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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 맥스 1권 (1화)

2018.08.23 조회 3,410 추천 33


 레벨 맥스 1권 (1화)
 프롤로그
 
 
 한 TV 프로그램에서 뇌 활성화 트레이닝 프로그램을 실행해 평범한 아이들에게 실험하였다. 그 결과 아이들은 실험 전에는 전혀 할 수 없었던 투시 같은 초능력들을 조금이나마 사용하게 되었다.
 이 실험을 근거로 그들은 한 가지 가설을 제시했다. 초능력의 사용은 뇌와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뇌를 특별한 방법으로 활성화시킨다면 초능력을 발현하는 것도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아니라고. 그 초능력이 인류를 보다 진화시킬 거라고.
 
 
 그리고 이 이야기는,
 
 게임이라는 방법으로
 
 특이한 능력에 눈을 뜬 ‘한 소년’의 이야기다.
 
 
 
 Lv. 1 - 그 만렙이 이 만렙은 아니었을 텐데 말입니다
 
 내 이름은 한진우.
 방금 내 게임 캐릭터의 만렙 찍기를 달성했고, 화면 상단에 운영자가 전 서버에 내 만렙 달성을 축하하는 메시지를 띄웠다.
 이렇게 쉽게 말하는 것과는 달리 이 게임은 만렙을 찍기가 매우 어렵다. 직업군이 많기도 하고, 스킬까지 다양해 기본적으로 스킬 만렙까지 찍는 건 시간이 남아도는 인간이나 할 짓이라 생각하는 유저들이 대부분이다. 아마 이렇게까지 해낸 건 내가 게임 유저들 중에서는 최초일 것이다.
 그렇다고 오해하지는 말기 바란다. 난 할 짓 없는 단순한 백수 따위가 아니다. 난 그냥 평범한 중학생일 뿐이다. 오픈베타 때부터 이 게임을 쭉 잡았을 뿐인 중학생에 불과하단 말이다.
 어릴 때부터 난 게임을 좋아했다. 사실 또래 애들이랑 밖에서 놀 수 있었으면 밖에서 놀았겠지만 현실은 그럴 수 없었다. 다들 여섯 살 때부터 학원에 시달려서 밖에 나가도 같이 놀 사람이 없었으니까. 외동아들인 나는 결국 혼자인 채 집에서 손쉽게 접할 수 있는 게임만 하였다.
 부모님도 밤늦게 퇴근하시겠다, 말릴 사람도 없는 나는 어느샌가 게임에 빠져 버렸다.
 하루에 세 시간 넘게 하는 건 기본이며 내가 할 수 있는 온라인 게임, 콘솔 게임류는 거의 다 섭렵했다.
 그렇다고 학교생활에 지장이 있을 정도로 게임한 건 아니었다. 게임한다고 학교생활에 차질이 생기면 게임을 못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부모님께 안 들킬 정도로만 게임을 하고 학교에서는 그냥 평범한 학생으로 지냈다.
 그렇게 살아온 지 어느덧 9년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현재 온라인 게임 중 가장 레벨 올리기 힘든 게임을 최대 만렙까지 끌어올리는 데 성공한 최초의 유저가 되어버렸다.
 이 게임은 자신이 최초로 선택한 직업군의 스킬만 마스터하는 데에 한계를 두지 않고 다른 직업의 스킬도 익힐 수 있는 게임이다. 예를 들어 검사를 선택한 유저가 마법사 스킬을 익힐 수 있다던가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일단 본래 직업부터 마스터한 뒤에야 그 기능을 사용할 수 있다. 처음에 검사를 택했으면 그 직업군 레벨을 만렙까지 채워야 다른 직업군 스킬을 배운다는 소리다.
 그렇게 그 게임에는 수십 가지 직업군이 있고, 그 직업군의 총 레벨을 더해보면 레벨이 4,000을 넘는 어마어마한 수치가 나온다. 그리고 거기까지 도달하기 위한 경험치의 수 또한 보통 사람이 가늠하기 힘든 숫자. 그러나, 난 해냈다.
 게임 화면 상단에 [축하합니다! ‘KoGa’ 님께서 모든 클래스 및 스킬 마스터를 달성하셨습니다!] 라는 메시지가 띄워지자, 수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귓속말(물론 게임 속 귓속말)로 ‘ACM ㅊㅋ’라는 말을 보냈다. 전 서버 최초 모든 클래스 마스터 달성을 축하한다는 의미인지 운영자에게서 ‘All Class Master’라는 칭호도 받아버렸다. 이거 엄청난 일을 해냈다는 생각이 들어 쑥스러워졌다.
 어느새 밤 열한 시다. 내일 학교에서 졸지 않기 위해 나는 이 기쁜 마음을 잠시 접어두고 잠들었다.
 그러나 누가 알았을까. 내일 아침에 눈을 뜨고 나면 세상이 달라져 있을 거라는 걸.
 그날 꾼 꿈이 그저 단순한 개꿈이 아니었단 걸 눈치챘을 때는, 이미 많은 것이 바뀌어져 있었다.
 
