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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토의 제국 1화

2018.09.05 조회 2,087 추천 20


 노숙
 
 
 
 “야, 여기 어디야?”
 
 자고 있는 줄만 알았던 뒷좌석의 사내가 불쑥 묻자 김명천은 백미러를 보았다. 사내의 충혈된 눈을 백미러를 통해 본 김명천이 부드럽게 대답했다.
 
 “예, 지금 대림동 사거리를 지났습니다.”
 
 “아닌데?”
 
 눈을 치켜뜬 사내가 창밖을 내다보더니 갑자기 김명천의 어깨를 손바닥으로 쳤다.
 
 “야, 차 세워.”
 
 “손님, 여기는.”
 
 “이 새끼야, 세워.”
 
 사내가 이번에는 주먹으로 김명천의 어깨를 쳤다. 많아야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사내는 기껏해야 김명천보다 서너 살 연상 같았지만 처음부터 반말이었다. 김명천이 4차선 길가에 겨우 차를 세웠을 때 사내는 서둘러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곳은 대림동의 8차선 도로였는데 새벽 1시가 넘어 있었지만 인도에는 통행인이 많았다. 김명천이 밖으로 나왔을 때 사내는 길가의 건물 담장에 대고 소변을 갈기는 중이었다. 행인들이 힐끗거리고 지나갔지만 행위를 막지는 않았다. 다행히 건물의 경비실도 안쪽이어서 눈치 챌 것 같지는 않았다.
 
 심호흡을 한 김명천은 차에 등을 붙이고 서서 사내의 방뇨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오늘은 대리운전을 시작한 지 꼭 두 달째가 되는 날이다. 며칠 전에는 지갑을 잃어 버렸다고 난리를 친 손님을 겪었다. 그러다 그 주정뱅이의 코트 주머니에 든 지갑을 마누라가 찾아내고는 팁으로 만 원을 더 주었다. 방뇨가 끝난 사내가 비틀대면서 차가 있는 곳으로 다가오는 걸 보고 김명천은 차 문을 닫아준 다음 운전석에 올랐다.
 
 “야, 너 몇 살이야?”
 
 차가 출발했을 때 사내가 물었다. 조금 진정이 된 듯 목소리가 느긋해져 있었다.
 
 “예, 스물여덟입니다. 사장님.”
 
 “너, 하루에 얼마 벌어?”
 
 “대중없습니다.”
 
 “글쎄, 대충 얼마냐니까?”
 
 “5만 원도 되고, 또.”
 
 “제일 많이 벌었을 때는 얼마야?”
 
 백미러를 올려다 본 김명천은 대답하지 않았다. 20만 원이었다. 구미에 사는 사모님을 모셔다 드렸을 때 팁으로 15만 원을 받았던 것이다. 사내가 백미러에서 김명천의 눈을 집요하게 찾아내더니 다시 물었다.
 
 “글쎄, 최고로 얼마 벌었냐니까?”
 
 “예,20만 원이었습니다.”
 
 김명천은 정직하게 대답했다. 사내는 강남 최고급 룸살롱 중 하나인 화영에서 태웠다. 지금 김명천이 운전하고 있는 사내의 차는 벤츠였다. 이 나이에 이만한 재력을 갖추고 있다면 무언가 고위층 인간임에는 틀림없다. 설령 부모를 잘 만났다고 해도 그렇다. 그때 사내가 백미러를 향해 머리를 끄덕였다.
 
 눈은 충혈되었지만 술기운은 조금 가신 표정이었다.
 
 “너 체격도 괜찮은데 성품도 좋아 보이고, 이 생활 얼마나 되었어?”
 
 “두 달 되었습니다. 사장님.”
 
 “너, 나한테 기분 상했지?”
 
 “예?”
 
 백미러를 올려다 본 김명천은 순간 긴장했다. 사내가 웃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놈은 주사가 있는 유형이다. 잘못 대답을 했다가는 싸움이 생길 가능성이 많다. 김명천은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런 것 없습니다. 사장님.”
 
 “너, 학교는 어디 나왔어?”
 
 화제가 돌려졌으므로 김명천은 마음을 놓았다. 이대로만 계속하면 된다.
 
 “예, 전라북도에 있는 익산대학을 나왔습니다.”
 
