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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대전 1화

2018.09.19 조회 4,400 추천 19


 [3차 대전 1화]
 
 
 
 
 
 
 프롤로그
 
 
 2011년 1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급작스럽게 사망했다.
 3남 김정은으로 후계가 굳어지는가 싶었는데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하자 장남인 김정남이 정통성을 강조하면서 문제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정치적인 싸움으로 시작했으나 급기야 군벌이 개입하면서 내전으로 치닫게 되었다. 평양의 주인이 수시로 바뀌면서 피의 숙청이 이루어졌고,
 전연군단의 제1군단이 김정남을 지지하며 가세하자 제5군단도 기다렸다는 듯이 김정은이 정통성을 이은 후계자임을 외치며 개입하는 바람에 내전은 한치 앞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혼탁해졌다.
 북한 전역에서 총성이 그칠 날이 없었고 그렇지 않아도 오랜 식량난으로 정부에 불만을 품고 있었던 인민들이 들고 일어나기 시작했는데 이 지옥 같은 상황이 장장 6개월 동안이나 지속되었다.
 설상가상으로 북한의 내전을 지켜보던 중국 지도부는 군사적 개입을 결정했고 중국군이 압록강을 도하하자 내전이 주춤하는 듯 했다.
 하지만······.
 중국군의 개입은 남한을 자극했고 수세에 몰린 김정남이 남한 당국에 지원을 요청했다. 그렇지 않아도 중국군의 개입으로 인해 개입시기를 엿보고 있던 한미연합군은 즉각적인 행동에 들어갔다.
 북한 내전 때문에 주일미군에 배치되었던 F-22랩터 스텔스전투기대대가 북한 상공을 장악하는 사이 국군 제1기갑이 판문점을 돌파했다.
 김정남을 지지하는 군벌들이 제1기갑이 평양에 입성할 수 있도록 방패막이를 해준 탓에 제1기갑은 어렵지 않게 평양을 장악할 수 있었다.
 중국 지도부는 북한에 투입했던 부대의 남하를 중지시키고 한국과 미국을 강하게 비난했다. 하지만 그에 굴할 한미연합군이 아니었다.
 김정은을 지지하는 군벌이 가진 힘은 결코 무시할 수 없었지만 한미연합군의 지원을 등에 업고 있는 김정남의 세력을 당해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한미연합군과 김정남을 추종하는 군벌의 압도적인 파괴력 앞에 반란군으로 내몰린 김정은 세력은 사상누각처럼 무너졌고 그렇게 김정은의 세력이 토벌되는 동안 미국과 중국은 배수의 진을 친 협상에 들어갔다.
 명목상으로는 세계2위의 경제대국이 되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13억이라는 인구 때문이지 GNP(국민총생산)는 고작 4,000달러를 조금 웃도는 정도에 불과한 중국이었다. 따라서 배짱을 부리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미국이 서방의 모든 자본을 빼낼 수 있다는 말을 흘리자 중국은 미 연방정부 채권을 무기삼아 대응했다. 미국의 조치가 엄포로 끝날 수밖에 없다고 확신했던 중국은 서방자본이 빠져나기 시작하자 두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경제위기로 휘청거리고 있는 미국이 세계의 공장이라고 평가 받고 있는 중국을 상대로 강수를 둘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북한이 보유하고 있던 핵무기를 통제권 안에 두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만에 하나라도 북한의 핵무기 중 단 하나라도 알카에다 등 테러조직에 넘어가는 날에는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하기 때문에 미국으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통일.
 한민족의 염원이자 소원이었던 통일은 그렇게 폭풍처럼 찾아왔다.
 
 
 
 제1장. 또 다른 갈등 (1)
 
 
 
 
 
