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함
뒤로가기버튼 라이언 전기.

1화

2018.10.12 조회 1,984 추천 8


 1장 필사의 텔레포트
 
 
 
 
 
 
 
 
 
 
 
 “허억, 허억, 이럴 수가!”
 
 
 
 무섭도록 어두운 숲을 헤치며 도망치던 노인은 거친 숨을 내쉬며 급히 발을 멈추어야 했다. 눈앞에 까마득한 절벽이 내려다 보였기 때문이었다.
 
 
 
 뒤편에선 검은 복면의 사내들이 포위망을 좁혀 오고 있었다.
 
 
 
 “이 빌어먹을 마법사 놈. 우리 형제들을 죽이고 도망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나?”
 
 
 
 노인은 피 묻은 검을 들고 다가오는 복면인들을 보며 품에 안고 있던 아기를 꼬옥 부둥켜안았다.
 
 
 
 ‘미안하다, 아디나. 내가 몸이 성했더라면 지켜 줄 수 있었을 것을,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이뿐이로구나······.’
 
 
 
 후드를 깊이 눌러쓴 노인이 저 멀리 불타오르는 성을 향해 중얼거리며 오른손을 들었다.
 
 
 
 그의 행동을 본 복면인들은 흠칫했다. 또다시 노인이 공격마법을 발사하는 줄 알고 몸을 웅크렸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순간, 노인의 몸이 옆으로 기울어지는 듯하더니 절벽 아래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저, 저런······!”
 
 
 
 잔뜩 긴장하고 있던 복면인들은 노인이 서 있던 자리로 달려왔다. 하지만 절벽 아래는 깊은 어둠에 잠겨, 두 눈을 부릅뜨고 살펴보아도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밑으로 내려가서 놈의 목을 따 와라!”
 
 
 
 그들의 수장으로 보이는 자가 싸늘한 목소리로 명령했다.
 
 
 
 “네엣?”
 
 
 
 수하들이 놀라서 그를 바라보았다. 평소였다면 그 즉시 행동에 옮겼을 그들이었지만, 이번에는 어찌할 바를 몰라 하다가 그들 중 하나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이곳은 몬스터가 우글거리는 죽음의 계곡입니다. 여기서 떨어지면 절대로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살아 있다고 해도, 피 냄새를 맡은 몬스터들이 가만 놔두지 않을 겁니다.”
 
 
 
 그러자 수장은 그를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 레드문의 일급 암살자들이 이런 코딱지만 한 시골 영지에서 열두 명이나 죽었다.”
 
 
 
 그 말에 수하들은 침묵했고, 수장은 그들의 면면을 향해 책임을 추궁했다.
 
 
 
 “너희 중에 이대로 돌아가 마스터께 보고할 자가 있나?”
 
 
 
 하지만 절벽 아래는 야생 염소조차 발 디딜 곳 하나 없었기에, 반론했던 부대장격의 수하가 다시 말했다.
 
 
 
 “올라올 길이 있으면 제가 뛰어내리겠습니다. 하지만 정보를 제공한 의뢰인 측에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마법사는 2서클인 자작의 부인이 유일하다더니, 저놈은 4서클 정도 되어 보이지 않았습니까? 워낙 급한 의뢰라며 자체 조사를 할 시간마저 주지 않았으니 인명피해가 난 것을 어찌하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무를 완수했으니 마스터로부터 질책은 없으리라 생각됩니다.”
 
 
 
 크어어어엉!
 
 
 
 그때 멀지 않은 곳에서 몬스터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수장은 이를 바득 갈며 절벽 밑을 노려보았다.
 
 
 
 “이미 흔적을 지우고 떠났어야 할 시간입니다. 만약 저희의 개입을 황실에서 알게 된다면······.”
 
 
 
 “제길!”
 
 
 
 그 말마따나 수장은 지금 냉정하게 판단해야 했다.
 
