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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운몽 1

2018.07.02 조회 605 추천 1


 청운몽 1권
 서장
 
 
 계유년 이월.
 그 해 겨울이 끝날 무렵,
 십 년에 걸쳐 피 바람을 휩쓸고 다니던 혈해지란(血海之亂)은 드디어 끝이 났다.
 - 청석평(靑 平).
 녹색지면이 파란 하늘에 맞닿을 정도로 넓게 펼쳐진 평원 위로 엷은 눈발이 비치고 있었다.
 언제부터 내리고 있었는지 모를 엷은 눈발이 세상을 온통 하얗게 만들며 땅에 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지면 위에는 그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시신들이 널려 있었다.
 대지는 온통 붉게 물들어 있었다.
 한때 풍요와 활기로 넘치던 대지에는 하얗게 죽음이 내려 있었다.
 눈송이는 다 식지 않은 시신들의 몸에 닿자마자 그대로 산화해 버렸고, 수많은 날짐승들은 겨우내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시신들을 파먹고 있었다.
 그 거대한 평원의 한가운데 세 명의 사내들이 자리하고 서 있었다.
 세 사나이는 서로를 향해 검을 맞대고 있었다.
 그들의 표정은 얼음장같이 냉막하여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아니 아무런 표정도 없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무심(無心), 그들의 얼굴에는 조금의 마음도 깃들여 있지 않았다.
 오직 서로를 향한 알 수 없는 살심(殺心)과 살기(殺氣)만이 무더운 날 꽃에서 풍기는 단내처럼 풍겨 나오고 있었다.
 그 모습은 가운데 서 있는 한 사나이를 두 사나이가 둘러싸고 있는 형상이었다.
 가운데 포위되어 있는 사내는 이미 전신은 피투성이였음에도 조금도 기세가 꺾이지 않고 있었다.
 아니, 그 기세만은 세상 누구도 꺾을 수 없을 정도로 대단했다.
 “크흐흐흐, 나 냉백이 너희 애송이들에게 꺾여야 하다니······ 있을 수 없다.”
 냉백은 자신을 둘러싼 두 사내를 향해 비통한 어조로 말했다.
 - 냉백(冷白).
 그는 혈해지란을 일으킨 장본인 혈문주(血門柱) 혈마존(血魔尊) 냉백(冷白)이었다.
 그리고 혈마존 냉백을 포위하고 있는 두 사나이, 중원이 낳은 불세출의 두 기린아.
 - 태양신군(太陽神君) 종무외(宗武畏).
 - 천외검존(天外劍尊) 혁무기(赫茂己).
 이 둘은 중원을 위해 몸을 던졌고, 드디어 혈해지란을 종식시켰다.
 혈마존을 도와 중원을 정복한 후 천하를 사분(四分)하고자 했던 변황무림의 사대패주(四大覇主).
 - 남만독존 (南萬毒尊).
 - 패천마군 (覇天魔君).
 - 오행사동 (五行邪童).
 - 고루마불 (蠱壘魔佛).
 이 자들의 목을 베어 버렸다. 그리고 그들의 괴수(魁首)인 혈마존 냉백과 마주서고 있었다.
 냉백을 끝으로 그들의 대업은 모두 끝이 나 버리는 것이었다.
 비록 이 빠진 호랑이라고 하더라도 호랑이는 호랑이인 법, 그들의 얼굴에는 은근히 긴장의 빛이 맴돌고 있었다.
 혈마존이 비록 피투성이가 되어 구석에 몰려 있기는 했지만, 어찌 가볍게 생각할 수 있단 말인가?
 “좋다! 무공을 겨루어 보자. 너희들이 나의 공격을 받을 수 있는지 보겠다.”
 웅―!
 냉백의 검신(劍身)이 부르르 떨리며 웅후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종무외와 혁무기의 눈은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합공이다!’
 이 순간 둘은 마음속으로 외치고 있었다.
 “타앗!”
 냉백의 몸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우르릉―!
 우레와 같은 소리가 울려 퍼지며 수십 갈래의 빛줄기가 쏟아져 내려왔다.
 냉백의 공세가 종무외와 혁무기의 머리 위로 우박처럼 떨어져 내렸다.
 종무외와 혁무기 역시 허공으로 몸을 날리며 냉백의 공세를 모두 쳐내고 있었다.
 챙챙챙챙―
 냉백의 강기(剛氣)는 사방에서 두 사람을 압박해 왔다.
 “크하하하하! 죽어라, 천단뇌(天斷雷)!”
 냉백의 일갈성과 함께 강렬한 빛이 종무외와 혁무기에게 밀어 닥쳤다.
 마치 하늘을 가르는 번개처럼 엄청난 힘과 함께 밀려오고 있었다.
 화살처럼 퉁겨 올라가던 종무외와 혁무기는 강기에 눌려 위로는 더 이상 올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울컥―!
 그 둘은 목구멍으로 치밀어 오르는 한 덩어리의 선혈을 애써 삼키며 손에 든 검을 신검합일(身劍合一)의 신법으로 퉁겨 나갔다.
 “크하하하, 와라!”
 냉백은 호기롭게 외치며 자신의 검으로 기묘한 호선을 그려 내려치며 두 사나이와 마주쳐 왔다.
 번쩍―!
 우르릉―!
 엄청난 소용돌이가 일었다. 언 땅이 갈라지고 돌과 먼지가 튀어 올랐다.
 콰광―!
 어른 머리통만한 돌들이 강기에 휩쓸려 사방으로 퉁겨져 나갔다.
 세 사람의 몸이 허공에서 격돌하는 순간,
 “크윽.”
 누군가의 입에서 신음 소리가 터졌고, 종무외와 혁무기는 퉁겨져 나와 지면으로 떨어져 내렸다.
 종무외와 혁무기가 몸을 가누려는 찰라, 허공에서 분기가 넘치는 광소가 들려 왔다.
 “크하하하, 너희 같은 애송이들에게 패하다니······. 그러나 나는 지지 않았다. 다만, 이미 대세가 기울었다는 것을 알기에 물러나는 것뿐이다. 그러나 기다려라. 중원의 무인들이여! 내가 돌아올 날을······.”
 그의 목소리는 더욱 멀어지더니 이내 사라져 버렸다.
 “우웩.”
 종무외는 한 움큼의 선혈을 토해냈다.
 둘은 전신을 자신의 선혈로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종무외의 어깨에는 한 자루의 검이 박혀 있었다.
 “베었는가?”
 혁무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심장에 나의 검을 박아 넣었지. 살 수는 없을 걸세.”
 종무외와 혁무기는 서로를 마주 보고는 아무런 말도 없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발길을 돌렸다.
 혈해지란을 주도했던 혈문주 혈마존 냉백은 치명상을 입고 도주를 했다.
 혈해지란을 종식시킨 두 사람, 종무외와 혁무기에 의해 강호는 재편되었다.
 태양신군 종무외는 태양궁(太陽宮)을 건립한 후 강남패주(江南覇主)로 군림하였고, 천외검존 혁무기는 천외검각(天外劍覺)을 건립 한 후 강북패주(江北覇主)로 군림했다.
 그리하여 당금 무림의 하늘인 태양궁과 천외검각이 탄생했다.
 
 
 제1장 탄생과 인연
 
 
 (1)
 
 
 태어남에 귀천(貴賤)이 있으랴.
 모두 하늘의 뜻인 것을······.
 베면 한줄기 선혈이라도 흐를 것 같은 짙푸른 하늘.
 그 아래로 창을 세워 놓은 듯 솟아 있는 거대한 한줄기 산맥이 자리하고 있었고, 산맥 아래로 몇 호의 가옥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일 년을 살아도 근방을 지나는 사람들을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로 외진 산골이었다.
 그 중 한 가옥에서는 아직 저녁을 하기에는 조금 이른 시각임에도 불구하고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 나오고 있었다.
 “아아악······ 아악.”
 자지러지는 듯한 여인의 비명 소리가 벌써 몇 시진째 끊이지 않고 있었다.
 문가에는 한 사나이가 앉아 있었다.
 대단히 난산인 듯 사내의 얼굴은 걱정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제발.”
 사내는 두 무릎 사이로 머리를 파묻었다. 그리고 이 순간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다.
 ‘나중 일이야 어찌 되든 당장은 순산을 해야 할 텐데······.’
 사내는 불안으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그 시각 방 안에는······.
 여인의 전신은 땀으로 축축이 젖어 있었다.
 산고(産苦)에 이미 탈진한 듯 그녀의 전신은 축 처져 있었다.
 외팔에 외눈인 여인의 동공은 너무도 지쳐 흐릿해 보였다.
 산파 역시 발 아래에서 그녀의 사타구니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닦아주며 그녀를 독려하고 있었다.
 “양 다리를 붙잡고 힘을 더 줘. 힘을 있는 대로 주라고.”
 “아흑! 아아악.”
 산파는 피로 얼룩진 소매로 연신 자신의 얼굴을 훔치고 있었다.
 “더······ 더, 젖 먹던 힘까지 쓰란 말이야. 젖 먹던 힘까지······.”
 축 늘어져 있던 여인이 입술을 깨물며 진저리를 치듯이 몸을 떨며 다시 힘을 주었다.
 “아아악!”
 여인의 비명 소리가 약해질수록 문 밖의 사내는 더욱 초조해지고 있었다.
 무릎 사이에 머리를 박고 있는 사내의 눈이 흐릿해졌다.
 ‘그래, 이것도 복연(復緣)이라 할 수 있겠지.’
 사내는 일 년 전 오늘을 생각했다.
 사내의 이름은 갈구운, 불과 오 년 전만 해도 천하의 기재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습니다.
 천하를 뒤엎을 기재, 신이 내린 신동, 이것이 그의 이름 뒤에 따라다니는 수식어였다.
 그러나 그가 십오 세가 되던 해, 갑작스런 불치병을 얻어 시름시름 앓고 있었다.
 약이란 것은 써볼 엄두도 내지 못할 중병이었던 것이다.
 문득 갈구운은 일 년 전 그 날을 떠올렸다.
 ‘그래, 그때 그 일이 아니었으면 지금 난 살아 있지도 못했을 거야.’
 
 
 (2)
 
 
 일 년 전,
 갈구운은 피골이 상접한 몰골로 차갑게 식은 냉방에 드러누워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콜록콜록······ 커억······ 우욱.”
 갈구운의 입에서는 한 덩어리의 각혈이 튀어나와 그의 이불과 옷자락을 적시고 있었다.
 그의 눈에는 이미 죽음의 그림자가 어려 있었다.
 “하아······ 하아.”
 그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멍한 눈으로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버님.”
 그의 목소리는 너무도 한스러워 처절할 정도였다.
 “고질병에 걸려 약값으로 가산을 탕진한 것도 죄스러운데, 장가도 가지 못하고 가문의 대도 끊어지게 되었습니다. 이 불효자식을 용서해 주십시오.”
 그의 눈가에는 눈물 막이 어렸다.
 똑똑똑.
 “으음! 누······ 누가?”
 갈구운은 힘겹게 손을 뻗어 문을 밀었다.
 “아미타불.”
 갈구운의 눈앞에는 거산(巨山)과도 같은 승(僧)이 서 있었다.
 거대한 두 눈은 맹호의 것처럼 번쩍이고 있었고, 그의 키는 웬만한 사람에게 머리 하나를 얹어 놓은 듯했다.
 그 승은 갈구운에게 가볍게 읍을 했다.
 갈구운은 그를 바라보며 곤혹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시주 나오신 탁발승 같으신데······ 죄송합니다. 당장 저녁조차도 이을 양식도 없으니 아무것도 시주할 것이 없습니다.”
 승은 그의 모습을 애잔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대의 증조부께서는 한림학사를 역임하신 갈구벽 대선생이시고, 조부께서는 시학통편(詩學通編)을 저술하시었습니다. 아버님께서는 정오품 대내정무통감을 지내시다 정주성(定州城) 태수의 모함에 걸려 갈씨 세가가 몰락하여 낙향하시어 술로 나날을 지내시다가 독자(獨子) 갈구운이 오 세에 사서삼경을 떼고 팔 세에는 주역의 이치까지 해석해 내는 신동임을 알자 갈씨 세가를 다시 부흥시키기 위해 전력을 쏟으셨으나, 병명조차 알 수 없는 고질병에 걸리자 오직 자식을 살리기 위해 가산을 탕진하고 부친은 화병으로 지난해에 돌아가셨습니다.”
 밑도 끝도 없이 흘러 나오는 그의 뼈아픈 과거, 다시는 귀 기울이기 싫을 정도로 처참한 과거였다.
 “그······ 그만하시오. 제발! 그만하시오.”
 갈구운은 귀를 틀어막았다.
 승의 목소리를 듣지 않으려는 몸부림이었지만 그 움직임은 너무도 미약했다.
 승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그를 묵묵히 바라만 보고 있었다.
 갈구운의 눈에서는 닭똥 같은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어떻게 그토록 본인의 신세를 잘 알고 계십니까? 그······ 그대는 누구시기에······?”
 승은 정중히 배례를 하며 말했다.
 “시주, 십 년의 생명을 연장시켜 주겠소. 또한 혼인할 여인도 중매하여 후손을 이어 갈씨 세가의 옛 영화를 다시 이룰 수 있도록 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황금 한 관을 드리어 시주의 가세를 돌보아 드리겠습니다.”
 갈구운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승을 바라보았다.
 “일면식도 없는 분이 제 한을 풀어 주시겠다니요? 필시 요구하는 것이 있으시겠군요?”
 갈구운의 얼굴은 경직되어 버렸다.
 “조건이 무엇입니까?”
 “아미타불, 과연 단숨에 빈승의 의중을 짚으시다니 지혜가 놀라우시군요.”
 승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다 힘겹게 말을 꺼냈다.
 “장자(長子)를 부처님께 공양하셔야 합니다.”
 
