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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쓸어버린다 1권 (1)

2018.06.29 조회 4,975 추천 28


 다 쓸어버린다 1권 - 상
 
 
 목차
 
 프롤로그
 Chapter 1 생존의 자격
 Chapter 2 지구 최초의 가디언 학살자
 Chapter 3 리셋에 저항하다
 Chapter 4 블러디 어새신
 
 
 
 
 
 
 
 프롤로그
 
 
 
 
 “후! 드디어 지구인가?”
 
 대한민국 서울 광진구 자양동에 위치한 작은 건물의 옥상.
 상훈은 사방을 훑어보며 감개무량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제 좀 푹 쉴 수 있겠군. 더 이상 그 징그러운 녀석들과 싸우지 않아도 되고 말이야.”
 
 그는 이세계에서 ‘라트로’라 불리는 차원계의 사악한 악당들을 해치우느라 과도하게 힘을 쓴 상태에서 무리하게 지구로 귀환하느라 또다시 상당한 힘을 소모하고 말았다.
 
 그러나 여기는 온갖 차원계의 괴물들이 날뛰는 이세계가 아니라 지구다. 초월자로서의 힘이 대거 소진되었지만 아주 안전한 장소인 것이다.
 
 “힘을 모두 회복할 때까지 여기서 푹 쉬자.”
 
 초월의 힘은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회복된다.
 그 사이 그는 지구에서 평범한 인간으로서의 삶을 즐길 생각이었다.
 
 “후우!”
 
 상훈은 크게 심호흡을 했다.
 
 “이놈의 미세먼지. 역시나 서울의 공기는 정말 별로야. 그래도 대체 얼마만에 느껴보는 평화로움이냐.”
 
 물론 지구의 인간들에게 있어서는 지구가 결코 평화롭고 안락하다고만 말할 수 없겠지만, 온갖 사악한 악마와 괴물들이 날뛰는 이세계에 비하면 그야말로 낙원이라 할 수 있으리라.
 
 “정말 돌아오고 싶었다. 지구로!”
 
 그러나 그를 소환해 각성하게 만들어준 이세계의 위기를 모른척 할 수 없었다. 따라서 그는 그곳 세계를 공격해온 라트로들을 모두 쓸어버린 후에야 비로소 지구로의 귀환을 결심했던 것이다.
 
 “이 아래로 가면 부모님이 계시겠지.”
 
 부모님을 떠올리자 상훈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얼마나 보고 싶은 분들이었던가?
 그 뿐이 아니라 상훈에게는 형도 있고 여동생도 있었다.
 아득한 세월 동안 그리워했던 가족들.
 그들을 만날 생각에 상훈은 가슴이 세차게 두근거렸다.
 
 “자연스럽게 행동해야해.”
 
 상훈은 2018년 4월 1일 새벽 1시에 이곳 옥상에서 바람을 쐬다가 홀연히 이세계로 소환되어 각성을 했다.
 당시 나이 22세.
 그리고 아득한 세월을 살며 초월자가 되었지만, 다시 그 시점으로 귀환했다.
 즉, 지금은 2018년 4월 1일 새벽 1시.
 상훈이 이세계로 소환되었던 딱 그 시점일 것이다. 당연히 가족들은 상훈이 아득한 세월을 다른 차원에서 살다온 걸 전혀 모를 수밖에 없었다.
 
 “진정해. 모두들 자고 있을 텐데 갑자기 잠을 깨워 끌어안고 울거나 하면 날 미친놈 취급할 거야.”
 
 그래도 상훈은 설레는 기분을 참을 수 없었다.
 그의 집은 옥상 바로 아래에 위치한 401호.
 계단을 따라 내려가자 현관문이 열려 있었다.
 
 ‘뭐야? 왜 문이 열려있지?’
 
 상훈은 고개를 갸웃했다. 새벽 1시에 현관문이 활짝 열려 있다는 건 이상한 일이기 때문이다.
 
 ‘혹시 내가 열어놓은 건가?’
 
 상훈은 이계로 소환되기 직전 옥상으로 바람을 쐬러 갔었다. 이곳 지구의 시간대에서는 바로 10분 정도 전의 일이지만, 상훈으로서는 그 사이 아득한 시간을 보내고 온 터라 그때의 일이 잘 기억나지 않았다.
 
 ‘하긴. 그것 말고는 문이 열려 있을 이유가 없겠지.’
 
 상훈은 현관으로 성큼 들어갔다. 그런데.
 
 “이, 이런!”
 
 그로서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장면이 펼쳐져 있었다.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져 있는 시신들.
 그들은 다름아닌 상훈의 가족들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형과 여동생까지!
 모두 다 죽어 있었다.
 
 “뭐야?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대체 누가?”
 
 그 순간 상훈의 앞에 그 뭔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크르르!”
 
 키는 대충 2m.
 칙칙한 남색 피부에 시뻘건 두 눈.
 입가로 뱀류 특유의 기다란 혓바닥을 날름거렸다.
 
 ‘리자드맨?’
 
 틀림없었다. 도마뱀 머리의 아인종 몬스터인 리자드맨은 아주 지능적이면서도 교활하고 그러면서도 힘이 무척 세며 잔혹했다.
 
 ‘대체 저게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여긴 대한민국의 서울이다. 이 리자드맨 녀석이 나타날만한 공간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런 게 문제가 아니었다.
 저 놈에게 가족들이 죽었다.
 
 “너 따위가 감히!”
 
 상훈의 부릅뜬 두 눈이 붉게 충혈되었다.
 그의 전신에서 일어난 기운에 벽에 금이 가고 건물이 흔들렸다.
 
 “끄, 끄긱!”
 
 순간 리자드맨이 상훈의 기세에 놀라 뒷걸음질 쳤다. 그러나 도망칠 공간이 없었다. 상훈이 현관문 쪽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크르르르!”
 
 리자드맨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상훈의 목을 노려 시퍼런 날이 번쩍이는 단창을 찔러왔다.
 
 슉!
 
 상훈은 피하지도 않았다. 날아오는 창날을 그대로 움켜쥔 후 창을 빼앗았다. 그리고 그 창으로 리자드맨의 머리를 후려쳤다.
 
 콰직!
 
 창대가 리자드맨의 머리를 가격하자 뇌수가 터져버렸다. 리자드맨은 그대로 즉사했다.
 창날을 쥐었는데도 상훈의 손은 멀쩡했다.
 아무리 힘이 소진된 상태지만 초월자인 그에게 이런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상훈은 창을 집어던진 채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대체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진 거야? 왜 이곳에 리자드맨이!”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뭔가 크게 잘 못 되었다.
 이계로 소환되었던 당시의 바로 그 시점으로 돌아온 것인데, 그때와 다른 현실이 펼쳐져 있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이다.
 더구나 리자드맨이라니!?
 이세계라면 모를까 지구에 리자드맨이 웬말인가?
 
 화아악!
 
 그때 리자드맨의 사체가 붉은 빛에 휩싸이더니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사방으로 튀었던 핏자국까지 완벽하게.
 그뿐이 아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들의 시신들도 붉은 빛에 휩싸여 없어져버렸다.
 
 [리자드맨을 처치한 당신에게 10루나가 주어집니다.]
 [집안에 침입한 괴수를 처치한 당신은 집의 주인될 자격이 있습니다.]
 [광진구 자양동 XXX번지 그린빌라 401호는 이제부터 당신의 소유입니다.]
 
 “이건 또 무슨?”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지구인들은 들어라. 우리의 이름은 켈라크스! 우리는 그대들이 상상도 할 수 없는 아득히 먼 우주에서 왔다.
 
 또다시 어디선가 들려오는 거대한 음성!
 방금 전에는 그에게만 들리는 음성이었다면, 지금 이건 방대한 영역에 전해지는 듯 우레처럼 울려퍼졌다.
 
 --이제 너희 인간들은 켈라크스 휘하 지구 식민지의 노예일 뿐이다. 지구의 모든 국가는 사라졌고, 군대는 무력화되었으며, 너희의 모든 소유권과 재산도 사라졌다.
 
 --지구의 시스템은 우리의 방식대로 바뀌었다. 이 새로운 질서에 적응하는 자는 살고 적응 못하는 자는 죽는다!
 
 처음 듣는 언어지만 특별한 통역의 능력이 음성 자체에 깃들어 있었다.
 
 “설마 라트로?”
 
 라트로는 차원계의 악당들이다.
 우주의 온갖 성계를 누비며 수많은 행성들을 식민지로 삼는 녀석들도 있고, 차원 포탈로 온갖 이세계까지 다니며 무자비한 약탈을 일삼는 놈들도 있다.
 
 “이놈들이 설마 지구에까지 쳐들어 온 거냐?”
 
 상훈이 본신의 힘을 모두 회복한 상태였다면 지금 즉시 저 라트로 놈들을 박살내버렸을 것이다.
 이계에서 그의 손에 사라진 라트로들이 한둘이 아니었으니까.
 
 ‘하필이면 힘이 대거 소진된 상태에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그의 눈빛이 이내 차갑게 가라앉았다.
 
 ‘대체 어디에서 온 놈들이지?’
 
 지구와 비할 수 없는 초고도 문명에서 만들어진 초월적 시스템이 지구의 모든 것을 순식간에 장악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지구를 괴상한 시스템으로 장악한 걸 보니 보통 녀석들이 아니었다.
 
 ‘누구라도 상관없다. 모조리 쓸어버린다!’
 
 상훈의 두 눈이 섬뜩하게 빛났다.
 그들은 곧 알게 될 것이다.
 그들이 지금 누구를 건드렸는지를.
 
 
 
 
 
 
 
 
 Chapter 1 생존의 자격
 
 
 
 
 
 401호는 텅 비어 있었다.
 가족들만 사라진 것이 아니라 집안에 있던 물건들도 보이지 않았다.
 TV나 소파, 냉장고와 같은 것들이 모두 사라진 것이다.
 
 다만 이 와중에도 전기는 들어오는지 전등은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또한 거실의 벽에 큼직한 전자시계가 오늘의 날짜와 시간을 알려주었다.
 
 [2018년 4월 1일 AM 02 : 12]
 
 그것을 본 상훈은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이 새벽 2시라고?”
 
 상훈은 분명 자신이 이계로 소환되었던 그 시점의 지구로 귀환했다.
 2018년 4월 1일 새벽 1시로 시간의 좌표를 맞추고, 공간은 그가 사라졌던 바로 그 지점인 옥상으로 맞추었다.
 이를 위해 남아있던 차원력을 다 쏟아부었던만큼 그에 대해 신중하게 확인을 했는데.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어.’
 
 즉, 상훈은 본래보다 1시간 후의 미래로 귀환을 하고 말았다.
 
 그가 애초에 목표로 정했던 시점으로 귀환했으면, 켈라크스의 침략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 해도, 지금처럼 리자드맨에게 가족들이 처참히 죽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건 그 시점의 차원이 뒤틀려 있을 때만 벌어지는 일인데?’
 
 뭔가가 의도적으로 차원을 뒤틀었고 그로인해 상훈은 본래 지정했던 시공간이 아닌 그 1시간 후의 미래로 왔다.
 
 ‘그럼 그 방해요소만 제거하면?’
 
 상훈의 두 눈이 빛났다.
 
 ‘모두를 살릴 수 있어!’
 
 본래 시점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가족들을 되살릴 수 있다.
 아니, 애초부터 리자드맨에게 죽지 않을 것이니 되살릴 필요도 없는 것이다.
 차원을 비틀어 시간을 왜곡시킨 그 원흉을 제거하면 상훈은 가족들이 모두 살아있던 시점으로 귀환할 수 있게 되고, 그것은 곧 가족들에게 닥칠 끔찍한 재앙을 막을 수 있게 된다는 뜻.
 
 ‘분명 원흉은 켈라크스라는 그 라트로 놈들이겠지. 그놈들이 시간까지 왜곡시킬 만큼 대단한 능력을 지닌 녀석들인 건가?’
 
 그렇다면 지금껏 상훈이 싸워봤던 라트로들과는 완전히 궤를 달리하는 존재들이었다.
 
 ‘일단은 그놈들이 어떤 목적을 갖고 있는지 알아내야겠군.’
 
 그놈들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도.
 상훈의 능력은 지금도 서서히 회복되고 있지만 본래의 모든 능력까지 도달하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따라서 지금은 섣불리 켈라크스와 전쟁을 벌이는 것보다, 일단은 그놈들이 만들어 놓은 이 시스템이 어떤 건지를 자세히 파악해보기로 했다.
 그런데 그때.
 
 [튜토리얼이 끝났습니다. 리자드맨의 공격으로 살아남은 당신은 메인 시나리오를 진행할 자격이 있습니다. 이제부터가 진정한 시작입니다.]
 
 “튜토리얼? 이제 메인 시나리오라고?”
 
 상훈은 어이가 없었다.
 
