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함
뒤로가기버튼 절대검마.

1화

2018.08.08 조회 3,246 추천 24


 서장
 
 
 
 
 
 
 
 
 
 
 
 무공은 위대한 권력이다.
 
 
 
 무인이 천하를 지배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럼에도 무인들은 천하를 황제에게 허락하고 말았다.
 
 
 
 한 사내가 말했다.
 
 
 
 
 
 
 
 “내가 그것을 되돌려 받겠다.”
 
 
 
 
 
 
 
 一. 이름을 얻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소년의 미래는 정해져 있었다. 잘해야 아버지의 뒤를 잇는 소작농, 운이 나쁘면 흉년 동안 굶어 죽는 것이 그의 운명이었다.
 
 
 
 한데 한 사내가 소년의 운명을 바꿔 놓았다.
 
 
 
 그의 이름은 광천(廣天).
 
 
 
 광천은 점창파의 고수였다. 그는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무공에 재질이 있는 아이들을 찾아 점창파로 보내는 일을 맡고 있었다.
 
 
 
 광천의 눈에 소년이 들어온 것은 삼 일 전이었다.
 
 
 
 또렷한 눈동자와 튼실한 근골이 마음에 들었다. 절정고수는 되지 못한다 해도 잘 가르치면 일류고수는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광천은 소년을 선택했다.
 
 
 
 소년의 부모에게 은자 두 냥이 주어졌다. 부모는 그 돈을 받고 아이를 점창파에 넘겼다. 자신들은 물론 아이에게도 좋은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점창파는 소년에게 새로운 이름을 주었다.
 
 
 
 “네 이름은 묵혼이다.”
 
 
 
 소년의 사부는 그림자였다.
 
 
 
 그림자란 각 문파에서 어두운 일을 도맡아 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다. 그림자가 있는 문파는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문파였으며, 정파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쉽게 말해 정파의 이름을 걸고 할 수 없는 일을 그림자가 대신 처리하는 것이다.
 
 
 
 그림자에게 맡겨지는 일은 보통 살인이나 납치였으며, 이를 위해 그림자는 최고 수준의 무공과 은신, 추적술을 익혀야만 했다.
 
 
 
 중인들은 그림자를 가리켜 입에 주워 올리곤 했다.
 
 
 
 ‘소림에는 없다. 무당은 모른다. 화산에는 있다.’
 
 
 
 이가 바로 그늘에 사는 그림자의 생태이리라.
 
 
 
 사부는 원래 점창파의 정식 제자였다. 타고난 자질도 뛰어났고 머리도 명석했기에 많은 기대를 받았다.
 
 
 
 하지만 단 하나, 형편없는 가문의 배경 때문에 그림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만일 그가 가문의 후광을 업었다면, 능히 점창파를 이끄는 후기지수로 총애를 받았을 것이다.
 
 
 
 사부는 제자인 묵혼처럼 소작농의 아들이었다.
 
 
 
 하지만 그는 묵혼을 동정하지도,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지도 않았다.
 
 
 
 때때로 그는 자신을 행운아라 생각했다. 일개 소작농의 자식에 불과한 자신이 점창파 최고의 무공을 배울 수 있었으므로.
 
 
 
 비록 점창파의 전면에 나설 수는 없었지만 점창파 최고수는 바로 그였다.
 
 
 
 
 
 
 
 사부에게는 다섯 명의 제자가 있었다.
 
 
 
 다섯 모두 묵혼처럼 자질이 뛰어난 아이들이었다.
 
 
 
 사부는 그 아이들을 혹독하게 가르쳤다.
 
 
 
 묵혼은 사부를 만난 첫날, 점심과 저녁을 먹을 수 없었다.
 
 
 
 사부는 엎어진 세 그릇의 공기 안에 주먹밥을 감추고 묵혼에게 고르게 했다. 흔한 야바위였지만 어린아이에게는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묵혼은 두 번을 잇달아 틀렸고 그날은 밥을 먹을 수가 없었다.
 
