘잊어! 잊어!’
 질끈 눈을 감았다.
 “크윽!”
 눈을 감아도 환상은 연이어 뭉실뭉실 피어오르며 하인츠를 괴롭혔다.
 수십 개의 칼날이 날아드는가 하면, 어느새 사지가 잘려 있기도 했다. 수백 마리 뱀들이 몸속으로 파고들어 살점을 갉아먹었다.
 ‘버, 버틴다!’
 겨우 이 정도로 무너질 수는 없다. 이뤄야 할 사명이 있지 않은가!
 몸을 쥐고 흔드는 고통과 머릿속으로 어지럽히는 엄청난 환영들! 하인츠는 심신이 완전히 망가지는 것 같은 고통 속에서도 끝까지 정신을 놓지 않았다.
 그리고······.
 펑!
 갑자기 몸속에서 뭔가가 터지는 듯한 강렬한 충격이 전해졌다. 그리고 그 순간!
 “흡!”
 몸과 머리를 마구 뒤흔들던 고통이 한순간에 씻은 듯이 사라졌다.
 “이건!”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드디어 회독의 단계를 완전히 마스터한 것이었다.
 겉으로 드러난 변화는 거의 없었지만, 몸속에서 요동치는 강렬한 기운은 회독의 단계가 끝났음을 말해 주고 있었다.
 하인츠는 홀가분한 기분으로 몸을 일으켰다. 온몸은 땀으로 흥건했지만 기분만큼은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었다. 아직도 환상에서 깨어나지 못한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 정도였다.
 “후후, 이제 실행만 하면 되는군.”
 
 “음? 저게 뭐지?”
 아스탈 공작은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 멀리 여러 명의 아이들이 우르르 한데 몰려 투덕거리고 있었다. 뿌연 먼지가 피어오를 정도로 소란스러웠다.
 “뭐 한창 자랄 나이의 아이들이 아닙니까? 싸우면서 크는 법이지요.”
 뒤에 서 있던 호위 기사 길버트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하지만 공작은 인상을 찡그렸다.
 “그게 아닌 것 같은데?”
 “네?”
 길버트는 공작의 말에 다시 한 번 아이들을 살펴보았다.
 “저, 저놈들이!”
 조금 전까지 신경 쓰지 않고 봤기에 대충 보았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여러 아이들이 한 아이를 놓고 뭇매를 때리고 있었다.
 “잠시만 다녀오겠습니다!”
 “그러게.”
 공작은 달려가는 길버트의 뒷모습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공작령의 미래를 이어 갈 아이들이 저런 모습이라니.’
 괜히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오늘 그가 여기에 온 건 하인츠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어쩐 일인지 하인츠가 검술 학교에서 만나고 싶다는 편지를 보낸 것이다. 이유는 자신의 검술을 보아 달라는 것이었다.
 처음 편지를 받았을 때는 하인츠에게 이런 치기 어린 면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 전 크리처 남작이 하인츠의 검술이 아직 많이 부족하다고 했던 말을 떠올린 것이다.
 그래서 일부러 호위 기사들 중에 가장 안목이 높다는 길버트를 데리고 왔다. 그런데 오자마자 이런 장면을 보게 되다니.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쯧쯧, 어쩌다 이런······.’
 공작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조치를 취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문득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 고개를 들어 보니 소년들이 우르르 도망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길버트는 뭇매를 맞고 있던 소년을 부축해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뭔가 조금 이상했다. 길버트의 부축을 받고 있는 소년의 얼굴이 눈에 익었다.
 ‘하인츠?’
 틀림없는 포리버 남작의 아들 하인츠였다. 어떻게 이런 일이! 순간 황당함과 함께 분노가 치밀었다.
 “하인츠?”
 “아, 공작님.”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죄송합니다. 어쩌다 보니 시비가 붙는 바람에······.”
 하인츠는 그렇게 말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몸은 괜찮은 게냐?”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공작은 의연한 표정으로 웃고 있는 하인츠의 표정을 보고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실력을 보여 주고 싶다고?”
 “예, 그리고 한 가지 부탁드릴 말씀이 있어 어려운 걸음을 하시게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어려운 부탁? 말해 보아라.”
 “우선은 제 실력을 먼저 보아 주십시오.”
 공작은 잠시 하인츠의 얼굴을 보더니 천천히 길버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흐음, 그래. 알았다. 길버트, 준비하게.”