 “이 외계인 라트로놈들이 게임에 미쳐있나 보군.”
 
 튜토리얼이 어쩌고, 메인 시나리오가 어쩌고 하니 상훈은 더욱 혈압이 올랐다.
 사람을 죽이는 게 저놈들에게는 그저 게임의 일종이라니!
 상훈의 가족들은 저 외계인 놈들이 즐기는 게임의 튜토리얼 단계에서 모두 죽은 것이다.
 
 [시나리오 1 생존의 자격]
 
 [켈라크스 시스템에서는 오직 강한 자만 생존의 자격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구는 아직도 수많은 약자들로 오염되어 있습니다. 지구의 인구가 0.1% 미만으로 남을 때까지 우리는 집행자들을 보내 약자들을 깨끗이 청소할 것입니다.]
 
 [그때까지 살아남아 당신이 약자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세요.]
 [지구의 인구가 0.1%아래로 줄어들면 시나리오 1이 완료되고, 시나리오 2가 진행됩니다.]
 
 저 말은 곧 지구의 인구 중 99.9%를 죽인다는 말이었다.
 천 명 중 하나만 살아남는다!
 지구의 인구가 70억이라면 그 중 700만명 정도만 살아남고, 나머지 69억 9300만 명이 죽어야 한다는 것.
 하지만 그렇게 살아남은 0.1%의 사람들이 무사할지도 알 수 없었다. 그 후에 시나리오 2가 또 진행된다고 했으니까.
 
 “역시나 그놈들의 본색이 나오는군.”
 
 멸종! 대량 살상!
 이것이야 말로 라트로들이 가진 공통적인 본성이었다. 그래서 그들이 반드시 없어져야할 사악한 악마들인 것이다.
 
 “기억해두겠다. 시나리오 1 생존의 자격이라고?”
 
 상훈은 싸늘히 웃었다.
 
 “너희들에게도 똑같이 돌려주마.”
 
 상훈이 힘을 되찾는 날 새로운 시나리오 1이 진행될 것이다.
 물론 그 잔혹한 시나리오 속에서 몸부림칠 자들은 인간이 아닌 켈라크스들이 되겠지만.
 
 [그린빌라 401호에 집행자가 방문합니다.]
 
 그때 다급한 경고의 음성과 함께 주변 공간이 바뀌었다.
 
 스스스.
 
 상훈은 전혀 다른 공간으로 이동되어 있었다.
 
 ‘아공간의 결계?’
 
 [이제 집행자가 당신이 생존할 자격이 있는지 시험할 것입니다.]
 [그에게 당신이 약자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야 합니다.]
 
 [전투에 앞서 당신은 무기를 구입할 수 있습니다.]
 [목록은 현재 당신의 보유 루나로 구입 가능한 한도까지만 보입니다.]
 
 [구매 가능 무기]
 -각목 10루나
 
 [각목을 구입하시겠습니까?]
 
 상훈은 이 상황에 황당했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뭐, 좋아.”
 
 그러자 상훈의 앞에 1미터 길이의 각목 하나가 나타났다. 상훈이 그것을 손으로 쥐자 곧바로 전방에 2미터 거구의 리자드맨 한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크르르!”
 
 이번엔 단창이 아닌 검과 방패로 무장한 녀석이었다. 상훈은 어이가 없었다.
 
 ‘저놈을 이 따위 각목 하나로 이길만한 자들이 지구상에 몇 명이나 있을까?’
 
 미국처럼 총기 소지의 자유가 있는 나라에서라면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튜토리얼에서 살아남았을 것이다. 아무리 괴력의 리자드맨들이라 해도 총 앞에서는 무력할 테니까.
 그러나 그것은 튜토리얼이었을 때의 얘기다.
 시나리오 1이 시작되며 나타난 이곳 결계에는 맨손으로만 들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무기로는 오직 이 루나를 통해 구입할 수 있는 각목만 쥘 수 있는 것이다.
 
 “크키킥!”
 
 리자드맨이 키득거리며 검으로 찌르려했지만 상훈의 각목이 더욱 빨랐다.
 
 퍼어억!
 
 “꾸어어억!”
 
 머리가 터진 리자드맨은 맥없이 널브러졌다.
 
 [당신은 집행자와의 전투에서 승리했습니다.]
 [당신은 집행자의 시험을 통과했습니다.]
 [20루나를 얻었습니다.]
 [결계가 사라집니다.]
 
 결계가 사라지고 401호로 돌아왔지만 손에 쥐고 있던 각목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시나리오 1이 종료되었습니다.]
 [당신은 생존의 자격을 얻었습니다.]
 
 이 말은 곧 지구상의 인구 중 99.9%가 죽었다는 뜻이었다.
 방금 전 결계속의 전투에서 패배한 사람은 모두 죽었을 테니까.
 
 물론 이미 튜토리얼 단계에서 90%이상이 죽었을 것이다.
 그리고 운좋게 살아남은 이들 중 대부분이 방금 전 집행자의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고 죽었다는 뜻이다.
 그야말로 꿈에라도 생각하고 싶지 않은 끔찍한 대재앙!
 
 [2018년 4월 1일 AM 02 : 20]
 
 [시나리오 2는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24시간 후에 시작됩니다.]
 
 [그때까지 당신은 최대한 많은 적을 쓰러뜨리고 강해져야 합니다.]
 [적을 많이 쓰러뜨리고 루나를 많이 모을수록 시나리오 2에서 생존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입니다.]
 
 상훈은 시나리오 따위는 관심없었다.
 일단 밖으로 나가보기로 했다.
 현관문을 나서는 순간 맞은편에 있던 402호의 문이 붉게 번쩍였다.
 
 [402호는 리자드맨에 의해 점령된 상태입니다.]
 [당신은 402호를 침공하겠습니까?]
 
 402호에 본래 살던 사람들은 모두 죽었다. 그들을 죽인 리자드맨이 그곳을 점령한채 도사리고 있을 뿐.
 
 “그럼 공격해야지.”
 
 리자드맨들을 죽여주는 것만으로도 상훈은 402호에서 무참히 죽은 사람들에 대한 복수를 해주는 셈이다. 물론 그런 이유가 아니라 해도 이토록 지척에 있는 몬스터를 가만 놔둘 그가 아니었다.
 
 [402호를 침공합니다.]
 
 순간 402호의 문이 활짝 열리더니 그 앞에서 리자드맨 하나가 튀어나오며 단창을 휙 찔렀다. 그러나 상훈의 주먹이 더 빨랐다.
 
 퍼억! 콰직!
 
 리자드맨의 머리가 뭉개진 채 뒤로 홱 넘어가더니 그대로 주저앉았다.
 
 [당신은 402호의 주인을 처치했습니다.]
 [10루나를 얻었습니다.]
 [이제 그린빌라 402호는 당신의 소유입니다.]
 
 말 그대로 약육강식이었다. 집 주인을 죽이면 그 집의 소유권을 얻게 된다니 말이다.
 
 [적을 쓰러뜨린 당신은 강해질 자격이 있습니다.]
 
 그와 함께 알 수 없는 빛이 일어나 상훈의 몸을 감쌌다.
 
 ‘이 빛은?’
 
 그 순간 상훈은 매우 불쾌한 느낌을 받았다. 그 알 수 없는 빛이 강제로 그의 몸을 모조리 살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건 곤란하지.’
 
 이대로 완전히 스캔되면 그는 켈라크스란 놈들에게 그대로 몸을 바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스윽.
 
 상훈이 오른손을 살짝 휘젓는 순간 그의 몸을 휘감았던 빛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당신은 켈라크스의 빛에 저항했습니다.]
 
 이름 전상훈
 나이 22세
 성별 남자
 레벨 [알 수 없음]
 직업 [알 수 없음]
 칭호 없음
 스탯 [알 수 없음]
 루나 [30]
 장비 [각목]
 소유 [그린빌라 401호, 402호]
 
 상훈의 이름과 성별, 나이는 켈라크스 시스템에서 이미 다 파악하고 있을 것이다. 주민등록에 다 있는 데이터이니까.
 그러나 상훈의 능력과 관련된 것은 켈라크스 시스템이 아무 것도 파악하지 못했다. 상훈이 몸안으로 스캔의 빛이 들어오지 못하게 흩어버렸기 때문이다.
 
 [켈라크스의 빛을 거부한 당신은 적을 해치워도 강해질 수 없습니다.]
 [시나리오 2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강해져야 합니다.]
 [강해지고 싶다면 켈라크스의 빛을 받아들이십시오.]
 
 상훈은 피식 웃었다.
 
 ‘내가 더 이상 강해질 수 없다고?’
 
 그러나 몬스터를 해치우건 해치우지 않건 상훈은 시간이 지날수록 저절로 강해지고 있다.
 아니, 강해진다기 보다는 힘이 회복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레벨이니 경험치니 하는 게임적인 시스템 따위는 그에게 아무런 의미조차 없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모두 이 시스템에 장악되었겠지.’
 
 그렇게 된 이상 그들의 레벨이 아무리 상승한다 해도 결국은 켈라크스 시스템의 노예일 수밖에 없었다. 켈라크스 시스템에 의해 부여받은 능력으로 그것에 대항하기란 불가능할 테니까.
 
 ‘대체 그놈들의 목적이 뭐지?’
 
 지구인의 99.9%를 죽여놓고, 살아남은 0.1% 미만의 인간들에게는 레벨업을 통해 강해지게 만든다?
 차원력까지 이용해 만든 거대한 시스템으로 왜 그런 괴상한 게임 같은 시나리오를 만들어 놓은 것인가?
 
 그 사이 상훈은 3층으로 내려갔다. 301호와 302호. 양쪽 다 붉은 빛에 휩싸여 있었다.
 
 [그린빌라 301호와 302호는 리자드맨에 의해 점령된 상태입니다.]
 [당신은 301호와 302호를 침공하겠습니까?]
 
 어쨌든 각 호마다 리자드맨들이 웅크리고 있는 걸 알았으니 그냥 지나갈 수는 없는 일.
 상훈은 301호와 302호의 리자드맨들을 가볍게 처치했다.
 
 [10루나를 얻었습니다.]
 [10루나를 얻었습니다.]
 [이제 그린빌라 301호와 302호는 당신의 소유입니다.]
 
 이로써 3층도 상훈의 소유가 되었다. 상훈은 계속해서 2층과 1층의 리자드맨들도 모조리 죽였다.
 
 [당신은 그린 빌라 전체를 점령했습니다.]
 [이로써 서울특별시 광진구 자양동 XXX번지 그린 빌라는 당신의 소유입니다.]
 
 어쩌다 보니 상훈은 이제 다세대 빌라 건물을 가진 건물주가 되었다.
 
 “이건 무슨 부동산 게임도 아니고!”
 
 지구 상의 국가를 없앴다고 말한 켈라크스 시스템이 행정구역은 그대로 쓰고 있는 건가.
 
 ‘그보다 지금쯤 그 켈라크스라는 녀석들이 나에 대해서 뭔가 이상함을 느꼈을 텐데.’
 
 이는 상훈이 켈라크스의 시스템에 저항했기 때문이다.
 시스템 안으로 들어오긴 했지만 시스템에 구속되지 않는 불가사의한 존재!
 따라서 켈라크스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상훈을 제거하려 할 것이다. 이대로 놔두면 시스템이 엉망이 되어 버릴 테니까.
 
 ‘왜 날 직접 공격하지 않고 있는 거지? 그놈들 중에도 꽤 강한 녀석들이 있을 텐데 말이야.’
 
 차원력을 이용한 시스템이 가진 한계!
 일단 시스템이 시작되면 그것을 만든 설계자라 해도 섣불리 시스템 내부로 간섭할 수 없다.
 
 ‘차원력의 폭주? 혹시 그것 때문인가?’
 
 외부에서 섣불리 개입하는 순간 시나리오 대로 흐르고 있던 차원력이 폭주해 시스템이 그대로 붕괴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게만 되주면 좋겠군.’
 
 켈라크스 시스템이 붕괴되는 순간 지구의 시간은 정상으로 복귀한다.
 동시에 상훈은 애초에 목표했던 그 시간대로 돌아갈 수 있게 될 것이다. 가족들이 모두 생존해 있던 바로 시간대 말이다.
 
 그래서일까?
 켈라크스들은 섣불리 상훈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런 대책도 없이 이대로 내버려두지는 않을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상훈을 제거하기 위해 뭔가 수작을 부릴 것임은 분명했다.
 
 ‘사방이 무슨 죽음의 도시같군.’
 
 가로등과 각종 조명들은 빛나고 있었지만 사람들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지구 인구의 99.9% 이상이 죽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과연 이곳 광진구 자양동에는 몇 명이나 생존해있을 것인가?
 
 ‘어, 저기 웬 소녀가?’
 