 
 
 빌어먹을 마법사 놈은 후드를 깊이 눌러쓴지라 얼굴도 정확히 보지 못했다. 만일 살아 있어 세상에 이 일을 까발린다면 어찌 감당한단 말인가. 하지만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거액의 의뢰대금을 받은 이번 일은 최대한 은밀하게 진행돼야 했다.
 
 
 
 몬스터들의 습격으로 위장해 놓긴 했으나, 자신들의 흔적을 철저하게 지우지 못한다면 제국 차원에서 치밀하고 대대적인 조사를 시작하리라.
 
 
 
 “인근 영지에 몇 명을 남겨 두겠습니다. 그렇게 부상을 입고 이곳에서 살아 나온다고 해도, 마을에 들어서기 전에 처치해 버리면 되지 않겠습니까? 동이 틀 때까지 시간이 촉박합니다. 지부장님!”
 
 
 
 “큭, 반경 3킬로까지 각 마을마다 세 명씩 배치해라. 인근 영지에 사는 마법사들과 조금이라도 다친 사람이 있으면 모조리 확인하고. 이만 자리를 뜬다!”
 
 
 
 명령이 떨어지는 즉시 복면인들이 어둠 속으로 빨려들듯 사라졌다.
 
 
 
 인적 없는 절벽엔 스산한 바람만이 불어왔다.
 
 
 
 * * *
 
 
 
 쏴아아아아!
 
 
 
 차가운 빗줄기가 회색의 어두운 광장에 쏟아져 내리는 밤이었다.
 
 
 
 쿵쿵쿵!
 
 
 
 “도대체 누군데 오밤중에 이 난리야?”
 
 
 
 잠에 취해 있던 50대의 사내가 짜증스럽게 중얼거리며 침대에서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밖에 뉘시오? 상점 문 닫았소.”
 
 
 
 쿵, 쿵, 쿵!
 
 
 
 벌컥!
 
 
 
 그때까지도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계속되자 사내는 신경질적으로 거칠게 문을 열어 젖혔다.
 
 
 
 “허억! 주, 주인님? 이게 어찌 된······!”
 
 
 
 처음에 술주정뱅이인줄 알고 버럭 화를 내려했던 사내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열리는 문과 함께 쓰러져 내린 사람은 자신의 주인이었다.
 
 
 
 “라, 라울. 이, 이 아기를 먼저······.”
 
 
 
 노인이 흠뻑 젖어버린 후드의 가슴팍을 들추자 새파랗게 질린 어린 아기의 모습이 드러났다.
 
 
 
 “나, 나오미! 빨리, 빨리 나와 봐!”
 
 
 
 소스라치게 놀란 라울이라고 불린 사내는 아기를 받아들고 어쩔 줄 몰라 하며 상점 안쪽을 향해 소리쳤다.
 
 
 
 그 모습을 보고서야 후드를 눌러썼던 노인은 바닥에 쓰러졌고, 상점의 현관 앞은 끊임없이 쏟아져 내리는 빗물과 노인의 피가 섞여 검붉은 색으로 물들었다.
 
 
 
 * * *
 
 
 
 햇살이 창을 통해 스며드는 아침.
 
 
 
 “으음······ 아, 아기······!”
 
 
 
 벌컥!
 
 
 
 신음에 이어 힘겹게 눈을 뜬 노인이 크게 외치자 한 사내가 허겁지겁 들어섰다.
 
 
 
 “주인님! 정신이 드셨습니까?”
 
 
 
 밤비가 내리던 날 노인을 맞았던 라울이었다. 얼굴이 푸석푸석한 것이 계속해서 노인의 곁을 지킨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그런 기색은 알아볼 틈도 없이 노인은 다급하게 물었다.
 
 
 
 “아기, 아기는 어디 있는가!”
 
 
 
 라울이 걱정하지 말라는 듯 서둘러 답했다.
 