 * * *
 
 처음 꿈인 것을 자각한 건 내가 위치한 공간이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간인 걸 인지한 뒤였다.
 아마도 렘수면에 들어간 거겠지. 꿈을 꾸고 있으니까. 그렇다는 건 깊게 수면을 취하지 못했다는 걸 보여주는 걸까.
 이런 식으로 국어 교과서에서 봤던 지문 속 지식을 활용하게 되다니, 가끔씩 내가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 뭐, 꿈속이니 상관없지.
 ‘쯧, 저런 녀석이 나의 숙주라니. 너무 한심한데.’
 그런 내 생각에 정면으로 태클을 거는 존재가 나타나기 전까진 말이다.
 ‘누구야?’
 ‘딱 보면 모르겠냐.’
 아니, 딱 보면 알지. 나랑 똑같이 생겼는데.
 뭐야, 이 렘수면. 도플갱어나 보여주고. 이런 걸 개꿈으로 치부해야 하나.
 ‘보통 자기가 꿈에서 나온 걸 개꿈이라 생각하냐?’
 내가 이런 꿈을 꾸는 게 내 인생사에 처음이라서 그렇다 왜. 거기에 이 꿈이 뭘 나타내고 있는지 조금도 관심이 없는 나로서는 그냥 무시하고 빠져나가는 게 상책이라 생각해 녀석에게서 도망치고, 여기서 빠져나가기 위해 열심히 달렸다. 그러나 달리는 족족 녀석에게 붙잡혔고, 또한 여기서 빠져나갈 수 없었다.
 그 짓을 몇 시간씩이나 했는데 지치지는 않았다. 물론 꿈속이라 그렇긴 한데 이쯤 되면 지겹기는 했다. 나한테 지는 것 같아 패배감까지 들고.
 ‘아, 내 말 좀 들어봐. 사람이 말하는 건 들어봐야 할 거 아냐.’
 ‘시끄러워. 내가 나에게 무슨 말을 하겠다는 거야?’
 ‘그렇지만 내 말 안 들으면 여기서 못 나가는걸.’
 그럼 그걸 먼저 말하던가.
 ‘네가 뻘짓 하는 게 재밌기도 하고 자기 자신과 술래잡기하는 게 처음이라 말이야.’
 ‘내 얼굴을 하고 있지만 진짜 비호감이다.’
 꼭 이런 사람이 있다.
 중요한 건 꼭 나중에 말하는 사람.
 그런데 또 다른 자신이 이러고 있네?
 내가 평소에 저랬던가 생각하며, 지난 나날들을 돌아보게 되었다. 그것도 꿈속에서.
 ‘자기 자신을 면전에서 대놓고 까는 녀석은 처음 보네.’
 ‘그야 면전에서 볼 일도 없잖아.’
 ‘그건 그래. 아, 맞아. 할 말이 있었지. 잘 들어, 숙주. 딱 한 번만 말할 거니까.’
 쟤 지금 나한테 숙주라고 한 거 맞지?
 나한테서 빌붙어서 사는 뭔가라고 말한 거지?
 뭐야, 내 몸에 그런 게 있었어? 너 정체가 뭐야?
 ‘성질 급한 거 봐라. 지금 말하려고 하잖아. 내가 지금 네 모습을 하고 나온 건 내가 너이기도 하지만, 너의 일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일부?’
 ‘그래. 말로 설명하기보다 보는 게 빠르겠네.’
 나보고 숙주라고 지껄인 녀석이 빛이 되어 점점 작아졌다. 점점 줄어 들어든 그것은 내 머리보다도 작아지며, 다 줄어들고 나서야 빛도 사라졌다. 그 정체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뇌?!’
 ‘보시는 대로.’
 왜냐하면 그건, 과학 교과서에 나온 뇌 그림과 똑같았기 때문이다. 뭐야, 그럼 내 뇌가 나한테 말 건 거야?
 ‘그걸로 모든 게 설명되지는 않는데. 거기다가 입도 없는데 어떻게 말하냐?’
 ‘꿈속인데 뭐 어때.’
 ‘내 뇌지만 짜증 나.’
 ‘그 뇌를 쓰는 게 바로 너야.’
 더 이상 얘기했다간 성질만 버릴 것 같아서 얼른 본론이나 들어가라고 눈치를 줬다. 그러나 이 녀석의 다음 말은 내 성질을 또다시 건드렸다.
 ‘뭐, 딱히 할 말은 없고.’
 요놈 봐라, 할 말 없는 주제에 나의 평안한 수면을 방해했단 얘기네? 이런 렘수면을 취하게 되다니, 오늘 운수 엄청 더럽겠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 들을 건 없으니 이제 내보내라고 말하려는 순간, 내 뇌라고 칭한 녀석에게서 얇지만 쉽게 끊을 수 없는 촉수가 수없이 뻗쳐 내가 움직이지 못하게 구속했다.
 ‘뭐야, 이거. 이거 안 놔!’
 ‘축하한다. 너는 오늘부터 다른 사람들보다 약간 업그레이드될 거야. 그럼, 지금부터 한진우라는 인간을 대규모 업데이트하겠다. 업데이트 도중 전원···이 빠질 리는 없겠지만 아무튼 주의하시길.’
 ‘이 미친, 내가 게임이냐!’
 ‘네가 게임 쪽으로 발달했으니 이렇게 말하는 게 당연한 거 아냐. 그럼 한진우, 각오해라.’
 푸욱―! 소리가 나도록 내 몸에 수많은 촉수들이 한꺼번에 꽂혔다. 말 그대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이걸 보는 사람이 없어서 망정이지, 보기 좋은 꼴은 절대 아니었다. 고어 그 자체라고. 내 몸이 플래그냐, 촉수들을 온몸에 꽂아대게.
 그나마 꿈속이라서 아프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하기 무섭게, 촉수가 꽂힌 부분으로부터 격통이 밀려왔다. 아까 아프지 않다고 했던 말 취소한다. 되게 아프다. 꿈에서 죽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조차 못할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고통에 허우적대는 와중에 머릿속으로 이상한 영상이 들어왔는데, 머리가 터져 죽겠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순식간에 내 머리 속 용량을 가볍게 초과할 만큼 수많은 것들이 촤르륵 펼쳐져 지나갔다. 지금껏 살아온 기억과 흔적들부터 듣도 보도 못한 것까지, 정신을 붙잡는 것이 불가능하다 생각될 정도로 많은 정보들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이 모든 것을 수용하기 전에 죽을 것 같았다.
 결국 정신을 잃고 쓰러졌고, 타이밍 맞게 촉수들이 툭툭, 소리 내며 떨어져 나가며, 꿈속에서까지 정신을 잃고 쓰러져 가는 내 앞에 또 다른 나, 아니, 뇌가 중얼거렸다.
 ‘업데이트 완료. 달라진 현실을 마음껏 만끽하시고 즐거운 레벨 업 되시길.’
 아오, 저 개··· 아니지, 쟤 욕해 봤자 내가 내 욕 하는 거니까 욕할 수도 없네. 뭐 이런 개꿈이 다 있어?
 거기다가 뭐야, 달라진 현실에서 레벨 업 하라는 이야기는. 내가 아무리 게임을 많이 해도 현실과 게임 속 세상을 구분 못할 정도는 아니거든?
 아무튼 이 개꿈 때문에 아침 일곱 시에 찝찝한 기분으로 일어났다. 조금 늦었다는 생각에 얼른 학교 갈 준비를 할까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고는 전신 거울을 보니, 낯선 게 눈에 들어왔다.
 [이름 : 한진우]
 [나이 : 15]
 [성별 : 남성]
 어라? 이상하네.
 내 모습 옆에 이상한 상태 메시지 창 같은 게 보이네. 내 이름에 나이, 성별? 왜 이런 게 보여? 내가 잠이 덜 깼나. 그저 잠에서 덜 깼다고 판단해, 세수를 하고 와서 다시 한 번 거울 앞에 섰다.
 [HP : 120/120]
 [SP : 60/120]
 이런, 아직도 잠이 덜 깼나 보다.
 이번에는 HP(Hit Point), SP(Stamina Point)까지 보이다니. 옷을 갈아입고 보니 더더욱 이상했다. 옷을 갈아입을 때 이런 게 보이는 것이다.
 [‘한진우’ 님께서 ‘교복’을 장착했습니다.]
 요새 게임을 너무 많이 했나, 헛것이 다 보이네.
 아침밥을 먹을 때는 평안하냐고? 전혀 그렇지 않다.
 [‘한진우’ 님께서 ‘SP’를 15 회복했습니다.]
 이거 대체 왜 이러지? 게임 중독인가? 분명 어제까지 안 이랬는데 말이야. 정신은 말짱해져 가는데도 이 영문 모를 메시지들은 하나둘씩 내 눈앞에, 머리 위에 나타났다. 그렇다고 학교를 안 갈 수는 없어서 집을 나섰고, 문을 닫고 집에서 나오고 나서야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대해 하늘에 대고 화풀이를 해댔다.
 “아 씨, 아침부터 뭐야! 이 미친 상황은!”
 [‘한진우’ 님이 상태 이상 ‘분노’에 걸렸습니다!]
 “다 너 때문이잖아! 이거 뭐야! 당장 내 눈앞에서 사라져! 아침 댓바람부터 이게 뭔데! HP? SP? 교복 장착? 뭐가 문제야, 어?”
 [‘한진우’ 님의 ‘분노 게이지’가 상승합니다.]
 아까부터 말했잖아, 이거 전부 내 눈앞에 아른거리는 메시지 때문이라고! 되도 않는 꿈 다음은 뭐, 상태 메시지? 사람 놀려?
 그러나 내 분노는 아랑곳 않고 현재 상황을 알려오는 메시지 때문에, 난 분노를 간신히 억누를 수 있었다.
 [‘등교 시간’까지 앞으로 ‘10분’남았습니다. 카운트다운을 시작하겠습니다.]
 좋아, 일단은 진정하고 학교 가자.
 지각하면 운동장 돌고 기합 받고 벌점 받고 귀찮고 짜증도 두 배야. 그럴 수는 없지. 일단 이 일은 무사히 학교에 도착할 때까지 보류하자고.
 집에서 학교까지 걸어서 약 14분. 이 이상한 상황에 혼자 폭발해서 시간을 낭비했기 때문에 뛰어야겠네. 젠장, 아침부터 달리기냐.
 열심히 교문을 향해 달리고 또 달렸으나 지금 내 옆으로 걸어가는 멋모르는 녀석들은 아직 시간 남았다고 여유만만해하고 있다. 너희 같으면 머리 위에서 경고음을 울리면서 후딱 뛰라고 난리 치는 이런 상황에서 절대 그럴 수 없을걸. 지금 시간 없으니 빨리 뛰라고 하는 이 메시지가 있는 한. 물론 그걸 굳이 말해 줄 여유는 없었다.
 그래도 뛰고 또 뛴 덕에 교문이 보이기 시작했다. 남은 시간, 6분. 여기서는 조금 천천히 가면서 숨을 고르는 게 좋겠다. 페이스 배분해야지.
 “앞으로 3분 남았다!”
 아직 6분 남았거든요!
 선생님의 목소리를 인식했는지 내 머리 위의 카운트다운이 변경되었다. 젠장, 3분 줄었잖아.
 결국 천천히 가려고 했던 나의 다리를 다시 재게 움직여 달렸다. 선생님 말에 그제야 달리는 녀석들이 있었으나 그건 지금 내게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다른 녀석들이야 그러거나 말거나, 지각했다간 내가 혼나게 생겼는걸.
 결국 열심히 뛰어간 덕분에 1분 차로 나는 간신히 뛰어 들어갈 수 있었다. 내가 들어가고 나서 정확하게 60초 뒤 선생님 및 선도부는 지각생들을 잡기 시작했다.
 “선생님 아직 3분 남았어요! 이제 여덟 시 7분이라구요!”
 “5분 정도 일찍 와야 할 거 아냐! 얼른 저기 서지 못해!”
 우와, 큰일 날 뻔했다. 간신히 난 체벌 없이 들어갈 수 있었고 경고음도 카운트다운도 사라졌다. 메시지가 사라져서 조금 안도했는데 새로운 메시지가 떠서, 혀를 차고 말았다.
 [타임 어택 성공! ‘질주’ 스킬의 숙련도를 13 획득하셨습니다.]
 아니, 잠깐, 그렇게 미친 듯이 달렸는데 숙련도가 13밖에 안 돼? 나의 질주는 그것밖에 안 되는 거야? 그것보다 뭐야, 숙련도? 이런 것도 메시지로 나오는 거야?