 “예, 공작님.”
 길버트는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나섰다.
 “그래, 어떤 방법으로 네 실력을 보여 주고 싶으냐?”
 길버트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하인츠에게 시선을 던졌다. 예전에 몇 번 보아서 익히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죽은 아이언 포리버 남작에게 꽤나 큰 도움을 받았던 길버트였기에 하인츠와도 안면이 있었다. 어렸을 때 보았지만 꽤나 강단 있는 눈빛이라 크게 성장할 거라고 생각했었던 적도 있었다.
 그런데 오늘 보니 과연 그때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던 모양이다.
 아까 소년들에게 뭇매를 맞고 있으면서도 조금도 굽히지 않는 모습도 모습이거니와 조금의 두려움도 담겨 있지 않은 강렬한 눈빛이 예전 그대로였다.
 ‘이런 눈빛이라면 언젠가는 큰 성취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저와 대련을 해 주십시오.”
 “후후, 대련이라고 했느냐?”
 “예, 어차피 제가 이기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제 실력을 제대로 보여 줄 수 있는 것도 없지요.”
 “하하, 좋은 생각이다.”
 길버트가 기분 좋게 웃으며 앞으로 나서자 하인츠는 미리 준비해 두었던 목검을 내밀었다.
 “가겠습니다.”
 “좋아.”
 이야기가 끝난 동시에 하인츠는 목검을 휘둘러 갔다.
 ‘흡!’
 오히려 깜짝 놀란 쪽은 길버트였다.
 손쉽게 막을 수 있는 공격이기는 해도 그 각도가 대단히 훌륭했다. 자신이 잡고 있는 자세에서 유일하게 드러나 있는 허점을 정확한 각도로 파고들고 있었다. 기사라 해도 웬만한 경험이 없는 한 이런 공격은 불가능하다.
 따악!
 “아주 좋다!”
 길버트는 진심으로 그렇게 외쳤다.
 “또 가겠습니다!”
 하인츠는 두 눈에서 형형한 안광을 뿜어내며 달려들었다.
 ‘대단하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길버트는 아까의 생각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언젠가는이 아니라 벌써 들어선 상태다. 부족한 것은 힘과 경험.’
 하인츠는 가끔씩 길버트조차 깜짝 놀랄 정도로 의표를 찌르는 날카로운 공격을 해 왔다.
 ‘후후, 이 정도쯤이야!’
 하인츠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회독을 마스터 한 후 가장 큰 변화가 이것이었다. 예전에는 너무 빨라 제대로 볼 수도 없었던 것들이 이제는 웬만큼 식별할 수 있을 정도로 눈에 들어왔다.
 동시에 몸의 반응도 예전보다 한층 빨라졌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하인츠는 온몸에 비 오듯 땀을 흘리고 있었다.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인 길버트가 뒤로 물러나며 강하게 하인츠의 목검을 되받아쳤다.
 “헉!”
 길버트의 힘에 하인츠가 버티지 못하고 비틀거리며 바닥으로 넘어졌다.
 “그만, 이 정도면 네 실력을 잘 알겠다. 지친 듯하니 쉬는 것이 좋겠구나.”
 길버트가 손을 내밀자 하인츠가 그 손을 붙잡았다.
 “감사합니다.”
 하인츠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인사를 하는 동시에 잠시 비틀거리는 척하며 길버트에게 몸을 기댔다.
 “아버지께 진 빚을 갚으실 기회입니다.”
 ‘음?’
 뒤에 있는 공작에게는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소리였지만, 길버트의 귀에는 분명하게 들렸다.
 ‘무슨 말이지?’
 하인츠의 말대로 길버트는 아이언 포리버 남작에게 큰 도움을 받은 적이 있었다. 누구도 고칠 수 없다는 모친의 병을 포리버 남작이 치료를 해 주었던 것이다.
 뭔가가 있다고 생각한 길버트는 일단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며 옆으로 비켜섰다.
 두 사람의 대련이 끝난 듯하자 공작이 다가왔다.
 “잠깐 저쪽으로 가서 쉬자꾸나.”
 “예.”
 하인츠는 크게 숨을 몰아쉬며 공작의 뒤를 따라갔다.
 “길버트, 이 아이의 실력이 어떤가?”
