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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심록 1

2018.06.27 조회 336 추천 0


 상심록 1권
 서장
 
 
 1
 
 바다를 건너다 길을 잃고 들어선 꿈의 나라.
 귀한 임은 언제나 나를 고이 안아 주셨다네.
 속절없는 세월에 소식조차 끊어지고
 남쪽 바람 불 때마다 눈물로 지새우네.
 슬프도록 아름다운 노래였다.
 이 노래를 들으며 중원의 청춘남녀들은 그 얼마나 많은 눈물을 뿌렸던가?
 사랑하는 임이 그리워, 그래서 한가닥 퉁소의 선율에 실어 애잔하게 부르는 노래.
 사랑의 열병을 앓는 청춘남녀들이라면 누군들 이 노래를 기억치 못하고, 부르지 못하랴! 삼척동자라 해도 구구절절한 이 노래를 소리높여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상심가(傷心歌).>
 그러나 한 자루 검에 목숨을 건 무인(武人)들은 이 노래, 상심가를 저승사자의 장송곡(葬送曲)으로 여겨왔다.
 가슴 저미도록 애절한 이 노래가 울려퍼지면 무인들은 저마다 치를 떨며 분개했다. 그리고 살기 위해 숨을 곳을 찾아야 했다.
 무엇때문에 그들은 치를 떨어야 했을까?
 무릇 혈세무림(血洗武林)의 강호에 몸담고 있는 무림인이라면 목숨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명예다.
 그들은 검을 대하는 순간 진취적인 기상과 열혈(熱血)의 웅심(雄心)을 품고 소리높여 외치는 것이다.
 - 나는 오직 명예에 살고, 명예에 죽으리라!
 헌데 상심가는 그들의 명예를 앗아버리며 지울 수 없는 치욕을 안겨주었다.
 무사에게 있어서 그것은 죽음보다 더한 굴욕이었다.
 이러한 연원(淵源)을 가지고 있는 상심가는 바로 한 청년의 입에서 흘러나와 중원을 진동시켰다.
 사람들은 그 청년을 무황자(武皇子)라 불렀다.
 그는 천하제일의 기남아(奇男兒)였으며 천하제일의 절세미공자였다. 천하에서 제아무리 뛰어난 미모와 고귀한 자태를 지닌 절세미녀라 할지라도 그의 앞에서는 초라함을 느껴야 했다. 아니, 그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혼백을 빼앗겨야 했다.
 또한 무황자는 고금제일의 신비인(神秘人)이었고, 그의 이름대로 천하에 못다루는 무기가 없었으며 달통하지 않는 무예가 없었다.
 그는 불문선공(佛門禪功)은 물론 유문기공(儒門奇功)과 정사신공(正邪神功)에 이르기까지 모조리 섭렵하고 있어, 실로 측정할 수 없는 광세절학을 지닌 무(武)의 제황이라 할만 했다.
 다룰 수 있는 수많은 병기 중에서도 그는 검을 가장 사랑했으니, 그가 사랑한 애검의 이름은 수라검(修羅劍)이었다.
 오싹한 이름과는 달리 수라검은 거무튀튀하고 날이 무딘 보잘 것 없는 철검(鐵劍)이었다.
 그는 바로 이 철검을 어깨에 메고 상심가를 부르며 천하를 종횡했다.
 이유는 오직 하나!
 천하 최절정고수들의 명예를 빼앗기 위해서였다.
 허나 그는 단 한 번도 수라검에 피를 묻힌 적은 없었다. 오직 상대를 격패시킬 뿐이었다.
 그는 무림에 출도 후 수라검을 뽑아들며 이렇게 외쳤었다.
 - 내 생명보다 귀한 여인의 사랑과 한(恨)이 서린 수라검이여!
 내 어찌 검 한 자루에 못난 인간들의 더러운 피를 묻힐 수 있으랴!
 처음 그가 그렇게 소리쳤을 때, 세인들은 웃었다.
 세상에는 미친놈들이 많이 있었으며, 그 역시 그 많은 미친놈들 중 한 명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에게 품었던 세인들의 비웃음은 단 한 번의 비무(比武)로 끝났다.
 한 여인의 사랑과 한이 담겼다는 수라검이 첫번째 인물을 만난 것이다.
 - 제검비룡(制劍飛龍) 하종금(河鍾金)!
 하종금이란 이름을 가진 이 사람은 그야말로 중원무림의 떠오르는 태양 같은 존재였다.
 그는 정사대지존(正邪大至尊)으로 알려진 제천회(制天會)의 당당한 회주였다. 그리고 누구나가 천하제일고수임을 인정하는 이 시대의 절대기인이었다.
 그런 제검비룡 하종금을 향해 약관(弱冠)을 갓 넘긴 미청년이 검을 뽑은 것이다.
 처음의 비무는 의외로 쉽게 이루어졌다.
 청년의 일신기도가 제검비룡 하종금을 은연중 감탄케 했던 것이다.
 강자(强者)와 겨뤄보고 싶다는 것은 무사라면 누구나 꾸는 꿈!
 하종금도 마찬가지였다.
 비무는 그렇게 성립되고 청년은 제검비룡 하종금을 향해 냉엄한 일성을 토했다.
 “제검비룡! 한 여인이 이 수라검을 내 손에 쥐어주며 절정고수 일천 명을 격패시켜 수라검에 맺힌 한을 풀어달라고 했소. 그 시작이 바로 제검비룡 당신이오. 운명이라 생각하시오.”
 제검비룡 하종금은 가볍게 눈살을 찌푸렸다.
 “그 여인이 나를 지목했는가?”
 “그렇소이다.”
 “무엇때문에?”
 청년은 감정없는 음성으로 대꾸했다.
 “천하를 상대로 한을 품은 여인 때문이오.”
 “천하를 상대로 한을 품은 여인?”
 하종금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천하를 향해 한을 품을 만한 여인을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청년은 그에게 생각할 기회를 주었다.
 그렇게 잠시의 시간이 흘렀다.
 하종금의 안색이 급속하게 냉각되었다. 그는 백랍(白蠟)같이 창백해진 얼굴로 넋이 빠져 중얼거렸다.
 천하를 상대로 한을 품을 만한 여인을 떠올렸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 여인은 수······.”
 하종금은 뒷말을 잇지 못했다.
 그의 얼굴에 드러나는 것은 공포, 바로 그 자체였다.
 청년이 차갑게 그의 말을 받았다.
 “그렇소. 바로 당신이 생각해낸 그 여인이오.”
 하종금의 전신에 가는 경련이 일었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였다.
 하종금은 제천회의 당당한 회주답게 이내 평정을 되찾았다.
 “너는 그 여인과 어떤 관계냐?”
 묻는 하종금의 음성에는 냉랭한 한기가 돌았다.
 만약 그 여인과 관계가 있다면 너는 살아날 수 없다는 굳은 의지의 표현이 목소리에 묻어 있었다.
 “그 여인은 내 목숨보다 더 소중한 여인이오.”
 청년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말했다.
 순간 하종금의 안색이 싸늘하게 식어갔다. 동시, 두 눈에서는 뜨거운 살기가 치밀어 올랐다.
 “그렇다면 너는 천하를 적(敵)으로 삼겠다는 말이냐?”
 청년의 입가에 미미한 웃음이 피어 올랐다.
 “하하하. 천하를 향해 검을 겨눈다는 것은 사내대장부로 태어나 한 번쯤은 해볼만한 일이오. 그러한 것을 두려워 한다면 내 이 땅에 태어나지도 않았을 터!”
 청년은 천천히 철검을 들어올렸다.
 그의 철검에서는 싸늘한 예기가 번뜩이는 묵빛 한광(寒光)이 치솟았다.
 하종금은 이 싸움이 평범한 비무가 아님을 깨달았다.
 목숨을 거는 것이다!
 그 계집의 사랑과 한이 서린 일이라면 목숨을 걸고 모든 일을 끝내야 하는 것이다.
 청년의 뒤를 이어 하종금도 자신의 애검(愛劍)을 뽑아 들었다. 바로 그의 무적검(無敵劍)인 제천검(制天劍)이었다.
 한순간 그들의 눈빛이 짧게 마주쳤다.
 대지를 가르는 일갈과 함께 제천검의 새파란 섬광(閃光)과 수라검의 묵빛 한광이 밤하늘을 갈랐다.
 그리고 찰나간에 두 사람의 위치는 바뀌었다.
 “헉!”
 순간 한소리 불신과 회의, 그리고 경악이 한데 어우러진 침음성이 터졌다.
 “미······ 믿을 수가 없다.”
 그것은 하종금의 음성이었다.
 단 일 합(一合)!
 그 한 번의 부딪침으로 정사대지존 제천회의 회주인 제검비룡 하종금은 패배한 것이다.
 하종금은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일그러진 안색으로 청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졌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말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그는 너무도 쉽게 졌다 라는 말을 하고 있었다.
 하종금은 참을 수 없는 치욕에 부르르 몸을 떨었다.
 “나를 죽여라······.”
 무사에게 있어서 단 한 번의 패배는 죽음을 의미한다. 만승(萬勝)을 거둔다 할지라도 단 한 번을 지고 만다면 죽음의 사신(死神)을 피할 수 없다.
 제검비룡 하종금은 그 한 번을 진 것이다.
 그러나 청년은 감정없는 시선을 허공에 둔 채 차갑게 웃었다.
 “후후후······.”
 무엇때문인가?
 청년의 음성은 자조적이었다.
 “나는 당신을 죽일 수 없소.”
 “······?”
 “그 여인은 당신의 더러운 피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오.”
 “······!”
 그것은 또 한 번의 치욕이었다.
 제검비룡 하종금은 할 말을 잃은 사람처럼 멍한 얼굴로 밤하늘의 은하수(銀河水)를 바라보았다.
 “원하지 않는다······. 나의 더러운 피를 원하지 않는다고······.”
 그는 허탈한 표정이었다.
 청년의 그 한마디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하종금은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하종금은 더욱 세차게 몸을 떨더니 돌연 자신의 애검인 제천검을 반으로 뚝 부러뜨렸다.
 그리고는 미친 듯 하늘을 우러러 앙천광소했다.
 “크하하하하! 기필코 이 치욕을 갚을 것이다! 나 제검비룡 하종금! 너를 꺾을 수 있는 검초(劍招)를 익힐 때까지 다시는 다른 이와 검을 맞대지 않으리라!”
 그것은 목숨보다 명예를 중요시하는 한 무사의 피맺힌 절규였다. 허나 청년은 여전히 싸늘한 표정으로 품속에서 하나의 옥패를 꺼내 들었다.
 그것은 푸른빛이 감도는 야광 옥패였다.
 “제검비룡! 이 옥패를 기억해 두시오. 훗날 이 옥패를 지닌 인물이 다시 당신을 찾을 때가 있을 것이오. 그때도 패한다면 당신은 그가 원하는 한 가지 부탁을 이행해야 할 것이오.”
 “······!”
 앙천광소를 뚝 그친 하종금은 청년이 내민 푸른빛 옥패를 쏘아보았다.
 청년은 모든 할 일을 마쳤다는 듯 하종금의 뒷말도 듣지 않은 채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애조띤 상심가의 가락과 함께 어둠이 깔린 저편으로 사라졌다.
 뜻밖에 바다를 건너다 길을 잃고 들어선 꿈의 나라.
 귀한 임은 언제나······.
 뒤늦게 제검비룡의 입에서 비통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 하늘의 뜻인가? 이제 누가 있어 그를 막을 것인가.”
 허나 그는 몰랐다. 이제부터가 시작이었음을 말이다.
 천검존(天劍尊) 공손혁무(公孫赫武).
 그는 천하제일의 쾌검으로 알려진 검의 명인이었다. 일명 절대검주(絶代劍主)로도 알려진 그는 천검보(天劍堡)의 보주였다. 허나 무황자의 단 일검에 그는 패하고 말았다. 그가 본 것은 번쩍하는 섬광 한줄기와 그 아래 열여섯 동강이 난 자신의 애검인 사일검(射日劍)이었다.
 일양도(日陽刀)의 제일인자인 태극도황(太極刀皇) 엄건상(嚴建常). 그 역시 일양파천도(日陽破天刀)의 신공절기를 반초식조차 펼치지 못한 채 보도인 일양도를 빼앗기고 말았다.
 무적패장(無敵覇掌) 하중무(河仲武).
 그는 무적파황장(無敵破荒掌)의 삼초식으로 천하를 오시하는 파황문(破荒門)의 문주였다. 그런 그에게 무황자는 가볍게 소매를 떨쳤을 뿐이다. 그러나 무적패장은 다시는 무적이란 말을 되뇌일 수 없었다.
 탄지신유(彈指神儒) 우한비(禹寒飛).
 그는 생사탄강지(生死彈 指)의 절기로 혼을 파괴한다는 열 개의 손가락을 가진 초절정고수였다. 그 열 개의 손가락이 무황자의 면전 지척지간에서 힘없이 꺾이고 말았다.
 구름속을 나는 그림자 운중귀영(雲中鬼影) 고무송(高武松).
 그는 단숨에 백여 리를 날아간 후 뒤를 돌아보며 소리높여 웃어젖혔다. 그러나 무황자는 그 순간 그의 머리 위 한 자 높이에 둥실 떠 있었다.
 암기술의 명가, 사천당가(四川唐家)의 환유신성(幻幽神星) 당문기(唐文基).
 그는 열 개밖에 없는 유성탈혼침(流星奪魂針)을 일시에 떨쳐낸 후 혼비백산하고 말았다.
 어느새 열 개의 유성탈혼침은 자신의 요혈 일푼앞에서 파르르 떨고 있었던 것이다.
 무황자!
 그는 무림인들의 명예만 빼앗을 뿐 단 한 방울의 피도 흘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더욱 그들을 치욕스럽게 만들었을 뿐이었다. 칠 년(七年) 세월은 무림인들에게 있어선 너무도 치욕스런 통한의 세월이었다.
 정사(正邪) 삼십 인의 최절정 고수들을 위시한 천여 명의 절정고수들이 무황자에 의해 치욕적인 패배를 감수하고 만 것이다.
 그리고 하나같이 가슴저미는 상심가의 애절한 가락을 들어야 했다.
 과연 무황자는 누구인가?
 누가 그를 길러냈으며 천외천(天外天)의 가공할 기학(奇學)들을 전수했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또한 무슨 이유로 사랑하는 여인의 한을 품고 천하를 종횡무진했는지도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무황자는 한 여인이 읊조리는 노래소리를 들었다.
 남해바다에 큰배 띄우고, 표류하다 우연히 내 님이 된 그대여.
 지금 가면 언제 다시 만날 날이 또 있으랴?
 떠날 곳 멀리 바람과 안개만이 손짓하누나.
 여인은 그러나 그 어디에도 없었다. 아쉬운 이별의 그리움만이 처연하게 남아 있을 뿐이었다. 헌데 기이하게도 무황자의 모습 역시 홀연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무황자라는 이름만 남긴 채 그는 그렇게 사라져 버린 것이다.
 과연 그는 어디로 간 것일까? 여인의 노래가락을 따라 천외의 별계(別界)로 떠난 것인가?
 무황자는 무수한 말들을 남긴 채 세월속에 차츰 파묻혀 갔다.
 
 
 2
 
 지금으로부터 이십 년 전의 일이었다.
 홀연 중원무림은 한 가지 경악할 소문에 진동했다.
 천하는 두 가지 무가지보(無價之寶)의 출현으로 그야말로 경천동지하기 시작한 것이다.
 천비도(天秘圖).
 천비시(天秘匙).
 바로 한 장의 비도(秘圖)와 한 개의 열쇠때문이었다. 대체 그 물건들이 무엇이길래 천하가 이토록 광분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이러했다.
 - 쌍천비(雙天秘)을 얻는 자 천하를 눈아래 굽어 보리라!
 천하제일고수! 그 지고무상한 권좌가 중인들의 야망에 불을 지른 것이다. 만인지상의 유일무이한 절대무황(絶代武皇), 그 신비의 보좌에 등극할 수 있다는 천고의 무가지보가 바로 쌍천비였다. 하여 중원인들은 삼산오악과 사해팔황을 이잡듯 뒤지고 다녔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그것들을 보았다는 이는 없었다. 그렇게 쌍천비의 신비는 결코 열리지 않은 채 이십 년 세월을 차곡차곡 쌓아갔다.
 