 이래저래 마뜩치 않아 인상을 쓰는데 내가 계속 서 있자 선생님 및 지각생들이 힐끔거리며 쳐다봤다.
 거기 계속 서 있을 수도 없어서, 찜찜한 구석을 뒤로한 채 교실로 들어갔다. 그 순간 내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왜 우리 반 애들 머리 위에 스테이터스(status)가 뜨는 거지? 아까는 이런 거 없었는데? 아니, 잠깐. 우리 반 애들 스탯이 보인다면, 내 능력도 볼 수 있지 않을까?
 급하게 가방을 벗어 자리에 둔 뒤, 교실 끝에 있는 거울 앞에 섰다.
 [능력치 - 게임 : Lv. Max]
 교실에 걸려 있는 거울을, 정확하게는 거기에 비친 내 머리 위의 메시지를 보고 내 추측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내 능력이 보인다. 그것도 되게 눈에 띄는 게 하나.
 이것으로 또 다른 추측이 가능해졌다. 왜 꿈속에서 내 뇌가 업데이트니 뭐니 그따위 말을 했는지.
 어제 게임 캐릭터 만렙 찍음과 동시에 내 게임 실력의 레벨도 만렙을 찍었고, 그 결과가 지금 이 상황이다. 게임에서나 보일 법한 메시지가 현실에 보이는 거.
 [‘한진우’ 님의 능력 : 스테이터스 스캔(Status Scan), 신의 컨트롤]
 [스테이터스 스캔(Status Scan) : 자신을 포함, 타인의 능력치, 상태 등을 수치화, 표시한다. 숙련도에 따라 스캔 가능한 세부 능력치가 많아진다.]
 [신의 컨트롤 : 콘솔, 모바일, 온라인 게임 등 자신이 컨트롤할 수 있는 게임에서 최고의 기량을 발휘한다.]
 신컨(신의 컨트롤) 쪽은 내가 해놓은 게 있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저 웃기지도 않은 타인의 능력치 훔쳐보는 능력은 이해를 못하겠다. 정신과 진료를 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 고민했지만, 아직 섣불리 판단하기엔 일렀다.
 어쩌면 일시적인 현상일지도 몰라. 일단 오늘 하루는 최대한 정상인 척하면서 보내는 게 좋겠어. 침착하자, 절대 이상한 거 보이는 티 내지 말고.
 담임 선생님께서 조례에 들어오셨다. 지각생 명단을 부르는 선생님의 퀭한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다른 애들이라면 걱정을 했겠지만 나는 속에서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고생 좀 했다.
 가까스로 웃음을 참긴 참았는데, 저런 게 뜨면 웃을 수밖에 없잖아.
 [‘이유민 선생님’은 상태 이상 ‘숙취’ 중입니다.]
 분명 어제 선생님들 단체 회식 때문에 술 진탕 마신 게 틀림없어. 거기에 늦잠까지 자서 숙취 해소에 좋은 해장국이나 약을 아침에 못 드셨을 테지.
 물론, 어디까지나 저 메시지를 보고 추측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정확한 정보인지, 내 망상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 해답은 선생님이 피곤한 얼굴로 교실을 나가고 난 뒤, 교탁 앞에 있는 애들이 불평하는 소리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야, 유민 쌤 냄새 쩔어. 어제 술 엄청 마셨나 본데?”
 “술 마신 건 둘째 치고 아침에 해장국 못 드셨나 봐. 아직도 술 냄새가 나는 거 같아.”
 헛것을 본 게 아니었다. 망상도 아니었고. 내 능력은 정확히 정답을 도출해 냈다.
 이런 거까지 알아내다니 이거 좀 신기한데. 타인의 능력치나 상태에 대해서 척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다니. 놀랄 노자다.
 이 신기한 능력에 놀라던 차에 어느덧 8시 55분이 되자 예비 종이 울렸다. 그러자 이번에는 이런 메시지가 떴다.
 [오늘 ‘1교시’는 수학입니다. 필요 아이템은 ‘수학 8-나, 필기용 노트, 필기구’입니다. 장소는 2-5 교실입니다. 준비 시간이 앞으로 5분도 남지 않았습니다. 지금부터 카운트다운을 시작하겠습니다.]
 야,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잖아? 이런 자잘한 걸로 카운트다운이라니! 이런 것도 퀘스트로 받아들이는 거야?
 머리 위에서 카운트다운을 알리는 상태 메시지가 열렸다. 저런 게 보여서일까, 평소보다 서둘러서 교과서와 노트, 필기구를 챙겨 자리로 돌아갔다. 모두 챙기니까 메시지의 초시계가 멈추고 새로운 메시지가 나타났다.
 [소요시간 ‘1분 11초 56’입니다.]
 [랭크 : C / 경험치 3 획득하셨습니다.]
 이런 것도 랭크 매겨서 경험치 재는 건가. 피곤하게시리. 그나저나 대체 이런 걸로 무슨 경험치가 오르는 거야.
 설마 준비물 챙기기도 스킬 같은 건가?
 뭐야, 이거. 완전 현실이 게임 같잖아.
 아까 등교 시간에도 엄청 달려서 들어왔을 때 질주 ‘스킬’이라고 했지? 아무리 생각해도 현실에서 사용하는 단어가 아니었다. 이쯤 되면 지금 아직도 잠을 자고 있고, 현실 RPG 꿈을 꾸고 있다고 믿는 게 더 그럴듯했다.
 “차렷, 선생님께 경례.”
 이 현상에 대해 고찰하는 사이에 1교시 수업이 시작했다.
 1교시 수업은 수학으로, 선생님께서 수업 진행을 위해 책을 펴 들고 수학 문제들을 적어가고 있었다. 문제들이 칠판 위에 다 적히자마자 이상한 게 보인다. 또 메시지였다.
 [이 문제는 도형과 닮음비를 이용하는 문제입니다. 적정 레벨은 42. 레벨 42 이상이면 무난하게 풀 수 있습니다.]
 친절하게 문제 유형에 대해 설명하는 듯했지만, 방금 적정 레벨이라는 이상한 용어가 보여 그 내용에 집중할 수 없었다.
 내가 무슨 던전 입장하는 것도 아니고.
 게임으로 치면 저 수학 문제라는 몬스터는 레벨이 42 정도 된다는 건가.
 “으음, 어디 보자. 오늘이 11월 마지막 날이니까 제일 끝 번호가 나와서 풀어봐.”
 끝 번호, 끝 번호라······. 그거 나잖아!
 안 그래도 이상한 메시지가 여기저기 나타나 기분이 싱숭생숭한데. 게임 속 캐릭터가 되어 수학 문제라는 이름의 몬스터를 잡으러 가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싫다, 이 기분.
 그나저나 저거 풀면 또 경험치 나오려나. 게임에서는 몬스터 잡으면 돈도 나오는데. 실없는 생각을 하면서, 분필을 잡았다.
 으음, 생각보다 난해한데. 뭐, 틀린다고 별일 생기겠어. 내가 생각해 낸 풀이를 칠판에 옮겨 적었고, 그게 정답이었는지 선생님은 만족했다는 표정으로 날 자리로 돌려보냈다. 틀리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내 머리 위에 또 다른 상태 메시지가 뜬 걸 발견하고는 표정 관리하기가 어려웠다.
 [정답입니다. ‘도형/닮은비 문제 풀기’의 숙련도가 5 올랐습니다.]
 [‘중등 수학’ 클래스가 43 레벨이 되었습니다.]
 하, 내 참. 이젠 클래스라니. 그나저나, 메시지가 알려준 내 중등 수학 레벨이 43이라는 말이 걸렸다. 그럼 딱 적정 레벨이라서 저 문제 아슬아슬하게 풀어낸 거야?
 아무리 생각해도 이 상황, 이상하다. 현실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 찝찝한 상황을 어찌할 수도 없는 난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이 치고 난 후, 또다시 머리 위에 이상한 메시지가 나타나는 것을 느꼈다.
 [오늘 ‘2교시’는 영어입니다. 필요 아이템은 ‘중2 영어 교과서, 필기구’입니다. 장소는 2-5 교실입니다. 빠른 시간 안에 아이템을 준비하시길 바랍니다. 지금부터 카운트다운을 시작하겠습니다.]
 뭐야, 계속 이런 식으로 나오는 거야? 불평불만을 터뜨리고 싶지만 내 능력이 남에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괜히 남들 눈에 이상하게 보이기 싫어서 하는 수 없이 적당히 빨리 챙겼다.
 [소요시간 ‘53초 23’입니다.]
 [랭크 : B / 경험치 32 획득하셨습니다.]
 랭크 C와 랭크 B와의 경험치가 무려 열한 배 차이라. 아, 아니지. 뭘 감탄하고 있어.
 아무튼 영어 수업도 무난하게, 는 끝나지 않았다. 당연하게도, 계속 내 눈에만 보이는 메시지가 문제였다.
 그렇게 내내 시달리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샌가 4교시가 되었다. 이 수업은 평범하게 마무리 지어지나 싶더니 딱 수업 끝나기 10분 전에 이상한 메시지가 하나 떠서 나도 모르게 얼굴이 일그러졌다.
 [4교시 마치는 종까지 앞으로 ‘10분’ 남았습니다. 태세 정비를 하겠습니까?]
 ⟶[Yes] / [No]
 태세 정비? 이건 또 뭔 소리야?
 웬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나 했더니만 내 앞에 앉은 애를 보고서야 이해가 되었다. 종 치면 금방 급식실로 뛰어 내려갈 수 있도록 다리 한쪽을 나가기 쉽게 해놨고, 무게중심도 그쪽으로 쏠려 있다. 밥 먹으러 갈 때 최대한 시간을 단축시키기 위함임에 틀림없다.
 나로서는 원래 친구들이랑 늦게 밥 먹기로 해서 이런 게 필요 없지만 말이다. 그러니 무조건 NO, 거절이다.
 수업 종 치고 선생님께 인사를 한 뒤에 절반 가까운 애들이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갔다. 뭐, 가 봤자 교실이 가까운 3학년들이 자리 차지할 걸 알고 있는데 괜히 힘 낭비할 거 있나. 그래 봤자 기다리는 건 급식줄밖에 없는 것을.
 부질없는 짓 한다고 생각하면서 약 15분 기다린 뒤, 친구들이랑 같이 밥 먹으러 급식실에 갔다. 역시, 많이 기다리지 않고도 밥을 먹을 수가 있었다.
 “야, 야. 진우야. 너 그거 봤어?”
 “뭐?”
 “게임 말이야. Last Cosmos. 그 게임에 최초의 만렙 유저가 나왔대! 어제 게임하는데 KoGa라는 유저가 ACM를 했다잖아! 대체 게임을 얼마만큼 하면 그 정도의 경지에 오르는 거지?”
 “분명 7년차 백수 생활에 접어든 게임 폐인일걸. 그렇지 않고서야 ACM는 힘들어.”
 미안하다, 그거 나다.
 난 그냥 하루 세 시간씩, 가끔씩은 그 이상도 하지만 어쨌든 몇 년에 걸쳐서 게임한 것 외에는 없는데, 그런 내가 백수 소리를 듣고 있었다.
 결코 이 절규를 친구들 앞에서 할 수 없었기에 마음속으로 삼키고 또 삼켰다. 그 와중에 백수 소리 들은 게 너무나도 큰 충격이라, 머릿속을 떠도는 이 찝찝한 기분을 남은 수업 시간까지 계속 끌고 갈 수밖에 없었다.
 
