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함
뒤로가기버튼 더 프레지던트

1화

2018.08.20 조회 4,798 추천 41


 황금당(1)
 
 
 
 순탄한 인생은 재미가 없다.
 남들과 똑같은 경험을 하고 늙어 죽는 건 그의 체질상 맞지 않았다. 위기와 극적인 반전을 이루는 드라마틱한 인생을 꿈꾸는 그에게 세상은 정해진 룰로 인해 딱딱했고, 지루했다.
 하지만 그가 원하는 드라마틱한 인생은 이런 게 아니었다.
 “이런, 젠장!”
 180이 넘는 건장한 체격의 이강철은 뒤에서 흉기를 들고 쫓아오는 덩치들을 피해 미로 같은 골목길을 돌고 돌았다.
 막 전역 신고를 마치고 아버지 집을 찾아왔다가 똥줄이 타라 도망을 치는 중이었다.
 “야! 거기 안 서!”
 “나중에 통화하자고!”
 이강철은 개구리 마크가 그려진 전투모를 한 손에 들고 코너를 돌아 일직선으로 뚫린 골목길을 내달렸다.
 한낮의 추격전은 그러나 싱겁게 막을 내렸다.
 “아저씨! 비켜요!”
 좁은 골목길을 막고 냉장고를 옮기는 사람들로 인해 속도를 늦추는 바람에 어느새 일단의 덩치들이 골목길 앞을 막아 버린 것이다.
 험악한 인상의 덩치들의 등장에 냉장고를 옮기는 사내 2명은 고개를 숙이고는 황급히 골목길을 벗어났다.
 그들이 나가자마자 덩치들이 다가왔다.
 앞뒤로 포위된 이강철은 침을 탁 뱉었다.
 “아, 숨차다. 도대체 뭐 먹을 게 있다고 그렇게 쫓아오는 거야?”
 “확, 쌍놈의 새끼를!”
 턱이 뾰족하게 생긴 놈이 야구방망이를 머리 위로 치켜세웠다.
 “왜 도망가고 지랄이야. 얘기 좀 하자는데.”
 “너처럼 야구방망이 들고 설치면 내가 겁이 나서 너희들하고 얘기하겠냐?”
 모자를 손으로 탁탁 치며 이강철이 어깨를 폈다.
 “뭐?”
 뾰족 턱의 덩치가 성을 내며 야구방망이를 휘두르려 할 때 뒤늦게 나타난 놈들의 대장이 제지했다.
 “그만! 차에 태워.”
 이강철은 등 뒤에 붙은 덩치가 흉기로 위협을 가해 오자 순순히 그들과 함께 차로 향했다.
 “군복에 구멍 난다. 좀 떨어져.”
 여유를 부리는 이강철의 행동에 화가 난 덩치가 모른 척 손에 힘을 더 주었다. 그러자 날카로운 칼날 끝이 군복을 뚫고 그의 등 뒤에 작은 상처를 만들었다.
 구멍 난 군복을 통해 핏물이 비쳤다.
 그 순간 이강철이 뒤따르던 녀석의 면상을 팔뚝으로 사정없이 후려쳤다.
 퍼어억.
 코피를 흘리며 주저앉은 녀석이 욕설을 내뱉으며 칼을 휘두르려 하자 앞서 가던 놈들의 대장이 말했다.
 “조용히 가자.”
 손을 쓰던 덩치가 이를 갈며 칼을 내렸다.
 “이 자식, 너 두고 보자.”
 “경고했잖아. 떨어지라고.”
 이강철은 힐긋 덩치를 째려보더니 휘적휘적 녀석들의 대장 곁으로 다가갔다.
 “당신들, 누가 보냈어?”
 “······.”
 “이거 납치인 거 알지? 나 그냥 저기 오는 순찰차에 콱 뛰어들까?”
 유료 주차장 앞길을 지나는 경찰차를 보며 이강철이 말했다.
 “겁을 상실했구나.”
 “생존 본능이지. 내가 왜 당신을 따라가야 하는데? 이유를 당장 말하지 않으면 진짜 겁을 상실한 게 뭔지 보게 될 거야.”
 “아까 말했잖아. 도망간 네놈 아비 집 앞에서 말이다.”
 “아버지 빚이야 내가 알바 아니고.”
 “그 뒤의 말은 못 들은 거냐?”
 “무슨 말?”
 “네 아비가 네놈 명의로 돈을 빌렸어.”
 
