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서문
창판협기에 손을 댄지도 어언 3년째가 다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생각나는 대로 마음껏 적어본 글이었습니다. 이렇게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통해 소개할 수 있다는 것도 몰랐을 뿐더러 올릴 생각도 가지지 않았었습니다.
사실 자기만족을 위해 쓴 글이 바로 창판협기라는 글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처음에 주인공 이름이 바로 저였습니다. 그래서 저를 대상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쳤고 이렇게 되고 싶다고 생각하던 글이 창판협기였습니다.
물론 글 중에 주인공이 답답하게 행동하던 적도 없지 않습니다. 저 같았으면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곤 했지요. 하지만 너무 현실을 도피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외부의 요소들이야 완전히 현실을 벗어난 사실들이 즐비하지만 내부의 요소 즉 주인공의 성격만큼은 현실을 도피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너무 우유부단하다느니 생각이 미숙하다든지 그런 질책을 많이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부분이 있을지언정 고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이런 주인공도 있어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고 어느 부분은 제 성격이 투영된 부분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거의 삼분의 일 정도는 제 성격이 투영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지만 글을 적어나가면서 서서히 바뀌는 부분도 없지 않았습니다. 군대를 가서도 많이 적지는 못했지만 어느 정도 생각을 해오며 글을 적었고, 군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조금씩 글의 성향이 바뀌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소심하던 성격이 가면 갈수록 대범해진다고 할까요? 갈수록 좋아진다고 해야 될 것 같기도 하고, 갈수록 다혈질이 되어간다고 해도 말이 될 것 같습니다.
글 중 천풍의 성격이 소심모드, 사악모드. 의심모드. 냉정모드 등으로 다양하게 변화를 일으키며 나아가게 되는 것도 아마 군대에서의 경험으로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강원도에서 철책선을 지키며 경험하고 상상하던 것이 그러한 성격들을 투영시킨 듯 합니다.
사실 군에서 글을 적을 때 고참들 중 몇 명은 격려를 해주었고 몇 명은 사이비작가라는 허명을 지어주며 쓰지 말라고도 했습니다. 물론 장난이었지만 그 말도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허접한 글을 쓰니 그런 말이 나와도 할 말이 없다는 것이 제 생각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제대를 하고 학교를 복학하기 전 공백기간 동안 다시금 창판협기에 손을 대기 시작했습니다. 스스로 재미있으면 되지 않느냐라는 마음도 든 데다가 인터넷에 연재를 하면서 많은 질책과 격려로 인해 용기가 생긴 것입니다.
그런 와중에 이렇게 책을 내게 되었습니다. 허접한 글이지만 독자여러분들이 재밌게만 읽어주신다면 상관이 없다는 생각으로 말입니다. 그것이 저의 생각이었고 이 글을 쓴 목적이었습니다.
스스로의 만족 그리고 스스로의 재미, 그것이 바로 창판협기라는 글이 지향하는 점입니다. 주인공에 자신을 투영하여 더불어 즐기고 더불어 슬퍼하고 더불어 기뻐함을 느끼게 하고 싶었습니다.
물론 그것이 잘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더더욱 재미있게만 읽어 주신다면 저는 만족할 것입니다.
책을 내기까지 많은 격려와 질책을 해주신 유조아 회원님들과 모기 회원님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드리며, 글을 쓰는데 많은 격려를 해준 친구들과 군대 선후임 그리고 출판사 임직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언제나 저를 위해 애써주신 부모님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마천풍 박윤서
제1장.
“아암~.”
오늘도 나는 어김없이 6시 30분에 일어났다. 고등학생의 신분을 가진 나이니 학교에 가지 않고는 안 되는 것이다. 사실 오늘 하루쯤은 쉬었으면 하는 것이 솔직한 바람이지만 공휴일도 아닌 이상 나의 바람대로 될 이유는 없었다. 그저 책가방을 쌀 도리밖에는······.
그래서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잠시 몸을 풀고는 세면을 하러 방문을 나섰다. 그렇게 방문을 나서자 언제나 정겨움과 따분함이 같이 느껴지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곧 나의 귓가를 울렸다.
“준서야! 밥 먹고 얼른 학교가거라!”
