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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 1화

2018.07.30 조회 2,048 추천 23


 [무사 1권 1화]
 
 
 
 
 프롤로그 (대우전을 쓰는 기병)
 
 
 “내가 이럴 줄 알았다니까.”
 장익환이 투덜거렸다.
 “괜히 체탐군으로 지원하는 게 아니었는데.”
 “아, 거 사람 말 많네. 빨리빨리 움직이쇼! 여진 놈들이 오고 있다고!”
 세 명의 인물들이 만주 땅에서 열심히 남쪽으로, 두만강을 향해 뛰었다.
 이들은 6진의 회령도호부 소속 군사들로 회령 근처 마을에서 조선 사람들이 몇 명 사라지자, 여진족들의 부락으로 체탐(정찰)하다가 돌아오는 길에 여진의 기병 4기와 마주쳤다.
 ‘에이, 시펄.’
 장익환의 왼손에 든 팽배(방패)가 무거워 버리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지만, 무기를 버리고 도망치는 것은 사형이었기에 버릴 수도 없었다.
 게다가 그는 최전방을 담당하는 팽배수라 입고 있는 경번갑(쇠미늘과 쇠고리를 서로 연결하여 엮어 만든 갑옷)과 첨주투구(챙이 달린 무쇠투구)는 매우 무거웠기에 걷는 것이 여간 힘들었다.
 그렇게 뒤처진 그를 재촉하는 이극환과 일추는 사수들로 각자 지포엄심갑(종이로 만든 흉갑)에 벙거지(돼지털을 눌러 만든 챙 달린 모자) 쓰고 있어 그보다 매우 가벼웠다.
 “아군 부대랑 합류만 하면······.”
 말발굽 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안색이 극도로 창백해진 그는 허리춤에 찬 환도를 뽑았다.
 “글렀어! 효시를 쏴!”
 그는 몸을 돌렸다.
 4기의 여진 기병이 그의 정면으로 말을 타고 달려오는 것이 그대로 보였다.
 날카로운 휘파람 소리가 울렸다.
 제대로 들었다면 근방에 대기 중인 엄호부대가 곧바로 이곳으로 올 것이다.
 활을 꺼내 든 일추가 그들 중 하나를 노리고 활을 조준해서 발사했다.
 화살은 그대로 맨 앞으로 달리던 여진 기병의 흉부 중앙에 맞았고 그자는 말에서 떨어졌다.
 여진인들은 갑옷을 입고 있지 않았기에 충분한 살상이 가능했다.
 그다음으로 이극환이 활을 당기려는 순간 진기병 두기가 그들을 향해 활을 쏘았다.
 장익환은 이를 악물며 자신의 머리를 노리고 오는 화살을 팽배로 막았다.
 하지만 두 번째 화살이 일추의 목을 명중시켰다.
 “흑!”
 바람이 빠지는 듯한, 외마디 비명과 함께 일추는 쓰러졌다.
 이극환이 고함을 지르며 활을 쏘았다.
 하지만 활은 여진 기병의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갔고 그들의 사이가 급속도로 가까워지려는 순간 여진 기병들이 말머리를 돌렸다.
 그들은 20보(대략 25m) 이내로 접근하지 않은 채, 그들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포위해서 쏴죽일 속셈이었다.
 “이런 난장 맞을!”
 장익환과 이극환은 서로 등을 붙인 채, 가만히 있었다.
 3기의 기병들은 그들을 중심으로 계속 돌았다.
 “끝이군.”
 ‘내게 활만 있었다면 어찌 되었을 텐데.’
 이극환이 활을 쏘았다.
 그와 동시에, 여진 기병이 활을 쏘았다.
 “크윽!”
 화살은 그대로 이극환의 흉갑에 적중했고 이극환의 화살은 여진 기병의 머리 위로 지나갔다.
 “오살할 놈들! 원군은 언제 오는 거야?”
 “크윽!”
 이극환은 활을 뽑으려고 했다.
 엄심갑 덕분에 화살이 깊게 박히지 않았다.
 “그대로 누워있어!”
 이극환이 눕자, 장익환이 그 위에 서서 여진 기병들이 도는 만큼 계속 몸을 움직였다.
 한 번에 2발의 화살이 날아왔고, 그는 팽배로 화살을 막았다.
 “이 개자식들아! 와서 덤벼!”
 그가 고함을 질렀다.
 하지만 여진 기병들이 와서 공격할 리 만무했다.
 그는 몸을 팽배를 고쳐 잡고 그들에게 달려가기로 마음먹었다.
 그것이 죽게 되는 거라도 차라리 그렇게 하는 것이 나으리라 생각이 들었다.
 그는 여진 기병들에게 고함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그가 달려들자 여진 기병들의 입이 이빨이 보일 정도로 웃음으로 번졌다.
 그들에겐 그저 저런 돌격은 후퇴하고 좌우로 흩어지면 그만이다.
 그들이 고삐를 당겨 흩어지려는 순간, 화살 깃이 큰 화살이 여진 기병의 머리에 박혔다.