 
 (3)
 
 
 “아아아악.”
 갈구운은 그 승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빙빙 맴돌았다.
 갈구운은 눈을 꼭 감았다.
 ‘어찌해야 할지······.’
 똑똑똑.
 갈구운은 흠칫했다.
 ‘목탁 소리······.’
 어느 샌가 그의 앞에 승이 서 있었다.
 “대사 그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갈구운은 승 앞으로 달려나갔다.
 “나무 관세음보살?”
 갈구운의 얼굴은 일그러져 있었다.
 ‘그래, 그때 그녀를 만났던 그때······.’
 그가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승이 다녀가고 꼭 한 달 뒤였다.
 승이 주고 간 영약에 의해 그의 몸은 하루가 다르게 좋아지고 있었다.
 마치 자신은 아팠던 적이 없던 사람과 같았다.
 그가 잠시 외출을 했다 집에 돌아왔을 때, 그의 집 안에서 인기척이 나는 것이 아닌가? 그가 방문을 열자 의외의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다.
 방 안에는 한 여인이 단정히 앉아 있었다.
 ‘애꾸눈에다 외팔이 여자.’
 갈구운은 너무 놀라 잠시 말을 잊고 있었다.
 “제가 병신이라 합당치 않다고 생각하신다면 지금 이 방을 나가셔도 무방합니다.”
 갈구운은 그제야 비로소 자신의 실태를 깨달았다.
 “아······ 아니오.”
 자신이 그녀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 있단 말인가? 한 여자조차 먹이지 못할 정도로 가난했던 집안이 아니었던가?
 여인은 싸늘한 어조로 갈구운에게 말했다.
 “합방을 하기 전에 약조를 받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말씀하시오.”
 “약조대로 후사를 이을 아들 둘을 낳으면 나는 떠납니다. 내가 누구인지 알려고도 하지 말고, 절대 남한테 발설도 하지 않겠다고 맹세하십시오.”
 갈구운은 곤혹스런 얼굴로 대답했다.
 “좋소, 맹세하리다. 그런데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해야만 하는지 그 이유를 물어 봐도 괜찮겠소?”
 여인은 갈구운의 얼굴을 직시하며 말했다.
 “나는 당신의 터무니없이 좋은 머리를 닮은 아이가 필요해요.”
 “······.”
 갈구운은 그 당시 그녀의 모습이 눈에 밟히는 듯했다.
 산파의 눈이 점점 부릅떠졌다.
 “오오, 나온다. 나와!”
 “아아아아.”
 여인은 이미 탈진한 듯 소리조차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있었다.
 “아아아앙.”
 안에서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자 갈구운과 승의 눈이 크게 떠졌다.
 “앙······ 앙······ 앙.”
 “아들이다! 아들.”
 산파는 신들린 듯 소리쳤고, 산모는 기진맥진해서도 산파의 소리를 듣자 만족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됐다.’
 갈구운은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안색이 어두워졌다.
 자신의 자식을 남에게 내어 주는데 느긋한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승의 얼굴에는 만족한 미소가 걸렸다.
 “아미타불.”
 얼마 후, 승과 여인과 사내는 방 안에서 마주하고 있었다.
 여인은 승의 손에 안겨 조용히 잠들어 있는 아이를 바라보더니 애처롭게 말했다.
 “부디 아이의 이름을 천학(天鶴)이라 지어 주세요.”
 승은 다소곳이 읍을 했다.
 “아미타불.”
 승은 아이를 안고 아무런 표정조차 짓지 않았다.
 승은 읍을 해 보이고는 조용히 말했다.
 “소승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그럼······.”
 그는 가볍게 읍을 하고는 다급히 나갔다.
 그 모습이 너무도 기계적이었기에 부모와 자식이 이별하는 장면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냉랭하기만 했다.
 “그럼, 소승은 이만.”
 파앗―!
 승은 한줄기 호선이 되어 서북쪽을 향해 사라져 갔다.
 
 
 (4)
 
 
 드르르륵 콰앙―!
 바람 한 점 없는 하늘이었다.
 날벼락이라도 떨어지는 것인가?
 엄청난 소리가 멀리에서부터 다가서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벌판을 가로지르는 한 개의 항아리가 있었다. 웬만한 어른 몸통만한 항아리는 지면에 걸리는 것은 마치 모래성을 부수듯이 부숴 버리고 어딘가를 향해 빠르게 다가가고 있었다.
 그보다 더욱 이상한 일은 그 뒤를 따르고 있는 관이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운반되어지는 듯한 검은 관은 허공을 가로질러 날아가고 있었다.
 이는 일반 사람들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괴사 중의 괴사였다.
 그러나 이 순간 또 다른 괴사가 벌어지고 있었다.
 관이 살아 있는 듯 말을 하기 시작했다.
 “이놈아! 빨리 굴러라. 늦으면 죽도 밥도 안 된다.”
 그러자 지면을 구르고 있는 항아리에서도 말이 새어 나왔다.
 “그렇지 않아도 잘 알고 있으니까 보채지 마라.”
 두 목소리는 마치 썩은 시체의 목구멍에서 흘러 나온 듯 기괴한 소리였고, 듣기가 고통스러울 정도였다.
 콰앙―!
 항아리에서 말이 새어 나오는 순간, 항아리의 앞을 가로막던 바위 하나가 박살이 나며 사방으로 흩어져 버렸다.
 그런데 흙으로 빚은 항아리는 조금의 상한 흔적도 보이지 않았고 더욱 빠르게 앞으로 달려나가고 있었다.
 “늦으면 줄초상난다. 어서 빨리······.”
 “크흐흐흐, 알았다니까. 그런 말 안 해도 이미 가랑이 사이 방울이 울릴 정도로 달려나가고 있다.”
 콰르르릉―!
 관도 위에는 아이를 안은 승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는 갈구운의 집에 나타났던 승으로 그의 품에는 천학이 안겨 있었다.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청명한 하늘, 그런데 저 멀리 관도 위에서 거대한 흙먼지를 일으키며 무언가가 빠르게 승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허어! 저것이 무엇인가? 아미타불······.”
 그런데 점차 가까워질수록 모습을 드러낸 그것은 하나의 항아리와 관이었다.
 승의 얼굴에는 경악이라 말해야 할 표정이 어렸다.
 쿠웅―! 쾅―!
 근 백여 장을 순식간에 날아온 관과 항아리는 승의 앞에 내려섰다.
 관은 지면에 한 치 가량이 박혀 우뚝 섰으며, 항아리 역시 허공에 둥둥 떠 있었다.
 항아리의 주둥이에서 한 사람의 머리가 쏙 올라왔다
 ‘기괴쌍마란 말인가?’
 - 기괴쌍마(奇怪雙魔), 석관홍과 부도옹.
 석관홍, 햇볕을 쬐면 피부가 녹아 내리는 천형(天刑)에 걸려 오직 관 속에서만 살아야 하는 인물로 천 구의 시체에서 흡취한 시독(屍毒)으로 연성한 음풍투골장(陰風透骨掌)은 스치기만 해도 반 시진 내에 한 줌의 핏물로 화해 버리는 무서운 무공이다.
 이는 강호 십대 마공 중 하나로 불리고 있다.
 부도옹, 태어날 때부터 척추가 없던 부도옹은 살기 위해 천하에서 가장 질기면서 독을 지니고 있는 흙인 색혈토(色血土)로 만든 항아리 속에서 생활해야 했다.
 그 역시 색혈토의 독을 흡수해 석관홍과 필적할 정도의 독공인 양천독장(陽天毒掌)을 익혔다.
 부도옹 역시 마도 십대 고수의 한 사람으로 불리고 있다.
 털썩―!
 승은 이 괴이한 사건에 학질이 걸린 듯 부들부들 떨며 자리에 주저앉아 열심히 불호를 외우기 시작했다.
 “나무아비타불, 과······ 과······ 관이 날아다니고, 항아리에서 귀······ 귀······ 귀신이 나오다니······. 부처님, 제발! 한낮인 지금 보는 것이 꿈이기를······.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그러자 항아리의 주둥이에서 부도옹의 얼굴이 쑥 튀어나왔다.
 부도옹의 얼굴은 원숭이의 모습처럼 털북숭이였으며, 입술은 뒤집어지고 코와 붙어 있어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이 부도옹을 보고 웃을 사람이 당금 무림에 누가 있을 것인가?
 부도옹은 싸늘하면서도 기괴한 웃음을 터뜨리며,
 “오호호홍, 역용(易容)을 한 혈문의 문상 이연도의 연기력이 이토록 좋다는 것을 그 누가 알까?”
 부도옹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관이 들썩거리고, 관 안에서 듣기에도 소름이 끼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카카, 이연도! 연기력뿐만 아니라 내숭 떠는 데도 일가견이 있구나.”
 순간, 이연도라 불린 승의 얼굴이 살기가 등등했다.
 ‘대체 이놈들이 나를 어떻게 알았을까? 그렇다면 할 수 없지······.’
 승의 얼굴에는 살심(殺心)이 피어 올랐다.
 이때 그들과 과히 멀리 떨어지지 않은, 참새 한 마리도 앉지 못할 것 같은 얇디얇은 나뭇가지 위에 한 사내가 기대어 앉아 있었다.
 기이한 것은 나뭇잎 하나 달려 있지 않은 곳에 사내가 앉아 태연히 술을 마시고 있었음에도 이중 어느 누구도 그의 모습을 발견하는 사람이 없었다.
 “케켈, 두 놈 헛심만 쓰다 말겠군.”
 사내는 기괴쌍마를 향해 비웃으며 말했다.
 그의 한가한 모습과는 달리 승과 기괴쌍마의 사이에서는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부들부들 떨던 승은 어느새 엄청난 기도를 보이며 일어서 있었다.
 승의 몸에서는 마치 태산이라도 무너트릴 듯한 무형의 살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기괴쌍마께서 나를 막아선 이유는?”
 “오호호홍, 이제야 실토를 하는군, 그래.”
 “네 품의 아이를 우리에게 넘기고 우리를 따라 가야만 한다.”
 기괴쌍마는 승의 무서운 살기를 마주하면서도 여유로운 미소를 띠고 있었다.
 ‘역시 아이였군. 귀신도 몰라야 할 이 사실이 대체 어떻게 새어 나간 거지······?’
 승은 여유 있는 미소를 흘리며 말했다.
 “아미타불, 천하의 기괴쌍마께서 갓난아기를 원하다니 이해가 되지 않는구려?”
 그러나 여유로운 미소와는 달리 승의 이마에서는 손가락 마디만한 땀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천외검각(天外劍閣)의 핏줄을 혈문으로 데려가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흠칫―!
 승의 몸은 눈에 보일 정도로 강하게 떨렸다.
 심한 마음의 동요를 보이고 있는 것이었다.
 이는 천하에서 불과 몇 사람만이 알고 있는 일이 아니었던가?
 ‘이럴 수가? 모든 것을 알고 있지 않은가?’
 승의 얼굴은 심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천하에 두려운 것이 없던 기괴쌍마 두 분 선배께서 천외검각의 일을 돌봐 주고 계시는 줄은 몰랐구려?”
 “오호홍, 우리도 네가 중 노릇할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네가 어찌 우리 일을 알겠느냐?”
 징그러운 웃음이었다.
 “아미타불, 두 분 선배께서 천외검각의 일을 돌보시니 필시 이 후배는 천외검각으로 가야 되겠군요.”
 승은 전신의 공력을 풀며 공손히 읍을 해 보였다.
 순간, 기괴쌍마의 얼굴에서는 이체가 흘렀다.
 “아니, 그댄 굳이 천외검각까지 갈 필요가 없어요.”
 그때였다. 한쪽의 바위 뒤에서 한 여인이 걸어 나왔다.
 - 탐화봉(貪花鳳) 혁교연.
 천하에서 가장 꽃을 사랑하는 여인, 그녀의 손에는 항시 꽃바구니가 들려 있다.
 탐화봉이 가꾸는 꽃은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으나 또한 무섭지 않은 것이 없으니, 그녀가 뿌리는 화향(花香)은 곧 독향(毒香)이었다.
 천하에서 무서운 세 여인 중 탐화봉 혁교연은 천외검존 혁무기의 둘째 딸이기도 하다.
 “탐화봉!”
 그 여인을 보는 순간, 승의 입에서는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내 동생은 어디 있지요?”
 그녀는 스스로 물음을 던져 놓고도 자신이 말을 건넨 것이 아니라는 듯 꽃을 들어 향을 음미하며 딴청을 부리고 있었다.
 흔히 여인을 꽃에 비유를 한다.
 그러나 이 세상의 단 한 사람, 탐화봉 혁교연에게서는 너무도 많은 복잡한 향이 품어져 나왔다.
 난초의 청초함에서부터 장미의 화려함, 때로는 국화의 은은함까지······. 그녀의 작은 손짓 하나까지 너무나 많은 느낌을 주는 여인이었다.
 “나를 가로막을 정도면 이미 그녀는 그대의 손에 있을 텐데 왜 묻는 것이오?”
 승은 담담히 말했다.
 “그건, 내가 알고 있는 곳에 있는 계집은 내 동생이 아니고, 그대가 안고 있는 아기도 내 동생이 낳은 아기가 아니에요. 그대 또한 혈문 문상 이연도가 아니고요.”
 승은 흠칫 했다.
 “어떻게 알았소?”
 “평소의 이연도는 지금처럼 자신의 흔적을 드러내 놓고 ‘나 여기 있소’ 하고 광고할 사람이 아니지요.”
 탐화봉이 요요하게 웃음 지으며 말했다.
 승은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크하하핫, 탐화봉의 지혜로움은 혈문 재건에 있어 많은 참조가 될 것이오.”
 크아아악―!
 갑자기 승의 몸이 부풀기 시작했다.
 “파혈공(破血功).”
 탐화봉은 날카롭게 소리쳤다.
 - 파혈공(破血功)
 이것은 사파의 무리들이 동귀어진하기 위해서 만들어 놓은 무공 중 하나였다.
 인간의 피와 살이 암기가 되는 무공으로 자신의 모든 잠력을 격발시켜 몸을 극도의 긴장 상태로 몰아넣는다.
 만약 파혈공이 시전 되었을 때 외부에서 충격이 오면 방원 십 장 안팎은 모두 박살이 나 버린다.
 그러나 잠력을 일으켜 몸을 태우는 것인 만큼 그 시전 시간이 짧고, 이 무공은 무위로 돌아간다.
 그러나 기괴쌍마는 움직이지 않았고, 부도옹은 오히려 그에게 다가가려고 했다.
 “오호홍, 자결을 한다고 오늘의 화를 피할 수 있을 것 같으냐?”
 부도옹이 승을 저지하려는 찰라,
 “소용 없으니 그냥 두세요.”
 “호홍, 그럼 이대로 놔두어야 한단 말인가요? 둘째 아가씨······.”
 “그 놈은 아는 것이 별로 없을 거예요. 호호호, 지금 그는 화약고와도 같아요. 건드리면 당신이나 나나 살아남지 못해요. 그러나 건드리지 않으면 무용지물이지요.”
 탐화봉은 싸늘하게 웃고 있었다.
 “으윽······..”
 승의 몸은 점차 제 모습을 찾아갔고, 그의 목에서는 한 덩어리의 흑혈이 뱉어져 나왔다.
 그리고는 스르르 무너지더니 그대로 절명(絶命)해 버렸다.
 “지독한! 비밀을 지키려고 스스로 혀를 끊고 독단을 깨물어 자결해 버리다니, 혈문은 정말 제자를 잘 키우는군요. 후우, 두 분 헛고생시켜서 정말 죄송해요.”
 관에서는 석관홍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노부는 아직도 영문을 잘 모르겠소이다, 둘째 아가씨.”
 “오호홍, 노부도 그래요.”
 탐화봉은 자신의 꽃바구니에서 한 송이의 꽃을 들어 냄새를 맞더니,
 “결국 우리는 혈문 문상 이연도에게 놀아나고 만 거예요. 도저히 찾지 못했던 내 동생의 흔적과 이연도를 이제 와서 찾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일부러 흔적을 흘렸기 때문이에요. 그가 무엇 때문에 모습을 드러냈겠어요. 천외검각의 핏줄로 천외검각에게 검을 겨누겠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지요. 원한을 품고 종적을 감추었던 내 동생, 하령의 뜻이기도 할 테고······.”
 기괴쌍마는 난감한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때 나뭇가지에 앉아서 그들의 수작을 모두 본 사내는 술을 한 모금 마시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의 발 아래에는 어린아이도 부러뜨릴 수 있을 정도의 나뭇가지가 한들거리고 있었고, 사내 역시 그와 함께 몸이 흔들리고 있었다.
 “클클클, 이연도가 무슨 수작을 부리나 슬슬 알아보아야겠군.”
 그리고 사내의 말소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그의 모습은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그의 출현을 알아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5)
 