하지만 오늘 나는 평소와 다르게 언제나 듣는 이 소리에 지겨움을 느끼고 말았다. 매일 아침 들어왔지만 아침마다 다른 할 말은 없는 모양인지 언제나 정형화된 말로 구속받는 것 같아 싫증이 난 탓이었다.
그래서 나는 속으로 이러한 현실에 대해 투덜거리면서 세면을 하러 화장실로 향했다.
‘헐! 또 그 소리군. 언제쯤이면 이 지겨운 입시의 고통에서 벗어나려나? 정말 입시가 없고 대학을 안가도 되는 세상에서 살고 싶어라!’
세면을 하면서도 한참을 투덜거린 나는 이런 생각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음을 알고는 그만 멈추어야만 했다. 지금의 현실로서는 가능성이 없으니 어머니의 매일 같은 이 소리를 들어야만 하는 것이다.
이런 소리를 들은 것은 바로 고등학생이 되면서부터였는데 그때부터 자유는 사라지고 억압과 핍박만이 난무하는 입시지옥에 빠져들게 되었던 것이다. 물론 요즘은 중학생도 마찬가지겠지만······.
사실 나는 아침밥을 거의 안 먹는 편이라서 일찍 일어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학교를 버스로 가야하기 때문에 번잡한 시간을 피해 이른 시간을 애용하고 있는 형편이었다.
물론 번잡하면 여학생이 많이 타게 되어 있기 때문에 더욱 좋다고 생각은 하고 있지만 속마음과는 달리 이성은 나의 이러한 음흉하고 시커먼 마음을 물리치고 버스를 편하게 탈 수 있는 시간으로 정해주고 마는 것이다. 원하지 않아도 말이다.
곧장 세면을 한 나는 천천히 책가방을 챙기고는 가뿐하게 우유 한 잔 마시고 바로 문밖으로 나가며 어머니에게 매일 하는 소리를 외쳤다. 사실 다른 말을 하고 싶긴 했지만 할 말이 마땅히 생각나질 않아서 이 말밖에는 떠오른 것이 없었다.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그렇게 소리치자 언제나 메아리처럼 다시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었으니 역시 빠지지 않는 어머니의 아침 인사다. 이것 또한 내가 지겨워하는 말이었지만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니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만 하는 말이기도 했다.
“그래, 공부 열심히 하고 오너라.”
역시 어머니는 나의 기대를 어기지 않고 바로 기대치에 부응했다. 바로 이것이 고등학생의 비애라고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언제나 같은 소리라는······.
‘오호 통제라!’
어느 덧 나의 나이 17세, 지금이 5월이니 고등학교 들어온 지 3개월째에 접어들었다. 어떻게 들어갔는지는 모르지만 인문계를 다니고 있었으니 일찍 학교에 가야만 했다.
물론 이러한 현실에 대해 나 또한 많은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 실력이 안 되던 나로서는 연합고사에서 그저 연필을 굴릴 수밖에 없었는데 이것이 바로 시험의 성공을 이끄는 지름길이 된 것이었다.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다른 사람들은 천지가 개벽한 듯 나의 합격에 놀라기만 했지만, 나의 생각은 달랐다. 나는 혹시 내가 아무래도 시험 치룰 때 신기를 입지 않았나 의심을 했고, 설마 박수무당이 되지 않을까 걱정을 해야만 했다.
어린 나이에 신기가 오다니······. 무슨 동자도 아니고.
여하튼 찍기의 신이라는 이름의 신기를 입지 않았다면 제 실력으로 연합고사에 합격할리가 없었기에 더욱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집을 나온 나는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흐르자 기다리던 버스가 도착했고 버스에 탑승했다.
역시나 시간대가 시간대인 만큼 자리는 한적했고 나는 제일 뒷좌석에 편안히 앉았다. 7시만 넘어가면 전쟁을 방불케 하는 콩나물시루가 되지만 아직은 시간적 여유가 있는 지라 거의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물론 이것을 노리고 매일 일찍 나오긴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염불보단 잿밥에 관심이 많은 나는 자리에 앉자마자 오늘의 상상의 세계로 등장시킬 여주인공을 찾기 시작했다.
