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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놈 아래 뛰는 놈 - 1

2018.08.02 조회 61,914 추천 572


 [2016년 9월 19일 월요일, 종로 효자동]
 
 청와대가 내려다보이는 빌딩 옥상에서 한 노인이 담배를 피우고 있다.
 
 “후.”
 
 그가 내뱉은 새하얀 연기가 시야에서 청와대를 가렸다.
 그리고 담배 연기가 걷힐 때, 빌딩 아래 멈춘 독일제 세단을 발견했다.
 손님이 찾아왔음을 안 노인은 반가운 마음으로 7층 사무실로 내려왔고, 곧 그의 사무실로 인물이 빼어난 방문객이 찾아왔다.
 
 “의장님, 그간 잘 계셨습니까?”
 “김명훈 부회장! 한국에서 제일 바쁜 분이 어언 일로 왔는가?”
 
 노인을 찾아온 이의 이름은 김명훈, 국내를 넘어서 세계적인 기업으로 불리는 ‘신오전자’의 부회장이다.
 49살에 불과한 그가 이만한 지위를 얻은 것은 창업주의 손자이기에 가능했다.
 즉 재벌 3세라는 소리다.
 
 “죄송합니다, 의장님. 연락 드리고 찾아봬야 하는데 근처에 온 김에 안부차 들렀습니다.”
 “근처라면 청와대?”
 “네, VIP가 찾으시네요.”
 “가뜩이나 조심해야 할 시기인데, 또 돈 달라고 하는 건 아니지?”
 
 비서가 가져다준 오렌지 주스를 들이켠 김명훈이 허탈한 표정을 취했다.
 
 “아니긴요. 부총리도 대통령이 통제 불능이라며 난감해합니다.”
 
 노인은 부총리가 언급되자 한숨을 내쉬었다.
 담배를 피우고 왔건만, 다시금 흡연이 절실하다.
 대통령에게 곤욕을 치르고 있다는 부총리가 노인의 아들이기 때문이었다.
 
 “사이비한테 단단히 홀려서 원. 손절하겠다고 해서 청와대에 앉혀줬더니.”
 “정작 VIP는 자신 말고 대통령 할 사람이 없었다며 기고만장하십니다.”
 “에효. 내가 다 미안하네, 부회장.”
 “저희 사이에 무슨 그런 섭섭한 말씀이십니까?”
 
 노인은 결국 참지 못하고 창문을 열었고, 글로벌 기업의 부회장인 김명훈에게 양해도 구하지 않고 담배에 불을 붙였다.
 
 “사실 며칠 전에 ST 회장도 다녀갔네. 자네와 같은 상황이야.”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이는 노인이었지만, 얼굴을 잔뜩 구기며 웃는 모습은 악마를 떠올린다.
 그런 노인을 보며 김명훈은 섬뜩해 했다.
 
 “주인 무는 개를 어떻게 교육하는 줄 아나?”
 “말 잘 들으면 간식을 주고, 안 들으면 때리지 않나요?”
 “그렇지. 근데 맞아도 말을 안 들을 땐 말이야.”
 
 김명훈은 어떤 말이 나올까 기대하는 눈초리로 노인의 주름진 입가를 주시했다.
 
 “죽이는 수밖에. 그래서 말인데 자네, 내가 하라는 대로 할 수 있지?”
 “그, 그럼요. 죽는시늉까지 하겠습니다.”
 “죽으라는 건 아니고, 한 번 들어갔다 와. 쾌적하게 지내도록 해줄게.”
 “아······.”
 
 들어가라는 곳이 어딘지 모르지 않았다.
 노인은 이미 결정을 내렸고, 이 순간 김명훈은 무조건 따라야 하는 장기 말이어야만 했다.
 
 “다음 정권은 야당에서 가져갈 수밖에 없고, 좋은 그림이 나오려면 자네가 옥살이 좀 해줘야겠어.”
 
 시총 1위 기업의 부회장에게 감방에 가라니.
 여행이라도 다녀오라는 듯 가벼운 말투다.
 
 “알겠지만, 대통령과 연결점이 가장 많은 곳이 자네 회사 아닌가.”
 