 김명천은 그 다음에 사내가 할 말을 예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내는 예상과는 달리 그런 대학이 있느냐고 묻지 않았다.
 
 “무슨 과 나왔어?”
 
 “경영학과 졸업했습니다.”
 
 “언제 졸업했고?”
 
 “2년 되었습니다.”
 
 사내의 집은 대림동의 고급 주택가였다. 차가 주택가로 꺾어졌을 때 주위는 조용했다. 가끔 승용차만 오갈 뿐이다.
 
 “군대는 갔다 왔고?”
 
 담배를 피워 문 사내가 물었을 때 사내가 가리켜 준 공원이 보였다. 사내의 집은 공원 옆이라고 했던 것이다.
 
 “예, 제대했습니다.”
 
 차의 속도를 줄이면서 김명천이 힐끗 백미러를 보았다. 손님을 태우면 하나같이 고향과 이력을 묻는다. 그리고는 끝이다. 대학 졸업 후에 서울로 올라와 이력서를 37곳에다 내고 28번은 필기시험에 합격했으며 최종면접을 14번까지 보았지만, 결국 공사장 잡일과 택배 보조, 이삿짐센터의 인부 노릇으로 전전하다가 대리운전사가 되었다. 그 사연을 다 말하자면 부산까지 내려가는 손님을 태워야 할 것이다.
 
 “저기다. 저기 흰 이층집.”
 
 사내가 가리킨 곳으로 시선을 돌린 김명천은 흰색 이층 저택을 보았다. 담장이 높았고 철제 대문은 육중했다. 건물과 담장이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보니 정원도 꽤 넓은 것 같았다. 서울의 부동산 가격에는 무지했지만 몇 십 억대는 될 것이다. 정문 앞에 차를 세웠을 때 사내가 지갑에서 돈을 꺼내 내밀었다.
 
 “25만 원이다. 5만 원은 대리운전 값이고,20만 원은 팁이야.”
 
 놀란 김명천이 눈을 동그랗게 떴을 때 사내가 다시 손바닥으로 어깨를 쳤다.
 
 “난 네가 마음에 든다. 받아.”
 
 “고맙습니다. 사장님.”
 
 차에서 내린 사내가 다시 주머니를 둬지더니 명함을 내밀었다.
 
 “새 직장을 알아보고 싶다면 나한테 전화해라.”
 
 “감사합니다.”
 
 김명천이 이번에는 허리를 꺾고 절을 했다. 전에 사모님한테 15만 원 팁을 받았을 때는 이렇게 절을 하지 않았다. 당황한데다 수치심까지 들어 얼떨결에 받았던 것이다. 차 소리를 들었는지 정문이 소리 없이 열리더니 흰 스웨터에 바지 차림의 여인이 밖으로 나왔다.
 
 “많이 마셨어?”
 
 맑은 목소리가 주위의 정적을 깨뜨렸다.
 
 가로등에 비친 여인의 얼굴은 생기에 차 있었다. 아름답다.
 
 “자, 그럼 연락해.”
 
 사내가 손을 들어 보이자 다시 허리를 굽혀 보인 김명천은 몸을 돌렸다.
 
 “대리운전사야?”
 
 장 여사의 목소리가 다시 또렷하게 뒤쪽에서 울렸다.
 
 “이그, 술 냄새.”
 
 김명천은 어깨를 펴고 공원 옆길을 천천히 걸어 내려왔다. 서울로 상경해 올 적에는 꿈이 있었다. 저만큼 좋은 저택은 당장에 어렵겠지만 안정된 직장을 갖고, 아름답고 지적이며 선량한 여자의 남편이 되어서 저녁이면 가정으로 돌아가는 꿈이다.
 
 그러나 지금은 악착같이 살기에도 바쁘다. 아직 월세방도 얻지 못해 영등포 뒷골목에 있는 하룻밤에 3,000원 하는 방에서 잔다. 작년에는 일이 끊겨 한 달 가까이 노숙자 생활을 했으니 지금은 그나마 조금 나아진 것이다. 익산의 어머니께 7개월째 매달 60만 원씩을 보내고 있는데도, 현재 통장에는 215만 원이 남아있다.
 