 그때 그린빌라 옆의 건물에서 10대 후반의 소녀가 나왔다.
 단발머리 아래 날카롭게 번쩍이는 두 눈. 늘씬한 체구. 보이시한 스타일이지만 꽤나 아름다운 외모였다.
 검은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그녀의 한 손에 들려 있는 각목.
 그것은 상훈이 허리띠 안쪽에 꽂아놓은 각목과 동일했다. 결계에서 구입한 그 각목일 것이다.
 
 ‘고등학생 같은데?’
 
 그런데 소녀의 기세가 평범하지 않았다. 몸에서 마나의 기운도 제법 느껴질 정도였다. 그 소녀는 빠르게 달려와 상훈의 그린 빌라 앞에 멈춰서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뭐야? 여기를 누가 점령했지?”
 
 소녀는 왠지 당황한 표정으로 그린 빌라를 살펴보다가 힐끗 고개를 돌려 상훈을 쳐다봤다.
 
 “혹시 이 건물 아저씨가 점령했나요?”
 “응. 어쩌다 보니.”
 “그럼 설마 아저씨도 각성자?”
 
 순간 상훈의 두 눈이 빛났다. 저 말은 소녀가 각성자라는 뜻이었다.
 
 ‘어쩐지.’
 
 소녀는 방금 전 레벨을 올려서 강해졌다기 보다 이미 그 전에 특별한 능력을 각성했던 것이다.
 어느 세계나 라트로와 같은 강력한 외부의 세력이 공격해오면 간혹 그에 대항하는 각성자들이 나타나곤 하니까.
 하긴 그렇지 않았다면 저 소녀가 무슨 수로 리자드맨을 처치하고 살아남았겠는가.
 
 “잠깐! 그러고 보니 이건 말도 안돼! 어째서 여기에 서있는 거죠? 본래 아저씨는 이 자리에 없었잖아요.”
 “내가 본래 없었다고?”
 “대체 어디서 왔어요?”
 
 소녀는 마치 상훈이 이곳에 절대 서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처럼 말했다. 마치 유령을 보기라도 하듯 경악해하는 표정까지!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반응인가?
 
 ‘혹시.’
 
 보통 사람이라면 소녀의 이런 태도에 어이없어하겠지만 상훈은 달랐다. 뭔가 짚이는 바가 있었으니까.
 특정 시간대, 특정 장소에 특정인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고 확신할 수 있다는 건?
 그건 이미 그 시간대 그 장소에 있어봤다는 얘기 아닐까?
 
 “설마 너 회귀자냐?”
 
 소녀의 두 눈이 다시 커졌다. 그녀는 잔뜩 경계하는 표정으로 상훈을 노려보더니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Chapter 2 지구 최초의 가디언 학살자
 
 
 
 
 
 “각성에 회귀까지! 너 아주 대단하구나!”
 
 단순한 각성자였다면 그리 대단할 건 없다. 아주 특별하고 대단한 능력을 각성했다 해도 라트로들 앞에서는 가소로운 수준일 테니까.
 그러나 회귀까지 한 각성자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후 펼쳐질 미래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엄밀히 말하면 그 미래는 본래 지구가 아닌 켈라크스 시스템에서 펼쳐질 시나리오들이겠지만.
 
 “정말 반가워. 여기서 설마 회귀자를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빈말이 아니다. 상훈은 정말로 이 소녀가 반가웠다. 소녀로부터 앞으로 어떤 시나리오들이 펼쳐질지 듣게 된다면 상훈이 켈라크스들을 상대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테니까.
 
 “그보다 대체 당신은 누구죠?”
 
 회귀자의 입장에서 가장 두려운 상황은 자신이 알고 있던 기억과 다른 현실이 펼쳐질 때일 것이다.
 물론 누군가 회귀를 한 것 자체가 결국은 각종 사건에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되어 나중에는 본래와 다른 현실이 펼쳐질 수밖에 없지만, 그렇다 해도 회귀 초반에는 거의 동일한 상황이 펼쳐져야 한다.
 소녀가 이토록 경악해하는 걸 보면 지금이 그녀가 막 회귀한 시점과 가까울 가능성이 높고, 그녀의 기억에 상훈은 지금의 이 장소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름은 전상훈. 나이는 스물 두살. 보다시피 성별은 남자야.”
 “그런 건 궁금하지 않고요.”
 “어쨌든 내가 이름을 밝혔으니 너도 최소한의 소개는 하는 게 어때?”
 
 그러자 소녀는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유서린. 스무 살. 여자. 됐죠?”
 “고등학생인 줄 알았는데 성인이었네.”
 “알았으면 이제 반말 좀 그만하는 게 어때요? 우리가 언제봤다고 계속 반말이죠?”
 
 상훈은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보니 습관이 참 무섭구나.’
 
 상훈은 이계에서 온갖 기괴한 존재들과 어울리다 보니 반말이 기본이 되고 말았다. 초월자가 된 이후에는 수만 년도 넘게 산 초용족(超龍族)들과도 나이를 초월해 친구로 지냈으니 말이다.
 하지만 여기는 이계가 아니다. 비록 켈라크스들에 의해 이상하게 변했지만.
 
 “이제와서 존댓말을 하기도 그렇잖아. 그리고 우린 두 살 차이니 앞으로 오빠라고 불러. 아저씨가 뭐야? 아저씨가.”
 “됐거든요. 난 모르는 사람에게 오빠라고 안해요.”
 “그럼 편한대로 불러.”
 “대체 당신의 정체는 뭐죠? 어떻게 이곳에 나타났어요?”
 “딱히 정체랄 것은 없어. 나도 너랑 똑같은 지구의 인간이니까. 무엇보다 확실한건 내가 너의 적이 아니라는 거지.”
 “그걸 어떻게 믿어요?”
 “억지로 믿을 필요는 없어. 어차피 저절로 믿게 될 거야.”
 
 순간 서린의 눈빛이 날카롭게 상훈을 훑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수상해요. 설마 그들의 하수인? 하긴 그렇지 않다면 갑자기 나타났을리 없겠죠.”
 “그들이라면? 혹시 켈라크스를 말하는 거야?”
 “그럼 아닌가요?”
 “당연히 아니지. 난 그놈들을 곧 쓸어버릴 생각이거든.”
 “지금 뭐라고 했죠? 켈라크스를 쓸어버린다고요?”
 “응. 그래서 회귀자인 네가 알고 있는 것들을 말해주면 내가 놈들을 상대하는데 큰 도움이 될 거야. 그것만으로도 넌 지구를 구한 영웅이 되는 거지.”
 
 그러자 서린은 어이없어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이내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흥! 꿈 깨시지, 켈라크스의 하수인! 내가 속을 줄 알고?”
 
 서린은 곧바로 고개를 돌려 그린 빌라 옆 다세대 주택 건물을 향해 뛰어들어가버렸다.
 
 ‘날 경계하고 있구나.’
 
 하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회귀 전에는 없던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 말을 거는데 뭔가 의혹을 가지지 않는다면 그거야말로 오히려 문제가 있는 것이다.
 
 ‘급할 건 없으니 시간을 주는 게 좋겠어.’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상훈이 적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테니 말이다.
 
 ‘그보다 새로운 건물 안에 뛰어든 걸 보니 리자드맨들을 처치해서 레벨을 올릴 생각인가?’
 
 하긴 상훈과 달리 서린은 게임처럼 몬스터를 처치해야 더 강해질 수 있다. 그것이 켈라크스 시스템의 방식이니까. 그녀는 내일 시작될 시나리오 2에서 살아남기 위해 기를 쓰며 강해지고 있을 것이다.
 
 휙!
 
 아니나 다를까, 잠시 후 건물에서 나온 서린의 눈빛은 좀전보다 강렬해져 있었다. 그 사이 다세대 주택 각 호에 도사리고 있던 리자드맨들을 해치우고 레벨이 오른 것이다.
 
 “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말해.”
 
 상훈은 최대한 서린의 경계심을 풀어주기로 했다.
 
 “됐어요.”
 
 그러나 서린은 상훈의 말을 무시한 채 옆의 건물로 뛰어들어갔다.
 
 “아앗!”
 
 그러다 곧바로 소리를 지르며 후다닥 뛰쳐나왔다. 그리고는 건물 안에서 뭔가 못볼 것이라도 본 듯 낭패한 표정으로 숨을 몰아쉬었다.
 
 “무슨 일이야?”
 “깜빡했어요. 저긴 들어가면 안 되는 건물인데.”
 
 상훈이 보니 유명 편의점 체인 PS25가 있는 건물이었다. 1층 편의점의 벽은 투명한 유리로 되어 있었는데, 알 수 없는 빛으로 인해 시야가 차단되어 내부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저 안에 뭐라도 있어?”
 “정말 몰라서 물어요?”
 “당연히 정말 몰라서 물어보는 거다. 그 안에 무서운 괴물이라도 있나 보지?”
 “궁금하면 들어가보든가요.”
 “맞아. 그럼 되겠군.”
 
 상훈은 주저없이 편의점 건물 안으로 향했다. 그러자 서린이 깜짝 놀라며 만류했다.
 
 “잠깐! 미쳤어요? 거기 들어가면 죽어요!”
 
 그러나 이미 상훈은 건물 안으로 들어간 후였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도 나오지 않았다.
 
 “이런······.”
 
 서린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정신없는 와중에 계속 말을 시키니 홧김에 그렇게 대꾸했는데 설마 진짜 들어갈 줄이야.
 
 ‘어쩌지? 지금쯤이면 가디언이 나왔을 텐데.’
 
 가디언은 인간이 상대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이미 상훈은 죽었을지도 몰랐다.
 
 ‘그래. 신경쓸 것 없잖아. 어차피 그는 켈라크스의 하수인일 거야. 갑자기 없던 사람이 나타난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분명 그들이 뭔가 수작을 부리는 거겠지.’
 
 서린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는 각목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또 죽지 않으려면 어서 레벨을 올려야 해.’
 
 그러던 그녀는 흠칫 놀랐다. 갑자기 일단의 몬스터가 그녀의 앞에 출몰한 것이다.
 
 “크워어어어어!”
 
 10여 마리의 리자드맨들을 이끌고 나타난 거대한 소머리 형상의 몬스터.
 
 ‘미······미노타우루스!’
 
 서린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말도 안 돼!’
 
 그녀의 기억에 의하면 미노타우루스는 최소한 시나리오 3이 넘어가야 등장하는 몬스터였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그녀는 다급히 뒷걸음질 쳤다. 지금 상태에서 리자드맨들은 어떻게든 상대할 수 있지만 초대형 몬스터인 미노타우루스와 싸워 이기는 건 불가능했다.
 
 ‘피해야 해!’
 
 그러나 리자드맨들에 의해 포위된 상태라 도주도 쉽지 않았다.
 
 “쿠워어어어어!”
 
 미노타우루스가 도끼를 휘두르며 달려왔다.
 
 * * *
 
 한편 그때 상훈은 편의점 건물 안에 들어와 있었다. 편의점 내부와 외부는 결계로 차단되어 있어 일단 안으로 들어오면 밖에서 벌어지는 일을 알 수 없었다.
 
 ‘여기에 뭐가 있기에 그리 기겁을 하고 뛰어나온 거야?’
 
 유명 편의점 체인 중 하나인 PS25가 있던 건물.
 막상 들어와보니 편의점이 있던 점포 안은 텅 비어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데 뭣 때문에 놀란 것일까?
 
 [이곳은 켈라크스 소유의 건물이며 편의점을 개설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나리오 5가 진행된 이후에야 가능합니다. 속히 나가 주십시오.]
 
 이건 또 뭔가?
 
 ‘여기에 편의점을 열 수 있다고?’
 
 다만 조건이 있었다. 시나리오 5가 진행된 이후여야 가능하다는 것!
 
 [경고합니다!!!]
 [속히 나가지 않으면 가디언이 당신을 응징할 것입니다.]
 
 경고의 음성이 섬뜩하게 귀를 울렸다.
 
 “날 응징하겠다?”
 
 자세히 살펴보니 이 안에서 뭔가 위협적인 기세가 느껴지긴 했다.
 
 ‘결계 안에 또 하나의 결계가 있었군. 그 안에 가디언이라는 녀석이 있나 보네.’
 
 [마지막 경고입니다. 나가지 않으면 당신은 죽습니다.]
 
 “못 나가겠다면?”
 
 아무리 아직 본래의 힘을 회복하지 못했다지만, 한낱 시스템에 소속된 일개 가디언 따위에 물러날 상훈이 아니었다.
 
 스스스-
 
 그러자 주변에 붉은 빛의 결계가 둘러졌다. 좁은 건물의 내부가 드넓은 공터와 같은 공간으로 바뀌었다.
 
 [경고를 무시한 어리석은 이에게는 오직 징벌 뿐.]
 [이제 그대는 만용의 대가를 받게 되리라.]
 
 “쿠와아아아아아아!”
 
 거대한 포효와 함께 키는 대략 7미터, 전신이 근육질로 이루어진 거대한 외눈박이 괴수가 상훈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점포의 가디언이 나타났습니다.]
 