 신오전자 하면 김명훈의 부친이 상징성처럼 떠오르지만, 그럼에도 노인은 김명훈의 회사라고 못 박아 말했다.
 능력을 인정받은 것 같았고, 덕분에 고민은 길지 않았다.
 사업가 중 교도소 한 번 안 다녀온 사람이 어딨겠냐는 호기였다.
 
 “알겠습니다. 이참에 푹 쉬다 오죠. 몇 달 후에 특사로 빼주시겠죠?”
 “1년.”
 “······.”
 “그리고 자네 삼촌한테 KDBC 경영에서는 발 빼라고 해두게.”
 “네?”
 “KDBC 보도부 사장에게 집중취재를 지시할 생각이거든. 보도부 사장이 자네 삼촌 눈치를 봐서야 되겠나?”
 
 김명훈은 노인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감도 잡히지 않았지만,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의 재벌, 검찰, 언론, 정치인들을 움직이는 게 바로 이 노인 ‘장원구’이기 때문이다.
 
 #
 
 [2016년 9월 26일 월요일, 홍익일보 세종별관]
 
 똑똑.
 
 “최한수 편집국장님.”
 
 바깥에서 들려온 걸걸한 목소리에 하던 일을 멈췄다.
 
 “어.”
 
 내 대답에 문이 열리고, 입사 10년 차의 정치부 기자가 들어왔다.
 
 “국장님, 사장님께서 찾으시는데요?”
 “사장님이?”
 “네, 바로 올라오시래요.”
 “알았어.”
 
 난 명령을 하달받은 군인처럼 신속하게 자켓을 걸치고는 6층으로 향했다.
 딩동.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비서가 건조한 손짓으로 안내한다.
 뭐라도 되는 줄 아는지, 사장 외엔 눈을 내리깔고 보는 비서다.
 
 “들어가세요.”
 
 나는 비서와 눈을 마주치지도, 대답도 하지 않고 사장실에 들어갔다.
 
 “저 왔습니다.”
 “우리 최 국장 왔어?”
 “네, 부르셨다고요.”
 
 홍익일보 사장, 송호정은 천만 원을 훌쩍 넘기는 프리츠한센 소파에 앉아 신문을 읽던 중이었는데, 살갑게 자리에서 일어나 날 반겼다.
 그리고 내 귀를 의심하게 하는 말을 뱉었다.
 순간 이 인간이 제정신인가 싶었다.
 
 “한수야, 다음 달부터 사장 해라.”
 “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정리할 게 많아서 미뤄왔는데, 다음 달부터 내가 회장직을 맡게 됐다.”
 “아! 축하드립니다.”
 “그래서 말인데, 네가 사장을 맡아줬으면 해. 알지? 내가 널 친동생처럼 생각한다는 거.”
 
 경영직이 아닌 일반 기자가 오를 수 있는 최고 직급은 편집국장 혹은 논설위원.
 그런데 편집국장인 내게 임원도 거치지 않고 사장으로 진급하라니.
 보통 파격적인 인사조치가 아니었다.
 
 “······부사장님은요?”
 “박 부사장도 널 도와줄 거야.”
 
 송호정 사장의 오른팔로 불리는 부사장이 있건만, 친동생 같다는 이유로 나보고 사장을 하란다.
 마치 입던 옷 물려주는 것처럼 즉흥적이다.
 차라리 이게 몰카라는 편이 믿기 쉽겠다.
 
 “부사장님이 저보다 나이도 있으신데.”
 “나이가 뭐가 중요하니. 신오전자 부회장은 너랑 동갑이고, 경한신문 사장은 46살에 사장 달았어. 난 더 어릴 때부터 사장이었고.”
 
 그건 댁이 로열패밀리니까 그렇지.
 그리고 정확하게는 신오전자의 김명훈 부회장이 나보다 1살 어리다.
 
 “참, 내 아들이 내년에 귀국하면 바로 일을 배울 거니까 잘 가르쳐줘.”
 “호준이가 벌써 그런 나이가 됐군요.”
 
 혹시 아들 교육에 내가 적임자라 생각해서 사장직을 제안한 건가?
 
 “이사회에서도 거부하는 사람은 없을 거야. 할 수 있지?”
 
 믿긴 힘들었지만, 갈등은 길지 않았다.
 다음 달부터 내가 발행인이 된다니!
 놓쳐선 안 될 일생일대의 기회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널 필두로 젊은 언론을 만들어보자고.”
 