 
 
 사부가 제자들에게 가장 강조한 것은 머리를 쓰라는 것이었다.
 
 
 
 “머리가 나쁘면 최고가 될 수 없다.”
 
 
 
 묵혼은 밥이 들어 있는 공기가 매번 다른 공기들보다 낡고 때가 끼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야 주먹밥을 먹을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다음 날은 반대로 깨끗한 공기에 밥이 들어 있었다.
 
 
 
 묵혼과 제자들은 식사 때마다 항상 사부와 머리싸움을 해야만 했다.
 
 
 
 사부는 무공이 아닌, 살아남는 법을 먼저 가르쳤다.
 
 
 
 ‘그림자는 문파의 도움을 받는 사람이 아니다. 문파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문파에 도움을 주는 사람이다. 따라서 문파의 도움 없이 살아남는 법을 알아야만 한다.’
 
 
 
 사부는 제자들을 목우산에 풀어 놓았다.
 
 
 
 아이들은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채 목우산에서 살아남아야 했다.
 
 
 
 묵혼은 좌절하지 않았다. 산과 들은 그의 고향이었고, 친구였다. 소작농의 아들인 그는 먹을 수 있는 풀과 나무뿌리를 잘 알고 있었고, 그의 사형제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사형제들 중에는 화섭자 없이 불을 피우는 재주를 가진 아이도 있었다.
 
 
 
 가난한 아이들이었다. 단지 산에서 사는 것이라면 못할 것도 없었다.
 
 
 
 사부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의 수련은 그저 살아가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목우산에 굶주린 들개를 풀어 놓았다.
 
 
 
 열 살 남짓한 아이들에게 굶주린 들개는 검을 든 무인보다 위협적이었다.
 
 
 
 사형제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묵염이 몽둥이를 들었다. 그는 광천의 눈에 가장 먼저 띄었던 소년이었다.
 
 
 
 묵염은 어부의 아들이었지만 체격이 좋았고, 당당함으로 세상을 마주하는 아이였다.
 
 
 
 광천은 망설임 없이 그를 점창파로 데려왔다.
 
 
 
 묵염은 몽둥이를 휘둘러 잇달아 두 마리의 들개를 물리쳤다. 하지만 사형제들 모두가 무사할 수는 없었다.
 
 
 
 “아앗!”
 
 
 
 순식간에 막내인 묵영이 들개에 물려 다리를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제자들은 앞다투어 큰 목소리를 냈다.
 
 
 
 “사부님!”
 
 
 
 “사부님! 묵영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도와주세요!”
 
 
 
 아이들은 누군가 부상을 당하면 사부가 나타날 것이라 생각했다.
 
 
 
 힘든 수련이지만 위기의 순간에는 사부가 구해 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사부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대사형 묵염은 둘째인 묵혼에게 묵영을 돌보라는 명을 내렸다.
 
 
 
 “묵영은 네가 지켜야 한다. 할 수 있겠지?”
 
 
 
 묵혼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짧은 몽둥이를 들었다.
 
 
 
 “예, 사형! 묵영은 제가 지키겠습니다.”
 
 
 
 묵혼은 묵영을 지키기 위해 뒤로 물러났다. 그사이 넷째 사형제 묵철이 쓰러졌다. 묵철은 처참한 비명을 질렀다.
 
 
 
 “살려 줘요! 제발!”
 
 
 
 하지만 사형제들은 그 아이를 도와줄 수 없었다. 묵철을 둘러싼 들개의 수가 십여 마리가 넘었던 것이다.
 
 
 
 “사······ 살려······.”
 
 
 
 들개들에게 물려 비명을 지르던 묵철의 신음 소리가 낮아졌다. 그리고 잠시 뒤, 그 신음마저도 지는 생명과 함께 꺼져 버렸다.
 
 
 
 사부는 묵철이 들개에 물려 죽을 때까지 구해 주지 않았던 것이다.
 
 
 
 묵염의 손이 덜덜 떨렸다.
 