특히 예쁜 여고생을 말이다. 물론 워낙 빈도가 낮게 출현하긴 하지만 가끔은 발견할 수도 있었기에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렇게 버스를 쭉 둘러 본 나는 곧 졸고 있는 어여쁜 여고생 한 명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여느 때와는 달리 미인에 속하는 여고생이었다. 그래서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말았다. 오늘 나의 상상이 대박을 예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와! 예쁜데······. 저기 저 여학생은 조는 모습이 마치 잠자는 숲 속의 공주님 같구나! 침만 안 흘린다면, 쩝!’
침 흘리는 것만 빼놓고는 완벽한 여주인공의 모습에 나는 힐끔힐끔 여학생을 보며 상상의 영화에 출연시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늘도 어김없이 상상의 나래, 즉 영화가 나의머리 속에 상영되기 시작했다.
무림 고수가 되어 그 여학생을 악당에게 구하는 스토리와 판타지 소설에서나 나올법한 마검사가 되어 마법과 뛰어난 검술로 드래곤에게 잡힌 그녀를 구하는 상상이었다.
두 편 모두 동시 상영으로 여학생을 구하자 어김없이 감사의 키스가 이어지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언제나 그러한 상상조차 방해하는 인물이 있었다. 그 인물은 그러한 상상의 상황조차 허용할 수 없다는 듯이 나의 뇌리 속에 우렁찬 한 음성을 질러왔다.
마치 영혼을 울리는 듯한 음성이······.
‘네 이놈! 책임지지 못할 짓을 누가 하라고 하였느냐?’
그 소리에 상상의 세계에 빠져있던 나는 놀라 깨어났고 주위를 살폈다. 누가 나에게 그렇게 말한 것인지 보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곧 그 소리의 출처를 알 수 있었다. 바로 나의 뇌리에 각인되다시피 한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삼대원칙이었다.
그 원칙이 내가 상상에서나마 이상한 행동을 하려고 하자 금제(?)를 가해 온 것이었다. 마치 세뇌된 것처럼 말이다.
‘이런 할아버지의 3대원칙이 또 나의 영화(?)를 망치는구나! 어떻게 된 것이 이런 상상을 하려고만 하면 할아버지의 음성이 뇌리를 파고드냔 말이다. 이래서 내가 빨간 비디오(?)를 못 보는 거라구. 못살아! 정말!’
나는 나의 영화(?)를 할아버지를 떠올리며 투덜거림으로 종결지어야만 했다. 언제나 결정적인 장면(?)마다 방해를 놓는 할아버지가 못마땅했다. 돌아가셨어도 나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는 할아버지가 말이다.
하지만 나는 할아버지가 살아계셨을 때 그 누구보다도 따랐었다. 언제나 할아버지와 같이 지냈고 할아버지의 가르침을 받아 착실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비록 할아버지가 구식의 사고를 가진 사람이었다지만 누구보다 나를 아껴주었기에 나도 할아버지를 존경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겉으로는 표현하지 않고 그저 불평만 하지만 그래도 사랑하는 할아버지였다.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정해진 수명이 있는 법, 할아버지는 나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을 알려주고는 지병으로 돌아가시고 말았다. 그때부터 아무래도 나의 성격이 조금 내성적으로 변하기 시작한 듯 하다. 물론 겉으로는 말이다.
속으로는 온갖 음흉한 생각과 별 시답지 않은 생각들을 가지고 있었지만 밖으로 표현하질 못하니 내성적이라고 보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사춘기인가보다 라고 생각했을 뿐······.
여하튼 할아버지가 전수(?)해준 가르침 중에 하나가 바로 절대(?) 3대 법칙이었다. 언제나 할아버지는 입버릇처럼 이 3대원칙을 말하곤 했다.
첫째, 책임지지 못할 짓은 하지도 말라!
둘째, 순리에 역행하는 일은 하지 말라!
셋째, 할 수 있는 일을 미루는 것은 바보짓이다. 미루지 말라!
나는 언제나 이 말들을 머리 속에 새기고 있었다. 할아버지께서 마지막 유언으로 하신 말씀도 바로 이 말들이었기에 머리 속에 각인 시켜 놓은 것이었다.
그래서 세뇌가 된 탓인지 내가 조금 엇나가거나 이상한 상상을 하면 스스로 금제가 가해진 듯 할아버지의 음성이 뇌리를 스치곤 했다. 물론 자기 암시와 같은 효과였겠지만 나의 생각은 달랐다.