 
 제1장 이 이야기의 시작
 
 
 1
 
 양춘가절(陽春佳節)!
 겨울은 가고 봄은 온다. 아무도 그 점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다. 즉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만고불변의 진리이기 때문이다.
 겨울, 그 엄동설한이 살을 에일 듯한 삭풍 속에서도 익힐 것은 다 익혀놓고 가 버렸다. 다시는 안 올 듯이. 그리고 그 추웠던 나날들이 언제냐 싶듯이 해놓고는 모든 것을 잉태시킨 채 봄은 또 온 것이다.
 봄은 온갖 기조(奇鳥)들의 청량한 지저귐과 함께 소리없이 찾아왔다. 하남성(河南省)의 천년고도인 낙양성(洛陽城)에도 예외없이 소생의 봄은 찾아들었다. 온천지 가득 따사롭고도 부드러운 햇살이 쏟아지고 있는 것이었다.
 낙양의 현성(縣城).
 철옹성을 방불케 하는 높디높은 담벽에는 구름 같은 인파들이 모인 가운데 한 장의 방문(榜文)이 나붙었다. 커다란 대자보에 웅후한 필체로 무수한 이름들이 쭉 나열되어 있는 것이었다. 그것이 나붙은 순간 미리 기다리고 있던 군중속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 이번 대과에 붙은 급제자명단이다.”
 “과연 누가 장원의 영광을 차지했는가?”
 현성을 뒤흔드는 함성이 인산인해를 이룬 인파속에서 일시에 터져나왔다. 동시에 여기저기서 환호성과 감탄성 그리고 땅이 꺼질 듯한 탄식성이 이어져 나왔다.
 “이야! 이번엔 합격이다. 합격!”
 “으······, 빌어먹을 또 낙방인가?”
 “휴우. 이젠 목을 매다는 일밖에 남지 않았어. 벌써 열두번째 낙방이니······.”
 그들이 모여서 바라보고 있는 대자보는 바로 당년의 대과장원 및 등과자(登科者)의 명단을 써붙인 방문이었다.
 오직 청운의 꿈을 안고 십 년 또는 수십 년간 갈고닦은 학문으로 대과에 응시한 문사들은 눈에 쌍심지를 켜고 대자보를 주시하고 있었다.
 “단······ 단리위진(檀理委鎭)이 장원이라니 그가 누구지?”
 “글쎄. 이번 대과에는 전 내각대학사(內閣大學士)의 자제인 곡사우(谷史雨)와 이부상서(吏部尙書)의 신동인 화진룡(華進龍)이 물망에 올랐었는데.”
 “단리위진이라니 그런 이름은 생전 들어본 적이 없질 않는가?”
 방문앞에 모인 중인들은 한결같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웅성거렸다. 금년 대과에 장원급제한 이름이 너무도 생소한 까닭이었다. 그때 건장한 체구의 대한 하나가 인파를 헤치고 대자보 앞으로 나서고 있었다. 그런 그의 입에서 제법 굵직한 음성이 탄식처럼 터졌다.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천자문(千字文)이라도 떼어둘 것을.”
 그는 한눈에도 대가집의 하인임을 알 수 있는 차림새를 하고 있었다.
 “쳇. 까막눈이니 글을 읽을 수가 있나?”
 재차 투덜거리던 대한은 좌측으로 눈길을 돌리다가 한 명의 회의중년인에게 소리쳐 물었다.
 “누구요? 누가 장원이 되었소?”
 그러자 회의중년인이 힐끗 대한을 주시하며 볼멘 소리로 퉁명스럽게 뇌까렸다.
 “단리위진. 단리위진이란 사람이 장원이오.”
 그 말이 떨어진 순간 대한의 두 눈이 부릅 떠지며 입이 귀밑까지 찢어졌다.
 “자, 장원이다. 우하하하하. 장원을 하시다니? 마침내 장원급제를 하셨다.”
 그는 전신을 부르르 떨더니 두 팔을 번쩍 쳐들며 미친 듯 앙천대소를 터뜨렸다.
 “우하하하하! 장원이다.”
 그러자 방문에 못박혔던 중인들의 시선이 일제히 대한을 향했다.
 ‘설마 저자가 단리위진이란 말인가?’
 그러나 이때 이미 대한의 모습은 그들의 시야에서 까마득하게 멀어지고 있었다. 다만 미친 듯 내지르는 앙천광소만이 그들의 부러움과 질투로 범벅된 가슴을 묘하게 뒤흔들 뿐이었다.
 “우하하하하! 장원이다. 공자님이 장원급제를 하셨다.”
 낙양제일의 기루를 들라면 단연코 원앙루(鴛鴦樓)를 꼽을 것이다. 낙수(落水)의 맑은 물결을 굽어보며 자태를 뽐내고 있는 호화스런 누각이 바로 원앙루였다.
 그 화려하고 호화롭기는 이루 형용하기 힘들 정도였다. 우아한 칠보단청으로 채색된 고대광실(高大廣室)하며 정교하고 섬세한 내부장식 등은 정녕 미(美)의 극치라 아니할 수 없었다.
 진정 당금의 황제가 기거하는 자금성이라 해도 이보다 호화롭진 않을 듯 싶었다. 그뿐이랴? 또한 천하 절색미인들이 모두 이곳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동영가희(東瀛佳姬)는 물론 서역미인(西域美人)과 강남가려(江南佳麗), 북지연지(北地燕芝) 등 온갖 미녀들이 이곳에 모여 있었으니, 가히 천하의 풍류남아라면 누구나 이곳 원앙루에 들어 한 번쯤 절세가인을 품에 안고 풍류를 즐기기를 소원할 정도였다.
 월향소축(月香小築).
 이곳은 원앙루중에서도 가장 깊은 심처에 자리한 소축이었다. 마치 한 폭의 그림인 양 단아한 아취가 풍기는 이곳에도 봄햇살의 따사로운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은은한 방향이 흐르고 있는 넓은 실내에는 두 사람이 있었다.
 한 남자와 한 여자.
 남자는 술에 취했는지 침상에 누워 있었고 한 여자는 침상에 누운 남자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침상 앞에 서 있었다.
 남자는 이십 세 가량으로 참으로 잘생긴 남자였다. 잘생겨도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얼굴이 아니고 보는 여자로 하여금 누구든지 꿈을 머금게 할 정도로 잘 생긴 남자였다.
 그 남자를 응시하는 여자 역시 절대 쉽게 볼 수 없는 아름다운 여자였다. 단언하건대 정신이상자가 아닌 다음에 어떤 남자라도 이 여자를 한 번만 쳐다본다면 단숨에 영혼을 앗길 정도로 매료되고 말 것이다. 어떤 남자에게도 오만해도 그 오만으로 인해 더욱 빛이 날 그런 여자의 얼굴에 침상에 누워 있는 남자를 쳐다보는 얼굴에 온갖 표정이 다 들어 있었다. 어딘가 쓸쓸해 보이는 허전함이 들어 있는가 하면 사랑도 들어 있고 약간의 원망도 들어 있었다. 심한 갈증도 담겨 있었다. 갈증은 목이 마를 때와 꼭 갖고 싶은 것을 갖지 못했을 때 느끼곤 한다.
 한참을 바라보는 여인의 얼굴은 심한 갈등으로 흔들렸다. 그러다 잠시 후 여자는 무엇인가 결정했는지 아랫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여자는 섬섬옥수(纖纖玉手)를 목으로 가져 갔다. 그녀는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하나하나 단추가 열려가면서 보기에도 아름답고 먹음직한 두 개의 수밀도(水蜜桃)가 도발적으로 튀어나왔다. 연분홍빛 유두가 수줍게 숨어 있는 탱탱한 가슴은 가히 욕망의 극치를 담고 있었다. 그녀는 궁장을 흘리듯 벗었다.
 솟아오른 두 젖가슴 밑으로 기막힌 곡선을 그리며 흘러내린 허리의 선은 여윈 듯 보이면서도 숨을 쉴 수 없는 긴장감이 팽팽했고 배는 기름졌다. 앙증맞은 배꼽이 숨어 있는 기름진 배에는 이 여인의 신비가 다 들어 있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손을 치마로 가져갔다.
 그녀는 양 손을 써서 치마를 벗지 않았다. 손톱 끝으로 허리선을 살짝 긁었다.
 허리선이 끊긴 치마는 스르르 흘러내렸다.
 흘러내리면서 울울창창 우거진 숲이 보였고 이내 대리석 같은 양 허벅지가 보였다. 마침내 치마는 그녀의 앙증맞은 발을 덮으며 완전히 흘러내렸다.
 그녀는 완전 나체가 되고도 한참을 남자를 바라보았다. 다시 한 차례 갈등이 스쳐갔다. 그러다가 이내 고개를 흔들며 무엇인가 결심한 것을 다시금 다지는 듯했다.
 그녀는 남자에게로 다가갔다. 침상에 바짝 붙어서서 남자를 내려다보는 여자의 얼굴에는 갈등은 씻은 듯이 사라졌고 뜨거운 갈망만이 남아 있었다.
 ‘당신은 이제 내꺼야.’
 그녀는 허리를 굽히며 양 손을 남자의 웃옷으로 가져갔다. 허리 굽힌 뒷모습은 도발적이었다. 꼭 붙은 허벅지 사이로 그녀의 샘이 숨어 있는 모습은 남자라면 누구나 범죄를 저지르도록 강요하는 유혹이 담겨 있었다.
 그녀는 남자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결심을 단단히 했어도 잠든 남자의 옷을 벗기는 손은 가늘게 떨렸다. 그녀는 벗기기가 힘든지 갑자기 거칠게 찢어내 버렸다. 바지 역시 마찬가지.
 남자는 순식간에 알몸이 되었다. 여자는 남자의 얼굴서부터 발끝까지 음미하듯 천천히 시선을 옮겼다.
 그녀는 남자의 꽤 우람한 양근(陽根)을 스칠 땐 움찔하며 자신도 모르게 두 눈을 감았다. 어느새 숨은 거칠어지고 그녀의 두 젖무덤은 잔물결을 일며 흔들렸다. 그녀는 떨리는 가슴을 진정 시키려는지 양 손으로 유두 부근을 가벼이 누르며 숨을 골랐다.
 그녀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는 다시 눈을 떴다. 새로 뜬 눈에는 비장하기까지한 각오가 담겨 있었다. 그녀는 양근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이번에는 그렇게 떨리지 않았다.
 그녀는 마치 보물을 만지듯 그의 양물을 거머쥐었다. 그녀는 두 눈을 감고 손 안에 잡힌 따뜻하면서 묵직한 느낌을 느끼기 시작했다.
 얼굴이 심하게 빨개지고 숨소리는 거칠어지기만 한데 어찌된 일인지 그녀는 난생 알 듯 모를 듯한 쾌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과연 노련한 과부들이 말한 대로 좋긴 좋은 건가 보구나.’
 그녀는 왼손으로 아직 힘이 들어가지 않은 양물을 쥐고는 오른손으로는 베개 밑에서 한 권의 책을 꺼냈다.
 <의심방(醫心房)!>
 의심방은 소녀경(素女經)과 더불어 고대 중국의 이대성전(二大性典)중의 하나이다. 소녀경이 그렇듯이 의심방에도 남녀교접을 통해 도(道)에 이르는 비결이 상세히 적혀 있었다. 다만 소녀경의 특징이 사정(射精)하지 않는 접이불루(接移不漏)를 지양한다면 의심방은 쾌락은 쾌락대로 즐기면서 도를 추구한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여인은 의심방을 펼쳤다. 남녀가 교접하는 그림과 함께 우화등선(羽化登仙)의 비결이 적혀 있었다.
 그녀는 그림과 비결을 읽으면서 이미 고조되기 시작한 흥분이 날개를 달기 시작했다. 그녀가 의심방을 보는 이유는 아직 아무런 경험이 없는 숫처녀이기 때문이었다.
 책을 덮은 그녀는 상체를 남자의 가슴으로 가져갔다. 그녀는 탐스런 젖으로 남자의 가슴을 부비기 시작했다. 부드럽기 이를데 없는 움직임 속에서도 그녀는 양물을 계속 잡고 있었다.
 남자는 깊은 잠 속에서도 그 느낌을 아는지 꿈틀했다. 젖으로 남자의 가슴을 부비는 동안 살과 살이 부딪치면서 필연적으로 생겨나는 쾌감에 여자의 붉은 입술이 서서히 벌어지기 시작했다.
 “하아··· 하······.”
 가늘면서도 달뜬 신음이 여자의 붉은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녀는 가슴을 바싹 밀착시키면서 입술을 사내의 입술로 가져갔다. 양물을 잡은 손을 놓고 남자의 목에 양팔을 두른 여자는 남자의 입술에 입술을 대었다.
 그녀는 꾹 다문 사내의 입술 사이로 자신의 혀를 밀어 넣었다. 그러나 남자의 입술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그녀는 달뜬 신음, 달콤하면서도 뜨거운 숨결을 담은 신음을 흘리면서 혀로 사내의 입술을 핥았다. 흐응 하는 소리가 사내의 입에서 새어나오더니 입술이 열리기 시작했다.
 여자의 혀가 사내의 입 속으로 파고들었다. 파고든 혀는 사내의 혀를 부드럽게 감아 말았다. 그녀는 감아 말은 혀를 빠는 대신 자신의 혀로 굴리기 시작했다. 달콤한 타액이 흐르기 시작했다.
 “하아··· 하······.”
 이 남자를 강제로 재우지 않고 이렇게 하고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을 사내의 입속을 누비던 여자는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한 손으로 남자의 뺨을 쓸어가며 달뜬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당신이 굳은 목석이 아니라면 결코 재우거나 이러진 않았을 거예요.”
 그녀는 혀로 그의 귓볼을 핥기 시작했다. 귓볼을 핥던 여자는 혀를 남자의 귓속으로 들이밀어 한 바퀴 굴렸다.
 “여자는 단 한 번의 느낌으로 이 남자라면 평생을 맡겨도 되겠구나 하는 것을 안답니다.”
 그녀의 혀는 남자의 젖꼭지를 핥기 시작했다.
 “당신을 약을 탄 술을 먹여 재워놓고 내가 왜 이러느냐고요. 나의 평생을 당신에게 맡기기 위해서예요. 내가 이러지 않는다면 당신은 내가 아무리 아름다워도 거들떠 보지도 않을 사람이거든요.”
 그녀의 혀는 그의 가슴을 타고 차츰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녀의 배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어느 새 남자의 양물이 뻣뻣이 서 있었다. 거대했다.
 거대해진 양물을 본 그녀는 이젠 완전히 대담해져 킥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거대한 양물을 양손으로 잡았다. 양손으로 잡고도 귀두(龜頭)가 남을 정도로 크고 굵었다.
 “아이 귀여워.”
 그녀는 입술을 그의 양물로 가져갔다.
 “다··· 단리위진··· 당신은 이제 내 남자··· 하학··· 흡······.”
 반쯤 뜬 눈에는 영원히 갈망하는 극렬한 아쉬움이 배어 있고 애무하는 입술에서는 누가 듣는다면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애욕의 신음이 거칠게 쏟아져 내렸다.
 한순간,
 “컥―!”
 숨이 막히는 듯한 짤막하면서도 격렬한 숨소리가 터지더니 팟, 단리위진의 양물에서 애액이 사출되는 순간 그녀의 비지에서도 애액이 동시에 터져 그녀의 비지는 아예 홍수를 이루고 말았다.
 그녀는 양물을 잡고, 다른 손으로 자신의 비지를 덮은 채 일시에 찾아온 쾌락의 여운에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한참을 몸을 떨더니 그녀는 힘없이 얼굴을 단리위진의 양물에 묻어 갔다. 그는 한풀 꺾인 양물에 사랑의 입맞춤을 하면서 만족한 미소를 흘렸다.
 절정의 여운이 사라지자 그녀는 단리위진의 얼굴을 올려다 보았다. 그녀의 얼굴에는 더할 수 없는 만족과 단리위진에 대한 사랑이 가득했다.
 그녀는 얼굴을 닦을 생각도 안하고 상체를 위로 가져갔다.
 그녀는 단리위진의 얼굴을 양손으로 매만지며 배시시 웃더니 그의 입술로 입술을 가져갔다.
 “알아요 당신? 당신은 최고의 여자를 차지했다는 사실을.”
 그녀는 단리위진이 사랑스러워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이 홀로 행복에 겨워 연신 독백을 터뜨렸다.
 “나는 당신이 장원 급제했다는 사실을 벌써 알고 있었어요. 게다가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용모에 타고난 장부의 기질이 내 마음을 단숨에 훔쳐가고 말았어요. 또한 여자라면 당신을 사랑하지 않고는 배기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여태 동정(童貞)을 지키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날 매료시키고 말았지요.”