 
 
 ‘사부는 우리를 지켜 줄 생각이 없다. 각자가 알아서 살아남아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누가 살아남을 수 있는가 하는 시험이다.’
 
 
 
 그는 판단이 빨랐다.
 
 
 
 “제기랄!”
 
 
 
 묵염은 욕을 내뱉고는 키가 큰 나무를 향해 달렸다.
 
 
 
 ‘십 수 마리의 들개를 상대로 마냥 버티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리고 약한 사형제들 역시 짐에 불과하다. 아직 포위망에 틈이 있을 때 빠져나가는 것이 유일한 살길이다.’
 
 
 
 묵염은 스스로를 정당화했다.
 
 
 
 “살기 위해서는 버려야 한다.”
 
 
 
 그는 나무 위로 올라가 들개를 피하기로 했다.
 
 
 
 나무 타기는 주특기였고, 들개들이 따라 올라온다고 해도 나무 위라면 충분히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묵혼은 사부에 이어 대사형인 묵염마저 자신들을 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대사형!”
 
 
 
 셋째인 묵광도 금방 알아차렸다.
 
 
 
 “둘째 사형, 대사형이 우릴 버렸어.”
 
 
 
 묵혼은 충격을 받았지만 당황하지 않았다. 대사형 묵염의 장점이 빠른 상황판단이라면 묵혼의 장점은 침착함이었다.
 
 
 
 묵혼은 나뭇가지를 부러뜨렸다. 부러진 면은 뾰족해서 찌르기에 좋았다. 그는 이런 나뭇가지를 여럿 만들어 부상당한 묵영의 주변에 꽂았다. 그러고는 묵영에게 말했다.
 
 
 
 “그걸로 다가오는 개들을 찔러, 할 수 있겠지?”
 
 
 
 묵영은 고개를 끄덕이고 부러진 나뭇가지를 잡았다.
 
 
 
 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무조건 해야만 했다. 안 하면, 아니 못하면 죽는다.
 
 
 
 “예, 사형.”
 
 
 
 묵혼은 사제인 묵광을 불렀다.
 
 
 
 “묵광, 옆으로 와서 불을 피워라.”
 
 
 
 “불이라고요?”
 
 
 
 “짐승은 불을 무서워해. 니가 불을 피울 수만 있으면 우리 셋은 살아남을 수 있어.”
 
 
 
 묵광은 필사적으로 나뭇가지를 비볐고, 묵혼은 소리를 지르면서 몽둥이를 휘둘렀다.
 
 
 
 “이얍! 저리 가! 이얍!”
 
 
 
 묵혼도 묵광 못지않게 필사적이었다. 하지만 어린 소년의 힘에는 한계가 있었다.
 
 
 
 불을 지피느라 무기가 없는 묵광을, 들개가 물었다.
 
 
 
 “아악!”
 
 
 
 영리한 들개가 묵혼의 몽둥이가 닿지 않는 곳으로 빠져나갔던 것이다.
 
 
 
 묵혼은 재빨리 몸을 돌려 들개의 목덜미를 내리쳤다.
 
 
 
 퍽!
 
 
 
 어린아이치고는 정확한 타격이다. 들개는 힘을 쓰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크르르르릉.”
 
 
 
 하지만 한 마리가 쓰러졌다고 포기할 들개들이 아니었다. 들개들은 침이 흐르는 송곳니를 드러내며 서서히 포위망을 좁혔다.
 
 
 
 묵혼의 온몸은 벌써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공교롭게도 사태는 대사형 묵염의 예상대로 흘러갔다. 이대로는 모두 다 죽는다.
 
 
 
 ‘어떻게든 좋은 수를 생각해야 해.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
 
 
 
 그때 묵혼의 눈에 가시덤불이 들어왔다. 저곳이라면 들개들이 뛰어들지 못할 것 같았다.
 
 
 
 물론 가시에 몸 여기저기가 찔리겠지만, 그 정도 고통으로 들개들을 피할 수만 있다면 고민할 여지가 없었다.
 
 
 
 “묵광, 묵영을 업어!”
 
