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함
뒤로가기버튼 폭군 고종대왕 일대기

프롤로그

2018.08.09 조회 142,285 추천 1,395


 “으흐흐, 개 같은 세상! 무엇하나 뜻대로 풀리는 것도 없구나!”
 
 오밤중에 터덜터덜 휘청이는 자가 있었다. 며칠 동안 씻지도 않은 듯 머리는 산발에 구린내가 풀풀 풍기고, 지저분한 옷을 아무렇게나 걸치고서 술에 취해 뒷골목을 전전하는 영락없는 노숙인의 모습이었다.
 실상 다를 것도 없었다. 그는 실업자였고, 노숙인이었다. 나이를 먹는 동안 이렇다 할 기술도 배운 적 없었고, 그렇다고 빽이 있거나 인맥이 대단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하루하루를 막노동하며 입에 풀칠이나 하다가 몸이 망가지면서 그조차도 못하게 되고, 그나마 남은 인맥마저 탕진해버린 밑바닥 인생이었다.
 
 “나라고 이렇게 살고 싶었겠냐고, 우라질 놈의 세상아···.”
 
 그러나 이 세상에 사연 없는 무덤은 없다고 하였던가. 그에게도 할 말은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태어나기도 전에 집을 나갔고, 그의 어머니는 홀몸으로 그를 키워오셨다. 어머니께서는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며 살라고 했고, 아직 어리고 젊었던 그는 그런 줄로만 알고서 살았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어리석고 철이 없었던 것이었다.
 결국 어머니는 그가 사학도로 대학교 생활을 하던 도중 쓰러지셨고, 그제야 그는 자신이 안일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제대로 된 직장도 없이 잡일을 하며 그를 키워온 어머니였다. 당연히 몸이 멀쩡할 리가 없었던 것이다.
 결국 그날 이후로 그는 하던 공부도 끝마치지 못하고서 하루하루 병수발을 들며 병원비를 벌기 위해 공사장을 전전해야 했고, 서른이 넘어 시작한 지극정성에도 불구하고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고 나자 모든 의욕을 잃고서 술과 담배로 인생을 허비하였다.
 그 결과가 이것이었다. 나이는 내일모레면 마흔에 돈도 없고, 갈 곳도 없었다. 그나마 그를 마지막까지 보살펴주고 품어주었던 친구마저 더는 그를 봐주지 못하게 됐고, 친구의 집에 얹혀살던 신세던 이원철은 그 길로 거리에 주저앉게 되었다.
 
 “십오야 밝은 둥근 달은 개뿔. 으흐흐, 이 빌어먹을 달아. 너도 내 꼴이 우습더냐?”
 
 하늘에 넘실거리는 달을 향해 이원철은 그렇게 소리쳤다. 당연히 대답이라고는 있을 리 없었다. 저 멀리에서 개가 짖는 소리만이 울려 퍼졌을 따름이었다.
 그럼에도 멈추지 않고 이원철은 이어서 소리쳤다.
 
 “이게 다, 내게 기회도 주지 않고 정도 주지 않은 매정한 세상이 잘못된 거다. 나라고 해서 이러고 싶어서 이러고 살고 있겠느냐? 나라고 해도 말이다, 기회만 준다면···.”
 
 당연히 일고의 여지도 없는 헛소리였다. 물론 그의 불행은 불행이었지만, 상황이 여기까지 파탄난 것은 평생을 자신만 알고서 술로 하루하루를 허비한 문제가 가장 컸다. 하다못해 젊은 시절 기술 하나만이라도 배워뒀더라면 절친에게 절교당하고 길거리에 주저앉을 일까지는 없었다.
 그러나 어디 취객의 신세 한탄이 그런 걸 따져가며 주절거리게 되던가. 이원철은 그 뒤로도 한참을 달을 보며 주정을 쏟아냈다. 자신도 기회만 주어진다면, 세상이 조금만 더 자신에게 많은 걸 주었다면 얼마든지 해낼 수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으흐흐, 이래서야 완전히 미친놈이구만. 그래, 달이 무슨 답을 해준다고 이러고 시간을 낭비하는지. 아아, 나도 남들처럼 떵떵거리면서 갑질이나 해보고 싶다!”
 