 “예, 아주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대로 꾸준히 수련을 한다면 3, 4년 후에는 소드 익스퍼트 반열에 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허, 그런가?”
 공작의 얼굴에는 놀라움과 기쁨이 동시에 떠올랐다. 소드 익스퍼트라면 제국의 중앙 기사단에서도 크게 대접을 받는 실력이 아닌가.
 “그래, 이제 말해 보아라. 네가 말한 부탁이라는 게 뭐지?”
 “사실은······.”
 하인츠는 난감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괜찮으니 말해 보아라.”
 “이번에 카모트 밀림의 정벌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곳으로 보내 주십시오.”
 “뭐? 그게 무슨 말이냐? 전장으로 가겠다니!”
 “일부러 이곳으로 모신 것은 그곳에 갈 수 있는 실력이 된다는 것을 보여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하인츠는 굳은 표정으로 말을 했다. 공작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절대 안 될 말이다.”
 “보내 주십시오.”
 “너를 전장으로 보내고 나서, 무슨 낯으로 죽은 네 아비를 본단 말이냐? 절대 안 될 말이다.”
 하인츠의 표정이 굳은 만큼 공작의 얼굴도 딱딱해졌다. 하인츠는 이를 악물고 말을 이었다.
 “공작님께서 걱정해 주시는 마음 그리고 지금 저의 행동이 무례하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제 입장에서 택할 수 있는 방법이 이것밖에 없음을 알아주십시오. 그곳에서 꼭 기사 서임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보내 주십시오.”
 공작은 왠지 화가 치밀어 올랐다.
 죽은 포리버 남작에게 제대로 보답도 못했는데, 그 아들놈이 죽을 자리를 골라서 가려고 한다. 누구에게 빚을 갚으란 말인가.
 ‘도대체 왜 고집을······.’
 그때였다. 갑자기 뒤에 서 있던 길버트가 앞으로 나섰다.
 “무례인 줄은 알지만 제가 한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음?”
 공작은 길버트의 갑작스러운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나 이유 없이 이런 말을 할 길버트가 아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말해 보게.”
 “제 생각에 저 소년은 기사 아카데미보다 전장으로 가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무슨 말인가?”
 공작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저 소년에게 필요한 것은 경험입니다.”
 “경험?”
 “기사 아카데미로 들어가서 교육을 받게 되면 다시 기본부터 가르치게 되는데······. 오히려 저 소년에게는 해가 되는 일이지요. 차라리 전쟁터로 가서 더 많은 것을 보고 듣는 것이 더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전쟁터란 위험한 곳일세.”
 “물론 그렇기는 합니다. 하지만 공작님의 추천이라면 중급이나 상급 장교는 만들 수 있지 않습니다. 그 위치라면 오히려 안전한 편이지요.”
 길버트의 말에 공작은 내심 마음이 흔들렸으나 덜컥 전장으로 보내자니 걱정이 앞섰다.
 그러다 문득 오늘 하인츠가 주는 느낌이 예전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뭔가 이유가 있다는 뜻인데······.’
 공작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하인츠의 표정을 살폈다. 하인츠의 얼굴은 당당했다. 어리게만 봐 왔던 그였기에 그런 당당함이 조금 어색하게까지 느껴졌다.
 ‘필시 이유가 있다.’
 그때 문득 하인츠의 찢어진 셔츠로 눈길이 갔다. 앞섶이 길게 찢어져 속이 훤히 드러나 있었다.
 공작의 시선을 잡은 것은 가슴 곳곳에 나 있는 심한 상처들이었다. 여기저기 시퍼렇게 든 멍이나, 오래전에 다친 듯 굵직한 상처들이 빈틈이 없을 정도로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이, 이럴 수가······.’
 포리버 남작이 살아 있을 때 생긴 상처가 아닌 것은 분명했다. 당시만 해도 자신의 가장 큰 총애를 받고 있던 포리버 남작의 외아들을 어떤 간 큰 자가 건드리겠는가? 그렇다면 최근 3개월 동안 생긴 상처가 분명했다. 살펴보니 최근에 생긴 상처들도 많았다.
 ‘아! 나의 생각이 짧았구나!’
 아이들에게 뭇매를 당하던 그 모습은 오늘 처음 있는 일이 아닌 것이 분명했다. 상처들로 보아 여러 차례, 어쩌면 하루가 멀다 하고 그런 일을 당한 것이 분명했다.