 행복한 얼굴로 독백하는 그녀의 얼굴이 조금은 씁쓸해졌다.
 “하지만 당신은 여기에 묵는 동안 나를 유혹하기는커녕 골샌님같은 말만 하다가 그냥 떠나려 했죠. 그러니 내가 당신을 놓칠 수 있겠어요. 알겠어요. 내가 한 짓은 내 평생을 건 도박을 한 거란 말이에요.”
 말을 마친 그녀는 처음에 시작했던 동작을 다시 되풀이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양물을 쥐고는 그의 배위를 올라탔다. 그녀는 단리위진을 보며 생긋 웃었다.
 “이제 당신은 진정한 동정을 내게 바치는 거예요. 나는 나의 처녀성을 당신에게 주는 거고요.”
 거대한 양물이 그녀의 비지를 뚫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흐으··· 아아······.”
 그녀는 미간을 찡그렸다.
 그녀는 하복부에서 시작된 통증이 등골을 타고 머리 끝까지 치밀어 오름에 온몸을 가늘게 떨었다. 하지만 여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
 엉덩이에 힘을 주어 내리 누르자 거대한 양물은 순식간에 저 깊은 곳으로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그 순간의 고통은 의외로 심하지 않았다. 고통을 상쇄시켜 줄 만큼 그녀의 비지는 양물이 아무리 커도 충분히 받아들일 만큼 무르익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양물을 받아들인 채 잠시 그대로 있었다. 차츰 고통은 사라져 갔다. 애액은 쉴새없이 흘러 단리위진의 양물을 불기둥이 아닌 물기둥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녀는 서서히 엉덩이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귀두만 속에 남긴 채 엉덩이를 들어 올렸다가 다시 서서히 내리 눌렀다.
 “하아아아······.”
 탄식인지도 모를 기나긴 숨이 그녀의 입에서 절로 토해졌다. 그녀는 다시 엉덩이를 드는데 이번에는 처음보다 덜 치켜 들었다가 다시 내리눌렀다.
 구천일심(九淺一深)!
 그녀는 놀랍게도 아홉 번 얕게 한 번은 깊게 하는 의심방에 적혀 있는 방중술의 비법을 시전하고 있는 것이었다. 단 한 번도 경험이 없는 숫처녀가 의심방에서 익힌 비법을 스스로 터득해 시전한다는 것은 색기술(色技術)을 타고났다고밖에 설명할 수 없는 일이었다.
 구천일심 다음엔 팔천이심(八淺二深)이고 칠천삼심, 육천사심으로 동작이 이어지는 것이 의심방에 기록된 방중술의 요약인데,
 “하아··· 학. 아아··· 난··· 난 이대로 죽어도 좋아······.”
 사천오심(四淺五深)에 이르러 그녀는 격렬히 몸을 떨며 몸 깊은 속에서 폭죽이 일기 시작했다. 숫처녀가 남자가 이끌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몸 속에서 애액의 폭죽을 터뜨린다는 것은 가히 고금에 드문 일이 아닐 수 없는 일이다.
 처녀가 방사의 맛을 제대로 알려면 사랑하는 남자와 오십 번 이상은 치뤄야 느끼는 것이 대체적인 현상이다. 그보다 늦게 맛을 알게 되는 경우는 아기를 한둘은 낳아야만 느끼게 되는 법이거늘 단 한 번의 경험에 극치를 맛본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녀는 그만 구천일심을 제대로 시행하지 못하고 단리위진의 가슴 위에 엎드려 금침 자락을 움켜쥐고는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이때 과거 합격자 명단을 보고 장원에 단리위진의 이름을 확인한 하인차림의 건장한 사내 장삼은 흥에 겨워 월향소축으로 뛰어 들고 있었다.
 “공자니― 이임―”
 막 방문을 열어제끼려는 순간 장삼은 그만 멈추고 말았다.
 “하아··· 아아, 여보··· 사랑해요. 난 이대로 죽어도 좋··· 학······.”
 장삼의 얼굴은 금세 멍청해지고 말았다
 ‘이게 대체 뭔소리래.’
 장삼은 그 소리를 듣자 이상한 열류가 등골을 타고 치달리는 것을 느꼈다. 장삼은 침을 꿀꺽 삼켰다.
 ‘지금의 느낌은 달덩이 같은 엉덩이를 흔들고 콧노래를 부르며 지나가는 월매년을 보았을 때 불두덩이가 뿌듯해지면서 느꼈던 그 느낌인데.’
 장삼은 연신 들려오는 신음소리에 그만 참지 못하고 문틈으로 안을 들여다보았다. 순간 장삼은 두 눈을 부릅뜨고 말았다.
 ‘히익―’
 그의 눈에 들어오는 것이라고는 연신 요분질을 쳐대는 달덩이같은 두 개의 엉덩이와 엉덩이 사이에 숨어 있는 양물이었다.
 장삼은 그만 주저앉고 싶은 것을 억지로 참았다. 양다리가 구십 늙은이처럼 쉴새없이 후들후들 떨었다.
 그는 부지불식간에 바지춤 사이를 꽉 잡았다. 거기에는 이미 커질 대로 커진 양물이 있었다.
 ‘썩을··· 또 손가락 오형제 신세를 져야 할 모양이군. 빌어먹을 아직까지 딱지도 못뗀 내 신세야.’
 장삼은 고의춤 속으로 손을 넣고는 어기적어기적 숲 속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녀는 단리위진의 상체 위에 완전히 늘어져 연신 가쁜 숨을 몰아셨다. 두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온몸을 휘돌고 있는 쾌락의 여운을 한껏 맛보고 있는 것이다.
 “흑··· 으흐흑······.”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단리위진은 여자의 슬픈 흐느낌 소리에 두 눈을 번쩍 떴다.
 “흐흑··· 난··· 이제 어떡하라고··· 으흐흑······.”
 단리위진은 몸을 벌떡 일으켰다. 일어나자마자 그는 두 눈을 부릅떴다.
 “내가 완전 나체라니······.”
 놀라고 있을 겨를도 없이 그는 울음 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그는 두 눈을 부릅 뜨고 말았다.
 자신의 옆에서 역시 완전히 벌거벗은 여자가 모로 누운 채 연신 흐느끼고 있는 것이 아닌가. 단리위진은 급살을 맞은 듯 온 몸을 부르르 떨었다.
 “대··· 대체 이게······.”
 하지만 놀라고 있을 수만 없기에 그는 손을 뻗어 흐느끼고 있는 여자의 몸을 돌렸다.
 여자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연신 울고 있었다. 단리위진은 침을 꿀걱 삼키고나서 급히 물었다.
 “야설화. 이게··· 대··· 대체 어떻게 된 일이오?”
 그녀는 대답없이 흐느끼면서 몸을 다시 반대쪽으로 홱 돌렸다. 단리위진은 짜증이 나는지 버럭 고함을 쳤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니까?”
 야설화는 몸을 벌떡 일으켰다. 색정적으로 솟아있는 두 개의 젖이 출렁였다. 단리위진은 어마 뜨거라 하는 표정으로 얼른 고개를 돌렸다. 야설화는 눈물 젖은 얼굴에 싸늘한 냉기를 풀풀 날리며 얼음장 같은 목소리로 되물었다.
 “정말 모르신단 말이에요?”
 외면한 단리위진은 떠듬거리며 대답했다.
 “그··· 그렇소······.”
 “정말 우습군요. 술에 취해 마치 야수가 되어 나를 파렴치하게 강간해 놓고서는 모른다고요? 공자님은 겨우 그 정도의 남자였나요?”
 단리위진의 온몸은 그대로 돌이 되고 말았다. 그는 고개를 홱 돌렸다. 그는 무서운 시선으로 냉기를 풀풀 날리며 쏘아보는 야설화를 노려 보았다.
 “내가 술이 취해 그대를 강간했다고?”
 “그래요. 이런 모습으로 있으면서 시치미를 떼실 건가요?”
 단리위진의 턱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온갖 학문을 익히면서 학사로서의 품위와 권위를 지키기 위해 이십여 년을 수양해온 자신이 아니던가. 그런데 술에 취해 아무리 아름답기로서니 한낱 기녀를 강간하다니. 단리위진은 난생 처음 죽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믿어··· 믿어지지가 않소이다.”
 와아앙―
 야설화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더니 크게 울음을 터뜨렸다.
 “어머니가 누누히 세상에서 가장 믿지 못할 것이 사내라고 누누히 말씀하셔도 믿지 않았더니 과연 어머니 말씀이 맞았군요.”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비수가 되어 단리위진의 가슴을 찔러댔다.
 “으흐흑··· 내 비록 청루에 몸을 담고 있어도··· 여지껏 몸을 온전히 지키며 사랑하는 한 사내의 품에··· 흐흑··· 안기기만을 꿈꾸며 살아왔는데 대체 이게 무슨 사단이랍니까. 어머니. 으흐흑······.”
 단리위진은 창백한 얼굴로 엎드려 흐느끼며 푸념하는 야설화를 내려다보다가 두 눈을 감고 말았다. 귀를 틀어막고 당장이라도 지옥으로 뛰어들고 싶을 뿐이었다.
 한참만에 눈을 뜬 단리위진은 고개를 숙이며 장탄식을 했다.
 ‘내 이제 여태 지켜왔던 고고한 학사로서의 위엄을 스스로 내팽개쳤으니 무슨 낯으로 선조들의 제사를 지낼 것인가. 선조들을 모신 사당 앞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어 이 죄를 갚으리라.’
 장탄식을 하며 죽음으로 죄를 씻으리라 결심하는 순간 단리위진의 두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빨간 흔적인데 원앙금침에 확연히 묻어 있었다. 그는 손가락으로 찍어 보았다. 놀랍게도 손가락에 묻어나는 것은 피였다. 그는 내심 놀라 부르짖었다.
 “앵혈(櫻血)? 정말 청백지신(靑白之身)이었단 말인가?”
 야설화는 상체를 일으켰다. 그녀는 처연한 얼굴로 씹어뱉듯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돌아가세요. 오늘 일은 없었던 것으로 하지요. 한낱 청루의 계집 하나 어찌했다고 흉볼 사람은 아무도 없답니다.”
 말을 마친 그녀는 서러운지 다시 얼굴을 가리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단리위진은 속이 쓰릴대로 쓰렸다. 그는 무엇인가 말해야겠다고 생각했으나 머리 속은 완전히 비어 있어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도통 생각이 나질 않았다.
 그는 떨리는 손을 뻗어 연신 흐느낌에 떨리는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설화······.”
 그녀는 매정하게 그의 손길을 뿌리쳤다.
 “만지지 말아요. 그냥 돌아가시라니까요.”
 단리위진은 양 손으로 힘차게 그녀의 어깨를 잡아 상체를 일으켰다. 처연한 얼굴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단리위진은 굳은 결심이 담긴 눈으로 바라보다 차근히 말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사내대장부이기 전에 여태껏 학문과 인품의 수양을 닦아온 학사요.”
 야설화는 코웃음을 쳤다.
 “흥. 또 그 고리타분한 학사의 품위를 이 마당에도 자랑하려고 드십니까?”
 “비웃지 말고 내 말을 들으시오.”
 단리위진의 냉정한 말에, 말을 이어가려던 야설화는 입을 다물었다.
 “상황이 어찌되었든 내가 청백지신을 더럽힌 것은 사실이니 앞으론 반드시 그대를 책임지겠소.”
 “어떻게 말인가요?”
 야설화는 노여운 음성으로 매몰차게 되물었다.
 “고향에 가서 아버님에게 말씀을 드린 후 당신를 부인으로 맞아들이겠소.”
 “그것을 어떻게 믿지요? 사내란 볼장 다 보고 떠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법이라고 누누히 들어오면서 커왔어요. 또한 간청한다고 공자님의 아버님같이 도도하신 분께서 한낱 청루의 계집을 받아들이라고 허락하실까요?”
 이번에는 단리위진의 눈썹이 치켜올라갔다.
 “내 아버님은 순리를 아시는 분이오. 상황을 말씀드리면 틀림없이 허락하실 게요. 그러니 내 아버님을 모욕하는 말을 한 번만 더 한다면 결코 용서하지 않겠소.”
 “좋아요. 그렇다면 약속의 징표로 한 가지만 제게 남겨 주세요.”
 “말하시오. 뭐든지 해주겠소.”
 “공자님께서 제정신이실 때 한 번만 더 절 안아주세요. 그렇다면 믿겠어요.”
 야설화의 당돌한 요구에 단리위진은 움찔했다. 그는 몸이 굳어 어찌할 바를 몰랐다. 야설화는 싸늘하게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외면했다.
 “그것봐요. 고고한 학사면 뭐하고 사내대장부라 떠벌리면 뭐해.”
 단리위진은 침을 꿀꺽 삼켰다.
 “조··· 좋소······.”
 그녀의 양 어깨를 잡은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한참을 그러더니 결심이 섰는지 와락 그녀를 끌어안았다. 그녀의 상체가 그의 건장한 품 속으로 쏙 들어왔다.
 “흑흑··· 고··· 고마워요. 상공······.”
 그녀가 겉으로는 울고 있으나 속으로는 웃고 있음을 그가 안다면 그는 그녀를 대번에 쳐죽이고 말았을 것이다.
 단리위진은 어떻게 해야 할 방법을 몰라 잠시 안은 채 그러고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이게 웬일인가?
 가슴을 짓누르는 그녀의 젖가슴이 전해주는 따뜻한 감촉, 코 끝으로 스며드는 여인의 향기. 향기는 매우 독톡해서 코끝을 감미롭게 간지럽혔다.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묘한 흥분을 불러일으키는 향기였다.
 ‘고향에 남아 있는 운혜하고는 또 다른 향기로구나.’
 향기를 오래 맡고 있으려니 그의 양물은 그의 의지와는 달리 어느새 하늘로 솟구쳐 있는 것이 아닌가.
 야설화는 두 눈을 꼭 감고 품 속에 안겨 부끄러운 목소리로 가만히 속삭였다.
 “저를 눕··· 혀··· 주세요.”
 단리위진은 그녀를 눕혔다. 둘은 마주 보았다. 눈과 눈이 부딪쳤다. 단리위진의 두 눈은 차츰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그는 입술을 가져갔다. 입술과 입술이 부딪쳤다. 그러고는 가만히 그녀의 향기를 들이마셨다. 그는 입맞춤이란 서로의 혀가 엉켜야 되는 것을 몰랐다.
 그녀의 입술이 벌려졌다. 자연스레 단리위진의 입술도 벌려졌다.
 그녀의 혀가 살짝 나왔다. 자신도 모르게 나와있는 자신의 혀에 그녀의 혀가 부딪치자 찔끔했으나 곧 참으로 달콤하구나 하고 생각했다. 둘의 혀는 서서히 서로를 찾기 시작했다.
 오래도록 서로의 혀를 빨아댔다. 단리위진은 내심 감탄하기 시작했다.
 ‘좋군. 이게 이렇게 좋은 것인 줄 몰랐는데. 어째 사내놈들 거의가 계집이라면 사죽을 못쓴다했더니 이게 이런 것이었군.’
 그는 초장 맛에 감탄을 하니 실제로 모든 것을 하게 된다면 얼마나 감탄을 할 것인가. 오랜 시간 후 그들의 혀는 떨어졌다. 그녀는 부끄러운 얼굴로 속삭였다.
 “이··· 이러고만··· 계실 건가··· 요.”
 단리위진이 아무리 여자에 대해 쑥맥이라도 어찌 다음에 해야할 일을 모르겠는가. 그는 다리가 꼭 붙은 그녀의 허벅지를 벌렸다. 그리고 그녀의 몸위에 올라탔다.