 거기까지 소리치고서 이원철은 무언가 이상함을 깨달았다. 발판이 사라진 것이다. 몸은 절로 앞으로 기울었고, 그대로 나뒹굴게 되었다.
 외마디 비명을 내지른 이원철은 그제야 자신이 무슨 실수를 저질렀는지 깨달았다. 술에 취하여 걷다가 공사 중이라 하수구 뚜껑이 열려있던 걸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이런!”
 
 그것으로 끝이었다. 이원철은 그대로 나뒹굴어 떨어졌고, 십여 미터를 낙하한 끝에 바닥에 내팽개쳐졌다. 그동안 몇 번이고 쇳덩이에 부딪히고, 술에 얼큰하게 취해 있던 탓에 낙법도 제대로 취하지 못하면서 목이 꺾였다.
 그런 와중에도 어떻게든 목숨이 붙어있을 수 있었던 것은 타고난 강골인 덕분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한계인 듯했다.
 이원철은 의식이 조금씩 흐려져 오고 있음을 눈치챘다.
 
 “이 빌어먹을 세상아, 도대체 나에게 무슨 악감정이 있길래 이러는 거냐?”
 
 당연하게도 대답은 없었다. 듣는 사람이 있을 까닭도 없었다. 그의 머리 위로는 정월의 대보름이 두둥실 떠올라 있었다. 굳이 따지자면 대보름이야말로 이원철의 최후를 지켜봐 준 유일한 입회자였을 것이다.
 
 이원철의 삶은 그렇게 끝이 났다.
 
 * * *
 
 딱!
 
 “예끼, 이놈아! 이 아비를 앞에 두고 잠이 들어? 어서 정신 차리지 못하겠느냐, 이 녀석!”
 
 낯선 남성의 벼락같은 음성과 함께 무언가 딱딱한 것이 머리를 때렸다. 고막을 쥐어짜는 듯한 소리와 짜릿한 고통에 눈이 떠졌다. 어안이 벙벙했다. 무엇이 일어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바닥은 기억 속의 곰팡이 피고 벌레 먹은 목제 바닥이 아니었고, 입고 있는 옷은 누런 티셔츠와 헤지고 펑퍼짐한 청바지가 아니었다. 그리고 크고 털이 북슬북슬하던 손이 아니었다. 바닥은 낡으면서도 고풍스러웠고, 입고 있는 옷은 설날에나 보던 총천연색의 한복이었으며, 손은 조막만 했고, 털도 거의 나지 않아 솜털만 겨우 보였다.
 그뿐이랴. 옆으로 보이는 문창살은 여닫이에 한지가 발라져 있었고, 천장은 한옥마을에서나 볼 수 있던 목제였다. 방금 전까지 쓰러져 있던 하수구가 아니었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주변을 부지런히 둘러봤지만 결론은 하나였다. 이곳은 내 단칸방이 아니었다. 또한 호흡이 가벼웠고, 공기가 달았다. 오랜 흡연으로 후두암을 얻고 난 이후로는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경험이었다.
 즉, 지금의 몸 또한 원래의 내 것이 아니었다.
 
 “내 말이 말 같지 않더냐? 너는 이제 대비미마께 추대를 받아 궁에 가게 될 것이니라. 아직도 내 말을 못 알아듣겠느냐? 네가 이 나라 조선의 어버이가 된단 말이다!”
 