 ‘사이클로프스?’
 
 저 괴수 또한 이곳 지구에는 존재할 수 없는 이세계의 몬스터 중 하나였다. 리자드맨과는 비할 수 없이 강력한 괴력을 지닌 초대형 몬스터!
 
 “쿠오오오오오오!”
 
 그런데 지금 나타난 녀석은 보통의 사이클로프스가 아니었다. 키만 해도 그 두 배는 되었고, 놈의 전신을 휘돌고 있는 검붉은 오러의 폭풍이 심상치 않았다. 저 폭풍에 슬쩍 스치기만 해도 웬만한 인간은 갈기갈기 찢겨질 것이다.
 
 ‘설마 자이드클로프스?’
 
 외모는 사이클로프스와 비슷하지만 전투력으로 따지면 그보다 수십 배는 더 강한 끔찍한 괴수!
 실제로 자이드클로프스가 나타나면 지상 최강의 몬스터라는 블러디 오우거나 자이언트 미노타우루스들도 벌벌 떨며 도주할 정도다.
 마계의 최상급 마물 중 하나가 이런 곳에 배치되어 있을 줄이야.
 
 ‘켈라크스 놈들이 마계와도 관계가 있다는 건가?’
 
 쿵쿵쿵!
 
 그때 자이드클로프스가 핏빛의 외눈을 번쩍이며 달려오더니 대뜸 상훈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쒸이이이-!
 
 섬뜩한 파공음과 함께 지름 1미터는 됨직한 거대한 주먹이 날아들었다. 저 가공스러운 파괴력이 실린 공격에 맞으면 어지간한 건물이라도 단번에 날아가버릴 것이다.
 물론 그래봤자 상훈에게는 가소로울 뿐이었다. 그는 피하지 않고 오히려 주먹을 슥 뻗었다.
 
 콰앙!
 
 두 개의 주먹이 격돌하는 순간 자이드클로프스의 주먹이 뭉개졌다. 이어서 팔과 어깨까지 처참하게 터져나갔고, 급기야 심장까지 부서져버렸다.
 
 “꾸어어어억!”
 
 자이드클로프스는 벼락이라도 맞은 듯 외눈을 부릅뜨더니 이내 처참한 비명을 지르며 나동그라졌다.
 단 한 방에 자이드클로프스가 즉사했다!!!
 누군가 이 상황을 지켜봤다면 기절초풍하겠지만 상훈은 별일 아닌 듯 덤덤한 표정으로 주먹을 털었다.
 
 “이 녀석을 지구의 각성자들이 상대하기는 쉽지 않겠군.”
 
 아직 각성자가 몇 명이나 있는지는 모른다.
 상훈이 보았던 유일한 각성자인 유서린.
 그녀는 웬만한 리자드맨 서너 마리 정도는 어렵지 않게 이길만한 전투력의 소유자였다. 앞으로 계속 레벨을 올리면 머지않아 보통의 사이클로프스 한 마리 정도는 상대할 수 있을 만큼 강해질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레벨이 아무리 올라도 방금 전의 자이드클로프스와 싸우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런 끔찍한 마물을 고작 편의점을 지키는데 배치해두었다는 건가?’
 
 [당신은 점포의 가디언과의 전투에서 승리했습니다.]
 [1,000,000루나를 얻었습니다.]
 [이 점포는 이제 당신의 소유입니다.]
 
 그와 함께 검붉은 빛으로 뒤덮였던 주변 공간이 본래로 돌아왔다. 결계가 사라진 것이다.
 
 [당신은 지구 최초로 점포의 가디언을 쓰러뜨렸습니다.]
 [지구 최초의 가디언 학살자 칭호를 얻었습니다.]
 [특별보상으로 500,000루나를 얻었습니다.]
 
 원치않게 칭호를 얻었다. 게다가 루나도 엄청나게 들어왔다.
 자이드클로프스를 해치우자 100만에 칭호 보상으로 50만!
 합치니 무려 150만이나 되었다.
 
 [비록 시나리오 5 진행 전이지만, 이곳이 당신 소유가 되어 편의점 개설이 가능해졌습니다. 개설 비용 50,000루나를 들여 편의점을 열겠습니까?]
 
 편의점을 열 수 있단다. 상훈은 왠지 어이가 없었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이 또한 어쨌든 켈라크스 시스템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테니까.
 
 “좋아! 개설해봐.”
 
 일반적인 상식대로라면 이런식으로 편의점을 여는건 불가능하다. 편의점 체인과 계약을 통해 가맹을 한 후 각종 물품을 인도받아 매대에 진열하는 등 여러 절차가 필요하니 말이다.
 그런데 이제 그런 상식 따위는 잊어야 한다. 지구는 켈라크스의 시스템에 의해 전혀 다른 세상이 되어버렸으니까.
 
 [50,000루나가 편의점 개설 비용으로 지불되었습니다.]
 [당신의 잔여 루나는 1,450,090입니다.]
 
 [편의점 개설 준비를 시작합니다.]
 
 순간 편의점 내부가 알록달록한 빛에 휩싸였다.
 
 [편의점에서 기본으로 진열 가능한 상품은 다음의 두 종류이며, 추가로 상품을 진열하려면 특별한 방법으로 레시피를 얻어야 합니다.]
 
 [컵라면]
 [생수]
 
 [기본 비품으로 컵라면용 온수기, 테이블과 의자들이 자동 배치됩니다.]
 
 [편의점 개설 준비를 마쳤습니다.]
 [편의점의 이름을 정해주세요.]
 
 명색이 편의점인데 달랑 두 종류의 상품만 있다니! 또한 번거롭게 뭔 이름까지 정하라는 건가. 상훈은 대충 지어내 말했다.
 
 “상훈25.”
 
 [편의점의 이름은 상훈25입니다.]
 [당신은 지구 최초로 편의점을 개설했습니다.]
 [지구 최초의 편의점 개설자 칭호를 얻었습니다.]
 [특별 보상으로 100,000루나를 얻었습니다.]
 
 가디언 자이드클로프스 하나 처치하고 편의점을 연 것뿐인데.
 루나가 무려 1,550,090.
 게다가 지구 최초의 어쩌고 하는 칭호도 두 개나 얻었다.
 
 [상훈25에서 물품 판매시 판매가격의 50%가 당신의 계좌에 자동입금됩니다.]
 
 아직 영업이 시작된 건 아니었다. 편의점의 내부와 외부는 여전히 결계로 차단되어 있어, 바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매대가 생겨났네?”
 
 그 사이 편의점 안에 불쑥 나타난 하나의 매대. 그것은 마치 커다란 자동판매기처럼 보였다. 그 옆으로 테이블 2개와 의자 8개. 그리고 컵라면용 온수기까지. 이로써 제법 편의점의 구색은 갖춰졌다.
 
 [컵라면]
 -특수하게 제조된 라면으로 성인 1명에게 1일 동안 필요한 영양분이 들어 있음. 섭취시 1일 동안 마기에 대한 저항력이 대폭 증가함.
 -판매가격 20루나
 
 [생수]
 -특수한 성분이 들어있는 식용 생수로 성인 1명에게 1일 동안 필요한 수분이 들어 있음. 섭취시 1일 동안 마기에 대한 저항력이 대폭 증가함.
 -판매가격 20루나
 
 놀랍게도 컵라면과 생수는 그간 편의점에서 흔히 보던 것들과는 달랐다.
 
 ‘마기에 대한 저항력이 대폭 증가한다고?’
 
 마기(魔氣)는 마계에 가득한 사악한 기운이다. 지구의 인간이 이 마기에 노출되면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할뿐더러 그 자체로 데미지를 입어 결국은 죽고 말 것이다.
 그런데 이 편의점에서 파는 컵라면과 생수를 먹으면 비록 1일 동안이지만 마기에 대한 저항력이 생겨난다는 것!
 
 ‘이런 걸 파는 걸 보니 앞으로 지구에 마기를 쏟아붓기라도 할 모양인가?’
 
 아마도 시나리오 5 정도가 진행되면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았다. 어쩌다 보니 상훈은 시나리오 2가 시작되기도 전에 편의점을 개설했지만 말이다.
 
 [잠시 후 상훈25의 영업이 시작됩니다.]
 [상훈25의 내부는 안전지대이며 이 안에서는 그 어떤 전투도 수행할 수 없습니다.]
 
 “안전지대?”
 
 설마 편의점이 안전지대일 줄이야. 그래서 그토록 개설 조건이 까다로웠던 것이었다.
 
 [상훈25는 한 번에 최대 10명만 이용할 수 있습니다.]
 [상훈25는 누구나 이용할 수 있지만 주인인 당신이 불량이용자로 등록한 이는 진입이 불가능합니다.]
 
 그 사이 결계로 인해 차단되었던 바깥의 상황이 환하게 드러났다.
 
 “쿠워어어어어!”
 
 그런데 이건 또 무슨 일일까? 웬 미노타우루스 하나가 날뛰고 있었은데, 검은색 트레이닝 복을 입은 소녀가 그것이 휘두른 도끼에 머리를 맞고 쓰러지고 말았다.
 
 파악!
 
 “아아아악!”
 
 상훈은 깜짝 놀랐다. 회귀자 소녀 유서린이 저리 허무하게 죽어버릴 줄이야.
 
 
 
 
 
 
 
 
 
 
 
 Chapter 3 리셋에 저항하다
 
 
 
 
 “저런!”
 
 하필이면 편의점을 개설하느라 결계로 차단되어 있는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상훈은 서린이 저토록 맥없이 죽게 놔두지 않았을 것이다.
 
 번쩍!
 
 그런데 그때 아주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머리가 박살난 서린의 시체에서 돌연 환한 빛이 뿜어져나온 것이다.
 
 화아아악!
 
 그 빛은 처음엔 서린의 시체에만 머물러 있다가 이내 폭발하듯 사방으로 확산되었고 어느덧 상훈의 몸도 그것에 휩싸였다.
 
 ‘뭐지? 차원이 뒤틀리고 있어.’
 
 상훈은 인상을 찌푸렸다. 누가 차원의 흐름에 또 손을 대는 것일까? 그가 본신의 힘을 모두 되찾은 상태라면 이 따위 짓을 하지 못하게 막았겠지만 지금으로서는 그 역시 이 뒤틀리는 차원의 흐름에 몸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
 
 화아아아악!
 
 눈부신 빛이 시야를 차단했다가 사라진 순간.
 
 “여기는······?”
 
 상훈은 옥상 위에 서 있었다. 그린빌라의 옥상. 이게 어찌된 일일까? 상훈은 잽싸게 401호 안으로 내려왔지만 그곳은 텅 비어 있었다.
 
 --지구인들은 들어라. 우리의 이름은 켈라크스! 우리는 그대들이 상상도 할 수 없는 아득히 먼 우주에서 왔다.
 
 --이제 너희 인간들은 켈라크스 휘하 지구 식민지의 노예일 뿐이다. 지구의 모든 국가는 사라졌고, 군대는 무력화되었으며, 너희의 모든 소유권과 재산도 사라졌다.
 
 --지구의 시스템은 우리의 방식대로 바뀌었다. 이 새로운 질서에 적응하는 자는 살고 적응 못하는 자는 죽는다!
 
 “뭐냐? 이건?”
 
 상훈은 어이가 없었다. 저건 아까 튜토리얼이 막 끝났을 때쯤 들려왔던 말이 아닌가?
 
 “차원이 뒤틀린다 했더니 그 시점으로 되돌린 거군. 설마 시스템 리셋인가?”
 
 시스템 리셋을 통한 초기화!
 오직 이 방법만이 켈라크스 시스템에 무리를 주지 않고 시나리오의 변경이 가능하다.
 시나리오를 바꾼 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으니까.
 그로인해 지구에 있는 이들에게는 시간이 거꾸로 돌아간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켈라크스의 빛이 당신의 상태를 표시합니다.]
 
 이름 전상훈
 나이 22세
 성별 남자
 레벨 [알 수 없음]
 직업 [알 수 없음]
 칭호 [지구 최초의 가디언 학살자 외 1개]
 스탯 [알 수 없음]
 루나 [1,550,090]
 장비 [각목]
 소유 [그린빌라, 상훈25]
 
 상훈의 재산과 루나는 그대로였다.
 켈라크스 시스템의 모든 것이 상훈이 막 귀환했던 시점으로 리셋되었지만, 상훈이 가진 차원 저항력으로 인해 그가 소유한 것들은 리셋되지 않았으니까.
 
 ‘설마 나 하나 잡으려고 시스템 리셋을 한 건 아니겠지?’
 
 아니라고 하자니 왠지 타이밍이 공교롭긴 했다.
 시스템 폭주없이 외부의 존재들이 개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바로 리셋이니까.
 
 ‘틀림없어. 그놈들이 나를 죽이려고 리셋을 한 거야.’
 
