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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2018.07.05 조회 1,496 추천 2


 강서(江西) 백운산(白云山) 주봉(主峰) 마성령(摩星嶺) 백운장(白云場).
 
 “흐음······. 도대체 왜 이렇게 소식이 없단 말이냐!”
 
 장신의 백발노인이 방문 앞에서 초조해 하며 서성거리고 있었다.
 
 노인은 대충 보아도 키가 육 척(180㎝)이나 되는 장신이었고 피부는 주름 하나 없이 깨끗했다. 허리도 굽지 않은 노인의 몸에선 범접할 수 없는 기운이 자연스레 배어 나왔다.
 
 그때였다.
 
 “응애~ 응애~.”
 
 “허어! 드디어 소식이 왔구나!”
 
 노인은 방 안에서 아기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자 방금 전까지 심각하던 표정이 싹 사라졌다. 그는 웃음꽃이 만개한 얼굴로 장내에서 순식간에 사라졌다.
 
 서둘러 방 안에 들어가니 기진맥진한 산모와 아기를 안고 의원이 심각한 표정으로 진맥을 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노인은 의원의 심각한 표정을 보곤 불길한 기운을 느꼈다.
 
 노인은 허겁지겁 아기를 안고 있는 의원을 밖으로 데리고 나와 물었다.
 
 “화중(華仲)! 우리 손주가 어디 잘못됐나?”
 
 “허, 이런······!”
 
 의원은 연신 아기를 진맥하며 맥 빠진 신음을 흘렸다.
 
 화중이라 불린 의원은 전설적인 신의 화타의 혈통으로 가문에서 내려오는 모든 의술을 모두 익혔다.
 
 후에는 무림에 나와 방랑하며 많은 무림인들의 병과 상처를 치료해 주며 무병신의(無病神醫)란 별호까지 얻었다. 이는 화중에게 치료를 받으면 모든 병이 사라진단 뜻으로 의원으로서 최고의 별호인 셈이었다.
 
 그런 그가 지금 아기를 보며 허탈한 표정을 짓고 있으니 노인으로선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화중은 진맥을 멈추고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음······. 이보게, 시천(始天). 이 아이에겐 안사술(安死鉥)을 펼치는 게 좋을 듯싶네.”
 
 “갈(喝)! 자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겐가! 아무리 십년지기라지만 그따위 소리는 함부로 하는 게 아닐세! 다시 그런 소릴 했다간 가만 두지 않을 게야!”
 
 순간 시천이라 불린 노인의 눈에서 시퍼런 광채가 뿜어져 나오며 엄청난 살기가 폭사되었다.
 
 안사술이란 생존의 가능성이 없는 병자들의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하여 인위적으로 죽음에 이르게 하는 술수였기 때문이었다.
 
 화중은 대노하는 시천을 보곤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이 아이의 몸은 아홉 개의 혈맥이 모두 막혀 있다네.”
 
 “······뭐, 뭐? 아홉 개의 혈맥이 막혀 있어?”
 
 “그렇다네.”
 
 “허허.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하필 우리 손주가 태양신맥(太陽神脈)이란 말이냐. 내 평생 하늘에 부끄러움 없이 정도(正道)를 걸었건만 어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시천의 몸에서 엄청난 양의 진기가 줄기줄기 뻗어 나오며 건물과 땅을 뒤흔들었다.
 
 콰르르르르르릉!
 
 화중은 절망하는 시천을 안타까운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 * *
 
 
 
 드르륵-
 
 “시월(始越)아, 무엇 하느냐?”
 
 “음······.”
 
 장신의 백발노인이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시천이었다.
 
 방 안에는 여인처럼 긴 생머리에 얼굴이 백지장처럼 희고 깨끗하니 예쁘장하게 생긴 소년이 침상에 누워 있었다.
 
 시천이 방 안에 들어오는데도 책을 보는 시월의 시선은 요지부동이었다. 시천은 그런 시월을 보곤 미소를 지으며 시월의 옆에 앉으며 겨드랑이에 손을 넣었다.
 
 “푸흐! 푸하하하하! 할아버님! 그만하세요!”
 