 ‘힘들었던 게로구나.’
 하인츠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음에도 공작은 그런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차마 그것을 말하지 못해 전장으로 가겠다고 한 거였어! 나도 참으로 무심했어.’
 공작은 괜히 지하에 있는 포리버 남작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동안 신경을 써 주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너무도 무관심했던 것이다.
 ‘지금이라도 신경을 써 주면서··· 아니, 아니야.’
 공작은 또 한 번 자신이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인츠가 작위를 받으면 하사받게 되는 땅은 이곳 아스탈 영지 내에서도 가장 비옥한 곳이었다. 다른 가신들이 그것을 시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자신이 하인츠를 감싸게 된다면 더욱더 심하게 하인츠를 견제할 것이 분명했다. 지금까지는 단순히 아이들에게 뭇매를 맞는 정도지만 자신의 관심이 높아지면 암살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래서 가려는 거였나?’
 확신을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대로 하인츠를 이곳에 두는 것은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길버트의 말도 생각해 볼 여지는 있었다.
 공작은 애써 태연한 표정으로 하인츠의 양어깨를 잡았다.
 “꼭 가야겠느냐?”
 “예.”
 공작은 한참 동안 아무런 말도 없이 하인츠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하아!”
 그러고는 긴 한숨을 쉬며 하인츠의 어깨를 두드렸다.
 “원한다면 그리해 주마.”
 “감사합니다!”
 공작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자신이 잘하는 일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러나 여러 가지를 생각해 보면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겠다. 내 너의 뜻을 잘 알겠으니 그렇게 해 주겠다. 일단 집에 돌아가 쉬려무나. 그래, 돌아갈 수는 있겠느냐?”
 “갈 수 있습니다.”
 “그래. 그럼 이만 가 보마.”
 공작은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천천히 돌아섰다.
 ‘전장으로 보내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해 줘야지.’
 공작은 그렇게 다짐을 했다. 전장으로 보내더라도 가능한 안전한 곳으로 배속받도록 힘을 쓰면 크게 위험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하인츠를 전장으로 보내게 되면 다른 귀족들의 견제도 그만큼 줄어 들 것이 분명했다.
 ‘이 빚은 언제 갚는단 말인가?’
 공작은 포리버 남작을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첫 대면부터 공작은 포리버 남작에게 목숨 빚을 졌다. 그 후 지금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위험 속에서 포리버 남작 덕분에 모면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아!”
 긴 한숨을 내쉬며 걸음을 옮겼다.
 공작의 마차가 멀어지는 것을 확인한 하인츠가 옷을 털며 입가에 만족감이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생각대로야. 이제 떠날 준비만 하면 되나?’
 자신이 실력을 점검받고 싶다고 말을 하면 길버트가 나올 것이라는 것은 예상하고 오늘의 일을 준비했다.
 아무리 자신의 실력을 인정받는다 해도 혼자만의 힘으로 공작을 설득할 수는 없다고 여겼던 것이다.
 과거 아버지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길버트는 공작의 호위 기사들 중에서도 가장 안목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그 어떤 귀족과도 선이 닿아 있지 않은 중립적인 인물이었다. 게다가 과거 아버지에게 진 빚도 있으니 이런 상황에 도움을 받기에는 제격이었다.
 길버트가 나오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다른 준비도 해 두었지만, 그럴 필요는 없어졌다.
 ‘후후, 그리고 가기 전에······.’
 문득 걸음을 멈춘 하인츠가 한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베스컬 남작의 저택이었다.

댓글(4)

힌데미트    
애비 장례식에도 참석 못할 정도로 급한 일이드냐, 천지분간도 못하는 어리석은 후레자식. 개답답. 하차.
2022.05.07 08:25
힌데미트    
독공의 대가 사천당문의 후예가 이계에서 중독으로 죽어나가고... 암담하다.
2022.05.07 08:27
무당거미24    
이계면 신성력으로 해독할수 있는데 아떻게 풀어갈지 보고싶네요
2022.11.10 04:38
siren104    
처음부터 개병신같이 글을 시작하네 화만내는것빼고 그냥 아무것도 안햇잔어 병신같이 할줄아는건 두고보자ᆢ 천년만년 두고보기만 해라 관상용이냐?
2022.11.25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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