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후······ 늦는군.”
분당의 한 오피스텔 10층.
자신의 집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같은 한 남자는 짜증나는 듯이 커피를 홀짝이며 책상 앞에 놓여 있는 칼럼을 보고 있었다.
세상에 마법과 무공이 실제로 존재할까?
그런 의문은 다들 어릴 때 한 번씩 가져 보았을 것이다.
이 사내도 처음에는 그랬다.
스스로가 기를 다룰 수 있는 재능에 눈뜨기 전에는 남들도 다 자신과 같은 줄 알았다. 남들과는 다른 재능, 그는 그것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2022년.
세계에는 조용하지만 거대한 공포가 찾아왔다. 지구 곳곳에 던전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던전 안에는 던전이란 이름을 붙였다시피 괴수들이 있었다.
미국 말로 하면 몬스터.
어쨌거나 사람도 동물도 아닌, 다른 세계의 무언가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물론 외계인이라고는 부를 수 없었다.
그들은 지성이 없다시피 보였고, 사람들을 공격하기 일쑤였으니까.
던전의 최초 발생지는 중국.
처음 던전이 나타났을 때의 중국은, 언론을 통제하고 비상체제를 선포했다.
중국은 선발대를 보내 포탈 안쪽에 괴수들이 있는 것을 처음으로 목격했다.
그러나 탐사대는 그 괴수들이 자신들을 따라 던전 밖으로 따라 나오지 못하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 내용을 상부에 보고했다.
그에 중국은 그것에 대해 안심하고 방치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며칠 후.
최초의 포탈이 나타났던 지역은 초토화되었다.
포탈의 괴수들이 밖으로 나온 것이다.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사상자가 수천이 넘어갔으며 그때에야 심각성을 느낀 중국은 다수의 군대 파병을 결정했으나, 군대마저도 꽤 많은 사상자를 내고서야 겨우 최초의 괴수들을 모조리 처리할 수 있었다.
그리고는 마침내 괴수의 시체를 해부하며 실험을 시작했다.
-도검류에도 잘 찢어지지 않는 가죽이라니?
-그뿐만이 아니야. 이 괴물의 손톱의 강도는 거의 다이아몬드 급이라고.
연신 놀라는 것과 동시에, 해부를 하던 도중 가장 중요한 것을 발견했다.
괴수를 잡으면 괴수의 시체 안에서 푸르게 빛나는 돌이 나왔다.
처음에는 청석, 마석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던 이 돌은 후에 ‘마법무구 제작 연합’에 의해 ‘마정석’으로 불리게 된다.
그렇게 최초에 나타난 던전을 중심으로, 세계 곳곳에 동시 다발적으로 던전이 등장했다.
그리고 중국처럼 대처했던 많은 나라에서 많은 사람이 죽었고, 중국이 이러한 정보를 알면서도 쉬쉬했던 것은 후에 두고두고 욕을 먹는다.
하지만 던전의 존재가 일반인에게마저 입소문을 타고 퍼질 정도가 되고, 실제로 포탈을 목격하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그렇게 ‘그들’도 같이 나타났다.
각국에 은밀하게 숨어있던 능력자들, 무림인들, 마법사들 등 소위 판타지에서만 볼 수 있었던 ‘그들’이 세상으로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우스운 점이라면, 출몰하는 능력자들에게도 지역의 특색이 있다는 것이었다.
일본에서는 닌자가 나오는가 하면, 무림인들은 주로 중국을 활동의 무대로 삼았다.
그렇게 각국의 능력자들은 웃기게도 길드를 창설해 던전을 토벌하러 다니기 시작했다.
국가들이 길드에 비싼 돈을 주고 던전 토벌을 의뢰할 수 있도록 연합한 것이다.
사업으로 치자면 담합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마정석의 경우 마법을 부여함과 동시에 엄청난 강도의 무구를 제작할 수 있다는 사실이 마법사들을 통해 공개됐다.
“그러자 일반인마저도 무술을 배워서 헌터가 되겠다는 등 엄청난 혼란이 도래했다라······.”