 그렇다면 이제 뭔가가 나타날 것이다. 리셋으로 변경된 시나리오에 상훈을 제거할 강력한 존재를 투입했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만약 이런 리셋이 처음이 아니라면?’
 
 그럼 유서린이 회귀자인 것이 설명된다.
 리셋 전에 살아있는 이들은 리셋 된 회수만큼 회귀를 경험했을 테니까.
 물론 대부분은 기억도 초기화되어 회귀한 사실조차 알지 못하는데, 유서린은 특이 케이스였다. 그 또한 그녀가 가진 각성의 능력 중 하나일 것이다.
 
 [튜토리얼이 끝났습니다. 리자드맨의 공격으로 살아남은 당신은 메인 시나리오를 진행할 자격이 있습니다. 이제부터가 진정한 시작입니다.]
 
 [시나리오 1 생존의 자격]
 
 [켈라크스 시스템에서는 오직 강한 자만 생존의 자격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구는 아직도 수많은 약자들로······ 지구의 인구가 0.1% 아래로 줄어들면 시나리오 1이 완료되고, 시나리오 2가 진행됩니다.]
 
 시나리오 1의 내용은 아까와 동일했다.
 
 [그린빌라 401호에 집행자가 방문합니다.]
 
 그와 함께 결계가 생성되며 주변 공간이 뒤바뀌었다.
 
 [이제 집행자가 당신이 생존할 자격이 있는지 시험할 것입니다.]
 [그에게 당신이 약자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야 합니다.]
 
 [전투에 앞서 당신은 무기를 구입할 수 있습니다.]
 [목록은 현재 당신이 소지한 루나로 구입 가능한 한도까지만 보입니다.]
 
 [현재 당신의 소유 루나는 1,550,090.]
 [무기 목록이 너무 많아 다 열거할 수 없습니다. 당신이 원하는 무기의 종류와 대략적인 가격대를 말해 주세요.]
 
 이 또한 아까와 달라진 내용이었다.
 아까는 10루나 밖에 없어서 각목만 살 수 있었는데, 지금은 열거가 불가능할 정도로 많다고 했으니까.
 모두 상훈이 가디언 자이드클로프스를 해치워 얻은 막대한 양의 루나 때문이었다.
 
 “쓸만한 무기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이런 것도 켈라크스 시스템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면 필요할 것이다.
 
 “무기의 종류는 검으로! 비싼 것부터 세 개만 보여줘봐.”
 
 그러자 마치 홀로그램의 영상처럼 상훈의 눈 앞에 무기의 모양과 가격이 나타났다.
 
 [초마검 젠카]
 -등급 : 신화
 -환야(幻野)의 세계 전설적인 초월자이자 명장인 젠카가 만든 차원의 검.
 -차원력을 증폭시켜 공격력을 대폭 증가시킴.
 -가격 1,500,000루나
 
 [신검 엘리어스]
 -등급 : 신화
 -천계의 신장 엘리어스가 만든 신검으로 신성력이 깃들어 있음.
 -암흑 계열의 적에게 재앙과 같은 피해를 줌.
 -가격 1,200,000루나
 
 [파멸검 엑스지온]
 -등급 : 전설
 -고대 파이어스 성계의 전설적 라트로 카이저의 애병.
 -미증유의 파괴력을 가진 마검.
 -가격 1,000,000루나
 
 순간 상훈의 두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물론 신검 엘리어스와 파멸검 엑스지온 같은 건 그의 눈에 차지도 않았다. 설명만 그럴듯할 뿐 둘 다 허접한 무기들이기 때문이다. 그 따위 무기를 쓸 거면 그냥 맨손으로 싸울 것이다.
 그러나 차원의 검은 얘기가 다르다.
 차원력을 다룰 수 있는 그에게는 가장 효율적인 무기니까.
 
 ‘뜻밖의 보물을 건졌군. 최하급 차원의 검이지만 아쉬운대로.’
 
 곧바로 상훈은 초마검 젠카를 가리키며 외쳤다.
 
 “저것으로 하겠다.”
 
 [당신은 초마검 젠카를 얻었습니다.]
 [당신은 지구 최초로 신화 등급의 무기를 얻었습니다.]
 [지구 최초의 신화 장비 소유자 칭호를 얻었습니다.]
 [특별 보상으로 500,000루나를 얻었습니다.]
 
 지구 최초의 칭호를 또 하나 얻었다.
 덕분에 50만 루나 획득!
 
 “상황이 이렇게 될지는 몰랐겠지.”
 
 아마도 지금쯤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켈라크스들은 꽤나 당황하고 있을 것이다. 설마 시스템이 리셋되었는데도 상훈이 아까 획득했던 막대한 루나를 그대로 보유한채 돌아올 줄은 상상도 못했을 테니까.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너희들은 아주 멍청한 짓을 했다. 기왕 시스템 리셋을 할거면 여기서 루나의 한도에 따라 어떤 무기든 구입할 수 있는 것도 바꿨어야했어.’
 
 슷.
 
 그때 상훈의 앞에 누군가 나타났다. 붉은 빛의 할버드를 쥐고 있는 거인이었다.
 
 ‘집행자가 바뀌었네?’
 
 본래라면 상훈의 앞에는 검과 방패를 쥔 평범한 리자드맨 하나가 나타나야 했다. 그러나 지금 나타난 거인은 아까 편의점의 가디언 자이드클로프스조차 하찮은 몬스터로 취급할 만큼 강력한 기운을 내뿜었다.
 
 ‘역시나 예상대로군.’
 
 상훈의 존재가 거슬렸던 켈라크스들이 리셋을 통해 시나리오 1의 내용을 변경한 것이다. 물론 시나리오 1의 모든 집행자를 바꾼 것이 아니라 오직 이곳 그린빌라 401호에 한해서이겠지만.
 
 “풍기는 기세를 보니 넌 켈라크스 휘하의 하급 지휘관 정도 되는 녀석이겠군.”
 “주제 넘는 소리를 지껄이는구나! 네놈이 갑자기 어디서 튀어나온 버그인지 모르겠다만, 나에게 걸린 이상 여기서 끝이다.”
 “버그?”
 “그렇다. 나는 너같은 버그를 제거하는 버그 헌터지.”
 
 거인은 상훈을 시스템의 버그로 간주하고 있었다.
 하긴 켈라크스 시스템에 능력이 스캔되지도 않는데다가 난데없이 시나리오 5에나 가능했던 편의점을 개설해버렸으니, 그들로서는 상훈의 존재가 버그처럼 느껴질 것이다.
 상훈은 초마검 젠카를 앞으로 겨누며 말했다.
 
 “한심하군. 날 상대로 고작 벌레나 잡는 녀석을 투입하다니!”
 “설마 지금 그 검을 믿고 건방을 떠는 것이냐? 안됐지만 그건 너같은 버그 따위가 다룰 수 있는 무기가 아니다.”
 “아무나 쓸 수 있다면 신화 등급의 병기라 할 수 없겠지.”
 “큭! 내 말의 뜻을 이해 못하는구나. 그 검은 지구의 인간들에게 절망을 주기 위해 놔둔 일종의 전시용 무기일 뿐이다.”
 “틀린 말은 아니야. 이건 차원력이 없으면 쓸 수 없을 테니까.”
 “네놈이 어떻게 자이드클로프스를 제거한 것도 모자라 리셋 후에도 막대한 루나를 보유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만, 날 상대하려면 차라리 파멸검 엑스지온을 선택했어야 했다. 물론 그 또한 다루기 쉬운 무기는 아니지만.”
 
 순간 상훈의 두 눈이 차갑게 번뜩였다.
 
 “그보다 한 가지만 물어보자. 대체 너희들의 목적은 뭐지? 왜 이런 괴상한 시스템으로 지구를 장악한 거야?”
 “곧 죽을 놈이 쓸데없는 데 관심을 갖고 있구나.”
 “궁금해서 그래. 어차피 난 곧 죽을 거니까 알려줘도 되잖아.”
 “너 따위는 알 것 없다.”
 “그 말은 너도 그게 뭔지 모르고 있다는 뜻이겠지. 하긴 하급 지휘관 따위가 알 거란 기대는 하지도 않았다.”
 “닥치고 그만 죽어라!”
 
 거인이 할버드를 번쩍 내리쳤다.
 
 콰아아앙!
 
 귀를 찢는 듯한 굉음과 함께 상훈이 있는 공간이 그대로 폭발해버렸다.
 
 쿠콰쾅! 쾅콰아앙-!
 
 연이어 미사일이 무더기로 날아와 폭발한 것처럼 연쇄 폭발음이 결계를 뒤흔들었다.
 이곳이 결계 공간이었기에 천만 다행이랄까?
 그렇지 않았다면 그린 빌라뿐만 아니라 인근 수십 채의 건물이 먼지로 변해버렸을 것이다.
 
 그런데 상훈은 그런 가공스러운 폭발의 와중에도 죽지 않았다.
 그는 초마검 젠카를 한 손으로 쥔 채 방어 자세를 취하고 있었는데 머리카락이 일부 헝클어지고 피부가 살짝 그을렀다는 것 외에는 비교적 멀쩡했다.
 
 “다했나? 그럼 이제 내 차례군.”
 
 번쩍!
 
 상훈이 쥔 검에서 하얀 섬광이 일어나 거인의 몸을 후려쳤다.
 
 촤각-!
 
 순간 거인이 믿기지 않는 듯 두 눈을 부릅뜨더니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 이럴 수가! 차원의 검을 다룰 줄 알다니! 네놈은 대체 누구냐?”
 “너 따위는 내가 누군지 알 자격이 없다.”
 
 상훈은 초마검 젠카를 검집에 꽂아넣으며 차갑게 웃었다. 거인이 이를 갈았다.
 
 “크으으으윽! 네, 네놈이 가, 감히······.”
 
 그러나 그는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었다. 그의 몸이 사선으로 두 쪽이 났기 때문이다. 사선의 위쪽에 있는 몸체부터 미끄러지듯 바닥으로 떨어져내렸고, 아래쪽 몸체도 맥없이 널브러졌다.
 
 쿵! 쿠우웅!
 
 거인의 동강난 몸체들은 이내 붉은 빛에 휩싸여 어딘가로 사라졌다.
 
 [파괴자 루터스를 처치했습니다.]
 [3,000,000루나를 얻었습니다.]
 
 전투력이 자이드클로프스와는 비할 수 없이 강력한 만큼 루나의 보상도 엄청났다.
 루나가 무려 3백만!
 
 [당신은 지구 최초로 파괴자 루터스를 쓰러뜨렸습니다.]
 [당신은 파괴자 칭호를 얻었습니다.]
 [1,000,000루나를 얻었습니다.]
 
 게다가 상훈은 파괴자라는 칭호를 얻었다. 사실 이런 칭호가 붙으면 각종 스탯이나 공격력 같은 것이 늘어나게 되지만, 상훈에게는 아무 효력이 미치지 않았다.
 
 ‘그 따위 효력을 얻으려고 시스템에 나를 구속시키는 건 바보짓이지.’
 
 지금쯤 이 상황을 지켜보는 켈라크스들은 혼란에 빠져 있을 것이다. 그들은 파괴자 루터스가 상훈을 당연히 처치할 거라 생각했을 테니까.
 그러나 루터스는 상훈에게 무참하게 패배했을 뿐 아니라 켈라크스 시스템에서 완전히 소멸되어 버렸다. 상훈에게 죽은 이상 다시 리셋을 한다해도 루터스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그놈들이 이를 갈고 있겠지. 곧바로 리셋을 할게 분명해.’
 
 시스템 리셋은 최대한 빨리 할수록 차원력의 소모가 적다.
 수정된 시나리오가 실패했으니 켈라크스들은 즉각 다시 리셋을 통해 시나리오를 재수정하려 할 것이다.
 아무래도 이번에는 하급 지휘관이 아니라 수뇌부가 직접 시나리오 속에 뛰어들어 상훈을 공격해올 가능성이 높았다.
 
 ‘올테면 와라. 이젠 나도 해볼만 하니까 말이야.’
 
 비록 최하급 차원의 검이지만 차원력을 증폭시킬 수 있게 된 이상 상훈은 초월자 급이 나타나도 별로 겁날 것이 없었다.
 
 [당신은 집행자와의 전투에서 승리했습니다.]
 [당신은 집행자의 시험을 통과했습니다.]
 [20루나를 얻었습니다.]
 [결계가 사라집니다.]
 
 [시나리오 1이 종료되었습니다. 당신은 생존의 자격을 얻었습니다.]
 
 [2018년 4월 1일 AM 02 : 20]
 
 [시나리오 2는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24시간 후에 시작됩니다.]
 
 “어라? 그냥 진행하겠다?”
 
 상훈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는 당연히 켈라크스들이 또 다시 시스템을 리셋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건 예상밖인데? 왜 리셋을 하지 않는 거지?’
 
