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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가기버튼 삼국지 유봉전 : 계한의 부흥

과거로

2018.07.27 조회 31,492 추천 337


 건안 24년(219년), 조조와의 한중 공방에서 승리를 거둔 유비는 익주와 형주를 아우르는 세력을 손에 넣고 한중왕(漢中王)에 오른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북형주 공략에 나선 관우가 손권의 배신으로 형주마저 빼앗긴 채 목숨을 잃게 된다.
  한편, 맹달과 함께 상용(上庸, 형주와 한중 사이의 거점)을 지키던 유비의 양자 유봉은 관우를 구원하지 않은 죄로 궁지에 몰리는데, 맹달 또한 죄를 지은 것을 두려워해 유봉을 배신하고 위나라로 투항한다. 곧이어 맹달의 투항과 함께 하후상, 서황을 앞세운 위의 침공이 시작되고, 결국 유봉은 싸움에서 패하며 상용을 빼앗기고 만다.
  유비의 분노를 피해 위나라로 함께 투항할 것을 종용하는 맹달, 그러나 유봉은 유비와의 신의를 지키며 성도(成都)로 향한다.
 
 *
 
  대전(大殿) 안은 고요했다.
  하지만 대전 한 가운데 꿇어앉은 장수에게 쏟아지는 시선은 온통 비난과 경멸로 아우성치고 있었다.
 
  ‘유 공. 아니, 유 장군. 이는 단지 왕 자신의 판단으로만 결정되지 않을 것이오. 후계 문제가 걸린 사안인즉, 필시 측근들이 부추겨 왕의 원한과 의심을 키울 것이란 말이외다. 그리하면 왕의 분노가 어디까지 커질지 상상이 되시오?’
 
  꿇어앉은 장수, 이제는 천고의 죄인이 되어버린 유봉은 귓가에 맴도는 맹달의 외침에 고개를 내저으며 눈을 부릅떴다. 하지만 그를 내려다보는 한중왕(漢中王) 유비의 이글거리는 시선을 마주하고는, 그리고 차가운 제갈 군사(軍師)의 표정을 보고 나니 그의 눈에 눈물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화(禍)가 닥칠 것을 알고도 가만히 머무르는 것은 지혜가 아니며, 이는 곧 장부의 태도가 아니오. 그대와 한중왕은 피가 아닌, 고작 약속 하나로만 맺어진 사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오.’
 
  유봉은 고개를 내저었다.
  유비의 아들로 보낸 십여 년의 세월 동안, 그는 유비를 친아버지처럼 따랐고 유비 역시 그를 친자식처럼 대했다. 어찌 부자지간의 믿음 없이 이 자리를 제 발로 찾아왔겠는가?
  하지만······.
 
  “가져와라.”
 
  유비의 한마디에 둑이 터지듯 참았던 눈물이 와르르 쏟아져 내렸다.
  숙부(관우)의 죽음에 대한 참회, 그리고 이런 결과를 만들고 만 자신에 대한 후회의 눈물이었다.
 
  “너 스스로 목숨을 끊어라. 이게 아비로서 해 줄 수 있는 마지막 배려다.”
 
  술 안에 출렁이고 있는 독 때문일까, 유난히 술잔이 차갑게 느껴졌다.
  대전 안에 자리하고 있는 몇몇은 부들거리는 손으로 독이 든 술잔을 쥐고 있는 그의 모습을 안타깝게 지켜보았다. 하지만 유봉은 비난과 경멸의 시선을 마주할까 두려워 눈을 질끈 감고는 단숨에 술을 삼켰다.
 
  ‘아버지, 부디 대업을 이루십시오.’
 
  유봉은 뜨거운 피를 내뿜으며 숨이 끊어졌다.
 