 * * *
 
 수업이 끝난 후, 얼른 집으로 돌아와 세수부터 하고 다시 거울을 봤다. 그렇다고 이 메시지들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결론부터 말하면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없다. 이건 분명 꿈이야.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일이 생길 리가 없어. 현실이라면 이 상황이 설명이 안 돼.
 이놈의 상태 메시지 창은 계속 뭐가 업데이트가 되는지 아침의 거기서 조금 더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러다가 조만간 내 시야에 메시지만 보이며 그 메시지에 짓눌려 스트레스로 사망해 버린다는 상상까지 하자, 소름이 돋았다.
 안 돼. 절대, 절대 그렇게는 안 돼.
 이런 상태로는 공부를 하려 해도 손에 잡히지가 않았기에, 게임을 하자는 결론을 내고 말았다. 지금 이 상황에서는 게임밖에 할 게 없으니까. 컴퓨터를 켜고 조금 기다렸다가 바로 게임을 실행시켰다.
 Last Cosmos.
 내 캐릭터와 나의 게임 능력을 만렙 찍게 만든 이 중독성 있는 게임을. 이 상황을 만들어낸 원인으로 추정되는 이 게임을.
 캐릭터 선택 창에 있는 내 만렙 캐릭터 KoGa를 선택하고 게임을 시작했다.
 어제 사냥터 근처에 있는 마을에서 게임을 종료했기에 일단 거기서 게임을 시작하긴 했는데, 생각보다 상황이 좋지 않았다.
 “우와, KoGa 님이시다!”
 “헐, ACM 처음 봤어, 개쩐다.”
 “저 쩔 좀!!”
 “님 저 골드 좀 주세요. 돈이 없어요.”
 아차, 이 시간대에 유저들이 많다는 걸 까먹었다. 그것도, 딱 학교 끝나고 집에 들어왔을 부모님 주민등록번호 빌려서 하는 초등학생들이나, 내 또래의 중학생들, 이 시간에 놀고 있을 백수.
 셋 다 위험하다. 특히 초등학생들. 게임상의 매너를 지키지 않고 나대는 녀석들이 많아서 특히나 골치 아픈 부류다. 이 게임, 음성 채팅도 가능한지라 게임에서 들려오는 변성기가 오지 않은 애들의 목소리에 귀가 다 아팠다, 젠장. 음성 채팅은 OFF다.
 거기다가 지금 애들이 자꾸 공쩔이니 골드 구걸이니 떠들어대는 바람에, 채팅창도 막아야 할 판이다. 대형 레이드 때는 이거만큼 좋은 것도 없지만 이건 더 이상 이 세상 소음이 아니었다. 거기다가 채팅창도 나한테 오는 귓속말로 도배 수준이 따로 없으니. 하, 만렙 찍은 게 대단하긴 대단한가 보네.
 “한 번이라도 좋으니 쩔 좀 해주세요!!”
 “저 아이템 구경 좀 해도 되나요? 교환 창 걸어주세요!”
 내가 미쳤다고 그걸 보여주게. 내가 실수로라도 교환 버튼 누르면 내 아이템 가져가려는 수법이잖아. 애들이 되도 않은 사기 치려고 저러는 거 보면 진짜 한숨만 나온다. 대체 저런 건 언제 배운 건지. 아니, 그 이전에 저런 사기에 누가 걸리냐.
 오늘 이 상태로는 사냥 못 하겠네.
 어쩔 수 없다. 오랜만에 배틀 콜로세움에나 가야지. 계속 여기 있으면 사람들이 계속 쫓아다녀서 게임도 제대로 못 즐길 테니까.
 ― 배틀 콜로세움에 입장합니다.
 일반 채널과는 분리된 채널인 배틀 콜로세움은 쉽게 말하면 PvP 채널이라고 보면 된다.
 다만, 이 게임의 PvP 채널이 다른 게임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이야기한다면, 어떤 콜로세움이든 인원수 제한이 없으며 배틀 방식이 다양하다는 거다.
 덕분에 게임 용량도 같이 늘어났지.
 [‘신의한수’ 님이 28번 콜로세움으로 초대합니다.]
 [수락] / [거절]
 앗, 초대 쪽지 날아왔다.
 뭐, 별일 있겠어.
 나는 별 거부감 없이 수락을 눌렀고 내 캐릭터도 배틀 콜로세움에 들어섰다. 그렇지만 잠시 후, 난 이 상황에 할 말을 잃었다.
 [길드 배틀]
 [‘The Guild’ VS ‘만렙 길드’]
 길드 버프 때문에 친척 형이랑 만든 2인 길드였다. 그 형 고등학생 되면서 접속률이 낮아진 탓에 유령 길드가 되어버렸지만.
 저 길드, 분명 이 게임 내에서 실력자들이 꽤 많은 걸로 들었는데 왜 나한테 초대장을 날린 거야? 의미를 모르겠네.
 “KoGa 님 안녕하세요. The Guild 카페장인 ‘신의한수’라고 합니다.”
 “아, 예. 뭐······.”
 당연하게도 난 음성 채팅에 응하지 않았다. 변성기도 덜 지난 학생인 걸 들킬 순 없잖아.
 “다름이 아니라 이번에 최초로 만렙 달성하신 KoGa 님과 PvP를 함으로써 All Class Master와 Single 또는 Double Class Master와의 스펙 차이를 연구하려고 하거든요. 그, 왜 있잖아요. 웹에 올라가는 라코 통신요. 그걸 위해 협조를 구하고 싶은데, 시간 괜찮으시겠어요?”
 “예, 괜찮습니다.”
 Last Cosmos 통신에 올릴 기사라도 적을 속셈인가. 별거 아닐 거라 생각하고 응했긴 했으나, 잠시 잊고 있었다. 이거 길드 배틀인 거. 나는 혼자였고, 이들은 제법 규모가 큰 길드였다.
 “그럼 ‘KoGa’ 님과 저희 ‘The Guild’의 Master Class 획득한 길드원 열다섯 명의 PvP에 응하신 걸로 알겠습니다. 레디 눌러주세요.”
 아, 잠깐. 별거 아니라는 말 취소. 15대 1? 아무리 만렙이라지만 이건 너무 무모했다. 그러나 그쪽 길드장이 도발한다고 던진 말에, 못하겠다는 말은 쏙 들어갔다.
 “설마 KoGa 님, 도망치시지는 않겠죠? 명색이 All Class Master인데.”
 저쪽이 ACM를 언급하며 도발한 것도 있고, 내가 한 말도 있어서 이대로 넘어갔다. 준비를 누르고, 화면에 집중하니, 눈앞에 메시지가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스킬 ‘신의 컨트롤’이 발동됩니다.]
 신의 컨트롤, 스테이터스 스캔과 동시에 나타난 능력이었다. 어디, 신이라는 단어가 붙을 정도의 능력이 되나 확인해 볼까.
 [배틀 준비 완료. 필드 이동합니다.]
 로딩 화면이 뜬 후 나온 배틀 필드는 바위가 여기저기 널려 있는 넓은 황야다.
 이런 데는 땅 속성 정령이 유리하겠어.
 일단, 제일 골치 아픈 힐러를 제압해야지. 장기전으로 가면 분명 내가 불리해진다.
 내 캐릭터가 지금 장착하고 있는 무기 등을 생각해 내며, 최고의 시나리오를 구성한다.
 [3]
 [2]
 [1]
 [Fight!!]
 “수적으로는 우리가 우세, 엥, 죽었잖아!”
 [‘KoGa’ 님께서 ‘성직인생’ 님을 KO시켰습니다.]
 좋아, 먼저 성직자 하나 땄다.
 그다음은, 시야 교란이야!
 “빨라, 어느 틈에 죽인 거야?”
 “켁, 연기!”
 “스모킹 미스트까지! 그 짧은 시간에 캐스팅한 거야?”
 시작하자마자 도적 스킬인 ‘순살’을 쓴 건 정답이었다. 순살(瞬殺)이란 스킬은 진짜 말 그대로 순식간에 크리티컬 데미지를 먹이는 스킬이라 상대 반대편으로 이동하면서 가장 방어력이 약한 직업 중 하나인 성직자 한 명을 KO시켰다. 그리고 일정 공간에 있는 유저 및 몬스터의 공격 명중률과 시야를 가리는 스모킹 미스트. 이걸로 상대의 판단력에 혼란을 줬으니, 그 틈에 다음 작전이야.
 ― ···지금 이 자리에 강림하라, 노에아넨!
 땅에서 솟아오른 거대 골렘, 노에아넨이 모습을 드러냈다. 몇 번을 봐도 정령사들 스킬의 이펙트는 꽤 퀄리티가 높다니까.
 ― ···지금 이 자리에 강림하라, 실라이론!
 그렇지만, 상대 쪽에도 정령사 마스터하신 분들이 계신지라, 바람의 정령으로 스모킹 미스트를 단번에 날려 버렸다. 아쉬워, 조금이라도 더 시간을 벌어줬으면 했는데.
 “바람의 상급 정령이다. 그리고 그다음은 이거야, 실라이론!”
 실라이론의 바람에 휩싸인 길드원들의 몸 주위에 바람이 깃들기 시작했다.
 쯧, 이동속도 상승 버프로군.
 근접 공격을 하는 캐릭터들이 나서겠지?
 예상대로 검사와 도적 캐릭터들이 내게 달려들었다. 지금이다!
 노에아넨이 그 커다란 주먹으로 땅을 내리쳤고 그 결과 땅이 울리며 바위 벽들이 솟아올랐다. 땅의 울림 때문에 다가오던 근접 캐릭터들은 약간이지만 데미지를 입었다.
 “실라이론으로는 노에아넨의 방어를 뚫기 힘들어요. 암벽 속에서 딜레이가 큰 마법을 준비하고 있을 거예요.”
 “그래 봤자 오히려 스스로를 가두는 감옥이 되었을 뿐이라구요. 정령사 분들은 불 속성의 정령을, 마법사 분들은 화 속성 인첸트 마법 걸고 토벽 무너졌을 때 바로 마스터 스킬 쓰세요. 전사, 도적, 검사, 헌터 분들은 인첸트 마법 받자마자 바로 공격합니다!”
 오오, 나름대로 이름난 길드라고 꽤나 체계적이네. 확실히, 토벽 안에 있는 동안에는 이동이 불가능하지.
 그렇지만 그건 사람들이 많이 하는 메이저 클래스만 마스터했을 때의 경우. 난 All Class Master다 이거야. 아무리 마이너한 직업의 스킬도, 난 다 익혔다고!
 ― 분신.
 ― 변신, 두더지 모드.
 사람들이 선택 안 하는 직업 중 하나인 수인(獸人)의 기본 변신 스킬이다.
 가끔씩 이런 황야에서 도주용으로 쓰기 좋아서 배워두긴 했는데, 설마 PvP에서 쓰게 될 줄이야.
 역시 어느 스킬이건 쓰기 나름이다.
 재빨리 땅속으로 들어가 토벽이 무너지기 전에 그 자리를 피했다. 그와 동시에, 그들의 공격이 노도와 같이 쏟아졌다.
 ― 가라, 이그니스!
 ― 인첸트, 화!
 ― 더블 스트라이크!
 ― 스피어 애로우!
 ― 익스플로전 슬래쉬!
 아무리 방어력이 4속성 정령 최강인 땅의 정령이라도 화 속성 공격을 여러 대 맞았으니 지금쯤이면 쓰러졌겠지. 거기에 하나 더, 강력한 게 남아 있다.
 ― 엘레멘탈 버스트!
 엘리멘탈 버스트라.
 마법사 마스터 스킬로서 여섯 가지 속성 데미지를 주지. 웬만한 마스터 스킬 중에서도 상급 레벨에 속하는 기술이다.
 다만, 그것이 맞았을 때의 이야기지만.
 내 분신에 직격으로 데미지를 주고도 천지를 뒤흔드는 소리와 진동이 땅 아래에도 울려 소량의 데미지를 얻었다. 분신을 만들 때 HP를 제법 소모했지만, 크게 걱정될 정도는 아니었다.
 “뭐야, 어딨어? 죽었나?”
 “아니, 안 죽었어.”
 “칫, 어디 있는 거야!”
 이런, 화가 머리끝까지 났나 보네, 자기들 MP 잔뜩 써서 총공격을 퍼부었는데도 안 죽고 어디엔가 있을 거라 생각하니 화가 날 만도 하지.
 어디 보자, 분명 이 부근이 마법사, 정령사, 성직자 라인 바로 아래였지?
 두더지 모드로 땅속을 돌아다니며 파놓은 함정에 그들이 서 있던 땅은 순식간에 꺼졌다. 귀찮은 마공 캐릭터들은 여기서 잡는다!
 ― 사자후!!
 “헉, 언제 발밑에!”
 다 같이 사이좋게 꺼져 버린 땅에서 즉시 시전 되는 사자후에 정통으로 당했다. 발견이 빨라도, 선딜(스킬 시전하기 전에서 스킬 시전까지 걸리는 시간)이 긴 직업들은 이 기술을 캔슬 할 수 없었다.
 단지 파동으로, 방어력이 낮은 이들에게는 충분한 데미지를 줬겠지. 스턴 효과도 있고.
 근접 전투 길드원들은 저 멀리서 달려오고 있지만, 늦었어.
 스턴 중인 마법 캐릭터들 사이에서, 내 캐릭터는 제 모습을 다시 변화시켰다.
 ― 수인 마스터 스킬, 용인화!!
 다시 한 번 더 파동을 일으켜 주위에 데미지를 준 후, 내 캐릭터는 용인(龍人)의 모습으로 변신했다. 인간의 체형을 닮았지만, 드래곤의 머리와 꼬리, 비늘, 뿔 등이 달린 용인의 모습은 유명 길드 마스터 클래스를 키운 플레이어들을 놀라게 하기 충분했다.
 “수인? 와, 괜히 ACM가 아니구만.”
 “살다 살다 그 직업 마스터 스킬은 또 처음 보네.”
 수인 마스터 스킬은 익히는 과정이 되게 어려우니까. 비인기, 비효율 직업이라서 사람들이 꺼리기도 하고, 이 클래스 자체가 게임 스토리 후반부에야 등장한다.