 “요 녀석. 할애비가 왔는데도 그놈의 지겨운 책만 보느냐?”
 
 시월을 필사적으로 시천의 손을 뿌리치며 외쳤다.
 
 “할아버님이 오신 줄 몰랐어요. 그러니 이제 그만하세요!”
 
 “허허허! 녀석. 누굴 닮아서 그렇게 책을 좋아할까!”
 
 시월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다 아버님을 닮아서 그렇지요.”
 
 “허허! 그렇구나!”
 
 시천은 쓴웃음을 지으며 시월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시월의 아버지는 시월이 태어나기 전에 일어난 정마대전(正魔大戰)에서 목숨을 잃었다.
 
 평소 시천에게 졸라 아버지의 얘기를 듣던 시월이었다. 시천은 시월이 자신 앞에서는 항상 밝은 모습을 보이지만 속으로는 무척이나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시천은 시월의 갑작스런 목소리에 상념에서 깨어났다.
 
 “할아버님. 저기, 새로 책을 구입해야 할 것 같습니다,”
 
 “허어! 책을 새로 가져 온 지 겨우 보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그걸 모두 보았단 말이냐?”
 
 “예.”
 
 시월은 시천의 눈치를 보며 대답했다.
 
 시천은 그런 시월을 보며 놀랄 뿐이었다.
 
 볼일을 보러 보름 전 사천(四川)에 내려갔을 때 시천은 책을 좋아하는 시월을 위해 약 300여 권의 책을 사왔다. 그런데 보름 만에 300여 권의 책을 모두 읽었다니. 왠지 씁쓸해지는 시천이었다.
 
 시월의 재지(才智)는 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것으로 모두 태양신맥의 영향이었다.
 
 태양신맥은 구음절맥(九陰絶脈)과 쌍벽을 이루는 신체로 아주 드문 확률로 나타난다. 남성은 태양신맥, 여성은 구음절맥의 신체를 가지고 태어나게 되는데 신체의 주요 아홉 군데 혈맥이 막혀 나이 스물을 넘기기 어려운 비운의 신체였다.
 
 그러나 음(陰)이 있으면 양(陽)이 있듯 태양신맥의 신체는 요절하는 대신 엄청나게 뛰어난 재주를 타고난다.
 
 한 번 보면 모두 기억해 버리는 문일지천의 뛰어난 두뇌와 삼라만상의 움직임을 한 번에 꿰뚫어 본다는 천고의 기재가 되는 것이다.
 
 단, 태양신맥의 신체는 스무 살이 다가오면 엄청난 고통에 시달리게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고통이 찾아오는 주기가 점점 짧아지다 결국에는 현세에서 느낄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을 느끼며 목숨을 잃게 된다.
 
 그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시천은 시월의 엄청난 재지를 볼 때마다 가슴 한 구석이 찢어졌다. 그러나 시월은 시천에게 찰싹 달라붙어 천진난만하게 졸랐다.
 
 “할아버님, 지식을 더욱 쌓고 싶습니다. 이제는 천천히 읽을 테니 책을 더 사주세요.”
 
 “허허! 녀석.”
 
 시천은 웃으며 시월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알았다. 할애비가 내일 나가니 사다 주마.”
 
 시천의 말을 들은 시월은 기쁜 듯 미소를 지으며 시천의 품에 안겼다.
 
 “매번 고맙습니다. 할아버님.”
 
 “아이구! 할애비 숨 막힌다.”
 
 시천은 즐거운 비명을 지르며 시월과의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는 추억을 만들고 있었다.
 
 끼익~
 
 “어! 할아버님.”
 
 “허허! 월아. 이 할애비를 기다린 게냐?”
 
 시천의 물음에 시월은 손에 들고 있던 책을 뒤로 숨기고 대답했다.
 
 “예!”
 
 시월의 대답에 시천은 눈을 가늘게 뜨며 웃었다.
 
 “시월아. 정녕 이 할애비를 기다린 거란 말이냐? 그런데 네 뒤에 숨긴 것은 무엇이더냐?”
 
 “예? 음······ 숨긴 거라니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할아버님.”
 
 시천의 물음에 시월은 식은땀을 흘리며 발뺌을 했다.
 
