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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검무안 1화

2018.09.20 조회 5,535 추천 36


 [도검무안 1화]
 
 
 
 
 
 
 序
 
 
 삼백여 년 전, 무림사(武林史)에 뚜렷한 족적을 새긴 여섯 명의 절대자가 존재했다.
 
 - 혈우마검(血雨魔劍) 탁발천(卓渤泉).
 - 천왕구도(天王九刀) 미립강(米砬鋼).
 - 뇌전자창(雷電刺槍) 왕패(王唄).
 - 현현화륜(玄玄火輪) 노광도(魯光淘).
 - 일시탈백(一矢奪魄) 장설리(張雪莉)
 
 사남일녀(四男一女).
 검(劍), 도(刀), 창(槍), 륜(輪), 궁(弓)의 절대자들.
 이들은 오제(五帝)라고 불렸다.
 
 - 일왕(一王) 염왕(閻王).
 
 염왕은 이름도 무공도 알려지지 않았다.
 그를 만난 사람은 반드시 죽었다. 그도 죽일 사람이 아니면 만나지 않았다.
 항상 죽음을 몰고 다니는 사람, 그래서 염왕이다.
 
 이들 염왕오제는 한 시대에 태어나 독보적인 위치에 올랐다.
 각기 절정에 이르렀다는 고수들을 상대로 백전(百戰)을 거둔 무적의 제왕들이다.
 그러나 그들이 무림사에서 차지하는 분량은 매우 적다.
 그들이 무림에 머문 시간은 지극히 짧았다. 겨우 삼사 년이라는 매우 짧은 기간 동안만 머물렀다가 사라졌다.
 염왕도 사라지고 오제도 사라졌다.
 염왕과 오제가 동귀어진(同歸於盡) 했을까?
 당시 떠돌던 수많은 추론(推論) 중에서 그래도 가장 신빙성 있는 추론이다.
 하지만 이 추론에도 허점이 있다.
 이 추론은 염왕이 오제를 전부 상대할 수 있을 만큼 강해야만 성립한다. 헌데 당시 오제는 하늘이었다. 단신으로 그들 전부를 상대할 수 있는 자는 존재할 수 없었다.
 염왕오제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어떤 이유로 무림에서 자취를 감춘 것일까?
 
 삼백 년이 지났다.
 그들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무림사를 읽다가, 혹은 듣다가 그들의 이름이 들먹여져도 무심히 흘려버리는 잊힌 이름일 뿐이다.
 
 
 
 第一章 기어이 네가 (1)
 
 
 
 
 
 
 적암도(赤巖島)의 오 월은 한 여름이다.
 중원 대륙은 아직도 밤낮으로 싸늘한 기운이 돌겠지만, 적암도는 한 여름처럼 뜨거운 양광이 내리쬔다. 개나리, 진달래, 목련 같은 꽃들은 벌써 피었다가 졌고, 채송화 같은 여름 꽃이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의복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긴 소매나 긴 바지는 어느 틈엔가 사라져 버렸다. 사내들은 웃통을 벗어던진 채 바지만 입기 시작했다. 초여름부터 초가을까지의 일상복이다.
 휘이이이!
 부드러운 해풍이 구릿빛 피부를 쓰다듬고 지나간다.
 사내들은 해변가 거친 바위 위에 걸터앉아서 왁자지껄 떠들어댔다.
 술도 마시고 음식도 먹는다.
 “올해도 모보(慕普)겠지?”
 “하하! 그건 모르지. 올해는 뇌슬(腦瑟)이가 출전했잖아.”
 “뇌슬이가 모보를 감당할까?”
 “난 감당할 것 같은데?”
 “하하하! 그럼 난 감당하지 못한다에 판돈을 걸어야겠구먼. 어때? 출어(出漁)나갈 때 하루 공짜로 일해주기.”
 “하하하! 그거 좋지. 후회나 하지 말라고.”
 “내가 할 말을 사돈이 하고 있네. 뇌슬이가 아무리 날고뛰는 기재라고 해도 이번에는 안 될 걸. 첫 출전인데다가 경험도 없잖아. 무공이 약해서 지는 게 아니라 실수해서 지는 거라고. 하하하!”
 “글쎄 뇌슬이는 그런 실수도 안 한다니까. 두고 보게. 하하!”
 이 사람, 저 사람 중구난방으로 떠들어댔지만 대화 내용의 거의 흡사했다.
 모보냐, 뇌슬이냐.
 노모보(魯慕普), 야뇌슬(夜腦瑟)!
 적암도에서 가장 밝게 빛나고 있는 해와 이제 막 고개를 내민 해.
 노모보가 거친 파도라면, 야뇌슬은 이제야 물결을 일으키기 시작한 작은 파랑(波浪)이다.
 노모보는 약관(弱冠)의 나이에 해변 적벽(赤壁)에 뚫린 이십사(二十四) 무동(武洞)을 칠성(七成) 출동(出洞)했다.
 적암도 역사상 최연소 칠성출동이다.
 노모보 이전의 최연소 칠성출동은 이백여 년 전에 수립된 것으로, 기록된 나이는 스물 둘이었다.
 아니, 그가 얼마나 빨리 칠성출동했는지를 설명하기 위해서 굳이 이백여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도 없다. 당장 현재만 훑어봐도 알 수 있다.
 적암도 사내들 중 절반 이상이 이십사 무동을 통과하지 못했다. 칠성출동하지 못했다.
 나이가 쉰을 넘고 예순을 넘긴 사람도 아직까지 무동을 들락거린다. 심한 경우에는 할아버지부터 증손자까지 사대가 함께 무동을 출입하기도 한다.
 노모보는 실전 경험도 풍부하다.
 그가 바다를 맡기 시작한 이래, 해적들의 씨가 말라 버렸다.
 그 전에도 해적은 거의 없었다.
 적암도 주변은 물결이 빠르고 급해서 능숙한 사공도 바싹 긴장해야 하는 곳이다. 바다에서 평생을 산 사람도 적암도의 물결을 알지 못하면 물귀신 되기 십상이다.
 오죽하면 적암도 주변을 ‘붉은 죽음의 바다’, 적사해(赤死海)라고 부르겠는가.
 적사해에는 어선이 없다. 상단도 없다. 일 년 열두 달 망망대해를 쳐다보고 있어도 지나가는 배 한 척 볼 수 없다.
 그렇기에 오히려 해적의 관심을 끈다.
 해적들이 본거지를 두기에 최적의 장소이지 않은가. 섬 주위에 천연의 방어막이 펼쳐져 있다면 두 발 쭉 뻗고 잘 수 있으리라.
 그래서 가끔가다 한두 척씩 기웃거리는 해적선이 있다.
 노모보는 그런 해적선까지도 씨를 말려버렸다. 이십사 무동을 칠성출동한 이후, 지난 오 년 동안 바다에 수장시킨 해적선의 수가 이십여 척에 이른다.
 