 
 청평산(淸平山),
 산이라기보다는 거대한 바위들이 삐죽삐죽 솟아 있는 모습이었다.
 그 이름과는 달리 도검(刀劍)을 세워 놓은 듯 날카롭기 짝이 없었다.
 이곳은 인적이 드문 정도가 아니고, 짐승마저도 이곳에는 드나들지 않을 정도로 외진 곳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산과 산의 골짜기 사이에는 덩굴로 엮어 만든 다리가 하나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다리 안쪽에는 몇 채의 통나무집이 서 있었는데, 잡목 하나 찾아보기 힘든 이곳에 누가 통나무집을 지었을까 싶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힘을 쓰란 말야, 이 자식아!”
 그 통나무집들 중 한 곳에서 한 여인의 고함 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
 건물 안에서는 스물두서넛 정도의 여인이 털이 더부룩한 한 중년인과 운우지락(雲雨之樂)을 나누고 있었다.
 “허억! 허억!”
 사내는 이미 초주검이 되어 여인의 젖퉁이를 물어뜯고 있었고, 그와 반대로 여인은 싸늘한 눈빛으로 사내를 노려보며 몸을 맡기고 있었다.
 그런데 다른 한 통나무집에서는 서너 명의 여인들이 열 명이 넘는 아이들에게 젖을 먹이고 있었다.
 응애―! 응애―!
 그 중 한 여인이 한 아이를 데리고 젖을 물리며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녀석들······ 젖을 먹여 줄 테니 조금만 기다려라. 어이구, 녀석 착하기도 하지. 젖만 주면 좋아하니 틀림없는 장군감이다. 장군감······.”
 그 여인의 옆에 여아를 안고 있던 소명이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언니, 이 계집애는 젖을 배불리 먹여도 늘 짜증이니 나중에 뭐가 될까?”
 “낸들 아니? 뭐가 되든 제 녀석 성질대로 되겠지······.”
 그러자 소명은 입을 삐죽거렸고, 여인들은 그 모습에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하······.”
 휘이이잉―!
 삐걱―! 삐걱―!
 바람이 불자 덩굴로 만들어진 다리가 심하게 요동을 쳤다.
 그런데 한 승이 나타나 다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모습은 이연도로 오인 받아 관도에서 자결한 승의 모습과 판에 박은 듯 똑같지 않은가?
 바로 이 자가 이연도였다.
 이연도의 손에도 역시 한 아이가 들려 있었다.
 이연도는 미친 듯이 허공에서 요동하는 다리 위로 발걸음을 옮겼다.
 몹시도 위험해 보이는 다리였다.
 원숭이가 아니고는 건널 수조차 없을 것 같은 다리를 이연도는 마치 지면을 걷듯이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고, 요동하던 다리는 허공에서 보이지 않는 손이 잡아 주는 듯 그 형태를 유지하며 움직이지 않았다.
 “혈문천하(血門天下).”
 허공에서 누군가의 음성이 들려 왔다.
 그러자 이연도 역시 허공을 향해 외쳤다.
 “혈문위전천하(血門威電天下)!”
 “위패를 보여 주시오.”
 이연도가 허리춤에서 혈문이라 적힌 나무 조각을 들어 보였다.
 그러자 허공에서 다시 목소리 들려 왔다.
 “이제 형당주와 초혼사자만 돌아오면 되는군.”
 “그들도 곧 올 때가 되었네.”
 스르르륵.
 이연도가 그렇게 말하는 순간, 허공이 갈라지면서 한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도복(道服)과 도관(道冠)을 쓴 한 사내가 나타났다.
 그의 모습은 너무도 탈속하여 마치 속세를 벗어난 도인(道人)처럼 보였다.
 “이 놈을 키워 혈문 재건에 성공한다고 장담해도 앞으로도 이십 년 이상의 세월이 필요하군, 그래.”
 이연도는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아이는 노곤한 듯 잠들어 있었다.
 “백 년이 걸려도 해야 할 일이지. 아직 뼈도 아물지 않은 이 녀석의 근골을 살펴보게나.”
 이연도가 아이를 던지자 도인은 부드럽게 아이를 받았다. 도인은 아이를 받자마자 아이의 전신을 주물렀다.
 “허어! 태어난 지 백 일도 안된 놈의 근골이 무쇠와 같이 단단하면서도 마치 버들잎처럼 유연하다니, 먼저 데려온 일곱 녀석들도 근세에 보기 드문 근골들이었거늘 십 년만에 하나 볼까 말까한 근골이군.”
 이연도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백 년에 하나 볼까 말까한 근골일세.”
 “어쩌면 너는 혈문수호상(血文守護象)의 혈룡안(血龍眼)을 깨울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도인은 아이를 이연도에게 다시 건네며,
 “그들도 왔으니, 열 명의 아이가 다 모였군.”
 이연도가 돌아보니 서너 살짜리 어린아이보다도 작은 노인과 그와는 대조적으로 보통 어른보다도 머리 하나쯤은 더 달아 놓은 듯 보이는 노인이 다리의 저편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들은 형당주와 초혼사자였다.
 작은 이는 형당주로 혈문에서는 고문과 문안의 규율을 담당하고 있었고, 초혼사자는 살수들의 훈련을 담당하고 있다.
 “혈문천하.”
 도인이 입을 열자 두 사람은 품에서 각기 다른 나무 조각을 던져 도인에게 건넸다.
 그리고 합창을 하듯이,
 “혈문위전천하.”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 조금의 얼굴 표정도 없었다.
 그러나 더욱 이상한 것은 그런 두 사람을 보고도 아무런 거부감이 없는 이연도와 도인이었다.
 “오랜만이구려.”
 두 사람은 가볍게 인사를 하며 그의 옆을 지나쳤다.
 “인사는 차후에 드리겠습니다.”
 키가 작은 노인이 가볍게 인사하며 옆으로 스쳐 지나갔다.
 “먼저 가겠소!”
 그들이 다리를 건너 사라지자, 이연도도 몸을 날려 건너편으로 가 버렸다.
 그러자 홀로 남은 도인은 씁쓸히 읊조렸다.
 “제발, 세 아이 중 하나가 우리가 찾던 혈령마맥(血靈魔脈)을 타고난 아이였으면 좋겠군. 숨어 사는 것도 지겨우니······.”
 도인은 저벅저벅 다리를 건너오더니 다리를 돌아보며,
 “이제 이 다리도 필요 없겠군.”
 파앙―!
 우지직―!
 도인의 일 권에 다리는 종이 조각처럼 부서져 버렸다.
 ‘이제 드디어 시작인가? ’
 도인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돌아섰다.
 
 
 제2장 선택(選擇)
 
 
 (1)
 