 헌데 도시 입구를 잘 찾지를 못하고 허둥대기만 했다. 야설화는 쿡쿡 웃었다.
 “술에 취하셨을 때는 그리도 능숙하시더니 이제는 제대로 제 집도 못 찾는군요.”
 단리위진은 얼굴이 벌개졌다. 그녀는 그가 집을 잘 찾을 수 있도록 허벅지를 활짝 벌렸다. 그리고 그가 눈치 못하게 엉덩이를 들어 살짝 요분질을 치는데, 그 순간에 그의 양물은 깊은 샘으로 풍덩 빠지고 말았다.
 ‘어어······.’
 뭔가 깊은 곳으로 빠진 듯해서 단리위진은 내심 어쩔 줄 몰라했다. 헌데 곧 그 깊은 샘에서 우러나오는 애액이 그의 양물을 적시자 단리위진은 침을 꿀꺽 삼켰다.
 ‘이리도 매끄러우면서도 부드럽고 따뜻하고··· 야들야들하기 이를데 없다니. 좋군. 정말 좋군.’
 야설화는 뜨거운 숨결을 뿜으며 그의 귓볼을 살짝 물었다.
 “가만히 계시지 마시고 하체를 움직여 보세요.”
 단리위진은 엉덩이를 들어 용두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서너 차례했는가 단리위진은 다시 어어했다.
 자신의 양물이 부플어오르더니 뭔가 쏟아져 나오는 것이 아닌가.
 단리위진은 그녀의 목에 얼굴을 파묻고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몽정을 했더니 이상한 쾌감에 이게 뭔가하고 말았던 단리위진은 그런 쾌감을 지금 맛본 탓에 크게 숨을 내쉰 것이다.
 단리위진은 고개 파묻고 떠듬떠듬 말했다.
 “너무 좋아··· 오래하고 싶었는데 하체를 움직이자마자 끝내다니 너무 아쉽··· 군······.”
 “경험은 지금이 처음이지만 기녀인지라 방사에 대해서 배우곤 한답니다. 남자는 처음 경험할 때 그 시간이 매우 짧대요.”
 “쩝, 그런가.”
 “좋으시면··· 상공··· 하시고 싶으신 만큼··· 하셔도 돼잖아요.”
 “그··· 그래도 되겠소?”
 야설화는 그의 목을 꼭 끌어안으며 행복에 겨운 콧소리를 냈다.
 “물론이지요. 저는 상공의 여자인 걸요.”
 그렇게 그들은 일곱 번이나 하고 나서야 끝을 맺었다.
 그리고 둘은 의심방과 춘화도를 펼쳐놓고 칠주야를 걸쳐 맹렬한 연습(?)을 했다. 그리고 어느새 누구 못지 않은 그 방면의 고수(?)가 되어가고 있었다.
 단리위진이 의관을 정제하는 동안 야설화는 돌아서 연신 눈물을 훔쳐냈다. 방사가 좋은 줄 알고 아무리 오래도록 하고 싶어도 집으로 돌아가지 않을 순 없는 노릇이었다.
 그가 의관의 정제를 끝내자 야설화는 눈물을 뿌리며 말했다.
 “제가 따라드리는 술 한잔 드시고 길을 떠나십시오.”
 단리위진은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겠소.”
 술상이 차려지고 야설화는 슬픈 얼굴로 단리위진의 잔이 철철 흘러 넘치도록 술을 따랐다. 단리위진은 사랑 담긴 눈으로 야설화를 지그시 바라보다 술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고··· 공자님!”
 갑자기 숨넘어가는 듯한 굵직한 음성이 들려왔다. 숨 넘어가는 소리가 끝나자마자 건장한 대한이 헐레벌떡 안으로 들어섰다. 그동안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장삼이 불쑥 안으로 뛰어든 것이다.
 단리위진은 눈살을 찌푸리며 가볍게 꾸짖었다.
 “무슨 일이기에 이 소란이냐? 그리고 그간 네놈은 어디서 뭘하고 있었기에 코빼기도 보이지를 않았느냐?”
 장삼은 주둥이가 댓발이나 튀어나와 내심 투덜거렸다.
 ‘공자님께서 편하게 운우지락에 취하시라고 자리를 피해준 것도 모르고.’
 “그래 무슨 일이냐?”
 넌지시 단리위진이 묻자 장삼은 침을 튀기며 말했다.
 “공자님! 공자님이 장원급제를 하셨습니다요. 장원급제요.”
 야설화는 쿡하고 웃었고 단리위진은 어이가 없었다.
 “이런 싱거운 녀석 같으니라고. 그 사실을 언제 알고 있었는데 이제와서 호들갑이냐 호들갑이?”
 허리 굽히고 싱글벙글 웃고 있던 장삼은 주둥이가 댓발이나 다시 튀어나왔다.
 ‘썩을. 남은 신이 나 고하는데 자긴 운우지락에 빠져 헤어나오질 못하더니, 허··· 정신이 없을 줄 알았는데 벌써 알고 있다니.’
 단리위진은 술잔을 비웠다. 야설화는 재빨리 술병을 집어들었다.
 “늦었지만 감축드리며 술 한잔 더 올리겠습니다.”
 그녀는 어느새 슬픔을 걷어버리고 화려한 미소를 활짝 띄운 채 술을 따랐다. 단리위진은 그녀의 미소를 보며 내심 아쉽기 이를데 없는 감정을 느꼈다.
 ‘저토록 아름다운 여자와 같이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니 정말 아쉽군.’
 장삼은 자신이 있을 자리가 아님을 깨닫고 넙죽 절을 하고는 나갔다.
 “편히 드십시요.”
 장삼이 나가고 단리위진이 술잔을 비우려 할 때였다.
 “하하하. 내게도 장원급제자에게 술 한잔 따를 영광을 주지 않겠소?”
 갑자기 창노한 대소성이 실내를 울리며 중년선비 한 명이 안으로 들어섰다. 한눈에도 범상치 않아 보이는 청수한 선비였다. 우람한 체구에 미염공 관우를 연상케 하는 수염과 불을 뿜듯 강렬한 눈빛하며 실로 예사 인물같지 않아 보였다.
 더구나 은연중 타인을 압도하는 위풍과 위엄은 그가 고귀한 신분임을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이때 그를 발견한 야설화의 두 눈이 홀연 휘둥그렇게 벌어졌다.
 ‘세, 세상에? 황제께서 친히 납시다니?’
 그녀는 벼락을 맞은 듯 교구마저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눈앞의 중년선비가 다름아닌 당금 자금성의 주인인 광무제(廣武帝)란 말인가?
 야설화는 소스라치게 놀라 황망히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고 있었다. 허나 그 순간 한줄기 전음이 그녀를 멈추게 만들었다.
 (그대로 있거라. 아무말도 하지 말고.)
 “······!”
 야설화는 경악의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엉겁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들을 번갈아 바라보고 있던 단리위진이 의아한 듯 물었다.
 “설화. 이분은 누구시오?”
 야설화가 입을 열기도 전에 중년선비 차림의 광무제가 얼른 대꾸했다.
 “허허허. 내가 잠시 흥취를 깼나보구료. 용서하시오. 나는 낙양에 사는 부호 주자호(朱資浩)라 하오.”
 그의 음성과 태도는 정중하기 이를데 없었다. 단리위진은 그의 태도에 동해, 얼른 포권지례를 취해 보였다.
 “아, 주대인이셨군요. 소생은 말학후진 단리위진이라 합니다.”
 “당치도 않은 말씀이오. 듣자니 대과에 장원급제를 하신 분인데 말학후진이라니요?”
 “과찬의 말씀입니다. 괜찮으시다면 함께 자리를 하시지요.”
 “허허허. 이 영광된 자리를 어찌 마다하겠소?”
 주자호라 허언한 광무제는 연신 대소를 터뜨리며 자리에 앉았다.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가 어째서 선비로 변복을 했으며 이곳에 나타났는지 정녕 의구스럽기 짝이 없었다.
 어쨌든 그가 합석을 하자 단리위진은 단숨에 자신의 잔을 비운후 술잔을 내밀었다.
 “주대인께서 이렇게 자리를 함께 해주시니 한결 자리가 빛나는 듯 합니다.”
 그는 어쩐지 눈앞의 선비에게서 말로는 형용키 힘든 기운을 느끼고 있었다. 한눈에도 범상치 않은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광무제는 짐짓 호걸답게 웃어젖히며 술잔을 받아들었다.
 “허허허. 별 말씀을 다 하시오.”
 광무제는 술잔을 입으로 가져가다가 넌지시 단리위진을 응시하며 부럽다는 표정을 한껏 지었다.
 “낙양 제일의 기녀인 설화의 축하술을 받으며 장원급제의 기쁨을 맛볼 수 있다니 무척 행복하시겠소.”
 단리위진은 희미하게 웃으며 야설화를 힐끗 바라보았다. 단리위진은 겸연쩍은 웃음을 흘렸다.
 “하하하. 잘못 보셨습니다. 설화의 한잔 술엔 기쁜 흥취가 담겨 있지만, 그 장원에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그 말에 광무제는 흠칫 놀라며 의아한 듯 반문했다.
 “장원에 관심이 없다니 그게 무슨 말이오?”
 “하하하. 대과에 응시한 것은 소생의 역량을 시험코자 한 것이지 관직을 원한 것은 아닙니다.”
 광무제는 그 말이 섭섭한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허면 관직에는 뜻이 없다는 말씀이오?”
 단리위진은 담담한 표정으로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광무제는 재차 확인을 하고는 할 말을 잊은 듯 눈만 휘둥그레 떴다. 그러나 그는 이미 단리위진의 단호한 결심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그는 단리위진 류의 남자들은 자신이 뱉은 말은 꼭 지킨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급히 술잔을 비우며 내심 절로 탄식을 했다.
 ‘진정 아까운 인재로다. 필시 천하를 부흥시킬 대단한 인재임이 틀림없건만.’
 광무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야설화는 얼른 빈 잔에 다시 술을 채웠다. 광무제는 이번에는 천천히 술잔을 비웠다. 그는 빈 술잔을 단리위진에게 건넸다.
 “그대같이 출중한 기재가 출사(出仕)를 거부하다니 아까운 일이구료. 가히 천년대계(千年大計)를 열 수 있으련만.”
 단리위진은 일개 부호가 할 말이 아닌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광무제는 탐스러운 수염을 쓰다듬어 내렸다.
 “헌데 실례가 아니라면 소협의 가문을 말해 주실 수 있겠소?”
 단리위진은 조심스럽게 광무제가 내민 술잔을 받으며 담담하게 대답했다.
 “소생은 하남성(河南省) 등봉현(登峯縣)에 살고 있으며 부친의 함자는 단리천무(檀理天武)라 합니다.”
 단리위진의 대답에 광무제의 눈가로 한가닥 놀란 기색이 빠르게 스쳤다.
 ‘단리천무! 성이 같기에 혹시나 했지만 정말 그의 자제일 줄은 몰랐군.’
 단리천무, 그는 이십 년 전 상당한 지위인 어사대부(御使大夫)란 관직에 올랐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는 홀연 관직을 사양하고 낙향한 바 있었다.
 ‘이십 년 전 그는 선황(先皇)의 은밀한 부름을 받은 후 여섯달만에 관직을 사직하고 낙향했었지.’
 광무제는 잠시 과거를 회상하며 씁쓸하게 미소지었다. 그러나 그는 이내 안색을 회복하며 다시 말문을 열었다.
 “소협은 오늘 황제를 알현해야 할텐데 그래도 관직을 마다할 것이오?”
 단리위진은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소생은 이 길로 바로 낙향할 작정입니다.”
 광무제가 가볍게 놀라며 되물었다.
 “소협, 소협은 장원에 급제하고도 황제를 알현하지 않음이 크나큰 불충임을 모르시오?”
 그러나 단리위진은 술잔을 내려놓으며 태연하게 대꾸했다.
 “황제를 알현한 후 관직을 사양함은 더더욱 큰 불충이 될 것입니다.”
 광무제의 두 눈에 은은한 분노가 떠올랐다. 떠난다는 말에 야설화가 아쉬움과 경악이 어우러진 눈빛을 발하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공자님. 진정 이 길로 낙향하실 건가요?”
 단리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그간 설화의 호의는 잊지 않겠소.”
 “아아··· 기어이 가시는군요.”
 야설화는 가볍게 몸을 떨며 탄식을 발했다. 이별의 순간이 새삼 또다시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광무제 역시 아쉬움이 역력해져 안면 가득 짙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인재가 필요할 때이건만.’
 눈물 한 방울을 떨군 야설화는 떨리는 손길로 술병을 집어들며 울음 섞인 옥음을 흘려냈다.
 “이제 마지막 잔인가요?”
 단리위진 역시 잠시 서운한 기색으로 그녀를 주시했다.
 ‘곧 데리러 올테니 염려 놓으시구려.’
 그는 술잔을 받아들며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마지막 잔인가 보오.”
 그는 단숨에 술잔을 비운 후 미련없이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설화. 그간 베풀어 준 정리는 결코 잊지 않겠소.”
 그는 이번엔 광무제를 향해 가볍게 포권을 취해 보였다.
 “주대인. 오늘의 술 한잔은 평생 가슴 깊이 간직하겠습니다.”
 단리위진은 미련없이 신형을 돌려 소축을 나갔다. 광무제는 그의 뒷모습을 망연히 바라보다가 낮게 중얼거렸다.
 “맺고 끊는 정리마저 명쾌하니 정녕 아까운 인재로다.”
 야설화는 그제서야 펑펑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야속한 것이지 명쾌한 것이 아니옵니다. 폐하.”
 그 말을 하고는 야설화는 부지런히 단리위진의 뒤를 쫓아갔다. 소맷자락으로 눈물을 훔치면서.
 단리위진은 말에 타고 있고 장삼 녀석은 고삐를 잡고 있었다.
 단리위진은 뒤도 돌아다보지 않고 정문을 향해 나아갔다.
 야설화는 활짝 웃고는 손을 흔들며 배웅을 했다. 단리위진이 뒤를 한 번 돌아다봐주지 않아도 결코 섭섭하지 않았다. 현명한 여인은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낼 때에 결코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고 의연한 모습을 보인다. 지금의 야설화가 그랬다.
 마침내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그제서야 그녀는 왈칵 눈물을 쏟았다.
 그의 여자가 되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그는 다시 그녀를 데리러 올 것이다. 단리위진은 수양 깊은 학사이자 사내 대장부이기 때문에.
 그래도 이별은 슬픈 것이 아닌가.
 그녀는 얕은 꾀를 써서 그를 붙잡은 것이 지금에서야 후회스러웠다. 조금만이라도 당당하게 그의 마음을 붙잡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어느새 뒤따라나온 광무제는 손을 내밀어 부드럽게 그녀의 어깨를 감쌌다.
 “일향(一香)아. 그만 고정해라.”
 푸근한 음성이었다. 야설화는 무너지듯 그의 품에 안겼다.
 “수··· 숙부님. 흑!”
 오열은 더욱 커졌다. 광무제가 부드럽게 그녀의 등을 쓰다듬었다.
 “회자정리(會者定離)라 했다. 이별이 있으니 언젠가는 또 만날 날이 있겠지.”
 헌데 천하의 주인인 광무제가 숙부라면, 그런 숙부를 둔 야설화는 어떤 연유로 인해 일개 기녀의 신분으로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광무제가 숙부라면 야설화의 아버지는 광무제의 형이 아닌가. 야설화도 황족인 셈이다.
 보통의 생각으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아니련가.
 