 
 
 “사형?”
 
 
 
 “빨리 업어! 저기 가시덤불로 뛴다.”
 
 
 
 셋째 묵광의 장점은 계산에 밝다는 것이었다. 그는 묵영을 업고는 가시덤불까지 뛰어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무리야. 나 혼자라면 몰라도 묵영을 업으면 뒤처지고 말거야. 살아남는 것은 둘째 사형이 되겠지. 그건 안 돼.’
 
 
 
 첫째 묵염이 그랬던 것처럼 묵광도 사형제들을 버렸다. 그는 몽둥이 하나를 빼어 들고는 있는 힘을 다해 가시덤불로 뛰었다.
 
 
 
 “묵광!”
 
 
 
 묵혼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모인 지 며칠 되지 않은 사형제들이었다. 깊은 정이 있을 리 없었다.
 
 
 
 묵혼은 생각했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이건 너무하다. 사형제란 무릇 생과 사를 같이해야 하는 것이 아니던가? 이렇게 쉽게 사형제를 버릴 수 있단 말인가?’
 
 
 
 묵혼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묵영.”
 
 
 
 묵영은 부상을 당해 움직일 수 없었다. 묵혼이 다른 사형제들처럼 그녀를 버린다면 그녀에게 남는 것은 죽음밖에 없었다.
 
 
 
 그녀는 이렇게 일찍 죽고 싶지 않았다. 살아남아 맛난 것도 먹고, 아름다운 노래도 듣고 싶었다. 한 마디로 그녀는 어른이 되고 싶었다.
 
 
 
 묵영이 손을 뻗어 묵혼의 바지 자락을 붙들었다.
 
 
 
 “사형.”
 
 
 
 “겁먹지 마라. 난 널 배신하지 않는다. 그러니 너도 날 배신하지 마라.”
 
 
 
 묵영의 목소리에 간절함이 배어 나왔다,
 
 
 
 “사형, 전 사형을 배신하지 않아요.”
 
 
 
 묵혼이 원하는 대답이었다.
 
 
 
 그리고 묵영으로서도 할 수 있는 대답은 그것밖에 없었다.
 
 
 
 앞서 뛰어나간 묵광에게 들개들이 달려들었다.
 
 
 
 들개들은 둘보다는 하나가 사냥하기에 편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저리 가! 저리 가라고!”
 
 
 
 묵광은 있는 힘을 다해 몽둥이를 휘둘렀지만 아홉 살 소년의 힘으로는 무리였다.
 
 
 
 “아앗! 이놈이!”
 
 
 
 묵광이 대사형인 묵염처럼 강하고 빨랐다면, 그랬다면 가시덤불까지 갈 수 있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묵광은 여러모로 부족했다.
 
 
 
 한 마리, 두 마리 묵광의 몸을 물고 늘어지는 들개가 많아졌다.
 
 
 
 “아악! 살려 줘!”
 
 
 
 묵염이 나무 위에서 그 모습을 보고 차갑게 비웃었다.
 
 
 
 “흐흐흐, 능력 없는 놈은 죽는 거야.”
 
 
 
 그의 웃음에는 위기에서 살아남았다는 안도감과 자신의 판단이 옳았다는 자부심이 동시에 서려 있었다.
 
 
 
 한편 묵혼은 묵광의 이기심을 그냥 보아 넘기지 않았다.
 
 
 
 묵광이 자신만 살겠다는 이기심으로 도망친 게 들개들을 끌어들인 셈이 되자, 묵혼은 묵영을 업었다. 그러곤 가시덤불 반대편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반드시 살아남는다.’
 
 
 
 남은 들개들이 묵혼을 쫓기 시작했다.
 
 
 
 “크르릉!”
 
 
 
 “캉캉!”
 
 
 
 나무 위에서 묵염은 고개를 저었다.
 
 
 
 “너희 둘도 살아남지 못할 거야.”
 
 
 
 살아남는 것은 자신뿐, 묵염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는 오히려 일이 잘되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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