 
 누가 미래를 점칠 수 있으랴.
 생사(生死) 길흉화복(吉凶禍福)이 나의 뜻이 아니니······.
 쿠웅―!
 침상에서 여인과 미친 듯이 몸부림치며 운우지락을 나누던 사내는 침상의 아래로 내동댕이쳐졌다.
 “하항! 요즘 젊은 놈들······ 대체 쓸 만한 놈들이 없다니까.”
 여인은 발가벗은 채 침상에서 일어나 한쪽에 장식되어진 커다란 동경 앞에 앉아 머리를 빗어 올리며 짜증어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침상 아래로 굴러 떨어진 사내는 정기를 모두 탈진한 듯 퍼렇게 질려 있었으며, 숨을 쉬지 않고 있었다.
 이때 이연도가 들어서며 말했다.
 “너의 주안술(朱顔術 ―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젊은 사내의 정혈을 흡수하는 사술)은 갈수록 대단해지는구나!”
 그런데 여인은 부끄럽지도 않은 듯 땀으로 번들거리는 알몸을 드러내 놓고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았고, 승복을 입은 이연도 역시 그녀의 그런 모습을 보고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놈이 어찌나 끈적끈적한 눈길을 보내던지, 젊은 녀석 소원 풀이 해준 것뿐이우. 죽어도 좋다기에 놀아준 것 뿐, 난 죄 없수. 마지막 녀석이우?”
 이연도는 떨떠름한 모습이었다.
 “그렇다.”
 “형당주와 초혼사자도 돌아왔겠군요?”
 여인은 아이를 빼앗듯이 끌어안으며,
 “이 녀석, 아주 잘생긴 것이 크면 계집들 꽤나 잠 못 자게 만들겠는걸.”
 여인은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방글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연도의 얼굴에 비치는 어두운 그림자가 있었다.
 “귀여운 내 새끼들, 아비가 유체이탈대법(流體離脫大法)을 펼치고 돌아올 때까지 아비의 신체를 지켜야 한다.”
 가짜 이연도의 죽음을 지켜 보던 사내였다.
 그는 멀리 산의 건너편에 자리한 통나무집들을 바라보며 한 평평한 바위 위에 앉아 있었다.
 사내의 팔에는 두 개의 머리를 가진 쌍두사(雙頭蛇) 한 마리가 혀를 내밀고 있었고, 그 사내의 어깨에는 하얀 독수리가 앉아 있었으며, 사내의 옆으로는 금수(禽獸)의 제왕이라는 호랑이가 엎드려 있었는데 그 크기가 어지간한 황소만 했다.
 그런데 세인들이 이 모습을 보았다면 능히 거품을 물었을 것이다.
 - 신혈쌍두사(神血雙頭蛇).
 - 백향천리응(白香千里鷹).
 - 파황백호(把皇白虎).
 신혈쌍두사,
 말 그대로 두 개의 머리를 가진 뱀이다.
 그러나 이 뱀의 독은 너무나도 치명적이어서 한 방울의 독으로도 마을 하나쯤은 몰살시킬 수 있는 독물 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독물이었다.
 백향천리응,
 이는 매와 독수리의 중간인 잡종으로 용맹하기가 범과 비유 할 수 없으며, 그 부리와 발톱이 날카로워 철판도 능히 뚫을 정도였다.
 파황백호,
 호랑이 중에서도 우두머리로 지금도 산악지방의 사람들은 이 백호를 신수(神獸)라 하며 떠받들고 있다.
 이런 기괴한 금수를 지닌 사내는 품안에서 작은 통 하나를 꺼내더니 그곳에서 한 묶음의 나무막대기들을 허공에 뿌렸다.
 그런데 나무막대기들은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허공에서 쫙 펴지더니 거석을 뚫고 들어서며 꼿꼿이 서 버렸다.
 그러자 그 사나이가 앉아 있던 자리가 갑자기 흐릿해지면서 연한 안개에 뒤덮이는 것이 아닌가?
 사내는 손으로 결계를 맺으면서 읊조리기 시작했다.
 “천령절영 원보장생 태현지일 신침일화 만독잠형 급급여울령섭······.”
 그런데 그가 시전하고 있는 것은 신비스러운 공포의 존재로만 알려진 배교(北敎)의 술법이었다.
 이 자는 배교의 교주인 추강이었다.
 - 교주 추강(秋康).
 후한 말, 황검도 장각의 태평도교(太平道敎)로부터 유래된 부수(符水-부적과 물)를 근간으로 시작되어 온갖 이술(異術)과 주술(呪術)이 발전해 마침내 섭혼대법, 강신술, 유체이탈대법 등 도가비전을 바탕으로 완성되었다.
 그로 인해 추강은 배교도들에게는 신으로 불리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이곳에 모습을 드러내다니······.
 시간이 흐를수록 추강의 몸 주위에 하얀 기운이 서리기 시작했다. 다음 순간, 그 기운은 원을 이루더니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그런 후, 이곳에는 생기 잃은 육신과 세 가지의 동물만이 남아 있었다.
 
 
 (2)
 
 
 거대한 두 개의 악마상이 자리하고 있는 얼음 동부, 기이하게도 바닥에서는 웬만한 바위도 얼려 버릴 것 같은 냉기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두 신상 사이에는 수정으로 만들어진 관이 하나 놓여 있었다.
 크르르르―!
 석문이 열리고 네 명의 사내와 한 여인이 들어섰다.
 앞선 이연도와 형당주, 그리고 여인의 품에는 아이들이 안겨 있었다.
 그들은 관 위에 아이들을 올려놓았다.
 관 앞에는 단이 만들어져 있었고, 단 위에는 맑은 술 한 대접과 귀신을 부르는 귀혼검(鬼魂劍)과 살아 퍼덕거리는 닭, 한 자루의 촛불과 지전이 한 덩어리 놓여 있었다.
 오 인은 엄숙한 모습으로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 오 인 누구도 추강의 탈혼한 혼백이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는 못했다.
 ‘이연도 역시 짐작대로 혈문의 재건을 꿈꾸고 있었구나.’
 여인은 앞서 나서며 기묘한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지장군 대보살 동행용왕, 서천왕모 혈문을 수호하시는 수호령들이시여, 답하소서! 수호령들이여, 답하소서!”
 여인은 닭의 목을 베어 피를 단의 주변에 뿌렸고, 술을 한 모금 머금고 검에 뿜어낸 후, 지전을 불태우며 검무(劍舞)를 추었다.
 발가벗고 춤을 추는 그 모습은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혈문의 재건을 위함뿐만 아니라, 혈마존의 환생을 위한 혈령마맥의 후사를 이을 육체를 찾기 위함이었구나.’
 추강은 자신의 형태를 만들어 허공을 너울너울 날아다녔다.
 “열 번째 아이입니다. 혈문의 제자인지 아닌지 답해 주소서.”
 “꿀꺽.”
 ‘혈룡안이 깨어나 빛을 발할 것인가?’
 다른 네 사람의 긴장된 얼굴이 신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신상의 이마에는 붉은빛의 보석이 신비한 빛을 내보이고 있었다.
 “오오!”
 그런데 신비한 빛만을 발사하던 혈룡안에서 실 가닥처럼 가는 빛이 한 아이를 향해 뻗어 나왔다.
 순간, 다섯 사람의 입에서는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여인은 닭의 피를 입에 물더니 검에 품어 대고는 지전을 뿌리며 관 주위를 돌기 시작했다.
 “푸우······.”
 마치 신들린 듯한 그 모습은 격렬한 싸움을 보는 것 같았다.
 그녀의 동작과 함께 그녀의 입에서도 더욱 많은 주문들이 쏟아져 나왔다.
 “천장군대보살, 서해용왕, 동방선군 혈문을 수호하시는 수호령들이시여, 답하소서······.”
 번쩍―!
 두 혈룡안에서 뿜어져 나온 빛은 한 아이의 몸에 닿았고, 다섯 사람의 얼굴에는 감격의 빛이 비쳤다.
 “오오! 드디어 혈문 수호상의 두 혈룡안이 다 선택하였도다.”
 여인은 그 아이를 들어올리며 외쳤다.
 “드디어 혈령마맥의 후사를 이을 신체를 지닌 아기를 보내 주셨도다.”
 추강의 혼은 그들의 작태를 보고는 웃음을 터뜨렸다.
 “크켈켈켈, 재미있군, 재미있어.”
 그런데,
 우우우웅.
 또다시 두 신상의 혈룡안에서 빛이 터져 나오며 다른 두 아이를 비추는 것이 아닌가?
 “아니, 왜 또······?”
 “독천협도 택하신단 말인가? 이······ 이럴 수가······ 장천까지!”
 다섯 사람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러나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미친 듯이 웃어대는 인물이 있었으니······.
 ‘혈마존의 육신은 죽고 혼백은 유부에 갇혔어도 욕심은 여전하구나. 크카카카!’
 “셋을 모두 혈령마맥의 후사로 선택하다니, 지금 상황을 기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군요.”
 여인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러자 형당주가 그녀를 향해,
 “당연히 기뻐해야 할 일이오. 셋 중 가장 뛰어난 놈을 최후로 선택하면 되니까 말이오.”
 그러자 여인이 신경질적으로 대답하며,
 “그걸 누가 몰라요? 차후 우열을 가릴 수 없이 뛰어나다면 자중지란(自中之亂)이 일어나고 말아요.”
 “그럼 두 놈은 죽여 버리면 되잖아.”
 여인의 입이 딱 벌어졌다.
 “말도 안돼, 어쩌면 좋죠?”
 여인은 이연도를 향해 구원의 눈길을 보냈다.
 그러자 이연도는 앞으로 나서며,
 “어차피 혈령마맥의 후사를 이을 놈은 혈마존의 부활을 위해 무공을 가르치지 않을 테니까, 본무상이 데려온 아이를 삼으면 되고······. 두 분이 데려온 아이들 중에서 분명 우열이 가려질 테니 휘어잡을 능력이 없으면 도태되겠지.”
 여인은 방긋이 웃으며 말했다.
 “오라버니의 말씀을 들으면 언제나 쉽게 문제가 해결 된다니까요.”
 “그러나 오 년 전, 혈해지란 때는 실패했지.”
 입을 열지 않던 초혼사자가 입을 열었다.
 그러자 빙동 안은 더욱 싸늘해지는 듯했다.
 “······!”
 이연도는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런데 이 순간 또 다른 결심을 한 사람이 있었으니······.
 ‘켈켈, 이연도! 네가 데려온 천학이란 아이를 혈마존 환생의 재물로 택했단 말이지. 좋아! 너희들 땅을 치고 후회하게끔 이 배교지존께서 만들어 주마.’
 그가 말을 하는 사이, 오 인은 석상을 향해 오체투지를 하고 있었다.
 “혈문의 지존이신 혈마존이시여······!”
 여인은 눈물을 흘리며 피를 토하듯 말했다.
 “드디어 혈마존께서 환생하실 수 있는 혈령마맥의 후사를 이을 신체를 지닌 아이들이 도착했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듣는 이의 애간장을 녹일 정도로 애절했다.
 “이십 년, 이십 년이 지나면 차디찬 저주의 유부(幽府)에서 더 이상 원한의 호곡성을 터뜨리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녀는 이마를 바닥에 찧으며 외쳤다.
 그녀의 목소리에 맞춰 주위에 엎드려 있던 사람들의 눈에서도 눈물이 끊이지 않았다.
 
 
 (3)
 
 
 어느새 청평산에는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다.
 “하하하······.”
 통나무집들 중 가장 큰 집 안에서는 많은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들려 왔다.
 안에서는 한창 아이들의 돌잔치가 진행되고 있었다.
 상 위에는 검(劍)과 도(刀), 적(笛)과 금(金), 한 뿌리의 삼(蔘), 그리고 꽃과 암기, 보기에도 끔찍한 독물과 한쌍의 부드러운 장화, 그리고 책과 붓이 놓여 있었다.
 “무엇을 집든 그 집는 것이 너희들의 장래를 결정할 것이다. 자, 어서 무엇이든 마음에 드는 것을 집어라.”
 여인이 말하자 천학은 제일 먼저 아장거리면서 걸어가더니 책과 붓을 주워 드는 것이 아닌가?
 “혈령마맥의 후사를 이을 녀석이 책과 붓을 집다니 뜻밖이군요?”
 여인은 의외라는 듯이 말했다.
 그러자 이연도가 천학을 바라보면서,
 “환생하실 혈마존께 바칠 육신이라 어차피 무공을 가르치지 않을 유일한 녀석이었으니까 올바른 선택을 한 거다.”
 이때 장천이 나서며 식탁으로 기어가더니 도(刀)를 집는 것이었다.
 “아! 저 녀석은 도(刀)가 운명인가 보군요.”
 여인의 입에서 낮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런데 천협이 뒤따라 나와 도를 놓고 주먹질을 하기 시작했고, 서로 도를 집기 위해 싸우던 아이들은 기어이 울음을 터뜨려 버렸다.
 아아앙······.
 그러자 그것을 바라보던 형당주가 호탕이 웃으며,
 “하하하하! 이놈들, 호전성을 타고났구나. 호전성이야말로 혈문을 재건하는데 가장 이상적인 성격이지. 그래, 네가 먼저 잡았으니 네 길은 칼이다.”
 그러자 이연도의 품에 있는 천협은 장천이 갖은 도를 가리키며 더욱 크게 울어댔다.
 “이 녀석, 칼보다 더 좋은 것을 줄 테니 기다려라.”
 문상 이연도는 아무도 잡지 않은 검을 경공으로 들어올려 자지러지게 울고 있는 천협의 손에 올려놓았다. 그러자 언제 울었냐는 듯 울음을 뚝 그치는 천협이었다.
 “네놈만한 끈질긴 호전성이라면 칼보다는 검이 더 합당하지.”
 이때 또 다른 여아가 기어오더니 적(笛)을 주워 들며 호흡 할 줄도 모르면서 입에 넣고 부는 시늉을 하며 즐거워했다. 그 모양새를 본 염선랑은 그 여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래, 너는 음공을 익혀야 될 운명으로 지어졌다.”
 그 후, 열 명의 아이들은 모두 상 위에 널린 물건들을 하나씩 주워 들었다.
 그로 인해 그 아이들의 운명이 모두 주어졌으며, 이 열 명의 아이들로 인해 중원 무림은 거대한 태풍에 휘말리게 되는데······.
 이연도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먼저 책을 잡고는 연신 책을 빨아대는 천학을 보다가 여러 아이들을 돌아보며 생각했다.
 ‘그래, 천학! 혈마존께 네 육신을 바치기 전 황궁에 들어가 한 가지 물건을 가져와야 할 운명이니, 네 운명은 과연 선택 당했도다.
 장천! 너의 운명은 칼[刀]의 길이니, 네 칼은 혈월(血月) 속에 숨은 악마의 칼이 될 것이다.
 천협아! 너는 운명이 네 손에 검(劍)을 쥐어 준 순간, 네 검은 악마의 이빨이 되어 천하의 목젖을 물어뜯어 놓을 것이다.
 네가 익힐 음공은 흔적 없는 마수(魔手)로 파열시킬 것이다.
 암기를 택한 너의 몸에는 삼십육 종의 암기가 숨겨져 있어 서른여섯 개의 손을 가진 아수라로 불릴 것이고······.
 모든 사내들이 너의 치마폭이 휩싸일 것이다. 독날하여 독화(毒化)란 이름은 오직 너만이 가지리라.
 네 손의 침(針)은 살려 달라는 자는 죽일 것이요, 죽겠다는 자는 살려낼 것이니 역혈수(逆血手)는 너를 위한 이름이다.
 천하의 상권(商權)을 좌지우지할 거상(巨商)은 네 몫이다.
 너의 흔적 없는 발길은 천리를 누비리니 네가 가고자 하는 곳은 어디든 갈 네 이름으로 무영혈(無影血)이 준비되었다.
 만독물(萬毒物)이 네 손 아래 추종되리니 그 누가 너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인가. 차후 네 이름은 중원독왕(中原毒王)이다.’
 그러나 이연도는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들의 운명은 한낱 그들의 주구가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덧없이 십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4)
 