 시스템 리셋을 늦게하면 할수록 초기화를 위한 차원력의 소모가 막대하게 증가한다는 사실을 켈라크스들이 모를 리가 없었다.
 또한 이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상훈이 강해지고 있다는 사실도 눈치챘을 테고 말이다.
 그런데도 리셋을 하지 않는다니!
 상훈이야 늦어질수록 유리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혹시 이 다음 시나리오에 또 뭔가 바꿔 놓은 게 있는 건가?’
 
 그러나 그럴 가능성도 희박했다. 파괴자 루터스가 상훈에게 패배할 것이라 예상했다면, 애초에 그보다 더 강력한 존재를 투입했을 테니까.
 
 “무슨 꿍꿍이인지 모르지만 어차피 어느 쪽으로든 너희들은 내 손에 죽는다.”
 
 상훈은 일단 401호를 나섰다. 이전과 달리 맞은편 402호는 텅 비어 있었다. 아래층들도 마찬가지였다. 모두 상훈의 소유 공간이니 리자드맨도 리셋되지 않은 것이다.
 
 “밖은 조용하네.”
 
 건물 밖으로 나오자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각목을 한 손에 쥔 채 빠르게 달려오는 흑색 트레이닝복의 미소녀!
 다름아닌 유서린이었다.
 
 ‘그래도 멘탈이 나쁘지 않군.’
 
 서린은 미노타우루스에게 맞아 죽었다. 다행히 때마침 시스템 리셋이 이루어져 죽기 전의 상태로 되돌아왔지만, 보통의 인간이라면 그 끔찍했던 기억으로 인해 여전히 패닉 상태에 빠져 있을 것이다.
 그런데 서린은 표정만 굳어져 있을 뿐 눈빛은 비교적 차분했다.
 회귀자로서 가져야할 필수 요소인 정신력이 아주 강하다는 증거였다.
 
 “우리 또 보네.”
 
 상훈이 손을 흔들며 말을 걸자 서린이 두 눈을 크게 떴다.
 
 “아저씨, 나를 기억해요?”
 “그걸 말이라고 해? 너만 회귀 전의 일을 기억할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럼 내 이름이 뭔데요?”
 “유서린. 스무 살. 여자잖아.”
 
 그러나 서린은 여전히 의혹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좋아요. 그럼 아까 우리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해요?”
 “넌 나를 켈라크스의 하수인이라고 의심했어. 난 그놈들을 다 쓸어버릴 거라고 했고. 아니야?”
 “맞아요.”
 “또 말해볼까? 넌 아까 미노타우루스에게 맞아 죽었잖아.”
 
 순간 서린이 깜짝 놀랐다.
 
 “그걸 어떻게? 그때 아저씨는 편의점에서 가디언에게 죽었을 텐데.”
 “죽긴. 누가 죽어. 그놈이 내 손에 죽었지.”
 “가디언을 죽였다고요?”
 “그놈을 죽이고 편의점도 열었어.”
 “에이! 말도 안 돼요. 편의점은 시나리오 5가 지나야 열 수 있다고요.”
 “진짜라니까. 저기 가볼래?”
 
 편의점 상훈25는 지금 열려 있는 상태다. 시스템 리셋의 와중에도 그건 초기화되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서린은 전혀 상훈의 말을 믿는 기색이 아니었다.
 
 “됐고요. 그보다 앞으로가 큰일이네요.”
 “뭐가 큰일인데?”
 “아저씨가 나타나고 나서 미래가 이상해졌거든요. 갑자기 미노타우루스가 나타난 것도 그렇고요. 모든게 말도 안 되게 바뀌었어요.”
 
 바로 그때였다.
 
 “쿠워어어어어!”
 
 갑자기 귀를 찢을 듯한 포효와 함께 거대한 몬스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머리에 소의 뿔을 가진 거대 괴수!
 그것을 본 서린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저거 봐요! 미노타우루스가 또 나타났잖아요!”
 
 그녀는 흠칫 놀라 달아나려했지만 어느새 수십여 마리의 리자드맨들이 나타나 길을 막았다.
 
 “젠장!”
 
 서린은 리자드맨들을 향해 각목을 마구 휘둘렀다. 그러다 거대한 도끼를 쥔 미노타우루스가 다가오자 울상을 짓고 말았다.
 
 ‘하! 꼼짝없이 또 죽고 말겠어.’
 
 그런데 그때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갑자기 미노타우루스와 리자드맨들이 멈춰선 채 몸을 떨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들은 모두 상훈을 힐끔거리고 있었다. 서린이 두 눈을 크게 떴다.
 
 “저거 설마 아저씨가 한 거예요?”
 “그보다 우리 거래 하나 하자.”
 “거래?”
 “내가 묻는 말에 솔직하게 답해주면 저 놈들을 죽일 수 있게 해줄게. 저 놈들은 움직이지 못하니까 넌 그냥 경험치를 주워 담는거지.”
 “진짜요?”
 
 서린의 두 눈이 반짝였다. 리자드맨 수십 마리를 해치우면 경험치가 적지 않다. 그것만으로도 레벨이 몇 단계나 상승할 것이다.
 그러나 초대형 몬스터인 미노타우루스는 그보다 훨씬 더 높은 경험치를 줄 뿐 아니라 칭호도 얻을 수 있었다. 초반에 그런 칭호의 효과는 생존에 매우 도움이 될 터였다. 말 그대로 대박!
 
 “뭐가 궁금해요?”
 “저 놈들이 여기에 왜 나타났을까?”
 “글쎄요. 미노타우루스는 시나리오 3에 나올 몬스터인데.”
 “그러니까 더 이상하잖아.”
 “아저씨가 나타나서가 아닐까요? 그 전에는 그런 적 없어요.”
 
 그 말에 상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틀린 말은 아니야. 켈라크스 놈들이 지금도 날 죽이려고 시스템에 간섭하고 있으니까. 시나리오와 상관없이 미노타우루스 따위를 움직이는 건 시스템에 큰 무리가 가지 않으니 얼마든지 할 수 있겠지.”
 “역시 아저씨를 죽이러 나타난 거네요.”
 “그런데 아무리 봐도 저놈들은 너만 노리고 있었어.”
 
 사실 켈라크스들이 바보도 아니고 파괴자 루터스까지 소멸시켜버린 상훈을 향해 한낱 미노타우루스 따위를 보낼 리는 없었다. 상훈은 그 이유가 이해되지 않았다.
 
 ‘대체 왜 서린을 죽이려는 거지?’
 
 시나리오를 무시하고 미노타우루스를 등장시키는 번거로운 짓까지 했다면?
 그건 그들에게 서린을 반드시 죽여야할 이유가 생겼다는 뜻이다.
 그것도 갑자기 말이다.
 미리 죽이려 했다면 시나리오에 반영했을 테니까.
 
 “혹시 날 만나기 전에도 이런 적이 있어?”
 “괴물들에게 죽은 적이야 많지만 지금처럼 초반에 미노타우루스가 나타난 적은 없어요. 시나리오 2까지는 항상 매끄럽게 갔거든요.”
 “그럼 결국 나 때문이라는 건데. 그것들이 왜 갑자기 나타나 널 죽이려 한 걸까?”
 “모르죠.”
 “잘 생각해봐. 뭔가 분명 이유가 있을 거야. 어쩌면 너의 각성 능력과 관련이 있을 수도 있어.”
 “강체와 관련이 있다고요?”
 “강체?”
 “난 일시적으로 신체의 일부를 강하게 만들 수 있어요.”
 “전투에 제법 유용한 능력이네. 그것 말고 다른 능력은 없어?”
 “능력이라고 하는 게 맞을 지 모르지만 하나 더 있긴 해요.”
 “그게 뭔데?”
 “회귀요.”
 “회귀?”
 
 그러자 서린이 뭔가 처량해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죽으면 튜토리얼이 막 끝난 그 시점으로 돌아가거든요. 죽도록 레벨을 올려놔도 다시 레벨 1이 되어버려요.”
 
 죽으면 바로 회귀를 한다는 건가? 순간 상훈은 뭔가 짚이는 것이 있었다.
 
 ‘혹시?’
 
 그러고 보니 아까 서린이 미노타우루스에게 머리를 맞아 죽었을 때 차원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서린의 몸에서 일어난 빛에 의해서 말이다.
 
 ‘맞아. 그건 차원력의 빛이었어. 이런! 설마 서린이 죽으면 켈라크스 시스템이 리셋되는 거였나.’
 
 틀림없었다.
 서린은 자신이 그냥 혼자 회귀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상훈이 볼 때는 그것이 아니었다.
 그녀가 어떤 식으로든 죽는 순간 시스템이 리셋되며 지구의 모든 것이 튜토리얼이 막 끝난 시점으로 초기화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런 적이 몇 번이나 되는데?”
 “수십 번도 넘을 걸요.”
 “그렇게나 많이? 무서웠을 텐데 용케 잘 버텼구나.”
 “처음엔 정말 무서웠지만 몇 번 죽고나서부터 적응을 했죠. 이젠 괜찮아요.”
 
 상훈은 한숨을 내쉬었다. 비로소 모든 게 이해가 되었다. 아까 왜 미노타우루스가 난데없이 나타나 서린을 죽였는지도. 그리고 지금 또 왜 그녀를 죽이려 했는지도.
 
 ‘정말 불쌍한 녀석이었군.’
 
 컴퓨터로 치면 리셋 버튼!
 켈라크스 시스템에서는 그 유일한 버튼이 바로 서린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지 않다면 켈라크스들이 다른 방법으로 이미 리셋을 했을 테니까.
 대체 왜 서린을 리셋 버튼으로 설정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동안 그놈들은 리셋이 필요하면 서린을 죽였겠지.’
 
 방금 전 서린을 노린 것도 바로 그 이유였을 것이다.
 시스템 리셋을 통해서만 시나리오의 변경이 가능하니까.
 불행하게도 수십 번의 죽음이 바로 그런 식으로 찾아왔다는 사실을 서린은 전혀 모르는 듯했다.
 
 “아저씨!”
 “왜?”
 “이제 쟤들 죽여도 되죠?”
 
 서린이 각목으로 미노타우루스와 리자드맨들을 가리켰다. 상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죽여.”
 
 서린은 기다렸다는 듯 각목을 휘둘러 앞의 리자드맨의 머리를 후려쳤다.
 
 퍼억-
 
 “꾸어억!”
 
 리자드맨이 한 방에 쓰러졌다. 놈이 아무리 최하급 몬스터라지만 가녀린 소녀의 각목질 한 방에 넘어갈 만큼 맷집 약한 녀석은 아닌데.
 
 “각목을 휘두르는 솜씨가 제법인걸.”
 “리자드맨들이라면 눈감고도 싸워 이길 수 있어요.”
 
 하긴 서린은 단순한 각성자가 아니다. 수십 번이 넘는 회귀를 경험했으니까. 특히 매번 리자드맨들과 싸우다보니 요령도 늘었을 것이다.
 
 퍽! 퍼억!
 
 “케엑!”
 “꾸어억!”
 
 그렇게 수십 마리의 리자드맨들을 모조리 쓰러뜨린 서린의 전투력은 몇 단계의 레벨업을 통해 좀 전에 비해 훨씬 강해졌다.
 
 “고마워요. 덕분에 쉽게 레벨을 올렸어요.”
 “잘했어. 이제 미노타우루스만 남았는데 그놈은 각목으로는 안 죽을거야. 무기를 바꿔보는 게 어때?”
 “무기를 바꾸라고요?”
 “응, 저기 단창들이 많이 있잖아.”
 
 바닥 도처에 죽은 리자드맨들이 쓰던 단창들이 뒹굴고 있었다.
 
 “몬스터가 착용했던 장비는 쓸 수 없어요.”
 “왜?”
 “손에 쥐는 순간 사라져버리거든요.”
 “사라진다고?”
 “볼래요?”
 
 곧바로 서린은 바닥에 있는 단창 하나를 집어들었다.
 
 화악!
 
 순간 단창이 붉은 빛에 휩싸여 사라져버렸다.
 
 “이렇게 없어져버려요.”
 “기다려봐.”
 
 이번에는 상훈이 단창을 주워들었다. 그러자 단창이 붉은 빛으로 물들더니 무미건조한 음성이 들려왔다.
 
 [획득이 불가능한 장비입니다.]
 
 “불가능하긴.”
 
 상훈이 코웃음치며 손에 힘을 살짝 주자 단창을 뒤덮은 붉은빛이 흔적도 없이 흩어져버렸다.
 
 [리자드맨의 단창을 얻었습니다.]
 
 [리자드맨의 단창]
 -등급 : 일반
 -투박하지만 창날이 제법 날카롭다.
 
 상훈은 미소 지으며 서린을 향해 단창을 내밀었다.
 
 “어때?”
 “우와! 이건 시나리오 2가 되어야 얻을 수 있는 무기인데!”
 