 
 2
 
 만 장(萬丈)이나 풀어헤쳐진 금빛 햇살이 화들짝 놀라 신형을 일으키고 있었다. 하남성을 가로지르는 관도(官道)위에 한 필의 말이 한가로이 길을 가고 있었다.
 마상엔 한 명의 영준무비한 미공자가 앉아 있었고 하인복색의 대한 하나가 말고삐를 쥔 채 걸어가고 있었다. 태양빛마저 빛을 잃을 듯 영휘로운 미공자는 바로 단리위진이었고 말고삐를 쥔 대한은 그의 하인인 장삼(長三)이었다.
 단리위진은 마상에서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거참 이상하단 말이야. 내가 과연 설화를 술에 취해 강간했을까. 꿈에서 여인네하고 뒹굴어져 끝없는 쾌락을 누렸는데 그것이 꿈이 아니라 사실이었을 줄이야.’
 장삼은 그를 힐끗 바라보았다.
 “공자님. 무엇을 그리도 깊게 생각하십니까?”
 그러나 단리위진은 그가 한 말을 듣지 못하고 계속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잊자 잊어. 어차피 그녀를 내자(內子)로 들이기로 한 이상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떠한가? 다만 고향에서 기다리는 운혜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장삼은 소리를 빽 질렀다.
 “공자님!”
 단리위진은 깜짝 놀라 상념에서 깨어났다.
 “어? 아아 나를 불렀느냐?”
 장삼은 투덜거리듯 말했다.
 “무엇을 그토록 생각하시기에 불러도 대답이 없으셨습니까?”
 단리위진은 공연히 가슴이 뜨끔했다.
 “아··· 아니다.”
 그러나 장삼은 이미 무엇을 생각하는지 짐작하고 있었다.
 ‘내가 야설화를 생각하고 있는지 모를 줄 알고. 고고하기가 학같기만 하던 우리 공자님께서 저런 앙큼한 구석이 있었을 줄이야. 우리 공자님으로 하여금 저런 앙큼을 떨도록 만들다니, 하여튼 계집은 요물이야 요물.’
 이번에는 단리위진이 장삼을 불렀다.
 “그럼 네 녀석은 무엇을 생각하기에 실실 웃으며 골똘히 생각에 잠겼느냐?”
 장삼은 내심 뜨끔했다.
 “아닙니다요. 제 주제에 생각은 무슨 생각입니까?”
 둘은 서로 내숭을 떨며 길을 재촉했다.
 장삼은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단리위진을 바라보았다.
 “이번에 돌아가시면 운혜 아가씨께선 기필코 공자님에게 하늘을 나는 도깨비 같은 기술을 가르치려 들텐데 감내해 내실 자신은 있으십니까?”
 장삼의 말로 미루어 고향에서 그를 기다리는 운혜라는 여자는 무공을 익히고 있고 그 무공을 단리위진에게 가르치지 못해 안달을 하는 듯했다.
 단리위진은 고소를 머금었다.
 ‘그래. 나 역시 무학을 익히고 싶다. 문(文)과 무(武)를 겸비한 진정한 영웅이 되고 싶지만··· 허나 아버님께선 결코 무공을 익혀서는 안된다고 지엄한 영을 내리셨으니······.’
 그렇다. 그는 부친인 단리천무의 엄명으로 감히 무공을 익힐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문무를 겸비한 진정한 영웅이 되고 싶은 것이 단리위진의 야망이었다.
 한편, 관도의 좌측에 위치한 작은 구릉에는 언제부턴가 여섯명의 인물들이 우뚝 서 있는 것이 아닌가. 그들은 줄곧 단리위진만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들은 한 명의 자의소녀와 다섯 명의 노인들이었다.
 자의소녀는 실로 필설로는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절세적인 미모를 갖추고 있었다.
 그녀가 걸친 자의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의상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 소녀만큼 자의가 멋들어지게 어울리는 여인은 없었다. 진정 천상의 옥녀가 실존한 듯 아름다운 그녀는 방년 십칠팔 세 가량 되어 보였다. 그리고 다섯 명의 노인들은 하나같이 백발에 창백한 안색을 지닌 구순 가량의 노인들이었다.
 자의소녀는 초롱한 눈망울을 반짝이며 야릇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흥. 기녀에게 푹 빠져 운우지정에 세월가는 줄 모르더니 드디어 나타나셨구만. 내가 기다리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겠지.”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는 그녀의 시선은 단리위진에게서 한시도 떼어지지 않고 있었다. 그 말에 우측의 마의노인이 당혹한 표정을 금치 못하며 공손히 허리를 굽혔다.
 “아가씨. 대체 어쩌실 작정이십니까?”
 자의소녀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고 그를 바라보았다.
 “검노(劍老). 지금 가지고 있는 영약(靈藥)이 몇가지나 되나요?”
 그러자 다섯 명의 노인들이 설백 같은 백미를 한결같이 꿈틀거렸다. 한결같이 뜨악하는 표정들이었다.
 “아··· 아가씨. 그 말씀의 뜻은?”
 검노라 불리운 노인이 당황해 되묻자 자의소녀는 앙칼지게 소리쳤다.
 “묻는 말에 대답만 하세요.”
 “만년설삼(萬年雪蔘)과 성형하수오(成形荷首烏)··· 칠엽홍지초(七葉紅枝草), 그리고 구령매실(九靈梅實)이 있습니다.”
 자의소녀가 만족한 듯 배시시 웃었다.
 “됐어요. 그럼 그 모든 것을 기녀계집에게 홀려 정력깨나 소비했을 저 멍청한 인간을 잡아다 모두 먹이세요.”
 그녀는 가늘고 긴 손가락으로 단리위진을 가리키고 있었다. 짐작은 했지만 듣는 순간 다섯 노인들은 까무라칠 듯 놀라고 말았다. 대체 검노가 입에 올린 영약들이 어떤 약들이던가.
 값으로 치자면 황금 백 냥 짜리 이하가 없는 영약 중의 영약들 아닌가. 아니 값은 둘째치고 인세에 한 번 볼 수만 있어도 행운이랄 수 있는 영약들인 것이다.
 “아··· 아가씨!”
 “어쩌시려고 그러십니까?”
 그들의 만류에도 자의소녀는 아랑곳없이 재차 앙칼지게 소리치고 있었다.
 “흥! 무조건 시키는 대로 하세요. 그리고 영약을 복용시키는 김에 아예 임독양맥(任督兩脈)과 천지이교(天地二交)를 타통시켜 탈태환골까지 만들어 버리세요.”
 그 말에 다섯 노인들은 아연실색하여 눈과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세··· 세상에 이런 엉뚱한 일을?’
 그들은 아예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저 할말조차 잊은 채 멍청하니 소녀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이때 검노가 퍼뜩 정신을 차리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고 있었다.
 “안됩니다. 아가씨. 어찌 그런 일을. 만약 그렇게 했다가는 노신(老臣)들 목이 열 개라도 모자랄 겁니다.”
 옆의 노인 도마가 거들고 나섰다.
 “게다가 임독양맥을 타통시켜 천지교태에 들게 만드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가씨께서 익히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잘못하면······.”
 말꼬리를 흐린 도마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가는 단리위진을 내려다보며 말을 이어갔다.
 “저 꼬마를 죽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자의소녀가 그를 홱 돌아보더니 냉랭한 교갈을 토했다.
 “그러니까 특별히 다섯 분에게 부탁드리는 거 아니예요?”
 자의소녀의 얼굴에 갑자기 살기가 차올랐다.”
 “흥! 이제보니 당신들은 오라버니 말만 듣고 내 말은 듣지 않겠다는 것이군요?”
 암팡지게 허리에 손마저 척 걸치는 것을 보며 검노 등은 다시 쩔쩔 매기 시작했다.
 “아··· 아닙니다. 그럴 리가 있습니까. 저희 다섯 늙은이가 어찌 아가씨의 말을 거역할 수가 있습니까?”
 검노가 쩔쩔매며 변명하는 동안 나머지 노인들은 외면한 채 내심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자의소녀는 마지막으로 오로(五老)를 다그쳤다.
 “흥! 그럼 무얼 꾸물거리는 거예요? 어서 시행하세요. 계집에 빠진 저 작자가 밉긴 하지만 또한 저 인간만한 남자도 없으니 그에게 시집가기 위해서는 쓸만한 무인으로 만들어 놔야할 거 아니예요?”
 “그럼 이미 혼약을 한 정공자는 어쩌시구요?”
 “정공자 따위가 단리공자하고 비교가 된다고 생각하세요?”
 다섯 노인들은 어쩔 수가 없는 듯 서로 마주보며 쓴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젓고 있었다.
 ‘후유. 어쩔 수가 없구나. 감히 거역했다간 이번엔 수염이 뽑히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뭉텅하게 잘려나갈텐데.’
 그들은 은근히 수염을 쓰다듬으며 깊숙이 허리를 숙였다. 실상 그들은 자의소녀에게 한 번씩 수염을 뽑힌 적이 있었던 것이다. 그만큼 자의소녀의 성격은 불같았고 한번 고집을 부리면 누구도 말릴 수가 없었다.
 과연 자의소녀는 누구인가? 누구길래 언제 어디서부터 단리위진을 주시했으며 한눈에 반해 낭군으로 삼으려고 눈독을 잔뜩 들이고 있는 것일까?
 자의소녀의 말로 미루어 이미 야설화와 한창 방중술을 닦을 때부터 주시하고 있는 듯했다.
 