 “뭐야?”
 달리다 멈춘 장익환이 중얼거렸다.
 남은 두 기가 화살이 날아오는 쪽을 보았다.
 갈색의 말을 타고 검은 두정갑을 입은 기병이 그들을 향해 활을 겨누며 달려왔다.
 그자의 투구 또한 드림이 달린 무쇠로 된 첨주투구였고, 동개일습(활을 넣는 동개와 화살을 넣는 주머니인 시복 주머니를 일컫는 말)과 허리에 찬 환도가 눈에 띄었다.
 다른 무기를 들고 있지 않은 것을 봐서 궁기병이 분명했다.
 그자는 동개궁(마상에서 쓰기 편하게 만든 작은 활)에 두 번째 화살을 먹여서 당겼고, 화살은 두 번째 기병의 말에 맞았다.
 마지막으로 남은 기병이 그 기병에게 활을 조준했는데도 그 기병은 그대로 달려들었다.
 “위험해!”
 장익환이 외쳤지만, 여진 기병의 화살이 먼저 날아갔다.
 하지만 화살은 투구의 측면을 맞고 그대로 옆으로 비켜 나갔다.
 그사이 검은 두정갑을 입은 기병의 오른손에 환도가 잡혀 있었다.
 그것을 본 여진 기병이 급히 칼을 뽑으려고 했지만, 그자의 칼과 말이 더 빨랐고 단번에 목이 잘려나가 굴러갔다.
 “워~ 워.”
 조금 달리다 말을 천천히 정지시킨 그 기병이 말머리를 돌렸다.
 말이 죽은 덕분에 살아남은 여진 기병이 그대로 몸을 돌리고 도망을 쳤다.
 그것을 본 그자가 환도를 버리고, 화살을 꺼냈다. 역시 화살 깃이 큰 화살이었다.
 ‘대우전이군.’
 큰 화살 깃 덕분에 100보(약 125m) 이내에 좋은 명중률을 자랑하는 그것은 기병용 화살이기도 하지만 큰 화살 깃 덕분에 바람의 저항이 심해 멀리 날아갈 수 없어 지금은 거의 쓰지 않는 화살이었다.
 그자가 활을 당겼고 곧바로 쏘았다.
 대우전은 그대로 수평으로 날아가 도망치는 여진 기병의 등을 맞췄다. 훌륭한 솜씨였다.
 그는 말을 앞으로 천천히 몰았다.
 “괜찮으십니까?”
 그가 물었다.
 “저 친구 좀 봐줘.”
 장익환이 그렇게 말하며, 환도를 도로 꽂았다.
 그는 버려진 말들의 고삐를 잡았다.
 잘 길들어진 덕분인지 사람을 보고 그 말들은 피하지 않았다.
 다들 하나같이 큰 말들이었다.
 “여진 놈들 말들은 하나같이 크지.”
 활에 맞아 죽은 1마리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그의 손에 들어왔다.
 그사이 두정갑을 입은 기병은 말에서 내려 이극환의 상처를 보았다.
 “활이 깊숙하게 박히지 않아서 잠깐 붕대로 감으면 될 것 같습니다.”
 “고마워, 내 전대(폭이 좁고 얇은 포목제 허리띠) 좀 풀어줘.”
 화살을 뽑자 피가 나왔다.
 이극환은 자신의 엄심갑을 벗었다.
 그자가 전대를 풀어주자 이극환은 자신의 전대로 상처를 두르고 지혈을 위해 세게 묶었다.
 “정말 고마워, 자네가 내 목숨을 살렸어.”
 이극환이 자리에서 일어서 그에게 살짝 묵례를 하였다.
 “전리품이 많은데?”
 장익환은 여진 기병들의 시신들을 뒤졌다.
 여진족들은 항상 자신의 몸에 전 재산을 가지고 다녔기에 잡았을 때 수익이 대단했지만, 유감스럽게도 이번만큼은 별것 없었다.
 장익환은 그들의 무기와 두 장의 사슴 가죽을 찾아냈다.
 “오호라!”
 사슴 가죽이 무두질이 안 된 것이 기병들이 잡아서 가지고 돌아가던 길이 분명했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그것을 몰래 자신의 품속에 넣은 뒤 다시 뒤졌다.
 다른 여진족의 품속에서 말린 고기를 찾아냈고 그것을 먹었다가 곧바로 뱉어냈다.
 “이거 완전히 썩은 고기 맛이잖아!”
 침까지 뱉어낸 그는 허리춤에 찬 조롱박 물병을 꺼내서 물로 입안을 헹구고 뱉었다.
 “뭐야, 왜 그런 눈으로 봐?”
 “아니, 저는 그러니까······.”
 검은색 두정갑을 입은 기병이 떨떠름한 표정이었기에 한 말이었다.
 “뭐야, 너 설마 국경을 넘은 거 이번이 처음이냐?”
 “예.”
 장익환과 이극환은 서로를 보았다.
 “그럼······.”
 “방금 그게 첫 전투였습니다.”
 첫 전투치고 아주 잘했다.
 그런데 이런 햇병아리에게 목숨을 구원받다니.
 6진의 국경에서 평생 생활하던 그들로서는 운이 좋다고 봐야 했다.
 거기에 여진족이 활을 조준하는데 그대로 달려드는 담력을 보건대 제대로 배운 것이 분명했다.
 사실 이들이 자신들을 구해준 이 친구에게 자연스레 반말한 이유도 수염이 조금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단한 것치고 나이가 어렸다.
 “장익환이다.”