 서린은 단창을 받아쥐며 환호했다. 단창이 그녀의 손에 들어왔지만 아까처럼 사라지거나 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제 그걸로 저놈을 찔러 죽여!”
 
 서린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미노타우루스 앞으로 다가갔다.
 신장이 무려 4미터가 넘는 초거대 몬스터!
 그것이 시퍼런 도끼를 양손에 쥔채 서 있는 모습은 그야말로 위압적이었지만, 서린은 주저없이 접근해 단창을 찔렀다.
 
 “죽어라! 죽엇!”
 
 휙! 휘휙!
 
 그런데 단창이 계속 빗나갔다. 미노타우루스가 아무런 반격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있는데도 말이다. 그러다 간혹 한 대씩 적중시키긴 했지만 미노타우루스의 피부에 미세하게 금만 갈 뿐이었다.
 
 “크크크!”
 
 오히려 무슨 간지러움을 태우냐는 듯 미노타우루스는 비웃음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상훈은 어이가 없었다.
 
 “지금 뭐하는 거야?”
 
 서린은 지쳤는지 숨을 몰아쉬었다.
 
 “아무래도 이놈은 안되겠어요. 혹시나 했지만 역시 렙차가 너무 나서 미스가 나요.”
 “렙차?”
 “레벨 차이요. 지금 저의 레벨이 7인데 이놈은 30이 넘는 보스 몬스터거든요. 그럼 당연히 공격이 박히지 않죠. 적중해도 데미지를 거의 줄 수 없어요.”
 
 상훈은 그제야 무슨 상황인지 이해했다. 상식적으로는 말도 안되는 일이지만 게임 방식으로 만들어진 켈라크스 시스템에서라면 그럴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상훈에게는 그런 것들이 아무런 의미도 없지만 말이다.
 그는 시스템 안에 들어왔지만 시스템 안에 구속되지 않는 버그와 같은 존재이니까.
 
 “그럼 할 수 없지.”
 
 순간 상훈이 미노타우루스를 향해 다가가 손바닥으로 건드리듯 살짝 한 대 쳤다.
 
 퍼억!
 
 “쿠어어어어억!”
 
 미노타우루스가 만신창이로 변해 비틀거렸다.
 
 “됐어. 저놈이 죽기 전에 빨리 쳐! 그래야 경험치를 먹을 수 있을 거야.”
 “막타를 치라고요?”
 
 서린의 두 눈이 빛났다. 그녀는 잽싸게 단창을 찔렀다.
 
 Miss!
 
 그러나 아쉽게도 단창은 빗나갔다.
 
 Miss! Miss!
 
 그놈의 레벨 차이 때문일까? 마치 공간이 휘어져 있기라도 한 것처럼 서린은 정면으로 찔렀지만 정작 단창은 엉뚱한 곳으로 움직였다.
 
 ‘후!’
 
 지켜보던 상훈은 답답해서 한숨을 내쉬었다. 살짝 한 방만 때려도 되는데.
 
 ‘한 방을 맞히기가 저리 힘드냐?’
 
 서린은 이제 죽어서는 안 된다.
 그래야 켈라크스들이 시나리오를 변경할 수 없게 되고, 그로인해 상훈은 매우 유리한 상황에서 그놈들을 상대할 수 있게 될 테니까.
 
 ‘그러려면 서린이 강해져야 해.’
 
 어차피 상훈은 미노타우루스를 해치워봤자 별다른 이득도 없었다.
 따라서 서린의 레벨을 최대한 올려놓기로 했다.
 
 “죄송해요. 제가 레벨이 낮아서.”
 
 서린이 풀죽은 표정으로 상훈을 쳐다봤다.
 
 “괜찮으니 포기하지 말고 계속 해 봐. 한 번이라도 맞히기만 하면 돼.”
 “네.”
 
 그렇게 계속 시도하자 결국 한 번은 성공할 수 있었다.
 서린이 찌른 단창이 미노타우루스의 목에 적중한 순간.
 
 “꾸어어어어어억!”
 
 미노타우루스가 그대로 쓰러졌다.
 막타 치기에 성공한 것이다.
 
 번쩍-!
 
 그 순간 서린의 몸이 환한 광채에 휩싸였다.
 
 [당신은 대량의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
 [레벨이 올랐습니다.]
 
 이는 물론 서린의 귀에만 들리는 음성이었다. 그녀의 레벨이 Lv7에서 단숨에 Lv15로 8단계나 상승했다.
 
 [10,000루나를 얻었습니다.]
 [당신은 지구 최초로 미노타우루스를 처치했습니다.]
 [지구 최초의 미노타우루스 학살자 칭호를 얻었습니다.]
 [10,000루나를 얻었습니다.]
 
 [타이틀] 지구 최초의 미노타우루스 학살자
 -등급 : 영웅
 -장착 효과 : 모든 스탯 +10, 생명력 +1000
 
 “와아!”
 
 서린은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었다. 그간 수십 번의 회귀를 하면서 이런 칭호를 얻은 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상훈이 미소 지었다.
 
 “표정을 보니 레벨이 꽤 올랐나 보네.”
 “물론이죠. 게다가 칭호도 얻었어요.”
 “미노타우루스 학살자 같은 거?”
 “그냥 학살자가 아니고 지구 최초가 붙었어요.”
 “그게 더 좋은 거야?”
 “당연하죠. 보통 학살자보다 지구 최초가 붙은 게 몇 배는 더 좋거든요. 사람들에게 이런 칭호가 있다는 걸 듣긴 했는데 제가 얻을 줄은 몰랐어요.”
 
 상훈이 고개를 갸웃했다.
 
 “사람들? 다른 사람들도 만나봤어?”
 “내일 시나리오 2가 시작되면 그동안 살아남은 사람들과 만날 기회가 생겨요.”
 “시나리오가 몇까지 있는데?”
 “제가 최대 가본 건 시나리오 6까지였어요.”
 
 그럼 지금껏 켈라크스 시스템이 시나리오 7 이상 진행된 적이 없다는 얘기다. 서린이 죽는 순간 시스템이 리셋되었을 테니까.
 
 “좋아. 어쨌든 이제 날 따라와.”
 
 상훈이 걸어가자 서린이 뒤따르며 물었다.
 
 “어딜 가는데요?”
 “저 앞의 편의점. 거긴 안전지대거든.”
 “편의점은 시나리오 5가 진행돼야······!”
 
 서린은 말을 하다말고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상훈25라는 편의점 간판이 환하게 반짝이고 있었던 것이다.
 간판 뿐이 아니었다. 안으로 들어와보니 컵라면과 생수를 파는 커다란 매대가 있고 테이블과 탁자까지 모두 갖춰져 있었다.
 
 “세상에! 정말로 편의점을 열었군요.”
 
 아까는 상훈이 했던 말을 터무니 없다 생각하고 믿지 않았다. 시나리오 5가 진행되기 전에 편의점을 열려면 점포의 가디언을 처치해야 하기 때문이다.
 
 
 
 
 
 
 
 
 
 
 Chapter 4 블러디 어새신
 
 
 
 
 
 
 미지의 상공에 떠 있는 초거대 구형 비행체의 내부.
 수십여 명의 불가사의한 기운을 뿜어내는 존재들이 심각한 표정을 지은 채 하나의 화면을 관찰하고 있었다.
 그 화면은 비행체 내부에 홀로그램처럼 생겨난 무수한 화면들 중 하나를 확대한 것으로, 한 장소를 비추고 있었다.
 대한민국 서울 광진구 자양동에 위치한 한 편의점.
 간판에는 상훈25라고 적혀 있었는데, 투명한 통유리 안으로 한 명의 청년과 앳된 얼굴의 소녀가 보였다.
 
 “설마 저 따위 인간 놈에게 루터스가 당할 줄은 상상도 못했군. 갑자기 어디서 튀어나온 녀석인가?”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차가운 인상의 남자가 물었다. 그러자 금발의 긴 생머리를 가진 여자가 대답했다.
 
 “지구 데이터를 검색해 살펴봤는데 이상한 점이 있었었어요.”
 “이상한 점이라?”
 “루터스를 죽인 인간은 전상훈이라는 녀석으로 본래는 22살의 평범한 대학생에 불과했죠.”
 “그런데 뭐가 이상하다는 건가, 아르메스?”
 “놈은 켈라크스 시스템이 작동하기 전에 흔적을 감췄다가 튜토리얼이 끝난 후에 갑자기 등장했어요. 그것도 47번째 리셋이 시작되는 시점에요.”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다면?”
 
 그러자 아르메스가 두 눈을 빛냈다.
 
 “수많은 가능성이 있지만 역시나 그 중 한 가지가 가장 유력해요.”
 “그게 뭔지 말해봐라.”
 “로드께서도 짐작하시듯 버그예요.”
 
 남자가 미심쩍은 표정을 지었다.
 
 “놈은 비록 최하급 수준이지만 차원력까지 다룰 수 있었다. 그런 놈을 단순히 버그라고만 말할 수 있을까?”
 “가증스러운 식민지 저항군이 주축이 된 반(反) 켈라크스 연합이라면 충분히 그런 수준의 버그를 만들어낼 수 있겠죠. 우리가 켈라크스 시스템으로 지구를 침공한 초기부터 그놈들이 차원력을 이용해 수많은 버그를 생성시켰으니까요.”
 “그 버그들은 대부분 제거한 걸로 아는데?”
 “몇 개를 빼고는 다 제거했고, 남아있는 그 몇 개 또한 47번째 리셋의 수정된 시나리오를 통해 모두 제거될 상황이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뜻밖의 새로운 버그가 생겨난 것이죠.”
 “저항군 놈들이 그 녀석을 데려다 켈라크스 시스템을 파괴할 비밀 버그로 만들어 투입시켰단 말이군.”
 “틀림없어요.”
 “그럼 48번째 리셋 때 루터스를 보낸 건 너무 안이한 대처였다.”
 
 그러자 아르메스가 남자의 눈치를 보며 대답했다.
 
 “놈이 자이드클로프스를 제거할 때 보여줬던 전투력은 하급 버그 헌터 정도면 충분히 해결이 가능할 정도라 차원력의 소모를 최소화하기 위해 루터스를 선택했는데 저의 판단 착오였어요.”
 “그래서 앞으로의 대책은?”
 “노련한 상급 버그 헌터들을 보내 놈을 소멸시킬 완벽한 시나리오를 짜놨지만, 당장은 시스템 리셋이 쉽지 않아요. 하필이면 유서린을 그놈이 보호하고 있는 상황이라서.”
 
 남자가 안색을 굳혔다.
 
 “아무리 저항군 놈들의 방해가 있다지만 우린 그간 리셋을 무려 48번이나 하며 차원력을 막대하게 소모했다. 그런데도 아직 임무를 달성하지 못했지. 이러다 자칫 상부의 문책을 받게 되면 나는 물론이고 아르메스 너도 무사하지 못한다.”
 “저도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로드.”
 “최대한 빨리 리셋을 시켜라. 어차피 시나리오가 진행되면 저들이 안전지대에서만 웅크리고 있을 순 없을 테니까. 시스템의 차원력이 폭주하지 않도록 조심하고, 그 한도 내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마라.”
 “네, 로드!”
 
 아르메스의 두 눈이 차갑게 번뜩였다.
 
 * * *
 
 한편 그때 서린은 편의점 상훈25의 내부를 둘러보며 혼란에 빠져 있었다.
 
 ‘가만! 생각해보니 정말 이상해. 그 가디언은 인간이 상대할 수 없는 괴물인데 어떻게 이겼을까?’
 
 서린의 의문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가디언을 이겼다고 해도 지금은 회귀한 상태잖아.’
 
 설령 상훈이 대단한 전투력의 소유자라서 가디언을 처치했다고 해도 지금 상황은 말이 안되었다.
 시간이 회귀했으니 이 편의점은 본래대로 켈라크스의 소유로 있어야 정상인 것이다.
 
 “그렇게 우두커니 서있지 말고 와서 앉아. 여긴 안전지대니까 몬스터가 나타날 걱정없이 편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어.
 
 상훈이 편의점의 탁자에 앉은 채로 손을 흔들었다. 서린은 불안한 표정으로 상훈을 노려봤다.
 
 “솔직히 말해봐요. 대체 아저씨의 정체는 뭐죠?”
 “잘 나가다 왜 또 이래? 아직도 날 믿지 못하는 거야?”
 “어떻게 믿어요?”
 “이거 너무하잖아. 미노타우루스에게 죽을 것을 지켜줘, 레벨업도 시켜줘, 심지어 안전지대인 편의점에도 데려와줘. 대체 뭐가 불만인 거지?”
 