 
 모옥(茅屋),
 조금 외딴곳에 자리한 작은 모옥에서는 아이들의 왁자지껄한 웃음소리와 이야기 소리가 들려 오고 있었다.
 모옥 안에는 모두 열다섯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모여 앉아 재잘거리고 있었다.
 그다지 꾸며 놓지 않은 모옥의 안에는 다다미가 깔려 있고, 아이들이 작은 탁자 앞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은 모두 하나같이 용모가 수려하고 눈가에는 현기가 흘러 넘치고 있었다.
 이들은 십오 년 전 이곳에 들어온 아이들이었다.
 그런데 그 중에 눈에 확 띄는 소녀가 있었다.
 그녀는 양해란이란 이름의 아이로 진정한 우물이었다.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용모는 이미 그 빛을 발하고 있는 듯했다.
 눈보다도 더욱 하얀 피부, 붓으로 그려 넣은 듯한 눈썹, 그 어떤 빛보다도 강렬한 그녀의 입술은 뇌쇄적이라는 말밖에는 할 수가 없었다.
 남자아이들은 모두들 양해란의 근처에 모여 그녀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반쯤 넋이 나간 모습이 아주 푹 빠져 있는 듯했다.
 “호호호.”
 “쯧쯧, 저 녀석 이젠 아예 노골적이로군.”
 장천은 넋을 잃고 양해란을 쳐다보고 있다.
 ‘흥! 꼴값 떠네. 불여시 같은 계집애······.’
 당령은 입을 삐죽이며 양해란을 흘겨보았다.
 그녀의 얼굴에는 질투와 시기의 빛이 분명히 드러났다.
 “정신차려, 이 녀석아!”
 거상이 넋을 놓고 양해란을 바라보고 있자, 보다못한 장천이 알밤을 먹였다.
 “헤······.”
 천협은 그런 아이들의 모습이 흥미롭다는 듯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그 중에서 양해란에게 흥미를 갖지 않은 듯 보이는 소년은 오직 그였다.
 소년 천협 역시 십오 세를 맞고 있었다.
 다른 아이들과 다를 바 없어 보이는 천협의 매력은 눈에 있었다.
 뭔가 도전적인 그의 눈은 양해란에게 닿아 있었다.
 그의 눈에는 불길이 타오르고 있는 듯했다.
 “험!”
 이때 문상이 들어왔다.
 문상은 천협 옆에 비어 있는 천학의 자리를 바라보며 아이들에게 묻는다.
 그는 이미 포기했다는 듯이 물었다.
 “천학은 또 빠졌느냐?”
 아이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마치 당연하다는 듯 태연한 모습이었다.
 “이 녀석, 거의 매일 학습시간에 빠지다니 정신을 차리도록 단단히 혼을 내줄 테다.”
 “흥!”
 “쳇!”
 아이들의 입에서는 불만의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들은 알고 있었다.
 문상은 매일 그렇게 말하면서도 단 한 번도 천학을 혼내거나 탓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 말씀은 벌써 한 달 가까이 하셨지만, 단 한 번도 혼을 내신 적이 없으시다는 것을 알고 계세요?”
 장천이 말했다.
 “우리들 중 누군가가 빠지면 무섭게 회초리를 드시는 분이, 천학이 빠지면 늘 우리 앞에서 엄포만 치다 마시잖아요.”
 당령 역시 그렇게 말했다.
 “너무 천학만 편애하시는 것 같아요.”
 아이들의 항의가 계속 이어졌다.
 문상은 아이들의 항의에 멋쩍은 듯 말했다.
 “내가 그랬나?”
 문상은 결심을 하듯 두 손을 꽉 움켜쥐어 보이며 단호하게 말했다.
 “내일은 피멍이 들도록 혼을 내줄 터이니 두고 봐라!”
 그러나 문상의 그런 말에 속을 만큼 어수룩한 아이는 이곳에 없었다.
 “흥!”
 아이들은 문상의 말에 코방귀를 꿨다.
 “틀림없을 터이니, 어서 책들 펴!”
 아이들은 그런 문상의 말을 들으며 딴청을 피우고 있었다.
 한편 천학은 염선랑의 처소를 몰래 엿보고 있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염선랑은 대낮부터 낯뜨거운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다.
 안에서는 염선랑과 웬 사내가 몸을 섞고 있었다.
 사내는 염성랑의 몸 위에서 미친 듯이 몸부림 치고 있었고, 염성랑은 권태로운 표정으로 누워 있었다.
 둘은 땀으로 흥건히 젖어 있었다.
 삐그덕―! 삐그덕―!
 침대는 미친 듯이 요동을 하고 있었다.
 염선랑은 입으로 사내를 독려하면서도 내내 뭔가 아쉬운 표정이었다.
 ‘거참,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단 말이야.’
 밖에서 그 장면을 훔쳐보던 천학은 생각했다.
 ‘고모를 올라타서는 있는 힘껏 때리는 것이 고통을 느끼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분명 저렇게 얻어맞는 것이 좋기 때문에 하루 걸러 얻어맞는 것은 분명 할 텐데 말이야. 대체 저렇게 매일같이 매를 맞는 이유가 뭘까?’
 천학의 눈은 흥미로 반짝이고 있었다.
 “하아······.”
 “헉헉······.”
 염선랑의 신음 소리는 천학의 호기심을 더욱더 자극해 왔다.
 ‘대체 어떻게 하면 저 신비를 풀 수가 있을까?’
 천학은 신기하다는 듯 계속 그들의 행동을 지켜 보고 있었다.
 “대체 뭘 보지요?”
 이때 지나던 홍접은 천학이 벽에 얼굴을 붙이고 엎드려 있는 것을 발견하고 다가서며 물었다.
 그런데 천학은 돌아보지 않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한참 연구 중이니까 방해하지 말아요.”
 천학은 그러다 뒤를 한 번 힐끔 쳐다보았다.
 “홍접이었군.”
 천학은 중얼거렸다.
 홍접은 염선랑을 뒤이은 여고수로, 여자로서 당당히 혈문의 십대 고수의 반열에 올라 있었다.
 그와 더불어 젊은 여제자들 중에서는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많은 남성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었다.
 그녀의 육감적인 몸매가 햇볕에 빛이 나는 듯했다.
 “대체, 천학 도련님께서 뭘 연구하는지 알아야겠어요.”
 홍접은 천학이 들여다본 구멍으로 안을 들여다보았다.
 “······.”
 방 안의 진풍경에 홍접의 얼굴은 순간 달아올랐다.
 “과연 대단한 연구를 하고 계셨군요.”
 홍접은 멋쩍은 듯 말했다.
 그러나 천학은 천진한 모습으로 대답했다.
 “내가 정말 신기해하는 것은 말이야······.”
 “뭔데요?”
 “건장한 사내가 하루 걸러 있는 힘을 다해 때리는데, 고모는 맞을수록 좋아하는 것이 신비하단 말이야?”
 천학은 빨갛게 달아오른 홍접의 얼굴을 힐끔 쳐다보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종내에는 때리다때리다 지친 사내가 거의 해골이 되어 나자빠지는데 정말 너무 신비해.”
 천학은 심술꾸러기 소년의 모습처럼 짓궂은 모습이었다.
 그런 천학을 본 홍접은 그 모습이 너무도 사랑스럽기도 하고 그 호기심이 우습기도 해 웃음을 터뜨렸다.
 “호호호홋.”
 “왜 웃지?”
 천학은 그녀의 갑작스런 행동에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
 만 권의 책을 머리에 담고 있는 그라 해도 아직은 어린아이일 뿐이었다.
 남녀 사이의 진정한 음양의 조화를 이해하기에는 아직 경험이 부족했다.
 “깔깔깔깔!”
 천학은 웃고 있는 홍접을 유심히 쳐다본다.
 한참을 웃던 홍접은 천학의 수려한 용모와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눈을 바라보더니 한숨을 쉬었다.
 “휘유!”
 그런 홍접을 보더니,
 “홍접은 나만 보면 얼굴이 붉어졌다가 나중에 왜 한숨을 내 쉬지?”
 “그건 천학 도련님이 나이가 조금 더 들어 아주 건강한 청년 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해서예요.”
 홍접은 눈을 찡긋거리며 말했다.
 어쩌면 이 농담 같은 말에 홍접의 진심이 들어 있는지도 모른다.
 “······?”
 천학은 홍접의 말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짓궂은 도련님, 도련님이 궁금해하는 것은 조금만 더 세월이 흐르면 저절로 다 알게 되는 것이니, 조금도 신비해 할 필요는 없어요.”
 마치 누나가 동생을 가르치듯이 자상히 말했다.
 “???”
 그런 홍접의 태도와 말에 천학은 알 수 없다는 얼굴이 되어버렸다.
 
 
 (5)
 
 
 그 날 저녁, 유모가 천학을 씻기고 있었다.
 유모는 천학을 목욕시킬 때면 항시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오늘 역시 유모는 콧노래를 부르며 아주 좋아했다.
 “유모는 왜 나만 보면 늘 그렇게 기분이 좋아?”
 천학이 천진한 얼굴로 물었다.
 “이 젖으로 도련님을 키워냈으니까요.”
 유모는 흐뭇한 표정이 되었다.
 자신이 몹시도 자랑스럽다는 표정이었다.
 촤아아아악―!
 유모는 천학의 등에 물을 한 바가지 쏟아 부었다.
 “유모의 젖을 먹고 큰 아이는 나뿐이 아니잖아요.”
 “사람이란 공연히 주는 것 없이 미운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저 무엇이든 주고 싶은 사람도 있는 거랍니다. 도련님, 천학 도련님이 아직도 젖을 먹을 나이였으면 좋겠어요. 유모가 줄 거라고는 젖밖에 없으니까요.”
 “저 외에 그저 뭘 더 주고 싶은 아이는 없어요?”
 천학은 눈을 투명하게 반짝이며 물었다.
 “글쎄요······. 장천 도련님에게 그런 마음이 쪼끔 들까?”
 문뜩, 유모는 장천을 목욕시킬 때를 생각했다.
 “좋아요? 장천 도련님?”
 “좋아요. 꼭 엄마 같아요.”
 “이 유모의 느낌이 맞는다면 장천 도련님은 정말 훌륭한 혈문의 수장이 될 거예요.”
 “우리는 복수를 위해 키워지는 한낱 도구라면서요?”
 장천은 슬픈 모습이었다.
 그의 눈은 금방이라도 눈물을 떨굴 듯이 슬픔으로 가득했다.
 자신들의 미래를 예견하고 있음인가?
 “도······ 도련님······.”
 유모는 그때 장천의 눈을 보았다.
 붉게 물들어 있었다.
 습기 때문인가? 그것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유모가 느낀 것은 마치 저녁 노을을 연상시키는, 왠지 슬퍼 보이는 그의 눈이었다.
 “난 괜찮아. 난 유모와 양해란만 있으면 없는 행복도 만들어낼 수 있으니까!”
 장천은 자위하듯 중얼거렸다.
 “그럼, 천협은?”
 천학이 물었다.
 “그 아인 왠지 공연히 미운 축에 들더군요.”
 유모는 고개를 저었다.
 “천협 도련님, 부탁이 있어요. 이 유모는 천협 도련님이 웃음짓는 얼굴을 한 번 보고 싶어요.”
 그는 언제나 차가운 얼굴이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그는 웃지 않았고, 마치 무언가에 몰두하듯 항시 차갑고 날카로운 예기를 흘리고 있었다.
 천협은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잠시 후 말을 꺼냈다.
 “씻겨 주는 것이 목숨 걸고 하는 일이 아니라면 오늘로써 끝냈으면 좋겠어.”
 유모는 그런 천협을 바라보며 멍청한 얼굴이 되어 버렸다.
 유모의 말을 들은 천학은 생각에 잠겼다.
 기회를 노린 유모는 물 속에 손을 넣어 천학의 고추를 만지려고 했다.
 “읍, 안돼!”
 천학은 질색을 하며 손으로 막으려 했다.
 그러나 이미 천학의 몸을 그보다도 더 잘 알고 있는 유모의 초절정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손놀림을 막을 수는 없었다.
 “잘생긴 도련님, 자식이 얼마나 컸나 알고 싶은 엄마의 마음으로 이러는 거예요.”
 ‘엄마······.’
 “그런데 유모, 내 부모는 혈문을 위해 싸우다 죽은 천지쌍검(天地雙劍)이 맞아?”
 유모는 고개를 끄덕였다.
 “천학 도련님뿐만 아니라 이곳에 온 아이들 모두다 혈해지란에서 부모를 잃었어요.”
 ‘혈해지란······?’
 천학은 다시 한 번 되뇌어 보았다.
 너무도 낯설고 생소한 느낌이었다.
 자신들이 그 대란의 부산물들이며, 자신들의 부모가 희생자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천학의 얼굴에 그늘이 어렸다.
 