 
 
 이강철이 도착한 곳은 사채업자 사무실이었다.
 “데려왔습니다.”
 “나가 봐.”
 명동의 사채업자 김인철이 골프채로 크게 스윙을 하며 말했다.
 이강철은 자신을 세워 두고 골프채만 휘두르는 김인철을 힐긋 보더니 고급 가죽 소파에 털썩 앉았다.
 그리고 군복 상의에서 담배를 꺼내 태연히 입에 물었다.
 “난 담배 연기를 좋아하지 않아.”
 김인철이 골프채를 들고 차갑게 말했다.
 “그래요? 미안합니다.”
 입에 문 담배를 다시 담뱃갑에 넣으며 이강철이 입맛을 다셨다.
 “당돌한 놈이구나. 네가 이강철이냐?”
 40대 후반의 김인철이 골프채를 가방에 집어넣으며 물었다.
 “그런데요. 왜 저를 보자고 한 겁니까?”
 “채권자가 채무자를 보자고 한 이유가 뭐겠나?”
 갈색 상자에서 시가를 꺼낸 김인철이 커트기를 이용해 시가 끝을 자르며 말했다.
 “저보고 제 명의를 도용해 대출을 받은 아버지 빚을 갚으라고 요구하시는 겁니까?”
 이강철은 다리를 꼬며 반짝반짝 빛나는 군화를 불량스럽게 흔들었다.
 “억울하면 네 아비를 고소하든가 해. 민사도 넣고. 하지만 나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거야. 도망간 네놈 아비를 찾으면 무슨 짓을 할지도 모르지. 그리고 너도 성치 못할 거고.”
 “나, 오늘 전역했어요. 불쌍하지 않습니까? 전역하자마자 아버지 빚으로 위협당하는 모양새가?”
 “진짜 위협을 당해 보면 그런 여유는 사라지지.”
 시가 연기를 이강철을 향해 내뿜으며 김인철이 미소를 보였다.
 “담배를 안 피우는 줄 알았는데요?”
 “내 앞에서 담배 피우고 싶으면 내 급에 맞춰야지.”
 이강철은 소파에 등을 기대며 천장을 올려다봤다.
 ‘짜증 나는군.’
 한량처럼 지내던 아버지가 떠올랐다. 대한민국에서 지관으로 명성을 떨치던 할아버지는 6년 전 교통사고로 갑작스레 돌아가시기 전까지 많은 돈을 버셨지만, 그 돈의 대부분은 주색잡기에 빠진 아버지가 방탕한 생활을 하며 다 날려 버렸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할아버지 생전부터 방탕한 생활을 하는 바람에 할아버지가 벌어 오는 돈은 집 안에 모일 새가 없었다.
 아버지의 그런 행동의 배경에는 돈줄이 되는 할아버지의 존재가 크다고 생각했고, 이강철은 할아버지에게 왜 자꾸 아버지에게 돈을 주냐고 따져 물은 적도 있었다.
 ‘조상이 저지른 업보가 네 아비에게 모두 닥쳤다. 이해하거라.’
 도인처럼 사시는 할아버지의 말씀에 반감을 품은 건 그때가 아마 처음이었을 거다.
 ‘할아버지, 도대체 그 업보는 언제 사라지는 겁니까? 이제 손자까지 아버지 업보 때문에 못 살겠습니다.’
 이강철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눈을 떴다.
 “아버지가 내 앞으로 얼마나 빌렸어요?”
 “원금이 2억이고 이자가 또 그만큼 불어났다.”
 4억이나 된다는 말에 이강철은 어이가 없었다.
 “아니, 뭐 이자야 제멋대로 가지고 논다고 치죠. 이 바닥이 그런 거 아니까. 근데, 원금이 2억? 도대체 아버지를 뭘 믿고 2억이나 빌려 줘요?”
 “대한민국에서 자타가 공인한 지관 이정기 선생의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6년 전 돌아가셨습니다.”