 이 녀석의 효율을 살리려면 웬만한 클래스들은 마스터를 해야 하는데, 문제는 이 게임은 점점 클래스를 마스터하기 힘들어서, 여기까지 오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지.
 아무튼, 용인의 장점은 물리·마법 공격력과 방어력이 올라간다는 것과 하늘을 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필살기가 무지막지하다는 점이다.
 마법 공격 쪽 캐릭터들은 필살기 없이 변신한 채로 격투가 기술 쓰면, 쉽게 잡을 수 있다. 거기에 스턴 상태다. 못 잡으면 ACM의 이름이 울지.
 [‘KoGa’ 님께서 ‘토너’ 님을 KO시켰습니다.]
 [‘KoGa’ 님께서 ‘루르’ 님을 KO시켰습니다.]
 [‘KoGa’ 님께서 ‘나의버프를받아’ 님을 KO시켰습니다.]
 [‘KoGa’ 님께서 ‘라세’ 님을 KO시켰습니다.]
 [‘KoGa’ 님께서 ‘2005395’ 님을 KO시켰습니다.]
 원거리에서 지원 사격 및 보조하던 캐릭터들은 여기서 거의 씨가 말랐다. 성직자 전멸에 마법사와 정령사는 한 명씩만 남았다. 원거리 공격 캐릭터를 많이 줄였으니, 일단 날아서 거리를 떨어뜨리자!
 “힐 한 번 못하고 죽다니, 내 힐러 인생 최고의 수치야.”
 “근캐들도 지금 공격 제대로 들어간 사람 한 명도 없지? 미쳤네. 벌써 여섯이 떨어져 나갔어.”
 “저, 마나 회복 때까지 잠시 쉬겠습니다.”
 “아, 법사님은 좀 쉬세요.”
 “낭랑 님이랑 헌터 님들은 마스터 스킬 부탁합니다.”
 힐러 잡은 건 잘한 일이지만 정령사를 한 명 놔둔 건 실수다. 정령사 마스터 스킬이 굉장히 까다롭거든. 정령사 마스터 스킬, 정령왕 소환. 일정 시간 정령왕을 소환하는 기술이었지. 다만 소환 대기 시간이 길다는 게 단점. 그렇다면 여기서는 나도 아군을 불러야지.
 ― 지금 나의 부름에 응하라. 소환, 키마이라.
 스킬 커맨드를 입력하자 빠른 시간에 괴물, 키마이라가 그 모습을 드러내 나의 명령을 기다린다.
 테이머. 몬스터를 조련하는 클래스.
 정령이 마법 공격에 주된다면 소환수들은 소환수가 어떤 능력이 있는가에 따라 그 공격이 달라진다.
 소환 시간도 정령에 비해 상당히 빠르지만, 키우는 게 힘들다. 말 그대로 테이머니까. 몬스터의 식사, 상태 이상 등등을 고려하며 키워야 하는 직업이라, 돈이 제법 깨지거든.
 소환 배울 당시의 몬스터는 테이머 레벨과 관계없이 저렙. 즉, 자기 레벨 올리면서 소환수 레벨도 같이 올려야 하지.
 그래서 사람들이 저렙 때 대부분 정령사를 선택하지 테이머 선택했다 하면 당장 캐릭터 삭제하라고 하더라.
 [키마이라 타깃이 록온 되었습니다.]
 [공격 모드. 타깃 : ‘낭랑’]
 분명 정령왕은 한 60% 정도 소환이 됐겠지.
 소환 도중에는 이동 불가, 소환 도중 입는 데미지는 통상 데미지의 1.5배, 원래 정령사가 방어력이 매우 낮은 직업인 걸 감안하면 리스크가 크다.
 키마이라는 내가 ‘그 녀석’을 키우기 전까지 꽤 애용하던 녀석이라 레벨이 상당히 높다. 그런 녀석을 상대로 한 방이라도 맞으면, 이 상황에서는 아무리 만렙이라고 해도 정령사는 사망 확정이다. 타깃을 확인한 키마이라의 꼬리가 정령사를 향해 돌진했다.
 “헉, 고독의 황야 보스 몬스터를!”
 “낭랑 님 소환 멀었어요?”
 “아직 72% 정도예요!”
 “이런 젠장! 여긴 내가!”
 전사가 도발 스킬을 걸었지만, 던전 보스몹과 달리 이 녀석은 내가 열심히 키운 몬스터다. 그런 몬스터는 도발에 걸리지 않기에, 적의 도발과 상관없이 내가 목표로 설정한 캐릭터를 잡지! 키마이라의 꼬리가 정령사를 반쯤 집어삼켜 씹어버렸다. 꼬리라고 해도 거대한 뱀, 아마 이 한 방으로 저 정령사는 게임 오버다.
 [‘KoGa’ 님께서 ‘낭랑’ 님을 KO시켰습니다.]
 자, 다음은 법사를 노린다.
 키마이라에게 재빨리 다음 공격 커맨드를 입력했다. 키마이라는 이제 이 팀 유일한 마법사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헉, 믿었던 낭랑 님이!”
 “여기서 법사님까지 죽으면 물공 캐릭터들밖에 안 남아요!”
 “일단 법사님을 보호하죠!”
 전사나 검사는 우선 마법사를 보호하는 걸로 방향을 잡은 모양이다.
 하긴, 물리 공격으로 날 잡기에는 지금 난 날고 있으니까, 활 공격인 헌터 외에는 잡는 게 무리겠지.
 그러나 약간 우쭐한 탓에 난 한 가지 간과하고 있었다. 거기 길드장이 가만히 손 놓고 있지는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아직 완벽하진 않지만 해봐야겠죠.”
 ― 인첸트, 뇌.
 “아, 맞다. 신의한수 님 마법사 스킬도 배우셨죠!”
 “도적과 법사의 조합이라고. 헤이스트.”
 이동속도와 점프력을 올릴 셈인가.
 스킬을 사용한 저쪽 길드장은 갑자기 달리기 시작하며 여기저기 솟아 있는 바위들을 밟아 뛰어올랐다.
 놀랍게도 그 혼신의 점프는, 날고 있는 나한테 닿았다. 헤이스트 숙련도도 있지만, 뇌 속성 버프로 민첩성 상승, 이미 죽은 정령사의 실라이론 버프도 남아 있던 걸 잊고 있었다. 이번은 확실히 내 실수였다.
 “소환자를 잡으면 되는데 무슨 걱정을.”
 ― 경동맥 끊기.
 길마 신의한수 님의 공격이 나한테 명중했다.
 경동맥 끊기로 급소 공격과 인첸트 뇌의 효과로 그의 무기에 담긴 뇌 속성의 공격이 내게 추가타를 먹였지만, 지금의 내게는 약했다.
 재빨리 격투가의 기본 스킬인 잡기를 발동, 그를 잡았다. 잡힌 동안에는 꼼짝도 못한다.
 자신의 공격이 통하지 않자 길드장이 당황해서는 소리쳤다.
 “웬만하면 죽는데, 어째서!”
 괜히 용인인 줄 알아? 드래곤 스케일, 온몸을 뒤덮는 비늘은 물리 공격과 마법 공격의 데미지를 줄이지. 그거 아니었으면 분신까지 쓴 상태에 저런 거 맞았으니 바로 사망 갔을걸?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도 손가락은 계속 키보드를 두드리며 커맨드를 입력했다. 용인 최고의 필살기를 시전하기 위해.
 ― 드래곤 브레스(Dragon Breath).
 입에서 꽤나 강력한 화염의 숨결이 토해져 나와 붙잡힌 신의한수 님은 높은 확률로······.
 [‘KoGa’ 님께서 ‘신의한수’ 님을 KO시켰습니다.]
 그걸 직격으로 맞았으니까, 당연히 죽지.
 내가 직업 다 마스터하면서 스탯도 남들보다 월등히 높아서 웬만한 유저들은 고렙 스킬 한 방에 다 털어버릴 수 있었다. 상대가 도적과 마법사 조합이라서, 방어력이 높지 않아 한 번에 잡을 수 있지.
 “길마 님이 한 방에 죽다니.”
 “이게 만렙의 위엄!!”
 별로 위엄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데.
 어디 보자. 전사가 한 명, 검사 한 명, 도적 한 명, 헌터 두 명, 격투가 한 명, 마법사 한 명. 총 일곱 명 남았나. 대체적으로 마법 공격에 약하겠네.
 저 중에서 서브 클래스로 마법사 배우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래도 마공에는 확실히 약하겠지. 잠깐 내 상태를 확인하니, 마나도 지금 그렇게 넉넉하지 않았다. 한 방에 잡는 게 좋겠다. 그럴 때는 ‘그 녀석’밖에 없지.
 ― 소환 해제, 키마이라.
 “키마이라를 소환 해제?”
 “큰 기술을 준비하려는 거겠지, 지금이 기회야!”
 “헌터님들 마스터 스킬! 법사님 MP 차셨으면 공격 좀!”
 ― 라이트닝!!
 ― 애로우 슈팅 스타!!
 엇, 나왔다. 헌터 마스터 스킬인 애로우 슈팅 스타.
 무수히 쏟아내는 화살들이 메테오처럼 떨어지면서 강력한 위력을 자랑하지. 거기에 마법사 스킬인 라이트닝은 시전 즉시 발동해 지정한 상대 위로 낙뢰를 떨어뜨린다. 결국, 라이트닝을 맞은 뒤 뒤이어 쏟아지는 화살의 비들도 수십 발 맞았다. 이건 데미지가 꽤 센데.
 아까부터 누적된 데미지도 있고, 용인으로 변하지 않았으면 진짜 죽었을 수도 있었다. HP가 좀 간당간당해.
 “맞았다!!”
 “이걸로 KoGa 님 스킬도 캔슬 됐을 거예요!”
 분명 보통 인간형이나 일반적인 수인형이라면 그랬겠지.
 그렇지만, 지금의 내 캐릭터는 용인.
 인간의 형태를 하고 있으나 용의 힘을 가진 자.
 그런 자가 인간의 스킬에 쫄아서 스킬이 캔슬 되지는 않지!
 ― 지금 나의 부름에 응하라. 소환, 블랙 드래곤.
 시전이 끝나고, 캐릭터 앞에 마법진이 생겨나 그 안에서 검은 비늘을 한 조금 큰 드래곤이 나타났다. 그들의 반응은 예상대로였다.
 “핵 아냐? 공격 맞는 순간 스킬 캔슬 돼야 하는데! 밸런스 파괴가 따로 없네!”
 “그 이전에 드래곤? 용인에 이어서 이번에는 드래곤 소환? 이게 말이 돼? 테이머 마스터 스킬이 드래곤 소환이었어?”
 이거 테이머 마스터 스킬 아닌데.
 마스터 스킬로 소환할 수 있는 녀석은 이 녀석보다 수준이 약간 낮다.
 드래곤 키우는 방법은 히든 퀘스트 공략하기도 해야 하고, 부화 때부터 진짜 조건이 까다로워서 나도 실패 많이 했었다고.
 좋아, 소환도 성공했겠다. 한 번에 다 쓸어버려!
 [블랙 드래곤, 공격 모드.]
 [타깃 일곱 명 록온.]
 [드래곤 브레스 시전 준비 완료.]
 “온다, 브레스!”
 블랙 드래곤의 공격 모션을 보자 그들은 드래곤의 공격 범위를 피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모션만 보고도 어떤 공격인지 눈치채는 게 확실히 이 게임 오래 한 분들답긴 한데, 도망 못 쳐요. 내가 쟤 공격할 때 그냥 그걸 보고 있지는 않을 테니까.
 ― 어스퀘이크.
 나는 그들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어스퀘이크로 땅을 흔들게 해 그들 움직임을 봉쇄시켰다.
 그리고 진짜 드래곤의 브레스가 그들을 덮쳤다.
 블랙 드래곤의 브레스는 강산.
 그 아무리 튼튼한 방어구도, 블랙 드래곤의 브레스에는 흔적도 없이 녹아버린다.
 그들 모두, 이 한 방에 쓰러졌다.
 [배틀 종료! 승리 길드 ‘만렙 길드’.]
 [대기실로 이동합니다.]
 아슬아슬하게나마 이겼다. 진짜 가능했구나, 15대 1.
 [‘한진우’ 님의 ‘신의 컨트롤’ 경험치가 상승하였습니다.]
 현실 경험치도 같이 올랐네.
 진짜 리얼리티하다 못해 소름 돋는구만.
 “고맙습니다, KoGa 님! 많이 배워 갑니다.”
 “진짜 신컨 만렙 유저의 위엄 쩔어요!”
 “저 동영상도 찍었어요, 완전 감격!!”
 동영상이라. 이걸로 수인이랑 테이머같이 비인기 직업 선택하는 분들이 좀 생겨나면 좋겠다. 잘 보면 은근히 재밌는 클래스라고.
 윽, 무슨 오지랖이냐.
 아무튼 오늘 게임은 이걸로 접고 나왔다.
 그리고 다음 날, 능력이 사라졌을 거라고 기대하고 일어났으나, 슬프게도 사라지지 않았다.
 젠장, 기대했었는데.
 학교에 갔더니 친구 녀석들이 눈에 불을 켜고 내게 달려들었다.
 “야, 야. 어제 라코에서 굉장한 일이 일어났다. KoGa라고 어제 말했던 만렙 유저 있지? 그 사람, 본래 클래스 마스터한 사람들 열다섯 명을 상대로 혼자 이겼다니까?! 거기다가 그 사람 드래곤도 소환했대!”
 “그 사람 어쩌면 백수는 아니고, 운영자라던가 게임 관계자라는 소문이 돌고 있어.”
 그 백수, 운영자, 또는 게임 관계자 의혹의 주인공이 바로 나다. 요 녀석들아.
 그날도, 그다음 날도 결국 게임 속에서 온갖 귓속말과 쩔, 골드 요구에 도망 다녔고, 결국 난 부캐(부캐릭터)를 만들고 말았다.
 물론, 메시지는 사라지지 않은 채로 말이다.
 이번 생은 확실히 망한 것 같다.
 
