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둑한 감옥의 한 철창 안.
햇빛도 들지 않는 음침한 이곳에 곰팡이 냄새 대신 피냄새가 물씬 풍겼다.
“······!”
전신이 쇠사슬로 칭칭 감겨 있는 청년.
그는 무슨 죄를 지었기에 감옥에 갇힌 것도 모자라 전신이 사슬로 묶여있는 것일까?
오른 손은 손목에서 잘려나가 피만 뚝뚝 떨어지고 있고, 왼손은 그나마 형체를 유지하고 있지만 살가죽이 완전히 다 벗겨져나가 허연 뼈만 드러나 있었다.
수십 가닥이나 되는 가느다란 실같은 사슬이 청년의 살뿐 아니라 뼈까지 뚫어 놓은 상태였다.
“지독한 놈! 저 꼴을 하고도 신음 한 번 안지르는군.”
“으으! 저 눈빛을 좀 보라고. 꿈에 볼까 무서운 놈이야.”
청년이 감고 있던 눈을 뜨자 어둠 속에서 새하얀 안광이 번쩍였다.
소름끼치도록 사악해 보이는 눈빛.
저게 대체 인간일까?
청년은 마치 악마와도 같은 느낌을 주었다.
“허억!”
“놈이 우릴 노려본다!”
청년을 지키고 있던 무사들은 재빨리 시선을 피하며 몸을 떨었다.
“바보같은 놈들! 저 놈의 몸이 묶여있는 데도 무얼 그리 무서워하는 거냐?”
그때 싸늘한 음성과 함께 훤칠한 체격을 지닌 청년이 나타났다.
잘생긴 얼굴이지만 눈매가 매우 날카롭고 음침한 인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흠이었다.
그를 본 무사들은 깜짝 놀라며 허리를 숙였다.
“대공자님을 뵙습니다.”
“물러나 있어라. 저놈을 손 좀 봐야겠으니까.”
“하오나 어차피 내일 아침 참수할 놈인데······.”
어차피 내일 죽을 놈인데 굳이 오늘 또 고통을 줄 필요가 있느냐 말하려던 무사는 흠칫 입을 다물었다.
대공자가 싸늘히 그를 노려보았기 때문이다. 그 순간 번뜩이는 소름끼치는 안광은 마치 악마와도 같았다.
“지금 뭐라고 했느냐?”
“아닙니다. 대공자님 뜻대로 하십시오.”
무사가 두려워 떨며 물러나자 대공자는 청년의 앞으로 걸어갔다.
“말해라. 어디에 있느냐?”
무엇을 묻는 것일까?
그런데 청년은 귀찮다는 듯 눈을 감아버렸다.
대공자의 인상이 험악하게 변했다.
“네놈이 감히!”
그는 청년의 살과 뼈를 뚫고 있는 사슬을 마구 휘저었다.
촤악! 촥!
살이 찢어지고 피가 튀었다. 뼈가 극극 긁히는 소리가 섬뜩하게 주변을 울렸다.
“끄으윽!”
그러자 청년은 고통스러운 듯 인상을 일그러뜨린 채 신음을 흘렸다.
대공자가 키득거리며 쇠사슬을 더욱 빠르게 휘저었다.
급기야 그는 가는 송곳과 같은 꼬챙이로 청년의 팔과 다리에 드러난 뼈를 마구 긁어댔다.
“끄으으! 끄아아악!”
결국 청년도 고통에 몸부림치며 비명을 질렀다.
비명을 지르는 와중에도 청년의 두 눈은 대공자를 죽일 듯 노려보았다.
‘분하다······. 내 손에 검만 쥐여져 있었더라도.’
청년이 원통스러운 것은 고문을 당하는 것 때문이 아니었다.
저 가증스러운 대공자를 죽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가족을 죽이고 그의 사랑하는 연인까지 겁탈해 죽인 사악한 존재에게 이토록 무력하게 당해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원통했다.
“말해라! 무극마검경(無極魔劍經)이 어디 있는지.”
그러자 청년은 대답하지 않았다.
오히려 고문을 당하면 당할수록 청년의 눈빛은 무심하면서도 차가워졌다.
“말해! 어서 말하란 말이다!”
“크으으윽! 크아아아악!”
고통에 비명을 지르면서도 청년의 눈빛은 죽지 않았다.
대공자의 고문은 밤새도록 계속 되었다.
그러나 날이 밝을 때까지 대공자는 청년에게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다.
“지독한 놈 같으니!”
그는 속으로 탄식했다.