 
 제2장 운혜를 만나기 전
 
 
 1
 
 “공자님. 운혜 아가씨께서 무척 기다리시겠습니다.”
 장삼이 너스레를 떨었으나 단리위진은 씁쓸하기 그지 없었다.
 ‘운혜에게 진정 몹쓸 짓을 하고 돌아가는 내 마음은 천근이니 속 좋은 소리 하지 말아라. 이 녀석아.’
 장삼은 다시 어두워진 단리위진의 얼굴을 보며 내심 코웃음 쳤다.
 ‘흥! 실컷 바람 피우고 돌아가서 운혜 아가씨를 보려니 또 찔리시는구만 그래.’
 단리위진은 운혜를 생각하면 언제나 마음이 유쾌해지는 것을 느꼈지만 지금은 결코 아니었다. 장삼도 그의 심기가 불편한 것을 알고는 더 이상 말을 걸지 않고 묵묵히 말고삐를 잡아챘다.
 헌데 바로 그때였다.
 “허허허. 좋기도 하겠다. 넌 천하에서 가장 운이 좋은 놈일테니······.”
 허공으로부터 갑자기 괴소가 터져나왔다. 아니, 허공 전체가 웅웅거리며 그들의 고막을 울리고 있었다.
 “아앗. 누··· 누구냐?”
 단리위진은 귀를 틀어막으며 황망히 소리쳤다. 음성에 얼마나 강한 힘이 들었는지 고막이 터질 것만 같아 귀를 막은 것이다. 이내 강한 소리에 허공이 재차 부르르 진동하며 창노한 느낌으로 도배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널 천하에서 가장 뛰어난 인물로 만들어 주실 분이다.”
 단리위진은 귀를 막은 채 황급히 사방을 둘러 보았다. 그러나 어디에도 사람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대··· 대체 이게 무슨 일이냐? 게다가 천하에서 가장 뛰어난 인물로 만들어 주겠다니? 대낮부터 귀신이 나올 처지도 아닐텐데 말이야.’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단리위진은 은근히 부아마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끼며 버럭 호통을 내질렀다.
 “백주대로에 이 무슨 해괴한 짓인가? 어서 썩 나서지 못할까?”
 예의 그 꼬장꼬장한 성격이 여지없이 드러나는 순간인 것이다. 그러자 방향조차 종잡을 수 없는 곳에서 터지는 창노한 음성이 더욱 고조되어 들려왔다.
 “허허허. 어린 놈이 제법 성깔 하나는 칼칼하구나.”
 이때 말고삐를 쥐고 있던 장삼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엉거주춤 단리위진에게 다가서며 말했다.
 “고··· 공자님. 호··· 혹시 귀··· 귀신이······.”
 그 말에 단리위진도 부지중에 더 성질이 났다. 그러나 그는 애써 성질을 가라앉히며 나직하게 소리쳤다.
 “염려마라. 밝은 대낮에 설마 무슨 일이 일어나겠느냐?”
 예의 창노한 음성이 다시금 허공을 울리며 일었다.
 “허허허. 어린 놈. 일이 일어나는데 밤낮을 가리겠느냐?”
 일순 무엇인가 시커먼 것이 벼락같이 단리위진을 향해 날아들었다. 시커먼 물체가 달려들자 단리위진과 장삼은 동시에 기함을 했다.
 “아앗! 이··· 무슨.”
 단리위진이 혼비백산하여 다급한 음성을 터뜨리는 순간 검은 물체는 그가 앉은 말 위를 스치고 지나갔다. 검은 물체는 단리위진을 옆구리에 끼고 어느새 삼십여 장 밖을 날고 있었다. 장삼은 공포에 질려 머리를 감싸고 주저앉은 터라 그 모습을 보지 못했다. 아니 두 눈 부릅뜨고 있었댔자 볼 수도 없었겠지만.
 검은 물체가 완전히 사라졌는데도 장삼은 말 밑에 엎드려 덜덜 떨고만 있었다. 아주 오랜 후에 장삼은 자신이 무사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이 일을 어찌 한담?”
 장삼의 입에서 넋나간 중얼거림이 더듬더듬 흘러나왔다. 그는 마치 귀신에게 홀린 기분이었다.
 “고··· 공자님.”
 아직도 태양은 중천에서 이글거리고 있는데 장삼은 벌건 대낮에 기이한 일을 당한 것이다.
 한 채의 사당.
 오랜 풍상에 시달린 듯 낡고 퇴색하여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이 귀기섬뜩한 사당이었다. 사당의 내부 역시 거미줄과 두텁게 쌓인 먼지만이 그득했다. 헌데 그 상단에 위치한 제단에 한 인물이 자는 듯 누워있지 않은가?
 제법 깨끗하게 치워진 제단에 누운 그는 눈이 번쩍 뜨일 만큼 준미절륜한 미공자였다. 기괴한 정적만이 감도는 이곳에 누운 그는 놀랍게도 노상에서 사라진 단리위진이었다.
 이때 사당 안으로 여러 명의 인물들이 조심스럽게 들어섰다.
 모두 여섯 명의 인물들이었는데 그중 한 명은 아름다운 자의소녀였다. 바로 단리위진을 지켜보던 인물들이었다.
 자의소녀는 단리위진에게 가까이 다가가더니 더욱 영롱한 눈빛을 반짝이기 시작했다.
 ‘아··· 그저 꽁생원인 줄만 알았는데 이제보니 영웅의 기개가 물씬 풍기는 미장부가 아닌가?’
 그녀의 두 눈이 야릇하게 반짝이면서 입가엔 한줄기 의미모를 미소가 스치고 있었다.
 ‘호호호. 역시 내가 고르긴 잘 골랐구나. 과거에 장원급제한 뛰어난 학문에다 개세의 무공을 겸비한다면 가히 금상첨화가 아니고 무엇이랴?’
 대체 그녀는 단리위진을 어찌 하고자 하는 것일까? 이때 그런 감정은 자의소녀만이 느끼는 것은 아니었다.
 ‘으음. 진정 천 년에 한 번 볼까말까한 근골이로다. 무공을 익히기엔 더없이 적합한 인물이군.’
 다섯 노인들 역시 하나같이 감탄을 하고 있었다. 자의소녀가 그들을 돌아보며 재촉하듯 입을 열었다.
 “검노. 어서 영약을 복용시키지 않고 무얼 하고 있어요?”
 검노가 퍼뜩 정신을 수습하며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아가씨.”
 그런 그의 표정은 아까와는 달리 담담하게 변해 있었다. 자의소녀의 명령에 불만을 나타내던 때와는 확연히 달랐다. 지금은 오히려 영약영초들이 하나도 아깝지 않다는 표정인 것이다.
 ‘천하의 기진이보(奇珍異寶)는 모두 주인이 따로 있는 법. 바로 이놈이 주인이다.’
 그는 가까이서 본 단리위진의 풍모에 한눈에 반해 버렸다. 이제는 훗날 자신이 어떻게 박살이 나든 문제도 되지 않았다. 그만큼 한 눈에 단리위진의 자질에 반한 것이다. 검노는 품에서 비단꾸러미를 꺼내어 풀어놓았다. 그러자 향긋하면서도 달콤한 기향이 사당 안에 감돌기 시작했다. 비단속에서 나온 것은 어린애 팔뚝만한 삼(蔘)과 일곱 가지 빛깔을 내는 풀뿌리 등 예사롭지 않은 것들이었다.
 바로 만년설삼과 칠엽홍지초(七葉紅枝草), 성형하수오, 구령매실 등의 무가지보들이었다.
 그중 한 가지만 있어도 기사회생은 물론 무병장수를 할 수 있다는 귀한 영초와 영약들이 한꺼번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또한 무인(武人)들이 복용시에는 일시에 엄청난 공력을 얻을 수 있다는 개세의 영약들이었다. 헌데 그것을 한 가지도 아니고 네 가지나 한꺼번에 복용한다면 그 결과는 가히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이리라. 검노는 자의소녀와 나머지 노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단리위진의 입을 벌리고 그것들을 차례로 입안에 넣어 주었다.
 검노의 입에서 절로 경탄성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흐음. 천하에서 가장 복이 많은 녀석 같으니. 천하에 누가 있어 이런 기연을 얻을 수 있을고?”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자의소녀가 앙칼지게 소리쳤다.
 “검노! 장차 이 분이 어떤 신분이 될 줄 알고 이 녀석 저 녀석 하는 거예요?”
 그녀의 호통에 다섯 노인들은 일시에 목을 움츠리며 찔끔하고 말았다.
 ‘어이쿠. 홀려도 단단히 홀렸군.’
 ‘맙소사! 이런 어거지로 신랑감을 구하는 방법도 있었나?’
 검노는 내심 혀를 차면서도 황급히 허리를 숙여 사죄했다.
 “죄송합니다. 아가씨.”
 그는 이어 군소리없이 단리위진의 전신혈도를 타무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입을 열었다간 또 무슨 불호령이 떨어질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타타타타탁!
 검노의 손놀림은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쾌속절륜하게 움직였다. 실로 전광석화와 같은 손놀림이었다. 단리위진의 전신 삼백육십혈도를 타통하는 데는 그야말로 눈깜짝할 시간이 지났다.
 이윽고 검노가 손을 거두자 나머지 네 명의 노인들이 기다렸다는 듯 차례로 단리위진의 명문혈에 장심(掌心)을 갖다 붙였다. 그리고는 자신들의 지고정순한 공력을 각기 이십 년씩 주입시키기 시작했다.
 장강의 노도 같은 막대한 진력이 단리위진의 전신에 휘몰아쳤다. 그러자 자는 듯 고요히 누워있던 그의 신형이 미세한 경련을 일으켰다.
 마침내 단리위진의 전신혈맥이 툭툭 불거지기 시작하면서 그의 입에서 가느다란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으.”
 그는 일시에 주입된 엄청난 잠력에 극심한 고통을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전신이 파열되는 듯한 가공할 고통이었다.
 한순간 단리위진의 전신이 부르르 경련하더니 허공으로 풀쩍 뛰어올랐다가 가라앉았다.
 “으윽!”
 이어 그의 단전부분이 커다랗게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네 가지 영약의 기운과 노인들이 불어넣어준 공력이 한데 뭉친 덩어리였다. 시각이 흐를수록 진기의 덩어리는 점점 더 커져갔다. 급기야 그 덩어리는 단전을 파열시킬 듯 부풀어 올랐다.
 “윽, 크으윽!”
 단리위진은 새로운 고통에 휩싸인 듯 악다문 입술 사이로 연신 신음성을 토해내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의식에서 깨어나지 않은 무의식 상태였다. 자의소녀가 미리 마혈을 짚어둔 까닭이었다.
 자의소녀와 다섯 노인들은 숨소리마저 죽인 채 단리위진의 그런 변화를 빠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단리위진의 단전에 부풀어오른 진기는 거센 잠력으로 바뀌며 전신혈도를 따라 거침없이 치달리고 있었다.
 그 잠력은 일시에 전신 삼백육십혈을 일주천한 후 백회혈(百會穴)과 용천혈을 향해 밀려갔다.
 꽈꽝!하고 단리위진의 전신내부를 뒤흔드는 굉음이 일었다.
 아아, 이 순간 단리위진은 꿈에서조차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기연을 만나고 있는 것이다.
 임독양맥과 생사현관의 타통!
 무림인이라면 누구나 오매불망 소원하는 무인 최고의 염원을 이루고 있었다. 이 땅에 무림이 생겨나면서 생사현관이 타통된 인물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 아니 임독양맥이 뚫리고 정수리인 백회혈과 발바닥의 용천혈로 이어진 천지교태가 열려 완전한 생사현관이 타통되어야만 인세에 강한 고수가 된다는 사실이 처음부터 알려진 것은 아니다.
 달마대사가 산 속의 짐승들로부터 호신을 위해 오금지희(五禽之戱)를 창안하여 소림사의 제자들에게 전수한 후부터 무공을 무공이라 부르기 시작된 이후로 오랜 세월이 흐른 후 무공에 미친 천재들에 의해 발견된 사실 아닌가.
 공동산에서 도를 닦던 광성자(廣成子)가 우화등선(羽化登仙)한 이래 많은 사람들이 치열한 연구 끝에 우화등선을 이룰 수 있는 기초의 경지가 바로 임독양맥의 타통과 천지교태의 길이 열려 생사현관을 완벽하게 타통하는 것이었다.
 도를 닦다 보면 이는 한순간에 올 수도 있는 일이고 영원히 오지 않을 수도 있는 깨달음의 경지인 것이다.
 헌데 단리위진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같은 경지에 이르고 있었으며 마침내는 천지교태의 경지인 탈태환골까지 이루고 말았다.
 과연 자의소녀는 누구이며 무엇때문에 단리위진을 이처럼 가공할 경지의 고수로 만들고 있는 것일까? 아니 사실 무서운 것은 자의소녀의 명령때문에 쩔쩔 매면서도 단리위진에게 세수개정대법(洗首開頂大法)을 펼친 능력을 지닌 다섯 명의 노인이 무서운 것이다. 개개인의 능력만 따져도 가히 천하제일이라 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이들 다섯 노인은 누구이며 그런 능력을 지니고서도 자의소녀에게 쩔쩔 매는 이유는 또 어디에 있는 것인가.
 한바탕 꿈을 꾼 듯했다. 단리위진은 땀에 흠뻑 젖은 모습으로 몽롱한 정신에서 깨어나고 있었다. 그는 눈을 뜨는 순간 가볍게 놀라 주위를 휘둘러 보았다.
 “으응? 여··· 여기가 어디지?”
 그는 자신이 낡은 사당안에 누워 있는 것을 깨닫고는 벌떡 일어섰다.
 “내가 왜 여기 있는 거지?”
 단리위진은 재빨리 뇌리를 굴렸다.
 ‘그래. 분명 괴음성을 들은 후 저절로 허공으로 빨려들면서 정신을 잃어버렸었는데 혹시 귀신에 홀린 것이 아닐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가 이런 곳에 누워있을 이유가 없었다.
 그는 미간을 찡그리고 있다가 제단위에서 뛰어내렸다. 순간이었다.
 휘익! 꽈당!
 단리위진은 오 장 거리를 단숨에 날아가 사당입구에 나동그라지고 말았다. 그는 대경실색했다.
 “앗! 내가 어떻게 된 거지?”
 그는 분명 제단에서 가볍게 뛰어내렸을 뿐인데 허공을 날아가버린 것이다.
 “세··· 세상에 이런 일이! 내가 허공을 날다니.”
 게다가 세차게 나뒹굴었음에도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그는 마치 꿈을 꾸는 듯했다. 아니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는 얼굴을 때려보기도 하고 꼬집어도 보았다.
 “분명 꿈은 아닌데.”
 그가 어찌 알겠는가? 혼절해 있는 동안 상상치도 못할 엄청난 일이 벌어졌음을 그는 꿈에도 알지 못했다. 그는 그저 자신의 몸이 예전과는 판이하게 다르다는 사실에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몸이 새털보다 가벼워지고 힘이 펄펄 솟구친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군.”
 한참을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매혹적인 여인의 교소가 짜랑짜랑하게 들려왔다.
 “호호호. 낭군님. 뜻밖의 사태에 어리둥절하실 거예요.”
 때아닌 여인의 음성에 단리위진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누구시오?”
 단리위진이 놀라 되묻자 여인의 교소성이 재차 종잡을 수 없이 사방을 울리며 터져나왔다.
 “호호호. 누구긴 누구예요? 바로 낭군님의 부인이 될 여인이지요.”
 단리위진은 일순간 멍해졌다가 피식 웃고 말았다.
 ‘이번 계집은 야설화 보다 한술 더 뜨는구만그래.’
 이제는 여자를 모르는 꽁생원이 아니었다. 미루어 짐작컨대 누군가 정체모를 여자가 자신한테 반해 이런 기이한 체험을 하게 만들었으리라 이제사 짐작이 갔다.
 하지만 신체의 변화때문에 그는 정신이 혼미해질 만큼 산란해졌다. 밖은 아직도 태양이 이글거리고 있건만 그는 귀신에 홀려 있는 기분이었다. 단리위진은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는 숨어 있는 여자를 떠볼양 나직이 호통을 쳤다.
 “요사한 것! 사람이라면 당장 정체를 드러내고 귀신이라면 썩 물러가거라!”
 과연 그의 호통은 책벌레다운 것이었다. 호통 소리에 사당은 먼지가 쉴 새 없이 풀썩이고 지붕마저 날아가 버릴 듯 들썩였다. 그러나 여인의 음성은 여전히 태연하기만 했다.
 “낭군님이 사람이니 부인도 물론 사람이겠지요.”
 “그렇다면 썩 모습을 보여라!”
 “그렇게 언성을 높이지 마세요. 아직은 낭군님과 상면할 때가 아니니까요.”
 “나 이거야 원!”
 단리위진은 쉽게 걸려들지 않자 입맛을 다셨다.
 말이 이어질수록 여인의 음성은 한술 더 떴다.
 “낭군님. 낭군님은 소녀의 목소리를 절대 잊으시면 안돼요. 장차 부인이 될 사람의 목소리니까요.”
 그 음성은 간이라도 녹일 듯 달콤하기 그지없어 진정 잊혀지지 않을 듯 싶었다. 그러나 그녀를 불러내려던 시도가 수포로 돌아가자 단리위진은 자신을 가지고 노는 듯한 암중의 여인에게 은근히 부아가 치미는 것을 느꼈다.
 ‘이··· 이런 괘씸한 계집이 다 있나?’
 그는 다시 허공을 향해 버럭 노갈을 터뜨렸다.
 “너는 누군데 감히 요사스런 행동으로 나를 놀리느냐?”
 “낭군님. 놀리다니요. 당치 않아요.”
 “흥! 감히 벌건 대낮에 도깨비 놀음을 벌이다니.”
 단리위진은 치미는 울화를 참지 못하고 냅다 사당벽을 걷어차 버렸다.
 꽈― 꽝!
 놀랍게도 그의 발길질에 사당의 한쪽 벽이 통째로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단리위진은 또다시 두 눈이 휘둥그래지며 망연자실해졌다.
 “이럴 수가! 내··· 내가 벽을 무너뜨리다니······.”
 그러자 괴변은 더욱 엄청난 괴변을 불렀다.
 꽈르르 꽝!
 천둥이 치는 듯한 굉음이 진동하며 낡은 사당이 통째로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워낙 낡은 사당인지라 한쪽 벽이 무너지는 여세를 견디지 못한 것이다.
 “헛!”
 단리위진은 혼비백산하여 급히 신형을 움직였다. 허나 그가 채 몸을 피하기도 전에 사당은 폭삭 주저앉고 말았다. 자욱한 흙먼지와 함께 단리위진은 속절없이 무너진 사당의 잔재에 파묻혀 버렸다.
 그리고 잠시 후.
 무너진 사당의 잔재속에서 무엇인가 불쑥 솟구쳐 나왔다. 놀랍게도 그는 바로 단리위진이었다. 흙먼지를 흠뻑 뒤집어쓴 채 엉망으로 변한 그는 툴툴거리며 옷자락을 털어냈다.
 “이게 대체 무슨 꼴이람.”
 헌데 놀랍게도 그는 몸에 상처하나 입지 않은 모습이었다. 진정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허나 그는 그런 사실을 조금도 느끼지 못한 채 먼지를 털어내기에 여념이 없었다.
 먼지 털기가 끝나자 예의 여인의 교소성이 또다시 허공을 울리며 일었다.
 “낭군님. 어떠세요? 이제 낭군님은 무한한 힘을 지니게 되었어요.”
 단리위진은 흠칫하여 먼지를 털다 말고 고개를 쳐들었다. 여인이 다시 음성을 이었다.
 “그것이 부인이 될 저의 첫번째 선물이에요. 이제 곧 두번째 선물도 드릴 거예요.”
 “선물?”
 단리위진은 뭐가 뭔지 정신을 차릴 수 없어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그때 여인의 앙칼진 음성이 터져나왔다.
 “다섯 분! 빨리 비급을 드리지 못해욧?”
 그러자 여럿이 입맛 다시는 소리가 들려왔다.
 “쩝쩝.”
 “에이.”
 이어 어디선가 다섯 권의 책자가 길게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와 단리위진의 발아래 떨어져내렸다. 여인의 음성이 이번엔 그지없이 부드럽게 울려퍼졌다.
 “낭군님. 그 책에는 낭군님이 지니신 힘을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비법이 적혀 있어요.”
 단리위진은 자신도 모르게 발아래 쌓인 다섯 권의 책자를 유심히 살폈다.
 ‘힘을 활용할 수 있는 비법?’
 “그 책을 잘 익히시면 큰 효능이 있을 거예요. 꼭 익히도록 하세요. 그럼 소녀는 이만 가봐야겠어요. 언제까지나 낭군님과 함께 있고 싶지만······.”
 “······!”
 “지금은 그렇게 할 수가 없군요. 그럼 이만 작별을 고하겠어요. 그 책을 익히는 걸 절대 잊어서는 안돼요.”
 “잠깐.”
 단리위진은 그녀를 급히 불러세웠다.
 “나중 일은 나중 일이고 지금 일은 지금 일이지. 나더러 얼굴도 모르는 계집을 하염없이 기다리며 낭군 노릇을 하라는 겐가?”
 그 말에 대한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어차피 나를 낭군으로 생각한다면 굳이 훗날 얼굴을 보여야 할 이유는 더더욱 없는 것이고. 그러니 내 얼굴 한 번 봐야겠으니 당장 모습을 드러내도록 하시오.”
 그래도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만약······.”
 단리위진은 말꼬리를 흘렸다가 은근한 협박을 하기 시작했다.
 “지금 당장 나타나지 않는다면 차후 내 안사람이라고 나타난다해도 결코 인정하지 않겠소. 그대는 평생 학문만 쌓아온 학사의 고집이 어떤 것인지 잘 알 것이오. 그때가서 나를 죽여도 절대 허락치 않을 참이니까.”
 “후우···”
 어디선가 가느다란 한숨이 들려왔다.
 “좋아요. 할 수 없군요. 아쉬운 놈이 물 떠온다고 제가 질 수 밖에요.”
 이어 냉정하게 명령을 내리는 음성이 들려왔다.
 “오로는 우리들을 방해할 생각말고 취선정(聚仙停)에 가서 기다리고 계세요.”
 “아가씨 그건······.”
 “내 성질 몰라서 그래요?”
 “알겠습니다.”
 상당히 화가 난 늙은 음성을 끝으로 사위는 조용해졌다. 단리위진은 그 자리에 서서 암중의 여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헌데 두 식경(약 삼십분)이 다 되도록 나타나지 않는 것이 아닌가. 어느새 단리위진은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아니 나타난다더니 어째 안나타나는 건가?”