 
 
 Lv. 2 - 고등학생이 되어도 이 능력은 여전합니다
 
 이 능력이 생긴 지 정확하게 1년하고 3개월 정도인가. 너도 참 징하다.
 이 쓸모없으리라 생각했던 능력은 꾸준히 경험치를 쌓아가고 있었고, 나 또한 계속해서 나타나는 메시지들을 보고도 예전처럼 멘탈이 바스라지는 일 없이 넘길 수 있게 되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한진우’ 님께서 ‘인현고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한진우’ 님의 칭호 - 고등학생]
 물론, 그렇다고 저 메시지들이 거슬리지 않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나 이제 고등학생이다. 중학생이 아니야!
 입학식 날이기도 해서, 반 편성 및 분위기 파악을 위해 학교에 일찍 나왔다. 어디 보자, 1층 중앙 게시판에 반 편성한 거 게시해 놨다는데. 아, 이건가.
 게시판에 커다랗게 자리 잡은 1학년 명단 속에서, 1학년 6반에 기재된 내 이름을 발견했다. 내가 몇 반인지도 알았겠다, 여기 있을 이유가 없다. 5층 복도에서 1학년 6반을 찾아 문을 열고 들어가니 빈자리가 많았다. 일찍 온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는 학기 초에는 먼저 자리 앉은 녀석이 임자인 것도 있다. 이 정도는 기본이지.
 그럼 특별히 눈에 띄지 않게 복도 쪽 끝에서 두 번째 자리에 앉아야지. 이 정도 자리라면 끝자리 특성의 반대편 칠판 쪽이 보이지 않는 건 없을뿐더러 뒷자리라 선생님의 시야에도 특별히 들어가지 않을 테지. 음, 완벽해.
 [‘한진우’ 님의 ‘자뻑’ 스킬의 경험치가 9 올랐습니다.]
 내 뇌에서 이런 걸 보여주는 주제에 너무 객관적이야. 어이없어하는 사이, 애들이 하나둘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오, 뒷자리 비었네?”
 “아싸, 재수!”
 애들이 들어옴과 동시에 내 능력으로 그들의 능력치를 대략 훑어보기 시작했다. 대부분 평범하네. 당연한 거지만.
 “휴, 다행이다.”
 나보다 키가 작고 마른 녀석이 교실을 둘러보더니 안도하는 한숨을 쉬고는 안으로 들어왔다.
 좋아, 이 녀석의 능력치도 살짝 볼까.
 [‘??? 1’ 님의 특이 사항 - 달리기 : Lv. 82]
 엥? 내가 잘못 봤나? 아니, 그건 아니네?
 잠깐만, 정말로 달리기 레벨이 82이야?
 전에 육상 선수들 달리는 거 봤을 때 레벨이 80대 후반에서 90대 초반이었는데.
 거기다가 중학교 때 암만 날고뛰는 녀석들이라고 해도 달리기 실력이 레벨 70대 초반이었다구!
 저 녀석 밥 먹고 달리기만 했나, 왜 저렇게 레벨이 높아?
 거기다가 매점 뚫기 스킬이 Lv. 90?
 저 녀석 정체가 뭐야. 매점 애용자?
 중요 인물 체크다.
 “시끄러워, 무슨 교실이 시장판인 줄 아나. 조용히 책도 못 읽겠군.”
 이번에는 척 봐도 범생이 타입의, 투덜거리는 녀석의 능력치다.
 [‘??? 2’ 님의 특이 사항 - 공부 : 평균 Lv. 95 이상]
 와, 쟤 능력치 미쳤다. 공부 스킬 엄청 높아!
 그 밑에 세부 능력치 보니까 이미 고등학교 때 배울 예체능 제외한 모든 과목의 레벨이 95 이상이다.
 저 녀석 능력자 아냐? 아무튼 중요 인물 체크.
 그 뒤로는 계속 평범한 녀석들이 들어왔다.
 아, 또 들어온다. 이번에는 여자애. 그것도 앞머리가 눈을 거의 다 가린 애다. 저렇게 하고도 앞이 보이기는 한 걸까.
 “아, 어떡해. 자리가 없어. 편히 앉고 싶었는데······.”
 편히 앉고 싶었으면 일찍 왔어야지. 판단을 잘못했네.
 [‘??? 3’ 님의 특이 사항 : 경험치 및 능력치 감소]
 [위험! ‘??? 3’ 님의 능력치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습니다.]
 이 여자애의 능력치, 이상하게 계속 경험치가 까이고 있었다. 거기에 위험 경고까지 뜨고 있다. 이건 무슨 의미지? 쟤도 일단 중요 인물 체크.
 어느새 텅 비었던 교실이 학생들로 꽉 찼고, 시간이 되자 담임 선생님으로 보이는 사람이 들어왔다. 교생 선생님으로 착각할 정도로 젊고, 잘생긴 축에 속해 여자애들이 좋아하고 있었다.
 “반갑습니다, 여러분. 올 한 해 여러분의 담임을 맡게 된 유혜현입니다. 저기, 일단 강당에 가기 전에 출석 부를게요. 1번, 권지운 학생.”
 “네!”
 저 달리기&매점 뚫기 녀석 이름이 권지운이군.
 내 번호는 거의 끝일 테니까 그냥 애들 체크나 해봐야지.
 “29번, 정다미 학생.”
 “······네.”
 “정다미 학생? 있나요?”
 “네······.”
 “선생님, 얘 여기 있어요.”
 “아, 죄송해요. 잘 안 들렸어요.”
 “죄송합니다······.”
 위험 경고 여자애 이름이 정다미인가?
 꽤나 소심한 인물이구만.
 “30번, 조하윤 학생.”
 “네.”
 오, 그다음이 바로 까칠 범생이인가?
 조하윤. 아마 내 예상이 맞다면 저 녀석이 전교 1등일 테지.
 그런데 어떻게 하면 저렇게 레벨이 높은 거야. 저건 진짜 알고 싶다. 그나저나 전교 1등이면 1반 가야 할 텐데. 진짜 랜덤으로 학생 집어넣은 건가? 아니면 만점자가 여럿 나왔나? 실없는 생각을 하는데, 선생님이 내 이름을 불러서 급하게 반응했다.
 “34번 한진우 학생?”
 “네!”
 “다행히도 전원 왔네요.”
 또 내가 끝 번호야.
 이걸로 우리 반 애들 능력 체크는 얼추 끝났고.
 이제 남은 건 오늘 강당에서 입학식 하는 거 보고 종례하고 집에 가는 것뿐인가.
 ― 알려 드립니다. 전교생 여러분들은 지금 한 명도 빠짐없이 강당으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알려 드립니다. 전교생 여러분들은 지금 한 명도 빠짐없이 강당으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자아, 그럼 다들 강당으로 갈까요? 교실 열쇠는 오늘은 일단 제가 챙길게요. 내일부터는 1, 2번부터 주번으로 하고, 다음 주에는 3, 4번 학생이 하는 식으로 할게요.”
 선생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애들이 우르르 빠져나가 강당으로 향했다.
 강당에는 선도부 선생님들이 재학생 선배들에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너희들 똑바로 줄 서지 못해!”
 으엑, 무서워라. 작년 우리 학교 생각나네.
 여학생 한 줄, 남학생 한 줄로 서다 보니, 내 옆에는 여학생 끝 번호인 정다미가 서 있게 되었다.
 [‘정다미’ 님이 ‘한진우’ 님께 시선을 보냅니다.]
 메시지가 나와 정다미 쪽을 쳐다보니, 정다미는 쭈뼛 놀라며 나와의 시선을 피했다. 내가 무섭나, 왜 시선을 피하는 거지.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다시 시선을 옮기는 찰나, 또 다른 메시지가 나타났다.
 [‘정다미’ 님의 사교성 경험치가 5 하락하였습니다.]
 왜, 뭐가 문제야. 왜 사교성 경험치가 갑자기 떨어져? 잠시 생각하다가, 얘가 나에게 시선을 준 게 인사라도 건네려고 그런 게 아닐까 추측했다. 정작 나와 눈을 마주치자 겁을 먹고 빼서 경험치가 내려간 거고. 그 추측이 맞는지는, 인사를 해보면 알겠지.
 “이름이 정다미지?”
 내가 갑자기 말을 걸자 정다미는 깜짝 놀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왜 놀라는 건데. 아냐, 일단 이 의문은 뒤로하고, 인사는 마저 해야지.
 “난 한진우, 1년간 잘 부탁해.”
 “으, 응. 잘 부탁해.”
 정다미는 당황해하며, 인사를 받아줬다.
 [‘정다미’ 님의 사교성 경험치가 34 올랐습니다.]
 [‘한진우’ 님의 추리 경험치가 30 올랐습니다.]
 이런 간단한 인사로 경험치가 저만큼 올라? 내가 생각한 게 정답인 모양이네. 정다미는 아무래도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소심한 인물인 듯했다. 그 인사 이후로, 정다미는 더 이상 말을 하질 않았다.
 입학식 시작 시간까지는 약 30분이 남아 있었다. 그때였나, 선생님 중 한 분이 단상에 올라왔다.
 “입학식을 시작하기 전에 일단 연습을 한번 해보겠습니다. 입학식을 빨리 마치기 위함이니 다들 그렇게 불평하지 말아주세요.”
 이런 거 연습해 봤자 연습 때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아? 연습할 것도 없어 보이는데.
 그러나 당연히, 내 생각과 관계없이 입학식 예행연습은 진행되었다. 국민의례부터 시작해서, 애국가 제창하고, 학교 연혁이랑 교장 선생님, 이사장 말씀은 생략. 재학생의 축하 말이 끝나고 그다음, 신입생의 답사를 할 차례였다.
 “신입생 답사 대표, 1학년 6반 조하윤.”
 “오오. 우리 반에서 나오는 거야?”
 보통은 이런 거 1반에서 하니까 다들 의외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우리 반에서도 감탄사가 여럿 나왔다. 그렇지만 난 어느 정도 예상했던 바이기에, 별 감흥이 없었다. 그 정도 능력치면 전국 1등도 가능할 테니까.
 아무튼 그거 끝나고 신입생과 재학생 인사시킨 다음 교가 제창을 하고 연습 끝.
 여기까지가 얼추 15분 정도.
 이제 학교 연혁과 교장 선생님 축하 말씀이 얼마나 길어지는지에 따라 시간이 엄청 길어지겠군.
 남은 15분이 마저 지나자, 드디어 입학식을 시작한다는 방송이 강당 위 스피커로부터 나왔다.
 ― 그럼, 지금부터 제37회 인현고등학교 입학식을 시작하겠습니다.
 드디어 시작인가, 어디 보자.
 예정대로 국민의례와 애국가가 끝났으니 학교 연혁을 읊을 차례였다.
 이 학교가 언제 지어지고, 몇 명의 졸업생과 몇 명의 명문대 합격이 있었는지 등을 다루는 이야기여서 별로 귀담아들을 건 없었지만, 이야기는 무진장 길어서 듣는 사람들이 힘들 정도였다.
 이 학교가 생각보다 편차치가 높은 학교인 건 알았으니까,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다. 이런 거 별로 와닿지도 않는다고.
 얼추 정리가 되고 다음 순서로 넘어갈 때는 살았다고 생각했지만, 그다음은 교장 선생님의 축하 인사가 있었다.
 들어도 들어도 끝이 없는 인사에, 나도 모르게 메시지가 재고 있는 교장 선생님의 진행 시간에 눈이 갔다.
 [현재 교장 선생님 축하 인사 이벤트가 12분 08초 동안 진행되었습니다. 현재 ‘진행 중’입니다.]
 사람이 10분 넘게 쉬지도 않고 저렇게 얘기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 저 숫자들은 보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올라가고 있다. 거기다가 아직 진행 중이라는 말이 날 더더욱 서글프게 했다.
 애들의 인내심도 거의 바닥을 기어가고 있고, 조만간 인내심에 대한 폭력성 실험이 나올 것 같아서 좀 겁나긴 하지만 뭐 어쩌겠어.
 첫날부터 학교에 찍히기 싫으면 참아야지.
 아니면 집중을 가장한 딴생각이라도 하던가.
 ― ···그럼 이것으로 교장 선생님의 축하 인사를 마치겠습니다.
 저 말 한마디에 다들 짜기라도 한 듯 엄청나게 큰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됐어, 이제 거의 다 끝나간다!
 ― 이어서 이사장님의 말씀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재학생, 신입생 차렷. 이사장님께 경례!
 아, 저게 남았구나. 젠장.
 결국 이사장님의 훈화까지 곁들여서 무려 57분이나 입학식이 계속되었다.
 단지 연혁, 교장, 이사장 세 개가 들어갔을 뿐인데 42분이나 늘다니, 무서운 3콤보였다.
 아무튼 내일부터는 등교 시간도 빨라지니까 일찍 일어나는 게 좋겠다.
 그런데 훈화의 부작용 때문인가? 온몸이 뻐근해. 으으, 모르겠다. 일단 집에 가서 게임이나 해야지.
 
 * * *
 
 다음 날 아침에는 중학생 때나 입학식 때보다 빨라진 등교 시간을 의식하고 일찍 일어났다. 아니, 정확하게는 의식하게 만들었다. 저 메시지가.
 [‘여섯 시 10분’까지 앞으로 ‘1분’ 남았습니다.]
 거기에 저 카운트다운에 못 일어나면 머리가 엄청 깨지거든. 마치‘너 안 일어나면 감점된다.’라고 호통치는 것 같았다.
 엄마도, 아빠도 최근에는 일 때문에 아예 회사에서 사는 게 일상이 되었다. 어느 정도 집안일 할 줄 아는 나이가 되었으니 믿고 맡기겠다는 말만을 남기고 말이지. 덕분에 어쩌다 보니 홀로서기 해 버렸다.
 얼른 씻고 적당히 밥을 챙겨 먹은 다음, 교복으로 갈아입고 집을 나섰다. 이 시간이면 학교에 충분히 도착하고도 여유롭겠지. 주번보다 빨리 가는 거 아냐? 그렇게 생각하고 학교로 갈려는 찰나였다. 엄청 빠른 게 내 눈앞을 지나갔다.
 사람? 분명 사람이었는데. 우리 학교 교복으로 보였고, 엄청난 속도로 달린 걸 감안했을 때, 그 녀석 말고는 없다.
 달리기 Lv. 82의 권지운.
 그러고 보니 그 녀석 주번이었지. 1번이니까.
 1등으로 학교 가는 건 무리겠다. 이런 랭킹은 포기하면 편해.
 아니나 다를까, 학교에 들어서니 벌써 교실 청소가 다 되어 있었다. 얘 대체 얼마나 빨리 온 거야.
 “이름이 권지운이랬지?”
 “아, 어. 너는 이름이······. 미안, 뭐였지?”
 “한진우. 그런데 이거 전부 네가 한 거야?”
 “어. 다른 애가 아직 안 와서. 어쩌다 보니 내가 다 했네?”
 무섭다. 진짜 무섭다.
 대체 얘 달리기 50m에 몇 초 끊기에 이거 다 할 정도로 빨리 온 거야? 다음에 체육 시간 때 이 녀석 기록 보면 엄청 볼만할 거야.
 옆에 달리는 녀석이 민망해질 정도로 말이지.
 그 뒤로 약 5분 지나자 애들이 하나둘씩 오기 시작하더니, 교문 앞에서 선생님들이 지각 잡기 5분 전에서야 애들이 엄청 들어오기 시작했다.
 저 때가 데드히트로군.
 아마 위에서 올라오는 걸 보면 선배들이고 신입생들이고 전부 개미 떼처럼 보일 거야.
 조례 시간에 선생님이 들어오셔서 한 장의 프린트물을 나눠 줬다.
 “이건 우리 반 시간표예요. 아침 방송 때 뭐 하는지도 적었으니까 아침에 다들 우왕좌왕하지 말고 조용히 그날 학습할 걸 준비해 주세요. 그리고 다다음 주 화요일 H.R 시간에 반장 선거를 할 예정입니다. 그때까진 조하윤 학생이 임시 반장을 맡아 줬으면 하는데, 괜찮겠나요?”
 “네.”
 지금 무진장 귀찮지만 선생님이 지시했으니 어쩔 수 없다는 표정 같은 걸 본 것 같았다. 착각이겠지.
 “그럼 다다음 주까지는 잘 부탁할게요. 조례는 이것으로 마칩니다.”
 우리 담임 엄청 열심히 하시네.
 순간, 난 담임 선생님의 능력치 중 봐선 안 될 것을 봐버렸다.
 [‘유혜현’ 님의 담임으로서의 숙련도 Lv. 1 EXP 12]
 아. 이번이 첫 담임이시구나.
 과연, 어쩐지 준비가 철저하더라니.
 여덟 시 30분부터 첫 수업이었지.
 어디 보자, 오늘이 금요일이니까······.
 [‘한진우’ 님의 1교시 수업은 ‘영어’입니다.]
 영어라. 우선 첫 시간이니만큼 당장 공부는 안 하겠지. 그래도 일단 책이라던가 챙겨 놓는 게 예의니까.
 [오늘 ‘1교시’는 영어입니다. 필요 아이템은 ‘영어 교과서, 필기구’입니다. 장소는 1-6 교실입니다. 빠른 시간 내에 아이템을 준비하시길 바랍니다. 지금부터 카운트다운을 시작하겠습니다.]
 아이고, 중학교 졸업하고 오랜만에 보네.
 그럼 슬슬 수업 준비에 들어갈까.
 