 
 
 “무사합니다. 나오미가 잘 돌보고 있으니 안심하시고 푹 쉬십시오. 지금 주인님의 부상이 더 심각해요. 비약을 두 병이나 드시고 나서야 겨우 깨어나신 겁니다.”
 
 
 
 “수고했네, 라울. 크으윽······!”
 
 
 
 아기의 상태를 듣고서야 노인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러고는 그제야 끔찍한 통증이 느껴졌는지 지독한 신음을 흘렸다.
 
 
 
 가슴을 가로지르는 검상이 꽤나 심각했기에, 라울이 밤새도록 치료와 간병을 하지 않았다면 필시 이렇게 떠오르는 태양을 볼 수 없을 터였다.
 
 
 
 “주인님, 상처가 터지니 제발 누워 계십시오. 어쩌다 이렇게······.”
 
 
 
 라울이 걱정스런 기색을 감추지 못했지만, 노인은 자신의 몸 상태를 챙기기보다 다른 데 신경이 미쳤다.
 
 
 
 “그것보다 밖에서 들리는 소리가 심상치 않군. 영지에······ 무슨 일이 있는가?”
 
 
 
 창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노인이 시선을 던지며 물었다. 밖에선 일정하고 체계적인 발소리와 거친 말발굽 소리 들이 한참 이어지고 있었다.
 
 
 
 “새벽녘에 비상종이 울리고 난리가 났었습니다. 북부 쪽에서 오크들이 난동을 부린다고 해서 성벽에 병사들이 배치되고, 지금 성문도 닫혀 있습니다요.”
 
 
 
 라울이 말을 마치자, 노인은 잠시 굳어진 표정으로 뭔가를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잘 듣게나, 라울. 내가 다쳐서 돌아온 것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게. 특히 아기에 대해선 특별히 함구하게.”
 
 
 
 라울은 영문을 몰랐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노인은 자신과 아내인 나오미를 자유인으로 풀어준 은인이었다.
 
 
 
 그를 위해서라면 목숨도 바칠 수 있는 라울인 만큼 절대적으로 순종했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아기에게 젖을 먹이려면 유모가 필요한데요······.”
 
 
 
 생각지도 못했던 문제에 노인이 침음을 흘렸다.
 
 
 
 라울의 말대로 아이를 키우려면 젖이 필요했다. 한두 번이야 다른 핑계를 대서 젖동냥을 할 수는 있겠지만, 젖을 뗄 때까지는 최소 일 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결국 아이를 완전히 감추기란 어렵다는 뜻.
 
 
 
 노인은 깊이 생각하다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그렇다면 이번에 내가 후계자로 키우기 위해 먼 친척의 아이를 데리고 왔다고 하고, 되도록이면 입이 무거운 유모를 구해보도록 하게.”
 
 
 
 “올리 씨의 딸인 메냐가 어떨까요? 두 달 전에 딸을 낳지 않았습니까?”
 
 
 
 “그래! 그 아이라면 믿을 수 있겠군. 아기가 아프지 않게 잘 돌봐 주게.”
 
 
 
 “예, 저희가 알아서 하겠으니 주인님은 제발 쉬어 주십시오.”
 
 
 
 라울이 사정했지만 노인은 쉽게 마음을 놓을 수 없는지 침음을 흘릴 따름이었다.
 
 
 
 * * *
 
 
 
 상처가 어느 정도 나았을 때, 뜻하지 않은 손님이 찾아왔다.
 
 
 
 “뒤프레 마법사님, 이게 어찌 된 일이십니까?”
 
 
 
 부리부리한 눈, 강인한 인상과 건장한 체격의 중년 사내는 검술 학원을 운영하는 퇴역기사 올리였다.
 
 
 
 그의 오른팔 소매는 잘 말려 묶여 있었다. 외팔이였기 때문이다.
 