할아버지의 혼이 나를 바르게 인도한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하늘에서 할아버지가 나를 지켜주고 있다고 믿고 싶은 마음이 강했기에 그런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할아버지도 원망스러운 듯 나의 입에서의 투덜거림은 멈추지 않았다.
“어떻게 된 것이 할아버지는 이런 생각도 못하게 하는 거야! 혹시 첫날밤에도 방해를 하는 것은 아니겠지, 설마? 그때는 분명 책임질 수 있을 테니 봐주시겠지. 아직 시간이 있을 테니 한 편 더 상상해 볼까?”
하지만 버스에서는 내가 요즘 들어 가장 싫어하는 음성이 된 여인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보다 더 나의 상상을 방해하는 요주의 인물인 여인의 음성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다음 정류장은 금강고등학교입니다.]
나로서는 전혀 반갑지 않은 목소리였다. 특히나 아직 두 개밖에 상상을 못한 나로서는 더욱 아쉬움이 남는 순간이었다. 할아버지의 방해로 러브신(?)이 무산 되었기에 더욱 그 음성이 안타까웠고 그에 비례해 나의 얼굴은 찡그려졌다.
‘헉! 베드신(?)도 못 찍었건만.’
하지만 학교에 버스가 도착했기에 생각은 뒤로 미뤄둔 채 나는 버스에서 내려서는 학교라는 감옥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별로 가고 싶은 곳은 아니었지만 들어가야만 하는 감옥이었다. 집행유예를 바라는 나로서는 이렇게 실형(?)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 억울할 뿐이었다.
그렇게 학교로 들어간 나는 홀로 나를 반기는 1학년 8반의 교실문을 열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오늘도 일등이로군. 크크.’
썰렁한 교실을 잠시 바라보던 나는 오늘도 일등을 차지한 것에 만족하며 조용히 1분단 4번째 줄 자리에 앉아서 잠시 또 눈을 붙였다. 이건 내게 있어 여태까지 학교생활의 고통을 견디게 해준 노하우로서 당연한 자세라 할 수 있었다.
7시 30분부터 아침 자율학습시간이 시작되기 때문에 나중 수업시간에 졸아서 맞는 경우를 줄이기 위해 잠시간의 자투리 시간에 모자란 잠을 보충해 주는 것이었다.
그렇게 책상에 엎드린 나는 언제나처럼 바로 잠이 들었다. 시간의 흐름도 잊은 채······.
콕콕.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옆에서 찌르는 느낌에 살며시 눈을 뜬 나는 자율학습시간이 되었나 싶어 얼른 자세를 가다듬었다. 재수 없게 돌아다니는 선생님에게 걸리면 사정없는 사랑의 매를 맞을 지도 모를 일이었기에 신속한 행동을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일어났음에도 확신할 수 없었던 나는 혹시나 걸렸나 싶어 옆자리에 앉아 있는 영만이에게 물었다.
“혹시 걸렸냐?”
“아니, 일어나라! 아침 자율시간 다됐다. 시간이 다 돼서 깨운 것뿐이니 나를 원망하지 말도록!”
얄미운 소리를 해대는 나의 친구 영만이는 그렇게 말하고는 자신의 책을 펼쳐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사실 영만이는 안지 3개월 밖에는 되지 않았다지만 마음이 통하는 나의 유일한 친구로 고등학교에서의 단 하나 뿐인 친구였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 성격의 변화를 겪은 나는 사교성이 전무하다시피 해졌고 친구가 거의 없는 편이었다.
영만이 하나 건진 것에 만족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극악한 사교성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마음 좋은 영만이랑 단짝이 되면서 예전의 모습을 조금씩 찾아가고 있음을 느끼게 되었고, 그러한 현상으로 본래의 성격을 찾음으로서 영만이와 친하게 지낼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영만이 앞에서일 뿐이지만.
그런 영만이이니 나를 깨워주는 것은 당연한 듯 받아들여졌고 그런 영만이에게 고마움을 표시한 나는 얼른 책을 준비했다.
“알았어! 어느 정도 잠을 보충했으니 또 공부를 해봐야겠지. 자아! 나와라! 나의 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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