 * * *
 
 어느새 4교시가 끝마치고 점심시간이 되었다.
 점심시간이 되면서 느낀 건, 밥 앞에서는 갓 입학한 1학년들도 이 학교에 금방 적응한다는 것이다. 이미 교실의 4분의 3 정도가 바로 빠져나가고 없었다. 이때만큼은 중학교와 고등학교의 차이점을 거의 느낄 수가 없었다.
 아마 학교 규칙상 이번 달은 1, 3학년이 먼저 먹는 걸로 기억하는데. 3학년들은 수험생이기도 하고, 제일 높은 학년이기에 학교에서 이래저래 편의를 봐주어서 늘 일찍 먹을 수 있었다. 1, 2학년은 매달 바꿔가며 15분씩 늦게 먹고.
 그러니까 규칙상 밥 먹기 위해서는 뛸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이론상으로는. 그러니까 저렇게 밥에 목숨 걸듯이 뛰어가는 건 좀 그렇지 않아?
 그러나 그거 믿고 늦장 부리다간 15분 뒤에 뛰어오는 2학년 선배들이 있으니까, 먼저 가는 게 맞을 수가 있겠다.
 하는 수 없지. 일단 급식실로 가는 수밖에.
 꾸물거리다가 급식실로 간 대가는 기나긴 급식줄을 맞이하는 것이었다. 아니, 중학교 때도 꽤 길게 섰던 것 같은데, 고등학교 오니까 그 느낌이 차원이 다르네.
 그에 비해 앉을 자리는 그렇게 많지 않아서 먼저 먹은 애들이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점이 불편했다. 줄이 길어진 건 이런 것도 한몫했을 거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줄이 가다가 멈춰 서다가를 반복, 드디어 내가 앉을 차례가 되었다. 선생님이 가라는 자리에 가서 앉아서, 과연 3년간 먹을 급식은 어떤 맛일지 약간은 기대하며 김치찌개를 한 입, 숟가락으로 떠서 먹었다. 그러나 그 기대를 무색하게 만드는 물에 고춧가루 뿌린 듯한 맛에 바로 숟가락을 내리고 말았다.
 급식비 비쌌던 걸로 기억하는데, 상태가 왜 이래? 다른 메뉴도 음식 간이 안 맞다.
 [‘한진우’ 님의 ‘학교급식에 대한 호감도’가 하락하였습니다.]
 호감도 하락은 둘째 치고, 앞으로 이런 급식을 3년이나 먹어야 돼. 잘 보니, 얼굴이 굳은 1학년 애들이 많이 보였다. 아마 나랑 똑같은 생각을 하는 애들이겠지.
 아까 내려오면서 매점에 왜 사람이 그렇게 많았는지 알 것 같았다. 나도 곧 매점 애용자가 될 것 같은데.
 아무튼 음료수라도 사 마실 요량으로 매점으로 갔다. 그런데 역시나, 그 맛없는 급식 때문인지 진짜 사람 많다.
 음료수는 그냥 자판기로 뽑아 마시면 된다지만, 저렇게 매점에 사람이 많다는 건 오늘 급식 안 먹고 매점에서 파는 빵으로 대체하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이야기겠지. 그 급식이라면 충분히 이해가 가. 여기 매점 아줌마는 돈 많이 벌겠어.
 “사람 진짜 많네. 그럼 나도 얼른 빵이나 사서 돌아가야겠다.”
 내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분명 요주의 인물 1번 권지운이었다. 저 사람 많고 틈이 없어 보이는 곳을 빨리 뚫고 사 간다고? 아무리 매점 뚫기 스킬 능력자라고 해도, 저 마굴을 평정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그러나 잠시 후, 눈앞에서 벌어진 일에 내가 Lv. 90의 매점 뚫기 능력을 너무 우습게 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능력을 직접 본 것에 경이로움까지 느꼈다.
 사람 많고 무질서한, 고렙 던전을 연상시키는 듯한 저 매점 입구를 사람들과 부딪히는 일 없이 틈 사이로 전부 피해서 단번에 빵을 사고 유유히 빠져나오다니, 뭘 어떻게 하면 저런 신기에 가까운 스킬을 가지게 되는 거야.
 요주의 인물로 선정될 만하다고 생각하며, 나도 얼른 자판기에서 음료수나 뽑아서 교실로 올라갔다. 교실에 올라가니 다들 많이 친해진 듯 생각보다 꽤 떠들썩했다. 그러한 와중에도 자기 자리에서 책 읽고 있는 녀석이 있었다.
 요주의 인물 2, 조하윤이었다.
 [‘조하윤’ 님께서 스킬 ‘아웃 오브 안중’을 시전하셨습니다. 일정 시간 동안 ‘조하윤’ 님은 주변에 무슨 일이 일어나도 신경 쓰지 않습니다.]
 임시이긴 해도, 반장이라는 직책을 가진 녀석이 같은 반 애들에게 아웃 오브 안중이라니, 여러 의미로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아, 저기······.”
 “응? 뭔데?”
 “아, 아무것도 아냐. 미안······.”
 [‘정다미’ 님께서 호감도 쌓기에 실패하였습니다.]
 [‘정다미’ 님의 사교성 경험치가 8 하락합니다.]
 반대편에서는 요주의 인물 3 정다미의 경험치 하락 메시지가 또 올라오고 있었다.
 과연, 우리 반 중요 체크 인물 세 명답다.
 역시 비범한 녀석들이야. 저렇게 있으니 오히려 내가 더 정상인 같잖아. 뭐 어때. 그만큼 내가 튀지 않아 보인다는 뜻인걸.
 조금은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저쪽에서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는 애들 틈으로 끼어들었다. 살짝 들으니 게임 얘기하고 있더라고. 게임 좋아하는 것 정도는 평범한 축에 속하잖아. 능력이 생긴 게 평범하지 않은 거지.
 “어, 넌 이름이······.”
 “한진우. 넌 문기훈 맞지? 다들 라코 하나 보네.”
 “당연하지, 요즘 그 게임 안 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그러는 너도 라코 하나 봐?”
 문기훈의 머리 위 메시지는 얘 게임 레벨이 중간 정도 된다고 말해 주고 있었다. 다른 애들도 엇비슷하기도 했고. 혹시나 해서 이 게임 하냐고 물어보니, 다들 하고 있었다.
 “레벨이 어떻게 돼?”
 “법사 74 정도? 이 정도면 높지?”
 일반적으로는 봤을 때는 제법이라고 생각하는데, 안타깝게도 그 자랑을 한 상대가 나였기에 조금 씁쓸했다. 내가 지금 본계가 만렙 찍고 부계정 키우는데 걔가 270대야.
 “나 DCM(Double Class Master)인데.”
 “진짜?!”
 “어. 검사, 마법사 마스터 찍고 지금 성직자 레벨 70대야.”
 “부끄럽네. 고수 앞에서 잘난 척한 거잖아.”
 봐, 다들 놀라잖아. 지금 문기훈 반응이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았다고 부끄러워하고 있다고.
 “그 게임 렙업이 힘드니까. 스킬 숙련도까지 신경 써야 하는 게임이잖아.”
 “넌 그런 게임 DCM을 달성했고.”
 “난 그 게임 꽤 오래 했으니까 그런 거고.”
 “그래도 나 반년 해서 레벨 70 중반인데. 그 정도면 빠르지 않아?”
 난 1년 3개월 만에 275를 찍었지만, 그 사실까지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지.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을 표하자 문기훈의 표정이 밝아졌다.
 “어쨌든 우리 반에 이런 고수가 있는 줄 몰라봤네. 그런 의미에서 진우 네가 쩔을 해줘.”
 “내가 왜?”
 “노블레스 오블리주. 고렙이 쪼렙 도와주는 건 의무지.”
 그딴 의무 들어본 적도 없는데. 게임에서 무슨 사회적인 의무와 책임을 찾는 거야.
 하지만 여기에 다른 애들도 가세하는 분위기가 되어, 난 이 팀에 힐러로 강제 파티 참여가 되었다.
 [‘한진우’ 님이 ‘1-6반 게임’ 파티에 참여하였습니다. (8/8)]
 메시지까지 떴으니 확정이네, 이 파티.
 “그런 의미로 내일 파티에 의무적으로 끼게 된 우리 유일한 힐러 한진우, 잘 부탁한다.”
 “너희 날 경험치 셔틀이라고 생각하지.”
 “아냐, 아냐.”
 [‘문기훈’ 님이 순간 찔렸습니다.]
 100%네, 경험치 셔틀.
 그래도 본계 때는 만렙인 거 들킬까 봐 친구들이랑 게임도 못했는데 이렇게 한번 파티 해보네. 좋게 생각하자.
 고등학교 와서 무난하게 다른 애들 사이에 끼어들어 평범하게 대화도 나누고, 어울린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긍정적인 요소이다.
 그렇게 떠드는 사이에 어느새 다음 수업 예비 종이 울렸고, 머리 위 상태 메시지가 수업 준비물 챙기라고 울려대는 바람에 교과서를 챙기러 내 자리로 갔다. 그래, 이렇게 지내면서 앞으로 3년 무난하게 보내는 거야.
 능력과 상관없이, 평온한 고등학생 라이프를.
 그 이후 남은 수업도 별일 없이 흘러가고, 다음 날인 토요일을 맞이했다.
 학교를 가지 않는 것도, 3학년이 아닌 이상은 토요일에 그 맛없는 급식을 안 먹어도 되는 것도 굉장히 기분 좋은 일이다. 그런데 이거 어떤 의미론 슬픈 거 아닌가. 학교급식을 1년에 3분의 1 이상은 먹게 되어 있는데, 그걸 안 먹는 걸 다행으로 여기는 시점에서 우리 학교는 안 되는 거야.
 그나저나 고등학교 들어가서는 처음이네, 이 게임.
 만렙까지 다 찍고도 부계정을 돌리다니 나도 참 어지간히 이 게임 좋아하네. 그 계정에서는 솔플이나 사촌 형과 같이 게임하는 게 다였는데. 부계 만드니까 학교 친구들과 파티 플레이를 다 하게 되네.
 [‘LeMa’ 님 접속 완료입니다. L.C.에서 즐거운 시간 되십시오.]
 즐거운 시간은 무슨, 경험치 셔틀 모드인데.
 뭐, 애들 레벨이 내 성직자 레벨과 비슷하니, 숙련도 쌓긴 좋겠다.
 현재 파티장으로 보이는 기훈이가 파티를 걸어와 수락했고, 수락받자마자 파티장 자리를 강제로 물려받았다. 레벨도 경험도 내가 훨씬 많아서 기훈이가 그렇게 한 것 같다. 애들에게 오더를 내리기 쉽게 파티원 한정 음성 채팅 모드로 돌렸다.
 “왔다, 왔어!”
 “왔다, 그래.”
 “마법사 스킬이랑 검사 스킬 마스터했다더니 정말이네. 너 이 게임 오래 했나 봐?”
 “오래 했다면 오래 했지.”
 한 번 만렙 찍었으니까.
 그나저나 이 캐릭터, 키운 지 1년 3개월 됐는데 벌써 두 개 클래스 마스터를 하게 된 건 조금 놀랐다.
 역시 게임은 하다 보면 느는 건가, 아니면 내가 게임 능력을 마스터한 그날부터 이런 게 가능하게 된 걸까.
 뭐, 지금 생각한다고 뭐가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니고. 애들 레벨을 보니 대부분 70대 안팎이다. 새삼스레 내가 얼마나 레벨이 높은지 알 수 있었다. 지금 세 번째 클래스로 하고 있는 성직자가 레벨 75 정도니까 말 다 했지.
 가만, 생각해 보면 눈물 날 일이잖아, 이거.
 난 공부할 거 하면서 게임하고 있는 건데 애들보다 높잖아.
 그런데 쟤들은. 분명 쟤들은 내 부계보다 늦게 시작했지만, 그래도 레벨 차이가 너무 심하잖아.
 이쯤 되면 이 능력, 무서울 정도다.
 “70대쯤 깰 만한 사냥터가 어디 있더라. 진우 넌 많이 해봤으니까 알 거 아냐.”
 많이야 돌았지. 레벨 및 숙련도 노가다 돈다고. 그런 내가 추천하는, 이 레벨대에 가장 효율이 좋은 곳은 바로······.
 “어둠의 성이려나?”
 “엥, 거기 추천 레벨 80대인데? 거기다가 물공캐들에게 힘든 던전이라고. 우리가 쪽수 많아도 거기 애들 잡을 수 있을까?”
 “속성 마법 부여하면 금방 잡아.”
 “진짜 여유롭게 말하네, 과연 클래스 두 개 마스터한 녀석은 달라.”
 던전이라는 게 공략법 알고 기본적인 컨트롤만 되면 효율적인 레벨 업이 가능하니까, 딱히 마스터 클래스가 있다고 여유로운 그런 문제는 아닌 것 같은데. 뭐, 어쨌든 언데드라면 성(聖) 속성이랑 화 속성이 유리하다. 인첸트 마법으로 속성 변환 후 몬스터를 잡으면 금방이다.
 “나 인첸트 마법은 아직 안 배웠는데?”
 “야, 여기 마법사 스킬 마스터한 녀석 있는데 뭐가 걱정이냐?”
 “내 MP 포션값 너네가 내주면. 인원수가 몇인데 너희 힐 넣고 버프 넣고 다 해주냐. 그거 다 하면 내가 거지꼴 면치 못하겠는데?”
 “어떻게 마법사를 기훈이랑 진우만 키울 수 있대. 진짜 대단한 우연이다.”
 다만 이 파티, 직업 분포도가 한쪽으로 치우쳐서 힐러가 죽어나가게 생겼다. 이렇게나 밸런스 안 맞는 파티가 있을 수가 있나.
 저 인원들 다 버프 넣고 회복하는 것도 굉장히 큰일인데, 어떻게 나 빼고 인첸트 마법을 배운 녀석이 없냐.
 지금 상황을 말하자면, 물리 데미지 주는 녀석만 여섯 명이다.
 도적, 헌터, 격투가, 전사가 한 명씩. 검사가 둘.
 마법 데미지를 줄 수 있는 건 나랑 기훈이밖에 없는데, 문제는 기훈이가 아직 적정 레벨이 안 돼서 인첸트 마법을 못 배웠다.
 결국 남은 건 나밖에 없었다. 얼른 쟤네 레벨 올려서 나도 좀 쉬던가 해야지.
 “그럼 사냥할 데 정했으면 얼른 가자!”
 “오늘은 렙업 좀 되면 좋을 텐데.”
 “맞아, 진우 편하려면 내가 빨리 레벨 올려서 인첸트 마법 배워야 하니까. 오늘 열렙 한다!”
 다들 레벨 업의 꿈을 품으며, 결국 어둠의 성으로 갔다.
 이름에 걸맞게 어둠 속성의 몬스터들과 언데드들이 잔뜩 나왔다. 뱀파이어라던가, 구울이라던가, 스켈레톤이라던가. 출혈이나 감염, 좀비화 등의 상태 이상을 몰고 다니며 한 마리가 어그로 끌리면 다 같이 덤벼드는 등 여간 귀찮은 놈들이 아니지만, 특정 속성 마법에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 속성의 마법으로 공격하거나, 마법 효과를 가지고 있는 무기로 공격했을 때에는 꽤 깊은 데미지를 입기에 그 조건을 충족할 수 있는 플레이어들은 파티를 맺어 여기에서 사냥을 한다. 원래라면 이 파티는 그게 불가능해서 여기보다 한 단계 아래의 던전을 갔겠지만, 내가 여기 들어가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 인첸트 ‘성’! 인첸트 ‘화’!
 성 속성과 화 속성의 인첸트 마법을 걸자, 성스러운 빛과 화염이 파티원들의 무기에 부여되었다. 인첸트 마법을 받은 물리 공격 캐릭터들은 자신보다 레벨이 높은 몬스터들을 차례차례로 쓰러뜨리고, 경험치와 아이템 등을 긁어모으기 시작했다. 물론 난 뒤에서 힐이나 큐어로 보조해 줬고, 기훈이는 화 속성의 마법 등을 난사했다.
 [‘힐’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큐어’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인첸트 ‘성’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쩐다. 역시 인첸트 스킬 배운 마법사랑 같이 사냥 다니면 편해.”
 “여기 인첸트 마법 없이 깨려면 80 좀 넘어야 할 만하다는데.”
 단순 물리 공격에 내성이 있거나 회피율이 높은 몬스터들이 많아서, 단일 클래스 물공캐들은 80 되어도 이 던전에 잘 안 들어온다. 나처럼 인첸트 마법 걸어줄 수 있는 파티원이 있거나 속성 부여된 무기 있으면 또 모르지만.
 몬스터들을 쭉 잡으면서, 필드에 있던 몬스터들이 어느 정도 소탕되었다. 그 결과······.
 [‘인생한탕’ 님의 클래스 - 마법사가 ‘레벨 75’가 되었습니다.]
 [‘프로검객러’ 님의 클래스 - 검사가 ‘레벨 73’이 되었습니다.]
 “드디어 75 찍었다! 사냥 전에 20%나 남았었는데!”
 “나도 한 30% 남아서 오늘 안에는 레벨 못 올릴 줄 알았는데, 이게 되네.”
 내 쩌는 던전 선구안과 버프 덕에 벌써 둘이나 레벨이 올랐다.
 [‘한진우’ 님의 ‘자뻑’ 스킬의 경험치가 12 올랐습니다.]
 [‘한진우’ 님의 ‘자뻑’ 레벨이 21이 되었습니다.]
 이런 거 레벨 업 하지 마. 필요 없어.
 현재 어둠의 성 던전은 우리 쪽 파티에 의해 일반 몬스터들은 거의 전멸 상태라, 어느 정도 숨을 돌릴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다음 리젠 때까지 시간이 걸릴 걸 예상해, 간당간당한 MP를 채울 겸, 잠시 휴식 모드로 돌렸다. 이대로 가면 오늘 기훈이는 인첸트 마법 배울 수 있겠다고 생각하던 찰나, 문기훈이 입을 열었다.
 “우리 이 기세로 보스 방까지 깨는 건 어때?”
 야, 너무 기세 오른 거 아냐? 내가 있다고 해도, 지금 레벨 70대 초중반이 태반인 이 파티로 여기 보스 몬스터는 못 잡아.
 “너 여기 보스 뭔지 알지?”
 “리치잖아. 스켈레톤들의 우두머리.”
 “그냥 우두머리가 아냐. 걔 마법 난사하는데, 여기서 마방 높은 캐릭터가 몇이나 있어? 전사가 HP 높아도 마방이 낮아서 걔 앞에서는 살살 녹아.”
 맞아, 리치 파이어볼 난사에 마법 방어력 낮은 캐릭터들은 잘 마른 장작마냥 활활 타버릴걸.
 “공략법만 숙지하면 못 잡지는 않겠지만, 너희 어둠의 성 보스몹 공격 패턴 알아?”
 “오늘 급하게 와서 공략법은 따로 못 봤지.”
 거봐, 이럴 것 같았어.
 예전에 플레이 하면서 리치의 스탯을 본 적이 있었는데, 언데드 특유의 높은 HP를 보유하면서도 마법 공격을 한다는 특성 때문에 마법 공격력과 마법 방어력이 굉장히 높았다. 거기에 까다로운 스킬을 가지고 있어서, 공격 패턴을 숙지하지 않은 채 갔다간 다 같이 사이좋게 전멸 겪고 마을에서 부활할 것이다. 장비 아이템 내구도와 경험치가 왕창 깎인 채 말이다.
 “안 돼, 이대로는 절대 못 잡아.”
 “여기까지 왔는데?”
 “여기까지 왔으니까 더 안 되는 거야. 지금 가면 기껏 경험치 올려놓은 거 도루묵이니까. 잡더라도 레벨 80은 찍고, 공략 숙지는 필수야.”
 유일한 힐러이자 던전 공략 경험자가 못하겠다고 뻐기는데 어쩔 방법이 있냐.
 예상대로, 다른 애들도 어쩔 수 없다며 아쉬워했다. 몬스터들도 슬슬 부활 쿨이 돌았는지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냈다. 슬슬 사냥 준비를 했지만, 이들의 분위기는 보스를 못 잡는다는 아쉬움 때문인지 조금 다운되어 있었다. 능력으로 지금 이 파티로 가서 보스 잡을 확률이 얼마나 되는지 확인해 봤다.
 [현재 ‘1-6반 게임’ 파티가 리치를 잡을 확률 : 47.28%]
 그럼 만약에, 얘네들 레벨 1씩 더 올리면?
 [전원 레벨 1 상승 시 ‘1-6반 게임’ 파티가 리치를 잡을 확률 : 50.03%]
 거의 반반이네.
 “···어휴, 알았다, 알았어. 나중에 마무리하고 가자. 내가 들어가기 전에 한번 리치 특성이랑 공격 패턴 알려주고, 보스 방에서 오더 내릴 거니까 그거만 잘 지켜줘.”
 “진짜 가줄 거야?”
 “솔직히 자신은 없지만, 도전 안 하고 돌아서기에는 조금 아쉬워서.”
 “그치? 뭘 좀 아네.”
 “그러려면 우선 레벨 업이야. 빨리 렙업 하고 보스 잡자! 후방 지원 부탁해!”
 도적 캐릭터인 지적이가 자신에게 헤이스트를 걸고 공격에 나섰다. 그에게 급하게 인첸트 마법을 건 뒤, 다른 애들의 상태를 보고 버프를 걸어 사냥을 수월하게 만들었다. 이 멤버들에게 혼자 버프를 걸려니 힘들었지만, 성직자 스킬 경험치 올린다고 생각하며 챙겨 왔던 마나 포션을 사용했다.
 