 시천은 당황하는 시월을 보며 웃음을 참고 물었다.
 
 “허험! 지금 등 뒤로 숨긴 게 책 아니냐?”
 
 “······.”
 
 시천은 풀이 죽은 시월을 타이르며 물었다.
 
 “월아! 왜 할애비에게 거짓말을 했느냐?”
 
 시월은 잠시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사실 조금 답답하여 밖에서 책을 보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오시니 기다린 게 아니라고 말하면 실망하실까 그랬습니다.”
 
 시월의 말에 시천은 시월의 나이에 맞지 않게 깊은 생각에 뿌듯함을 느끼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할애비는 월이가 할애비를 기다리지 않는 것보다 거짓말 하는 게 더욱 싫단다. 알겠느냐?”
 
 “예······.”
 
 “그래! 그럼 날씨가 쌀쌀하니 들어가자.”
 
 “예.”
 
 시천은 시월을 번쩍 들어 올려 목마를 태우고 방으로 향했다. 그때 시월이 말했다.
 
 “할아버님. 그런데 제게 줄 건 없으신지······.”
 
 시천은 시월의 말에 짐짓 모르는 척을 하며 반문했다.
 
 “응? 내가 뭘 주기로 했느냐?”
 
 “아니에요.”
 
 시월은 시천의 말에 실망하며 풀이 죽었다. 그때 뒤이어 나온 말에 시월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허허! 이 할애비보다 책이 좋더냐? 걱정 말거라. 표국에 맡겨 놨으니 내일쯤 도착할 게다.”
 
 “와! 할아버님 고맙습니다!”
 
 시월은 시천의 얼굴을 감싸 안았다.
 
 “어어! 이 녀석아. 그렇게 안기면 할애비가 앞이 안 보이지 않느냐.”
 
 “아차! 죄송해요.”
 
 시월은 황급히 시천의 얼굴에서 떨어졌다.
 
 시천은 고개를 들어 시월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할애비가 선물을 준비했으니 책이 오기 전까진 일찍 자거라.”
 
 “네?”
 
 시월의 물음에 시천은 손을 들어 꿀밤을 먹이며 말했다.
 
 “이 녀석아! 책이 도착하면 또 거기에 밤새도록 매달릴 거면서 평소처럼 늦게 잔단 말이냐.”
 
 “헤헷!”
 
 시월은 뒤통수를 긁적이며 웃었다.
 
 그날 밤 시월은 새로 들어올 책들을 상상하며 밤을 새웠다.
 
 
 
 * * *
 
 
 
 “음. 왜 이렇게 늦지.”
 
 시월은 아침 일찍 일어나 대문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그러기를 벌써 한 시진 시천은 초조해 하는 시월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책이 그렇게 좋더냐?”
 
 “······예.”
 
 “그 지겨운 책이 뭐가 그리 좋더냐?”
 
 “저는 다른 아이들이랑 놀 때마다 혼자 빨리 지치는 바람에 제대로 놀지 못해요. 그냥 책을 읽는 게 더 좋습니다.”
 
 시월의 말에 시천은 가슴이 아려 왔다. 시천은 초조하게 책을 기다리는 시월을 보며 꽉 껴안았다.
 
 “웁! 할아버님! 숨 막힙니다!”
 
 “가여운 것······.”
 
 그때 문 밖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시천은 시월을 놓아주며 말했다.
 
 “드디어 책이 도착했나 보구나.”
 
 “정말요?”
 
 시월은 시천의 말을 듣자 서둘러 대문을 열었다.
 
 대문을 열자 낙양표국이라 적혀 있는 금색 깃발이 보였다. 대충 보아도 짐이 굉장히 컸다. 짐의 부피를 본 시월의 입이 활짝 벌려졌다.
 
 그렇게 백운장으로 다가오던 표국의 고급스런 마차에서 꽤나 준수한 청년의 얼굴이 빼꼼 나왔다.
 
 “시천 어르신! 저 왔습니다!”
 
 청년이 시천에게 인사를 하자 시천은 깜짝 놀라며 대꾸했다.
 
 “허허! 이게 누군가. 참 오랜만일세.”
 