 
 한민족의 염원이었던 통일은 되었으나 헌법을 개정 하는 등 처리할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따라서 2012년 4월과 12월에 각각 치러질 예정이었던 총선과 대선은 취소될 수밖에 없었다.
 무려 6개월이 넘은 지루한 협상 끝에 마침내 통일한국의 헌법초안이 확정되었다. 미국 대선과 총선의 형태를 모방한 선거법이 만들어졌고 지난 과거에 행해졌던 행위에 대해서는 불문에 붙인다는 특별법도 만들어졌다.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않고 한국이라는 국명을 사용하기로 했다. 영어 이니셜 또한 COREA로 바꾸기로 결론이 지어졌다. 그러면서 정부부처의 명칭도 확정했다.
 특이한 점은 내무부가 부활하고 에너지부가 신설되었다는 점이었다. 통일이 된 터라 통일부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수밖에 없는데 여성부를 길동무로 삼는 등 정부 부처를 대대적으로 개편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각 부처 명칭을 바꾸느라 엄청난 비용이 소요되었던 점을 감안해 헌법에 정부 부처의 명칭을 바꿀 수 없도록 아예 헌법에 명시를 해버렸다.
 그리고······.
 2013년 12월.
 국회가 해산되고 마침내 통일한국의 초대 대통령을 선출하는 대선이 시작되었다.
 비리의 온상 혹은 국개의원이라고 비아냥거림을 듣던 국회가 해산되기 직전 그들도 한 마음이 되어 통일조국을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특별회계 예산을 통해 100조원을 긴급 편성하고 통일한국의 초대 대통령을 선출한 뒤 2년 후에 치러질 총선 때까지 매년 50조원의 통일비용을 편성하는 것을 골자로 한 특별법을 만장일치로 통과한 것이었다. 그 재원은 통일세를 걷는 것으로 확정되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국방비도 GDP대비 5퍼센트로 대폭 올렸다.
 향후 10년 동안 시행되는 한시적인 이 법안이 통과됨으로써 통일한국의 국방 분야에서 부담을 덜 수 있게 되었다.
 대선과 총선을 동시에 치르는 것도 논의가 되었으나 지역구를 나누는 문제에 봉착해 대선을 치른 뒤 2년 뒤에 총선을 치르는 것으로 결론을 내고 국회가 해산되었다.
 통일한국의 초대 대통령이 주는 상징성 때문인지 후보들도 우후죽순처럼 난립했다. 기존의 유력정치인들은 물론이고 김정남 등 북한의 인사들을 비롯해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통일한국의 비전을 제시하며 자신을 지지해줄 것을 호소하고 다녔다.
 통일 이전의 정당에서 배출한 후보들은 세를 과시하고 다녔고 김정남도 이제 뒤질세라 북한지역 인사들을 대동하고 다니며 맞불을 놓았다.
 그러나······.
 개표 결과 통일한국의 초대 대통령은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사람이 당선 되었다.
 이수홍.
 통일한국의 초대 대통령이 된 사람은 그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이수홍 후보였다. 그가 내건 대선공약은 경제를 살리자는 것도 아니고 복지한국을 만들겠다는 달콤한 말도 아니었다.
 그가 내건 공약은 단 하나,
 우리의 뿌리를 되찾자는 것이었다.
 뿌리가 제대로 내린 식물이어야 건강하게 자라는 법.
 후손들에게 날조된 뿌리가 아닌 진정한 뿌리를 되찾아주자고 열변을 토했다.
 정쟁과 이념대렵,
 그리고 온갖 비리 정치인에 신물이 난 국민들은 이수홍 후보의 공약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그 결과는 표로써 나타난 것이었다.
 대통령 당선이 유력시 되었던 통일 이전의 집권 한나라당의 박XX 후보와의 표차이가 무려 7백만 표나 되었다.
 통일한국의 초대 대통령이 된 이수홍은 수락인사에서 한민족의 뿌리가 깊게 내려 한민족의 기상이 천년만년 이어질 수 있는 밑거름이 되겠다는 말로 기립박수를 받았다.
 그동안 청와대 인사들은 물론이고 정부부처의 수장들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학연 지연 등 대통령과 인맥이 닿아 있는 사람이 임명되었다. 그것이 지난 60여 년 동안 이어져온 통례였다.
 정부부처의 수장들이 비리에 연루될 때마다 정부는 홍역을 치러야만 했다. 그런 점을 잘 알고 있는 이수홍 대통령은 청와대 인사들을 비롯해 정부부처의 수장들을 각 분야에서 명망이 높은 전문가들로 임명했다.
 철저한 검증을 거친 사람들로 구성된 각 부처의 수장들은 즉각적으로 산하기관들의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방만하게 경영했던 공기업의 CEO(최고경영자)들이 줄줄이 구속 되었으며 빈둥거리는 직원들은 해고되는 등 혹독한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건강함을 회복했다.
 정부산하 기관들이 혹독한 구조조정에 들어간 것을 본 시중은행들도 ‘앗 뜨거워라’하는 심정으로 구조조정에 착수하면서 일시적인 자금경색에 부닥치기도 했지만 통일에 따른 결과라는 사실 때문에 소요사태가 일어나거나 하지는 않았다.
 
 2015년 6월1일 청와대
 2015년 12월 18일 금요일에 총선을 치르기로 했으니 총선까지는 6개월 남짓 남은 상태였다.
 세월은 유수라고 했던가?
 엊그제 통일한국 초대 대통령에 당선된 것 같은데 어느덧 이수홍 정부가 출범한지 1년 6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러간 상태였다.
 창당하고 각 지역구에 내보낼 후보들을 검증하려면 6개월은 빠듯한 시간이었다. 야당은 벌써 창당하고 후보선출을 하고 있는데 이수홍 대통령은 집권당이 되어야 할 당은 아직 당명도 정해지지 못할 정도로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중이었다.
 “대통령님, 이제 창당 작업을 해야 할 때가 되지 않았습니까.”
 이현빈 대통령실장이 은근한 투로 말을 건넸다.
 “그렇지 않아도 본인도 그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수홍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2년 후에 치러질 총선에서 450명의 국회의원 중 절반인 225명을 뽑는 총선을 치르기로 선포한 상태였다.
 미국과 똑 같은 선거방식을 택한 것은 정부와 국회가 견제와 협의를 통해 한국을 좀 더 건강한 사회로 만들기 위함이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이현빈 대통령실장이 넌지시 물었다.
 “정치인들 아니 국회의원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겠지요. 통일 이전의 국회의원들 대다수가 비리덩어리 아니었습니까. 그것을 근절시키기 위한 대책이 마련되지 않고서는 총선을 치를 수가 없습니다.”
 이수홍 대통령의 고민이 바로 그것이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통일이전의 남북한 인사들 대부분은 비리에 만연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법으로 금지되어 있는 일도 뇌물이면 통하는 세상이 무려 60여 년 동안이나 지속되었는데 이수홍 대통령은 이번 기회에 비리를 근절시킬 생각이었다.
 “대통령님 말씀대로 그런 사람들이 국회의원이 된다면 이제 막 걸음마를 뗀 한국이 혼란에 빠질 수도 있겠군요.”
 이현빈 대통령실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런데 이 문제는 매우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에 통일 이전의 정치인들이 들고 일어날 것이 뻔했다. 그렇기에 국민들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묘책이 필요한데 그 방법이 보이질 않았다.
 “그보다는 미국이 문제입니다.”
 이수홍 대통령이 슬쩍 화제를 돌렸다.
 
 
 
 다음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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