 * * *
 
 헌터인 유진이랑 내가 레벨 업 한 걸 마지막으로, 우리 파티원 모두가 레벨을 한 번 올렸다.
 일단은 포션이 모자랄 것 같아서, 도중에 한 번 나와 포션을 사고 장비 수리를 하고 몬스터에게서 나온 아이템을 파는 등 재정비에 들어가며, 마을에서 쉬면서 회복하는 동안 설명에 들어갔다.
 “아까 내가 톡방에 올린 영상 봤지?”
 게임 파티끼리 파놨던 톡방에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공략 영상을 찾아 띄워놨다. 내가 말로 설명해 봤자 보는 것만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와, 이거 생각보다 훨씬 더 귀찮은 보스였네. 아까 그 상태에서 들어갔다면 전멸 갔겠는데.”
 나 혼자서라면 어떻게든 살아남았겠지만, 다른 애들까지 챙길 여유는 없었을 것이다. 다들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들어간 거니까.
 “자, 봐. 리치라는 몬스터는 근접 공격한 캐릭터에게 마비를 걸어. 그 적에게 바로 뇌 속성 데미지를 주지.”
 “이게 리치 스킬 중 하나인 근육 파괴네. 부가 효과인 근 손실로 인한 힘 스탯 하락까지 생각하면 섣불리 다가가서는 안 되겠는데.”
 “거기다가 이거 방어 무시 데미지라서 방어구 딴딴한 전사가 맞아도 아프겠는데. 그렇다고 멀리서 원캐들만 때리면 필드 전체에 라이트닝 쏘고. 여간 귀찮은 게 아니네.”
 “입장하고 리치 대사 끝나자마자 파이어볼을 마구잡이로 쏘는 건 어떻고.”
 “더 골 때리는 건 리치에게 죽었을 경우 언데드로 부활시키는 거야. 그대로 조종당하고.”
 “진우가 안 들어가려고 했던 이유를 알겠네. 엄청 바쁘겠다.”
 그걸 지금이라도 알아줘서 고맙다.
 이 파티가 리치 잡기에는 조건이 너무 안 좋아. 힐러가 나밖에 없는 것도 그렇고, 멀리서 공격할 수 있는 캐릭터가 얼마 없는 것도 그렇고.
 그 와중에 근캐가 죽어서 리치에게 조종당하면 방어력이 낮은 원캐들은 까딱하다간 팀킬당하게 된다고.
 그런 상황이 나오지 않도록 하는 게 힐러의 일이지. 게임 만렙 능력자로서의 역량을 보이는 일이기도 하고. 내가 만렙인 건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일이지만, 어쨌든 책임이 막중하다.
 “좋아, 도적이랑 격투가, 헌터는 회피 스킬 있으니까 가능하면 그걸로 피하고. 마법사는 아이스 월로 빨리 벽을 생성해. 그걸로 파이어볼 두 개 정도의 데미지는 막을 수 있어. 나랑 마법사는 그렇게 막고. 검사랑 전사 너네 셋은 데미지를 입겠지만, 내가 리치 대사 나오는 동안 지속 회복 마법을 걸게.”
 이러면 처음 파이어볼은 무난히 통과할 수 있다. 다음부터 탱커들이 나설 차례지.
 “그다음부터는 격투가가 제일 먼저 나서야겠다. 격투가 스킬 중에 벌크 업 있지? 그거 쓰고 싸우면 근육 파괴로 인한 근 손실을 상쇄할 수 있을 거야. 마비는 내가 최대한 빨리 풀게.”
 초반부터 눈 돌아가게 바쁘겠지만, 이 파티 상태에서는 이게 베스트다. 들어가자마자 포션 마시게 생겼구만.
 “들어가기 전에 내가 버프를 걸 거야. 그 전까지는 보스 방 들어가지 말고. 원캐들은 리치를 집중포화 하고 동민이랑 태민이가 리치의 어그로를 끌어주면 좋겠어.”
 일단 HP가 높은 전사와 격투가, 두 사람에게는 탱킹을 부탁했다. 둘은 탱킹이라면 맡겨달라고, 알겠다고 답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리치가 근육 파괴를 쓰고 10초 동안은 그 스킬을 안 써. 근딜들은 그사이에 딜을 넣어. 넣고 바로 빠지고.”
 다음 페이즈 진행까지는 그 상태를 고수하면 된다. 30% 깎으면, 두 번째 페이즈로 넘어가고.
 “하다 보면 리치가 스켈레톤들을 소환할 거야. 그때는 근딜들이 뒤로 빠져서 스켈레톤을 공격해야 해. 이유는 알겠지?”
 “스켈레톤들이 리치 강화 주문을 외니까.”
 그 강화 주문이 성공하면 이 던전 깨는 게 두세 배는 힘들어져서, 반드시 잡아야 한다. 문제는 그사이에 리치는 스켈레톤을 공격하는 유저를 우선적으로 마법을 날린다. 탱커들이 가장 고통스러워하는 시간이기도 하지.
 “여기서는 탱커들이 힘을 내줘야겠는데. 최대한 어그로를 끌면서 딜러들에게 공격 안 가게 해줘.”
 “일단 최대한 해볼게. 입장 인원에 따라서 스켈레톤 수가 달라졌지? 여덟 명 파티니까 총 다섯 마리. 와, 진짜 빡세겠네.”
 “가능하면 나도 딜 넣을게. 서브딜 수준이겠지만, 빨리 해치우는 게 나으니까.”
 “힐러 바쁘네. 빨리 내가 마법사 마스터 찍고 너 도와야겠다.”
 그때 되면 내가 성직자 마스터 찍고 다른 직업 들어갈 것 같은데. 아무튼 리치가 강화 실패하면 그 부작용으로 일정 시간 동안 능력치 저하에 움직이지 못한다. 바로 그때, 최대한 체력을 깎아야 한다.
 “아무튼 스켈레톤 잡고 주문 실패로 인한 부작용으로 리치 능력치 깎였을 때 총공격이야. 이때는 근육 파괴고 뭐고 공격 안 하니까 다들 이때 잡는다고 생각하고 아낌없이 딜을 넣어. 나도 마스터 스킬 쓰면서 공격할 거니까.”
 “오, 폭딜이네.”
 “3단계 들어가면 골치 아파지니까.”
 리치전 페이즈 3은 리치의 광폭화로, 지속적으로 리치의 체력은 감소하지만 모든 능력치를 상승시킨다. 또한 리치의 분노를 대변하려는 듯 필드 전체에서 솟아오르는 헬파이어는 이 던전에 도전했던 수많은 파티를 전멸시켰다. 그게 나오기 전에 빨리 처리해야 편하니까, 2단계에서 어떻게든 기를 쓰고 잡아야 했다.
 “최악의 경우로 3단계까지 갔을 때에는 다들 리치 근처로 뭉쳐. 그래야지 내가 전체 힐 넣기 쉬우니까. 여기서부터는 최대한 빨리 리치를 잡는 게 답이야. 무조건 패.”
 “거기서부터는 간단하네.”
 “오케이, 브리핑도 마쳤으니 다시 가볼까.”
 오늘 던전의 하이라이트로 말이야.
 이 파티의 마무리를 하기 위해, 우리는 다시 어둠의 성 보스 방으로 향했다. 물론 보스 방까지 가기 위해, 몬스터들의 무리를 쓸어버리는 짓을 또 했지만 말이다.
 “체력 OK, MP OK, 버프 OK. 다들 이상 없지?”
 행여 인첸트 마법이나 버프 등이 풀렸는지, 다른 애들의 상태를 확인했다. 다들 이상 없다는 답변을 줬다.
 “좋아, 그럼 문 연다.”
 문을 열겠냐는 메시지에 예를 클릭하자, 화면이 갑자기 암전되었다. 화면 오른쪽 하단에 나타난 ‘NOW LOADING’이라는 익숙한 단어가 우리가 보스 방에 진입하고 있음을 알렸다. PC방에 가 있었는지 기훈이와 지적이가 제일 먼저 로딩이 끝났고, 그다음에 나, 그리고 속속들이 LOADING 100%를 보였다.
 모든 인원이 던전에 입장하자, 리치가 제 주변을 수많은 파이어볼로 밝히며 모습을 드러냈다.
 [호오, 얼마 만의 인간인고.]
 다음 대사와 함께 필드의 저 파이어볼들이 우리에게 떨어진다. 그 전에, 예고했던 대로 지속 회복 마법을 건다.
 ― 찬미가.
 신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며, 파티원들의 축복을 기도하는 스킬은 이들을 지속적으로 회복시킨다.
 [어디, 이 리치를 얼마만큼 즐겁게 할 수 있을지, 시험해 보도록 하겠다!]
 “파이어볼 온다!”
 ― 아이스 월!
 재빨리 마법을 시전한 마법사의 뒤로 가 파이어볼을 막아냈다. 마법 효과를 극대화하는 버프 효과 덕에 리치의 파이어볼을 두 개 간신히 막아내 이쪽은 데미지 0.
 ― 그림자 숨기.
 ― 스텝!
 ― 흐름 읽기!
 도적, 격투가, 헌터의 회피 스킬도 각각 제 타이밍에 사용해 회피 성공. 전사와 검사 둘 총 셋만 파이어볼로 인한 데미지를 입었으나, 앞에 걸어두었던 회복 마법 효과로 피해는 경미했다. 스타트가 좋아!
 ― 폭열권!
 보스 방 입장 직전에 걸어놓은 성 속성의 인첸트 마법과 각종 버프, 격투가의 벌크 업 스킬로 파워 업 한 격투가의 일격이 시작부터 크리티컬을 터뜨렸다. 재수가 좋다고 생각할 찰나, 리치의 첫 번째 특성이 발동했다.
 [가소롭구나, 인간!]
 데미지를 입자마자 리치 패시브 스킬인 근육 파괴가 격투가에게 작렬, 힘, 체력 관련 버프가 모조리 풀림과 동시에 마비가 찾아오며 뇌 속성의 데미지를 입었다.
 “얼른 딜 넣어!”
 빠르게 격투가에게 회복과 버프를 넣고 나도 뒤에서 조금씩 딜을 넣었다. 레벨이 낮은 파티라서 딜이 부족한데 내가 쉬고 있어서야 쓰나. 약 10초간 리치가 어그로 끌린 격투가에게 공격을 퍼붓는 사이에 내가 뒤에서 힐과 딜을 반복하고, 원딜들과 근딜들이 계속해서 데미지를 주고 있었다. 보스 전체 체력의 고작 8%이긴 했지만, 우리 레벨을 감안하면 꽤 많이 깎은 셈이었다.
 “시간 됐다. 전사가 쳐!”
 “OK!”
 ― 대지 분쇄!
 전사가 든 커다란 도끼로 몬스터를 내리쳐 큰 소음을 일으키며 몬스터로부터 어그로를 끄는 기술을 선보여, 리치의 시선을 전사 쪽으로 돌렸다. 그사이에 다시 총공격. 이 패턴으로 30% 정도를 깎자, 리치의 휑한 눈두덩이가 붉은 빛을 띠었다.
 “2단계야, 다들 아까 얘기했던 위치로 가!”
 [인간치고는 제법이군, 제법이야. 거기에 경의를 표하며, 나도 슬슬 제 실력을 다 해야겠군. 오너라, 하인들아!]
 리치전 페이즈 2에 돌입함을 암시함과 동시에 리치의 발밑에서 마법진들과 총 다섯 하인들이 나타났다. 다섯 하인은 마법진에 그려진 오망성의 꼭짓점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기서부터는 각개격파야. 전사랑 격투가는 어그로 부탁해.”
 리치의 다섯 하인이 각자 위치에 도착하기 전에, 늦어도 주문 영창이 끝나기 전에 해치워야 했다. 검사들은 검으로 쳐 내면서 제 위치로 가는 것을 막았고, 마법사는 마법 방어력이 낮은 스켈레톤을 상대로 속성 마법을 이용, 격파하는 것이 비교적 용이했다. 도적도 내가 성 속성 인첸트 걸어놔서 어느 정도 데미지를 냈고.
 “누가, 나 좀 도와줘!”
 헬프 요청을 띄운 건 헌터인 유진이었다. 애초에 헌터가 상태 이상을 걸어놓고 사냥하는 스타일인데, 문제는 상대가 이미 한 번 죽어 백골밖에 안 남았다는 설정인 스켈레톤이다. 상태 이상이 먹히지 않아 평소보다 데미지가 약하게 먹혔다. 성 속성 걸어주고 버프를 걸어주긴 했지만, 잡는 게 쉽지 않았다.
 ― 천벌!
 여기서는 내가 성 속성 마법으로 추가 딜을 넣어줬다. 유진이가 고맙다고 말하며 안도의 한숨을 쉬자마자 이번에는 탱커 쪽이 위험해서 힐과 버프를 넣었다. 도중에 딜러들에게 날아드는 라이트닝까지, 힐 넣으랴, 디버프 해제하랴, 딜 넣으랴. 덕분에 실수 한 번 했다간 한 명이라도 죽어서 난장판이 될 거라는 긴장감이 엄습했다.
 “좋아, 난 다 잡았어!”
 “나도 끝! 검사 쪽 서포트 하면 돼?”
 “도적은 헌터 돕고 법사는 리치에게 딜 넣어. 애들 돕는 건 내가 할게.”
 역시 여기서는 마법사와 도적이 먼저 스켈레톤을 잡았다. 도적도 리치 잡으라고 하고 싶지만 아직까지 근육 파괴를 쓰니까, 스켈레톤 잡는 데에 주력하라고 오더 내리고 난 헌터 쪽 스켈레톤에 딜을 넣으며 탱커 쪽을 주시했다. 뒤이어 도적&헌터, 검사가 스켈레톤을 처리했다. 바닥의 마법진이 점점 흉흉한 색을 띠어가며 주문 영창이 끝나가려는 찰나, 마지막 스켈레톤을 처리하던 또 다른 검사가 외쳤다.
 “이걸로, 마지막!”
 [하인 스켈레톤을 격파했습니다. 리치의 강화 주문이 취소되었습니다.]
 화면 상단에 메시지가 뜸과 동시에 마법진이 빛을 잃었다. 많은 마력을 쏟아 붓고도 마법 발동에 실패한 부작용이, 리치를 덮쳤다.
 “지금이야, 총공격!”
 리치가 무릎을 꿇음과 동시에, 우리들이 날릴 수 있는 최대 위력의 공격을 날렸다. 나도 엘릭서를 마신 뒤, 곧바로 마법사 마스터 스킬을 시전했다. 내 뒤로, 여섯 빛깔의 구가 빛나기 시작했다.
 ― 엘레멘탈 버스트!
 각 빛들은 레이저가 되어 리치를 관통해 순식간에 큰 데미지를 줬다. 그 빛에 어둠 속성의 공격도 있어 그 힘을 흡수했지만, 다른 다섯 가지 빛으로 입은 데미지가 막대했다. 리치의 체력이 순식간에 5%까지 떨어졌다. 저러고도 안 죽다니, 인원수에 비례해서 체력이 는 것도 한몫했지만 역시 보스 몬스터는 다르네.
 “쩐다, 내가 나중에 저걸 배운단 말이지?”
 “그건 일단 이거 잡고 얘기하자.”
 슬슬 광폭화 할 시간이 다 되어간단 말이야.
 발동되다 만 마법진이 다시 빛나기 시작하며, 리치가 일어서기 시작했다. 3단계로 들어간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 미천한, 인간에게, 내가?]
 리치를 감싸는 불길한 마나가 그의 뼈를 삼키기 시작했다. 그 붉은 마나가 바닥을 완전히 붉게 물들이기 전에, 최대한의 준비를 마쳐야 했다.
 “온다, 붙어서 때려!”
 ― 성막. 찬미가.
 내 주위로 성스러운 막을 만들고 전체 회복 스킬을 발동, 데미지 경감 및 체력 회복 등의 버프를 걸었다. 바닥이 완전히 붉어지더니, 폭발하면서 불기둥이 솟아올랐다.
 [고작, 인간에게!]
 필드 전체를 뒤덮는 불기둥에 성막 속에 있던 우리들은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전원 피가 절반 이상 깎였다. 특히 나와 마법사는 HP가 10∼15%까지 떨어져, 다음 공격 한 방에 사망할 수도 있었다.
 “다음 헬파이어 전까지 잡는다!”
 ― 대지 분쇄!
 ― 월광참!
 ― 검기, 참격!
 ― 폭열권!
 ― 댄싱 윗 애로우!
 ― 플레임 드라이브!
 ― 파이어 스톰!
 각자가 사용할 수 있는 기술들을 사용하며 리치의 체력을 1%까지 몰아갔다. 리치의 광폭화로 인한 체력 감소로 이제 0.7%까지 떨어졌지만, 다시 헬파이어가 시전 되고 있었다. 이걸로 끝이다!
 ― 홀리 저지먼트!
 현재 내가 쓸 수 있는 최고의 공격 기술인 홀리 저지먼트까지 쓰자, 리치 체력이 드디어 0이 되었다. 바닥이 다시 폭발하기 직전에, 붉은색의 바닥은 원래의 모습을 찾았다.
 [내가, 인간 따위에게······.]
 다시 쓰러진 리치는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 드디어 잡았다. 보스 몬스터인 리치를!
 [리치 토벌에 성공하셨습니다.]
 “리치 잡았다!”
 “우리가 해냈어! 리치 사냥! 어, 레벨 업 했다. 아싸!”
 다들 체력 너덜너덜해서 다음 헬파이어 맞았으면 바로 전멸이었을 텐데, 다행히 그 전에 어떻게든 끝장을 봤다. 리치 토벌 성공 메시지가 뜨자 그제야 다들 리치를 잡았다며 환호했고, 그 와중에 문기훈이 오늘 하루 만에 레벨을 2 올려서 기뻐하고 있었다.
 [‘한진우’ 님의 ‘신의 컨트롤’ 레벨이 올랐습니다.]
 아, 이쪽도 레벨 올라 버렸네. 그나저나 나 게임 만렙인데 굳이 신의 컨트롤이라는 스킬이 생기고 레벨 업 할 이유가 있나?
 거기에 대해 깊게 생각하려던 찰나, 꽤 좋은 아이템이 나왔는지 이걸 어떻게 처리하냐는 이야기가 나와서 그 건에 대해서는 접어두고 아이템 배분에 들어가야 했다. 그 결과 내게 돌아온 건 여기서 쏟아 부은 포션값을 조금 웃도는 정도의 돈뿐이었다.
 이 고통 나만 받지 않게 빨리 기훈이를 마법사 클래스 마스터까지 올려서 힐러 자리 넘겨주던가 해야지. 근데 걔가 완전히 자리 잡으려면 레벨 올려야 하잖아.
 아무래도 내 힐러 고난기는 한동안 계속될 것 같다.

댓글(2)

다크라이    
모든 캐릭터가 너무 착하다. 악역도 선역도. 그래서인지 너무 쉽게 감화된다. 레벨맥스? 능력자체가 별로 나오지 않는, 그리고 힘도 약하고 영향력도 적다. 악역이 착해서 큰사건도 없다. 억지스런 설정도 간간이 보인다. 큰 막장설정이 없기에 시간넘치고 볼게 없을때 슬쩍 대여해서 지나갈만한 소설. 하지만 재미있다기 보다 그냥 넘기는 소설.
2018.09.16 19:50
하하하핳하    
중3이라 해도 16살이니까 9년이면...7살...
2018.09.17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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