 “표정을 보아하니 그렇게 반가워 보이지 않는데요?”
 
 “허허허! 여전히 그놈의 넉살은 변하지 않았구먼!”
 
 “뭐, 그렇죠. 별수 있나요? 우리 사부 성격 아시잖습니까. 우리 사부랑 살면 누구라도 저처럼 될 겁니다, 하하.”
 
 청년은 어깨를 으쓱하며 시천을 바라보았다. 시천은 청년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정말 많이 컸구나. 벌써 세월이 이렇게 지났어.”
 
 “하하! 어르신은 손주 재롱에 시간이 흐르는지 안 흐르는지도 모르시나 보죠?”
 
 “허허허! 뭐, 그렇지! 하하하핫!”
 
 시천은 청년의 말에 호탕하게 웃었다.
 
 청년은 주위를 둘러보다 어느새 짐을 풀어 책 한 권에 몰입하고 있는 시월을 발견했다. 청년은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는 표정으로 시천에게 물었다.
 
 “요즘 시월이는 어때요?”
 
 “잘 지내고 있다네. 아직은 시작되지 않은 것 같아.”
 
 “그렇군요. 다행입니다.”
 
 그 말을 끝으로 둘 사이에 잠시 침묵이 가라앉았다. 다시 말문을 튼 건 시천이었다.
 
 “그럼 일단 안에 들어가서 얘기하지.”
 
 “예! 그럼 며칠 신세 좀 지겠습니다.”
 
 “허허! 그러게나.”
 
 시천과 청년은 안으로 들어갔다. 시월은 시천이 들어간 줄도 모르고 새로 온 책을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시천은 자신을 건드린 사람을 보았다. 짐을 나르기 위해 온 표사 중 한 사람이었다.
 
 “저기, 이거 어디로 옮길까요?”
 
 “아! 안에 들어가면 사람들이 알려 줄 거예요.”
 
 “알겠습니다.”
 
 표사들은 가져온 책들을 들고 옮기기 시작했다. 시월은 그 모습을 흐뭇하게 쳐다보다 빨리 방에 돌아가 책을 보려고 몇 권을 집어 들었다. 그때 표사의 짐 꾸러미에서 책 한 권이 떨어졌다.
 
 “앗, 죄송합니다.”
 
 “아뇨, 괜찮습니다. 제가 가져가겠습니다.”
 
 “그러실래요?”
 
 표사는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를 한 후 짐을 옮기러 안으로 들어갔다. 시월은 떨어진 책을 주워 겉표지를 털었다.
 
 탁탁!
 
 “삼재검법(三才劍法)?”
 
 시월은 책들을 가지고 서둘러 방으로 돌아와 침상 위에서 본격적인 자세를 잡고 모든 책 읽을 준비를 마쳤다.
 
 “음. 뭘 먼저 읽을까?”
 
 그때 삼재검법이라는 책이 시월의 눈에 들어왔다.
 
 “좋아! 읽어 볼까?”
 
 시월은 삼재검법을 펼쳐 들고 책 속으로 빠져 들었다. 그렇게 약 두 시진 흐른 뒤 시월은 책을 덮었다.
 
 “하아- 책 한 권에 이렇게 오래 붙잡혀 보긴 처음이네.”
 
 그래도 시월은 삼재검법을 보곤 만족한 듯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는 삼재검법을 떠올렸다.
 
 “음······. 삼재검법은 총 삼초식으로 첫 번째 초식은 태산압정(泰山壓精). 두 번째 초식은 횡소천군(橫掃千軍).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초식인 선인지로(仙人支路)로 이루어져 있다.”
 
 시월은 손을 들어 삼재검법에 적혀 있는 내용을 떠올리며 손을 휘둘러보았다.
 
 “횡소천군은 이렇게 쓸어내리듯이······.”
 
 휘익!
 
 “풋! 이건 절대 아니겠지.”
 
 시월은 자신도 모르게 점점 검법에 빠져 들고 있었다.
 
 
 
 * * *
 
 
 
 “도련님~ 가주님이 부르십니다.”
 
 “······.”
 
 “시월 도련님!”
 
 “으음. 알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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