 
 제3장 성장(成長)
 
 
 (1)
 
 
 길을 가리키며 가라고 하나,
 누가 그 뜻을 따를 것인가? 가는 자의 맘인 것을······.
 목욕을 끝낸 천학은 혈해지란이 무엇인지 찾아보았다.
 “혈해지란(血海之亂)!”
 천학은 먼 산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빠져든다.
 그로서는 너무도 믿어지지 않는 얘기였다.
 ‘십수 년 전, 무림제패를 위해 구파일방 연합체와 십 년에 걸쳐 싸웠다가 패했다는 하루같이 듣는 혈문의 혈사(血事)! 우리들 열 명은 그 싸움에 참가했던 혈문 고수들의 자식들을 수렴해서 혈문 재건을 위한 복수조로 만들었다고 들어왔다. 과연 그래 왔을까? 그랬으면 왜 여태껏 복수를 위한 무공을 가르치지도 않으면서 아예 화기애애한 분위기라고 말할 수 있는 상태로 우리를 키워 왔을까?’
 천학은 침대에 파고들었다.
 그의 눈은 신비하게 반짝였다.
 마치 어둠 속에 밝은 성운을 연상시킬 정도였다.
 “인인다(忍忍多) 다다익선(多多益善)! 참으면 참을수록 얻는 것이 많을 것이로니······. 그래, 지금 분위기는 아무리 알고 싶어도 알 수 없는 분위기, 답답한 놈이 먼저 입을 열게 되어 있으니 기다릴 수밖에 없겠지.”
 천학, 그는 이미 삶의 한 방편을 터득해 가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인(忍)이었다.
 
 
 (2)
 
 
 똑― 똑― 똑.
 문상의 서재에 누군가 찾아왔다.
 “누구냐? 들어오너라.”
 문상이 소리지르자 문이 열리며 천협이 들어섰다.
 천협이 문상에게 예를 취하고 문상을 바라본다.
 천협의 눈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그래, 무슨 일이냐?”
 천협은 자신의 생각을 읽어 주기를 바라는 듯 문상을 바라만 보고 있다.
 “무슨 일이냐니까?”
 “우리들 나이가 지금쯤은 갈등을 느낄 나이는 되었다고 생각합니다만······.”
 천협은 당돌하다 싶을 정도로 문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문상의 눈이 움찔거렸다.
 ‘드디어······.’
 문상은 가슴 한 곳이 뜨끔했다.
 언젠가는 오늘 같은 날이 올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뭘 알고 싶은 거냐?”
 문상은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려는 듯 조금은 경직된 억양으로 말했다.
 “몰라서 되물으십니까?”
 천협은 이미 상대의 의중을 어느 정도는 짐작하고 있다는 듯이 대답했다.
 “무슨 뜻이냐?”
 “우리는 혈해지란 당시 죽음을 당한 혈문 제자들의 자식이라고 들었을 뿐, 일방적인 사육을 당하고 있습니다. 각자의 부모들 원한을 갚고 혈문 재건을 위해 앞장을 세울 우리들이라면 이제는 무공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실 때가 되지 않았습니까?”
 문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의 음성은 단호하기만 했다.
 “네놈이 요구한다고 해서 될 문제가 아니다.”
 “답답합니다.”
 문상은 천협의 몸에서 은은히 뿜어져 나오는 예기를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분명한 살기였다.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고자 하는 의지였다.
 “네 녀석은 물론 모두들 아직 열다섯 살이다. 답답해 할 나이가 아니야!”
 기분 나쁜 그 기운을 지워 버리려는 듯 문상은 천협의 말을 일축해 버렸다.
 “갓난아이 때 이곳에 들어선 이후로 철들면서부터 느낀 것은 단 한 번도 바깥 세계를 보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을 모르는 우물 안 개구리가 될까봐 염려스럽습니다.”
 천협은 당돌하게 문상을 바라보면서 한 치도 흔들림 없이 말했다.
 마치 거목으로 만든 견고한 성문을 바라보고 있는 듯했다.
 문상은 천협에게서 알 수 없는 불길함을 느꼈다.
 ‘언젠가 이 아이는 우리의 손을 벗어난 존재가 될 것이다.’
 
 
 (3)
 
 
 봄[春],
 만물이 그 모습을 드러내고 새 생명의 기운이 대지를 감싸고 있는 완벽한 봄이었다.
 이름조차 알 수 없는 풀과 꽃들이 즐비하게 피어 있는 언덕 위, 아이들이 모두 나와 놀고 있었다.
 장천은 나무에 물구나무를 서서 양해란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눈에는 알 수 없는 열망이 가득했다.
 그러나 이미 양해란은 무언가를 관찰하는 천학에게 시선을 빼앗겨 버렸다.
 천학은 벌써 몇 시진째 그렇게 앉아 있었다.
 “장천은 양해란만을 쳐다보는데, 양해란은 천학만 쳐다본다. 웃기는군.”
 당령은 웃긴다는 듯 말했다.
 그러나 그녀는 결코 웃고 있지는 않았다.
 “그래, 그건 나도 알고 있었어.”
 장천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네 녀석이 바라보는 양해란이 지금 누구를 쳐다보고 있는지 알아?”
 천협이 장천에게 물었다.
 장천에게 한심하다는 얼굴을 하고는 묻는 말이었다.
 “알아!”
 그러나 너무 태연히 말하는 장천을 보며 천협은 당황했다.
 천협은 결코 함부로 자신의 표정이나 모습을 다른 이에게 들키지 않았다.
 내색하지도 않았다.
 마치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것처럼 자물쇠를 채우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급격한 감정 표현은 이례적인 것이었다.
 “알아?”
 “천학을 연신 훔쳐보더니 지금은 아예 넋을 놓고 보고 있다.”
 천협은 그런 장천의 모습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도 화가 나지 않니?”
 “화나!”
 너무도 무감정적인 말이었다.
 아니, 태연하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이 자식, 다 알면서도 계속 바보처럼 웃고만 있었다는 거 아냐?’
 이때 거상이 슬그머니 천협의 곁으로 다가섰다.
 그리고는 득의에 찬 모습으로 웃으며 말했다.
 “졌지? 줘야지?”
 “쳇!”
 천협은 허탈하다는 듯 거상에게 동전을 건네 주었다.
 “헤헤, 또 벌었다.”
 바보처럼 보이는 웃음이었다.
 그러나 웃고 있는 그의 눈은 물욕으로 번들거렸다.
 “양해란이 천학을 좋아하나 안 하나를 내가 아는지 모르는지 내기를 했느냐?”
 장천이 천협을 향해 물었다.
 천협의 시선은 천학에게 다가가는 양해란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화가 나는데도 참고만 있는 거니?”
 장천은 장난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그럼 너는 왜 참지?”
 천협은 자신의 마음을 상대에게 간파 당했다는 것이 몹시도 부끄러웠다.
 그래서 천협은 보기 드물게 붉게 달아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런 천협이 재미있다는 듯 장천은 싱글거리며 말했다.
 “내가 알기로는 너도 양해란을 좋아하는 것 같던데?”
 ‘이 녀석이 능구렁이라는 형당주 숙부의 말이 맞았어.’
 그때였다.
 장천이 갑자기 거상에게 손을 벌렸다.
 “봐, 천협도 양해란을 좋아하잖아.”
 장천이 거상에게 말했다.
 어찌 이들의 모습에서 어린아이의 천진함을 찾을 수가 있단 말인가?
 “직접 인정 안 했잖아.”
 “그래, 나도 양해란을 좋아해.”
 천협은 자신이 돈을 잃었다는 사실이 분했는지 그 둘의 사이에 끼여들어 말했다.
 “네가 내기에 졌으니 이젠 줘야지!”
 천협은 말을 끝내고 얼른 자리를 피했다.
 그러나 그 순간, 천협은 다짐하는 것이 있었다.
 ‘좋아, 다시는 속마음을 남에게 들키지 말아야지.’
 거상은 장천에게 은전을 건네다 다시 낚아채었다.
 그리고 뒷걸음으로 슬슬 도망치며 말했다.
 “안돼! 돈은 곧 내 목숨이야. 한 번 내 손에 들어온 돈은 남한테 절대 주지 않겠다고 맹세했어. 줄 수 없다!”
 장천은 싱글거리는 얼굴로 다가서며 말했다.
 그의 웃는 모습은 항시 그대로지만 친근함보다는 섬뜩함이 느껴지곤 했다.
 “나도 맹세한 것이 있지.”
 거상은 그의 말에 움찔했다.
 “???”
 “날 속이는 놈은 절대 그냥 두지 않겠다고······.”
 장천은 거상에게 주먹을 날렸다.
 퍼억―!
 “크억!”
 거상은 멀찌감치 나가 떨어졌다.
 거상의 얼굴에서는 진홍빛의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손에 들려 있던 은전이 굴러 떨어졌다.
 쩔그렁!
 “주먹 한 대에 목숨이라는 돈을 놓치다니······.”
 장천은 돈을 주으며 거상을 비웃었다.
 “안돼······!”
 퍼억―!
 장천은 달려오는 거상을 걷어차 올렸다.
 그리고는 거상의 가슴에 발을 올려 비아냥거리듯 말을 이었다.
 “주먹 한 방에 목숨이라는 돈을 놓쳐? 네 목숨을 이따위로 허술히 간수하면서 뭘 어떻게 하려고 그러지?”
 장천은 거상에게 돈을 던졌다.
 “으······.”
 거상은 치밀어 오르는 모멸감과 분을 애써 억눌렀다.
 ‘다시는······ 나의 손에 들어온 것들을 놓치지 않을 거야.’
 한편 양해란은 말똥구리를 관찰하는 천학에게 말을 걸며 다가갔다.
 그녀로서는 몇 번을 망설이다 다가선 것이었다.
 “뭐해?”
 천학에게서 무언가를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천학의 반응은 몹시 시큰둥했다.
 “관찰.”
 천학은 말똥구리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양해란은 천학에게서 알 수 없는 벽을 느끼고 있었다.
 자신이 한 걸음 다가서면 천학은 이미 더 멀리 떨어져 버리는 것이었다.
 뭐랄까?
 자신보다 먼저 어른이 되어 가는 것 같다고나 할까? 양해란에게 천학은 채울 수 없는 빈자리와도 같았다.
 “관찰? 뭘?”
 “말똥구리란 놈은 자신의 몸보다 대여섯 배나 되는 먹이를 굴리지.”
 바닥에는 말똥구리 한 마리가 자신의 대여섯 배는 되어 보이는 똥 덩어리를 굴리고 있었다.
 어설퍼 보이는 동작으로 힘겹게 움직이는 모습이 양해란의 눈에는 불쌍해 보이기까지 하였다.
 “대체 약한 힘을 이용해서 어떻게 굴리나 관찰 중이야.”
 양해란은 그런 모습을 보고 있는 천학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천학에게서 그녀는 이질감과 더불어 경외감까지 느끼고 있었다.
 “그걸 관찰해서 뭘 하는데?”
 양해란은 귀여운 모습으로 갸웃거렸다.
 그 누구라도 꼭 끌어안고 싶을 정도로 귀여운 모습이었지만 천학은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아니 옆에 있는 것을 느끼지조차 못하는 것 같았다.
 “약한 것이라도 강한 것에 두려움을 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책에서 읽은 적이 있어.”
 천학은 마치 꿈을 꾸듯 허공을 응시하며 나무에 기대어 앉았다.
 그의 눈은 뭐랄까? 우주의 만 가지 진리를 홀로 간직하고 있는 모습이랄까? 몽롱해 보이면서도 복잡한 무언가가 어려 있었다.
 “모기는 사자에게, 거머리는 코끼리에게 두려움을 준다더라.”
 천학은 발끝으로 돌 조각을 툭 찼다.
 “파리는 전갈에게는 공포의 대상이고, 매는 거미를 피해 가지.”
 그리고는 양해란을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양해란은 단 한시도 천학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하다가 그의 웃음에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르며 고개를 푹 숙였다.
 “그건 이 세상에 절대강자는 없다는 것을 역설해 주는 것이지. 아무리 약한 존재라도 치밀한 준비와 불퇴전의 용기만 있으면 능히 강자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말도 되고······.”
 그런데 그런 두 사람을 보고 질투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흥! 양해란 저 계집, 천학에게 온통 넋을 잃었어.”
 당령은 질투에 불타는 눈으로 양해란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때 옆에서 보고 있던 아나타가 그런 당령을 바라보며 재밌다는 표정으로 놀리듯 웃었다.
 “너도 천학을 좋아하고 있구나. 하핫!”
 그러자 당령은 발끈 하며,
 “흥! 누가 그래? 함부로 말하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
 당령은 자존심이 상한 듯 씩씩거리며 자리를 피했다.
 그리고 홀로 남은 아나타 역시 양해란을 보며 부러움으로 얼룩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도 천학을 좋아하는데, 네 감정을 내가 느끼지 못할 것 같으니?’
 아나타는 당령이 천학에게 적극적인 양해란을 질투한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그리고 그 감정을 자신도 느끼고 있다는 사실에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처음부터 강해지면 되지. 왜 약자가 살아가는 법을 관찰해?”
 양해란은 알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 그녀의 성격을 말해 주는 것 같았다.
 천학은 고개를 저었다.
 “처음부터 강자는 없거든. 앞으로 수많은 세월을 살아가는데 있어 필요할 것 같아서 말이야.”
 천학은 세상 이치를 깨달은 듯 말했다.
 아니, 그는 지금 이곳의 그 누구보다도 세상에서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가장 절실한 이치들을 하나하나 깨우쳐 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훗날 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아! 저······ 천학아, 저······ 내일 뒷동산에 단둘이 놀러 안 갈래?”
 양해란은 얼굴이 빨개지며 천학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계집아이들 중 콧대가 가장 높은 양해란으로서는 크게 용기를 내어 하는 말이었다.
 천학은 그 사실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주변의 모든 사내아이들의 시선 역시 양해란에게 집중되고 있다는 것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아직 젖내 나는 계집애에게는 관심 없어!”
 천학은 더 이상 말할 것도 없다는 듯 딱 잘라 말했다.
 그리고는 돌아서 가 버렸다.
 그런 천학을 양해란은 반짝이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양해란의 얼굴에서는 서운함이나 불쾌함보다는 어떤 고집이 어렸다.
 그리고 돌아서는 천학의 눈이 그런 양해란을 스쳐 지나가는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천학은 자기 방에 돌아와 골똘히 생각에 빠졌다.
 ‘당령, 자존심과 오기로 똘똘 뭉친 계집애······ 여자이면서 결코 자신의 속내를 밝히지 않는다.’
 천학은 문뜩 당령을 생각해 보았다.
 그녀 역시 몰래 자신을 훔쳐보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혈문에서 요구하는 것을 무엇이든 해내겠지. 누구를 좋아할까? 혹시 나는 아닐지······.’
 천학은 내심 염려가 되고 있었다.
 그의 주변에 있는 다른 이들에게 어떤 피해를 주지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기도 했고, 다른 이유는 그 나름대로의 계획이 있기 때문이다.
 ‘아나타, 활달한 성격으로 누구에게나 호감을 주는 누나 같은 계집애. 아나타만 있으면 좌중은 언제나 안정감을 지닌다. 그런 성격에 삼십육비아수라(三十六臂阿修羅)란 공포의 이름으로 불릴 암기를 택했다니.’
 천학은 그 겉과 속이 다른 아나타를 자신도 모르게 경계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녀를 생각한 천학은 고개를 가로저였다.
 그러면서도 자신 스스로 평범하게 살아가지 못하는 그녀들이 안타깝기만 했다.
 ‘양해란, 저를 아는 모든 남자들이 좋아해 주지 않으면 절망을 느낄 계집애······.’
 천학은 고개를 저었다.
 ‘그런 계집애가 나를 좋아하고 있으니 신기한 일이다. 내가 그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면 등에 비수를 꽂고도 남을 계집애다. 그 누구보다도 잘 알지. 내가 진정 멀리하고 싶은 계집이다.’
 그러다 진지하던 천학의 눈빛이 장난스럽게 바뀌었다.
 “그러나, 가슴이 솟고 엉덩이에 물이 오르기 전까지는 풋내 나는 너희한테는 관심이 없지.”
 천학은 읽던 책을 계속해서 읽었다.
 그러나 차분히 가라앉아 있는 그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의문들이 뭉개 구름처럼 솟아올랐다.
 ‘한 번만 읽으면 아무리 잊으려 해도 잊혀지지 않는 기억력, 무엇이든 한 번 보기만 하면 선명히 머릿속에 새겨지는 기억력은 벌써 모든 사물에 대한 흥미를 반감시키고 있다.’
 천학의 눈은 흐려졌다.
 그는 절망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철저히 새장 속에서 창공을 그리워하는 것처럼 자유와 세상에 갈증을 느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에게도 예외는 있었다.
 ‘그래, 내가 평생 흥미로워할 존재는 여자······ 오직 여자뿐, 눈이 부실 듯한 미인들만이 오직 관심의 대상일 뿐이다. 그것만이 이 나이에 벌써 느끼기 시작하는 권태를 잊게 해 줄 것만 같거든······.’
 그는 음흉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러나 보는 이의 눈에는 결코 그렇지 않았다.
 진흙 속에 진주라도 그 빛을 잃지 않으면 결코 무엇으로도 진주의 값을 떨어뜨릴 수는 없는 것이기에 말이다.
 이렇게 꿈 속의 생각을 할 때 천학은 문이 열리는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상 이연도가 찾아온 것이었다.
 “한밤중에 절 찾아오시고 웬일이세요?”
 너무도 의외의 상황이 놀랍다는 듯이 물었다.
 “오늘 밤은 너의 그 대단한 연구를 하러 가지 않았느냐?”
 이연도는 웃으며 말하였다.
 문상 이연도는 천학의 책상에 놓여 있는 역사서를 보았다.
 “하초(下焦)를 잘린 사마천이 음양합일의 즐거움을 얻을 수 없는 슬픔을 어떻게 이겨냈나 궁금했더니, 실로 위대한 역사책을 저술했더군요.”
 천학은 그 책에 관한 내용을 간략히 말했다.
 “계집의 신비만 연구하는 줄 알았더니 역사도 연구하고 있었구나.”
 대견하다는 듯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독천협이나 이장천, 두 녀석도 너처럼 한 번 보면 무엇이든 잊지 않더구나. 천협은 요즘 유숙부의 검초를 관찰하느라 여념이 없다.”
 문상의 말에 천학은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4)
 