 거기까지 생각한 찰나, 나를 때려 깨운 남성이 또다시 벼락같은 음성을 내질렀다. 그리고 그 외침에는 간과할 수 없는 의미가 담겨있었다.
 대비마마, 조선, 조선의 어버이.
 무엇 하나 21세기 대한민국이라면 생각할 수 없는 단어뿐이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대한민국에 있는 것이 아니란 말인가? 저 남자가 방금 전 말한대로 무슨 이유에서인가 조선에 왔단 말인가?
 그제야 나는 주변을 살피느라 미처 똑바로 보지 못했던 눈앞의 남성을 똑바로 보았다.
 내 머리를 후려친 것으로 추정되는 회초리를 들고, 나를 미심쩍은 듯한 눈초리로 노려보고 있는 한복차림의 남성. 지금까지 나를 대한 태도로 보아 그는 나의 아버지이거나 최소한 그에 준하는 집안의 어른이 분명했다.
 그리고 얼굴은 어딘가 낯이 익었다. 비록 아직 나이가 비교적 젊어 기억 속의 모습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지만, 지금 이대로 늙는다면 내 머릿속의 있는 그 인물의 사진 속 모습이 될 것 같았다.
 내 기억이 맞다면 그는 흥선대원군 이하응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내일 대비마마를 알현하는 데 조금의 부족함도 있어서는 안 되느니라. 내일 중에는 필시 궁에서 대비마마의 친서를 들고 사람이 올 것이다. 반드시 실수 없이 끝마쳐야 하느니라! 알겠느냐?”
 “네, 알겠사옵니다. 부족함 없이 행하겠사옵니다, 아버지.”
 “이제부터는 아버님이라고 부르도록 하거라. 궁의 생활에 익숙해지려면 언행부터 고쳐야 하는 법이다. 비록 지금은 어색할지라도 곧 익숙해질 것이다. 그러니, 오늘은 이만 돌아가 보도록 하거라!”
 
 나는 엉거주춤 이하응에게 인사를 올리고서 방에서 나왔고, 곧 나는 내가 지금까지 있던 방과 집의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조금 허름하기는 해도 기와집이었다. 밤하늘에는 별빛이 가득했고, 전등 따위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멀리에서 들려오던 지하철 소리도, 밤하늘을 가로지르던 비행기의 불빛도, 폭주족들의 굉음이나 자동차들의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다리에서 힘이 풀려 그대로 제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이하응, 조선, 대비마마라.”
 
 공부를 관둔 지 20년에 가까워지고 있었지만, 그래도 꼴이 사학도였던 몸이다. 눈치채지 못한다면 젊은 시절의 공부는 말짱 헛것이었던 거겠지.
 거기에서 도출되는 결론은 하나였다. 공간적 배경은 조선, 시대적 배경은 이하응의 생존 시기, 대비마마 신정왕후 조씨의 추대.
 
 “익성군 이명복인가!”
 
 나는 어째서인가 왕궁에 불려가기 전날의 고종이 되어있었다.

작가의 말

프롤로그라서 조금 짧습니다.


제목과 소개글대로, 조금 많이 엇나가게 될 예정입니다. 양해부탁드립니다.


==수정공지==


2018년 8월 21일자로 수정되었습니다. 주요 수정사항은 도입부의 수위 완화입니다.

댓글(157)

엘멜로이    
문넷에서 활동하시는 분이랑 동일인물 이신가요? 잘보고 갑니다
2018.08.09 12:11
리첼렌    
넵, 그러합니다. 문피아에서는 처음 뵙겠습니다. 앞으로도 잘부탁드립니다.
2018.08.09 12:17
스텔라리    
헐... 근데 고종 소재가 빡샌게, 너무 헬모드라(...)
2018.08.09 12:54
리첼렌    
뭐, 그래도 답도 없는 동학농민운동 청일전쟁 이후에 비하면 그나마 세이프…?
2018.08.09 13:54
한뫼1    
안녕하세요. 이거 이 개똥이면 그렌드 헬 모드인데, 일단 마누라부터 갈아치워야 할듯요
2018.08.09 21:25
jo3380    
아바마마는 왕의 자식이 왕을 부르는 말이니 대원군에게 쓸말이 아닙니다.
2018.08.09 22:26
리첼렌    
알고있습니다. 스스로를 왕이나 다를바없이 생각했던 대원군이 집에서나마 자신의 야심을 겉으로 들어내는 소설적 장면이라고 생각해주세요.
2018.08.09 23:47
메크정    
많이 기대됩니다 달동네 참치에서 뵙고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하신거 축하드립니다.
2018.08.10 10:35
일리    
나도 아바마마 말할라고 들어왔는데 캐릭터 성격을 보여주기위한 단어였네요
2018.08.10 23:45
아승기    
1화부터 발암이네 소설적 장치도 말이 되어야 소설적 장치지 어바마마라고 누가 듣기라도 하면 사단이 나는데
2018.08.11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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