 그러자 그의 등뒤에서 조용한 음성이 들려왔다.
 “저는 온 지 벌써 두 식경이 다 되어가요.”
 단리위진은 깜짝 놀랐다. 그는 몸을 홱 돌렸다.
 신비스레 나타나 그에게 무한한 힘을 안겨준 자의소녀가 수줍은 미소를 띠고 그의 뒤에 서 있었다.
 단리위진은 자의소녀를 보자 약간의 충격을 받았다.
 ‘세상에 운혜만이 미인인 줄 알았더니 저 소녀의 미모는 결코 운혜에 못지 않구나. 아니 야설화하고 전혀 다른 분위기를 지닌 또 하나의 꽃이구나.’
 야설화의 미모는 우아한 가운데 화려한 것이다. 이십 세에 불과하지만 그녀에게는 나이를 뛰어넘는 성숙함이 있었던 것이다.
 자의소녀는 열여덟 가량 그 나이다운 아름다움이었다.
 귀엽고 청초한, 그러면서도 어느 정도 성숙미가 가미된 아직 덜 피어난 속에서도 싱그러운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조금의 세월이 흘러 그 미모가 만개한다면 아마도 야설화도 그녀의 미모를 따라오지 못할성 싶은 아름다움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단리위진은 씨익 웃었다.
 “좀 걸을까?”
 불과 얼마전의 꽁생원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여유로움이 어느새 그의 몸에 배어 있었다. 야설화의 치열한 방사가 그에게 가져다 준 여유로움이었다.
 그 여유로움을 대하는 자의소녀는 언뜻 놀라는 기색이 빠르게 스쳐갔다. 여자는 남자의 변화에 민감하다. 그 점이 신이 부여한 선물인지도 몰랐다. 자의소녀는 단리위진의 여유가 어디에서 온 것이 벌써 짐작했다.
 수줍게 웃고 있던 자의소녀의 미간에 싸늘한 기색이 어리더니 그녀는 아랫 입술을 꼬옥 깨물었다.
 ‘그 계집에게서 머무르도록 하는 것이 아니었는데.’
 그러나 자의소녀는 단리위진의 그런 여유가 싫지만은 않았다. 앞뒤 꽉 막힌 꽁생원보다야 백번 나았다. 싫은 것은 그런 여유를 자신이 만들어주지 못하고 남이 만들어 주었다는 데 있었다. 가슴 속으로서부터 불 같은 화가 치밀어올랐다. 질투였다.
 단리위진은 그녀의 표정 변화를 보면서 혀를 찼다.
 ‘저렇게 변화무쌍하니 대체 어떻게 대처하란 말이야.’
 그러나 그는 단 한 가지는 확실히 알고 있었다. 옛날에 그랬던 것처럼 수시로 변하는 여자의 변덕은 무시하는 것이 최고라는 것을.
 그는 성큼 걸음을 옮기며 앞쪽의 숲속으로 한 걸음 더 다가섰다. 따라오려면 따라오고 말라면 말라는 행동인 것이다. 그런데 자의소녀의 입에서 전혀 뜻밖의 말이 나왔다.
 “얼굴을 보셨으니 됐지요. 저는 이만 가겠어요.”
 단리위진은 걸음을 멈추었다.
 단리위진은 굳건해 보이는 등을 보이며 차갑게 말했다.
 “그대는 나를 어디서 어떻게 보아서 단 한 번에 낭군으로 삼겠다고 마음을 먹었는지는 모르지만, 난 그렇게는 못해.”
 자의소녀는 단리위진의 태도에 다시 한 번 놀랐다.
 ‘사람이 단 며칠 사이에 저렇게 변할 수가.’
 그 점이 숨겨진 장점이 겉으로 드러날 때 보이는 모습인 것이다.
 자의소녀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물었다.
 “그럼 어떻게······?”
 “서로가 장래를 맡기려면 최소한의 것은 알아야 되지 않겠소? 난 대화에서 그 점을 찾고 싶은데.”
 “좋아요······.”
 자의소녀는 종종걸음으로 단리위진의 곁에 와서 섰다.
 단리위진은 숲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자의소녀도 그의 곁을 따랐다. 하지만 그녀는 단리위진의 속셈이 어디에 있는지 꿈에도 짐작 못하는 것이 있었다.
 ‘몸으로 대화하는 것이 더욱 확실한 방법이지.’
 숲속으로 들어서서 얼마 걷지 않아 푸근한 잔디가 깔린 꽤 넓은 공지가 나타났다. 그곳에 도착하도록 단리위진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자의소녀는 그가 말이 없자 공연히 가슴이 콩당거렸다.
 단리위진은 공지 한가운데 걸음을 멈추었다. 그녀는 불안한 기색으로 그의 눈치를 살피며 걸음을 멈추었다.
 단리위진은 천천히 그녀를 향해 몸을 돌렸다. 자의소녀는 콩닥대는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그를 지켜봤다.
 단리위진은 활짝 웃었다. 남자의 미소치고는 꽃이 활짝 피는 것만 같이 화려했다.
 ‘아······.’
 자의소녀는 자신도 모르게 내심 감탄을 터뜨렸다. 그의 미소는 다시 한 번 대번에 그녀의 마음을 사로 잡아버렸다.
 일순 단리위진은 손을 뻗어 그녀의 목덜미를 잡았다. 자의소녀는 움찔했다.
 단리위진은 그녀의 목덜미를 잡은 채 그녀를 응시했다. 두 눈에는 서서히 뜨거움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자의소녀는 자신도 모르게 움찔했다. 그녀는 여자의 직감으로 그의 눈에 차오른 뜨거움이 무엇인지 직감했다.
 그녀는 화급히 그의 눈길을 피하며 냉정하게 말했다.
 “손을 치워주세요.”
 “나를 낭군으로 삼기로 한 것은 진정인가?”
 자의소녀는 외면한 채 대답을 했다.
 “진정이 아니고서는 인세 다시 보기 힘든 약과 비급들을 주지는 않아요.”
 단리위진은 씩 웃었다.
 “확실하군.”
 자의소녀는 자신의 목덜미를 잡고 있는 단리위진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끼자 몸을 가늘게 떨었다. 단리위진은 위엄이 담긴 음성으로 말했다.
 “나를 쳐다봐.”
 명령이었다. 어찌나 음성에 권위가 있던지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보았다.
 순간 단리위진은 그녀의 목덜미를 확 잡아당겼다.
 부지불식간에 일어난 일, 그녀의 입술은 바로 단리위진의 입술에 닿아 버렸다.
 단리위진이 거센 입맞춤을 하려 들자 그녀는 어금니를 앙다물고 앙탈을 부렸다.
 “웁, 웁웁······.”
 결코 입술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그녀는 입술을 꼭 다물고 세차게 도리질을 쳤다. 그러나 목덜미를 잡은 단리위진의 손아귀 힘에는 태산의 압력이 담겨 있었다. 불행하게도 그 힘은 그녀 자신이 준 것이다.
 자의소녀는 다급히 말했다. 입술이 맞닿은 채로.
 “할 말이 있어요. 난 아직 준비가 안 되어······.”
 말하는 사이 놀라운 속도로 단리위진의 혀가 그녀의 입을 꿰뚫고 들어왔다. 순식간에 혀와 혀가 엉켜버렸다.
 자의소녀의 두 다리에 힘이 일시에 풀려버렸다. 그녀의 혀를 점령한 단리위진의 혀는 갑자기 부드러워졌다. 마치 보물을 쓰다듬 듯 부드럽게 말아감은 것이었다. 자의소녀는 갑자기 찾아온 야릇한 느낌에 그대로 누워버리고만 싶어졌다.
 그 순간 단리위진의 억센 팔이 그녀의 허리를 감아버렸다. 단리위진은 그녀를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어 놓고는 꿀보다 더 단 그녀의 혀를 마음껏 맛보기 시작했다.
 “흐음······.”
 자의소녀의 코에서 달콤하면서도 비릿한 콧바람이 새기 시작했다.
 자의소녀는 자신도 모르게 양 팔로 단리위진의 목을 감아 버렸다.
 둘은 그렇게 뜨거운 태양이 쏟아지는 가운데 오래도록 설왕설래했다. 차츰 그녀의 허리를 감은 단리위진의 손이 위로 바짝 올라붙은 그녀의 둔부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는 한 손으로 탱탱하기 이를데 없는 한쪽 둔부를 움켜쥐었다.
 일순 자의소녀는 정신이 퍼득 들었다.
 그녀는 입술을 떼었다. 그녀의 얼굴은 어느새 독사처럼 야멸차졌다. 그녀는 가차없이 단리위진의 뺨을 때렸다.
 불똥이 튀고 단리위진은 난생 처음 눈앞에 별이 수십 개 오락가락하는 것을 맛보아야만 했다.
 그는 그녀의 몸에서 떨어졌다.
 마치 수십 개의 바늘로 볼을 찌르는 듯한 통증에 단리위진은 정신을 차리기 위해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정신을 차린 단리위진은 무서운 얼굴로 자의소녀를 보았다. 자의소녀는 독사가 되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단리위진을 노려 보고 있었다. 단리위진은 냉소를 터뜨렸다.
 “감히 나를 마음대로 낭군을 삼아놓고 진정이라고 확약까지 한 처지에 낭군될 사람을 때렸단 말이지?”
 “맞을 짓을 했으면 낭군 아니라 그보다 더한 사람이라도 맞게 되는 법이다.”
 단리위진은 피식 웃었다. 비웃음. 자의소녀는 움찔했다.
 단리위진은 얼음장 같은 음성으로 말했다.
 “그저 이상한 꿈을 꾸었다고 생각하면 되지. 부덕을 모르는 너같은 여자하고 나하고 무슨 인연이 있겠는가.”
 단리위진은 마치 만년 얼음굴에서 이는 듯한 얼음바람을 일으키며 몸을 돌렸다. 자의소녀는 움찔했다.
 단리위진은 성큼성큼 걸어갔다. 자의소녀의 얼굴은 독기가 풀리면서 순식간에 긴장으로 가득 찼다.
 “참!”
 무엇이 생각났는지 단리위진은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그는 품 속에서 다섯 권의 비급을 꺼내더니 뒤돌아선 채 그녀에게로 던졌다.
 “이건 네 물건이니까 돌려줘야겠지.”
 다섯 권의 비급은 그녀의 발 앞에 내팽개쳐졌다. 천하에 다시없는 비급들이 볼품없이 나뒹구는 순간이었다. 단리위진은 여전히 등을 돌린 채 냉랭하게 말했다.
 “무슨 약인가 먹였다는 것 같았는데 찾아가고 싶으면 날 죽여서 꺼내가.”
 단리위진은 그 말을 끝으로 걸음을 다시 옮기기 시작했다. 자의소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성질로 말하자면 천하에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는 그녀였다. 그러나 단리위진의 성질은 분명 자신보다 한 수 위였다. 그를 보고 한눈에 반하고 낭군으로 삼으려는 마음이 없었다면 물론 그녀는 일 장에 단리위진을 때려 죽였을 것이다. 그러나 단리위진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결코 굴복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그녀는 잘 알았다. 자신은 단리위진을 좋아하지만 단리위진은 결코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것이 그녀의 성질이 단리위진의 성질한테 지는 이유인 것이다.
 또한 그녀는 약을 되찾기 위해 그를 죽일 수도 없었다. 하지만 놓칠 수도 없었다. 자신의 평생을 맡아줄 사람이고 자신은 그 품 안에서 평생을 행복을 맛보며 살고 싶기 때문이다. 이대로 단리위진이 가버리면 영영 놓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치밀자 자의소녀는 다급히 몸을 날렸다.
 “안돼요. 그럴 수는 없어요.”
 그녀는 몸을 날려 감히 단리위진의 머리를 뛰어넘지 못하고 그를 지나쳐 그를 가로 막았다.
 그녀는 단리위진의 소맷자락을 잡았다. 싸늘한 단리위진의 얼굴을 그녀는 애원하는 얼굴로 올려다보았다. 단리위진은 냉엄하게 호통을 쳤다.
 “비켜!”
 자의소녀는 울먹이는 목소리를 용서를 빌었다.
 “잘못했어요. 용서하세요.”
 단리위진은 냉소를 머금었다.
 “진심인가?”
 자의소녀는 울먹이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잘못했어요. 용서해 주세요.”
 “무릎 꿇어.”
 자의소녀는 부르르 떨었다. 울먹이던 표정은 일시에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독기가 서렸다.
 ‘이 자식을 일장에 쳐죽이고 모든 것을 없던 것으로 해버려.’
 자신이 누구인가. 어떤 신분인가. 무릎을 꿇기는커녕 만인이 자신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하는 신분이 아니던가.
 단리위진은 냉정하게 손을 뿌리쳤다. 그는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자의소녀는 얼른 그의 앞으로 달려가 무릎을 꿇었다.
 “꿇었어요. 이렇게 꿇었잖아요. 제발 나에게 화내지 마세요. 내가 화를 낸 것은 이 모든 일에 익숙지 않기 때문이란 말이에요.”
 그녀는 울먹이는 음성으로 빠르게 말했다.
 단리위진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게 용서를 비는 태도인가?”
 자의소녀의 영롱하면서도 깊숙이 냉기가 자리잡은 두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배어 올랐다. 그녀는 고개를 숙였다. 눈물 방울이 방울방울 떨어졌다.
 “잘못했어요. 용서해 주세요.”
 그렇게 고개 숙이고 눈물을 떨구는데 그녀 눈앞으로 무엇인가 떨어졌다. 놀랍게도 그것은 바지였다.
 그녀는 재빨리 고개를 쳐들었다. 쳐든 순간 그녀는 두 눈을 부릅 뜨고 딱 굳어버렸다.
 그녀의 눈앞에 거대한 괴물이 성을 잔뜩 내고 하늘 높이 솟아 있는 것이 아니가. 그녀가 고개를 떨군 사이 단리위진은 바지를 내렸고 우람한 남근을 세운 것이다. 자의소녀는 그것이 무엇인 가 깨달은 순간,
 “악”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고 말았다. 그녀는 고개를 외면하고는 두 눈을 꼭 감고는 바들바들 떨었다.
 “빨어. 못하겠다면 날 이 자리에서 죽여버리든지.”
 자의소녀는 눈물을 철철 흘렸다.
 “요··· 용서하세요. 난 아직 아무런 준비도 안되었단 말이에요··· 으흐흑······.”
 “준비? 준비는 시작하면 그것이 준비인 거다.”
 그녀는 귀를 틀어막고 싶었다.
 “울음 당장 그치고 빨지 못해.”
 거짓말같이 그녀는 울음을 멈추었고 떨리던 몸도 멈추었다.
 “고개 돌리고 빨어.”
 “지··· 징그럽고 더럽고······.”
 단리위진은 냉소를 쳤다.
 “징그럽고 더럽다고? 월향소축의 야설화는 귀엽고 사랑스럽다기만 하던데.”
 그녀는 또다시 거짓말 같이 울음을 멈추었다. 방금 들린 말에 갑자기 가슴이 불이 확 이는 것일까.
 “그··· 계집··· 분명 그랬단 말··· 이죠······.”
 “삼주야 내내.”
 그녀는 고개를 홱 돌렸다. 얼굴에는 비장한 각오가 돌고 있었다.
 그녀는 어금니새로 씹듯이 내뱉었다.
 “좋아요.”
 그녀는 질투에 마음을 단단히 먹었는지 단리위진의 남근을 향해 입을 가져갔다. 그러나 아무리 마음을 단단히 다지고 다졌지만 그녀에게는 징그럽고 더러운 물건일 뿐이었다.
 그녀는 저 빳빳이 선 괴물을 여자 몸에는 단 한군데에만 사용하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헌데 입으로 빨라니.
 귀엽고 상냥하지만 고집 또한 하늘을 가릴만 했던 자신. 옥이야 금이야 사랑만 받고 자랐던 자신. 그런 자신이 입으로 저 괴물을 빨아야 한다니. 하지만 아무리 속으로 따져도 해야 할 수밖에는 없었다. 그녀는 다시 한 번 두 눈을 딱 감았다.
 그녀는 입을 다시 가져갔다. 입술에 귀두가 닿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오르며 닭살이 돋았다.
 그녀는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못 하······.”
 말도 다하기 전에 그녀의 정수리를 손으로 짚은 단리위진은 그녀의 고개를 돌리고는 남근을 그녀의 입으로 들이밀었다. 그녀는 도리질을 쳤다. 입을 영원히 열지 않겠다는 듯이.
 “해봐. 해 보면 이것이 왜 귀엽고 사랑스러운지 알게 될 거야.”
 그녀는 할 수 없이 입을 벌렸다. 벌리고 싶어 벌린 것이 아니라 정수리를 덮은 손에서 뿜어지는 힘이 너무 거세 머리가 터질 것만 같은 고통에서였다. 남근은 순식간에 입으로 들어왔다.
 너무 우람한지라 숨이 콱 막히면서 속에서 토악질이 솟구쳤다.
 “혀로 부드럽게 핥아봐. 그러면 알게 된다니까.”
 그녀는 토악질을 참으며 그의 말에 따르기 시작했더. 그녀는 혀로 그의 귀두를 감으면서 부드럽게 핥아 나가기 시작했다.
 조금 하다보니 과연 그의 말대로 차츰 나아졌다.
 그녀는 몇번 시키는 대로 하더니 차츰 이력이 붙는지 상당히 부드러우면서 감미롭게 핥았다.
 “으으음··· .”
 단리위진의 입에서 굵은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좋으면 남자도 여자 못지 않게 신음을 흘린다. 자의소녀는 양 손으로 단리위진의 엉덩이를 피가 나도록 잡고는 하고 또 했다. 얼마 후,
 “일어나.”
 그녀는 발딱 일어났다. 단리위진은 그녀를 껴안더니 또 다시 입맞춤을 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발휘했던 부드러움은 상대도 되지 않는 부드러운 입맞춤이었다.
 ‘그 계집하고도 분명 이렇게 오래도록 했겠지. 난 그 계집에게 결코 지지 않을 거야.’
 그녀는 차츰 몸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난생 처음 느끼는 기이한 열기가 머리 끝에서 발끝까지 구석구석 퍼져 나갔다.
 “흐음······.”
 다시 그녀의 코에서 비릿하면서도 달콤한 비음이 흐르기 시작했다.
 단리위진은 그녀와 입맞춤을 하면서 선 채로 달랑 들어올렸다. 그는 그녀를 안고 가장 가까운 나무로 갔다.
 단리위진은 나무 앞에 그녀를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나무를 향해 돌려 세웠다.
 “허리를 굽히고 나무를 두 손으로 붙잡아.”
 그녀는 시키는 대로 했다. 허리를 굽히고 양 손으로 나무를 붙잡았다. 그녀는 이 자세가 어떤지 잘 안다. 자신은 지금 자신의 탐스런 둔부를 단리위진을 향해 내밀고 있는 것이다. 수치스러워 죽고만 싶었지만 야설화를 떠올리면서 이를 악물었다.
 이를 악문 순간 단리위진의 손이 허벅지 사이 바로 둔부 아래 옥문이 자리한 곳을 덮었다.
 ‘ㅎ’
 그녀는 다급히 숨을 들이켰다. 눈물이 왈칵 솟구쳤다. 또 다시 죽고만 싶어졌다. 자신이 꿈꾸던 첫경험은 결코 이런 것이 아니었다.
 화촉동방을 밝힌 후 수줍은 자세로 원앙금침이 깔린 침상가에 앉아 남편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남편은 친구들과 거나하게 한 잔하고 올 것이다. 취해 들어오면 거칠게 화관을 내팽개쳐 버리고 옷고름을 뜯어버리듯이 거칠게 풀겠지. 아니 취한 손으로 풀기 힘들어 뜯어버릴지도 몰라. 그러면 나는 취한 남편을 다독이며 부드럽게 다루어 달라고 수줍게 말했을텐데. 그리고 나란히 이불 속으로 들어가 남편의 뜨거운 숨결을 받으며 첫경험을 치룬 후 나란히 베개를 베고 누워 앞날을 설계하는 것이었는데.
 그런데 자신이 낭군으로 점지한 이 인간은 그런 낭만을 주기는커녕 온갖 수치를 다 주고 있는 것이다. 더욱 죽기보다 싫은 것은 그런 수치 속에서도 자신의 옥문은 흠씬 젖어 있는 것이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칠 때 자의소녀는 속살 깊은 곳에서 불이 솟구치며 무엇인가가 나와 그곳을 적시는 것을 느꼈다. 그것을 느끼자 몸은 이미 뜨거운 열락에 젖어가고 있는 것도 깨달았다.
 단리위진은 천천히 부드럽게 그러나 집요하게 그녀의 옥문을 애무하고 있었다. 치마 겉이 젖자 그는 치마를 훌렁 위로 젖쳤다.
 학처럼 쪽 뻗은 두 다리 위로 두 개의 보름달이 나타났다. 두 보름달 사이는 홍수가 나 있었다.
 두 보름달을 덮은 속곳은 새빨간 색이었는데 앙증맞도록 귀여웠다. 단리위진은 양 허벅지에 매어져 있는 끈을 풀었다. 속곳은 다리를 타고 흘러내렸다. 그리고 그녀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옷을 추스리고 난 후 자의소녀는 몸을 외로 꼬고 서 있었고 단리위진은 한껏 부드러운 미소를 띠고 그녀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수치심을 감추기 위해서인지 그녀의 옆얼굴은 얼음장만 같았다. 단리위진은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그녀는 움찔했다.
 단리위진은 그녀를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 품에 안기자마자 그녀는 격한 울음을 터뜨렸다.
 “나쁜 자식. 나를 이렇게 만들어 놓다니.”
 단리위진은 부드러운 손길로 그녀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나빠요. 나빠. 당신은 정말 나쁜 사람이야. 으흐흑······.”
 단리위진은 그녀의 등을 토닥였다. 그녀의 울음은 좀처럼 쉽사리 그칠 것 같지가 않았다. 그는 그녀가 실컷 울도록 내버려 두었다.
 한참을 울고 난 그녀는 눈물을 훔쳐내더니 비급이 내던져진 곳으로 갔다. 그녀는 비급 다섯 권을 가져와 소중히 내밀었다.
 “천하에 다시 없는 보물이니까 꼭 익혀두세요.”
 단리위진은 품 속에 잘 갈무리했다. 그녀는 귀밑머리를 쓸어 올렸다. 그녀의 얼굴은 행복해 보이기도 했고 허무해 보이기도 했다.
 “이젠 가야겠어요.”
 그 말을 하자마자 그녀는 단리위진을 영원히 안보기라도 할 듯이 몸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몸을 날렸다.
 그녀의 종적은 삽시간에 사라져버렸다. 단리위진은 허전한 음성으로 뇌까렸다.
 “그러고 보니 그녀의 이름도 물어보지 않았구나.”
 단리위진은 갑자기 햇빛이 상당히 따갑구나 하고 생각했다.
 