 *
 
  기원전 202년, 진시황제(秦始皇帝)의 폭정을 끝내고 난세를 종식한 유방은 한(漢)나라를 세우고 황제에 오르는데 이를 전한(前漢)이라 부른다.
  기원후 8년, 전한의 권신이었던 왕망이 황제를 폐하고 국명을 신(新)으로 고친다.
  기원후 25년, 광무제(光武帝) 유수가 곤양(昆陽)에서의 대승을 토대로 한을 재건하니 이를 후한(後漢)이라 부른다.
  기원후 220년, 조비가 헌제에게 선양을 받아 황제에 오르자 이듬해 유비가 한(漢)의 이름을 이어받아 나라를 세우니 이를 계한(季漢, 마지막 한)이라 부른다.
  기원후 263년, 위나라가 종회와 등애를 앞세워 계한을 침공하니 후주(後主) 유선이 항복하여 한(漢)은 멸망했다.
 
 *
 
  “이게···.”
 
  유봉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딱딱한 침상과 단출한 가구, 그리고 그것과는 다르게 반대쪽 회백색 벽면에는 화려하게 빛나는 번들번들한 갑옷과 금방이라도 천장을 꿰뚫어버릴 것처럼 날카롭게 벼려진 창이 우두커니 놓여 있었다.
  익숙하면서도 생소한 풍경, 바로 형주(荆州)에 머무를 때의 처소였다.
 
  “허, 이게 어찌 된 일이지? 분명 나는 독이 든 술을 마시고 숨이 끊어졌는데?”
 
  혹시 아버지께서 급히 의원을 불러 목숨을 붙어둔 것은 아닐까 생각해봤지만, 이내 자조 섞인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도 없을뿐더러, 이미 피까지 토했으니 대라신선(大羅神仙)이 와도 살릴 수가 없다. 게다가 여기는 강릉(江陵)의 처소가 분명하니 가능한 일이 아니다.’
 
  자신이 이렇게 된 까닭이 꼭 그 한 가지 이유 때문이겠는가만은, 어찌 됐건 직접적인 원인은 숙부님이 지키던 형주를 동오의 여몽과 육손이 강탈해간 탓이었다. 그러니 자신이 이곳에 있는 것은 더욱 불가능했다.
  게다가···.
 
  ‘이 매끈한 팔은 또 뭐란 말인가? 가슴의 상처도 없고···. 하면?’
 
  유봉은 급히 일어나 거울을 찾아 자신의 얼굴을 비추었다.
  흐릿하긴 했지만 분명 거울에 맺힌 상은 수년 전의 자신이었다.
 
  쨍그랑-!
 
  화들짝 놀란 유봉은 손에 쥐고 있던 동경(銅鏡)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어릴 적 자신의 얼굴을 다시 보는 것도 놀라웠지만, 거울 속 자신의 눈동자를 마주한 순간 여러 글자가 허공으로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이, 이게 대체 무, 무슨···!”
  『이봐, 뭘 그렇게까지 놀라고 그래?』
 
  유봉은 그렇지 않아도 놀란 마당에 귓가에 울려 퍼지는 정체 모를 목소리를 듣고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급하게 주변을 두리번거린 그는 허공에 둥둥 떠 있는 한 사내를 발견하고는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으악! 귀신이야!”

작가의 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37)

rp******    
재밌게 보고갑니다.
2018.07.28 13:43
은수랑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2018.07.29 13:49
김국국    
유봉도 뭔가 매력이 있는 캐릭터죠
2018.08.06 16:55
은수랑    
많은 게 얽혀있는 캐릭터죠 ㅎㅎ
2018.08.08 00:21
크앙재미따    
유비자식 아닌줄 알앗어
2018.08.07 01:32
은수랑    
양자지만 마지막 빼면 제법 아꼈다고 합니다 ㅠㅠ
2018.08.08 00:21
꼴초쌍디    
4 김배옥
2018.08.08 09:06
마테라테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자기 조카를 그렇게 아꼈지만 친아들 태어나는 순간 모든게 도로묵이 되었다죠. 어디든 다들 비슷한듯
2018.08.10 19:44
기타선수    
좋아! 얼마전 삼국지 관련 소설 재미있게 읽다가 중간에 어떤 계기로 하차 했는데, 끝까지 문제없이 갑시돻!!!
2018.08.10 22:33
대구호랑이    
잘보고 갑니다~^^
2018.08.12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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