 그는 허리를 살짝 숙여서 인사했다.
 “덕분에 살았어.”
 “시류입니다.”
 시류도 살짝 묵례를 했다.
 그는 투구끈을 풀어 벗었다. 앳된 얼굴에, 댕기 머리를 한 잘생긴 청년의 얼굴이 드러났다.
 “어제 부임한 양계갑사(국경을 지키는 직업 군인의 일종)입니다.”
 갑사라면, 무과만큼은 아니더라도 시험을 통해서 들어왔을 것이다.
 게다가 말투가 곱상한 것이 도성에서 온 것이 분명했다.
 장익환은 무례인 줄 알면서도 그를 위아래를 훑어보았다.
 검은색 두정갑, 예전부터 있긴 했지만, 야인들의 갑옷에서 전래한 거라 잘 입지 않는 갑옷인데 겉감을 보건대 명주였다.
 명주는 비단만큼은 아니지만 무명보다는 비싼 직물이다.
 또 움직일 때마다 찰그랑거리며 소리가 살짝 나는 것이 안에는 가죽편찰이 아니라 철편이 분명했다.
 그리고 허리에 갈색의 사슴가죽요대에 동개일습과, 환도를 차고 그 위로 푸른 전대를 찬 모습이었다.
 동개일습의 가죽이 사슴 가죽에 자수가 놓여 있다던가, 환도를 보건대 투박해 보이지만, 고급소재로 된 것이 분명했다.
 집안이 부자이거나, 양반의 자제······. 아니, 양반이라면 무과를 통해 관직에 나갔을 테니, 갑사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즉.
 ‘서자 놈이군.’
 확신한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측은함이 들었지만, 동정하진 않았다. 양반가의 서자라도, 양민인 장익환보다는 상전이기 때문이다.
 “미안한데, 올해 나이가?”
 “19세입니다.”
 장익환은 24세였다.
 “얼씨구? 장 형, 이놈 보소. 댕기 머리를 하고 있잖아.”
 결혼을 안 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갑옷이 검게 물들어 있어 검은 댕기 머리 또한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다음부터는 건상투(결혼하지 않는 자가 상투를 트는 것)라도 틀고 전투해. 그러다가 댕기 머리를 적에게 잡히면 어떡하려고?”
 “아, 알겠습니다.”
 “그리고 말인데······. 우리는 영안도 토병(일정지역의 토박이들로 구성된 지방군사)이야. 갑사는 토병보다 품이 높으니까. 굳이 존대를 안 해도······.”
 “아닙니다. 저보다 나이가 많으시니 존대를 사용하겠습니다. 갑사라도 관직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니까요.”
 장익환은 시류가 마음에 들었다.
 만족스러운 눈이 어느새 시류의 허리춤에 고정된 은으로 된 사발과 나무통이 몸체로 된 나팔을 발견했다. 그건 대각이었다.
 “다른 군사들을 부르는 게 낫지 않을까? 너 혼자 오지 않았을 거 아냐?”
 “아, 이런.”
 작게 중얼거리며 시류는 대각을 꺼냈다.
 효시 소리가 난 곳을 찾기 위해 흩어졌던 나머지 기병들이 그 소리를 듣고 찾아올 것이다.
 장익환은 그것을 지켜보다가 죽은 동료의 시신에 몸을 돌렸다.
 허리를 숙여 내려 보니 그 친구는 눈을 뜬 채 죽어있었다.
 “미안하구만.”
 그는 일추의 눈을 덮어주었다.
 그는 고개를 돌렸다.
 요즘은 쓰지 않는 대우전을 쓰는 기병이라니······.
 그는 죽은 여진족들에게서 화살을 뽑아내었다. 화살촉은 착전(적의 갑옷을 뚫기 위해 고안된 송곳모양의 화살촉)의 그것과 같았고 일반 화살보다 조금 무거웠다.
 ‘살이 무겁기에 이런 위력을 낼 수 있군.’
 화살을 돌려주기 위해 그는 몸을 움직였다.
 시류는 자기가 마지막으로 쏜 여진족을 내려 보고 있었다. 그놈은 아직 죽지 않았다.
 -왜 우리 조선 사람을 납치한 거지?
 장익환은 잠시 멈칫거렸다. 그가 못 알아듣는 여진의 말이었다.
 -네······. 네놈······. 어떻게 우리말을······.
 -묻는 말에나 대답해라.
 -우리도 대식국(조선에 대한 외국의 별칭)처럼 농사를 짓고 산다······. 하지만 우리는 농사기술이 부족해. 아이들이 굶고 여자들도 굶고 전사들도 굶는다. 사냥만으론······. 부족해. 그래서 너희가 필요했던 것······.
 그자는 그렇게 절명했다.
 멀리서 말발굽의 소리가 들려왔고, 대각의 소리가 울렸다. 시류는 말없이 고개를 돌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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