 서린은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상훈이 그녀를 챙겨준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사실 불만은 없어요. 도와준 건 정말 고맙고요.”
 “그럼 고마워하면 되지 무슨 의심이 그리 많아?”
 “이상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니까요. 가디언은 죽일 수 있다 쳐도 우린 회귀했는데 어째서 이곳이 아저씨의 소유인지 설명해봐요.”
 “그건 설명해줘도 네가 이해하지 못할 거야.”
 “글쎄요. 아마도 그건 아저씨가 켈라크스의 하수인이니까 가능한 일이겠죠.”
 “뭐 좋아! 그럼 나도 할 말이 있어. 너야말로 왜 날 속인 거야?”
 “내가 뭘 속여요?”
 “나이.”
 “갑자기 나이가 왜 나와요?”
 “너 진짜 스무살 맞아?”
 
 그러자 서린은 살짝 당황하는 표정을 지었다.
 
 “맞는데요. 왜요?”
 “유서린. 18세. 여자. 레벨 15.”
 “그, 그걸 어떻게?”
 
 서린은 움찔했다. 상훈이 픽 웃었다.
 
 “네가 편의점에 들어오는 순간 보였거든.”
 
 편의점 주인인 상훈은 손님의 정보를 볼 수 있었다. 간략하게 레벨과 나이, 성별과 이름 정도지만 그것을 통해 유사시 불량이용자로 등록해 편의점 이용을 제한시킬 수 있는 것이다.
 
 “어쩐지 딱 봐도 고등학생이었는데 스무 살이라고 해서 이상하다 생각했지.”
 “그냥 두살 정도는 좀 넘어가줘요.”
 “왜 스무 살이라고 속인거야?”
 “사람들이 내가 성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어린애 취급을 하거든요. 고작 두 살 차이로.”
 
 그런 이유였나. 상훈은 어이가 없었다.
 
 “아무리 봐도 너 어린애 맞아.”
 “뭐가 어린애 같은데요?”
 “모든 게 다.”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일단 나보고 아저씨라고 하는 것부터 고치자.”
 “그럼 뭐라고 불러요?”
 “오빠라고 해.”
 “생각해볼게요.”
 “좋아. 그건 그렇고.”
 
 상훈의 표정이 돌연 진지하게 변했다. 방금 전에는 서린의 긴장을 풀어주려고 일부러 농담을 좀 한 것 뿐이다.
 
 “이제부터 내 말 잘 들어. 넌 당분간 이곳에서 절대 나가면 안 돼.”
 “네? 그게 무슨 말이죠?”
 “이 안은 안전지대니까. 여기가 네 집이라 생각하고 지내라고.”
 “내가 그래야할 이유가 있나요?”
 “나가는 순간 넌 죽을 테니까.”
 
 상훈은 손가락을 들어 편의점 바깥을 가리켰다. 건물들 사이 으슥한 음영이 있는 곳에 핏빛 그림자들이 번쩍이고 있었는데 하나같이 심상치 않은 기세를 내뿜고 있었다. 서린이 흠칫 놀랐다.
 
 “블러디 어새신이에요. 시나리오 4가 넘어야 등장하는 죽음의 암살자들. 저들이 왜 여기에?”
 “모르겠어? 널 노리고 있는 거야. 네가 나가는 순간 죽이려고.”
 
 서린은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죽음의 암살자는 절대 지금 시점에 나타날 수 없어요. 아까 미노타우루스도 그렇고. 대체 왜 미래가 이렇게 바뀐 거죠?”
 “이제부터 그걸 설명해줄 테니 잘들어. 그전에 목이 마르니까.”
 
 상훈은 매대에 가서 생수 두 병을 샀다. 버튼을 누르면 생수가 슥 하고 나타나는 식이라 편했다.
 
 [생수 2병을 얻었습니다.]
 [40루나가 지불되었습니다.]
 [20루나를 얻었습니다.]
 
 상훈이 편의점의 주인이다 보니 생수를 산 루나의 절반이 즉각 다시 들어왔다.
 
 ‘후후, 이건 뭐 실시간이네.’
 
 손님이 얼마나 올지 모르겠지만 운영하는데 신경쓸 건 없을 것이다.
 
 “자, 마시면서 들어.”
 
 상훈은 생수 한 병을 서린에게 건내며 말했다.
 
 “쉽게 말할게. 어차피 자세한 걸 말해봤자 넌 이해하지 못할 테니까. 일단 그간 네가 경험했던 미래는 현실이 아닌 허상일 뿐이야. 모두 켈라크스 시스템이 만들어낸 가상의 세계에서 벌어진 일들이지.”
 “가상의 세계라고요? 제가 겪은 수십 번의 회귀도 다 허상이라고요?”
 “하지만 켈라크스 시스템을 없애지 않으면 이곳에서의 일이 진짜 현실이 될 수도 있어. 난 그걸 막으려고 하고 있고. 그래서 켈라크스 놈들은 날 제거하려고 하는 거야.”
 “······.”
 
 서린은 잠시 침묵했다가 말했다.
 
 “지금의 모든 상황이 진짜 현실이 아니었으면 하는 생각은 나도 많이 해봤죠. 그냥 눈을 뜨면 모든 게 꿈이었으면 하는 망상이요.”
 “망상이 아니야. 이제 그 꿈은 이루어질 거야. 내가 그렇게 할 테니까.”
 
 그러자 서린은 목이 탔는지 생수를 한 모금 마신 후 말했다.
 
 “일단 아저씨의 말이 다 맞다고 쳐요. 하지만 그들이 아저씨를 죽이지 않고 날 노리는 이유는 뭔데요?”
 “너도 봤지만 난 매우 강해서 그놈들이 날 죽이기 위해서는 시스템의 시나리오를 처음부터 수정해야 해. 무작정 여기로 들이닥쳤다간 차원력의 폭주로 시스템이 날아가버리거든.”
 “시나리오를 처음부터 수정?”
 “그게 바로 리셋이야. 튜토리얼이 끝나고 메인 시나리오가 막 시작되는 그 시점으로 모든 걸 되돌리는 시스템 리셋! 그게 바로 네가 그동안 겪은 회귀였어.”
 
 서린은 어이없어하는 표정을 지었다.
 
 “좋아요. 그것도 그렇다고 치죠. 근데 왜 날 죽이려고 하냐고요?”
 “켈라크스들이 너의 몸에 리셋 버튼을 심어놨으니까.”
 “네?”
 “네가 죽는 순간 시스템이 리셋된다는 뜻이야. 그동안 켈라크스들은 필요할 때마다 널 죽여서 시스템을 리셋시켰어. 이번에도 널 죽이려는 건 바로 그것 때문이지.”
 “······?”
 
 어리둥절한 표정의 서린은 아직 무슨 말인지 잘 이해하지 못한 듯했다. 아니, 이해는 했지만 받아들이지 못한 것일 수도 있었다.
 
 ‘쯧.’
 
 상훈은 왠지 서린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진실을 숨기지 않았다.
 그녀가 켈라크스 시스템의 리셋 버튼이라는 것을!
 
 ‘괜찮을지 모르겠네.’
 
 우려가 되면서도 사실을 말해준 건 언제까지 상훈이 서린의 옆에서 보디가드처럼 그녀를 지키고 있을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왜 안전지대에 있어야 하는지 그 사실을 스스로 알고 있어야 상훈이 안심하고 켈라크스들과 싸울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보통의 소녀라면 이런 사실을 알게될 경우 충격을 받아 우울증에 걸릴지도 모른다. 만약 서린이 비관하여 자살이라도 하게 되면 골치아파질 것이다.
 
 “네가 감당하기 힘든 사실일지 모르지만, 지구를 구하는 일이니까 이를 악물고 받아들여라. 절대 비관하거나 해선 안 돼.”
 
 그런데 서린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그녀는 풋하고 웃더니 씩씩하게 말했다.
 
 “황당한 얘기이긴 하지만 그게 사실이라고 해도 난 비관 같은 거 안해요.”
 “정말 괜찮아?”
 “괜찮을 리는 없죠. 기분은 좀 더러워요. 인간인 내가 시스템의 버튼이라니. 무슨 기계 부품도 아니고. 젠장!”
 
 당연히 기분이 더러울 것이다. 그래도 저렇게 덤덤한 반응이라니.
 수십 번의 죽음을 경험하며 정신력이 강해진 덕분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다행이었다.
 
 “그럼 넌 여기있어라. 난 나가서 청소 좀 하고 올 테니까.”
 
 블러디 어새신인가 하는 녀석들은 물론 상훈에게는 가소로운 존재들이다. 그러나 서린을 데리고 나가 레벨을 올려주기엔 숫자가 너무 많았다.
 
 “잠깐만요.”
 
 상훈이 막 편의점의 문을 열고 나가려는 순간 서린이 불렀다. 상훈이 고개를 돌렸다.
 
 “왜? 너도 나가고 싶어? 하지만 지금은 안 돼. 저놈들의 숫자가 많아서 내가 널 보호하려면 신경이 쓰이거든.”
 “그게 아니고요. 컵라면 먹어도 돼요?”
 “뭐?”
 
 상훈은 어이가 없었다. 이 상황에 라면을 먹겠다니!
 
 “뭘 그런걸 물어봐. 사먹으면 되잖아.”
 “나 돈 없는데, 아 맞다. 참 나 돈 많구나.”
 
 서린은 아까 미노타우루스를 처치하고 무려 2만 루나를 얻었던 걸 깜빡하고 있었던 것이다.
 
 “와! 맛있겠다~!”
 
 그녀는 벌떡 일어나 매대에서 컵라면 하나를 산 후 온수기 앞으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컵라면의 뚜껑을 열어 온수를 붓고는 뿌듯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상훈은 실소를 지었다.
 
 ‘걱정안해도 되겠어. 절대 비관자살 같은 건 할 녀석이 아니야.’
 
 상훈이 볼 때 서린은 멘탈이 강한 정도가 아니라 4차원에 속해 있는 소녀였다.
 
 “그럼 천천히 먹고 있어라.”
 “다녀오세요.”
 
 상훈은 편의점을 나섰다. 그러자 어둑한 건물 곳곳에서 보이던 핏빛의 그림자들이 상훈을 둘러쌌다.
 
 스스스-
 
 붉은 색의 후드를 깊게 눌러쓴 어새신들. 모두 24명이었는데 하나같이 강렬한 살기를 내뿜었다.
 
 팟.
 
 순간 상훈의 모습이 그 자리에 사라졌다. 어새신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두리번거리다 돌연 벼락이라도 맞은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촥! 촤악! 촤악-
 
 곧바로 그들의 가슴이 쩍 갈라지며 피가 분수처럼 쏟아져나왔다.
 
 “크으윽!”
 “으아악!”
 “크아아악!”
 
 상훈을 포위했던 24명의 어새신들이 하나도 남김없이 길바닥에 처박혔고,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모두 즉사한 것이다.
 
 [당신은 지구 최초로 블러디 어새신을 처치했습니다.]
 [당신은 지구 최초의 블러디 어새신 학살자 칭호를 얻었습니다.]
 
 그와 함께 루나가 대량으로 계속 들어왔지만, 상훈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멀리 7층 건물의 옥상을 노려봤다.
 
 ‘저쪽에서 뭔가가 날 지켜보고 있는데?’
 
 상훈은 훌쩍 그곳으로 뛰어 올랐다.
 
 “나와라.”
 
 순간 주변의 공간이 일그러지는 듯 흔들리더니 상훈의 앞쪽에 커다란 결계의 벽이 생겨났다.
 
 츠으으으!
 
 그 결계의 벽 건너편에 전신이 그림자로 이루어진 정체불명의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네가 전상훈이로군.”
 
 마치 쇳소리와 같이 거친 음성. 상훈은 싸늘히 웃었다.
 
 “결계 뒤에 숨지 말고 왔으면 덤벼라.”
 “나는 너와 싸우러 온 것이 아니라 아르메스 님의 전언을 가져왔을 뿐이다.”
 “아르메스?”
 “그 분이 누군지는 곧 알게 될 것이다.”
 “그럼 그 전언이 뭔지 말해봐.”
 “네가 만일 우리의 일을 방해하지 않고 협조한다면 켈라크스의 일원으로 받아줄 뿐만 아니라 원하는 모든 걸 들어주겠다! 이것이 바로 아르메스님의 전언이자 뜻이다.”
 
 상훈은 차갑게 웃었다.
 
 “지금 내가 원하는 걸 들어준다고 했나?”
 “그렇다, 인간.”
 “내가 원하는 건 너희들이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죽는 거야. 그래도 상관없어?”
 
 그림자가 조소를 흘렸다.
 
 “건방진 놈! 한낱 버그 따위가 주제를 모르고 있구나.”
 “주제를 모르는 건 너희들이지.”
 
 상훈이 묘한 미소를 흘렸다.
 
 “그리고 네놈이 누군지 모르지만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낸 건 실수야.”
 “그게 무슨 뜻이냐?”
 “올 때는 마음대로 왔지만 갈 때는 내 허락없이 못간다는 뜻이지.”
 
 그 말과 함께 상훈은 초마검 젠카를 뽑아쥐고는 대뜸 결계의 벽을 후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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