 
 연무장,
 비록 허름하게 지어진 연무장이지만 그 넓이는 대단했다.
 넓이만도 삼십 장이 되었고, 길이는 이십여 장이 되는 거대한 목조 건물의 안이었다.
 “핫―!”
 유숙부는 허공으로 몸을 날리며 마치 뱀이 허물을 벗듯이 몸을 틀었다.
 “섬(閃)! 멸(滅)!”
 그의 일갈성과 함께 검영이 허공을 수놓았고, 검은 마치 살아 있는 채찍처럼 여러 갈래로 갈리어 나갔다.
 쩌억―! 쩌어억―!
 마룻바닥이 그 검기만으로 갈라져 터져 버렸다.
 유숙부는 혈해지란 당시 한쪽 눈과 다리를 잃어 목발과 안대에 의지하고 있었지만, 그의 움직임은 결코 허술하거나 힘겨워 보이지 않았다.
 연무장 한쪽에 천협이 벽에 기대어 앉아 유숙부의 검초를 관찰하고 있었다.
 유숙부는 살인악검을 펼치고 있었다.
 이 살인악검은 유숙부가 만들어 낸 것으로 중원 각지의 검술을 모두 모아 공격적인 면만을 추려 창안해 낸 것으로 방어를 위한 초식은 없다. 철저히 상대를 베기 위한 초식일 뿐이다.
 그래서 어지간한 사람들은 그 기세만으로도 기가 질려 그의 검 앞에서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천협은 그런 유숙부를 그저 바라만 보고 있다.
 이런 모습이 되풀이되기를 한 달.
 검법을 마친 유숙부가 무덤덤하게 서 있은 천협을 바라보며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너는 한 달째 내 검법을 보면서 어찌 한 마디 말도 없느냐?”
 “할 말이 없습니다.”
 천협은 숙부에게 말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는 듯이 대답했다.
 심드렁한 태도였다.
 “할 말이 없어?”
 어이가 없었다.
 유숙부는 그의 입에서 감탄의 소리는 관두고라도 자신에게 매달려 검을 잡게 해달라고 조를 줄 알았었다.
 그런데 이 태도는 마치 흥미 잃은 여자를 바라보듯 무덤덤하기만 했다.
 “수비는 없고, 오직 상대의 목숨만을 빼앗는 살인악검이라는 점에서는 마음에 들지만······.”
 천협은 말꼬리를 흐렸다.
 “들지만?”
 유숙부는 그의 태도가 못마땅하다는 듯이 되물었다.
 “내 눈에는 무려 여섯 군데의 허점이 보였습니다.”
 “여······ 여섯 군데의 허점······?”
 유숙부는 천협의 말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자신이 검을 잡은 지 수십 년이 되었거늘 무공도 모르는 사람에게 허점이 보인다니 어찌 화가 나지 않겠는가?
 “무공의 무자, 검초의 검자도 모르는 어린 네놈의 눈에 여섯 군데의 허점이 보여?”
 화를 억누르며 말했다.
 “유숙부님의 살인악검을 본 지 일주일째부터 허점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오늘까지 여섯 군데의 허점이 보이더군요.”
 천협은 말을 끝내고 나가기 위해 되돌아섰다.
 그때였다.
 유숙부는 분기를 참으며 외쳤다.
 “이······ 이놈이······ 멈춰라!”
 천협은 잠시 멈춰 섰다.
 “증명할 수 있겠느냐?”
 유숙부는 치밀어 오르는 화를 억누르는 것이 역력했다.
 “유숙부께서 내공을 쓰지 않고 저와 검초를 겨룬다면 증명해 보일 수 있습니다.”
 당당한 천협의 목소리에 유숙부는 더욱 화가 치솟았다.
 그는 이 검초를 연마하기 위해 오십여 년의 세월을 검과 함께 보냈다.
 고행의 시간이었다.
 하나하나의 검초를 완성하기 위해 자신의 뼈를 깎고 살을 베어 내는 고통을 견뎌내야만 했었다.
 그래서 자신의 무공만큼은 자부심이 대단했다.
 그런데 오늘 이 자리에서 천협에 의해 그의 자부심이 여지없이 꺾였다.
 “이······ 이놈이······.”
 유숙부는 무공도 모르는 천협을 이 참에 혼내 줄 작정이었다.
 천협이 나무 하나를 주워 드는 순간, 유숙부의 공격은 시작되었다.
 파앙―!
 비록 내공은 실리지 않은 공격이었지만 그 기세는 단순한 비무가 아니었다.
 파바박―!
 검영(劍影)이 어지러이 난무하며 천협을 공격해 갔다.
 검풍에 못 이긴 집이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흔들림을 일으키고 있었다.
 ‘이놈 뜨거운 맛을 보여 주리라.’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지······ 천협의 움직임은 자유스럽기만 했다.
 그는 이미 유숙부의 움직임을 파악했다는 듯이 가벼이 움직이며 그의 검초를 피하고 있었다.
 마치 버들잎을 희롱하는 바람 같았다.
 천협은 검영의 사이로 뛰어들었다.
 “엇!”
 유숙부의 입에서 다급성이 터져 나왔다.
 파악―!
 천협은 손에 들고 있던 막대기로 유숙부의 무릎을 내리쳤다.
 “크윽······!”
 유숙부는 천협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검을 들어 본 적도 없는 놈이 칠사변(七死變)의 허초를 간파하고 실초를 구분해 냈단 말인가?”
 유숙부는 할 말을 잊었다.
 자신의 지난 오십 년 세월이 와르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살인악검 제일초 칠사변은 여섯 개의 허초와 하나의 실초로 구성되어 있지만, 검초가 펼쳐질 때 실초와 허초 사이에 미세한 속도의 차이가 있습니다. 안목이 예리한 자라면 결코 놓치지 않을 테고 간파 당한 즉시 숙부님은 시체로 눕고 말 것입니다.”
 천협은 별 것 아니라는 듯이 담담히 얘기하고 있었다.
 “이놈! 칠사변 초식으로 패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유숙부는 항변하듯이 말했다.
 “물론 유숙부님과 동수이거나 한두 단계 위의 고수라도 무조건 목숨을 내놓고 칠사변을 펼치는 숙부님을 볼 때, 죽음을 도외시하는 유숙부님에 대한 공포로 인해 제 실력을 발휘해 보지도 못하는 멍청이들만을 상대했기에 아직 유숙부님의 목숨이 살아 있겠지요.”
 모욕이었다.
 그것은 분명 유숙부에게는 모욕이었다.
 무공조차 알지 못하는 녀석에게 이런 말을 듣는다는 것 자체가 그에게는 커다란 모욕이었다.
 “······.”
 유숙부는 할 말을 잃고 있었다.
 천협은 유숙부 앞에서 제이초 살인악검인 이십일사변(二十一死變)을 펼쳐 보였다.
 “이십 변의 현란한 변초로 상대의 이목을 가리고 이십일 변으로 죽음[死]을 취한다.”
 천협은 노련한 몸 동작으로 유숙부를 향해 검을 질렀다.
 유숙부가 너무도 잘 아는 초식이었다.
 아니 수천 번도 더 연습을 하고 연습했던 너무도 평범한 초식이었다.
 그런데 도저히 피할 수가 없었다.
 유숙부는 공격은 불가하고 검을 막을 그 어떤 형태를 취할 겨를도 없이 천협에게 제압 당했다.
 천협의 목검은 유숙부의 목 앞에서 멈추었다.
 ‘왜?’
 알 수가 없었다.
 그 순간, 유숙부는 수십 번도 더 외쳤다.
 그것은 분명 자신의 검초이긴 했지만 뭔가가 달랐다.
 그래서 자신의 눈으로 빤히 바라보면서도 막을 수 없었던 것이다.
 ‘어떻게 이렇게 빨라질 수가······!’
 유숙부는 의문의 눈으로 천협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눈이 허공에서 얽혔다.
 “······!”
 “······.”
 천협은 검을 내던졌다.
 그리고 망연히 서 있는 유숙부를 향해 말했다.
 “수비는 도외시한 채 오로지 공격 일변도의 살인악검치고 너무 변식이 많다는 생각은 안 해보셨나요?”
 천협의 물음에 유숙부는 항변하듯 말했다.
 “이십 변의 변뢰에는 상대가 공격해 들어올 모든 방위를 미리 차단한 채 마지막 이십일 변으로 목숨을 취하는 것을 모르느냐?”
 유숙부가 따지듯 말했다.
 그러나 천협은 엷은 미소로 대응했다.
 “그렇다면 왜 수비식으로 완벽한 팔 변과 육십사 변식을 취하지 않았습니까? 안목이 예리한 자라면 이십 변의 변화가 이루어지는 동안 미세한 속도의 불균형 때문에 일어나는 스무 군데의 허점을 알 것입니다.”
 천협은 초식을 허공에 시전하며 말했다.
 마치 어린아이를 가르치는 훈장의 말처럼 너무도 자세하고도 자상했다.
 “살인악검의 기세가 너무 흉악해 겁을 먹었기 때문에 못 알아보는 멍청이들이 그 동안 많았기에 이제껏 살 수 있었던 것이기도 하지만요.”
 유숙부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비기가 다른 이의 입에서 흘러 나오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팔 변과 육십사 변의 수비동작이 있어 완벽하다는 것을 누가 가르쳐 주었느냐?”
 천협은 고개를 저었다.
 그의 입가에는 비웃음이 걸려 있었다.
 “누가 가르쳐 주다니요? 주역에 있더군요. 만변(萬變)이 무변(無變)이고 무변이 만변이라고······. 음양원리에 의해 생성된 천문(天門), 지리(地理), 인사(人事), 물상(物象)을 팔 괘를 기초로 하여 육십사 괘로 나누지 않았습니까? 칠 사변을 팔 사변으로 변화시키고 이십일 사변을 육십사 사변으로 변화시키면 나름대로 완벽하겠지요.”
 “으으으으.”
 유숙부는 치욕과 처절한 패배감으로 전신을 떨었다.
 그의 평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 다른 자에 의해 쓰레기로 치부된다면, 이런 기분일까? 주체할 수 없는 분노로 인해 그의 전신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물론 유숙부님께서 그렇게 한다 해도 펼칠 능력은 없겠지만요”
 그것은 너무도 완벽한 비웃음이었다.
 유숙부는 그간 눌려 있던 화가 폭발하며 천협을 향해 검을 내리친다.
 “죽인다, 놈!”
 콰아아아―!
 흡사 폭포수가 쏟아지는 소리가 울렸다.
 유숙부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가 소용돌이치듯 용솟음 쳤고, 그로 인해 천협의 몸은 서서히 물러서고 있었다.
 그러나 천협은 태연히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생사를 도외시하고 있는 것인가?
 “으아아아!”
 검이 엄청난 기세와 함께 천협의 머리를 향해 쏟아져 들어 왔다.
 “죽어라!”
 콰아아앙―!
 마룻바닥이 움푹 꺼지며 먼지가 풀썩 피어 올랐다.
 천협은 어느새 십여 장 떨어진 출구 쪽에 서서 유숙부를 비웃고 있었다.
 “숙부의 검을 아는 자는 이런 어설픈 경공으로도 피할 수 있는 것입니다.”
 “놈······.”
 쐐에엑―!
 유숙부는 검과 함께 몸을 날려 천협의 목을 노려 갔다.
 천협은 두려운 것이 없는 것인가?
 숙부의 검이 눈 앞까지 왔지만 천협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가만히 숙부를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숙부에게 비아냥거리는 말을 내뱉으며 돌아섰다.
 “오래 사시려면 숙부님보다 더한 독종을 만나지 않기를 바라십시오.”
 ‘천재를 본 건가, 아님 괴물을 본 건가?’
 유숙부의 얼굴에는 천협에 대한 두려운 빛이 역력했다. 그러다 망연히 중얼거렸다.
 “천학은 어떨지 모르겠군.”
 천협은 ‘천학’이라는 말에 걸음을 멈추었다.
 “천학······.”
 천협의 눈에는 누가 보아도 틀림없는 경계의 불길이 어른 거렸다.
 