 - 한 놈을 살려두면 열 명을 죽인다. 그런 놈들은 가장 빨리 죽이는 게 상책이다. 회개(悔改)? 그럴 시간이 어디 있나. 세상에 악인은 많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억울하게 죽는 사람이 생기고 있다. 최단시간에 척결하는 것만이 능사다.
 
 그의 강기(剛氣)는 확실하다.
 더욱이 그는 부도주(副島主)의 영식이다. 적암도 제일무인의 피를 물려받았다. 적암도 역사상 최강의 무인일 것이라고 칭송받는 노갹충(魯醵忠)의 진전을 고스란히 전수받고 있다.
 그의 근골(筋骨)은 적암도 제일이다.
 근골만 뛰어난 것도 아니다. 용모도 영준하다. 몸에서 울퉁불퉁한 근육을 빼내고, 여장을 입혀 놓으면 아주 뛰어난 미녀가 될 것이라고 농담 삼아 말하기도 한다.
 하기는 적암도 제일미녀의 용모를 빼다 박았으니 오죽 하겠나.
 그는 인간이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누리고 있는 아주 축복받은 사내다.
 이런 노모보다.
 누가 봐도 풋내기에 불과한 야뇌슬이 노모보를 제치고 우승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야뇌슬에게 기대를 거는 쪽은 생각이 다르다.
 야뇌슬은 이제 겨우 이구(二九), 열여덟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십사 무동 중 이십이 무동을 칠성출동했다.
 이런 추세라면 나머지 이동도 일 년 이내에 통과할 것이고, 노모보의 최연소 출동기록을 갈아치울 것이다.
 사실 야뇌슬의 이런 기록에는 약간의 안타까움이 남아있다.
 야뇌슬은 이십사 무동에 전념하지 않았다.
 적송림(赤松林) 십이(十二) 좌실(座室)!
 문(文)을 유불선(儒佛仙) 삼교(三敎)로 나누고, 삼교를 다시 상중하초(上中下超) 사단(四端)으로 구분하여, 십이좌실이라는 서고(書庫)를 만들어 놨다.
 십이좌실에는 통과의례가 없다.
 학문의 정도를 구분하는 상중하초도 사단(四段)이라 하지 않고 ‘네 가지 바름’이라고 한 것은, 학문에는 높은 학문과 낮은 학문이 없다는 아주 간단한 이치를 알려주기 위해서다.
 원하는 사람이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서적을 읽으면 된다.
 야뇌슬은 하루의 절반은 십이좌실에서 책을 읽으며 보냈다.
 만약 그가 오로지 이십사 무동에만 전념했다면 아마도 지금쯤은 칠성출동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어쩌면 영원히 깨지지 않을 이십사 무동 최연소 출동 기록을 세울 수도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 말이다.
 그러나 그가 집중을 했건, 안 했건 지금까지 이룬 것만 해도 경이적이다. 그리고 그 기록은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노모보의 기록을 깰 것이며, 적암도의 역사를 새로 쓸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는 뛰어난 도주가 될 것이다.
 무예만 뛰어난 도주가 아니라 문무쌍전(文武雙全)의 완벽한 도주가 되리라.
 문무쌍전의 도주!
 그런 사람이 다스리는 적암도는 어떤 세상을 맞이할까?
 야뇌슬은 그런 기대를 갖게 만든다.
 그가 일념으로 몰두하면 세상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던 그 어떤 일도 해낼 것 같다.
 야뇌슬이 노모보를 꺾을 수 없다는 생각은 너무 이르다.
 무공이 노모보보다 못하고, 경험 또한 전무하지만, 그는 야뇌슬이니까 충분히 해낼 수 있다.
 물론 걱정이 없는 건 아니다.
 누군가가 무동에 전념하라는 말을 했을 때, 그가 한 말이 있다.
 
 - 에이, 그런 소리 마세요. 제가 능력이 안 되니까 출동을 못한 거지 집중을 안 해서 그렇겠어요? 집중만 해서 될 수 있다면 안 할 사람이 누가 있어요. 그래서 된다면 정말로 잠자는 시간도 아껴야죠. 해도 안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거고요. 그런 시간에 책을 읽는 거니까······ 저는 지금이 좋은데요?
 
 
 
 다음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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