‘혼란이라니 웃기는군. 그것마저 돈벌이로밖에 생각 안 하는 세상인데.’
반쯤 마시던 커피를 내려놓은 사내는 약간의 표정을 찡그리며 읽던 칼럼을 내려놓고 창밖을 바라봤다.
‘해가 중천인데 말이지.’
키가 180 정도 되는 것 같은 보폭과 걸음 소리.
가볍게 뛰면서도 꽤 빠르다. 그 말은 평소에 운동을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이 사내는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레 느꼈다.
딩동-!
사내, 종현은 마시던 커피를 내려놓고 식탁 옆에 설치해 놓은, 현관문을 열 수 있는 버튼을 눌렀다.
삑 삐리릭!
“아이고, 늦었습니다. 종현 군 미안해요.”
검은 양복을 입은 사내가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다.
거친 숨을 연신 몰아쉬면서.
“이번에 새로 발견된 던전인데, 승인 번복으로 저도 상관하고 싸우고 오는 길입니다.”
종현은 입에 머금던 커피를 삼키고는 말했다.
“그래서 이번엔 어딥니까? 대체.”
지익- 턱!
양복의 사내는 자신의 손가방을 열어 서류를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C급 던전으로 변경되었어요. 충북 쪽에 있고 현재 D급 길드 인원 스물 정도가 들어가서 고작 3명밖에 생존을 못했으니······ 승인 번복이 날 만도 하죠.”
“확실히 보통 건수는 아니군요.”
“생존자가 횡설수설하긴 하는데, 하운드가 꽤 많은 무리로 뭉쳐 다닌다고 하네요. 횡설수설해서 누구는 몇 십이다, 누구는 몇 백이다 하지만······.”
대박 건이 하나 있다면서 아침부터 다짜고짜 전화해 잘 자고 있던 종현을 깨워놓은 담당자였다.
거기까진 상관없었지만, 2시 전까지 오겠다고 해놓고는 3시가 다 돼서야 온 탓에 사실 별일 아니었으면 화를 내려고 벼르고 있던 종현이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괜찮은 보수겠군.’
호들갑을 떤 이유를 알 만 했다.
그리고 종현 자신은 ‘혼자’ 던전을 클리어하는, 말하자면 비공식 인원이다.
물론 자신과 같은 사람이 몇이나 더 있는 줄은 본인도 모르지만, 적어도 나라에서 합법적인 일로 자신을 찾아오는 일은 없었다.
‘그래서 당연히 승인도 늦어졌겠지.’
서류에 적혀진 정보를 쭉 훑어보던 종현은, 문득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담당자를 흘깃 쳐다봤다.
“할 말이 더 있습니까?”
“저······ 혼자 일하시는 건 압니다만. 이번엔 너무 위험해서 저도 사실 맡길까 말까를 한참 고민했거든요. 승인 안 나는 걸 우겨서 가지고 오긴 했는데······ 정말 혼자 가실 겁니까?”
종현은 돈의 문제를 떠나 기본적으로 믿을 수 없는 사람과 같이 일하는 것을 싫어했다.
괴수보다 믿을 수 없는 것이 사람이다.
차라리 돈을 믿고 말지.
“혼자 하죠. 알잖습니까, 담당자님도. 그럼 이만.”
이 말을 마지막으로 다시 창가로 고개를 돌린 종현은 더 이상 얘기할 필요도 없다는 듯 다시 커피를 홀짝이기 시작했다.
명백히 가라는 뜻이다.
무안해진 담당자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종현을 몇 번 더 쳐다보더니 나갈 준비를 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자료에 나머지는 잘 설명되어 있으니, 혹시라도 팀을 꾸리거나 국가에 귀속될 생각 있으시면 언제나 말씀하시고. 종현 군이라면 환영이니까요.”
의미심장하게 마지막 말을 전한 담당자는 아까 들어왔던 문 그대로 나갔다.
물론 종현의 귀엔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모든 일을 혼자 처리하는 만큼 종현은 꽤나 보수가 높았고, 그 점이 안정성보다도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이 고작 하위 던전에서 죽을 일은 없다는 자신감과 실력.