 
 
 “허허, 별거 아닐세. 여행을 하던 중 어쩌다 몬스터와 좀 마찰이 있었네. 신경 쓰지 말게. 그런데 자네는 그 사실을 어찌 알고 찾아왔나?”
 
 
 
 “제 딸년이 매일 이곳에 들르기에 물어보았다가 알게 되었습니다. 더 빨리 문병을 오려 했지만, 한동안 영지에 비상이 걸려 바쁘다 보니 이제야 왔습니다.”
 
 
 
 비상시국에 올리의 검술 학원은 성의 자치대 역할을 해야 했고, 올리는 자치대의 대장직을 수행해야 했기에 그동안 짬을 내기 힘들었던 것이다.
 
 
 
 “그랬었군. 그럼 이제 비상은 풀렸는가?”
 
 
 
 “예, 불행히도 서북부의 작은 영지 하나가 오크의 습격으로 몰살당하기는 했지만, 우려 했던 대로 2차 오크족의 이동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올리가 말한 오크족의 이동은 일 년 전 일어난 사건으로, 대략 5만 마리의 오크들이 이곳 아도라스 제국 서편에 있는 티란테 산맥을 뛰쳐나와 영지 두 곳을 초토화시키는 엄청난 피해를 입힌 적이 있었다.
 
 
 
 당시 중앙군까지 출동하여 간신히 오크들을 몰살시켰기에, 이번에도 또 일이 터졌는가 싶어 멀리 떨어진 남부의 영지들도 한동안 비상 상태를 유지했던 것이다.
 
 
 
 “그렇군······.”
 
 
 
 초췌한 안색의 뒤프레는 잠시 며칠 전의 악몽을 떠올렸다.
 
 
 
 그때 뒤프레는 자신의 제자이며, 자작부인이 된 아디나의 출산을 축하하기 위해 그곳에 있었다.
 
 
 
 만약 자신의 몸이 정상이었다면 검은 복면의 암살자들을 모조리 물리칠 수 있었으리라.
 
 
 
 하지만 아디나의 남편이 다스리는 영지에 닿기 전에 예상치 못한 몬스터의 습격으로 치명상을 입은 것이 크나큰 불운의 시작이었다.
 
 
 
 그 잔인한 살인마들은 마을의 모든 우물에 미리 독을 풀어 영지민들과 병사들을 무력하게 만들어 놓고 학살을 자행했다.
 
 
 
 뒤프레는 아기를 안고 불타는 장원을 탈출할 때 분명히 보았다. 미리 준비한 듯, 마차 안에 가득 쌓여 있던 오크들의 사체 더미를.
 
 
 
 올리의 말을 듣고 보니, 그 사체들이 증거인멸에 쓰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나저나 웬 아기입니까?”
 
 
 
 올리의 물음에 뒤프레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복면인들의 정체도, 목적도 알 수 없었지만, 귀족이 습격을 당했으니 정적의 소행일 것이 분명했다.
 
 
 
 이런 마당에 섣불리 아기의 정체에 대해 말했다가는 그자들에게 추적을 당해서 습격을 받을 위험이 있었다.
 
 
 
 잠시 고민하던 뒤프레는 일단 메냐에게 했던 핑계를 다시 꺼내 들었다.
 
 
 
 “허허, 먼 친척의 아이일세. 부모가 화재로 변을 당해 안타까운 마음에 데려왔지. 봐서 소질이 있으면 내 후계자로 키울까 생각 중이네.”
 
 
 
 뒤프레는 오크의 습격으로 꾸며진 그 처절했던 밤을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기로 했다. 아무리 작다 하나 영지 하나가 통째로 몰살당한 사건이다.
 
 
 
 사실을 밝히기 위해 늙은 몸을 던지는 건 두렵지 않았지만······.
 
 
 
 ‘아디나의 아기.’
 
 
 
 더 이상 일이 커져봤자 가냘픈 아기에게 도움이 될 것이 하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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