 김명천은 비교적 깨끗해진 밤공기를 가슴 가득히 마셨다. 그러자 부자 동네의 공기는 왠지 비싼 것처럼 느껴졌다.
 
 
 고생은 해볼 만큼 해 본 김명천이다. 초등학교 소사(掃舍)였던 아버지를 어렸을 때 잃은 후로 가난은 남은 세 식구를 마치 쇠줄처럼 엮어 놓고 풀어주지 않았다.
 
 그것은 아버지가 폐병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소사라는 직업은 학교의 잡일을 하는 인부이다. 청소는 물론이고 지붕 고치기, 거기에다 밤에는 학교 경비까지 맡아야 했다. 어머니는 두 남매를 우유배달과 행상, 파출부 등 닥치는 대로 일을 맡아 하면서 키웠는데 몸이 약해서 하루 쉬고 하루 일하는 형편이었다.
 
 그래서 김명천은 중학교 때부터 신문배달을 했고, 고등학교 때에는 방학 때마다 공사장을 찾아 집을 떠났다. 대학을 6년 만에 졸업한 것도 2년 동안 휴학을 하고 돈을 벌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대한민국은 빠른 경제성장을 이루어 1인당 국민소득이 1만 불을 달성했다지만 김명천의 가족에게는 마치 딴 세상의 이야기 같았다.
 
 다음 날 오후 6시 정각에 김명천은 대리운전 사업체인 신우통상의 시무실로 들어섰다. 15평쯤 되는 오피스텔 안에는 7, 8명의 기사가 나와 있었다. 사장 서충만은 안쪽에서 전화를 받는 중이었다.
 
 “아무래도 난 택시로 돌려야 할까봐.”
 
 구석 자리에 앉은 김명천의 옆으로 안태식이 다가서서 말했다. 안태식은 40대 초반으로 전직 항공사 정비원이다. 명퇴 신청을 하고 퇴직금으로 사업을 시작했다가 1년 만에 망하고 대리운전 기사가 된 것이다. 옆으로 비집고 앉은 안태식이 길게 숨을 뱉었다.
 
 “그게 더 안정적일 것 같단 말이야.”
 
 어젯밤 안태식은 손님과 싸우고는 도중에 다른 운전자와 교체되었다. 술 취한 손님이 뒷자리에서 발을 뻗어 안태식의 어깨를 찼다는 것이다. 흔하게 있는 일이었지만 안태식은 참지 못했다. 손님은 사무실이 애써서 잡은 요정 ‘국화’의 단골이었다. 아마 사장 서충만이 그만두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어, 김명천이. 이리 와봐.”
 
 서충만이 안에서 소리쳐 부르자 김명천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명천이 다가가 섰을 때 서충만의 옆 자리에 앉은 임재희가 힐끗 시선을 주었다. 눈매가 날카롭고 살결이 희어서 신경질적으로 보이지만 임재희는 깔끔하게 업무를 처리했다. 대리운전 기사들은 임재희를 서충만의 애인으로 믿고 있어서 함부로 대하지를 못한다.
 
 “야, 너 옷 그것밖에 없어?”
 
 대뜸 서충만이 위아래로 훑어보며 물었다. 김명천의 눈 밑이 조금 붉어졌다. 가을이 지나 초겨울이 닥쳐온 11월 중순이었는데도 엷은 곤색 점퍼 차림이었기 때문이다. 이 점퍼도 공사장에서 일할 적에 얻어 입은 것이다.
 
 “무슨 일이신데요?”
 
 대답대신 김명천이 그렇게 묻자 이맛살을 찌푸린 서충만이 혀를 찼다. 그러나 두 달 동안 한 번도 지각이나 결근을 하지 않고 또한, 궂은일을 도맡아서 해 온 김명천을 서충만은 신임하고 있었다.
 
 “너, 1박 2일로 속초 다녀와. 수당은 기름 값, 숙식비 빼고 35만 원으로 했다.”
 
 그렇다면 35만 원에서 20만 원을 희사에 상납하고,15만 원이 남는다. 숙식비에서 절약한다면 그 이상이 될지도 모른다. 그때 서충만의 말이 이어졌다.
 
 “일본 남자 하나하고 한국 여자가 손님이야. 그쪽에서는 운전에다 가이드 역할을 해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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