 
 제4장 새로운 만남
 
 
 (1)
 
 
 길을 걷노라면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만나곤 한다.
 적이 때론 동지가 되지만······.
 우린 스스로 거스를 수는 없는 것이다.
 천학의 침실,
 작은 화촉이 불꽃을 일으키며 열심히 타 들어가고 있었다.
 그곳에는 문상과 천학이 마주 앉아 있었다.
 천학은 문상에게 장천을 물었다.
 “그 의뭉스러운 녀석은요?”
 “장천 말이냐?”
 천학은 고개를 끄덕였다.
 “······.”
 천학은 말이 없었다.
 문상은 그런 장천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아무리 보아도 신비한 매력이 있는 모습이었다.
 달빛을 받아 조용히 흐르는 강물처럼 고요한 눈빛과 투명한 얼굴, 그조차도 잴 수 없을 정도의 깊은 학문과 심기는 천학이 성장하면서 현 배교 내의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군계일학을 만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장천은 혼자서 남몰래 열심히 훈련을 하고 있다고 들었다.”
 천학은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의뭉스러운 녀석다운 짓을 하는군요.”
 천학 역시 장천이 그저 멍청히 앉아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좌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옛말에 이런 말이 있다.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는 자는 자신을 다스리지 못하고, 자신을 다스리지 못하는 자는 나라를 다스리지 못한다.”
 천학은 그 말을 되씹어 보았다.
 “장천은 앞으로 어느 누구보다도 강한 정력(定力)을 지니게 될 것이다.”
 이때, 이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엿듣는 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 배교지존(背敎至尊) 추강.
 유체이탈대법으로 이곳에 들어와 허공에서 결가부좌를 틀고 앉아 그들의 얘기를 들으며 재미있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는 사실은, 현 혈문 최고의 고수인 문상조차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아직 저를 찾아온 이유를 말하지 않으셨어요.”
 천학은 담담히 말했다.
 “그랬던가?”
 문상은 잠시 머뭇거리다 결심한 듯 말했다.
 “내일 모레, 혈마존의 후마를 결정하는 혈마제례(血魔第禮)가 있다.”
 문상은 짐짓 자상한 눈으로 천학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러나 천학은 아무 말하지 않고, 그저 약간 눈을 내리깔며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 날 너희들 열 명 중에서 혈마존의 후계자를 지정하게 될 것이다.”
 “후계자로 지목된 아이는 정말 영광스럽겠군요.”
 순간, 문상은 천학이 혈문의 비밀을 알고 있는 듯한 착각을 했다. 어린아이임에도 불구하고 워낙에 속마음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천학인지라 더 이상 뭘 알아낼 수도 없어서 자리에서 나갔다.
 “밤도 깊었으니, 이만 자거라!”
 그러나 몸을 돌려 문을 닫아 주려는 순간, 그 자리에 못박힌 듯 그대로 서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천학의 모습을 보자 문상은 가슴 한구석에서 아릿한 통증을 느꼈다.
 ‘미안하구나, 천학아!’
 그런데 그런 문상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자가 있었다.
 추강이었다.
 ‘양심의 가책을 받느냐? 놈!’
 추강은 문상에게 호통을 쳤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두 사람에게 들리지는 않았다.
 추강은 천학의 곁으로 다가가 그의 몸 속으로 살며시 스며들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끈에 연결이 되어 있는 것 같이 그 둘의 심령은 연결되어 있었다.
 ‘내일 모레면 혈마존의 후계자로 선출이 될 텐데 기분이 어떠냐?’
 추강의 목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
 갑작스런 괴사에 놀란 것은 감정마저도 다스리는 천학이었다.
 “무슨 소리지?”
 추강은 혼백만 있기에 천학의 눈에는 보이지가 않았다.
 그러나 갑자기 들려 오는 소리에 천학이 당황하며 주위를 살폈다.
 “방 안엔 아무도 없고 문상께서 다시 오시며 하신 말씀인가?”
 그러나 이미 두 사람은 심령마저도 연결되어 있는 상태였다.
 ‘네 몸 속에 들어와 네 심령에 전하는 음성이니까 찾을 필요 없다.’
 추강이 말을 하였다.
 “내 몸 속에 들어와 심령에 전하는 음성이라고······?”
 천학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
 그런 천학의 모습을 즐거운 듯 바라보는 추강이었다.
 마치 좋은 장난감을 발견한 아이처럼 즐거운 모습이었다.
 ‘내가 누군지 알고 싶은가?’
 “그······ 그래요······.”
 ‘알려 주지. 본지존을 보고 싶으면 새끼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머금거라.’
 천학은 잠시 혼란에 빠졌다.
 이것이 진실인가의 여부를 떠나 명경지수(明鏡止水)처럼 맑던 그의 마음에는 의혹과 함께 많은 궁금증이 생겨났다.
 ‘보고 싶지 않은 모양이구나, 켈켈.’
 천학은 결심을 한 듯,
 “익!”
 자신의 새끼손가락을 깨물었다.
 ‘머금은 피를 네 앞 허공에다 뿌려라.’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갑자기 귀신놀음도 아니고······ 에라 모르겠다.”
 푸우―
 천학은 입에 머금은 피를 허공에 대고 뿌렸다.
 그런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허공에서 서서히 사람의 형상이 잡히더니, 이내 한 괴상하게 생긴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모습은 관 속에서 한 삼 년은 썩은 듯한 미라의 모습이랄까?
 거기에 허리 아랫부분은 아예 보이지도 않는 것이 아닌가?
 “귀······ 귀신······.”
 천학은 혼비백산(魂飛魄散)을 했다.
 “켈, 귀신은 귀신이지만 살아 있는 육신에서 빠져 나온 살아 있는 귀신이다.”
 “······.”
 천학은 너무도 놀란 나머지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반쯤 넋이 나간 모습으로······.
 “제법 심지가 단단한 녀석인 줄 알았더니 겨우 이 정도에 정신을 잃을 지경이라니······.”
 그러나 천학은 그저 평범한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귀신 영감! 난 이제 열다섯 살이고, 열다섯 살짜리 어린애가 이런 괴사에 놀라 기절할 지경이 아니라면 그게 괴물이지 사람이란 말이에요?”
 천학은 허공을 향해 소리를 쳤다.
 “켈켈, 그래 사내녀석 담력이 그 정도는 돼야지.”
 추강은 천학을 보고 말했다.
 “귀신 영감은 누구예요?”
 추강은 자신을 보고 귀신 영감이라 하는 천학을 보며 어이없어 웃었다. 배교 교주 추강에게 귀신 영감이라니······.
 ‘크하하하하!’
 자신에 대해서는 일체 알지 못할 천학이기에 귀엽게 봐주며 추강은 천천히 자신의 소개를 했다.
 “배교라고 들어 보았느냐?”
 “배교?”
 상당히 당혹스러운 듯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 당혹스러움과는 사뭇 다른 대답을 했다.
 “못 들어 봤어요.”
 천학의 목소리에 힘이 빠져 있었다.
 “노부는 배교의 마지막 교주 추강이다.”
 “귀신 영감은 살아 있는 귀신이라 했는데, 대체 어떻게 해서 귀신이 되어 사람 앞에 나타날 수 있는 것이지요?”
 천학은 노부에게 물어 보았다.
 “배교에서 전해지는 기환어술 중의 하나로써 유체이탈대법이라 한다. 유체이탈이란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어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으며, 가고 싶은 곳은 어디든 갈 수 있는 절금의 신술(神鉥)이다.”
 추강이 하는 말을 다 이해하지 못하는 천학이었다.
 아니, 말 자체는 이해를 하고 있으나 자신의 눈으로 유체이탈한 추강이 있음에도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건 그렇고······ 무슨 연유로 내 앞에 나타난 거예요?”
 천학은 성난 목소리로 노부에게 다시 한번 물어 보았다.
 그러자 추강은 묵묵히 천학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네가 태어나기 전부터 노부는 너를 배교의 다음 대(代) 교주로 점찍어 놓았다.”
 그 말에 천학은 잠시 혼란해졌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에 미리 점찍어 놓고 나를 지켜 본 이유는 과연 어떤 뜻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배교의 후계자로 지목한 추강의 생각은 무엇일까? 내가 세상에 태어나기 전 무슨 일들이 있었기에 운명처럼 받아들이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란 말인가? 또 문상이 혈마존의 후계자를 뽑기로 한 그 전 날에 추강이 나에게와 물어 보는 이유는 무얼까?’
 이런 천차만별의 생각으로 천학은 온몸에 돋는 소름을 느끼며 얼굴을 찌푸렸다.
 문득 천학은 추강이란 저 자가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부터 자신의 후계자로 점찍어 놓았다면 자신의 부모에 대해서도 알 것이라는 생각에 미치자,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에 대해 알고 싶었던 마음이 물결처럼 밀려들어 억제할 수 없는 기분에 천학은 추강에게 물었다.
 “나의 부모님을 아십니까?”
 그때 추강은 야릇한 미소를 띠며 천학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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