 “안다. 그래도 선대의 이름값을 믿었지. 그리고 또 한 가지, 바로 네 이름값도 한몫했지.”
 김인철의 눈이 예리하게 빛났다.
 “내 이름값?”
 그때까지 약간은 가벼워 보이던 이강철의 말투가 묵직하게 변했다. 어투가 바뀌자 사람까지 바뀌어 보일 정도였다.
 훤칠한 키에 부드러운 눈매와 시원하게 뻗은 콧날로 인해 조금은 유약해 보였던 그에게서 순식간에 아주 사내다운 기세가 풍겨 나왔다.
 갑작스레 변한 그의 분위기에 내심 놀랐지만 김인철은 시가 연기를 내뿜으며 태연히 말했다.
 “이만일이 네 칭찬을 참 많이 했다. 일류대 고고미술사학과를 다니는, 아주 총명하고 현실에 일찍 눈을 뜬 인재라고 말이다.”
 “아버지가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놀랍네요. 제 칭찬을 다 하다니.”
 “그리고 이런 얘기도 했다. 네가 인사동, 삼청동, 답십리를 돌며 값비싼 아르바이트를 했었다고.”
 “······.”
 “사람을 풀어서 알아보니 그쪽 바닥에서 제법 유명세를 떨쳤더군. 군대 가기 전까지 말이야.”
 이강철의 이마에 슬며시 주름이 잡혔다.
 6년 전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아버지에게 돈을 타 써 본 적이 없었다.
 그는 생활비는 물론 대학교 학비까지 스스로 벌었는데, 이를 위해 골동품을 감정하는 일을 했었다.
 “그래서요?”
 “1주일 준다. 1주일 안에 돈을 가져오지 못하면 넌 내 밑에서 그만한 일을 해야 될 거야.”
 “무슨 일을?”
 “고미술품을 감정하는 네 능력을 십분 발휘하는 일이지. 한 2년 일하면 네 빚은 탕감해 주겠다. 어떠냐?”
 고미술품 감정은 작품을 직관적으로 통찰할 수 있는 안목과 배경이 되는 방대한 지식이 없으면 함부로 할 수 없는 것이다. 경험도 중요했고. 이강철이 일류대 고고미술사학과를 다니긴 했지만 그것만으로 작품의 진위 여부와 그 가치를 매기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하지만 김인철이 알아낸 바에 의하면 이강철은 실제로 그런 일을 했다. 그것도 도자기, 회화, 공예품 등 종류를 가리지 않고 매우 정확하게 진위 여부를 가려냈다.
 “2년을 뺑이 치고 왔는데, 당신 밑에서 또 2년을 썩으라고요?”
 “싫으면 돈을 갚아.”
 김인철이 차갑게 말했다.
 “흠······.”
 이강철은 김인철의 기름기 많은 얼굴을 빤히 보다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진열대에 전시해 놓은 고풍스러운 도자기를 향해 걸어갔다.
 “아버지가 내 얘기를 제법 많이 해 준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한 가지는 빠트리고 말씀을 안 하셨나 보네요.”
 “뭘 말이냐?”
 “내 성격이 아주 지랄 같다는 것 말입니다.”
 이강철은 유리 진열대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 손을 뻗어 유리문을 열었다. 하지만 자물쇠 장치 때문에 열리지 않았다.
 “하고 싶은 말이 뭐냐?”
 김인철이 인상을 쓰며 뒤따라왔다.