문득 커피잔을 보며 꽤나 표정을 찡그린 그는, 읽던 칼럼을 마저 읽기 시작했다.
한국에도 몇 개의 팀과 길드가 있다.
다만 다른 나라보다 수가 적고 상대적으로 능력자들의 수준이 약했기 때문에, 랭크가 높은 던전이 자주 출몰할 경우 외주를 주곤 한다.
‘흠.’
그런 의미로 보면 자신은 한국에게 대단히 귀한 존재 중에 하나다.
현재 세계에서 공용으로 하는 랭크 심사에서, C랭크 이상을 받은 사람이 한국에는 백 명도 안 되었다.
A, B랭커들은 이름값이 이미 너무 높아져버린 몇을 제외하고는, 모두 비공개였기 때문에 그 수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확실한 건 매우 소수라는 점이다.
그리고 종현은 승급 심사를 따로 하지 않고 국가에서 자체적으로 심사할 수 있는 D랭크를 발급받았다.
‘던전 출입은 해야 되니까.’
랭커 자격증이 없으면 던전 출입 자체가 불법이었다.
비공식적으로 자신을 평가했을 때, 국가에서는 약 C 정도의 평가를 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평가를 바탕으로, 해외 길드에 외주를 주자니 금액이 많이 드는, 말하자면 금액적으로 효율이 안 맞는 애매한 던전들을 자신에게 의뢰했다.
‘그럼 나는 뭘까.’
정확히 뭐라고 평가를 내리기도 애매한 일이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본인 스스로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좋게 말하면 국가 직속 기관에서 일하는 요인이고, 나쁘게 말한다면 언제든 위험하고 보호받지 못하는 끄나풀 중 하나인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을 마친 종현은 칼럼을 내려놓고, 더 이상 이건 못 마시겠다며 중얼대고는 싱크대 쪽에 플라스틱 컵을 그대로 던져버렸다.
이런 그의 세 번째 직업을, 몇몇의 사람들은 이제 ‘해결사’라 불렀다.
***
“이거이거. 이러면 곤란한데.”
혀를 한번 찬 종현은 차를 멈추고는 시동을 껐다.
25살인 종현은 나이에 비해서 꽤 좋은 차를 타고 다녔다.
목숨을 걸고 일하는 것에 대한 보상이랄까.
‘하여튼 이놈의 나라는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것이 없어.’
서류에 나온 주소로 네비를 찍었지만, 던전은커녕 넓은 길에 어린이집과 옆쪽에 교회만 하나 있을 뿐이었다.
‘나머지는 논밭이잖아!’
머리를 긁으며 담당자에게 전화를 할까 싶었던 종현이었지만, 알 수 없다는 답변을 받을 게 뻔했다.
담당자가 직접 와 보고 서류에 주소를 적지는 않으니.
차에서 내려 주변을 살펴보던 종현은 어린이집 뒤쪽의 논밭을 가야 되나 고민하고 있었다.
포탈이라고는 안 보이는데.
그때, 어린이집 앞에 있는 4m쯤 되어 보이는 나무 위쪽으로 문득 미세한 빛이 도는 것을 발견했다.
종현의 눈에는 이채가 스쳐갔다.
“요즘 포탈은 은신 기능도 있는 거냐?”
드디어 찾았다는 듯, 종현은 짧게 빈정거리며 발에 기를 집중하곤 땅을 박차고 올랐다.
타타타닥-!
누가 인식할 수도 없을 만큼 빠르게 나무를 두 발로 걸어 올라간 종현은 그대로 던전 입구로 보이는 포탈에 몸을 던졌다.
스스슥.
포탈은 종현을 빨아들이고는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일순 어두워졌던 종현의 눈앞이 다시 밝아졌을 땐 길게 뻗은, 황갈색 벽돌로 이루어진 통로가 나왔다.
“어······ 어?”
자신의 오감이 아직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면, 분명히 뒤쪽은 막혀 있는 상태!
“얼레? 뭐야 이거. 설마 탈출구가 없어!?”
표정을 있는 대로 구기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종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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