‘마교 십대무공 중 하나인 천혈마검식이 저놈에게 무참히 깨졌다. 저놈이 익힌 무극마검경만 얻을 수 있으면 내가 무림을 제패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건만.’
그때 무사들이 다가와 말했다.
“대공자님, 저놈을 데려가 참수하라는 문주님의 명령이십니다.”
“데려가라.”
대공자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저주받은 마공은 저놈의 죽음과 함께 영원히 묻히겠군.’
청년은 참수를 위해 형장으로 끌려갔다.
여전히 그의 몸은 사슬에 묶인 상태였지만, 감방 안에 있을 때처럼 완전히 사슬에 둘러싸인 것은 아니었다.
이는 그가 사실상 시체 상태나 다름없다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빌어먹을! 이제야 발뻗고 잘 수 있겠군.”
“맞아. 이놈과 눈빛이 마주쳤던 날은 밤에 꼭 악몽을 꾸었어.”
무사들은 질린 듯한 표정이었다. 그만큼 그들에게 있어 이 청년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단전이 파괴되고 사지가 다 절단 난 상태나 마찬가지이지만, 이 청년에 의해 무림 사대 마문 중 하나인 아수마문(阿修魔門)이 멸망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무림 사대 마문 중 최강이라 불리는 천혈마문(天血魔門)에서 청년을 제압했다. 정면승부가 아닌 가족들을 볼모로 해 스스로 검을 내려놓게 만들었던 것이다.
“근데 이놈 이미 죽은 것 같은데?”
“어젯밤 그토록 지독하게 당했으니 죽을만도 하지.”
“어서 가서 목만 잘라내자고!”
그런데 전신이 피투성이 상태로 질질 끌려가던 청년의 두 눈에 살짝 이채가 번쩍였다.
그를 끌고 가는 무사의 허리에 꽂힌 검.
왼팔을 뻗으면 간신히 닿을 수 있는 거리였다.
오른 손은 잘려서 사라졌고, 왼손은 뼈만 남아 있는 상태지만.
‘큭! 죽기 전에 주어진 마지막 기회인가. 좋아. 모조리 끌고 지옥으로 가주마.’
청년은 마지막 모든 힘을 끌어올렸다.
파괴된 단전에서는 아무런 내공도 끌어올릴 수 없었지만, 그와 상관없이 얼마의 내공을 모을 수 있는 능력이 그에게는 있었다.
손에 검만 쥘 수 있다면 말이다.
청년은 사력을 다해 팔을 움직였고 그렇게 무사의 허리에 차여있는 검까지 이동시키는 데 성공했다.
피로 범벅된 하얀 뼈의 손이 검을 쥐는 그 순간.
“크아아악!”
“으아악!”
그를 끌고 가던 두 명의 무사가 그대로 고꾸라졌다.
언제 베었는지 그들의 가슴에서 피가 터져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그를 가로막는 모든 이들의 몸에서 피분수가 솟구쳤다.
“저럴 수가! 저 놈이 어찌?”
“저놈을 죽여라!”
처음에는 수십 명의 무사들이 달려왔다가 모두 쓰러졌다.
그러자 수백 명의 무사들이 그를 포위해 죽이려 했지만, 그들 모두가 시신이 되어버렸다.
“으으! 저놈은 대체 뭐냐?”
“악마다!”
급기야 천혈마문의 최수뇌부들이 나타났다.
천혈마문의 열두 호법들이 몰려와 청년을 공격했지만 그들 또한 싸늘한 시체로 변했다.
그들과 함께 청년을 공격했던 수천의 무사들도 모두 죽었다.
청년은 쓰러질 듯 위태해 보이면서도 쓰러지지 않았다.
천혈마문의 문주가 청년의 검에 처참히 목이 잘려죽었고, 밤새 청년을 고문했던 천혈마문의 대공자는 수십 토막으로 잘려 바닥에 널브러졌다.
어느 순간 천혈마문의 담장 안에 살아있는 이는 청년 외에는 없었다.
‘이제 끝인가······. 모조리 죽였으니 여한은 없다.’
청년은 희미하게 웃더니 그대로 쓰러졌다.
그리고 두 번 다시 움직이지 않았다.
숨이 끊어진 것이다.
* * *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의 공간.
그런데 이상하게도 무척이나 편안한 공간.
‘여기는 어디?’
그는 분명 죽었다.
그런데 어떻게 깨어난 것일까?
그러던 그는 이곳이 바로 여성의 자궁 속 태(胎) 안이라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놀랍게도 그는 지금 태아 상태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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