 “당신 마음대로 하라는 뜻입니다. 난 이대로 경찰서 가서 아버지를 고소할 거니까. 아버지를 손보든, 지금 이 자리에서 나를 손보든 마음대로 하라는 말이죠.”
 유리문 뒤에 진열된 고려청자를 지그시 노려보며 이강철이 말했다.
 “좋게 말했더니 싸가지가 없구나. 한 10년 전 스타일로 대해 줄까?”
 김인철이 골프채 가방에서 골프채를 꺼내 휘둘렀다.
 “나 여기서 죽일 작정 아니면 그거 내려놓으세요.”
 이강철이 유리창에 비친 김인철의 행동을 보며 태연히 말했다.
 “뭐야? 이런 시건방진 새끼가!”
 과거 한 성격 했던 김인철이 냅다 이강철의 머리를 향해 골프채를 휘둘렀다.
 그러나 골프채는 이강철의 머리 앞에서 아슬아슬하게 멈췄다. 이강철은 몸을 돌려 눈앞의 골프채를 슬쩍 옆으로 밀어냈다.
 “골프채는 골프공 치는 데 써야죠. 안 그래요?”
 “왜 안 피하냐?”
 “죽일 기세는 아니었으니까. 그보다 이거 어디서 구입한 겁니까?”
 이강철이 손가락으로 고려청자를 가리켰다.
 “그건 왜?”
 얼굴이 구겨진 김인철이 골프채를 바닥에 내팽개쳤다.
 “상감기법으로 제작된 국화 무늬 병이군요. 은은한 비취색이 세월에도 빛을 바래지 않고 있어요. 다만, 둥근 원형 바닥 한쪽이 깨져 균형미가 심하게 훼손돼서 아쉽군요. 그 밖의 상태는 양호합니다.”
 화를 내던 김인철은 자신도 모르게 그의 말을 귀담아듣다 슬며시 물었다.
 “네가 보기엔 얼마짜리 같나?”
 “저 형태는 13세기 몽골이 고려를 침입해서 고려청자가 쇠퇴하는 시점에 많이 나타난 작품으로 평가를 받고 있어요. 몽골의 침입으로 국토는 피폐하고 걸작을 구매할 여력을 가진 권력자와 부유층은 많지 않았죠. 장인들도 예술성보다는 그릇과 병이 필요한 가난한 백성들에게 풀 도자기들이 많이 필요했습니다. 그런 시기에 무난하게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김인철은 제멋대로 보였던 이강철이 왠지 남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얼마짜리인데?”
 “난 여태껏 공짜로 감정을 해 준 적이 없어요.”
 “뭐야?”
 왠지 이강철에게 휘둘리고 있다는 생각이 든 김인철의 얼굴이 분노로 딱딱하게 굳어졌다.
 “정말 뜨거운 맛을 봐야 정신을 차리겠나? 너는 뭐라고 주장을 하든, 난 네게 받을 돈이 있다는 걸 명심해.”
 “당신이 조금 전 말했다시피, 나는 고미술품을 보는 데 나름 뛰어난 능력이 있어요. 저 고려청자를 감정해 줄 테니, 내 요구를 한 가지만 들어주시죠?”
 잠시 이강철을 노려보던 김인철이 바닥에 나뒹구는 골프채를 주워 들었다. 생각해 보니 굳이 끌려다닐 이유가 없었다.

댓글(3)

서리바람    
신작 연재 좀 해주세요.
2018.08.22 06:11
괜찮은남자    
언제적 스토리냐.. 애비 빛 아들에게 받는다는거.. 그리고 사채 자체가 불법인데 무슨...
2018.10.13 13:45
n9************    
선발대입니다. 적당한 필력, 진부한소재의 합산입니다 판단은 알아서
2019.02.12 20:45
0 / 3000

이용약관 유료이용약관 개인정보처리방침 청소년보호정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