 그날 저녁 오랜만에 아버지의 묘를 찾은 나는 사장이 되었다는 말과 함께 인사를 올렸다.
 예정대로 10월 3일이 됐을 땐.
 난 주주총회를 거쳐 사장이 되었다.
 
 #
 
 사장이 되고 나서도 하는 일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선배 기수인 직원들과 살짝 어색해지긴 했지만, 송호정 회장이 든든하게 뒤를 봐주니 취재 방향을 전보다 세련되게 밀어붙일 수 있었다.
 한국의 극우 신문사라고 불리는 홍익일보는 최근 그 편견을 깨기 시작한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
 그 이유는 우리가 보수 정권을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다.
 1년 전만 해도 2,900원이던 담뱃값이 지금은 4,500원이 되었고, 담배뿐만이 아니라 서민들의 애용품에 가차 없이 세금이 높아졌다.
 증세 없는 복지가 공약이던 대통령이 공약을 깨버린 것이다.
 
 ‘10월 13일, 오늘은 태국 국왕이 서거한 게 세계적인 기삿거리지만, 국내에서는 정부 비판 말고는 이슈가 안 돼.’
 
 내 체제로 변한 홍익일보는 부동산 비리를 저지른 민정수석의 사퇴를 요구하는 보도를 냈고, 그 과정에서 청와대와의 기 싸움은 살벌해져 갔다.
 그로부터 열흘이 더 지난 24일 저녁.
 사장실 문이 벌컥 열리며 논설주간이 들이닥쳤다.
 비서는 주간을 막지 못해 죄송해했지만, 난 논설주간의 돌발행동에는 이유가 있다고 여겨 괜찮다고 말했다.
 행동 하나하나에 의미가 있는 사람이니까.
 
 “최 사장, 바빠?”
 “아뇨 선배, 말씀하세요.”
 
 나보다 10살은 더 많은 논설주간, 심지어 그는 송호정 회장보다 먼저 홍익일보에 입사했다.
 
 “KDBC에서 일하는 후배한테 들었는데, 내일부터 우리도 이걸 터뜨려야 할 것 같아.”
 “극동미디어에서 뭘 준비했길래요?”
 “대통령이 일반인에게 국가기밀을 넘겼다는구만.”
 
 안 그래도 지난주부터 KDBC 뉴스를 통해 의혹이 부풀려지던 중이었다.
 단지 확실한 증거가 없었을 뿐이었는데, 결국 찾아낸 모양이다.
 
 “대통령이 왜요?”
 “나야 모르지. 아무튼 KDBC가 입수한 자료를 검찰에 넘겼어.”
 “미쳤군, 대체 누구예요. 그 일반인이?”
 
 이어진 주간의 말에 헛웃음만 나올 따름이었다.
 
 “농사꾼이야. 우리도 잘 아는.”
 
 대체 농부가 국가기밀이 필요한 이유가 뭐야?

작가의 말

8시 20분에 연재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16)

라토르    
뭔가 단단히 준비하신 기분이 드네요. 기대하겠습니다!
2018.08.02 21:15
Boot붓    
언제나 감사합니다. 재벌물은 처음이지만 실망시키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ㅡ^
2018.08.02 22:08
필로스    
신작 축하합니다! 대박 나세요~
2018.08.04 21:55
햄쮸    
돌아오셨네요. 이번엔 연중이 없길...
2018.08.09 06:58
왕십리글쟁이    
신작 축하드려욧 건필하십쇼!
2018.08.09 12:39
니베르    
사건전에 예지기사 딱딱내 잘맞추고 언론사차리고 ? 왜 어디서본거같은데 리메이크인가
2018.09.01 22:15
풍뢰전사    
잘 보고 있습니다.
2018.09.02 20:32
musado0105    
잘 보고 갑니다. 건 필하세요^^*
2018.09.03 19:56
자몽맛소다    
프로듀스 좀비군단 작가님이 재벌물을?!!! ㅋㅋㅋ 재밌게 보고있습니다
2018.09.13 02:33
청광류    
이상하네. 이재용이 어쩔 수 없이 협조한듯 포장을. 이명박 소송비용부터 경영승계 국민연금 손실까지 아주 적극적이었는데. 법조계 인사들도 재판결과 동의 안할정도로.
2018.09.18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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