 
 2
 
 “공자님. 소인은 아무리 생각해도 도통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요.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었을까요?”
 장삼은 말고삐를 잡아끌며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단리위진은 마상에 앉은 채 묵묵히 앞만 보고 있었다. 검미를 잔뜩 모은 것이 깊은 생각에 잠긴 모습이었다.
 ‘허참. 나도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군. 정체모를 여인의 음성하며 게다가 낭군이라니? 대체 그 여인이 누구기에 내 부인이 된다는 것이지?’
 그는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는 기분이었다. 모를 일은 그것뿐이 아니었다.
 ‘그리고 내 몸안에 생긴 기이한 힘(力)은 또 어떻게 된 것인지. 내가 허공을 날고 사당을 통째로 무너뜨리다니··· 믿을 수가 없다.’
 아무리 생각을 되뇌어도 알 수 없는 일이었으나 어쨌든 기분은 좋았다. 그가 어찌 무공의 오묘함을 알 것이며 잠든 사이에 이루어진 기연을 짐작이나 하랴만 기분이 좋은 것은 사실이었다. 단리위진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엄청난 힘을 갖게 되었다는 사실에 기분이 묘하면서도 한편으론 자못 흐뭇했던 것이다.
 관도를 끼고 있는 작은 언덕.
 마치 어둠의 일부인 양 우뚝 버티고 선 한 명의 흑의인이 있었다. 그는 얼굴마저 복면으로 가리고 있었는데 음산한 살기가 뼈를 에일 듯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또한 빠꼼히 드러난 두 눈은 보기에도 섬뜩한 시퍼런 광망을 줄기줄기 폭사하고 있었다.
 한눈에도 좋은 인물은 아닌 듯했다. 헌데 그는 진작부터 언덕그늘에 몸을 숨긴 채 관도를 지나가는 단리위진을 주시하고 있지 않은가?
 문득 복면 사이로 음산한 괴소성이 새어나왔다.
 “흐흐흐. 단리위진이라고? 단리 성에다 장원급제라. 저만한 놈을 키워낼 자는 단리천무 그놈밖에 없다.”
 무저갱을 연상시키는 그의 두 눈에서 무시무시한 살광이 번뜩이며 폭사되었다.
 “단리천무. 지난 이십 년간 잘도 숨어 있었다. 허나 이젠 찾아냈으니, 네놈은 이제 가장 비참한 꼴로 죽음을 맞을 것이다.”
 심장이 파열될 듯 엄청난 살기가 흑의인에게서 뿜어졌다. 이어 그는 마치 없었던 것처럼 흔적없이 사라져 버렸다.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드는 것은 지나친 망상일까?
 타는 듯 붉은 노을이 서천을 온통 단풍빛깔로 물들이고 있었다. 단리위진 일행은 어느덧 하련산을 가로지르는 소로(小路)로 접어들었다. 헌데 그때였다. 갑자기 간담이 서늘해지는 괴소성이 소롯길에 음산하게 깔렸다.
 “흐흐흐.”
 장삼이 기절할 듯이 놀라 발길을 멈추며 소리쳤다.
 “헉! 누··· 누구냐?”
 그러나 단리위진은 눈살을 잔뜩 찌푸린 채 전면을 뚫어지게 쏘아보고 있었다. 그들의 전면엔 어느샌가 세 명의 흑의인이 나타나 가로막고 있었다. 하나같이 흉험하게 생긴 자들로 한손엔 대도(大刀)를 들고 있는 인물들이었다.
 단리위진이 미간을 좁히며 냉랭하게 입을 열었다.
 “너희들은 누구냐? 누구기에 감히 앞길을 막는 것이냐?”
 그러자 세 명의 흑의인중 얼굴이 유난히 길다란 말상〔馬像〕의 인물이 앞으로 나서며 괴소를 발했다.
 “우리는 하련산의 주인이신 하련삼선(河連三仙)이시다.”
 “하련삼선?”
 단리위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말상이 대도를 슬슬 문지르며 더욱 사이하게 웃었다.
 “그렇다.”
 그들을 주시하던 단리위진은 곧 무엇인가를 깨달았고,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제보니 지나는 행인을 괴롭히는 도적의 무리들이 아닌가? 못된 놈들 같으니.’
 그렇다. 세 명의 흑의인들은 바로 하련산 일대를 무대로 노략질을 일삼는 하련삼도(河連三盜)였다. 흉폭한 심성과 잔인한 살상으로 흉명을 떨치고 있는 대도의 무리들인 것이다.
 이때 하련삼도중 가장 체구가 크고 구렛나루를 기른 인물이 대도를 치켜세우며 흉폭하게 소리쳤다.
 “이놈들! 가진 것을 몽땅 내놓으면 목숨만은 살려 주겠다.”
 겁에 질려있던 장삼이 어찌된 일인지 과감히 용기를 내어 용감무쌍하게 앞으로 나섰다.
 “이제보니 순전히 날강도놈들이었구나. 그런데 네놈들이 신선이라고? 그럼 우리 공자님은 옥황상제이시다. 감히 우리 공자님이 어떤 분이라고 길을 가로막느냐?”
 하인의 호통에 잠시 어이가 없어진 하련삼선은 기가 막혀 코웃음을 쳤다. 그러다가 말상의 흑의인이 안색을 싸늘하게 굳히면서 대도를 높이 치켜들었다.
 “이놈! 당장 모가지를 뎅강 잘라놓을테다.”
 그는 금시라도 장삼의 목을 자를 듯 다짜고짜 덤벼들고 있었다. 장삼의 안색이 새하얗게 탈색되었다. 실상 큰소리는 쳤지만 무시무시한 대도를 들고 덮쳐오는 데야 별 도리가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때 단리위진이 버럭 대갈을 터뜨리며 장삼의 앞을 가로막았다.
 “당장 멈추지 못할까?”
 산이 쩌렁하게 울리는 대갈이었다. 더구나 그에게선 감히 범접치 못할 위엄까지 느껴지고 있었다. 말상의 흑의인은 고막이 찢어질 듯 웅웅거리자 대경실색하여 우뚝 멈춰섰다.
 ‘이··· 이런. 설마 저 책벌레 같은 놈이 숨은 내가고수는 아니겠지?’
 단리위진이 그를 똑바로 주시하며 타이르듯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이대로 물러가라. 그렇지 않으면 지엄한 국법(國法)이 결코 용서치 않으리라.”
 그 말에 하련삼도는 놀랐던 가슴을 추스리며 회심의 미소를 흘렸다.
 “국법이라고? 그러면 그렇지. 네놈은 역시 책벌레였구나.”
 혹시나 절세고수가 아닐까 조바심치던 그들은 이내 예의 흉심을 되찾으며 음침하게 소리쳤다.
 “크흐흐. 가진 것만 순순히 내놓으면 살려주려 했는데 이젠 용서할 수 없다. 목을 내놓아라!”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그들은 흑호투심(黑虎投心)의 초식으로 강맹한 도광(刀光)을 뿌리며 달려들었다.
 쐐애애액― 번쩍!
 무서운 살광이 번뜩이며 세 개의 대도가 단리위진의 육신을 단숨에 토막낼 듯 짓쳐들었다. 장삼은 그 광경에 까무라칠 듯 질겁하고 말았다.
 “악! 고··· 공자님!”
 단리위진 역시 뜻밖의 사태에 혼비백산하여 당황하고 있었다. 그런 그가 다급한 김에 손을 들어 가장 가까이 날아드는 대도를 잡아갔다.
 장삼은 아예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아이쿠! 이제 공자님은 영락없이 죽었구나.’
 그 순간이었다.
 쨍그랑!
 갑자기 맑은 금속성이 장삼의 귓전을 파고드는 것이 아닌가?눈을 뜬 장삼은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
 믿을 수 없게도 하련삼도중 구렛나루의 대도가 반동강이 난 채 땅위로 뒹굴고 있었다. 하련삼도는 기겁을 하여 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이··· 이런 일이··· 맨손으로 대도를 절단하다니. 놈이 설마 진짜 내가고수 중의 내가고수란 말인가?’
 그러나 그들 이상으로 놀란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단리위진이었다.
 ‘이게 어··· 어찌된 일인가? 내··· 내가 맨손으로 칼을 부러뜨리다니······.’
 그는 망연자실한 채 자신의 두 손을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세상에 내가 이 손으로 칼을 막다니······!’
 그의 손은 설백이 무색하리만치 희디흰 손이었다. 생전 붓외에는 잡아본 적이 없는 그런 손. 하지만 단리위진은 자신의 발길질 한 번에 사당 전체가 무너져 버렸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호통만 치면 모든 일을 해결할 수 있었던 단리위진에게 싸움 경험이 있을 리가 없었다.
 헌데 바로 그때였다.
 단리위진의 멍청해진 얼굴을 유심히 살피던 하련삼도중 두 명이 그래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재차 대도를 일도횡섬(一刀橫閃)으로 비스듬히 단리위진을 향해 그어갔다.
 ‘우리들 눈에 콩꺼풀이 씌였겠지. 곰팡내 나는 서생이 어찌 맨손으로 대도를 막을 수 있단 말이냐?’
 그들의 살기등등한 기세에 장삼은 재차 당황하여 소리쳤다.
 “아앗! 공자님. 어서 피하세요.”
 퍼뜩 정신을 차린 단리위진은 당혹하여 손발이 어지러워졌다.
 ‘꼼짝없이 죽었구나.’
 그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아 어찌 할 줄을 모른 채 쩔쩔 맸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는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자신도 모르게 두 손을 내뻗어 하련삼도들의 대도를 마주쳐갔다. 헌데 진정 믿을 수 없게도 그 수법은 조금 전 하련삼도들이 펼쳤던 흑호투심의 바로 그 초식이 아닌가?
 퍼퍽! 쨍그랑!
 둔탁한 마찰음과 함께 이번에도 대도는 영락없이 부러지고 말았다. 헌데도 단리위진의 손은 멈출 줄 모른 채 하련삼도의 머리를 내리쳐 갔다. 그의 손속은 거짓말처럼 신쾌하게 하련삼도의 머리를 박살내 버리는 것이 아닌가.
 “크아악!”
 처절무비한 비명성과 함께 하련삼도중 말상의 흑의인이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그러자 나머지 두 명은 귀신이라도 만난 듯 질겁을 하고 말았다.
 “헉! 무··· 무서운 고수다.”
 “놈이 여태 멍청한 척 내숭을 떨었구나.”
 그들은 이제 정신이 반쯤 빠져나간 채 멍하니 넋을 잃고 서 있었다. 머리끝까지 쭈뼛할 만큼 소름끼치는 전율이 그들의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더 생각하고 말고 할 겨를이 없었다.
 ‘이럴 땐 도망이 최고다.’
 나머지 둘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전력을 다해 신형을 날렸다. 그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발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단리위진은 그들을 잡을 생각도 않은 채 망연하게 서 있었다. 그는 지금 뭐가 어떻게 된 일인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지금 내가 꿈을 꾸는 걸까?’
 그는 슬그머니 자신의 허벅지를 꼬집어 보았다.
 ‘아얏!’
 아픈 것을 보면 분명 꿈은 아니었다. 꿈은 아닌데 대체 이게 어찌 된 영문이란 말인가? 단리위진은 한바탕 악몽을 꾸고 난 기분이었다. 악몽을 꾸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만이 아니었다. 장삼은 조금 전의 두려움을 잊고 멍하니 자신의 주인을 바라다 보았다. 잠시 후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뿐이었다.
 
 
 3
 
 한 채의 아담한 장원(莊園)이 노을속에 묻혀 있었다. 등봉현에서 십여 리 가량 떨어진 야산의 송림(松林)속에 파묻힌 장원이었다. 주위의 풍경탓인지 한적한 장원의 정경은 마치 한 폭의 그림을 연상케 했다. 헌데 장원의 대문은 괴이하게도 굳게 닫혀 있었다. 괴이한 것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장원을 감싸고 있는 스산한 분위기는 심장이 오그라들 듯 음산무비했다. 마치 폐허속에 묻힌 폐장원처럼 기괴한 기운이 주위를 짓누르고 있는 것이었다.
 “······!”
 단리위진은 장원 앞에 이르러 걸음을 우뚝 멈추었다. 그 역시 장원을 뒤덮고 있는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 듯했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대문이 굳게 잠겨 있다니. 전엔 이런 일이 없었는데.”
 장삼도 목을 움추리며 대꾸했다.
 “공자님. 정말 이상합니다요. 꼭 무슨 일이 일어난 것만 같아요.”
 단리위진이 미간을 좁히며 명령했다.
 “어서 대문을 열어라.”
 “네. 공자님.”
 장삼은 대문으로 가서는 있는힘껏 밀쳤다. 그러나 대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단리위진은 순간적으로 불길한 예감이 뇌리를 스치는 것을 느꼈다.
 ‘진정 이상한 일이군. 내가 올 것을 미리 알고 있을텐데.’
 그는 직접 대문앞으로 가서 대문을 밀었다. 지금껏 내내 오는동안 그는 자신의 몸속에 알 수 없는 기운이 충만한 것을 감지하고 있었다. 하련삼도중 한 명을 살상한 것도 따지고 보면 무의식중에 기운이 넘쳐흘러 그리된 우연한 사건이었던 것이다. 때문에 단리위진은 이번에도 몸속에 있는 기운을 이용해 대문을 밀어붙였다. 그러자 대문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박살이 나버렸다.
 우지끈! 꽝!
 그 바람에 단리위진은 대문안으로 빨리듯 들어섰다. 그 순간 역겨운 냄새가 물씬 그의 콧속으로 파고들었다.
 “으윽. 이 냄새는······?”
 단리위진은 안색이 변한 채 우뚝 신형을 멈췄다.
 “피, 피냄새다.”
 그는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그렇다. 장원 안엔 그야말로 한 폭의 아수라지옥도(阿修羅地獄圖)가 펼쳐져 있었다.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시신들이 장원 가득 널브러져 있었던 것이다. 허리가 동강난 시신과 목을 잃은 채 피바다에 잠긴 참혹한 시신들, 서로 끌어안은 채 치를 떨며 죽어간 시신 등.
 남자도 여인도 어른도 아이도 심지어는 병든 자까지 처참한 시신이 되어 혈수에 잠겨 있었다. 진정 치가 떨릴 처참무비한 축생지옥도가 시야 가득 펼쳐져 있는 것이었다.
 더구나 그 시신들은 하나같이 단리위진이 아는 얼굴들이었다. 바로 이 장원의 전 가솔들이 남김없이 주살되어 있었던 것이다. 대체 누가 이런 잔인무도한 살상극을 벌인 것일까?
 여기저기 널브러진 토막난 시체들을 바라보며 단리위진은 두눈이 뒤집어질 만큼 놀라고 말았다.
 “대체 어떤 놈이 이런 참살을··· 으으!”
 한동안 치를 떨던 단리위진은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한차례 신형을 부르르 떨더니 벼락같이 안으로 쏘아져 들어갔다.
 ‘아버님은 어찌 되었을까?’
 부친의 안위에 생각이 미친 그는 단숨에 부친 단리천무의 서재로 달려 들어갔다. 그러나 내전(內殿)의 별당 앞에 이른 그는 숨넘어갈 듯한 비명을 내지르며 석상처럼 굳어 버리고 말았다.
 “흐윽! 아··· 아버님!”
 그의 두 눈마저 튀어나올 듯 불거졌다. 별당의 문설주엔 참혹하게 짓이겨진 한 구의 시체가 고깃간의 고깃덩어리처럼 매달려 있는 것이 아닌가?
 사지(四肢)가 잘린 몸뚱이와 두 귀와 코마저 잘라져나가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얼굴. 뻥 뚫린 눈구멍에서는 아직도 검붉은 핏물이 한스럽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것은 인간의 모습이 아니었다. 차라리 한 덩이 고깃덩이에 불과했다. 방 안에는 어머니와 여동생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여동생은 하의가 벗겨지고 사타구니가 피투성인 것으로 보아 윤간을 당한 후 살해당한 것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지금 단리위진의 눈에는 아버지의 시체만 들어올 뿐이었다. 고깃덩이로 변한 그 시체는 분명 자신의 부친이 틀림 없었다. 입고 있는 의복이나 얼굴의 형체 등이 분명 그의 부친인 단리천무였던 것이다.
 ‘아··· 아버님, 누가 이런 짓을······.’
 단리위진의 눈꼬리는 일시에 찢어졌다.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아찔한 현기증이 일며 그는 비틀거렸다. 그러나 결코 쓰러지지는 않았다. 난간을 잡고 후들후들 떨리는 두 다리에 힘을 주며 간신히 버티고 섰다. 한 차례 서늘한 바람이 그를 스치고 지나가자 차츰 현기증이 가시며 정신이 들기 시작했다.
 정신을 차린 단리위진은 그제서야 아버지의 처참한 시신을 똑똑히 볼 수가 있었다.
 부릅 뜨고 부친의 시신을 바라보는 단리위진의 두 눈에 차츰 무시무시한 살광이 이글거리기 시작했다. 이내 얼굴마저 일그러지기 시작했으며 전신 역시 불타는 살염으로 뒤덮혀 버리기 시작했다. 지금 그의 모습은 백삼을 잘 차려입은 멋들어진 미공자의 모습이 아니라 흡사 원한에 불타는 원귀(寃鬼)의 무서운 모습 같았다다. 연신 치를 떨며 이를 가는 그에게선 어느새 인간다운 느낌이 전혀 묻어나지 않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다.
 마침내 단리위진의 찢어진 채 부릅 뜨인 두 눈에서 다시금 붉은 핏물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아··· 아버님. 흐흐흑. 소자 위진입니다. 누가, 누가 이렇게 만들었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아버님!”
 마침내 막혔던 울분이 터지며 가슴을 찢는 절규가 쏟아져 나왔다. 피를 토할 듯한 몸부림으로 부친의 처참한 시신을 부둥켜 안고 얼마나 오열을 토했는지 모른다.
 이윽고 그는 피눈물을 쏟으며 번쩍 고개를 쳐들었다.
 “죽이리라! 내 기필코 이 철천지 원한을 피로 씻고 말리라. 내 아버님을 죽인 원수놈! 하늘이 두쪽이 나도 기필코 찾아내어 똑같이 죽이고 말겠다.”
 그것은 서리서리 한이 맺힌 복수의 다짐이었다. 복수를 맹세하는 순간 그의 두 눈에 두 구의 시체가 들어왔다. 어머니와 여동생의 시체.
 “커어억―”
 갑자기 단리위진의 두 눈이 뒤집어지는 순간 한 줄기 열화가 심장을 향해 치달렸다. 열화는 세차게 심장을 강타했다.
 “으헉!”
 심장이 찢어지는 듯하는데도 단리위진은 마침내 한줄기 피화살을 내뿜으며 그 자리에 혼절하고 말았다. 너무도 갑작스런 충격에 기혈이 일시에 역류한 탓이었다.
 이렇게 무서운 피바람(血風)은 잉태되었다.
 내전의 별당은 장원의 주인인 단리천무가 거처하는 곳이었다. 지금 그 서재는 그야말로 난장판으로 변해 있었다.
 흉수(兇手)가 샅샅이 뒤졌는지 책장은 무너지고 부서진 채 널브러져 있었다. 그리고 수천 권의 고서(古書)들은 찢기우고 짓밟힌 채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사흘만에 정신을 차린 단리위진은 마음을 진정시키고 흔적을 찾기 위해 고심을 하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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